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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만한 자산증식 수단도 드물다"

  budongsancanada

   RBC 관계자 "무주택자, 부 축적할 기회 잃어"   아직 집을 장만하지 못한 무주택자들이 벌어들이는 소득 가운데 많은 부분이 주거비로 지출되면서 이들은 부를 축적할 기회까지 놓치게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RBC의 경제학자 캐리 프리스톤 박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주거와 관련한 비용이 치솟으면서 세입자들은 재정적으로 큰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경우에 따라 수입보다 지출을 더 많이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의 축적을 살펴보면, 주택 소유가 캐나다에서 재산을 증식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0년 동안의 여러 통계를 보면 가계에서 축적한 자산의 절반가량이 부동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보아온 자산 축적 속도나 가치 상승 속도를 고려할 때 주택에 견줄 만한 투자 수단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더구나 대부분 부동산은 은퇴 전까지 모기지를 갚을 수 있어 노후에 의지할 만한 수단이 되고, 안정감을 주는 측면도 크다고 전했다.  프리스톤 박사는 "따라서 세입자들이 주택가격이나 이자 부담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나서 더 많은 주택을 가능한 이른 시기에 공급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잠재적 투자자들과 네트워크 형성할 기회”

  budongsancanada

한캐비즈니스협회 연례포럼 연방-주정부 장관들 참석     4월 4일 First Canadian Place에서 개최     한캐비즈니스협회(The Canada Korea Business Council, www.ckbc.ca, 대표 조성용)가 기업가와 투자자를 초청해 연례 비즈니스포럼을 개최한다. 오는 4월 4일(목) Gowling WLG: First Canadian Place(100 King St. W. Suite 1600, Toronto)에서 열리는 이번 포험의 주제는 기업의 인수합병과 벤처 투자, 수출입, 친환경 에너지, 부동산, 생명과학, 식음료 등이다.   매리 응 연방 경제발전부 장관과 토드 스미스 온타리오 에너지부 장관, 임웅순 주캐나다한국대사, 테드 크루츠너 에너지자원기업 부회장 등이 연사로 나선다. 포럼 참가비는 100달러이며, 온라인으로 등록(https://forms.gle/oHokSfq8suwsbjgf8)할 수 있다.   포럼을 준비 중인 조성용 대표는 "잠재적인 투자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이며,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신 트렌드와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엘카, 캐나다의 ‘헬스케어 커리어’ 집중 분석

  budongsancanada

    비영리단체 ELCA(엘카, Entrepreneurial Leadership Canada)에서 의료전문직과 관련한 온라인 강연회를 연다. 3월 28일(목) 오후 8시 30분 시작하는 이번 강연회에는 박세환(사진 Ciropractic Doctor, Evergreen Rehab & Wellness ) 멘토가 강연을 진행한다. 강연 주제는 ‘캐나다 헬스케어 커리어(의료전문직) 집중 분석: 헬스케어 커리어, 미리 알고 준비하기’다.   ▶헬스케어 커리어의 장점/전망-[AI의 시대, 전문직으로 승부] ▶헬스케어 커리어는 왜 어렵게 느껴질까? ▶흔히 빠지는 함정- [의대/치대/약대의 굴레] ▶헬스케어 커리어의 종류 -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준비하자] ▶지금 준비해도 늦지 않다 - [세컨드 커리어] ▶실패없는 전략 세우는 방법 - [시간이 곧 비용이다] 등이다. Zoom Meeting을 통한 비대면 세미나이며, 세미나 신청은 http://elcatoronto.com/seminar 주소로 가능하다. ELCA는 토론토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 멘토들과의 네트워킹 및 멘토링을 통해 참여자가 추구하는 비전 및 목표 달성을 돕고, 나아가 한인지역사회에 건전한 나눔문화 형성에 기여할 목적으로 2019년에 만들어진 비영리단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2024-03-21

처염상정(處染常淨)

  ywlee

                                       *연꽃   Editor’s Note   -더러운 진흙에서 자라지만 -청초롭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 ‘그 꽃’ 전문) 한국에서 잘 나가던 중견 정치인이 선거에 낙선하고 난 뒤 등산으로 울분을 달래던 어느날 나와 대폿집에 마주 앉아 들려준 시다. 그는 말했다. “나 자신을 돌아볼 겨를없이 바쁘게 생활할 땐 오로지 목표만 보였을 뿐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되니 안 보이던 일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가끔은 하산하는 자세도 필요한 것 같다.”   0…17자의 짧은 위 시 구절에 인생의 많은 의미가 함축돼있다. 사람은 앞만 보고 달리거나 인생에서 한창 오르막일 때는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한다. 산이 아름다운 줄도, 곁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정상에서 내려와 비로소 한숨 돌리고 나면 안 보이던 상황도 보이는 것이다.   0…올해 91세가 되는 고은 시인. 그의 1980년대 저항시들이 투쟁적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시적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랫동안 선시(禪詩)같은 서정시를 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고한 시인이 수년전 전세계를 강타한 ‘미투(#MeToo) 열풍에 휩쓸려 한순간에 모든 영예와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0…사람이 정상에 서면 주변의 모든 것이 만만하고 하찮게 보이는가 싶다. 고은 시인이 그대로만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다. 어쨌든 그의 시 작품만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용되고 있다.    0…검사 이성윤. 그도 한때는 잘 나가던 대한민국 최고위급 검찰 간부였다. 요즘 이 사람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음에도 평생 몸담았던 검찰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매우 서정적인 책을 썼다. 이름 하여 ‘꽃은 무죄다’. 0…스스로를 ‘꽃개’라 자처하는 전 서울고검장 이성윤의 ‘꽃 이야기’. 들판의 야생화들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꽃을 통해 살피게 된 세상사를 담담히 서술했다. 그런데 꽃과 야생화들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이 놀랍다. 각각의 학명(學名)에서부터 서식처와 계절, 고유의 생태습관 등 전문 생물학자 못지 않다.   0…검찰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엄청 바빴을텐데 언제 이런 자연 공부를 했을까. 이는 꽃에 관심 많은 아내와 함께 온천지를 헤집고 다니며 발굴해낸 그의 고유 역작이다.   외지고 비탈진 구석에 주로 사는 야생화를 찾아 꼼꼼히 관찰한 성정(性情)이 참 섬세하다.    0…그가 언급한 식물들은 생소하면서도 다정스럽다. 양지꽃, 개망초, 금강초롱꽃,  큰구슬붕이, 강아지풀, 꽃마리, 병아리풀, 인동덩굴꽃, 구절초, 물봉선, 엘레지, 영춘화, 낙우송, 히어리, 노루귀, 처녀치마, 금잔옥대(수선화)…   0…문장력과 묘사력 역시 어느 전문작가 못지않게 유려하면서도 읽는데 편안하다. 아내가 그린 그림, 본인이 찍은 사진, 모두모두 깔끔하다. 아주 준수하다. 미물인 꽃 한 송이로도 충분히 세상을 볼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0…그는 ‘닭의장풀’을 보며 하늘의 별이 된 어머니를 떠올린다. 팽나무를 보며 팽목항의 비극과 악몽이 떠올라 가지마다 주렁주렁 걸린 아픔에 짓눌린다. 더러운 진흙에서도 고운 존재로 피어나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상징인 연꽃을 그는 사랑한다.   0…’노랑망태버섯’이라는 요상한 이름의 버섯을 보고 그는 이렇게 썼다. “겉은 화려하지만 어떤 것도 포용할 수 없고 내용물도 없으며 세상 누구도, 심지어 자신조차 품을 수 없는 그 텅 빈 화려함…”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내실은 없어 일시에 쓰러져 녹아내리는 그런 세태를 일갈한 것이다.    0…자신이 책임자로 재직했던 서울중앙지검에 출두당하는 모욕을 겪으면서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역천(逆天)의 무도(無道)함을 허용 않겠다는 믿음의 뿌리는 바로 야생화에 있다. 오염된 세상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만 하는 사람은 지은이가 보기에 속이 텅 비어 실속이 없는 꽃 ‘박새’와 다르지 않다. 권력에 취한 자와 그 하수인의 성정을 하나로 뭉쳐 놓은 듯한 독초 박새를 보며 ‘꽃개’는 화(火) 내지 않는다. 대신 화(花) 낼 태세를 가다듬는다.   0…담쟁이가 그에게 속삭이는 평화의 언어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벽에 붙어 힘겹게 살지만 너도 힘을 냈으면 해. 세상은 더디 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처럼 조금씩 나아가는 거야.” 비록 몸이 통째로 뜯겨 나갔어도 삶의 흔적을 남기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담쟁이와 줄기가 꺾여도 기어이 꽃을 피우는 개망초처럼 순리를 따르는 평화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0…‘심어진 곳에서 꽃 피우라(bloom where you are planted)’는 좌우명으로 그는 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만약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승승장구했더라면 이런 소중한 책을 낼 수 있었을까. 주옥같은 명저(名著)들이 대부분 유배지에서 탄생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0…민족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의 짧은 주례사는 “너를 보니 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잘 살아라” 였다고 한다. 자주 주례를 섰던 저자는 이를 원용(援用)해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살아보라”고 했다. ‘꽃은 평화이고 소통이며 순리이자 희망이다. 그러기에 꽃은 언제나 무죄(innocent)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Failed attempt to kill Lee Jae-myung: Trilateral Conspiracy?(3)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The AKF has accumulated enormous wealth during 90 year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became rich by stealing land, houses, factories, money and other assets belonging to Korean patriot families. During the post-war period, the AKF became extremely rich by the following methods: appropriation of assets of Japanese who left Korea, business-politics collusion allowing the AKF to take a good part of GDP growth, infinite kinds of bribes, kickbacks, illegal land speculation, forced change of land zoning code, fees for the deployment of 300,000 South Korean soldiers to Vietnam, the 4-River construction project, the Natural Resource diplomacy and outright embezzlement of public funds.   Nobody knows about the wealth of the AKF. But it surely amounts to several trillions of dollars. Much of this wealth is invested in real estate at home and abroad. The AKF had to protect its wealth at all costs. To protect the wealth, it must keep power. To keep power, it must eliminate those who criticise or those who are suspected to criticise the AKF government; it has been imposing police dictatorship, military dictatorship, prosecutor dictatorship even media dictatorship.   Through such criminal regimes, the AKF has massacred more than 600,000 South Koreans; perhaps more than 30% of South Korean families have been the target of police harassment; a great number of young people were barred from public service; many were expelled from Korea; countless young people were tortured by the police for their street demonstration. Counter offensive of citizens The PKF has not remained idle. It fought back in two ways. One way was the popular uprising by all citizens, especially by the students. The other was counter offensive by PKF governments.   •The Student Revolution (April 19, 1960) leading to the dismissal of President Rhee Syngman who escaped to Hawaii on American CIA plane.  •The BUMA Protests (October 16, 1979) leading to the assassination of General Park Chung-hee by his CIAK director. • The Kwangjoo Democratic Movement (May 18, 1980) allowing the imprisonment of General Chun Doo-hwan and General Rho Tae-woo for corruption. • The Democratic Movement of June 1987: Amendment of constitution allowing direct election of president by the people. • The Candle Light Revolution (2016-2017) by 17,000,000 citizens of all ages leading to the impeachment of President Park Geun-hye and the formation of the PKF's government of Moon-Jae-in.   Counter offensive by the PKF's governments. The government of Kim Daejung (1998-2003), the government of Rho Moo-hyun (2003-2008) and the government of Moon Jae-in (2017-2022) have fought back against the AKF. The 15-year PKF governments have fought against the AKF through political, economic, media and judicial reforms. The three presidents of the PKF have certainly harmed the privileges of the AKF.  However, it was the government of Moon Jae-in which has harmed the most the AKF.   3. Anti-AKF policy of Moon Jae-in  Armed with the spirit of the Candle Light Revolution, Moon Jae-in took power in 2017. This change of power meant a great threat for the AKF which had lost its force despite the desperate efforts by Lee Myung-bak and Park Geun-hye to restore it. The measures adopted by Moon Jae-in included the following: the destruction of the bribe culture, increase in government spending for the improvement of the well being of the ordinary people, increase in minimum wage, increase in the coverage of medical care insurance, increase in corporate tax, increase in capital gains tax, restriction of the coverage of the security law, increase in the negotiation power of labour unions and many other measures which drastically reduced the source of income of the AKF.   4. AKF reaction to Moon Jae-in Policy Election of Yoon Suk-yeol as President The AKF was alarmed by Moon's policies. The AKF decided to find someone who could destroy the PKF. Well, the someone was Yoon Suk-yeol.   The AKF knew that Yoon had no experience in politics or administration except arresting and imprisoning people. But this was, precisely, the quality sought by the AKF which wanted a butcher who would kill the PKF. During the campaign, Yoon showed his ignorance, his stupidity and his Shamanism. He showed, during a the debate, the sign of king "王" on his hand. His wife, notorious criminal, was known to be the disciple of Shaman called "Cheon -Gong".   5. Mission of Yoon Suk-yeol Yoon seems to have these missions.  • Maximum creation of wealth for Yoon and the AKF • Prevention of citizen's mass protests against Yoon's government and the AKF • Imposition of Prosecutor dictatorship • Demonization of the PKF and its party, Democratic Party of Korea (DPK) • Elimination of future leaders of the PKF • Elimination of Lee Jae-myung Maximum Creation of wealth for Yoon and the AKF In addition to the usual way of accumulating the wealth of the AKF, Yoon has been trying to stack up money for himself and his friends of the AKF. First, increase of the allocation of resources to large corporations through subsidies and grants and decrease of corporate taxes so that the bribe money can flow in the pockets of Yoon and the AKF.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oungho2017
2024-03-21

"오명(汚名·Notorious)" (하)

  youngho2017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해 8월6일 히로시마 및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탄 개발 계획)'의 상세한 내용이 공개되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국가 최고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평화의 비둘기는 깃털 하나 다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원자폭탄 투하 후 맨 처음으로 나온 우라늄 소재 첩보영화였으니 흥행에 대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얘기지만 '맨해튼 프로젝트'가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 배우 도나 리드(Donna Reed, 1921~1986)에 의해서였다. 그녀가 아이오와 주 농촌 마을의 데니슨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인 1936년에 화학을 가르쳤던 에드워드 톰킨스(Edward R. Tompkins, 1927~1990) 선생이 학교를 떠나면서 그녀에게 준 책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후 오고 간 서신연락에서 선생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음이 밝혀지면서 원자탄 개발이 노출되는 단서가 되어 1947년 MGM에 의해 원자탄에 대한 첫 다큐멘터리 영화 "The Beginning or the End"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오명'의 스토리는 오래된 주제인 직업상 의무감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데블린의 임무는 앨리시아를 성적 미끼로 삼아 세바스천의 침실로 밀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진작 그녀가 자기의 임무를 훌륭하게 이뤄냈을 때는 곤혹스러워 한다.    데블린은 직업상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나치 세바스천은 오히려 매력 있는 인물로 비친다. 왜냐하면 그의 앨리시아에 대한 사랑은 데블린보다 더 순수하고 깊어 보일 뿐만 아니라 사랑에 바탕한 그의 신뢰가 결국 배반 당하면서 심원한 질투심과 격분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오히려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 앨리시아는 그녀가 사랑한 남자에 의해 냉정하게 조종 당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오명을 남기는 성적인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녀의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도 자기를 그녀 아버지의 나치 일당들에 대한 스파이로 삼아 참기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한 연인으로부터 오히려 버림 받을까 두려워한다. 애국심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진 이러한 처사는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다름 아닐른지….          요컨대 '오명'에서 여자는 신뢰와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며 남자는 스스로 사랑을 주어야 할 존재로 그려지는데, '오명'은 이러한 멜로 드라마적 요소를 첩보 영화에 절묘하게 뒤섞는 또다른 장르의 원류를 보여준다.    또 이 영화에는 아들의 반려자를 죽이도록 무뚝뚝하면서도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는 세바스천의 어머니가 주요 캐릭터로 나온다. 실제 히치콕 감독의 어머니는 1942년 9월에 사망했는데 4년 후인 '오명'에서 처음으로 그의 어머니를 캐릭터로 내세운 것이다. 그 후 어머니의 등장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사이코(1960)', '새(The Birds·1963)', '마니(Marnie·1964)' 등으로 이어진다.      히치콕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이고 가혹한 모성적 초자아(超自我)가 중요한 작품 배경을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는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히치콕 자신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마치 밀로쉬 포르만 감독의 '아마데우스(1994)'에서 모차르트가 유명한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할 때 그를 쫓아 다니는 죽은 아버지의 환상을 테마로 했듯이, 분노와 원망, 죄의식과 슬픈 열망 등의 개인적 표상이며 동시에 모성애와 에로틱 러브가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히치콕이 사용한 충격과 서스펜스 전략의 이면에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인간 내면의 잔혹성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사이코'가 그렇다.    또 '오명' 영화만큼 술 마실 때 술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표현한 영화도 없는 것 같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술마시기가 주제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마도 앨리시아가 죄책감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첫 도입부 파티 장면에서 한 손님이 앨리시아에게 이제 그만 마시자고 하니까 "중요한 술마시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대답하는 것과 음주 운전 장면은 앨리시아를 '엽기적인 그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교통 경찰이 등장하고 데블린이 경찰에게 뭔가를 보여주자 아무 소리 안 하고 경례까지 붙이고 보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게 만든다. 아무튼 마지막에 독을 탄 커피를 마신 뒤에야 그녀는 아마도 음주는 훨씬 더 위험한 가치 없는 짓임을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히치콕 감독에 대한 평가 중 귀담아 들을 내용은 그의 전성기와 일치하는 전쟁과 파시즘의 득세에 따른 이데올로기 문제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고, 자신이 몸담은 시대정신이나 이데올로기에서 빚어진 고통에도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이나 메시지의 전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관객들을 공포와 두려움 속으로 몰아가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한 인간들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감싸는 '휴머니즘의 부재(不在)'야말로 스릴러의 천재 히치콕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1979년 3월7일, 미국영화협회(AFI)가 히치콕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을 때 열린 축하 만찬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오명'에서 사용했던 유명한 와인창고 소품 열쇠를 그에게 선물했다. 사실은 영화 촬영 후 캐리 그랜트가 갖고 있다가 몇 년 뒤 이 열쇠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며 버그만에게 행운의 기원으로 준 것이었다. 히치콕 감독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도 행운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말: 잉그리드 버그만이 이탈리아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열애로 헐리우드에서 추방되었을 때도, 그후 그와 이혼하여 헐리우드에 복귀했을 때도 변함없이  우정을 지켜준 이는 캐리 그랜트 단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끝)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나머지 시간들(The rest of our journey)(57)

  JOHNCHO

JC칼럼- 186    (지난 호에 이어)  Summer Time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낮이 무척 길어졌다. 그리고 언제나 급하기만 한 세월은 벌써 3월말을 향하고 추운 겨울을 피해서 남쪽에서 살던 캐나다의 여유족들은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곧 봄이 오면서 골프장들이 열리고 이미 은퇴를 하신 한인동포들은 또 다시 골프가 캐나다의 유일한 스포츠 그리고 유일한 피난처인양 이곳 저곳의 골프장들을 누빌 것이다. 추운 겨울을 피해서 남쪽에 가서도 골프, 이곳 캐나다에 돌아와서도 골프를 치는 그들이 하는 말 역시 여기서도 저기서도 골프만 치다 보니 하루하루가 지겹다는 말이다.   우리도 다른 취미생활을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캐나다 어느 골프장을 가보아도 한국인이 없는 곳은 없으니 전생에 골프와 무슨 인연들이 있는지 대단한 민족이다. 하지만 코비드 이후에 갑자기 몰려온 물가상승이 그린피를 무척이나 올리다 보니 이젠 그나마 골프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여유가 많이 있으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스포츠에서 점점 멀어져 가니 걱정이다.   가격을 올려도 수지가 안 맞는 골프장 주인들은 모두가 주택개발업자들에게 팔면서 새로 생기는 골프장들은 없고 그 수가 점점 줄어가니 이것 역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문제로 다가온다. 코비드를 지나고 지난 22년, 23년 계속 하향선을 긋고 있는 골프 사업은 올 역시 앞날이 그리 밝지가 않은 것이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은 뻔한데 그동안 높은 이자율 그리고 높은 인플레로 여유 자금의 주머니 사정이 더욱 안 좋아지다 보니 골프는 물론 모든 레저산업에 좋지 않은 영향이 오고 있다는 말이다. Tiger Woods같은 신동이 다시 나온다면 모를까 말이다.   필자는 인간들이 즐기는 이 세상의 쾌락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이 원하는 쾌락의 종류도 다양하고 많은데 크게 분류를 한다면 우선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 쾌락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육체적 쾌락에 더 치중을 했고 나이기 먹을수록 점점 육체적보다는 정신적 쾌락을 찾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옛 로마의 철학자 카토는 인간의 쾌락 중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쾌락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제일의 치명적인 역병이라 말했다.   우리의 이성과 지혜로도 피할 수 없는 쾌락에 대한 욕구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게 만들며 그것은 곧 멸망이란 말이니 우리가 늙어가면서 이런 육체적 쾌락에 대한 염원이 줄어든다는 것은 늙어가는 노인들에겐 축복이라 말했다. 글쎄. 어쩐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다. 카토의 말에 의하면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했던 젊은 시절이 지나고 이제 노인이 되어서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신적인 쾌락을 즐기라지만 필자의 살아온 삶을 돌아볼 때 젊었을 땐 바빠서 아이들과도 아내와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함께 하질 못했고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지금에 와선 아이들과 아내마저 시간이 없다고 나와 놀아주질 않으니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서 글이나 쓰고 있다. 누가 읽든 말든 말이다.   1788년에 태어나 1860년까지 살았던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산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이며 또 그 이유는 사람의 본성인 욕망 때문이라 말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욕망이 가득 찬 곳이라 말했다. 문제는 인간이 원하는 욕망의 종류와 한계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allellu
2024-03-21

이것을 알라

  allellu

#여러 언론사 동료 기자들과 군부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부대에는 훗날 국방부 장관을 지낸 육군 장성이 사단장으로 부임했었다. 부대 입구에는 ‘언론인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언론을 담당하던 군무원의 안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저녁에는 부대 참모들과 식사를 겸한 술자리가 있었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았고, 취기가 오를 무렵 사단장이 뒤늦게 합석했다. 군부대의 초청으로 기자들이 방문한 형식이었지만 긴장감은 팽팽했다. 술자리 한 번으로 출입기자와 취재원 사이가 급격히 친해질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겠지만, 부대 안에서 사고라도 터지면 함께 폭탄주를 기울이던 기자들이 군을 상대로 집요하게 진실을 추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긴장감은 부대 참모들의 건배사 때문에 폭발했다. 한 참모가 ‘사단장님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를 냈고, 또 다른 참모는 ‘사단장님께서 하사하신 어사주를 감사한 마음으로 마시겠습니다’라며 납작 엎드렸다. 취기가 오른 데다 이런 장면을 못마땅하게 여긴 A기자가 “손님 불러놓고 무슨 충성 경쟁이냐”며 술상을 내리쳤다. 술병이 바닥에 나뒹굴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러자 젊은 장교가 벌떡 일어나더니 “새파란 XX들이, 사단장님 앞에서 건방지게”라며 A기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술상은 엎어졌고, 순식간에 기자들과 부대 참모들이 뒤엉킨 몸싸움이 벌어졌다.   #B씨는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공무원으로, 나름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정년을 채우고 공직을 떠났으나 당시만 해도 승진은 빨랐고, 보직도 동료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를 옮겨 다녔다. 집안까지 좋았는데, 고위직을 지낸 군 장성 출신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동료 기자 몇 명과 우연히 저녁자리에 합석하게 됐다. B씨는 며칠 휴가를 내고 집안 어른의 장례식에 다녀 왔는데,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다만 “절대로 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다짐을 여러 번 받았다. 자신 뿐만 아니라 집안의 여러 어른들까지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이 있던 기자들도 고심 끝에 그렇게 하겠노라 동의했다. B씨의 이야기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낯익은 군 장성 출신들이 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삼촌뻘 되는 분이 B씨를 불러 전두환에게 “XX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비서를 불러 봉투 하나를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나중에 열어보니 봉투 안에는 조금만 더 보태면 어지간한 자동차 한 대를 거뜬히 살 만한 큰 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전 전 대통령이 말한 것으로 알려진 “전 재산 29만원” 발언이 화제를 모았던 때다.   #“MBC는 잘 들어, 내가 (군)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어.” KBS 기자 출신인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최근 출입기자 오찬 자리에서 MBC 기자를 겨냥해 했다고 알려진 발언이다. 언론 뉴스를 종합해 보면 황 수석은 이날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가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국정현안에 대해 언급하던 중이었다. 이 사건은 1980년대 말 노태우 정권 당시 ‘중앙경제’ 사회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오홍근 기자가 월간지에다 군사정권에 비판적 내용이 담긴 기사를 연재하던 중 정보사령부 군인들에 의해 테러를 당한 것이다. 오 기자는 이 테러로 허벅지가 크게 찢기는 중상을 입었다. 국방부 수사 결과 정보사 예하부대 군인들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언론단체들은 황 수석이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쓰는 것을 문제 삼으며 뱉은 발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식사 자리에서 한 기자가 ‘왜 MBC에게 잘 들으라고 했냐’고 물었는데, 황 수석은 “농담”이라는 말과 함께 ‘정보보고하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였다고 한다. ‘정보보고’는 기자들이 취재 도중 듣거나 취득한 정보 가운데 기사로 쓰기는 애매하지만, 소속 회사에 보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 주로 써낸다. 황 수석이 정보보고 하지 말라고 요청한 게 사실이라면 그 역시 “MBC 잘 들어”라는 발언이 알려질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황 수석의 발언 이후 이 문제를 정식으로 기사화한 것은 오찬에 참석했던 4~5명의 기자 가운데 MBC 단 한 명뿐이었다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면, 나머지 기자들은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런 협박성 멘트를 아무 때나, 어느 자리에서나 마구 쏟아내도 문제의식을 못 느낄 만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뜻도 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면서 사람들이 정치놀이에 얼마나 심취해 있는지 새삼 놀랐다. 가끔 TV를 켤 때마다 주요뉴스는 언제나 정치 관련 소식이고, 정치평론가 여러 명이 둘러 앉아 늘 무슨 말인가를 떠들어댔다. 식당에서건 기차역에서건 TV가 켜진 곳은 그런 장면이 계속 나오고, 사람들은 정신을 놓고 그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 모든 일에 가치 판단을 할 여유도 없거니와, 그럴 이유도 없다. 사단장의 어사주를 원샷했던 젊은 장교나 호기롭게 술상을 내리쳤던 기자들 모두 흘러간 과거 속에 묻혔다. 전두환이 거액의 용돈을 펑펑 뿌리고 다녔다 한들 지금 무덤 속에 있는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치평론을 한다고 게거품을 물고 떠드는 사람들도 한철 지나면 자연스레 잊혀진 존재가 된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디모데후서 3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2024-03-21

여행과 동반자

  daekim

오래 전 단체로 미 서부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5박 6일 동안 우리 일행을 담당했던 안내원은 여러 번이나 “여행은 목적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란 말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북미의 여러 곳들을 다니면서 나도 늘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의 말에 동조하면서 마음속으로 그에게 들려주었다. “과정이 의미 있으려면 좋은 동반자를 만나야 한답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 보다 몇 년 전에 한국에 다녀오며 여행의 과정과 동반자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지녔는가를 피부로 느꼈던 기억을 회상해 보게 되었다.   그때 고국을 다녀왔던 여행은 처음부터 기억할 만한 일로 시작되었다. 집을 나서려는데 표를 구입한 여행사에서 “좋은 자리를 마련해 드렸으니 편히 다녀오시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공항에 나가 수속을 마치고 기내에 들어가니 2층에서도 제일 공간이 넓은 앞자리가 내 좌석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널찍한 좌석이 침대처럼 거의 수직으로 눕혀지는 특등석에 편히 누어 하늘을 나르면서 나 같은 평범한 고객에게까지 최선을 다해 이런 호의를 베푸는 여행사 측에 감사했다.   새벽 1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세관을 빠져나가니 토론토에서 서너 번 도움을 준 일이 있는 L씨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에게서 내가 서울 간다는 전화를 받고 한 밤중에 인천까지 달려온 것이다. 서울행 리무진이 운행을 시작하는 4시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의 차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 도착하니 그 곳을 예약해준 K목사님 말대로 경비원이 친절하게 지정된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를 향한 주위 분들의 사랑과 호의에 감사하며 서로가 성의껏 상대를 돕는다면 모두들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몇 시간 수면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걸려오기 시작한 전화들 때문에 쉴 틈도 없이 서울에서의 첫 날을 시작해야 했다.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혼탁한 공기로 목이 따끔거렸고, 어디를 가나 자동차와 사람들로 봄비는 서울 시내가 극도로 복잡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참으로 감사하게도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이 거대한 도시에서 이방인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 번 이상이나 강산이 변하는 오랜 세월 동안 불과 세 번째로 찾아온 나이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모두들 진정으로 반가워하며 다정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일들도 기대이상으로 잘 해결되었고, 수필집 “달팽이의 행진”도 출판사에서 좋은 조건들을 제시해 주어서 만족할만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서울 방문이 진정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시절 글자 그대로 서로의 분신처럼 지내던 친구들과 서해안 일대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던 일곱 명 중에서 미국에 있는 춘배군과 국내에 있기는 하지만 건강문제로 집을 떠날 수 없는 J군을 제외한 우리 다섯은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억제하기 힘든 감격과 흥분에 사로잡혔다. 마음은 간직한 꿈으로 늘 풍요했지만 주머니는 언제나 비어있었기에 우리들은 언제나 “가진자”들의 풍요를 애써 외면하며 우리들에게도 저들과 같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만을 품고 지내야 했다.   대학 2학년 때, 춘배군과 윤식군 그리고 내가 동해안을 따라 소위 무전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 그러나 그때 주머니가 비었던 우리는 여행 내내 불안했고 배고팠다. 서울서 강릉까지 가는 기차에서 우리 앞에 앉은 중년 신사가 점심으로 삶은 계란이 수북이 담긴 찬합을 열고 꺼내 먹은 것을 보며 우리 셋은 침을 삼키며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난 속으로 그가 “학생들, 하나씩 먹겠어?”라며 계란을 우리들에게 집어 주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계란 대 여섯 개를 먹어 치우더니 남은 계란들이 들어 있는 찬합 뚜껑을 닫고 짐 속에 집어넣었다.   그때 일이 어제 같은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처지들이 되어 서해안을 달리면서 내 마음에 찾아든 감격은 크기만 했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것은 밤과 낮이 다른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40 년 가까운 긴 세월을 서로의 삶에 몰두하던 우리들이 전혀 간격 없는 학생 때의 너와 나로 되돌아가 여행길에 오르게 된 사실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몰며 우리들이 함께 지낸 2박 3일은 진정 아름답고, 보람되고, 의미 있었던 나의 삶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기간이었다.   우리들이 서해안 일대를 60여 시간에 걸쳐 누빈 그 여행이 내 생애 최고의 여행 중의 하나로 간직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같이 간 동반자들 때문이었다. 세상은 놀랍게 변했고, 그 무서운 변화의 물결을 타고 넘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대학시절 무임승차를 하는 모험까지 단행해가며 무전여행을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함께 웃고 노래 부르며 우리 다섯은 모두 티 없이 맑고 고운 그 옛날의 꿈 많던 대학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기에 함께 먹고 마시며 호흡한 3일을 통해 난 “Es ist eine Freude“(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란 시성 괴테의 말을 가슴속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남은 인생의 여행도 이런 동반자들과 더불어 동행하며 마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그들에게 필요한 동반자가 되어야 하리라. “나의 것이 되어 달라”는 대신 “너의 것이 되어 주겠다”는 독일 청년의 마음을 지니고 말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wangchul
2024-03-21

법과질서(Law and Order) 2

  kwangchul

  -법은 좋은 질서를 의미한다- 아리스토 텔레스(Law means good orders)   1994년 6월12일, O.J. 심슨의 이혼한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보이프렌드인 론 골드먼이 피살체로 발견되었다.(피해자들은 두 명 모두 백인들이었다) 경찰 현장검증 보고에 의하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여러 증거들로 미루어 보건대 O.J.심슨이 범인일 가능성이 짙었다. 이에 검찰은 심슨에게 6월 17일까지 자진 출두할 것을 요청했고 심슨은 전처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출석하겠다고 통보한다. 그러나 그는 6월17일, 자신의 친구에게 "전 처 니콜의 죽음과 관련해 그가 연관이 없다" 는 내용의 편지를 남긴 뒤 잠적하여 연락이 두절된다. 심슨이 출석명령을 따르지 않자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긴급 수배령을 내려 이틀 뒤인 19일 O.J.심슨을 체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도주극이 CNN과 공중파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 되었는데 9,500만명이 시청하면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심슨 사건은 미국에서 매우 화제가 됐으며, 대부분의 언론은 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범죄자로 몰아갔다. 따라서 언론을 이미 읽은 사람이 배심원이 되면 법정의 정의에 위배된다 하여 여러 번의 배심원 교체가 이루어졌었고, 최종 결정으로 12명의 배심원 가운데 흑인이 무려 9명, 백인이 2명, 히스패닉이 1명으로 구성되었다. 1995년 10월3일 1심 판결에서 배심원단은 변호인 측의 주장을 지지하여 무죄 평결을 내렸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항소할 수 없다는 영미법 체계 때문에 심슨의 무죄는 그대로 확정된다. 그 당시는 1992년 LA 폭동이 발생한 지 2년여 밖에 지나지 않아, LA는 흑인들이 경찰들한테 인종차별을 강하게 받는 도시로 알려져 있을 때였다. 결국 로스앤젤리스 폭동 직후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할 수 있다.     한국의 법 체계는 판사에 의해 유, 무죄 및 형량의 판결이 이루어지는 대륙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시범적이기는 하지만, 2008년 1월부터 한국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는 단지 권고와 참고일 뿐이지 판사가 배심원단의 유무죄 형량판단에 구속되지 않는다. 배심원단 제도는 시민이 참여하고 운영하는 재판이기에 밀실에서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불신을 종식시킬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비전문성, 비용 등 효율적인 면에서 배심원제도가 아닌 법관 재판이 운영되고 있다.  캐나다헌법은 5년 이상의 징역 범죄에 배심재판이 선택될 수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지리적 및 문화적 이웃이기 때문에 비슷한 법원 시스템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미국 헌법은 민사사건에서도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으나 캐나다는 민사분쟁에 있어서 배심원 재판은 없다. 사형제도는 미국의 연방법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들에서도 가능한 형사처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캐나다는 1976년, 사형제도가 전면 폐지되었다. 또한, 미국의 판사는 선출되지만 캐나다 판사는 주정부 및 연방정부에서 임명한다.   캐나다에서 시민권자로 살다 보면, 배심원을 뽑기 위한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소환장을 받는 경우가 있다. 10년 전 2014년, 당시 토론토시위원 덕 포드는 법원으로부터 배심원을 뽑기 위한 자리에 참석하라는 소환장을 받게 된다. 2014년 2월4일, 그는 법원에 출두하여  " 국민의 의무인 배심원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범죄자가 나를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는 이유로 배심원의 임무를 거절하게 된다. 그가 한 말 "내가 유죄판결을 내린 사람"(The person I convict”)이라는 말은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재판에서 범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법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언사였기 때문에 포드를 포함한 그곳에 소환되었던 예비배심원 모든 사람들은 담당재판관으로부터 견책을 받게 된다. 배심원제도는 한국인의 관점으로는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이 제도의 요점은, 재판관이 아닌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이 때 판사는 재판과정을 통괄하며 법을 해석하는 유일한 판단자 역할을 하는 반면 판결은 배심원의 업무가 된다.   칸트는 그의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누군가에게 죄를 물어 그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의미는 누군가에게 그 죄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그 혐의자가 사건 당시 자유로운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재판을 예로 들면, 법원의 재판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 캐나다에는 배심원들이 있다. 검사가 피의자가 자유스런 결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면 변호사는 자유롭지 않은 다른 요소, 원인 때문에 피고인이 범죄행위를 하였다고 변호하게 된다. 결국, 재판의 행위와 목적은 피의자가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를 따지는 것을 판단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기득권층인 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 안식일법과 정결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선언하면서, 법은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 하였다. 예수님의 선언은 가난하고 병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인권선언이라 할 수 있다. 법(Law)이 질서(Order를 지켜주지 못하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법이 인간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예수는 그가 사랑하던 인간들의 손에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였다. 잊지 말자! 사람이 먼저이고 법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을! 2024년 3월15일 참고1: O.J.심슨 배심원 선정 당시, 검찰 측도 흑인배심원들을 선호하였다. 그 이유는, 백인들로만 배심원들이 정해지면 설사 승소한다 하더라도 흑인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참고2: 그리스도인(영어, 크리스찬)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예수라고 기록한 문서의 복음을 믿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2천 년 전 대다수의 이스라엘인들은 예수를 구세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의 길로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나에게 가장맞는 ‘좋은’ 이자율의 선택

  Ohsteve

  흔히 사람들은 이자율을 선택할 때, ‘좋은’ 이자율과 ‘낮은’ 이자율을 혼합해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모기지 전문가들은 이 이야기가 꼭 맞는 말이 아니란 것을 잘 알지만 클라이언트들을 납득 시키기 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낮은 이자율을 제공하는 No-Frills 프로그램들은 계약 기간 동안 이사를 가거나 중도 해약을 하지 않는 다면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낮은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만약 모기지 계약을 중도 해약하게 되면 큰 피해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좋은’ 이자율은 어떤 것일까요?   좋은 모기지 이자율을 정의하자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조건 (Features)을 만족 시키는 최적의 이자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계약 기간 내 모기지 계약 중도 해지를 들 수 있는데, 이 때 발생하게 되는 페널티의 금액이 프로그램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계약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변동으로 모기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 중도 해지의 경우 3개월치 이자 부분의 페널티만 지불하면 되지만, 고정의 경우 남은 계약 기간에 따라 엄청난 액수의 페널티를 지불해야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또한, 모기지 계약에 Bona-fide Sales에 대한 문구가 있는 경우, 계약 기간 내에 집을 팔지 않는 한 계약을 해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모기지 프로그램과 이자율은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마 어떤 사람도 본인의 미래에 대해 100퍼센트 예측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본인에게 맞는 모기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미래 계획을 세우고 진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단순히 하게 되는 생각은 ‘ 내가 모기지 계약 만료전에 이사를 가게 될까?’‘이사를 가게 된다면 어느 도시로 가게 될까?’‘상환 기간을 길게 가져 가는 것이 좋을까?’ 등을 고려 하게 됩니다. 이런 고려 사항도 충분히 좋은 생각이지만 넓게 봐서 직업적인 고려 사항과 개인적인 고려 사항으로 나누어 생각 하는 것이 훨씬 바람 직 합니다.   직업 적인 고려 사항 - 내 연봉이 모기지 계약 기간 내에 크게 변화 할까? - 모기지 계약 기간 내에 큰 보너스를 받게 될까? - 다른 도시로 전근, 또는 이직을 하게 될까?   개인 적인 고려사항 - 현재의 내 상황은 어떠한가? 모기지 계약 기간 내에 결혼/이혼을 할 계획이 있는가? - 가족 구성원이 늘어날까? -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독립을 하거나 다시 함께 살게 될까? - 집의 수리(Renovation) 계획이 있는가? - 모기지 계약 기간 내에 큰 목돈이 생길 일이 있는가?   위와 같은 상황들을 고려해보면 본인이 선택해야 할 모기지 계약기간, 상환기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Pre-Payment Privilege 등을 정확히 따져 볼 수 있게 됩니다. Pre-Payment Privilege란 정해진 금액의 원금을 페널티 없이 미리 갚을 수 있는 권리로서,계약 전에 미리 정해져 계약서 상에 명시 됩니다.대부분의 은행에서는 1년에 모기지 금액의 10~20%를 미리 갚는 것을 허용해 줍니다. 이런 내용들을 다 고려 한 후, 그 중 최적의 이자율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됩니다. 특히 요즘같은 고 이자율 시장의 경우, ‘향후 이자율 변화가 어떻게 될까’ 에 대한 예상에 따라 이자율의 따른 선택보다 아닌 계약기간(Term)에 초점을 맞추게 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미래에 대한 계획, 그리고 현재 가지고 있는 소득, 부채 내역이 다르며, 사람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모기지 금액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고려 하고, 가장 많은 금액을 별 무리 없이 갚아 나갈 수 있는 모기지 프로그램의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낮은 이자율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낮은 이자율만 쫓아가다가 나중에 거대한 페널티로 돌아올 수 있으니 전문가와 상의 해서 본인의 상황에 맞는 모기지를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GraceYoon
2024-03-21

세입자의 불법 비즈니스

  GraceYoon

  이런 사연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워낙 여러 가지 일들이 세준 곳에서 주인도 모르게 일어나고 있으니, 사연을 자주 소개 했어도 새로운 일들이 계속 올라 온다. 이번 사건은 세입자가 주인 모르게 1 배드룸과 덴에 3명 또는 5 명의 불법 세입자를 들인 사례이다. 더군다나 본인이 내는 월세에 거의 150%의 월세를 불법 세입자에게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불법 비즈니스를 세입자가 하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월세에서 이익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불법 세입자를 들인 것도 퇴거를 당하는 내용인데 거기다가 경제적으로 불법 이익을 취하고 있었으니 완전 퇴거 명령을 받아 마땅한 사건인 것이다.   이런 경우 제일로 주인에게 어려운 일은 불법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약서에 있는 세입자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어떤 콘도들은, 매니지먼트에서 철저하게 조사를 하기도 한다. 어느 유닛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FOB Key로 감지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콘도 매니저에게서 이메일을 받게 되어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주인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게 된다 하더라도 아주 시간이 흐른 후에 우연히 알게 될 수도 있다. 온타리오 주거 법에 의하면 주인이 불법 거주자가 유닛에 사는 것을 발견한 후 60 일을 넘기기 전에 어플리케이션을 내야 한다.   60일을 넘기게 되면 주인이 자동으로 거주를 동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참으로 주인이 알아야 할 법들이 소소하게 많다. 물론 위의 케이스는 퇴거 명령을 받았고 세입자와 불법 거주자가 모두 나간 상태이다. 주인은 지금 당장 세입자 들이기가 무섭다고 한다. 그러니 세입자를 선택할 때는 세입자의 서류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될 것이다.   특히 직장 부분은 꼭 전화해서 알아 보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며, 일년에 한두 번 세준 곳을 전반적으로 인스펙션해야 한다.   문의 있으신 분 들은 연락주세요 GY Legal Service [email protected] (647) 328 - 5150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4. 만레사 동굴의 이냐시오 성인

  knyoon

    만레사 동굴 앞에서 ‘이냐시오 성인의 적극적인 명상’을 생각하며-                            스페인, 만레사의 거친 바위 동굴 속. 성모님이 성자와 더불어 성부님께 간구하는 신비한 환상을 보고 참회와 시험 받는 고통을 통해 영적으로 거듭나는 이냐시오 성인의 모습이 작은 제단 위 돌벽에 조각되어 있다. 이 동굴은 이냐시오의 ‘영성수련’Spiritual Exercise의 산실이기도 하다. 문 닫기 전 겨우 십오 분의 시간을 남겨놓고 들어갔기 때문에, 더 깊은 묵상의 기도를 할 새가 없이 이냐시오의 초기 마음처럼 허둥대고 망설이다가 짧게 주의 기도만 드리고 나왔다. 그 대신 동굴 밖의 벽화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기념카드를 살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만레사의 까르도네르 강물이 흘러 내리는 강둑 위에 기대서서 한숨 돌리며 멀리 몽세라 산의 연푸른 산봉우리들을 바라 보았다. 검은 성모님과 아름다운 소년합창단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 몽세라에서 다시 전차를 타고 이곳 종점까지 15킬로미터, 그리고 이냐시오 성인의 동굴 위에 세운 교회를 찾아 10분정도 걸어 왔으니까 그리 먼 곳은 아니다.  그러나 이냐시오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에 몽세라의 성모님 발치에서 참회의 밤샘 기도를 올린 후에 이 만레사까지 험한 산길을 걸어오긴 쉽지 않았으리라. 십자가가 서 있는 이 근방 어딘가에 앉아 그는 까르도네르 강물을 내려다 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일생을 두고 배우고 실천하게 될 영성에의 깊은 이해가 마음 속에 섬광처럼 비추어왔다고 한다. “그의 이해심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그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이 주어진 듯 밝아진 빛의 사건”이었다. 이어서 그는 동굴로 돌아와 계속해 뱀의 환시로 시달리면서도 ‘영성수련’의 틀을 이곳에서 완성한다.   후에 영성수련의 수호성인이 된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1556)는, 스페인 바스크 귀족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행복한 젊은 시절을 기사도로 성장한다. 전쟁 중에 다리를 다쳐 로욜라성에 돌아와 쉬면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들의 생애’를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데 이 시기에 그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누린 영예와 영웅심의 허무감에 빠져, 프란치스코 성인과 도미니코 성인,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 받으려는 자각심에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결심한다.  이 시기는 그가 만든 영성수련 Spiritual Exercise에서 ‘영성식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522년 2월, 그는 예루살렘을 순례하기 전에 몽세라의 검은 성모님 앞에 그의 단검과 군복을 벗어서 바치고 참회의 기도로 밤을 지새운다. 몽세라 산길을 오르는 중에 종교논쟁을 벌이던 회교도를 찔러 죽이고 싶었던 그가 단검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것을 서약한다.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의 시기이다. 그는 만레사의 동굴에서 까르도네르 강을 내려다 보며 ‘영적일기’와 그의 영혼이 주님과 일치하는 경험을 ‘영성수련’에 쓴다. 1529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이냐시오는 동료들과 ‘예수회’ 수도회를 만들고, 종신 총장에 선출되어 ‘영성수련’을 주로 가르치고 설교한다. 영성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했던 그는 선종 후 1622년에 시성의 반열에 오른다.   나는 그의 영성수련의 기도 방법 중에 ‘적극적인 명상’ Active Contemplation, 즉 상상을 통해 기도하는 방법에 마음이 끌린다. 20세기 스위스의 심층심리학자이며 정신분석 의사인 구스타브 융이 이 원리를 기초로 ‘적극적인 상상’Active Imagination 이라는 새로운 학설에 적극 활용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커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극적 명상이란, 무의식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기는 심상mental image에 대해 철저히 의식을 집중하고 내적인 상에 주의를 기울여, 의식에 유효한 정신에너지 libido가 무의식으로 이행하여 무의식의 리비도가 증가하고 이를 자극하여 일련의 연관된 상이 내안inner eyes에 나타난다. 이때 의식적 자아가 이 무의식적 상에 적극적으로 참여 함으로서 상호간의 대면이 이루어지고 이 양자를 통합하는 개성화 과정에 이르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이런 현상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캐나다에 와서부터 해마다 부활절 아침기도에 촛불을 켜고 성경읽기-기도-묵상-적극적 명상을 통해 성취감을 맛본다. 꼰솔라따 수도원의 스테파노가 보내주는 ‘사순절묵상집’ 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예수부활 아침까지 그날의 말씀들을 묵상했다. 지금은 텍사스대학의  큰아들 민동하 장로가 완벽한 LENT 묵상집을 사순절 메시지로 매일 보내주어, 사방에 퍼져 사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기도한다.  융의 적극적인 명상은 강한 대면이 아닌 경우 ‘어둠’을 겪게 되지만, 이냐시오의 명상은 참회의 단계-조명의 단계(깨달음과 환상의 신비체험)-일치의 단계에 이르며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적극적인 헌신을 한다. 이 두 가지를 가능한대로 도입하여, 영성이 불타는 계절인 부활절 특히 수난절의 기도에 적극 참여시켜본다.    오감(五感)으로 마신다는 우리나라 전통차의 물 끓이는 소리 귀로 듣고, 눈으로 다구를 보며, 입으로 차 맛을, 손으로 찻잔의 감촉을 그리고 코로 향기를 맡듯이, 부활절 새벽 뿐만 아니라 어느 때라도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해서 ‘그의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어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다 하고,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살며 그 안에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위해 기도한다.’ 이냐시오의 다음 기도를 생각하면서. 주님, 저를 택하시어 받아주소서. 저의 모든 자유로움, 모든 추억, 모든 지식 그리고 나의 모든 의지를,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부름 받은 나 자신을.   당신은 내게 모든 것을 주신 분,  주님, 당신께 그 모든 것을 돌려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의 뜻대로 써 주소서. 오직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총만을 내리소서. 이 몸은 그것으로 만족하나이다.  (이냐시오의 기도/윤경남 옮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방광염…물 자주 마시세요

  kokim

추운 겨울철에 자주 나타나는 방광염의 주 증상으로 소변볼 때 느껴지는 따끔거림, 배뇨 곤란, 빈뇨, 절박뇨, 치골 상부압통 등이 있다. 병원에서 치료해도 재발하거나 쉽게 낫지 않으면 한의원을 찾는 경우가 있다. 급성초기이거나 젊고 건강하거나 면역체계가 정상인 경우는 치료 기간이 비교적 짧은 편이다. 재발이 잦거나 질환이 생긴 지 오래된 경우, 나이가 많고 면역력이 약할 땐 치료 기간을 한두 달 정도로 봐야 한다.   방광염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치료한다. 우선 방광습열증이다. 전형적인 방광염 증상으로, 소변보는 횟수가 잦으면서 용변 시 소변이 방울처럼 떨어진다. 소변이 탁하고 배뇨할 때 아랫배가 긴장하면서 통증과 절박감이 느껴진다. 음식의 부조화, 몸속 노폐물의 축척으로 입도 마르고 쓰다. 치료는 청열이습하는 한약을 쓰고 음식을 조절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음허습열인데 방광염 증상과 함께 허리가 시큰하면서 머리는 어지럽고 이명도 생기며 입이 마른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이들 중엔 더위를 타는 체질이 많은데 과로, 피로, 음주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경우는 보음을 시키면서 습열을 제거하는 약물로 치료한다.   마지막으로 기체혈어증인데 어혈증상이 있으면서 방광염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밤이면 소변이 불편하고 혀의 가장자리가 검은색을 띠며 아랫배가 그냥 아픈 게 아니라 긴장하고 뒤틀리면서 통증이 심하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화를 잘 내고 입이 쓴 것이 특징이다.   방광염과 감별해야 하는 질환이 요도염과 민감성 방광염이다. 요도염 역시 세균성이긴 하지만 방광염보다 세균의 독성이 좀 약하고 세균 수도 적은 편이다. 요세균 배양 검사에서 균락 수가 105개/㎖ 이상이면 방광염, 이하이면 요도염이다. 민감성 방광염은 검사를 해도 균이 검출되지 않는다. 해서, 민감성 방광염이나 방광염이 자주 재발한다면 한방으로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염증이 없는 데도 방광염 증상이 잦으면 신경 쓰이고 불쾌한 느낌이 들며 소변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질환은 4가지 원인으로 구분한다.   간울기체로 인한 것은 방광염 증상과 함께 짜증이 늘고 한숨을 잘 쉬고 배가 빵빵하다. 기울화화증은 과한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잠이 안 오고 얼굴이 붉어지며 화가 자주 난다. 음허습열은 방광염 증상과 동일한 원인 중 하나이고, 비허휴허는 피곤해서 체력이 떨어질 때 생기는 것으로, 식욕이 감퇴하고 허리·무릎이 시큰거리며 밤에 소변을 많이 보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질환은 보약을 처방하여 치료한다.   방광염은 치료할 때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중요하며 식생활에 유의해야 한다. 면역이 약해지는 양약도 조심해서 복용해야 한다. 운전, 상담 등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직업이나 반대로 계속 서서 일해야 하는 직업인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경우, 외적 요인이 크기 때문에 치료 기간도 길고 재발도 잦다. 급하게 먹거나 과식, 야식, 과음 등을 피하고 성교 후에는 꼭 소변을 봐야 한다. 만약 폐경기 이후 자주 발생하면 갱년기 치료를 겸해서 받아야 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namsukpark
2024-03-21

선애치환(先愛治患)

  namsukpark

  대통령실은 “증원 못 미뤄, 설득할 문제”라는데… 의대 교수들마저 결국 가운을 벗는다. 정부의 ‘의대 증원 2000명’에 반발해 전국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결정했다.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국무총리, 관계부처까지 수차례에 걸쳐 반발하는 의료계를 향해 설득, 당부, 경고 등 여러 메시지를 쏟아낸 시도에도 의대 교수들이 끝내 가운을 벗기로 하면서 국민 생명권을 놓고 양측 간 대치가 지속될 전망이다.   의료계는 “환자들을 버리는 게 아니다”라면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국민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의대 증원 규모 조정을 제의하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조정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앞으로 발생하게 될 의사 부족을 고려하면 2000명이라는 수치는 오히려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개혁은 원칙대로 신속하게 추진하라”며 “응급환자 및 중증환자에 대해 빈틈없는 비상 대응을 하라”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주문하며 “의료법을 위반해 진료현장을 이탈하는 집단행동은 교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대통령실 발표다.   “의대교수들이 중재자로서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가 ‘먼저’ 2천명 의대 증원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집단행동’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집단사직을 결의한 배경에는 처벌을 앞둔 제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전공의가 사라진 의료현장의 힘든 상황도 있지만, ‘의대 증원’ 자체에 대한 교수들의 강한 반대가 결정적 요인으로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는 뉴스타이틀이 큼지막하다.   “여러분의 협조 덕분에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비상진료 체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행동 장기화에 따라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들의 피로도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의료현장을 면밀히 살펴 의료진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환자진료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여 지원하겠습니다”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애끓는 호소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오죽이겠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진료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까지 우려되는 가운데 교수들의 집단 사직 예고는 병원을 그만두겠다는 의지보단 정부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는 선언적 의미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고 하지만, 전공의 이탈로 과중한 업무를 떠맡은 교수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선진화로 유일하게 세계가 부러워마지 않던 시스템과 신뢰가 무너져가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객관적이고 균형적으로 지켜볼 수 있어야 마땅할 “우리들 스스로가 성찰할 기회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현재를 발전시켜야만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겠지만, 요즈음의 상황은 저마다의 바람과는 너무 다르게 무분별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기댈만한 곳을 잃은 환우와 염려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일반시민들의 불안과 의료 공백이 심각해지고 진료체계는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을 그저 바라보며 처분을 기다리기만 할 일은 아닌 줄로 안다.   나이가 들면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몹쓸 질병과 뜻하지 않는 사건과 부상이 두렵게 마련이지만,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두려움’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서 “마음이 어지러우니 병이 생겨나고, 마음이 안정되니 절로 낫게 되니 최고의 의생(醫生)은 결국 마음이다(心亂卽病生이요 心定卽自癒이니 心醫로다)”고 했다. 쓸모없는 억측은 자제하고 너나없이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하긴, 세상인심이 뒤숭숭해서일까마는 ‘참봉노릇도 벼슬이냐며 본인이 싫다 하면 어이하는 수 없다’던 옛말도 귓전이 따갑도록 얻어듣던 우리들이다. 대형 병원 복도 벽에 걸린 크나큰 액자에 쓰인 ‘선애치환(先愛治患)’의 말뜻이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한다’는 사려 깊은 뜻으로 이해한다. 뉴스사진으로 게재한 언론사의 의중이 짐짓 무언지 꿰뚫고 탐독하는 독자들도 적지 않은 줄 안다. 전공의와 의료진들의 고충과 애로, 국민을 위한 수고를 전혀 모르는바 아니다. ‘선애치환’의 문구처럼 국민을 진정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국민을 먼저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집 떠나가 배운 노래를 집 찾아오는 밤 논둑길에서 불렀노라. /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팠노라.   열네 살부터 나가서 고달팠노라. /   나가서 얻어 온 이야기를   닭이 울도록   아버지께 이르노니 /   기름불도 깜박이며 듣고,   어머니는 눈물로 고이신 대로 듣고   니치대든 어린 누이 안긴 대로 잠들며 듣고,   윗방 문설주에는 그 사람이 서서 듣고, /   큰 독안에 실린 슬픈 물같이   속살대는 이 시골 밤은   찾아온 동네사람들처럼 돌아서서 듣고 /   그러나 이것은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어떤 시원찮은 사람들이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간 이야기어니 /   이 집 문고리나, 지붕이나,   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디착한 수염이나,   활처럼 휘어다 붙인 밤하늘이나, /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전하는 이야기 구절일러라.”   [정지용(鄭芝溶)/ <옛이야기 구절(句節)> 신민(新民)#21호 1927·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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