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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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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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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5)

 

 ‘미세스 Y 가 쓰러졌다’, 지름길 팀 C 부부의 일성에 잠깐 휴식에 들었던 일행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전날의 무리함에 수면 부족까지 겹친 상태에서 작열한 태양 속을 장시간 걸었으니 아무리 장사라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을 터였다. 


 순간 일행 중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곡물을 빈병에 받아 한 배낭씩 메고 급히 내려가고 일부는 공원 레인저(ranger)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인디언 가든’으로 향했다. 첩첩이 협곡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휴대폰은 무용지물 이었고 오르내리는 하이커도 없어 도움을 청하기도 난감했다. 한 구비 돌때마다 그토록 수려했던 경관이 변고를 당하고 나니 고립무원과 다를 바 없어 당황되기도 했다.


 C 부부와 나는 중간 지점에서 기다리며 추이를 관망하기로 했다. 몇 뼘 안 되는 나무그늘과 얕은 계곡물에서도 그토록 행복했던 순간은 눈 깜빡할 사이 사라지고 불안감과 초조함에 한기까지 엄습해 왔다. 그리곤 트레일 입구에 붙어있던 경고문들이 애타는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랜드캐년 트레킹 중 일사병으로 쓰러져 구조되는 사람이 한 해 평균 250명이라는 통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어느 여성 마라토너가 트레킹 중 변을 당했다는 비보 등 하루 만에 콜로라도 강까지 다녀오는 하이커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안내문들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일시적인 탈수현상으로 약간의 휴식과 수분만 보충하면 다시 재개하리라 기대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영상들은 나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게 했다. 힘들지만 일행과 함께 내려가지 못한 점이 후회되었고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어 더욱 답답했다. 


 나는 한 발 또 한 발 혼신을 다하여 올라온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갔다. 등산화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부은 발은 물론 발목과 발가락 통증이 심했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무사함에 귀 기울이며 모퉁이를 돌다보니 멀리 일행들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였다. 거리상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파악은 안 되었으나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어 한동안 지켜보다 돌아서길 수없이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아득한 골짜기에서 일행 중 한 명이 뛰어오고 있음이 시야에 들어왔다. 때론 개미처럼 가끔은 거인의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은 뜻밖에 내 남편이었다. 강한 햇볕과 탈수로 인해 잠깐 실신했던 J 는 물세례와 응급조치로 회복 중이라는 소식과 함께 공원 어딘가에서 돌고 있을 레인저를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왔다고 했다.


 우리에게 낭보를 전한 남편은 그길로 ‘인디언 가든’을 향해 다시 달렸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비록 그이와 보조를 맞출 순 없었지만 큰 변고가 없음에 감사하며 혼자 을씨년스런 숲을 헤쳐 갔다. 


 온몸에 수돗물을 끼얹으며 우리의 요청에 응했던 레인저는 얼마 후 J 를 포함한 우리 일행을 대동하고 ‘인디언 가든’으로 들어섰다. 우리의 우려가 기우였다는 듯 생각보다 가뿐해 보이는 J 를 보니 온몸의 긴장이 일시에 풀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J 가 트레킹 도중 쓰러진 원인은 짐작대로 수면 부족, 피로 누적, 체온 상승, 오브페이스 그리고 심한 공복 등 이었다. 체면 불구하고 계곡물에 뛰어들어 열을 식혔던 점과 설익은 밥을 힘겹게 삼켰던 그 순간들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할 원동력이 된 셈이었다. 자연 속에 들면 모든 것 내려놓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 같았다. 


 응급조치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일사병으로 이어질 뻔한 위기를 모두 합심하여 넘기고 나니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아득하게 다가왔다. 예정된 시간 안에 ‘사우스 림’ 도착은 이미 멀어져갔고 어둠 속을 더듬어 올라야 하는 위험한 코스만이 우리 앞에 태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충분한 휴식 후에 트레킹을 재개하겠다는 지름길 팀을 남겨놓고 또 다시 장도에 올랐다. 석양에 붉게 물든 협곡은 잠깐 장관을 이루더니 이내 어두운 골짜기로 변해버렸다.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행들의 발걸음이 하나같이 휘청거렸다.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보충할 시간도 없이 다시 길 위에 선 사람들, 졸음과 허기짐 그리고 이어지는 낭떠러지를 간신히 피해가며 무려 열여덟 시간 만인, 밤 11시에 출발지 사우스 림에 도착했다. 


 그리곤 칠흑의 그랜드캐년을 내려다보며 다시 꼭 오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아름답기만 하다면 별 매력을 못 느꼈을 협곡이련만 찐한 고통과 함께 자신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게 한 곳이기에 아쉬움이 배가 되었다. 


생과 사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날, 살아오면서 가장 길었던 여정이었다. 멀리 네 개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끝)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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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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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4)

 

 강변 휴게실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다시 트레일에 오른지 한 시간 여 됐다. 잠깐 빤짝했던 일행들의 걸음걸이가 지쳐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려 온 만큼 오르기만 해야 하는 난코스에다 정오의 뜨거운 햇살까지 폐부를 파고들어 속도는커녕 가도 가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 했다. 그때마다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보면 한 발 두 발 걸어온 길이 까마득히 내려다 보였다. 신통치 않은 한걸음의 실체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휘청거리는 다리에 더욱 힘을 가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다. 그랜드캐년 트레킹은 단 반나절 만에 수십억 년 세월을 거슬러 내려갔다가 다시 그 세월을 밟아오는 과정이란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지루했던 풍경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암석의 색깔에 따라, 지층의 두께에 따라 수십만 년 서로 다지고 엉겨붙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까이와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편적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까.

 

 

 


 세월이라는 길고 긴 캔버스 위에 간간이 스쳐가는 바람, 눈과 비 등 자연의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역작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매년 그랜드캐년을 찾는 많은 여행자 중 열에 아홉 명은 몇 군데 정해진 지점에서 그 엄청난 풍광을 잠깐 감상만하고 돌아선다고 한다.


 방문자 대다수가 엄두조차 못내는 일을 우리가 해 내고 있다는 자긍심에 울컥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솟구쳤다. 가장 고생 많은 나의 두 다리에게, 건강함에, 함께 한 남편과 일행들에게.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은 ‘카이밥 트레일’에 비해 근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지형이 완만하고 물 흐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 중반부 트레킹에 힘이 되었다. 남은 거리는 십 이 삼 킬로미터 남짓, ‘인디언 가든’에서 적당히 휴식을 취한 다음 열심히 오르면 예정된 시간 안에 충분히 캐년 림에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 해도 기울고 계곡의 기온도 서서히 내려가는 시점이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후반부 트레킹이 기대되었다. 단지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하는 지름길 팀의 두 여인이 ‘인디언 가든’까지 잘 버틸 수 있을 지 염려되어 보조를 맞추어 걸었다. 어려운 여건에서 자신만 바라보며 투정 부렸던 약한 마음이 함께 하니 안심도 되고 서로 격려도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체력은 내 마음과 달리 점점 하향 길에 드는 듯 했다. 수시 쉼은 물론 물과 간식을 권하며 독려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단지 몇 걸음 옮기고선 ‘인디언 가든’이 얼마나 남았냐며 묻고 또 물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초행길이어서 뾰족한 수가 있을 턱이 없었다. 더구나 거리 표시 사인도 전무했으니 남은 거리를 유추해 내기도 난감한 실정이었다. 


 그때 문득 장거리 하이킹을 몇 차례 함께했던 K 대장이 생각났다. 산길을 오르느라 지친 대원들이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이 ‘5분만 더 가면 되요. 저기 저 앞이에요.’ 이었다. 그 5분이 때론 한 시간도 되고 두 시간도 되었지만 듣는 순간은 힘이 불끈 솟아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살려 ‘5분 만 더, 10분 만 더’ 하며 무책임한 회유로 그들의 한계를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일행은 조그만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모처럼 달콤한 휴식에 들었다. 뒤쳐진 두 커플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페이스로 걸었더니 조금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일부는 편편한 돌에 누워 쪽잠을 청하고 또 일부는 무리한 여정에서 온 후유증을 달래며 그들을 기다렸다. 그토록 험난한 코스를 십 여 시간 강행 했음에도 부상자가 없어 다행이었고, 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인디언 가든’이 가까웠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그들이 나타나지 않아 서서히 걱정이 되었다. 때맞춰 트레일 입구에 붙어있던 경고문이 떠올랐다. 


 “Do not attempt to hike from the canyon rim to the river and back in one day" 


 당일에 강까지 다녀오는 것을 시도하지 말라는 빨간 사인이 아른거려 더 가슴을 조려야했다. 


 위급한 상황에선 직감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내내 가시지 않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사람이 쓰러졌다는 전갈이 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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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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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3)

 

 

 만남의 장소 ‘인디언 가든’을 향해 일명 실버 브릿지(Bright Angel Suspension Bridge)에 올랐다. 북쪽 캐년에서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는 다리, 힘든 고비마다 머릿속으로 청사진을 그리며 마음을 다독였던 것들을 하나도 이행하지 못한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험한 하이킹 끝에 약간의 여유를 부리며 강바닥에서 누리고 싶었던 것들은 시간이 조금만 허락되면 가능한 일들이었다. 숙박 예약조차 어렵다는 ‘팬텀 렌치’에서의 차 한 잔 그리고 ‘브라이트 엔젤 캠핑장’을 돌아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을 뒤로 하고 다시 강행군에 나서니 발걸음이 쉽게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 나의 마음 이해한다는 듯 강물은 잔잔히 다음을 기약하라 소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콜로라도 강변의 유월은 여름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모래 벌을 달구는 강한 햇살이며 메마른 대지에서 뿜어내는 상상을 초월한 더운 열기는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는 듯 했다. 몇 발자국만 옮겨도 온몸에서 땀 비가 내리고 입술은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생물, 무생물 가릴 것 없이 습기란 습기는 무조건 거둬가는 열기 앞에 인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원측이 제시하는 하이킹 금기 시간의 필요성이 피부로 느껴졌다. 수시 물과 소금 알갱이로 탈진을 방비하며 무겁게 한걸음 또 한걸음 옮겨 놓았다.

 

 

 


 푹푹 빠져드는 부드러운 모랫길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지형 또한 만만하지 않아 2 km 남짓한 거리를 두 시간 넘게 걸려 강변 휴게소(River Resthouse) 언저리에 접어들었다. 계곡물이 흐르고 조그만 간이 휴게실이 있다는 정보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걸음을 재촉했다. ‘계곡물을 만나면 무조건 뛰어들라.’는 앞선 경험자의 조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온몸의 열기를 빨리 식히려면 그 방법이 최고일 텐데 선뜻 따를 수 있을지 자신감이 오락가락 했다. 


 강변 트레일을 벗어나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로 들어섰다. 일정의 딱 절반 정도인 15 km 를 계속 오르기만 해야 하는 구간이었다. 부드러운 모랫길에서 딱딱한 지면으로 바뀌니 걸음은 한결 편안해졌지만 갈증과 피곤함에 쉬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전방은 햇볕을 가릴만한 나무 그늘은 보이지 않았고 멀찍이 조그만 움막과 실개울이 눈에 들어왔다. 

 

 

 


 천신만고 끝에 간이 휴게소에 들어섰다. 통나무를 잘라 얼기설기 붙여놓은 시설이었지만 여느 일류 호텔 부럽지 않을 휴식처로 보였다. 최적의 장소에 최소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휴식처가 얼마나 많은 하이커들을 구제해 주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휴게소엔 전혀 예상 못한 ‘지름길 팀’이 먼저 와서 선점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섰으려니 여겼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니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사람씩 눈빛을 교환하며 기쁘게 조우했다. 서로 떨어져서 염려하는 것보다 격려하며 함께 걷게 될 순탄한 남은 길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분위기는 석연치 않았다. 일행 중 두 사람이 컨디션 난조로 고생 중이라고 했다. 걱정했던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와 적잖이 당황했으나 우리 모두 근소한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처지에 놓였기에 매사 주의가 요망되었다. 


 조그만 계곡물에 겨우 등산화만 벗고 뛰어 들었다. 누구의 조언을 따른다기보다 우선 그렇게 해야 살 것 같았다. 체면 불구하고 물속에서 한바탕 뒹굴고 나니 그제야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다.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고생의 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얼마 안 가서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다시 트레일에 올랐다. 인적이라곤 우리 일행뿐인 텅빈 계곡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물속에서 나온 지 십여 분만에 옷은 다시 뽀송뽀송 해졌고 이내 땀범벅이 되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열기를 식히느라 고이 모셔온 생수병을 정수리에 부어가며 ‘인디언 가든’으로 진군했다.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지, 경험도 거리 표시도 전무한 상태에서 떠오르는 것이라곤 단지 수치로 나타난 3km 정도가 고작이었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은 절벽의 능선을 깎아 만든 ‘카이밥 트레일과 달리 계곡의 허리를 잘라서 조성된 길이라 굴곡이 완만하여 걷기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경치도 웅장한 계곡에 간간이 작은 숲과 물이 흘러서 내려올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원만하게 오르는 일행들을 보며 어둡기 전에 출발지점인 사우스 림(South Rim) 도착이 무난할 것 같다고 낙관할 즈음, 두 커플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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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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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2)

 

 협곡에서 뿜어내는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한 시간 여 내려왔을 즈음 ‘시다 릿지’(Cedar Ridge)라는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트레킹 시작 후 처음 맞는 휴식장소라 여간 반갑지 않았다. 휴식은 물론 에너지 보충도 필요했지만 잠깐이나마 가시거리의 협곡을 편안하게 음미하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하던 참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한 시다 릿지는 트레킹을 하는 동안 내내 보아왔던 회색빛 바위 숲에서 갑자기 부드럽고 메마른 황토 분지로 바뀌어 있어 어리둥절했다. 영화 마션(Martian)의 주 무대인 아시달리아(Acidalia) 평원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불현듯 우주의 한 공간이 연상될 만큼 몽롱한 느낌을 주는 짙은 오렌지색 분지는 수면부족에서 온 혼미함까지 겹쳐서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일게 했다. 


 아침햇살이 계곡으로 서서히 번져가는 광경을 음미하며 잠깐 동안 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 위에 섰다. 나무 그늘은커녕 식수조차 없는 악조건의 트레일에서 서늘할 때 한 걸음이라도 더 걷는 게 나중의 고생을 줄이는 길이었다. 


 30km, 하루 동안 걸어야 할 거리였다. 그랜드캐년 트레일 중 양대 산맥인 ‘카이밥 트레일’에서 하강하여 콜로라도 강을 찍고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로 올라오는 U자 코스에 열두 명 하이커들이 감히 겁도 없이 도전장을 냈다. 


 지형의 난이도, 유월의 땡볕, 그리고 공원측이 제시하는 일일 하이킹 한계치의 세 배에 달하는 거리 등 여러가지 난제들이 우리 앞에 놓였지만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한 구비 돌때마다 새로운 힘이 불끈 솟아올라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첫 휴식 장소에서 제대로 에너지를 충전한 일행은 거침없이 하강했다. 시시때때 눈앞에 펼쳐지는 신비로운 풍경에 감탄하고 비탈길 능선을 타며 스릴을 만끽하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한동안 기분 좋은 하이킹을 하다 근거리의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움직임이라곤 전혀 없었던 계곡 사이로 콜로라도 강물이 구비치고 있었다. 

 

 

 


 거의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과 그토록 가 닿고 싶었던 곳이 불과 몇 백 미터 전방으로 다가오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뭔가 잘못됐음이 감지되어 흩어진 일행들을 살펴보니 이미 지름길로 들었어야 할 다섯 명의 멤버까지 열두 명 전원이 같은 선상에서 걷고 있었다. 사진 촬영과 함께 후미를 담당했던 우리부부는 각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리라 믿으며 내 길에만 심취해서 걸었던 것이 문제였다.


 지도를 꺼내어 지나친 지름길을 추적해 보았다. 첫 휴식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동그라미가 쳐져있었다. Tonto trail ->, 그제야 놓친 지름길 초입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황급히 내려오다 Tonto를 Toronto로 잘못 읽어 주춤했던 곳이었다. 호기심에 길이 꺾이는 곳까지 쳐다보다가 돌아섰는데 누누이 기억했던 그 지명임을 왜 인식하지 못했을까. 눈앞에서 길을 놓친 내 자신 그리고 지름길 리드로 지명된 맴버 등 첫 휴식 장소에서의 감흥에서 벗어나지 않아 생긴 사고였다. 먼 길 앞두고 평상심 회복이 관건이었다.


 일행은 한동안 진퇴양란에 빠졌다. 다시 지름길로 되돌아가는 것도, 그렇다고 함께 계속 강행군을 하는 것도 체력이 약한 그들에겐 무리였다. 지나온 길은 일정의 삼분의 일에 불과할 뿐 남은 분량과 난이도가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강변 모랫길을 수 킬로 걸어야 함은 물론 내려 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 과제가 산재해 있었다.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조그만 소로를 따라 만남의 장소인 ‘인디언 가든’으로 향했다. 동서로 흐르는 강은 좋은 길잡이가 될 터였지만 이미 오브 페이스를 한 그들의 체력이 얼마나 버텨줄지 걱정되었다.


 드디어 그랜드캐년을 남북으로 잇는 서스펜션 브릿지(Suspension bridge)를 건넜다. 마지막 절벽길에서 아찔한 순간이 있었지만 푸른 강물을 내려다보며 용케 참은 내 자신이 대견했다. 무려 4시간에 걸친 하강에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고 발가락에서 진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그토록 선망했던 콜로라도 강변에 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설익은 밥에 밑반찬 몇 가지, 전날 산책길 소동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결과였다. 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우리는 큰 소망 하나 이룬 성취감으로 그 시간도 행복할 수 있었다.


 재출발에 앞서 부푼 발을 강물에 담그고 잠깐 휴식 시간을 가졌다. 매끈한 돌에 허리를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으니 들리는 것이라곤 물과 바람 소리뿐, 고요함의 극치에서 마음은 이미 지상 낙원을 거닐고 있었다. 


 ‘출발 5분 전’ 외침과 함께 달콤한 일탈에서 돌아와 다시 행장을 꾸렸다. 애초의 계획은 그곳에서 정오의 햇볕을 피할 예정이었으나 지름길 팀의 안위가 걱정되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짧게 누려던 그 여유로움 뒤에 큰 일이 있으리라곤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했을까. 돌아보면 하루 중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은 그곳 콜로라도 강변에서의 십여 분이 고작이었다.


 긴 고행 끝에 온 소중한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 부러운 마음으로 돌아보며 강변 모래톱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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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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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1)

 

 칠흑의 어둠을 가르며 두 대의 밴이 조심스럽게 그랜드캐년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 세 시, 깨어있는 것이라곤 차량의 전조등이 긋는 불빛과 그 안에서 흔들리며 밖을 주시하는 열두 명의 대원들뿐이었다. 무성한 잡초가 밤바람에 출렁이는 도로를 속도는 느리지만 제법 방향을 잡아 나아감은 다소 과하게 현장 답사를 한 덕이리라. 

 

 

 


 완전무장한 일행은 차를 파킹하고 트레일 헤드까지 우리를 인도할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기온 차가 심한 사막의 새벽공기는 두어 시간 설 잠에 혼미해진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인적이라곤 없는 깜깜한 정류장에서 추위에 떨며 오전 4시 첫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 인생에서 큰 획을 긋게 될 그랜드캐년 트레킹,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작은 사건은 결코 쉽지 않을 이번 트레킹의 전초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를 렌트한 우리는 오후 4시경 그랜드캐년 공원 인근의 모텔에 도착했다. 방 배정과 짐 정리를 대충 마친 후, 다음날 신 새벽에 시작할 트레킹의 출발지점 사전 답사 겸 해넘이 그랜드캐년 산책길에 나섰다. 협곡의 무채색 바위가 서서히 변화를 일으키는 늦은 오후, 수년 전 다녀갔음에도 그 감흥이 새로워 관전 포인트를 열심히 쫒아 다녔다. 


 불과 몇 시간 후면 협곡 사이사이를 걸어 콜로라도 강에 닿으리란 꿈을 꾸면서 황혼에 물드는 캐년을 돌다가 일행들과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다른 멤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뭔가 잘못 됐음을 인식하고 넓은 공원 안을 셔틀 버스 혹은 뜀박질을 하며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한 부부의 실수로 두어 시간 만에 재회한 일행은 체력이 이미 고갈 상태에 있었다. 한인 외에는 감히 꿈도 못 꾼다는, 당일에 협곡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대장정을 위해 체력 관리며 먹을거리들을 여유 있게 준비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예정된 시간이 훨씬 지나도 셔틀버스는 물론 다른 하이커들도 나타날 기미가 없어 그제야 버스운행 시간표를 비쳐보았다. 비수기인 6월 말까지 오전 다섯 시부터 첫 버스가 운행된단다. 6월 29일, 그러니까 마지막 늦잠에 빠진 셔틀버스를 애면글면 기다린 셈이었다. 입수한 정보만 믿고 현지 실정을 등한시한 게 착오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춥고 지루했지만 사위는 금방 훤해져서 수면 부족으로 부석해진 일행들의 얼굴이 하나씩 육안으로 들어왔다. 벤치에 따닥따닥 붙어 앉은 일행은 가운데 펼쳐진 지도를 보며 서로 머리를 맞대었다. 


 장거리 원정에선 늘 리더의 손에 이끌려 다녔던 멤버들이 의기투합하여 미 서부 협곡 트레킹에 도전장을 낸지 6개월 만에 첫 관문에 들어서니 감개무량함과 함께 약간의 걱정도 스멀거렸다. K 대장이 꼼꼼하게 짜준 일정표에다 선 경험한 사람들의 실패담을 보완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을 터이지만 변화무쌍한 자연과 그 보다 더 심오한 인간관계에서 어떤 돌발 변수가 생길지 조심스러웠다. 


 남편이 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그날의 일정을 표기해 나갔다. South Kaibab Trail부터 콜로라도 강까지 당일 트레킹 할 구간과 완주에 자신 없는 멤버들을 위한 지름길을 따로 명시하고 선두와 후미를 책임질 회원도 정했다. 


 그리고 공원 측이 강조하는 페이스 조절, 수시 수분 보충, 12~15시 휴식 필수, 계곡물 만나면 무조건 들어가 열을 식히라는 점 등 사막지대 트레킹 안전수칙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시작은 모두 함께, 중간엔 따로 따로 그리고 오후 4시 ‘인디언 가든’에서 합류하기로 하며 각자 성공 의지를 불태웠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방에서 산악인들이 모여들었다. 썰렁했던 정류장이 이들의 출현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젊은 층인 이들은 벤치에 앉은 우리를 가운데 두고 팀끼리 모여서서 리드의 훈시에 귀를 기울였다. 신 새벽 젊은이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루 동안 같은 코스에서 비지땀 흘려야 할 동지들,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젊은이들이 전문 산악인의 인솔 하에 있다는 점이 은근히 부러웠다. 하이킹 경력으로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우리들이지만 초행길이라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트레일 헤드에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아직 늦잠에 빠져있는 회색빛 장엄한 계곡은 한발 두발 내딛을 때마다 수십억 년 시간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게 하는 느낌을 주었다. 한 구비 돌아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면 방금 떠나온 그곳이 딴 세상처럼 아득해 보였다.


 흰 꽃송이를 긴 꽃대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단 용설란, 진분홍 꽃을 피운 늙은 선인장 군락, 꼬불꼬불 소로 따라 이어지는 노새들의 행렬은 협곡에 신선함을 불어 넣는 주인공들이었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트레일을 서서히 내려오다 보니 멀리 첫 번째 휴식 장소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일행은 잰걸음으로 그곳을 향했다. 하지만 우리를 유혹하던 아름다운 그곳이 트레킹을 힘들게 할 시발점임을 그 누가 알았을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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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6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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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콜로라도에서의 그날들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정리를 하던 중 아이패드에 메모해둔 글이 눈에 띄었다. 콜로라도의 대자연을 찾아가던 중간 숙소에서 메모한 몇 문장을 필두로 대 장정의 하루하루가 그대로 읽혀졌다. 

 

 

 


 ‘새소리 자글거리는 아침공원에서 커피 한 잔의 멋스러움. 새파란 하늘과 맞닿은 옥수수 밭 능선을 바라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음‘ 등등.


 짧은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퍼즐을 맞추어 나가듯 그 속을 파고들며 한동안 여행의 뒷맛을 음미했다.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잔잔한 여운으로, 거칠고 험난했던 순간은 짜릿한 전율로 전해오는 생생한 기억들은 과제를 앞둔 조급한 마음에 약간의 여유를 갖게 했다. 


 캠핑 예찬


 가랑비가 흩날리는 해질녘, 로키마운틴 국립공원의 동쪽 관문인 에스테스 팍(Estes Park) 타운에 들어섰다. 멀리 로키의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크고 작은 돌산이 자그마한 도시를 감싸고 있는 사이사이로 리조트가 형성되어 있어 쾌적하고 여유로운 전경이었다. 많은 여행가들이 언젠가 꼭 살아보고 싶다는 곳, 단 3일이지만 아름다운 마을에서 유숙할 수 있음에 행운이라 여기며 미리 예약해둔 KOA 캠핑장을 찾아들었다. 

 

 

 


 캠핑장은 다행히 타운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이동이 편리하고 경치도 좋아 흡족해 하며 지정해 준 사이트로 갔다. 하지만 우리의 캠핑 장소는, 아늑하게 자리한 캐빈(Cabin)촌을 지나 럭셔리한 R&V 사이트들을 꺾어 돌아 가장 구석진 장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자연 속에 들어오면 가장 자연을 잘 느낄 수 있는 캠핑을 선호하지만 그날은 ‘말 목장’과 담을 함께하는, 부잣집 곁방살이 같은 분위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휴가철 절정기에 탐탁지 않은 공간이나마 확보했음에 안도하며 텐트를 쳤다. 

 

 

 


 울퉁불퉁한 돌밭을 정리하고 지형을 살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궁궐을 부부가 함께 세웠다. 그리곤 엄선해서 공수한 일용품들을 비치하고 촛불도 밝혔다. 작지만 필요한 건 다 있는 최적의 공간을 둘러보며 그동안 너무 많이 가져서 미안한 마음, 불필요한 잡동사니에 휘둘려 살아온 안타까움, 들고나며 좁은 공간에서 부딪히며 나누는 부부애 등 다른 숙소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갖가지 상념들이 하나씩 피어올랐다.


 우리는 이내 이웃의 부자들이 부럽지 않은 마음으로 모닥불을 피우며 로키의 산자락에 내리는 어둠을 음미했다. 선착순으로 주어지는 사이트 배정을 받기 위해 새벽 다섯 시 롱스픽 3000 m 험산을 운전해 간 열성이나 늙은 선인장 숲 캐논의 거친 야영장의 그 밤도 그래서 우린 행복했었다. 

 

 도전, 블랙캐년에서 거니슨 강으로 


 산행 열흘 째 날, 블랙캐년 국립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드라이브의 스릴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밀리언 달러 하이웨이’를 지나 아름다운 ‘아메리카 속의 스위스’ 구간을 거쳐 아찔한 절벽위에 섰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조망 포인트에 닿으니 딱딱한 회색빛 암벽에서 내뿜는 열기에 현기증이 났다.


 페인티드 월(painted wall), 드레곤 월(dragon wall) 등 세월과 자연이 빚어낸 거대 추상화들을 주마간산으로 훑다보니 멀리 협곡 사이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실오라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콜로라도 강으로 흘러가는 지류 중의 하나인 거니슨 강(Gunnison River)이었다. 그곳은 우리가 감히 갈 수 있으리란 꿈조차 꾸지 못할 요원한 거리와 깊이였다. 


 공원 주변 하이킹 코스를 탐색하다가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운명이었다. 매혹적인 도전 기회를 놓칠리 없는 우리는 곧 코스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도 받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리는 블랙 캐년을 하강하는 첫 하이커가 되어 Oat trail head에 들어섰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출발한 하이킹은 시작부터 고난도의 스킬을 요구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두 배 높이에 해당되는 수직절벽 사이에 난 소로를 내려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주변 경치 감상은 상상도 못한 채 촉각을 곤두세워 한 발 한 발 전진해 나갔다. 미끄러지거나 구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오금이 저려서 머뭇거리기를 수차례, 하강 두 시간여 만에 강바닥을 밟았다.


 긴 한숨과 함께 내려온 절벽을 되짚어 보니 겁없는 도전이었음이 확연이 읽혀졌다. 정오의 햇빛만 살짝 스쳐가는 좁디좁은 협곡에 태초의 고요함이 켜켜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우리는 고행 뒤의 기쁨을 잠깐 만끽하고 다시 절벽 길에 올랐다. 


 그곳은 하루 하이킹 인원을 15명으로 제한하고 사전 특별 허가는 물론 출발 전과 도착 후에 꼭 사인으로 무사귀한을 공원 측에 알려야 하는 난코스였다. 겁없이 덤벼든 무지한 하이커 4인, 가슴에 큼직한 훈장 하나씩 안고 돌아왔다. 


 자연 속에 들 때엔


 산행 마지막 날엔 이런 메모가 적혀 있다. MT. 앨버타, 14000 f. 자유산행 그리고 최종 목표는 수목 한계선까지. 갑작스런 일기 변화로 우박 쏟아짐. 2/3 지점에서 하산 결정. 판초의 고마움. 팔월에 쏟아지는 우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유비무환을 읊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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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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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6
로키산에 봄이 오면

 

 미국 콜로라도 여행에서 돌아온지 어언 이십여 일이 되어간다. 다른 때 같으면 평상심을 회복하기에 충분한 시일이지만 이번엔 꽤 오랫동안 여운이 지속되고 있다. 


 바람이 부는 날은, 모래바람을 동반한 극심한 강풍이 캠핑장을 휩쓸던 그레이트 샌드 둔(Great Sand Dunes)에서의 새벽녘을, 비가 내리는 날은 고산증을 달래며 우중(雨中)에 걸었던 오데사 레이크(Odessa Lack) 언저리를 돌고 있다. 요즘처럼 달 밝은 밤엔 모닥불 앞에 앉아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을~~.’ 하며 흥얼거렸던 황량한 사막의 어느 야영지로 돌아간다. 


 시시때때 아직도 마음이 그곳에 가 닿는 것은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루어진 여행이라 그러하겠지만, 로키산맥이라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행해졌던 크고 작은 움직임을 하나라도 더 붙잡고 싶은 갈망 때문이 아닌가 한다. 

 

 

 


 로키에 가면, 내면 어딘가에 숨어있던 열정과 용기 분출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광활한 자연을 만나기 위한 길이니 무리함은 당연하지만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뛰어 넘는 초인적인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롱스 픽(Longs Peak) 산행은 내면에 잠재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여정이었다.


 롱스 픽(해발 4300m)은 미국 콜로라도 Rocky Mountain National Park에 자리한 고산들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 산을 등반하기 위해 베이스캠프인 롱스 픽 캠핑장에서 야영을 했다. 


 새벽 한시 반, 남편의 인기척에 힘입어 어렵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몸이 선뜻 말을 듣지 않았다. 야밤 산행을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큰 과제를 앞두고 잠을 설친 탓이었다. 옆 텐트의 일행들도 일어나 출정을 서두르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미리 준비해 둔 김밥과 간식들 그리고 물 3리터씩을 배낭에 넣고, 고산증 극복을 위해 각자의 방법대로 대비를 했다. 출발에 앞서 일행은 손에 손을 맞잡고 작지만 큰 울림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분에 넘치는 정상정복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산행이 되기를….’ 하고. 우리의 염원에 응답이라도 하려는 듯 밤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음력 칠월 초순, 달빛 없는 산길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뿐 적막강산이었다. 언제라도 사나운 야생동물들이 깜깜한 숲을 헤치며 튀어나올 것 같은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헤드라이트로 겨우 앞을 밝힌 일행은 이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겨운 발자국을 옮겨야 했다. 


 베이스캠프가 해발 3000m 쯤에 위치했기에 고산 증세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던 데다가 몇 발작 옮길 때마다 고도를 높여가고 있었기에 페이스 조절과 수분 보충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거기다가 싸늘한 밤공기에 대처하느라 껴입은 의복은 잠깐의 산행으로 땀범벅이 되어 한 겹씩 벗어내며 체온 조절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어느 정도 산행에 적응이 되자 이번엔 쏟아지는 졸음으로 곤욕을 치렀는데 며칠째 이어진 수면부족은 긴장이 완화된 틈 사이로 무섭게 파고들었다. 졸음 산행은 사고와 직결되기에 바위틈에 앉아 잠깐 졸며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마치 산상 기도를 위해 열성을 바치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한 발 두 발 내딛다 보니 멀리 먼동이 터 오고, 로키의 고봉 군락들이 희끗한 눈발을 이고 우리의 발아래 펼쳐져 있음이 눈에 들어 왔다. 


 대단한 용기와 열정으로 얻게된 엄청난 풍경 앞에서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곤 계속 이어지는 돌산을 휘청거리며 하염없이 걷다보니 일행 중 선두주자가 되어있었다.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오늘의 목적지 키 홀드(Key Hold)가 정오의 햇살을 받아 현란한 빛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앞선 등산가들이 그 주변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위대해 보였다. 대충 눈대중으론 삼십분 정도면 그곳까지 무난할 것 같은데 문제는 가파른 돌산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려움에 뒤돌아보니 다행히 K선생이 같은 선상에 있었고 남편은 사진 촬영과 체력저하로 까마득히 보였다.


 이런 때 어딘가에 숨어있던 초인적인 힘이 나를 선도한다. 천근 무게의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주저앉으려던 의지가 활화산처럼 솟았다. 로키 산맥에서 받은 정기가 바위산에서 대방출되고 있을 즈음 K선생의 일성이 들려왔다. ‘이쯤에서 돌아서자고.’ 하지만 신들린 발길은 K선생의 회향에도 아랑곳 않고 이 바위 저 바위를 껑충거리며 오름 새에 이르렀다. 


 경사가 심한데다 길을 찾아가며 올라야하는, 우려했던 구간에 들어서니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두 발 또는 네 발로 안간힘을 써도 내가 예측했던 시간은 거기서 멈춘 듯 했고 남편의 빈자리가 서서히 느껴져 왔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갈 길은 험난한데 감당 못할 외로움이 엄습해 와 사기를 저하시켰다. 바로 이때 하산하던 K선생으로 부터 남편의 전갈이 전해져 왔다.


 ‘그만 내려오라’고. 돌아보니 그이의 걱정스런 손짓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마음은 이미 갈등 속에 있었던 터라 내려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아쉬움이 두어 걸음 더 올려 세웠다.


 각자 체력이 허용하는 만큼, 뿔뿔이 흩어져 길 없는 길을 개척해 가며 원 없이 걷다가 돌아섰다. 정상을 꼭 오르고야 말겠다는 만용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걸었다는 허세도 내려놓은 채.


 하산길엔 갑작스런 광풍을 만났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돌아서서 안전지대로 들어선 게 얼마나 다행인지……. 공원측이 심야 산행을 유도한 것은 이런 돌발현상을 간파한 결과였다. 몇 번 가슴을 크게 쓸어 내렸다. 


 그리곤 ‘로키 산에 봄이 오면 나는 다시 오리라.’며 흡족한 마음으로 그이와 함께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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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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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1
로키산맥에서의 백팩킹(backpacking)

 

 일 년에 한 차례씩 원정 산행을 해오고 있다. 굳이 여행의 목적을 든다면 에너지 충전 혹은 일상의 여백을 위한 행보라고 하겠지만 실은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고생은 시작된다.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마음부터 앞서는 건 그 속에서 캐내는 크고 작은 보석 때문이리라. 큰 감동, 긴 여운으로 남아있는 로키에서의 백 팩킹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안에서 여전히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로키에서는 어디를 가나 쉬운 곳이 없었다. 배낭이 무거운 날은 무게에 눌려 힘들었고 가벼운 날은 할 일을 다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가슴이 저렸고 산새가 험난한 곳은 스스로 포기하게 될까 두려웠다. 억겁의 세월을 품은 대자연 앞에서 나란 존재는 늘 미미했고 켜켜이 앉은 세속의 때는 숱한 들꽃 앞에서조차 움츠려 들게 했다. 


 일행은 십여 일간 로키에 산재한 트레일들을 하이킹 한 다음 캐나다 로키의 최고봉인 롭슨 산(Mt. Robson, 해발 3964m) 주변을 탐색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며칠 유숙했던 지인의 편안한 카티지에서 배낭 속의 모든 걸 쏟아놓고 야영에 필요한 장비며 생필품을 선별하다 보니 비로소 백 팩킹이라는 무게가 피부에 와 닿았다. 
 

묵직한 배낭을 메고 롭슨 강을 건너자 빗방울이 후드득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득히 보이는 설산도 침울한 분위기에 쌓여 긴장되었으나 이내 비구름이 걷히고 우리의 입산을 환영하듯 오후의 햇살에 반짝였다. 

 

 

 


 산 그림자가 드리운 키니 호수(Kinney lake) 베이스캠프에서 1박을 한 다음 일행은 서둘러 목적지인 버그 레이크 캠핑장으로 향했다. 오륙십 대의 일행 여섯 명은 약간의 고산증과 배낭의 무게로 인해 얼굴이 좀 푸석해 보였을 뿐 컨디션은 좋았다.


 산을 오르는 동안 빙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폭포며 수시수시 나타나는 야생동물들 그리고 산재한 만년설을 만날 때마다 일행은 할 말을 잊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인간의 표현 한계를 넘어버린 대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넋을 놓고 하염없이 그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해가 서산에 기울 때쯤 버그 레이크 캠핑장에 도착했다. 롭슨산 정상으로부터 쏟아져 내려 호수와 맞닿아 있는 빙하를 보는 순간 이틀 동안의 사투는 사라지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이 자꾸 치밀어 올라왔다. 이런 장관을 보기 위해 유럽인들은 백 팩킹 대신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산맥을 넘는다는데 그 감동의 깊이가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그날 밤, 나는 자주 텐트 밖으로 뛰쳐나왔다. 천 년의 소리를 한데 모은 듯 요란한 굉음을 내며 호수로 떨어져 내리는 낙빙을 보기 위해서, 아우라를 거느린 보름달이 빙하를 마주하고 있는 장관에 홀려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설산과 빙하, 보름달과 호수, 이들은 함께 또는 따로 객의 텐트를 자주 들었다 놓곤 했다.


 다음날 K대장의 선도로 대장정에 나섰다. 주변의 빙하와 폭포를 탐사할 수 있도록 코스를 만들어 놓은 스노버드 트레일(Snowbird trail)을 따라 걸으며 면면을 살펴보다가 마지막으로 콜리맨 빙하(Coleman glacier)를 돌아오는 왕복 20km의 산행이었다. 


 고산지대라 볼거리는 크게 없어도 잔잔한 들꽃이며 이끼류에 관심을 쏟다가 그것들마저 끊어지고 험한 바위산 산행이 이어지자 일행은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였다. 이를 눈치 챈 K대장은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저 앞 돌산 넘어 무엇이 있더냐’고 물었으나 한결같이 별 것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환점에 뭐가 있건 없건 그렇다고 중도에 포기할 우리들이 아니었다. 이미 로키의 속살을 깊숙이 경험한 터라 더 놀랄 일이 무엇 있겠는가라는 초연함도 함께 했다.


 고산증과 허기짐, 그리고 체력의 한계를 가까스로 견디며 목적지에 도달했다. 예상대로 며칠째 계속 보아왔던 태초의 파란 하늘과 드넓은 설원에 거친 바람이 한몫을 더했다. 하지만 왠지 거기가 끝이 아닐 것 같은 강한 의구심에 지친 다리를 끌며 눈밭을 조금 더 헤쳐 나갔다. 


 인생은 반전의 묘미에 더 살맛이 나는지 모른다. 해발 삼천 미터가 넘는 산봉오리들이 코발트 빛 빙원에 잠겨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둘, 셋 짝을 이룬 섬들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모습과 흡사했다. 쩍쩍 갈라진 틈 사이로 옥색의 하늘이 스며 있었고 깊이 들어가다 보면 바다와 하늘이 맞닿을 것만 같았다. 


 엄청난 크기의 빙원을 위에서 아래로 굽어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는 모두 아, 아 하고 탄성만 지를 뿐 선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곳은 무관심 속에서 비롯된 걸작 빙원인 셈이었다. 


 Reef iced field라고 명명된 빙원은 BC주와 앨버타주 경계에 자리한 관계로 두 주가 관할구역을 서로 미루는 바람에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처지였다. 지도는 물론 트레일 안내판에도 올라있지 않으니 대부분의 등산가들은 직전에서 놓치고 만다. 방문자가 적으니 훼손도 덜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찐득한 끈기 끝에 찾아낸 그곳은 우리들의 뇌리 깊숙이 박혀있는 영롱한 보석이다. 모든 관계에서 적당한 무관심은 서로를 건강하게 하는 방편임을 자연에서 터득하였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흔히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버킷리스트 1순위에 로키산맥을 거론한다. 나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거기에 공감한다. 하지만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로키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더 보고 느낄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치열하면 할수록 찐하게 다가오는 로키의 매력을 감히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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