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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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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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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1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5)

 

헤밍웨이 발자취, 팜플로나(4일차)
(빌라바~자리키에기/ 15km)

 

 

 

 

 '여보! 아홉 시야. 다 나가고 아무도 없어.' 남편의 황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두터운 아침 해가 방안 깊숙이 들어 와 있었다. 숙소 퇴실 시간을 삼십 분이나 넘긴데다가 독실을 배정해 준 형제님께 민폐를 끼치게 되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옆방에선 수십 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준비하느라 어수선했을 텐데, 세상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으니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펼쳐진 물건들을 대충 배낭에 집어넣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체리 꽃이 만발한 수도원의 정원은 딴 세상이었다. 향긋한 꽃 냄새에 마음을 진정시키며 겨우 한 숨돌리려는데 고마운 형제님이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리 꽃만큼이나 화사한 표정으로 셔터를 누르는 그 분의 모습을 보니 가슴 속에서 뭉클함이 올라왔다. 


 모처럼 쾌청한 날씨임에도 컨디션이 난조를 보였다. 발바닥엔 물집이 잡혀 한 발짝 옮기기도 어렵고 배낭도 점점 무거워져 진척이 순조롭지 않았다. 무리하는 것보다 몸을 먼저 달래야 하겠기에 동네 어귀에 있는 조그만 바에 주저 앉았다. 


커피와 타파스(빵 위에 하몽이나 치즈를 올린 간단한 음식)로 아쉬운 아침을 해결하려니 숙소의 냉장고 안에 모셔둔 알토란들이 부실한 조식 위로 겹쳐 지나간다. 급히 나오느라 어제 준비해둔 음식들을 챙기지 못해 아쉽지만 그것 또한 누군가에게 일용할 양식이 될 터여서 위로가 된다. 


 나바라의 주도인 팜플로나 까지는 고작 3.5 km 거리이다. 다른 때 같으면 한 시간이면 충분하련만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두 시간 만에 어렵게 도착했다. 팜플로나는 대도시답게 주민들의 움직임도 활발하고 높은 성벽에 둘러 쌓인 성채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행히 까미노는 지나는 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려는 듯 성채 안 깊숙이 길을 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여러 민족의 침략을 버티어 낸 구 도심은, 빗장을 활짝 연 채 봄 축제가 한창이었다. 7월 초, 중순이면 소몰이 행사, '산 페르민 축제'로 북적이는 시청 앞 골목엔 학생들의 민속 춤 향연이 끝없이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원을 지닌, 자긍심 강한 바스크 인의 후예들이 사뭇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율동으로 우리의 고단한 여정에 활력을 주었다.


 우리가 선 이 거리, 이 고장은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기 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산실이기도 하다. 며칠간 문학 기행을 하듯, 그가 장기간 머물며 집필한 부르게테 호스텔을 지나 작품 구상에 몰두했을 '우로비 강'을 건너 소설의 절정을 이룬 투우 골목에 이르니 그의 창작 세계를 간접 경험한 듯 뿌듯하기만 하다. 


팜플로나의 구 도시와 신도시를 돌며 몇 시간 여유를 부리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별렀던 라면을 구입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다음 대 도시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발 품을 팔아야 할지. 


 도심을 벗어나 다시 들판으로 나오니 고향에 온 듯 편안하다. 저조했던 컨디션도 한결 좋아져서 따끈한 햇볕을 받으며 제법 긴 거리를 소화해냈다. 멀리, 오늘의 코스 중 마지막 오르막이 보일 즈음 조그만 나무 그늘 아래 판초를 깔고 늦은 점심상을 차렸다. 두 배낭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음료, 과일과 빵들 중 어깨를 짓누르던 묵직한 스페인 오믈렛이 군침을 돌게 한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두툼한 햄이 속을 가득 채운 오믈렛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하지만 향신료에서 오는 이질감과 짠 맛 그리고 토마토 소스로 인해 물렁거리는 빵은 왕성한 식욕마저 떨어뜨리게 했다. 얼큰한 김치찌개 한 그릇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5시경 자리키에기(Zariquiegui)에 도착했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성당을 중심으로 한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생동감을 주는 골목 바에서는 말끔하게 샤워를 마친 사람들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담소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말문이 터지는 시간, 치밀어 오르는 말들을 꾹꾹 눌러가며 앞만 보고 걸은 순례자들의 뒷담화는 다음 도착자가 오면 슬며시 그들에게 옮겨간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영접 하듯이. 


숙소라곤 한 주인이 운영하는 사립 알베르게 두 개가 전부인 이곳에서는 이층 침대 위쪽도 감지덕지 하며 받아드려야 했다. 밀린 빨래 감을 세탁기에 넣고 LA 에서 온 '짐'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니던 직장을 일시 휴직하고 4개월간 세계를 여행 중이라는 청년은 걷는 게 즐거워서 이 길에 들어섰단다. 여행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신이 가벼워진다는 그의 경험담이 조금씩 이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과를 마친 저녁이면 숙소의 로비나 방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을 치료하느라 너도나도 붕대와 반창고 등을 챙겨 나와 영광의 상처들을 다독인다. 나도 큼직한 물집을 터트려서 연고를 바르고 바셀린으로 다리를 마사지 한다. 


신체 중 두 다리의 역할이 지대한 이 시점, 얼리고 달래며 내일을 기약하려 애쓰는 내 자신에게 묻는다. 살아오면서 애증의 눈길로 발바닥을 살펴본 적이 몇 번이나 되냐고.
 상태가 중증으로 보이는 S와 J를 내일 또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침대 사다리를 올랐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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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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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9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4)

 

 

 

고행과 기쁨의 길(3일차)


 어둠이 막 걷혀가는 이른 새벽 숙소를 나섰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일출을 준비하는 동녘하늘의 경이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몇 장 담고 소박하면서도 편안했던 도시 에스파냐를 지나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오늘은 주비리(Zubiri)를 거쳐 자발디카(Zabaldica)까지 약 30 km 전진할 예정이다. 다소 긴 일정 일듯하나 코스가 원만하여 무리가 없을 듯하다. 우리의 컨디션이나 현지 상항을 감안하여 융통성을 두었으니 목표 달성이 되건 안되건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숙소는 충분한 휴식을 위하여 조용한 곳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까미노는 아기자기 하게 단장된 마을을 벗어나 이내 들녘으로 이어졌다. 밀밭과 목초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싱그러운 초록 물결에다 배꽃, 복숭아 꽃이 만발하여 운치를 더해 준다. 힘겹게 오르던 피레네 산맥도 하루 사이 멀찍이 물러서서 온 구릉을 병풍처럼 감싸 안고 있다. 낮게 않은 구름이 약간 신경 쓰일 뿐 걷기엔 더 없이 좋은 여건이다. 


 오늘도 길 위엔 우리 부부뿐이다. 그래서 외롭거나 수선스럽지 않다. 40년을 한결같이 걸어 온 인생길처럼 서로 의지하고 때론 자유롭게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걷기에 집중 할 수 있어 좋다. 


 코스는 어제의 산길에 비하면 양호하나 오르막 내리막 길이 연속으로 이어져 빈틈을 주지 않는다. 거기다 주비리에 가까울 무렵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의를 입었지만 잠깐 사이 생쥐 꼴이 되었다. 비도 피할 겸 동네 초입의 바에 들어갔다. 테이블 마다 빼곡히 앉은 현지민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무관심한 듯 하면서도 격려를 보내는 느낌이 별로 싫지 않았다. 


 얼마 후 비는 멎었으나 도로가 유실되고 진흙탕 길이 또 만만하지 않았다. 굴곡 없이 평탄하기만 한 순례길은 아마도 잘못된 길일 것이다. 하나를 넘으면 둘이 기다리고 그 뒤엔 더 큰 난제가 버티고 있는 길, 차츰 까미노의 속성이 읽혀지기 시작했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원만하리라 여겼던 30km 거리는, 수시 바뀌는 자연현상에 대한 대처와 그로 인해 쉽게 고갈되는 체력을 감안하지 않은 평면적인 숫자에 불과했다. 다행히 넉넉한 시간이 그 간극을 극복하는데 명약이 되었다. 


 나무 그늘아래 판초를 깔았다. 준비한 샌드위치와 바나나로 거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옆엔 강물이 불어 콸콸거리고 비 개인 들판은 생기가 충만했다. 배낭을 베고 누워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짙푸른 하늘이 언제 비를 뿌렸냐는 듯 벙글거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한 휴식이다. 


 '저기만 건너면 되는데. ' 아래 위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 남편이 아쉬운 듯 탄식을 한다. 오늘의 숙소가 언덕 위에 빤히 보이건만 다리가 유실되어 건널 수 없다. 십여일 이상 내린 비로 곳곳엔 물난리가 났고, 코스도 일시 변경되어 둘러가기 일쑤다. 할 수 없이 오던 길을 되돌려 강을 건넜다. 목전의 숙소가 다시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온몸이 천근만근으로 가라 앉는다.


비틀거리는 걸음을 다잡으며 겨우 산 중턱 성당에 들어섰다. 산들바람에 일렁이는 노란 브리지야 꽃 무리가 우리를 먼저 반겨 주었다. 잠깐 숨을 고르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우리가 지나온 고해의 바다를 품은 경치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이곳에서 하룻밤 유숙할 생각을 하니 지나온 고생길이 뿌듯함으로 채워진다.


 막 꽃 단장을 마친 성당 관계자들이 민망한 듯 우리 곁에 둘러섰다. 이틀 후의 개장을 준비하느라 그들도 우리만큼 지쳐 보인다. 담당 자매님은 물과 간식을 챙겨 나오며 오늘도 몇 사람 돌아갔다며 미안해 한다. 한숨을 돌리자 3km 거리의 다음 알베르게까지 도보로 아니면 자신의 차로 데려다 줄 테니 선택을 하란다. 


남편은 지체 없이 전자를 택했다. 그의 용감한 선택에 나보다 자매님이 더 감격 해 했다. 우리는 뜨거운 포옹을 나눈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산 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까지 자매님은 그 자리에서 계속 손을 흔들며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몸은 마음 먹기에 달렸는지 험한 산길도 걸을 만 했다. 다만 배낭을 내리고 쉬는 빈도가 늘었을 뿐. 땅거미가 내릴 즈음 산길을 벗어나 다행이었지만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멀리 숙소 예정지 빌라바(Villava)를 바라보며 혼신을 다했다. 


 7시경 마을 초입의 수도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수속을 마치자 담당 형제님이 우리의 배낭을 양 어깨에 메고 안내해 주었다. 입구와 숙소까지 거리도 만만치 않아 감사했는데 등산화를 벗으니 신문지를 뭉쳐 그 속에 넣어준다. 신발 습기 제거엔 그만이란다. 그리고 더 감격할 일은 자리가 많이 남은 도미토리 대신 독방을 배정해 주었다.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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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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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3)

 

빗속에서 '부엔 까미노' (2일차)


 모처럼 숙면을 취한 탓인지 신 새벽에 잠이 깨어 로비로 나왔다. 방마다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한 걸 보아 모두 단 잠에 든 모양이다. 커튼을 젖히니 어렴풋한 산등성이들이 어깨를 맞대며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의 한 언저리에서 맞이 한 첫새벽은 설렘과 함께 불확실한 우리의 여정을 예견하는 듯 묘연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른 아침, 간밤 숙소 문제로 의기투합 했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아침 식사를 했다. 커피와 빵, 시리얼 정도의 간단한 메뉴였으나 한 끼를 쉽게 해결 할 수 있어 좋았다. 일행 중 유일한 이십 대 크리스틴이 지난밤 숙소 탈출은 자신의 공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젊은 혈기의 선동으로 상쾌한 아침을 맞은 우리는 출정을 위해 배낭을 꾸렸다. 

 

 

 


 폭설로 인해 '나폴레옹 루트'가 폐쇄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피레네 산맥 최고봉인 '콜 데 레페데르(Colde Lepoeder)는 순례길 중 가장 험난하면서도 아름답기로 정평 난 곳이다. 하필 오늘 폭설이라니, 기대한 만큼 아쉬움도 컸지만 자연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한 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숙소 주인이 약간 우회하는 발카를로스( Valcarlos)로 데려다 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은 론세스바예스를 거쳐 에스파냐까지 약 27km를 걸을 예정이다. 피레네 산맥 최고봉을 약간 우회하기는 하나 해발 1000m의 산을 넘어 프랑스 국경을 통과해야 하니 제법 묵직한 하루가 될 것 같다.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산 정상은 폭설 경보라더니 아랫동네엔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악산을 오르내릴 생각을 하니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만큼이나 마음도 어두워졌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초보 순례자에게 자연이 주는 첫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나는 부지런히 판초와 각반을 착용하며 일행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듯 강단 있게 빗길을 밀고 나가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남의 집 처마 밑을 서성이며 선뜻 나서지 못하는 약한 그룹도 있었다. '그래 이거야.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위해선 무조건 전자 쪽 이어야 해.' 움츠러드는 어깨를 곧추세우며 산기슭으로 접어 들었다. 


 이제 막 웅지를 틀기 시작하는 봄 산은 잔설에 묻힌 새싹부터 꽃망울을 터트린 야생화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새 생명을 키우는 봄비 향연은 축복이지만 극기훈련 하듯 산길을 오르는 우리에겐 보통 난제가 아니었다. 우중 산행에서 생기기 쉬운 위험에 대처하느라 체력은 급격히 소진되고 십여 킬로 남짓한 배낭의 무게는 갈수록 어깨를 짓눌러왔다. 그럴 때마다 편한 길 마다하고 어려운 길을 택한 게 아주 잠깐씩 후회되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가능한 한 천천히 그리고 정직하게 걷고 싶은 소망이 있는 한 어떤 난간도 극복하게 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소나기, 진눈깨비가 번갈아 내리는 너도밤나무 숲에서 잠깐씩 휴식하며 묵묵히 산을 오르고 있을 즈음 누군가 뒤에서 인사를 건네왔다. 돌아보니 빨간 우의를 입은 백인 남성이 반갑게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라 여간 반갑지 않았다. 빗속에서 통성명을 하고 서로 격려하며 또 길을 재촉했다. 


부엔 까미노, '당신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또는 '행운이 함께 하기를' 하고 나눈 인사는 가장 어려운 순간 큰 힘이 되었다.


 정오가 훨씬 지난 무렵, 론세스 바예스에 도착했다. 성당이 곧 마을이라 할 만큼 큰 규모의 성당들과 부속 건물들이 부락을 이루고 있는 곳, 아름다운 피레네 산맥이 감싸고 있는 광경은 그 동안의 고생을 희석 시키기에 충분했다. 저녁엔 800년 된 유서 깊은 수도원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올려진다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웠다. 

 

 

 


수도원 옆 '카사 사비나' 바에서 커피와 스낵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리곤 장작불이 훨훨 타는 난로 앞에 앉아 짧지만 찐한 휴식을 취했다.


 숙소 예정지 에스파냐 가는 길은 꽃길 이었다. 비 개인 오후 파란 하늘이 열리며 오랜만에 햇볕도 비춰서 젖은 옷을 말려가며 가볍게 걸었다. 방향 표식이 안 보여 애매했던 구간에선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 오랫동안 길동무 해주었고, 동네 주민이 넌지시 놓고 간 사과를 깨물며 이방인에 대한 정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꽃길도 간간이 함정이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곳곳에서 개천 물이 불어나 건너느라 애를 썼고, 일행 중 토마스는 물에 빠져 고생을 했다. 스페인 나바라 자치주를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국경을 통과 한 것처럼, 우리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순례의 물결에 스며든 긴 하루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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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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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4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2)

 

2018년 4월10일(1일차)

 

안개 속에 갇힌 피레네산맥


 이른 아침, '프랑스 길'의 출발지인 '생장 피드 포르' 행 첫 기차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고적한 중세도시 바욘에서 한나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을 고르지 못한 일기로 인해 앞당기게 되었다. 


잔뜩 흐린 날씨지만 밤사이 내리던 비가 소강 상태를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니브( Nive)강을 따라 유려하게 펼쳐진 시가지 전경을 아쉬운 대로 마음에 담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가까스로 들어선 역사 안은 정적만 감돌 뿐 첫 기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음 열차 시간을 헤아리고 있으니 한 역무원이 바로 옆 버스터미널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순례길을 위한 베이스 캠프답게 기차와 버스가 연계되어 운행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그만 시골역에서 한 량짜리 기차를 타고 낭만적인 여행을 하려던 꿈을 접은 채 대기 중인 시외버스에 올랐다. 순례객으로 보이는 칠팔 명의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서로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 다가오는 어떤 연대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봄빛이 만연한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시골풍경을 감상하며 두 시간여 달린 끝에 오전 열 시경 '생장 피드 포르' 역 광장에 도착했다. 준비기간 내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복잡한 마음이 서서히 안도감으로 바뀌어 갔다. 


서둘러 행장을 꾸려서 앞선 무리를 쫓아가며 방향을 잡아나갔다. 지도 찾기보다 더 신속한 길잡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여기며 돌아보니 띄엄띄엄 몇 사람이 우리의 꽁무니를 잇고 있었다. 


 순례자 사무실에는 여러 명의 봉사자들이 신입 순례자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우리도 인상 좋은 할머니 봉사자에게서 일일 고도표와 숙소(알베르게) 리스트 그리고 순례자 여권을 받아 첫 도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초행길의 가장 난감했던 부분을 일시에 해결하고 나니 열 일 한 것처럼 홀가분했다. 


순례자 상징 가리비 조개 껍데기를 배낭에 매달고 마을을 돌며 약간의 여유를 부렸다. 매년 수만 명의 순례객이 찾아 드는 고장답지 않게 차분하면서도 예스러움이 그대로 남아있어 정감이 갔다. 니베강이 도심을 흐르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고풍스런 건축물 그리고 좋은 취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느낌 또한 따스하리라.


동네 마켓에서 물과 과일, 스낵 류를, 빵집에서는 방금 나온 바게트를 사서 배낭에 장착했다. 앞으로 어떤 여건이 주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필요한 먹거리는 챙기는 게 우선인 듯 했다. 우리와 비슷한 행보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대부분 청 장년들이었지만 우리와 엇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여 위안이 되었다.


 정오 경 드디어 순례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하루 정도 머물며 심기일전 한다지만 우리의 앞선 마음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두 길 중 험난하기로 정평 난 '나폴레옹 루트'를 선택했다. 안개가 심하니 쉬운 길을 택하라는 봉사자의 권유가 머릿속으로 맴돌았으나 어차피 내친 걸음 한 번 세차게 부딪혀 보고 싶었다. 오늘의 숙소 예정지인 오리손(Orisson)을 목표로 8 km 정도 걸을 예정이다.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때론 조가비 문양을 따르며 상쾌하고 홀가분하게 마을 입구를 돌아 나왔다. 천 년 역사의 중후한 길은 금방 가파른 아스팔트 길로 바뀌어 초보 순례자의 숨을 헐떡이게 했다. 출발선에 함께 섰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습한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 우리 부부만 호젓이 올랐다. 


산비탈을 깎아 목초지를 형성한 거대한 구릉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자리한 아늑한 농가들과 양떼들이 전부인 목가적인 풍경에서 긴장감이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했다. 


 산 아래, 위에서 스멀거리던 안개가 순식간에 우리를 에워싼다. 안개 때문에 하산한다던 어느 부부처럼 발길을 돌려야 하나 하는 순간 바위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가 눈에 띄었다. 아무리 안개가 짙은들 길잡이 화살표만 따르면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미궁 속에서 허우적거릴 일은 없을 테니까. 


가까운 비탈길에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희미한 안개 속을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누군가 우리와 같은 길 위에 있다는 것 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얼마 후, 그 길 위에서 안개비를 맞으며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비로소 순례라는 의미가 서서히 폐부로 스며드는 듯 했다. 


 4시간 소요 끝에 오리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날씨 때문인지 반나절 거리의 숙소건만 본채는 이미 만원이고, 벼랑 아래의 별채 합숙소에 잠자리를 얻었다. 샤워를 마친 후 젖은 옷과 판초를 히트 가까운 곳에 널고 이층 침대에 누워 한시름 돌리려는데 갑자기 생소한 언어가 난무했다. 


하룻밤 방을 같이 쓸 러시아계 독일인들이었다. 겨우 영어로 통성명하고 빗물이 방바닥으로 흐르는 난국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결국 야밤에, 여섯 룸메이트들은 이웃의 새 숙소로 전출되어 지옥에서 천국으로 입성한 파티를 조촐하게 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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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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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1)

 

 꿈을 향한 발돋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하나?' 


은퇴 후의 달콤한 시기가 채 가시기 전 마음 한편에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거렸다. 삶이 힘에 부칠 때마다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해 청사진을 겹겹이 그렸건만 막상 때가 되니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은 안개 속 미궁이었다. 삶의 지표가 사라졌다는 것은 새로운 대체가 절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지체 없이 새로운 도전에 불씨를 지폈다. 은퇴 후 꼭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 1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 km 완주가 그것이었다. 이미 60대 중 후반에 들어선 우리에게 가능한 도전인지 모르지만 뜻하는 일엔 무조건 밀어 붙이는 우리 부부의 근성이 한몫 하여 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짜기에 앞서 다양한 정보 수집과 선 경험자들의 후일담이나 그에 관한 책을 탐독하며 막연한 동경에서 현실적인 접근으로 눈높이를 맞추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가톨릭 3대 성지 중 한 곳임은 물론 캐나다의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est coast trail), 미국의 존 무어 트레일(John Muir trail)과 더불어 세계 3대 하이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오랜 기간 주말 하이킹을 하며 가슴속에 간직해온 큰 꿈 하나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정보들을 스캔 해 나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는, 9세기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며, 유럽 각지의 순례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이후 성 야고보를 스페인 수호 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순례길 전 구간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됨은 물론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순례자'의 영향으로 세계에서 각광 받는 힐링 코스로 부각되어 해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는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대표적인 루트는, 가장 접근성이 좋은 프랑스 길, 대서양 해안선을 끼고 형성된 아름다운 북쪽 길, 포르투갈 남부에서 시작되는 은의 길 등 다양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목적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즈음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출발 시기와 동선 짜기 그리고 비행기표 예매와 필요한 숙소 예약 등 외형적인 부문을 하나씩 해결 해 가면서 효율적인 배낭 꾸리기와 체력 단련도 꾸준히 해 나갔다. 


우리의 여정은 토론토에서 아이슬란드를 경유하여 파리까지, 파리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바욘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1박 한 다음 기차로 '프랑스 길'의 출발지인 '생장 피드 포르( St. Jean Pied de Port)'로 입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2018년 4월 9일
쉽지 않았던 초행길

 


 아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토론토 피어선 국제공항 청사에 들어섰다. 언뜻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에서 묵직한 배낭에 두툼한 등산화를 착용한 여전사의 포스가 물씬 풍겼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위축된 내면과 달리 과대 포장된 외형이 멋쩍어 얼른 시선을 옮기며 걸음을 재촉했다.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대장정의 시발점에서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할 수 있다'는 체면을 걸어가며 경유지인 아이슬랜드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첫 관문에 안착하고 나니 그 동안 준비하느라 지친 심신과는 달리 머릿속은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짚어보느라 분주했다. 하룻밤 사이 캐나다, 아이슬란드, 프랑스 세 나라를 거치며 시차와 일정을 소화하려면 충분히 자두어야 할 야간 비행이건만 생각의 실타래는 끝없이 풀려 나왔다. 


'여보, 오로라가 떴어!' 


비행기 탑승 후부터 내내 쪽 창에 붙어있던 남편이 설핏 선잠에 든 나를 흔들었다. 나는 꿈결인 듯 혼돈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다가 '오로라'라는 강한 여운에 눈을 비볐다. 이미 소등된 지 오래인 기내 안은 정적에 싸였는데 깜깜한 밤하늘을 혼자 유영하던 남편이 행운을 잡은 것이었다. 


그이의 훈수 따라 암흑의 밤하늘을 종횡무진 헤매던 나의 시선에 환상적인 오로라가 너울너울 춤추는 광경이 저 아래 어디쯤에서 포착되었다. '춤추는 여신의 드레스 자락' 이라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을 만큼 고고하면서도 황홀한 춤사위를 펼치는 광경은 선경(仙境)의 어디쯤이 아닐까 착각하게 했다. 


연 초록 빛으로 때론 핑크 빛으로 쉼 없이 춤을 추는 오로라를 비행 중에 만난다는 것은 꿈에서도 상상 못한 일이었다. 나는 한동안 이를 음미하며 이번 여정에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 함께하기를 염원했다. 


 예정대로 프랑스 남부 도시 바욘에서 첫 밤을 맞았다.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예약한 숙소는 하룻밤 지내기에 큰 불편이 없었으나 도착 과정이 만만하지 않았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는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옆 청사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행히 삼엄한 경비와 긴장된 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지만 연이은 국내선 연착으로 예정보다 늦은 시간 바욘에 도착했다. 


비 내리는 깜깜한 시골 광장에서의 고립감, 가까스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숙소를 찾았으나 기다리다 지친 집주인은 대문을 걸어 잠근 후였다. 하나가 어긋나자 연쇄적으로 경로를 이탈하여 낭패를 보았다. 앞으로의 여정에 순항을 위한 액땜이라 여기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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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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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5)

 

 ‘미세스 Y 가 쓰러졌다’, 지름길 팀 C 부부의 일성에 잠깐 휴식에 들었던 일행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전날의 무리함에 수면 부족까지 겹친 상태에서 작열한 태양 속을 장시간 걸었으니 아무리 장사라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을 터였다. 


 순간 일행 중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곡물을 빈병에 받아 한 배낭씩 메고 급히 내려가고 일부는 공원 레인저(ranger)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인디언 가든’으로 향했다. 첩첩이 협곡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휴대폰은 무용지물 이었고 오르내리는 하이커도 없어 도움을 청하기도 난감했다. 한 구비 돌때마다 그토록 수려했던 경관이 변고를 당하고 나니 고립무원과 다를 바 없어 당황되기도 했다.


 C 부부와 나는 중간 지점에서 기다리며 추이를 관망하기로 했다. 몇 뼘 안 되는 나무그늘과 얕은 계곡물에서도 그토록 행복했던 순간은 눈 깜빡할 사이 사라지고 불안감과 초조함에 한기까지 엄습해 왔다. 그리곤 트레일 입구에 붙어있던 경고문들이 애타는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랜드캐년 트레킹 중 일사병으로 쓰러져 구조되는 사람이 한 해 평균 250명이라는 통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어느 여성 마라토너가 트레킹 중 변을 당했다는 비보 등 하루 만에 콜로라도 강까지 다녀오는 하이커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안내문들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일시적인 탈수현상으로 약간의 휴식과 수분만 보충하면 다시 재개하리라 기대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영상들은 나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게 했다. 힘들지만 일행과 함께 내려가지 못한 점이 후회되었고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어 더욱 답답했다. 


 나는 한 발 또 한 발 혼신을 다하여 올라온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갔다. 등산화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부은 발은 물론 발목과 발가락 통증이 심했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무사함에 귀 기울이며 모퉁이를 돌다보니 멀리 일행들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였다. 거리상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파악은 안 되었으나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어 한동안 지켜보다 돌아서길 수없이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아득한 골짜기에서 일행 중 한 명이 뛰어오고 있음이 시야에 들어왔다. 때론 개미처럼 가끔은 거인의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은 뜻밖에 내 남편이었다. 강한 햇볕과 탈수로 인해 잠깐 실신했던 J 는 물세례와 응급조치로 회복 중이라는 소식과 함께 공원 어딘가에서 돌고 있을 레인저를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왔다고 했다.


 우리에게 낭보를 전한 남편은 그길로 ‘인디언 가든’을 향해 다시 달렸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비록 그이와 보조를 맞출 순 없었지만 큰 변고가 없음에 감사하며 혼자 을씨년스런 숲을 헤쳐 갔다. 


 온몸에 수돗물을 끼얹으며 우리의 요청에 응했던 레인저는 얼마 후 J 를 포함한 우리 일행을 대동하고 ‘인디언 가든’으로 들어섰다. 우리의 우려가 기우였다는 듯 생각보다 가뿐해 보이는 J 를 보니 온몸의 긴장이 일시에 풀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J 가 트레킹 도중 쓰러진 원인은 짐작대로 수면 부족, 피로 누적, 체온 상승, 오브페이스 그리고 심한 공복 등 이었다. 체면 불구하고 계곡물에 뛰어들어 열을 식혔던 점과 설익은 밥을 힘겹게 삼켰던 그 순간들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할 원동력이 된 셈이었다. 자연 속에 들면 모든 것 내려놓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 같았다. 


 응급조치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일사병으로 이어질 뻔한 위기를 모두 합심하여 넘기고 나니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아득하게 다가왔다. 예정된 시간 안에 ‘사우스 림’ 도착은 이미 멀어져갔고 어둠 속을 더듬어 올라야 하는 위험한 코스만이 우리 앞에 태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충분한 휴식 후에 트레킹을 재개하겠다는 지름길 팀을 남겨놓고 또 다시 장도에 올랐다. 석양에 붉게 물든 협곡은 잠깐 장관을 이루더니 이내 어두운 골짜기로 변해버렸다.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행들의 발걸음이 하나같이 휘청거렸다.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보충할 시간도 없이 다시 길 위에 선 사람들, 졸음과 허기짐 그리고 이어지는 낭떠러지를 간신히 피해가며 무려 열여덟 시간 만인, 밤 11시에 출발지 사우스 림에 도착했다. 


 그리곤 칠흑의 그랜드캐년을 내려다보며 다시 꼭 오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아름답기만 하다면 별 매력을 못 느꼈을 협곡이련만 찐한 고통과 함께 자신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게 한 곳이기에 아쉬움이 배가 되었다. 


생과 사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날, 살아오면서 가장 길었던 여정이었다. 멀리 네 개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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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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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4)

 

 강변 휴게실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다시 트레일에 오른지 한 시간 여 됐다. 잠깐 빤짝했던 일행들의 걸음걸이가 지쳐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려 온 만큼 오르기만 해야 하는 난코스에다 정오의 뜨거운 햇살까지 폐부를 파고들어 속도는커녕 가도 가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 했다. 그때마다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보면 한 발 두 발 걸어온 길이 까마득히 내려다 보였다. 신통치 않은 한걸음의 실체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휘청거리는 다리에 더욱 힘을 가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다. 그랜드캐년 트레킹은 단 반나절 만에 수십억 년 세월을 거슬러 내려갔다가 다시 그 세월을 밟아오는 과정이란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지루했던 풍경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암석의 색깔에 따라, 지층의 두께에 따라 수십만 년 서로 다지고 엉겨붙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까이와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편적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까.

 

 

 


 세월이라는 길고 긴 캔버스 위에 간간이 스쳐가는 바람, 눈과 비 등 자연의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역작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매년 그랜드캐년을 찾는 많은 여행자 중 열에 아홉 명은 몇 군데 정해진 지점에서 그 엄청난 풍광을 잠깐 감상만하고 돌아선다고 한다.


 방문자 대다수가 엄두조차 못내는 일을 우리가 해 내고 있다는 자긍심에 울컥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솟구쳤다. 가장 고생 많은 나의 두 다리에게, 건강함에, 함께 한 남편과 일행들에게.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은 ‘카이밥 트레일’에 비해 근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지형이 완만하고 물 흐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 중반부 트레킹에 힘이 되었다. 남은 거리는 십 이 삼 킬로미터 남짓, ‘인디언 가든’에서 적당히 휴식을 취한 다음 열심히 오르면 예정된 시간 안에 충분히 캐년 림에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 해도 기울고 계곡의 기온도 서서히 내려가는 시점이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후반부 트레킹이 기대되었다. 단지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하는 지름길 팀의 두 여인이 ‘인디언 가든’까지 잘 버틸 수 있을 지 염려되어 보조를 맞추어 걸었다. 어려운 여건에서 자신만 바라보며 투정 부렸던 약한 마음이 함께 하니 안심도 되고 서로 격려도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체력은 내 마음과 달리 점점 하향 길에 드는 듯 했다. 수시 쉼은 물론 물과 간식을 권하며 독려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단지 몇 걸음 옮기고선 ‘인디언 가든’이 얼마나 남았냐며 묻고 또 물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초행길이어서 뾰족한 수가 있을 턱이 없었다. 더구나 거리 표시 사인도 전무했으니 남은 거리를 유추해 내기도 난감한 실정이었다. 


 그때 문득 장거리 하이킹을 몇 차례 함께했던 K 대장이 생각났다. 산길을 오르느라 지친 대원들이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이 ‘5분만 더 가면 되요. 저기 저 앞이에요.’ 이었다. 그 5분이 때론 한 시간도 되고 두 시간도 되었지만 듣는 순간은 힘이 불끈 솟아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살려 ‘5분 만 더, 10분 만 더’ 하며 무책임한 회유로 그들의 한계를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일행은 조그만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모처럼 달콤한 휴식에 들었다. 뒤쳐진 두 커플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페이스로 걸었더니 조금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일부는 편편한 돌에 누워 쪽잠을 청하고 또 일부는 무리한 여정에서 온 후유증을 달래며 그들을 기다렸다. 그토록 험난한 코스를 십 여 시간 강행 했음에도 부상자가 없어 다행이었고, 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인디언 가든’이 가까웠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그들이 나타나지 않아 서서히 걱정이 되었다. 때맞춰 트레일 입구에 붙어있던 경고문이 떠올랐다. 


 “Do not attempt to hike from the canyon rim to the river and back in one day" 


 당일에 강까지 다녀오는 것을 시도하지 말라는 빨간 사인이 아른거려 더 가슴을 조려야했다. 


 위급한 상황에선 직감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내내 가시지 않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사람이 쓰러졌다는 전갈이 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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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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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3)

 

 

 만남의 장소 ‘인디언 가든’을 향해 일명 실버 브릿지(Bright Angel Suspension Bridge)에 올랐다. 북쪽 캐년에서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는 다리, 힘든 고비마다 머릿속으로 청사진을 그리며 마음을 다독였던 것들을 하나도 이행하지 못한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험한 하이킹 끝에 약간의 여유를 부리며 강바닥에서 누리고 싶었던 것들은 시간이 조금만 허락되면 가능한 일들이었다. 숙박 예약조차 어렵다는 ‘팬텀 렌치’에서의 차 한 잔 그리고 ‘브라이트 엔젤 캠핑장’을 돌아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을 뒤로 하고 다시 강행군에 나서니 발걸음이 쉽게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 나의 마음 이해한다는 듯 강물은 잔잔히 다음을 기약하라 소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콜로라도 강변의 유월은 여름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모래 벌을 달구는 강한 햇살이며 메마른 대지에서 뿜어내는 상상을 초월한 더운 열기는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는 듯 했다. 몇 발자국만 옮겨도 온몸에서 땀 비가 내리고 입술은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생물, 무생물 가릴 것 없이 습기란 습기는 무조건 거둬가는 열기 앞에 인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원측이 제시하는 하이킹 금기 시간의 필요성이 피부로 느껴졌다. 수시 물과 소금 알갱이로 탈진을 방비하며 무겁게 한걸음 또 한걸음 옮겨 놓았다.

 

 

 


 푹푹 빠져드는 부드러운 모랫길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지형 또한 만만하지 않아 2 km 남짓한 거리를 두 시간 넘게 걸려 강변 휴게소(River Resthouse) 언저리에 접어들었다. 계곡물이 흐르고 조그만 간이 휴게실이 있다는 정보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걸음을 재촉했다. ‘계곡물을 만나면 무조건 뛰어들라.’는 앞선 경험자의 조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온몸의 열기를 빨리 식히려면 그 방법이 최고일 텐데 선뜻 따를 수 있을지 자신감이 오락가락 했다. 


 강변 트레일을 벗어나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로 들어섰다. 일정의 딱 절반 정도인 15 km 를 계속 오르기만 해야 하는 구간이었다. 부드러운 모랫길에서 딱딱한 지면으로 바뀌니 걸음은 한결 편안해졌지만 갈증과 피곤함에 쉬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전방은 햇볕을 가릴만한 나무 그늘은 보이지 않았고 멀찍이 조그만 움막과 실개울이 눈에 들어왔다. 

 

 

 


 천신만고 끝에 간이 휴게소에 들어섰다. 통나무를 잘라 얼기설기 붙여놓은 시설이었지만 여느 일류 호텔 부럽지 않을 휴식처로 보였다. 최적의 장소에 최소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휴식처가 얼마나 많은 하이커들을 구제해 주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휴게소엔 전혀 예상 못한 ‘지름길 팀’이 먼저 와서 선점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섰으려니 여겼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니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사람씩 눈빛을 교환하며 기쁘게 조우했다. 서로 떨어져서 염려하는 것보다 격려하며 함께 걷게 될 순탄한 남은 길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분위기는 석연치 않았다. 일행 중 두 사람이 컨디션 난조로 고생 중이라고 했다. 걱정했던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와 적잖이 당황했으나 우리 모두 근소한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처지에 놓였기에 매사 주의가 요망되었다. 


 조그만 계곡물에 겨우 등산화만 벗고 뛰어 들었다. 누구의 조언을 따른다기보다 우선 그렇게 해야 살 것 같았다. 체면 불구하고 물속에서 한바탕 뒹굴고 나니 그제야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다.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고생의 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얼마 안 가서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다시 트레일에 올랐다. 인적이라곤 우리 일행뿐인 텅빈 계곡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물속에서 나온 지 십여 분만에 옷은 다시 뽀송뽀송 해졌고 이내 땀범벅이 되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열기를 식히느라 고이 모셔온 생수병을 정수리에 부어가며 ‘인디언 가든’으로 진군했다.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지, 경험도 거리 표시도 전무한 상태에서 떠오르는 것이라곤 단지 수치로 나타난 3km 정도가 고작이었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은 절벽의 능선을 깎아 만든 ‘카이밥 트레일과 달리 계곡의 허리를 잘라서 조성된 길이라 굴곡이 완만하여 걷기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경치도 웅장한 계곡에 간간이 작은 숲과 물이 흘러서 내려올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원만하게 오르는 일행들을 보며 어둡기 전에 출발지점인 사우스 림(South Rim) 도착이 무난할 것 같다고 낙관할 즈음, 두 커플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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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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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2)

 

 협곡에서 뿜어내는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한 시간 여 내려왔을 즈음 ‘시다 릿지’(Cedar Ridge)라는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트레킹 시작 후 처음 맞는 휴식장소라 여간 반갑지 않았다. 휴식은 물론 에너지 보충도 필요했지만 잠깐이나마 가시거리의 협곡을 편안하게 음미하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하던 참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한 시다 릿지는 트레킹을 하는 동안 내내 보아왔던 회색빛 바위 숲에서 갑자기 부드럽고 메마른 황토 분지로 바뀌어 있어 어리둥절했다. 영화 마션(Martian)의 주 무대인 아시달리아(Acidalia) 평원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불현듯 우주의 한 공간이 연상될 만큼 몽롱한 느낌을 주는 짙은 오렌지색 분지는 수면부족에서 온 혼미함까지 겹쳐서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일게 했다. 


 아침햇살이 계곡으로 서서히 번져가는 광경을 음미하며 잠깐 동안 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 위에 섰다. 나무 그늘은커녕 식수조차 없는 악조건의 트레일에서 서늘할 때 한 걸음이라도 더 걷는 게 나중의 고생을 줄이는 길이었다. 


 30km, 하루 동안 걸어야 할 거리였다. 그랜드캐년 트레일 중 양대 산맥인 ‘카이밥 트레일’에서 하강하여 콜로라도 강을 찍고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로 올라오는 U자 코스에 열두 명 하이커들이 감히 겁도 없이 도전장을 냈다. 


 지형의 난이도, 유월의 땡볕, 그리고 공원측이 제시하는 일일 하이킹 한계치의 세 배에 달하는 거리 등 여러가지 난제들이 우리 앞에 놓였지만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한 구비 돌때마다 새로운 힘이 불끈 솟아올라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첫 휴식 장소에서 제대로 에너지를 충전한 일행은 거침없이 하강했다. 시시때때 눈앞에 펼쳐지는 신비로운 풍경에 감탄하고 비탈길 능선을 타며 스릴을 만끽하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한동안 기분 좋은 하이킹을 하다 근거리의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움직임이라곤 전혀 없었던 계곡 사이로 콜로라도 강물이 구비치고 있었다. 

 

 

 


 거의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과 그토록 가 닿고 싶었던 곳이 불과 몇 백 미터 전방으로 다가오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뭔가 잘못됐음이 감지되어 흩어진 일행들을 살펴보니 이미 지름길로 들었어야 할 다섯 명의 멤버까지 열두 명 전원이 같은 선상에서 걷고 있었다. 사진 촬영과 함께 후미를 담당했던 우리부부는 각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리라 믿으며 내 길에만 심취해서 걸었던 것이 문제였다.


 지도를 꺼내어 지나친 지름길을 추적해 보았다. 첫 휴식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동그라미가 쳐져있었다. Tonto trail ->, 그제야 놓친 지름길 초입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황급히 내려오다 Tonto를 Toronto로 잘못 읽어 주춤했던 곳이었다. 호기심에 길이 꺾이는 곳까지 쳐다보다가 돌아섰는데 누누이 기억했던 그 지명임을 왜 인식하지 못했을까. 눈앞에서 길을 놓친 내 자신 그리고 지름길 리드로 지명된 맴버 등 첫 휴식 장소에서의 감흥에서 벗어나지 않아 생긴 사고였다. 먼 길 앞두고 평상심 회복이 관건이었다.


 일행은 한동안 진퇴양란에 빠졌다. 다시 지름길로 되돌아가는 것도, 그렇다고 함께 계속 강행군을 하는 것도 체력이 약한 그들에겐 무리였다. 지나온 길은 일정의 삼분의 일에 불과할 뿐 남은 분량과 난이도가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강변 모랫길을 수 킬로 걸어야 함은 물론 내려 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 과제가 산재해 있었다.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조그만 소로를 따라 만남의 장소인 ‘인디언 가든’으로 향했다. 동서로 흐르는 강은 좋은 길잡이가 될 터였지만 이미 오브 페이스를 한 그들의 체력이 얼마나 버텨줄지 걱정되었다.


 드디어 그랜드캐년을 남북으로 잇는 서스펜션 브릿지(Suspension bridge)를 건넜다. 마지막 절벽길에서 아찔한 순간이 있었지만 푸른 강물을 내려다보며 용케 참은 내 자신이 대견했다. 무려 4시간에 걸친 하강에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고 발가락에서 진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그토록 선망했던 콜로라도 강변에 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설익은 밥에 밑반찬 몇 가지, 전날 산책길 소동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결과였다. 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우리는 큰 소망 하나 이룬 성취감으로 그 시간도 행복할 수 있었다.


 재출발에 앞서 부푼 발을 강물에 담그고 잠깐 휴식 시간을 가졌다. 매끈한 돌에 허리를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으니 들리는 것이라곤 물과 바람 소리뿐, 고요함의 극치에서 마음은 이미 지상 낙원을 거닐고 있었다. 


 ‘출발 5분 전’ 외침과 함께 달콤한 일탈에서 돌아와 다시 행장을 꾸렸다. 애초의 계획은 그곳에서 정오의 햇볕을 피할 예정이었으나 지름길 팀의 안위가 걱정되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짧게 누려던 그 여유로움 뒤에 큰 일이 있으리라곤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했을까. 돌아보면 하루 중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은 그곳 콜로라도 강변에서의 십여 분이 고작이었다.


 긴 고행 끝에 온 소중한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 부러운 마음으로 돌아보며 강변 모래톱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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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oonsook
임순숙
60465
10491
2017-08-04
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1)

 

 칠흑의 어둠을 가르며 두 대의 밴이 조심스럽게 그랜드캐년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 세 시, 깨어있는 것이라곤 차량의 전조등이 긋는 불빛과 그 안에서 흔들리며 밖을 주시하는 열두 명의 대원들뿐이었다. 무성한 잡초가 밤바람에 출렁이는 도로를 속도는 느리지만 제법 방향을 잡아 나아감은 다소 과하게 현장 답사를 한 덕이리라. 

 

 

 


 완전무장한 일행은 차를 파킹하고 트레일 헤드까지 우리를 인도할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기온 차가 심한 사막의 새벽공기는 두어 시간 설 잠에 혼미해진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인적이라곤 없는 깜깜한 정류장에서 추위에 떨며 오전 4시 첫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 인생에서 큰 획을 긋게 될 그랜드캐년 트레킹,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작은 사건은 결코 쉽지 않을 이번 트레킹의 전초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를 렌트한 우리는 오후 4시경 그랜드캐년 공원 인근의 모텔에 도착했다. 방 배정과 짐 정리를 대충 마친 후, 다음날 신 새벽에 시작할 트레킹의 출발지점 사전 답사 겸 해넘이 그랜드캐년 산책길에 나섰다. 협곡의 무채색 바위가 서서히 변화를 일으키는 늦은 오후, 수년 전 다녀갔음에도 그 감흥이 새로워 관전 포인트를 열심히 쫒아 다녔다. 


 불과 몇 시간 후면 협곡 사이사이를 걸어 콜로라도 강에 닿으리란 꿈을 꾸면서 황혼에 물드는 캐년을 돌다가 일행들과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다른 멤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뭔가 잘못 됐음을 인식하고 넓은 공원 안을 셔틀 버스 혹은 뜀박질을 하며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한 부부의 실수로 두어 시간 만에 재회한 일행은 체력이 이미 고갈 상태에 있었다. 한인 외에는 감히 꿈도 못 꾼다는, 당일에 협곡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대장정을 위해 체력 관리며 먹을거리들을 여유 있게 준비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예정된 시간이 훨씬 지나도 셔틀버스는 물론 다른 하이커들도 나타날 기미가 없어 그제야 버스운행 시간표를 비쳐보았다. 비수기인 6월 말까지 오전 다섯 시부터 첫 버스가 운행된단다. 6월 29일, 그러니까 마지막 늦잠에 빠진 셔틀버스를 애면글면 기다린 셈이었다. 입수한 정보만 믿고 현지 실정을 등한시한 게 착오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춥고 지루했지만 사위는 금방 훤해져서 수면 부족으로 부석해진 일행들의 얼굴이 하나씩 육안으로 들어왔다. 벤치에 따닥따닥 붙어 앉은 일행은 가운데 펼쳐진 지도를 보며 서로 머리를 맞대었다. 


 장거리 원정에선 늘 리더의 손에 이끌려 다녔던 멤버들이 의기투합하여 미 서부 협곡 트레킹에 도전장을 낸지 6개월 만에 첫 관문에 들어서니 감개무량함과 함께 약간의 걱정도 스멀거렸다. K 대장이 꼼꼼하게 짜준 일정표에다 선 경험한 사람들의 실패담을 보완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을 터이지만 변화무쌍한 자연과 그 보다 더 심오한 인간관계에서 어떤 돌발 변수가 생길지 조심스러웠다. 


 남편이 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그날의 일정을 표기해 나갔다. South Kaibab Trail부터 콜로라도 강까지 당일 트레킹 할 구간과 완주에 자신 없는 멤버들을 위한 지름길을 따로 명시하고 선두와 후미를 책임질 회원도 정했다. 


 그리고 공원 측이 강조하는 페이스 조절, 수시 수분 보충, 12~15시 휴식 필수, 계곡물 만나면 무조건 들어가 열을 식히라는 점 등 사막지대 트레킹 안전수칙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시작은 모두 함께, 중간엔 따로 따로 그리고 오후 4시 ‘인디언 가든’에서 합류하기로 하며 각자 성공 의지를 불태웠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방에서 산악인들이 모여들었다. 썰렁했던 정류장이 이들의 출현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젊은 층인 이들은 벤치에 앉은 우리를 가운데 두고 팀끼리 모여서서 리드의 훈시에 귀를 기울였다. 신 새벽 젊은이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루 동안 같은 코스에서 비지땀 흘려야 할 동지들,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젊은이들이 전문 산악인의 인솔 하에 있다는 점이 은근히 부러웠다. 하이킹 경력으로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우리들이지만 초행길이라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트레일 헤드에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아직 늦잠에 빠져있는 회색빛 장엄한 계곡은 한발 두발 내딛을 때마다 수십억 년 시간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게 하는 느낌을 주었다. 한 구비 돌아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면 방금 떠나온 그곳이 딴 세상처럼 아득해 보였다.


 흰 꽃송이를 긴 꽃대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단 용설란, 진분홍 꽃을 피운 늙은 선인장 군락, 꼬불꼬불 소로 따라 이어지는 노새들의 행렬은 협곡에 신선함을 불어 넣는 주인공들이었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트레일을 서서히 내려오다 보니 멀리 첫 번째 휴식 장소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일행은 잰걸음으로 그곳을 향했다. 하지만 우리를 유혹하던 아름다운 그곳이 트레킹을 힘들게 할 시발점임을 그 누가 알았을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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