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김인숙 수필

Kiminsook
33895084-2A4B-4F07-A532-92558486F5CA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1
,
전체: 3,335
문협회원
[email protected]
  • 게시판
메뉴 열기
Kiminsook
김인숙
62129
10964
2017-11-17
House(집)와 Home(가정)

 

 주변에서 일어나는 주택시장의 변동을 보면 이날까지 거처를 걱정하지 않고 살아온 게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마련한 따뜻한 집에서 형제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며 살았고, 어른이 돼서도 오랜 세월 우리 가족을 위해 집이 마련되어 있었던 축복의 삶을 살았다.


30여 년 전 남편이 목회자로 안수를 받고 첫 번 목회지로, 절경으로 이름난 캐나다 쟈스퍼 국립공원의 교회로 가게 되었다. 교회 건물 바로 옆에 목사관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록키 산속 마을에 어울리게 향나무 판으로 단장된 단층집은, 나무가 가득한 뜰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겨울에는 엘크라는 사슴들이 열 댓 마리씩 담장을 뛰어 넘어 뒤뜰에서 밤을 지새고 가는 집이었다. 


새로 오는 목회자 가족을 위해 실내도 말끔히 단장을 해놓았다. 토론토에서부터 트럭에 싣고 간 가구들은 학생 때부터 쓰던 것으로 집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고, 잘 가꾸어 놓은 벽이나 마루에 상처가 날까 봐 못 하나 박는데도 신경이 쓰였다. 새 고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 맡은 직분을 익히느라 늘 짐을 들고 나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첫 아기를 임신하여 부른 배를 안고 뒤뚱거리며 쟈스퍼에 도착했는데, 시간은 흘러 산달이 되고 아기가 태어났다. 온 마을의 여인들이 새 아기와 엄마에게 관심을 가졌다. 음식을 만들어 오는 사람도 있고, 손바닥만한 아기 옷을 만들어오는 이웃들, 아기가 많이 운다고 들었다며 가정요법의 약이나 아기를 편히 해줄 물건들을 들고 교인들과 주민들은 늘 집을 찾아주었다.


아기를 가운데 놓고 둘러 앉은 여인들의 거듭된 만남이 시작되면서 집에는 이웃 간의 이야기도 쌓이고, 부엌에 차를 마신 컵들도 쌓였다. 비로서 사택은 우리들의 홈이 되어갔다. 


두 번째 목회지는 오대호의 하나인 죠지안베이 호숫가에 접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 곳에도 역시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택이 있었다. 몇 명의 아저씨들이 사택관리위원이 되어 집을 잘 가꾸어 놓았다. 안팎으로 다 수리를 해놓았지만 집 안의 페인트는 우리가 색깔을 고르면 금세 칠해 주겠다고 했다. 


쟈스퍼에서 태어난 아들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아이는 종이만 보면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놀다가도 혼자 돌아앉아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빈 방을 본 아이는 집 안을 페인트 칠하기 전에 벽에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아저씨들은 아이에게 언제든지 후에 필요한 때 새 페인트를 칠하면 되니까, 마음대로 그리라고 허락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하고픈 일들을 편안히 하면서 하루 속히 집이 홈이 되어가기를 바라는 배려였다. 곧 벽은 닌자거북이(ninja turtle)와 공룡들의 모험이 가득한 그림들로 채워졌다. 


12년 후 우리는 세 번째 목회지인 토론토 시내에 도착했다. 교회에는 화요일 저녁마다 거리를 헤매며 사는 사람들을 위한 급식 프로그램이 있다. 교인들 중에도 아침에 집이 아니고 노숙자 보호소(shelter)에서 잠을 자고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집이 없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이 추운 나라에서 어떻게 밤에 몸 누일 곳 한 곳 없이 살게 되는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나는 왜 집이 없는 사람들을 houseless라 하지 않고 homeless라 하는지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내 선입견과 달리 집이 없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고등교육을 받고 한 때는 남과 같이 직장생활도 했던 사람들이다. 어느 순간 그들의 삶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흔들리면서 서서히 직장도 집도 잃어간다. 


당연한 마음으로 내가 받아왔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처음 맞는 가족을 자신들의 자식인 양 편안한 집을 내어주던 애정들이 긴 세월 내 집이 아닌 집에 살면서도 한번도 나는 집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평생의 노고가 집을 장만하고 잘 관리하는 일에 걸려있는 듯 애를 쓴다. 하지만 그렇게 애를 쓰는 힘은 오히려 우리의 경제적인 능력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