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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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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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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행복했던 아들과의 나들이

  

 아들이 아빠의 생일이라 마음으로 축하해 주기위해서 시애틀에서 온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 이야기를 말로는 표현을 안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오늘은 캐나다의 생일이 되는 날이라 나들이를 택한 곳이 토론토 동쪽에 위치한 동물원이었다. 


 중국과의 친교 차원에서 모셔온 두 마리의 판다를 보러 올여름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우리도 그 손님 중에 하나가 되어서 아들과 함께 방문하기로 하고 좋아하지 않는 운전이지만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에 자주 다녔던 곳이라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고, 별 문제없이 도착했지만 넓은 주차장은 이미 차 있었다. 눈부시게 내리쬐던 햇빛은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바람까지 산들 산들 불어주어서 걷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10년 전에 뉴욕 직장으로 인해 집을 떠난 아들이 엄마의 권유로 조금 긴 시간을 내서 방문을 했다. 결혼을 했더라면 방문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그런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디를 가고 싶을 때 누구의 제한도 받지 않고 훌훌 떠날 수 있으니 혼자 사는 이점이라 생각한다. 요즈음 젊은 세대는 결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우리 앞에 제일 큰 걱정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세상에 쉬운 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들의 일은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일이 끝나고 바깥을 보는 시간엔 해가 기울어져 있으니 뜨거운 햇살에 비타민 D를 만들고 살을 태우는 일이 참으로 어렵게 보인다. 


 부모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 시대에 쉽게 돈을 버는 일은 남을 속이고 사기를 치기 않으면 하나도 없는 듯하다. 평생을 전문직으로 해온 내 일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생과 사를 앞에 두고 뛰어야 했다. 긴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면 그래도 내 인생의 승리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아마도 그런 힘든 일 덕분에 내 육신과 정신은 힘든 세상을 견딜 수 있도록 단련 되었고, 이 나이에 무서운 것 없이 낫선 땅에서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정신력도 얻었다. 


 아들이 10년을 집을 떠나서 그 복잡한 뉴욕 땅에서 수없이 이사를 하면서 지냈다하니 가히 얼마나 힘든 적응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덕분에 세상살이에 이해 폭이 더욱더 넓어졌고, 부모를 대하는 심성도 옛날과 다르다. 옛 어른들이 하신말씀이 생각난다. 사람은 집을 떠나 봐야 그리운 줄 알고 부모에게 감사함도 알게 된다고 하였거늘 아들의 깨우침도 고생 끝에 얻은 대가이리라.


 같은 날 아들의 권유로 우리는 동물원을 떠나서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을 하러 갔다. 우리에게는 늘 가는 곳이라 별 호기심이 없지만 아들에게는 참으로 오랜만에 가는 나들이였다. 그곳에서 해가 떨어질 때 반사되어 일어나는 아름다운 무지개와 야경, 이른 아침에 안개와 함께 떨어지는 무서운 힘의 폭포의 물결을 가족이 함께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여느 때와 다르게 얼마나 소중한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그날의 추억으로 머문다. 이런 기회가 아마도 언제 다시올수 있을는지…


 딸도 함께 했더라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엄마의 생각이 조금은 가슴 한 모퉁이를 시려오게 했다. 점심은 아들이 원하는 한국식당에 가서 각자 원하는 메뉴를 시키고 그런 대로 허기를 채웠지만 식사가 끝나고 아들이 한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한국 식당은 음식은 맛있지만 서비스가 너무 나쁘고, 서양 식당은 음식은 맛이 별로라도 사람들의 서비스는 아주 좋아요” 


 그래도 이틀간의 아들과의 나들이. 고급 이탈리안 식당에서 폭포의 변화되는 모습 구경, 카지노에 온 사람들의 돈을 따고자 하는 얼굴들, 공원에서의 피크닉, 아들과 땀 흘리면서 한 계곡 산책은 올 여름의 행복한 추억으로 오래 간직하고 싶다. (201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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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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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마이클 잭슨의 삶과 죽음(King of Pops)

 

 2011년 5월에 두 스타가 같은 날 사망했다. 70년대에 미모로 찰리스 앤절스란 영화에서 인기를 끌었던, 특유의 헤어스타일로 젊은층들을 사로잡았던 페라 포셋, 그리고 문워커(moon walker)라는 특유한 춤과 팝의 음악세계를 만들어서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들을 사랑하던 모든 이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마이클의 죽음을 놓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 세상이 알지 못한 그의 사생활, 죽은 후의 그의 비참한 모습, 너무나 일찍이 스타로 탄생하면서 남이 만들어준 인생, 음악의 세계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40년이 넘는 무대 생활, 그는 인생을 채 깨닫기도 전에 그렇게 나이 50세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


 마이클을 알면 알수록 이 시대에 안겨준 춤과 음악의 완벽한 천재라 부르고 싶다. 그는 Moon Walker 란 춤으로 젊은이들에게 환상적으로 다가 왔고 나 역시 그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신비한 모습의 걸음걸이에 때론 매료되어 내 마음이 온통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캐나다에 온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음악, 춤을 통한 창조적인 모습들을 보았다. 우리세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금의 힙합 댄스와 팝음악이란 세계의 초석을 닦아놓은 인물이다. 마이클 잭슨은 많은 형제, 자매 속에서 자라면서 음악의 세계가 형제들과 함께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타고난 재질 때문에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져가는 삶을 살게 된다.


 어린 나이에 철없이 놀고 친구들과 보내야 할 그런 시간들은 모조리 빼앗겼고, 노래를 하고 무대에 서는 연습과 완벽한 춤, 특유한 몸짓과 훤칠한 키로 마이크를 어떻게 잡아 청중들의 가슴을 사로잡을지 하는 기교를 배우는 하루하루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해서 마이클은 아이로서 그 만이 갖는 음악 세계 속에 평생을 머물게 된다. 그 결과로 엄청난 금전적인 대가가 주어졌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고스란히 잃어버린 채 성장했다. 누구나 태어나서 거쳐야 할 어린 시절, 사랑 받아야 할 철부지 시절이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이 세계에서 엄청난 경쟁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가 차차 상승하므로 마이클은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않았고 대대적인 얼굴 성형에 들어갔다. 흑인의 특유한 콧날을 바꾸는 일은 수십 차례 시행되었다 한다. 그렇게 해서 백인의 모습처럼 되어가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은 입술, 턱, 눈썹 모두를 변형시키는데 엄청난 자금과 고통, 회복의 시간도 소요 되었으리라 믿어진다. 동시에 그의 머리스타일도 여자보다 더 긴 모습으로 등장했고, 점점 남자 아닌 여성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갔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열광했고, 그의 피부역시 서서히 백인보다 더 희게 변해갔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소수뿐이다.


 마이클을 관리하는 매니저는 유명세와 돈에 눈먼 자들이었고, 마이클이 공연만 성공적으로 잘 끝내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는 아무도 죽는 날까지 알지 못했다.


 명성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금전적인 풍요로움으로 자신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환상의 “네버랜드”를 미니 디즈니월드처럼 만들어서 어린 아이들을 초청하고 거기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허탈감을 채워보려고 그런 환상의 놀이터를 제작한 것은 아닐는지… 


 그러나 세상은 마이클이 생각한 것처럼,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 아니 마이클이 갖고자 했던 그 잃어버린 귀한 것들을 빼앗아 갖고, 성추행이란 엄청난 사건으로 몰고 갔다. 그 아이의 부모에게는 원하던 보상금이 지불되었고 마이클은 무대에서, 세상에서 서서히 몇 년을 사라져 갔다. 


 평생을 바쳐서 쌓아온 그의 세계, 그렇게 그는 무너졌고 은둔의 삶이 시작되지만 세상은 잔인하도록 그의 쉼을 두고 보지 못했다. 그가 세상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딴 사람이 되어서 해골처럼 뼈만 남아 우리 앞에 서있었다. 


 다시 재기하려는 그의 모습 속에는 견딜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이 함께 했다. 매 순간마다 고통을 이기려, 잠을 잘 수 있는 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는 주치의를 동반해야만 했고, 그에 따른 보수도 엄청났다. 히포클라테스 선서를 망각한 의사는 그에게 잠을 재우고 고통을 이기게 하는 일이 최선이라며 생명을 앗아가는 약도 두렵지 않게 사용했다. 마이클이 죽기 직전에 사용한 약들은 감히 상식이 있는 의사들은 쓸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이클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자기 주머니가 두툼해지는 것밖에 보이지 않아 약물 과용을 서슴지 않고 시행해 세기에 하나밖에 볼 수없는 팝음악의 왕을 저세상으로 일찍이 보내는데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결국 법은 그 의사에게 평생 동안 의술을 행하지 못하도록 세상 사람들로부터 멀리 격리시켰지만 2차 공판에서 5년으로 줄이고 지역사회 봉사로 끝냈다고 한다.


 우리는 마이클이란 한 인물로 인해 새로이 만들어진 21세기의 음악 세계와 그만이 가졌던 춤 ”문 워크”를 기리며 살아갈 것이다. 마이클이 남기고 간 음악을 젊은 세대를 통해서 보고 즐기면서 그 음악과 춤을 통해 마이클의 영혼이 살아서 내 곁에 스며온다. 


 마이클이 택한 유일한 음악세계는 그의 삶을 바꾸었다. 만약 그가 딴 길을 택했더라면 이 신비스런 춤과 팝 음악을 길이길이 선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디 고통에서 해방되어 편히 잠들기를! (2012,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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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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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태어남이 죄’라는 운명

 

 며칠 전 코메디언 저자 Trevor Noah가 쓴 ‘Born a Crime’이란 책을 서점에서 만났다. 제목이 너무 흥미로워서 단번에 읽어내려갔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태어남이 축복일 텐데 그것이 죄가 되는 곳이 한때 이 지구상에 있었다. 우리가 사는 반대편 쪽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흑인여성이 백인의 유전인자를 얻고파서 갖은 노력 끝에 그것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로 나라가 금지하는, 그 시대의 법을 어긴 혼혈 아이를 출생시키지만 그 생명체는 범죄의 결과이기에 밖을 볼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때의 법은 유럽 남성이 본토(아프리카)의 흑인여성과 불법 성관계(Illicit Carnal intercourse)를 하게 되면 법적으로 5년까지 감옥생활을 하게 되며 원주민 흑인여성이 백인남성과 관계를 한다든가, 유럽 백인 여성이 본토 흑인남성과 성관계를 했을 때는 4년까지 감옥에 가야하는 시절이었다. 


 저자 트레브 노아(Trevor Noah)의 엄마는 백인의 유전인자를 원했고, 그 태어나는 아이에 대해서 독일계 스위스인(Robert) 아버지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약속 하에 이루어진 성행위였기에 이 아이는 법적으로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의 성을 이어받게 된다.


 트레브는 태어나서 남아프리카가 독립이 되기까지 6년이란 기간 동안 밖을 나올 수가 없었다. 만약 외출 중에 혼혈 아이라는 게 경찰한테 알려지면 그 자리에서 잡혀가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원한 귀한 생명이었던가! 그녀에게는 그가 믿는 신앙과 아들 트레브가 삶의 전부였기에 모두를 다 바쳐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제일 먼저 아들에게 알려준 것이 그녀가 절대적으로 믿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다. 만델라가 27년이란 긴 세월동안 감옥에서 보낸 후 출옥하여 남아프리카 대통령이 되면서 흑인 인종차별을 철폐해 어둠의 세계에서 살던 모든 남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유를 찾게 되지만 오랜 세월 노예처럼 저임금에 노동일만 해온 흑인들의 인권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트래브는 엄마를 따라서 일요일마다 하루 종일 백인교회, 유색인 교회, 그리고 흑인교회를 거쳐서 집엘 오게 된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성경에는 도가 통하도록 능통하고 영어는 완벽하도록 엄마가 아들을 교육시킨다. 


 트레브가 대여섯 살 될 무렵에 엄마는 트레브를 데리고 백인 아빠를 방문해서 아들을 소개하게 되고, 그 이후부터 트레브가 스스로 아빠를 찾아가서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 그때 트레브는 백인 아버지로부터 유럽문화를 익히고, 특히 크리스마스 때 선물교환, 추리장식, 그리고 아들의 생일때마다 잊지 않고 주는 생일 카드, 선물 등 아버지로 받는 즐거움도 공유하면서 부자의 관계를 만들어 가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절대 누구에게도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였기에 혼자서 훌훌 자유롭게 다니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트레브는 자라면서 수많은 종족의 아프리카 언어를 배울 기회가 오고 또 뛰어난 언어구사 능력으로 인해서 많은 어려운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 때문에 감히 친구가 될 수 없는 백인 급우들과 어울릴 수가 있었다. 완벽한 영어에다 4-5개의 아프리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재능이 아마도 트레브가 지금의 자신을 창조하는데 기반이 될 수가 있었다고 믿고 싶다. 


 트레브가 9살쯤 되었을 때 엄마가 자주 다니던 자동차 바디샵 메카닉하고 결혼하게 되는데 트레브의 엄마가 너무나 독립적이고 똑똑하다 보니 의붓아버지는 남편으로서의 열등감으로 술중독자로 변한다. 그 결과로 폭행이란 무기로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매일같이 경험하는 가정폭력으로 삶을 산지옥으로 만든다. 


 결국은 트레브의 엄마와 의붓아버지는 이혼까지 하게 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한지붕 아래서 같이 살아간다. 반면 환경에서 받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매일같이 체험하면서 공포와 테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극심한 인종 차별주의에서 자유를 얻게되나 또 다른 아픔이 오고 끊임없이 가난과 싸우면서 의붓아버지의 폭행 속에서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그런 정신적 공포 속에서 매일 살아가야 하는 어린 아이의 심적 고통과 엄마에게 오는 폭행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될 때 트레브는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하게 된다.


 가족들의 신뢰와 애정이 없는 삶속에서 의붓아버지는 오랜 시간 계획해 온 살인행위를 실천하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비극으로 이르게 된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의붓아버지가 아내를 죽이려고 4발의 총을 쏘았지만 이상하게도 2발만이 대상을 행해서 관통을 하고 2발은 그냥 땅에 발사를 포기한 듯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기는데 무엇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의붓아버지가 엄마를 겨냥해서 총을 쏘아서 얼굴과 엉덩이를 관통하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지만 병원을 갔을 때 엄마가 혼수상태에 있었고, 간호사는 돈을 먼저 지불하지 않으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해준다. 저자 트레브는 돈이 얼마가 들던 엄마를 살려달라고 애걸하면서 크레딧카드를 주지만 병원측은 그 비용이 너무나 엄청나서 트레브에게 평생 갚아야 할 병원비가 나올수도 있다고 다그쳐 묻는다. 이때 트레브는 깊은 생각에 잠기고 그래도 엄마를 살려야 한다고 결심한다.


 잠시 후 수술을 집도한 의사의 이야기가 자기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른다고 일러준다. 바로 엄마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몸을 관통한 총알들이 모두 기적적으로 어느 혈관하나 파괴하지 않고 깨끗하게 지나가서 수술이 아주 간단했다면서 성공적이라 일러준다. 


 그 결과 입원비가 평생동안 벌어서 갚지 않아도 되게 됐다. 의식을 되찾은 엄마에게 트레브는 왜 의료보험을 들지 않았느냐고 묻게 되는데 그녀의 대답이 정말 장관이다. 엄마는 “나의 보험은 Jesus”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왜 Jesus가 엄마의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엄마의 대답은 “ 예수님은 내 병원비를 지불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지 않았느냐!”라고 대답을 하면서 책은 끝을 맺는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에게 ‘Praising Born a Crime’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빚을 많이 진 사람은 바로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라면서 엄마에게 감사를 한다.


 정말 태어남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 저지른 한 여인의 그 용기가 이렇게 복된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엄마의 매는 사랑의 행위라고 아들에게 평생을 일러주던 엄마, 이런 아들을 둔 엄마는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는 참으로 행복하다고… (2017,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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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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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세상을 놀라게 한 여인

 

 요즈음 TV를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33세 된 캘리포니아 사는 독신 여인이 6명의 어린 아이들을 2회에 걸쳐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나게 하고도 부족해서 같은 방법으로 또 8명의 미숙 팔둥이를 제왕절개 수술로 탄생시키는 기록을 세웠다. 


 직업도 없는 상태에서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라는 여인이 한 파운드 반 무게의 아이들을 출산하면서 미국에서 최다 아이들을 의료의 힘을 입어 임신 30주에 낳은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세상을 경악케 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으로 일어나고 또 그런 일들을 태연스럽게 만들어서 세상에 알리는데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밤마다 끔직한 범죄를 저지르는 뉴스가 세상을 놀래게 하고, 거액의 로또가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되는 사람을 보는 것 보다, 우리 모두는 인류를 위해 평생을 몸과 마음을 바쳐서 지대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을 미디아를 통해서 보게 될 때 나는 한없이 내안에 기쁨을 느낀다. 


 8쌍둥이를 낳은 ‘나디아’란 미국 독신여가 이미 인공수정으로 6명의 어린 아이들이 있는 상태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또 같은 방법으로 한명이 아닌 8 쌍둥이들을 임신한 것을 알면서 그 힘든 과정을 거쳐서 1.5 파운드 정도의 아이들이 제왕절개 수술의 도움으로 태어나는데 40명의 의사, 20명의 의료진이 미숙아들을 살 수 있게 하는데 밤낮없이 전력질주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그 입원료와 치료비가 나올지 모른다 한다. 미국에서 35세 미만의 여성에게 2회 이상의 인공수정은 도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윤리적인 입장에서 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주중 토크쇼로 잘 알려진 닥터 필(Dr. Phil) 쇼에서 여러 명의 윤리학자, 성형수술의사, 인공수정 전문의 외 전문가 6명을 불러다 놓고 어떻게 독신 모가 14명의 아이들을 제대로 부양하고 키울 수 있을 것인가를 대중 앞에서 토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더욱이 놀란 일은 이 여인이 유명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입술을 모방하려고 수차례 걸쳐서 입술 성형수술과 얼굴 전체를 성형하였다고 하며, 거기에 쓰인 자금이 적어도 수만불이 들어갔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기자들의 질문에 그녀의 대답이 참으로 정상인으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자기는 더 많은 아이를 낳고 싶어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6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데 정부가 보조해 주는 자금이 매달 $3500 라고 했는데 이제 자기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해서 이렇게 쇼에 나왔노라고 뻔뻔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8명의 미숙아가 태어나면서 정부 보조금은 생활에 충분한 자금이 되리가 믿어지고, 또 세상에 소개되면서 들어오는 자금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이번 임신으로 8둥이가 태어나자마자 자기 사이트를 만들어서 도와달라는 호소문과 함께 미숙아들이 살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온갖 보기 힘든 안타까운 모습들과 치료받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들을 인터넷에 띄우고 도움을 청하고 있다. 자신은 이 어린 생명들을 통해서 밀리언 달러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게 부모가 해야할 도리인지 참으로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2011년 현재 미국은 불황으로 360만명이 2007년 이후 무직 상태라고 한다. 자식을 둘도 낳기가 힘들어서 조국인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로 일등을 달리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런 소식은 정말로 뉴스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자녀 둘을 이 세상에 출생시키는데 쉽지 않았고, 또 양육하고 교육시키는데 부모로서 많은 실수와 잘못이 지금도 나를 가슴 아프게 한다. 이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국 시민 모두가 선택권 없이 태어난 이 아이들을 키워야 하며, 부모 역할을 대신해야 할 책임을 안게 되는 입장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살아가면서 나라나 이웃에 도움은 안 돼도 해는 키치지 말아야 하는데, 이 여인의 상식은 우리와 너무나 먼거리에 있다는 느낌이다. 아무 선택없이 태어난 아이들을 상품화시켜서 자기의 이익과 명성을 채우려는 이 여인을 보면서 내 가슴이 저려올 뿐이다. (201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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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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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여름

 

 나는 사계절이 있는 캐나다를 좋아한다. 이곳에 와서 커다란 문제없이 계절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조국의 향수를 잊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캐나다의 여름을 좋아한다. 한국처럼 장마철이 없는 이곳 여름은 따갑게 내리쬐는 열 자체가 긴 겨울 후에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아침에 닫혀있던 창문들을 활짝 열어놓고 여름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면서 부엌에서 갓 뽑아낸 아침 커피향을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곳은 한국과 달라서 긴 겨울 후 봄을 느끼기도 전에 짧은 여름이 찾아오지만 6월부터 7월이 가장 뜨거운 시기이다. 


 잔디가 파릇파릇 해질 때 봄은 가고 강렬한 햇볕이 우리 몸에 와 닿는 즐거움. 모든 생물이 왕성하게 숨쉬고 자라는 이때, 농부들이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면서 봄에 뿌려 가꾸어 놓은 수고의 결과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배낭을 메고 장거리 여행길에 오르는 흥분감과 아무 곳에서나 쉴 수 있고, 지붕이 없어도, 거주지가 없어도, 고민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모험의 계절이다. 이곳에 살면서 가족과 장거리 휴가를 떠날 때 여름을 택하곤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플로리다에 위치한 원더랜드와 엡코센터 구경도 땀 흘리면서 여름에 이루어졌다. 


 내가 남편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데이트를 하던 시절도 생물이 무르익은 검푸른 여름 일기였다. 남편이 타고 다녔던 다갈색 파리젠은 우리의 발이 되어서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들을 찾아서 한없이 달리던 시절도, 미래의 장모님이 될 어머님께 환심을 사기위해 나이아가라 폭포 돌담 곁에서 정중하게 카메라로 어머님의 모습을 담아 두었던 때도 여름이었다.


 그런데 여름엔 두려움도 함께 온다. 지구의 몸부림의 모습들이 더운 일기와 함께 나타나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상기온에서 몰려오는 회오리 태풍,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물 사태, 이곳 저곳에서 원인모를 산불들로 인한 자연과 인명 피해는 산들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이어진다.


 잊지 못할 어린 시절 조국에서 보아왔던 젊은이들의 피 끓는 민주항쟁 운동도, 6.25동란도 추운 겨울이 아닌 땀 흘리는 여름에 일어났다. 


 그러나 여름은 모든 생물에게 왕성한 시기다. 에너지가 넘쳐 어딘가 소모할 요소를 찾아서 쏟아내야만 하는, 그래서 하루의 활동량은 일년 중 어떤 시기보다도 많고, 수면부족을 경험하는 계절이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낮 시간이 가장 길기 때문에 즐거움도 슬픔도 모두가 긴 하루이다.


 젊은 시절 에어컨이 없는 병원에서 혼신을 다해 다양한 환자들을 간호할 때 감당해야만 했던 그 많은 땀 흘림, 입은 유니폼이 땀에 젖어 내 몸을 휘감던 계절도 여름에만 체험했던 유산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에어콘이 없어 찜통 같은 방에서 밤잠을 뒤척이던 시절은 지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일생에 가슴깊이 남을 나만의 귀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때 나는 무더운 여름이 싫었다. 그러나 요즈음 의학자들이 말하는 비타민D를 흠뻑 받을 수 있는 시기도 태양과 가장 가까이 만나는 여름이란 계절이다. 모든 생물에게 부여하는 혜택은 헤아릴 수가 없다.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 자연을 최대로 가꾸어서 도시 곳곳에 녹화 작업을 해놓은 이 땅에서 자연을 즐기고, 한 시민으로서 나의 몫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게 나의 의무이다. 반면 뜨거운 여름철만 일년 내내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즐기는 사계절에서 맛보는 기쁨은 없으리라! 


 이곳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여름 음식 또한 다양하다. 뜨거운 여름에 시원한 국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물냉면, 오이냉채, 팥빙수, 시원한 냉커피 등의 음식을 생각하면 열기로 찬 가슴속에 시원함이 느껴온다. 


 반면 겨울철만 있는 곳에 사는 북극의 원주민들은 뜨거운 날씨를 평생 동안 한번 경험해보지 못한 채, 태어나면서 입기 시작한 두꺼운 털옷을 평생 벗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곳에 사는 나는 철마다 즐기는 다양한 음식과 의복, 그리고 여행길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중의 하나이다. 내가 선택한 이 땅에서 사계절을 경험하고 있으니, 어려운 이민 삶에서 큰 부분의 원동력과 신체적 적응에도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삶의 변화를 만들 수 있고, 새로운 계절의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변화에 삶의 지루함도 덜어주는 사계절에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여름동안 한번쯤은 반나체로 나의 팔등신을 노출할 수 있는 이 계절이 내 마음을 젊고 기쁘게 만든다. 


 여름은 자연의 생물들이 완성을 향해서 가는 시기이기에 다가올 긴 겨울을 떠올리며 마냥 여름밤 하늘에서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잠들고 싶다. (201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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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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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3
돌아온 탕자를 연상시키는 Kim’s Convenience

 

 여러 차례 주위의 지인들과 딸로부터 추천을 받고도 시간적 여유를 못내던 차에 아들이 이번 주말 가족 프로그램의 첫 번째로 Kim’s Convenience 라는 연극관람을 선정하였다. 


 이곳 토론토에서 볼 기회를 놓치고 나니 Port Hope란 토론토에서 벗어난 시골에서 공연하는 곳을 찾게 되었다. 10년 만에 여유롭게 방문한 아들과 함께 하는 연극공연 관람은 새삼 우리부부의 마음을 더없이 기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족이 함께 볼 연극을 생각하니 그런대로 즐겁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시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Dream이란 이름의 커피숍에 들러서 아담하게 꾸며진 유럽풍의 분위기에서 커피 향기와 함께 마음을 적시고 난 후 Festival 이란 극장으로 향했다. 들어오는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모두가 하얀 머리와 격조가 높아 보이는 백인 노인들이었다. 동양인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곤 우리 몇 사람에 불과했다. 그래도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함께 입장을 하고 지정된 좌석으로 찾아갔다. 


 막이 열리면서 스테이지에 꾸며놓은 눈에 익은 한인들 편의점이 진열되어 있다. 가게 주인인 중년의 미스터 김이란 한인이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그날의 필요한 물품정리를 하면서 우리 귀에 익숙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첫 손님이 들어와서 찾는 진생차로부터 손님과 말 실랑이가 일어나고, 손님이 찾는 진생차와 주인이 부르는 상품명이 다른 데서 발단이 된 논쟁이 시작된다. 주인인 미스터 김은 진생차가 아니라 인삼차로 손님에게 알려서 일본과 한국의 다른 점을 이야기 해준다. 그래서 미스터 김은 일본사람은 진생차, 한국 사람들은 인삼차라 한다고 손님을 가르쳐서 보낸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5명(한국인 4명과 흑인 1명)이지만 흑인 한사람이 3인 역을 하며 1시간 반 웃음을 연출해낸다. 한국 고유문화 속의 아버지상과 그의 애국심, 자녀들 간의 관계, 십자가 목걸이에 교회밖에 모르는 아무 힘없는 아내가 보여주는 엄마, 이민 1세의 삶을 그린 코믹한 연극인 동시에 아버지의 깊은 탕자의 귀향 같은 메세지가 담겨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주인공의 언어표현에서 주는 웃음과 가슴을 때리는 뭔가 있기에 이 공연이 성공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미스터 김의 세련되지 못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 담겨있는 메세지는 한시간 반이란 긴 시간에도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게 청중들을 매료시켜 웃음으로 줄곧 이끌어나간다. 


 주인공 미스터 김과 그 말에서 가져다주는 메세지는 청중들을 웃음으로 줄곧 끌고 나간다. 주인공 미스터 김과 그의 곁을 지켜온 딸의 주된 대화는 이곳에 살고 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30세 된 사진작가인 딸의 당돌함, 한발치도 양보를 안하려는 딸과 아빠 사이에 일어나는 일상의 대화, 16살 때 아빠와 충돌한 후 집을 나가버린 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가족들은 알길 없이 지내는 긴 세월에 일어나는 네 사람의 대화이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이 좁은 공간에서 이민자의 삶, 미스터 김이 가진 한국인의 꺾지 못할 자긍심, 타민족에 대한 직설적인 편견을 서슴없이 내뱉는 주인공, 긴 세월동안 타 인종에서 체득한 사람들의 특징들도 거리낌 없이 딸에게 가르치는 아빠, 그런데도 청중들은 그의 어색한 언어에도 불구하고 웃음으로 이끌고 나가는 그 재치에 반하고,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용어들을 아무 제한 없이 써가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통째로 몰고 가는 그의 재능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가게에 한 흑인 손님이 들어와서 물건을 찾는 동안 아빠는 딸 제넷에게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치고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치지 않는가를 알려준다. 그러는 동안 손님은 카운터에 물건을 올려놓고 돈을 지불한다. 딸과 같이 있던 미스터 김은 내주어야 할 거스름돈을 내주기 전에 손님에게 그동안 훔쳐간 물건들의 값을 치르라고 황당한 요구를 한다. 


 하지만 손님이 순순히 응하지 않자 한국인 특유의 방어책인 합기도로 손님을 다루는데 그 장면이 관중들의 배꼽을 쥐어잡게 만든다. 결국은 손님은 항복을 하고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서 훔쳐가려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를 딸에게 보여준다. 그러니 그간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훔쳐 왔겠는가?


 삶의 체험으로 아빠가 손님들의 마음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것을 본 딸은 그때 몹시 놀란다. 그 손님이 흑인이라 무시한 인종차별이 아니라 그가 오랜 세월 경험에서 얻은 통계인 것이었다. 그런데 딸이 오빠친구였던 흑인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와서 결혼할 것이라 아빠에게 말한다. 미스터 김은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한 후 허락해 준다. 


 주인공 미스터 김은 자기 편의점 안에서는 절대적인 권위자로 군림한다. 아빠로서, 남편으로, 그리고 이 연극을 이끌고 가는 동안 조국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이 그의 입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관중들에게 알려짐을 보게 된다. 


 연극을 보는 동안 내 가슴에는 애국하는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는 딸과의 대화에서 언제나 사고의 차이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언쟁으로 끝나고, 서로가 양보라는 단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딸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간다. 


 반면 마음 속 깊이 집을 나간 아들을 잊지 못하고 있을 때 아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아빠에게 두 달된 손자가 있다고 알려준다. 이제 아빠는 할아버지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는 행복하지 않다고 아빠에게 스스로 고백하고 가게에 헬퍼라도 할테니 일하도록 해달라고 애걸한다. 이 장면을 보는 내 마음은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이란 그림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졌다. 성서의 탕자의 이야기처럼… 


 한편 아빠 곁을 떠난 적이 없는 딸은 자기가 가게에서 그동안 일한 시간을 모두 계산해서 $120,000이란 돈을 아빠에게 청구한다. 그러자 아빠 또한 딸을 낳아 키우고, 교육시키고, 캠핑 보내고, 피아노 가르치고 등을 장황히 나열하며 청구한다. 


 그런데 집 나갔던 아들이 자기의 모든 잘못을 깨닫고 도우미로라도 써달라고 하자 아빠는 거절대신 “Change the price and take the store!” 하면서 아들을 놀라게 한다. 키를 던지고 가게를 나가면서 막이 내린다.  아버지가 자기의 모든 것을 애타게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아들에게 기쁘게 주고 떠나는 그 모습에서 정녕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의 그 아버지를 보는 듯했다.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단 한번뿐인 기회를 자신을 배반하고 떠났던 자식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미스터 김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아니겠는가!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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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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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6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을 읽고

 

 올여름 밴쿠버 딸 방문때 나는 850페이지 분량의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자신의 영성 피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토마스 머튼은 1915년 프랑스 남쪽 프라드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열아홉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면서 시를 썼고, 재즈에 열광하는 생활을 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밀한 변화를 겪다가 1938년 나이 23세 때에 전적으로 회심하여 카톨릭 신자가 된다.


 1941년 12월 트라페스트 수도원에 입회하여 1968년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수사, 영성작가, 사회정의수호자로 살다간 사람이다. 그는 1948년 고백논에 가까운 자전적 일기 “칠층산”(번역 전진석 추기경)을 시작하여 70권의 책을 출간하여 20세기 카톨릭 영성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1963년 종교와 관상기도 연구에 대한 기여로 “평화상”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인간이 하느님 앞으로 다가가는 과정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삶의 변화를 통해서 깨닫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책의 제목처럼 칠층산을 넘어서야 결국은 자기가 가야할 길이 바로 보이고 그것을 향해서 인도 되어가는 그런 모습과 머튼의 내적 갈등을 보게 된다. 보통 인간들이 누구나 무심코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나 생각에 깊은 반성을 갖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잠재적으로 하느님을 향한 갈망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본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 문학이란 환경 속에 들어와서 뉴욕의 유명인사도 만나고 함께 일도 하고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한발짝 한발짝 그곳을 향해서 가지만 치명적인 요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 고국인 불란서와 영국을 넘나들면서 배를 타고 여행하던 중에 심한 육체적 고통을 경험하게 되고, 미국에 돌아와서 로드 아이랜드에서 뉴욕의 직장까지 기차 여행을 하던 도중에 또 한번의 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는 동안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 박사과정을 미치고 영문학 교수가 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신에 대한 목마름이 피정 센터를 드나들게 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수도자들의 고된 모습과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 안에서 평생을 고된일을 하면서 하느님만 섬기고 살아가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주야로 기도 해주는 덕분에 우리는 바깥세상에서 이토록 즐기고 먹고 마시고 할 수 있다고 그는 진술하고 있다. 


 그에게는 그 고통이 참으로 감미로운 것, 하루속히 그 속에서 함께 보내고 싶은 그 갈망이 여실히 자기 삶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외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지만 가끔씩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성장하였고 동생에 대한 애정 또한 깊었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은 이타카에 있는 콘넬대학에서 항공 관계를 공부하고 공군이 되고파 한다. 제2차 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으로 파견되기 전에 동생은 형이 있는 수도회를 찾아온다. 그때 형은 동생을 캐톨릭신자로 이끈다. 영세를 받게 한 후에 보내며 그 동생을 위해 깊은 애정을 쏟는다. 전쟁에 참여한 동생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소식을 받고 그 영혼을 완전히 하느님께 맡긴다. 


 그러면서 차차 세상일에서 모든 것을 놓게 되고 천상을 위해서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이것이 그가 진정으로 얼마나 소망해 왔던 것인가! 그는 가진 것도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마저 데려 가셨으니.


 가방 하나 들고 수도원에 들어가는 그 마음에는 아무것도 세상에 두고가는 것이 없는 듯 세상과의 결별, 26년 동안 쌓아온 세상을 등지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해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이 없다면 가능할까. 세상 속에서 얻었던 모든 것을 비우고 하느님이 주시는 천상의 기쁨으로 매일 채워가는 그 행복감. 그러나 자신은 세속에서 얻었던 명성, 이름이 자기를 수도원 안에서까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너는 왜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냐?”하면서 자신에게 되묻는다. 수도원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동안, 세속에서 키운 야심이 들고 일어나는 자신을 나무라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세상에 머튼을 내놓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로 분산되는 자신에 대한 사랑, 명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핏줄인 동생을 잃고 마음 아파하는 머튼.


 이글을 읽으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의사동생이 환자 방문에서 전염병 감염으로 사망할 때의 슬퍼 하셨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동생의 결혼식까지 돌봐주고 동생이 그토록 원함에 떠나보내는 형의 마음, 절대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인간은 고통 속에 있을 때 하느님을 만나고 마음이 깨끗해질 때 하느님을 볼 수 있다. 머튼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토록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절대자의 곁으로 다가가는 모습에 내 영혼까지 맑아오는 듯했다. (2012,1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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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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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정체성에서 오는 아픔

 

 “맘, 아이들이 우리보고 칭크라고 불렀어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과 아들이 물어온 그 말은 지금도 바로 어제 일처럼 내 가슴에 메아리쳐 온다. 난생 처음 학교라는 곳을 다녀온 아이들이 듣고 온 이 말은 나에게 던져준 커다란 충격이었다. 순간적으로 나의 손이 미친 곳은 영한사전, 그 말의 뜻이 경멸적으로 부르는 “중국인”이라 적혀 있었다. 이 시대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인종차별이란 화제로 만들어 얼마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수 있을까? 


 그때 우리 아이들은 자기들이 이곳 백인들과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런 차별대우를 받는 말을 들을 것으로 여기기엔 철이 들지 않은 나이였고 너무 순진했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얼마나 많은 마음의 아픔을 갖고 자라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짐을 숨길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학교를 방문하여 담임선생을 찾아갔다. 


 중년쯤 된 여자 선생이 복도로 나를 향해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뜻밖의 학부형 방문에 잠시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으나 나를 보자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한국적 예의를 지켜 공손하게 내가 누구의 엄마이며 왜 이곳을 찾아왔는지 설명한 후, “처음 학교를 입학한 순진한 이아이들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가?“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녕 피해자가 느끼는 것처럼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리고 이 아픔이 어린아이들 가슴속에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괴롭힐 수 있는 상항인지 그녀에게는 이해가 안될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미세스 백, 염려말고 돌아가세요.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라고 일러 주었고, 나는 그녀의 말을 믿고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만 해도 토론토 변두리 학교들은 백인위주로 이루어졌고 그 일이 있은 후 우리 아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서 친구도 만들고 예쁘게 자라 주었다. 


 딸은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면서 수석으로 졸업했고, 아들은 영재들의 학교로 보내져 특수 교육을 받은 후에 그곳을 떠나 상급반으로 진학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아이들이 가톨릭 학교로 들어갔고, 학교의 교육방침도 약간씩 달랐다. 딸이 처음 익혀야 하는 불어, 그것을 따라가기 위해 혼신을 다해 노력하면서 새 환경에 잘 적응하였고, 학교 공부도 월등하게 잘 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누나인 딸과는 조금 달랐다. 남달리 이해가 빨랐던 아들에게는 학교 과목 중에서 특히 음악 같은 것은 이미 개인적으로 습득해서 다른 학생들을 앞서 있었기에 더욱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들이 자기에게 별로 도전이 없었던 것이었다. 음악시간에 아들이 전혀 입을 벌리고 노래를 하지 않아 음악점수가 나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음악선생을 찾아 갔었다. 그때 나는 아들이 료얄 콘서버토리(Royal Conservatory)와 키아니스(Kiwanis)에서 받은 많은 트로피, 상들을 들고 가서 선생에게 보이면서, 아들이 음악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배운 것들이라서 흥미의 대상이 되지 못해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일러주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녀의 가르침이 재미가 있었다면 아들은 적극성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선생은 아동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아이들의 호응도 잃은 듯 했었다. 아동 심리를 조금 이해하고 칭찬을 곁들여 가르쳤다면 아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선생은 그렇게 칭찬에 인색한 사람처럼 보였다. 부끄럼이 많은 아들은 일단 자기가 흥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 과목은 공부를 하려들지 않았다. 나는 아들과 딸을 통해 남자 아이와 여자아이들의 다른 성장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들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도 관심을 가지는 기회가 되었다.


 아들과 딸이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그들의 배움의 과정에서 오는 정체성의 갈등. 번듯한 가면을 쓰고 이민자의 자녀들에 대하는 부당한 처사를 목격하면서 이곳에 살아가는 한 소수민족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 마치 내가 직장 생활에서 격은 것처럼 여겨졌다.


 캐나다의 명문, 백인 위주 남자사립학교에서 아들이 겪는 많은 갈등은 여자학교와 달리 여러 면에서 사춘기 사내 아이들간에 드러내는 노골적인 행동과 언사들로 인해 집에 돌아온 아들은 혼자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들은 이런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해서 다른 백인 급우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그 학교의 장학생으로 졸업하여 우리부부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공학도가 되었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일러준 이야기가 있다. 이 사회를 살아갈 너희들의 무기는 우람한 육체도 아니요, 돈도 아닌 지식과 지혜이다. 누구도 그것은 빼앗아 갈수 없는 것이라고… 하루는 아들이 집에 와서 나에게 “왜 엄마가 이곳에 이민을 택했느냐”고 물을 때 큰 충격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반면 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 내색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맘,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늘 나를 안심시켰다. 절대 엄마가 걱정할 것은 표현하지 않는 강인한 딸. 


 이제 아이들이 성장하여 결혼적령기가 됐고, 또 다른 갈등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배우자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 등. 우리 세대의 바램은 동족간의 결혼이지만 정작 그들의 선택이니 어떤 배우자를 만나든 따라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위로 해본다.


 내가 이민 오는 부모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문화뿐만 아니라 정체성으로 겪는 혼동과 갈등이 얼마나 그들을 힘들게 만드는지… 부모들이 겪는 이민사회 어려움의 몇 배로 하루하루 겪으면서 외롭게 자기들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우리가 그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줄 수 있다면 대신하겠지만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오직 부모의 깊은 이해와 사랑뿐이라고.  


 미국의 이민 연구 학자에 따르면 이민생활에 있어 가장 힘든 세대가 1세나 3세가 아닌 2세라고 한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영원히 정체성의 갈등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우리 아이들이 1세의 도움없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우리들은 푸른 희망을 안고 이곳에 와서 폭풍우 같은 세월을 헤쳐 오면서 쓰러지지 않고 이민자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인종 속에 뿌리를 내렸다. 자녀들에는 비판보다 많은 격려와 사랑을 끊임없이 베풀어야 이곳에서 바른 삶을 이끌 수 있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에 적은 장애물이라도 옮겨놓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만 있다면… (201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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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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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인생은 작은 인연들

 

 내가 제2의 인생으로 들어온 지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60세가 지나면서 오랫동안 많은 생각 끝에 내려야 할 결정들을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함께 일해 온 의사가 일하던 클리닉에서 떠나감으로써 나의 어려운 결정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막상 평생 해오던 일을, 더욱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늦게까지 해온 공부, 그래서 오랫동안 나이 들어 즐기고 싶은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어 시원함과 섭섭함으로 정리해 주었다.


 시간적 여유로움에 가끔씩 찾아오는 오솔길 산보를 친구와 함께 걷는 시간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결이 서서히 우리 곁을 떠나갈 때 나는 기다리던 산책길을 찾았다. 시냇물은 불어서 힘차게 밀려 내려오고 발가벗은 나무들은 새 순을 피울 준비를 하느라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힘차게 귓전에 울려온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새 생명은 봄을 준비하느라 서로 경주라도 하듯 달라지는 모습이 경이롭기만 하다.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언제부터 내가 자연에 이토록 마음을 두게 되었는가? 아마도 세월이, 아니 나이가 그렇게 나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원인이 되리라. 


 누가 돌봐주지 않고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이루어진 이 계곡에 태어난 이름 모를 가지각색의 잡초들, 봄에는 그냥 볼품없는 풀로서 자라나서 여름의 푸르름을 숲속의 나무들과 함께 공유하고, 가을이 오면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빛과 모양으로 산보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것들이  야생초다.


 며칠 전 친구와 시간을 맞추어 가을의 문턱을 즐기고자 이 오솔길을 찾아왔다. 가끔씩 오는 낯설지 않은 조용한 이곳은 우리의 속삭임을 엿듣기라도 하듯 조용히 반겨준다. 


 젊어서 나의 삶은 고속도로를 달렸고, 가정과 직장일 그리고 내가 그토록 원하던 배움의 시간들 밖에는 기억나는 일이 없다. 남들이 24시간을 살아갈 때 나는 25시간이 주워졌고, 시간의 할애도 벅찼던 젊은 시절, 아름다운 자연에 눈길 한번 돌릴 겨를도 없이 세월이 그렇게 흘러, 사회에서 정의하는 노인의 문턱에 서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 빈둥지가 된 지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요즈음은 내 시간이 허락되면서 나도 모르게 지난날들을 더듬어 본다. 앞으로의 날들이 지난 시간에 비해 짧게 남아있다는 가슴 서늘한 자각 때문일까?


 어머니가 이곳에 계실 때 막내딸의 보금자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고국을 가실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결혼이란 것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어머니의 떠나심을 편히 해드리기 위해 결혼이란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 당신에게는 철창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다고 하셨으니 언어와 환경에서 오는 부자유가 얼마나 속박이었으면 10년을 사시고도 미련 없이 고국에 두고 온 아들에게 돌아가셨을까?


 나는 결혼이란 것이 어떤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지도 미처 깨닫기 전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 결심을 하였고, 우리의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의 힘든 경주의 삶이었다. 


 그런 세월속에 살아가면서 아빠에게 닥쳐오는 건강문제는 내 작은 등에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벅찼고, 그 짐들은 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었다. 20년 넘게 병원과 함께 해온 남편은 원인 모를 고통속에 약과 술을 친구삼아 살아가는 삶을 계속해야 하는 긴 시간들로 채워진, 그래도 존재해 있음에 감사해야 함이 위로로 다가온다.


 돌이켜 보면 끊임없는 시련들은 나를 용광로란 형체변형을 하는 곳으로 데려다 놓고 달구었다. 나이가 먹어감에 그 아픔과 힘든 세월들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는지.


 46년이란 병원 생활에서 여러 모습의 환자들을 돌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매순간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인생의 수련자로 살아왔다. 나와 인연을 갖은 모든 사람들은 나를 성숙시킨 스승들이며,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이루어지는 여정이다. (20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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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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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8
개들의 놀이공원(Dog Park)

 

 

 나는 은퇴후 남편이 반복되는 척추 수술과 재활치료를 위해 입원한 덕분에 풀타임 운전사가 되었다. 그로 인해 매일 매일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더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는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던 이 모든 순간이 다 우리 삶의 배움의 여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저자는 신부출신으로서 신부의 옷을 벗고 세상에 나와서 일반인으로 생활을 하면서 쓴 “Growing up somewhere”가 기억난다. 우리는 평생 동안 배움의 터전에서 살다가 자신이 알던 모르던 그 순간에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도 나는 남편을 재활원에 훈련 시간을 맞추어서 데려다 주고 한 시간 반이란 자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나의 선택이다. 그냥 재활원에 가서 인터넷을 뒤지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소모하는가, 아니면 숲속의 오솔길을 걸으면서 삶에서 밀려오는 복잡한 상념 속에서 혼자 걷거나, 개들의 놀이공원(Dog Park)에 가서 동물들이 마스터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을  하는가를 관찰하는 시간으로 메꾸게 된다.


 순간 순간의 선택이 우리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 매 순간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하루가 귀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 재활원 옆에는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는데 무더운 여름에 빛을 막아주는 숲속의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운동은 영혼과 육신의 치료제가 된다.


 길옆에 무성히 자라고 있는 잡초들과 이름 모를 나무들은 오늘 또 나와 인사를 나눈다. 기온에 따라서 며칠 전만 해도 벌거벗은 알몸의 나무들은 이제 어디론가 사라지고, 찬란한 전성시대의 푸른 잎으로 차려입고 산책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 해준다. 


 요즈음은 나이에 따른 시간 속도라 할까! 것잡을 수 없는 남편의 재활훈련으로 나는 출퇴근이 바빠진다. 그래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삶의 장을 여는 이 동물들의 놀이터가 있다는 것을 요즈음에야 알아차렸다. 이곳에선 Baby Sitting이 아니라 Dog Sitting을 하러온 많은 남녀들을 만나게 된다. 


 주인이 직장 나간 사이에 혹은 개를 좋아해도 고령인 경우엔 사람을 고용해 개가 심심해하지 않고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어놀게 해준다. 주인 대신 개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바른 해석일 것 같다. 


 정말 가난한 나라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이곳은 동물의 천국이 아닐까? 동물로 태어나도 여기서 태어난 덕분이다. 개장국 아니면 보신탕으로 생명을 다하게 되는 나라들도 있음을 생각할 때 이 동물들은 훈련을 받고, 건강을 지켜주는 사람들과 놀이터로 향하니 얼마나 복이 많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시간이 나에게도 행복한 하루가 아닐 수 없다. 


 개 놀이터에 돌봄이 들이 보통 5-6 마리씩을 데리고 와 주인의 절대 권리인 목에 차고 온 목걸이를 하나씩 풀어주는데, 그때부터 개들은 자기 세상이 된다. 수십 마리의 개들이 이 거대한 공원에서 질서를 지키고 매일같이 만나는 개 친구들끼리의 인사가 무척이나 바쁘다. 


 그런 다음 서로 키스하고 그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로 우정을 나누는 소리는 다양하기만 하다. 개의 크기에 따라서 소리도 다 다르다. 우렁찬 소리, 캥캥 거리는 소리, 사나운 소리로 인사하지만 싸움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고 생각을 하고 입구에 걸려있는 사인을 읽으면서 이해가 조금씩 가기도 한다.


 어떤 개든지 사납거나 싸움을 할 수 있는 개들은 그곳에 들어올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수컷 ,암컷, 수십 종의 개들이 한꺼번에 거대한 공원에서 자유롭게 뛰고, 장난 하면서도 자기의 이름이 마스터로부터 불릴 때 어떻게 잘 알아듣고 따라오는지 정말 영리한 동물들이다. 가끔씩 고집을 피우고 저 혼자 놀고자 하는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말에 절대 복종이다.


 만약에 사나워서 다른 개를 해치려고 하면 그 개는 당장 퇴장된다. 이들도 자기 마스터의 눈치를 살피고 또 보상으로 주는 칭찬과 쿠키를 받아먹고는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순간은 절대 자기의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을 하는 것 같이 보인다. 하물며 동물들이 이렇게 칭찬받기를 원하고 보상을 받고 좋아하는데 사람인들 오직하랴. 


 개들도 자기들의 한계구역에서 이렇게 질서를 지킬 줄 알고, 마스터의 음성을 민감하게 주시하면서 노는 것을 보면, 하키 선수들이 수억 불의 연봉을 받으면서 서로 치고 박고 격투하는 것 보다 더 세련됨을 느낀다. 인간 세계보다 더 의리있고 서로 배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인간사회보다 질서를 더 잘 지키고 어우러지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이 동물들을 통해서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런 일을 직업으로 하는 훈련자들의 수입이 얼마나 될까하는 나의 궁금증이 꼬리를 물어, 개들을 몰고 가는 젊은 남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이 직업의 보수가 꽤 괜찮다고 한다.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는 더 좋은 대우가 주어지고, 개를 좋아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곳은 정부가 지정한 개를 위한 놀이터, 아파트가 수십 동이 들어설 수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대 자연 속에 인가와 떨어져 있어 아무도 그들이 즐겁게 뛰고 짖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조금만 언덕을 올라가면 서니브룩이란 거대한 병원에 수천 명의 환자들이 있다. 갖은 고통으로 신음하는 인간의 소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개들이 기뻐서 내는 소리, 뛰면서 발산하는 에너지, 마스터가 주는 보상에 좋아서 짖어대는 기쁨의 노래들로 가득하다. 


 나 자신도 이 순간은 남편의 힘든 재할훈련도 다 잊고 이 개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다. 그래서 남편의 긴 재활기간이 그렇게 지루하지 않고 시간의 선택이 기쁨의 한순간을 제공해 줌을 어찌하랴.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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