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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시와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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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시와 오솔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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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0494
9207
2018-09-16
희망사항 목록

 
희망사항 목록 
 

 

 

 

목이 시려 추울 때는    
손수건 하나만 둘러도 온기가  전해온다

 

이 손수건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친밀에 대해 
잠깐 뒷모습을 놓쳤다가도 
처음부터 있었다고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라

 

딱딱한 직립의 시간을 뒤척이는 동안
헐렁해진 목덜미가 어둠 속에서 
녹슨 못처럼 바람을 맞고 서 있을때

 

 "추워 보여" 그런  말은 누구든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은 얼마나 추운 목을 염려하는지 
살다보면 열 마디 말보다 한 장 손수건에 감동할 때가 있다

 

그런 체온 곁에 한 둘만 있어도  
혼자서도 빵 반죽처럼  곧잘 부풀어 오르고
어느 순간 날아오르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하겠지만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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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0419
9207
2018-09-10
매미, 울음 유감

 
매미, 울음 유감

 

 

 

폭염 속 
당차고 처연한 저 곡비의 울음
여름이 지나가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나른한 오후
논스톱으로 울어대는  녀석들 때문에   
누군가는 달콤한 낮잠을 설쳤다고 짜증을 내고 
지독한 편두통을 앓고 있는 사내는 반사적으로 돌아앉아 턱을 괴고
우울한 백수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상욕을 해대는 
이건 순전히 여름날의  민폐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뜨거운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어둠의 기억을 털어내려는 안쓰러움은 알겠으나      
절망의 검은 모자를 눌러쓴 사람들은 
대낮 눈치없이 울어대는 
맴, 맴, 맴 
소리에 더이상 마음을 열지 않는다 

 

매미가 사람을 배려해야 할 차례  
상식이 낡아가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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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68289
9207
2018-08-26
비의 온도

 

비의  온도 
 

 

 

 

여름꽃 지는 8월
그대 무슨 연유로 비를 끌고 와서
천개의 물방울로 붉은 립스틱을  적시는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유리상자 속으로 밀어넣은  물무늬가 
후두둑, 우산 속으로 뛰어들 때 
말간 물길이 둑방을 넘어 
마주 선 나무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서로 떨어져서 걸었지만 
갈 곳 없는 물방울들이 금세 모이는 유리병 안
둥글게 부풀린 입을 대고 물무늬를 불어보았다
병 속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고
비 때문에 우산이 접혀졌다
댓살을 부러뜨린 자의  등이 보일 때
젖은 당신의 온도는 여전히 축축했다

 

오늘은 종일 비
주머니 속,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을 만지작거리며 
흘러간 노래를 흥얼거려 보기도 하지만
괜히 울컥하고 멋쩍어
비에게 들켜버린 헐렁한 안쪽 
이런 날 젖지 않고는 잠들지 못할 거라고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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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67180
9207
2018-08-17
어스름의 권위


 
어스름의 권위
 

 

 

 

소낙비 다녀간 후 
밀물처럼 파고드는 8월 아홉시  
밀물과 썰물 틈새에서 열리고 닫히는 
저리 오래 머물다 가는 이 시간대에 대해   
한번은 물어봐야겠다 
놀랍고 모호한 질문이다

 

먼저 도착한 어둠이  깻잎밭에 가부좌를 틀면
나는 헐렁한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낮은 자세로 그 앞에 허리를 굽히며
홀로 설 수밖에 없다

 

곧 다가올  캄캄한 몸에 대해 
찬공기의 순환을 돌아나온  어둠의 권위는
적요함으로 치자면 이 시간대에 비교할만한 것이 없고
온몸으로 저물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늘 허기졌던 저녁이 많았으니  

 

그 앞에 할 말을 다하고 
타박, 둥근 어둠을 걸어 나오는데   
아주 슬픈 문장 하나
슬쩍 내 안으로 밀어 넣은게  분명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정봉희
67098
9207
2018-08-12
보랏빛에 눕다

 
보랏빛에 눕다 
 

 

 

 

지친 립스틱은 쉬어가고
축 늘어진 가방은 몸을 풀어도 좋겠다

 

정수리에 박히는 햇살을 구름모자로 덮으며 
여자가 뒤꿈치를 들고
보랏빛 행렬 속에 뛰어들 자세로 
바람의 행방을 살피는 동안 
온몸에 푸른 멍자국이 먼저 들었다 

 

연인들은  포즈를 취하다
황홀한 나비처럼 날고
벤치에 걸터앉은 여자는 뒷등을 보이며
목을 젖히고 맑은 콧날을 세운다

 

허천나게 꽃이 피어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내쪽을 바라보며
뭐라 말을 하려는데


  
라벤더 친밀에 대해  꿈꾸는 동안 
어린 꽃 하나 겨우 향기를 놓아준다 
일어서는 향기들
어스름처럼 고요히 번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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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66980
9207
2018-07-30
오수, 뒷담화

 
오수, 뒷담화
 

 

 

 

여자가 졸고 있다
뻗어가는 담장의  호박꽃을 바라보다
까마득한 낮잠에 들었을 뿐

 

깊고 캄캄한 잠 속에서
한 여자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 막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달겨든다
악몽, 그 뜻은 알겠는데 

 

시끌벅적 떠들 나이가 한참 넘었는데도
아이들 무릎에 앉혀 절하게  하고
옆과 뒤를 통째로 살펴가며, 냠냠 

 

고독한 붉은 벼슬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억울한 소망이 있다한들, 어쩌겠나

 

주렁주렁 매달려 말라가는 아이들
이맘쯤 무릎 풀어   
담장 넘는 호박줄기 바라보는 일도 괜찮겠다

 

배게 밑에 둔 몸속의 기억들
목소리는 들리지만 얼굴은 없다  
잠시 졸았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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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66888
9207
2018-07-21
숨바꼭질

 

숨바꼭질
 

 

 

 

놀이가 그러하듯 
머리카락 보이면  게임오버다 

 

나무 뒤에 숨어서 
누군가의 홍채 위에 압정처럼 꽂히는 환상으로
나뭇가지에 파문 하나 없이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진정한 다람쥐가 된다
꼭꼭 숨어라 

 

앞사람 등에 얼굴을 묻고
분명 어깨를 펴고 서있었다고 했으나
다리를 구부려 술래의 표정을 살피는 동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바람이 
머리카락 자주 흔들어댈 때마다 
겁먹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의연했던 모습은 이미 증발한 채였다

 

이마에 머리칼이 얹힐 때
들키고 싶지 않아 
한번 더 앞사람 등에 얼굴을 묻는 다람쥐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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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66811
9207
2018-07-15
7월의 근황

 
7월의 근황 
 

 


 
나른한 오후 
이렇게 생이 가볍다
뙤약볕 아래 성자가 따로 없다
죄다 숙연해진다
그래서 7월의 오후는 고독하다


 
둥그런 저녁이 남아 있는 몽상의 시간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고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이
 편의점처럼 가까이에 있다
 그것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무한의 풍경이 이파리 끝에서 열리는
상수리나무 아래서 바라본 생의 단출함
내 기억에 유일하게 남은 건
나무도 사람처럼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빛의 생살 앞에
고요를 보는 눈
말을 듣는 귀

 

7월의 나무 위로 고독이 빨래처럼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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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66727
9207
2018-07-09
부추꽃


 
부추꽃
 

 

 

 

후욱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심지 가벼운 사람 같아서 한동안 피해 다녔습니다 

 

처음엔 흰꽃이다가 차츰 햇살과 바람 핑계 대며
분홍과 보랏빛 표정관리에 들어가는 그 꽃은 아마
나비 하나 앉지  못할 가시를 가졌을 거라고
꽃대궁에 피워 올린 여러 겹의  마음을 얻을 수 없어
왠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추꽃은  언제나 희다 라는 ? 
당신에 관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지는 순간 
흰꽃과 분홍 사이 애매모호한 빛깔이 사람을  지치게 하고
때론 환장하게 한다는 걸 
그 꽃을 보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때 지나면  
벌과 나비조차도  찾아오지 않을  
제 빛깔을 잃어가는 당신이 무척 외로워 보입니다
외로움이란 녀석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이거든요 

 

겹겹이 숨겨진 부추꽃같은 
당신을 읽어내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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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66637
9207
2018-07-04
플라스틱 공법

 
플라스틱 공법 
 

 

 

 

갈라진 틈새로 물이 빠져 나간다
언제부터 벌어진 플라스틱의 공법이었을까
친절한 테이프로 물길을 막아 보지만
우리 사이는 여전히 유감을  표명한  사이로 남아 
혹여, 테이프에  문제가 있나 싶어
크레지글루까지 동원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잎사귀 조금씩 말라가듯
가만가만 벌어진 틈새 물길을 짚어보지만
나는 안다, 합성제품이 낳은  함량미달의 근본을

 

합성과  흙으로 빚은 도자기는 한 끗 차이여서 
동강난 쇠붙이도 봉합한다는 크레지글루도 소용없는 듯     
정작 담담한 자세로 허리를 굽히는 표정관리가 필요하다 싶은 
플라스틱에서 파생된 제각각 들뜬 계보로 인해
귀보다 큰 말이 펑펑 튀겨지는 피로감으로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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