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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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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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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2871
9207
2019-02-21
사모곡

 
사모곡
 

 

 

까르르 별이 뜨고
산벚꽃 날아드는 꽃길이었던 것 같다
움푹한 팔짱 끼고 잠깐이지만 걸었던 봄길
한밤중 깨어나 비릿한 꽃잎 깨물며 당신을 생각한다.

 

어느 순간 풀려날지 모르는 팔뚝 사이로 
운명처럼 당신을 보내야 하는 시간
별이 지고 하르르 꽃이 진다
그렇다고 불행한 이별이라 말할 수 없다

 

산벚꽃 하강하는 이별의 감정은 애초에 멀리 두고자 했으므로
모를 일이지만 힘든 이별을 준비해야 할 순간이
꽃잎처럼 내게 오리란 말처럼 들린다

 

이런 밤에는 어떤 위로도 무책임하다
발등에 떨어진 꽃잎의 순리처럼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도 내 안의 슬픔은  
여전히 당신을 향해 눕는다

 


*이 시는 지난 14일 향년 90세로 한국에서 타계하신 필자의 어머니를 그리며 지은 시입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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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2797
9207
2019-02-19
겨울 그네

 
겨울  그네
 

 

 

텅 빈 공원 놀이터
그네와 나란히 서 있다 
말뚝처럼 서서 바라보는 일몰의 겨울끝
비상하는 일만 남았다

 

흔들리는 일이 전부인 그네는  
바람이 밀면 가뿐하게 오를 테지만
날개 잘린 몸을 바람 혼자서
밀어 올리는 일은 쉽지 않을테지요

 

철조망에 매달린 삶의 무게가  
바람의 얼굴로  허공에 오르면 
어느새  몸도 가벼워져서
그네는 바람 앞에 혼절하고 말겠지만

 

바람이 그네를 타고 가는지
그네가 바람을 밀고 오는지 
가벼워진 내 몸도 웬만하면
허공에 높이 오를 수 있겠다고

 

적막처럼 다가오는 헐한 저녁이 
그네로 흔들리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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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2705
9207
2019-02-11
폭설 그 후

 
폭설 그 후
 

 

 

 

큰 눈 내린  숲 속  
폭설이 편백나무 가지를 허무는 것을  보았다.
툭, 어깨를 치듯
고요해서 아픈 줄도 몰랐다

 

상처는 추상 같아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구일까, 얼굴 속 두개의 눈동자
질끈 한쪽 눈을 감고 
어깨를 툭 툭 치는 이 사람
어쩌면 오래 전 왼쪽이거나 오른쪽일 수도 있다 
그러면 나무는 몸을  어디로 세울 것인가

 

찢어진  어깨의 상처가 눈속에 묻혀 
녹기 쉬운 시간으로 내려 앉는다 
비록 상처를 가졌다 해도 
나무는 자신의 절반을 땅속에  묻고 서 있으므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가  있어서   
이제 놀라지 않는다

 

밤새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누운 나무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폭설 후에 다시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 
상처로 눈을 씻는 허공 위로 새들이 날아 올랐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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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2597
9207
2019-02-04
한 방 날리고 싶은 꽃

 
한 방 날리고 싶은 꽃
 

 

 

담장 위에 눈을 뭉치면 돌이 되고   
밀반죽처럼 눌러주면  단단한 주먹이 된다 
불끈 쥔 주먹이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 돌은 어떤 도구로 전락하고야  만다

 

부르르 떨던 주먹 손 
느슨해진 혈관에 혈압을 높히고
불콰해진 광대뼈를 밀어 올리는 일 흔치 않지만 
요즘 들어 착하게 살기 운동에 꽃을 달아 줄 수가 없다 

 

눈이 녹기 전에
한 방 날리고 싶은 꽃이 있다  

 

예고없이 뛰어든 카톡의 무례함
한마디 눈인사 없이 날아든 하루살이처럼
흰 눈이 외등을 덮어도 불끄지 못하는 방 
좀체 쓸어내리지  못한 채  명치 끝에 남아 있다

 

잊어버려, 쿨하게 
이보다 더 한 것도 털고 살았는데

 

담장 위에 쌓인 눈을 바라보다 
털어내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눈의 마음을  읽는다  
장갑에 눈을 털어내듯
불끈 쥔 마음을 풀 때가 되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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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2526
9207
2019-01-26
차렷, 올해의 운세

 
차렷, 올해의 운세
 

 

 

정월 열 하루 오후 근무시간 
치매환자에게 제대로 머리 한대 얻어 맞았다

 

옆으로 잠시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둥근 과녁을 향해 날아든 신의 화살처럼 
아득한 천정 위로 보이지 않던 손 
눈에서 노란 별똥이 떨어지고  순간 휘청거렸다 

 

정신차렷. ?
잠시 방관한 사이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비틀거리던 별똥이 맞은편
희미하게 앉아있는 휠체어를 빙빙 돌린다
차렷, 정신차렷. ?
온몸으로 통증을 감지하며 순간 깨닫는다
정초 액땜치곤 가벼운 훈계라 치자
하필 나를 찾아와 한방 날린 이유가 있겠거니  

 

죽은 나무를 눕히기 위해 밤이 온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돌아서면    
비탈진 골목길이 환하게 보이고
자주 잊고 지내던 손목시계를 확인차 가방에 넣는다

 

누군가 나를 한대 쳤다는 것 
운이 좋다거나  
재수가 없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겠으나 
닥쳐올 내일 앞에 차렷 불호령이라니 
올해 액땜으로 애써 넘기려 한다

 

얼얼했던 통증이 조금씩 지워지니  
문득 금년 운세가 궁금해진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정봉희
72367
9207
2019-01-14
애상(哀傷)

 
애상(哀傷)   
 

 

 

멀리 있어도 함께 밥을 먹는다
수저와 젓가락 가지런히 놓고
뭇국에  가라앉은 고기 한덩어리 건져 올리다
해 떨어지는 기별이 오면  
먼지 옷을 터는 휘청이는 팔을 위해
수북하게  밥상을 차린다

 

혼자 밥을 먹으라는 말 
집에 갈 수 없다는 말이니
뭇국 위에 떠 있는 기름을 건져내며
희미한 물빛으로 돌아 앉아
따뜻한 국밥으로 마음을 지우고 나면
누군가 수저 소리로 다가오는 것이다 

 

출구를 찾지 못한 밤을 돌아나온 적 있으나
어둠에게 밀려 밥상을 치워 본 적 없다
서늘한 며칠을  보냈지만 
사랑은 어디서든 노래가 되어
빈자리  적막을 감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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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2155
9207
2018-12-20
날씨 단상

 
날씨 단상 


 

 

크리스마스를 한 주 남겨둔 날씨치곤 대박이다

 

포근한 햇살 
성격좋은 바람까지 불어주니 얼쑤 좋다 
덤으로 얻은  할인매장 쿠폰같은 날  
나목들은 예기치 않은 햇살에 벗은 몸을 감추느라 왁자하고
겨울 집으로 돌아가던 벌레들 긴 행렬은 느려지고 있다

 

이런날 겨울 파카를 벗어 던지고  달리고 싶어
초록의 잎사귀로 잠 못 이룬 불면을 옆에 끼고 
내 생에 얼마나 남았을까
저리 푸르고 싱싱한 날들
아직 살아있는 날들을  위해
달린다

 

곧  닥쳐올 이순
의미 없는 일에 동기를 부여한 후회와 자책감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은 하나씩 늘었다
흐리고 구름낀 날씨로 정의한다면
지난날 기억은  스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음습한 창고 벽 푸른 곰팡이로 피어나던 날들, 그러나
낯선 땅 질긴 생이었으므로  

 

 12월 햇살에는 아직 뿌연 생이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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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2069
9207
2018-12-15
마법에 걸린 벽시계

 
마법에 걸린 벽시계 
 

 

 

 

벽시계가 멈췄다
잃어버린 기억 저편 
시계바늘이 말뚝처럼 서 있다 
너싱홈 뒤뜰 나무벤치 위에 녹다만 잔설들  
시간을 가리키는  초침이 기억을 내려놓을 때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알전구의 불빛이 흐려진다

 

기억을 저당잡힌 치매 너싱홈 벽시계 바늘은 옆으로 누웠다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움푹한 시선

 

날이 저물자 입상처럼 그림자 길어진다

 

네모난 벽에 한자리 차지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싶었지만 
텅 비어가는 하얀 기억은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지우개로 지워버린  세포들은  재생되지 않는다

 

다만 잠시 머물다 갔던 햇살과 바람
고통과 불행까지 기억의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마법에 걸린 시계 위에  푸른 곰팡이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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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980
9207
2018-12-12
중년 증후군

 
중년 증후군  
 

 

 

간 치지 않은
뭇국처럼 싱겁다 
이 맛 저 맛도 아니다


 
엷은 어둠 속 
허허로운 결핍 애써 감추며
무거운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당신은 밥을 먹고 나는
돌을 먹는 저녁 만찬
둘 만의 단출한 저녁인데 
서로 입을 봉한 채
데면데면  낯설다

 

내가 당신을 낯설어 하듯
당신도 엉거주춤 낯설어서 
아무도 눈치 못 채는 위험한 음모 
한번쯤 꿈꾸었을 것이다


 
음모에 가담을 신청했던 건
순전히 간 치지 않은 
뭇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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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909
9207
2018-12-03
바람의 뒤편

 
바람의 뒤편    
 

 

 

 

한밤중 깨어 바람소리 듣는다
바람은 밤에도 자지 않고 
어둔 길 위를 끊임없이 돌아 다니다
늦은 밤 이집 저집 창을 흔들어댄다

 

어둠의 등을 밀고 가는 숨가뿐 소리
불안을 식별하는 것엔 소리들이 더 치명적인걸까
비탈길 앞질러 가는 바람 소리 등에 업혀
아, 숨막히게 떠밀려가는 삶
그 소리의 뒤편에는 벽에 기댄 채 
어깨를 들썩이는 숱한 그림자가 있을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지던 인사 
막다른 골목에서 울부짖던 비명 
문을 열고 나서면
붉은 눈시울이 저녁 별빛에 옷소매를 묻고
점점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불끄지 못하는 하얀 방 
근래에 부쩍 많아진 듯 
눈발을 타고 떠도는 축축한 소식 들으며
처마밑에 쭈그리고 앉아  
그 아픔을 아프게  듣는 겨울밤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벽을 껴안은 채 
바람의 뒤편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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