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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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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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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736
9207
2018-11-15
낙엽 득도(得道)

 
낙엽 득도(得道)
 

 

 

파르르 몸을 떠는 목숨 하나 
나무 꼭대기에서 겁에 질린 누런 얼굴로
밑을 내려다 보고 있는 저 눈빛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어떻게 말해야 하나  
감기약을 먹고 누워있을 때에도
마른잎들은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커튼은 반쯤 열려 있었고 
달랑, 떨어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네게
고슬고슬하게 지은 고봉밥 한 그릇 먹이고   
가볍고 따순 페딩 잠바 한 벌 건네면서  
언제 떠나와 어떻게 살았느냐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묻고 싶은데 

 

 태양과 달을 한 번도 거역한 적  없는
한없이 착해지고픈 단골  배역을 위해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떨어져야 하는  
연기파 조연 배우의  붉은 거사가  늘 궁금했다

 

바스락 바스락   
내가 잠든 사이 밖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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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594
9207
2018-11-14
울타리의 공법

 
울타리의 공법 
 

 

 

 

허물어져가는 담장 아래 
등을 맞댄 어깨들이 지탱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바람의 저항 앞에 각을 세우고 있다 

 

오른손을 등에 얹고
왼손을 어깨 위에 올리기만 해도 울타리의 
기본 자세는 갖추어진 셈인데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이골이 난 등뼈들은
어깨의 온기가 식어갈 즈음 
울타리의 표정을 금방 알아차리고 
우울한 팔의 근육을 풀어 
잠시 바람의 시간을 배회해 보는 것이다 

 

바람의 틈새로 목을 젖히고
깍지 낀 어깨로 등을 받쳐주는 자세는 울타리의 공법 
등을 댄 뼈들의 식지 않은 온기만으로 
어깨와 휘어진 등의 거리는 좁혀지고 
저 헐한  어깨들의 아름다운 협업이 

 

겨울 들판을 지킬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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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436
9207
2018-11-06
붉은 담쟁이 담을 넘는 저녁

 
붉은 담쟁이 담을 넘는 저녁

 

 

 

야가 왜 이리 늦다냐 
채근하시는 아버지 안달에 발 벗은 어머니
담장 너머로 깨금발하는 어스름 저녁
밭일 마친 저녁상 위로 뭇국 식어가고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 눈 달고 계시는데 
열살 계집  주전자에 목 축이며 재 넘어 오는 길 
걸음이 비틀거릴 때마다 사발 목 길어진다

 

붉은 담쟁이 넝쿨  담을 넘는 가을날
주막집은 5리쯤 떨어진 사거리 골목길에 있다
누구 아부지는 단골잉께 한 사발 더 간다 
주모의 싸구려 립스틱이 주전자의 몸을 핥았다
계집의 벌건 이마를 바람이 스쳐 지나고
굴뚝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주전자의 홀쭉한 뱃살을 눈치 챈 당신이 웃는다  
그런 당신은 말없이 막걸리잔을 채운다
주름진 손이 염소의 젖처럼 처진  
아버지의 세월을  기억 저편    
불혹을 넘긴 계집은 훌쩍이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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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515
9207
2018-11-03
이맘쯤 새벽 퇴근

 
이맘쯤 새벽 퇴근 
 

 

 

 

새벽에 퇴근을 한다.
불 켜진 아이방에 책장 넘기는 소리
철컥, 대문 여는 소리에 내려오는 발소리 
늦은 귀가를 마중해주는 굵은 손이 축축해져온다

 

발꿈치 세운 발걸음 건너방 불빛을 비켜간다.
계단  바닥에 머물던 어둠들 책 읽는 소리에 적막해진다.
새벽 이슬이 풀잎에 몸을 떨고 있는 시간
 아이들 손 씻는 물소리를  엿듣는다
빛에 실종된 푸석한 얼굴이 거울앞에 돌아와 세안을 하는 시간   
 그럴수록 발꿈치 세운 자는 책장의 눈치를 살핀다

 

불빛 새어 나오는 창 너머 
두개의 별이 지상의 어둠을 밝힌다 
여전히 아이들 책상과 논다
이맘쯤 새벽 퇴근은 희망으로 도배되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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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339
9207
2018-10-22
온기가 있는 저녁

 
온기가 있는  저녁 
 

 

 

노천 난롯가에 불을 지핀다
여름내 바람을 안고 흩어지던 마른 잎에     
성냥을 그어대니 주위가 환하다
세일기간을 넘긴 빛바랜 전단뭉치를 
날름거리는 불속에 집어 넣는다
성냥을 든 손이 어둠을 지피는 동안  
소멸의  검은 재가 아궁이에 쌓인다 


 
내 몸을  잠시 지나갔던 온기들 모아
안과 밖을 넘나들며 관계의 원근법으로  한때 뜨거웠던  이름들
단순한 마음이 될 때까지 
타오르는 불꽃 앞에서 가만 호명해 본다


 
어떤 이파리는 반짝 몸을 뒤틀리다
순식간에 재가 되어 맴돌다 흩어지고  
어느날은 연기처럼  뿌옇고 매케한 이름 부르다 목이 붓기도 하지만
 여름내 떠돌다 성냥 한끝으로 재가 되고
연기로 흩어지는 기억의 한 티끌까지
존재의 온기가  재를  품고 있는 동안 
어느새 밤이 왔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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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248
9207
2018-10-15
물의 탁본

 
물의 탁본  

 

 

 

강을 따라 걷고 있네
발바닥에 김이 날 것 같은 뜨거운 광장을 지나니
몸에서 강물소리가 들리네

 

강은  턱을 괴고 앉았네
신중한 자세로 물속에 박힌 돌멩이와 눈이 마주쳤고 
그 위에 돌을 던지니 물의 탁본이 일렁이기 시작하더군 
가장 뜨겁고 마른 시간의 인기척을 모래 속으로 밀어 넣고서
이건 심장의 일 
강물은 둑을 무너뜨리고 범람했었지

 

강이 입술을 열고
물속보다 깊숙한 데서 말을 하려 하네 
그곳은 깊고 푸른 광장이었네 

 

놀랍게도 짤막한 귀결을 얻어 돌아가는 비옥한 산책자
정말 온전히 깊어지려면 
적막한 물소리를 들어야 한다기에   
조금 빠르게 걸음을 옮겼네
물소리와 함께 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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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1073
9207
2018-10-02
저녁의 모서리

 
저녁의 모서리     
 

 

 

만월이 UPS로 배송되어 왔다
발신지가 없는 포장박스를 풀자 
에어캡을 뒤집어쓴  얼굴이 함박 웃는다

 

너는 노랗게 웃는구나 
어젯밤 꿈에 본 해바라기처럼
맑으나 흐린 구름 밖에서
맨발로 뛰어내린 발목 없는 신발을 신고  
달빛에 가려 보이지 않은 노란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흥건히 베개가 젖었다

 

어떤 저녁은 휘영청 사방이 빛났고
어떤 날은 저녁의 모서리를 맴돌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무성한 별들의 눈썹이 아주 단순한 마음이 될 때까지
달은 예의 편백나무 어스름에 파묻힌다

 

세상 한날의  소음을 안고 
고요히 잠든 마을을 내려다 보며
바람소리와 풀벌레 뒤척이는 소리를 잠재우며    
휘영청 
너는 아직도 노랗게 웃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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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0889
9207
2018-09-24
세월

 
세월
 

 

 

기별하지 않고 찾아오는 도둑 
눈앞에 두고도 붙잡을 수 없다 
옷자락 잡아 당겨 감춘다 한들
얼마 후 그만 잡히고 말것을
큰 가방 속에 숨을 걸 그랬나
허둥지둥 하는 사이 손톱은 자라나고
쫓기는 신발은 헐렁하다

 

요즘 같은 세상 
전화나 이메일  카톡방에라도 한마디 남기면 
헝클어진 머리 빗질이라도 할텐데   
사전통보 없이 찾아오는 건 무례한 처사 아닌가

 

반갑지 않은 도둑이 온다면
잠 들은 척 해야지
잠든 척 하는 나를 깨우지는 못할 테니

 

머지않아 지붕이 얼고
흐르던 구름도 멈추는 날
큰길로 들어오는 밤 손님에게
눈가 주름도 귀밑 흰머리도
저항없이 다 내어 주어야 한다

 

그를 막을 자 누구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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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0494
9207
2018-09-16
희망사항 목록

 
희망사항 목록 
 

 

 

 

목이 시려 추울 때는    
손수건 하나만 둘러도 온기가  전해온다

 

이 손수건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친밀에 대해 
잠깐 뒷모습을 놓쳤다가도 
처음부터 있었다고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라

 

딱딱한 직립의 시간을 뒤척이는 동안
헐렁해진 목덜미가 어둠 속에서 
녹슨 못처럼 바람을 맞고 서 있을때

 

 "추워 보여" 그런  말은 누구든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은 얼마나 추운 목을 염려하는지 
살다보면 열 마디 말보다 한 장 손수건에 감동할 때가 있다

 

그런 체온 곁에 한 둘만 있어도  
혼자서도 빵 반죽처럼  곧잘 부풀어 오르고
어느 순간 날아오르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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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0419
9207
2018-09-10
매미, 울음 유감

 
매미, 울음 유감

 

 

 

폭염 속 
당차고 처연한 저 곡비의 울음
여름이 지나가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나른한 오후
논스톱으로 울어대는  녀석들 때문에   
누군가는 달콤한 낮잠을 설쳤다고 짜증을 내고 
지독한 편두통을 앓고 있는 사내는 반사적으로 돌아앉아 턱을 괴고
우울한 백수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상욕을 해대는 
이건 순전히 여름날의  민폐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뜨거운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어둠의 기억을 털어내려는 안쓰러움은 알겠으나      
절망의 검은 모자를 눌러쓴 사람들은 
대낮 눈치없이 울어대는 
맴, 맴, 맴 
소리에 더이상 마음을 열지 않는다 

 

매미가 사람을 배려해야 할 차례  
상식이 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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