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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의 천천히 열리는 사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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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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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2
일본, 유모토 간코 온천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루리코지를 나와서 유모토 간코 호텔로 가는 길에 보이는 농촌 풍경이 평화롭기만 하다. 가끔씩 수증기가 피어 오르는 숲을 지나는데 저런 곳이 뜨거운 온천물이 스며 나오며 김이 나는 것이란다.

 

 

 

 


한참을 야산 사이로 오르니 나타나는 깨끗하고 큰 호텔, 유모토 간코 호텔 겸 온천장이다. 버스가 정문에 서니 기모노를 입은 여인과 양복으로 정장한 중후한 초로의 신사가 우리를 맞이하여 방으로 인도를 한다.

 

 

 

 


다다미가 깔린 전통적인 일본식 방안에는 작은 상이 가운데 차려져 있었다. 앙증맞은 일본 과자 몇 개가 일본 칠기 그릇에 담겨 있고, 서녘으로 넘어가려 산등성이에 걸린 태양빛이 환히 들어오는 방은 정갈하였다. 


가이드의 안내 대로 벽장을 보니 전통 유가타가 곱게 개여져 있었다. 우리는 그저 일본 복장이면 다 기모노인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기모노가 아니라 일종의 가운인 것 같다. 집사람의 등 뒤에 담요가 없으니까. ㅎㅎㅎ

 

 

 

 


유가타로 갈아 입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니 이 또한 커다란 다다미 방에 개 다리 소반 같은 작은 상이 두 줄로 놓여있었다. 그리곤 그 가운데로 두 명의 여인이 진짜로 담요가 달린 기모노를 입고는 일본 정식을 서브하여 준다.


참으로 다양한 음식이 조금씩 조금씩 나오는 것이, 내게는 난생 처음 받아 보는 일본 상이었다. 소위 가이세키 요리(작은 그릇에 순차적으로 조금씩 담겨 나오는 일본의 연회식 코스요리)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종잇장처럼 얇은 복어 회도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저녁 후 한참을 쉰 후에 온천장으로 갔다. 이곳은 남탕과 여탕이 나누어져 있단다. 그 대신 매일 남탕과 여탕이 바뀐단다.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 그래서 습관적으로 들어갔다가는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돌아 나와야 한단다. 


실내 탕은 한국에서 본 대중탕과 비슷하지만 훨씬 컸고, 벽에는 온천수가 나오는 샤워가 여럿 달려 있었다. 문을 열고 야외 노천탕으로 가니 자그마한 연못처럼 바위로 주위를 두른 탕 속의 물 역시 들어가 앉거나 누워있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


바위에 기대어 눕자, 보이는 어두운 하늘에 영롱한 달! 마치 신선 놀음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이 밤이 가지 않았으면… 그럼 집에도 못 돌아 가겠지?


달을 바라 보며 지난 며칠의 여정을 회상해 보았다. 52년 전에 온 식구가 캐나다로 이민 하면서 아버님의 옛 친구들을 만나기 위하여 잠시 들려 본 동경 이후 처음으로 조금 넓게 둘러 본 일본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캐나다, 그리고 그 동안 돌아 다녔던 세계의 여러 곳들을 비교해 보았다. 


참 많이 다른 것도 같고 비슷한 것도 같고… 이 모두가 다 좋은 여행길이었던 것만은 틀림없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1541년 땅 끝을 떠나 바다 끝으로 와서 일본을 개항시킨 포르투갈이란 나라는 과연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였을까? 이제 Dark Age, 즉 암흑시대라고 불리던 중세의 유럽으로 바다를 건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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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65531
10275
2018-04-13
일본 야마구치, 루리코지 5층탑

 

 

야마구치현의 상징과도 같은 루리코지(瑠璃光寺)의 오층탑은 목조로 지어진 일본에서 10번째로 오래된 탑으로, 야마구치의 옛 문화인 오우치 문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문학을 좋아한 오우치 가문의 25대 요시히로가 1399년 오에이 전란에서 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그러나 다시 패권을 잡은 그의 동생 모리하루가 요시히로의 넋을 달래기 위해 1442년경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오우치 요시히로는 일본 열도에서 세력이 남북조로 나뉘어지던 시대에 무로마치 막부의 무장이자 슈고 다이묘였다. 슈고 다이묘란 군사, 정치, 경제적 권리를 획득하여 한 지역을 지배하는 권한을 가진 무로마치 막부의 지방장관을 말하는 직책이었다.

 

 

 

 


오우치 가문은 스스로를 백제 왕족의 후손이라 밝히면서, 임성태자(백제 성명왕의 셋째 아들)가 대만을 거쳐 일본으로 와 타타라(多多良)라는 성씨로 개명하고 이 후 오우치(大?), 토요타(豊田) 등으로 성을 바꾸며 자손들이 번성하였단다. 

 

 

 

 


2009년에는 오우치 가문의 후손이 임성태자의 45세손이라고 하며 백제 무열왕릉을 참배하였고, 당시 100만 엔을 부여군에 기부도 하였다. 결국 일본에는 한국의 DNA가 무척 많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비록 세월의 흐름 속에 그 지방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그 지방색으로 진화되기도 하였겠지만….

 

 

 

 


이번의 일본 여행은 결국 일본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었고, 그래서 우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혈연관계의 나라가 아닌가 생각하였다. 아무리 임진왜란의 피해와 일제 침략 36년이, 그리고 정신대로 끌려 갔던 많은 한국의 여성들이 있었더라도 말이다.

 

 

 

 


이 또한 살아남기 위한, 혹은 자신의 영달을 위한 한국인들이 앞장서서 저지른 일들이었었다는게 많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비록 부끄러운 역사이었지만 있었던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역사가 햇볕을 등지고 어둠 속에서 왜곡되다 보면 그건 이야기꺼리 야사 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서였을까? 그 침략의 세월 동안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에 비해 엄청 대우를 받지 않았던가? 물론 침략자들의 편의에 의한 대우이기는 하였겠지만….

 

 

 

 


류리코지 오층 목탑 주변은 코오잔 공원으로 불리며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100선에 들었단다.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처마의 선과 모습이 백제시대의 우리나라 건축양식과 많이 흡사하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중기의 뛰어난 건축으로 간사이지방 나라현의 호류지 절, 교토의 다이고지의 오층탑과 더불어 일본 3대 명탑 중의 하나다. 야간에는 1년 내내 일몰에서 23시까지 조명을 비추어 계절별로 피는 주위의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그 자태를 드러내는 일본의 국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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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6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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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5
일본 아키요시다이(秋吉台)

 

 

동굴을 빠져 나와 지척에 있는 석회암 고원지대인 아키요시다이(秋吉台)에 도착하면 푸른 초원이 낮은 산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초원에 석회암 바위들이 놓여있는 모습들이 마치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들처럼 보이는 무척 인상적인 풍경이다. 

 

 

 


전 호에서 설명한 것처럼 카르스트(karst)는 용해되기 쉬운 석회암이 지하수에 의한 굴착화작용(또는 공동화작용)을 받아 형성된다. 그래서 세계 주요동굴지역의 대부분은 카르스트 지역이다.

 

 

 

 


카르스트지역(석회암 지역)에 오앤 세월 비가 내려 땅으로 스며들면서 석회암을 녹여 석주를 키우면서 떨어진 물들이 다시 더 깊이 지하로 흘러 들면서 지하수가 되어 흐르다 보면 Sinkhole이 형성되며 동공화를 촉진시키고, 따라서 동굴은 점점 커지고 지표면을 지탱하던 석회암은 점점 얇아지다가 결국은 동굴의 천장이 붕괴되어  ‘돌리네’(doline)라고 하는 함몰지를 형성하게 된다. 

 

 

 

 


돌리네라는 말은 슬라브어로 계곡(valley)이라는 뜻이란다. 우리 나라에도 강원도 문경 굴봉산 아래에서 세계 희귀 습지가 발견되어 ‘문경 돌리네 습지’라고 명명하여 문경자연생태박물관을 설치 하였다.

 

 

 

 


돌리네가 연결되면 폴리예(polije)라는 큰 지대가 형성되는데, 바닥이 편평하며 불용성 잔유물로 된 흙이 덮여 있어 경작이 가능하다. 이렇게 형성된 지역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아키요시다이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막 보고 나온 아키요시동굴 같은 동굴들이 무너지면서 그 위에 흙이 싸이는 동안 미쳐 덮여지지 못한 석회암 바위들이 파란 풀들 위로 하얗게 보이는, 그래서 경이롭게 보이는 지역인 것이다.

 

 

 

 


지질학을 전공하는 학도라면 모를까, 나 같이 경치나 보며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문외한에게는 경이로운 경관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관심을 끌만한 조형물들은 보이지 않는, 그저 평범하게 다리 쉼을 잠시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이곳도 관광지라고 자그마한 선물가게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특산물이라며 광고를 하니 다리 쉼을 하는 동안 손으로 돌리는 아이스크림 콘에 혀가 바빠진다.


아키요시다이는 땅 아래로 400개 넘는 동굴들이 모여 있는 넓은 카르스트 대지로 이뤄져 있어 1965년에 국정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아키요시다이는 계속 넓어질 것 같다. 그 시간이 몇백년, 몇 천년이 될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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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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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9
일본 야마구치 아키요시도(秋芳洞) 동굴

 

 

일본 아키요시도(秋芳洞)는 아키요시다이 산맥에 있는 동양 제일의 대형 종류굴이다. 강 같은 물이 흐르는 동굴 내부로 정비된 길을 따라 오르내리며 한시간 이상을 부지런히 걸어야 들어갈 때와 다른 출구로 나올 수가 있는 큰 동굴이다.

 

 

 


작은 강을 따라 들어가는 동굴 입구의 높이가 24m, 폭은 8m에 이르며, 동굴에서 가장 넓은 곳이 200m, 천장높이는 40m, 가장 높은 곳은 80m에 이른다. 동양최대의 석굴암 종유동굴로 동굴 길이가 10km 에 이르나 일반에게 공개되는 부분은 약 1km 정도이며 굴내의 기온은 4계절 내내 17℃로 쾌적하다.

 

 

 

 


이 동굴을 빠져 나오면 일본 3대 카르스트(karst) 지형중의 하나인 아키요시다이에 이르게 된다. 일본 최대 카르스트 지대로 1/3가량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잇는 곳이다. 

 

 

 

 


카르스트는 용해되기 쉬운 석회암이 지하수에 의한 굴착화작용(또는 공동화작용)을 받아 형성되는 지질학 용어로, 원래 유고슬라비아의 달마치야 연안을 따라 나타나는 석회암 지대인 카르스트 지역에만 적용되는 학술용어였지만, 현재는 의미가 확장되어 이와 비슷한 특성이 나타나는 모든 지역에 적용된다.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정선군에 54만3,000평방미터나 되는 면적에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멀잖은 곳에 화엄동굴이 있다. 고생대 시대에 산호초로 이루어졌다가 융기된 곳으로 알려져 있는 지형이다.

 

 

 

 


규모와 경관 모두 동양 최대의 동굴이라고 불리워지는 만큼, 대자연의 조형미가 끝 없이 펼쳐지는 이 지역의 아키요시도라는 이름은 1926년에 동굴 내부를 탐방한 쇼와천황에 의해 명명되어, 1952년에 특별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은 큰 동굴인 것이다. 중국은 또 중국 대로 자기네 동굴이 세계 최대라고 하지만….

 

 

 

 

 


종유석의 부드러운 색감과 동굴 내에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물소리가 마치 하루하루 조금씩 커져가는 종유 기둥의 성장 숨소리 같은 느낌이다.

 

 

 

 


동굴은 다해서 1km정도이지만 700m지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키요시다이로 통하는 길이 있는데 우리는 일단 동굴을 다 돌고 나오면서 버스로 아키요시다이로 가기로 예정이 되어 족히 한 시간 반 이상을 동굴 안을 오르내리며 탐사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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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65250
10275
2018-03-23
일본 시노모세키 코우잔지(功山寺)

 

 

 

일본 시노모세키 코우잔지(コウジャンジ)는 죠후 성하마을에 있는 우리 말로는 공산사(功山寺)라고 읽히는 사찰이다. 중후한 무사저택(武家屋敷)들이 개울 양편에 있고 그 집을 보호하는 담장을 나마코 벽(なまこ壁)이라고 한다. 

 

 

 

 

 


흙 벽돌로 된 창고 외벽에 평평한 기와를 붙이고 그 이은 틈을 석회로 만든 벽으로 잘 손질되어 있다. 그 벽을 따라 따듯한 햇볕을 받으며 개울에 노니는 물고기와 청동오리도 보며 코우잔지로 올라가는 길이 무사들의 길 답지 않게 서정적이다.

 

 

 

 

 


가끔은 가이마가리(鍵曲)라고, 적의 침입이나 미행을 막기 위해 일부러 직각으로 굽도록 한 길이 있어 짧은 다리를 건너기도 하는 등 거리에는 아직도 성하도시(城下町)의 운치가 짙게 남아 있었다.

 

 

 

 

 


코우잔지는 일본 무인 정권의 시작인 카마쿠라 막부시대인 1327년에 창건되어 조후쿠사(長福寺)로 불리다 1650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본에서 제일 오래 된 당나라 선사양식사찰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이 되었다.

 

 

 

 

 


야마구치현은 혼슈(本州) 끝에 위치하며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현 중 하나다. 기후는 온난하며 지진도 비교적 적은 살기 좋은 곳이다. 또한 삼면이 바다로 내륙은 아키요시다이(秋吉台)와 긴타이쿄 등 많은 경승지로 둘러싸여 있어 4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주도한 사상가, 정치가를 다수 배출하며 근대 일본 탄생의 원동력이 된 지역 중 한 곳이다. 그 영향인지 현재도 보수•혁신을 가리지 않는 정치색이 강한 지역으로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하여 일본에서 내각총리대신을 가장 많이 배출한 현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역대 총리 62명(96대) 중, 8명이 야마구치현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아마도 풍수가 억수로 좋은 곳인가 보다.


우리가 잘 아는 안중근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とうひろぶみ 伊藤博文)도 이곳 출신이다. 우리에게는 침략의 원흉이지만 일본에서는 꽤나 존경 받는 선각자의 한 사람이란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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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6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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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일본 시모노세키, 단노우라 전망대

  

일본 시모노세키(下?, しものせき)는 야마구치현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후쿠오카현의 키타큐슈와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가 간몬대교(?門大橋)로 이어져 있고, 그 아래로 흐르는 간몬 해협의 물결에는 일본 역사의 주인인 천황을 바꾸어 놓은 단노우라 해전의 역사와 한국 역사에 얼룩진 일제 36년간 관부연락선의 기항지로서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낸 현해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군벌들의 세력다툼에는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천황을 끼고 도는 것이 관례였던 모양이다. 일본의 80대 천황(재위: 1168년 ~ 1180년)인 다카쿠라(高倉, たかくら) 천황의 아들로 겨우 3살에81대 천황에 오른 안토쿠 천황을 등에 업은 세력은 다이라 가문 일족이었으나, 신흥세력인 미나모토 가문 군대가 다이라 가문을 야시마 전투에서 격파하면서, 또 한 차례 해상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주에이 4년(1185년) 3월 24일, 단노우라 전투에서 다이라 가문이 패전하면서 일족은 멸망하였고, 안토쿠 천황도 이때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당시 나이는 8세였다.


이 후의 미나모토 가문 일족은 다카쿠라 천황의 4째 아들, 즉 안토쿠 천황의 동생인 고토바를 82대 천황으로 옹립하며 패권을 쥐게 된다. 이 과정이 단노우라 해전인 것이다. 한국의 이조시대와 별 차이가 없는 정치인가보다. 하기야 이 당시에도 벌써 많은 일본사람들의 피 속에는 한국, 아니 조선사람의 DNA가 흐르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조선은 다른 나라였기에 1607년에 조선통신사가 이곳을 방문한 이후 시모노세키는 조선통신사를 접대하는 장소의 하나가 되었다. 


시모노세키 동부에는 높이 268미터의 "히노산"이 있고, 산 정상에 "히노야마 공원"이 있다. 이곳에 있는 단노우라 전망대는 4면이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칸몬 해협"은 물론 현해탄까지 360도의 경치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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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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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
일본 후쿠오카 고쿠라성(小倉城) 정원

 

 

 

 일본 고베항에서 호화여객선이라는 썬플라워(Sun Flower Ferry) 타고 오이타항으로 밤새 이동하는 뱃길이다. 항구를 빠져 나와 어두운 바다로 나서니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칠흑 같은 밤이다.

 

 

 


지나 온 길을 되새기다 든 잠에서 깨어보니 오이타 항구가 멀리 보이며 벌써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배에서 내려 우리를 맞는 새 버스를 타고 일본의 농촌을 창가로 보며 키타큐슈 시를 대표한다는 코쿠리성 정원을 보러 갔다.

 

 

 


가는 길목에 보이는 농촌 풍경은 경상도지방을 돌며 보았던 한국 농촌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지만 촌락들의 집들이, 그리고 사는 모습들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두 곳에서 다 이방인인 나의 눈에는 좀더 정비가 잘 되고 깨끗하며 과장되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 같았다. 

 

 

 


제법 큰 도시 키타큐슈의 중심에 있는 고쿠라성은 그 생김새가 규모가 작을 뿐, 오사카성의 천수각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여기에서도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그 성의 가운데 있는 건물을 천수각이라고 부른다.

 

 

 


13세기 중반 무라사키가와강 하구 서안의 언덕에 축성된 성이 언제 완성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본의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전쟁으로 성주가 바뀔 때마다 성의 이름도 바뀌어서 가쓰야마성[勝山城], 가쓰노성[勝野城], 유비쓰키성[指月城], 유킨성[湧金城] 등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근세 성곽으로 재탄생한 것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가담해 공을 세운 호소카와 다다오키가 부젠 국 고쿠라 번 40만석을 영지로 받아 나카쓰 성에 입성한 후, 1602년부터 7년에 걸쳐 고쿠라 성을 개축해 거처를 옮겼다. 

 

 

 


이 시기 성하 마을도 정비하여, 무라사키가와 강을 양분해 서쪽에는 사찰을, 동쪽에는 상공업자와 무사마을을 조성했다.

 

 

 


이 곳의 천수각(天守閣)은 5층이 4층보다 규모가 더 크게 지어진 특수한 설계로, 오사카의 천수각과 더불어 일본의 대표적인 성이라고 불린다. 

 

 

 


이 곳 또한 1865년의 내전으로 천수각은 불에 타 없어졌으나, 돌담과 해자 등은 남아 있어 1954년에 4층 6계의 천수각(天守閣)으로 복원된 것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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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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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일본 교토, 후시미이나리진자

 

 

 

일본 교토의 후시미이나리진자(伏見?荷神社)는 영화 ‘게이샤의 추억’ 촬영지로 서구에 알려졌기에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게이샤의 추억’은 2차 대전 후 폐허 속에서의 생존을 위해 기생의 길로 들어선 한 여인의 삶을 조명한 영화다. 이 여인이 끝도 없이 늘어선 붉은색 도리를 지나는 장면들을 삽입하며 감독이 의도하는 인생살이가 펼쳐지는 영화다. 

 

 

 

 


여러 신에 의지하던 일본의 무속 신앙이라고는 하지만 신앙의 크기가 시주자의 재력의 크기로 비례하며 비교되는 기복신앙의 결정체로 만들어진 후시미이나리진자를 돌아보노라니 욕심의 끝이 안 보이는 것 같다. 하긴 인간들의 세상이니 동양이나 서양이나 매 일반일 텐데 그 끝이 보이겠는가!

 

 

 

 


이나리는 곡물의 신(쌀)을 모시는 일본의 전통 종교의 신이며, 여우는 이나리의 전령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가끔 맛나게 먹는 이나리 스시(유부 초밥)가 생각난다. 이나리진자는 전국에 3만개 이상 있다는데 그 중에 이곳 후시미이나리진자가 총 본궁이란다.

 

 

 


후시미이나리진자 뒤로 기증한 사람의 재력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세워진 도리의 기둥마다 좌우로 붉은 목도리를 맨 여우석상이 서있다. 크기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표정도 다른 모양으로 도리를 세워준 기증자에게 행여 악귀가 달려들까, 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들이 좀 섬뜩하기도 하다.

 

 

 


간사한 여우의 귀엽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그 뒤를 이어 야산을 도는 약 4km 정도 이어지는 붉은 도리 터널이 있다. 센본도리이(千本鳥居)라 부르며 이것이 이 신사를 명소로 만들었다.

 

 

 

 


이곳은 아마도 7호나 8호 정도 되는 작은 도리들로 이어져 있어 전부 둘러 보려면 약 2 시간이 걸린다 하여 기권하고 돌아섰다. 결국 같은 붉은 기둥의 터널에 기증자들의 이름만 다를 터이니….

 

 

 

 


새해 첫 참배(하츠모데)에서 킨키 지방에서 가장 많은 참배객을 기록하고 있는 후시미이나리진자는 711년 이로코노하타노키미(伊侶巨秦公)가 이나리 산의 3개 봉우리에 하타(秦) 씨족의 수호신을 모신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타 씨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에서 도래한 이주민이라고 하나, 가야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신라의 이주민이라는 설도 있는 등 여러 가지 이설이 있는데, 어찌되었건 고대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온 이주민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결국 이곳 또한 그 뿌리는 한국에 두고 있는 셈이다. 설립 이후 일본 역사에서 권위 있고 유명한 신사로 알려져 왔다. 현재의 본전 건물 등은 오닌의 난 당시 소실된 뒤 1499년 재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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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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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3
일본 교토(京都) 기요미즈데라(?水寺)

 


  

‘물이 맑은 절’이라는 뜻의 기요미즈데라(?水寺, 청수사)는 교토가 도읍이 되기 이전인 798년 세워진 사원이다. 창건 이후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 만도 9번이나 되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기를 반복하던 중 에도 시대 초기인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스(德川家光)의 명령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교토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가을에 단풍이 아름다운 사찰인 기요미즈데라 역시 과거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人)이 건축한 사찰이다. 교토를 일본의 천 년 수도로 만든 장본인인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아버지는 일본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는 백제의 무녕왕 자손인 다카노노니이가사(高野新笠)였다.

 

 

 

 


간무 천황의 오른팔 역할을 한 일본 최초의 쇼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 역시 백제 귀족 출신의 도래인이었다. 이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가 간무 천황의 명을 받아 798년 기요미즈데라를 건축하였다.

 

 

 

 


절벽에서 10m 정도 밖으로 튀어나온 부타이(난간)는 15미터의 느티나무 기둥 139개가 받치도록 설계했으며 구조물과 지지대에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그 당시 기술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건축물은 백제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기술이 만들어낸 작품인 것이다. 

 

 

 


언덕 위로 돌출된 본당 마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멀리 보이는 교토의 경관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1995년 교토의 대지진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절벽 옆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3곳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있는데 왼쪽에서부터 첫 번쨰 물줄기를 마시면 건강을 얻고, 두 번째 물줄기를 마시면 학업에 뛰어난 효험이 있고, 세 번째 물줄기를 마시면 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까지 마르지 않는 물줄기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기요미즈테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은 선물가게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고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서울의 명동거리 뺨칠 만큼 걷기가 어렵다. 기요미즈테라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연간 400만 명 이상으로 교토를 들리는 관광객 4800만 명 중 거의 10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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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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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5
일본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

 

일본 불교 화엄종의 총본산이자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인 동대사. 일본말로는 도다이지. 우리 나라 절의 대웅전에 해당되는 다이부쓰덴(大?殿)에 들어가면 앉은키 15m의 청동불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원래 있던 청동불상이 소실되어 기존 규모의 3분의 1로 축소하여 재건한 것이란다.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일본 대표 건축물인 도다이지는 쇼무 천황(聖武天皇)에 의해 743년 건축되었는데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인 양변(良辯), 승정(僧正)이 사찰 건설에 크게 공헌을 하였으며, 백제의 고승 행기(行基) 스님은 다이부쓰덴의 비로자나불상 건설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고 한다. 


현재 행기 스님의 동상이 긴테츠 나라역(近鐵 奈良驛) 앞에 위치하고 있어 도다이지 건설을 위해 동분서주한 행기 스님의 공헌을 인정하고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자 관광지로 일본인의 오랜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백제인의 지혜와 열정이 담긴 곳이어서 인지 한국 관광객도 나라를 방문할 때 꼭 들를 정도로 인기 사찰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는 이런 커다란 건축물이 없는 것일까?

 

 
 

 

 

 

 

 

 


 

 

 

 

 

 

 

 

일본의 ‘고도 나라’ 하면 사슴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다. 요즈음에 와서는 나라의 상징으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 ‘꽃사슴’들의 개체수가 너무나 많아지는 바람에 농작물을 마구 먹어 치워 농민들의 골칫덩이가 됐다.


 이에 나라현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사슴 포획을 시작했으며, 이는 일본 정부가 1957년 나라의 사슴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나라의 사슴은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 신의 심부름꾼으로 여겨져 신성시 돼왔다. 768년에 창건됐다는 나라의 신사 ‘가스가다이샤’가 신으로 모시는 ‘다케미카즈치’가 하얀 사슴을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슴들이 공원에서만 얌전히 지내는 게 아니다. 인근 농가의 논밭에 들어가 농작물을 먹고 헤집어 놓는 일이 많아, 농민들의 피해를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결과이니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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