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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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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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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heesoo
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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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3
2018-12-15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

 

 
(지난 호에 이어)
사도신경은 주 후 325년의 The Nicene Creed 및 수정, Alexandria 주교 Athanasian 신조 및 주후 451년의 Chalcedon Creed 등을 통해 완성 되었고, 가장 보편화 되어 있는 신조다. 한편 사도신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교단마다 교단교리에 맞는 신조를 마련했다. 


로마 카톨릭교는 1545년의 The Canon of Trent, 1560년의 Roman Catechism, 1564년의 The Creed of Pope Pius IV, 1870 년의 Pope Pius IX 의 신조 등을 통해 성당과 교황의 위치를 강화했다.


한편 루터교는 1530년의 The Augsburg Confession, 1537년의 Apolgy, 1529년의 The Larger and Smaller Catechism, 같은 해의 The Articles of Smalcald 및 1577년의 The Formula Concordice 등을 통해 루터교의 교리를 강화 시켰다. 


루터교리의 핵심은 인간의 구원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Sola fide, by faith alone)으로 말미암는다는 것과 주의 만찬(Eucharist)에 관한 것이며 포도주가 주님의 피로 변하고 떡은 주님의 몸으로 변한다는 주장이다.


칼빈교의 신조는 Five Solas에 중점을 둔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by Scripture alone, 오직 믿음 Sola fide, by Faith alone, 오직 은혜 Sola gratia, by Grace alone,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Christ alone,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glory to God alone을 모토로 하며 또한 사도신경을 기초로 한다. 


1532년의 Confessio Tetrapolitana 신조, 1536 년의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2년의 The Heildelberg Confession, 1563년의 The 39 Articles of the Church of England, 1619년의 The Canon of the Synod of Dort (화란의 도시) 그리고 특히 1643-1649 기간에 작성된 유명한 The Confession and Catechism of the Westminster Assembly 등이 현 장로교의 신조 내용이다.


신조란 기독교인의 고백이다. 교단마다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어떤 교단은 죄에 중점을 둔다 하면 어떤 교단은 구원, 어떤 교단은 삼위일체의 관계, 어떤 교단은 성례식 특히 주의 만찬에 비중을 둔다. 성경이 중요한 이유는 과연 이러한 다양한 신조가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반영 하느냐를 확인하는데 있다. 


2.2 성경의 필요성


성경의 필요성은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20: 31)


성경이 왜 필요한지 자세히 보자.


1) 성경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필요


인간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보지 못함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다시 말 해서 우리는 불가지론 자다. 창세기 초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담의 불복종 때문에 인간은 타락하고 말았고 하나님과 분리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 하시기를 “그 동산의 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네가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 16-17)


사람은 그 후 하나님을 직접 알 수 없게 되었다. 오직 특별계시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계시에는 두 개의 유형이 있다. 하나는 일반계시 또 하나는 특별계시다. 전자는 하나님의 피조물 통치를 통해 계시된다. 우주만물 즉 하늘, 해, 달, 별, 동물, 식물 등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신다. 이 계시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세상 창조 때부터 그분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나 알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다."(로마서 1:20)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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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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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3
2018-12-12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5)

 

 
(지난 호에 이어)


신학의 유형을 보자.


(1) 카톨릭 신학


카톨릭신학은 진리의 원천으로서 성경 외에 외경(Apocryphal/Deutrocanonical)을 추가 한다. 성경과 외경과 교황의 가르침을 토대로 카톨릭 신학이 세워졌다.


(2) 인간중심 신학(Humanist Theology)


성경은 하나님 말씀의 일부분만 인정한다. 왜냐하면 66권의 책 중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비과학적 및 비논리적 부분으로 치부한다.


(3) 성경의 신비주의론


성경은 하나님 말씀 외의 성스러운 것이 있다. 성경은 코란 같이 성스러운 책이며 성경을 통해 기적이 일어난다. 이 설은 독일 및 미국의 복음주의에서 볼 수 있다.


(4) 성경의 절대주의론(Sola Scriptura, by Scripture alone) 


성경의 말씀은 틀림없는(Non-errant) 말씀이다. 이 이론이 개신교의 전통적 신학이다. 신구약 66권의 책은 완벽하다(Perfect). 더 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나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자에게 증언한다.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무엇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 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할 그의 몫을 없애버리실 것이다." (요한 계시록 22: 18-19)


2) 신조를 위한 성경의 중요성


신조(Creed)는 성경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왜냐하면 성경의 해설에 따라 신조는 변할 수 있고 성경의 권위는 신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잘못된 신조가 형성될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신학 발전 과정에서 다양한 성경 해설로 인해 다양한 신조가 채택되었다. 그러면 왜 다양한 성경 해석이 나타나게 되었나? 이유는 성령님의 도움 없이 인간의 뜻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곧 성경의 모든 예언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 한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후서 1:20-21) 


종교개혁시대에 제대로 된 신조가 등장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성경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 초기에는 성경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제대로 해석을 못 하였다. 중세기를 암흑의 시대라 한다. 


교황 그레고리 1 세 때 성당 중심의 신조를 작성해 로마 카톨릭교 믿음의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채택된 신조가 현 시점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 신조는 11세기의 스콜라식 신학을 더욱 강화했다. 카톨릭 신조의 핵심은 성경적 신조와 인간 이성간의 조화를 제공하는 새로운 신조다. 


종교개혁 시절 루터 및 칼빈은 완전히 성경에 입각한 신조를 마련했으나 최근에 와서는 그 권위가 약화되는 추세다. 신조의 발전 추이를 요약한다.


기독교 신조의 역사를 보면 가장 오래된 신조가 사도신경이다. 이 신조는 6세기 전에 형성된 신조이며 저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사도들이 쓴 것은 아니다. 다만 사도들이 가르치던 기독교 신학을 반영했기 때문에 사도를 연결했을 것이다. 


사도신경은 수많은 신조 중 가장 짧고 기독교 신학을 설득력 있게 요약한다. 이 신조에는 창조, 삼위일체, 예수님의 탄생, 속죄, 승천, 부활, 인간의 구원, 성도간의 관계, 주님의 재림과 심판 등이 들어있는 신조다. 


사도신경을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이 있었다. 토론대상이 총독 빌라도와 관련 되었다. 한글판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Suffered by Pontius Pilate“ 가 된다. 그런데 영어판에는 ”under Pontius Pilate" 라고 되어 번역을 하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가 아니라 “본디오 빌라도 통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라고 되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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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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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3
2018-12-04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4)

 
 
(지난 호에 이어)


제 2장 기독교 성경관(Christian Doctrine of the Bible)


앞에서 현 기독교의 위기의 본질을 살펴보았다. 위기의 원인은 모든 진리의 원천인 성경을 떠난 신학과 믿음을 구상하는데 있다. 성경만이 진리의 기준이다. 이 기준을 경시한 신학은 방향 없는 신학이 될 것이다. 본 장에서는 성경의 중요성, 성경의 필요성 및 성경의 내용을 논의 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 마찬가지로 성경도 시간을 타지 않는다. 


2.1 성경의 중요성


성경과 기독교 신앙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참다운 믿음은 성경을 배우고 믿는 행위다. 그런데 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오늘의 기독교는 점점 형이상학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경을 오해 하는 경우가 있다. 성경의 역사적 중요성과 기독교 신조(Creed) 관련 중요성을 알아본다.


1)역사적 중요성


기독교 신학에는 지난 2 천년 동안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성경 계시에 어긋나는 변화도 있었다. 성경의 중요성은 잘못된 신학 변천을 평가하는데 기준이 된다. 


기독교 초기의 주요 관심사는 예수님의 인성(Manhood) 및 신성(Godhood)에 관련 되었다. 약 200년의 토론 후 주후 325년의 Nicaea 회의에서 예수님은 완벽한 인간이고 동시에 완벽한 신이라고 인정을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기독교의 핵심인 희생과 순종을 위해 인간으로 태어나셨다.


"너희 안에 이 믿음, 곧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그 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면서도 하나님과 동등 되심을 취하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 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 (빌립보서 2:6-8)


중세기 이전의 토론은 교회론(Ecclesiology)이었다. 제 4세기에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이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면서 기독교(당시 카톨릭)는 급성장을 했으나 교회에 대한 논쟁은 더욱 활기를 얻었고 분쟁을 유발했다. 분쟁은 6세기까지 계속 되다가 교황 그레고리 1 세(Gregory 1st)가 교회론을 정리하게 되었다.


가장 주목할 내용은 교황이 기독교 바다(Sea of Christiandom)를 통치하게 되었다는데 있었다. 하지만 11세기에 와서 삼위일체(Economy of Godhead) 문제를 둘러싸고 카톨릭 교회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분리되었다. 


토론내용의 추세를 보면 중세기 후반까지는 구원론이 주류였다.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스콜라식(Scholastic)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로마 교황의 권력을 강화하게 했다. 아퀴나스의 주장 중 가장 역사적 이론은 구원이 인간의 업적 (Deeds)에 따라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카톨릭교 및 몇몇 개신교단이 지지하는 구원관이다. 하지만 칼빈교 및 루터교를 포함한 개신교의 구원관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은총(Sola gratia, by grace alone)으로 말미암는다고 주장한다. 즉 구원은 자비스러운 하나님이 선물이라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니,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로마서 1:17)


종교개혁 시대는 성경이 교황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종교개혁 시절의 정열은 식어지고 성경의 권위는 떨어졌다. 심지어는 성경의 말씀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다양한 성경 해석이 등장했고 교회는 사방팔방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는 무속종교화 및 신비화가 되었다. 


자유신학(Liberal Theology)이 등장한 것이 이 때였다. 자유신학은 독일 신학자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가 헤겔리언(Hegelian)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시킨 신학이다. 이 신학의 핵심은 진리의 인식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고 인간의 이성에 의존한다는데 있다. 그런데 문제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이성은 역시 죄 가운데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진리를 우리는 알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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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71820
9193
2018-11-26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3)

  

(지난 호에 이어)


1.3 인본주의적 기독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분에게서 너희가 그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것을 나는 이상하게 여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처럼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 (갈라디아서 1: 6, 9)

 


현 기독교의 또 하나의 문제가 인간 중심의 기독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 기독교는 종교 개혁자들이 바로 세운 참다운 기독교 원형과는 너무나 다른 상태에 있다. 
종교 개혁시대의 기독교는 완전한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였다.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는 오직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하는 종교이며 믿음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기 위한 것이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사람아, 참으로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박 하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지은 분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라고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로마서 9:20-21) 


인본주의적 기독교는 인간 지성에 의존하고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기독교다. 문제는 인간 이성은 인류 조상의 죄 때문에 타락한 이성이라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평소 전통 보수적 교파도 인본주의를 택한다는 것이다. 


인본주의는 결국 교회를 변질시키며 하나님 중심의 세계보다 인간 중심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인본주의적 믿음은 인간의 허영과 과다한 자존심에서 온다. 바리세인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겸손한 세리를 택했다.


"바리세인은 서서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처럼 착취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가 아니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은 것을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제가 얻은 모든 것들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향해 눈을 들지도 못하고 다만 자기 가슴을 치며 말하기를 ‘하나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저 바리세인보다 이 세리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자기 집으로 내려갔다. 자신을 높이는 자마다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누가복음 18: 11-14)


기독교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위기는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과학, 이성적 철학 및 첨단 기술 개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산다는 것에 있다. 이들은 하나님을 역사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들은 우주 만물을 창조, 주관 및 보전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외면한다. 


기독교의 무속 종교화, 신비주의화 및 인본주의화의 부정적 파급효과는 심각하다. 이 파급효과는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고 믿음을 세속적 부귀영화의 수단으로 착각하고 교회생활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변질된 공동체로 전환시키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기독교의 비극은 바로 하나님 중심의 교회 생활이 아니고 인간 중심의 교회 생활이라는데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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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71740
9193
2018-11-18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2)

  

(지난 호에 이어)


1.1 기독교의 무속종교화 (Shamanic Christianity)


오늘의 기독교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 심각한 문제는 기독교의 원칙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데 있다. 참다운 기독교 신앙은 오직 성경에서 오는 계시적 진리에 입각해야 한다. 성경적 계시에 따라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게 된다. 성경을 모르면 엉뚱한 것을 믿음의 대상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 네가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고,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므로 나도 네 자녀를 잊을 것이다.” (호세아 4:6) 


이 구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한편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만족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러한 선물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알고 경배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무속종교에는 특징이 몇 개 있다. 첫째 만물이 믿음 대상이 된다. 해, 달, 나무, 돌, 바다 등 모든 것이 우상 대상이 된다. 둘째, 신이 없다. 신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계시가 없기 때문이다.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게 될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현상으로 바꾸었다.”(로마서 1:23)


셋째, 무속종교의 목적은 오직 인간의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다. 무속종교의 핵심은 무당이 알지 못하는 ‘신’과 사람 간의 중재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최근 기독교인 일부분은 목회자가 무당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하나님 및 목회자에 대한 치욕이다. 참다운 기독교인의 신앙 목적은 부귀영화 같은 세속적 욕심의 만족이 아니다. 구약의 삼대 언약 (민족, 국토, 통치)은 보기에 세속적 욕망 같이 보이지만 실은 신약에서의 영적 축복의 그림자다.


중요한 것은 참다운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세속적 부귀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2 신비주의 적 기독교


신비라는 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독교는 성경의 계시에 입각한다.


"곧 내가 이미 대략 기록한 대로 그 비밀이 계시를 따라 내게 알려지게 된 것이니 너희가 그것을 읽을 때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배소서 3:3-4)


기독교도 신비에 기초를 둔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비는 숨어 있는 신비가 아니다. 그것은 계시된 신비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신비는 구약에서 예언했다. 성경에는 많은 신비 현상이 있다.


반면에 세속적 신비는 계시된 신비가 아니다. 마술, 최면, 속임수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참된 신비라고 할 수 없으며 이론적 혹은 신학적 근거가 없다.


불행한 것은 성경에 입각한 기독교 신비가 세속적 신비로 오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계시 신비 중 세속적 신비와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 신비는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독교 신비는 계시되어 있지만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이성과 마음으로 이해가 된다. 유감이 되는 것은 기독교인 중에 근거 없는 신비를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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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71610
9193
2018-11-15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

 

본보는 금주부터 정희수 교수의 새 칼럼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  을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서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개신교)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염려한다. 한국의 기독교인 수는 1400 만 명에서 700 만 명으로 극감했다고 한다. 캐나다 인구의 80%가 크리스천(기독교 및 카톨릭교)인데 20% 정도가 성당 혹은 교회에 가서 미사 혹은 예배에 참석한다고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 한다는데 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Loving)에는 지켜야 할 과정이 있다. 인간의 사랑의 과정을 보면 우선 상대방을 알아야(Knowing) 한다. 다음 단계는 상대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Accepting) 한다. 다음 단계는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발견해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며 좋아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하고 도와주고 싶은 감정으로 발전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 기독교의 현 위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른다는데 기인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아나?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과언하면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 기독교 위기는 우리가 성경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잘못 아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본 기고문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배우는데 목적이 있다. 필자는 목회자도 아니고 성경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하나님의 사랑계명을 이해하려고 철학, 신학, 사회학 등을 살펴보았다. 이 기고문의 내용은 필자가 그 동안 느낀 것, 본 것, 들은 것 및 배운 것을 독자와 나누고자 하는데 있다.


본 기고문의 내용을 소개한다. 우선 현 기독교의 문제를 제기한다. (1)기독교의 변질을 설명하고자 한다. (2)필자가 믿는 성경관(Doctrine of the Bible)을 위해 성경의 중요성 및 필요성을 토의한다. 성경의 내용을 배운다. 특히 구약과 신약간의 연계성, 통일성 및 일관성을 배운다. 구약은 하나님의 삼대 언약 섭리를 기록한다면 신약은 언약의 성취 섭리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아본다.


(3)신관 (Doctrine of God)에서는 하나님은 누구신가(Whoness) 및 무엇을 하셨나 (Whatness)를 토의한다. 삼위일체 (Trinity), 예수님의 신성 및 인성에 대한 역사적 토론, 하나님의 속성 및 업적을 배운다.

 

(4)기독교 인생관(Christian View of Humanism)에서는 타락 전 인간과 타락 후 인간을 비교한다. 타락된 인간이 어떻게 중생된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악한다. 


(5)기독교 역사관(Christian View of History)에서는 기독교 역사관의 원리(유신론적 역사, 직선적 역사, 종말론적 역사) 그리고 기독교 역사관의 특성(역사섭리에 대한 주관성, 긍정성)을 알아본다. (6)기독교 세계관(Christian View of the World)에서는 세계의 구성과 본질(신적 섭리로 구성된 세계, 유한적 세계), 세계의 가치와 목적 등을 통해 하나님과 세계간의 관계를 배운다.


(7)교회관(Ecclesiology)에서는 교회의 정리, 특징 및 역할이 주요 토의 내용이 된다. 교회는 교인의 집합(보이는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집합(안 보이는 교회)이며 예수님의 몸이다. 교회는 4 개의 모형(조직, 공동체, 설교, 사회보급)이 있다. 교회는 성스럽고 통합적이고 전반적이다. 


(8)기독교의 삶(Christian Life)에서는 현시점에서 참다운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토의한다. 토의 내용은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및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 계명을 지키느냐 등을 포함한다.


필자의 신관을 정리하는데 많은 서적 및 신학자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인 저자 중 박용기 목사(성경적 기독교, 2010), 김규욱 목사(기독교 신앙의 원형 2008), 서구 신학자 중 William C. Placher (Essentials of Christian Theology, 2003), Owen C. Thomas (Introduction to Theology, 1983) 및 A.A. Hodge (Outline of Theology, 1999) 등의 책으로 도움을 받았다. 


박용기 목사 및 김규욱 목사는 필자의 기독교관을 정리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이 분들의 기독교관은 필자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었다. 그분들에게 감사한다. 본 기고문이 독자들간에 기독교에 대한 생산적 토론이 있기를 바라며 아울러 신앙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제 1장: 기독교의 변질(Deterioration of Christianity)


시간은 변화를 초래한다. 기독교도 변했다.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 부패에서 탈출해 16세기의 종교개혁이라는 엄숙하고 위대한 일을 하여 인류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놨다. 종교개혁 후 5 세기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불행히도 루터 (Luther) 및 칼빈 (Calvin) 종교 개혁자들이 마련한 신학과 기독교 신앙은 세월 속에서 근본정신이 유지되지 못하고 변질되거나 약해지고 말았다. 기독교 신앙의 변질의 내용을 보면 무속종교화, 신비주의화 및 인본주의화라 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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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5
이민 부모의 자녀 교육 전략(35)

  

(지난 호에 이어)


7. 결론


우리가 이 곳에 기대와 희망을 품고 온지 50년이 지났다. 이민사회의 발전은 단계별로 진행된다. 정착, 적응, 통합, 현지사회화가 바로 이러한 단계다. 우리 공동체는 1세들이 어려운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한 덕분에 정착단계는 무사히 통과했다.


퀘벡지역의 27대 한인회장단까지는 한인회가 직 간접적으로 교민의 정착을 도왔다. 적응 지원은 26대 회장 때 정점을 이루었다. 불행하게도 28대부터 소모적 외부 세력의 압력으로 인해 적응지원은 사라졌다. 


우리 자녀들이 바야흐로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연구자료에 의하면 유색민족 자녀들의 높은 학력 및 최신 기술 능력에도 불구하고 각종 차별 대상이 되고 취직 및 진급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이유는 그들이 현지문화에 대한 지식 및 흥미 부진, 불어 능력, 불어 발음, 현지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 퀘벡 주에 대한 소속감 결여 등 다양한 이유다. 이 모든 특징을 종합해 반 퀘벡시각(Anti-Quebec Perception) 이라 하겠다.


자녀들은 이곳 교육체제 안에서 학업을 했다. 그런데 왜 반 퀘벡시각을 갖게 되었나? 답은 1세들의 반 퀘벡정서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민 1세들의 이러한 자세는 이해가 간다. 불어장벽, 1977년 불어헌장의 압력, 퀘벡인의 이민에 대한 견제 자세, 생계기반 확충의 어려움 등이 결합하여 반 퀘벡정서를 형성하게 했다. 


이러한 퀘벡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파급효과는 정착기에는 심각하지 않았다. 앞으로가 문제다. 우리는 적응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적응단계의 1세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로 하여금 현지사회를 더 잘 알고 현지사회 문화를 받아드리고 현지인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현지인 생활 속에서 일대 일로 경쟁 및 협조할 수 있는 심리적 준비와 실질적 체험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민 자녀를 위한 1세 부모의 역할을 묶어서 페어런팅(Parenting)이라 하자. 페어런팅은 자녀의 유치원 시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자녀의 사춘기 전 부모의 적응 지원 활동은 스포츠, 연극, 놀이, 아이들 생일 파티 등에 참석함으로 자녀들이 현지사회를 알고 인맥을 구축하게 하는 것이다.


자녀가 사춘기 때의 부모의 적응 지원 활동은 자녀들이 현지 아이들의 가치관을 어느 정도 모방하게 함으로서 그들의 현지사회 진출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한편 자녀가 성인이 될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녀들의 결혼, 취직 및 진급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수집하여 자녀와 상담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자녀 적응 지원의 상당 부분은 한인회가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인회가 법적인 한인 공동체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한인회가 할 일은 한인 사회에 대한 긍정적 이민지를 구성하여 현지인이 보기에 현지사회를 알고, 현지 사회 문화를 받아 주고 현지인과 가까이 지낸다는 이미지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우리 자녀들의 취직, 진급, 사회 생활, 직장 생활에서 만족을 가능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한인회가 이러한 일을 하려면 교민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반 개방적 세력이 우리 자녀를 위해 갈등 대신 화합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화합은 일정 세력지배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화합은 공익을 위한 타협, 상호이해 및 협조다. 


지금의 갈등이 계속되면 그들에게도 좋을 것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정적 동기는 교민들이 다 아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위해 우리 모두 합심하여 건전하고 진보적이고 개방적 한인 공동체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인회의 적응지원 사업이 성공하려면 부모들이 한인회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협조해야 한다. 과거의 무관심한 태도를 버리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자녀의 행복 추구에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 


끝으로 이민 1 세 부모들이 합세하여 한인회 회장 및 이사들이 개방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자녀들의 현지사회 진출를 위한 적응지원 사업을 할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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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5
이민 부모의 자녀 교육 전략(34)

 
 

(지난 호에 이어)
한인회는 지난 47년 동안 앞 표에서 정리한 적응지원 사업을 했다. 물론 당시 회장에 따라 적응지원의 범위와 밀도는 다르다. 적응지원 사업이 가장 활발한 시기가 도약기(2005-2008) 였다. 그 후 한인회의 적응지원 사업은 전무해졌다. 이 시기가 한인회의 소강기였다.


어떤 이민사회나 현지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크게 구분하면 개방적 시각(Open Perception)과 폐쇄적(반 개방적) 시각(Closed Perception)으로 구분된다. 


폐쇄적 시각은 대체적으로 현지사화의 « 관계 없이 우리끼리 살자! » 라는 시각이다. 반면에 개방적 시각은 « 현지사회와 지속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자! » 라는 시각이다. 개방적 시각은 현지사회 적응을 강조한다. 반 개방적 시각은 현지에 적응하지 말고 한국식으로 살자라는 입장이다.


시각의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시각이 교민 공동체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는 데 문제가 있다. 몬트리올 한인사회는 아직까지는 정착단계에 있었다. 바야흐로 적응단계에 진입을 시작하는 상태다. 


정착 단계에서는 폐쇄적 시각의 부정적 타격은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젊기 때문이고 부모들은 주로 자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착기에 적응준비를 안 하면 적응기에 와서 댓가를 치른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에 있다. 적응 단계로 진입을 시작했다. 자녀들이 노동시장에 들어가고 있다. 그 동안 반 개방 세력 때문에 우리는 자녀에게 적응 능력을 충분이 키워주지 못 했다. 


결과적으로 자녀들이 명문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힘들고 취직을 해도 진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차별은 피해야 한다. 피부색 차별도 있지만 문화적, 정치적 다양한 이유로 인한 것이다. 즉 차별의 상당 부분이 적응 부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현지적응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야 한다. 자녀들의 직장 생활 및 사회 생활을 위해서다. 우리 모두 현지사회에 대해 개방적 긍정적 시각을 구사해야 한다. 아직까지 폐쇄적 시각을 가진 세력은 지금이라도 개방적 시각을 도입하기를 바란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다.


6.3 한인회 거버넌스 개선


한인회가 이러한 일을 하려면 거버넌스(Governance)를 개선해야 한다.


1)조직


-정관을 개정하여 한인회 회장이 이사장 직을 겸하는 제도 도입
-한인회장 겸 이사장을 총회에서 선발: 현재 관행은 이사 중에서 이사장 선발
-10명의 이사는 모두 총회에서 선발
-이사 자격: 언어 능력, 현지사회에 대한 지식, 외부 세력을 대변하지 않을 것, 오직 한인사회의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이사는 실무 이사: 한인회 임원은 실무 이사
-사무처 유급 직원은 임원이 아님


2)회원


한인 회원에 현지인 배우자 포함


3)회장 자격


-불어로 의사표시 능력. 불어능력이 부족하면 불어능력 있는 이사를 선출하여 대외관계 담당
-퀘벡 사회에 대한 지식
-한인회의 개방적 비전
-교인 모두(남녀노소; 진보 보수)의 요구를 충족할 능력
-일정 외부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
-한인회 운영을 퀘벡법의 틀 안에서 할 것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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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4
이민 부모의 자녀 교육 전략(33)

 

 

(지난 호에 이어)
자녀들의 학교생활 적응도 한인 공동체의 이미지 구축의 요소다. 우리 자녀들이 주는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이미지는 « 공부 벌레 » 다. 공부 벌레 이미지는 상반된 인상을 준다. 하나는 열심히 공부한다는 긍정적 모습이다. 반면에 교내 공동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부정적 인상을 준다. 


실제로 1993년의 한 자료(정희수-임성숙 공저 : 퀘벡 이민 생활에 필요한 정보)에 의하면 한인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동료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또한 타 가시(Visible) 소수민족과 비교할 때 한인부모들의 학교 행사(교사-학부모 회의) 참여율이 빈약하다는 인상도 준다.


자녀의 학교생활 적응은 « B »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개선 할 것은 공부도 잘하고, 학교내의 공동 행사 참여율을 높이고, 지도력도 보이라는 것이다.

필요한 노력의 60%는 자녀와 부모가 해야 한다. 한인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세미나, 간담회, 워크샵 등을 이용해 선배들의 지혜를 배우는 기회를 제공 하는 것이다.


몬트리올 한인사회가 주는 가장 긍정적 이미지(A)는 정부보조금에 대한 의존도와 범죄율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 이미지는 개개인의 노력의 성과다. 우리 자녀들이 탈선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세 부모와 교회/성당의 기여가 크다고 볼 수 있다(100%).


한인 사회의 이미지 평균점수는 2.4(C)로 보통이다. 이러한 이미지 개선에 필요한 노력은 자녀와 부모가 53%, 한인회가 47%를 제공해야 한다. 


6.2한인회의 적응 지원 전략


우리 한인회가 제공할 수 있는 적응 지원은 <표7>에 정리되고 있다. 우리 이민 역사 적응단계는 한인회에 중요한 도전을 준다. 도전이 바로 적응 지원을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다. 


적은 지원은 다음을 포함한다. 퀘벡에 대한 소속감 강화, 퀘벡에 대한 시각 개선, 현지인과의 접촉 촉진, 퀘벡역사 및 문화에 대한 흥미 유도, 퀘벡의 공동행사 참여 강화, 복합 문화 행사 참여 강화, 교민의 현지사회에 대한 폐쇄성 개선, 자녀의 취직/진급 지원, 자녀 학교 생활 적응 지원

 


 

 

몬트리올 한인회는 몬트리올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 영주권 자와 캐나다 시민권 자를 대표하는 유일한 단체다. 한인회는 다음 단계를 거치면서 존재해 왔다: 초창기(1965-1975), 공식 출범기(1976-1978), 성장기(1979-2004), 도약기(2005-2008) 및 소강기(2009-2012).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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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이민 부모의 자녀 교육 전략(32)

 

 

(지난 호에 이어)
우리의 적응능력이 부진한 탓이다. 우리는 임시로 온 관광객이 아니다. 우리는 이민 자다. 현지인들과 함께 오손도손 살아야 한다. 이러한 폐쇄적 태도는 자녀들에게 위험한 배타적 심리구조를 주며 현지 사회에서 생존하기 힘들게 한다. 


어떤 분은 이렇게 반응한다. 우리 아이가 «한국에 가서 취직 하면 되지요!» 이분은 40년 전 한국을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복합문화 나라가 되고 있다. 외국인이 100만 명이나 된다. 한국 기업도 다국화(Globalized) 되고 있다.


다국화 되지 못하고 부모를 따라 폐쇄적 태도를 가진 자녀는 한국을 포함 세계 어디로 가나 취직하기 어렵다. 취직을 하더라도 진급하는데 불이익을 당한다. 따라서 폐쇄적 부모의 자녀들은 부모를 모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이민 1세 부모들의 폐쇄성은 심각하다. 한인 단체장 중 위험한 정도로 폐쇄적 태도를 가진 분들이 있다. 한인회장의 경우는 한인회의 절대적 중요성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폐쇄적인 분이 회장이 되면 안 된다. 


이 문제를 해소 하려면 우선 개방적 사람이 한인회 회장이 되어 교민들에게 개방성이 현지사회 진출에 왜 절대 필요한지를 설득시켜야 한다. 노력의 90%는 개방적 회장이 봉사하는(이끄는 것이 아니고) 한인회의 몫이다.


자녀들의 취직 및 진급을 포함한 직장 생활은 개개인의 문제라 하겠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국에는 적응이 되지만 이민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민 집단, 특히 유색민족은 130여 개의 타 이민민족 및 현지인과 경쟁을 해야 한다. 


즉 자녀의 직장생활은 개개인의 노력이 일차적 전략이지만 한인회 같은 대표 단체의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퀘벡 사회에서는 취업의 75%가 인맥형 취업이라는 것이다.


인맥형 취업이 타 주보다 심하다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각 이민민족마다 인맥을 조직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지인뿐만 아니라 130여 개의 타 이민족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
필자의 친구 자녀(P양)가 변호사가 되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려면 인턴을 해야 한다. 한인 변호사 인맥이 없다 보니 인턴을 할 곳이 없었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변호사를 소개했다. P양은 그 변호사에게 연락을 할 때마다 접수인이 다양한 이유로 연결을 안 해주는 것이다. 그 접수인은 타 민족 출신이었다. 필자는 1970년대 연방정부 주택/모기지 공사에서 자문역을 한바 있다. 진급 과정에서 동족 상관의 유무가 중요한 변수이었다.


한인 인맥은 실제로 전무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 인구(퀘벡7,000명)가 적다. 둘째, 우리 민족은 대부분 자영업을 하여 노동 시장에는 인맥이 없다. 셋째, 바야흐로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자녀들이 어리다. 


넷째, 자녀 대부분이 영어를 사용하는 맥길대학이나 콩코디아대학에 진학하여 퀘벡불어권 기업에 취직/진급하는데 한계가 있다. 퀘벡 기업들은 퀘벡의 정치적 문화적 언어적 문제의 본질을 알고 동참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다섯째, 동족의 사회진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 공무원이다. 왜냐하면 노동시장에 대한 정보와 유력 정치인과의 접촉이 비교적 쉬운 직업이 공무원이다. 


몇 년 전 이야기다. 어떤 장소에서 자녀 사회 진출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필자는 공무원 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부모가 «공무원이 되면 돈이 생겨?»라고 큰 소리로 반응했다. 


사실은 가장 존경받고 안전한 직업이 공무원이다. 결코 한국계 퀘벡 정부 공무원은 인구를 감안할 때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녀들의 노동시장 진출은 보통(B)이다.


퀘벡 이민국에 가면 많은 흑인과 베트남인을 본다. 대체적으로 흑인 위에 베트남인이 있다. 이민국에서는 베트남말로 민원 처리가 된다. 연방정부 세관에 가면 흑인과 중국계 공무원을 많이 본다. 퀘벡정부 장관 비서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남미 사람들과 중국인들이다.


자녀들의 취직 및 진급문제는 자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 부모의 역할은 옆에서 상담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한편 한인회가 할 수 있는 것은 강연, 세미나 및 워크샵을 통해 앞에서 언급한 취직 및 진급에 대한 전력을 구상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일은 한인회가 자녀들의 직장생활을 위한 인맥구축을 도와주는 것이다. 미리 직장에 있는 선배들과 멘토링(Mentoring) 인맥을 조직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여성단체KOWIN에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데 한인회가 가세 할 수 있다. 한인회는 노력의 30%는 책임질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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