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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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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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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heesoo
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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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3
2019-03-20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8)

 
 
(지난 호에 이어)


 1) Plato (주전427-347)


Plato는 다양한 학술을 전했다. 그러나 인생관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부분은 그의 이원론(Dualism)이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고 이해(Understanding)를 통해서만 알수 있는 것이 있다. 보이는 세상은 변하는 세상이고 이해해야 하는 세상은 인간의 지성(intelligence)을 통해야 한다. 


수학법의 한 예다. 또한 지성에 의지해야 하고 불변 하는 것은 전체(Whole)에 대한 이념(idea) 이다. 그에 따르면 개별적 말(Horse)은 변한다. 그러나 “말” 이라는 동물에 대한 이념은 불변하다. 


한편 Plato는 보이는 세상을 낮은 수준의 세상, 이해를 해야하는 세상을 높은 세상으로 구분했다. 낮은 세상은 열등한 부분(착각, 예술, 시)이고 우월한 세상은 믿음이다. 


한편 높은 세상 안에도 열등수준 및 우월수준이 있으며 전자에는 이성(Reason), 후자에는 지성(Intelligence)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즉 세상의 중심은 인간의 이성이고 지성이라는 것이다. 


한편 Plato는 혼(Soul)은 3개 요소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즉, 이성(Reason), 영 (Spirit) 및 육제적 욕구(Appitite)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성의 역할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영의 역활은 영광심 및 전투심이고 육체적 욕구의 역할은 인간의 육체가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성이 영과 육제적 욕구를 지배하지만 3개 요소간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육제적 욕구가 강해지면 이성의 역활이 약해질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혼의 구조가 정부의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Ruler) 이성이 발달된 철학가가 되어야 하고 국방 및 국가보안은 전사(Guardians), 재화 및 용역(Services) 생산은 생산자(Producer)가 해야한다.


Plato의 행복감은 그의 윤리관에 기초를 둔다. 행복은 잘사는 것(Live a Good Life)인데 잘산다는 것은 진리를 사랑하는 삶을 말한다. 진리는 선(Goodness)이다. 선은 지식이다. 최고의 선은 하나인(The Only One) 신의 지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들리는 개념 중의 하나가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이다. 이러한 사랑을 이성간의 육체적 사랑이 아니고 영적 사랑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Plato는 진리와 완벽한 선(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주장했다.


 Plato의 위대한 업적은 선, 진리, 신, 윤리, 아름다움, 정의 등의 개념을 형이상학적으로 및 추상적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며, 또한 인간의 이성이 인간의 행복과 진리추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Palto의 형이상학은 서구의 형이상학 특히 독일계 형이상학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2) Aristotle (주전384-322)


그의 기여는 과학적 접근 방법, 지식의 분류, 4개 인과관계 및 윤리원칙이다. 그는 진리탐구 과정에서 증거(Proof)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법을 연구할 때 500개의 제반 국가법을 조사하고 추리(Reasoning) 했다. 그는 학술은 확률적(Probabilistic)이고 불확실한 지식을 창출한다고 했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학술이 이러한 지식이다. 


정확한 학술은 수학이다. 그의 4개 인과관계를 보자. 우선 물리적 인과관계가 있다. 이는 완성품의 자재(Materials)를 말한다. 흙은 도자기의 원료다. 둘째, 형태적 인과관계(Formal cause)란 만물의 모습을 의미한다. 사람은 사람의 모습을 가진다. 


셋째, 생산적 인과관계(Efficient Cause)란 만물의 생산자(Producer)를 의미한다. 도공은 도자기의 생산자다. 넷째, 최종 인과관계(Telos)란 만물의 목적을 의미한다. 그릇은 세레알(Cereal) 혹은 우유 등을 담는 것이 목적이다. 


Aristotle의 자연 철학에서 동작(Motion)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동작은 바로 물질(Matters)이 완성품으로 변하는 과정인데 4개의 동작이 있다. 첫째, 동작은 만물의 물체(Substance)에 영향을 준다. 둘째, 동작은 만물의 질(Quality)을 변하게 한다. 셋째, 동작은 만물의 양(Quantity)를 변하게 한다. 넷째, 동작은 만물의 입지 변화(Locomotion)를 초래한다. Aristotle은 이와 같이 만물을 역동적 시각에서 보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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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73163
9193
2019-03-17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7)

 
 
(지난 호에 이어)


 제 4 장- 기독교 인생관(Christian Humanism)


4.1 서론


기독교 인생관은 두개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인간의 본질(Essence of Human), 또 하나는 인간의 생활(The Life of human)이다. 전자는 인간의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를 의미하며, 후자는 인간의 윤리적 측면을 말하며 매일매일 생활의 규칙을 의미한다. 


전자를 인간의 본질이론(Doctrine of Human Essence), 후자를 인간 생활이론(Doctrine of Human Life) 이라하자. 인생관은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 측면에서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신학 및 철학적 측면에서 본다. 즉 인생관은 신학 및 철학을 말한다.


본 장에서는 인간의 본질이론을 토의 대상으로 한다. 인간생활에 대한 토의는 제 8장에서 하기로 한다. 본장의 내용은 이렇다. 우선 인간의 본질에 관한 서구의 철학 및 신학 변화추이를 정리 하면서 서구사상이 왜, 어떻게 반기독교 방향으로 변해왔는지를 살펴본다. 그 다음에 원형적 기독교 인생관을 토의한다.


4.2 서구 철학 및 신학의 변화 흐름


서구 문명 속의 철학 및 신학의 흐름은 다음으로 정리된다.


1)고대 희랍 철학 시대: 주전 500-0
2)사도 및 속사도시대: 주후 0-400
3)중세기: 주후 400-1500 및 스콜라스틱주의 시대: 주후 1100-1500 
4)문예부흥시대: 주후 1300-1600
5)종교개혁시대: 주후 1400-1600
6)계몽 운동시대: 주후1600-1800
7)미국의 실용주의 및 세속적 인생관 시대: 주후1800-2000


4.2.1 고대희랍 철학(주전 6 세기- 주후 초기)


서구사상의 기원은 고대희랍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희랍사상을 종합하고 통합한 철학가는 Socrates-Plato-Aristotle 계열이다. Socrates는 Plato의 스승, Plato는 Aristotle의 스승이었다. 


한편 Socrates는 Alexander 대왕의 스승이었으며 동양사상을 서구사상에 편입 시키는데 한 몫을 한 분이다. Socrates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의 철학은 Plato가 전했다. 


Plato는 대화(Dialogues) 형식으로 Socrates의 사고 체제를 전했다. 그의 Dialogues는 초기 Dialogues, 중기 Dialogues, 후기 Dialogues로 구분된다. Socrates의 사고 체제는 Plato의 초기 Dialogues 안에 소개 되었다. 


Socrates 철학의 핵심은 당시 Athen 지도자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는데 있었다. 그는 지도층의 무식과 비도덕적 행위를 비난했다. 그 결과 그는 주전 399 년에 사형 당했다.


Plato와 Aristotle은 전에 있던 희랍 고대 철학을 종합 및 통합 했다. 당시 희랍철학의 기반은 자연법과 인간의 이성이었다. 신(God)을 알리는 철학은 없었다. Anaxagoras는 사람이 만물의 평가 기준이라 했다. 


Pythagorians는 수학적법이 진리라 했다. Thales, Xenophanes, Heraclitus 등은 인간의 이성만이 진리를 볼수 있다고 했다. 


한편 소피스트(Sophist) 지지자인 Protagoras, Gorgias, Hippias 등은 자연법에는 변하는 법과 불변하는 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후자에 자연이 속하고, 전자에는 습관 등이 속한다고 했다. 


Xeno의 스토아주의(Stoicism)는 진리는 자연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편 Heraclitus는 자연을 통치하는 힘을 Logos라 했다. 이 Logos 개념을 사도 요한이 사용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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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73012
9193
2019-03-07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6)

 

 
(지난 호에 이어)
철학이론 중 결정론(Determinism)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만사가 이미 사전에 결정되었다 한다. 모든 것은 알지 못하는 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것이 신(God)이라 한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신이다. 이 점에서 기독교와는 다르다. 기독교에서의 신은 계시된 하나님이다. 따라서 사람이 알 수 있는 신이다. 


2) 하나님은 작정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 하시며 주관하시고 모두가 하나님 스스로의 영원하신 작정에 따른 결과다. 지구는 해와 달과 별들부터 시작하여 우주전체는 물론 길가에 이름 없는 꽃이나 작은 참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은 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엿새 동안 만물을 창조하셨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 하셨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환난도 창조하니, 나는 여호와이다.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이다." (이사야 45:7)


태초에 천상계에 속하는 하늘과 그 아래 땅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그 땅이 흑암이 깊음 위에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빛이 있게 하셔서 빛과 어둠이 분리되었다. 


둘째날 천상계에 속하는 물을 궁창으로 웃물과 아랫물로 나누어 공간을 마련 하셨고 그 공간을 하늘이라 하셨다. 셋째 날에는 천하계의 물에서 뭍이 들어나게 하고 뭍을 육지라 하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칭하셨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사시와 연한과 일자를 이루게 하셨다. 다섯째 날에는 새와 물고기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다. 여섯째 날에는 땅의 생물, 육축, 짐승 등을 종류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흙으로 사람을 지어 생기를 코에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아담의 갈비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게 한 후 이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 하셨다.


하나님은 창조 하신 우주와 만물을 보전하시고 주관하신다. 광물, 동물, 인간 등 모두 주관 하신다. 즉 모든 것이 그의 전능하심과 주관성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진화론자는 생물이 외부의 영향 및 내부의 발전에 따라 단순에서 복잡으로, 하등에서 고등으로 발전하고 장차 상태를 달리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무신론이고 유물론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믿는 창조론과는 거리가 멀다. 


3)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사람을 선택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의 계획 및 기준에 따라 선택한다. 아담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아벨과 가인). 하나님은 아벨을 살해한 살인자 가인을 살려 주셨다. 그 후 가인의 계보가 아닌 아담의 셋째아들 셋의 계보를 선택하셨고, 그 자손들 녹, 노아, 셈, 아브라함 등의 계통을 구원 대상자로 선택 하셨다.


하나님은 죄가 많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셨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유다를 선택하여 유다지파를 준비 하셨다. 유다지파에서 태어난 다윗을 이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 인류를 구원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이해 하기가 어려운 하나님 스스로의 뜻에 따라 사람을 선택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인간구원에도 적용된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구원을 받는다”라고 믿는다. 예를 들자면 금식을 자주하고 자선사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믿음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사람이 참여를 못한다. 누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느냐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다.

좋은 일을 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고 선택되었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좋은 일이란 하나님의 새 계명인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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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72877
9193
2019-02-24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5)

 

 
(지난 호에 이어)


"당신은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두고, 도장같이 팔에 남겨두세요. 참으로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며, 질투는 스올같이 가혹하고, 그 불꽃은 타오르는 불길 같아서, 여호와의 불같습니다. 이 사랑은 많은 물로도 끌 수 없고, 홍수로도 쓸어버리지 못할 것이니 만일 사람이 자기 집의 모든 재산을 주고 사랑을 얻으려 한다면 그는 아주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아가 8:6-7)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 하나님은, 그들은 선택된 민족이라고 약속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셨다. 그 땅에서 그들은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자비로 그들을 보호해 주셨다. 이러한 자비와 사랑이 아가에서 찬양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자비는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도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 사랑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유사하다. 아버지는 오래 동안 집을 떠난 아들이 돌아올 때 불쌍히 여기며 반갑게 받아주고 사랑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이며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이다. 


3.3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속성인 전능성, 신실성, 주권성, 영원성 및 자비성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계시된다. 피조물의 창조, 그들의 변화, 세계역사, 인간의 삶 모두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일어난다. 


하나님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 나타나신다. 일반계시를 통해 자연의 신비를 볼 수 있고 특별계시를 통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의 토의는 특별계시에 한정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역을 이렇게 찬양했다.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사람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온 마음으로 여호와께 감사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들이 크니 이를 즐거워하는 모든 자가 탐구하는구나. 주께서 하시는 일은 영화롭고 위엄이 있으며, 주의 의는 영원히 설 것이다. 주께서 자신의 놀라운 일을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다. 주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양식을 주시며, 자신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 하신다. 주께서 민족들의 유업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셔서 그 하신 일의 능력을 보이셨다. 주의 손으로 하신 일들은 진실하고 공평하며, 주의 교훈들은 모두 신뢰할 수 있으니, 영원무궁 확고하며 진실하시고 올바르게 행하여졌다.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단속하시고 그 언약을 영원히 명령 하셨으니 주의 이름이 거룩하고 두렵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이것을 행하는 자에게 좋은 지각이 있으니 주의 찬양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시편 111:1-10)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작정하셨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이 계획 하셨다. 실은 창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의 크기, 모양, 기능 등을 계획 하셨다. 개혁파 장로교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의지 도모에 의한 결정이니 그는 이로써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무릇 되어가는 일을 선정하셨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7)
많은 교파가 하나님의 작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성경을 모르거나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영원한 이전 일을 기억하여라. 나는 하나님이다.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다. 나는 하나님이라, 나와 같은 이가 없다.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말하며,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보이고 말하기를 ‘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나의 기뻐하는 모든 것을 이룰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내가 동방에서 사나운 날 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불렀다. 내가 말하였으니 반드시 이룰 것이요, 내가 계획했으니 반드시 시행할 것이다". (이사야 46:9-11)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작정하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종말(이사야 46:10)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종말은 미리 하나님께서 작정 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시작부터 최후 심판까지 계획을 하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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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72811
9193
2019-02-20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4)

 
 
(지난 호에 이어)


3) 주권성


하나님의 주권성은 주로 잠언에서 볼 수 있다. 저자인 솔로몬왕은 자기가 왕이 된 것을 비롯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린다. 실은 잠언의 목적은 자기 아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교훈 하는데 있었다.


"마음의 계획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다. 사람의 모든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깨끗하여도 여호와께서는 심령을 심판하신다. 너희 일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리하면 너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그의 목적에 따라 만드셨으니 심지어 악인도 재앙의 날을 위해 만드셨다". (잠언 16:1-4)


잠언의 말씀을 요약한다. 첫째, 하나님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지혜로운 사람을 구원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왕국을 건립하게 하신다. 잠언 1장부터 9장까지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친다. 잠언 10장-11:16 에서는 하나님을 알면서 왕국을 세우는 이야기다. 22:17-31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왕국을 다스리시는 지를 가르친다. 즉 잠언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주권의 섭리를 교훈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다윗의 왕국 건립으로 성취되었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였다. 이 과정에서 아무도 개입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자주적 의지로 결정 하셨다.


다윗왕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성을 파악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아들에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일어난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결정하시고 자기의 계획에 따라 인류의 운명을 정하신다. 하나님은 보이는 것 및 보이지 않는 것, 미세한 것 및 거대한 것 모두를 다스리신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는 오직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깊히 느끼게 된다.


4) 영원성


하나님의 영원성은 전도서에서 볼 수 있다. 솔로몬왕은 세상의 허탈함과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가르친다. 우리 인간의 세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 한지를 느끼게 해 준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은 영원하여 거기에 보탤 수도 뺄 수도 없으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일을 보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경외하도록 하시려는 것임을 내가 알았다". (전도서 3: 14)


전도서 1-4 에서는 하나님이 왜 불완전한 세상을 허락하셨는지를 알게 된다. 전도서 5-7 에서는 이러한 세상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전도서 8-10 에서는 하나님이 하찮은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신다. 전도서 11-12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오셔서 영원 속에서 섭리하신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나타난다.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시기부터 다윗왕국 건립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어려울 때 다윗의 왕국을 보호하셨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징벌을 받았다.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로 하여금 멸망하게 하셨다. 전도서의 핵심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영원성을 가르친다는 데 있다. 


5) 자비성


하나님의 자비성은 아가서에서 볼 수 있다. 솔로몬왕은 자신의 애인인 술람미에 대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성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아가서를 통해 그분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밀접한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신다. 


아가서 중간 부분에서 술람미의 첫사랑, 결혼식이야기를 보고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 보고 싶은 안타까운 심정을 묘사한다. 서로 떨어져 있어 서로 찾아 다니는 깊은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불행히도 신부는 나쁜 무리의 굴욕을 받는다. 하지만 신랑은 신부를 만나 꿈을 꾼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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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72711
9193
2019-02-13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3)


 
(지난 호에 이어)


3.2 하나님의 속성(Attributes)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무한의 속성을 지니신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관, 세계관, 인생관, 교회관 등을 토의 하는데 중요한 속성은 전능성(Omnipotence), 신실성(Faithfulness), 주권성(Sovereignty), 영원성(Being Eternal), 자비성(Mercifulness)이라 할 수 있다. 


전능성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하고, 신실성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강화하고, 주권성은 하나님에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게 해주고, 영원성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자비성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더욱 깊히 느끼게 한다.


1) 전능성 


하나님의 전능함은 성경 여러 군데서 찾아 볼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의 무한한 힘을 발견하고 경외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 하셨고 대 홍수로 인간의 죄를 징계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삼 대 언약을 하시고 지키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많은 믿음의 자손을 허락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4백년 노예생활을 시키면서 거대한 민족을 형성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40년 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면서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육성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포함, 많은 부족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을 이기게 했다.


욥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은 사단이 욥의 신앙을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욥은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다. 욥은 엄청난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능성을 찬양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욥에게 자산을 다시 주고 자식도 다시 낳게 하셨다.


우리가 배울 것은 모든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주께로 감을 알고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아, 참으로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나에게 반박하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지은 분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하나님께서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분의 능력을 알게 하시려고 멸망 받도록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분의 영광이 풍성함을 알게 하려 하셨다 하더라도 무슨 말을 하겠느냐?” (로마서 9:20-23)


2) 신실성


하나님의 신실성은 시편에서 볼 수 있다. 시편 1편부터 2편까지는 다윗이 하나님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언약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3편부터 89편까지는 다윗이 언약의 성취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90편부터 150편까지는 언약 성취를 찬양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민족, 땅 및 통치언약을 다윗을 통하여 완성시키셨다. 실은 구약성경의 시대를 다음과 같이 구분 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민족형성기, 정착기 및 왕국통치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 형성기는 야곱시대부터 출애굽을 지나서 광야에서의 연단기 그리고 가나안 정착 때까지를 포함한다. 땅의 개척 및 정착기는 여호수아 시대부터 삼손의 사망 및 팔레스타인의 멸망시기를 포함한다. 


왕국의 통치기는 사울왕의 죽음, 다윗의 왕국시대를 지나 이스라엘의 남북으로의 분열, 솔로몬왕국의 종말, 앗시리아가 북 이스라엘을 정복한 시대, 남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시대까지를 포함한다. 


이 모든 역사적 현상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진행된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다. 다윗왕은 하나님을 이렇게 찬미했다. “내가 여호와의 인애를 영원히 노래하며, 내 입으로 주의 신실하심을 대대에 알리겠다. 주의 인애가 영원히 세워지고 주께서 주의 신실하심을 하늘에 견고하게 세우실 것이다. 주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택한 사람과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명세 하였다.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며, 네 보좌를 대대로 세울 것이다’라고 하셨다.”(시편 89:1-4)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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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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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5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2)

 
 
(지난 호에 이어)
서구의 전통적 구원론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를 통해 하나님을 명령을 어기는 죄를 지게 되고 저주를 받았으며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 정의로운 하나님은 죄 값을 치르게 해야 하지만 그 분의 자비로 하나님은 인간을 처분하는 대신 대안을 찾았다. 


하나님의 대안은 신성과 동시에 인성을 갖추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시고 징벌을 받게 하셨다. 징벌은 죽음 및 신성의 포기다. 신은 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통설은 Canterbury 주교 Anselm(1093-1109)이 발전시켰다. 안셀름의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그대로 용서를 하지 못한다. 정의로운 하나님은 정의를 위해 두 가지 처분을 해야 한다. 


하나는 징벌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만족시켜야 한다. 징벌은 사형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인간을 멸망하게 못한다. 대안은 예수님이 인간 대신 벌을 받으시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치(Value)는 무한함으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만족시키고도 남는다. 남은 가치로 예수님을 부활로 보상해 주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 잉여가치(Surplus Value)를 인간의 영생에 사용한다. 이것이 유명한 잉여가치 구원론이다.


Anselm 구원론에 대한 비판의 내용은 첫째, 지나치게 수학적이고 기계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을 불만이 많고 벌을 주는 엄격한 분으로 묘사하는 것. 셋째, 예수님의 죽음에 큰 비중을 두면서 예수님의 가르침, 치유, 선포 사역 등을 경시 하는 것.


넷째, 특히 그분의 부활과 장차의 강림을 경시하는 것. 다섯째, 하나의 비판은 인간 사회문제와 구원을 연결하지 않는 것. 마치 구원이 인간 역사 밖에서 일어나는 인상을 주는 것 등이 비판의 내용이다.


Anselm 구원론은 Calvin이 더욱 발전시켜 지금의 기독교 구원론을 확립시켰다. Anselm-Calvin의 구원론의 또 하나의 비판은 구원론에서 징벌에 치중하여 형법적 구원론(Penal Salvation)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은 십자가 뒤에는 사랑이 뒷받침 한다고는 했다. 


예수님의 대속죄는 이사야에서 강력하게 묘사되고 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으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고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우리는 모두 양같이 방황하여 각기 제 길로 갔으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그에게 넘겨 씌우셨다". (이사야 53:4-6) 


칼빈파 구원론의 비판 중의 하나가 십자가와 폭력을 연상시키게 한다는 것이다. 여성 신학자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십자가가 합리화시켜준다고 주장한다. 또한 보복적 정의가 구원의 목적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참된 대속죄론은 다음의 교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첫째, 예수님의 대속죄를 형법적으로 보지 말고 예수님의 전 생애를 부각시킨다는 것. 둘째, 속죄의 근본적 목적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 셋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을 만족시켰다는 것. 즉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라는 것. 


넷째, 대속죄의 개념을 확대하여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셨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 하나님에 대한 순종, 하나님과의 소통, 예수님의 고난 및 죽음, 부활, 승천 및 강림에 참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대속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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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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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1)

 

 
(지난 호에 이어)
동방, 서방 교회간의 분쟁은 신의 존재(Hypostasis)와 본질(Substance)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동방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이 3 인의 존재(Threeness) 이지만 동일한 본질(신의 본질)을 가진다. 예를 들자면 이씨, 김씨, 박씨는 세 분의 존재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다는 뜻이다.


이 동방 교회 교의의 문제는 세분 하나님 간에 위계질서 관계가 있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데 있다. 성자는 성부의 밑에 계신다고 오해 할 수도 있다. 신약 성경에는 성부와 성자 두 분 다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증언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0:38)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심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4:10) 


서방교회는 성부, 성자 및 성령은 한 존재다(Oneness). 성자는 성부로부터 독생(Begotten) 하셨다. 성령님은 성부 및 성자로부터 나오신다. 이 교의가 오늘도 유지되고 있다. 서방 교회 교의의 핵심은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고 세분 다 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제 18세기에 와서 자유신학자 Schleiermacher는 삼위일체 교의는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르트(Bath)가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논쟁은 다시 재개 되었다. 심지어는 심리학 비유로 삼위일체는 한 사람 안에 기억, 상상 및 의지가 공존하는 것과 유사하다. 어떤 신학자는 지하수, 샘물 및 생물을 동일한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의 삼위일체 교의는 주로 다음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속성론(Attributes), 기능론(Function), 생태론(Mode of Being) 및 계시 방법론. 속성론자는 세분의 속성이 다르다고 한다. 세분 다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이론의 근거는 빈약하다. 기능론은 세분의 기능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경우도 세분이 모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생태론은 추상적 교의이며 실감을 주지 못한다. 계시론에 따르면 세분이 각각 하나님의 섭리 계획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계시한다는 이론이다. 흥미 있는 이론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전통교회의 입장은 이렇다. 첫째, 세분 다 하나님이시다. 둘째, 세분 사이에는 질서와 특별한 섭리의 관계가 있다. 셋째 성부는 성자의 전제다. 넷째, 성부 및 성자는 성령의 전제다. 삼위일체 교의의 가장 중요한 점은 세분 다 완벽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예수님에 대한 교의라 하겠다. 예수님에 대한 교의는 그분의 이중 본질(신성, 인성)과 속죄(Atonement) 섭리라고 하겠다. 예수님의 이중적 본질은 Nicene Council(주후 325) 과 Chalcedon Council(주후 451) 에서 분명히 확정 되었다. 


예수님의 속죄 섭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다. 리옹(Lyon)의 주교인 Irenanus(주후 130-200) 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회복되었다 했다.


 한편 Gregory of Nyssa(주후 330-395) Cappadocian 신학자는 이른바 낚싯대 (Fishhook)의 속죄론을’ 제기했다. 설명하자면 인간의 죄는 사탄의 탓이다. 본 이론은 Origen(주후 185-254)이 제시하고 Gregory of Nyssa가 주장한 구원론이다.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사탄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사탄과 협상을 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대가로 인간을 사탄의 손에서 해방해 달라고 협상하셨다. 


그리하여 사탄이 예수님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이 죽은 후 3일만에 부활하게 하셔서 하나님 품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결국 사탄은 예수님을 빼앗기게 되었다. 


즉 예수님을 미끼(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이 이론이 그렇다는 것이다)로 해서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동시에 사탄은 완전히 이용당한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흥미를 유발시킬지는 모르지만 전통적 구원론은 아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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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0)

 

 
(지난 호에 이어)


이와 같이 사복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분의 역할, 신분, 사역 및 속성을 통해 계시한다.


한편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23권)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한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언약에 따라 오순절 때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성령님을 통해 교회를 건립하여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교회의 형성과 문제와 그리고 이단과의 싸움과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잃지 말것을 당부하며 요한계시록은 전무후무한 책으로 마지막 현상들과 심판을 통한 주님의 왕권의 확립을 계시한다. 


"마케도니아에서 실리와 디모데가 내려올 때에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유대인들에게 증언 하셨다." (사도행전 18:5)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여러 가지를 약속 하셨다. 첫째, 성령세례를 약속 하셨다. 둘째,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한다고 약속 하셨다. 셋째, 종말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 하셨다. 첫 번째 약속은 실천 하셨다. 두 번째 약속은 진행 중이다. 세 번째 약속은 종말에 다시 오심으로 실천 하실 것이다.


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13권)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사도 바울을 보내시고 성령님을 통해 교회를 관리하시면서 메시아라는 것을 계시 하셨다. 히브리서부터 유다서까지(8권)는 오직 복음만이 진리이며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을 증언한다. 또한 이단에 대한 경고를 한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도우셔서 사단을 물리치고 최후 승리를 약속하신다. 최후 승리 후엔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 나시고 구약의 삼대 언약을 속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시키셨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 교회를 건립하시고 양육하시고 진리로 무장시키고 사단을 물리치게 하셨다. 하나님은 참으로 언약을 지키는 여호와이시다. 

 

제3장 기독교 신관


제2장에서는 기독교 성경관을 살펴보았다. 성경관을 본 후 신관을 토의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기독교 신관추이를 보면 일정지역의 언어, 문화, 전통, 교육수준 등에 따라 다양한 기독교 신관이 등장했다. 


이유는 하나님을 인간의 체험 및 철학적 접근으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즉 공통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의 속성이 무엇이지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아본다.


 3.1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삼위일체(Trinity)와 예수님에 대한 교의(Christology)를 검토해야 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교의는 가장 힘든 교의 중의 하나다.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자. 


제 4세기 전의 기독교는 이단이 많았던 시대다. 당시 성경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 소수의 학자 혹은 신학자들이 논의했다. 기독교는 성부, 성자 및 성령 세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초기나 지금이나 분명하다. 문제는 이 세분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삼위일체 교의의 토의 대상이다. 


제 4세기 전에는 도세티즘(Docetism) 및 아리우스(Arius) 교의가 지배했다. 이들 교의에 따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육체적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느냐?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다. 혹은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도 아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의 신성 및 인성을 놓고 의심하는 이단이 있었다.


이러한 토의는 예수님의 이중적(인성, 신성) 본질에 대해서는 합의가 보편화되었으나 세분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는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간의 차이는 줄이지 못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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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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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9)

 

 
(지난 호에 이어)
다니엘서는 유다왕국이 멸망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민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을 예언한다. 나머지 선지서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대가를 예언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구약의 역사서(12권), 시가서(5권) 및 선지서(17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담 및 그의 후손에게 준 언약을 성취하는 기록이라고 보면 된다. 삼대언약은 다윗왕국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다윗왕국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하나님 나라의 성취의 그림자일 뿐이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전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과 시편에서 나에 대한 기록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어야 한다.’ 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셨다.(누가복음 24:44) 


2) 성경은 언약 성취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구약 성경에서는 오직 물질적 언약-실현 관계가 성립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직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안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영적 언약-성취로 완성 하시고 오순절 때에 오신 성령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Messiah, 기름 부음 받은 분)라는 것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교회에게 증명하는 것이다. 증명은 신약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직 이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20: 31)


많은 사람들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각각 무엇을 증거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우리는 다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복음서들을 통하여 무엇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아본다. 마태복음에서는 직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임을 증거하신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복음 1:16)


예수님의 세 직임(Threefold office)은 선지자직, 왕직 및 제사장직이다. 이 세가지 직임을 가지고 계신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분 중심으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가 다시 영광스러운 신분의 소유자가 되셨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 하셨다. 


예수께서는 침묵하시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다시 그분에게 말하기를 “네가 찬송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하니 예수께서 말 하셨다. “내가 그 이다. 너희는 인자가 권능자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마가복음 14:61-62)


누가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사역섭리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사역의 핵심은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속죄주 되심을 보여주시고 속죄주로서의 임무 수행, 완료에 대한 증거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어리석은 자들아,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들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당하고서 자신의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고 (누가복음 24: 25-26)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본성으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하시면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하나님의 신성 그 자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신성을 가지고 계신 사실을 증거하셨다.


유대인들이 그분을 에워싸고 말하기를 “당신이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의심하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 하소서”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 하였으나 너희가 믿지 않았다. 내가 내 아버지 이름으로 행하는 이 일들이 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으나. ” (요한복음 10:24-25)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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