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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칼럼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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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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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실망스런 전직 대통령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일성이 자신에 대한 죄는 인정하는데 정치보복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구속 내내 함구로 일관하던 그의 모처럼 발언에 법정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기대를 또 한번 실망시키고 말았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며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 모든 책임은 제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와 기업인에게는 관용이 있길 바란다."며, 형량이 20년형이든 30년형이든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도대체 정치보복을 당했다면서 멍에와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엄숙하기 이를데 없는 법정 안에 하나의 죄인이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그의 정치적 입지가 건재하다는 엄포로 들린다. 


 13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설을 음미해보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고 했다. 그런 대통령이 오늘에 와서는 자기행위는 침묵하고 이미 타계한 전직 대통령을 걸고 적반하장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자기만의 ’로맨스‘란 말인가?


 박근혜 정부 4년을 돌아보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을 비롯하여 이듬해는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파멸, 참신한 국무위원 부재, 역사교과서 파동 등, 박 전 대통령의 실정은,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맞물려 헌정사상 유례없는 초유의 파면 사태를 맞았다. 


 그로 인해 134명 국회의원에 의해 탄핵소추까지 당하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고, 박영수 특검팀이 신설되어 90일 동안 취재한 결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비자금 비리, 김기춘.조윤선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건들이 유출되어 청와대 가신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사태까지 초래했다. 


 대통령의 비행은 이것만이 아니다. 청와대를 압수 수색한다, 대통령을 대면 조사한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피소추인(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전면에 나서면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순간마다 차일피일  위기를 넘기곤 했다. 


 나라의 기강을 이렇게 흐려놓고도 박 전 대통령은 사죄 한마디가 없었다. 온 국민은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 솔직한 사죄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마저 외면하고 대화를 단절하고 말았다. 결국 이 소통 부족은 지난해 3월 10일 현재 8명 전원 평의회 의견일치로 대통령을 탄핵시킴으로써 촛불의 위대함과 함께 사필귀정이 된 것이다.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집에 와서도 여타부타 말 한마디가 없었다. 오히려 두고보자는 오기만 안면에 가득했다. 경호원에 쌓여 자애로운듯 연신 웃음을 짓지만 그 웃음 뒤에는 국민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만 가득 차있는 듯했다. 그야말로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실감난다.


 어릴 때부터 공주의 귀여움 속에 성장하다 졸지에 부모를 잃고 심적 충격이 커서 그랬을까? 아니면 4년동안 자신은 국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반대로 엮였다며 국민들이 몰라주었다는 배신의 심리가 발동해서 그런 것일까? 어느 쪽이든 박 전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응변엔 심오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은요?” “대전은요?” 당시는 그 말이 깊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꼈는데 4년 동안 그의 정치행적을 보면 자신의 유식함을 의도적으로 돌출시키고 싶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어쩌면 정치역량의 부족을 고집불통으로 포장해 순간을 넘기려는 궁여지책 의도였을는 지도 모를 일이다. 무식한 소리보다 고집불통 소리가 나을 테니까. 


 ‘박사모’들은 지금 난동부릴 때가 아니다. 계란 하나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를 막으려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 박근혜를 사랑한다면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2~3세대 젊은 세대로 바뀌면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박사모들은 스스로 침소봉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시대의 흐름을 인지(人知)시키는 것이 박사모들의 급선무인데도 그들은 그것을 감지를 못해 안타깝다.


 한 나라의 수장이면 선견지명이 있어야 되는데 박 전 대통령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최순실이란 만신 같은 여인에 홀려 국정을 혼란케 한 죄가 작지 않다. 아버지가 보릿고개를 넘겼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아버지의 공보다 과오가 많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남은 인생을 수도(修道) 생활로 마치겠다고 진심에서 우러난 사죄를 하면 혹시 누가 알겠는가. 정만은 우리 국민들이 용서해줄지. 현재로선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한가닥 남은 연민의 정이라도 지키려면…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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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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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7
북유럽 크루즈 여행기(6)

 

(지난 720호에 이어)


8월 5일: 베르겐으로 달렸다. 베르겐은 수도 오슬로에서 서북쪽으로 400km 떨어져 있으며, 노르웨이에서 오슬로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이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화하여 겨울철에도 평균기온이 영상이며, 지형적 영향으로 연평균 강수량이 2,000mm 이상으로 북유럽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곳 중 하나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베르겐 항구의 모습을 감상한다. 시내는 가운데에 섬처럼 나온 곳과 오른쪽 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대부분의 볼거리가 모여있다. 그 중에서도 산 옆으로 이어지는 목조 건물들의 풍경은 고색 찬란해 고대의 운치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

 

 

 


베르겐의 경치, 굽이굽이 흐르는 협곡의 물줄기 속에 잘 정리된 나무들, 속력이 붙진 않았지만 아찔한 계곡을 타고 내려가는 열차가 마치 롤러코스터 마냥 전율이 넘쳤다. 그렇게 내려온 지 20분 가량이 지나 신세계를 만났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흐르는 자연 폭포의 웅장함에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8월 14일: 대장정 북미 크루즈 관광을 무사히 마치고, 출발지였던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설봉과 얼음 계곡은 바다에서 보던 거와 반대로 다채로운 장관을 이룬다. 빙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얼음덩어리 잔해는 마치 조각배 모양 북극해를 수놓으며 시연을 연출하였다. 


로알 아문센이 떠오른다. 아문센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인 남극을 정복한 탐험가다. ‘프람호’로 북극점을 정복하려 했던 아문센은 미국의 ‘피어리’가 먼저 북극점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극점 정복을 결심, 로버트 스콧과의 경쟁 끝에 1911년 12월 19일 인류 최초로 남극을 정복했다.


 그 무렵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아문센은 굳은 의지와 끈기로 해내고야 만 용감한 사람이었다. 아문센은 어려서부터 바다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다. 장차 어른이 되면 꼭 탐험가가 되어 바다로 나가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한번 정한 뜻을 이루기 위해 아문센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나갔다. 부모의 반대도 그의 굳은 의지는 꺾지를 못했다. 최초로 자석상 북극의 위치를 확인하고, 서북 항로를 개척하는 등 그가 이루어 놓은 일은 훗날,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또한 경쟁하듯 나타나는 수많은 탐험가들에게 너그러이 탐험 지식을 가르쳐 주었고, 마침내 조난당한 노빌레 탐험대를 구조하러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숭고한 인간미와 희생정신, 굳은 의지는 우리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북유럽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5대 피오르드다. 피오르드 관광 기차를 이용하여 뮈르달~플롬~구드방겐~구드방겐~보스~베르겐으로 이동하며 피오르드의 진면목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 가시는 분들께 참고로, 비용이 조금 싸다고 외국계 관광여행사를 상대하기보다는 한인 여행사를 많이 이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중국인들은 자기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면 형편없는 물건이라도 서로 상권을 이뤄 돕는데 우리도 그런 면은 배워야 한다. 이것이 동포애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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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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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1
북 유럽 크루즈 여행(5)

 

 

 


 7월 31일: 북유럽(필란드.러시아.에스토니아.스웨덴.독일)관광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인 노르웨이로 달렸다. 첫 기항지, 하우게순(Haung sund)에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 갈 관광차가 긴 목을 빼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 관광차를 타고 두어 시간 정상을 향하여 올라갔다. 45도 능선을 기어오르는 하던 차는 점점 중턱으로 들어서면서 구름 속에 파묻힌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거대한 산은 구름이 걷히며 봉우리만 빠끔히 내밀며 일행을 맞이한다.


 깎아지른 괴암 절벽, 계곡과 계곡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하강기류가 심해지며 변화무쌍한 파노라마를 연출하며 산상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뽐내고 있다. 최고봉 정상에 올라 신비스러운 절경을 사진에 담고 하산을 하며 그날의 일정을 마쳤다.


 8월 1일: 스타방에르 노르웨이 남서부에 위치한 이 유서 깊은 도시는 노르웨이에서 네 번째로 크고 석유가 많이 나오고 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유전을 발견하면서 노르웨이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한곳이다.


 스타방에르의 주요 볼거리는 수많은 박물관들이다. 날씨가 심하게 추운 날에는 박물관을 방문하여 아늑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미술관에서는 안토니 곰리를 비롯한 노르웨이와 국제 화가들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거기서 항구 쪽으로 조금 오면 각국 정상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사진도 나란히 찍혀있다.


 8월2일: 피요르드(Fjord 혹은 Fiord)는 빙하가 침식하여 생긴 길고 좁은 협곡이다. 피오르드란, 빙하가 많은 지역에 빙하로 인해 생겨난 유(U)자 형태의 골짜기를 말한다. 일반적인 협곡이나 산맥에 비해 곡벽의 경사가 급해, 대부분 절벽 같은 절경을 이루고 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는 4대 노르웨이 피오르드 중에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 아름다운 자태로 노르웨이 피오르드 중에 유일하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노르웨이 피오르드 들은 수심이 깊어 제4기의 빙기(氷期) 해안에서 빙하가 소멸한 다음, 그곳에 바닷물이 침입하였다가 해면이 다시 상승하여 형성됐는데, 대서양과 서해 지역과 이어진 것이 마치 모세혈관처럼 세밀하고 길고 깊게 파여 있는 것이 인간의 신체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내륙 안쪽으로 갈수록 깊고, 바다와 인접한 곳일수록 침식작용이 약해서 얕아지는데, 이 공간에 바닷물이 흘러들어가 빙하 호수 피오르드가 된 것이다. 
 노르웨이에는 예이랑게르, 노르, 송네, 하르당게르, 뤼세 등 5대 피오르드가 있다고 한다.


 8월 3일: 북유럽의 베니스라는 별명을 가진 올레순을 구경하였다. 간간히 비가 내려서 조금은 우울한 느낌도 들었고, 비 내리는 시야는 몽롱한 느낌을 자아냈다. 준령이 이어진 계곡에는 민가가 한가히 늘어진 것이 마치 개마고원을 연상케 하였다. 


 트롤스트겐 준령 산중턱을 깎아지르듯 올라가면 울퉁불퉁한 길이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똬리를 튼것 같아 징그럽기까지 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스쳐갈 정도로 좁은 길은, 아차 실수하면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로 구를 것 같은 스릴과 현기증을 느끼며 관광객들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올레순은 1905년 큰 화재가 일어나 목조주택 850여 채가 불에 탄 뒤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로 도시가 재건축됐다. 산 전망대에 올라가면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희고 노랗고 파란 집들이 모자이크 돼 만들어내는 풍경은 왜 이곳이 아르누보의 도시라 불리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바닷가 양편으로 지은지 100년 넘은 호텔과 집들이 들어서 있다. 악슬라 전망대에서 도시를 굽어보는 사람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은 장식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을 특징으로 하지만, 올레순의 아르누보는 조금 다르다. 옹기종기 예쁜 집들이 모인 유럽의 여느 도시들에 비하면 소박한 편. 건물 외벽 가운데에 뱀 무늬, 밧줄 무늬, 투박한 얼굴 모양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8월 4일: 플롬으로 이동해 철도를 타고 출발해 해발 866m를 오르는 산악열차가 운행했다.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산과 산, 협곡과 협곡을 나선형으로 관통하는 이색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뮈르달에서 플롬까지 총 11개 역과 20개의 터널이 있으며, 최대 경사는 55도에 이른다. 


 관광열차는 플롬스달렌(Flamsdalen) 계곡이 구불구불하고 험준한 산악지형에 깊은 협곡이 이어져 있어 천천히 운행할 수밖에 없고, 관광객들은 대부분 창문에 매달려 풍경을 눈 혹은 카메라에 담기에만 정신이 없다. 


 양쪽의 창문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잘 정리된 나무들 속에 엄청난 소용돌이를 치며 쏟아지는 폭포의 굉음을 들으며 계곡을 타고 굴속으로 들어가는 열차를 보면, 젊었을 때 보던 은하철도 999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 폭포 앞에서 10분 정도 정차하여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난 후 열차는 목적지를 향해 서서히 출발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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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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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북유럽 크루즈 여행(4)

 

 30일(바다에서): Pullmantur호는 마지막 기착지인 노르웨이를 향했다. 파도는 전날 같이 사나웠다. 거대한 배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려, 마치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탄 기분도 들었다. 한없이 넓은 바다 한가운데 외로이 놓여있는 돛단배 한 척. 어디로 가도 목적지가 없는 한가로이 떠도는 조각배, 인생사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뜻으로 풀이해 본다.

 

 

 


 막간을 이용하여 파도와 더불어 역사공부하는 것도 여행도중 감칠맛이 난다. 두 인물을 선정했다. 콜럼버스 전기다. 콜럼버스는 제조공장을 하는 꽤 부유한 집안에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 콜럼버스에게 장차 공장을 맡기려고 했으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좋아하고 모험심을 키웠다. 그 무렵만 해도 지구는 네모나서, 배를 타고 멀리 나가면 낭떠러지로 떨어질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극구 말렸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의심을 품고 그것을 증명해보고자, 포르투갈 조왕 2세에게 간청하여 배를 얻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페인으로 가서 ‘이사벨라’ 여왕의 원조로 드디어 항해 길에 올랐다.


 2달간 바다와 싸우는 긴 항해가 계속되었다. 처음엔 기세당당하게 출항하던 선원들은 오랜 항해에 지쳐 자기들끼리 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굳은 신념으로 이들을 설득하여 드디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 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


 제일 먼저 상륙한 콜럼버스는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려 흙에 입술을 댔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서 큰소리로 울었다. “하느님과 이사벨라 여왕의 이름으로 나는 이 땅을 점령한다!” 콜럼버스는 엄숙하게 선언하고, 그 땅에 산살바도르 섬(‘구세주의 섬’이란 뜻)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서인도 제도(중앙아메리카의 동쪽바다의 흩어져 있는 여러 섬들)의 한 섬인 이곳을 ‘인디아’로 잘못 알았다. 그리고 이런 잘못을 죽는 날까지 깨닫지 못했다. 나중에 ‘베스푸치’에 의해 이곳이 아메리카의 일부로 밝혀졌는데, 콜럼버스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얼마쯤 지나자, 이 섬에 사는 원주민이 몰려왔다. 그들은 거무스름한 피부에다 단단한 몸집, 짜임새 있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이 알몸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에게 ‘인디언’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것은 ‘인디아의 주민‘이란 뜻이었다. 


 인디언들은 콜로부스의 일행을 보자 땅에 엎드려 머리를 숙였다. 그들은 콜럼버스 일행을 신으로 알았던 것이다. 거무틱틱한 자기들 모습만 보다 흰색의 백인들이 그들 눈엔 신같이 보였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귀족의 집 연회장에 초대받아 갔을 때 일이다. 손님 중에 한사람이 콜럼버스의 공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옆에 있는 삶은 달걀 하나를 들고 말했다. 


 “여러분, 식탁에 이 달걀을 세울 수 있습니까?” 아무도 세우지를 못했다. 콜럼버스는 달걀의 끝을 깨트려 식탁에 세우며, “남이 한 것을 보면 무엇이든지 쉽고 간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처음 하기는 어렵습니다”라고 했다. 콜럼버스 말에 손님들은 아무 말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런 소박한 꿈에서 결국에는 인류의 역사의 커다란 공헌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콜럼버스는 여러 차례 항해를 하여 공을 세웠는데, 원조자였던 이사벨 여왕이 죽자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감옥살이까지 하다 1506년 5월 20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이킹은 8~11세기에 원거주지 스칸디나비아 및 덴마크에서 유럽 각지에 이동한 게르만의 일파, 노르만인의 별칭이다. 그 명칭은 스칸디나비아 연안의 비크(vik, 후미에 사는 사람들)에서 유래하였는데, 전화(轉化)되어 상인 활동을 위해 비크를 근거지로 하는 전사적(戰士的) 상인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게르만 고래(古來)의 이교를 신봉하며,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면서도 항해술에 능하여 사가, 에다(옛 아이슬란드어로 쓰인 고대 북유럽의 신화와 영웅전설을 쓴 책) 등의 민족 문학을 낳게 하였다. 


 8세기 무렵부터 북해, 발트해 연안에서 약탈을 겸한 상업활동을 전개하였다. 9~10세기에는 강력한 군단조직을 배경으로 잉글랜드, 노르망디, 시칠리아, 나폴리, 러시아, 아이슬란드 등으로 이동하여 정착하였다. 호전적인 반면 정복국에 대하여 정치, 군사, 경제적 지배를 추진하여 토착문화와 융합하며, 북유럽의 상업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이 바다 탐험에 혁혁한 공을 세운 탐험가도 많았으나 이 특출한 항해사들로 인해, 역사적 뒤안길에 소리없이 사라진 항해사들도 많았다. 바이킹 역시 어느 항해사에 뒤지지 않는 바다의 사나이였는데 안타깝게도 자국 영토 확장을 하다 해적왕의 불명예를 않은 비운의 항해사가 된 것이다.


 사납던 배도 가끔은 한숨을 돌리며 미끄러지듯 바다를 질주한다. 물결은 비교적 잔잔했고, 달빛은 고요했다. 이따금 고기잡이 어선과 마주칠 때면 외로움이 교차되며 서로의 손을 흔들며 지루함을 교환했다. 일렁이는 뱃머리서 멀리 수평선 저너머 미지의 세계에서 무언지 모를 비현실적 이야기가 아련히 들려오는 듯하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산천 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문학의 향기가 이런 것일까. 오경(五更) 달빛 희미한 뱃머리에 서서 ‘희망의 나라로’를 웅얼거리니, 어느덧 동녘해가 희미하게 비쳐오고 있다. 잔잔한 파도가 또 다시 심통을 부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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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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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0
북유럽 크루즈 여행(3)

 

 북유럽은 대개 도시 한가운데 배수로가 있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쾌적하고 활기가 넘쳐, 일찍이 서구권에서 볼 수 없던 것이라 매우 인상적이었다. 토론토가 공기 맑기로 정평이 나있지만, 홍보에 의한 영향이지 실제 북유럽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캐나다가 복지국가로서는 세계 제일이라 믿는다. 하지만, 환경에 대해서는 북유럽을 방문한 후로는 세계 제일이라는 자만심을 접어야 할 것 같다.

 

 

 


 북유럽은 어디를 가나 화폐 사용이 조금씩 다르다. 핀란드는 유로화를 쓰고, 노르웨이는 자체 통화를 쓴다. 통화를 환전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출국 전 캐나다에서 환전해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크루즈 경험이 없는 나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물론 현지에서도 환전할 수 있지만,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풍물시장을 구경할 때 소매치기들을 조심하라고 출발 전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그런데 소매치기보다는 그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텃세군 이라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왜냐하면 그 나라 국민성이 나와 관계없는 일이면 모두 관심 밖같이 생각하는 것 같아서다.


 다행히 우리 일행 중에는 당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물건을 앞으로 메고 다니는 모습들이 꼭 애기를 안고 가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도 나왔다. 지나친 경계심에 텃세군들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기 때문 아닌가 싶다. 
 주의해야 할 점은 북유럽의 여름은 백야(白夜)(동지 무렵의 남극지방이나 하지 무렵 북극지방에서 산란하는 해의 빛살 때문에 밤이 어두워지지 않는 현상)가 존재하므로 볼거리가 많아진다는 점은 좋지만 몸 관리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교통편은 기항지에서 내리면 관광버스들이 손님들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 걱정 안해도 된다. 다양한 ‘시티투어’ 버스가 있어, 해당 도시의 주요 ‘핫 플레이스‘들을 편하게 둘러보면서 관광을 즐길 수 있다. 크루즈사에서 제공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된다. 


 또한 언어에 어느 정도 자신 있다면 현지 노면전차(Tram)나 버스, 지하철도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알아야 할 점은 화장실이 유료(有料)라 지나친 음료수는 되도록 삼가해야 한다.


 29일: 독일 북부 발트해 로스토크 항구에 도착했다. 독일 동쪽 연안이며 1218년에 도시가 형성됐다. 오는날 인구 약 20만 명으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 최대 도시다. 여객과 화물수송에 있어 아주 중요한 항구이며, 유람선이 다니는 큰 항구이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곤 베를린으로 차는 내달린다. 


 달리는 차창 밖은 여느 도시와 달리 이채롭다. 광활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협소하지만, 깨끗하여 세계 일등국가답게 한군데 허술한 곳 없었다. 또한 주변에 동력풍향계가 세워져 있어 소도시 주민을 위하여 전기를 공급해주는 편리한 시설로 이용된다.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베를린은 호헨촐레른 왕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지도 아래 번영하였다. 그의 통치 아래 슈프레 강과 오데르 강 사이에 운하를 건설하였다. 베를린, 쾰른과 3개의 이웃 집단들이 통합하여 하나의 베를린을 이룬 것이다. 그로 인해 1700년대부터 예술과 과학이 번창하였고, 산업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1918년 1차 세계전쟁 기간에 파업, 폭동,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도시는 삭막해졌다. 전세계 경제 대공황에 의하여 타격을 받으면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재 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베를린 장벽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1989년 11월 9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장벽을 주민들이 무너트린 역사적 사건이다. 1945년 정치적인 이유로 분단됐다가, 1961년 독일 국민들의 염원으로 마침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베를린장벽 붕괴는 넓은 차원에서 보면 동유럽 공산주의가 붕괴하는 과정 중 하나였다. 


 주독 한국문화원 도서자료실을 구경하던 중 눈에 뛴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의 업적은 세계 평화주의자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이 홍보되어 있어, 그것을 보는 순간 개인적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그에 대해 정치적인 시사(時事)를 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모처럼 여행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줄인다.


 무너진 베를린장벽 경계에서 오른발은 서독, 왼발은 동독을 밟고 깊은 이데올로기에 빠져본다. 독일정부는 탁월한 지도자를 만나 진작 통일이 되었는데,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하는가? 선진 국민성과 투철한 정신이 오늘날 독일의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다음은 베를린 장벽 한국문화원에 걸려있는 괴테의 시다. 

 

 


파우스트(Faust)

 


이 지상의 욕망과 고뇌로부터/

우리를 구제하여 높이 끌어 올리는/

신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악마의 뀜에 빠져/죄 지은 파우스트의 영혼이/

천상에 이르렀을 때/

천사들은 꽃을 뿌리고/

그래체핸(Gretchen)은 길을 인도했으나…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 현세적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히지만 마침내 잘못을 깨달아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기존의 고전 독일 문학에 기독교적 도덕을 심화시킨 그의 서사적 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금지시켰는데, 이브가 사탄에게서 유혹을 받아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써 죄에 빠지고 만다. 


 괴테가 아무리 세계적 문호라 해도 자신의 창의가 아니고 아담과 이브를 배경으로 이 시를 지은 것이라 추측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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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6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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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북유럽 크루즈 여행(2)

 

▲바사호의 선수부(앞부분)

 

 

(지난 호에 이어)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을 관람하였다. 박물관의 환경은 마치 고대국가의 상징물 같았다. 궁전 입구에 들어서자 실내 안은 황금으로 치장되어 눈부시게 황홀하다.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며, 200년 동안 러시아 군주들의 여름 휴양지로 이용돼 흔히 여름궁전이라 불린다. 


 구 소련시절 한때 경제개발을 위한 외화가 부족해 소장된 예술품을 외국에 팔아먹기도 했으나, 소련 경제가 발전하자 곧 소장품을 확대하였고, 현재는 마티즈나 피카소 같은 미술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거의 비슷해 이 정도에서 밖으로 나왔다.


 관광을 마치고 배에 오르면 선상(pullmantur)의 풍경도 육지 못지않게 진풍경이다. 식사는 거의 11층에서 이루어지고 특별히 파티에 참석하려면 4층에서 행사가 이루어진다. 처음은 호기심과 화려한 의상을 뽐내고 싶은 충동에 참석하였는데, 매일같이 갈아 입어야 하는 의상이 부담스러워 빠지기도 했다.


 크루즈의 매력은 남자는 턱시도와 구두, 여자는 드레스를 입고 즐기는 정찬 레스토랑 만찬이다. 근사한 분위기에서 웨이터의 시중을 받으며 고급요리를 먹고, 각 나라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을 많이 보는 것이 또한 감상하는 재미가 짭짭했다.  술은 고급 위스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료.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식사를 즐길 수 있고, 간식이 생각나면 배 위에서 갓 구운 피자 등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주량이 남다른 난 매일 멕시코산 ‘댓길라’ 위스키를 3~4잔은 해치워 젊은날의 힘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먹고 나서 체중조절을 위해 12층에서 춤판이 벌어진다. 수영장과 같이 있어 수영복을 입은 대로 마구잡이 춤은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따로 없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다보면 브라질 카니발이 연상된다, 


 25일: 에스토니아 탈린 시가지를 구경했다. 탈린의 상징인 성 올레교회 구 시가지는 어디서나 눈에 뛴다. 첨탑 지붕이 성 올레교회, 겨울 이외는 지상에서 123미터 높이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13세기에 건설된 오래된 도시다. 올레교회는 무려 17세기 전반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는데, 지붕까지 올라가 아름다운 탈린의 거리와 항구까지 360도 바라볼 수 있어 좋으나 고소공포증을 주의해야 한다.


 26일 스웨덴: 스톡홀름 ‘바사’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첫 항해에서 침몰의 비운을 맞이한 스웨덴 전함이다. 17세기 전함의 건조와 인양, 1628년 스톡홀름 항구에서 처녀항해에 나선 바사 전함은 출항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침몰하였다. 침몰된 전함은 300년이 지난 후 해양 고고학자들에 의해 인양되어 1990년 바사 박물관으로 옮겨 전시되었다.


 면대면 전시에는 선원들의 유골이 보존되어 있고, 선원들의 배 위에서의 역할과 몸 상태를 설명하는 ‘멀티미디어’ 전시도 있다. 선상 생활 전시에서는 선원들이 입던 의복과 그들이 먹던 음식도 정결하게 전시되어 있다. 인양 전함의 발견과 인양 작업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다양했다.


 이밖에 여러 유품들 볼거리가 많았으나 시간에 쫓기어 아쉽게 전시관을 빠져 나왔다. 시간이 부족하면 바사호 영화 17분을 보거나, 바사호를 둘러보는 투어 25분을 권장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은 스톡홀름 시청사를 방문했다. 박물관 안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에 관한 정보와 업적을 수상 연도별로 소개하고 있다.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과 그가 옥중 사용했던 털신 및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쓴 편지가 있고, 북한의 이야기도 한 섹션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상 100주년이 되는 2000년에 역대 81번째, 아시아인으로서는 일곱번째,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앞장서 서독 사민당 의원 73명이 추천한 했는데, 사유는 한국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위한 투쟁과 3단계 통일방안을 제창해 남북평화에 기여한 공로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은 국격있는 나라가 되었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으며, 특히 한반도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세계에 다시금 인식시킨 계기가 되었다. 


 28일 해상에서: 스웨덴 방문을 마치고 밤새 독일로 향했다. 바다는 제법 잔잔하다가도 어느 순간 시커먼 파고로 돌변하여 사납게 파도가 친다. 하얀 거품을 내품으며 요동칠 때면 바다 속에서 엄청난 괴물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어려서 읽었던 소설 ‘백경’의 모비딕이 떠올랐다. 거대한 흰고래,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은 오로지 모비딕에 복수 일념으로 삶의 자원을 모두 투자한다. 망망대해 파고 속에 며칠 만에 백경을 찾은 그의 눈은 복수의 빛이 이글거린다. 선원들과 같이 작살을 던지며 아우성을 치지만 그럴수록 백경은 더욱 사납게 뱃전을 강타해왔다. 


 수시간 사투 끝에 선원들은 지쳤고, 백경은 최후에 힘을 모아 배 바닥을 밀어 배가 뒤집힌다. 동시에 선원들이 물속으로 빠져든다. 수 분 후 에이허브는 밧줄에 목이 걸려 깊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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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60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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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7
북유럽 크루즈 여행(1)

 

 참으로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한 시간 앞을 모르는 게 인간사인데 10개월 전부터 북미 ‘크루즈’ 여행을 예약해놓고 기다리느라 솔직히 반신반의도 많이 했다. 몸이 아프면, 가정에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이런 요망한 잡념으로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비행기는 이륙과 동시에 북을 향해 몬트리올, 퀘벡 상공으로 기수를 돌렸다. 첫 목적지인 아이슬란드에 6시간 만에 도착해, 40분을 공항대합실에서 기다리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핀란드 수도 헬싱키로 날아갔다.


 비행기가 대기권에 돌입하여 창밖에 비쳐진 자태는 그야말로 현란한 극치다. 이번여행도 성격상 그냥 넘기지 못하고 깊은 명상에 심취해 본다. 도대체 이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신비는 어디서 오는 걸까? 신의 작품일까? 아니면 인류가 만든 진화일까? 끝없는 상상은 결국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상충(相衝)되어 우리 인류에 수수께끼로 남는다.


 삼라만상의 모든 사물은 신의 작품이고, 그 안에서 생산된 물건들은 진화론이라 하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지만, 자연 철학과는 거리가 먼 아둔한 발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이를테면 인류의 보편적(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관념, 그 범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류의 공통적 생각이 아닌가 싶다.


 끝없는 상념 속에 나를 의식했을 때는 이미 비행기가 헬싱키 공항에 착륙을 하였다. 도착 하자마자 가이드의 안내로 대성당, 공원 마켓 광장, 우스펜스키 사원, 에스플라나디를 관광차를 타고 돌아보았다. 곳곳에 차를 즐기는 관광객들 모습은 지극히 낭만적이어 부럽기도 하였다. 


 첫날을 그렇게 끝내고 우리들이 2주 동안 정착할 상선 Pullmantur 호에 올랐다. 하늘과 달리 바다의 절경은 하늘에서 느껴보지 못한 공기가 감지되었다. 함선에 들어오는 비릿한 바다 특유의 냄새가 콧속을 후빈다. 


 하늘만 누비다 바다를 보니 미지에 세계를 온 것 같고, 통통선만 타보다 거대한 배를 타보니 배가 배 밖으로 나왔다고나 할까,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무의식중에 비명이 나왔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우리가 탄 배는 크루즈 여행 선으로는 소형(7만5000톤)이며, 이보다 더 큰배 23만톤(19층 높이, 축구장 3개 크기) 배도 있다고 한다. 


 배안에 풍경도 큰 호텔을 능가했다. 크루즈 여행은 누구나 한번 쯤 꿈꾸어보는 여행이라더니, 호화 유람선에서 먹고 놀고 쉬면서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 있는 자들의 만찬장이라 해도 그리 탓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북유럽 크루즈는 1년 중 여름철에만 즐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행코스라 한다. 북유럽(핀란드.에스토니아.러시아.스웨덴.독일.노르웨이)의 추운 날씨와 긴 이동거리로 인해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14일을 즐길 수 있으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상선의 바다 야경은 비행기에서 느껴보지 못한 색다를 황홀의 극치다. 출렁이는 파도와 흐르는 물결을 따라 40m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고, 한동안 바다를 응시하다보면 배가 가는 건지 물이 흐르는 건지 착시현상에 눈동자가 몽롱해 진다.


 천체 과학자 뉴턴이 떠오른다. 그의 과학적 업적은 에디슨을 버금간다. 그가 발명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빛의 일곱 가지 색을 발견했고, 망원경을 발명했고, 지렛대를 이용해 물건 운반, 모래를 떨어트려 시간을 알렸고, 다람쥐를 이용해 쳇바퀴를 돌려 힘의 원리를 이용했고, 특히 넓은 우주의 신비를 알아낸 과학자다. 


 어째서 지구와 달 그리고 별들은 부딪치거나 끌려가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일까? 이런 끊임없는 그의 연구는 마침내 정원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밝혀냈던 것이다. 뉴턴 비문에 씌어 있듯이 그는 영원히 잊힐 수 없는 인류의 위대한 과학자다.


 23일 러시아: 첫날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방문 하였다. 러시아를 찾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볼 곳이다. 역대 황제들의 거처였던 겨울궁전의 부속건물을 개조한 박물관은 담녹색의 외관에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로코코 양식으로 되어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렘브란트, 모네, 피사로, 밀레, 르누아르 등에서부터 세잔, 고흐, 고갱, 드가,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세계 유명 화가의 그림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특히 마티스의 대작 ‘댄스’를 본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며, 우리나라 김흥수 화백의 ‘승무’도 눈에 확 들어왔다. 이러한 전시품이 아니더라도 러시아 황제의 권력과 화려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궁전 자체의 아름다움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볼거리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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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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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바보 노무현

 
'토론토한국영화제에서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바보 노무현

 

 

동남쪽 끝에 큰 별 떨어졌습니다.
그 이름 국민 아버지 정신적 지주 
차마도 보낼 수 없어 가슴에 묻었지요.

 

가신 후 하늘도 땅도 바다도 울고
육신은 떠났지만 영혼은 우리 곁에
얻은 것 많다 하지만 모두 잃은 당신

 

정의를 평생에 멍에로 짊어지고 
노동자 앞에선 순한 양이 되다
권력과 독재 앞에선 서릿발 같던 당신 

 

진실과 신념을 하늘에 약속하고, 
민초들 앞에선 두 무릎을 꿇었고
강자들 앞에 서서는 두 무릎을 편 당신

 

실리 찾아 신의를 초개같이 버린 
썩고 병든 흙탕물 정치 속에서
독재와 타협치 않은 의연했던 당신 

 

신념을 목숨으로 지킨 외로웠던 임
갈망하던 문‘文‘이 활짝 열렸습니다.
불굴의 바보 노무현 이제는 편히 영면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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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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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청계천(淸溪川)에서.

 

▲청계천 

 

 

 명동을 뒤로하고 을지로를 지나 청계천(淸溪川)으로 향했다. 청계천은 1960년대 농촌 빈농들이 전국에서 대거 몰려 정착해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어보아야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어 곤달걀이라도 팔아 살아가겠다고 몰려든 곳이 바로 이곳 청계천이다. 


 청계천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내부에 있는 지방하천으로, 한강 수계에 속하며 중랑천의 지류이다.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백운동 계곡이며, 남으로 흐르다가 청계광장 부근의 지하에서 삼청동천을 합치며 몸집을 키운다. 이곳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서울의 전통적인 도심지를 가로지르다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옆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든다.


 내 생에 청계천이 세 번 업사이드다운(upside down)이 됐다. 처음엔 ‘학고방’들이 청계천을 껴안고 다닥다닥 즐비하게 들어섰다. 그 후 인구팽창으로 복개를 하여 주민들이 성남으로 둥지를 옮겼고, 일부는 성북구 상계동, 하계동으로 철거를 당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을 때 복개를 철거하고 원상복귀 하여 역사적으로 굴곡이 심했던 곳이다. 


 처음 청계천을 찾았을 때는 조형물 같아 신선하지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여러 해가 지난 지금은 능수버들이 키를 넘고, 갈대숲이 우거지고, 갖가지 생물들이 서식하고, 원앙새 들이 유유히 노닐고, 팔뚝만한 잉어들이 자맥질을 하며 자연숲을 이루고 있다. 


 벽면에는 이조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은 것을 원통히 여겨 그 영혼을 위로하러 수원으로 가는 대취타(大吹打) 행렬 그림이 웅장하면서도 이채롭다.


 공기도 산속보다 더 신선하여 산림욕을 즐기려면 시간을 낭비하며 멀리 갈 것이 아니라 이곳 청계천이 좋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굳이 욕심을 부려본다면 인공 물레방아도 몇 개 만들어 놨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아쉽다. 


 요즘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모래바람에 미세먼지까지 겹친 불편을 생각하면 도시의 낙원이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이 교통난에 시달리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니 신선이 따로 없다.

 

 

 청계천과 인왕산

 


 
만리길 휘휘 돌아 찾아온 청계냇가
물은 물이로되 옛 물이 아니라 서럽네
살여울 옥빛 색깔고운 물 언제 다시 볼까나

 

수표교 교각 아래 아낙들 방망이 소리
사대문 도성 인경 소리 알리는 듯 들리고
무심한 원앙새 한 쌍만 무심히 노니는데

 

 

 시조 한수를 읊고 종로5가 광장시장으로 들어서면 먹을거리 골목에 갖가지 술안주들이 주당들의 군침을 흘리게 한다. 그곳에 한국에 자주 나가다 들리던 사순댁 집이 있다. 사순댁은 4자매가 한곳에서 같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일순이, 이순이, 삼순이, 사순이. 이름이 기억이 안 돼 부르기 좋게 순서대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중 사순댁이 젊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여성스런 면에 지성적이어서 이곳에서 일하기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일순댁은 남편이 월남에 파병됐다가 고엽제를 마시고 귀국 후 수전증이 재발해 평생고생을 하다 작년에 작고하고 홀로 살아가고 있다. 인생사 한번 왔다 가는 것 결코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알렉산드르 프시킨의 말을 위로랍시고 너스레를 떠니 내가 마치 tv문학관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

 

 


 낮술에 거나해 막내 사순씨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청계천을 거슬러 광화문 쪽으로 올라갔다. 우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묵념부터 했고, 어수선한 현실 분위기에 안정을 찾게 해달라는 작은 소망을 올렸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촛농을 얼마나 많이 흘려놓았는지 시멘트 바닥이 미끈거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저쪽에서는 성조기가 기세등등하게 펄럭인다. 순간 ‘사대주의 종속국입니다?’라는 소리가 무의식중에 나왔다. 아뿔싸, 평소 잠재되어있던 소리가 취중에 나오고 말은 것이다. 


 하염없이 청와대 쪽을 응시했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일까, 만감이 교차된다. 보이는 거라곤 인왕산 기슬 따라 먹구름 낀 운무뿐이다. 낙산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며 무학 대사로 하여금 도성 사대문을 쌓을 때 기초를 둔 곳이다. 오백년의 역시가 바뀌고 바뀌며 숫한 영웅호걸들이 죽어갔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게 무엇일까?

 

 

인왕산 낙산봉은 무학 대사 전설이
오백년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이 태조 임금 왕(王)자가 운무 속에 묻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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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chung
정충모
60013
10284
2017-07-06
아! 그 옛날 명동이여

 

 명동성당은 대한만국 제일의 성당인 만큼 위풍이 당당하다. 캐나다에서 한국을 방문해 명동성당 앞에 서있다는 것 하나만이라도 자부심이 생긴다. 명동성당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명동성당이 내 속에 안겨있는 느낌이 들어 지구를 통째로 들고 있는 것보다 더 감격스러웠다. 

 

 

 


 옥에 티, 그 큰 성당에 성가대 인원이 10~15명 정도 밖에 안돼 너무 초라했다. 매주 수도 없이 들어오는 성도들로 인해 시간에 쫓기다 형식에만 그친 것 같다. 다른 땐 몰라도 적어도 내가 미사 볼 때는 그랬다. 


 성격상 분위기가 어색하면 쭈뼛대던 수줍음도 오늘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없어졌다. 많은 인파를 밀치고 앞에서 셋째 줄에 기세등등하게 다가가 앉았다. 복도에는 미사 절차 규칙이 적혀있다. 


 ‘미사 시작 10분 전까지는 성당에 도착하여 마음을 차분히 정돈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 휴대전화는 꺼 놓읍시다.’


 ‘주님을 만나러 오는 날입니다. 단정한 옷차림을 하며 운동복이나 슬리퍼 착용은 삼갑니다.’


 ‘미사시간에는 조용하고 정중한 자세를 하며, 특히 하느님의 말씀이 봉독되는 독서, 복음, 강론 때는 주보나 안내책자를 보는 행동을 삼가고 경청을 합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시간입니다. 헌금은 미리 정성으로 준비해 놓읍시다.’


 ‘주님을 모시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미사 1시간 전에 음식을 먹지 않는 공복재를 지키며 손을 깨끗이 씻도록 합시다.’


 ‘어린이와 함께 미사를 드릴 경우에는 장난감 등으로 주위 분들이 분심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 바랍니다.’


 ‘주보는 함부로 버리지 말고 집에 가져가거나 다른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깨끗이 반납합시다.’


 묵주기도가 은혜롭게 가슴을 파고든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아버지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내려주소서….


 미사를 마치고 많이 변해버린 옛 명동 거리를 거니니 희비(喜悲)가 갈리며 옛 추억들이 주마등 같이 떠오른다. 


 총각시절 세종호텔에서 밤새 ‘빠징고’를 하다 한 달 월급을 하룻밤에 다 날리고 어머니한테 핀잔을 듣고 차비 타던 일, 제일은행 본점 자동 전화교환대 보수할 때의 아가씨와 밀어(만나고 싶은데 만나주지를 않는다. 치사한 방법을 썼다. 그녀가 담당하는 전화코드를 슬쩍 분류시켰다. 부장실로 끌려간 그녀는 입이 대발만큼 나와 기계실로 들어왔다. 나라는 게 의심은 가지만 심증만 있지 물적 증거가 없다. 뾰로통해 앉아있는 그녀에게 표정으로 말을 했다. ‘만나줄거요? 또 부장한태 혼날거요? 그녀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승리의 쾌감은 야릇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6개월 만에 끝났다. 이유는 생략).


 무엇보다도 잊지 못할 잔인한 추억은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새 흥청거리다 새벽에 갈증이 나서 해장국집을 찾다가 목격한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이다. 화염이 치솟는 속에 매트리스 하나 안고 20층 높이에서 바닥에 퍽퍽 떨어져 선열이 낭자한 끔직한 참사는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유난히 배우 꿈을 꾸던 죽마지우 얘기다. 키는 작지만 신성일 못지않게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동안의 멋쟁이 친구였다. 탤런트 모집 때 친구는 결국 몽상을 버리지 못하고 응모를 했다. 12명 모집하는 데서 1600여 명이 왔고, 예선 50명이 합격했다. 그러나 완고한 집안이었다. 합격통지서를 가지고 집안에 내놓았지만 대가족 속에서도 그를 지원해주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한결같이 딴따라 광대놀이라며 반대만 했다. 양잿물이라도 마시고 죽어버린다고 떼를 쓸만도 한데, 그 친구는 그런 용기조차 없었다. 


 을지로 입구 쪽으로 오면 그 유명한 ‘유토피아’가 나온다. 대한민국 인기 배우, 가수들의 그 시절 ‘아지트’였다. 그때 그곳에서 부르던 유명한 노래들을 뽑아본다.


그 옛날의 명동길 (백승태)


 그 옛날 명동 길을 내가 왔는데 왜 모두 변했는가. 내 마음 달래주던 포장마차도 정을 주던 그때 그 여인도 불빛 따라 그 추억 찾으려고 헤매었건만 날 두고 좋은 장소 모습 바꾼 그 옛날 명동~길 

 

진고개 신사 (최희준)


 미련 없이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그 여인의 얼굴을 별마다 새겨보는 별마다 새겨보는 아~진고개 신사  

 

 진고개에 해가 기울고 어스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어디에 있다가들 모여드는지 문화동아리들이 어미 새가 있는 둥지를 찾아드는 새끼들처럼 ‘진고개’로 찾아든다. 볼 것도 없는 누추한 선술집, 왜 그리 미련을 두었던지, 무에 그리 좋다고 꾸역꾸역 찾아드는지 긴 나무탁자에 사기 그릇 대폿잔, 깨진 유리창, 안주라야 빈대떡과 마른 명태 그리고 김치뿐.


 철철 넘치는 막걸리를 마시고, 아름다운 시를 쓰고, 그 시에 곡을 붙여 노래 부르던 그 질박한 선술집, 박인환 시인도 그때 거기서 죽어갔다. 점점 물들어가는 하얀 머리, 움푹 패인 주름이 오늘따라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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