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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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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돈 이야기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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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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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3
유동환의 돈 이야기(50)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3)

 

 

▲델라웨어 도강 작전을 선두 지휘하는 워싱턴 총 사령관(트렌튼 전투) 

 

 


I will die on Foot before I will live on my Knees. (George Washington) 

 

(786호에 이어)


10월 29일 미연합상원은 벤자민 프랭클린을 프랑스 특사로 파견하였다. 프랑스인들에게 잘 알려진 프랭클린은 프랑스의 귀족들을 접근하여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군사원조를 받는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12월 25일 밤 불굴의 명장 워싱턴은 해가 바뀌기 전에 공격을 결심하고 함께 죽음을 각오한 선발대 2400명을 선두 지휘하여 크리스마스 밤에 얼어붙은 위험한 델라웨어강을 건너 26일 오전 8시경 트렌튼 전투에서 1500명의 독일 헤씨안 용병 중 1000명을 사로 잡았다. 


원래 새벽 5시 이전에 야간습격을 계획했으나 도강 후 얼음비로 변한 강추위에 군장화도 없어 헝겁으로 발을 싸고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 대포를 끌어가야 했던 민병들의 발걸음이 늦어 동이 튼 다음 트렌튼에 도착했다. 


밝은 아침에 적군과 서로 노출되었지만 워싱턴은 주저하지 않고 총공격을 감행했다. 말 위에서 총격을 받고 27일 사망한 요한 랄 독일 사령관은 거의 굶주리고 헐벗은 워싱턴 패잔병들이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에 얼어붙는 강을 넘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민병대는 독일용병들로부터 군 병기, 군 장화 및 군복을 포함한 전리품을 획득하여 쾌거를 올렸다. 이 트렌튼 전투는 미국을 승리로 이끌게 한 미 독립전투사에 장식되어 초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어린이들의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2월 31일 워싱턴은 트렌튼에 민병 5천을 결집하고 콘월리스의 영국 정예병8천명을 유인하는 작전을 폈다. 


1777년


1월 2일 콘월리스의 지휘하에 5500명의 정예군이 프린스턴에서 트렌튼으로 향했다. 12마일의 행군 중 민병들의 저격을 받아 상당수의 장교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콘월리스는 트렌튼의 워싱턴 민병을 독 안에 든 쥐로 생각하고 다음날 포위작전을 세우기로 하고 야영으로 피로를 풀었다.


1월 3일 워싱턴은 500명의 민병만 트렌튼에 남기고 야밤을 통해 4500명의 민병과 대포를 끌고 소리를 죽이며 프린스턴으로 향했다. 남은 500명은 야밤에 불을 지피고 소음으로 허장성세를 보여주었다. 


동이 튼 후 워싱턴과 민병들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콘월리스는 프린스턴에서 워싱턴 민병의 영국군 후미공격으로 참패를 당하고 뉴 브런스윅으로 후퇴했다. 전리품을 챙기고 포로를 처리한 뒤 워싱턴은 뉴저지의 모리스 타운으로 행군하여 진을 쳤다.


프린스턴 전투는 영국군과 미연합군의 전면전투로 기록되었다. 승리로 이끈 워싱턴의 위용은 물론 개척인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고, 미 연합군의 응집을 확실하게 하였다. 한 민병은 백마를 타고 적군 사이를 휘젓는 워싱턴이 총격을 받을까 봐 눈을 감았다고 한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 전투에서 포병으로 활약을 했다. 이후 콘월리스는 워싱턴을 두려워하기 시작하여 워싱턴의 민병대가 지칠 대로 지쳤지만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했다.


6월 14일 영국의 존 버고인 장군은 8천명의 영국군을 지휘하여 캐나다 퀘벡을 떠나 남쪽으로 행군하여 7월 5일 티콘더로가를 점령하고 서서히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워싱턴은 베네딕트 아놀드와 다니엘 모건 민병대를 호레이쇼 게이트 민병 지휘관에게 보내 게이트의 군사력을 보강하였다. 8월 16일 버고인 지휘하에 있던 600명의 헤씨안 독일 용병이 민병에 투항했고, 8월 22일 영국과 함께 싸우던 인디언의 탈퇴로 이어졌다.


9월 19일 버고인은 프리맨 농장전투에서 승리했지만 60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탈영병이 계속 늘어 원군을 기다리며 수세에 몰렸다. 클린턴과 하우의 원군이 도착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받고 공급이 끊어져 절망상태에 들어갔다. 


10월 7일 퇴로를 찾으려던 버고인의 영국 정찰대가 민병대에 타격을 받고 10월 13일 민병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에서 10월 17일 버고인은 6222명의 영국군과 함께 민병대에 투항하여 사라토가 전투의 막을 내렸다. 


사라토가 전투는 영국과 적대심을 가진 유럽제국들에 알려져 영국의 경각심을 일으켰다. 특히 미 독립전쟁을 지켜보던 프랑스가 미국독립 인정을 하게 되어 미 연합국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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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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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1
2019-01-17
유동환의 돈 이야기(49)-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2)(The Founding Fathers of United States of America)

 

(지난 호에 이어)

 

Men should not petition for Rights, but take them. (Thomas Paine)

 

건국국부들은 국가를 위한 정직한 위정자들의 자체통치, 국방력 강화,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를 위하는 애국심과 단결심, 자유와 방종 구분, 권력 남용방지, 개인 소유권에 의한 자본주의선택 그리고 중앙은행에 의한 국가재정확립 등을 원칙으로 후손들이 지속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건국의 반석을 쌓아 나가게 하였다. 


미 독립전쟁(1775-1783)


미 독립전쟁시 돈을 쫓는 유럽 제국들은 7년 전쟁 후에도 혈안이 되어 서로 전쟁을 끝이지 않았다. 미 식민지정책에 의한 약탈경제와 식민지인들의 서부개척을 금지하는 영국법은 미국독립전쟁을 야기하였고, 미국은 영국의 적대국인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을 우방국으로 끌어드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정책으로 군이 모자라는 영국은 독일의 용병을 사들여 독립군과 싸우게 하였다. 그 당시 미 식민지13주 약40%의 애국독립군은 영국군에 합세한 약 20% 영국왕당파 민병대와도 싸워야 했다. 원주민 인디언들도 독립군과 영국지지 파로 분리되었다. 


1722년


6월 9일 존 브라운을 선두로 소수의 식민지인들은 로드 아일랜드에서 한 우편선을 추적하다 조류에 밀린 영국 개스피 세관선을 불태우고 선장을 총격으로 중상을 입혀 개스피 사건을 일으켰다. 


1773년 


5월 10일 영국의회에 통과된 홍차세에 분노한 보스턴 시민들은 동인도 무역회사선박에 선적된 홍차를 바다에 던져 부당한 세법에 항거하였다. 


1774년


영국의회는 징벌법을 만들고 통치자를 보냈으나 애국시민들의 거센 반항에 본국으로 피신하게 되었고, 영국은 토마스 게이지 중장과 정규군 4연대를 보내 폭도로 변한 시민들을 제압하려 하였다.


1775년


4월 18일 게이지는 메사추세츠 콩코드의 민병대 무기를 압수하기 위해 700명의 군대를 파견 하였다. 폴 리비에는 이 소식을 민병대에 알려 다음날 잠복한 500명의 민병대에 섬멸을 겨우 모면하고 보스턴으로 후퇴하였다.


이 렉싱턴 콩코드전투는 미 독립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민병대는 보스턴 포위전을 폈으나 6월 17일 4500명의 영국 정규군을 이끈 윌리엄 하우 장군에게 밀려 후퇴하였다. 6월 19일 미 연합 상원은 조오지 워싱턴 장군을 13주 민병대의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1776년


1월 10일 미국 건국 국부 8인에 들어가는 토마스 페인은 13주 미 연합국이 즉각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사실은 13주 연합시민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는 상식(Common Sense) 팜플렛을 발간하여 순식간에 50만 권이 팔렸다.


인구 250만 식민지 인구에 비하면 엄청난 호응을 받은 책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자는 애국민병대의 사기를 북돋아 주고 식민지 시민들의 단결심을 일으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한편 워싱턴은 부족한 무기와 탄약을 영국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일부 보충하고 자체생산도 시도하였으나 90%는 프랑스로부터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3월 독립군이 영국군 요새에서 포획한 대포의 포문을 영국군에 향하자 하우는 보스턴을 버리고 캐나다 핼리팩스로 후퇴하였다. 


워싱턴은 뉴욕시를 향해 민병대 대부분을 이동시켰다. 미 연합회 결정으로 민병대는 여세를 몰아 캐나다 퀘벡주를 미국의 14주로 영입하려 했으나 강력한 캐나다 및 영국 정규군에 몰려 6월 트루아 리비에르 전투 패배로 캐나다침공을 포기하였다.


7월 4일 미 연합회가 독립선언을 공포하였고, 워싱턴은 뉴욕시에 이동한 민병대 2만 명에게 독립선언문을 읽어주어 사기를 고취시켰다.


8월 27일 2만2천명의 영국 정규군을 재정비하고 롱아일랜드에 도착한 하우는 롱아일랜드 전투에서 민병대를 몰아내고 9월 15일 뉴욕을 점령하였다. 10월 28일 화이트 플레인스 전투를 벌였으나 워싱턴은 역부족으로 펜실바니아까지 후퇴하였다. 


월동준비로 영국군의 추격을 받지 않았지만 워싱턴의 민병은 고작 5천명밖에 안되고 연말에 복무계약이 끝나는 귀향군들을 제하면 1400명까지 줄게 되었다. 독립군에 종군하던 페인은 ‘지금이 독립군의 영혼을 시험할 때’라고 계몽하여 영국을 증오하는 개척인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현실은 재정난으로 헐벗고 공포에 떠는 처참한 패잔병들의 절망적인 패배감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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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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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4
유동환의 돈 이야기(48)-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1)

 

To be prepared for war is one of the most effective means of preserving peace. (George Washington)

Honesty is the best policy (Benjamin Franklin)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il. (Thomas Jefferson)

A national debt, if it is not excessive, will be a national blessing. (Alexander Hamilton)

Property is surely a right of mankind as real liberty (John Adams)

Those who own the country ought to govern it. (John Jay)

Liberty may be endangered by the abuse of liberty, but also by abuse of power. (James Madison)

 

 

미국 독립전쟁 전후로 미합중국을 세운 많은 영웅들을 통상적으로 미국의 아버지로 불러오던 것을 1916년 워렌 하딩 미 29대 대통령(1921-1923)이 그들 중 조오지 워싱톤, 벤자민 프렝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존 아담스, 존 제이, 제임스 메디슨 7인을 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로 명명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은 그들의 업적을 국가발전의 모델로 삼고 있다. 


부당한 세금포탈


세계 0차대전이라고도 불리는 7년 전쟁(1756-1763)으로 국고를 소비한 대영제국은 1764년 북미에 정착하는 13주의 영국식민지 주민에게 설탕세에 이어 1765년 인지세를 부과하여 부당한 세금약탈정책을 펼쳤다. 13주 대표들은 벤자민 프렝클린을 영국의회에 파견하여 세금의 부당성을 탄원하게 하였다. 


1766년 영국의회 청문회에서 프렝클린은 침착하고 조리 있는 응변으로 영국의 부당한 세금중지를 탄원하였다. 지역대표인이 없는 식민지 국민들에게 세금포탈은 부당하다는 주장에 영국의회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고, 13주가 연합해 영국상품 불매운동을 벌이자 영국은 인지세를 포기하고 1767년 타운센드법을 도입하여 13주의 모든 무역상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프렝클린은 11년간 영국에 머물며 영국의회 청문회에서 부당한 세금을 중지시키려고 노력을 하다 신변위험을 느껴 1775년 필라델피아로 돌아왔다. 프렝클린이 첫 번째 영국의회 청문회에 출두했을 때 그의 나이는 60세였고 후에 건국국부들로 활약한 조오지 워싱턴은 그 당시 33세, 존 아담스는 30세, 토마스 제퍼슨은 22세, 존 제이는 20세, 제임스 메디슨은 14세, 알렉산더 해밀턴은 11세로 거의 3세대에 걸쳐 미합중국을 세우게 되었다. 


미 독립선언


1770년 부당한 세금포탈을 반대하는 식민지인들의 거센 반대와 영국상품 불매운동에 당황한 영국주둔군은 살벌한 대립으로 견제가 어려워지자 발포를 하여 시민 5명을 학살하는 보스턴 학살사건을 일으켰다. 이에 대응한 미 연합13주 대표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776년 6월 26일 토마스 제퍼슨의 초안으로 벤자민 프렝클린, 존 아담스, 로저 셔만, 로버트 리빙스턴이 완성한 독립선언문을 그 해 7월4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13주 연합대회에서 56명의 대표자들이 서명 공표하였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1632-1704 )의 자연법 응용으로 생명과 자유는 물론 노동의 대가로 얻은 토지나 재산은 행복추구 자연법칙에 의해 소유권이 부여되어야 하고, 이 권리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독립선언문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또한 창조주에 의해 부여되는 인간의 평등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영국의 불공평하고 무자비한 식민지 탄압독재 정책으로 부당한 세금과 관세에 의한 재정적 약탈은 물론 군대에 의한 폭력을 용납할 수 없고, 그들로부터 독립하여 자유의 시민이 되어야 된다는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세금 즉 돈 때문에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볼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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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7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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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유동환의 돈 이야기(47)-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2)

 

(지난 780호에 이어)


미 연방헌법(U.S. Constitution, 1787 )에 의해 1789년 당선된 워싱턴 초대 대통령 이전의 8명 1년 직 미 대통령들은 역대 대통령평가에서 제외되고 있다. 


1781년부터 1789년까지 미 연합정관(Articles of Confederation )에 의한 미 대통령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상원의원들에 의해 구성된 연방상원의 의장 노릇 외에는 실권이 없었다.


참고로 1781년 초대 존 헨슨, 1782년 2대 엘라스 부디노, 1783년 3대 토마스 미틀린, 1784년 4대 리처드 핸리 리, 1785년 5대 존 핸칵, 1786년 6대 나싸니얼 골햄, 1787년 7대 아써 쌘 클레어, 1788년 8대 싸이러스 그리핀이 미국헌법 이전의 대통령으로 기록돼 있다. 


 미 대통령 평가기준


세부적으로 국민 설득력, 국가 위기관리, 경제발전, 윤리강령, 국제관계(국방과 외교), 행정관리, 상원과의 유대관계,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 평등에 의한 국민 단합추구, 실제 성과 등으로 점수를 측정하고 있다. 
평가는 점수로 나타나기 때문에 차세대 미 대통령들에게 국가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지도력의 동기부여를 준다는 커다란 가치가 있다.


상위 5위권의 미 대통령


1위 링컨, 2위 워싱턴, 3위 F 루즈벨트, 4위 T 루즈벨트, 5위 제퍼슨 대통령은 1948년 이후 수천 명의 역사학자들 평가에 의해 항상 5위권 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워싱턴과 F 루즈벨트가 2, 3위를 교차하기도 한다. 


상위 6위에서 10위권의 미 대통령


6위의 트루만을 제외하고 아이젠 하워, 레이건, 케네디, 존슨, 윌슨, 잭슨 대통령이 10위권 안의 자리를 교차하다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8위를 차지하는 평가를 볼 수 있다. 


변하지 않는 최상, 최하 평가


최상 1위는 링컨 대통령이, 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 2년도 안 되었는데 최하위 평가를 받는 이유는 평가자들이 트럼프의 미래 성과까지 감안한 결과 더 오를 확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대 미 대통령들의 공통의식


역대 미 대통령들은 재임시 부정부패에 의한 재산축적의 기록이 없다. 이 사실은 그들의 공통의식이요 상식이라 할 수 있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애국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 애국정신은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어 미국 국민의 단결과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있다. 델타에어라인을 비롯하여 몇몇의 항공회사는 미국 내 공항에서 탑승시 군복을 입은 군인들에게 비즈니스 클라스와 같은 기내 탑승 우선권을 부여하는 공항내 방송을 하여 일반 탑승자들로 하여금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애국심으로 복무를 하는 군인들의 헌신을 존중하게 한다. 


결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승만 건국 국부) 


비슷한 배경의 학력, 경력을 가진 개인들을 비교하면 소속국가에 관계없이 개인들의 우열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개인들이 집단을 이루고 국가를 형성하면 소속국가 국민성의 차이로 국력의 우열이 생긴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우수한 나라가 국력이 열세한 나라를 지배하게 된다. 1만년 전 농경사회 이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고, 미래도 마찬가지로 재현된다.
20세기 이후 돈과 무기로 세계의 질서를 잡고 있는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나 관찰 분석하여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따를 가치가 있다. 우선 미 국민은 그들이 뽑은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정치를 맡겨 지도자들이 애국심을 갖고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게 한다.
그들의 다수는 역대 미 대통령들이 모두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이 관행이 미 국민의 단결심과 애국심을 일으키는 국민성을 조성한다. 그들은 애국심과 단결심을 둘이 아닌 하나로 본다. 이를 돕기 위해 대통령 역사학자들은 역대 대통령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지도자들이 최선책을 강구하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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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71915
10311
2018-12-04
유동환의 돈 이야기(46)-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1)

 

미국 대통령은 부국강병 정책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세계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따라서 세계인들에게 가장 관심이 쏠리는 인물이다. 미 대통령 평가는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 인문학자들 외에 전문적인 미 대통령 역사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그들의 평가분야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업적, 지도력, 실패 및 과오로 나누고 있다.


위키피디아 미 대통령 평가


1948, 1962, 1996년에 하바드대학 슐레징거 교수 부자에 의해 발표된 미 대통령 평가보고서로 시작하여 1962년 시카고트리뷴 일간지 보고서, 1982, 1990, 1994, 2010년 744명의 역사학 교수들의 집필로 발표된 씨에나 연구보고서, 2000, 2005년 132명의 교수들에 의해 발표된 월스트리트 저널 보고서, 2000, 2009, 2017년 91명의 대통령역사학 교수들에 의한 C스펜 방송국보고서, 2017년 영국 타임스 데일리에 의해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 별로 발표된 보고서 외에 2012년 뉴스윅 주간지보고서, 2013년 미 정치학협회의 역사뉴스가 발표한 평가보고서를 모두 참고한 위키피디아 종합평가를 아래 등수 별로 볼 수 있다. 


1. 에이브러햄 링컨(16대)
2. 프랭클린 D 루즈벨트(32대)
3. 조오지 워싱턴(초대)
4. 씨어도어 루즈벨트(26대)
5. 토마스 제퍼슨(3대)
6. 해리 S 트루먼(33대)
7. 우드로 윌슨(28대)
8.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34대)
9. 앤드루 잭슨(7대)
10. 존 F 케네디(35대)
11. 버락 오바마(44대)
12. 제임스 K 포크(11대)
13. 린든 B 존슨(36대)
14. 제임스 메디슨(4대)
15. 존 아담스(2대)
16. 로날드 레이건(40대)
17. 제임스 먼로(5대)
18. 빌 클린턴(42 대)
19. 윌리엄 멕킨리(25대)
20. 그로버 클리블랜드(22대, 24대)
21. 존 퀸시 아담스(6대)
22. 조오지 H W 부쉬(41대)
23.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27대)
24. 마틴 밴 뷰렌(8대)
25. 러더포드 B 레이스(19대)
26. 제랄드 포드(38대)
27. 지미 카아터(39대)
28. 체스터 A 아써(21대)
29. 제임스 A 가필드(20대)
30. 켈빈 쿨리지(30대)
31. 벤자민 헤리슨(23대)
32. 조오지 W 부쉬(43대)
33. 리차드 닉슨(37대)
34. 허버트 후버(31대)
35. 자커리 테일러(12대)
36. 율리씨즈 S 그랜트(18대)
37. 존 타일러(10대)
38. 윌리엄 헨리 해리슨(9대)
39. 밀라드 필모어(13대)
40. 프랭클린 피어스(14대)
41. 앤드루 존슨(17대)
42. 워렌 하딩(29대)
43. 제임스 부케넌(15 대)
44. 도날드 트럼프(45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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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71760
10311
2018-11-21
유동환의 돈 이야기(45)-돈과 평화(2)

 

 

One man with a gun can control 100 without one. (Vladimir Lenin)

 


 
(776호에 이어)


1920년


1차 대전 후 1919년에 찾아온 미국 경제침체는 저이자 정책과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상품개발로 활성화 되었다. 전쟁무기 공장을 소비품 생산공장으로 만들었고, 전쟁에서 돌아온 장병들의 일자리를 창출해 미국은1920년대의 경제 대호황을 이루었다. 이에 따라 유럽제국도 1924년부터 경제호황을 맞게 되었다. 


1923년


레닌에 의한 공산주의 집단농장체제는 1921년 흉작으로 5백만여 명의 농민들을 굶어 죽게 하였다. 궁여지책으로 레닌은 미국의 산업을 모방하여 신경제정책을 폈고, 개인소유의 사업을 인정하여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가난한 배급제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1922년 레닌 사망 후 그를 계승한 스탈린은 1923년 소비에트 연방을 세워 셰계 최대의 공산주의 국가를 이룩하였다. 스탈린은 반대파들과 부르주아지2천만을 아사, 숙청, 학살하여 7천만의 중국인민을 죽게 한 모택동 다음가는 살인독재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스탈린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레닌의 뒤를 이어 유태인들을 학대하여 러시아계 유태인들은 미국, 영국, 프링스로 대량 이주하게 하였다. 


1928년


스탈린은 모든 사업을 국유화하여 중앙통제계획체제로 바꾸었다. 그나마 레닌의 자본 사유화에 힘입었던 경제성장은 지속되는 것 같았으나 결국 경제개발 뒷걸음질을 시작하여 소련연방의 경제는 향후 풍부한 자원수출에 의존하게 되었다. 


1929년


미국경제 팽창과 저이자 정책은 융자에 의한 주식시장 과잉투자로 이어지고 주가의 고공행진을 야기했다. 결국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1929년 세계공황을 맞게 되어 미국을 포함한 유럽경제는 파국으로 이어졌고, 경제회복과 더불어 1939년 세계2차 대전을 맞게 되었다.


1944 년


세계 2차 대전을 통해 방위산업으로 세계최대의 부강국이 된 미국은 UN 결정권을 이용하여 미국 뉴햄프셔 브레튼우즈에서 미국과 연합국간에 환율을 조정하는 브레튼조약에 서명하게 하였다. 


금본위제도 대신 금 1온스를 미 35달러로 고정시켜 환율을 조율시켰다. 세계2대 강국인 소련은 위 조약은 미국자본주의 중심인 월가의 금융기관이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도모한다고 불참을 선언했다. 향후 위 조약은 IMF와 세계은행을 낳아 미 달러의 기축통화고수는 물론 세계각국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45년


2차 대전 후 세계는 미국의 자본주의체제와 소련의 공산주의체제로 갈라졌다. 미국과 소련은 일본의 속국이었던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시켰다. 미국은 2차 대전 중 연합국에 무기수출로 전후 세계 총생산의 50%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전후 황폐된 유럽경제는 마샬플랜으로, 일본은 원조로 재건시켜 1960년대 말까지 소련을 포함한 선진국 세계경제는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1971년


전후 장기간 경제호황은 인플레를 초래하고 월남전쟁으로 악화되어 세계각국이 미 달러를 금으로 요구하자, 미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환금을 불법화하고 고정된 금값을 자유시장가격에 맡겼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3차 산업혁명의 태동을 일으키는 트랜지스터 산업이 시작되었다. 


1974년


1973년 석유파동으로 세계는 소련을 포함한 산유국을 제외하고는 인플레에 의한 경제타격으로 극심한 경제침체를 맞아야 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하여 산유국의 수익금을 미 달러로 보유하게 하는 페트로달러 제도를 도입하여 인플레를 막고 경제침체를 해결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실리콘밸리의 인텔 8080 컴퓨터 칩이 개발되었고, 1976년 애플컴퓨터 개발로 미국은 세계 정보산업의 본격적인 수혜국이 되어갔다.


1980년


1979년 제2의 석유파동으로 세계경제는 20% 가까운 하이퍼인플레이션(물가 급등)로 경제침체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애플컴퓨터의 상장과 더불어 미 실리콘밸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같은 기라성 같은 젊은 사업가들을 배출했고, 이후 새로운 정보상품으로 지구인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며 미국 경제성장을 일으켜 인플레를 통제할 수 있었다.


1991년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으로 부를 누리며 미국과 군비경쟁을 하던 소련은 아프간전쟁에서 물러나야 했고, 영국 북해 오일탐사 성공으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경제파멸로 붕괴되었다. 


74년 만에 소련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은 환상적인 막스 사상을 추종한 공산주의경제가 돈이 없어 몰락하는 것을 확인했다. 대가로 1억 가까운 인류의 목숨이 사라졌다. 

 

결론


우리(국민)의 적은 가난이다. (박정희)


미국의 돈은 자유경쟁에 의한 사업가들이 만들고, 금융통제는 유태계 경제인들, 방위산업은 미 정치인들이 결정하여 국력을 키운다. 한마디로 돈으로 세계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힘을 키운다. 


이 사실을 가장 잘 파악하여 한국의 경제신화를 만든 박정희 경제국부 탄생 101주년(11월 14일)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그의 부국강병 정책을 재 다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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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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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5
유동환의 돈 이야기(44)-돈과 평화(1)

 

To be prepared for war is one of the most effective means of preserving peace. (George Washington) 

 

19세기 세계열강 중 20세기 패권국이 된 미국과 러시아에 의한 돈으로 만들어지는 평화유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1762년


러시아의 중흥을 일으킨 피터대제의 외손왕자 피터3세와 결혼한 프러시아의 케서린 공주는 피터3세가 즉위한지 6개월 되던 7월에 구데타를 일으켜 남편을 폐위시키고 감옥에 넣었다. 


케서린 여대제는 동년 9월 즉위한 후 1796년까지 크리미아 코카사스를 비롯하여 동쪽으로는 시베리아 알라스카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세계최대의 영토국가를 만들어 세계열강의 자리를 지켜 나갔다. 


케서린 여대제도 피터대제의 정책을 따라 유태인 배척정책으로 금융 및 자유경쟁 시장을 위축시켜 국가 경제성장의 기회를 제한했다. 


1776년


1776년 3월 제임스 와트는 공업생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증기기관을 완성시켜 산업혁명 과정의 극치를 이루었고, 같은 달 자본주의 선구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스코틀랜드에서 출간되었다. 


동년 7월 4일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선언을 선포했고 미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개인재산권이 보장되었다.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은 ‘상업정신을 갖고 능력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국민은 무엇이던지 해낼 수 있다’라고 자유경쟁 시장을 권장하였고, 이를 이어 미 건국 국부들은 자본주의 경제를 선택하여 미국이 세계 100대 부호의 산출국이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848년 


미국독립은 유럽제국의 혁명 계기를 만들었고 혁명으로 자유와 평등을 찾은 전직 농노들은 산업혁명으로 퍼져가는 생산공장을 찾아 도시로 모였다. 


이들의 노동으로 부를 축적하는 자본가들을 관찰한 칼 막스와 프레드릭 엥겔은 1948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사회주의를 부르짖으며 노동으로 만든 이익금은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어야 되고 이를 위해 인민혁명을 일으켜 자본가나 영주의 자본을 국유화 하고 인민이 운영하여 이익금을 평등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공산주의 사상의 커뮤니스트 메니페스토(Communist Manifesto) 책자를 출간했다. 


이 공산주의는 세상물정 모르고 정의를 부르짖는 20대 청소년이나 가난한 저소득층들에게는 큰 인기를 끄는 사탕발림 사상이라 볼 수 있다. 


1905년


가폰신부가 주도한 5만 명의 노동자들은 니콜라스2세 황제에게 노동자 처우개선을 진정하기 위해 니콜라스2세를 만나달라고 윈터 펠러스광장에 모였다가 황제 호위병들에게 200여명이 사살당했고, 800여명 중상, 6800여명이 체포 당했다(Bloody Sunday , 1월22일).


이 소식을 들고 분노한 러시아 노동자 41만 명은 전국파업을 일으켰다가 러시아군대에 의해 1만5천명 사살 및 교수형 2만 명, 그리고 중상 4만 명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이를 지켜본 블라드미어 레닌과 알렉산더 복다노브는 러시아 사회민주당 (Bolshevic Party)을 창설하고 민중혁명에 굴하지 않는 러시아제국을 전복시킨 볼쉐비키혁명의 기반을 닦아 나갔다. 볼쉐비키의 슬로간은 ‘인민의 평화, 빵, 토지를 위해 모든 권력은 소비엣으로’ 였다.


1907년


국부론을 채택하여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가들에 의한 직업창출과 국민소득 증가로 국가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가던 미국은 급격한 경제팽창으로 시중 돈이 모자라 1907년 뱅크런을 일으킨 경제공황을 경험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JP모건을 비롯한 7인의 유태인 거부 은행가들이 미연방정부의 승인 하에 미국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사설 연방은행(The Federal Bank)을 창설하였다. 이 연방은행제도는 미국의 경제성장은 물론 작금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며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917년


신이 내린 러시아를 민주정치로 통치할 수 없다고 로마노프 왕조체제를 고수하던 니콜라스 2세는 러일전쟁에 패한 후 유태인 배척정책으로 금융시장이 쇠락해진 러시아경제를 유지하기 힘든 상태에서 1917년 레닌에 합세한 조세프 스탈린의 볼쉐비키 혁명에 굴하여 폐위당하고, 1918년 니콜라스 2세 왕가 일가족은 레닌의 명령에 따라 비참하게 암살 당했다.

 

1919 년


1914년 시작된 세계1차 대전 중 1915년부터 1919년 종전까지 미국은 영국에 필요한 무기판매로 융자를 해주었다. 종전 후 황폐된 유럽에 비해 무기제조판매 사업으로 경제가 급성장하여 미국은 세계최대 부유국의 자리를 굳혀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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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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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9
유동환의 돈 이야기(43)-인공지능의 돌부처와 돈부처(6)

 

 

Human suffers because of craving to possess and keeping forever things which are impermanent.(Buddha)

 

인류는 생존의식과 소유의식이 강한 동물이라 할 수 있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소유의식은 생활양식 개선욕망을 일으켜 편리한 현대 문명생활을 추구하고 인공지능 로봇까지 개발하여 더 편한 생활양식을 원한다. 


인류의 생활양식의 잣대는 역사적으로 열 에너지 소모량으로 측정된다. 구석기시대 인간의 육체운동에 필요한 하루 열량은 4천 칼로리 정도로 추정되지만 선진국 현대인의 하루 열 소모량은 육체운동에 필요한 3천 칼로리 외에 약 2억 칼로리 정도를 공업 32%, 운송32%, 가정 20%, 상업18% 등의 비율로 생활필수품 및 서비스를 위해 간접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중 약 32%를 오일이 차지한다.


인간이 만드는 고통


에너지 소비량으로 비교하면 현대 선진국 중산층은 20세기 귀족들보다 더 화려한 생활양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를 찾는 인간욕망 때문에 사업가들은 인류의 생활양식을 위한 사업으로 계속 경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에너지 소비량을 증가시켜 열역학적으로 엄청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공기오염으로 지구에 고통을 준다. 지구가 받는 고통은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 오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캐나다를 비롯한 유럽선진국은 환경오염방지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한편 핸리 키신저는 “의식주를 해결해주면 국가를, 오일을 통제하면 대륙을, 돈을 통제하면 세계를 통치할 수 있다”라고 했다. 제한된 오일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벗어나 민족과 국가간 분쟁 및 전쟁의 위험을 감수하는 고통을 만들고 있다. 


한편 인간은 고통을 바라볼 수 있는 우주관을 가질 수 있는가.


우주관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라하여 우주의 수를 10억 개로 잡고 삼천대천세계가 10의 56승 곱하기 10의 60승만큼 있다고 가르친다. 무한적인 숫자의 우주를 상상할 수 있다. 
큰 우주에서 작은 우주를 바라보면 크기가 하나의 먼지밖에 되지 않고 지구는 우주에 쌓여 보이지도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를 천체에 겹겹이 쌓여있는 은하수로 정의하고 이들의 변화과정을 우주팽창, 빅뱅, 블랙홀 이론으로 우주의 생성과 파괴를 추측하고 있다. 


아는 지식은 뗏목


불교에서는 아는 지식은 뗏목이니 강에 흘려 보내라고 가르친다. 우주관을 넓히면 새로운 상대적인 지식이 밝혀진다는 가르침이다. 이 원리를 서양과학자들이 물리 수학공식으로 풀고 있다. 


뉴톤은 1726년 우주를 제한된 하나의 공간 상자로 추측하고 시간 공간 중력작용 등을 엮어 만류인력과 운동역학법칙을 만들었고 열역학법칙과 병행하여 1차 산업혁명을 일으켜 생산 공업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1821년 파라데이는 전자파를 발견하여 우주행성은 전자파로 위치를 유지한다는 이론을 증명하였고, 1931년 전기를 공업생산에 응용 가능하게 하여 제2차 산업혁명을 일으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원리를 발표하여 시간과 공간이 둘이 아니고 하나의 장(Field) 이라는 4차원 개념을 발표하고, 장은 물론 빛도 휘어지는 물리적 사실을 증명하게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1900년대 플랭크의 입자설이 발표되면서 물리학자들은 뉴톤의 고전물리학과 양자중력과 파장설을 병행하는 양자역학으로 우주를 해석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결론


물질적 욕망과 정신적 욕망으로 얻어지는 인간의 행과 불행을 포함한 모든 감정은 상대적이고 전자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를 인간의 의식으로 만들어지는 번뇌라고 한다. 


그러나 팽창되는 우주 속에 뛰어들면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법으로 만들어지는 우주의 모든 실상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이어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지는 돌부처와 돈부처가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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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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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5
유동환의 돈 이야기(42)-인공지능의 돌부처와 돈부처(5)

 

 

The robot that takes your job should pay taxes.(Bill Gates)

 

인류는 인지능력을 가진 고등동물로 현재 약 7천여 개의 구두언어를 지역별로 사용하고 있다. 그 중 3900여 개의 구두언어는 문자언어를 병행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그림의 형태로 기록된 구두문자는 약 5300여 년 전 세계 4대 문명 발생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서마리안(현재 이라크)지역에서 찾을 수 있었다. 20세기 이후 영국을 이어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며 세계언어는 영어로 통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한편 1946년 컴퓨터개발에 사용된 이진법(0,1)이 컴퓨터 기계언어(Machine Language)로 사용되면서 전자흐름의 여부로 과학자들은 기계로 하여금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였다. 전자흐름의 여부를 가능케 하는 메모리 칩의 발전은 의사소통에 필요한 데이터 프로세스 용량을 천문학적으로 증가시켜 정보산업을 주역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을 거쳐 인공 지능개발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즉 플로우 차트에 의한 알고리즘은 간단한 데이터 프로세스로 시작하여 인간만이 갖고 있는 여섯 개의 인지능력개발(Deep Learning)을 가능하게 하려는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 및 경제적 변화


기계에 의한 인지능력개발은 인간의 직업을 변화시키고 특히 생산업에 종사한 육체노동자들은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치되어 실업자가 되는 반면에 인공지능 개발 및 응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정신 노동자들은 고수입 직업인이 되어 사회적으로 빈부차이가 심해져 가고 있다.


이를 4차 산업혁명의 사회 및 경제적 변혁과정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 같은 나라들에도 해당이 되어 직업에 의한 빈부차이는 국경이 없어져가고 있다. 


이로 인해 실직자들에게 쌓여진 불만의 출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가들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트럼프는 거짓에 의한 통계로 미국경제 재개발과 불만에 찬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사탕발림의 포퓰리즘을 일으켜 대통령에 당선된 후 미국국민을 인종적으로 분리시키고 억지 보호무역정치를 강행하여 미국의 고립화는 물론 미국내의 혼란과 세계경제 침체화를 유도하고 있다.  


오바마 전미대통령의 성공적인 경제정책의 관성으로 미국은 역사상 유래 없이 낮은 3.9 %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더 내려갈 수 없는 실업률(Hard Core Unemployment Rate)을 선정하여 한때 4.5 %로 잡아왔다.


트럼프 대통령 재직 후 미국은 거의 편한 날이 없었다. 트럼프의 5천 번 이상의 허위 및 부풀리기 통계와 프로파간다에 지친 미 국민은 11월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을 선택하여 트럼프를 탄핵내지는 통제 받는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중론이다. 


그리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세계 개발도상국가들도 포퓰리즘을 일으켜 경제개발을 저해하는 부정부패와 더불어 공무원수 증가 및 사회주의화로 실업자들에게 퍼주기 운동을 벌여 심한 인플레를 유발하였고, 국가경제를 파탄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부호들의 움직임


정보산업으로 알려진 3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산업으로 알려진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성공한 미국의 대 부호들은 빌 게이츠, 워렌 버펫과 의견을 같이하여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계몽하고 있다. 


게이츠는 인공로봇을 사용하여 실업자를 낼 경우 생산능력에 따른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에 자리잡은 아마존 본사건물에서 4만 여명의 고수입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급업체까지 몰려 시내중심가의 부동산 가격과 아파트 임대가 올라 직장을 잃은 실업자의 보금자리가 없어져 길에 나선 극빈자들을 위해 제프 베조스는 자기 재산의 1.2 %(약 20억 달러)를 시애틀의 극빈자를 위해 적선할 것으로 시애틀 타임스지(2018년 9월13일자)에 발표했다. 


많은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사망 전 모은 재산의 99%까지 자선단체를 만들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성장으로 인한 직업창출과 사회보장으로 미국을 더 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결국 미국은 국민을 위하는 대 부호들의 책임 있는 애국심과 모범정신의 밑받침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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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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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
유동환의 돈 이야기(41)-한인요양원의 오늘과 내일

 

 

 

현재 토론토에 자리잡은 무궁화양로원은 60개의 장기요양 침상 중59개가 한인노인들 안식처가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과 건강관리 등을 포함하여 효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요양원 건립은 뜻있는 한인들에 의해 가능했지만 공사 마지막 단계 재정난으로 현재 금융회사를 대표하는 법정관리회사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주로 1.5세대를 중심으로 발족한 무궁화 요양원 인수추진위원회는 2017년 8월부터 10월말까지 약 350만 달러를 모금하여 한인사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궁화요양원과 자리를 함께하는 콘도 아파트의 건축구조와 주차장 등의 문제로 건축사용 허가가 나지 않아 법정관리회사는 무궁화요양원을 매물로 내놓지 못하고 있어 모금에 성공한 추진위원회의 속을 태우고 있다. 


 온주정부의 장기요양정책


2018년 2월초 온주 자유당 정부는 향후 10년간 3만개의 장기요양 침상 수 증가를 위한 예산 10억 달러를 책정하고, 2022년까지 5천 개의 침상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추진위원회는 무궁화요양원 5, 6층을 구입 개조하여 40개의 침상을 보유하는 요양원 설치계획을 신청했으나 경험부족이라는 명목으로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중국인 사회의 이홍 센터와 몬쉥은 540개, 320개를 각각 분양받아 쾌거를 올리고 있다. 현재 이홍센터는 715개, 몬쉥은 457개의 침상을 갖고 있다. 이홍센터는 중국사회를 넘어 동남아시아계를 대표하는 장기요양센터를 구축하여 필리핀, 일본인 사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홍센터의 입주대기 기간은 1년인데, 한인양로원은 7년 이상 걸린다. 통계에 의하면 국내인의 사망 전 장기요양기간은 평균 8년이다. 현 상태에서 한인들은 비한인계 요양원에서 사망할 확률이 높다. 통계에 의하면 2040년 후 요양원 입주자의 수는 배로 늘어난다.


발등에 떨어진 불


온주정부의 소수민족 장기요양정책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무궁화양노원 파산 후 매물로 나올 경우 타민족에 의한 매입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위원회는 범한인 동포사회의 성공적인 모금운동을 통하여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모금운동에 들어가는 모든 행정비 등을 자신들의 호주머니 돈으로 쓰고 모금액은 고스란히 은행 신탁구좌에 비축하며 투명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에 감동한 각 신문사들의 기사화 및 장기간 전면 무료광고를 비롯하여 전단지, 광고 디자인 등 공급업체들의 무료 상품 및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졌다. 


또한 종교단체를 비롯하여 의사, 회계사, 변호사, 사업가들은 물론 일반동포, 학생용돈, 식당 종업원 팁까지 모금되었다. 다행이 온주정부의 정책으로 무궁화양노원이 다른 커뮤니티의 타깃이 되어 넘어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발등의 불은 우선 꺼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인들에게 주어진 양로원 선택


1. 한인 자선단체에 의한 양로원 
2. 한인 영리 또는 비영리단체에 의한 양로원
3. 타민족(중국) 자선단체와 공동투자에 의한 양로원
4. 주류계 영리 또는 비영리단체의 양로원
5.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양로원

 


추진위원회는 무궁화양노원 인수가 가능하던 안 하던 침상 수를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한인 사업투자가들은 영리 또는 비영리목적으로 현재 이익을 내는 무궁화양로원을 매입하는 사업계획을 고려할 수 있다. 만일 투자가치에 의한 투자가 실현 된다면 추진위원회는 온주정부와 재협상을 통해 최소 50개 이상 침상을 늘리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향후 한인들의 숙명적인 모금운동


추진위원회는 향후 20년 내에 한인요양원의 침상 수를 1000개로 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비전을 공표하였다. 그들은 모범적이고 능력있는 사업가및 전문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창의적인 사업계획서를 지속적으로 개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에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모금운동이다. 이홍센터는 연간 250만 달러를 모금한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한인사회는 최소 연간 25만 달러를 모금해야 한다. 한인인구 7만을 잡고 일인당 연 5달러만 내면 35만 달러가 된다. 물론 거액을 내는 독지가들의 힘을 입었지만 모금운동은 돈 많은 사람들만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증명했다. 제2의 증명은 지속성 있는 모금운동이고, 이는 캐나다 한인사회의 숙명이 되어야 한다. 


결론


우리 한민족은 가난과 침략을 받는 역사를 되풀이 했다. 다행히 위대한 영웅을 만나 1961년 120여 개국 중 두 번째로 제일 가난한 나라를 ‘우리도 할 수 있다. 잘 살아보세’라는 숙명적인 구절을 국민가슴에 심어 세계 11번째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작년의 성공적인 모금 운동도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고 이를 계속 실행하면 한인사회의 요양원 확보 미래가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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