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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독자 기고]사선(死線)에 서서!!-레이 강(스카보로)

 

 

 죽음은 선사시대 이전 고대 때부터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것 같다. 피라미드, 고인돌, 그리고 종교의 천당과 극락들이 죽음과 관계있고, 셰익스피어의 명문도 죽느냐 사느냐 죽음의 문제라고 하였다. 그런데 년 전에 친지들 모임에서 나는 “장례식을 생략하고 관도 목재소에서 관목을 구입하여 제작 사용하면 좋겠다”고 하니 너무한 자기 비하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야기는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5년 월남전이 한창 과열되어 사단급 전투부대인 맹호부대가 파병된 것이 이 해였다. 따라서 정국도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거세지고 있었다.


이에 대비해 최초로 DMZ 방책작업이 계획된 것이 그 해 여름이었다. 우리 부대에서 A, C, 2개 중대가 차출되어 A 중대장이 지휘하고, C 중대의 소위인 내가 보좌관으로 작전에 투입되었다.


동부전선 900고지에 임시숙소를 마련한 후 곧 작업을 개시해 여러 고지를 넘고 원시림을 지나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였다. 능선을 따라 일렬횡대로 북면 경사로 중간까지 내려가 나무를 벌목하여 X자형 방책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지뢰다' 하는 병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즉시 '중대 철수' 하고 외쳐 모두 위로 올라가는데 A 중대 쪽에서 큰 죽음이 나면서 한 병사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 대퇴부가 절단되는 치명상을 당하였다. 


부상자를 업고 모두 능선 위로 올라왔다. 경험과 전례가 없던 작업이라 위생병이나 들것, 응급 장비도 없이 왔으므로 우선 임시 들것을 만들어 6명이 들고 나의 인솔하에 급히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회생불능의 치명상이어서 우리는 절망과 공포에 휩싸여 정신없이 떠나려는 순간 마지막 절규를 하는데 너무 처절하여 이 지면에 쓸 수가 없고, 그것이 더 큰 충격을 주어 정신을 바로 잡지 못하고 혼미한 상태로 숙소에 도착하였다. 


운반병 6명은 도착 즉시 사라져 버리고 나와 주검만이 남겨졌다. 그의 마지막, 이 순간! 형제 부모의 절실한 보살핌이 필요하고 위생과 보호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이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그의 보호자가 되어 굳건히 곁에 서서 지켜주지만 아무 응급기구도 장비도 없어서 방임 그대로 놔둔 채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 괴로운 상황에 처해졌다. 혼자 서 있으니 많은 상념과 후회가 엄습했다. 


사전 현장을 확인 정찰도 안하고 무리하게 지뢰밭으로 투입시켜 이 젊고 사랑스러운 젊은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니 마음속으로 미안하다 속삭이며 깊은 슬픔에 잠기지만 망자는 아무 말도 없다. 산천도 침묵하여 새소리 하나 없다. 구름도 무심하다던가 봉우리에 머물다 말없이 떠나간다. 


한참 후 그 봉우리에서 본대의 병사들이 누구 하나 말없이 수백 명이 몰려 내려온다. 그런데 중대장이 오자마자 분리된 다리를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인제 여기 와서 뒤에 천천히 오면서 수거해 올 것이지 그러나 군대는 이유가 없는 법, 위급 시 신속히 행동해야 한다. 


병사 4명을 차출하여 다시 그곳을 가는데 왜 그리 멀고 힘 드는지. 현장에 도착하여 대검으로 흙 표면을 긁어 지뢰를 확인하며 그 부근까지 갔으나 수풀이 우거지고 기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지형이 너무 광활하고 험하여 임무 수행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 후 중위로 진급하여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소위 때 지원하였으나 소식이 없어 중위 진급 후 직접 육본에 가서 지원하니 일주일 만에 명령이 떨어졌다. 사령부 부근에 배치되어 부대 앞을 지날 때 저 멀리 야산 능선 아래 아전화장장이 설치되어 붉은 화염이 간혹 보인다. 


그 옆에는 사단 각지에서 수집(군대용어)된 전사자들이 일렬로 놓여져 있다. 멀리 외국에 나와 싸우다 총탄에 맞아 몸부림치다 죽어서 여기 비닐포대에 싸여 일렬로 누워있다. 그 푸르고 활기차고 명랑했던 그대들, 명령에 그렇게 순종하고 착실했던 그대들, 고향 부모형제를 항상 생각하며 어려운 임무를 묵묵히 견뎌온 그대들.


그대들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고향의 부모님을 남겨두고 그대들은 왜? 비닐 부대에 싸여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눈물 없이 그 앞을 지나칠 수 없다. 젊은 위관시절부터 이런 경험을 해서 그런지 이곳 캐나다의 장례식장에서 광채가 번쩍이며 잘 조각된 관을 볼 때 정서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앞에 언급한 것이 나의 요구다. 과연 너무한 자기 비하인가? 물론 친지들의 정서는 나와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유언으로나 엄격한 요구는 할 수 없고 다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장례사에게 문의한 일도 없으므로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이제 인생의 긴 여정을 지나 여러 번 사선을 넘고 어느덧 내 인생의 마지막 삶, 마지막 사선에 서서 먼저 간 전우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누워있는 국군묘지를 둘러본다. 


이곳이 나의 안식처, 이제 권위주의와 계급의식을 버리고 그들의 맨 뒤, 한쪽 구석에 그들과 같은 규모의 터와 비석을 세워 그들과 항상 함께하며 한강 상류에서 매일 아침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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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나의 친정에서는-이진수(제36대 토론토한인회장 당선자)

 
 

 두 번씩이나 토론토한인회장을 연임하고, 세 번째 도전해 당선된 나의 투혼(鬪魂)에 대해, 어느 단체의 언론 기고문에서 “제36대 토론토한인회장으로 취임하는 이진수씨가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숙제는 무엇일까?”라면서 “캐나다 한인사회에 희망을 불어넣는 일”이라기에, 오늘 아침은 의견도 수렴할 겸, 그 곳 한 두 멤버 분의 권유도 있고, 간단히 커피는 준비해둘테니 인사차 방문해 달라고 해서 갔었다.


선거 때 상대 후보자 친정이라 볼 수 있는 ㅇㅇㅇ 달리기 친목 단체에 아침 인사라도 할양, 좋은 기분으로 초청방문에 응했다. 꽤나 품위 있는 인사들이 속해 있고, 과거에 자주 방문했던 친숙한 곳이어서 그때 그 분들과 만나 그동안의 회포도 풀 겸 자리에 들어서니, “한턱 쏘려면 똑바로 쏘시요” 찌렁찌렁한 어느 여성의 시비조 목소리다.


“나 여기 재무인데 쩨쩨하게 이것 밖에 안 내요?”


황당한 나는 “어떻게 할까요? 무엇이 잘못 됐습니까?” 하니 “200불 내놓으세요”… 


무슨 이야기일까요? 머리가 피~잉 돌아버린다. 그 쪽 누군가가 잘못이다 싶어 말리고 있나 보다. 내 마음과 영혼은 멍한 하늘 나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어려서부터 축구공을 끼고 살았다. 꽤나 좋아한 만큼 축구선수 축에 끼여 육사시절에는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 종목 중 축구부 주장으로 생도 4년간 체력을 밤낮 없이 단련하였다. 다른 생도들이 외출, 휴가를 즐길 때도 운동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축구에 열정을 다했다. 


축구광인 나는 브라질의 ‘펠레’ 선수를 무척 좋아하고, 그가 내 인생의 모델일 때도 있었다. 축구 경기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다. 그러나 경기를 하다 보면 고의성 반칙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반칙이 있다. 그는 고의던, 고의가 아니던 본인에게 주어진 반칙을 받으면서 쓰러지고 찢어지고 깨지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어 갔다. 


그의 승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의 반칙에 의하여 넘어지고 쓰러져도 상대방에게 탓하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나 경기에 다시 임한다. 대단한 인내다. 얼굴도 담담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진정한 스포츠맨으로, 인간으로 존경한다. 


우리 모두의 친정은 대한민국이다. 친정은 시집간 여자들에 해당되는 단어라고 볼 수 있는데, 토론토에 살고 있는 이곳에 남자인 나에게도 친정이 있지 않을까? 물론 있다. 꽤 많이 있다.


따듯한 마음의 고향 00고교동창회, 강건하게 버텨주는 00군인회, 아낌 없는 격려와 지도를 해주는 00원로회의, 안이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를 지켜가는 나의 00사관학교 선후배, 직장 전선에서 돈독해진 00회사 선후배, IBM 직장 국내외국인 동료, 토론토한인회에 함께 했던 직장동료들 등등 고맙고 가까운 사회 친구 선후배 가족 모두 나의 친정인걸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행복하다.


나의 친정은 결코 초청한 손님에게 마구 대하지는 않는다. 품격을 지킬 줄 안다. 그래서 나의 친정은 정말 따듯하고 안기고 싶은 마음속 고향이다. 항상 달려가면 따듯이 껴안아 준다.


“경제적인 일자리” 창출과 함께, 품격 있고 따듯한 우리 “마음의 일자리”를 찾아주자. 우선 밝고, 따듯하고 아름다운 우리 한인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오늘은 마음의 하늘이 맑지 않다. 그래도 내일은 밝은 태양이 우리 모두에게 비추어지길 희망한다. 우리 모두 따듯한 친정의 길이 되기를 희망한다. (2019년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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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미국 여행기]라스베가스-조영연 (전 한카노인회장)

 

 

(지난 호에 이어)
우리 부부가 샌프란시스코에 오기 전에 딸은 라스베가스(Las Vegas)에 수요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예약을 하여 놓았었다. 수요일 아침에 Oak Land Air Port에서 Las Vegas로 향하였다. 비행시간은 Oak Land Air Port에서 Las Vegas까지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Las Vegas에 있는 호텔은 Wynn Hotel이다. 3년 전 방문 시에도 체류하였던 호텔이다. Las Vegas에서 이름 있는 유명한 호텔이다. 우리 방은 60층 중에서 59층이다. 올라가 보니 전망이 너무 아름답다. 


바로 건너편에는 Trump대통령 소유의 Trump Hotel이 자리잡고 있다. 옆에는 Encore Hotel이 있다. Encore Hotel은 Wynn Hotel사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호텔이라고 한다.


호텔 내에는 여러 가지 많은 오락시설과 카지노, 극장, 명품 상가, 식당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특히 실내 공원은 보기 전에는 상상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 아름답고, 화려한 시설이다. 


그 넓은 실내에 있는 공원 꽃들은 모두 생화다. 호텔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맛 있게 먹고 나니 사위는 여러 가지 즐기라고 하면서 US$1,000을 준다. 나는 집 사람과 각기 $500씩 나누어 가졌다. 그래서 카지노에 가서 구경도 하고 게임도 하였다. 


카지노는 도박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하여 게임을 조금한다. 제일 싼 게임이 1센트짜리 3개인 3센트다. 10, 30, 60센트짜리가 있다. 여기에서 게임을 하면 따도 얼마 안되고 잃어도 얼마 되지 않는다. 단지 시간을 보내고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1불, 3불, 10불짜리 게임을 하면 잠깐 동안에 몇 백불, 몇 천불이 나간다. 


늦은 밤에 호텔 방에 들어와 카톡을 검토하여 보니 이영실 회장이 코마 상태라 기도하여 달라는 내용이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음 날 조반은 호텔 방에서 시켜서 먹었다. 아침에 카톡을 다시 보니 이영실 회장이 소천하였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그 소식을 보는 순간 왜 그리 눈물이 날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영실 회장을 생각하면 동포들과 한인회, 한카노인회를 위하여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였나? 필자는 많은 단체에 직접적으로 간여를 하였었기 때문에 한인회장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안다. 그래서 이영실 회장을 만날 때마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타일렀었다. 그러나 이영실 회장은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기 때문에 적당히 지나치지 못했다. 죽음에 이른 것도 3.1절 준비와 기타 여러 행사 때문일 것이다. 


이곳 Las Vegas은 쉬고 즐기러 온 것이다. 모든 생각을 잊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이영실 회장의 지나온 세월이 스크린처럼 지나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겠지. 토론토에 있으면 당장 달려가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입장이다. 집 사람과 딸, 사위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3박 4일간의 Las Vegas일정을 마치고 토요일에 다시 딸 집으로 돌아왔다. 오기 전 날인 금요일 저녁에는 Wynn Hotel에 있는 극장에서 쇼를 관람하였다. 너무나 멋진 수중 발레와 공중에서 내려오는 쇼는 최고였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멋진 쇼였다. 


우리 일행은 Oak Land Air Port로 돌아왔다. 승용차량은 공항 주차장에 놓고 갔었기 때문에 찾아서 타고 돌아왔다. 


다음 호에는 San Francisco시내 관광에 대하여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San Francisco시내 관광은 한국인의 전문 관광 안내원을 1일 US$450을 주고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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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7
[미국 여행기]샌프란시스코-조영연 (전 한카노인회장)

 

 

필자는 여행을 즐긴다. 그래서 미국과 캐나다, 남미, 유럽과 아시아 등 많은 여행을 하였다. 해마다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여 남미 브라질을, 5월, 6월경에는 미국을 여행 하였다. 그러나 금년에는 브라질을 택하지 않고 미국에 1월 27일에 출발하여 2월 17일에 돌아왔다. 우리부부가 여행기간에 토론토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우선 필자가 떠난 다음날부터 토론토 일원에 폭설이 몰아 닥쳤으며, 혹한이 찾아 왔다고 한다. 또한 여행기간 동안 동포사회에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었다. 고 이영실 한인회장과 함화신 웃음천사가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갔다. 두분 모두 필자가 많이 아끼는 분들인데 안타깝게 고인이 되었다. 이 두 분들은 동포사회와 한카노인회를 위해서 많은 봉사를 하였던 분들이다. 


고 이영실 회장과는 필자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식당에서 몇 사람과 함께 점심을 나누었으며, 떠나는 날 공항에서 카톡을 주고 받았는데 마지막이 되었다. 


미국에는 필자의 작은 딸이 살고 있다. 서부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미국에 대하여 필자가 아는 상식 범위 내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의 미국 방문은 1975년경부터 수십 번에 이른다. 동부와 서부 모두를 다녀봤다. 그래서 간단히 미국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의 개요


미국의 국기는 성조기다. 13개의 붉은 줄은 1776년 미국이 건국 당시, 13개 주(州)의 수를 나타내며, 50개의 별은 현재 미국의 주가 50개 임을 나타낸다. 미국의 정식명칭은 United States of America로써 약자로 USA라고도 한다. 수도는 미국 동부에 위치한 워싱턴 D.C (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로 50개 주 어느 곳에도 속하여 있지 않은 특별행정구역이다.


미국의 정치는 대통령 중심제로써 임기는 4년이며, 한번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 지금의 대통령인 트럼프 대통령은 제45대 대통령으로 2017년 1월에 취임하였다. 


미국의 언어는 영어이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인구는 약 3억 1,000만 명이다. 미국의 총면적은 러시아, 캐나다, 중국에 이어 네 번째이며, 남한의 약 95배이다. 미국은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다. 세계 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문화, 종교가 다양하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으며, 주로 크리스트교이다. 미국의 한인은 약 250여만 명으로 추산되며, 주로 LA와 New York, Washington D.C등에 거주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방문 


필자는 1월 27일 일요일 오후에 Air Canada편으로 토론토 공항을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약 5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토론토와 샌프란시스코와는 3시간의 시차가 있다. San Francisco공항에 도착하니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딸과 사위가 반갑게 맞이하였다. 


딸이 살고 있는 도시는 San Francisco공항에서 약 1시간 가까이 떨어져 있는 Pleasanton시다. 저녁이 늦었기 때문에 가는 도중에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하루 밤을 편안하게 지냈다. 우리 부부가 사용하고 있는 방은 딸 집에 방문 시, 언제나 같은 방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에 갔다가 놓은 옷들이 많이 있다. 


월요일 편안히 쉬고 있는데 토론토 단체 카톡방에 웃음천사 함화신씨의 사망소식이 올라왔다. 얼마 전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했었는데. 함화신 웃음천사는 필자가 한카노인회장 당시 노인대학에 와서 웃음을 선사하였다. 그런 웃음천사가 갔다고 하니 마음이 많이 우울하였다. 


우리 부부는 월요일을 집에서 푹 쉬면서 마재종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내일 화요일에 당장 만나자고 한다. 마재종 친구와는 해병장교 동기생으로 한국 거주 시에도 가까이 지냈으며, 그 친구가 1973년 미국에 이민간 후에도 자주 연락을 하였으며, 미국에 갈 때마다 만나는 60여 년이 되는 아주 가까운 친구다.  


그곳에는 또한 박은주씨가 있다. 박은주씨는 문학박사로 그곳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독자 중, 혹시 “고백”이란 장편 1, 2권을 보신 분이 계신지? 바로 고백을 저술한 저자다. 


“고백”은 박은주 회장의 자서전이다. 그녀는 한인사회에 많은 봉사를 하고 있으며, 현재는 “신사임당” 샌프란시스코 지사를 맡고 있다. 또한 남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 박사로써 필자와도 잘 아는 미국 사람이다. 이곳 토론토에 부부가 같이 왔을 때 나이아가라 관광을 시켜드렸다. 그래서 미국에 갈 때마다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고 친교를 나눈다. 


마재종과의 통화에서 산호세에 있는 “청담식당”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청담식당”은 산호세 지역에서는 가장 고급식당이다. 마재종 부부와 박은주씨, 우리부부가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었다. 


또한 미국에 있는 손녀 딸 세아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보겠다고 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손녀 딸 세아는 2년 전 시카고에서 대학 졸업식에 만난 후, 2년만의 상봉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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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살며 느끼며-Ray Ghang(토론토 댄포스 거주)

 
 

 

몇 년 전 어느 여름 기상예보에 100년 만에 찾아온 가장 더운 37°C가 된다고 하며 어린이와 노약자에게 주의경보를 내렸다. 나도 70대 중반이었으므로 그 위험 범위 내에 있었다. 그날 어디로 피서 갈까? 호숫가, Mall. 등 생각하다가 100년 만이라면 내 생애에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여 직접 체험해 보기로 하였다.


가장 더운 오후 2시에 무겁게 배낭을 만들어 짊어지고 그늘이 없는 댄포스길 북쪽을 걷기 시작하였다. 길 위에는 보행자가 없고 십대 한두 명만 보이고 옆 상점엔 창문을 꼭꼭 닫고 사람들이 꽉 차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며 피서하고 있었다.


크리스티 역까지 1시간 걸었다. 그런데 전철을 타니 승객들이 나만 쳐다본다. 이상해서 잘 살펴보니 내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옷이 검게 변해 있어 그제야 매우 더운 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다음 해인가 3월 초에 70년 만의 혹한이라는 경보가 내렸다. 그날 아침 8시에 배낭을 메고 거리에 나섰다. 보행자는 거의 없고 젊은이들이 조깅을 하는데 얼굴의 수염과 눈썹에 김이 얼어붙어 얼굴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여 뛰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과연 추운 날이구나 하고 걸어가는데 털모자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면서 머리끝이 아파져 오기 시작한다. 위험한데. 그만둘까. 하다가 보폭을 줄여 천천히 1시간 걸었다. 과거에는 문제 안 되던 일이 나이 먹으면서 예사롭지가 않다.


한 해가 지나고 연말이 되면 뉴욕타임스 스퀘어에 가서 새해맞이 행사를 즐기곤 하였다. 어느 해 재입국하려고 60여 명의 버스 승객이 뒤에서 세관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젊은 백인이었고 젊은 여성 세관원이 새해 정초여서 그런지 대충 웃어넘기며 통과시키고 내 순서가 되자 가방을 열라고 한다. 순간 왜 나만. 마음이 심란스러웠다.

'Why only me?' 하고 따졌다. 그녀는 순간 당황하며 다시 열라고 요구한다. 왜 나만, 또 따졌다.


물론 그것은 그의 소관 업무이다. 그러나 형평에 안 맞고 만일 내가 아니고 내 나이의 백인이었다면 그녀가 그렇게 했을까?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또 따졌다.


이 일이 그의 고유업무이고 나는 인종차별이라고 느껴서 서로 물러나지 않는다. 버스 운전기사가 기다리다 내려 저 멀리 보고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감정이 나빠져 나는 장내가 떠나갈 듯한 고성으로 호통을 쳤다. 그제야 기가 죽으며 Sir Sir Sir 하면서 해명하며 물러서서 그냥 통과하였다. 몇 달 후 일이 있어 그곳을 다시 통과하는데 제도가 바뀌어 여러 명이 앉아 심사한다. 저번 일 때문에 바뀌었다고 할 수 없지만 하여간 바뀌었다.


한해 한국에서 일본으로 입국하는데 800여 명이 퇴짜 당한다고 한다. 대게 리턴티켓이나 미비한 서류 문제인데 법적으로나 경우상 따질 것은 따져야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말하면서 그냥 돌아서야 하겠는가. 800여 명이 한마디씩만 해도 그들 마음대로 함부로 못할 것이다. 언젠가 한국 나가는 길에 동경을 경유하면서 그런 상황을 일부러 연출하여 한판 해치울 것을 지금 단단히 벼르고 있다.


우리 관광객은 참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좌청룡 록키산과 우백호 나이아가라 중간 명당에 모여 살며 호수로 둘러싸여 적당한 습기로 겨울엔 온화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그런데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외국인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그 절경을 지척에 두고도 자주 가지 않는 것 같다. 교통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해법으로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모두가 잘 아는 시대 몇 곳에 있는 여행 전문 버스요금이 조금 비싸다. 둘째는 잘 알려지지 않은 Bay St, 버스 터미널 카지노 전용 버스가 매우 싸고 편하지만 몇 년 전 제도가 바뀌어 10불 디파짓 해야 한다. 그래도 싼 편이다. 카드를 무료로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이곳 태생 백인도 잘 모르는 유니언역 Go트레인. Go트레인을 타고 벌링턴 첫 역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던 직행버스를 타면 1시간 이내에 나이아가라에 도착한다. 시니어 요금 10불, 왕복 20불 끊으면 더 편리하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여행기분이 난다.


미시사가에 사는 사람은 남향으로 내려가 그곳 정류장에서 타면 줄어든 거리만큼 기차 값을 절약할 수 있다. 나이아가라 종착역에서 내리지 말고 한 정거장 못 가서 많은 사람이 내리는 곳에서 함께 내리면 다운타운으로 가까이 갈 수 있다. 한 10여 분 걷지만, 건강에 좋은 거리이고 해서 하루 유유히 즐기고 오기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시니어 여러분, 인터넷 얼마 내고 보십니까? 제가 아는 분도 값이 오르고 올라서 70여 불 내고 있습니다. 단돈 10불이면 무한대로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로저스에서 시니어 특별우대 프로그램을 시행하니 많이 이용하기 바랍니다.


이 제도를 만든 후 홍보를 안 해서 본사 직원도, 일반인도 잘 모릅니다. 저는 10여 년간 큰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그간 단 1센트도 오르지 않았으니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매달 오는 요금통지서 11불 20센트는 시내 각처에 있는 로저스 지점에서 내면 되는 것을 안내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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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9
[기고]79세 스케이터-Ray Ghang(토론토 댄포스 거주)

 

 

 올해 1월에 나이가 79세 되었다. 10세가 된 손녀가 스케이팅을 배운다며 빙빙 돌며 타는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여주기에 나도 그들과 함께 타면 좋은 추억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40년 전 이민 왔을 때 샀던 중고 스케이트를 손질하여 커뮤니티 센터 링크에 나가 보았다.


6년 전에 탄 후 처음이어서 새로 타는 기분이겠구나 걱정을 하며 얼음 위에 서 보았다. 역시 중심도 잘 안 잡히고 발걸음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땐 네 바퀴 정도 돌면 곧장 나갔는데 지금은 20분쯤 타도 진전이 없다. '나이란 참 무서운 것이구나' 


링크에는 거의 젊은 얘들뿐인데 노인 한 사람이 휘청거리며 어정어정 걸으며 안 넘어지려고 두 팔을 휘젓고 있으니, 객석에 앉아있던 많은 학부모들이 배꼽 잡고 웃느라고 야단이다.


인도계 청년 한 명이 처음 배우는지 양손에 보조기를 잡고 끌고 간다. 나는 아무것도 안 잡고 가니 이 꼴에 그에게서 우월감을 느낀다. 인간의 감정은 이렇게 복잡하다. 나는 10대 때부터 자주 시외버스를 타고 그 당시는 허허벌판이었던 녹번동이나 연신내에 나가 논 위에서 탔고, 창경궁에서도 탔으며, 군대 시절엔 사단 시합에서 선수로 뛴 배짱이 있기에 지금 나왔지만 이제 노인이 되어 난간을 잡고 어정어정 걸으며 돌고 있다.


배꼽 잡고 웃으며 눈요기를 즐기는 학부모 앞을 지날 때면 그들은 시선을 저 멀리 하며 나를 안 보는 척 해서 나를 웃긴다. 이렇게 서로 웃기는 것이었다. 얘들이 모여 있는 사이를 지나가다가 5세 정도 애가 튀어나와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서로 꽉 잡다 나는 엉덩방아 찧고 주저앉으며 그를 꽉 잡아 넘어지지 않게 해주었다. 


재미 있어서 한참 웃은 후에 다시 일어나려니 중심이 안 잡히며 쉽게 일어나지지 않는다. 옆으로 움직여서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일어나려니 앞 객석에 있던 젊은 남자 학부모 둘이 와락 달려들어 내 손을 잡고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어쩌다 이 모양이 됐나. 나는 내 나이를 모르는데 학부모들은 내 나이 79세를 잘도 아는구나. 아니야, 내가 귀여워서 그러니 둘이 달려들지'. 스스로 위로하며 그들의 성원에 힘입어 또 돌기 시작한다. 이제야 중심이 잡히며 조금씩 나가기 시작한다. 주어진 1시간이 다 되었다. 젊은이도 40분 정도 되면 한 번쯤 쉬는데 나는 쉬지 않고 1시간을 탔으며,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그 후 몇 번 더 탄 후 손녀와 함께 타게 되었다.


손을 잡고 나란히 가며 '동무야, 나오라, 저 연못으로 밤사이 얼음이 참 잘도 얼었네' 스케이팅 노래를 불러주며 추억을 쌓았다. 작년에는 큰 애에게는 스피드 자전거를, 동생에게는 마운틴 자전거를 사주어 함께 타며 추억을 쌓았다. 


또 얘들이 어려서부터 음악과 가까이하는 생활을 해주기 위해 스마트폰에 200여 곡 이상 좋아하는 곡을 선곡하여 특히 얘들이 좋아하는 각국 민요, 유명가수 가곡, 한국 가곡, 특히 K-pop은 거의 전곡 선곡한 후 피시방에 가서 정성껏 다운로드 받아 녹음하여 선물하였다. 


80세가 된 할아버지도 직접 피시방에 가서 최신 곡을 녹음하여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그것을 선물함으로써 그들에게 자극이 되어 그들도 장래에 음악을 가까이하고 음악에 정성과 노력을 들이며 풍부한 감성과 삶을 영위하도록 할아버지의 작은 희망이나마 실현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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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회비 내고 당당한 투표를-임정남

 

 토론토한인회 제 36 대 선거 날짜가 3 월 23 일로 잡혔습니다. 출마 인사도 두 분으로 경선이 확실해 보입니다. 


 선거가 경선이면 적어도 10 만 불의 돈이 생기니 좋은 일 아니냐 하는 분들이 있지만 저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왜냐하면 투표를 하려면 회비를 내야 하는데 회장에 출마하신 분들이 뛰다 보면 예년의 경우 경쟁적으로 회비 대납에 몰두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공탁금도 3 만 달러나 되는데 거기다 회비를 대납해 주려면 그 대금만도 수만 달러가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대납에 대해서 무신경하거나 오히려 즐기는 경향도 보여 부끄럽고 실망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선거위원으로 등록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3번이나 회비를 낸 것을 보고 “이럴 수가” 했더니, “한인회 돈이 생기는데 어때요”하고 오히려 핀잔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도 아니고 이곳 캐나다에서 이래야 하는지, 정말 저는 낯이 부끄러웠습니다. 평상시에는 100명, 200명이 내던 회비가 선거 때는 3,000명까지 늘어나는 현실, 제발 올해는 대납 현상이 없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리고 회비 납부를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도를 연구해주기 바랍니다. 저의 첫째 제안은 노인단체의 협조를 얻어 한카노인회나 한국노인회 등에서 회비를 받아주거나 신용조합에 회비창구를 마련하거나, 회장단이나 이사들이 천주교회나 교회 또는 단체 행사 등에 직접 찾아가 회비 접수를 한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부디 이번 선거가 대납선거라는 불명예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납부하고, 당당한 투표에 임하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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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너희가 늙어 보았느냐? 우리는 젊어 보았다”-조영연

 

이 세상 만물 중에 공평하게 주어진 것 중에 하나가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만물들에게 똑 같이 기회가 주어진 가장 귀한 것이다. 이 시간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모든 만물들에게 똑같이 주어졌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만물이 늙어지고 사라진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마찬가지다. 갓 태어난 애기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나이를 먹어간다. 그래서 애기로 태어나서 유년기를 거쳐서 소년기가 되며, 소년기를 거쳐서 청년기로 접어들고, 다음에는 중년기, 장년기를 거쳐서 노년기로 들어가 결과적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맞는다.


이 모든 과정은 어느 누구나 똑같이 주어졌다. 인간뿐이 아니다. 동, 식물과 어족, 만물은 마찬가지다. 한국의 통계청보고에 의하면 현재 65세를 넘은 사람의 평균 수명이 91세라고 발표하였다. 65세만 넘으면 91세까지 살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 칠십은 옛말이고, 인생 백세 시대가 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인간을 계절로 따지면 '인생 백년 사계절 설(說)'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25세까지는 ‘봄’이며, 50세까지는 ‘여름’이며, 75세까지는 ‘가을’이며, 100세 까지는 ‘겨울’이라고 한다. 이에 따른다면 70세 노인은, 가장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로 만추(晩秋)쯤 되는 것이며, 80세 노인은 이제 막 초겨울에 접어든 셈이다.


필자가 한국 거주시인 약 40여 년 전 국제친선회(회장 박일경: 법제처장, 문교부장관, 명지대 총장, 경희대 대학원장 역임)의 일원으로 활동할 당시의 일이 생각난다. 국제친선회는 민간 차원의 국제적인 친선활동을 하는 단체로써 주로 한일관계와 한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순수한 민간 단체다. 


한국에서 한일(韓日) 행사를 준비 중에 안호상 박사(독일 철학박사, 초대 문교부장관, 경희대 교수, 이사장, 1902-1999)를 초청한 일이 있었다. 필자는 당시 불과 40여 세였으나 안호상 박사님은 나 보다 31살이나 많은 당시 70여 세였다. 저렇게 늙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나, 하고 그 당시는 생각을 하였었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70여 세도 많은 나이는 아니다. 내가 나이를 먹고 보니 나이가 들은 사람들은 살아온 많은 경험과 경륜이 쌓여있기 때문에 존경의 대상인물이지 절대로 무시하여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60세를 회갑(回甲)이라고 하였으며, 70세를 고희(古稀)라고 한다. 고희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여 古稀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즉 인생이 70세까지 산다는 것은 드물다는 뜻이다. 


또한 77세를 희수(喜壽)라고 하였다. 희수란 오래 살아서 기쁘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65세부터 75세까지를 활동의 은퇴기(Active retirement)라고 한다. 비록 은퇴를 하였지만 사회활동하기에 충분한 나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육체적 나이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나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Youth is not a time of life). 그래서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노년에 청춘이 있다. 


성경말씀에 의하면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 12:12)고 하였다. 명철이란 세태와 사리에 환하게 밝음을 말한다. 늙은 자, 나이 먹은 사람은 젊음을 거쳐온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이 겪지 못한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다. 소위 노하우(Knowhow)가 쌓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을 보면 무시하게 된다. 늙은이들은 우선 외모가 깨끗하지 못하여 보인다. 아무리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어도 얼굴은 늙어 쭈글거리고, 머리는 하얗게 희어서 보기가 좋지 못하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은 젊은 시절을 거쳐서 오늘에 이른 지혜와 명철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젊은이 못지 않게 젊은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마음이 청춘이면 몸도 청춘이 된다”고 했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미국의 헤리 리버만은 76세에 처음으로 붓을 들고 81세에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원래 폴란드 태생이나 26세 때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제조업을 하여 성공한 이민자다. 


그녀는 70세 후반에 은퇴하여 뉴욕의 시니어 클럽에서 매일같이 카드놀이와 잡담으로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원봉사자의 권유에 따라 81세에 정식으로 그림교실에 등록을 하여 배우기 시작하였다. 


주위에서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비웃기도 하였지만 그녀는 열정적으로 10주 동안 그림공부를 하였다. 그런 후에 구약성서와 히브리 문학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미술가와 평론가들에게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이와 같이 시작한 헤리 리버만은 101세에 22번째 전시회를 가졌다. 그는 전시장 입구에서 꼿꼿이 서서 내빈을 맞았다. 그녀는 “일흔이든 여든이든 아흔이든 나이 많이 먹은 사람들에게 이 나이가 아직 인생의 말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하였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여전히 일을 더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여 봄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1983년 103세에 행복한 삶을 마쳤다.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80대 이상 되신 분들의 피의 대가다. 또한 세계 10위권 안의 무역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70대 이상 되신 분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다. 이제는 70대 이상 나이 드신 분들이 힘이 없다 하여도 우리는 그 분들을 존경하고 모셔야 한다. 


필자는 친구들을 만나 80대 이상의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80대 이상 되신 분들은 8.15해방의 기쁨을 만끽하였으며, 6.25의 쓰라린 경험도 하였고, 격동의 4.19도 보아온 세대들이다. 또한 50, 60, 70년대의 보릿고개와 배고픔을 몸소 겪은 세대들이다. 그러나 그 이하의 연령층은 그 시대의 아픔을 잘 모른다.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일까? 또한 행복한 삶이 될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항상 젊은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바쁘게 사는 것만이 젊음과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다. 


젊은이 들이여! 우리는 늙었지만 이미 젊은 시절을 거쳐온 사람들이다. 여러분들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가 여러분들과 같은 젊은 시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젊은이들은 아직 늙은이가 걸어온 만큼 세상을 겪어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늙은이들은 젊은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젊은이들보다 이 세상을 잘 안다. 또한 산 증인들이다. 


젊은이들아! 너희들이 늙어 보았느냐? 우리는 젊어 보았다. 그래서 너희들의 모든 것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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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남을 배려하는 정신-송선호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종종 한국방송을 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즐겨보는 프로가 KBS 방송 "인간극장" 프로입니다. 이 프로는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유익한 프로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방송했던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김형석 교수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서 연세가 100세입니다. 100세까지 사는 것도 힘들텐데 아직도 왕성하게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시고 있습니다. 그것도 1년에 160회나 되는 강연을 말입니다. 김 교수께서는 젊은 사람도 다니기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계십니다.


 저는 어린 시절 크리스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시절 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많이 해주시던 분이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작고)와 연세대 김형석 교수였습니다.

 
 김 교수께서는 그 당시에도 항상 남을 배려하는 내용을 강연하여 주셨고, 인생을 살아오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께서는 고향이 이북이며 부인께서는 작고 하셔서 홀로 살고 계십니다. 연세가 많다보니 친구분들도 다 저세상으로 가셨습니다. 


 교수님이 외로울 것 같아 제자들이 종종 회식자리를 마련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식사를 마치시고는 자리를 피하십니다. 나이 먹은 사람이 있으면 제자들이 마음껏 술도 못마시고 떠들지도 못할까봐 제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이런 조그만 것까지 배려하는 것이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마음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고 하지만, 물질적으로만 풍족해졌지 정신적으로는 궁핍해졌다고 봅니다.


 인간의 가치는 어린 학창시절에 형성이 된다는데 입시중심의 대한민국 교육정책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OECD 국가 중 젊은이들의 자살자 수가 1위인 점을 보면 알 수 있고,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느낀 점은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 약자를 우선 배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젊어서는 인생이 꽤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 들면 화살처럼 빠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한번밖에 살지 못합니다. 한번밖에 살 수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 남을 배려하며 보람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김형석 교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입니다. 가끔 흉악한 사건이 신문을 장식할 때 철학자 김 교수님의 남을 배려하는 강연을 떠올리곤 합니다. 저는 이민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내일의 태양은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2019년 황금돼지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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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5
남쪽으로 떠나시는 ‘스노버드’님들께-백경락(한인스노버드협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2019 기해년 새해가 왔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토론토의 한겨울이 시작되는 1월, 많은 스노버드들이 남쪽으로 피한 골프 여행을 떠나시리라 생각합니다.


1, 2, 3월 3개월은 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달입니다. 떠나시는 스노버드님들께 노파심에서 한인스노버드협회에서 몇 말씀 당부드릴까 합니다. 


우선 떠나실 때 여행자 보험을 드시고 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캐네디언스노버드협회에서 하는 단체보험이 좀 싸다고 합니다. Medipac에서 하는 보험에 가입하고자 하시는 분은 자세한 절차를 문의하세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1주에서 3개월 정도 체류하시는데 골프를 주로 치시면서 소일 하십니다. 단기간 골프여행 하는 분들은 여기저기서 치시면 되지만 한달 이상 계시는 분들은 Monthly 멤버를 드시면 훨씬 싸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Monthly 멤버쉽을 제공하는 골프장이 많지 않습니다. 과거에 제공하던 골프장들도 이젠 대부분 사양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많은 한인들이 골프는 거의 매일 치면서 골프샵의 음식, 드링크 등은 거의 팔아주지 않으니 비즈니스에 실망하여 환영하지 않는 것입니다. 


점심도 집에서 가져가고 커피 한 잔도 안 팔아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심지어 어떤 분은 자기가 가져간 음식을 구내 식당에서 먹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좀 생각해볼 일입니다. 


과거 내가 운영했던 식당에 한 손님이 겨울이면 자기음식을 가져와 바쁜 점심 시간에 마이크로 오븐에 덥혀 달라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처음 몇 번은 서비스했으나 나중에 거절한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얄미웠습니다. 


점심으로 집에서 준비해 갔으면 골프 치는 중간에 눈치껏 먹도록 하고 한 주에 적어도 한두 번 라운드 끝내고 모여 드링크나 뭐든지 좀 팔아주어 그들의 비즈니스를 도웁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음에도 환영 받는 길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일종의 투자입니다. 어느 골프장에나 no food, no drink사인이 있습니다.


또한 골프의 에티켓과 매너를 잘 지키고, 가장 기본이 되는 3Rs(Repair divot, ball mark, rake bunker)를 꼭 지킵시다. 특히 Start area에서 큰소리로 떠들지 맙시다. 공중이 모이는 곳에서는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느 골프장에 가서도 환영받도록 각자 노력합시다. 


2019년에 바뀐 골프 룰을 숙지하셔서 너무 느린 골퍼란 얘기 안 듣도록 합시다. Myrtle beach나 플로리다로 가시는 분 중에 궁금한 것이나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 분, 동행자 구하시는 분은 한인스노버드협회(416-888-8616)로 연락주세요. 


서로 정보 교환하고 의논해서 즐거운 여행되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겨울 보내시고 다시 4월 이곳 골프장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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