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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대한민국 공군의 전략 능력-송선호 (재향군인회 캐나다동부지회 부회장)

송선호 (재향군인회 캐나다동부지회 부회장)

 

 

 

며칠 있으면 6,25가 다가온다. 요즈음 남북한 지도자가 만남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장이 열리길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국방력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한민국 공군의 전략능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현대전에서 공군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는 엄청난 힘이다. 전차 등 육상기동수단의 등장은 선과선의 대결이던 1차원 전장을 2차원으로 확장시켜 주었다. 그러나 항공기의 등장은 2차원 전장을 3차원으로 확장 시켰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을 하고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1911년 항공기는 전쟁에 투입되었다. 이것은 항공기가 전투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하고 있다.


(1)항공력이 좌우하는 전쟁


 항공기는 모든 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 후반 독일은 폭격기를 동원해 런던을 공습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에서는 전투기, 공격기, 폭격기 등 다양한 항공기들이 전장의 폭을 넓혔다. 


항공모함이 등장해 바다 위에서도 군용기가 자유롭게 발진할 수 있게 되자 해전은 전함끼리의 대포 싸움이 아니라 항모와 항공기를 가진 해군이 그렇지 않은 해군을 압도하는 전쟁으로 바뀌었다. 누가 먼저 하늘을 장악하느냐는 전쟁의 흐름까지도 바꾸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중동전 가운데 6일 전쟁도 이스라엘의 압도적 항공력이 거둔 대승 이었다. 걸프전에서는 항공전력으로 제공권은 물론 지상군까지 완전히 괴멸 시킨 후에야 지상군이 전투에 투입되었고 코스보 항공전에선 지상군의 개입 없이도 적을 굴복시켰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대 테러전쟁에서는 지상에 위치하는 소수의 종말공격 통제관이 정밀타격을 유도하여 적군을 괴멸시켰다.


(2)스텔스란?


 힘과 전투력을 강조하던 미 공군은 F-4E 팬텀 같은 고성능 대형전투기를 만들어 전장을 장악하려고 했으나 MIG-21에 패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F-15와 같이 더욱 강력한 엔진과 레이더와 미사일을 갖춘 기체를 만들어 대응했지만 이것만으론 확실한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예 레이더를 탐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스텔스 기술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1970년대 말 해롤드 브라운 미 국방장관이 윌리엄 페리 국방개발실장을 내세워 본격적인 스텔스 기술을 개발토록 해 F117 스텔스 공격기와 B-2A 스텔스 폭격기가 1980년대부터 실전 배치되기 시작했다.


스텔스 전투기도 결국엔 레이더에 탐지된다. 그러나 먼거리에서 곤충 정도의 크기로 잡히며, 엄청나게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와야만 레이더는 스텔스 기체를 항공기로 인식하고 그 정도 거리가 되면 스텔스기는 이미 자신이 가진 무장으로 공격을 마치고 사라져 버린다. 


스텔스 전투기를 가진 부대는 그러한 능력이 없는 군대를 압도할 수 밖에 없다. 걸프전에서 있었던 사례다. 미 공군은 공습초기에 이라크의 원자력 연구시설을 파괴하고자 했다. 무려 78대의 전투기를 동원하면서 사상 최대의 공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같은 임무를 F-117스텔스 전투기 2대가 출격해 단번에 성공했다. B-2A 스텔스 폭격기는 레이다에 걸리지 않으면서 한번에 최대 80개의 목표까지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스텔스 항공기는 진화를 거듭하여 이제 F-22나 F-35와 같은 전투기 형태로 등장했다.특히 F-22는 2005년 12월 초도 작전능력 인증 이후에 본격적으로 활약을 시작하여 2006년 미 공군의 노던 엣지 훈련에서 144:0 이라는 경이적인 공대공 격추기록을 세웠다.


미국은 F-22를 197대만 생산하고 생산라인을 닫았고 다음 기종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이 F-35이다.


 (3) F-35 기종이란?


 F-35는 원래 미3군 합동타격전투기(Joint Strike Fighter)로 개발되어 미 공군, 해군, 해병대가 보유한 모든 전투기를 교체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미국은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으로부터 2443대를 구매할 예정이다. 


F-35는 단발엔진을 채용하고 있지만 F-35 엔진은 무려 4만3000 파운드의 강한 추력을 자랑하며 2000 파운드의 폭탄을 수납할 수 있다.


 또한 F-35는 전술핵 폭탄까지 운용할 수 있다. 보통F-35는 스텔스 성능에만 주목하기 쉽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F-35가 보유한 각종 센서이다. APG-81 AESA 레이더로 촘촘한 감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자전 교란까지 가능하다.


(4) 결론


 F-35가 대한민국 공군에 도입됨으로써 갖는 전략적인 가치는 엄청나다. 유일하게 적의 지휘통제부를 겨냥하여 정밀하게 제거할 수 있는 스텔스기는 대한민국 전쟁억제 능력을 높여주는 핵심역량이 된다. 


대한민국 공군은 40대의 F-35A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추가 20대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대한민국 공군은 막강한 공군력을 확보함으로써 전략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며, 향후 자주국방의 튼튼한 받침목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6,25를 맞이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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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빈 방에서-(한경애 로사리아)

 


(이 글은 필자가 최근 유명을 달리한 부군을 그리워하며 쓴 글을 예수성심성당의 한 신자 분이 본보에 보내온 것입니다.) 

 

 


구름과 새들이 지나다 종종 들여다 봐주고, 햇볕이 어깨를 쓰다듬어 주곤 하던 이 작은 방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신비한 지구별에 살고 싶어, 잠시 머물던 엄마의 태 안에서처럼, 다소곳이 꼬부리고 누워, 끝 모르는 기다림에 안겨 있었습니다. 


오욕칠정에 물들은 어른들의 언어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매일매일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얼룩진 어제와, 내 안에 숨겨 놓은 나를 눈물로 씻어내곤 했었습니다. 


희망과 소망이 그려진 벽지로 도배를 하고, 당신을 닮은 꽃과 천사들도 불러 왔었지요. 절망을 먹고 살아야 하는 나였지만 당신이 여기 있어서, 내 가슴 안에 평화와 위안이 잠시 잠시 머물다 갈 수 있었습니다.


 침상에 묶여 세상 밖으로 발끝조차 보이지 못하던 당신이었지만, 당신과 나를 뿌리째 흔들어대던 천둥번개와 폭풍우도 두려웠던지 이젠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정적과 그리움만이 그 자리에 누워, 내 눈물의 강이 몸부림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당신이 날개 밑에 숨겨 거두어 간 것은 아닌가요. 더 이상 나의 연약한 허리가 휘어지지 않기를 빌며, 더 이상 내 가슴에 찬바람이 새어 들지 못하도록, 여보! 이런 나를 두고 떠난 당신이 하늘의 그분께 답답한 가슴을 열어 보이고 싶어 돌아오지 못할 긴 다리를 건너간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당신이 잠깐 잊었던 것 같습니다. 바닥을 드러낸 나의 인내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었다는 걸.  


여보! 다시 돌아와 줄 순 없는 건가요? 하늘에 계신 그분께 간절히 부탁을 드려보세요. 당신이 다시 돌아오고, 아픔만은 버리고 올 수 있다면, 난, 우리들의 영혼과 육신을 마비시켰던 9년이라는 시간보다 더 긴 나의 모든 삶을 바쳐서라도 되찾고 싶어요. 


여보!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단 한 번 만이라도 두 손을 꼭 잡고 풀밭을 걸어보고 싶어요. “빨리 좀 걸어요! 조금 더 빨리 걸어봐요!” 이렇게 잔소리도 하지 않을게요. 내가 당신에게 발을 맞춰 줄게요.


 어젯밤에도 당신이 벗어놓고 간 하늘빛 가운 한벌이 빈 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괴로움과 외로움을 감싸 안고 눈물을 닦아주던 당신의 전 재산인 그 헐렁한 옷 한 벌과 당신의 향기를 베고 자며 ‘허무하다 허무하다’ 외쳐주며 달리는 기차를 타고 꿈나라로 당신을 찾아 갔었습니다. 당신과의 아름다운 재회를 위해 매일 밤 여행연습을 할 겁니다. 오늘밤에도 마중 나와 주시겠지요?


단 한 번도 나에게 ‘안돼!’ ‘왜 그랬어!’ 라고 목소리 높여 말해 본 적이 없는, 언제나 내 편이었던 나의 유일한 사람, 한정우씨!


 내가 당신께 패악을 부리던 잘못들 용서해 주실거지요? 당신의 기억의 주머니 속은 선한 마음만 가득한 줄 잘 알고 있지만 부탁할게요. 나 로사리아가 너무도 연약한 사람인지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아서, 하늘의 그분께도 당신한테도 삿대질을 마구 해댔었답니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아름다운 추억으로 하루를 살며, 보속의 삶으로 여생을 채워갈 것입니다.


“여보! 사랑하는 한정우씨!”


메아리 혼자 살고 있는 빈방에 난 오늘도 당신의 이름을 가득히 채워놓고 있습니다. “한정우씨!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아름다운 어느 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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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한인 2세 조성훈씨 당선을 보면서-최광현


 

온타리오에 사시는 동포 여러분! 드디어 한인 2세 청년 조성훈씨가 처음으로 윌로우데일 구역에서 주정부 국회의원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우리 한인들을 대표해 오신 조성준 의원도 당선되었습니다. 우리 한인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침울했던 우리 OK(Ontario Korean)의 장래가 갑자기 변화되어 새롭고 아름답고 멋지게 펼쳐질 것을 상상하니 내 마음 또한 들떠있습니다.


조성훈(Stan Cho)은 저에게는 대학교 후배이기도 합니다. 후배를 돕는다는 것이 이렇게 보람되고, 또 당선되고 보니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우리 OK 들의 앞날은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며 또 기원합니다. 우리 2세들의 앞날 또한 밝을 것이며 더욱더 많은 젊은 지도자들이 나올 것입니다.


박세리가 LPGA에 첫발을 디딘 후 지금의 LPGA에는 우리 한인 낭자들의 선수들로 가득 차 있으며 마치 골프가 한국의 대표적인 스포츠인 양 LPGA 무대를 거의 독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Stan Cho의 성공을 계기로 앞으로는 우리 젊은 2세들이 정계에 많이 뛰어들어 뚜렷하게 캐나다 정치권에 두각을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우리 두 동포의 당선을 계기로 동포들 또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이 멋진 캐나다에서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재설계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대한민국의 긍지를 살리고 앞으로 캐나다의 각 사회에서 상류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희망합니다.


오늘(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이 회담을 통해 앞으로의 우리 세계는 누구나 다 바라던 태평성대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가 급변하여 좋은 세상이 펼쳐질 새로운 시대에 우리 동포들도 큰 기적들을 만들어서 우리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며, 평화로운 새 시대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저 또한 은퇴한 고령(over 70)이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건강을 지키면서 나의 발전을 추구할 것입니다. 우리 동포 한 분 한 분들도 계속해서 건강을 유지하면서 새 시대에 알맞게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국 또한 남북정상회담 이후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아서 그렇게 염원하던 남북통일 또한 기대해 볼만한 일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은 것 같으니 우리들의 노력과 염원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무튼 조성준 그리고 조성훈 씨의 압승을 계기로 우리 동포들도 희망찬 미래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조성준 그리고 조성훈 의원 BRAVO! 우리 동포들에게도 BRA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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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최연홍 서평] 장편소설 ‘칼의 길’

장편소설 ‘칼의 길’

 

박용만, 아까운 독립투사의 삶/최연홍(워싱턴 거주 시인/ 정치학 박사)

 

 

 

최연홍(워싱턴 거주 시인/정치학 박사)

 


  

  

 

 

토론토에 사는 이상묵 시인이 식민지시대를 살다 간 박용만의 삶을 조명한 책을 내놓았다. 이승만, 안창호, 박용만 3인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활동한 조선의 독립투 사들. 이승만은 외교(말의 길), 안창호는 교육(글의 길)에 비해 박용만은 무력(칼의 길)으로 노선들이 달랐다. 박용만의 이름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묵은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다. 한국사가 그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그가 오히려 미국에서 맨 처음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죄송하다. 박용만은 네브래스카 주립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소년병학교를 창설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꿈을 꾸고 실천에 옮긴다.


조선의 독립이 그의 삶이었고 종교였다. 만주, 연해주, 중국을 전전하다 북경에서 비명에 죽어갔다. 참으로 애석한 죽음이다. 


독립을 위해 무력을 키워야 한다고 군사교육을 젊은이들에게 설득하고 실천한 선각자. 흩어진 독립운동단체들을 규합하여 하나로 모으려고 노력했던 애국자. 신한민보 발행인, 주필과 편집인, 국민회보 발행인, 주필과 편집인, 사탕수수밭에 노동자로 온 조선인을 하나로 모으고 자치권을 획득한 지도자, 안창호와 연대하고 이승만을 하와이로 불러드린 인물이지만 이승만에게 배척 받고 유랑하게 된 불운의 사나이. 


그러나 끝까지 하와이 동포들이 그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철원 출신의 큰 인물. 나는 박용만을 미국 속의 한인사 첫 장에 나오는 조금은 특이한 인물로 알고 있었다. 한인의 군사력을 키워서 일본과 군사적으로 맞서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 인물이어서.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그는 그 당대 ROTC 군사훈련을 대학 교육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인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일본과 싸워 이겨야 독립한다고 믿었던 인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시인이요, 문필가요, 군사전략가였던 보기 드문 독립투사. 조선이 식민지가 되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군사적 열세였다고 그는 믿었다. 


400 쪽에 이르는 이 책을 받고나서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책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역사적 활동을 정리하고 인용하고 그의 문장을 섭렵하고 그의 발자취를 찾아간 저자의 공을 높이 평가한다. 


소설적 재미도 사용하며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시인이 써놓은 전기가 독자가 읽기 좋은 매력적인 역사서가 되었다. 가장 큰 저자의 공은 박용만이 살았던 시대의 인물들의 조명이다. 


이승만, 안창호, 상해임시정부의 인물들이 끓임없이 등장한다. 특히 하와이에서 이승만과의 반목은 “필요한 악”의 일부분이다. 저자는 이승만의 조직 파괴, 분열, 권위적인 성격으로 그가 가는 곳마다 한인사회가 분열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 이승만은 안창호도 모함하고 박용만을 위협하는 테로를 뒤에서 자행한 인물이다. 초대 대통령을 지내고 10년 집권 후 4.19 학생의거로 물러난 이승만의 어두운 비인간적인 성품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가 해방된 나라에 돌아와서 남한이라도 자유민주국가로 세우고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공을 치하 하지만 그의 어두운 정신분석학적인 음모와 파괴 성품은 더 연구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이승만이 한국을 남북으로 나뉘게 한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러운 한국인의 비애는 분열의 유전인자가 아닌가? 이승만이 "뭉쳐야 산다”고 아우성 했지만 그가 분열의 씨앗을 뿌리고 다닌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 안에서 서재필, 안창호, 박용만과 친화하지 못한 책임을 다 이승만에게 돌릴 수 없지만 가장 큰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립투사들끼리도 화목하지 못하고 지역적으로 사상적으로 분열된 백성들. 지금 우리 들은 얼마나 달라져있는가 묻고 싶다. 그리고 애국자를 죽이는 사회, 자객이던 부랑자들이던, 이를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한국인이나 다른 민족이나 똑같은 인간의 유전인자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동목표 앞에서 구성원들의 다자간 갈등과 분쟁의 해결을 위한 장치가 문화적이던 법적이던 필요했던 것 아닌가? 


독립된 나라를 세우는 목표는 같았다고 말하면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달랐다면 누가 어떻게 조정자의 역할을 맡아야 했던가? 상해 임시정부는 오합지졸들의 엉성한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대 훌륭한 우국지사들이 모여서 왜 오합지졸로 변했던가? 여기서 한국인의 지성적인 논쟁이 시작해야 한다. 


나는 1996-2006년 환경정책학자로 한국에 살면서 정책토론회가 폭력의 제물로 변하고 감금당하는 테러를 체험하기도 했다. 그 후 얼마나 한국사회가 변했는지 모른다. 아직 분단된 나라. 그 원인은 UN 감시 하의 선거를 거부한 북한이라고 생각한 다.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국가를 세워 나는 다행으로 생각하며, 김일성 치하에서 살기 보다 분단된 나라에서 살아왔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남북이 다 똑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승만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비난은 온당하지 않다. 그도 한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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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2
[특별기고]정치는 삶에 대한 책임이다-노삼열(전 토론토대 정신의학과 교수)

노삼열(전 토론토대 정신의학과 교수)

 

 

우리는 국가를 초월한 시민과 생활양식(Transnational citizenship and life style)의 급격한 보편화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동시에 두 나라 살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또 이제는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유럽의 대학 입학을 위한 조기유학의 의미가 뚜렷하지 않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교육을 받은 학생들 중 실력을 갖춘 젊은이들은 선진국이라는 곳의 최고의 대학에도 바로 입학할 수 있다.


토론토대학에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유학 온 학생들이 많고, 모든 교육을 한국대학에서 마친 순수한 ‘한국산’ 교수들도 있다. 과학과 학문의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의 결과다. 유럽 클래식 음악만이 아니라 팝뮤직(pop music)이나 예술(fine art) 혹은 디자인이나 그래픽 분야에서도 이런 현상을 읽을 수 있다. 


팝뮤직, 영화, 드라마나 연예계의 공동문화시장이 팬아시아(Pan Asia)를 넘어서 유럽과 북미에서 번지기 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20년 전만 해도 이런 현상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국제공동체 현상은 문화와 스포츠뿐이 아니요 철학이나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Transnationalism이 확대되면 개체의 특징이 없어지리라는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세계의 모든 대도시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도로에서 같은 체인식당이나 전자회사나 약광고 등을 보면서 이런 우려의 한 면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transnationalism이 활발하고 지역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오히려 각 개체의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고 더 상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정보망이 개방되고 투명해지고 교환이 활발해져서 각자의 활동과 행보 그리고 내면의 모습까지 속속들이 알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웃이며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물론 캐나다는 이중 국어 정책을 채택하고 있지만), 매우 활발한 경제적 교류만이 아니라 국방과 학문 (학회와 학술대회, 출판 등등), 스포츠와 많은 분야의 문화적 활동을 공동으로 펼치고 있다. 많은 분야의 경우 서로의 자격과 경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와 미국의 차이는 완연하다. 정치(정부와 국회)와 사법부 구조가 다르고, 정당체제와 운영도 상이하고, 선거제도 역시 적지 않게 다르다. 무엇보다 국민들을 대하는 정부(국가)의 자세가 크게 달라 보인다. 


상세한 설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미국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를 선호하여 경쟁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며, 이런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최상의 가치로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캐나다의 경우 개인의 경쟁을 통한 성장을 꾀하기는 하지만, 국가의 통제를 통해 공동분배의 장점을 살리려는 노력이 뚜렷하다. 사회주의적 건강보험제도와 교육제도가 가장 뚜렷한 제도적 차이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점에는 캐나다가 앞선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국가간의 상이한 모습은 캐나다와 미국의 경우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Scandinavian 국가들과 중남 그리고 동부 유럽의 경우가 그렇게 상이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 국가 안에서도 발견된다. 캐나다의 경우, 비유럽계인들에게 이민을 허용한 것이 불과 반세기 전이어서, 캐나다 태생 두 세대가(two generations of Canadian born)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미 민족간 사회경제적 성취수준에 뚜렷한 차이(ethnic diversities in socioeconomic level)가 있다. 


대학과 병원의 복도와 벽에 전시되어 있는 후원금 기부자의 명단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20-30년 사이 중국인과 인도 그리고 중동계 이름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에는 남아시아계(south Asian)의 정치와 언론계 진출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한국계 이민자들의 경우, 특유의 교육열에 힘입어 2세들의 전문직 진출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각 전문적 분야에서 리더 서클(leaders’ circle)에 진입하기에는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노력은 자신이 처한 사적 경험과 상황(personal experiences)을 사회적 과정(social process)의 일부로 이해하려는 사회학적 관점(sociological perspective)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관점의 전환은 곧 나의 노력의 초점을 개인적 능력과 효능(personal competence and efficacy)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구조와 구조적 변화과정(social structure and structural change)으로 옮겨가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각 개인의 노력의 결과는 후자의 개방성과 형평성 효과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좁게 보면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효율이 사회적 자본과 연결망(social capital and network)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한 개인이나 단체가 사회학적 관점을 실천하는 지름길이며 가장 기본적 활동은 정치에 동참하는 일이다. 정치는 곧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정치에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과 가족에 대해 무책임한 말은 없다. 그래서 종교 역시 우리의 삶에 관한 것이기에 정치와 결별한 사태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가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우리의 정치 참여는 나의 삶에 대한 절실함에 근거하며 그래야만 진실된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삶의 절심함은 곧 내가 확신하며 지키고 싶은 어떤 ‘가치’에서 출발하게 마련이다. 정치는 철학적 사고와 신념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때로는 Rosa Parks와 같이 가장 기본적 인권의 가치를 위한 것일 수 있고, 국가와 민족간의 평화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나아가 구체적 정치제도나 선거과정이나 국가경제정책과 같은 더욱 구체적 신념이 정치참여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뚜렷하고 맑은 정치철학이 부재된 참여는 기회주의적 정치인을 낳게 되고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급기야는 사회와 개인들의 삶의 질을 해치고 말 것이다. 우리가 고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소수민(minority)의 삶을 각오하게 된 까닭도 이런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의 망동의 피해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면 무리일까?


 정치참여는 자신의 상황과 철학에 근거한 것이기에 자신과 같은 경험과 상황을 나누고 있는 자들의 집단적 활동일 것이다. 소수민 이민(minority ethnic immigrants)의 경우 자신들을 대표하는 리더(community leader)의 정치입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리더가 제시한 정책과 정당을 기본으로 후원을 결정하는 것 역시 매우 성숙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자신과 역사적 경험과 실존적 상황(historical experiences and existential contexts)을 공유하는 후보를 지원하는 것 역시 정책과 정당과 동등한 판단의 축(axis)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3개월 여를 남겨둔 온타리오 총선을 앞두고 이 글을 기고를 하는 의도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현격한 Transnational 시대에 사는 우리의 삶은 속속들이 들어나 남에게 보고된다. 


 동계올림픽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기에, 타인들이 한국이민자들을 보기에 지혜롭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가족과 사회에 대해 책임감이 뛰어난 민족임을 발견하기 바라며, 어려운 결정과 지대한 노력을 이어가는 두 코리안 캐네디언(two Korean Canadian candidates)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노장의 투혼과 첫 도전에 임한 2세의 기개를 후원한다. (2018,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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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5
[최광현 기고]Stan Cho를 Queen's Park으로(II)-한인들이 뭉쳐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최광현(조성훈 후원회 실행위원장)

 

 

 우리 한인동포 이민 역사도 벌써 반세기가 되었다. 동포들의 근면 정신과 부지런한 생활습관 덕분에 그래도 개인적인 동포들의 생활은 어느 정도 살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 정치 참여에 있어서는 턱없이 부족한 민족에 속한다.


그나마 조성준 의원이 토론토에서 우리를 대표하는 시의원을 거쳐 지금은 온타리오 주정부 의원으로, 거의 한평생을 정치인으로 살아왔다. 현재 고령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열심히 동포들을 위하여 일하고 계시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동포가 제대로 캐나다 사회에서 발전하려면 젊은 동포들이 캐나다 정치권에 대거 참여해야만 한다.


 나는 이곳에서 52년의 이민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다행히 3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캐나다와 미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주로 큰 회사를 상대로 출장을 많이 다니는 회사에 근무해왔다.


북미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가는 곳마다 우리 동포들이 열심히 살아온 결과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역시 토론토와 마찬가지로 희박한 정치 참여가 여러 도시마다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토론토에서 이번에 Stan Cho가 성공한 아버지 밑에서 잘 성장하여 윌로우데일지역에서 보수당 후보로 뽑혀 온타리오 주의원에 출마하게 되었다. 총선거 날짜는 6월 7일이다. 아직도 3개월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윌로우데일에 사는 11,600여 명의 동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좋은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윌로우데일에 사는 동포들은 잘 알겠지만, 이곳은 부촌(富村) 중의 한 구역으로 정치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선거구다. 이곳에서 Stan Cho가 당선만 되면 앞으로 그의 장래가 촉망되는 동시에 한인동포사회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동포 여러분! 지금이 바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우리 민족에게 당부하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망한다."라는 명언을 실천할 기회다. 우리 1세나 1.5세들은 지금 대부분이 은퇴생활을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여생을 우리 2세들의 장래를 위해 봉사도 해야 하고, 또 2세들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챙겨주어야 한다.


 우리가 택한 캐나다는 다른 나라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기반이 좋은 나라에서 조금만 열성을 보여 2세들의 앞날을 위해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한민족이 캐나다사회에서도 지도층의 민족이 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나름대로 경제적 기반을 잡느라 열심히 살아왔다면 앞으로 30년에서 50년은 우리 한민족의 위상을 높이는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본다.


 윌로우데일의 인구 분포를 보면 대표적으로 중국인, 한국인 그리고 이란계 민족이 많다. 다행히 이번 선거에 중국계와 이란계 출신이 없고, 다만 오랫동안 이 지역을 대표해온 David Zimmer가 자유당 소속으로 Stan Cho와 정면으로 맞붙게 됐다. 


윌로우데일은 Liberal지역이라는 고정관념도 있지만 선거란 끝까지 누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느냐의 결과이다. 물론 David Zimmer가 노련한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건히 지켜 왔으며 지금까지 그를 밀어준 유권자들의 마음을 바꾸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PC 리더 아래 새롭고 밝은 새 공약을 바탕으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면 승산을 기대해볼 만하다.


 지금 보수당에서는 새로운 리더를 선출하는 과정에 있다. Christine Elliott과 Caroline Mulroney가 지금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만약 Caroline Mulroney가 새 당수로 뽑힌다면 Stan Cho에게는 거의 장관 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상태이다. Stan Cho에게 정치적 행운의 길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윌로우데일에 사는 많은 우리 동포들이 PC 당원이 되어서 3월 2일~8일 온라인으로 진행될 새 당수 선출에 Caroline Mulroney를 찍어야만 하겠다.


 윌로우데일에 사는 동포 여러분! 또 한 번 호소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똘똘 뭉쳐서 동포사회의 경사를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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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9
세상은 넓다(1)-브라질에서 보내는 글-조영연(전 한카노인회 회장)

 

 백문불여일견(百聞 不如 一見)이란 고어(古語)가 있다. 이 이야기는 한서(漢書) 〈조충국전(趙充國傳)〉에 나오는데, 조충국의 말에서 ‘백문불여일견’이 유래했다. 이 성어는 무릇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느니만 못하고, 눈으로 보는 것은 발로 직접 밟아 보는 것만 못하며, 발로 밟아 보는 것은 손으로 직접 판별해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회, 문화, 교육 정치 등은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후진국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또한 UN에서 정한 세계 210개국 중에서 최빈국 10개국을 선정하여 후원하여 주었는데 대한민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자는 바깥 세상을 많이 구경하고 배우기 위하여 많은 관광과 활동을 하였었다. 당시 선진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신기하고 배울 것이 많았었다. 말로 듣던 선진국에 가서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다. 


한국에서 해병대 장교 예편 후, 20년간 여러 개의 학원을 운영하면서, KBS교육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서울시 공무원 교육원과 내무부 지방연수원 및 치안본부 수사요원들 지도강사로도 활동 하였었다. 또한 여러 단체에 관여하여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서울특별시 학원연합회(당시 6,500여 개의 학원) 회장과 전국 학원총연합회 (12,000여 개의 학원) 수석부회장 당시, 일본의 교육기관들을 견학하기 위하여 20여명의 학원장들을 대동하여 여러 차례 일본 교육기관들을 방문하고 관광도 하였었다. 일본의 최 남단에 있는 오키나와에서 실시하였던 세계 해양박람회도 관람을 하였다.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취지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서울특별시 재향군인회 이사를 하면서 학원장 100명을 두 버스(한대는 서울특별시 재향군인회, 한대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차량)에 분승하여 한국 국내 관광도 하였었다. 포항에서는 필자가 옛날에 근무하였던 해병대 포항기지 사령부를 방문하기 위하여 사단장에게 연락하였었다. 


헌병 검문소에 도착하니 칸보이 헌병 차량 두 대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니 우리를 앞 뒤에서 칸보이를 하여 사단 본부로 안내하여주었다. 사단에 도착하니 사단장 이하 참모들이 반갑게 환영하여주었다. 사단본부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각종 브리핑이 있었다. 나는 사단에 대형 TV를 기증하였다. 이어서 포항제철도 방문하여 공장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또한 국제친선회의 임원으로 활동도 하였었다. 국제친선회의는 주로 한일관계와 한미관계를 민간인 차원에서 우호와 친선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사단법인체다. 민간인 차원의 한일친선회의에도 수차 참석을 하여 일본의 이곳 저곳을 방문한바 있다.


국제친선회의는 당시 집권 여당인 자민당과의 교류행사다. 행사는 일본 동경에서도 개최하였고 서울에서도 개최하였었다. 특히 집권여당인 자민당 사무국장인 단노와 필자는 각별한 사이로 단노 사무국장이 한국에 오면 우선 나에게 연락을 하였고, 우리 집에도 초청한바 있다. 


또한 한미친선회의에도 참석을 하고, 미국에 많은 도시도 방문을 하였었다. LA에서도 개최하고 하와이에서도 개최하였었다. 단체 관광으로 세계 일주도 하여 구라파와 동남아 각국을 관광하였었다. 1970년대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눈으로 보고 배워서 우리 사회에 접목시킬 수가 있었다.


서해구락부(해군, 해병 예비역 장병 친목단체) 중앙회 이사를 하였었다. 1970년 11월 11일에 설립된 서해구락부는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 후에 그 해 12월 19일 재향군인회 산하의 모든 단체 해체조치로 인하여 본부와 각 지회가 모두 해체를 당하였다. 이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구데타나 다름 없는 행동으로 집권을 하였기 때문에 불안하여 취해진 것이란 분석이다.


관광은 흥미롭고 즐거우며, 새 세상을 배우는 것이 많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것, 또는 배운 것을 직접 목격하고 배우는 기회다. 관광이 우리에게 주는 정신적 성숙은 인간의 최대 목표인 자아실현(Self-Satisfaction)을 통하여 삶의 질적 향상을 기할 수 있다.


30년 전에 캐나다에 이민 와서도 많은 관광을 하였다. 캐나다에서 유명하다는 록키 산맥도 세 번이나 관광을 하였고, 서쪽에 있는 밴쿠버 일대 및 동쪽에 있는 몬트리올까지 대륙 횡단도 하여 보았고, 토론토 인근에 있는 많은 관광지도 가보았으며, 캐나다 동쪽에 있는 가스페도 고등어 낚시 차 몇 번 간 일이 있다. 


2001년 미국 뉴욕 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났던 해에는 유럽 지중해 크루저(Cruise)여행을 다녀왔다. 동행자는 친구들 3커풀이었다. 지중해 관광은 지중해에 인접하여 있는 모든 나라들을 방문하는 크루저여행이다. 크루저 여행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1)짧은 기간에 여러 나라와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 2) 각종 서비스와 편안한 공간이 제공된다. 3)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4)진정한 고 품격 여행을 즐길 수 있다. 5)차별화된 여행을 할 수 있다. 6)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7)목적지에 따라 일정 잡기가 용이하다. 8)편안한 여행이다. 9)수속 절차가 간편하다. 10)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다. 11)미리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다. 12)가장 안전한 여행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1)한 곳을 집중적으로 여행할 수 없다. 2)여행 도중 일정 변경이 불가능하다. 3)경비가 다소 부담스럽다. 4)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도 여러 번 갔었다. 또한 한카노인회 회장 4년 임기 동안에 회원들과 함께 해마다 튤립관광 및 한국대사관과 연방의사당을 관람하였다. 특히 2016년도 방문 시는 캐나다 상원의장으로부터 국빈만을 초대한다는 상원의장실에서 점심까지 대접받았고, 이어서 상원의회 개회석상에 참관했었다. 

 

 

 

 


상기와 같이 많은 관광을 하였지만 나의 평생에 잊지 못할 관광은 5년 전에 하였던 남극 빙하 관광이다. 남극 빙하는 아르헨티나 최 남단 도시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다. 또한 빙하 관광을 가기 위하여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여 인근의 유명한 소금바다를 관광하였다. 소금바다를 가기 위하여 안데스 산맥(내가 넘은 산은 4,970m, 백두산 높이가 2,744m임으로 백두산보다 2,226m 더 높음)을 넘어서 소금 바다를 관광하였었다. 


어떻게 그 높은 곳에 소금 바다가 있을까? 이는 분명히 몇 백 년 전, 또는 몇 천년 전에 이곳이 바다였을 것이다라는 증거다. 그렇지 않고는 그 넓은 호수가 소금으로 뒤덮일 수가 없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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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2
[인터뷰]“2019년 윌로데일 지역구 재선 도전…한인들의 많은 지지를 당부합니다”-김승관(토론토 해병대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받아 1월 중순 한국 방문 예정”

 

 

알리 에사시 연방의원

 


 
현재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알리 에사시 연방의원과 의정 및 최근 근황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에사시 의원의 지역구인 윌로데일은 한인들이 많은 거주하는 지역이라 동포사회에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Q. 만나보니 소탈한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노스욕의 윌로데일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계시니, 한인들과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일 것 같습니다.


A. 캐나다 전 지역에서 한인들이 가장 밀집해 살고 있는 바로 윌로데일 지역입니다. 이곳 인구가 약 8만~9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 중 한인의 숫자는 1만 명을 웃돌고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연방의원이나, 주의원 등, 모두 한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즉, 단결한다면 연방의원, 주의원, 시의원 등을 모두 한인들이 원하는 후보로 만들 수 있는 곳으로 볼 수 입니다.


Q. 그렇다면 한인행사에 많이 참석해야 되는 것 아닌지요?


A. 당연하지요. 본인의 경우 토론토한인회나 재향군인회, 요즈음은 북한에서 탈북한 한인들의 집회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연방의회에 상정하고 있습니다. 지역구는 다르지만 조성준 주의원과도 긴밀히 상의하고 있고, 많은 부분은 이미 협조한 것으로 압니다. 지난번 주의사당 앞에서 탈북민의 요구사항도 연방의회에 안건으로 처리해 줄 것을 정식으로 기안했습니다. 


Q. 여담입니다만, 한국 음식을 접해볼 기회가 많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한국 음식 중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지요?


A. 저는 이란(IRAN) 출신입니다. 한국 음식과 같이 고춧가루를 많이 넣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래서 김치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역시 한국 음식의 최고봉은 불고기, 이 맛은 매력적이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한국 음식점을 찾아가 즐겨 먹고 있습니다. 


한가지 문제점은 초대 받아 갔을 때 수많은 한국 음식을 먹었는데 막상 집사람과 같이 한인 식당에 가면 메뉴를 몰라 항상 불고기를 시켜 먹고 나옵니다. 그 외에도 돌솥비빔밥은 한국 고유의 음식인 것 같고 내용도 상당히 충실한 것 같아서 즐겨 먹고 있습니다.


Q. 아까 말씀하신대로 이란 태생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란에서 바로 캐나다로 이민 오신 것입니까?


A. (웃으면서) 이란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제 아버님이 외교관인지라 당시 부임지가 스위스였습니다. 저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태어났고(1970년), 그 이후 이란의 정치적인 문제가 세계적으로 시끄러울 때 저를 미국으로 데리고 갔고, 뉴욕시티에서 약 8년 가까이 살면서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이후 이란이 정치적으로 안정감을 찾기 시작했기에 다시 이란으로 가서 약 14년을 살았습니다. 이란에서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마친 다음 프랑스에서 사업 관계로 약 1년을 살았는데 이때 프랑스어를 습득한 것이 현재 의정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서 이란 대표로 14년간 봉사하다 이곳 토론토에 오게 되었는데 세월이 빨라 토론토에 온 것이 벌써 15년째 입니다. 이란의 학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1994년 University of Toronto (UT)에 입학해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London Ontario에서 International Trade Law(국제무역법)을 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5년~1996년)


그 이후 Osgoode Hall Law School(LL. B) Georgetown University in Washington D.C에서 학위를 받은 것도 있습니다.


Q. 이러한 공부를 했다면 학자금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충당했는지요?


A. Student Loan(학자금 융자)를 통해 조달했고, 이미 많은 부분은 갚았습니다.


Q. 결혼 이야기를 물어봐도 될까요? 


A. 이미 말씀 드렸듯이 참으로 바쁘게 그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살다보니 결혼에 대한 생각을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UT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에 있는 런던대학에서 국제법으로 석사학위 공부를 할 때 나와 같이 국제법 석사 과정을 공부한 여자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Classmate로 지내다가 그 이후 서로 알게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 집사람은 그 이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2001년), 현재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집사람이 미인이었겠습니다.


A. (웃으면서) 미인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만 내조가 훌륭한 여인입니다. 부모님의 고향은 우크라이나인데 제 집사람은 이곳 캐나다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모든 정신적인 세계는 캐나다 사람이지요.


Q. 자녀는 있습니까?


A. 아직 없습니다. 노력은 하는데 노력한다면 좋은 결실이 있으리라 봅니다.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A. 누구든지 남의 도움이 있어 이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형님과 같은 분으로 상원의원인 Matin씨가 계시는데, 이분이 한국과 많은 인연을 갖고 계신 분으로, 마침 윌로데일이 공석이니 출마해 보라는 요청이 있어 선거에 나오게 되었고, 당선된 것입니다. 


지난 연방 총선은 2015년에 있었고, 오는 2019년 재선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의원 한지가 벌써 5년 차인데, 세월이 빠릅니다. 한인 여러분의 많은 협조를 부탁 드립니다. 


Q. 지난 2017년 가을 회기의 대표적인 의정활동은 어떤 것입니까?


A. 캐나다는 올해 G7 국가 중 유일하게 3.7% 라는 고성장을 기록한 나라입니다. 이것은 지난 200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고, 이러한 현상은 2018년에도 계속되리라 봅니다.


지난 2년간 통계청의 발표에 의할 것 같으면 약 45만 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고, 이것 역시 200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경이적인 수치에 힘입어 지난 2017년 3월에 캐나다의 예산을 65억불 늘렸고, 이러한 추세 또한 2018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65억불의 증가부분은 중점적으로 중류층과 서민층에 사용될 것이고, 이러한 층이 굳건해질 때 경제도 탄탄해 질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Q. 중산층과 서민층을 위해 이러한 제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이러한 계층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까요?


A. 좋은 질문입니다. 중산층과 서민층에서 느끼는 실질적인 것은 낮은 세율이고 특히 소기업 운영자들도 이러한 세제 혜택을 받는다고 봅니다. 적은 수입으로 가정을 부양하는 가장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주자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benefits all Canadian (모든 캐나다 사람에게 주는 혜택)이고, 바로 더불어 잘살자는 큰 그림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 캐나다 정부에서 출간한 책자가 있습니다. 그 책자 이름은 Government Moves to Reduce Small Business Tax Rate and Support Fairness for the Middle class (캐나다 정부의 자영업자와 중산층을 위한 감세조치)인데 이 책자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니 한번쯤 도서관에서 열람해 보시기 바랍니다.


Q. 예를 들어 쉽게 설명을 부탁합니다. 


A. 점차적으로 물가 상승으로 이곳 캐나다의 생활이 힘들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2018년 7월1일부터 아이를 2명 데리고 있는 가장(여자나 남자)의 경우, 년간35,000불 정도의 저임금일 경우 연간 560불씩 증액해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약간 미미한 숫자일수도 있습니다만 이 돈을 1년에 한번 지불해주면 학생들의 학용품이나 겨울에는 따뜻한 옷을 사 입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세세한 것이 이번 가을 회기에서 결정된 사안이고 그 외에도 캐나다 정부는 종전에 2억2천만불 수준의 지원금을 5억불 수준으로 인상했는데 이것은 65% 인상율로써 2019년에는 보다 많은 혜택이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또한 2018년 1월1일부터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세율을 10%로 동결하고 2019년 1월1일부터는 9%로 동결하는데 중소자영업자에게는 큰 혜택이 될 것으로 봅니다. 중소자영업자의 경우 상한 7,500불까지 면제해주는 법인세(Fedral Corproate Tax) 제도가 신설되므로 자영업자의 경우 재투자(Reinvest)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Q. 의정활동을 하시다 보면 다른 나라 의원들과도 친분을 갖게 마련인데 현재는 어떠한 계획이 있습니까?


A. 대한민국에서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동계올림픽 홍보차 초청을 해온 것입니다. 윌로데일 지역은 한인이 밀집되어 있는 곳, 그래서 본인이 강원도의 초청을 받고 1월 중순경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다녀와서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저는 아시아 지역에 관심이 많아서 중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고, 특히 이스라엘과 영국, 미국 국회와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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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날로 발전하는 한카노인회-조영연(전 한카노인회장)

                 

 

 한카노인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토론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57년 만에 맞는 강추위에 모두들 건강하신지요? 2017년도를 무사히 보내고 희망찬 2018년도가 밝아왔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한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 한카노인회 회장을 역임하였던 조영연입니다. 회장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사님들과 회원 여러분들이 후원하여 주신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떠났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한카노인회는 짧은 기간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 같은 단체입니다. 캐나다 정부에 2013년에 등록하여 받기 힘든 자선단체(Charity) 허가를 받았고, 연방정부로부터 2015년도부터 $25,000씩 지원금(Grant)을 받기까지의 힘들었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감회가 새롭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외동포재단 이사장과 담당 부서장들을 만나 각종 지원과 물품지원(사물놀이 기구 일체)과 홈페이지 제작지원 등 많은 협조를 받았습니다. 또한 윌로데일(Willowdale)지역 시의원, 주 의원, 연방 의원 등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협조를 구하여 많은 성과를 얻은 것은 자랑스럽습니다. 


100명도 안 된 회원을 4년 만에 1,200명의 회원으로, 1개의 교육과목을 25개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발전한 단체입니다. 또한 1곳의 교육장소에서 사용료를 지불하면서 사용하다가 지금은 6곳의 장소에서 사용료 한 푼도 내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한카노인회로 거듭났습니다.


한카노인회는 한인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캐나다 사회와 동포사회를 위한 단체입니다. 그럼으로써 한인들의 위상이 이 땅에서 상승되며 동포들이 살기가 편하여지리라 믿습니다.


한카노인회의 목적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회원의 친목과 단결, 둘째 교육, 셋째 봉사입니다. 이 세가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 여러분의 단체입니다. 


한카노인회는 연간 100여 회의 대내외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한인 단체뿐 아니라 캐네디언 단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4년간에 받은 공로 및 감사장이 15개나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동포 여러분들과 회원 여러분들이 협조하여준 덕택입니다. 


저의 임기 중 많은 것이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난 4년 임기 동안 매년 오타와 튤립 단체관광을 갔지만 특히 지난해 국회의사당 방문 입니다. ‘국빈’만을 초대한다는 상원의장실에서 점심대접을 받았고, 이어서 상원의원 회의장 방청석에 있을 때 상원의장께서 “한카노인회 회원들이 방문하였다”고 알려 모든 상원의원들이 기립박수로 환영하여 주었습니다. 


이는 한카노인회가 아닌 한인들의 자랑스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는 최선을 다 하였다 할지라도 후회도 많이 있습니다. 좀 더 열심히 봉사하지 못하였음을. 좀 더 회원들을 확보하지 못하였음을 후회도 하였습니다.


한카 노인회원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한번만 더 회장을 맡아달라고 서명 날인까지 하였지만, ‘박수 칠 때 내려와야’ 하겠기에 말 없이 떠났습니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임 회장단을 선출하였습니다.


제 임기 중 부회장으로 열심히 봉사하신 현 김세영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이사로 봉사하신 박찬모, 김종환씨를 부회장으로 선출하여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분과 함께 이사님들이 열심히 이끌어주어 감사합니다. 


한카노인회는 회원을 위한 단체이기에 앞으로도 할 일이 많습니다. 회원을 위한 한카노인회, 회원에 의한 한카노인회, 회원의 한카노인회입니다. GTA토론토에 거주하시는 만 60세 이상 되신 분은 누구나 가입하여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가입하지 않은 분은 회원 가입하여 풍요로운 여생을 한카노인회와 함께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카노인회 홈페이지(www.hancasenior.ca)에서 좋은 글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무실 전화는 416-640-8342입니다. 


다시 한번 2018년도에 회원 여러분들의 가정과 자녀들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현재 휴가 차 상하(常夏- 항시 여름같이 더운)의 나라 브라질에 와 있습니다. (2017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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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태
2018-01-11
한카노인회는 한인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캐나다 사회와 동포사회를 위한 단체로 발전시킨데 대해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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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o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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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1
[추모사]“존경하는 아버님(손 영)을 떠나 보내며”-손동우(마이클)


*이 글은 지난 9월 25일 향년 72세를 일기로 별세하신 고 손영 선생의 둘째 아들 손동우(마이클.39) 씨가 고인의 장례식장에서 읽은 아버님에 대한 조사(弔辭) 전문입니다. 동우씨는 캐나다에서 출생한 2세로 한글표현이 익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에 대한 존경심을 진솔한 글에 담아 전함으로써 조문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이에 고인의 지인이신 김병선 선생이 본보에 조사 원고를 보내주셨기에 지면에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고 손 영(1945~2017) 선생

 


 
 제가 손 영씨의 아들로 태어나서 매일같이 옆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은 저의 삶에 제일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알면 알수록 위대한 것이 은근히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9명의 형제 중에 둘째 막내로 1945년에 태어나셨습니다. 6.25 사변을 겪고 제가 상상도 못한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지내셨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얘기보다 항상 가족관계를 얘기하셨죠.


 할머니가 라면을 파는 구멍가게를 열심히 운영하시거나 큰형을 동네에 안좋은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해주거나. 그렇게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공부를 잘하셔서 부산고등학교, 그리고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한 번도 자랑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학벌에 대해서 따지는 사람을 거북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오로지 친근한 학교 동창, 친구 관계만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함께 1975년에 한국을 떠나서 캐나다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어려운 이민생활에서 같이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꾸준히 가게를 15년 동안 운영하셨습니다. 나중에 용기를 내어 컴퓨터를 공부하시고 금융계통의 회사로 들어가셔서 많은 고객의 신뢰와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개인 성공이라는 말씀은 전혀 안 하시고 오로지 한인 이민자들한테 금융정보를 도와줄 수 있어서 아주 보람 있는 일이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한인공동체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활동하셨는데 최근에 무궁화양로원에 기부해서 많은 분이 아주 좋은 일을 하셨다고 칭찬하셨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인정받기 위해서 하신 것은 아니고 굳이 한인공동체에 중요한 이슈라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고 한인 기부문화를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삶은 어려운 어린 시절, 힘든 이민생활을 극복하시고 많은 면에서 성취하고 성공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과 말씀은 안하시고 조용히 행동으로써 사랑 안에서 가족관계, 의리 안에 친구 관계, 신뢰 안에 고객 관계, 존경 안에 이웃 관계 그리고 희망 안에 한인공동체 관계로 사셨습니다.


 오늘 제가 사랑스러운 아버님을 잃었습니다. 저한테는 제일 큰 조력자, 제일 지혜로운 상담가, 제일 친한 친구셨습니다. 


 얼마나 존경하는지 사랑하는지 그리워할 것인지 제대로 표현을 못 합니다. 하지만 잘 아시는 분들과 함께 항상 점잖고, 자상하시고, 남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배려해 주시는 위대한 그 분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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