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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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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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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9
스탠딩 컴퓨터 받침대

  
 
 모르는 소포 박스 하나가 왔다. 


“이게 뭐예요?”


“응? 빨리 왔네, 내가 주문한 거야”


“뭔데요?”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으니 자기 몸이 그렇게 되어서 안 되겠기에 컴퓨터를 서서 하라고 이걸 오더 했지” 


 언제부턴가 나의 생활은 서서 활동하는 시간보다 앉아서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 소파에 앉아 TV보는 시간, 차를 운전하든가 차에 앉아있는 시간, 식탁에 앉아 있는 시간 등,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들면 아예 누워버린다. 그러니 어디 가도 앉을 데만 두리번거리게 되고 앉아있는 것에 중독됐다. 


 작년에 우리 집에 오신 손님 한 분이 식사할 때 보니, 식사만 잠깐 하시고 계속 서 있어서, 아니 왜? 서계시느냐고 소파에든 식탁 의자에든 좀 앉으시라고 하니  “서있는 것이 건강에 좋대요.” 하신다. 아무리 서 있는 것이 좋다고 해도 손님으로 와서 계속 서있거나 서성대고 있으니, 주인인 나는 불안하기만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랫배 윗배가 불룩하며 어깨는 둥그렇게 구부러지고, 허리는 노인처럼 뒤로 둥글게, 목은 거북 목, 허벅지 종아리 근육은 다 빠지고 무릎도 약해졌으니 영락없는 옛날 할머니 모습. 나이가 들면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허리를 곧추세우고 오래 앉아 있게 되질 않는데 바른 자세야 말로 건강을 만든다는 사실. 


 남편은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 하여 궁리하고 찾아 낸 것이 스탠딩 컴퓨터 받침대라는 것이다. 설명서대로 책상 위에 이것을 올려놓고, 그 위에 컴퓨터를 올려놓아 내 키에 맞추면 되었다. 서서 해보니 사이즈는 좋은데, 약간 흔들흔들 대서 그도 마땅치 않았다. 


 다시 찾고 찾은 것이 한국식 네 다리의 작은 상을 사다가 네 다리를 책상 위에 고정시키고 그 위에 컴퓨터를 올려놓으니 딱! 이었다.


 이제부터는 서서 컴퓨터를 하라는 것이다. 의자도 아예 저 멀리 치워놓았다. 슈퍼마켓의 캐쉬어들이나 서서 일하는 은행원들처럼,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몸을 계속 움직이면서 컴퓨터를 하란다.


 나의 경우, 처음에 서서 30분 정도 해보니 허벅지부터 무릎 종아리가 아파서 앉고만 싶고 힘들었다. 점점 시간을 늘리고 계속 서서 허리를 움직이며, 엉덩이와 어깨운동, 기마자세로 예전에 코메디 이기동이나 이주일이 허벅지 흔들던 흉내도 내고, 팔도 흔들고 무릎도 구부렸다 폈다 등 온 몸을 움직이니 운동도 된다,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 십조, 그 이상의 대단한 효과라 할 수 있겠다. 집중력은 약간 떨어지는 것 같지만 나아지리라.


 스탠딩 컴퓨터 받침대 광고를 보니 하루 2시간 이상 서서 컴퓨터를 하면 점점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단단해진단다. 어깨를 펴고 아랫배 윗배를 집어넣고 엉덩이는 뒤로 빼고, 뒤 허리를 맘껏 앞으로 내밀어 옆에서 보면 S자를 비슷하게나마 만들 수 있었다. 


 친구가 나에게 실실 웃으면서 “무슨 S자야 70에”


“나이 70에 자세 S자 만들면 안 된다고 캐나다 헌법에 써있어? 왜 나이를 들먹거려? 나도 건강하고 몸매 좀 예뻐지고 싶어서 그러는데, 같이 해 보자고”


 서서 해보니 문제는 발바닥이다. 나이가 들면서 평발이 되니 어찌하오리까. 서서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건 다 아는 건강 상식, 평발이 되어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은 발바닥에서 불이 나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내 발바닥을 찍어 만든 신발 깔창을, 뒤 부분이 조금 올라온 실내용 슬리퍼 안에 넣어 신으니 안성맞춤이다. 깔창은 족궁을 올려 주는 기능 때문에 평발을 막아주고 덜 피곤한데 시간이 가면 점점 나아지겠지. 


 자세! 바른 자세! 척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든 병은 자세로부터 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바른 자세, 예쁘고 건강한 몸매야말로 나를 포함하여 많은 여성들의 로망이 아닌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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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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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0
기해년을 열며

  
 
 새해는 언제나 추울 때 맞아서인지 정신이 번쩍 나면서 맞게 된다. 어제와 오늘이 무엇이 다르랴마는, 어제는 작년이고 오늘은 새해라고 한다. 늘 하는 말로 지난해는 모두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들 한다. 아직도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에, 캐나다는 마리화나가 합법화 되었으니.


 캐나다한인문인협회의 회장님이셨던 이상묵 선생님께서 백혈병으로 10여 개월 동안 고생하시다가 타계하셨는데, 이상묵 선생님의 투병 중 거의 세상 마감하실 무렵에 하신 말씀 “또 하루가 간신히. ” 발을 동동 구르는 마음이었다.


 인터넷에서 보니, 한국의 이어령씨 딸 이민아씨는 몇 년 전 암투병중 병원에서 거의 가망이 없다는 말이 나왔는데도 “소명 있기에 행복하다”는 말을, 87세인 아버지 이어령씨는 현재 암으로 투병 중임에도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이 정말 예쁜 줄 알겠다. 암인걸 알고 나니 삶이 더 농밀해졌다.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등등,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놀랍지 않은가, 참으로 그 여유로운 마음을 전수받고 싶다.


 나는 지난해에 무엇을 하고자 소원했으며 얼마나 이루어 놓았는가? 글을 더 열심히 쓰겠다는 소원에 대체적으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다. 글 친구가 해 준 명언 “글은 지면에 내면서부터 늘어요.” 글을 써서 혼자 가지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지면에 내라는 것이다. 


 토론토에는 한글 주간지가 여럿 나오고 일간지도 두 군데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지면들이냐고, 물론 원고료를 주는 곳은 없지만, 지면을 준다는 것은 글쟁이들에게는 굉장한 행운이며 토론토 같은 곳이 없다고 열변을 토한다. 맞는 말이고, 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면에서 내 글을 다시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고 잘못된 곳이 그때서야 눈에 들어온다. 수필이란 형식이 자유로운 글 아닌가? 왜냐하면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정보 부족도 아쉽고 체험도 부족함이 늘 갈증 나게 한다. 


 기해년을 맞이하면서 내 주변 글 쓰는 분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새해엔 소원성취하세요! 큰 복 받으세요!. 덕담 끝에 새해의 소원들을 보고 받았다. 년 말에 결과를 보고 점수를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 


 A는 좋은 글을 써 보고 싶은 욕심에 책을 좀 많이 읽어야겠다고, B는 살림살이나 마음도 심플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살고 싶다. C는 돈 좀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막 나누어 주고 싶다. D는 글쓰기는 물론 책도 내고 싶고, 관절건강에 신경 써야겠다. 


E는 이름 있는 문학상에 응모하여 상을 타고 싶다. F는 글쓰기는 기본,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 G는 남편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고 글을 열심히 써야겠다. H는 역시 글쓰기, 건강하고 날씬해지고 싶다. I 의 놀랠 일은 대하소설 12권을 써 왔는데 올해는 마무리하여 한국 최고의 문학상에 응모해보겠다는 야심, 오 마이 갓! 무조건 화이팅! 


 서로서로 위로하며 용기 주고 아낌없는 칭찬에 박수까지. 글쟁이들은 달린다! 기해년 벽두부터.


 여기에서 우리들의 공통점은 인생 60부터 라는 것을 발견했다. 농익은 인생 후반기부터 글쓰기에 박차를 가한다는 점에서 의견들이 일치됨을 알았다는 말이다. 


 테이프를 끊는 자가 1등이지 열심히 했다고 다 상주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열심히 안 했나?


 기해년을 열면서 덕담과 희망을 나누는 영하의 날씨였지만, 발걸음 가벼운 푸근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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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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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취임식

 
 
 지난 금요일(2018. 12. 7) 저녁 7시, 광역토론토의 마캄 극장에서 마캄시 의원들의 취임식이 있어 참석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취임식이라니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수상의 취임식 같은 기분이 들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하기야 요즈음은 교회에서도 장로 취임식이란 말을 많이 들은 바이지만, 이제 초등학교의 학급 줄반장도 취임식이란 말을 하게 될지? 


 시의원들의 선서식은 거의 짧게 했지만, 골자는 자기의 임기 동안 절대로 돈을 먹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노골적인 표현에 박수를 보냈다. 거기 나온 새 시의원 12명 중에 따따따 영어 발음인 중국인이 3명이었고, 우리 한국인이 없다는 것에 속이 뒤틀렸다.


 기도도 모슬렘목사가 했으며 2시간 반에 걸쳐 거대한 취임식이 끝났다. 캐나다는 170여 국가로부터 온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 기독교 목사만이 기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캐나다는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캐나다 땅에서 한인 후손들이 이곳 주류사회에 들어가 활동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이민 1세들부터 캐나다 주류사회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캐나다 문화는 멜팅팟이라는 미국과는 다르다. 모자이크문화 속에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이 나라 주류사회에 도전하고, 야무진 꿈과 거대한 야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자기 주관을 뚜렷이 세우고 방향을 설정하여 정치 선배님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인맥도 쌓아야 할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자타가 공인하듯 어느 면에서도 대단한 민족이 아닌가. 


 오늘 마캄 시의원 취임식엔 5번 도전하여 당선된 분이 있다. 즉 20년 만에 빛을 보고 이번에는 연속 3번째 시의원을 하게 됐다고 박수소리가 크다. 


 밤늦게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토론토의 일간 신문들을 보니 다소 위로가 되는 소식이 있었다. 토론토 에토비코 예술고등학교 벽에 그려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 퇴치를 위해 한인 1.5세 강민서(9학년, 14세) 양의 노력으로, 예술학교 측은 페인트 시공업자를 불러 겨울방학 전에 일본의 전범기인 욱일기를 지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14세인 강민서 양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정신이 불같이 일어나 부모님은 물론 토론토의 총영사관이나 학교측에서도 협조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16세 유관순 언니가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서울 남대문 역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소리가 크게 들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도 한인타운에 있는 공립학교 로버트 F. 케네디 커뮤니티스쿨 체육관 외벽에 그려진 ‘욱일기’ 문양 벽화가 한인사회의 노력 끝에 지워진다고 하니 그 또한 반갑기 그지없다. 


 캐나다 오타와 출신 한인 2세로 미국에서 활약하는 영화배우 샌드라 오 (46세)가 2019년 1월 6일 미국 배벌리힐튼에서 열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사회를 코미디언 앤디 샘버그와 공동진행 한다는 소식이다. 샌드라 오는 한인은 물론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시상식 진행자가 된다니, 길쭉한 얼굴이 오늘은 왜 그리 예뻐 보이는지 그때 할 중계방송이 기대된다. 


 하면 된다. 저력을 보여야 한다. 언제까지나 향수에 젖은 이방인? 낯선 땅? 이라니 웬 말인가? 캐나다에서 살기로 작정하고 한국에서 이사 온 캐나다 시민권자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이곳에서 살고 이곳에서 묻힐 것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이상을 높여야 한다. 


 물론 조성준(온주 노인복지부 장관), 스탠 조(조성훈, 온주의원), 해럴드김(오로라 시의원) 등도 있지만, 더욱 분발해서 캐나다 수상에도 도전해야 함은 물론, 주인의식을 가지고 영역을 넓혀야 한다. 영어? 하면 된다. 서로 이끌어 주고 밀어주며 통큰 도전을 하자. 


 “캐나다 속 당당한 아시안 되라”도 멋진 말이지만, 캐나다 속 당당한 한국인이 많이 나와서 여기도 취임식! 저기도 취임식! 캐나다 주류사회 어디를 가도 한인이 있어야 한다는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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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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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천화(遷化)

 

내가 천화(遷化)라는 단어를 알기까지는 50여년이 걸렸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는 “웃지 않는 세 정승” 이라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 지금도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네. 들리네.


웃지 않는 세 정승 중, 첫 번째 정승 이야기만 하고자 한다. 능력 있고 인품이 좋은 한 정승이 있었는데, 전혀 웃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하루는 임금님이 “그대는 왜 웃지를 않는가?” 라고 물으시니 “저는 웃고 살 수가 없습니다.” 임금님은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있는가?” “예” 


“삼십여 년 전, 제가 결혼식을 마치고 색시 집에서 첫날밤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색시는 원삼 입고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 찍은 채 얌전히 앉아있는데. 제가 변소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 일어나 문지방을 넘으려 하자, 색시가 도포자락을 콱!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니 색시는 시치미를 딱 떼고, 얌전히 그렇게 앉아 있는 것입니다. 


또 다시 나가려고 하니 아까처럼 또 도포자락을 콱! 잡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다보니 또 그렇게 시침을 딱 떼고 얌전을 떨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 첫날밤도 안 지낸 새색시가 새신랑 도포자락을 잡아당기다니. 기가 막히고 정말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그냥 홱! 하고 나와서 제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자초지종을 부모님께 말씀 드리니 ‘첫날밤도 안 지낸 새색시가 발칙하구나.’ 하시며 다시 과거 준비에만 열중하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급제하고 결혼하여 삼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원님으로 이곳 저곳 발령을 받아 돌아다니다가, 마침 간 곳이 처음 결혼했던 그 고을이었기에 옛날 생각이 나서, 그 발칙한 새색시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집이 어디였던가? 하며 더듬더듬 찾아가보니 그때는 크고 좋았던 대궐 같은 기와집이 다 허물어지고, 문짝들도 다 덜렁덜렁 떨어질 듯 하여 귀신이라도 나올 양, 마당에는 무성한 잡초가 우거져 있고, 거미줄만 가득한 채 폐가요, 흉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이 집이 이리 되었는가? 생각하면서 그때 그 새색시가 앉아있던 방이 궁금하여 열려진 그 방 앞에 와서 들여다보니, 아니 이게 웬 일입니까? 결혼식 날 곱게 차려 입은 새색시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원삼 입고 족두리를 머리에 얹은 채 얌전히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저는 놀라서 방으로 들어가 엉겁결에 “색시야” 하며 만지려고 손을 대니 그 모습이 사그르르 삭아내려 한줌의 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가 막혔지만 한없이 그곳에 있을 수도 없고, 문지방을 넘어 나오다 보니 문지방에 작은 못 끝이 나와 있는 게 아닙니까? 아! 이 못 끝에 나의 도포자락이 걸렸었구나, 저는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아마도 색시는 그때 나간 신랑이 왜 안 돌아오나? 왜 아니오나? 하면서 저를 기다리다 지친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앉아있구나 깨달았습니다. 


아! 이 못 끝에 옷자락이 걸린 것을, 저는 색시가 제 도포자락을 붙잡고 앙큼을 떨었다는 좁은 소견에 멀쩡한 새색시를 굶어 죽게 하고, 그 집안을 폐가로 만든 경솔했던 저를, 저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웃지 않습니다, 웃을 수가 없습니다.” 


임금님은 “아! 그랬군요, 갸륵하고 훌륭한 정승이오.” 라고 하셨단다.


붉은 가을이 뚝뚝 떨어지는 어느 날, 우리 집에는 남편 친구 분들이 오셨는데,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각자 소감들을 발표하는 중, 한 분은 “천화하고 싶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천화가 뭐예요?” 


“죽었지만 형상은 있는 거지요, 건드리면 한줌의 재가 되는, 목탁을 두드리며 도를 닦던 고승들이 어느 날 법당에서, 혹은 산중 낙엽 속에서 천화하셨다고 하잖아요? 또 다른 말은 죽음의 흔적이 없는 것이지요.” 나는 웃지 않는 정승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천화냐고 물었다. 


“네, 그 새색시도 천화 한 것입니다” 아, 천화? 50여 년 전 아버지의 귀감이 되는 옛날이야기 중에, 새색시의 그 모습이 천화(遷化)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나로서는 신기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천화를 설명한 곳이 여럿 있었는데, 불교용어이며 속세말로는 자살이라는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뛰어내려 천화하고 싶다는 말은 자살하고 싶다는 말이라니 등골이 오싹!


“나이야! 가라!”가기만 하면 나이를 가라! 고 한다 하여 젊어진다는 우스갯소리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나이아가라 폭포인데, 그 곳에서 천화하고 싶었다니.  


경치가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의 악명 높은 자살다리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살방지그물을 설치했다. 토론토에도 블루어와 댄포스로 이어지는 프린스에드워드 다리(Prince Edward Viaduct Bridge 077)가, 한 때는 불명예스러운 자살 숫자가 높기로 세계에서 2위를 기록했었다. 


여러 해 전에 토론토 시에서 거금을 들여 자살방지 조명안전망(Luminous Veil)을 설치해서, 다리에서 떨어질 수 없도록 해 놓았고, 밤에 보면 색색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다리로 변해있음을 볼 수 있다. 


고민? 걱정거리가 무엇이냐? 하루 24시간 언제라도 전화하면 도와주겠다는 표지판이 여러 군데 붙어있다. 듣자마자 아름답게만 생각했던 그 천화라는 말이 자살이란다. 누구라도 한번쯤 천화를 꿈꾸어 보지 않았을까. 


그 동안 수 없는 천화 속에서 방황하며 고뇌하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천화로부터 자유로운가. 아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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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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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8
동기부여

 

 

 “죄송한데요, 뭣 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뭔데요?”


“내가 나이를 먹다 보니 핸드폰 기능을 알려줘도 어느 땐 잊어버려서 잘 못하는 때가 있어요. 간단한 것 같은데 이것 좀 도와주시면 고맙겠어요” 


“아 이거요? 이럴 때는 이쪽으로 밀고요, 또 여기에 이것이 숨어 있어요, 이렇게 밀고 여기서 시작하세요.” 


“어머나, 세상에 나도 이거 알았었는데. 까맣게 잊었네, 고마워요, 학생이세요?”


“네”


 핸드폰도 기능이 많아져서 다 사용하지도 못하는데 때로는 잘 되다가도 안 되는 때가 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계속하다가 뭐가 엉키면 더 문제일 것 같고, 애플스토어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그냥 가면 한없이 기다려야 하니 이런 간단한 문제는 한국에서 금방 온 듯한 학생한테 물어보면 딱 이다. 


 자주 가는 한국 식품점이나 식당에 가면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인 것 같은데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보면 꼭 아들 같고, 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되었어요?” 


“한 1년 돼가요”


“부모님은 토론토에서 사세요?”


“아뇨, 한국에 계세요”


“학생이라면서요?”


“네, 공부하러 왔는데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파트타임 일을 조금씩 하면서 이러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나는 혹이나 마음을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웃으면서 목소리를 소근소근 하게 “한국에서도 먼 캐나다까지 공부하러 와서 이 금쪽같은 시간을 이렇게 가게 뒷일 하면서 보내서야 말이 되겠어요? 캐나다에 올 때는 목표가 있었을 게 아닌가요? 그 목표가 무엇이었어요? 그 목표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신 차리고 그 목표를 생각해 봐요. 어쨌든 캐나다에 가면 무엇을 하고자 했던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동기유발을 시키기 위한 1차 방법이었다. 


“물리치료 쪽으로 센테니얼 칼리지 다니다 말았어요.”


“그러면 그 공부를 더해야겠네요?”


“글쎄요, 해야 할 텐데 뜻대로 안되네요.” 남의 얘기 하듯 한다.


“목표를 잊으면 안돼요. 어서 공부하여 칼리지 졸업은 물론, 거기에 관련된 자격증들을 몇 개정도 따 놓으세요. 능력은 자격증이 말해주는 거잖아요? 증이 있어야 해요, 증! 증! 잊지 말아요! 캐나다가 좋으면 캐나다에서 살 수 있는 길도 찾도록 하고요, 도와줄게요.”


 20여 년 전 일이다. 큰 딸이 대학 3학년인데 남자친구가 없었다. 남자친구 좀 새겨보라고 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예쁘고 상냥하고 애교도 많은데 남자친구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딸은 늘 나에게 하는 말, 엄마가 친구이고 애인이라서 시집 안가고 엄마랑 살겠다는 것이다. 이거 정상이 아니다. 큰일 났다. 주변에 보면 딸들 시집 못 보내서 30 - 40 세가 넘은 딸을 둔 엄마들이 잠 못 자고 난리들임을 보던 참이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아는 분에게 이 일을 말하니, 왜 엄마가 딸을 옆에 끼고 사느냐고 멀리 떠나 보내란다. 그러면 남자친구가 분명히 생긴다고. 어떻게 집을 떠나 따로 살게 하나? 그 당시 나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겁이 나고 걱정하며 고민 중에 마침 학교에서 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어머나 그거 참 좋은 프로그램이네 너도 가라, 딸에게 바람을 넣었다. 미술 공부는 이태리에 가서 해야지. 이태리가 미술의 본고장인데. 어머나! 이태리! 말만 들어도 설레는 이태리! 꿈에 그리던 이태리! 가보자! 가자! 


 부랴부랴 서둘러 이태리 피렌체로 떠나 보낸 1년 후, 토론토로 돌아 올 때는 백년가약을 맺은 남편감이 있었다. 멀리 떠나 보내라는 그 말씀, 생각해 보면 깜짝 놀랄 충격이었지만,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고 확실한 동기부여였다.


 딸을 결혼시키기 전에는 나를 떠나 살게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토론토로 돌아와 대학 졸업과 비슷한 시기에 결혼식을 하게 되니 딸애의 나이 방년 25세였다. 
 동기부여! 누군가를 자극하여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행동을 하게 하는 일, 젊은 학생으로 보이면 핸드폰 안 되는 것 물어 보면서, 무조건 붙잡고 동기유발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 공부하러 왔잖아요? 이래서는 안돼요. 어서 공부를 해야 해요. 희망했던 목표를 달성해야 하잖아요? 캐나다까지 와서 돈 조금 받으며 이런 허드렛일로 금쪽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말이 안돼요. 공부도 때가 있어요. 아무 때나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꽃도 피는 때가 있고 지는 때가 있잖아요?”


 몇 명이나 붙잡고 애타게 말을 했을까. 지난 십여 년 동안 나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으로 보이기만 하면 붙잡고 동기부여를 주고자 시도했었다.


 “아줌마, 왜 전화번호를 안 일러주셨어요? 아줌마 만나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찾았는지 아세요? 저 이번에 센테니얼 칼리지 졸업했고요, 자격증 두 개 땄고요, 또 딸 거예요, 저 공부한대로 물리치료 쪽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캐나다가 좋아요. 캐나다 시민권자 아가씨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아줌마, 고마워요, 제가 뭐를 해야 할지 망설이고 주저할 때,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주셔서 제 목표를 달성했고, 계속 발전시키고 있어요. 아줌마를 늘 생각해요. 정말 고마워요.”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나는 또 성취감을 느낀다.


“잘했다 잘했어” 감탄의 소리가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나왔다. 사실 나는 그 학생을 기억할 수가 없다. 누가 누군지 아나, 아마도 기십 명은 말해 주었을 테니까. 아무튼 내 아들처럼 기뻤다. 


대한의 아들이 공부하러 외국 땅에 와서 어영부영하다가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얼 해먹고 살겠단 말인가. 한평생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데. 동기부여를 해 주어야지.


 동기부여! 정말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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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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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4
은단 냄새 우리 아버지

 


 
 아버지한테서는 늘 은단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항상 은단을 드신 것은 독한 담배 냄새를 희석시키려고 그러셨으리라.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유난히 양 귀밑에서부터 턱까지 수염이 많았다. 그 수염을 구레나룻이라고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나를 예쁘다고 내 볼에 아버지의 얼굴을 비벼댈 때면 수염을 깎았어도, 어찌나 따가웠는지 아팠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수염을 못 깎으신 날은 아픈 사람 같아서 어린 시절이었을 때에도 마음이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수염을 말끔히 깎으신 후, 출근길의 아버지는 짙은 곤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매신걸 보면 '오늘도 활기찬 새날이 시작 되는구나!' 하는 가슴 뿌듯한 희망과 안정된 분위기의 우리 집이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가정의 중심인 아버지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모기나 벌레에 물려서 가려워 긁으면, 아버지는 늘 아버지의 침을 발라 주셨다. 침 속에는 가려움을 진정시켜주는 성분이 들어 있으니까 곧 좋아질 테니, 긁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이 그런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꽃 키우기를 좋아하셨다. 항상 난초 화분들을 손질하시고, 나이 드신 후에는 각종 난을 좋아하셔서, 난이 커가는 모습 속에 우리 사 남매를 생각하시며 위로를 받으신 것 같다. 


 아버지는 우리 사 남매의 호를 지어 주셨는데, 사군자의 매, 란, 국, 죽, 첫 자를 따서, 나의 호는 스스로 절제하며 강한 생명력을 지닌 외유내강의 전형이라 볼 수 있는 은은한 난초, 난(=란)의 향처럼 살라고 난은(蘭隱)이라고 지어주셨고, 오빠는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눈 속에 피는 매화처럼 강하게 살라고 매은(梅隱)이라 하셨고, 바로 밑의 남동생은 찬 서리에 피는 국화처럼 오상고절 하라고 국은(菊隱)이라 하셨고, 막내 남동생은 대나무처럼 비바람 폭풍에도 꺾이지 말라고 죽은(竹隱)이라 하시며 사 남매가 군자답게 살라고 하셨다. 


 또한 평생 붓글씨 쓰시는 것을 낙으로 삼으시어, 옆에서 먹을 갈아드리는 엄마와 함께 묵향에 사시었고, 붓글씨도 대전에서는 내노라 할만큼 달필이셔서 한문의 해서체로, 또는 행서체로, 초서체로 병풍 뒤에 붙이는 글로 수백 편을 쓰셨다. 아버지를 보듯 현재 가지고 있는 병풍 뒤에 붙일 글씨만 해도 열 편이 넘는다. 


 아버지 집의 벽에 걸린 족자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한문 붓글씨 행서로 쓰여 있는데, 해석하면 이렇다. 


 ‘부모가 책을 많이 보고 그 책들을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자식은 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어 자식에게 물려주면 자식은 그 돈을 지키지 못한다. 자식은 아주 어릴 적부터 교육 시키는 길 밖에는 없다.’ 라는 내용이다. 


 고기를 많이 잡아 주어도 그것은 얼마 못 간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교훈과 같은 위의 글을 아버지는 자식 교육의 좌우명으로 삼으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시면 “자, 아침 뉴-스 좀 들어보자,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 하시며 늘 라디오를 켜시곤 했다. 


TV가 나오고 나선 뉴스시간이 되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먼저 뉴스를 보셨다. 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뉴-스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사셨다. 


 또한 아버지는 자수성가 하신 분의 모범케이스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고, 항상 육사생도처럼 자세를 바르게 하셨다. 걸음걸이도 반듯 하셨고, 식사하실 때도 반듯하게 앉으셔서 하시고, 주무실 때도 주로 반듯하게 누워서 주무셨다. 


 아버지는 노력 형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이 아니라, 그 빈도에 의해서다.” 라는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사셨다. 젊었을 때 밤잠 안자고 공부하여 행정고시에 합격 사무관이 되셨고, 일생을 늘 공부하는데 시간을 쓰셨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버지를 조금은 닮은 것 같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 배우고 익히면 때때로 그 아니 즐거운가? 아버지는 이 말을 좋아하셨고, 배우는 과정을 즐기셨으며 행복해 하셨다.


 그런 것을 보고 자라면서 아버지의 교훈들이 나의 글쓰기를 통해 늘 일깨우게 되니 글쓰기가 결국 오늘의 나를 성장시켰다고 자부한다. 늘 망설이고 나약했던 나였지만, 나의 세 아이들에게는 사회적 관계나 정신적 결핍에서 어긋나는 부분들을 채우고 바로 세우며 강하게 만드는 것이 내 삶의 목표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늘 꿈이 무엇이냐? 무엇이 되고 싶으냐? 고 물으셨을 때 나는 주저하고 망설이며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잘 몰랐다. 그냥 아픈 사람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했고, 배고픈 사람 밥 좀 주고 싶다, 라는 초라하고 부끄러운 답변을 했었다. 그럴 때 아버지는 “그 정신을 네 가슴에 새겨라” 하셨고 “새겨라, 새겨라” 는 그 말씀을 저승에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시며 지금도 하고 계신 듯하다. 


 “성자야, 자존심 꼿꼿하게 세우며 굳세고 올바르고 당당하게 살아라, 자존심이 네 목숨이다.” 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단호한 음성이 늘 귓전에 걸려있다. 아버지는 혹독하게 가난한 한국의 그 시절을 어떻게 사셨는가.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밴 분이셨다. 박봉의 국가 공무원 생활에도 저축을 하셨고, 꽁보리밥에 소금물을 찍어 먹으면서 문전옥답을 사들이셨다. 


 귀감, 구로, 무릇, 결자해지, 자업자득, 사필귀정, 근묵자흑, 귀소본능, 회자정리, 흠향, 근검절약, 불가근불가원이라, 생자필사 유형자필멸이라,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 등 이런 말들을 즐기고 귀히 쓰셨다. 


사람은 이름 석자 얼굴 한 뼘으로 산다. 분수에 맞게 살아라. 만원이 있으면 천원만 있는 것처럼 써라. 사람은 입이 무거워야 하느니라. 


아버지를 보며 강인함과 단호함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말들이다.


 한국에 갔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는데 “어려운 남을 위해 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다시 태어난다면 남을 위해 살아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 외국 땅에 나와 살고, 나이 들면서 더욱더 고국을 생각하게 되며, 고향을 더 그리워하게 됨은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가 그곳에 사셨고 그 곳에 묻히셨기 때문일 게다.


 단풍바람이 산산이 불어오는 오늘따라 선명하게 다가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향기로운 은단 냄새가 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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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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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베엘의 애기

  
 
 “헬렌! 나를 따라와 봐요” 다이안은 조심스럽게 살살 걷는 걸음으로 앞장선다. 마구간으로 들어서면서 “베엘이 오늘 새벽에 수놈 한 마리를 낳았어요.”


“어머나, 우리 베엘이 새끼를 낳았군요.” 힘이 없어 보이는 베엘은 눈만 꿈먹 꿈먹 하면서 선채로 제 새끼를 보면서 또 나를 바라본다. 아마도 “헬렌 왔어요? 나 죽겠어요.”하는 눈빛이다. 


새끼를 낳았으니 얼마나 힘 들었을까? 새끼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엄마 베엘의 젖을 머리로 툭툭 받아 치면서 젖을 빨아 먹고 좋아라 한다. 세상 물정을 모름으로. 


 에미는 새끼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이 살아가야 할 방법들을 가르치려 한다. 이것은 먹지 말고 이것은 먹고, 거기는 가지 말고 이것은 이렇게 하고, 베엘은 순간순간 내 눈을 쳐다본다. 


 나도 말을 쳐다보며 안부의 손 인사를 한다. “알았어, 너 애기 낳았으니 회복할 때까지 너 안탄다, 걱정 마라” 


 모처럼만에 다시 찾은 마장에 들어서니, 다이안(말 주인)은 말이 새끼를 낳았다고, 밤새 잠도 못 잤다면서 싱글벙글 좋아한다.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걷는다고 한다. 내가 보았을 때는 태어난 지 5-6시간 정도 지났다는데 살살 뛰어다니기도 한다. 세상에.


 짐승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은 낳자마자 비척비척 몇 번만 하면 걸어 다니다가 한 시간만 지나면 뛰기도 한다니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된다. 


 다이안은 베엘이 순산했다고 만면에 웃음꽃이다. 말이 새끼를 낳을 때쯤이면 주인은 잠을 잘 수 없단다. 왜냐하면 말이 순산하면 좋지만 난산이 되면 새끼가 잘 나오도록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어야 한단다. 


남편과 함께 웃옷을 다 벗어버리고 맨 두 팔로 말 자궁에 손을 뻗쳐 넣어 새끼를 잡아 빼야 하기 때문이다. 수의사를 부르기엔 말들이 많아 늘 새끼를 낳으니 다이안 내외는 해산관 노릇이 수의사보다도 더 노련하단다.


 말은 풀 뜯어 먹고, 마른 밀대 짚을 먹지만 근육이 아주 단단하다. 말은 또 당근을 좋아한다. 말갈기 휘날리며 숲 속이나 벌판을 달리다가 당근 밭이 있으면 방향을 확 틀어 당근 밭에 들어간다. 커다란 코를 벌름거리며 당근을 먹는 것을 보면 너무 맛있어 한다. 


 마구간은 물론 말들이 있는 곳엔 여기 저기 물통이 있다. 히히힝! 거리며 물도 많이 마시니 소변양도 엄청나다. 쇠파리들 때문에 커다란 파리채로 말 몸에 붙은 쇠파리 잡아주는 일은 필수다. 


 다이안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 키우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을 수없이 보아 왔고, 지금도 말과 함께 살아가니 그녀의 일생은 자녀들보다도 말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이다. 


 마장에 가면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을 지키는 개가 여러 마리 있고, 몇 마리의 염소, 수십 마리의 닭이 있는데 수탉도 있고 병아리들도 있다. 잔디밭이나 마당에 그냥 놓아먹인다. 


순수 우리말로 하면 노지 닭이고, 계란은 병아리가 되는 유정란이다. 노른자가 노랗다 못해 주황색을 띤 그 계란은 계란향기도 진하지만 정말 고소하다. 


 말에게서는 말이 나오고 사람에게서는 사람이 나온다. 내가 보는 갓 태어난 망아지가 저리도 귀여운데, 베엘도 제 새끼를 귀여워하면서 저것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며, 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것 같다. 


 생명이란 신기하고 신비롭고 참으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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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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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은장도(銀粧刀)

 
 
 “당신들이 여기 직원이요? 왜 여기로 출근을 합니까? 당장 나가요”


 지금으로부터 한 40여 년 전 일이다. 친정아버지께서 충남도교육위원회 재무과장으로 계실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버지가 재무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출근하여 집무를 시작할 무렵, 직원이 아닌 남자 서너 사람이 손님이 오면 기다리는 의자에 죽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종일 며칠 째. 사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단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아버지는 시침을 딱 떼고 “당신들은 무슨 볼 일로 오셨소?” 그 분들은 깜짝 놀라는 듯.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눈빛이었단다. 


아버지는 단호한 어조로 “여기가 당신들 직장이요? 아니잖소, 당신들의 직장으로 출근하시오” 


그 말에 서로들 눈치를 보며 꼼짝도 안 하더란다. 


“당장 나가시오, 당장” 호통을 치니 슬슬 일어나며 하는 말들


“최 과장! 두고 봅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까” 재수없다는 듯 눈을 옆으로 돌리는 그 사람들은 신문기자들 이었단다. 


 그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충청일보, 대전일보 등에 소속된 기자들이었다는데, 공공기관에 와서 죽치고 앉아 뭐 기사거리 없나? 밥 얻어먹고, 커피 얻어먹고, 담배 얻어 피고, 그곳으로 아예 출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직원이 말하기를 감히 그들을 나가라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면서, 혹시라도 뭐 잘못을 하면 기사가 크게 나갈까 봐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고 했다. 


거기에다 “과장님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라고 하며 말리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직원들을 향하여 왜 당당하지 못하고 벌벌 기고 사느냐고 야단쳤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아주 나쁜 버르장머리로 그들을 키워주었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면서, 이래가지고 부정부패를 어찌 척결하겠느냐고, 나부터 목을 대고 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통분하며 역설하셨다고 했다. 


 한국의 신문 기자들이 다 그렇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 당시 그 곳의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니,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 없기를 바란다. 


 공무원인 직원들도 기자들 밥 사주고 커피사주고 하는 돈들은 어떻게 해서 쓰는가? 그 자체부터가 부정부패 아닌가? 잘못 쓰고 떼어먹다가 걸리면, 직장 떨어지고 퇴직금 못 받고 가문에 망신당하는 일인데, 목숨 걸고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었다.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는 박봉의 불쌍한 공무원들이지만, 공과 사를 왜? 분명히 판단 못하느냐고, 일전이라도 공금은 공금이니 공금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며, 사적으로 일전이라도 썼다면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정직하면 당당하다는 말씀으로 우리 사 남매를 교육시키시며, 비굴하거나 비겁하게 살지 말라고 하셨다. 검소에 검소를 더하고, 절약에 절약을 더 하면서 내 비록 월급이 적고 가난하여 때로는 꽁보리밥에 소금물을 찍어 먹고 살았을지언정,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너희들도 정직하게 사는 길이 옳은 길이고, 자신과 하늘 앞에 떳떳한 일이니 당당하게 살라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 아니고, 옳게 사는 것이 목적이며 당연히 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고 가르치셨다. 공금이든 남의 돈이든 몇 푼 떼어먹으면, 그게 그리 기분 좋고 잘 사는 길이냐고, 하루를 살더라도 당당하게 살다가 죽으라고 하셨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면 자결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잘 하려다가 잘못 할 수도 있다. 잘못했으면 빨리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무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아버지는 재무과장 임기를 당당히 마치심은 물론, 다른 과로 옮기시며 42년 오직 한 길 대한민국 국가 공무원 사무관으로 일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셨다. 정직하면 당당하게 산다는 것을 삶의 좌우명 1번으로 삼으셨다. 나는 이런 우리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자랑하는 바이다. 


 자식이 불의를 행했다고 자결하라는 부모가 있는가? 안동 김씨 나의 친 할머니도 처녀 시절에 은장도를 대물림으로 물려주시며, 뭇 사내가 달려 들어 목숨인 정조를 잃었다면 이 칼로 자결하라고 하셨다. 


 아! 어찌 하오리까, 은장도는 지금도 가지고 있으면서 이혼하고 재혼까지 한 나는 왜 이승에서 얼쩡거리고 있나? 저 세상으로 가신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클로스 업 된다. 저승에 가서 우리 할머니를 만나면 삼십육계를 해야 하나? 


은장도를 내밀면 할머니는 당연히 내 목을 칠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해 놓을 것인가? 세상 떠날 때 은장도는 꼭 쥐고 가야 할 것인가? 


 오호 통재라, 나는 부족한 사람. 이 글을 쓰면서도 이(이빨) 부딪치는 소리에 부들부들 살이 떨린다. 


 아 우리 아버지! 최자 익자 원자!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정직하게 살라고, 그래야 당당하다고,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웅변하시는 그 음성이 귓전을 때린다. 아버지의 그런 피가 내 속에서 콸콸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늘 소름 끼치도록 감지된다. (2018.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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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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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1
내가 찾던 인연(4)

 
 
 교통사고 직후, 내가 차 사고를 낸 로버트 입장이라면 차 뒤 번호판과 면허증을 보자 하며 사진 찍을 때 오히려 살살 웃으며 부드러운 말로, “한 번 더 찍어, 잘 안 나올 수도 있잖아? 사진 찍는데 돈 들어가니? 세금 내니? 그리고 걱정 마!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고쳐 줄게, 렌트카 해줄게, 어쩌겠어, 미안해, 내가 일부러 그런 것 아니잖아, 걱정 말아”라는 소리를 적어도 다섯 번은 했을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면 고쳐줘야지 별수 있나, 돈 없으면 꾸어서라도 해 주어야만 하는 일, 내가 돈 내는 사람인데 잘못했어도 당당했을 나.


 로버트는 순한 양이 덜미를 잡힌 듯 길가 보도블록에 앉아 미소를 살짝 띠었지만, 땅 쪽으로 눈을 내려 뜨고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돈이 얼마나 나올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을 것이다. 


 남편이 와서 로버트와 악수하며 로버트의 등을 다독다독 “너무 신경 쓰지 마, 차 있으면 다 그런 거잖아”, 나 보고는 “다친 데는 없어? 몸은 괜찮아?”, 괜찮다고 하니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란다. 다 그런 거라면서.


 나는 얼핏 보았다. 남편이 로버트와 악수할 때, 로버트에게 눈을 찡긋 찡긋 하는 것을. 거기에는 ‘여자는 다 그렇잖아, 신경 쓰지 마’, 나는 그 의미를 안다. 그러나 그건 못 본 척 무시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 사태가 역전될까 봐.


 도망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내가 네 차 번호와 면허증을 몇 번씩이나 인증 샷! 너도 봤지? 남의 차를 받아 사고를 낸 너, 꼼짝 말고 내 차 고쳐 놔! 하는 모습을 은근히 암시했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역전 돼 봐야, 3300불. 네 잘못으로 내차 망가뜨렸다고 요샛말로 갑질을 한 나, 로버트의 그 심란했던 장면이 내 눈에 늘 걸려 있어서 나는 고통스럽다. 


 로버트와 눈이 마주칠 때면, 교통사고 나서 찰칵 찰칵 소리 내어 사진 찍던 일이 죄의식으로 다가와 나를 스스로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가 요리한 비후스튜를 그렇게 맛있게 많이 먹은 것은 뭐람? 나도 참 앞뒤가 잘 안 맞는 여자다. 


 사람 볼 줄 몰라, 로버트한테는 안 당하겠다고 내심 ‘나한테 딱 걸려 재수 없지? 할 수 없다. 잽싸게 도망가지 못한 너, 착한 결과다’ 하면서.


 지난번에는 어느 프라자에 차를 파킹해 놨는데, 어느 차가 내 차 운전석 옆 차문과 앞쪽 뒤쪽을 걸쳐 확 받아 긁어 놓았다. 누구 차가 그랬는지? 메모쪽지도 안 보이고 차 어디에 뭐라고 써 놓은 것도 없고, 알 수가 있나? 열 받아 뚜껑이 확 열렸다.


 두리번거리며 한 30여분 기다렸지만 내 차를 받고 도망간 차는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차 긁힌 것을 보니 빨간색이었다. 빨간색 차 앞 쪽으로 내 차 짙은 쥐색이 묻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보기만 해봐라. 그때는.  


 속으로 내 차 받고 도망간 인간에게 육두문자를 엄청 날렸다. 그때 변 밟은 심정으로 바디샵에 내 돈 천불을 갖다 바치고 고쳤다,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차 사고 내서 3300불 정도는 다 잊어버렸다는 듯, 로버트는 우리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며 항상 웃으면서 우리보고 아무 때나 오라고 한다. 한 시간 전에만 전화하고 오면 맛있는 것 해준다고, 차 고쳐주고 때때로 음식 대접까지 해주는 로버트는 무슨 마음일까? 전생에 무엇이었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오는 걸까? 이 무슨 인연인가.


“Hi! Mr judge!, Hi! Helen! 언제든지 놀러 와!” 


 물론 우리가 아들처럼 생각하고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것을 로버트는 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역지사지로 도리질을 하는 내 머리는 스스로 계속 질질거리며 밀리는 기분이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마침표를 찍자. 찍었다 하면 나도 칼같이 마침표를 찍는 성격이다. 


 남편은 심심하면 와인 한 병 가지고 로버트네 가서 놀다 온다. 남편이 나보다 더 친해진 것을 보니 야릇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낸 차 사고로 남편에게는 아들 같은 친구가 생기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느 날은 닭을 아주 푹 고듯이 해서 닭요리를 했다는데 남편은 아주 맛있게 많이도 먹었다고 한다. ‘남자가 어쩜 요리도 맛깔스럽게 잘해! 한국식 비스므리 하게…’


 우리의 핸드폰이 뭐가 잘 안 되던지, 모르면 무조건 로버트한테로 간다. 로버트는 핸드폰의 안 되는 것 기능부터 설명하며, 이럴 땐 이렇게 하라고 자상하게 일러준다. TV의 뭐가 잘 안되면 우리 집으로 로버트를 부른다. 우리에겐 로버트가 착한 자식처럼 딱 안성맞춤이다. 


내가 찾던 인연인가.  


 로버트는 요즈음 외모가 상큼하다. 머리도 짧게 깎고, 수염도 싹 밀어서 아주 핸썸 해졌다. 늘 깨끗이 빨래한 옷으로 입고, 집도 정리정돈을 아주 깔끔하게 해 놓고 산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큐바 다녀오면서, 큐바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 있는 작은 지갑과 큐바 시가 한 개를 선물로 준다. 돈으로 치면 몇 푼 되나? 


선물을 만져 보며 그 마음이 갸륵하여 나는 또 감동 받는다. 걸 후렌드 라는 브라질 여자와 결혼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어 가는지. 잘 되어 가니? 자꾸만 물어 보기도 너무 참견하는 것 같고, 명목을 만들어라. 결혼식을 한다면 앞장서서 도와줄 것이다. 


 내가 수필집을 냈다고 책 표지를 사진 찍어 전화 메시지로 보냈다. 너를 만난 인연을 글로 썼다 하니, 환하게 웃는 얼굴로 축하한다며 자기도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영어로 번역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말로 쓴 그 글들을 못 읽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201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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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j
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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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내가 찾던 인연(3)

 


내가 찾던 인연 1편과 2편을 썼고, 이것은 3편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에서도 요즈음 효자란 보기 드문 일인데, 로버트는 참 효자라는 생각이 든다. 


차 사고 나기 직전 작년 봄, 큐바에서 아버지가 오셔서 3개월 계시다 가셨고, 그 후 큐바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3개월 계시다 가셨다. 왜 따로 따로 오셨다 가셨느냐고 하니 그분들은 옛날에 이혼했기 때문에 마주치기가 거북해서 라고 했다. 로버트는 작년 크리스마스 연휴 때 큐바 부모님께 또 다녀왔다.


올해 2018년도 7월 3일에 아버지가 또 오신단다. 로버트가 비행기표도 다 해드리고 모든 경비는 로버트가 댄단다. 효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오랜만에 남편이 로버트에게 전화를 했단다. 오늘 토요일 아침식사 함께 하자 하니 오케이! 하더라는 것이다. 그 날 아침, 로버트와 그의 아들 다니엘과 로버트의 어머니, 우리 내외 하여 5명은 지난번 로버트와 갔던 Valley field 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로버트의 엄마는 64세로 신장 암 말기라는데, 여러 해 동안 고생해서 그런지 얼굴이 나이보다 한 20년은 더 들어 보이는 듯, 저승 문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근력이란 하나도 없이 살짝 웃을 때 보니 위 어금니가 양쪽으로 숭숭 빠져 있었다. 틀니라도 해 넣어야지 저렇게 그냥 두면 어느 날 이빨들이 우수수 다 빠져버릴 텐데 어쩌나.


로버트는 자기 어머니를 깊은 애정 어린 안타까운 눈으로 본다. 어느 날 로버트의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가셨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쪽이 허전해지면서 눈물 젖은 로버트의 눈이 오버랩 되는 것이었다. 로버트 엄마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로버트 때문에.


로버트의 열쇠고리를 보니 우리와 같이 노란색의 “Fit 4 Less” 라는 텍이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장소로 운동하러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옆에 No Frill 이라는 저렴한 수퍼마켓도 있어서 그곳에서 그로서리 샤핑을 한다는 것이었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즐겨 먹는 쟈니스 햄버거도 가끔 즐긴다는 것이었다. 값도 저렴하고 크고 맛있다고, 우리가 다니는 싼 중국 수퍼마켓 Hong Tai, walmart, Foodbasics 등에 간다고 했다.


로버트 하나에 몇 사람이 매달려 있나? 로버트 아버지, 어머니, 아들, 이모, 걸 후렌드, 걸 후렌드 아들 등. 검소하게 살면서도 부모에게는 효도, 모두에게 베푸는 알뜰쟁이 로버트! 그래서 애틋한 정이 더 간다.


지난번 로버트 엄마가 서투른 영어로 한국화장품이 최고라는 말을 했다. 이제는 한국화장품이 품질도 좋아지고 세계적으로 알려지다 보니 큐바 사람들도 한국화장품 이야길 하는가 보다.


한국화장품 라네즈 한 셋트를 선물로 주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세수한 다음에 첫 번째로 스킨로션을 바르고 두 번째는 밀크로션을, 셋째는 에센스를, 4번째는 영양크림을 바르는 것이라고, 순서대로 번호를 써 붙여 보여주니, 그대로 해 보겠다며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언어나 풍습이 달라서 그렇지 인지상정이라고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대견하다는 듯, 손자를 보면서도 이 귀한 내 손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 모습이 어쩌면 그들도 우리네와 똑같은가.


로버트 엄마가 큐바로 간 후, 로버트는 우리 보고 맛있는 것 해준다고 오란다. 비후스튜를 해놓고 샐러드와 밥도 준비했다, 남자가, 그것도 교통사고를 내서 우리 차 고쳐 준 남자가 음식 해놓았다고 먹으러 오라고 한다고 해서 먹으러 가는 나는 도대체 어떤 여자인가?


비후스튜가 어찌나 맛있는지 두 그릇을 먹었다. 남편은 거의 세 그릇을, 세상에 그 음식이 우리 입에 딱 맞았다. 로버트는 우릴 보고 뭐라 할까? 너희들은 이런 음식 못 먹어 봤니? 몇 끼를 굶고 왔니? 그렇게 생각했을까? 배가 터지면서도 입으로는 계속 들어가는데 이상하게도 꿀맛이었다.


왜 그리 꿀맛이었을까, 로버트는 우리가 잘 먹어서 너무 좋다며 신이 났다.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비후스튜를 요리했던 두껍고 큰 냄비를 들고 와서 긁어서 까지 준다. 


“맛있어? 또 해 줄게” 오마이 갓! 음식을 먹으면서도 로버트의 눈을 마주치기가 좀 부끄럽고 당당치 못함을 나 스스로 느꼈다. 


남자가 해주는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차 사고 났을 때, 내가 로버트의 차 뒤쪽 번호판과 그의 운전면허증을 보자 하며, 내 핸드폰 카메라로 그것도 찰칵 찰칵 소리를 내면서, 혹시나 잘못 찍을 수도 있지 않겠어? 라는 듯, 보란 듯이 사진을 몇 번씩 찍어댈 때, 로버트는 길가 보도블럭에 앉아 살짝 미소의 얼굴로 죄인이 된 양 눈은 땅 쪽을 비스듬히 보고 있었다.


사고로 피해를 입은 쪽에게 미안한 마음인지 살짝 미소를 띠었지만, 심난했던 로버트의 얼굴을 생각하면 약자에게 오만 방자했던 행동이 정말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 나의 부족함이 이런 데서 드러난다.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인데, 고의로 엄청난 죄를 지은 것처럼 간주해 버리면서, 혹시라도 이 사고를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뒤집을 까봐. 라는 옹색한 변명을 나 자신에게 하면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지금도 가시질 않는다. 아니 영원히 가시질 않을 지도 모른다. 로버트는 그때 했던 나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묻지도 않았고 물을 수도 없는 질문이지만, 아마도 로버트는 차 고쳐주었으면 그 일은 이미 끝난 일이고, 그 일을 인연으로 주거니 받거니 서로 잘 지내고 있어서 행복해요,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답을 알고 있으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저 멀리서 뭐하고 있는 건가? 마음속에서 혼자 장구치고 북 친다.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아무튼 물심양면으로 더 잘해 주어야지.


차 사고가 나더라도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교훈을 삼는다. 4편을 기대 하시라! (201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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