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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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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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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통쾌한 추억

 
 
 “이 자식이 누구한테 그것들이라니, 네 눈엔 그것들, 그것들로 보이냐?”


 “아니 최 과장, 최 과장 왜 이러셔?”


 최자 익자 원자는 나의 친정아버지 성함이다. 충남 보령이 고향이고 평생 공무원으로 사셨는데, 40세가 넘어 대전의 충남도교육위원회에 문정과장, 재무과장, 사회체육과장으로 역임하시다가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대전여고 서무과장으로 가 계실 때 있었던 일화이다.


필자도 이 글을 써 보려니 가슴이 쾅쾅대기 시작함을 억누를 수가 없다. 대전여고라 함은 충남에서는 명문여고로 꼽는다. 어느 날, 대전여고 교장이 선생들과 대화 중에 뒤로 아버지가 지나다가 언뜻 들으니


“서무과 그것들이. ” 


아버지는 ‘내가 잘못 들었나?’ 


“그것들 말여” 아버지는 확실히 들으셨다는 것이다.


다시 또 


“서무과 그것들이. ” 교장의 말이다. 


아버지는 홱 돌아서서 교장 멱살을 잡아 휘둘러 바닥에 내리쳐, 구둣발로 교장 모가지를 지근지근 밟아 꼼짝 못하게 하면서 


“이 자식이 누구한테 그것들이라니, 네 눈엔 그것들로 보이냐?”


교장이


“아니 최 과장, 최 과장 왜 이러셔?” 


“왜 이러냐고? 이 자식이” 


주변에서 선생들과 서무과 직원들이 나와서 말리고 난리가 난 것을 상상해 보시라.


“최 과장 다시는 안 그럴게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교장 모가지는 우리 아버지의 구둣발에 밟힌 채 벌렁 누운 상태로 두 손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해서, 아버지가 교장 목에서 발을 떼고, 서무실로 교장을 불러


“이리 앉으시오, 교장 당신은 나와 서무과 직원들 알기를 그것들로 밖에는 안 보이시오? 당신과 선생들 월급을 누가 주는데, 학교 건물과 땅, 학교 재산을 누가 지키고 관리하는데, 어따 대고 그것들이라고? 우리가 일선에서 선생님들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촉각을 세워 뒤에서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번에도 수 십 년 전에 잃어버렸던 학교 땅도 찾아내어 등기 새로 하지 않았소? 학생들 책상 다리 부서진 것에서부터 유리창 깨어진 것 등, 문서실, 방송실, 가사실, 과학실, 체육관 운동 기구 등 학교 재산, 살림살이 신경 쓰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늘, 당신 교장 맞소? 어따 대고 이것들 이라니” 


“아이구 최 과장님,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그렇게 말 안 하겠습니다” 두 무릎 붙이고 고개 숙여 두 손 싹싹 빌었다는 것이다. 단번에 교장 버르장머리를 싹 고쳤다는 말이렸다.  


그 일이 있은 후, 1년이 지나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었다. 보통으로 보면 학교 서무과장 정년퇴임식에 운동장에 전체 학생들 모아 놓고 조회 끝에 정년퇴직 하신다는 인사 정도 하는 건 보았어도, 학교에서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축하하는 행사를 나는 본 일이 없다. 


 그런데, 교장이 앞장서서 행사를 주관하여 대학 입시 공부하는 3학년과 2학년 여고생들에게 일부는 한복을 입고오라 하여 한 사람씩 나와서 아버지께 꽃다발을 증정하고, 연습한 합창들을 몇 곡 하더니, 학교 측에서 준비한 큰 화환들과 그 동안에 학교를 위하여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각 선생님들의 정년퇴임 축하 순서가 길기도 했다. 


아무리 우리 아버지지만, 서무과장님 정년퇴임식이 성대하기도 해라, 고개만 갸우뚱 그때 우리 가족들은 전혀 몰랐다. 그것들 이라고 했다가 서무과장의 구둣발에 죽을 뻔 했던 교장의 긴 축사는 말해 무엇 하리. 


 대전여고 서무과장 최익원 씨의 정년퇴임식에 학생들까지 동원하여 행사를 크게 치렀다는 말이 그 다음 날 대전의 학교마다 쫙 퍼짐. 이 말은 아버지께서 정년퇴직을 하신 후, 1년인가 지나서 들은 이야기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씀을 그 즉시 하시지도 않았다. 입이 무거운 우리 아버지.


어찌 그 말을 참으셨을까? 나 같으면 그 일이 있었던 날 퇴근 하면서 했을 텐데. 아버지는 20살 전후로 그 옛날 왜정시대에 유도 3단 자격을 땄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당시 유도를 하시다가 어깨뼈가 부러져 여러 달 동안 깁스를 하고 고생을 했었다는 얘기도 나 고등학교 때인가 들었었다. 


 “아버지, 그렇다고 선생님들과 서무과 직원들 다 보는 데서 망신 주고, 발로 교장 목을 지근지근 밟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내가 죽게야 안 허지, 그 교장이 원래 건들건들 해서 망신 좀 주어야 하고, 말을 그 따위로 해서 언젠가는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려고 벼르고 있었지, 젊어서 유도해 가지고 늙어서 한번 써 먹었다” 


 아! 우리 아버지, 최자 익자 원자! 끝내 주시는 분! 내가 존경하는 이유다. 아버지는 원래 말이 없으시고, 점잖기가 대전에서 2등은 아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바위’라는 닉네임으로 통했다. 붓글씨도 대전에서 내노라 할만큼 달필이시며, 평생 테니스를 즐기셨다.


 한국의 그 시대를 사신 분들은 거의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셨지만, 아버지 역시 퍽이나 힘들게 사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배추를 묶어 여러 번이나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서 배추 판돈으로 아버지 운동화를 사주셨는데, 아버지는 새 운동화를 아끼느라 사람들이 볼 때는 운동화가 닳을까 봐 신고서 살살 걸었고, 사람들이 없을 때는 운동화를 벗어서 손에 들고 맨발로 걸었다고 하셨다. 그 운동화를 몇 번 신지도 않았는데, 학교에서 누가 훔쳐갔다 한다. 


 맨발로 집에 온 어린 아버지가 엉엉 울고 있으니, 할머니가 또 배추 팔아서 사 줄 테니 울지 말라고 달래셨다 한다. 그 애도 신발이 없는 애인가 보구나, 하시면서 할머니도 울고 아버지도 울고. 학교에서 배가 고프면 우물의 펌프로 가서 펌프질을 여러 번 한 후에 깨끗한 물줄기에 얼른 입을 대고 물로 배 채우기를 수없이. 아 지긋지긋한 가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엉엉 운다. 


 그런 나의 아버지가 42년 국가 공무원으로 연금이 생각보다 넉넉하게 나오고, 평생 이를 악물고 근검 절약한 결과 자식들한테 의존하지 않고도, 내 먹고 살 것이 충분하시다며 80 넘어 수(壽)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80을 넘기지 못하시고 79세로 17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아버지의 대전여고 교장 사건? 을 생각할 때마다 다이돌핀이 콸콸 나온다. 어릴 적 가난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 어깨가 떡 벌어지신 유도 3단 우리 아버지, 내가 그 분의 딸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당당하게 한다. 


 밤하늘의 은하수, 보석처럼 콕 박힌 크고 찬란한 저 별, 저 별은 우리 아버지 별. 역시 우리 아버지 최자 익자 원자는 내 가슴속에 영원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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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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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관심

 


 
 어느 당을 찍어라, 누구를 찍어라, 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투표를 했느냐? 안 했으면 어서 하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한 것뿐이다. 오늘 2018. 6. 7일.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총선에 내 주변의 사람들 21명에게 카톡 메시지로, 혹은 전화로 나 나름대로 설문조사를 해 보았다. 그냥 해보고 싶기 때문임으로.


사람이 어떻다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옳고 그름의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다.


관심! 관심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온타리오 주 총선에 대하여. 캐나다 땅에 살면서 그것도 시민권자로 법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여 세금 내고 의무를 다하며 사는데, 권리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하는 말이다.


 투표하셨어요? 몇 시간 밖에 안 남았어요, 안 하셨으면 어서 하셔야지요. 9시까지 예요. 그 말도 못하나. 


바빠요,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요. 그게 뭐 저는 솔직히 관심이 없어서 안 해요. 


21 명 중에 나온 6명의 답변이다. 3명은 시민권자가 아니라서 못했다고 했다. 신민당(NDP)을 찍은 사람은 3명이었고, 보수당(PC)을 찍은 사람은 9명 이었다. 


 캐나다 정치에 깊이 들어가서 왈가왈부 하자는 게 아니다.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정치를 알면 뭘 얼마나 알겠는가. 내가 아는바 사실 윌로우데일에 산다면 우리 한국인인 스탠 조를, 스카보로 쪽에 산다면 조성준씨를, 사는 지역이 이곳이 아니라면 보수당원에게 한 표 찍으라고 하는 마음에서였다.


 오늘 6월 7일은 케네디언으로 권리 행사를 하는 결정적인 날인데, 한 표 행사하면 가슴 뿌듯하지 않은가? 본인은 안다. 나도 캐나다의 시민권자로서 거룩한 한 표를 행사했다는 걸.


 이번 온타리오 주 총선에 한인 후보자로 나이 드신 조성준, 젊은 조성훈(스탠 조) 두 명이 보수당 주의원에 도전하여 당선되었다. 정말 정말 축하할 일이다.


 캐나다는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 우리 한인도 이 나라의 당당한 주인이다. 언제까지 손님처럼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는가. 의무를 다하고 산다면 권리를 왜 포기하나? 


 투표를 해야겠는데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분이 있었다. 한국 신문들을 봐요. 이 나라 정치에 대하여 아실 만한 분들한테 물어봐요. 어느 당에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왜 안 물어 봐요? 한인 주소록 보고 여기 저기 전화 걸어서라도 의견을 물어봐요. 왜 안 물어 보고 몰라서라며 투표를 안 해요?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며 귀찮고 관심도 없다는 말에 양쪽 귀가 막힐 뿐이다. 오호통재라!


 캐나다 뉴스를 보면 얼굴에 온통 수염을 기르고 머리에 색색의 터번을 쓴 인도인들의 연방장관이 여러 명인걸 보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솟는다.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장관들도 각 나라 사람들을 고루 뽑는 것을 보지 않는가. 캐나다의 얼굴 색깔들이 바뀌고 있다. 


주의원으로 시작하여 장관자리로 밀고 끌면서 해야 한다. 주수상은 물론 연방수상도 한국계가 나올 것은 이번 일을 보니 희망이 보인다, 꿈을 가지고 하면 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안 해서 그렇지, 발동만 걸리면 안 되는 게 없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관심 좀 가져 보세요. 관심이 사랑이잖아요? 정치라는 거대한 이름보다도 온타리오 주의 총선거에 투표한다는 자부심, 적어도 권리행사라는 것에 참여 한다는. Why not?
 아카시아 꽃이 만발, 주황색의 양귀비꽃이 활짝, 함박꽃이 함빡 터져 나오는 꽃 속에 캐나다를 이끌어 갈 자랑스런 한국인의 얼굴들이 화안(花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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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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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4
왕실의 결혼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 영국 왕실의 결혼으로 런던은 인산인해, 유니온 잭과 성조기가 함께 어울려 곳곳에서 휘날리는 모습들이 장관을 이룬다.


 영국하면 중절모자에 버버리 코트를 입고 우산을 든 영국신사가 떠오른다. 1년 365일 중 날 별러 쓸 날 없다는데, 비오고 바람불고 안개 낀 날이 거의인데 오늘 같이 좋은 날씨는 드물다는 영국, 태양은 찬란하고 꽃들은 만발하며 초록이 무르익어가는 2018년 5월 19일 토요일, 해리왕자(34세)와 메건 마클(37세)의 결혼식 날짜를 누가 잡았는지 참 잘 잡았다. 


하늘도 축복하는데, 나는 왜 이 결혼식을 보는 내내 가슴속에선 마구 비가 내리던지... 온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 세기의 결혼식(Prince Harry & Meghan Markle)은 놀랄만한 파격적 결혼이기 때문임으로. 


 세기의 결혼식이라니 왕실 전통과 역사에 따른 이토록 성대하고 웅장한 결혼예식은 세계에서 영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고 본다. 캐나다는 사실상 영연방으로 총독을 영국 여왕이 임명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영국이라면 한층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영국이 이번 해리의 결혼으로 완전 대목을 본다는 일에 나도 기꺼이 한 표를 보낸다. 


영국의 왕세손 해리 왕자(Prince Harry)! 사춘기가 되기 전 아직은 애기 티를 벗지 못한, 한창 엄마가 좋고 엄마 없으면 못 산다는 나이 12세, 내 아들도 12세 때 학교 가려면 엄마 젖을 꼭 한번 만지고 가야만 했었다. 인간미 넘치는 해리 왕자가 12세 때 비운에 숨져간 엄마 다이애나를 가슴에 안고, 불안했던 사춘기와 방황했던 청년시절을 돌이켜 볼 때, 3년 연상인 메건 마클을 만나 어쩌면 자기를 포근히 품어줄 그리운 모성애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겠나 하는 나의 추리다. 


메건은 태어나서 35년여 자기의 힘들었던 인생을, 해리는 가슴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슬픔들을... 둘은 만나서 결혼까지 2년여,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겠나.


 그들의 공통점은 마음고생들을 많이 하고 살아왔다는 점, 아프리카에 봉사하러 다니는 일, 인권과 환경문제, 사회운동과 봉사활동, 패션과 음식 등이 그들은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반항하며 방황하고, 왕자도 싫어 전쟁터로 마리화나도 입에 물어 보고, 외롭고 슬퍼 아프리카에 가서 검은 아이들과 부둥켜안고 울어 보기도, 메건을 만나니 미국 외국인, 흑인 혼혈녀, 이혼녀, 여배우, 연상녀이나 이러한 여건 등을 초월한 결혼을 하겠다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보통 가정에서도 허락하기 힘든 이 결혼,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 할머니는 20년 전 다이애나비 사건으로 국민들이 왕실폐지론까지 등장했던 일을 기억했던지, 메건 마클을 왕세손빈으로 맞겠다는 혁신 내지는 파격적인 공식 허가를 했다.


메건은 일리노이주의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연극과 국제관계학을 졸업, 레드카펫과 난민캠프를 오가며, 2006년 CSI/ NY 에 출연하여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2011년 법정드라마 ‘슈츠’에 출연하여 대박을 터트리면서 2011년에 영화 프로듀서 트레비 엥겔슨과 결혼, 2년 후 2013년에는 자녀 없이 이혼, 항상 멋진 패션 센스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클래식+ 우아+ 자연스러움 = 록 스타일, 드라마 “슈츠”를 찍으면서 배우로서 남의 인생도 살아보며, 토론토에서 드라마를 찍었다는데, 그래서 더 정이 간다. 그 후 여성 인권 운동가로 르완다에 깨끗한 물 공급하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일 시작, 아프카니스탄에 가서 미군들을 격려한 용감한 경력도 있다. 


 메건의 웨딩드레스는 프랑스 패션 명품 메이커인 지방시가 만든 것으로 긴 팔에 심플, 긴 면사포 끝에만 꽃무늬가 있었다. 신부 입장에는 친정아버지가 데리고 입장해야 하는데, 친정아버지가 안 왔으니 누가 신부를 데리고 들어가나? 메건 엄마가 데리고 들어간다? 어쩐다? 말이 있더니 해리의 아버지 찰스가, 즉 시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가다니... 이것 역시 파격 아니고 무엇인가? 


캐나다 CTV 앵커 벤 멀루니의 7살 쌍둥이 두 아들이 시동(侍童)으로 면사포를 들어주는데, 앞니 빠진 것도 너무 귀여웠고, 해리의 형 윌리암의 아들과 딸도 신부 들러리로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천진스럽고 귀여웠다. 그 아이들이 무엇을 알까.


 흑인 혼혈 메건을 의식해서인지 결혼식 설교도 미국 성공회 주교 흑인 신부가, 흑인 위주로 편성된 합창단이 우리의 귀에 익은 음악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 합창을, 합창단 지휘자도 흑인, 첼로를 연주하던 소년도 흑인, 검은 얼굴의 군인들, 기자들이 흑인들에게 인터뷰하는 것까지 흑인 일색이다. 이젠 영국 왕실에 흑인이 들어갔으니 백인 전통을 앞세운 영국도 ‘열린 영국’이라는 또 다른 닉네임이 붙었다. 


 메건은 결혼식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은 영리하고 똑똑하게 생겼다. 화장도 화운데이션을 진하게 바르지 않아서 피부 원래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여 자연스러웠는데, 사진을 늘려서 보면 피부의 죽은 깨나 기미 같은 거무스름한 것이 다 보여 솔직함을 드러낸 듯, 감출게 뭐 있느냐? 어차피 보일 것 다 보였고, 알릴 것 다 알렸는데 화운데이션으로 덮어 봤자다 하는 나의 해석이다. 눈 화장만 또렷하게 해서 더 똑똑하게 보였다.


면사포를 쓰고 다가오는 메건을 보고 해리는 “야 진짜 예쁘다, 나는 행운아야”그 소리를 메건의 엄마는 들었다. 


 메건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날이 올 줄을 꿈이라도 꾸었겠나, 아니 어쩌면 꾸었을지도 모른다. 해리왕자와의 결혼으로 메건은 서식스 공작부인이 됐다. 명품 메이커 버버리에서 샀다는 연두색 투피스와 연두색 모자를 단정히 쓴 1956년생 메간 엄마도 자기에게 이런 감사가 넘치는 날이 올 줄을 상상이나 했었겠나, 흑인 엄마가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딸 메건이 영국의 왕실로 시집가다니... 역사적인 감격의 순간, 딸이 남편 잘 만나 신분이 수직 상승하는 것을 보는 엄마의 눈물 어린 눈은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는 듯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메건은 당찼다, 해리가 있음으로.


 결혼식의 끝 순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애국가라는 영국 국가(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를 모두 일어서서 부르는데 여왕만 안 부른다. 결혼식을 마치고 해리와 메건이 축하객을 향하여 나가는데, 찰스가 사돈 부인인 메간의 엄마 손을 붙잡고 신랑신부의 뒤를 따라 가는 장면을 웃으면서 보았지만 가슴 메임을 감출 수가 없다. 메건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찰스 심정은 어땠을까.


 해리야! 메간아! 이제는 오랜 방황 끝내고, 새로이 시작하는 너희들 인생에, 아프고 배고프고 공부 못하고 물 없어 고생하는, 지구촌 구석구석 찾아 다니며 물심양면으로 둘이 좋아하는 봉사 열심히 하면서,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는 인생으로, 영국의 국화 장미꽃처럼 아름답게 살거라.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 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1883년에 만들어졌다는 왕실 마차, 4 마리의 백마가 끌고 가는 뚜껑 없는 행복한 위딩 마차가, 축하객들의 환호 속에 해리와 메건은 손을 흔들며 5월의 푸른 하늘을 힘껏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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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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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9
2018-04-26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불가근불가원” 이라. 전에 아버지가 이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관계란 너무 가까이 해도 안 되고 너무 멀리 해도 안 된다는, 거리를 말함이다. 


 불가근불가원의 어원이 참새들한테서 온 것이라 하니 참 재미있다. 가까이 가서 가만히 보면, 참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다가 특히 전깃줄에 앉을 때, 서로 어느 정도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은 새들이 날 때 서로 날개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새는 날개가 생명인데, 부딪치면 날개가 부러지든가 털이 빠지든가 상처가 나게 될 것임으로. 참새들은 이런 진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참새들한테서도 배울 점이 있다니 참 고맙고 귀여운 새들. 


 고슴도치도 서로 날카로운 털을 가졌기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를 찔러서 아프고 떨어져 있으면 춥고 쓸쓸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모여 살아간단다. 
짐승이나 개미, 벌 등 미물들한테까지도 자세히 알고 보면 배우고 감탄할 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진리를 어찌 알았을까? 서로 사는 길을 터득했기에.


 인간(人間)이란 한자도 사람 인(人) 자에 사이 간(間)을 쓰는 것을 보면 사이가 중요함을 볼 수 있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 즉 불가근불가원이란 말은 여기에 해당이 되고, 사이가 좋다, 관계가 좋다는 말은 거리유지를 적절하게 잘 하고 있다는 말로도 풀이가 되겠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너무 친해서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다 보면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에 의견 충돌이 생길 수 있고, 기대가 어긋나 결국엔 싸울 수가 있다. 친하다 보면 어떤 비밀이라도 다 털어 놓고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임으로, 결국엔 상처 받고 상처 주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보는데,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오호 통재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싸울 일이 있겠나.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사랑도 괴롭고 미움도 괴롭다며 그러니 사랑이고 미움이고 너무 집착하지 말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수행자의 길이니라. 


 그 길은 법정 스님이나 가는 길. 우리가 사는 속세에는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어 세월 보내기에는 이곳만큼 좋은데도 없거늘. 친구처럼 좋은 게 어디 있나, 콩 한쪽도 나눠먹는 친구, 항상 함께 있고 싶은 친구, 친구! 친구! 친구에 대한 노래도 많고, 대신 죽어줄 수 있는 하늘같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나 친구간의 의리, 명언도 많다. 길은 잃어도 친구는 잃지 말라, 부모 팔아 친구 산다, 친구가 그토록 좋거늘. 


 프랑스의 화가 밀레와 친구 루쏘의 아름답고 풋풋한 우정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관포지교,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다는 금란지교, 나를 알아주는 절친한 친구가 죽었다 해서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 등, 우리에겐 알토란같은 소중한 우정이 있어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밑거름도 된다는 사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았다. 한국의 탈렌트 김혜자와 김수미의 우정, 김수미가 우울증을 겪으며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 위에서 쩔쩔 맬 때, 김혜자가 아프리카에 보내려던 재산을,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하고 통장을 건네주어 친구를 구해낸 도타운 우정, 적어도 이런 우정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오늘 죽어도 한이 없겠다. 내가 김혜자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 가진 것은 없어도 어쨌든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불가근불가원이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기찻길처럼 유지해야 하는 간격, 그 간격 유지가 안 될 때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 지혜와 인내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참새만도 못한 모습의 나를 보게 된다. 언제나 성숙한 모습을 지니려나.


 사는 동안 어쨌든 친구와 함께 가련다, 왜 혼자 가나? 만나지 않는 영원한 기찻길처럼 가면 되지 않겠나. 아버지가 불가근불가원이란 말씀을 하시면서 꼭 따라 붙는 귀감이 되는 말씀이 있다. 


“조금 외로운 게 낫다, 외로 우면 책을 읽고 배우는 데서 즐거움을 찾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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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65616
9199
2018-04-20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도 가고 싶은데. ”


“남자들끼리 만나는데, 집에서 쉬지”


남편의 친구가 모닝커피하자고 만나자는 전화를 옆에서 들었다. 분명 S 다.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급히 양치질만 하고 핸드백을 메고 앞장섰다. 이 중국인 S 이야기는 전에도 언뜻 들었다. 꼭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언젠가 만나리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왔다, 드디어.


오전 8시 반, 팀 호튼,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40세 정도로 젊어 보이는 중국인 S, 머리는 짧은데 새집도 지었다. 이 분은 만나자 마자 나에게 반갑다며 악수를 청한다, 손이 따뜻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자기 딸은 수영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수영장에 데려다 주고 수영하는 동안 우리와 모닝커피 한잔 하자고 했던 것이다. S의 딸은 현재 10세, 이 부부는 결혼해서 20년이 넘도록 애기가 생기질 않아서 부부가 상의한 끝에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10년 전에 중국에 가서 입양해온 딸이란다.


 말끝마다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의 딸, 나의 딸)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S의 눈에는 이 딸이 내 자식이라고 가슴에 계속 새겨가며 말함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분은 자기 자식을 낳아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자기가 낳은 친 자식이 있다면 그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딸을 입양해 와서 키우는 일이 자기 부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한다. 자기 부부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형제, 조카들까지 모두 행복하다고 한다. 


핸드폰에서 딸의 사진들을 보여 주는데, 복스럽고 정말 예쁘게 생겼다. 아주 똑똑하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수영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스케이트도 잘 타고, 노래도 잘 부르고, 피아노도 잘 치고 못하는 게 없다고 한다. 그 부부의 인생에는 오로지 이 딸 밖에는 없다고 한다. 이 딸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목숨을 건다고 했다.


세상에 피가 섞였나? 살이 섞였나?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입에 붙은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는 물어 보았다. 이렇게 정성과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이 딸을 키웠다가 나중에 배신을 한다든가 못된 짓으로 나온다면 그 상처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 분은 “나는 그런 것 생각해 본 일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 우리는 너무 너무 해피하고 딸도 해피하고, 감사와 만족이 넘치게 산다”며 뭘 더 바라느냐에 힘주어 말한다.


나 같으면 속으로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따지고 망설이고, 나중을 미리 보면서, 마지막엔 좋은 꼴 못 볼 텐데, 결국엔 부정으로 끝나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S는 계산하지 않는단다. 무슨 계산이 필요하냐고, 내가 딸 때문에 행복하다는 데에만 초점을 둔 삶, 참 심플했다. 우리 같이 복잡하지 않은 것 같다. 대륙성 민족이라 그런가? 나는 S에게서 한없이 넓은 중국 대륙의 광활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는 듯, 가슴이 쫙 펴지는 또 다른 성숙한 긍정을 보았다.


S의 마음과 그 정신이 부러웠다. 전에 한인양자회 모임에도 가보았지만, 남이 낳은 애를 저토록 목숨 걸고 키우나?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경지에 사는 분들, 어느 별나라에서 온 사람들인가,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인가.


옷, 신발, 머리 모양 등 외모에 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단다. 허름한 잠바에 작업복 바지, 마당 일하다 그냥 신고 나온듯한 신발 등, 오늘도 수수 털털한 모양으로 나왔다. 딸 교육 시키고, 아내와 딸과 세계 어느 곳이든 여행을 즐기는 일 외에는.


자기 부부와 딸은 잡채, 불고기, 갈비, 김치, 깍두기, 감자탕 등 한국음식을 되게 좋아하고, 어느 나라 음식이든 다 좋아한다며 다음엔 함께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한다.


부모님이 정통 중국인이니 그도 중국인이지만, 캐나다에서 태어났다는 S. 아마도 부모의 영향인지 영어가 중국식 악센트가 들어갔지만, Yes, No가 분명한 당당한 의사 표시가 딱 맘에 들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우리 인생 아닌가. 보람 있는 일을 한번이라도 하고 가야지 않겠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감동의 주인공, 용감한 사나이, 현재 62세, 20년 차가 넘는 현직 치안 판사. ‘마이 다럴!’ 이 한마디가 S의 인생 자체다. 참으로 존경심이 뜨겁게 일어난다. 진짜 멋지다.
말끝마다 입에 붙은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는 보았다. 그의 가슴이 사랑의 불꽃으로 활활 타고 있음을. God Bless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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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미디아(Media)


 
 레디! 쓰리, 투, 원! 


인도인 친구 자스비얼과 그녀의 친구는 환한 조명 아래 톡쑈의 녹화를 시작한다. 인도말로 뭐라고 뭐라고 웃으면서, 카메라 앵글에 눈을 맞춘다. 고개도 약간 옆으로 까딱까딱 움직이고 인도 사람 특유의 제스추어가 한국 사람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자스비얼이 방송에 나간다 해서 어떻게 생긴 방송국인가? 궁금했다. 방청객이 적어도 몇 백 명이라도 모여놓고 하는 방송국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담당자에게 물어 보니 여기는 그런 방송국이 아니고, 이렇게 녹화만 하고 녹화된 파일은 다시 편집하여, 인도의 TV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 등 여러 곳과 몬트리올, LA, 뉴욕 등 인도인의 TV 방송과 라디오방송국 등 즉시 60여 곳에 보내는 미디아(대중매체)란다. 


 토론토에는 이런 인도 사람들의 미디어 그룹이 여러 곳이 있단다. 캐나다의 역대 수상들, 온타리오 역대 수상들, 각 장관들, 각 부처의 단체장들과 감사패를 든 큰 사진들과 상패들이100개가 넘어 보이는데 벽에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색색의 터번을 쓴 사람들이 주인공인 사진들이다. 


 매주 월요일 톡쑈를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한 시간씩 작년 9월부터 시작했다 한다. 나는 녹화장소를 나와 유리문으로 볼 수 있게 한 장소에 앉아서 그들의 녹화하는 것을 보았다. 30여 번째를 넘어 출연했다 해서 그런지 살짝 살짝 웃는 모습에 말하는 것과 손놀림, 카메라를 의식하는 자세가 부드럽고 능숙해 보였다. 


 27분 정도 지나니, 일단 5분 정도 쉬는 시간이 되어,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 온 다음, 바로 또 시작을 하여 28분 정도 하고 끝남을 보았다. 꼭 1시간이다. 


 자스비얼네 집으로 함께 오자마자 오늘 출연한 유튜브를 보니, 벌써 편집을 끝내어 그곳에서 한 녹화보다 배경이나 화면이 바뀌면서 더 좋아 보였다. 나는 인도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니 자스비얼한테 물어 보았다. 


오늘 톡쑈의 테마가 무엇이었느냐고 하니, 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에 관한 조언들과 터머릭(turmeric = 강황 = 울금)에 관한 정보들이라고 했다. 터머릭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강황 이라고도 하고, 울금 이라고도 하는데, 커큐민(curecumin) 이라는 것이 주성분이며, 각종 성인병 예방, 면역력과 기억력 증강, 비만 예방에 큰 도움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지난주에는 담배에 관한 것을 했단다.


그 동안 건강에 관한 음식물의 정보들과 생활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 간단한 음식 만드는 법 등 다양하게 했는데, 다음 주에는 무얼 할까 생각 중이라며, 순간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것 때문에 늘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걱정마라, 내가 너에게 많은 정보를 줄 것이다. 건강에 관련된 각종 정보들, 예를 들면, 음식물 중 가지(eggplant)에 대한 것이라면, 성분은 무엇 무엇이고, 좋은 점은 무엇이며, 어디어디에 좋고, 조심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든가 내가 다 알려 줄게, 모링가, 씨네몬, 훌랙씨드, 비터멜론, 케일 등 수퍼 곡물이라는 퀴노아, 치아, 각종 특수 작물 등에 관하여. 나는 음식물 뿐만이 아니고, 교육적인 면, 인문학적, 생활의 지혜, 취미, 노후문제 등 그 어느 면에 대해서라도 다 알아보아 줄 수 있으며, 그런 것에 대한 정보 수집을 좋아해서 모아 놓은 것이 엄청 많으니 너에게 다 말해 줄 것이다” 


자스비얼은 나를 끌어안고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이 “헬렌 땡큐! 헬렌 땡큐!” 끝이 없다. 그 동안 인도라는 나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지만, 조금씩 알고 보니 부러운 점도 참 많다. 자스비얼만 보더라도 자선하는 일, 세계 곳곳으로 퍼져가는 방송 일, 또 무슨 좋은 일을 하고 있나? 궁금증이 커간다. 


 저렇게 녹화한 톡쑈가 빛처럼 빠른 속도로 하루 24시간 각종 정보들이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간단다. 인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보고 들으니 도움이 안 되겠나. TV를 켜니 토론토에 인도 TV 방송하는 곳이 30 군데도 넘는다. 유튜브에 보면 조회숫자가 나온다고 이거 보라며 나에게도 보여준다. 몇 만, 몇 십만 명이 넘는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난다고 한다. 


 돈 받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행복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좋은 소식을 들어서 더 건강해지고 바르게 살며 복된 삶을 누린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동감이다.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선택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자스비얼은 지난번에도 인도 옷을 선물로 주더니, 또 다른 인도 옷을 입어 보라고 한다. 입혀 보더니 싸이즈가 잘 맞고 예쁘다며 아주 선물로 준단다. 


 “헬렌은 인도 춤추는 것 좋아하잖아” 친구들과의 모임 날짜들을 알려주며 꼭 오라고 한다. 나를 아주 인도 사람으로 만들려나 보다. 자스비얼이 다음엔 헬렌도 TV 출연 함께 하잖다. 오 마이 갓! 인도식 독한 카레 냄새와 인도 민속 음악들이 머리 위에서 맴돈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여생을 보내는가? 톨스토이를 따라 갈수는 없지만 참회록이라도 써야 되나? 삶이 출렁거린다. 영국의 소설가 버나드 쑈의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이 나의 마지막 말이 될 것 같다.


 꽃으로 다가오는 자스비얼에게 찬사를 보낸다. 좋은 일 하고 싶다고? 찾고 찾으면 만날 것이다. 크고 작은 일을 왜 따지겠나. 4월인데 손님 같은 춘설이 펄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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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8
물 한 모금이라도

 
  
 토론토의 서쪽 미시사가, 한인교회로서는 교인숫자도 제일 많고, 교회 건물도 제일 크다는 큰빛교회 지붕이 저쪽에 보인다. 큰빛교회 입구의 맞은편 쪽으로 머지않은 곳에 초라한 듯 납작한 몰, 그 곳의 한 유닛에 와 있다. 전에는 이 몰이 후리마켓으로 틀이 안 잡히고 어수선했었다는 데, 얼마 전 리노베이션을 해서 깨끗해졌지만 빈 유닛도 더러 있고, 주중이라서 그런지 한가했다.


인도계 여성들의 옷 가게도 많고, 인도 액세서리 파는 곳도 한집 걸러 한집인 듯 자주 보였다. 핸드폰에 관련된 가게도 한집 걸러 한집일 정도. 인도 여자들의 액세서리 문화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발걸이 등 호화롭다. 흑인들이 하는 가게와 흑인들도 많이 보인다. 


 인도 친구 자스비얼이 한 달에 한번 봉사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와 보았다. 8개월 전부터 시작했다는 이 프로그램, 그 주변의 좀 경제적으로 도네이션 할만한 사람들은 도네이션 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도네이션 들어온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등을 받아가게 하는 곳에 자스비얼은 봉사하러 온 것이다. 


 소규모인데 정부에 등록을 한 자선 단체란다, 정부로부터 도움 받는 것은 없고, 매주 화요일에 문을 열며 인도인뿐만 아니라 캐네디언이면 누구나 도네이션을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하면 아름아름 소문을 타고 찾아온다며, 오늘 화요일은 자스비얼과 봉사하는 사람 두 세 명이 일하고, 다음 주 화요일은 다른 친구가 와서 하는 등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봉사 한단다.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딱 맘에 든다. 그래서 자스비얼을 좋아하는 이유다. 


 토론토의 한인봉사회에서도 연말이면 ‘사랑의 양식 나누기’와 1년에 두세 번 정도 라면과 떡국떡, 된장과 고추장 등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스비얼 친구들이 나를 반갑다며 허그를 한다. 향수를 뿌리고 갔어도 감출 수 없는 김치 냄새 나는 동양 여자를! 그들의 품이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친구들은 오늘 당번이 아니라도 시간 나면 한 번씩 들려서 물건이 얼마나 있나? 확인도 하고 뭐라도 갖다 놓고 간단다. 자스비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네이션이 많이 들어와야 한단다. 나누어줄 물건이 없으면 되겠나. 이따금씩 누군지 무언가 한 보따리씩 들고 와서 놓고 간다. 도네이션으로 들어온 식료품들이다. 인도 쌀(2kg, 3kg 정도 등과 다른 쌀들), 스파게티, 마카로니 국수, 식용유 종류, 밀가루, 설탕, 소금, 과자류, 시리얼, 피넛 버터, 캔에 들어 있는 콩 종류, 물비누, 자벡스, 생활 필수품 등과 의류 등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식료품들을 필요한대로 달라하면 자기 주소와 이름 등을 적고 가져간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왔는데 운동화도 나이키 신형 새것으로 신고, 잠바도 그 비싼 캐나다 구스를 입었는데 빈손으로 왔다. 나는 속으로 쟤는 또 뭐야? 나는 인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눈치만 슬쩍 보는데, 자스비얼이 한참을 얘기 하더니 작은 쌀 한 포를 꺼내 준다. 새 신발에 새 잠바를 입었어도 쌀이 없었는가 보다, 뭐가 잘 안 맞는다. 


 인도 사람들도 빈부의 차가 심해서 부자는 무지무지하게 부자이고, 어려운 사람은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한 인도 남자 70 세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뭐라 뭐라 한다. 자스비얼은 쾌히 승낙하고 필요한 것을 집으라고 한다. 그는 피넛 버터, 식용유, 스파게티, 과자, 쌀, 콩이든 캔을 갖다 놓는다. 나는 속으로 셈을 해보니 한 25불 정도가 될 것 같다. 


 자스비얼은 집에서 올 때, 큰 가방에 준비한 시리얼들과 집에서 썼던 플라스틱 봉지도 모아서 갖다 놓는다. 맞다, 손으로 여러 가지를 들고 갈 수는 없고, 물건을 담아 주어야 하기 때문이므로, 어떤 사람은 아예 튼튼한 주머니를 가지고 온다. 


 “나도 인도에서 살 때에 배고프고 가난하게 살았어. 지금은 많이 먹어서 살이 너무 많이 쪘어” 살을 빼야 한다는 자스비얼. 가슴보다 더 나온 배를 쓰윽 쓱 문지르며 양 볼이 터지게 웃는다. 나를 포함한 말이다. 눈빛을 아래로 고개를 옆으로 살랑 살랑 흔드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닌데 배가 터지게 먹는다는 건 배고픈 사람들에게 죄악이잖아, 자신을 반성하는 듯 보이는 것은 내 생각일까. 


 20kg짜리 설탕 한 부대가 들어왔는데, 만져 보니 속에 있는 설탕이 굳어서 딱딱하다. 이 일을 도와주어야겠기에 캔으로 톡톡 쳐보아도 잘 깨지지가 않는다. 설탕 부대 종이가 찢어지면 난리 날 판이니, 팔을 걷어 부치고 설탕 부대를 살살 뜯고, 작은 스텐 삽으로 뭉쳐진 설탕을 깨뜨리며, 지퍼 백 20여 개에 옮겨 담는 일을 했더니 그것도 일이라고 오른쪽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어디 가서 쌀을 구해 가지고 밥을 해 먹겠나, 정부에서 주는 돈 가지고 모자라나 보다. 이런 곳에서라도 쌀을 줘야지, 그렇다. 배고픈 자에게 밥을, 목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이라도 주어서 마시게 해야 한다. 살아있음으로… 


 작은 규모지만, 매주 한 번씩 문을 여는 인도사람들의 이 작은 자선단체가 곳곳에 있다니 부러웠다. 그로서리 쇼핑할 돈이 없다, 돈이 없다? 그 얼마나 절망이며 절박한 일인가? 고통이며 아픔이다. 상황이 이 정도 되면 삶에 그 어떤 비전이라도 가질 수가 있겠나,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음을 내가 겪어봐서 안다. 그것도 외국 땅에서.


 이런 자선하는 일이야 말로 구원의 희망이 아니겠나, 희망을 주는 일, 말로만 마음으로만 자선을 해야 한다는 건 위선 일뿐이다. 안다면 실천이 관건이고 그런 길을 만들고 실천해 가는 자가 선구자 아닌가. 


 슈퍼마켓에 가면 한쪽에 후드뱅크 통이 있다. 음식물을 어려운 사람에게 도네이션 하는 통이다. 스파게티 국수를 한 박스라도 사서 푹 넣고 와야 하는데, 생각하고 망설이고 뒤돌아선 일이 그 몇 번이었나. 배터지게 먹으면서도 배고픈 자를 외면하는 나는 위선자다. 위선자에게 무슨 변명이 필요한가. 오늘 당장 실천할 것이다. 한 번하고 두 번하고 세 번만 하면 몸에 밴다. 몸의 세포 세포에 배어서 안하고는 못 배길 테니까.


 부자나 가난한자나 한끼 한끼 해결하다 어느 날 만행(卍行)도 없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정사실. 물 한 모금이라도 베풀다 가야지. 하늘을 산책하는 저 구름처럼, 은하를 흐르는 저 별처럼 흐르고 싶다.


 토론토에는 인도 방송국이 여러 곳 있단다. 한국 방송국은 ALL TV 한 곳이고, 다른 한국 TV 방송은 조금 시간을 짧게 하는 것으로 아는데, 자스비얼은 인도 방송국의 톡 쇼에도 나가고, 간단한 음식 만드는 것도 가르친다. 유튜브에도 많이 올려있는 것을 보았다. 나보고 방송에도 함께 나가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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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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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명품이 뭐길래

 

 

 누구네 딸 시집가서 사는 이야기이다. 


 “정말 성질 나서 돌아 버리겠네” 집의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핸드백을 세게 내 던지며, 상스런 말이 나오려 하는 것을 아들이 옆에 있어서 참았다는 딸. 뒤따라 들어오는 남편에게 “당신 이런 짝퉁 가방 다시 한 번 사왔다간 어떻게 되는 줄 알죠?” 벌떡대는 가슴에 분은 풀리지 않았단다. 


 지난번에 사위가 출장 갔다 오면서 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샤넬 가방 짝퉁을 사왔단다. 아내에게 선물이라며 진짜와 똑같으니 누가 보아도 이건 진짜라고 하면서. 보아하니 어쩌면 짝퉁도 이리 잘 만들었는지 정말 진짜 같았단다. 진짜는 아니지만 거의 대리 만족을 느끼며 진짜처럼 가끔 들었다는 그 샤넬 핸드백. 


 어느 날 프랑스에서 온 사장 내외와 미팅이 있어서 나갔는데, 무심코 그 샤넬 가방을 들고 나갔단다. 아니 이게 웬걸? 사장 부인이 내 가방과 똑같은 샤넬 명품 가방 진짜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닌가? 


‘분명히 진짜였어. 가슴은 콩콩 뛰고, 내 가방을 슬며시 식탁 밑으로 내 허벅지 위에 놓고 식탁보로 가리고 있었어. 무슨 잘못을 저지르다가 들킬까 봐 나만이 하는 행동,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만남의 반가움과 대화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속으로 씩씩대며 남편에 대한 미움만 커가고 있었어. 그래 출장 갔다 오면서 제 아내에게 선물이라고 짝퉁 가방을. 오늘 당신 제삿날이다. 돈 없으면 사오지를 말일이지 짝퉁을 사오다니. ’ 


 명품가방이 뭐길래.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단어들, 명품, 짝퉁, 카피. 짝퉁을 순수한 우리말로 말하면 가짜. 그 프랑스 사장 부인은 사실 상대방이 가짜를 들었는지? 진짜를 들었는지? 안중에도 없었을 것으로 본다. 가짜를 들었거나 진짜를 들었거나 본인만 안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이 진짜를 들었다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상대방이 짝퉁을 들었다면 또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남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관심이 있은들 남의 일인데 몇 시간, 혹은 며칠이나 가겠는가? 남이 아는 것이 그 무슨 대수인가? 


 “아니 도대체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샤넬 명품가방이 얼마라니?”


 “미국 돈으로 4천 5백 불에 세금. 캐나다 돈으로 치면 5천불이 넘어. ” 


“그럼 그 명품이라는 루이비통 가방은 얼마나 한다니?”


“그것도 디자인에 따라서 가격이 여러 가지, 최소한 미국 돈으로 2천불에서 3-4천불에 세금…”


“너는 그 명품 가방이 그렇게도 좋으냐?” 


“좋고 나쁘고가 어딨어? 들어보면 알아, 우선은 내가 만족이야. 쓰면 쓸수록 길이 나서 더 좋아지고 질리지가 않아, 그래서 명품인가 봐, 남이야 뭐라던 간에 내가 좋은 걸. 훼레가모 구두 한번 신어봐 얼마나 편안하고 예쁘고 튼튼한지, 신어봐야 알아 그리고 엄마는 가짜 다이아몬드반지 큰 것 끼고 다니고 싶어? 말해 봐, 말해 봐, 왜 말 못해?” 하더란다. 


 예를 들면, 다이아몬드 반지도 그렇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구별이 잘 안 된다. 잘 만들어진 카피 다이아몬드 반지는 어쩌면 그리도 진짜와 똑같은지? 캐나다에서 50 불 정도만 주면 2캐럿짜리 정도 카피 다이아몬드 반지를 살 수 있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비슷하다. 아니 진짜보다 더 잘 만들었다. 그러나 돋보기나 현미경으로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진짜 다이아몬드는 현미경으로 보면 볼수록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지, 현미경으로 보면 다이아몬드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본 일이 있다. 역시 감탄과 감동이다. 


 본인이 진짜를 끼고 있다는 것, 혹은 가짜를 끼고 있다는 것. 그 반지를 끼고 있는 본인만이 안다는 사실, 남이 보아서는 알 수도 없고, 알아서 무엇 하리.


 명품들이라 이름 붙인 것들이 참 많다. 가방이나 보석뿐만이 아니라 시계, 옷, 신발, 가구 등등.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여자들이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솔직히 말해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도 명품 좋아한다,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토론토에서 운전하여 뉴욕에 들어가기 1시간 전쯤에 우드베리(Woodberry)라는 곳이 있다. 이름하여 세계적인 명품 아울렛 쎈터이다. 없는 품목도 있지만, 거의 다 있어서 명품들을 거의 반값에 구입할 수 있다. 주말이면 주차장이 없어서 30분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리고 헤매는 것은 보통, 평일도 주차장 찾기가 어렵다. 뉴욕을 여행하는 여행사의 코스에 우드베리가 거의 다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품 명소이기 때문이리라. 


 30여 년 전에 토론토에서 있었던 얘기다. 70이 넘어 보이고 촌스럽게 생긴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 할머니는 버버리 가방이 하도 들고 싶어서 토론토의 블루어에 있는 롯데백화점 (지금은 없어졌지만)에 수 없이 들락거리며, 그 가방을 만져보다가 끝내는 400불인가 (그 당시) 주고 샀다고 한다. 그 가방을 들고 지하철과 버스 타고 다니려니 누가 탐낼까 봐서, 가방을 사면 큰 헝겊주머니가 들어 있는데, 그 주머니에 버버리 가방을 넣어서 안고 다녔다고 한다.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버버리 가방을 든 자기 마음은 행복하다는 본능이다. 


 카피면 어떻고 명품이면 어떻고 무슨 가방이면 어떤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얼 들면 어떤가? 자기 마음이 문제다. 모든 것이 마음 장난이다. 천국과 지옥이 저 우주 어느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다고 성경이나 불경은 말하지 않는가.


 그 때 그 때 형편에 따라서 마음 가는 대로 들면 되지, 명품가방은 국경을 넘나들 때나, 공항 세관 통관에서 걸리면 영수증을 보여줘야 되고, 시간 걸리며 애를 먹는다. 그래서 명품은 해외로 나갈 때는 대개 들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명품이 그리 대수인가? 우리 인생에 명품보다 더 귀중한 것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 딸이 웃으면서 하는 말, “신경질 나서 남편에게 한번 해 본거야, 엄마 신경 쓰지 마요. 비닐봉지도 감사하며 드는데. ” 했단다.


 세계 2차 대전 때 미국의 조오지 스미스 패턴 장군은 독일의 벌지 전투에서 아군 8천여 명이 적군에 둘러싸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눈보라 악천후에도 가려고 할 때 다른 장군들이 말리면서 “액팅하는 것 아닙니까?” 할 때 패턴장군은 “액팅하는 것 아니다. 남이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 남이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도 명품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어불성설일까? 만나면 만날수록 더 정이 가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의지가 되며, 보면 볼수록 더 예쁘고 질리지 않는, 참되고 아름답고 순수한 나만이 아는 명품 사람. 


“그런 사람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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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j
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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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9
2018-03-21
프랑스 여인들

 
 
 나는 속으로 “오 마이 갓!”이 나왔다. 예상치 못했던 프랑스 여자들 7-8명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프랑스어를 가리키는 작은 학교다. 오늘 저녁에 프랑스 치즈(cheese)들을 시식해 본다는 작은 파티인데,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느냐 하면, 이 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죤이 우리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죤은 댄스스쿨에서 (물론 남편과 함께) 만났는데 중국계로서 모리셔쓰(Mauritius) 섬에서 온 사람이다. 모리셔쓰 섬은 남아프리카 옆 인도양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지금은 독립했지만, 과거 프랑스 영으로 있어서 그곳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불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죤은 영어와 불어를 완벽하게 잘 한다. 


 내가 아는 프랑스는, 몇 년 전 사르코지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이혼하고 재혼했던 일, 루이비통(Louis Vuitton) 핸드백, 샤넬,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루브르 박물관의 눈썹 없는 모나리자 그림, 불란서 꼬냑, 에펠탑,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몽마르뜨 언덕, 알랭드롱의 우수 깊은 눈동자가 떠오르는 정도.


 프랑스 남부에서 만든 치즈들을 시식해보는 파티인데, 두 사람의 사회자가 나와 한 사람이 불어로 말하면 한 사람은 영어로 통역해 주는 식으로, 4가지 종류의 치즈를 먹어 보았는데, 나는 그 맛이 그 맛인 것 같았다. 


치즈 맛이 치즈 맛이지 뭐가 크게 다른가? 그러나 그들은 그 맛이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치즈는 우유를 발효 성숙하여 농축한 것으로 칼슘 덩어리일 뿐만 아니라, 유산균이 풍부하며 치즈 없는 식사는 프랑스 사람들의 음식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함.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김치가 빠질 수 없듯이, 프랑스에서 나오는 치즈의 종류는 각 가정에서 만드는 것 말고도 500여 종류나 된다고 했다. 젖소, 양, 염소 등에서 나오는 젖으로 만드는데, 짐승이 다 다르니 맛이 다를 수밖에, 와인의 나라 프랑스, 역시 치즈도 강국이라는 뜻이겠다. 


 프랑스 남쪽이라 하면 이탈리아의 북서쪽이라 할 수 있는데. 그쪽으로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눈부신 태양 아래 끝도 없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치즈는 와인과 포도와 함께 먹는다고 했다. 음식 궁합이 잘 맞는가 보다. 치즈는 빵과 크래커도 곁들여 마른 과일(Dry mango, raisin등)과 함께 먹어보니 더 부드럽고 좋았다. 


우리가 고구마를 먹을 때 김치와 함께 먹듯, 프랑스의 먹거리로는 흔하고 흔한 게 치즈라고 한다. 대야만한 큰 덩어리 치즈도 어떤 것은 아주 싸다고 한다. 프랑스 그림에서 보면 농가 그림들이 많고 농산물 축산물 생산이 유럽에서도 프랑스에서 많이 나온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집집마다 냉장고를 열면 온통 가지각색 치즈라고 한다. 우리가 밥하고 다양한 김치를 먹듯.


 프랑스의 전통 여자들 얼굴을 보면, 양미간 바로 아래 양 눈의 간격이 좁고 눈이 코를 중심으로 안쪽으로 ‘옴팡’ 들어가고, 코가 위에서부터 굵고 크다는 것, 프랑스의 명화 마네, 모네의 그림에서 본 여자들의 바로 그 얼굴들, 여자 코가 저렇게 크다니, 유럽은 얼굴들이 거의 비슷하지만, 프랑스 전통 여자들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모두가 그 얼굴이 그 얼굴 신기했다.


 그들도 동양여자인 나를 보며 코리언 여자라니 얼굴은 넓적하고, 코는 납작하고 눈은 작고 저러 하구나 속으로 웃겠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엄마들도 모여 앉으면 모두가 비슷비슷 하게 보이는 것처럼. 


 그토록 일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내 몸의 변화를 순하게 받아들인다는 프랑스 여자들. 루이비통 가방도 들지 않았고, 코티분 향기도 나지 않았다. 


 뚱뚱한 사람이 많지 않은 프랑스 여자들, 그녀들의 손이 뼈가 굵고 마디도 굵은 것을 보니 역시 일을 많이 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들의 문화를 알면 알수록 깊이 빠져 들어가는 매력을 숨길 수가 없는 것은, 예술과 패션,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이혼과 재혼을 넘어 숨은 검소와 절약이 기본인 그들이기에. 

 

 

 

종이여 울려라
우리네 사랑은 다시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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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j
홍성자
65005
9199
2018-03-08
역지사지

 
 
 가끔 만나는 50대 초반의 미쎄쓰 리가 있다. 이런 저런 말이 오가다가 미쎄쓰 리가 하는 말, “제가 * * 교회를 한 10여 년째 다니고 있는데, 우리 교회 S 목사님은 참 훌륭하세요.” 


 “아, 그래요? 훌륭한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 나가니 참 좋으시겠네요. 그 훌륭한 목사님의 훌륭한 점을 한 가지만이라도 말해 줄 수 있어요? 듣고 싶네요.” 


 매주 목요일 오전에는 교회에 나가 봉사한다는 미쎄쓰 리는 늘 긍정적이고 부지런하고 밝은 모습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여자다. 


 “네, 지난번에는 목사님께서 저와 다른 권사님 한 분에게 점심 대접을 하시고 싶다고 하셔서 한국식당엘 갔어요. 식사 주문하기 전에 목사님께서 두 그릇만 시켜서 셋이 먹자고 하셨어요. 돈을 아끼자고요. 그래서 2인분만 시켜서 먹었지요. 얼마나 알뜰하신지? 참 훌륭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래요? 그 중에 누가 식사를 못하실 상황이었던가요? 두 그릇만 시켜서 셋이 나누어 드시게요?” 


“아니요, 그건 아니예요” 


“그럼 모두 식사를 하실 수 있는데, 2 인분만 시키셨어요? 돈을 절약 하시려고요?”


“네” 


“그 일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더니 미쎄쓰 리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안 그래요?” 한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저으니 


“아니 왜요?” 


“목사님께서 어떤 다른 뜻이 있으신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훌륭한가? 안 훌륭한가? 나는 아니라는 생각인데...”


“어떤 생각이신데요?” 그녀는 토끼눈이 된다. 


“얘기를 듣고 보니, 이건 내 생각인데 자 봅시다. 역지사지(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함)로 볼 때, 나는 목사님도 아니고, 두 권사님도 아니고, 식당 주인도 아니고, 식당 웨이츄레스도 아닙니다만, 제 삼자의 입장에서 지금 듣고 느낀 대로를 말해 볼게요. 


옳고 그름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예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이예요. 어쨌든 내 생각을 말해 볼 테니 들어보고 난 후, 미쎄쓰 리의 또 다른 생각도 들어 봅시다. 


내가 식당 주인입장이라면 성질 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식당도 잘 안 되는데, 셋이 와서 두 그릇만 시키는 일,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요. 몸이 아프다던가? 방금 전에 식사를 했다던가? 한 분이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없는 어떤 상황 등 그럴 땐 이만저만 부득이한 일로 2인분만 시켜야 되겠습니다, 하면서 일하는 분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라고 봅니다. 


또 웨이츄레스를 생각하면, 셋이 식사를 해야 하니 수저 좀 하나 더 갖다 주시고요 젓가락도요, 그릇 좀 하나 더 주시고요, 물도 한 컵 더 주세요. 김치하고 땅콩볶음 다른 반찬 좀 더 주세요. 내프킨 좀 더 주세요. 이거 맛있네요, 웨이츄레스에게 일은 더 많이 시키게 되겠지요? 


역시 미쎄스 리는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웨이츄레스는 사람 아닙니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그 웨이츄레스는 기분 좋겠습니까? 뭐? 훈련시키느냐고요....  


그리고 2 인분 가지고 감사하다며 기도하고 셋이 나누어 먹으면 두 분의 권사님들 기분이 어떨까요? 아이고 알뜰하신 우리 목사님 1인분 값은 아프리카 선교에 쓰시고, 2인분 가지고 우리 셋이 나누어 먹으니 덕분에 다이어트도 하고 감사가 넘치네요. 음식 맛이 너무 좋아 수저를 못 놓겠네요. 그런 기분이들까요? 글쎄요, 내가 두 분의 권사님 중의 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시간이 참으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제가 그 목사님이라면 기분이 어떨까요? 식당 주인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까? 알겠지, 토론토의 한인사회가 뻔하니까, 식당 주인 눈치 보느라 입장 곤란한 중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만일에 그 목사님이 그런 눈치 볼 분이 아니라면 그 목사님은 양심에 뭐 맞은 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렇다면 그 목사님이 팁은 넉넉히 주셨을까요? 


내가 목사님이라면,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니 두 권사님들 식사 대접은 하고 싶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인과 상의하여 웬만하면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좀 초라하고 변변치 못하더라도 밥하고 김치찌개 끓여서 김과 멸치볶음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고, 권사님! 권사님! 하면서 마음 놓고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봉사도 많이들 하신다면서 칭찬도 해드리고, 웃으면서 배부르게 잡숫게 하겠네요. 라면이면 어때요, 만남이 더 중요하고 즐거운 일일 테니까요. 


식당 주인은 저 목사님이 있는 교회를 눈여겨 볼 것이고, 웨이츄레스 역시 저 목사님 참 짜다 짜, 생각해 볼 것이고, 내가 권사라도 깊이 다시 생각해 볼 일 아니에요?“ 


 어찌하여 훌륭한 목사님 이란 말인가? 미쎄쓰 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맞는 말씀이네요. 그러나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했다. 


 우리 서로 입장을 바꾸어 가면서 생각해 봅시다. 훌륭한 목사님인지? 안 훌륭한 목사님인지? 그 문제 이전에, 내가 식당 주인 이라면? 내가 웨이츄레스라면? 웨이츄레스가 내 딸이라면? 내가 권사님이라면? 내가 목사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은 순간순간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어떤 일일지라도 항상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럴 때 이해도 가고, 나 같으면 보다 나은 길,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 하는 분별을 하게 된다. 


남의 경험에서 인생의 리얼한 또 한 수를 배운다.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학벌이나 지위, 지성이나 돈 등이 아니고 마음이라는 것, 배려는 곧 어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겠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서로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면서,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만 빛을 준다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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