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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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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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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베엘의 애기

  
 
 “헬렌! 나를 따라와 봐요” 다이안은 조심스럽게 살살 걷는 걸음으로 앞장선다. 마구간으로 들어서면서 “베엘이 오늘 새벽에 수놈 한 마리를 낳았어요.”


“어머나, 우리 베엘이 새끼를 낳았군요.” 힘이 없어 보이는 베엘은 눈만 꿈먹 꿈먹 하면서 선채로 제 새끼를 보면서 또 나를 바라본다. 아마도 “헬렌 왔어요? 나 죽겠어요.”하는 눈빛이다. 


새끼를 낳았으니 얼마나 힘 들었을까? 새끼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엄마 베엘의 젖을 머리로 툭툭 받아 치면서 젖을 빨아 먹고 좋아라 한다. 세상 물정을 모름으로. 


 에미는 새끼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말이 살아가야 할 방법들을 가르치려 한다. 이것은 먹지 말고 이것은 먹고, 거기는 가지 말고 이것은 이렇게 하고, 베엘은 순간순간 내 눈을 쳐다본다. 


 나도 말을 쳐다보며 안부의 손 인사를 한다. “알았어, 너 애기 낳았으니 회복할 때까지 너 안탄다, 걱정 마라” 


 모처럼만에 다시 찾은 마장에 들어서니, 다이안(말 주인)은 말이 새끼를 낳았다고, 밤새 잠도 못 잤다면서 싱글벙글 좋아한다.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걷는다고 한다. 내가 보았을 때는 태어난 지 5-6시간 정도 지났다는데 살살 뛰어다니기도 한다. 세상에.


 짐승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은 낳자마자 비척비척 몇 번만 하면 걸어 다니다가 한 시간만 지나면 뛰기도 한다니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된다. 


 다이안은 베엘이 순산했다고 만면에 웃음꽃이다. 말이 새끼를 낳을 때쯤이면 주인은 잠을 잘 수 없단다. 왜냐하면 말이 순산하면 좋지만 난산이 되면 새끼가 잘 나오도록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어야 한단다. 


남편과 함께 웃옷을 다 벗어버리고 맨 두 팔로 말 자궁에 손을 뻗쳐 넣어 새끼를 잡아 빼야 하기 때문이다. 수의사를 부르기엔 말들이 많아 늘 새끼를 낳으니 다이안 내외는 해산관 노릇이 수의사보다도 더 노련하단다.


 말은 풀 뜯어 먹고, 마른 밀대 짚을 먹지만 근육이 아주 단단하다. 말은 또 당근을 좋아한다. 말갈기 휘날리며 숲 속이나 벌판을 달리다가 당근 밭이 있으면 방향을 확 틀어 당근 밭에 들어간다. 커다란 코를 벌름거리며 당근을 먹는 것을 보면 너무 맛있어 한다. 


 마구간은 물론 말들이 있는 곳엔 여기 저기 물통이 있다. 히히힝! 거리며 물도 많이 마시니 소변양도 엄청나다. 쇠파리들 때문에 커다란 파리채로 말 몸에 붙은 쇠파리 잡아주는 일은 필수다. 


 다이안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 키우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을 수없이 보아 왔고, 지금도 말과 함께 살아가니 그녀의 일생은 자녀들보다도 말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이다. 


 마장에 가면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을 지키는 개가 여러 마리 있고, 몇 마리의 염소, 수십 마리의 닭이 있는데 수탉도 있고 병아리들도 있다. 잔디밭이나 마당에 그냥 놓아먹인다. 


순수 우리말로 하면 노지 닭이고, 계란은 병아리가 되는 유정란이다. 노른자가 노랗다 못해 주황색을 띤 그 계란은 계란향기도 진하지만 정말 고소하다. 


 말에게서는 말이 나오고 사람에게서는 사람이 나온다. 내가 보는 갓 태어난 망아지가 저리도 귀여운데, 베엘도 제 새끼를 귀여워하면서 저것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며, 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것 같다. 


 생명이란 신기하고 신비롭고 참으로 놀랍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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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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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은장도(銀粧刀)

 
 
 “당신들이 여기 직원이요? 왜 여기로 출근을 합니까? 당장 나가요”


 지금으로부터 한 40여 년 전 일이다. 친정아버지께서 충남도교육위원회 재무과장으로 계실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버지가 재무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출근하여 집무를 시작할 무렵, 직원이 아닌 남자 서너 사람이 손님이 오면 기다리는 의자에 죽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종일 며칠 째. 사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단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아버지는 시침을 딱 떼고 “당신들은 무슨 볼 일로 오셨소?” 그 분들은 깜짝 놀라는 듯.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눈빛이었단다. 


아버지는 단호한 어조로 “여기가 당신들 직장이요? 아니잖소, 당신들의 직장으로 출근하시오” 


그 말에 서로들 눈치를 보며 꼼짝도 안 하더란다. 


“당장 나가시오, 당장” 호통을 치니 슬슬 일어나며 하는 말들


“최 과장! 두고 봅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까” 재수없다는 듯 눈을 옆으로 돌리는 그 사람들은 신문기자들 이었단다. 


 그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충청일보, 대전일보 등에 소속된 기자들이었다는데, 공공기관에 와서 죽치고 앉아 뭐 기사거리 없나? 밥 얻어먹고, 커피 얻어먹고, 담배 얻어 피고, 그곳으로 아예 출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직원이 말하기를 감히 그들을 나가라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면서, 혹시라도 뭐 잘못을 하면 기사가 크게 나갈까 봐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고 했다. 


거기에다 “과장님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라고 하며 말리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직원들을 향하여 왜 당당하지 못하고 벌벌 기고 사느냐고 야단쳤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아주 나쁜 버르장머리로 그들을 키워주었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면서, 이래가지고 부정부패를 어찌 척결하겠느냐고, 나부터 목을 대고 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통분하며 역설하셨다고 했다. 


 한국의 신문 기자들이 다 그렇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 당시 그 곳의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니,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 없기를 바란다. 


 공무원인 직원들도 기자들 밥 사주고 커피사주고 하는 돈들은 어떻게 해서 쓰는가? 그 자체부터가 부정부패 아닌가? 잘못 쓰고 떼어먹다가 걸리면, 직장 떨어지고 퇴직금 못 받고 가문에 망신당하는 일인데, 목숨 걸고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었다.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는 박봉의 불쌍한 공무원들이지만, 공과 사를 왜? 분명히 판단 못하느냐고, 일전이라도 공금은 공금이니 공금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며, 사적으로 일전이라도 썼다면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정직하면 당당하다는 말씀으로 우리 사 남매를 교육시키시며, 비굴하거나 비겁하게 살지 말라고 하셨다. 검소에 검소를 더하고, 절약에 절약을 더 하면서 내 비록 월급이 적고 가난하여 때로는 꽁보리밥에 소금물을 찍어 먹고 살았을지언정,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너희들도 정직하게 사는 길이 옳은 길이고, 자신과 하늘 앞에 떳떳한 일이니 당당하게 살라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 아니고, 옳게 사는 것이 목적이며 당연히 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고 가르치셨다. 공금이든 남의 돈이든 몇 푼 떼어먹으면, 그게 그리 기분 좋고 잘 사는 길이냐고, 하루를 살더라도 당당하게 살다가 죽으라고 하셨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면 자결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잘 하려다가 잘못 할 수도 있다. 잘못했으면 빨리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무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아버지는 재무과장 임기를 당당히 마치심은 물론, 다른 과로 옮기시며 42년 오직 한 길 대한민국 국가 공무원 사무관으로 일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셨다. 정직하면 당당하게 산다는 것을 삶의 좌우명 1번으로 삼으셨다. 나는 이런 우리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자랑하는 바이다. 


 자식이 불의를 행했다고 자결하라는 부모가 있는가? 안동 김씨 나의 친 할머니도 처녀 시절에 은장도를 대물림으로 물려주시며, 뭇 사내가 달려 들어 목숨인 정조를 잃었다면 이 칼로 자결하라고 하셨다. 


 아! 어찌 하오리까, 은장도는 지금도 가지고 있으면서 이혼하고 재혼까지 한 나는 왜 이승에서 얼쩡거리고 있나? 저 세상으로 가신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클로스 업 된다. 저승에 가서 우리 할머니를 만나면 삼십육계를 해야 하나? 


은장도를 내밀면 할머니는 당연히 내 목을 칠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해 놓을 것인가? 세상 떠날 때 은장도는 꼭 쥐고 가야 할 것인가? 


 오호 통재라, 나는 부족한 사람. 이 글을 쓰면서도 이(이빨) 부딪치는 소리에 부들부들 살이 떨린다. 


 아 우리 아버지! 최자 익자 원자!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정직하게 살라고, 그래야 당당하다고,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웅변하시는 그 음성이 귓전을 때린다. 아버지의 그런 피가 내 속에서 콸콸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늘 소름 끼치도록 감지된다. (2018.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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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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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1
내가 찾던 인연(4)

 
 
 교통사고 직후, 내가 차 사고를 낸 로버트 입장이라면 차 뒤 번호판과 면허증을 보자 하며 사진 찍을 때 오히려 살살 웃으며 부드러운 말로, “한 번 더 찍어, 잘 안 나올 수도 있잖아? 사진 찍는데 돈 들어가니? 세금 내니? 그리고 걱정 마!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고쳐 줄게, 렌트카 해줄게, 어쩌겠어, 미안해, 내가 일부러 그런 것 아니잖아, 걱정 말아”라는 소리를 적어도 다섯 번은 했을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면 고쳐줘야지 별수 있나, 돈 없으면 꾸어서라도 해 주어야만 하는 일, 내가 돈 내는 사람인데 잘못했어도 당당했을 나.


 로버트는 순한 양이 덜미를 잡힌 듯 길가 보도블록에 앉아 미소를 살짝 띠었지만, 땅 쪽으로 눈을 내려 뜨고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돈이 얼마나 나올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을 것이다. 


 남편이 와서 로버트와 악수하며 로버트의 등을 다독다독 “너무 신경 쓰지 마, 차 있으면 다 그런 거잖아”, 나 보고는 “다친 데는 없어? 몸은 괜찮아?”, 괜찮다고 하니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란다. 다 그런 거라면서.


 나는 얼핏 보았다. 남편이 로버트와 악수할 때, 로버트에게 눈을 찡긋 찡긋 하는 것을. 거기에는 ‘여자는 다 그렇잖아, 신경 쓰지 마’, 나는 그 의미를 안다. 그러나 그건 못 본 척 무시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 사태가 역전될까 봐.


 도망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내가 네 차 번호와 면허증을 몇 번씩이나 인증 샷! 너도 봤지? 남의 차를 받아 사고를 낸 너, 꼼짝 말고 내 차 고쳐 놔! 하는 모습을 은근히 암시했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역전 돼 봐야, 3300불. 네 잘못으로 내차 망가뜨렸다고 요샛말로 갑질을 한 나, 로버트의 그 심란했던 장면이 내 눈에 늘 걸려 있어서 나는 고통스럽다. 


 로버트와 눈이 마주칠 때면, 교통사고 나서 찰칵 찰칵 소리 내어 사진 찍던 일이 죄의식으로 다가와 나를 스스로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가 요리한 비후스튜를 그렇게 맛있게 많이 먹은 것은 뭐람? 나도 참 앞뒤가 잘 안 맞는 여자다. 


 사람 볼 줄 몰라, 로버트한테는 안 당하겠다고 내심 ‘나한테 딱 걸려 재수 없지? 할 수 없다. 잽싸게 도망가지 못한 너, 착한 결과다’ 하면서.


 지난번에는 어느 프라자에 차를 파킹해 놨는데, 어느 차가 내 차 운전석 옆 차문과 앞쪽 뒤쪽을 걸쳐 확 받아 긁어 놓았다. 누구 차가 그랬는지? 메모쪽지도 안 보이고 차 어디에 뭐라고 써 놓은 것도 없고, 알 수가 있나? 열 받아 뚜껑이 확 열렸다.


 두리번거리며 한 30여분 기다렸지만 내 차를 받고 도망간 차는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차 긁힌 것을 보니 빨간색이었다. 빨간색 차 앞 쪽으로 내 차 짙은 쥐색이 묻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보기만 해봐라. 그때는.  


 속으로 내 차 받고 도망간 인간에게 육두문자를 엄청 날렸다. 그때 변 밟은 심정으로 바디샵에 내 돈 천불을 갖다 바치고 고쳤다,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차 사고 내서 3300불 정도는 다 잊어버렸다는 듯, 로버트는 우리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며 항상 웃으면서 우리보고 아무 때나 오라고 한다. 한 시간 전에만 전화하고 오면 맛있는 것 해준다고, 차 고쳐주고 때때로 음식 대접까지 해주는 로버트는 무슨 마음일까? 전생에 무엇이었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오는 걸까? 이 무슨 인연인가.


“Hi! Mr judge!, Hi! Helen! 언제든지 놀러 와!” 


 물론 우리가 아들처럼 생각하고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것을 로버트는 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역지사지로 도리질을 하는 내 머리는 스스로 계속 질질거리며 밀리는 기분이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마침표를 찍자. 찍었다 하면 나도 칼같이 마침표를 찍는 성격이다. 


 남편은 심심하면 와인 한 병 가지고 로버트네 가서 놀다 온다. 남편이 나보다 더 친해진 것을 보니 야릇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낸 차 사고로 남편에게는 아들 같은 친구가 생기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느 날은 닭을 아주 푹 고듯이 해서 닭요리를 했다는데 남편은 아주 맛있게 많이도 먹었다고 한다. ‘남자가 어쩜 요리도 맛깔스럽게 잘해! 한국식 비스므리 하게…’


 우리의 핸드폰이 뭐가 잘 안 되던지, 모르면 무조건 로버트한테로 간다. 로버트는 핸드폰의 안 되는 것 기능부터 설명하며, 이럴 땐 이렇게 하라고 자상하게 일러준다. TV의 뭐가 잘 안되면 우리 집으로 로버트를 부른다. 우리에겐 로버트가 착한 자식처럼 딱 안성맞춤이다. 


내가 찾던 인연인가.  


 로버트는 요즈음 외모가 상큼하다. 머리도 짧게 깎고, 수염도 싹 밀어서 아주 핸썸 해졌다. 늘 깨끗이 빨래한 옷으로 입고, 집도 정리정돈을 아주 깔끔하게 해 놓고 산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큐바 다녀오면서, 큐바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 있는 작은 지갑과 큐바 시가 한 개를 선물로 준다. 돈으로 치면 몇 푼 되나? 


선물을 만져 보며 그 마음이 갸륵하여 나는 또 감동 받는다. 걸 후렌드 라는 브라질 여자와 결혼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어 가는지. 잘 되어 가니? 자꾸만 물어 보기도 너무 참견하는 것 같고, 명목을 만들어라. 결혼식을 한다면 앞장서서 도와줄 것이다. 


 내가 수필집을 냈다고 책 표지를 사진 찍어 전화 메시지로 보냈다. 너를 만난 인연을 글로 썼다 하니, 환하게 웃는 얼굴로 축하한다며 자기도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영어로 번역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말로 쓴 그 글들을 못 읽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201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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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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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내가 찾던 인연(3)

 


내가 찾던 인연 1편과 2편을 썼고, 이것은 3편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에서도 요즈음 효자란 보기 드문 일인데, 로버트는 참 효자라는 생각이 든다. 


차 사고 나기 직전 작년 봄, 큐바에서 아버지가 오셔서 3개월 계시다 가셨고, 그 후 큐바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3개월 계시다 가셨다. 왜 따로 따로 오셨다 가셨느냐고 하니 그분들은 옛날에 이혼했기 때문에 마주치기가 거북해서 라고 했다. 로버트는 작년 크리스마스 연휴 때 큐바 부모님께 또 다녀왔다.


올해 2018년도 7월 3일에 아버지가 또 오신단다. 로버트가 비행기표도 다 해드리고 모든 경비는 로버트가 댄단다. 효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오랜만에 남편이 로버트에게 전화를 했단다. 오늘 토요일 아침식사 함께 하자 하니 오케이! 하더라는 것이다. 그 날 아침, 로버트와 그의 아들 다니엘과 로버트의 어머니, 우리 내외 하여 5명은 지난번 로버트와 갔던 Valley field 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로버트의 엄마는 64세로 신장 암 말기라는데, 여러 해 동안 고생해서 그런지 얼굴이 나이보다 한 20년은 더 들어 보이는 듯, 저승 문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근력이란 하나도 없이 살짝 웃을 때 보니 위 어금니가 양쪽으로 숭숭 빠져 있었다. 틀니라도 해 넣어야지 저렇게 그냥 두면 어느 날 이빨들이 우수수 다 빠져버릴 텐데 어쩌나.


로버트는 자기 어머니를 깊은 애정 어린 안타까운 눈으로 본다. 어느 날 로버트의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가셨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쪽이 허전해지면서 눈물 젖은 로버트의 눈이 오버랩 되는 것이었다. 로버트 엄마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로버트 때문에.


로버트의 열쇠고리를 보니 우리와 같이 노란색의 “Fit 4 Less” 라는 텍이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장소로 운동하러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옆에 No Frill 이라는 저렴한 수퍼마켓도 있어서 그곳에서 그로서리 샤핑을 한다는 것이었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즐겨 먹는 쟈니스 햄버거도 가끔 즐긴다는 것이었다. 값도 저렴하고 크고 맛있다고, 우리가 다니는 싼 중국 수퍼마켓 Hong Tai, walmart, Foodbasics 등에 간다고 했다.


로버트 하나에 몇 사람이 매달려 있나? 로버트 아버지, 어머니, 아들, 이모, 걸 후렌드, 걸 후렌드 아들 등. 검소하게 살면서도 부모에게는 효도, 모두에게 베푸는 알뜰쟁이 로버트! 그래서 애틋한 정이 더 간다.


지난번 로버트 엄마가 서투른 영어로 한국화장품이 최고라는 말을 했다. 이제는 한국화장품이 품질도 좋아지고 세계적으로 알려지다 보니 큐바 사람들도 한국화장품 이야길 하는가 보다.


한국화장품 라네즈 한 셋트를 선물로 주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세수한 다음에 첫 번째로 스킨로션을 바르고 두 번째는 밀크로션을, 셋째는 에센스를, 4번째는 영양크림을 바르는 것이라고, 순서대로 번호를 써 붙여 보여주니, 그대로 해 보겠다며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언어나 풍습이 달라서 그렇지 인지상정이라고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대견하다는 듯, 손자를 보면서도 이 귀한 내 손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 모습이 어쩌면 그들도 우리네와 똑같은가.


로버트 엄마가 큐바로 간 후, 로버트는 우리 보고 맛있는 것 해준다고 오란다. 비후스튜를 해놓고 샐러드와 밥도 준비했다, 남자가, 그것도 교통사고를 내서 우리 차 고쳐 준 남자가 음식 해놓았다고 먹으러 오라고 한다고 해서 먹으러 가는 나는 도대체 어떤 여자인가?


비후스튜가 어찌나 맛있는지 두 그릇을 먹었다. 남편은 거의 세 그릇을, 세상에 그 음식이 우리 입에 딱 맞았다. 로버트는 우릴 보고 뭐라 할까? 너희들은 이런 음식 못 먹어 봤니? 몇 끼를 굶고 왔니? 그렇게 생각했을까? 배가 터지면서도 입으로는 계속 들어가는데 이상하게도 꿀맛이었다.


왜 그리 꿀맛이었을까, 로버트는 우리가 잘 먹어서 너무 좋다며 신이 났다.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비후스튜를 요리했던 두껍고 큰 냄비를 들고 와서 긁어서 까지 준다. 


“맛있어? 또 해 줄게” 오마이 갓! 음식을 먹으면서도 로버트의 눈을 마주치기가 좀 부끄럽고 당당치 못함을 나 스스로 느꼈다. 


남자가 해주는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차 사고 났을 때, 내가 로버트의 차 뒤쪽 번호판과 그의 운전면허증을 보자 하며, 내 핸드폰 카메라로 그것도 찰칵 찰칵 소리를 내면서, 혹시나 잘못 찍을 수도 있지 않겠어? 라는 듯, 보란 듯이 사진을 몇 번씩 찍어댈 때, 로버트는 길가 보도블럭에 앉아 살짝 미소의 얼굴로 죄인이 된 양 눈은 땅 쪽을 비스듬히 보고 있었다.


사고로 피해를 입은 쪽에게 미안한 마음인지 살짝 미소를 띠었지만, 심난했던 로버트의 얼굴을 생각하면 약자에게 오만 방자했던 행동이 정말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 나의 부족함이 이런 데서 드러난다.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인데, 고의로 엄청난 죄를 지은 것처럼 간주해 버리면서, 혹시라도 이 사고를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뒤집을 까봐. 라는 옹색한 변명을 나 자신에게 하면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지금도 가시질 않는다. 아니 영원히 가시질 않을 지도 모른다. 로버트는 그때 했던 나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묻지도 않았고 물을 수도 없는 질문이지만, 아마도 로버트는 차 고쳐주었으면 그 일은 이미 끝난 일이고, 그 일을 인연으로 주거니 받거니 서로 잘 지내고 있어서 행복해요,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답을 알고 있으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저 멀리서 뭐하고 있는 건가? 마음속에서 혼자 장구치고 북 친다.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아무튼 물심양면으로 더 잘해 주어야지.


차 사고가 나더라도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교훈을 삼는다. 4편을 기대 하시라! (201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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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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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9
2018-08-12
애기 오이지

 
애기 오이지 

 

 

 

캐나다 온타리오 벌판에서 
갓 따온 애기 오이들 
아직도 몸둥이엔 
솜털이 보송보송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토론토 우리집 오이지 통까지 오게 된 
신기한 여행 

 

탯줄도 떼어내지 못한 채
뜨거운 소금물에 
두 눈 꼬옥 감고 
머리까지 푸욱 담근
애기 오이들

 

온타리오 지평선에 뜬 성긴 구름들
간질간질한 바람 소리
따끈따끈한 태양이 그립지만
말없이 초록을 삭히는 
애기오이들의 참선 


  
일주일도 천년처럼 
숨통 조이며 
삼복더위에 몸을 삭히면
누렇도록 익어가는 
아삭아삭 오돌오돌
단물이 쏘옥 쏙 나오는 
너는야
맛있는 애기 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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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66807
9199
2018-07-16
통쾌한 추억

 
 
 “이 자식이 누구한테 그것들이라니, 네 눈엔 그것들, 그것들로 보이냐?”


 “아니 최 과장, 최 과장 왜 이러셔?”


 최자 익자 원자는 나의 친정아버지 성함이다. 충남 보령이 고향이고 평생 공무원으로 사셨는데, 40세가 넘어 대전의 충남도교육위원회에 문정과장, 재무과장, 사회체육과장으로 역임하시다가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대전여고 서무과장으로 가 계실 때 있었던 일화이다.


필자도 이 글을 써 보려니 가슴이 쾅쾅대기 시작함을 억누를 수가 없다. 대전여고라 함은 충남에서는 명문여고로 꼽는다. 어느 날, 대전여고 교장이 선생들과 대화 중에 뒤로 아버지가 지나다가 언뜻 들으니


“서무과 그것들이. ” 


아버지는 ‘내가 잘못 들었나?’ 


“그것들 말여” 아버지는 확실히 들으셨다는 것이다.


다시 또 


“서무과 그것들이. ” 교장의 말이다. 


아버지는 홱 돌아서서 교장 멱살을 잡아 휘둘러 바닥에 내리쳐, 구둣발로 교장 모가지를 지근지근 밟아 꼼짝 못하게 하면서 


“이 자식이 누구한테 그것들이라니, 네 눈엔 그것들로 보이냐?”


교장이


“아니 최 과장, 최 과장 왜 이러셔?” 


“왜 이러냐고? 이 자식이” 


주변에서 선생들과 서무과 직원들이 나와서 말리고 난리가 난 것을 상상해 보시라.


“최 과장 다시는 안 그럴게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교장 모가지는 우리 아버지의 구둣발에 밟힌 채 벌렁 누운 상태로 두 손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해서, 아버지가 교장 목에서 발을 떼고, 서무실로 교장을 불러


“이리 앉으시오, 교장 당신은 나와 서무과 직원들 알기를 그것들로 밖에는 안 보이시오? 당신과 선생들 월급을 누가 주는데, 학교 건물과 땅, 학교 재산을 누가 지키고 관리하는데, 어따 대고 그것들이라고? 우리가 일선에서 선생님들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촉각을 세워 뒤에서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번에도 수 십 년 전에 잃어버렸던 학교 땅도 찾아내어 등기 새로 하지 않았소? 학생들 책상 다리 부서진 것에서부터 유리창 깨어진 것 등, 문서실, 방송실, 가사실, 과학실, 체육관 운동 기구 등 학교 재산, 살림살이 신경 쓰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늘, 당신 교장 맞소? 어따 대고 이것들 이라니” 


“아이구 최 과장님,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그렇게 말 안 하겠습니다” 두 무릎 붙이고 고개 숙여 두 손 싹싹 빌었다는 것이다. 단번에 교장 버르장머리를 싹 고쳤다는 말이렸다.  


그 일이 있은 후, 1년이 지나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었다. 보통으로 보면 학교 서무과장 정년퇴임식에 운동장에 전체 학생들 모아 놓고 조회 끝에 정년퇴직 하신다는 인사 정도 하는 건 보았어도, 학교에서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축하하는 행사를 나는 본 일이 없다. 


 그런데, 교장이 앞장서서 행사를 주관하여 대학 입시 공부하는 3학년과 2학년 여고생들에게 일부는 한복을 입고오라 하여 한 사람씩 나와서 아버지께 꽃다발을 증정하고, 연습한 합창들을 몇 곡 하더니, 학교 측에서 준비한 큰 화환들과 그 동안에 학교를 위하여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각 선생님들의 정년퇴임 축하 순서가 길기도 했다. 


아무리 우리 아버지지만, 서무과장님 정년퇴임식이 성대하기도 해라, 고개만 갸우뚱 그때 우리 가족들은 전혀 몰랐다. 그것들 이라고 했다가 서무과장의 구둣발에 죽을 뻔 했던 교장의 긴 축사는 말해 무엇 하리. 


 대전여고 서무과장 최익원 씨의 정년퇴임식에 학생들까지 동원하여 행사를 크게 치렀다는 말이 그 다음 날 대전의 학교마다 쫙 퍼짐. 이 말은 아버지께서 정년퇴직을 하신 후, 1년인가 지나서 들은 이야기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씀을 그 즉시 하시지도 않았다. 입이 무거운 우리 아버지.


어찌 그 말을 참으셨을까? 나 같으면 그 일이 있었던 날 퇴근 하면서 했을 텐데. 아버지는 20살 전후로 그 옛날 왜정시대에 유도 3단 자격을 땄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당시 유도를 하시다가 어깨뼈가 부러져 여러 달 동안 깁스를 하고 고생을 했었다는 얘기도 나 고등학교 때인가 들었었다. 


 “아버지, 그렇다고 선생님들과 서무과 직원들 다 보는 데서 망신 주고, 발로 교장 목을 지근지근 밟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내가 죽게야 안 허지, 그 교장이 원래 건들건들 해서 망신 좀 주어야 하고, 말을 그 따위로 해서 언젠가는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려고 벼르고 있었지, 젊어서 유도해 가지고 늙어서 한번 써 먹었다” 


 아! 우리 아버지, 최자 익자 원자! 끝내 주시는 분! 내가 존경하는 이유다. 아버지는 원래 말이 없으시고, 점잖기가 대전에서 2등은 아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바위’라는 닉네임으로 통했다. 붓글씨도 대전에서 내노라 할만큼 달필이시며, 평생 테니스를 즐기셨다.


 한국의 그 시대를 사신 분들은 거의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셨지만, 아버지 역시 퍽이나 힘들게 사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배추를 묶어 여러 번이나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서 배추 판돈으로 아버지 운동화를 사주셨는데, 아버지는 새 운동화를 아끼느라 사람들이 볼 때는 운동화가 닳을까 봐 신고서 살살 걸었고, 사람들이 없을 때는 운동화를 벗어서 손에 들고 맨발로 걸었다고 하셨다. 그 운동화를 몇 번 신지도 않았는데, 학교에서 누가 훔쳐갔다 한다. 


 맨발로 집에 온 어린 아버지가 엉엉 울고 있으니, 할머니가 또 배추 팔아서 사 줄 테니 울지 말라고 달래셨다 한다. 그 애도 신발이 없는 애인가 보구나, 하시면서 할머니도 울고 아버지도 울고. 학교에서 배가 고프면 우물의 펌프로 가서 펌프질을 여러 번 한 후에 깨끗한 물줄기에 얼른 입을 대고 물로 배 채우기를 수없이. 아 지긋지긋한 가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엉엉 운다. 


 그런 나의 아버지가 42년 국가 공무원으로 연금이 생각보다 넉넉하게 나오고, 평생 이를 악물고 근검 절약한 결과 자식들한테 의존하지 않고도, 내 먹고 살 것이 충분하시다며 80 넘어 수(壽)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80을 넘기지 못하시고 79세로 17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아버지의 대전여고 교장 사건? 을 생각할 때마다 다이돌핀이 콸콸 나온다. 어릴 적 가난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 어깨가 떡 벌어지신 유도 3단 우리 아버지, 내가 그 분의 딸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당당하게 한다. 


 밤하늘의 은하수, 보석처럼 콕 박힌 크고 찬란한 저 별, 저 별은 우리 아버지 별. 역시 우리 아버지 최자 익자 원자는 내 가슴속에 영원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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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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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관심

 


 
 어느 당을 찍어라, 누구를 찍어라, 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투표를 했느냐? 안 했으면 어서 하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한 것뿐이다. 오늘 2018. 6. 7일.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총선에 내 주변의 사람들 21명에게 카톡 메시지로, 혹은 전화로 나 나름대로 설문조사를 해 보았다. 그냥 해보고 싶기 때문임으로.


사람이 어떻다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옳고 그름의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다.


관심! 관심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온타리오 주 총선에 대하여. 캐나다 땅에 살면서 그것도 시민권자로 법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여 세금 내고 의무를 다하며 사는데, 권리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하는 말이다.


 투표하셨어요? 몇 시간 밖에 안 남았어요, 안 하셨으면 어서 하셔야지요. 9시까지 예요. 그 말도 못하나. 


바빠요,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요. 그게 뭐 저는 솔직히 관심이 없어서 안 해요. 


21 명 중에 나온 6명의 답변이다. 3명은 시민권자가 아니라서 못했다고 했다. 신민당(NDP)을 찍은 사람은 3명이었고, 보수당(PC)을 찍은 사람은 9명 이었다. 


 캐나다 정치에 깊이 들어가서 왈가왈부 하자는 게 아니다.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정치를 알면 뭘 얼마나 알겠는가. 내가 아는바 사실 윌로우데일에 산다면 우리 한국인인 스탠 조를, 스카보로 쪽에 산다면 조성준씨를, 사는 지역이 이곳이 아니라면 보수당원에게 한 표 찍으라고 하는 마음에서였다.


 오늘 6월 7일은 케네디언으로 권리 행사를 하는 결정적인 날인데, 한 표 행사하면 가슴 뿌듯하지 않은가? 본인은 안다. 나도 캐나다의 시민권자로서 거룩한 한 표를 행사했다는 걸.


 이번 온타리오 주 총선에 한인 후보자로 나이 드신 조성준, 젊은 조성훈(스탠 조) 두 명이 보수당 주의원에 도전하여 당선되었다. 정말 정말 축하할 일이다.


 캐나다는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 우리 한인도 이 나라의 당당한 주인이다. 언제까지 손님처럼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는가. 의무를 다하고 산다면 권리를 왜 포기하나? 


 투표를 해야겠는데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분이 있었다. 한국 신문들을 봐요. 이 나라 정치에 대하여 아실 만한 분들한테 물어봐요. 어느 당에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왜 안 물어 봐요? 한인 주소록 보고 여기 저기 전화 걸어서라도 의견을 물어봐요. 왜 안 물어 보고 몰라서라며 투표를 안 해요?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며 귀찮고 관심도 없다는 말에 양쪽 귀가 막힐 뿐이다. 오호통재라!


 캐나다 뉴스를 보면 얼굴에 온통 수염을 기르고 머리에 색색의 터번을 쓴 인도인들의 연방장관이 여러 명인걸 보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솟는다.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장관들도 각 나라 사람들을 고루 뽑는 것을 보지 않는가. 캐나다의 얼굴 색깔들이 바뀌고 있다. 


주의원으로 시작하여 장관자리로 밀고 끌면서 해야 한다. 주수상은 물론 연방수상도 한국계가 나올 것은 이번 일을 보니 희망이 보인다, 꿈을 가지고 하면 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안 해서 그렇지, 발동만 걸리면 안 되는 게 없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관심 좀 가져 보세요. 관심이 사랑이잖아요? 정치라는 거대한 이름보다도 온타리오 주의 총선거에 투표한다는 자부심, 적어도 권리행사라는 것에 참여 한다는. Why not?
 아카시아 꽃이 만발, 주황색의 양귀비꽃이 활짝, 함박꽃이 함빡 터져 나오는 꽃 속에 캐나다를 이끌어 갈 자랑스런 한국인의 얼굴들이 화안(花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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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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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4
왕실의 결혼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 영국 왕실의 결혼으로 런던은 인산인해, 유니온 잭과 성조기가 함께 어울려 곳곳에서 휘날리는 모습들이 장관을 이룬다.


 영국하면 중절모자에 버버리 코트를 입고 우산을 든 영국신사가 떠오른다. 1년 365일 중 날 별러 쓸 날 없다는데, 비오고 바람불고 안개 낀 날이 거의인데 오늘 같이 좋은 날씨는 드물다는 영국, 태양은 찬란하고 꽃들은 만발하며 초록이 무르익어가는 2018년 5월 19일 토요일, 해리왕자(34세)와 메건 마클(37세)의 결혼식 날짜를 누가 잡았는지 참 잘 잡았다. 


하늘도 축복하는데, 나는 왜 이 결혼식을 보는 내내 가슴속에선 마구 비가 내리던지... 온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 세기의 결혼식(Prince Harry & Meghan Markle)은 놀랄만한 파격적 결혼이기 때문임으로. 


 세기의 결혼식이라니 왕실 전통과 역사에 따른 이토록 성대하고 웅장한 결혼예식은 세계에서 영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고 본다. 캐나다는 사실상 영연방으로 총독을 영국 여왕이 임명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영국이라면 한층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영국이 이번 해리의 결혼으로 완전 대목을 본다는 일에 나도 기꺼이 한 표를 보낸다. 


영국의 왕세손 해리 왕자(Prince Harry)! 사춘기가 되기 전 아직은 애기 티를 벗지 못한, 한창 엄마가 좋고 엄마 없으면 못 산다는 나이 12세, 내 아들도 12세 때 학교 가려면 엄마 젖을 꼭 한번 만지고 가야만 했었다. 인간미 넘치는 해리 왕자가 12세 때 비운에 숨져간 엄마 다이애나를 가슴에 안고, 불안했던 사춘기와 방황했던 청년시절을 돌이켜 볼 때, 3년 연상인 메건 마클을 만나 어쩌면 자기를 포근히 품어줄 그리운 모성애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겠나 하는 나의 추리다. 


메건은 태어나서 35년여 자기의 힘들었던 인생을, 해리는 가슴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슬픔들을... 둘은 만나서 결혼까지 2년여,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겠나.


 그들의 공통점은 마음고생들을 많이 하고 살아왔다는 점, 아프리카에 봉사하러 다니는 일, 인권과 환경문제, 사회운동과 봉사활동, 패션과 음식 등이 그들은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반항하며 방황하고, 왕자도 싫어 전쟁터로 마리화나도 입에 물어 보고, 외롭고 슬퍼 아프리카에 가서 검은 아이들과 부둥켜안고 울어 보기도, 메건을 만나니 미국 외국인, 흑인 혼혈녀, 이혼녀, 여배우, 연상녀이나 이러한 여건 등을 초월한 결혼을 하겠다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보통 가정에서도 허락하기 힘든 이 결혼,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 할머니는 20년 전 다이애나비 사건으로 국민들이 왕실폐지론까지 등장했던 일을 기억했던지, 메건 마클을 왕세손빈으로 맞겠다는 혁신 내지는 파격적인 공식 허가를 했다.


메건은 일리노이주의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연극과 국제관계학을 졸업, 레드카펫과 난민캠프를 오가며, 2006년 CSI/ NY 에 출연하여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2011년 법정드라마 ‘슈츠’에 출연하여 대박을 터트리면서 2011년에 영화 프로듀서 트레비 엥겔슨과 결혼, 2년 후 2013년에는 자녀 없이 이혼, 항상 멋진 패션 센스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클래식+ 우아+ 자연스러움 = 록 스타일, 드라마 “슈츠”를 찍으면서 배우로서 남의 인생도 살아보며, 토론토에서 드라마를 찍었다는데, 그래서 더 정이 간다. 그 후 여성 인권 운동가로 르완다에 깨끗한 물 공급하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일 시작, 아프카니스탄에 가서 미군들을 격려한 용감한 경력도 있다. 


 메건의 웨딩드레스는 프랑스 패션 명품 메이커인 지방시가 만든 것으로 긴 팔에 심플, 긴 면사포 끝에만 꽃무늬가 있었다. 신부 입장에는 친정아버지가 데리고 입장해야 하는데, 친정아버지가 안 왔으니 누가 신부를 데리고 들어가나? 메건 엄마가 데리고 들어간다? 어쩐다? 말이 있더니 해리의 아버지 찰스가, 즉 시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가다니... 이것 역시 파격 아니고 무엇인가? 


캐나다 CTV 앵커 벤 멀루니의 7살 쌍둥이 두 아들이 시동(侍童)으로 면사포를 들어주는데, 앞니 빠진 것도 너무 귀여웠고, 해리의 형 윌리암의 아들과 딸도 신부 들러리로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천진스럽고 귀여웠다. 그 아이들이 무엇을 알까.


 흑인 혼혈 메건을 의식해서인지 결혼식 설교도 미국 성공회 주교 흑인 신부가, 흑인 위주로 편성된 합창단이 우리의 귀에 익은 음악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 합창을, 합창단 지휘자도 흑인, 첼로를 연주하던 소년도 흑인, 검은 얼굴의 군인들, 기자들이 흑인들에게 인터뷰하는 것까지 흑인 일색이다. 이젠 영국 왕실에 흑인이 들어갔으니 백인 전통을 앞세운 영국도 ‘열린 영국’이라는 또 다른 닉네임이 붙었다. 


 메건은 결혼식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은 영리하고 똑똑하게 생겼다. 화장도 화운데이션을 진하게 바르지 않아서 피부 원래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여 자연스러웠는데, 사진을 늘려서 보면 피부의 죽은 깨나 기미 같은 거무스름한 것이 다 보여 솔직함을 드러낸 듯, 감출게 뭐 있느냐? 어차피 보일 것 다 보였고, 알릴 것 다 알렸는데 화운데이션으로 덮어 봤자다 하는 나의 해석이다. 눈 화장만 또렷하게 해서 더 똑똑하게 보였다.


면사포를 쓰고 다가오는 메건을 보고 해리는 “야 진짜 예쁘다, 나는 행운아야”그 소리를 메건의 엄마는 들었다. 


 메건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날이 올 줄을 꿈이라도 꾸었겠나, 아니 어쩌면 꾸었을지도 모른다. 해리왕자와의 결혼으로 메건은 서식스 공작부인이 됐다. 명품 메이커 버버리에서 샀다는 연두색 투피스와 연두색 모자를 단정히 쓴 1956년생 메간 엄마도 자기에게 이런 감사가 넘치는 날이 올 줄을 상상이나 했었겠나, 흑인 엄마가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딸 메건이 영국의 왕실로 시집가다니... 역사적인 감격의 순간, 딸이 남편 잘 만나 신분이 수직 상승하는 것을 보는 엄마의 눈물 어린 눈은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는 듯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메건은 당찼다, 해리가 있음으로.


 결혼식의 끝 순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애국가라는 영국 국가(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를 모두 일어서서 부르는데 여왕만 안 부른다. 결혼식을 마치고 해리와 메건이 축하객을 향하여 나가는데, 찰스가 사돈 부인인 메간의 엄마 손을 붙잡고 신랑신부의 뒤를 따라 가는 장면을 웃으면서 보았지만 가슴 메임을 감출 수가 없다. 메건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찰스 심정은 어땠을까.


 해리야! 메간아! 이제는 오랜 방황 끝내고, 새로이 시작하는 너희들 인생에, 아프고 배고프고 공부 못하고 물 없어 고생하는, 지구촌 구석구석 찾아 다니며 물심양면으로 둘이 좋아하는 봉사 열심히 하면서,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는 인생으로, 영국의 국화 장미꽃처럼 아름답게 살거라.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 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1883년에 만들어졌다는 왕실 마차, 4 마리의 백마가 끌고 가는 뚜껑 없는 행복한 위딩 마차가, 축하객들의 환호 속에 해리와 메건은 손을 흔들며 5월의 푸른 하늘을 힘껏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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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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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불가근불가원” 이라. 전에 아버지가 이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관계란 너무 가까이 해도 안 되고 너무 멀리 해도 안 된다는, 거리를 말함이다. 


 불가근불가원의 어원이 참새들한테서 온 것이라 하니 참 재미있다. 가까이 가서 가만히 보면, 참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다가 특히 전깃줄에 앉을 때, 서로 어느 정도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은 새들이 날 때 서로 날개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새는 날개가 생명인데, 부딪치면 날개가 부러지든가 털이 빠지든가 상처가 나게 될 것임으로. 참새들은 이런 진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참새들한테서도 배울 점이 있다니 참 고맙고 귀여운 새들. 


 고슴도치도 서로 날카로운 털을 가졌기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를 찔러서 아프고 떨어져 있으면 춥고 쓸쓸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모여 살아간단다. 
짐승이나 개미, 벌 등 미물들한테까지도 자세히 알고 보면 배우고 감탄할 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진리를 어찌 알았을까? 서로 사는 길을 터득했기에.


 인간(人間)이란 한자도 사람 인(人) 자에 사이 간(間)을 쓰는 것을 보면 사이가 중요함을 볼 수 있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 즉 불가근불가원이란 말은 여기에 해당이 되고, 사이가 좋다, 관계가 좋다는 말은 거리유지를 적절하게 잘 하고 있다는 말로도 풀이가 되겠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너무 친해서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다 보면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에 의견 충돌이 생길 수 있고, 기대가 어긋나 결국엔 싸울 수가 있다. 친하다 보면 어떤 비밀이라도 다 털어 놓고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임으로, 결국엔 상처 받고 상처 주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보는데,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오호 통재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싸울 일이 있겠나.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사랑도 괴롭고 미움도 괴롭다며 그러니 사랑이고 미움이고 너무 집착하지 말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수행자의 길이니라. 


 그 길은 법정 스님이나 가는 길. 우리가 사는 속세에는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어 세월 보내기에는 이곳만큼 좋은데도 없거늘. 친구처럼 좋은 게 어디 있나, 콩 한쪽도 나눠먹는 친구, 항상 함께 있고 싶은 친구, 친구! 친구! 친구에 대한 노래도 많고, 대신 죽어줄 수 있는 하늘같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나 친구간의 의리, 명언도 많다. 길은 잃어도 친구는 잃지 말라, 부모 팔아 친구 산다, 친구가 그토록 좋거늘. 


 프랑스의 화가 밀레와 친구 루쏘의 아름답고 풋풋한 우정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관포지교,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다는 금란지교, 나를 알아주는 절친한 친구가 죽었다 해서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 등, 우리에겐 알토란같은 소중한 우정이 있어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밑거름도 된다는 사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았다. 한국의 탈렌트 김혜자와 김수미의 우정, 김수미가 우울증을 겪으며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 위에서 쩔쩔 맬 때, 김혜자가 아프리카에 보내려던 재산을,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하고 통장을 건네주어 친구를 구해낸 도타운 우정, 적어도 이런 우정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오늘 죽어도 한이 없겠다. 내가 김혜자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 가진 것은 없어도 어쨌든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불가근불가원이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기찻길처럼 유지해야 하는 간격, 그 간격 유지가 안 될 때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 지혜와 인내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참새만도 못한 모습의 나를 보게 된다. 언제나 성숙한 모습을 지니려나.


 사는 동안 어쨌든 친구와 함께 가련다, 왜 혼자 가나? 만나지 않는 영원한 기찻길처럼 가면 되지 않겠나. 아버지가 불가근불가원이란 말씀을 하시면서 꼭 따라 붙는 귀감이 되는 말씀이 있다. 


“조금 외로운 게 낫다, 외로 우면 책을 읽고 배우는 데서 즐거움을 찾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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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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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9
2018-04-20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도 가고 싶은데. ”


“남자들끼리 만나는데, 집에서 쉬지”


남편의 친구가 모닝커피하자고 만나자는 전화를 옆에서 들었다. 분명 S 다.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급히 양치질만 하고 핸드백을 메고 앞장섰다. 이 중국인 S 이야기는 전에도 언뜻 들었다. 꼭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언젠가 만나리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왔다, 드디어.


오전 8시 반, 팀 호튼,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40세 정도로 젊어 보이는 중국인 S, 머리는 짧은데 새집도 지었다. 이 분은 만나자 마자 나에게 반갑다며 악수를 청한다, 손이 따뜻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자기 딸은 수영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수영장에 데려다 주고 수영하는 동안 우리와 모닝커피 한잔 하자고 했던 것이다. S의 딸은 현재 10세, 이 부부는 결혼해서 20년이 넘도록 애기가 생기질 않아서 부부가 상의한 끝에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10년 전에 중국에 가서 입양해온 딸이란다.


 말끝마다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의 딸, 나의 딸)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S의 눈에는 이 딸이 내 자식이라고 가슴에 계속 새겨가며 말함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분은 자기 자식을 낳아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자기가 낳은 친 자식이 있다면 그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딸을 입양해 와서 키우는 일이 자기 부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한다. 자기 부부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형제, 조카들까지 모두 행복하다고 한다. 


핸드폰에서 딸의 사진들을 보여 주는데, 복스럽고 정말 예쁘게 생겼다. 아주 똑똑하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수영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스케이트도 잘 타고, 노래도 잘 부르고, 피아노도 잘 치고 못하는 게 없다고 한다. 그 부부의 인생에는 오로지 이 딸 밖에는 없다고 한다. 이 딸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목숨을 건다고 했다.


세상에 피가 섞였나? 살이 섞였나?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입에 붙은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는 물어 보았다. 이렇게 정성과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이 딸을 키웠다가 나중에 배신을 한다든가 못된 짓으로 나온다면 그 상처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 분은 “나는 그런 것 생각해 본 일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 우리는 너무 너무 해피하고 딸도 해피하고, 감사와 만족이 넘치게 산다”며 뭘 더 바라느냐에 힘주어 말한다.


나 같으면 속으로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따지고 망설이고, 나중을 미리 보면서, 마지막엔 좋은 꼴 못 볼 텐데, 결국엔 부정으로 끝나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S는 계산하지 않는단다. 무슨 계산이 필요하냐고, 내가 딸 때문에 행복하다는 데에만 초점을 둔 삶, 참 심플했다. 우리 같이 복잡하지 않은 것 같다. 대륙성 민족이라 그런가? 나는 S에게서 한없이 넓은 중국 대륙의 광활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는 듯, 가슴이 쫙 펴지는 또 다른 성숙한 긍정을 보았다.


S의 마음과 그 정신이 부러웠다. 전에 한인양자회 모임에도 가보았지만, 남이 낳은 애를 저토록 목숨 걸고 키우나?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경지에 사는 분들, 어느 별나라에서 온 사람들인가,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인가.


옷, 신발, 머리 모양 등 외모에 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단다. 허름한 잠바에 작업복 바지, 마당 일하다 그냥 신고 나온듯한 신발 등, 오늘도 수수 털털한 모양으로 나왔다. 딸 교육 시키고, 아내와 딸과 세계 어느 곳이든 여행을 즐기는 일 외에는.


자기 부부와 딸은 잡채, 불고기, 갈비, 김치, 깍두기, 감자탕 등 한국음식을 되게 좋아하고, 어느 나라 음식이든 다 좋아한다며 다음엔 함께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한다.


부모님이 정통 중국인이니 그도 중국인이지만, 캐나다에서 태어났다는 S. 아마도 부모의 영향인지 영어가 중국식 악센트가 들어갔지만, Yes, No가 분명한 당당한 의사 표시가 딱 맘에 들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우리 인생 아닌가. 보람 있는 일을 한번이라도 하고 가야지 않겠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감동의 주인공, 용감한 사나이, 현재 62세, 20년 차가 넘는 현직 치안 판사. ‘마이 다럴!’ 이 한마디가 S의 인생 자체다. 참으로 존경심이 뜨겁게 일어난다. 진짜 멋지다.
말끝마다 입에 붙은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는 보았다. 그의 가슴이 사랑의 불꽃으로 활활 타고 있음을. God Bless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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