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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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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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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5
2018-11-02
손녀딸과 아폴로

 

 일요일 오후 3시에 쇼잉이 있어 나갔다가 끝나자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동네가 맘에 들면 집이 맘에 안들고, 집이 맘에 들면 동네가 별로고, 둘 다 마음에 들면 가격이 맞지 않고. 그래서 오늘도 허탕이지만 혹시 손녀딸이 아직도 있을까 기대하고 문을 열 때까지 아폴로의 짓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집안으로 들어가 거실 쪽을 내려다보니 “Jamie is gone”하며 집사람이 소리친다. 딸네가 와서 아기를 데려간 거다. 허탈하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내려가니 집사람은 소파에 누어있고 아폴로는 그 밑에 바닥의 자기 담요에 누워있다. 나는 안마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코고는 소리가 자잘하게 들려온다. 듀엣으로, 집사람과 아폴로의 가냘프게 코고는 소리. 


 지난 월요일인가 딸네와 같이 저녁을 먹는데 오는 토요일에 손녀딸이 생애 첫 번째로 부모 품을 떠나 오버나잇을 하는 날이란다.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아기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놀다 올 거란다. 그래 그래라 우리는 편하지 뭐. 이런 심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집사람은 은근히 시샘을 하는 눈치다. 그래도 한다는 이야기가 “너의 시어머니가 힘들겠다”.


 그러더니 토요일 오후에 딸과 사위가 손녀딸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오더니 가운데 방에 아기침대를 갖다 놓고 장난감이며 책, 옷 그리고 먹을 것 등을 잔뜩 갖다 놓았다. 시어머니가 감기에 잔뜩 걸려 우리 집에 아기를 맡긴다고 오전에 모녀간에 이야기가 있었나 보다. 딸 품에 안겨있는 아기가 더욱 초롱초롱하고 또릿또릿한 게 이건 내 손녀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조물주의 솜씨에 감탄밖에 나오질 않는구나.


 처음 우리 집에 아폴로가 들어올 때 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인터넷을 검색하니 거기에 절대로 아기와 또는 다른 동물과 Bull Terrier는 같이 있으면 안 된다고 써 있었다. 그래서 손녀딸이 태어날 즈음 딸과 집사람에게 절대로 아폴로와 손녀딸만 같이 있으면 안 된다고 누차 강조를 했다. 그래서 아기를 주로 자기 시어머니에게 맡기던지 아니면 딸네 집에 집사람이 가서 봐주곤 했다. 


 가끔 손녀딸이 우리 집에 오게 되면 아폴로가 자기도 아기를 보겠다고 점프를 하기도 하는데 손녀딸은 아폴로 얼굴이 자기 앞에 있으면 기겁을 하고 손으로 싫다고 밀어대기도 하고 머리로 도리질을 하기도 한다. 아폴로는 좋다고 따라 다니고 아기는 무섭다고 또는 싫다고 피해 다니는 것이다.


 우리 집은 Side-Split 이라 계단이 몇 개 되지는 않지만 층마다 계단이 있어 손녀딸이 그쪽으로 가면 우르르 몰려가서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뒤에서 받쳐준다. 계단 옆에 붙어있는 전등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기도 하고, 계단에 붙은 난간을 잡고 몸을 당겨 선채로 계단을 오르기도 내려가기도 하는데, 아폴로가 아기 머리에 코를 들이대면 기겁을 한다. 그래서 내가 아폴로를 톡 치면 주둥이를 찌그리면서 나에게 으르렁댄다. 


 특히 집사람이 밥을 먹이려고 김에다 싸서 아기 입에 넣어주면 아기는 눈을 크게 뜨고 맛있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좋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아폴로의 입이 김에 닿았다. “아이고 못살아” 하고 집사람이 소리쳐도 아폴로는 주저 않고 나는 아폴로를 파리채로 한대 때리고, 집사람은 그러는 나에게 눈을 흘기고…. 그리고 새김을 가져다 주고 먹던 김은 아폴로 차례가 된다. 아폴로가 의도한 대로다. 


 오후 3시 반부터 10시경까지 그렇게 지내다 아기를 침대에 뉘여 재우고 우리도 그만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났는데 아기가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 장난감 강아지를 꼭 껴안고 있더란다. 할머니를 보더니 강아지를 던지고 두 손을 벌려 안아달라고 하더란다. 날 보더니 씨익 웃는다. 젊었을 때는 여자의 웃음에 끄떡도 안 했었는데, 손녀딸의 웃음에 그만 넋이 나가버리는구나. 


 단 하루 아기를 봤을 뿐인데 집사람에 아폴로까지 넉다운이 되고 말았다. 평상시에는 공을 물고와 나랑 놀자고 졸라대던 아폴로가 방바닥에 퍼져 일어날 줄을 모른다. 손녀딸이 가고 나니 괜히 혼나기도 하고 매도 맞은 아폴로에게 무척 미안하다. 저렇게 퍼질 정도로 놀아줬는데….


 딸네가 와서 아기를 데려가면서 너무너무 편하고 좋았다고 이제 주말마다 아기를 데리고 온다고 했단다. 이거 좋아해야 하나,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하나, 이것이 문제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68295
8045
2018-08-23
백인? 한국인?

 

 

 주길씨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분명히 자기 방이었다. 옆에서는 아내가 곤하게 자고 있다. 한번 자면 푹 자는 스타일이라 중간에 깨는 일 없이 잘 잔다. 그런데 뭔 꿈이 그런 꿈이 다 있단 말인가?


 꿈속에서 친구들을 만나 반갑게 다가가며 “어, 잘들 지냈니?” 하고 분명히 한국말로 인사를 했는데 그것이 어줍잖은 영어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런 그를 친구들이 멀거니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손가락질 들을 해가며 자신을 피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떨어져 어디를 다니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기 얼굴이 아닌 백인과 자기얼굴을 섞어 놓은듯한 이상한 괴물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깨어난 것이다.


 주길씨는 이민을 온지40년이 넘었다. 일종의 원주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민 온 70년대에 왔다. 그때만해도 한국사람이 많지가 않아 한인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가웠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주위에 한국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주길씨 주위에만 해도 한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길씨는 맨 처음 집을 살 때 한국인 부동산과 변호사를 고용했었는데 어느 날 사소한 잘못된 점이 있어, 대판 싸우고 나서 그때부터 무조건 캐네디언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다. 회계사와 보험설계사 그리고 자동차 세일즈맨까지도 모두 캐네디언들을 고용한 것이다.


 한번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어눌한 한국말로 설명하는 한국인 전문인보다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해주는 외국인 전문인이 훨씬 신뢰가 가는 것이었다. 물론 어떨 때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자기의 영어가 짧아 대충 넘어간 적도 있었다.


 또 그들은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좀더 빠른 영어로 해대니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알아 들은 척하며 실실 웃었고 그래서 큰 문제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전문인을 찾을 때는 무조건 외국인을 고용하라고 권했다.


 그런데 2년 전에 집값이 한참 오를 때에 외국인부동산에게 리스팅을 주었다. 며칠 후 오퍼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3만불 정도 적게 들어왔는데, 사인을 거부하자 약간 안색이 굳어지며 “Don’t lose this chance” 하며 사인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사인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비슷한 집이 6만불 더 비싸게 팔려 한동안 속이 상했었다. 수임료도 한국인 에이전트보다 1%나 더 주었건만, 그리고도 찝찝했지만 집을 살 때 그에게 부탁했고 그가 소개시켜주는 변호사를 고용했다. 


 그런데 며칠 전 같은 구역의 조 집사가 생명보험을 들으려 한다며 혹시 더 좋은 딜이 있는지 물어왔다. 그래서 자기 생명보험 담당하는 George 를 소개 시켜주며 무조건 하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물어보니 모든 조건이 George 것보다 한국인이 제시하는 것이 좋다며 한국인과 계약하려고 한단다. 그래서 George 에게 전화해 좀더 좋은 딜을 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제 커피샵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한국말이 들려 우연찮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역시 엽전들은 시끄럽군 하면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 보험계약 하나 하려는데 어떤 xx가 백인을 쓰라고 한 거야, 자기는 무조건 백인 아니면 안 한다고 하면서. 그래서 커미션 깎아주고 난리 끝에 계약 한 건 했네. 그런 놈들 한국말도 쓰지 말고 외국인으로 얼굴도 성형해야 돼” 


주길씨는 마시던 커피를 들고 얼른 커피샵을 나와버렸다. 하루 종일 보험중개사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아 심란하게 지내다, 저녁때 집에 돌아와 술을 몇 잔하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악몽을 꾼 것이다. 주길씨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안주길, 이제 제발 너무 오지랖 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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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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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한여름날의 일기(2)

 

(지난 호에 이어)
 좀 전에 헤어진 손녀딸 이야기를 하며 Hwy 401에 들어섰다. 운전하면서도 손녀딸 모습이 아른아른 거린다. Hwy 427로 들어서는데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차선과 합쳐지는 곳에 갑자기 연기를 품어대는 승용차가 달리고 있다. 차들이 꽤 많아, 어- 어- 하며 모두들 서행하는데, 내 앞쪽으로 차 바퀴 하나가 빠져 나와 굴러가고 있다. 앞에도 차, 뒤에도 차인지라 긴장하며 천천히 내려가는데 빠져 나온 차 바퀴는 중앙선 분리대에 부딪힌 후 그곳에 멈추었다. 


 그러니까 차의 바퀴가 빠지자 쇳덩어리가 고속도로 콘크리트에 부딪히면서 연기가 난 것이구나. 잠깐 눈을 바퀴로 돌린 사이 연기 나는 차는 보이질 않는다. 보통은 차 바퀴가 빠지면 차를 세워야 맞는데, 그 차는 거의 전속력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뺑소니 차? 좌우간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만나는 장소에 도착해 식당 ‘코비’로 들어서니 J가 반갑게 맞아준다. 보석디자이너 이면서도 부모님 도와 열심히 식당을 운영하는 처녀, 예쁘고 능력 있고 또한 사람 좋은 J를 토론토의 총각들은 모르나?


 홀 중간쯤에 앉아 계신 S박사님 부부를 만났다. 나는 그분들과 이틀 전에 같이 골프를 쳤지만 우리 집사람은 그분들과 4, 5년만의 만남이라 무척 반가워했다. 내가 S 박사님을 알게 된 것도 벌써 10여 년이 넘은 것 같다.


 박사님이 캐나다로 떠나기 며칠 전에 머리 염색을 하다 얼굴이 퉁퉁 부어 고생한 이야기, 양쪽 집에 태어난 손주들의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다 먹고 나자 박사님이 뒤에 숨겨놨던 선물을 전달해 주신다. 


항상 만날 때마다 한국에서 무언가를 가져다 주셨는데 이번에는 얼굴로 고생하는 바람에 그럴 여유가 없었단다. 우선 우리 손녀딸 돌 선물, 우리 부부에게 최고급 공 선물, 그리고 사과 한 박스. 나는 항상 아무것도 준비를 못했는데 이분들은 만날 때마다 뭔가를 주고 싶어하신다.


 식사를 끝낸 후 옆의 제과점으로 옮겨 팥빙수를 시켜놓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S박사님은 한국에서 의사생활을 하시다 지금은 프라자 등을 짓고 관리하는 사업을 하신다. 토론토와 밴쿠버에 집이 있었는데, 토론토 것은 몇 년 전에 팔고 밴쿠버 것만 갖고 있다. 그 콘도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으나 그런 미담은 감춰둬야 맛이고, 박사님 부부가 원하지 않을 것 같아 우리 부부만 공유하고자 한다. 


 또 한 시간여 이야기 꽃을 피우다 아쉽지만 헤어졌다. 박사님네는 뉴욕에 갔다가 다시 밴쿠버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한다. 던다스길을 타고 동쪽으로 달리는데 딕시와 Hwy 427 중간쯤에서 갑자기 앞차가 오른쪽으로 확 핸들을 꺾어 앗! 하고 나도 갑자기 따라 했는데 시커먼 쓰레기봉투가 가운데 차선 중간에 놓여있다. 그런데 또 앞쪽에 쓰레기봉투 서너 개가 길에 널브러져 있어 요리조리 피하면서 무사히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 아폴로와 산책하며 오늘 하루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사람들만 만난 대신에 운전중인 도로에서 연기 나는 트럭과, 차에서 빠진 바퀴와 길에 널린 쓰레기 등을 경험한 위험한 하루를 보냈다. 


앞으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날도 안전한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모세오경 중의 하나와 이름이 같으신 S박사님 부부, 고마웠고 복된 여행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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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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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5
2018-08-12
한여름날의 일기(1)

 

2018년7월 29일 (일요일) 맑음


 7월 헌금위원 임무가 오늘로 끝났다. 좀더 젊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인사해야 인사를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텐데 나이가 든 우리가 서서 인사하려니 좀 쑥스러운 생각이 든다. 미안하기도 하고.


 교회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집사람이 딸에게 전화를 했다. 시간이 있어 놀러 가려는데 괜찮겠니? 저녁때는 시아버님의 칠순 생신을 하러 가야 하니 오셔서 그때까지 노시다 가세요. 복권 맞은 기분이다. 두 시간 정도 손녀딸과 놀 수 있겠구나. 


신이 나서 Hwy401을 타고 Allen으로 들어서려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차가 막혀 움직이질 않는다. 도로 옆에 사인을 보니 Allen Rd. 남쪽길이 닫혔단다. 두 시간 밖에 없는데, 이리저리 돌다가 무려 사십 분을 허비하고 딸네 집에 도착했다. 혹시나 손녀가 자고 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며 문을 두드리려는데 손녀딸의 우는 소리가 난다. 자고 있지 않은 건 확실한데 그런데 왜 울지? 


 사위가 문을 열어줘 들어가 보니 기저귀를 갈고 있으니 싫다고 소리를 지른다. 음 그래, 척척한 기저귀 차고 있는 손녀딸 안는 것보다 뽀송한 기저귀차고 있는 손녀딸 안는 것이 피차에 좋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더니 방긋 웃는다. 세상에 어떻게 아기가 저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몇 발자국씩 제법 걷는데 나에게서 할머니에게 갈 때는 손을 든 상태에서 한 열 발자국 정도를 아장아장 걸어 똑바로 가서 할머니에게 팍 안기는데, 할머니에게서 나에게 올 때는 한 다섯 발자국 정도 걷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걸어가 탁자에 가서 손 짚고 선다. 그리고 고개를 나에게 돌려 쳐다보며 웃는다. 할아버지를 약 올리는 건가? 약 올리는 손녀를 보며 헤벌레하고 웃고 있는 나, 너무 사랑스러워 꽉 안아준다. 이제 나도 성격이 많이 좋아졌구나, 약 올리는 사람을 포용할 줄도 알고.


 이제는 제법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도 알고, 이곳 저곳 걸어 또는 기어 다니며 참견하고 다닌다. 소파에 앉아 나와 잠시(나하고는 항상 잠시) 놀다가 아래로 내려가길래 어쩌나 보았다. 탁자 건너편에 할머니가 있으니 아마 그리로 가려나 보다. 그런데 탁자 밑에 길다란 막대기가 걸쳐있어 지나갈 수가 없을 텐데 하고 바라 보았더니, 막대기 바로 앞에서 우리가 포복하다 장애물 밑을 기어가듯이 고개를 바짝 숙여 머리를 방바닥에 대고 몸을 밀고 지나가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가서 안긴다. 


오마, 이건 예쁜 아기가 머리까지 천재 수준 아닌가? 그러다 잠시 할머니와 놀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에게 똑 같은 방법으로 건너와 소파를 잡고 일어선다. 금방 본 것인데도 신기해서 다시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여 머리를 바짝 바닥에 대고 몸을 밀고 지나가는 것, 그래 이제 너는 벌써 웬만한 장애물은 건너가는구나.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도 많은 장애물들이 있을 텐데 잘 지나가겠구나. 한참을 놀다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내 얼굴에다 입을 대고 뽀뽀를 해준다. 고맙다 손녀야, 미스코리아 뽀뽀보다 더 황홀하구나.


 꿈같은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Allen Rd. 선상 Hwy 401 근처에 큰 트럭 하나가 엄청난 연기를 내며 앞에 가고 있다. 혹시 폭발할 지도 모르니 빨리들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구경들 하는지, 연기 때문에 잘 안보여서 인지 앞차들이 천천히 가고 있다. 간신히 지나가는데, 우리 애들도 곧 이 길을 지나올 텐데 제발 안전하기를….


 집에 돌아오니 아폴로(우리집 개)가 아침에 교회 간 사람이 교회 끝나면 바로 오지 않고 왜 이제 오냐며 앞발을 들어 밀며 항의한다. 아폴로에게 밥을 주고 옷을 교회복장에서 평상시 복장으로 갈아 입은 다음 밖으로 나오자, 아폴로가 금방 들어온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 가냐며 멍한 표정으로 리빙룸 소파에 가서 앉는다. 미안하지만 약속이 있으니 어쩌랴.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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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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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말 더듬기

 

따르르르르릉… 오늘 퇴근을 하고 돌아와 맥주 한 캔과 땅콩을 가지고 컴퓨터에 앉았다. 유투브를 통해 이순신장군의 명량대첩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힐끗 번호를 보니 모르는 전화다. 


무시할까 하다가 시끄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통화버튼을 누르고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신인기 선생님 이시죠?” 하며 여자 목소리가 답을 한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다가오는 총선에 출마하는 한인후보 xxx를 찍어달란다. 하던 일을 방해 받은 터라 와락 짜증이 밀려오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죄송합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서 내 전화번호를 구했으며, 내가 여기 사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 그래, 그저께도 퇴근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딩동’하며 도어벨이 울렸다. 안방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현관 앞이 보여 블라인드를 살짝 밀며 내려다보니 왠 아주머니 한 분이 문 앞에 서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는 사람은 아니고 팔에 핸드백을 든 것을 보니 종교단체에서 전도 나온 사람 같기도 해 조용히 있었다. 


잠시 후 뭔가를 문 손잡이에 놓고 갔다. 차문을 열기 전에 한번 더 뒤돌아 보더니 차를 타고 떠나갔다. 잠시 후에 나가보니 한인후보 xxx 를 도와달라는 선전물이었다. 그냥 휴지통에 집어 넣었다.


인기씨는 이민 온지 거의 10년이 되었다. 아내와 6살 난 아들과 캐나다에 들어와 그때 바로 운 좋게 잡은 직장을 아직도 다니고 있고, 아내는 한인슈퍼마켓에서 캐셔로 일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축구부에 속해 운동도 무척 잘한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리더십도 있어 자기의 이름과 같이 인기가 짱이다. 


이민 와서 첫해에는 렌트 아파트에 살았고, 다음해 콘도를 구입했고, 아들이 커가면서 놀 땅이 필요해 콘도는 렌트를 주고 지금의 연립주택을 융자 끼고 샀는데, 지난 수년간 두 부동산 값이 많이 올라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인기씨는 이민 와서 한번도 한인회에 간 적이 없다. 아, 몇 년 전 월드컵 응원한다고 딱 한번 가봤는데, 주차장도 불편하고 전체적으로 좀 허접해서 실망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교회는 다니고 있으나 장로나 집사 이런 직책하고는 거리가 멀고 그저 가서 예배보고 행사에 가끔씩 참석하는 정도다. 


시민권은 5년 전에 땄으나 한번도 선거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물론 누가 자기를 대표하는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시의원, 주의원, 국회의원으로 나눠 있고, 교육위원까지 따로 있으니 웬만큼 공부하지 않고는 이 나라 정치를 알 수가 없다.


일곱시가 되니 아내가 퇴근을 하고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가 그날 한인슈퍼마켓에서 국회의원 한인후보 xxx를 밀어달라는 사인업 행사가 있었다며 “여보 그 사람 지역구가 마침 우리 동네니 좀 도와 줍시다” 하는 말에 가뜩이나 찾아온 아주머니에 걸려온 전화에 짜증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절대로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래도 같은 한국사람인데…” 하고 말을 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끊으며 “같은 한국사람은 무슨, 그 사람이 국회의원 되면 우리 밥 먹여주나? 귀찮기만 하지” 하고 좀 언성을 높이자 착하고 순한 아내는 “알았어요” 하고 순응을 한다. ‘예쁜 여자가 착하기도 하지’ 하며 흐뭇했다. 


그때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던 아들이 둘의 대화를 얼핏 들었다. “아빠 왜 그러세요?” “응 아무것도 아니야.” 아들이 조심스럽게 “아빠 민주주의는 우리가 모두 참여할 때 가능하다고 배웠어요.” “야, 네가 뭘 안다고, 좌우지간 정치는 짜증나네.” 하고 얹잖은 기색을 드러내자 아들도 입을 꾹 다문다. 항상 웃음이 넘치던 집안이 정치 때문에 좀 어색해진다.


아내가 밥상을 다 차려놓고 셋이 오붓하게 앉아 식사를 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인기씨가 아들에게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물어도 시큰둥 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 아까 정치 이야기 때문인 것이다. 아, 이놈의 정치가들 때문에 우리 집안의 화목이 달아났지 않은가. 내 다음에 전화 오거나, 찾아오면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아들이 숟가락을 내려 놓고 각오한 듯이 한마디 한다. “아빠, 새 학년이 시작되면 학생회장에 출마하려고 했는데 관둬야겠네요.” “뭐?” 그래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과대표나 학생회장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런데 ‘내 아들이 그 멋진 자리에 도전한다고? 역시 내 아들’ 하며 “아니 왜 관둬? 남자가 한번 마음을 먹었으면 밀고 나가야지” 


”아빠가 좀 전에 정치는 관여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그그그 그거와 저저저저 정치는 다다다다 다르지” 그 말 잘하던 인기씨는 생전 처음으로 그날 그 시간 말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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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804
8045
2018-07-14
리치몬드힐 동포 여러분, 넬리(Nelly Shin)를 도와주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부동산 브로커 김재기, 식당 운영자 정인정입니다. 


넬리 신(Nelly Shin)은 고등학교 교사를 하며 가수생활을 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교사로 LA 와 캐나다 빈민촌 등지에서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수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깨어진 가정의 회복과, 없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캐나다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정치에 입문하기로 마음을 먹고 연방보수당 리치몬힐 지구 후보경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동포 여러분께서 도와주시면 경선을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경선 날짜 발표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동포 여러분, 조금 번거롭더라도 조금 귀찮더라도 보수당에 가입하셔서 넬리를 밀어주세요. 그리고 댁의 자녀들에게도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가르쳐주세요. 지금 분쟁이 일어난 지역들의 핍박 받는 사람들은 결국 정치력이 약해서입니다. 정치력이 약했던 민족들의 핍박의 역사, 우리는 기억합니다.


정치가들은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나는 투표하지 않습니다. 정치에 관심 없습니다.” 이 말은 “나는 내 권리를 포기합니다, 내 운명을 당신이 결정하세요.” 하는 말과 똑 같습니다. 


연방 상원에 김연아 의원, 이번에 온타리오 조성준 장관, 조성훈 의원 뿌듯하지 않습니까? 이제 국회의원 Nelly Shin을 꼭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앞으로 여러분의 자녀가 정치에 입문한다면 국회의원 Nelly Shin이 큰 힘이 돼줄 겁니다.


저희는 우리의 일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무보수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고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세요. Nelly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분명히 여러분은 자랑스러우실 겁니다. 여러분의 귀한 한 표가 이민역사 50년 만에 첫 국회의원을 만든 것이니까요.


보수당 가입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꼭 도와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래 번호로 전화나 문자 또는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저희가 찾아 뵙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 연락주세요.


참고로 경선은 14세 이상 영주권자 시민권자에게 투표권이 있습니다.
www.facebook.com/nellyshin.rh (넬리의 facebook 입니다)


김재기 (Jaiki Kim) 416-997-7896 / [email protected]
정인정 (Injung Jeong) 416-889-0990 / [email protected]
신숙희 416-908-9716 /    [email protected]  

 


정인정, 김재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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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638
8045
2018-07-04
우리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지난 6월 7일 온주총선에서 우리 한인출신 주 의원이 두 명이나 배출되었다. 이제 온주의회에 그리고 연방상원에 우리 동포가 자리하고 있다.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고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직 우리 한인출신의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배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은 투표일이 결정이 되면 선거인 명부가 각 정당에 배부된다. 그 명부를 보면 우리 한인 유권자가 몇 명 있으며 누가 투표했는지 정확히 나온다. 투표용지를 받는 순간 자동으로 컴퓨터에서 그 사람 이름이 빠진다. 그러면 실시간으로 누가 투표를 했는지, 몇 명이 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있다. 물론 누구에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번 주총선이 끝나고 나온 비공식 발표를 보면 윌로데일에 사는 한국출신 유권자가 7500명 정도 되었단다. 그리고 35%를 약간 밑도는 투표율(평균투표율 58%)을 보였다고 한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집을 찾아가고 전화를 해서 얻은 투표율이다. 그래도 그 전 선거의 투표율 18%보다 훨씬 더 잘 나왔기에 고무적인 일이다.


 정치가들은 표에 약하다. 우리 한인들의 득표율이 저조하면 우리들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인구는 얼마 안돼도 투표 결집력을 보여주는 민족 사람들의 일에 신경을 써준다. 한국인들이 숫자에 비해 주류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는 이유는 투표율 부재에 있다. 골프는 점수로 말하고, 경제는 돈으로 말하고, 정치는 표로 말한다.


 캐나다 국방장관이 시크교도 일 정도로 다른 민족들은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정부 주요부처에 앉아있는데 우리 한인들의 정치력은 인구나 경제력에 비해 무척 미미하다. 유태인들은 자기들의 권익을 위해 엄청난 돈을 정치가에게 기부하며 자체적으로도 많은 정치가들을 배출한다. 특히나 정치력이 약해서 히틀러에게 당했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내년에 연방총선이 있다. 거기에 넬리 신(Nelly Shin) 이 Richmond Hill 지구 보수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며칠 전 첫 후원회를 한식당에서 가졌다. 자리가 다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왔고 좋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인구 분포를 보면 한인이 모두 나와 넬리를 찍는다 해도 이란사람이나 중국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러나 경선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2015년 연방자유당 윌로데일 경선에 한인후보가 뛰었다. 이란계 후보는 세 명이 나왔다. 첫 투표와 두번째 투표에 일등을 한 한인후보가 세번째 투표에서 아홉 표 차이로 후보자리를 이란계 후보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란계 후보는 당시 불어온 자유당 바람을 타고 무난히 당선돼 열심히 지역구를 챙기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때 이란계 후보가 얻은 표가 약 천여 표 정도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묻는다. “Nelly Shin 이 당선되면 나에게 무슨 이익이 옵니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그 국회의원에게 배당되는 인원과 예산이 있다. 그 인원을 우리 동포들로 채우고 월급을 주면 우선 고용창출에 도움이 된다. 또한 우리 후손 중 누가 정치를 하겠다면 그들이 비빌 언덕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자손 중에 누군가가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안 나온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는가? 한 알의 밀알이 있어야 밀이 자라는 것이다.


 또한 정치가들은 일반인들이 얻을 수 없는 고급정보를 먼저 알 수가 있다. 그것으로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가 발전하는데 이용할 수가 있다. 몇 년 전 한인회관 재산세 문제만 해도 당시에 시의원이라도 있었기에 무난히 해결될 수가 있었다. 각 교회가 Zoning 등 문제에 봉착했을 때 정치가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사례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주소록을 보고 전화로 도와달라고 하면 열명이면 대여섯 명이 관심이 없다고들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던 이승만 대통령의 말씀이 귓속에서 맴돈다. 우리가 살려면 뭉쳐야 한다.


모두들 관심을 가져주고 조금 귀찮더라도 도와준다면 이민 50여 년 역사에 첫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가 있는데…

 

“동포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참고로 경선의 투표권은 14세 이상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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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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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
아버님

 

‘아버님’ 이란 소리가 들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난 목요일 MR 교회 골프 모임에 초대받아 갔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연습그린에서 퍼팅 연습을 하던 중 그 소리를 들었다. 연습그린에는 퍼팅연습을 하면서 간간히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G집사와 백인친구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아버님이란 칭호는 나를 부르는 칭호임이 틀림없다. 갑자기 주위가 약간 어두워지며 엄숙해졌다.


아버님이라면 주로 친구의 부친이거나 또는 연로하신 어른을 지칭하는 말인데, 거기에는 친밀감과 존경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가 행실이 방정치 못하다면(다행히 내 친구의 아버님 중에는 그런 분들이 한 분도 안 계시다) 안 부르면 안 불렀지 아버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를 불렀던 기억이 없고, 그저 그분의 모습만 희미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살아 계셨다 하더라도 그분에게 내가 아버님이라고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라고 불렀겠지. 그리고 어떤 이들은 자기의 장인을 아버님이라 호칭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장인 어른’이라 불렀고, 그분이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살갑게 부르고 하던 기억은 없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아버님’이라 호칭했던 분이 두 분이 계시다. 한 분은 친구 장보고의 아버님이시다. 총각 때 장보고네 집에 들락거리면서 많이 뵈었는데 한국에서 여고의 서무주임을 하시다 이민 오신 분이라 좀 꼬장꼬장한 성격이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인가 우연히 어머님을 불루어 한국식품에서 뵙고 댁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두 분이 사시는 집을 들어가게 되었다.


문을 열면 바로 복도 끝으로 방이 보이고 왼쪽으로 돌아야 거실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안에서 돈다발을 들고 세시다 갑자기 당황해 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잠시 후 거실로 나오셔서 반갑게 맞으시며 우리 어머니의 안부도 물으셨고 같이 차 한잔 하셨는데, 그때가 내가 그분을 뵙는 마지막이었다. 그분이 돌아가신 지도 벌써 13년이 되었다.


또 한 분은 작년에 돌아가신 J선생님이신데 총각 때부터 만나 나에게, 아니 우리 부부에게 진심을 다해 대해주는 L형님의 장인이자, 내 결혼식 때 들러리 서준 친구 J의 아버님이시다. 20여 년 이상을 암으로 고생을 하셨으나 꿋꿋한 정신력으로 병마와 싸우셨으며 그 와중에서도 항상 뭔가를 배우시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그분을 통해 배웠다. 내가 부동산 업을 시작하자 많은 도움을 주셨고, 수시로 불러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포기를 하거나 안락한 것을 찾는데 이 분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시려 했고, 뭔가를 성취하시려 했다. 새해가 되면 항상 새해 인사를 드리곤 했었는데, 돌아가시기 이삼 년 동안은 소식을 못 드리다가 부음을 듣고 많은 후회를 했다.


‘’아버님은 무슨,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마’’ “아니 그럼 친구 장인을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 


사위 존의 직업이 주택감정사였고, 결혼할 당시 G 집사의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물론 G집사가 존보다 나이는 10년 정도 위일 것 같은데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나하고 나이 차이는 15년 정도가 날 텐데 아버님이라 부르는 건 좀 과대존칭이 아닐까? 


아버님이라고 불리고 났더니 말도 가려서 하게 되고 여태껏 건들거리던 행동도 조심하게 된다. 내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데, 조심조심하면서 살려니 영 어색하다. 다음에 G집사를 만나면 호칭을 바꿔달라고 부탁을 해야지. 그러면 위에 있는 “……………” 이 안에 뭔가를 채워야 하는데 무엇으로 채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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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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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2
일주일 일기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한인회 이사장님인 공장헌 형님께 문자를 보내 ‘비가 오는데 골프대회를 강행하느냐’고 물었더니, 오후에 비가 갠다는 예보가 있고 해서 강행을 한단다. 컴퓨터를 열고 고객들에게 새로운 매물들을 보낸 후 실버레이크(Silver Lake) 골프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토론토한인회 골프대회를 하는 날. 회사대표로 4명이 나가게 되었다. 버디 3개에 82타로 2등을 했는데, 이건 순전히 잘 치는 사람들이 불참한 덕을 톡톡히 본거다. 경품을 뽑는데 끝에 까지 하나도 안 되길래, 역시 내 운이 그렇지 했는데 맨 마지막 3번째에 내 번호가 불렸다. 삼성 50인치 TV.


집에 돌아오니 입이 찢어지는 여사님. 안마의자에 앉아 비몽사몽 졸다가 10시 45분 공항으로 향했다. 한 시간을 기다린 후 에드먼튼에서 휴가 받아 다니러 온 아들 앤드류를 픽업해 집으로 돌아오니 아폴로가 어쩔 줄을 모른다. 점프했다가 앤드류 손을 살짝 물기도 하는 둥, 이쪽으로 뛰려다 반대로 뛰기도 하는 둥.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아들을 보며 방으로 들어갔다. 피곤하다.


 일요일- 오후 1시 반에 쇼잉이 있어 혼자 2부 예배를 갔다. 장로 투표를 하고, 장로가 되려고 하면 장로들한테 잘 보여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추천을 못 받는다나, 집으로 돌아와 쇼잉하는 곳으로 갔다. 1시 반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한 시간이나 지난 후에 나타났다. 가끔 남의 시간을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짜증난다. 


3시가 되어 집사람과 아들 그리고 아폴로도 동행하여 지하철을 타고 센터아일랜드로 향했다. 날씨가 최고다. 페리를 타고 건너가 한없이 걸었다. 맥주를 한잔씩 하고 또 한없이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 오는데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데, 이제 힘들다.


 월요일- 빅토리아데이다. 처음 이민왔을 때는 고비나 고사리를 뜯으러 갔을 텐데, 집 청소를 시작했다. 집이 좁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었는데, 요즈음에는 집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개 한 마리와 사는데. 


집사람은 음식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고기 픽업하고 뒷마당을 정리하니 두 시에 큰처남 형님네가 조카 민수와 함께 들어온다. 민수는 어제 한국에서 왔단다. 조카들이 자기 짝들과 도착하고 우리 딸과 사위 그리고 손녀딸이 도착해 고기를 구워 먹으며 노는데 처남형님이 많이 좋아지시긴 했지만 예전처럼 드시질 못해서 안타깝다. 


큰동서 형님도 투병 중이라 참석하지 못하셔서 마음이 아프고, 누나네도 가게가 바빠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 즐겁게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다 일곱시 경에 모두 헤어졌다. 그래 저녁보다 점심이 더 편하다. 형님들 건강해 지시기를 기도한다.


 화요일- 아침에 가게 오픈 해주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Tridel 콘도 분양설명회. 콘도분양가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평생을 벌어 모은 돈으로 웬만한 콘도 한 유닛도 못 사게 생겼으니. 


끝나서 돈벨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차들이 무척 많아 서행하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에글린톤 바로 위에서 앞차가 서길래, 차를 세우자 마자 뒤에서 누가 심하게 박는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차에서 내리니 웬 약간 뚱뚱한 여자가 “Are you Ok?” 하면서 내린다. 


차를 뽑은 지 세 달도 안됐는데, 큰 하자는 없지만 정보를 주고 받은 후 미시사가로 쇼잉을 하러 갔다. 그런데 목을 돌리는데 여간 뻑뻑한 것이 아니다. 골치도 아프고, 끝나고 Collision Reporting Centre 에 사고를 접수 시키고 늦게야 집에 들어왔다.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 여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그나마 차가 많이 부서지지 않아서 다행이네.” 마누라로 신분이 하락하는 순간이다.


 수요일- 낮에 오행한의원 윤원장에게 어제 교통사고에 대한 물리치료를 받다. 오늘은 친구 세길이 구해준 야구장 티켓을 가지고 집사람, 딸, 아들과 함께 야구장으로 향했다. 자기가 힘들어도 항상 남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 세길이. 이제부터라도 부디 잘 풀렸으면 좋겠다. 


야구를 보는 도중, 어제부터 오퍼를 주고 받던 리스팅에, 관심이 많다는 중국인 에이전트가 오퍼를 넣겠다고 한다. 경기 중간에 나 홀로 일찍 집으로 돌아와 결국 고객이 원하던 가격에 딜을 성사시켰다. 좋아하는 고객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새벽 12시 20분. 


 목요일- 3년째 사진사로, 잡역부로 봉사를 하는 시니어칼리지 소풍날. 모든 순서를 잘 마친 후, 사무실로 가 그 동안 여러 가지 서류 정리를 하려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선지 자꾸 집중력이 떨어지며 일의 진행이 안되, 결국 마치질 못했다. 


똘똘하기로 소문이 났던 나였는데(?) 이제 세월 앞에서 어쩌지를 못하는구나. 저녁때 큰처남 형님 생신잔치를 사리원에서 가졌다. 의사가 암세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단다. 그런데 옆에 계신 큰동서 형님은 아직 본격적인 치료도 못 받고 계시니 안타깝다. 지난 가을까지는 골프도 무척 잘 치셨는데. 두 형님 빨리 완쾌 되기를 기도한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마누라의 헛소리, 이번 한 주일 무척 행복하고 있는데,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 내린다. 마누라가 여편네로 내려가는 순간이다. 동시에 나의 위상 또한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요일- 바디샵에 들러 사고에 대한 견적을 받고, 윤원장에게 가서 물리치료 받고, 음식점 코비에 가서 집사람, 아들, 딸과 함께 냉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내일이면 아들이 에드먼튼으로 떠나니까, 우리 손녀딸 보면 볼수록 예쁘다. 


점심 후 계속되는 고객들과 약속을 다 마친 후, 집에 돌아와 뒤뜰에 누워 신문이나 읽으려는데 K형이 전화를 했다. 빨리와 삼겹살을 구어 먹잖다, 삼겹살에 맥주 한잔하며 이야기 끝에 내일 골프 치는 골프장 티켓을 10불이나 싼 50불에 구입했다. 열장이니 곳 백불을 절약한 거다. 


 토요일- 아들을 공항에 데려다 주려고 리빙룸에 나오니 아폴로가 심란한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다. 앤드류와 이별이 싫은 거겠지. 또 한바탕 부둥켜 안고 작별을 나눴다. 오후에는 친구들과 웨스트뷰에서 골프를 치고 인정이네 집에서 돼지 갈비로 바베큐를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인지 골프는 엉망이었으나 돼지 갈비는 맛있었다. 오랜만에 소주를 꽤 마셨더니 취한 것 같아, 일찍 집에 와 잤다. 


그래 이번 한 주도 나름 열심히 살았고, 좋은 일이 나쁜 일보다 더 많았고, 아직은 건강해서 좋았다. 앞으로 8년간 더 열심히 일하자.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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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181
8045
2018-05-24
생리현상

 


 지난주 신문을 보다가 정말 엽기적인 기사를 보았다. (제발 식사중인 분이나 곧 식사를 하실 분들은 다른 것은 먼저 읽고 이 글은 식사 후에 읽기를 권하는 바 입니다.) BC주에 있는 팀호튼에서 여인이 들어와 화장실을 쓰자고 하니, 직원이 화장실은 고객용이니 고객이 아니면 쓸 수가 없다고 거절하자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고 주저 앉아 일을 보고 그 용변을 맨손으로 집어 직원에게 던진 후 휴지를 뽑아 손을 닦고 그 휴지마저 직원에게 던졌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에는 항상 관련된 동영상이 같이 포함이 되는데, 너무 뭐해서(grossed out) 동영상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꼭 봐야만 믿겠다면 구글에서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국 영화를 보다 보면 유난히 생리현상에 관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특히 예전에 화장실 하나를 가지고 여러 가정이 쓰던 시절의 영화는 특히나 더욱 그랬다. 내가 본 영화 중에 ‘이장과 군수’인가 하는 영화에서도 차승원이가 나오는 것을 참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모든 사람이 하루에 한번이나 두 번은 꼭 일을 봐야 하는데, 살아가는 그 많은 날들 중에 그런 급박한 상태를 한번도 겪은 적이 없다면 무척 신기한 일일 것이다.


 나는 배에 찬바람이 닿으면 영락없이 배가 아프고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버릇이 있다. 작년에 지방에 사시는 매형이 다운타운 병원 약속이 아침 일찍 있다고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가을이었는데 어느 역에선가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오니 배가 아파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형보고 먼저 가시라고 하고 지하철 역에서 화장실을 찾으니 화장실이 없단다. 한 정거장을 뒤로 가면 화장실이 있다는데 도저히 그럴 시간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밖을 나가니 찬바람이 확 불어와 더욱 급해졌는데, 주위에 팀호튼이나 뭐 이런 가게는 안보이고 해서 역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 경비가 앉아있는데 화장실을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변기에 앉으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그때에 생각난 것이 영화 속의 차승원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가끔 겪으면서도 의외의 해결책이 항상 준비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여인들의 용변 보는 모습을 보겠다고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다 걸린 사람들의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린 청년들이 호기심에서 그러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회사원, 교수, 사업가가 몰카를 설치하다 걸렸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일진데 그들은 더러운 것을 보고자 더러운 짓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에드먼튼에서 일하는 아들을 공항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대화 중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들 이야기로는 그 팀호튼은 마약하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문제를 일으켜 그런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겨울 한국과 일본 여행 중 이용한 화장실들은 너무 깨끗하고 좋아서 그야말로 판타스틱 했단다. 일본에 있는 화장실은 좌대에 히팅까지 설치되어 있어 이용하기 너무 좋았단다. 대한민국 많이 발전했지, 내가 마지막에 갔다 온 1999년에도 밖에 나가면 화장실 갈 때 무척 신경을 썼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좋아졌다니, 올해는 한번 다녀올까?


 용변을 본 여인은 얼마나 급하고 화가 났으면 자기의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용변을 본 장면까지 보이고 게다가 동영상에 찍히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울지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이 기사를 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영상까지 봤다고 생각하면 아, 이제 그 여인이 수치심 때문에 실생활 하는데도 지장이 있을 것이다. 


 마약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방침을 만들었다고 해도, 멀쩡한 사람들이 화장실을 이용하자고 하면 허용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마약하는 사람들을 막는 것이 목적이지, 누구나 사용을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 테니까. 고객만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여인이 일을 본 후 커피를 사 마실 수도 있었을 텐데.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있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인데, 아쉽다. 


자, 이제 식사들 하세요. 맛있게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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