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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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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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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5
2019-02-01
휴가 in Cuba

 

 

 1월 15일 오전 11시 킹스턴에서 장보고가 도착했다. 그의 짐을 내 차에 옮겨 실은 후 C를 픽업해 공항으로 향했다. C는 10여 년 전부터 사귀어 왔는데 깔끔한 성격이고 남에게 폐 끼치는걸 무던히 싫어하는 신사스타일이다. 같이 모여 밥도 먹고 가끔 운동도 같이하는 네 부부 중 한 멤버라 아주 친밀한 사이다.


 이번에는 차를 Park and Fly 맡기고 가기로 했다. 공항을 빙빙 돌다 우여곡절 끝에 Park and Fly 사무실에 도착해 열쇠를 맡기고 나니 K와 P가 도착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향했다. 


K는 근 20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데 그 부인이 우리 세탁소의 수선을 해준 적이 있고 작년 카탈로니아 여행 때 우리와 같은 비행기로 같은 리조트를 다녀왔다. 그리고 지난 가을 나를 통해 세탁소를 구입해 열심히 운영하고 있다. P는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일행 중 가장 젊다.

 


 공항에 도착하니 일식당을 운영하던 J가 기다리고 있었다. J는 오래 전 그의 집을 팔 때 내가 오퍼를 넣은 적이 있고 골프연습장에서 가끔 만나서 익숙한 얼굴이다. 이만하면 멤버는 무난한 편이다. 까다롭게 굴 사람이 없어 별 문제는 없겠구나.


 큐바에 도착해보니 버스만 새것으로 바뀌었을 뿐 십여 년 전 그대로다. 발전이 없다. 십여 년 전에 가본 Havana 에서 큐바의 옛 영광을 볼 수가 있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거지들이 바글대던 소굴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며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지도자 하나가 나라를 망조로 만들어 놨다. 그런데도 큐바인들은 아직도 체 게바라, 카스트로를 우상화하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골프를 치며 심심풀이로 내기를 해도 그 이긴 상금을 내가 갖는 것과 공동기금으로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내가 지면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 것과 공동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물로 차이가 있다. 딴 돈이 내 주머니에 들어가고, 잃으면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열심히 치지, 딴 돈은 공동기금으로, 잃어도 공동기금에서 내준다면 그야말로 누가 코피 터지게 골프를 치겠는가. 공산주의 국가들 다 망한 것 역사가 말해주는데…


 십여 년 전에 왔을 때는 하루에 36홀씩 치느라 경치도 해변도 제대로 구경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오전에 한 라운드 돌고 돌아와 맥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 두어 시간 놀다가 다시 9홀을 도니 점심 먹은 것이 소화도 되고 밤에 잠도 잘 오는 효과가 있었다.


 골프장 중에서는 가장 절경인 바라데로 골프장. 환상의 8번홀(파3)에 올라가니 파도가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쏴아, 쏴아, 쏴아, 멋지게 쏴아…쏴아, 쏴아, 힘차게 쏴아…응원 때문인지 그 어려운 홀을 다섯 번 정도 온그린 시킨 것 같다. 그것도 맞바람을 안고… 또한 공에 맞고도 포근한 미소를 보내는 18번 홀의 돌 하루방 너무도 반가웠다.


 재미나게 노는 어느 날 아침 로비에서 카톡을 보는데 우리 처남형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다. 폐암 투병 중이신데 드디어 일이 터졌구나. 이거 돌아가야 되나? 어찌해야 되나? 생각은 뒤죽박죽인데 우선 집사람에게 카톡을 띄우고, 다시 단톡방에 들어가 보니 오보였다는 그래서 미안하다는 낭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형님 오래 사실 팔잔가 보다.


 식당에서 한국 분을 몇 명 만났는데 한 분이 몇 년 전 밴쿠버아일랜드로 이사가신 우 선생님께서 2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리로 가시기 전에 그분 아파트를 내가 팔아드렸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다.


 며칠 잘 놀다가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자 마자 짊어지고 있던 백팩을 luggage pick-up 에 놓고 온 것이 생각나 되돌아가려니 경비들이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Why? You cannot go back, no way. What should I do? Go to your airline and ask them. 부리나케 Sun Wing 카운터에 가서 설명하고 있는데 C에게서 전화가 왔다. 백팩이 나왔다고, 경비가 가지고 나왔단다. 이번 여행에서는 돌아가신 형님 살아나시고, 잃어버린 백팩 찾고.


 돌아온 후 참석한 주일예배에서 우리부부와 같이 세네카에서 공부하고 우리 어머니의 좋은 친구분이셨던 김태환 형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선비 스타일의 젊잖고 또한 모든 면에서 박식하신 분이셨는데, 지난 여름 내가 한번 그분을 모셔다 드릴 때 형님 건강하시죠? 했을 때 몸이 좀 안 좋으시다고 하시더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단다.


 우리의 모든 일행들, 특히 중생들에게 먹이려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코코아나무에 매달렸던 김재은씨에게 그리고 내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려준 Park and Fly에 감사 드린다. 


 우희두 선생님과 김태환 형님 그리고 함화신 님, 부디 하나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72441
8045
2019-01-20
갑질의 문화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문에 희한한 기사가 올랐다. 연수인지 관광인지를 하던 한국의 말단정치인이 여행가이드의 안면을 주먹으로 가격한 것이다. 위에는 가격을 한 군의원의 사진이 실리고 그 바로 아래에는 얼굴에 피를 흘리는 가이드의 얼굴이 실루엣으로 실렸다. 빨간 피가 눈 사이에서 코 옆으로 입까지 상당히 많이 흐르는 사진이었다. 


 대부분의 여행가이드는 팁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무척 친절할 텐데,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의 안면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갑질이다. 내가 주는 팁으로 네가 먹고 사니 너는 나를 상전으로 모셔야 하고 나는 너를 하인 부리듯 할 수 있으며 또한 맘에 안 들면 때릴 수도 있다는 한국사회의 만연한 갑질문화다.


 한국 코미디 프로에 ‘갑과 을’ 이라는 것이 있다. 보면서 배꼽잡고 웃었다. 식당주인이 에어컨이 고장이나 수리기사를 부른다. 조금 늦게 오자 그 수리기사들을 몰아세우는 악질 고객으로 변한다. 호되게 당한 수리기사들이 일이 끝난 후 점심을 먹어야 하니 그 식당의 밥을 먹기로 한다. 을이 갑으로, 갑이 을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는 그 식당주인에게 갑질을 하며 자기들이 당한 것을 통쾌하게 보복하는 프로다.


 캐나다에서는 갑질을 하는 사람을 별로 볼 수가 없는데, 음식점에 가면 가끔 갑질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언젠가 쏜힐의 대형 한식당에서 가장 붐비는 저녁시간에 종업원이 가져온 된장찌개를 자기 테이블에 쏟아버리는 손님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가져온 된장찌개를 또 쏟아버리는 그 사람. 테이블 몇 개를 사이에 두고 있었고 또한 비스듬히 앉았기에 그 얼굴이 누군지는 모른다. 물론 무슨 사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종업원이 잘못했다고 해도 그 붐비는 시간에, 그런 엽기적인 일을…


 십여년전 한국서 온 S라는 사람과 골프를 치고 음식점에 갔다. 앉자마자 종업원들에게 반말로 이것저것 지시하며 조금 늦게 나오면 마구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참다못해 내가 뭐라고 했고, 다음날 전화로 그에게 서로 만나지 말자고 했고, 캐나다에서는 그 못된 말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결국 와이프에게 이혼당하고 캐나다에 입국을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나도 갑질을 당한 경우가 있다. 부동산중개업을 처음 시작한 초기 시절, 이민 온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 한 사업체를 판 적이 있다. 딜이 다 끝났고 클로징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다른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전화가 왔다. 고객이 에이전트를 자기로 바꿨으니 모든 서류를 넘기라고. 내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도 아니고 밥상을 통째로 자기 앞으로…. 


좋게 이야기를 끝냈고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연인즉, 한국에서는 부동산 중개인이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와서 굽신굽신 하는데 김재기는 그렇지 않아서 바꾸고 싶단다. 결국 그가 그 사업체를 샀고, 오랫동안 운영했는데 아직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도 지금은 변했겠지.


 한국의 갑질문화는 신분의 세습제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본다. 옛날에는 신분의 구분이 뚜렷해서 천민이 평민이 될 수가 없었고, 평민이 양반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아랫사람이 자기와 동등하게 되거나 더 윗사람이 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양반은 상놈에게, 평민에게 아무리 반말로 지껄이고 심지어는 때려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고, 당한 사람이 이를 악물고 출세해서 신분 상승이 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내가 아랫사람에게 아무리 악을 행해도 보복 당할 일은 현생에서는 없었다. 보복이 없을 것이니 마음대로 분탕질한 것이다. 그런 문화가 이조시대가 끝난 지 백여 년이 넘었어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던 것이 물질 만능주의 시대가 오면서 돈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갑질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갑질의 백미는 몇년전 통일의 꽃이라던 국회의원이 대리운전기사에게 행한 갑질이다. 국회의원 되더니 국민들을 발 아래 깡통으로 본거다. 제발 이 캐나다에서는 갑질하는 정치인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도 나와서는 절대로 안되고.


 나도 혹시 주위에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갑질한 적은 없었는가 자성해본다. (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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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7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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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아폴로와 뒷마당

 

 성탄절 아침 일찍 잠이 깨어 방문을 열었더니 아폴로가 복도에 서성이고 있다. 이 시간이면 집사람과 안방 침대에서 이불 푹 뒤집어 쓰고 자야 할 애가 웬 복도에? 안방화장실로 들어가 칫솔을 입에 물고 좌변기에 앉았더니 아폴로가 따라 들어온다. 안방화장실에 따라 들어온 일이 별로 없는 녀석이 웬일이지? 그러더니 나에게 컹하며 짖는다. 


그 소리에 집사람이 깼는지 아폴로가 새벽부터 설사하고 있으니 밖에 좀 내 보내란다. 그러니까 아폴로가 나에게 더욱 컹컹거리며 짖는다. ‘야, 임마 양치질이나 끝내고’ ‘아빠, 급해 죽겠는데 먼저 문 좀 열어주지, 왠 양치질은 그렇게 오래해요. 컹컹컹컹, 크으응….못 참겠어’


 칫솔을 내려놓고 몸을 돌리자 후다닥 아래층으로 앞서서 내려간다. 거실 뒷문앞에서 내가 설자리를 비켜서서 기다리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평상시에는 옆집 알빈네 뽀빠이가 나와 있는지 확인을 하고 뽀빠이가 있는 반대쪽으로 나가는데 이날은 쏜살같이 튀어나가더니 한쪽에 반쯤 주저앉아 끙끙거리며 일을 본다. 


그리고 마당을 반쯤 가로질러 가더니 또 쭈그리고 앉아 일을 본다. 두어번 그렇게 하더니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발로 땅을 밀어 자기 몸으로 한바퀴 빙 돌린후 집으로 뛰어 들어온다. 


 전날 에드먼튼에서 온 아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무슨 고기를 사다 먹였더니 새벽 4시부터 끙끙거려 몇 번 밖에 내보냈단다. 그나저나 땅은 질은데 저렇게 엉덩이에 흙을 묻혀오면 어쩌누. 페이퍼타올에 물을 묻혀 밑도 닦아주고 엉덩이도 닦아주니 또 뭘 달라고 부엌의 싱크대 옆에 서 있다. 


‘야, 배탈난 놈이 좀 참아, 금방 혼나놓고 뭘 달라고 그러니’ 아들이 있는 동안에는 아들에게 밥을 주라고 관여를 하지 않았다. 빈 자기 밥그릇을 입에 물고 깔아놓은 자기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뻔히 쳐다본다. ‘밥 좀 주세요, 일 보았더니 배고파요.’


 가끔은 집사람과 아폴로를 데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돌 때가 있다. 그러면 꼭 특정지역에 가면 냄새를 킁킁 맡아가며 자기의 일볼 곳을 찾는다. 그리고 거의 같은 자리에 일을 본다. 항상 일보는 곳이 비슷하자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여보 희한하지 않아요? 항상 일보는 곳이 같잖아요.” “뭐가 희한해 당연하지, 당신은 일보는 곳이 매번 달라? 당신도 항상 같은 곳에서 일보잖아.” 


 동네를 돌다 보면 개똥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경우가 종종있다. 분명히 덩치가 큰개다. 뻔히 자기개가 배설한 것을 알면서도 귀찮으니 그냥 놓고 간 거다. 항상 자기 집앞에 커다란 배설물이 놓이자 한 집의 주인이 판자에 개의 배설물을 꼭 치우고 가라는 글을 써서 잔디밭에 밖아 놨었다. 남의 집에 자기 개의 배설물을 놓고 가는 얌체들이 종종있어 걸을때 잔디밭에 들어가면 여기저기 살펴야한다. 그런 사람들 정말 양심은 개만도 못한거다. 


 며칠 전 집사람과 영 길까지 걸어갔다 왔다. 오는 길에 Drewry 고등학교 바로 옆 공터 근처에서 집사람이 “어머 저 사람 봐, 자기 개 일봤는데 그냥 가네” 하길래 바라봤더니 젊은 동양여자가(상당히 낮이 익은) 하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강아지는 미안한 지 우리를 쳐다보고 걷는데 그 여자는 앞만 보고 공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기 개가 배설한 것은 자기가 치워 가야지 혹시 다른 사람이 그걸 밟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뒷마당에 나가 그 동안 아폴로 일 본거부터 정리하자. 자기꺼 자기가 밟으면 더 기분 나쁠거니까.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아폴로가 뒷발질을 사방에 해놔서 잔듸가 엉망이 됐다. 봄 되면 잔듸에 비료도 주고 씨도 좀 뿌리면 또 좋아지겠지,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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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72286
8045
2019-01-10
아들 뜻대로

 

 

 며칠 전부터 집안을 청소해야 했다. 우선 아들이 쓰던 지하실 화장실 세면대, 좌변기부터 시작해 바닥과 거울, 샤워장 등을 약을 뿌려가며 열심히 닦았다. 이번에는 여자친구랑 같이 온다니 더욱 정성 들여 닦았다. 아직 며칠이 남았으니 위층도 조금씩 청소를 하고 있는 중에 아폴로를 밖에 내보내 용변을 보게 해야 했다. 


개들은 용변을 보고 발에 뭐가 묻은 것 같으면 열심히 뒷발질을 해 발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날은 축축하고 땅은 물러 있으니 발가락 사이에 잔디와 흙을 잔뜩 묻혀 들여오는 일이 잦다. 이날도 밖에서 뒷발질을 하고 들어 왔는데 맨발로 나갔다가 뒷발에 털신을 신은 채로 들어왔다. 방바닥에 흙 자국이 아폴로가 걷는 대로 생기는 거다. 도망가는걸 간신히 붙잡아 아래층으로 데려갔다.


 깨끗이 청소된 아들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가 샤워장에 밀어 넣고 발을 씻기다 아뿔싸 샤워헤드를 건드렸는데 그만 샤워 헤드가 부러졌는지 빠졌는지 벽에 붙어 있어야 할 샤워 헤드가 내 손안에서 얌전히 처분만 바라고 있었다. 이리저리 돌려 살펴봐도 도대체 어찌하는지 알 수가 없어 “아폴로, 네가 말 안 들어 요것 부러졌잖아” 하고는 발판을 가져와 아무리 맞춰보려 해도 도저히 내 실력으로는 될 것 같지가 않다. 물을 틀어보니 직사포로 반대편 벽을 맞춘다. 잘못 맞았다간 꽤 아프겠다.


 사실 그 샤워헤드는 벽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 아폴로를 씻길 때는 물이 갈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어 아폴로를 그 물이 떨어지는 구역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특히 엉덩이 쪽을 씻기려면 물이 몸에 한번 맞고 흐르는 것으로 씻어줄 뿐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교체하려고 했으니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사람을 불러 긴 호스에 샤워헤드가 달린, 그래서 뽑아 쓸 수 있는 걸로 바꿨다. 이제는 아폴로의 엉덩이에 직접 물줄기를 쏠 수 있겠구나.


 아들이 어릴 때 서양장기를 두다가 한번 다툰 이후로 사이가 조금씩 껄끄러워 졌고, 커 나가면서 나는 그가 하는 일들이 못마땅하니 둘의 사이가 많이 비틀어 졌었다. 불러서 뭐라고 하기도 하고, 그러니 그는 나를 피하고 서로 같은 집에 살았지만 얼굴을 마주치는 일들이 별로 없었다. 설사 마주친다 해도 ‘하이’ 외에는 말도 별로 섞지 않았다.

결국 나가 살다가 들어오며 아폴로를 데리고 들어왔고, 에드먼튼으로 떠나며 바베큐를 하는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며 서로 암묵적으로 화해를 하였다.


 아들이 나이가 들자, 부모 마음으로 주위의 아는 처자 중에 좋은 사람으로 소개시키려 해도 막무가내여서 또 둘의 사이가 서먹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재작년부터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기가 간혹 나에게 들려왔다. 내가 워낙 한인 여성을 고집하자 나에게는 쉬쉬하는지 그냥 지나가는 말로 간혹 귀띔을 해줄 뿐이었다. 내가 마음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며느리는 내 맘에 들어야 할게 아니고 아들 맘에 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다.


 지난 추수감사절에 아들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아들아, 네가 이번 추수감사절 만찬에 꼭 있으면 더 행복하겠다. 그 동안에 서로 서먹했지만 이제 우리가 다 화해하고 사이 좋은 부자가 되자. 내가 너희들에게 원하는 것은 단지 너희들이 잘살고 가끔은 같이 여행이나 했으면 좋겠다. 네가 여태껏 해온 일, 그리고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아버지로써 무척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크리스마스때 보자.”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아들에게 바로 문자가 왔다. “아빠가 보내준 문자가 나에게는 너무도 큰 의미가 있어요, 사랑하고 크리스마스때 뵈요.” 물론 문자는 한글이 아닌 영어로 오갔다.


 해밀턴 공항에서 아들과 친구를 픽업한 후 나이아가라로 향했다. 폭포를 구경하고 카지노에 있는 부페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 나와 아들 친구 둘이 남게 되었다. 나에게 “How is your real estate business?” 하더니 내 답이 끝나자 “Andrew always miss you guys so much, he told me many times” 하였다. 집사람과 있을 때는 “I wondered how come Andrew is so handsome but now I know why,” 하며 집사람의 기분을 맞춰 주더란다. 생긴 대로 논다더니 말도 예쁘게 하는구나. 


 우리가 어찌 자식을 이길 수 있겠나. 내 욕심에는 내 맘에 맞는 사위, 내 맘에 맞는 며느리를 원하지만 실제로 같이 사는 사람은 그들이고, 그들 마음이 서로 맞아야 좋은 가정을 이루는데 여태껏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그들의 짝으로 찾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 아들아, 이제 너의 뜻대로 하거라. 좋은 가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집 주차장에 들어서자 “컹”하며 아폴로 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아들의 얼굴이 환하게 웃는다, 7개월 만의 만남이니 왜 그렇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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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72063
8045
2018-12-14
애기 봐주기

 

 

 집을 향한 발걸음이 가볍다. 아니 차 운전이 가볍다고 해야 하나? 차를 차고에 주차시키고 문을 닫으려 하니 차 꽁무니가 차고 문 있는 데까지 나와 있는 것 같다. 마음이 급해 그냥 내려볼까? 하다가 괜히 차가 상하면 나만 손해일 것 같아 시동을 다시 걸고 좀 더 앞으로 밀어 넣었다.


 차고에 온갖 쓸데없는 것들이 잔뜩 들어있어 차를 한쪽으로 몰아넣기는 했는데 차 문을 열고 닫을 때 조심조심해야 한다.


 손녀딸 얼굴을 상상하며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니 아폴로의 ‘컹’하는 소리와 함께 계단을 후다닥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가오는 아폴로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거실 쪽을 보며 “Hey Jamie” 하는데 우리 펑여사 소파에 누워있다. 아기가 있으면 옆에 서있거나 앉아 있을 텐데…”애기 왔다 갔어요” 한다. 


딸이 친구들과 집 부근의 음식점에서 모임이 있어 오늘 오후에 들른다고 해서 아기를 맡겨놓고 갈 줄 알았더니 데리고 갔단다. 근래에 두 번째 바람을 맞은 것이라 실망이지만 그래도 애기 생각하며 오후 내내 혼자서 싱글벙글했으니 손해는 아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딸네가 결혼식에 참석해야 된다고 하는데 집사람이 선교회 때문에 아기를 못 봐준다고 했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12월 선교회인데 왜 11월에 할까? 하고 선교회 카톡방을 뒤져보니 몇 주 후에 선교회 날짜가 잡혀있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따르르르릉…”여보세요?” 


“여보 난데, 우리 선교회가 이번 주 아니야, 12월 초야. 우리가 아기 봐준다고 해” 


“당신이 이번 주에 선교회 있다고 했어요” 


“그럴리가 있나, 12월 선교회를 왜 11월에 하겠어” 


“당신이 틀림없이 그랬다니까” 


“알았어, 좌우지간 딸내미에게 전화해서 우리가 애기 봐준다고 해” 


 금방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어머니에게 맡기기로 약속이 되어있는데 지금 와서 바꿀 수는 없단다. 실망이 커서 한마디 했다. 


“애기를 빨리 하나 더 낳던지 해야지, 뭔 손주보기가 이렇게 힘드냐” 


지난번에 손녀딸이 자고 간 방을 정리도 깔끔하게 하고, 청소도 깨끗하게 해 놨는데, 애기가 오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수고 아닌가.


 주위의 친구들 자녀들이 지난 몇 년간 많이들 결혼했다. 손주를 바로 얻은 친구들도 있고, 아직 기다리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예전에 우리 아이들 키울 때의 일은 별로 생각나지 않을뿐더러 지금 손녀를 보며 한없이 예뻐하는 그런 기분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기억력이 감퇴해서 잊었나?


 세상을 상당기간 살아보니 나와 같은 연배들이 가장 행운의 세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전 세계가 전쟁에 항상 찌들어 있었고 우리 부모님들은 일제치하에 고생을 하시다 6.25동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셨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이 끝나고 안정이 돼가는 시기에 태어나 가난은 했지만 큰 고생은 하지 않았고, 또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캐나다에 이민 와 편하고 풍족하게 살아왔다. 지구 저편에서 다른 사람들이 폭탄에 죽어가고, 폭정에 시달리고, 기아에 허덕이는 뉴스는 보았어도 우리 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문제다. 몇몇 깡패국가들이 핵무기로 세상을 위협하고, 일산화탄소 과다 배출로 오존층이 파괴되고, 쓰래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망치고 있는 거다. 


우리 모두 주위의 쓰레기를 줄이고, 생활용품도 아껴 쓰며, 좋은 환경을 후손에 물려주자.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 근처에 전 세계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대한 섬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유엔에서 돈을 모아서라도 이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나는 집을 깨끗이 치워놨는데, 우리 손녀딸은 언제나 놀러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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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71966
8045
2018-12-08
One Way

 

 

 얼마 전 영/세파드 약간 북쪽에 있는 한식당 이남장에 갈 일이 있었다. 길가와 상가 뒤쪽에 시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이 있는데 점심때라 그런지 그날따라 자리가 없어 빙빙 돌고 있었다. 주차장은 남쪽에서 진입해서 북쪽으로 나가게 One Way 로 설정되어 있었다. 


두어 번을 돌다가 남쪽으로 나가려고 차를 입구 쪽으로 댔는데 차 몇 대가 엉켜 내 앞을 막던 차가 비켜야 내가 나갈 수 있고, 내차가 나가야 길에서 대기하던 차 두 대가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사실은 그리로 들어 와도 주차장은 없었다. 


 내 앞을 막던 차가 비켜 내가 차를 빼자 들어오려던 차가 창문을 열고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한국말로 큰소리를 질렀다. “완웨이야 XX, 완웨이” 그 양반 목소리도 꽤 컸다. 두 차가 엇갈릴 때 얼굴을 돌려 그를 보았는데 다행이 아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물론 나는 그리로 나가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길가에 주차장이 하나 비어있어 빙 돌아갔을 때는 그 주차장이 남의 차지가 될 것 같아 부득이 그리로 갔는데 욕을 대빵 먹은 거다. 욕먹으면 오래 산다니까. 식당에 들어가서 혹시 그 사람이 들어오나 주시했는데 다행이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먼저 주에 쏜힐 갤러리아 앞 영길을 하행하고 있었다. 난 맨 왼쪽 라인에 서 있었는데 신호가 바뀌자 다른 두 차선은 차가 움직이는데 우리 차선은 조금 가다가 꼼짝 안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옆 차선의 차가 서더니 영 상행선에서 스틸스 서쪽으로 차 한대가 좌회전을 하면서 우리 차선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영 상행선에서 스틸스로 좌회전하려던 차가 신호가 바뀌면 앞으로 약간 전진만 하고 있다가 다가오는 차가 없을 때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그 차는 전진을 하면서 약간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던 거다. 그러니까 우리 차선의 차들이 그 차 때문에 움직이질 못했고, 그것을 본 옆 차선의 누군가가 차를 잠깐 세우자 그 차가 지나갔고 우리까지 길이 트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도 빵빵거리지 않았고, 소리지르지 않았고, 욕하지 않았다. 


 지난 약 한 달간 캐나다의 우편노조가 파업인지 태업인지를 감행했다. 노조원 수도 많고 우리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으며 또한 주위에 Canada Post 에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체국 주위를 지나갈 때면 피켓을 들고 그 앞을 왔다갔다하며 가끔 구호를 외치며 자기들의 주장을 피력할 뿐이었다. 그나마 국회에서 직장복귀 명령을 내리자 더 이상 반항 없이 각 직장으로 복귀해 연말 우편물을 다루고 있다. 정말 평화적으로 시위를 할 뿐이다.


 한국의 민노총인가 하는 단체는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며 만들던 법도 폐기하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신상털이까지 해서 패가망신시키고, 청와대, 국회, 대법원까지 쳐들어가 생떼를 부린다고 한다. 그러다가 급기야 노조원들이 회사대표를 윽박지르고 임원을 집단 구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기서 그렇게 남을 구타했다가는 분명히 경찰에 구속되고 감옥에 가야 할 텐데 경찰은 눈을 멀뚱히 뜨고 구경만 했다고 한다. 


 지난주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위가 마치 한국의 시위를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부시고, 파괴하고, 약탈까지 하다니. 예전에는 상품을 수출했는데, 지금은 폭력시위를 수출하다니…. 


 내가 이민을 올 때 한국의 국민소득은 년 수백 불의 아주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그 후에 일취월장해서 조금씩 잘 살게 되자 캐나다 살던 동포가 한국을 나가게 되면 “캐나다에서 거지 왔다”며 놀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뉴스에서 한국을 다루는 일들이 점점 많아졌으며 한국의 상품들이 고가제품으로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판매되는 것들을 보게 되었다.


 한국이 잘살게 되자 우리들의 위상도 높아졌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동포들의 사회의식이나 행동 등은 아직 멀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내가 할 의무도 챙겨야 하는 것이다. 제발 One Way만 고집하지 말고 양보도 좀 하며, 남도 좀 이해해 살면 이 사회가 더 좋아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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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71502
8045
2018-11-02
손녀딸과 아폴로

 

 일요일 오후 3시에 쇼잉이 있어 나갔다가 끝나자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동네가 맘에 들면 집이 맘에 안들고, 집이 맘에 들면 동네가 별로고, 둘 다 마음에 들면 가격이 맞지 않고. 그래서 오늘도 허탕이지만 혹시 손녀딸이 아직도 있을까 기대하고 문을 열 때까지 아폴로의 짓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집안으로 들어가 거실 쪽을 내려다보니 “Jamie is gone”하며 집사람이 소리친다. 딸네가 와서 아기를 데려간 거다. 허탈하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내려가니 집사람은 소파에 누어있고 아폴로는 그 밑에 바닥의 자기 담요에 누워있다. 나는 안마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코고는 소리가 자잘하게 들려온다. 듀엣으로, 집사람과 아폴로의 가냘프게 코고는 소리. 


 지난 월요일인가 딸네와 같이 저녁을 먹는데 오는 토요일에 손녀딸이 생애 첫 번째로 부모 품을 떠나 오버나잇을 하는 날이란다.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아기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놀다 올 거란다. 그래 그래라 우리는 편하지 뭐. 이런 심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집사람은 은근히 시샘을 하는 눈치다. 그래도 한다는 이야기가 “너의 시어머니가 힘들겠다”.


 그러더니 토요일 오후에 딸과 사위가 손녀딸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오더니 가운데 방에 아기침대를 갖다 놓고 장난감이며 책, 옷 그리고 먹을 것 등을 잔뜩 갖다 놓았다. 시어머니가 감기에 잔뜩 걸려 우리 집에 아기를 맡긴다고 오전에 모녀간에 이야기가 있었나 보다. 딸 품에 안겨있는 아기가 더욱 초롱초롱하고 또릿또릿한 게 이건 내 손녀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조물주의 솜씨에 감탄밖에 나오질 않는구나.


 처음 우리 집에 아폴로가 들어올 때 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인터넷을 검색하니 거기에 절대로 아기와 또는 다른 동물과 Bull Terrier는 같이 있으면 안 된다고 써 있었다. 그래서 손녀딸이 태어날 즈음 딸과 집사람에게 절대로 아폴로와 손녀딸만 같이 있으면 안 된다고 누차 강조를 했다. 그래서 아기를 주로 자기 시어머니에게 맡기던지 아니면 딸네 집에 집사람이 가서 봐주곤 했다. 


 가끔 손녀딸이 우리 집에 오게 되면 아폴로가 자기도 아기를 보겠다고 점프를 하기도 하는데 손녀딸은 아폴로 얼굴이 자기 앞에 있으면 기겁을 하고 손으로 싫다고 밀어대기도 하고 머리로 도리질을 하기도 한다. 아폴로는 좋다고 따라 다니고 아기는 무섭다고 또는 싫다고 피해 다니는 것이다.


 우리 집은 Side-Split 이라 계단이 몇 개 되지는 않지만 층마다 계단이 있어 손녀딸이 그쪽으로 가면 우르르 몰려가서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뒤에서 받쳐준다. 계단 옆에 붙어있는 전등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기도 하고, 계단에 붙은 난간을 잡고 몸을 당겨 선채로 계단을 오르기도 내려가기도 하는데, 아폴로가 아기 머리에 코를 들이대면 기겁을 한다. 그래서 내가 아폴로를 톡 치면 주둥이를 찌그리면서 나에게 으르렁댄다. 


 특히 집사람이 밥을 먹이려고 김에다 싸서 아기 입에 넣어주면 아기는 눈을 크게 뜨고 맛있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좋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아폴로의 입이 김에 닿았다. “아이고 못살아” 하고 집사람이 소리쳐도 아폴로는 주저 않고 나는 아폴로를 파리채로 한대 때리고, 집사람은 그러는 나에게 눈을 흘기고…. 그리고 새김을 가져다 주고 먹던 김은 아폴로 차례가 된다. 아폴로가 의도한 대로다. 


 오후 3시 반부터 10시경까지 그렇게 지내다 아기를 침대에 뉘여 재우고 우리도 그만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났는데 아기가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 장난감 강아지를 꼭 껴안고 있더란다. 할머니를 보더니 강아지를 던지고 두 손을 벌려 안아달라고 하더란다. 날 보더니 씨익 웃는다. 젊었을 때는 여자의 웃음에 끄떡도 안 했었는데, 손녀딸의 웃음에 그만 넋이 나가버리는구나. 


 단 하루 아기를 봤을 뿐인데 집사람에 아폴로까지 넉다운이 되고 말았다. 평상시에는 공을 물고와 나랑 놀자고 졸라대던 아폴로가 방바닥에 퍼져 일어날 줄을 모른다. 손녀딸이 가고 나니 괜히 혼나기도 하고 매도 맞은 아폴로에게 무척 미안하다. 저렇게 퍼질 정도로 놀아줬는데….


 딸네가 와서 아기를 데려가면서 너무너무 편하고 좋았다고 이제 주말마다 아기를 데리고 온다고 했단다. 이거 좋아해야 하나,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하나, 이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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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8295
8045
2018-08-23
백인? 한국인?

 

 

 주길씨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분명히 자기 방이었다. 옆에서는 아내가 곤하게 자고 있다. 한번 자면 푹 자는 스타일이라 중간에 깨는 일 없이 잘 잔다. 그런데 뭔 꿈이 그런 꿈이 다 있단 말인가?


 꿈속에서 친구들을 만나 반갑게 다가가며 “어, 잘들 지냈니?” 하고 분명히 한국말로 인사를 했는데 그것이 어줍잖은 영어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런 그를 친구들이 멀거니 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손가락질 들을 해가며 자신을 피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떨어져 어디를 다니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기 얼굴이 아닌 백인과 자기얼굴을 섞어 놓은듯한 이상한 괴물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깨어난 것이다.


 주길씨는 이민을 온지40년이 넘었다. 일종의 원주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민 온 70년대에 왔다. 그때만해도 한국사람이 많지가 않아 한인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가웠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주위에 한국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주길씨 주위에만 해도 한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길씨는 맨 처음 집을 살 때 한국인 부동산과 변호사를 고용했었는데 어느 날 사소한 잘못된 점이 있어, 대판 싸우고 나서 그때부터 무조건 캐네디언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다. 회계사와 보험설계사 그리고 자동차 세일즈맨까지도 모두 캐네디언들을 고용한 것이다.


 한번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어눌한 한국말로 설명하는 한국인 전문인보다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해주는 외국인 전문인이 훨씬 신뢰가 가는 것이었다. 물론 어떨 때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자기의 영어가 짧아 대충 넘어간 적도 있었다.


 또 그들은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좀더 빠른 영어로 해대니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알아 들은 척하며 실실 웃었고 그래서 큰 문제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전문인을 찾을 때는 무조건 외국인을 고용하라고 권했다.


 그런데 2년 전에 집값이 한참 오를 때에 외국인부동산에게 리스팅을 주었다. 며칠 후 오퍼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3만불 정도 적게 들어왔는데, 사인을 거부하자 약간 안색이 굳어지며 “Don’t lose this chance” 하며 사인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사인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비슷한 집이 6만불 더 비싸게 팔려 한동안 속이 상했었다. 수임료도 한국인 에이전트보다 1%나 더 주었건만, 그리고도 찝찝했지만 집을 살 때 그에게 부탁했고 그가 소개시켜주는 변호사를 고용했다. 


 그런데 며칠 전 같은 구역의 조 집사가 생명보험을 들으려 한다며 혹시 더 좋은 딜이 있는지 물어왔다. 그래서 자기 생명보험 담당하는 George 를 소개 시켜주며 무조건 하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물어보니 모든 조건이 George 것보다 한국인이 제시하는 것이 좋다며 한국인과 계약하려고 한단다. 그래서 George 에게 전화해 좀더 좋은 딜을 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제 커피샵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한국말이 들려 우연찮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역시 엽전들은 시끄럽군 하면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 보험계약 하나 하려는데 어떤 xx가 백인을 쓰라고 한 거야, 자기는 무조건 백인 아니면 안 한다고 하면서. 그래서 커미션 깎아주고 난리 끝에 계약 한 건 했네. 그런 놈들 한국말도 쓰지 말고 외국인으로 얼굴도 성형해야 돼” 


주길씨는 마시던 커피를 들고 얼른 커피샵을 나와버렸다. 하루 종일 보험중개사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아 심란하게 지내다, 저녁때 집에 돌아와 술을 몇 잔하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악몽을 꾼 것이다. 주길씨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안주길, 이제 제발 너무 오지랖 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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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7187
8045
2018-08-18
한여름날의 일기(2)

 

(지난 호에 이어)
 좀 전에 헤어진 손녀딸 이야기를 하며 Hwy 401에 들어섰다. 운전하면서도 손녀딸 모습이 아른아른 거린다. Hwy 427로 들어서는데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차선과 합쳐지는 곳에 갑자기 연기를 품어대는 승용차가 달리고 있다. 차들이 꽤 많아, 어- 어- 하며 모두들 서행하는데, 내 앞쪽으로 차 바퀴 하나가 빠져 나와 굴러가고 있다. 앞에도 차, 뒤에도 차인지라 긴장하며 천천히 내려가는데 빠져 나온 차 바퀴는 중앙선 분리대에 부딪힌 후 그곳에 멈추었다. 


 그러니까 차의 바퀴가 빠지자 쇳덩어리가 고속도로 콘크리트에 부딪히면서 연기가 난 것이구나. 잠깐 눈을 바퀴로 돌린 사이 연기 나는 차는 보이질 않는다. 보통은 차 바퀴가 빠지면 차를 세워야 맞는데, 그 차는 거의 전속력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뺑소니 차? 좌우간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만나는 장소에 도착해 식당 ‘코비’로 들어서니 J가 반갑게 맞아준다. 보석디자이너 이면서도 부모님 도와 열심히 식당을 운영하는 처녀, 예쁘고 능력 있고 또한 사람 좋은 J를 토론토의 총각들은 모르나?


 홀 중간쯤에 앉아 계신 S박사님 부부를 만났다. 나는 그분들과 이틀 전에 같이 골프를 쳤지만 우리 집사람은 그분들과 4, 5년만의 만남이라 무척 반가워했다. 내가 S 박사님을 알게 된 것도 벌써 10여 년이 넘은 것 같다.


 박사님이 캐나다로 떠나기 며칠 전에 머리 염색을 하다 얼굴이 퉁퉁 부어 고생한 이야기, 양쪽 집에 태어난 손주들의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다 먹고 나자 박사님이 뒤에 숨겨놨던 선물을 전달해 주신다. 


항상 만날 때마다 한국에서 무언가를 가져다 주셨는데 이번에는 얼굴로 고생하는 바람에 그럴 여유가 없었단다. 우선 우리 손녀딸 돌 선물, 우리 부부에게 최고급 공 선물, 그리고 사과 한 박스. 나는 항상 아무것도 준비를 못했는데 이분들은 만날 때마다 뭔가를 주고 싶어하신다.


 식사를 끝낸 후 옆의 제과점으로 옮겨 팥빙수를 시켜놓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S박사님은 한국에서 의사생활을 하시다 지금은 프라자 등을 짓고 관리하는 사업을 하신다. 토론토와 밴쿠버에 집이 있었는데, 토론토 것은 몇 년 전에 팔고 밴쿠버 것만 갖고 있다. 그 콘도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으나 그런 미담은 감춰둬야 맛이고, 박사님 부부가 원하지 않을 것 같아 우리 부부만 공유하고자 한다. 


 또 한 시간여 이야기 꽃을 피우다 아쉽지만 헤어졌다. 박사님네는 뉴욕에 갔다가 다시 밴쿠버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한다. 던다스길을 타고 동쪽으로 달리는데 딕시와 Hwy 427 중간쯤에서 갑자기 앞차가 오른쪽으로 확 핸들을 꺾어 앗! 하고 나도 갑자기 따라 했는데 시커먼 쓰레기봉투가 가운데 차선 중간에 놓여있다. 그런데 또 앞쪽에 쓰레기봉투 서너 개가 길에 널브러져 있어 요리조리 피하면서 무사히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 아폴로와 산책하며 오늘 하루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사람들만 만난 대신에 운전중인 도로에서 연기 나는 트럭과, 차에서 빠진 바퀴와 길에 널린 쓰레기 등을 경험한 위험한 하루를 보냈다. 


앞으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날도 안전한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모세오경 중의 하나와 이름이 같으신 S박사님 부부, 고마웠고 복된 여행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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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7103
8045
2018-08-12
한여름날의 일기(1)

 

2018년7월 29일 (일요일) 맑음


 7월 헌금위원 임무가 오늘로 끝났다. 좀더 젊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인사해야 인사를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텐데 나이가 든 우리가 서서 인사하려니 좀 쑥스러운 생각이 든다. 미안하기도 하고.


 교회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집사람이 딸에게 전화를 했다. 시간이 있어 놀러 가려는데 괜찮겠니? 저녁때는 시아버님의 칠순 생신을 하러 가야 하니 오셔서 그때까지 노시다 가세요. 복권 맞은 기분이다. 두 시간 정도 손녀딸과 놀 수 있겠구나. 


신이 나서 Hwy401을 타고 Allen으로 들어서려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차가 막혀 움직이질 않는다. 도로 옆에 사인을 보니 Allen Rd. 남쪽길이 닫혔단다. 두 시간 밖에 없는데, 이리저리 돌다가 무려 사십 분을 허비하고 딸네 집에 도착했다. 혹시나 손녀가 자고 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며 문을 두드리려는데 손녀딸의 우는 소리가 난다. 자고 있지 않은 건 확실한데 그런데 왜 울지? 


 사위가 문을 열어줘 들어가 보니 기저귀를 갈고 있으니 싫다고 소리를 지른다. 음 그래, 척척한 기저귀 차고 있는 손녀딸 안는 것보다 뽀송한 기저귀차고 있는 손녀딸 안는 것이 피차에 좋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더니 방긋 웃는다. 세상에 어떻게 아기가 저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몇 발자국씩 제법 걷는데 나에게서 할머니에게 갈 때는 손을 든 상태에서 한 열 발자국 정도를 아장아장 걸어 똑바로 가서 할머니에게 팍 안기는데, 할머니에게서 나에게 올 때는 한 다섯 발자국 정도 걷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걸어가 탁자에 가서 손 짚고 선다. 그리고 고개를 나에게 돌려 쳐다보며 웃는다. 할아버지를 약 올리는 건가? 약 올리는 손녀를 보며 헤벌레하고 웃고 있는 나, 너무 사랑스러워 꽉 안아준다. 이제 나도 성격이 많이 좋아졌구나, 약 올리는 사람을 포용할 줄도 알고.


 이제는 제법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도 알고, 이곳 저곳 걸어 또는 기어 다니며 참견하고 다닌다. 소파에 앉아 나와 잠시(나하고는 항상 잠시) 놀다가 아래로 내려가길래 어쩌나 보았다. 탁자 건너편에 할머니가 있으니 아마 그리로 가려나 보다. 그런데 탁자 밑에 길다란 막대기가 걸쳐있어 지나갈 수가 없을 텐데 하고 바라 보았더니, 막대기 바로 앞에서 우리가 포복하다 장애물 밑을 기어가듯이 고개를 바짝 숙여 머리를 방바닥에 대고 몸을 밀고 지나가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가서 안긴다. 


오마, 이건 예쁜 아기가 머리까지 천재 수준 아닌가? 그러다 잠시 할머니와 놀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에게 똑 같은 방법으로 건너와 소파를 잡고 일어선다. 금방 본 것인데도 신기해서 다시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여 머리를 바짝 바닥에 대고 몸을 밀고 지나가는 것, 그래 이제 너는 벌써 웬만한 장애물은 건너가는구나.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도 많은 장애물들이 있을 텐데 잘 지나가겠구나. 한참을 놀다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내 얼굴에다 입을 대고 뽀뽀를 해준다. 고맙다 손녀야, 미스코리아 뽀뽀보다 더 황홀하구나.


 꿈같은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Allen Rd. 선상 Hwy 401 근처에 큰 트럭 하나가 엄청난 연기를 내며 앞에 가고 있다. 혹시 폭발할 지도 모르니 빨리들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구경들 하는지, 연기 때문에 잘 안보여서 인지 앞차들이 천천히 가고 있다. 간신히 지나가는데, 우리 애들도 곧 이 길을 지나올 텐데 제발 안전하기를….


 집에 돌아오니 아폴로(우리집 개)가 아침에 교회 간 사람이 교회 끝나면 바로 오지 않고 왜 이제 오냐며 앞발을 들어 밀며 항의한다. 아폴로에게 밥을 주고 옷을 교회복장에서 평상시 복장으로 갈아 입은 다음 밖으로 나오자, 아폴로가 금방 들어온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 가냐며 멍한 표정으로 리빙룸 소파에 가서 앉는다. 미안하지만 약속이 있으니 어쩌랴.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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