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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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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에이젼트 Jaiki Kim
Broker 김재기 부동산



☎ 416-997-7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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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804
8045
2018-07-14
리치몬드힐 동포 여러분, 넬리(Nelly Shin)를 도와주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부동산 브로커 김재기, 식당 운영자 정인정입니다. 


넬리 신(Nelly Shin)은 고등학교 교사를 하며 가수생활을 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교사로 LA 와 캐나다 빈민촌 등지에서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수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깨어진 가정의 회복과, 없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캐나다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정치에 입문하기로 마음을 먹고 연방보수당 리치몬힐 지구 후보경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동포 여러분께서 도와주시면 경선을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경선 날짜 발표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동포 여러분, 조금 번거롭더라도 조금 귀찮더라도 보수당에 가입하셔서 넬리를 밀어주세요. 그리고 댁의 자녀들에게도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가르쳐주세요. 지금 분쟁이 일어난 지역들의 핍박 받는 사람들은 결국 정치력이 약해서입니다. 정치력이 약했던 민족들의 핍박의 역사, 우리는 기억합니다.


정치가들은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나는 투표하지 않습니다. 정치에 관심 없습니다.” 이 말은 “나는 내 권리를 포기합니다, 내 운명을 당신이 결정하세요.” 하는 말과 똑 같습니다. 


연방 상원에 김연아 의원, 이번에 온타리오 조성준 장관, 조성훈 의원 뿌듯하지 않습니까? 이제 국회의원 Nelly Shin을 꼭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앞으로 여러분의 자녀가 정치에 입문한다면 국회의원 Nelly Shin이 큰 힘이 돼줄 겁니다.


저희는 우리의 일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무보수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고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세요. Nelly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분명히 여러분은 자랑스러우실 겁니다. 여러분의 귀한 한 표가 이민역사 50년 만에 첫 국회의원을 만든 것이니까요.


보수당 가입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꼭 도와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래 번호로 전화나 문자 또는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저희가 찾아 뵙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 연락주세요.


참고로 경선은 14세 이상 영주권자 시민권자에게 투표권이 있습니다.
www.facebook.com/nellyshin.rh (넬리의 facebook 입니다)


김재기 (Jaiki Kim) 416-997-7896 / [email protected]
정인정 (Injung Jeong) 416-889-0990 / [email protected]
신숙희 416-908-9716 /    [email protected]  

 


정인정, 김재기 드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66638
8045
2018-07-04
우리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지난 6월 7일 온주총선에서 우리 한인출신 주 의원이 두 명이나 배출되었다. 이제 온주의회에 그리고 연방상원에 우리 동포가 자리하고 있다.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고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직 우리 한인출신의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배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은 투표일이 결정이 되면 선거인 명부가 각 정당에 배부된다. 그 명부를 보면 우리 한인 유권자가 몇 명 있으며 누가 투표했는지 정확히 나온다. 투표용지를 받는 순간 자동으로 컴퓨터에서 그 사람 이름이 빠진다. 그러면 실시간으로 누가 투표를 했는지, 몇 명이 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있다. 물론 누구에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번 주총선이 끝나고 나온 비공식 발표를 보면 윌로데일에 사는 한국출신 유권자가 7500명 정도 되었단다. 그리고 35%를 약간 밑도는 투표율(평균투표율 58%)을 보였다고 한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집을 찾아가고 전화를 해서 얻은 투표율이다. 그래도 그 전 선거의 투표율 18%보다 훨씬 더 잘 나왔기에 고무적인 일이다.


 정치가들은 표에 약하다. 우리 한인들의 득표율이 저조하면 우리들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인구는 얼마 안돼도 투표 결집력을 보여주는 민족 사람들의 일에 신경을 써준다. 한국인들이 숫자에 비해 주류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는 이유는 투표율 부재에 있다. 골프는 점수로 말하고, 경제는 돈으로 말하고, 정치는 표로 말한다.


 캐나다 국방장관이 시크교도 일 정도로 다른 민족들은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정부 주요부처에 앉아있는데 우리 한인들의 정치력은 인구나 경제력에 비해 무척 미미하다. 유태인들은 자기들의 권익을 위해 엄청난 돈을 정치가에게 기부하며 자체적으로도 많은 정치가들을 배출한다. 특히나 정치력이 약해서 히틀러에게 당했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내년에 연방총선이 있다. 거기에 넬리 신(Nelly Shin) 이 Richmond Hill 지구 보수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며칠 전 첫 후원회를 한식당에서 가졌다. 자리가 다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왔고 좋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인구 분포를 보면 한인이 모두 나와 넬리를 찍는다 해도 이란사람이나 중국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러나 경선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2015년 연방자유당 윌로데일 경선에 한인후보가 뛰었다. 이란계 후보는 세 명이 나왔다. 첫 투표와 두번째 투표에 일등을 한 한인후보가 세번째 투표에서 아홉 표 차이로 후보자리를 이란계 후보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란계 후보는 당시 불어온 자유당 바람을 타고 무난히 당선돼 열심히 지역구를 챙기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때 이란계 후보가 얻은 표가 약 천여 표 정도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묻는다. “Nelly Shin 이 당선되면 나에게 무슨 이익이 옵니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그 국회의원에게 배당되는 인원과 예산이 있다. 그 인원을 우리 동포들로 채우고 월급을 주면 우선 고용창출에 도움이 된다. 또한 우리 후손 중 누가 정치를 하겠다면 그들이 비빌 언덕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자손 중에 누군가가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안 나온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는가? 한 알의 밀알이 있어야 밀이 자라는 것이다.


 또한 정치가들은 일반인들이 얻을 수 없는 고급정보를 먼저 알 수가 있다. 그것으로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가 발전하는데 이용할 수가 있다. 몇 년 전 한인회관 재산세 문제만 해도 당시에 시의원이라도 있었기에 무난히 해결될 수가 있었다. 각 교회가 Zoning 등 문제에 봉착했을 때 정치가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사례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주소록을 보고 전화로 도와달라고 하면 열명이면 대여섯 명이 관심이 없다고들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던 이승만 대통령의 말씀이 귓속에서 맴돈다. 우리가 살려면 뭉쳐야 한다.


모두들 관심을 가져주고 조금 귀찮더라도 도와준다면 이민 50여 년 역사에 첫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가 있는데…

 

“동포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참고로 경선의 투표권은 14세 이상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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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470
8045
2018-06-15
아버님

 

‘아버님’ 이란 소리가 들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난 목요일 MR 교회 골프 모임에 초대받아 갔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연습그린에서 퍼팅 연습을 하던 중 그 소리를 들었다. 연습그린에는 퍼팅연습을 하면서 간간히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G집사와 백인친구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아버님이란 칭호는 나를 부르는 칭호임이 틀림없다. 갑자기 주위가 약간 어두워지며 엄숙해졌다.


아버님이라면 주로 친구의 부친이거나 또는 연로하신 어른을 지칭하는 말인데, 거기에는 친밀감과 존경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가 행실이 방정치 못하다면(다행히 내 친구의 아버님 중에는 그런 분들이 한 분도 안 계시다) 안 부르면 안 불렀지 아버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를 불렀던 기억이 없고, 그저 그분의 모습만 희미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살아 계셨다 하더라도 그분에게 내가 아버님이라고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라고 불렀겠지. 그리고 어떤 이들은 자기의 장인을 아버님이라 호칭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장인 어른’이라 불렀고, 그분이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살갑게 부르고 하던 기억은 없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아버님’이라 호칭했던 분이 두 분이 계시다. 한 분은 친구 장보고의 아버님이시다. 총각 때 장보고네 집에 들락거리면서 많이 뵈었는데 한국에서 여고의 서무주임을 하시다 이민 오신 분이라 좀 꼬장꼬장한 성격이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인가 우연히 어머님을 불루어 한국식품에서 뵙고 댁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두 분이 사시는 집을 들어가게 되었다.


문을 열면 바로 복도 끝으로 방이 보이고 왼쪽으로 돌아야 거실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안에서 돈다발을 들고 세시다 갑자기 당황해 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잠시 후 거실로 나오셔서 반갑게 맞으시며 우리 어머니의 안부도 물으셨고 같이 차 한잔 하셨는데, 그때가 내가 그분을 뵙는 마지막이었다. 그분이 돌아가신 지도 벌써 13년이 되었다.


또 한 분은 작년에 돌아가신 J선생님이신데 총각 때부터 만나 나에게, 아니 우리 부부에게 진심을 다해 대해주는 L형님의 장인이자, 내 결혼식 때 들러리 서준 친구 J의 아버님이시다. 20여 년 이상을 암으로 고생을 하셨으나 꿋꿋한 정신력으로 병마와 싸우셨으며 그 와중에서도 항상 뭔가를 배우시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그분을 통해 배웠다. 내가 부동산 업을 시작하자 많은 도움을 주셨고, 수시로 불러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포기를 하거나 안락한 것을 찾는데 이 분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시려 했고, 뭔가를 성취하시려 했다. 새해가 되면 항상 새해 인사를 드리곤 했었는데, 돌아가시기 이삼 년 동안은 소식을 못 드리다가 부음을 듣고 많은 후회를 했다.


‘’아버님은 무슨,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마’’ “아니 그럼 친구 장인을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 


사위 존의 직업이 주택감정사였고, 결혼할 당시 G 집사의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물론 G집사가 존보다 나이는 10년 정도 위일 것 같은데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나하고 나이 차이는 15년 정도가 날 텐데 아버님이라 부르는 건 좀 과대존칭이 아닐까? 


아버님이라고 불리고 났더니 말도 가려서 하게 되고 여태껏 건들거리던 행동도 조심하게 된다. 내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데, 조심조심하면서 살려니 영 어색하다. 다음에 G집사를 만나면 호칭을 바꿔달라고 부탁을 해야지. 그러면 위에 있는 “……………” 이 안에 뭔가를 채워야 하는데 무엇으로 채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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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297
8045
2018-06-02
일주일 일기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한인회 이사장님인 공장헌 형님께 문자를 보내 ‘비가 오는데 골프대회를 강행하느냐’고 물었더니, 오후에 비가 갠다는 예보가 있고 해서 강행을 한단다. 컴퓨터를 열고 고객들에게 새로운 매물들을 보낸 후 실버레이크(Silver Lake) 골프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토론토한인회 골프대회를 하는 날. 회사대표로 4명이 나가게 되었다. 버디 3개에 82타로 2등을 했는데, 이건 순전히 잘 치는 사람들이 불참한 덕을 톡톡히 본거다. 경품을 뽑는데 끝에 까지 하나도 안 되길래, 역시 내 운이 그렇지 했는데 맨 마지막 3번째에 내 번호가 불렸다. 삼성 50인치 TV.


집에 돌아오니 입이 찢어지는 여사님. 안마의자에 앉아 비몽사몽 졸다가 10시 45분 공항으로 향했다. 한 시간을 기다린 후 에드먼튼에서 휴가 받아 다니러 온 아들 앤드류를 픽업해 집으로 돌아오니 아폴로가 어쩔 줄을 모른다. 점프했다가 앤드류 손을 살짝 물기도 하는 둥, 이쪽으로 뛰려다 반대로 뛰기도 하는 둥.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아들을 보며 방으로 들어갔다. 피곤하다.


 일요일- 오후 1시 반에 쇼잉이 있어 혼자 2부 예배를 갔다. 장로 투표를 하고, 장로가 되려고 하면 장로들한테 잘 보여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추천을 못 받는다나, 집으로 돌아와 쇼잉하는 곳으로 갔다. 1시 반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한 시간이나 지난 후에 나타났다. 가끔 남의 시간을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짜증난다. 


3시가 되어 집사람과 아들 그리고 아폴로도 동행하여 지하철을 타고 센터아일랜드로 향했다. 날씨가 최고다. 페리를 타고 건너가 한없이 걸었다. 맥주를 한잔씩 하고 또 한없이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 오는데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데, 이제 힘들다.


 월요일- 빅토리아데이다. 처음 이민왔을 때는 고비나 고사리를 뜯으러 갔을 텐데, 집 청소를 시작했다. 집이 좁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었는데, 요즈음에는 집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개 한 마리와 사는데. 


집사람은 음식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고기 픽업하고 뒷마당을 정리하니 두 시에 큰처남 형님네가 조카 민수와 함께 들어온다. 민수는 어제 한국에서 왔단다. 조카들이 자기 짝들과 도착하고 우리 딸과 사위 그리고 손녀딸이 도착해 고기를 구워 먹으며 노는데 처남형님이 많이 좋아지시긴 했지만 예전처럼 드시질 못해서 안타깝다. 


큰동서 형님도 투병 중이라 참석하지 못하셔서 마음이 아프고, 누나네도 가게가 바빠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 즐겁게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다 일곱시 경에 모두 헤어졌다. 그래 저녁보다 점심이 더 편하다. 형님들 건강해 지시기를 기도한다.


 화요일- 아침에 가게 오픈 해주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Tridel 콘도 분양설명회. 콘도분양가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평생을 벌어 모은 돈으로 웬만한 콘도 한 유닛도 못 사게 생겼으니. 


끝나서 돈벨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차들이 무척 많아 서행하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에글린톤 바로 위에서 앞차가 서길래, 차를 세우자 마자 뒤에서 누가 심하게 박는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차에서 내리니 웬 약간 뚱뚱한 여자가 “Are you Ok?” 하면서 내린다. 


차를 뽑은 지 세 달도 안됐는데, 큰 하자는 없지만 정보를 주고 받은 후 미시사가로 쇼잉을 하러 갔다. 그런데 목을 돌리는데 여간 뻑뻑한 것이 아니다. 골치도 아프고, 끝나고 Collision Reporting Centre 에 사고를 접수 시키고 늦게야 집에 들어왔다.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 여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그나마 차가 많이 부서지지 않아서 다행이네.” 마누라로 신분이 하락하는 순간이다.


 수요일- 낮에 오행한의원 윤원장에게 어제 교통사고에 대한 물리치료를 받다. 오늘은 친구 세길이 구해준 야구장 티켓을 가지고 집사람, 딸, 아들과 함께 야구장으로 향했다. 자기가 힘들어도 항상 남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 세길이. 이제부터라도 부디 잘 풀렸으면 좋겠다. 


야구를 보는 도중, 어제부터 오퍼를 주고 받던 리스팅에, 관심이 많다는 중국인 에이전트가 오퍼를 넣겠다고 한다. 경기 중간에 나 홀로 일찍 집으로 돌아와 결국 고객이 원하던 가격에 딜을 성사시켰다. 좋아하는 고객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새벽 12시 20분. 


 목요일- 3년째 사진사로, 잡역부로 봉사를 하는 시니어칼리지 소풍날. 모든 순서를 잘 마친 후, 사무실로 가 그 동안 여러 가지 서류 정리를 하려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선지 자꾸 집중력이 떨어지며 일의 진행이 안되, 결국 마치질 못했다. 


똘똘하기로 소문이 났던 나였는데(?) 이제 세월 앞에서 어쩌지를 못하는구나. 저녁때 큰처남 형님 생신잔치를 사리원에서 가졌다. 의사가 암세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단다. 그런데 옆에 계신 큰동서 형님은 아직 본격적인 치료도 못 받고 계시니 안타깝다. 지난 가을까지는 골프도 무척 잘 치셨는데. 두 형님 빨리 완쾌 되기를 기도한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마누라의 헛소리, 이번 한 주일 무척 행복하고 있는데,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 내린다. 마누라가 여편네로 내려가는 순간이다. 동시에 나의 위상 또한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요일- 바디샵에 들러 사고에 대한 견적을 받고, 윤원장에게 가서 물리치료 받고, 음식점 코비에 가서 집사람, 아들, 딸과 함께 냉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내일이면 아들이 에드먼튼으로 떠나니까, 우리 손녀딸 보면 볼수록 예쁘다. 


점심 후 계속되는 고객들과 약속을 다 마친 후, 집에 돌아와 뒤뜰에 누워 신문이나 읽으려는데 K형이 전화를 했다. 빨리와 삼겹살을 구어 먹잖다, 삼겹살에 맥주 한잔하며 이야기 끝에 내일 골프 치는 골프장 티켓을 10불이나 싼 50불에 구입했다. 열장이니 곳 백불을 절약한 거다. 


 토요일- 아들을 공항에 데려다 주려고 리빙룸에 나오니 아폴로가 심란한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다. 앤드류와 이별이 싫은 거겠지. 또 한바탕 부둥켜 안고 작별을 나눴다. 오후에는 친구들과 웨스트뷰에서 골프를 치고 인정이네 집에서 돼지 갈비로 바베큐를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인지 골프는 엉망이었으나 돼지 갈비는 맛있었다. 오랜만에 소주를 꽤 마셨더니 취한 것 같아, 일찍 집에 와 잤다. 


그래 이번 한 주도 나름 열심히 살았고, 좋은 일이 나쁜 일보다 더 많았고, 아직은 건강해서 좋았다. 앞으로 8년간 더 열심히 일하자.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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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6181
8045
2018-05-24
생리현상

 


 지난주 신문을 보다가 정말 엽기적인 기사를 보았다. (제발 식사중인 분이나 곧 식사를 하실 분들은 다른 것은 먼저 읽고 이 글은 식사 후에 읽기를 권하는 바 입니다.) BC주에 있는 팀호튼에서 여인이 들어와 화장실을 쓰자고 하니, 직원이 화장실은 고객용이니 고객이 아니면 쓸 수가 없다고 거절하자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고 주저 앉아 일을 보고 그 용변을 맨손으로 집어 직원에게 던진 후 휴지를 뽑아 손을 닦고 그 휴지마저 직원에게 던졌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에는 항상 관련된 동영상이 같이 포함이 되는데, 너무 뭐해서(grossed out) 동영상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꼭 봐야만 믿겠다면 구글에서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국 영화를 보다 보면 유난히 생리현상에 관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특히 예전에 화장실 하나를 가지고 여러 가정이 쓰던 시절의 영화는 특히나 더욱 그랬다. 내가 본 영화 중에 ‘이장과 군수’인가 하는 영화에서도 차승원이가 나오는 것을 참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모든 사람이 하루에 한번이나 두 번은 꼭 일을 봐야 하는데, 살아가는 그 많은 날들 중에 그런 급박한 상태를 한번도 겪은 적이 없다면 무척 신기한 일일 것이다.


 나는 배에 찬바람이 닿으면 영락없이 배가 아프고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버릇이 있다. 작년에 지방에 사시는 매형이 다운타운 병원 약속이 아침 일찍 있다고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가을이었는데 어느 역에선가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오니 배가 아파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형보고 먼저 가시라고 하고 지하철 역에서 화장실을 찾으니 화장실이 없단다. 한 정거장을 뒤로 가면 화장실이 있다는데 도저히 그럴 시간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밖을 나가니 찬바람이 확 불어와 더욱 급해졌는데, 주위에 팀호튼이나 뭐 이런 가게는 안보이고 해서 역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 경비가 앉아있는데 화장실을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변기에 앉으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그때에 생각난 것이 영화 속의 차승원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가끔 겪으면서도 의외의 해결책이 항상 준비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여인들의 용변 보는 모습을 보겠다고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다 걸린 사람들의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린 청년들이 호기심에서 그러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회사원, 교수, 사업가가 몰카를 설치하다 걸렸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일진데 그들은 더러운 것을 보고자 더러운 짓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에드먼튼에서 일하는 아들을 공항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대화 중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들 이야기로는 그 팀호튼은 마약하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문제를 일으켜 그런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겨울 한국과 일본 여행 중 이용한 화장실들은 너무 깨끗하고 좋아서 그야말로 판타스틱 했단다. 일본에 있는 화장실은 좌대에 히팅까지 설치되어 있어 이용하기 너무 좋았단다. 대한민국 많이 발전했지, 내가 마지막에 갔다 온 1999년에도 밖에 나가면 화장실 갈 때 무척 신경을 썼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좋아졌다니, 올해는 한번 다녀올까?


 용변을 본 여인은 얼마나 급하고 화가 났으면 자기의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용변을 본 장면까지 보이고 게다가 동영상에 찍히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울지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이 기사를 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영상까지 봤다고 생각하면 아, 이제 그 여인이 수치심 때문에 실생활 하는데도 지장이 있을 것이다. 


 마약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방침을 만들었다고 해도, 멀쩡한 사람들이 화장실을 이용하자고 하면 허용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마약하는 사람들을 막는 것이 목적이지, 누구나 사용을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닐 테니까. 고객만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여인이 일을 본 후 커피를 사 마실 수도 있었을 텐데.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있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인데, 아쉽다. 


자, 이제 식사들 하세요. 맛있게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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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5303
8045
2018-04-01
개나리 타령

 

 눈이 녹고 날이 따뜻해져 오랜만에 아폴로와 산책을 나갔다. 공기도 산뜻하고 햇살도 따스하게 비추는 것이 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며칠 후면 저 앙상한 가지들에서 수많은 이파리들이 피어나겠지. 밖에 나오자 아폴로도 좋은지 펄쩍펄쩍 뛴다.


 집 바로 옆에 있는 마라톤 길을 건너려는데 저쪽에서 신사장님네 부부가 하얀 진돗개 한 마리씩을 줄에 잡고 오고 있다. 신사장님은 우리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남쪽 길로 건너갔고 미세스 신도 따라 건너가려는데 그만 잡고 있는 진돗개가 우리에게 길을 안 비켜주겠다고 으르렁거린다.


 미세스 신이 힘이 달리니까 당기지도 못하고 오히려 개에게 끌려가는 양상이다. ‘제가 길 건너갈게요’ 하고는 남쪽으로 길을 건너자 신사장님네가 북쪽 길로 건너가 지나치는데 진돗개 두 마리가 입에 마개를 한 채 으르렁거리고 난리다. 아폴로는 힐끗 쳐다볼 뿐 별 반응을 않고 그냥 지나친다. 2년 전 한번 물린 적이 있어, 진돗개만 보면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고 모르는 체 지나친다. 


 진돗개를 지나치고 아폴로는 깡총깡총 뛰면서 다시 길을 건너려는데 꼬부라지는 길 쪽에서 흰 무늬가 듬성듬성 있는 검은 개 두 마리를 옆집 알빈 와이프와 아들이 한 마리씩 잡고 오고 있다. 나이 많은 ‘오레오’(오레오 과자와 색깔이 같다고 그렇게 이름 지었다)는 오래 전부터 있었으니까 나이가 무척 들었고, 새로운 ‘뽀빠이’는 작년인가 조그만 할 때 왔는데 지금은 커서 둘의 덩치가 비슷하다. 


색깔마저 비슷해 나는 구별하기가 힘들다. 뽀빠이가 처음 온 날 집이 그리운지 밤새도록 끙끙거리고 우니까 아폴로도 심란한지 잠 한숨 못 자고 밤새 뒤척거렸었는데, 이제는 동네 라이벌이 돼버렸다. 아폴로가 지나치려 하자 뽀빠이가 한번 붙자고 난리를 친다. 아폴로는 쓱 쳐다보더니 그저 앞으로 내 달을 뿐이다. 젊잖은 놈. 


 작년 우리 앞집에 한 부부가 이사오면서 개를 한 마리 데리고 들어왔다. 아폴로가 나가다 만나면 둘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서로 냄새도 맡고 주인들 끈에 묶여서도 스킨십을 한다. 그 개는 암놈이고 아폴로는 수놈이라 그런지 더욱 애틋하게 논다. 그러다 얼마 전 하루는 그 개가 우리집 쪽으로 왔고, 아폴로도 마침 일보러 뒤뜰에 나갔다가 그 개를 발견해 둘이서 뛰어 놀고 난리를 치는데, 그때 마침 뽀빠이도 뒤뜰에 나왔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알빈네와 우리 집에 울타리가 있고, 우리는 문이 없으니 아폴로가 맘대로 다니는데 알빈네는 문이 달려있어 개들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 뽀빠이도 수놈인지라 아폴로와 앞집개가 뛰어 노는 것을 보더니 더욱 열이 받쳐 컹컹 짖어대고 난리를 쳤다. 앞집 남자가 와서 자기 개를 데리고 가고, 나는 아폴로를 불러들여 일을 수습했다.


 그 후로는 아폴로가 뒤뜰에 나가기만 하면 자기집 뒤뜰에 나와 있던 뽀빠이가 경쟁의식을 느끼는지 철망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난리다. 처녀 하나가 들어오니 동네 총각들이 사랑을 차지하려고 온통 난리를 치는 모양새인데, 오레오는 수놈으로써의 기능이 끝났는지 그런 모습을 보고 가만히 구경할 뿐이다.


 며칠 전에 아폴로가 밖으로 나가자 뽀빠이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한 바탕 붙었는데, 그만 나무에 찔렸는지 울타리에 찔렸는지 왼쪽 눈 밑이 조금 찢어졌다. 그걸 보고 집 사람은 속상해서 씩씩거리는데, 아폴로가 또 방안에서 나와 놀다가 어디에 부딪쳤는지 오른쪽 눈 안쪽으로 핏발이 뻘겋게 나타났다. 그것을 본 집 사람 입에서 괴상한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거 잘못했다간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동물들이 다 그런 거지” 한마디 했더니 울음 소리는 줄어들었는데 아폴로 얼굴을 들여다보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여기서도 개 때문에 난리인데 한국에서 또한 개들 때문에 난리들이다. 어느 지방 경찰청장과 어느 정당간에 서로를 헐뜯고 난리인데, 해당 정당에서 경찰을 ‘미친개’ ‘사냥개’라고 부른다. 그런데 미친개라고 부르면 몰라도 사냥개라면 개들에게 실례되는 말일 것 같다. 최소한 개들은 자기 주인을 확실히 아는데, 한국의 ‘개나으리’들은 자기들의 주인인 국민들을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빨리 봄이 되어 노란 개나리들을 보고 싶고, 한국의 개나으리들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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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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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4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난해 마지막 칼럼 제목이 ‘죽음을 맞이하기’ 였다. “아직도 새파란 나이에 그런 글을 쓰다니, 걔 어찌 된거 야나?” 하고 많은 분들이 생각할 것 같다. 오늘은 새해 아침이라 삶에 대하여 써보기로 한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좋았던 부분도 있고, 우울했던 부분도 있고, 그리고 창피한 부분도 있다. 

 

 

 


내가 사는 이 캐나다는 그야말로 외적 요인에 의해서 우리가 불행하게 된다거나 억울하게 되는 확률이 다른 곳에 비해서 확실히 적다. 즉 내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바뀔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뉴스 중 크게 부각된 것이 노스욕 억만장자의 죽음이었다. 제약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부부가 자기집 수영장에서 목이 졸려 죽은 사체로 발견되었다, 마치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포근한 모습의 사진과 함께.


 처음 기사가 났을 때는 그들은 캐나다에서 몇 번째 가는 부자이며 무려 5천만불을 유태인 커뮤니티에 기부를 했고, 그 외에도 병원이나 학교 등에 수백만불씩 기부를 한 기부 천사로 소개가 되었다. 결코 돈이 있다고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통 큰 기부가 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더욱 아쉽게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기사를 보니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집을 십수년 전에 230만불을 들여 지었는데, 집이 완공되고 입주를 해서는 잘못 지었다고 집을 짓는데 관여한 6개 업체를 소송에 끌고가 200만불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그때 그 공사업체의 변호를 맡았던 한 변호사는 기자가 연락을 하자 “자기는 아무 할말이 없노라”고 회피했다고 한다. 억만장자가 최고의 변호사를 써서 시비를 걸어오면 당해낼 공사업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더니 그 다음 기사에서는 그에게 걸려있는 소송이 무려 150여 개나 되고, 제약업계에서는 그가 주위에 있는걸 무척 부담스러워 했단다. 혹시 소송을 걸어 올까 봐. 첫 소송은 연방정부의 관련부서에서 그의 소유 제약회사를 정부 거래처에서 빼기로 했다는 공문을 받자, 다음날 바로 막강한 변호사를 고용해 그 부처와 담당자를 고소해 그 부처와 담당자가 꼬리를 내렸고, 그때부터 그는 소송을 무척 신봉했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도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자기 맘에 좀 안 들면 명예훼손 되었다고,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을 걸어오는 사람들. 제발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열심히 사는 것도 좋다. 자기 주장을 확실히 관철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아웅다웅 너무 치열하게 살고 싶진 않다. 주위 사람들이 부담을 느낄 정도라면 도가 지나친 것이다. 


 그렇다 올해도 열심히, 그러나 어느 정도 여유로움을 가지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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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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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9
죽음을 맞이하기

 

 벌써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세월은 나이가 들수록 빨리 간다더니 올해는 유독 더 빨리 지나간 것 같다. 근래 3주간 3명의 지인들 장례식이 있었다. 한 명은 나와 대학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 원호의 장례식이었고, 또 한 명은 노스욕 한식당 O의 사모님이었다. 두 사람은 나와 동갑내기다. 그리고 스키협회 하 형님의 어머님께서 거의 백세 가까이 장수하셨는데, 올 봄에 남편 분을 여의시고 본인도 하늘나라에 올라가시는 복된 삶을 사셨다.


 친구 원호의 입관예배에 참석해서 고인과 인사하기 위하여 관 앞에 섰을 때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3년 전에 볼 때보다 수십 년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게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얼굴은 바짝 말라있었다. 


원래 동안에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던 친구가 갑자기 팍 늙은 모습으로 관속에 누워있으니, 지난 한두 달간 그가 무척 고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보면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왜들 아등바등 사는 걸까? 죽음 앞에서 다 놓고 떠나가야 하는데… 


 작년 제자 훈련할 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삶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 라는 질문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거에도 분명히 행복했던 기억이 있었을 텐데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발표한 사람의 많은 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작년과 올해 교회 시니어칼리지에서 봉사를 했다. 사진을 찍고 밥상을 차리는 일이었는데,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열심히 배우고, 학기말에 자기들이 배운 것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데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분들이 만든 작품 전시회와 공연 등을 보며 많은 깨달음이 왔다. 특히 미술전시회와 서예전시회 그리고 시낭송을 들으며 이런 배움의 자리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었다. 미술과 서예는 그분들이 예전에 배움의 기회가 없어서 지나친 것을 이제 삶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툰 솜씨나마 모든 정성을 다하여 만든 것이니 너무 귀하게 여겨졌다.


 시낭송은 담당이신 서 집사님이 직접 나에게 자기반의 시낭송 전체 사진을 꼭 찍어 달라고 부탁했기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런데 시낭송하는 것을 들으니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의 줄거리들을 시로 만들어 발표하는 것이었다. 아 저분들이 평생에 시라고는 만들어 본 적이 없었을 텐데 얼마간 배워 저렇게 멋지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에게 더 특별한 것은 그 반에 계신 윤응식님과의 관계가 나의 이민 초기에 캐나다 생활의 기반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윤선생님께 몇 장의 사진과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드렸더니 전화를 걸어오셨다. 


너무 고맙다고, 시는 평생 처음 써봤다고 하시며 거듭 고맙다고 하시는데 투자 면에서는 나에게는 훨씬 경제적인 것이다. 식사 한번 대접했으면 인사 한번으로 끝났을 텐데, 그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더 많은 인사를 받았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 죽음을 기다리느냐 맞이하느냐 그것은 우리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죽음이 앞에 있으니 그 죽음을 더욱 복되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에 굴복하는 것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다.


 돌아가신 세분 모두의 명복을 빌며, 올 한해 동안 나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들께 연말 인사를 전하고 싶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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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2426
8045
2017-12-10
지역 한인회

 

 요즈음 골칫거리 중 하나가 카카오톡이다. 단체방에라도 가입되어 있으면, 많은 경우 거의 반강제 적으로, 수시로 까똑까똑 하는 소리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어떤 이는 내가 가입한 단체방에도 올리고 내가 그곳 회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친절하게도 개인적으로 또 보내준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냥 지나가도 되는 건지. 고객과 심각한 면담이라도 하는 중에는 묵음으로 해놨어도 부르르 떠는 소리가 줄곧 날 때는 손님에게 무척 미안하다. 


 단체 카톡방에 김정은이 중국 정부에 잡혔다는 소식이 올라와,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바로 그게 사실이냐고 질문을 올렸더니 자기는 모른다고 다른 사람이 보내줘 올렸을 뿐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은 가짜 뉴스였다.


 가장 꼴불견인 것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고 올리는 것과, 비슷한 사진을 계속 올리는 것,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호들갑 떠는 것, 그리고 자기가 뭐나 되는 듯이 한마디 하면 남이 알아줘야 하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지난주 내가 가입되어 있는 카톡방에 이상한 카톡이 올라왔다. 그 카톡방에는 그 단체의 회원 외의 비회원들도 잔뜩 올라와 있어 언제든 일이 터질 수 있는 상태였다. 그 내용은 이랬다.


 얼마 전에 신문에 같은 단체의 두 회장에 대한 기사가 났다. 한인회장들의 모임인 총연합회 회장에 두 사람이 자기가 회장이라고 주장한 거였다. 한 사람은 지방도시의 한인회장이고, 한 사람은 이삼 년 전부터 언론에 수시로 오르내리는 사람인데 좋은 일로 나온 거는 별로 못 봤고, 무슨 불협화음이나 고소 사건에 자주 연루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카톡에 올린 내용은 후자가 회장인 게 뭐가 문제냐며,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두서도 없이 늘어놓자, 답으로 올린 사람은 토론토 밖을 나가면 아무나 한인회장 될 수 있다며 지방 한인회장들을 무시하는 듯한 문자를 올리고, 둘이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를 듣자니 좋은 나라에 살면서 별 할일 없는 사람들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역정이 돋아 한마디 하고 탈퇴하고 말았다. 두어 분이 개인적으로 ‘속이 후련하다’며 톡을 보내왔다.


 나는 지방도시에서 10여 년을 살고 왔다. 자부컨대 지역한인회가 토론토한인회보다 회원들의 삶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치며, 더 긍정적인 활동을 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과연 토론토 십만 한인 중에 몇 명이 한인회 총회에 참석하는가? 겨우 0.1% 정도 참석하는 걸로 아는데, 그나마 위임장이 돌기도 하고, 가장 큰 행사인 평화마라톤 또한 지역한인회 회원들을 빼면 그나마 더 줄어들 텐데. 


 나는 1998-1999년 킹스턴한인회 회장직을 맡았다. 1998년 여름에 Kingston, Hasting 두 교육청과 연계해 그곳에 한국어학교를 설립했고, 계속 운영해 오다 킹스턴은 학생부족으로 중단했고, 벨빌지역은 아직도 운영 중이다. 


벨빌지역 학교를 여는 날은 교장선생님(1대 김영주님, 2대 김희님)과 내가 아이들을 일일이 맞아주었으며 두세 학급으로 나눠 교사들이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때 내가 교장 선생님께 “한인회의 외풍은 제가 막을 테니 선생님은 애들 교육만 책임져주세요.”하고 부탁했고, 선생님들은 정말 열심히 가르쳤고 그 아이들이 지금 사회 곳곳에서 주류로 활동하고 있다.


 킹스턴한인회는 설날 잔치를 시작으로 볼링대회, 어린이 소풍, 학예회, 골프대회를 열었고, 여름야유회 때는 총 인구 200여명의 90%가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다른 지역 한인회도 거의 같은 수준의 운영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토론토한인회 과연 무엇을 했는가? 아무나 밖에 나가면 한인회장이 될 수 있다고? 장담컨대 그런 이야기 한 사람들 지방에 가면 총무 자리 하나도 못 얻을 텐데, 지역한인회를 비하하는 발언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다. 


 앞의 시야가 뿌였구나, 미꾸라지들이 공기를 흐려서인가? 아니면 노안인가. 의사와 면담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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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62323
8045
2017-11-30
나의 친구 김원호를 그리며

 

 늦여름부터 부동산이 뜸하다 보니까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이 별로 없다. 집사람 출근할 때 일어나 빈둥거리다 아폴로(우리 아들 개)와 베더스트까지 산책하고 들어와 컴퓨터로 신문도 보고, 책도 보고, 느지막하게 출근하는 나날이 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자꾸 게을러진다.


 할 일도 없는데 ‘부지런해야지, 부지런해야지’하고 아무리 다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어 아침에 집사람 대신 가게(세탁소 디포)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헬퍼가 없어 둘이서 가게를 하는데 일도 쉽고 시간도 짧지만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이것도 힘에 부친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전, 이번 주에는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가게에 나가 문을 열고 컴퓨터를 켠 후 기계적으로 주머니 속에 있던 전화를 들여다보니 Missed Call 이 떴다. 내 친구 원호다. 반가운 마음에 원호 가게로 전화를 하니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다. 원호의 처 Mrs. 김. 


“저 김재기입니다.” 하면서 속으로 ‘아니, 왜 원호가 전화를 받지 않고 Mrs. 김이 받나, 이상하다’ 하는데 “남편 전화로 전화를 했더니 안 받아서 문자를 보내고 있으니 보세요” 한다. 목소리도 맥이 없는 것이 영 께름칙하다.


 문자를 보니 원호가 천당으로 갔단다. 아니, 이런! 내 친구 원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알아보니 두어 달 전에 간에 암이 있는걸 알았단다. 키모테라피를 했는데 별 소용없이 나의 친구는 떠났다고 한다. 


 내가 세네카에 다니기 시작한 1년 후인 1978년 9월 원호가 세네카에 들어왔다. 같은 동갑내기고 성격은 서로 판이 하지만 외로운 캐나다에서 둘이 친하게 지냈다. 내가 좀 외향적이고 튀는 스타일이라면 원호는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가끔 여학생들이 김원호씨는 왜 저렇게 심각해요? 하고 물어올 때도 있었다. 


 둘이 만난 첫해(다음해?) 겨울 자기가 가르쳐줄 테니 스키를 가자고 했다. 그래서 둘이 가방을 싸 들고 베리로 향했다. 여관을 잡고 들어가니 TV에 굵직한 체인을 감아 놓았다. 거기서 둘이 멀리 여행 온 듯이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놀다가 다음날 아침 호슈벨리 스키장으로 향했다.


 스키를 빌려서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내려오는데 원호는 전에 몇 번 탔는지 처음에는 좀 가르쳐주다가 답답한지 후다닥 내려가 버리고 나는 그 초보자 코스를 내려오는데 무려 반나절을 보냈다. 원호가 지나쳐 내려가면서 나보고 제대로 타고 내려가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오후에는 내가 많이 쳐지기는 했지만 두어 번 같이 내려올 수 있었다. 그 후에 나는 스키협회에 가입해 회장까지 해 보았고 지금도 스키를 타고 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 원호와 나의 약혼녀(지금 집사람)는 학교를 다녔다. 직장에서 몬트리올로 2주간 출장을 가라고 하는데 그때 세네카 다니던 중국계 애들이 집사람을 좋아해 가끔 작업을 걸려고 했었다. 내가 고민을 하자 원호가 “야 원자씨 아무 걱정마, 내가 보호해줄테니까” 해서 마음놓고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학교 끝나면 집에까지 자기 차로 바래다 주었단다. 마치 호위무사처럼.


 학교 졸업 후 내가 결혼할 때 원호는 내 결혼식의 들러리가 돼주었다. 그리고 그도 얼마 후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생활 터전이 나는 토론토에서 동쪽인 벨빌로, 그는 서쪽인 키치너로 향했다. 한참을 바삐 살다가 어느 날 친구가 그리워 내가 키치너를 방문했고, 그 후 어느 날 그가 자기 부인과 아이 둘을 데리고 벨빌 우리집을 방문해 하루를 묶고 갔다. 


좋은 친구가 왔으니 그날 우리 집안 분위기가 무척 좋았고, 그의 딸과 아들, 나의 딸과 아들이 서로 사촌이라도 만난 듯이 즐겁게 보내고 다음날 아쉽게 작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어느날 그의 딸 미나가 해외 한민족 글짓기 대회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는 뉴스가 한국일보에 1면 톱기사로 실렸다. 너무 기뻤다. 마치 내 자식이 받은 것처럼. 


 그리고 몇 년 후 원호에게 전화를 받았다. “재기야 내 딸 미나가 천당을 갔어, 내일 환송식 하는데 좀 멀지만 와줄 수 있지?” 너무 덤덤하게 마치 남의 초상을 이야기 하듯이 말해 잘 알아듣질 못해서 “뭐라고?” 하고 물었더니 뇌에 종양이 생겨서 미나가 그만 천당을 갔단다.


 그런 친구에게 내가 무슨 할말이 있을까. 딸의 장례식에서도 울지도 않고 덤덤하게 앉아있는 원호를 보며 이질감도 경외감도 느껴봤다. 하지만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 후 내가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하자 좋은 중개인이 되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한다는 나의 친구 원호, 그저 서로 만나기는 몇 년에 한번 정도였지만 만날 때마다 웃음으로 나를 포근하게 해줬던 나의 친구 원호, 사랑하는 딸을 가슴에 묻은 후 신학 공부해서 전도사가 된 나의 친구 원호, 그리고 나에게 “재기야, 하나님을 믿어야 돼” 하며 전도했던 나의 친구 원호,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나의 친구 원호.


 원호야, 이제 너를 가끔도 볼 수 없구나. 네가 가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좋으련만, 또 본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컨비니언스, 사진관, 음식점을 경영하며 열심히 살아왔던 너, 이제 모든걸 내려놓고 하나님 품에서 편히 쉬시라. (친구 원호를 보내고, 2017. 11. 28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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