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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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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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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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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북한은 비핵화로 갈 것인가?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 한국 사회는 물론 해외동포 사회에서도 장밋빛 물결과 희망으로 넘쳐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질 전망이 밝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종전 선언이나 평화체제, 또는 상징적 조치가 북한을 “보통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는 이 분위기를 보면서 놀라움을 많이 느낀다. 북한 지도부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이번 회담으로 극복하지 못할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새로운 기회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간에 걸친 북미관계의 오랜 적대와 불신관계를 한 번의 만남으로 신뢰관계로 돌릴 수 있는 것으로 기대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희망적 사고” 이다.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탄두 “핵무기” 에 대한 걱정이 현실이 됐다. 북한의 비핵화는 여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을 움직이는 엘리트 계층 처지에서, 비핵화는 “집단 자살”과 다를 바 없는 이유가 많다. 먼저 그들은 역사의 교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후세인이 핵 개발에 실패했고, 미국의 공격에 타도당하고 처형된 것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상 비핵화에 동의한 유일한 독재자, 리비아 카다피 대령의 운명도 비참하게 살해됐다. “미국이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할 경우에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북한 내에서 혁명이 발발할 경우 미국이 북한 정권 안전을 보장할 능력은 없다. 물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평화 공세를 시작하고, 정상회담도 제안하고 동시에 중국에도 대표단을 파견했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박 외교” 때문이다. 트럼프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암시를 많이 보냈다. 이러한 실질적인 계획이 있을지는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북한 지도부는 공포가 많아졌을 것이다. 


북한은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 자기들이 결정적 타격을 받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미국의 압박 때문에 중국까지 참여하는 대북제재가 가까운 미래에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하기 어려운 위협이다. 회담을 통해 시간을 벌 희망을 품은 북한은 핵을 동결할 수는 있으나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어 보인다. 가능한 양보는 핵-미사일 동결이나 부분적 감축이다. 그래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만일 북한이 만족할 만한 보상(체제 보장, 경제 원조 등)이 이뤄진다면 현재 보유한 핵무기는 충분히 폐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인적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필요를 느끼면 다시 만들 수도 있으므로 북한의 입장에선 대미협상의 마지막 카드로 현재 보유한 핵을 내줄 수도 있다.


핵 전문가들에 의하면 핵물질과 시설만 있으면 몇 주 내로 다시 핵을 만들 수 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3-6개월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CVID(완전하게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특히 돌이킬 수 없는 폐기라는 것은 사실상 비현실적인 목표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핵무력의 완성이란 단순히 핵무기 몇 개를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북한 비핵화는 현재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어 더 이상 핵을 만들거나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서해미사일발사장 해체, 미군 유해 송환 등 이제까지 북한이 보여준 비핵화 조치는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지만, 합의 이행과 검증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며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신하기까지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은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으로 이뤄진 합의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회담 내용이 실패할 수도 있다. 타협을 이루지 못한다면 한반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아주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섣부른 기대감을 가지기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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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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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4
2018-07-30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의 길

  
 

 한반도의 명운을 가를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세계인의 눈은 한반도의 평화의 희망과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두 번 다시 전쟁은 안된다는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면서 남북대화의 직접적인 길이 열리고 남북관계의 극적 개선을 통해 외세의 분단 유지 담합구도를 깨고 탈냉전과 통일 지향의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기적 직전”의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하고 있다. 


또한 북미간 “전쟁 임박설”이 돌면서 화염과 분노의 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의 핵과 군사적 행동을 경고했던 미국이 북미 회담을 거치면서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줄었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전 유산으로 한반도 주변 갈등을 없애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된다.


반면, 북한의 요구가 과도하게 수용되어 사실상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인정을 받고,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따라서 여전히 짙은 불확실성이 동북아시아 지역을 감싸고 있는 시점이다.


북한의 핵개발계획의 의도는 분명 생존의 문제로 대두 되었기 때문이었다. 핵개발의 가장 큰 이유는 한국과 여러 동구권 국가간의 수교와 함께 북한의 입지가 줄어 들면서 군사적 원조를 쉽게 받을 수 없게 됨에 따라서 핵개발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본격적으로 한것이다.


사실 전까지만 해도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지장 없는 것이 핵이었다. 또한, 북한 핵무기 개발은 미국과 남북관계의 경색 등 외부환경보다는 북한 내부를 단속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은 한반도 평화와 북한 사회의 생존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바로 북한 정권의 붕괴일 것이다. 제한적인 외부 지원으로 북한 주민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원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인도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고려에 따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 핵무기 개발을 통한 벼랑끝 전술을 강행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한반도 주변의 새로운 정세 변화에 협상력을 강화한다고 하면서 핵무기 실험으로 외부의 적을 향한 적극적 행동으로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진정 비핵화를 실행할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기존의 핵, 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개혁개방으로 그들의 생존 방정식을 확실히 재구성할 것인가?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발전국가 진입이 현실화된다면, 그에 따라 향후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는 크게 변화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경제부흥을 중심으로 한미와 중국, 일본, 아시아 등이 각축을 벌이게 될 것이고,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북중, 북일 관계도 급속한 재편의 물결을 타게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관계가 북한을 둘러싸고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것이고, 전략적 유연성 강화에 따라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한반도는 과거보다 더 첨예한 미중 관계의 접점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북한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남북 경제협력과 민족의 공동 번영을 위한 금강산관광 사업, 개성공단 재개, 경제협력, 남북철도 사업 등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한 뒤 재개해야 하며 그전까진 전쟁에 대비하고 준비하며 국방에 총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은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될 것이다. 실로 모든 담대한 선택에는 끈질긴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북한의 비핵화가 완전히 실현되지 않고 유엔 제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대북사업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이른 생각이 든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뚜렷한 진전이 보이지 않는 지금 국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 앞서가지 말고 한발 한발 진지하게 미래 한반도의 큰 그림 속에서 평화 정착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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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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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4
2018-07-23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

 

 

 지난 6월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과거 70년 동안 적대했고 북핵문제로 사반세기 동안 “악마화” 시켰던 북한의 정상을 평화의 수호자 미국의 트럼프 정상이 어려운 난제들을 극복하고 만났다. 이번 만남은 세계인들이 놀랄만한 대사건이었다. 인공기와 성조기가 차례로 나열된 벽 앞에서 첫 악수로 시작된 두 정상의 만남은 형식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정상회담 결과물인 “6.12 공동선언”은 내용면에서 더 놀라웠다. 북미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으며, 미국의 안전보장 제공에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제시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단행하면 그 보상으로 체제를 보장하고 경제적 풍요와 함께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쉽게 말하자면 정상국가가 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 동안 북핵 관련 북미간 합의는 “행동 대 행동” 원칙 아래 북한이 먼저 비핵화 조처를 하면 미국이 보상을 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새로운 관계 수립, 즉 북미수교와 평화체제 구축, 북한 비핵화를 삼위일체로 추진하는 구도였다. 지난 25년간의 북핵문제 해법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에 두 정상이 합의한 것이다.


 한국전쟁은 이제 사실상 완전히 종식, 냉전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고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또한 평화의 길로 가는 회담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환영할 만한 사건이었다.


 정상국가가 되려면 개혁개방이 필수적인데, 개방은 그렇지 않아도 부서지기 쉬운 북한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불러 올 수 있다. 그러니까 김정은과 그 측근세력들에게는 치명적인 삶과 죽음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런 모험을 과연 그들은 감수하려고 할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6일과 7일 이틀간 북한을 방문해 북한 비핵화에 관한 후속 조치를 논의했지만, 양국 간의 팽팽한 견해차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측은 이른 시일 내에 북한이 비핵화 시간표를 마련하고 핵 신고와 검증절차에 착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한은 단계적인 동시 행동 원칙을 강조하며 반발했다.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며 북한 외무성이 미국을 비난하면서 북미간 협상에 적신호가 감지된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뿐만 아니라 핵실험 기지 등 다른 의혹 시설에 대한 강도 높은 검증절차를 원할 것이나 북한은 이에 비협조적이며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완전한 비핵화” 의사를 밝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시험대는 핵 신고로부터 일컬어진다. 핵무기와 핵물질부터 미공개 의심 시설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고 정확하게 신고해야 비핵화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화의 길은 몇개의 핵시설이 해체되는 스펙터클이 아닌 길고 지리한 회계감사와도 같을 것이다. 그 길을 내닿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길의 끝을 보는 것 또한 그 못지 않게 어렵다.


 한반도 비핵화란 “한반도에 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현재 남한에는 핵이 없고 북한에는 있다. 따라서 남한과 미국이 해석하는 한반도 비핵화란 북핵이 제거된 상태를 의미한다. 북한도 그렇게 생각할까?


 북한의 반응을 보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한반도 비핵지대화”로 생각한다. 즉 한반도에 핵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 전쟁이 벌어져도 핵이 사용될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주한미군, 한미방위조약, 한미군사훈련, 국가보안법 같은 적대행위가 제거돼야 하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선대의 유훈으로 자위권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핵보유국이므로 미국은 이를 인정하고,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감축협상을 하자는 것이 북한이 보는 “한반도 비핵화”의 진정한 의미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그리고 대미관계 개선을 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핵카드를 포기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 최대한으로 비싸게 팔려 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이처럼 멀고 험난하다. 그러나 고비고비마다 어떤 문제들이 가로놓여 있는지는 대체로 예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평화 구축의 당사자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나갈 것인지 거시전략과 구체적인 전술들을 마련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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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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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사랑에 대하여

 

 사랑이란 무엇일까? 세상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말이 사랑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럼 사랑이란 말의 뜻이 무엇일까? 물론 사랑이란 말이 형이상학적인 말이어서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현대 국어사전에는 사랑은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이라고 쓰여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다. 행복과 즐거움의 근원은 사랑이며 동시에 사랑은 만물을 생성 변화시키는 힘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따뜻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랑은 인생의 흐뭇한 향기이자 우리의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인생의 따뜻한 햇볕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이웃간에 흐뭇하고 아름다운 정을 나누고 산다. 그 고운 정 속에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이러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희망과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모든 사랑의 기초는 자기애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이는 의욕과 의지, 긍지와 자부심, 책임과 희생 등이 모두 자기애로부터 나오며 또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생을 통해 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수 많은 관계 중에서 사랑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그들의 생활 속에 생명을 불러 일으키는 힘을 갖는다. 따라서 사랑은 진실한 생명적인 인간관계를 획득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생명적인 관계를 획득하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오늘날 수많은 소설이나 드라마와 영화의 보편적인 주제로 청춘남녀의 사랑의 내용을 다루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아 흥미롭다. 어찌 보면 세상은 온통 사랑의 문제로 들끓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한 일이 있는 사람이면, 그것이 얼마나 뜨거운 삶이고 충만한 기쁨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 역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을 때 이 세상은 온통 찬란한 무지개 빛깔로 변해버리고 만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무한히 축복해 주고 싶은 강렬한 기쁨으로 충만해 버리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소유물이 아닌 오직 추상 개념이기 때문에 소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사랑은 그 대상의 행복과 성장과 자유를 간절히 바라는 적극적인 노력이며 내재적인 연관이라고 그는 말한다. 에리히 프롬이 정의하는 총체적 사랑에는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Agape), 친구와 동료간의 사랑인 필리아(Pilia), 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Eros)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 하면 남녀간의 에로스적인 사랑을 쉽게 떠올린다. 


아무리 부모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강렬하고 겨레나 사회에 대한 사랑이 깊다 하더라도 이성 간의 사랑처럼 높고 강렬한 연소도를 가지는 것은 없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정은 피어 오르는 감정이기보다는 차원이 다른 깊은 신념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이성 간의 사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감정의 피어 오르는 불꽃에 그들 자신을 사르게 된다. 목이 타 오르는 갈증과 사모, 끓어오르는 감정의 연소와 기대, 끝없는 도취와 황홀, 회의와 불안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을 사르는 것이 이성 간의 사랑이다.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또는 한 여성이 한 남성을 사랑한다는 이성에 대한 열원과 사모는 인류가 비롯되는 그날부터 누구나 겪어 온 세계이다.


옛 성현들은 사랑을 알아야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사랑의 본질은 만나려는 힘이다. 먼저 만나려는 사랑의 힘에 의하여 만나고, 이 만남에 의하여 다시 사랑은 창조적 힘을 발휘하는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즐거움의 근원은 사랑이다. 


모든 만물의 근본원리와 만물을 지탱하는 힘이 사랑이듯이 인간과 인류역사를 지탱하는 힘도 사랑이다.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산다. 살아가는데 빛과 향기를 주고, 기쁨과 보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곧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행복과 불행의 척도가 된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은, 사랑이 있는 사회는 활기차고 생동한다. 반대로 사랑이 없는 가정과 사회는 불행과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사랑이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주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며 인류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사랑을 위하여 기나긴 밤을 밝히며 고된 시련을 겪게 되고, 허다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지고하고도 순수한 감정의 교류와 인간관계를 무엇 때문이라는 공리적인 목적으로써만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비롯되는 그날부터 남녀가 체험한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교섭은 그렇다 하여서 누구나 다 아는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적 구체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일 뿐, 말로서 표현할 수도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심오하고도 미묘한 감정 세계는 스스로 경험함으로써 깨달을 도리밖에 없는 영원한 처녀지로서 우리 앞에 가로 놓인 신비의 세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고 자신보다 상대를 더 많이 생각하고 보살피게 된다. 사랑은 두 인격이 서로를 향한 온전한 헌신을 통해 서로를 결합시키는 힘이다. 그래서 폭넓은 사랑을 해 본 사람이 풍부한 삶을 갖도록 되어 있으며,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이란 말은 인간의 삶 가운데 잠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삶 그 자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간과 인간의 생명적 진실한 관계를 획득하기 위하여, 가슴이 설레는 긴 기다림과 밤을 새우는 무수한 날과 불꽃처럼 타오르는 감정의 불길, 소용돌이치는 불안의 심연을 겪게 된다. 그것들이 사람을 사모한다는 사랑이다.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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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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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평화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길

 
 

 인류는 평화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 갈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 계속 그러할 것이다. 평화는 인류가 염원하는 최대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전쟁의 역사로 일관되어 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평화를 얻기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쓰는 인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 세상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안전이나 사회의 안정, 국가의 안녕과 화평을 위해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과의 투쟁을 계속해야 했으며, 그것이 나아가서는 사회악과의 투쟁으로 확대되고 급기야는 전쟁이 불가피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대립은, 인간 사회에서 야기되는 각종 범죄와 그것을 막으려는 노력과도 흡사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를 가리켜 우리는 “인간 상실”의 시대라고 말한다. 즉 인간성이 메마르고 인간을 존엄시하는 정신이 땅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눈여겨 보자. 신문 사회면의 어둡고 살벌한 이야기들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해가 가면 갈수록 우리는 그 어둡고 살벌하고 또는 잔혹한 사건들이 보다 새롭고 보다 심각한 데 계속 충격을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진화인지 또는 선진 조국으로 발전해 가는 모습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갈구하는 마당에서 부딪히는 장애는 엄청나게 많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적이고 시국적인 현실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역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깊이 얽혀 있는 세계권의 문제가 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가릴 것 없이 요는 물질주의가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물질주의는 비인간적 이기주의 방향으로 작용한다. 


 공산화된 아시아 대륙의 동쪽에 돌출한 반도 남쪽 끝에서 외롭게 자유를 지켜 가는 한국의 형세는 더욱 외롭고 불안해 보인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는 사람들이 미래에 희망을 걸지 못하고, 되도록 신속히 폭리를 취하려는 이기주의적 도덕 파탄에 떨어지기 쉽다. 폭리의 대상은 바로 물질이다. 정신적 속성인 인간성이 몰락하는 자리에서 반대로 치솟아 오르는 것은 물질욕이다.


 요즘 한반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큰 충격적인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평화의 길을 염원하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아니겠는가. 이번 판문점 선언에서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한반도에서도 평화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한국국민이 원하는 것은 북핵 폐기와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난 평화이며 이와 더불어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간의 남북관계를 돌이켜 보면 우려를 불식시키기 힘들지만 희망의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 사명감이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과정을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단기간 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CVID)방식으로 타결해야 진정한 핵폐기가 가능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지구촌의 염원에 걸맞게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평화 정신이 담겼기를 기대한다.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간 군사적 신뢰 구축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안보위협과 전쟁 발발의 위험성은 해소될 수 있고 평화 체제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평화로운 삶으로 가는 길은 긴 여정이다. 


오랫동안 분단 체제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단과 전쟁, 적대적 체제 경쟁을 겪으면서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 불신, 적대감이 누적돼왔다.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들 사이의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야 하며 민족 통일의 토대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평화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한 교류협력이 다방면에 걸쳐 획기적으로 확대-지속돼야 하며, 남북한 경제 교류협력은 평화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남북이 갈라져 전쟁을 한 뒤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다양하다. 남북 간에 생기는 경제 성장의 차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적대감, 군비 증강은 결코 우리 민족이 화해하고 일치하기가 쉽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민족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통일의 그날이 오리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출발점으로 삼아 남북한 주민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어가면서 우리 모두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가야 할 때이다.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을 모아 인간다운 삶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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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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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1
산에서 사랑을 만나다

 

 

 

 

 여행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떠나고 싶은 것이 거대 도시의 빌딩 숲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더구나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행이라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마음의 보약 같은 여행이 바로 산행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산과 숲과 나무가 있는 곳을 찾게 될 때마다 가슴깊이 느껴지고 신선하고 맑은 공기와 나무들의 내음, 오염되지 않은 계곡의 물에서 마음의 안위와 평안감마저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나마도 주말이면 가족들, 또는 친구들과 함께 가까운 근교의 공원을 찾아 복잡스럽고 혼탁한 도시를 잊고 잠시 가슴과 몸 속에 쌓인 스트레스와 불순물들을 털어낼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을 갖는 것은 우리 누구나가 공통적으로 갖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 자연 속의 산과 숲, 나무들은 우리에게 삶의 활기와 의욕을 북돋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터다. 


따라서 주위의 야산이나 초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고, 맑은 공기 속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더욱이 내일을 살아갈 우리 후대를 위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리의 자연 공간을 고스란히 살리고 보존시켜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친구 덕택으로 이번 본 한인교회 시니어 대학 야외소풍으로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에 있는 시닉 케이브(Scenic Caves) 자연 탐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토론토에서 버스로 2시간이 걸리는 6월의 원거리 산행으로 여름 마중을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계절만큼이나 싱그럽다. 


버스 여행은 언제나 묘한 감상과 여유를 안겨 준다. 커다란 창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보노라면 어느새 멀어진 고운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올라 낭만적인 기분이 되고 함께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정겨워진다. 때마침 교회 봉사자들이 건네준 빵과 물을 달게 먹는다.


 북쪽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본다. 멀리 보이는 블루마운틴 산의 허리를 휘감은 구름이 바람에 쫓겨 흩어지다가 산 위로 달아난다. 하늘에는 구름이 군데군데 떠있어 햇살도 요란하지 않고 바람이 수시로 간들거리며 불었다.


 정오가 가까워서 컬링우드(Collingwood)와 블루마운틴 스키장 주변의 관광명소 시닉 케이브에 도착했다. 컬링우드 지역은 5대호 중에서 두번째로 큰 휴론 호수로의 선박수송을 위해 1858년경에 형성된 아주 오래된 마을이다. 이곳 가까운 곳에 담수호 모래사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와사가 비치가 있고 블루마운틴 스키장이 있어서 여름과 겨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블루마운틴은 나이아가라 폭포가 생길 무렵에 생긴 단층의 일부로, 높은 산이 없는 온타리오 주에서 산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단층이 생길 당시에 생긴 돌더미와 동굴들이 있는데 그것이 관광지가 되면서 오늘날 시닉 케이브라 불리는 자연공원이다. 


이곳에는 작은 동굴들과 계곡에 설치된 현수교,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짚라인(Zipline)이 있다. 이곳 짚라인은 멀리 아름다운 조지안 베이를 바라보며 내려가는 캐나다 최장의 840m 길이로 상쾌하게 숲속을 내려간다. 또한 숲속에는 잘 조성된 산책로도 있어서 작은 동굴 지역과 숲속 하이킹 트레일을 걸으며 한나절 놀기 좋은 곳이다. 

 

 대자연의 캐나다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닉 케이브 협곡 속에서 즐기는 동굴 탐험, 조지안 베이 경치구경, 짚라인 타기, 흔들다리(Suspension Bridge) 건너며 경치구경, Trail 걷기 등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연못가의 공원에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피크닉 테이블이 있었다. 우리는 교회 봉사단이 정성들여 준비해온 점심을 먹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잎이 넓은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산에는 이제 온통 푸르고 푸른 여름이다.


 시닉 케이브는 이름 그대로 경치가 아름다운 동굴이다. 이 지역의 역사는 수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빙하와 기후, 물이 변모시킨 이 동굴은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에 의해 신성시됐다고 한다. 여름 기온이 섭씨 약 4도인 “자연 냉장고”, 한여름에도 얼음과 눈을 볼 수 있는 “아이스 케이브(Ice cave)” 등 환상적인 동굴안 지하세계를 탐험할 수 있었다. 이곳의 또하나의 명물은 2003년 6월에 개통된 현수교다. 온타리오에서 가장 긴 현수교라고 하는 이 흔들다리는 총 공사비 100만 달러를 들여 해발 300m에 길이 126m로 이 지역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했다. 


우리들은 무리를 지어 나무판자를 줄로 이어 만든 이 흔들다리를 건넜는데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는 나무판자 틈새로 땅이 함께 흔들린다.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쫙 돋는다. 좀체 발이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이자 뒤에 있는 아내가 겁없이 길을 재촉한다. 


내 딴에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현기증이 나기 시작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떨어질까 봐 두려워 머리털이 곤두서고 심장이 뛰는 독특한 체험을 경험한다. 젊은이들은 이 쾌감을 맛보려고 산에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상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무더운 날씨에 급하게 산을 오르느라 지친 데다 배불리 먹었고 바람마저 살랑거리니 이 순간 한숨 눈을 붙이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의 하나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즐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공원 잔디에 드러누웠다. 얼굴을 가린 모자 사이로 하늘과 나무들을 보고 있었는데 간간이 부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인생은 신기하고 신비롭고 값있는 일이며 만남의 연속이라고 했다. 날마다 태양은 뜨고 지지만 매일이 다른 날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새날을 맞는 기대와 긴장감이 인생의 묘미라면, 새로운 인연과 자연을 만나는 사랑의 감동은 바로 산행의 묘미일 것이다.


 시닉 케이브 탐험,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듯하여 용기를 내었더니 역시 만용이다. 여러 사람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 이 들뜬 기쁨을 오래 간직하고, 그들의 고마운 마음은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더운 날씨인데도 준비해온 풍성한 점심은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도 남았다.


 교회에서 출발해서 안전하게 그 많은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세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본 한인교회 김창일 목사님과 행사준비위원들, 그리고 교회봉사단원들의 희생적인 봉사활동에 찬사를 보낸다.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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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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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김종호 이집트(7)-홍해를 품은 휴양도시 ‘후르가다’(Hurghada)

 

신의 나라 이집트의 여행은 룩소르 신전 관람을 마지막으로 이집트의 고대 유적지 관광은 끝이난 셈이다. 이집트에서 남은 마지막 2일간을 중동의 보석 “홍해”를 품은 아름다운 휴양도시 후르가다에서 바다를 즐길 예정이다. 이집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변도시이다. 


이집트의 리비에라로 불리는 홍해(Red Sea) 해안지역은 이스라엘 국경에서 수에즈 운하까지, 그리고 남쪽으로 이집트의 동해안을 따라 수단 국경까지 이어진다. 후르가다는 이집트 홍해 주의 주도이며, 해변에 있는 휴양도시이다. 20세기 초에 건설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이집트 정부에 의해 관광업이 발달되었다.

 

 

 

 

 

룩소르에서 후르가다로 가는 길은 나일강 동쪽의 높은 사막지대를 넘어가는 280km의 멀고 험한 사막길이다. 모래와 먼지만 풀풀 날리는 모래사막을 끝도 없이 달렸는데 사막 한가운데에서 버스엔진에 문제가 생겨 오도 가도 못하는 사막에 갖히고 말았다. 


버스 운전사는 엔진을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해가 넘어가고 어둡기 시작하니 모두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몇 해 전 이 사막에서 관광객을 목표로 테러리스트들의 대 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에 사막의 밤은 공포에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998년 룩소르 사막에서 벌어진 참극, 이슬람 과격세력이 총기를 난사 외국인 관광객 58명이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늦은 밤에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나타났다. 관광객을 보호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모양이다. 구세주가 나타난 셈이다. 우리들은 드디어 안도감을 찾았다. 도움을 받아 사막을 통과하는데 무슨 검문검색이 그렇게 많은지, 버스로 약 5시간의 거리를 9시간이 걸린 늦은 밤에 후르가다의 AMC Royal Hotel에 도착했다. 사막에서의 무서운 경험이었다.


필자는 이집트에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이집트가 바다를, 그것도 두 면이나 너르게 접한 나라라는 것을 제대로 몰랐다. 이집트에 대한 로망을 품게 되었던 소설 “람세스”에 모세가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에 “홍해의 기적”도 당연히 비중있게 언급되었지만, 성경도 역사도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필자로서는 비유와 메타포로 채워진 신화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이다. 

 

 

 

 

 

홍해의 기적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모세가 홍해를 가른 기적이다. 그래서 필자는 홍해를 더욱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기적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 신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면 기적은 사람의 상상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것일텐데 모세는 인간으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했기 때문에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모르겠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홍해지만 우리에게는 가기 쉽지 않은 바다, 그곳에서 수영을하고 홍해 바다를 갈랐던 모세의 기적을 바다 속에서 느껴보기 위해 팔로 물을 가르는 시늉을 해 보았으나 홍해는 반응이 없었다. 함께 선탠을 하고 있던 Mr. 김은 아직 믿음이 얕아서 그렇단다.


홍해 해변의 썬베드에 드러누워 올려다 본 하늘, 가까운 바다는 투명한 에메랄드 빛, 멀어질수록 짙푸른 코발트 블루, 세상이 온통 평화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왜 푸른 바다가 홍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빨갛다는 것과 푸른 바다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고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단어다. 아직도 궁금하다.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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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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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이집트(6)-죽은 파라오와 살아있는 신이 만나는 곳 ‘룩소르’(Luxor)

 

카이로 일대가 대 피라미드로 연상되는 이집트 고왕국의 중심이라면 카르낙 신전이 있는 테베는 침입자 힉소스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이집트를 건설한 곳이다. 파라오 중심의 역사에서 이집트 대중의 시대, 람세스2세의 시대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곳, 바로 테베가 오늘날의 룩소르 일대이다.


3500년 전 나일강 상류에 번성했던 왕묘와 신전의 도시, 이집트 문명의 혼과 대중적 신화가 살아 숨쉬는 룩소르를 빼면 이집트 여행은 별 의미가 없다. 이집트 최대의 관광명소이자 고고학 유적지 룩소르, 기원전 1550년부터 1075년까지 500여 년간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였던 테베가 있던 곳이다.

 

 

 

 


룩소르는 나일강변에 있는 고대 이집트의 생활상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는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하나이며 이집트 남부에 있는 도시이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룩소르 신전, 카르낙 신전, 멤논의 거상 등을 포함한 유적들이 위치해 있고 서안지역에는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이 있다.


시민들은 주로 사탕수수 농사에 종사하며, 경제는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룩소르는 문명이 수세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곳이다. 아주 시골이란 얘긴 아니지만, 마차가 수시로 지나다니고, 오래된 건물과 그 사이로 이어진 좁은 골목에는 여행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 인사를 하고, 말과 당나귀가 수시로 다니는 골목에서는 냄새가 조금 나기도 했다. 


이집트에서는 당나귀가 말과 함께 매우 중요한 동물로 여겨진다. 사람들이 당나귀를 타고 다니거나 당나귀 뒤에 짐을 싣고 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 낮선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지만, 사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쫑긋한 귀와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당나귀가 불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는 카이로에 있지만, 고대 이집트의 나머지 전부는 룩소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베라고 불리던 먼 옛날부터 파라오들은 이곳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자신도 언젠가 그들의 곁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기도했던 곳이다. 그러다보니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볼 것이 많다.


왕가의 계곡(The Valley of the King) 같은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나일강을 건너 서안지구에 있다. 사막인데다 태양은 뜨거웠다. 정말 황량한 이 사막에 이집트 최대 관광지가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태양 아래 그대로 노출돼 걷는 내내 정말 더웠다.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유적지는 멤논 거상이었다.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이 거상은 야외에 있어 별도의 입장료는 내지 않았다. 하지만 룩소르의 4월, 그것도 대낮에는 그림자를 찾아 쉬기 바빠서 멤논 거상은 우리를 오래 붙잡지 못했다.


입장료 160파운드를 내고 무덤이 많은 언덕에 도착했다. 왕가의 계곡은 룩소르의 유명한 관광지다. 피라미드처럼 거대하고 눈에 띄는 무덤이 아닌 외딴 곳에 굴을 파서 내세에 평안을 얻으려 했던 왕들의 무덤인데, 단 하나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전부 도굴되었다고 한다.


그 단 하나의 무덤이 그 유명한 투탕카멘이다. 사실 투탕카멘은 재위 기간이 고작해야 9년으로 매우 짧은 편이다. 하지만 왕가의 계곡에서 유일하게 온전하게 보전된 채로 발굴된 무덤인 데다가 황금마스크가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 있어서 유명하다.


왕들의 계곡에는 고대 이집트 왕(파라오) 64명이 잠들어 있는 넓고 호화로운 지역이며 이 중에는 투탕카멘, 세티1세, 람세스3세, 아멘호텝2세 그리고 람세스6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 BC 1352년에 세워진 투탕카멘 왕릉은 가장 유명한 무덤으로 1922년 호와드 카터가 왕의 전설이 담긴 유물을 발견하여 세계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투탕카멘의 유물이 대거 발견된 것은 무덤의 위치가 다른 왕들의 무덤 위치와는 사뭇 다른 위치로 인하여 도굴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


관람을 마치고 신전 주변을 보니 마치 고대 세계로 온 것처럼 온통 발굴 중이거나 이미 발굴된 또 다른 작은 신전들이 주변에 즐비한 것을 보고 인간의 겸손함과 역사에 대한 경외감이 솟구친다. 


저 멀리 나일강 강변을 따라 파랗게 물든 룩소르 평야는 과연 이곳이 사막 한 가운데인가를 잠시 잊게 하고 있다. 황량한 사막의 산맥에서 문명의 최정점을 달성한 고대 이집트인들에 대한 관심과 존경심이 갑자기 더해가는 순간이다. 


왕들의 계곡을 비롯한 왕비의 계곡, 귀족의 계곡이 이처럼 5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고 1년 내내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곳에 자리잡은 것이 오히려 그들의 자취를 오늘에 남겨준 것임을 생각할 때 비록 도굴을 막을 수 없었을지라도 풍수지리적 관점에서는 묘터를 잘 잡았다고 생각된다.


왕들의 계곡 정반대편으로 합셉슈트 장재전은 테베의 험한 계곡을 등지고 세워진 건축물이며 이집트를 통치했던 유일한 여왕 합셉슈트는 그의 무덤을 “제세르 제세루”라고 불렀다. 이는 훌륭한 것 중에서 훌륭한 것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모세의 어머니로 알려진 인물로 강한 성격의 여성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신전 중 가장 큰 신전이 카르낙 신전이다. 수세기에 걸쳐 지어진 고대 이집트 사원의 탑문, 기둥이 많이 세워진 홀, 거대한 동상, 사원, 오벨리스크 등이 있다. 


카르낙 신전부터 룩소르 신전까지 약 3km에 걸쳐 고대에는 스핑크스의 길이 있었다고 하여 현재 계속 복원과 발굴 중에 있다. 축제 때가 되면 카르낙 신전에서 살고 있던 신들이 이 길을 따라 룩소르 신전으로 놀러 와서 며칠 동안 축제를 즐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룩소르 신전을 관람하였는데, 신전 입구에 태양신에 바치는 기념비 오벨리스크가 두 개 있었으나 현재 하나는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있다. 카르낙 신전 입구의 하나는 터키 이스탄불의 히포드롬 광장에서 관광객을 맞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뒤섞이고 강자가 약자가 되고 언젠가 약자가 다시 강자가 되면서 약탈과 지배를 반복하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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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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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김종호 이집트(5)-이집트 여행의 매력 ‘나일강 크루즈’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 나일강이 실어나르는 풍요로운 영양물이 없었다면 이집트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나일강은 아프리카 적도 부근에서 발원해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수단 등을 거쳐 이집트를 통해 지중해로 흘러가는 장장 6690km의 긴 강을 말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나일강 크루즈’의 나일강은 이집트를 흐르면서 수천 년 동안 종교와 신앙의 근간이 되어 온 그 나일강을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이집트가 자랑하는 인류문명의 근원이자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강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나일강 크루즈 여행일 것이다.


풍요로운 삶과 화려한 문명을 꽃 피운 이집트의 수많은 문화와 유적지를 감상할 수 있는 편안하고 호화스러운 여행 방법 중 하나이다. 

 

 

 

 

 
아스완 나일강가에는 수많은 크루즈 선박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크루즈선의 이름 중에는 파라오들의 이름을 딴 것이 많음이 특이하다.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의 300km를 운행하는 우리가 승선한 크루즈 선은 “Nile Goddess” 이다. 


Aswan을 출발한 3박4일간의 나일강 유람선 Nile Goddess는 사하라 사막을 지나면서 시작되었다. 아스완, 콤옴보, 에드푸, 에스나, 룩소르 등 대부분의 주요 관광지가 나일강을 따라 위치해 있기 때문에 크루즈 선상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나일강의 풍경과 사막을 편리하게 즐길 수 있었다.


나일강변의 사막에는 수로를 만들고 강물을 끌여들여 농경지를 만들고 푸른 숲과 잔디가 자라고 많은 말들이 강가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하늘과 나일강, 그리고 이집트 땅이 양쪽으로 펼쳐지고 해뜨는 나일강, 해지는 나일강의 환상적인 풍경을 배 위에서 감상했다. 2천년 전에 클레오파트라가 시저를 유혹하여 두 달간 나일강을 크루즈하며 사랑을 나누었다는 곳이 아니던가.


크루즈 배에 탄 사람들은 바쁠 것도 없이 그저 모여 앉아 산을 즐기고 사막을, 강을 즐기고 이야기를 나눴다. 배의 옥상에는 40도의 내려쬐는 무더운 햇볕을 우리들은 견딜 수 없었는데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은 오히려 선탠을 즐기고 있었다. 해 지는 나일강에는 붉은 노을, 붉은 하늘이 물드는 산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녁에는 크루즈에서 제공되는 쇼 벨리댄스와 이집트 전통춤인 탄두라 공연같은 소소한 볼거리도 제공되었다.

 

 

 

 

 

 
아스완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져 있는 콤옴보에 도착했다. 악어 머리를 한 신인 세베크와 매의 형상을 하고 있는 Horus 신에게 봉헌된 콤옴보신전은 이집트에서는 보기드문 이중구조 양식을 띤 신전으로 강변 바로 앞에 신전이 위치하여 편하고, 신선한 강바람을 동시에 맞을 수 있어 더 좋았다. 


그때에 나일강변에는 악어들이 많이 살았고 사람들은 악어를 무서워했을 것이 틀림없다. 파라오를 비롯한 사람들은 두려운 악어를 모시고 (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안녕을 빌었을 것이다. 모든 자연이 다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었던 시절 우리는 그 시절에 지었다는 유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에드푸 신전, 이 신전은 오시리스와 이스시의 아들로 태양신으로 숭배되었던 매의 형태를 한 호루스 신을 모신 신전이다. 기원전 3세기경에 이집트를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우스 왕조 당시 6대에 걸쳐 건설된 것이다. 천동설을 믿었던 당시에 세워졌으며, 아스완에서 북쪽으로 123km 떨어져 있는 이 신전은 그 규모가 웅장하고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고고학자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신전 중 하나이다. 


마지막 날 고대 이집트의 수도 룩소르(Luxor)에 도착했다. 날씨는 37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늘에만 들어서면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날씨였다. 나일강이 이집트의 젖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광경이다. 나일강이 흐르는 쪽의 땅은 기름져 보이는 검은색 토양이었고 많은 나무(야자수, 바나나 등)와 밀, 사탕수수가 재배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 강이 흐르지 않는 쪽은 모래사막이거나 황량한 사암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집트에서 나일강 서안은 대부분 사막지대인 사하라 사막이며, 예로부터 죽은자의 땅이라 여겨오고 있다. 아스완 댐 건설로 물이 풍부해졌지만 관개시설의 미비로 아직도 이집트 국토의 97%는 사막이다.


크루즈 선을 타고 가면서 창 밖의 강물이 끝없이 이어진 풍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곳곳에 이어진 물길 따라 세워진 조각품을 비롯하여 고색 찬란한 옛건축물은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다. 강을 대하면서 항상 강은 젖줄이라는 생각을 한다. 젖줄이란 생명을 구원하고 역사를 만들어낸다. 


인류문명의 시작이 강가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젖줄이기 때문이다. 강가에 모여서 부락을 이루고 농사를 짖고 인류역사는 면면히 이어왔다. 동네마다 강물이 지나가도록 치수사업은 동서고금 끝없이 이어져 왔다.


사막에서의 색다른 체험과 이집트의 찬란했던 문화유산 등을 돌아보며 또한 나일강 크루즈를 경험한 필자와 같이했던 많은 사람들이 사막기후와 배 위에서 제공되는 다른 음식문화에 고생은 했지만 뜻깊은 크루즈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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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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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2
이집트(4)

       

사막의 끝에 핀 인류문명의 금자탑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s)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거대하고 웅장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고대 박물관 등 여러지역의 탐방을 끝내고 카이로를 출발 아스완을 향해 하늘을 날았다.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1000km를 Nile Air 항공기로 1시간30분 걸렸다.


 굽이굽이 흐르는 나일강과 깍아지른 듯한 사막 산, 끝없이 이어지는 사하라 사막의 상공을 날 때 우리는 마치 영화 “아웃 오프 아프리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나일강을 지나며 고대 이집트를 떠올렸다. 모세와 람세스2세, 클레오파트라 등 나일강과 역사를 함께한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서 룩소르 신전부터 수많은 신과 파라오와 함께한 수천 년 된 유적지가 사막 그리고 띠처럼 형성된 비옥한 범람지역을 지나갔다.


 마침 사막위로 아침 해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사막위로 떠오르는 일출의 모습은 산이나 바다에서 보던 일출과는 다른 장관이었다. 아스완에서 먼저 찾은 곳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거대한 아스완댐, 이것은 보통 “올드 아스완댐”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홍수조절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으므로, 나세르 대통령이 이 댐보다 7km 상류지점에 새로운 댐을 건설하였는데 이 댐은 아스완 하이 댐(Aswan High Dam)이라고 불린다.


 이 댐의 완공은 이집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매년 반복되던 나일강의 홍수를 막아 국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으며 충분한 물을 확보하여 나일강 유역의 사막에 많은 농경지를 조성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엄청난 양의 전력을 생산하여 이집트에 전기가 남아돌도록 만들었다. 


이 댐 때문에, 아니 나일강 때문에 국경문제가 생겨 이집트와 수단은 같은 아랍계 종족인데도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이집트와 수단의 국경지역에 아부심벨 신전이 있다. 크루즈 배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에 아부심벨로 갈 예정이다. 아부심벨은 수단과의 국경지역으로 수백 평방km나 되는 사막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마음만 먹으면 그곳을 오가는 관광객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까지는 280km로 새벽 4시에 출발하여 3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곳곳에서 군인들이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시야를 뿌옇게 흐려 놓았던 새벽녘의 안개가 연기처럼 흩어지면서 벌써 동이 트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사막의 지평선을 가르면서 붉게 물든 동녘하늘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장대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새벽에만 볼 수 있는 사막여행의 또 다른 백미였다.


 사막의 아침은 짧았다. 사막은 단 한 번의 기지개로 태양을 품속으로 받아들였다. 사막은 누런 황토 빛 바탕에 검게 탄 듯한 봉우리가 점점이 흩어져 있어 신화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부심벨에 도착하자 먼저 마주한 것은 아스완 하이댐 완공으로 사막에 거대한 푸른 담수호(나세르 호수)가 끝없이 이어지는 장관이었다. 수단 국경까지 이어지는 사막의 호수는 나일강을 끼고 5000년간 이어져 오던 문명의 풍토와 역사를 바꿔놓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도전한 대역사에 앞으로 신은 어떤 인과응보를 내릴지 자못 두려움이 앞선다.


 이집트 왕국 3500년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대를 이끌었던 람세스2세는 태양신 아모, 창조신 프타 그리고 자신을 위해 거대한 신전을 건립했다. 이곳 아부심벨에는 람세스2세 신전으로 불리는 아부심벨 대신전과 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인 하트로 신전이 나란히 나일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는 20m 높이로 우뚝 서 있는 4개의 람세스2세의 거상이 있다. 그의 두 다리 사이에는 그의 딸의 상이 발가락을 딛고 미소짓고 있다. 신전 내부에는 오시리스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람세스2세의 8개의 입상이 서 있고 기원전 1275년 시리아의 카데쉬에서 벌어진 히타이트와의 대규모 전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람세스는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신전에 새김으로써 누구도 이곳을 지나 쳐들어올 생각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웃에 있는 왕비의 신전은 람세스의 신전에 비해 규모가 작고 소담스럽지만 건강미와 세련미가 돋보였다. 사원이 가득한 이집트에도 아부심벨은 특별한 취급을 받는 장소이다. 물속에 잠겨 있어야 할 위대한 인류의 축조물이 지상에 남아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1959년 이집트 정부가 관개수로를 통한 농업혁명을 내새우며 아스완댐을 건설한다고 발표했을 때, 아부심벨도 나일강에 있는 무수한 신전과 함께 수몰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세계는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인류사회는 막대한 돈을 들여 두 신전을 1000여개 조각으로 나누어, 1967년 9월 드디어 원래의 위치보다 210m 뒤쪽, 63m 위쪽으로 통째로 옮겨놓는데 성공했다.


 이전 기금을 댄 50개국 중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이곳이 더 유명해진 계기는 4년에 걸쳐 진행된 유네스코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의 장소에서 안전한 곳으로 사원 전체가 옮겨간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신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랐다 이어붙인 자국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아무튼 아부심벨 이전공사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으로, 아부심벨이 고대 이집트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유산임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양 신전의 관람을 마치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돌아보는 심정으로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아스완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사막 한가운데 멀리 바다에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푸른 산맥이 연이어 있는 풍광이 계속되고 있었다. 


안내자는 저것이 바로 신기루라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듯한 광경이었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그곳을 향하여 기진맥진 가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래 속에 묻혔을까. 한국말로 신기루라고 말하는 이집트인 가이드 김철수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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