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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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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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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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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1
우리 설날

 

흐르는 시간 띠에 줄이라도 좍 긋듯 펑 터트린 오색 종이꽃을 타고 황금돼지해가 들이닥쳤다. 온통 흥분으로 들떠 있던 밤이 가고 아침이 밝기를 여러 날이건만 지난해나 오늘이나 별 다름 없는 일상이 나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새 해’라는 새로운 기대의 눈을 번쩍 뜨게 해 준 건 블라디보스톡에서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이었다. 


러시아 동방교회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1월 7일이 성탄절이라고 한다. 12월 25일은 정례적인 성탄절로, 1월7일은 현지국가와 국민에게 드리는 예의로 28년간 두 번의 성탄절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아직 새해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정수리에 찬 물을 확 뒤집어 씌우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면 앞만 보고 분주하게 달려오던 삶의 경주에서 잠깐 멈춤과 숨 고르기를 하게 된다. 일 년 내내 이 핑계 저 구실로 구석박이가 된 주위를 돌아본다.


아귀를 꼭 묶지 않은 곡식자루처럼 미완으로 던져진 일거리들,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한 인사교류관계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마음만 초조하고 바빠진다.

이것들을 언제 다 정리정돈 할 것인가. 종종걸음 치지만 계절은 오히려 더 많은 행사, 대외활동으로 몰아붙여서 나를 잊을 지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리저리 흐르다 나동그라진 조약돌처럼 망연한 상실감에 젖어 있었는데 순전히 시간계수법의 차이가 온 몸에 활기를 넘치게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누카’나 아랍의 ‘라마단’ 축제처럼 시간의 잣대보다 민족적인 전통의식이 더 앞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 한이 없었다. 


문득 연이어 따라 나온 사실 하나가 환희로 펄쩍 뛰게 하였다. 설날! 아직도 한 달, 한 해를 통째로 다시 얻은 듯 기쁨이 전율을 일으키며 온 몸에 흘렀다. 나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어 차분히 새해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설날을 언제부터 지켜왔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중국사서에 ‘신라 때 정월 초하루가 되면 왕이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에서 상당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1895년에 양력이 채택되면서 구정으로 밀려 빛이 바랬다가 1985년 ‘민속의 날’로 제정되어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설’의 어원에 대해서도 한 살-설, 장이 선 다의 선-설이란 여러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새해 새날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유추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달력을 펴 놓고 들여다본다.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부족에는 ‘없어져서 좋은 날’(Good Riddance Day)이라는 축제가 있다 한다. 지난해의 불쾌하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나 사건들을 일일이 종이에 기록해서 강력한 분쇄기에 던져 종이가루로 만들거나, ‘없어져서 좋은 것’들을 망치로 부셔버린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 고통을 비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 하여야겠다. 좋은 일들은 추리고 가다듬어서 일 년 365일 8760시간을 새롭게 채울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 민초들의 삶 속에서 용해되고 숙성되어 지켜온 신토불이의 새해 첫날 ‘설날’의 미풍양속을 고스란히 이민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조상세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찬, 세배, 덕담의 설 풍경을 그리다가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묵은세배’와 세뱃돈에 관한 한국 예지원의 추천이었다. 자녀들이 섣달 그믐날 부모님께 한 해 동안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세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때 빳빳한 신권으로 세뱃돈을 드리면 다음날 세뱃돈으로 자연스럽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세뱃돈은 받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마나 사려 깊고 애정이 넘치는 풍습인지 고개가 숙여진다.


아침 걷기를 하는데 매일 도서관에서 만나는 외국인 친구 하나가 아는 체를 한다. 차이니스 뉴이어(Chinese New Year)? 아니 우리 설날이야. (No. Korean Sulnal)! 


 인생은 짧게도 길게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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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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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9
송구영신(送舊迎新) 이야기

 

 
 
‘아직도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나, 일곱 살이면 바뀔 나이도 됐는데.’ 일곱 살짜리 콜만(Coleman)이 크리스마스 전날 트럼프대통령에게서 받은 전화회답이다. 어느 단체의 특별기획으로 실행된 백악관성탄절통화를 다룬 신문기사의 제목은 ‘아이들아 이 기사는 제발 읽지 말아다오’였다. 


대통령과의 대화가 어린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하기를 기대했는지 목 울림만으로도 금방 분별되었다. 콜만이 부모가 저를 속여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나에게도 여러 가지로 관점의 선별문제를 제시해 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5세에서 8세 사이 어느 시점에서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된다고 한다. 1978년 연구를 보면 다섯 살짜리들은 85%가 있다고 믿는 반면 여덟 살짜리들은 25%에 불과하였다. 2015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연구는 인터넷 등에 의해 더 빨리 산타클로스가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 


크리스마스 날 산타클로스가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타고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는 이야기는 긍정적인 반응으로만 해석되지 않는 듯하다. 어느 동화작가의 글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의 딸은 산타클로스가 거짓이라는 걸 벌써 알았지만 엄마가 실망할까 봐 말을 안 했다는 것이다. 


토론토스타 ‘패밀리 서커스’ 만화에는 다섯 살 맏이가 성탄절 아침에 포장을 푼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동생들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 우리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도 돼.’ 귀여운 웃음만 자아내지는 않는다. 


부모들의 거짓은 선한 속임수일까. 가족모임에 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며 깊은 상념에 젖게 하였다. 오랜만에 모인 아이들의 키가 아빠와 어깨를 견줄 만큼 모두 껑충 자랐다. 


가끔 차를 태워달라며 미안해하던 의현은 내후년에 대학에 간다고 한다. 8학년 졸업식에서 최 우등상 타러 나가던 때 네 키가 제일 작았는데…놀라워했더니 ‘더 이상 아니에요.’ 싱긋 웃는다. 


크리스천들이니 성탄절의 주인과 산타클로스는 별개의 인물이라는 걸 환히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의 본체와 그 작은 일부분을 실행하는 자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깨닫는 이들에게 무슨 속임수가 필요할까. ‘산타클로스를 어떻게 생각하니?’ ‘아. 그건 그냥 이야기에요’. 


12월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숨고르기를 하는 듯하다. 정신 없이 달려오던 일상에 잠깐 멈춤의 표지판이 턱 가로막고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말거리 까탈거리들이 많은 해였다. 국제정세는 예측할 수 없이 얼키고 설키고. 산불, 홍수, 쓰나미, 화산폭발… 지구가 몸살을 하는 사이 폭동, 살상, 분쟁과 쟁탈 전쟁소식은 끊일 날이 없었다.


나 개인적인 심신의 아픔과 고통을 가미하면 올 한해는 살아내기 참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천재지변이나 병고를 일단 제치고 보면 거의 모든 재난은 거짓과 탐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에게 형성된 성품은 근원이 어려서부터라는 연구 결과는 이제 거의 상식화 되었다. 완전 미지의 세계를 더듬는 어린아이의 성장과정을 떠 올린다. 스치는 대로 흡수할 순백의 탈지면 같은 심상,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허투루 다룬 듯 조바심이 쳐진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속담은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의 부모들은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바르고 깨끗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몸가짐으로 태교를 실천하였다.


 다섯에서 여덟 살 사이에 진실을 알게 되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의 신뢰를 잃지 않고 정서를 함양하는 방법은 없을까. 기자와 만화가가 안타깝게 고심하는 갈등이 나에게도 전해왔다. 


문득 그저 하나의 이야기라던 지혜에서 터득하였다. 더 이상 거짓되게 속이지 말자. 고운 해를 맞이하도록 아름다운 동화를 만들어 주자. 문학은 세상을 아름답게 살게 하는 지혜의 이야기가 아닌가. 의현이 하키 연습에 간다며 아빠 차를 몰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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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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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어떤 친구와 뻐꾹 시계


 
 친구(親舊)의 親자를 파자하면 ‘나무 위에 서서 보는 것.’ 즉 나무 위에서 지켜보아 주다가 어렵고 힘들 때 내게로 다가와 준다는 뜻이라 한다. 나무 위에서 지켜주는 친구라면 새(鳥)가 더 적격이 아닐까 상상해 본 것은 순전히 우리 집 뻐꾹 시계 때문이다. 


서울에서 대망의 올림픽대회가 개최되던 해, 친구 부부와 우리, 네 사람은 난생처음 구라파 여행으로 몹시 흥분해있었다. 토론토 한국여행사 ‘김’사장이 구라파 여행코스를 신설하고 선발팀으로 가게 된 것이다. 


현지 여행사 사장과 만나기로 한 암스테르담 공항엔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았다.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한 다른 여행객도 전혀 없었다. 사장은 나타나지 않고 영어권이 아니니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하여 툭 건드리면 눈물이 폭 쏟아질 지경이 되었다.


30여 분이 지나자 웬 한인남자 한 분이 텅 빈 청사로 들어섰다. 무조건 달려가 붙들었다. 그런데 말문도 열기 전에 “사장이 갑자기 출타해서 대신 오느라 늦었다”며 거듭 사과하는 것이었다. 와 준 것만도 감지덕지 구세주 같았다. 


독일 ‘뒤스버그’ 호텔에서 자고 난 다음날 그가 밝힌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바로 독일 ‘유로파여행사’ ‘조’사장이었다. 뉴욕 손님 30여 명이 같은 기간에 열리는 서울올림픽 관광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며 며칠 전에 예약취소를 하였다 한다. 


4명으로는 그룹여행을 할 수 없고, 적당히 변상해서 돌려 보내려 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왜인지 친구가 되고 싶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너무 순진하고 가련해서였을 것이라며 웃었지만 분명한 것은 ‘김’사장의 바람 넣기만 아니었다면 구라파 여행이란 생각조차도 못했을 성품들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봉고차에 식료품과 취사도구를 싣고 와서 여행 스케줄을 다시 짰다. 새벽6시에 기상하여 아침, 점심은 간략하게, 저녁만은 디너쇼나 전통쇼를 보면서 즐기기로 하였다. 수가 적어 기동력이 빠르고 현장 가이드를 구하기가 용이할뿐더러 관광지 입장이 아주 쉬웠다. 


될수록 많은 곳을 보여주겠다며 봄베이니 카타콤. 같은 보통 여정엔 없는 유적을 찾기도 하고, 큰 차로는 어림도 없는 산장호텔에서 청정한 숲속 공기를 마시며 민속풍경과 인심을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조’사장은 서라벌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한때 자신이 주연한 ‘연산군’ 연극에서 폭군 연산의 대사를 큰 소리로 암송하기도 하고, 경유지의 민속노래를 들려주기도 하면서 가족처럼 즐겁게 안내해 주었다. 


뻐꾹시계를 살 수 있었던 것도 스위스 산골에 있는 시계 장인의 작업장을 직접 찾을 수 있은 때문이었다. 스위스 정밀공업은 얼마나 정교한지 독일 장인이 머리카락 1미리를 50등분한다면 스위스 장인은 잘린 머리카락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며 기염을 토하였다. 


기념으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오두막집에 시, 분, 노래, 3개의 무쇠 솔방울 추가 달린 뻐꾹시계를 샀다. 30분에 뻐꾹~ 한번, 시간마다 시간수대로 뻐꾹~ 뻐꾹~ 울었다. 뻐꾹새가 톡 튀어나와 머리를 드는 동시에 앞마당이 돌아가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산동네 어린이들이 손잡고 요들송을 부른다. 


여행이 끝났을 때 우리는 피곤한 중에도 여행의 충족감으로 생기가 넘쳐 흘렀지만 12일간이나 거친 길을 혼자 운전하며 안내역까지 도맡았던 ‘조’사장의 얼굴에선 비지땀이 흘렀다. 


금전적 손해는 말해 무엇하랴. ‘조’사장의 희생적 우정을 시작으로 거의 10여 차례의 구라파 여행을 하였다. 골샌님 같은 외곬의 우리 눈을 크게 떠서 보다 넓은 세계로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한 세계 문화와 문명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탐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뻐꾹시계 소리는 집안에 즐거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일상에 시간 맞추어 몸과 마음을 다잡아주는 좋은 지킴이가 되어왔다.


 영어 FRIEND(친구)를 파자하면 Free 자유로울 수 있고, Remember 언제나 기억에 남으며, Idea 항상 생각할 수 있고, Enjoy 같이 있으면 즐거우며, Need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고, Defend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뜻이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들 때, 위기의 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같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나무 위에서 보다가 위기를 경고해주는 친구의 효율성을 달아본다. 새해들어 많은 단체들의 회장 선거가 게시되었다. 이합집산과 배신의 잡음이 없는 공정한 선거가 되기를 기원하다가 과연 ‘친구란 무엇인가’ 새삼스런 상념에 빠져든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잠언 한 절이 뇌리를 스친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많은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나무 위 새떼들은 공포 한방에도 제 먼저 달아난다는 것을 떠올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수가 많다고 다 참 친구는 아니라는 것. 사랑이 끊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그가 바로 참 형제보다 친밀한 어떤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 


 뻐꾹~. 뻐꾹시계가 운다. ‘때’를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로운 친구가 되라 한다. 사랑의 참 친구가 되라 한다. 나무에 달려서 한결같이 지켜주는 그 친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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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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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마지막 기도-고 이상묵 시인께 드립니다

 
 
마지막 기도
-고 이상묵 시인께 드립니다 

 

 

 


. 속히 병에서 완치되어 영육간에 강건하게
기쁘고 즐겁고 복되게 살게 하여 주소서.  

 

. 데이지님. 저를 위한 기도 부탁드립니다.  
십여 개월 첫새벽 닭 울음소리처럼 울었습니다.

 

벌써 강 건너 여행 떠나셨다는 신문기사 
아. 눈앞이 하얗게 탈색되는 백지 위에 
어지럽게 그려지는 영상들이 흔들렸습니다. 

 

. 기왕에 이사하려거든 토론토로 올 것이지.  
새 소망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어느 오월
나이아가라 폭포공원 목련꽃 터널을 걸으면서 
타박하였습니다. 
. 멀리 있어도 잘하고 있을 거야.
이 한마디 마음에 품고 평안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퇴행성 대퇴골증 극심한 통증의 아내 
유명한 전문의 닥터 송 치료를 받는다며 
먼 길 한달음에 달려오길 여러 번이었습니다.
헌신적인 간호로 건강을 회복한 지 겨우 두어 해. 


 
급성백혈병. 그 아픔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담금질 속에서도 
정금같이 찬란한 시 한수를 남겨 주었습니다. 


 
. 낯선 길 이대로 달려/ 하늘과 땅이 맞붙은 저 끝 어디/
불 끄지 않은 마을에 닿을 수 있을까/ 표지판 없어도 환한 거리/
비 그친 골목에 들어설 수 있을까/ (‘9월의 비’에서) 

 

석천 이상묵 시인. 
대답 없는 이름을 불러봅니다.
멀리 살아도 다 좋은데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불 끄지 않은 마을 환한 거리에서 
참 행복한 석천님 미소를 봅니다. 
표지판에 ‘천국’이라 뚜렷이 박힌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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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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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축복의 재발견

  
 
동신 늘푸른시니어대학에서 ‘자서전 쓰기’를 주제로 문예 강좌를 맡았다. 이유인즉 이민 조상들의 일생을 후세에 전해주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일부변경선 동과 서’ 는 처음 미국 버펄로에 도착하여 캐나다로 이주하기까지 3년간의 나의 삶을 기술한 자서전이다. 지난 연재에서 횟수가 거듭 될수록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사생활이 노출된다거나 지난 고통을 회상하여 반추하는 이중고의 염려 등 자서전쓰기의 부정적인 요소를 벗어나 삶의 기록, 전수뿐 아니라 반성과 화합재정비 등 긍정적인 시각을 얻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모태를 떠나듯 고국을 등지고 언어와 문화 환경이 전혀 다른 이민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개척자의 정신과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로서 뚫고 온 지난날은 누구에게나 기록할 가치가 충분한 특수한 일생이었으리라 쉽게 수긍된다.  살아온 여정이 각기 다르듯 다양한 삶의 지혜를 지닌 학생들께 특강을 하였다. 자서전은 “자기가 쓴 자기의 전기”로 이를 좀 더 문학적으로 서술한 작품이 자서문학이라고 서두를 열었다. 지금은 100세 인생시대라 한다. 최근 유엔 나이 계산법에 따르면 66세~79세가 장년이라 한다. 따라서 자서전을 쓰는 가장 좋은 시기는 시니어인 지금이라고 하였다. 


자서전 쓰기는 년대별로 기록하는 것, 성숙의 과정에 따라(유아기, 소년, 청년. )서술하거나 특정사건을 중점적으로 기술하는 것(학업, 결혼, 사회활동. )등이 있다고 간단히 강의를 끝마치고 특정사건을 주제로 짧은 자서전을 쓰도록 하였다. 글자로 쓰는 게 아니라 말로 엮는지 한동안 왁자하니 시끄럽더니 차츰 조용한 가운데 펜 움직임이 빨라지고 눈에서는 날카로운 예지가 뿜어져 나왔다. 


한 할아버지학생의 글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부부는 엊그제 금혼식을 맞았다. 돌아보면 50년을 부부싸움으로 보낸 듯하다. 싸움의 시작은 언제나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기 때문이다.” 항상 마누라의 손을 붙잡고 다니는 할아버진데 티격태격하면서 50년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 나는 울컥하면 참지 못하고 무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곤 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날도 마누라의 바가지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탁자 위에 놓인 물체를 집어서 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다음 찰나 어! 소리를 질렀다. 그건 내가 애지중지하는 캐논카메라였다.” 폭소로 교실이 뒤흔들렸다. 


“그런데 그 순간 마누라가 벌떡 일어나더니 야구선수처럼 카메라를 덥석 받아내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 나는 던지는 버릇을 깨끗이 끊었다. 그런데 마누라의 바가지는 오늘도 끊이지 않는다. 마누라의 바가지는 깨지지 않는 바가지인 모양이다. ” 


할머니와 바가지의 연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할머니들, 우리자신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19종족의 이민 소수민족할머니에 대한 손자손녀들의 이야기를 편집한 책이다. ‘조이 코가와’(JOY KOGAWA)는 서언에 “할머니는 특별히 사랑이 많고 긴 안목을 가졌으며 민족고유의 말과 문화전승의 역할을 잘 감당할 뿐 아니라 본능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고 대대로 무한한 감정의 울타리를 쳐준다. ”고 하였다. 


내 마음 판에 새겨진 할머니의 정의와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왜 바가지 긁기의 주체가 되는 것일까. 평화롭고 정취 어린 초가집지붕에 덩실히 앉아 있는 박(Gourd)넝쿨이 떠오른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하얀 박꽃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박속은 덜 여물었을 때 긁어서 나물을 해먹고, 여문 껍질로는 바가지를 만든다. 뿌리부분은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고, 여름에 박나물을 해먹으면 피서에도 좋고 ‘시트롤린’이 함유되어 있어 이뇨에도 좋다고 한다. 박은 비교적 높은 기온과 적절한 수분을 요구함으로 여름에 주로 재배하는데 장마기간 중에 강풍으로 초가가 파손되는 풍해예방에 지붕 위 무거운 박 덩이가 굉장한 이점을 제공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줄줄이 박의 미덕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깨달았다. 바가지 긁기는 자칫 평화로운 가정의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꾹꾹 눌러주는 지혜의 소리이며 수시로 상기시켜 주는 경종일 것이다. 마누라의 바가지를 묵묵히 들어 주는 할아버지 역시 집안이 평안하기 위해 눌러 참는 도량을 실천했을 것이다. 


자서전 쓰기의 가장 큰 덕목은 지나온 삶을 통한 축복의 재발견과 동시에 감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리라. ‘깨지지 않게, 살살 부드럽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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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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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일부변경선 동과 서(60)

 

 

(지난 호에 이어)
차로 목을 축이고 다시 계속하였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보았겠지요. 정신을 좀먹는 근대문명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또 그것은 인간의 건강자체도 해칩니다. 인종차별이 있고, 반전데모가 있고, 히피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국을 거부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당연하게 보이는데 고마운 생각이 들 리가 없지요.” 


“나는 미국 밖의 다른 나라에 나가보지 못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당신들의 눈엔 어떻게 비치리라는 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너무 복에 겨워서 날뛰는 헛 투정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 사람들만이 사는 곳이 이처럼 기름지다면 정말 지나치게 축복해 주었다는 탄식이 나올 것입니다.


이 지구상엔 얼마나 가난한 나라들이 많습니까? 작은 땅덩이를 금 쪽 같이 여기고 빈약한 자원을 더 할 수 없이 감사하게 생각하며 사는 백성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가벼운 기분으로 던진 질문이 묵직하게 자신의 정수리에 떨어진 듯 심각해졌다. 어쩌면 그건 오래 동안 생각해 오던 마음의 응어리였는지도 몰랐다. 정중하게 사과라도 하듯 여기까지 이야기 하던 ‘프레드’는 ‘숙’을 한번 건너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미국의 젊은이들은 중대한 과오를 범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 기정사실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런 모든 것에서 탈피하고 싶은 돌파구를 파괴에서 찾으려 합니다. 다 때려 부수고 새로운 것,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잠재의식, 그것은 확실히 잠재적인 신념이지만 그런 것들에 등대고 폭력을 꾀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파괴는 그들의 신념대로는 되지 않습니다. 때려 부수면 그대로 멸망하지 다시 세울 여력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파괴력은 다시 세울 여지를 남기지 않는 완전 파괴이고 그만큼 지구의 멸망은 무섭습니다. 멸망이 오기 전, 때려 부수기 전에 무엇보다 이들은 신의 축복을 고마워 할 줄 아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멸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구하는 단 한 가지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신중하게 이야기하는 ‘프레드’의 속생각을 듣고 나니 약간 계면쩍어졌다. 좁고 빈약한 조국에 비해서 한 없이 아름답고 풍요롭고 광활한 대지. 여기 사는 미국인들이 이 모든 혜택을 귀히 여기지 않는 모습들이 울분을 일으켰는지도 몰랐다. 


비경작료까지 주어가며 버려 둔 농토, 지나치게 내버리는 소비성향을 볼 때마다 신은 참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생기곤 했었다. 그렇다고 가진 자의 변명이 덜 가진 자에게 무슨 속 시원한 해결책이 되겠는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엔 목사님 같은 생각을 하는 미국인이 또 몇 사람이라도 있기에 미국은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섭니다. 오직 다섯 사람의 의인이 있었다면 소돔 성을 구할 수 있었듯이 목사님 같은 분들의 할 일도 무척 어렵고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생각은 모두 옳습니다만, 전 아직도 신(神)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빠가 이의를 달아 보았다. 


“아. 아니요. 신은 만민에게 공평합니다. 신이 불공평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축복을 찾지 못한 이유로 해서 빈곤한 것뿐이지요.”


“이젠 그만 주무시지요. 너무 늦어서…” 


쪼그리고 앉아 어른들 이야기를 듣던 ‘페이스’도 어느새 빠져나가고 벽난로의 불꽃도 사그라졌다. 토론의 열기가 가시자 체온도 내리는지 온 몸이 살살 떨려왔다. 


벽장에서 담요를 있는 대로 다 꺼내 세장은 덮고 두 장은 바닥에 깔았다. 이불 속이 차츰 따뜻해지자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은 잠에 빠져 들었다. 

 

‘투굿투큇’의 시간들 


‘릴리안’의 옅은 기침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커피내리는 주전자 소리도 들리고 은은한 커피향이 집안 가득 감돌았다. 


신호라도 된 듯 수런거리는 활기가 솟아났다. 아침10시였다. 모두들 늦잠을 잔 것이다. 


활짝 갠 날씨였다. 새 아침에 맞이하는 호숫가는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원색의 제전이었다. 이슬비를 촉촉하게 맞은 잔디가 햇빛에 반짝반짝 선명하게 빛났다. 한 폭의 정물화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잔잔한 호반에서 싸늘하고 맑은 공기가 몰려들었다. 


“이건 브런치(아침 점심겸한 식사)입니다.” ‘프레드’가 껄 껄 웃었다. 시간에 매이지 않고 마음껏 늦장을 부릴 수 있는 휴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아침이면 숲에서 새들이 날아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여러 새들이 제각기의 소리로 울어댔다. 그 소리들은 한 결 같이 뽀르르~ 구르는 맑은 소리였다. 잔잔한 호반에 미끄럼이라도 지치듯 청명한 공간을 긴 여운으로 채우며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시선을 끄는 새가 있었다. 골드핀치라는 이름을 가졌다. 


크기는 꼭 작은 참새만한데 배 밑은 하얗고, 양 옆구리와 날갯죽지는 짙은 쪽빛으로 반드르르 윤이 나는데 머리와 등은 아주 선명한 황금색, 입부리는 빨갛게 생겼다. 


봉제장난감 같은 이 새들은 꼭 대 여섯 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다녀서 멀리서 보면 갑자기 그 자리에 작은 꽃밭이 생긴 듯 착각이 들었다. 짓 푸른 호수와 수풀을 배경으로 작은 화단이 움직이는 듯, 때로는 공중에서 여러 개의 꽃 뭉치가 어우러져 춤추듯 현란하였다. 


‘영’은 새 모이를 땅에 흩트려 놓고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새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보는 것이 큰 재미였다. 


“아 이. 아 하하.” ‘영’의 손바닥에서 모이를 쪼고 있던 새들이 후루룩~ 날아올랐다. 


‘윌스보로’는 이곳에 정착한 아이리쉬(IRISH)후손으로 뉴욕의 거부상인 윌리암(WILLIAM GRILLAND 1765년)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마을이라는데 그가 살던 통나무집은 현재 특수식물을 기르는 식물원 온실로 공개하고 있었다. 1800년대에는 석회석 채석장으로 300여명의 일꾼을 고용했던 유명한 건축자재상은 영국군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역사가 있었다. 


아빠와 ‘페이스’는 밤에 손전등을 비쳐가며 잡은 지렁이로 도크에서 밤낚시를 하였다. ‘영’이 책 페이지를 넘기면서 저 혼자 술술 읽고 있었다. 글자는 잘 모르지만 그림과 이야기를 다 외워버린 것이었다. 


“Henry has a small Tiger cat / Play with a ball / Sleep in a hat/…” 모두들 놀랐다. 

 

모터보트를 타고.


‘프레드’가 스토레지에서 구명조끼를 들고 나왔다. 보트에 엔진을 달고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하였다. 좀 망설였지만 먼저 타본 아빠가 괜찮다고 하였다. ‘영’은 벌써 앞서 깡충거리고 도크로 가고 있었다. 잔잔한 호반을 보트를 타고 달린다는 흥분이 슬그머니 호기심을 충동이질을 쳐댔다. 


조끼를 입고 ‘영’과 둘이 가운데 앉고 ‘프레드’가 뱃머리에서 방향을 조정하였다. 보트가 부르릉~ 미끄러져 나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하고 물굽이 따라 숲속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차분한 즐거움이 일었다. 


얼마를 갔을까. ‘릴리안’이 손사래를 치며 돌아오라고 불렀다. “멀리 가지 말고 어서 돌아와요.” 


“조끼를 입어서 괜찮아요.” 


‘프레드’의 대꾸에 더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보트를 돌려서 도크 가까이 오니 그제서야 ‘릴리안’이 안심을 하는 것이었다. 


“구명조끼를 다 착용했는데 왜 그렇게 공포에 질려 고함을 질렀어요.” 


“당신은 비상구조방식을 잘 알지만 ‘수지’와 ‘톰’은 전혀 모르잖아요.”


그때 뇌리를 치듯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안내자와 구명조끼, 설비가 아무리 잘 갖추어 졌더라도 내 생명은 스스로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떠나기 전날은 한국음식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간 이웃에서 파이니 빵 같은 걸 구워오고 저녁초대도 몇 번 받았기에 모두를 부르기로 하였다. 낮에 ‘윌스보 로’에 나가니 유명한 관광지 탓인지 쌀도 있고 당면도 있었다. 불고기와 잡채, 오이채를 만들었다. 


 “ ‘릴리안’ 한국음식이 왜 이처럼 맛있는지 알아냈어요.” 음미하듯 잡채를 입안에서 씹고 있던 ’프레드‘가 불쑥 말했다. 


“잘게 썰기 때문이오. 아주 정교하게 잘게 썰어 만든 음식이라 겉보기에도 예술적이지요. 당신도 이렇게 잘게 썰구려.” 모두들 웃었다. 그럴듯한 조크였지만 내심 좀 불편하였다.


한국음식은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시간들의 반 이상이 써는데 드는 것 같다. 얇게 저미고, 다지고, 채 썰고. 고기를 덩어리 채 로스트하거나 생선을 모양대로 구워서 소금 후추 가루를 쳐서 먹는 이들의 식생활과 비교하면 시간 면에서 얼마나 비경제적인지 모르겠다. 치하보다는 시정해야 할 사항으로 지적 받은 듯 무안하기도 하였다. 

 

별장 ‘투굿투큇’에서 얻은 것


신선한 자연과 어울려서 지낸 며칠간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진 듯하였다. 머리 아픈 문명을 비켜놓고 시간에 쫒기지 않고 넉넉하게 몸의 리듬을 맞추어 가며 지낸 생활은 일주일로서 나의 정신세계를 정비하는데 충분했다. 좀더 가벼워진 심신으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나에게 닥친 삶을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골드핀치들이 여전히 꽃밭을 지고 몰려왔다. 보트는 끌어 올려서 덮개를 씌우고 고기바구니와 자잘한 기구들은 모두 스토레지에 집어넣었다. 도크까지 걸어 나가서 호수를 찬찬히 드려다 보았다. 가슴가득 담아가기라도 할 듯 큰 호흡을 몇 번 하였다.


돌아서서 집 쪽을 올려다보았다. 집에서 나오기만 했지 한 번도 들어가며 본 일이 없는 베란다 지붕추녀에 현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물에서 떠내려 온 하얀 널 판지에 글자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TUGUDTUQUIT’ 이라 쓰여 있었다. 인디언의 이름인가? ‘릴리안’에게 물으니 깔깔거리고 웃는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그의 작품이었다. 
TOO GOOD TO QUIT (그만 두긴 너무나 좋다), 삶이란 포기하기엔 너무 좋은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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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hon
손정숙
66095
9203
2018-05-22
일부변경선 동과 서(59)

 

 

(지난 호에 이어)
 “마나스 드라이브(MANAS DRIVE), ‘프레드 바움가드너’ 목사 댁에 아주 귀한 코리언가족이 손님으로 왔다. 닥터 ‘쏭’, 미시스 ‘쏭 수지’와 ‘톰’ ‘헨리’ 두 작은 보이들이다.” 


“어. 진짜? 그런 거 신문에 났어요?” ‘영’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 ‘마나스 가제트’(MANAS GAZETTE)에 났지.” ‘릴리안’과 ‘페이스’가 폭소를 터뜨렸다. 


언 클 ‘프레드’의 “오늘의 개그 1호”라고 하였다. 웃음을 깔고 기도로 시작한 아침식사는 그대로 기쁨이고 축복이었다.


“ ‘수지’ 여기 ‘톰’과 ‘헨리’의 옷은 빨아서 드라이어에 말렸어요. 별장에도 세탁기가 있으니까 나머지는 그곳에 가서 하기로 해요.” 어느새 아침에 벗어놓은 옷들을 곱게 개켜주었다. 


11시경에 수박색 ‘릴리안’의 새 차에 전부 타고 레이크로 출발하였다. 오대호를 끼고 있는 북미주의 도시엔 산이 없었다. 가도 가도 훤히 트인 시야에 가끔 낮은 구릉이 보이긴 했지만 산이라고 붙여 줄만한 곳은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공간을 울창한 수림들이 가로 막기도 하고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옆으로 끼고 길이 꼬부라지기도 했다. 요트와 모터보트가 시원스레 흰 물거품을 내뿜으며 호수를 가르는 게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미국을 아름답게’라는 팻말이 가끔 눈에 뜨이기도 했지만 미국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이 오대호 연안의 국도주위는 카메라의 앵글을 아무렇게나 갖다 대어도 멋진 풍경화가 될 만큼 산수가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경관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스케넥타디’에서 북으로 두 시간 정도 캐나다국경 쪽으로 달리면 ‘몽트레알’ 못 미쳐 호수의 한 줄기가 미국 쪽으로 흘러내린 중간쯤에 작은 도시 ‘윌스보 로(Willsboro)’가 있다. '부케'강(Boqet River)이 ‘챔프레인’ 호수로 흘러 들어 아름다운 휴양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한 20여분, 숲 속 길을 달려야 ‘릴리안’네 별장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식료품점에 들려 빵과 고기 야채 등 한 주일간의 식료품을 잔뜩 사서 실었다. 


 목조 카티지가 여러 채 있는 둔덕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가니 바로 호숫가에 세 채의 별장이 멀찍멀찍 떨어져 서있었다. 그 중 가운데 집이 ‘릴리안’네 별장이었다.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서니 오래 동안 비워두었던 집 안에서 축축한 더운 기운이 확 끼쳐왔다. 곰팡이냄새 같은 건 전혀 없이 밝고 깨끗하게 정리 되어있었다.


 높은 천장과 대들보는 굵은 통나무로 삼각지붕인데 바닥은 부엌, 식당, 그리고 아주 넓은 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구조였다. 접시세척기(Dishwasher)까지 갖추어진 부엌을 지나면 넓은 식당이 있고, 식당 양 옆으로 하나씩 두 개의 방, 그리고 넓은 홀의 양 옆으로 큰 방이 두 개씩 4개의 방이 있어 도합 6개의 방이 있었다. 부엌 옆문을 열면 양 옆으로 세탁장, 화장실과 욕실 샤워장이 있었다. 


홀에는 장작을 때는 화이어 플레이스가 있고 그 앞에 아주 커다란 흔들의자, 풍금 라디오, 전축 그리고 티 테이블 등 가구가 적당히 배치되어 있었다. 단순한 디자인의 응접세트엔 두터운 마직 시트가 덮여 있어 방안 분위기는 투박하면서도 차분해 보였다. 마디가 그대로 들어난 마루엔 군데군데 터키산 알파카 울 양탄자가 깔려 있어 휴양지 운치를 더해 주었다. 


왼쪽 두 방을 정해 주었다. ‘영’과 아빠, ‘현’과 엄마가 한 방을 쓰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방엔 높은 침대와 거울 달린 서랍장, 책상이 있고 옷장엔 두터운 이불이 여러 채 쌓여 있었다. 물가이고 숲 속이라 새벽녘엔 무척 춥다고 하였다. 


홀의 전면은 전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나서니 호수가 그대로 폐 속으로 흘러들 듯, 상쾌한 물 냄새가 흠씬 밀려들었다. 바다를 쓸고 온 시원한 바람이 으스스한 한기마저 느끼게 하였다. 


홀만큼 넓은 베란다의 오른쪽은 스크린 룸, 왼쪽엔 스토레지(보관실)가 차지하고 있었다. 넓적한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뜰이 있고 뜰 끝에 있는 돌층계를 내려가면 모래사장까지 나무판자길이 물가 도크가 이어져 있었다. 작은 보트 하나가 물결이 치는 대로 흔들거리며 매어있었다. 


만처럼 구부러져 돌아간 호수는 양 기슭에 청청한 나무들이 울창해서 잔잔한 호수는 눈 닿는 저 끝 수평선에서 숲 뒤로 숨어 있었다. 고요함, 맑고 깨끗하고 청순한 대기는 날숨을 뿜기조차 두렵도록 장엄하였다. 


광활하고 치밀하게 조화된 자연미는 보면 볼수록 자신을 아주 작은 모래알로 부스러뜨렸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 한없이 원대한 것들과 마주서면 언제나 슬퍼졌다. 보잘것없는 존재의 무상함이 눈물마저 어리게 하였다. 


 나를 잊은 채 언제까지나 망연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호반위에서 물의 요정 님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추며 아른거리고, 더욱 더 멀리, 물위를 거니는 하얀 옷자락이 살랑살랑 나부끼는 환상이 비쳐왔다. 우주 생명의 근원이 된 물, 호수는 만물을 품고 위대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호수 가에는 저녁이 일찍 왔다. 아직 해가 지려면 먼 시간이지만 울창한 나무그늘에 덮인 호수엔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물굽이가 돌아간 저쪽 호수 끝엔 나무들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들이비친 듯 금빛파도가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추워 엄마. 고만 들어가.”


 안으로 들어오니 ‘현’을 안고 앉은 아빠와 ‘프레드’는 이야기에 열중해 있고 ‘페이스’와 ‘릴리안’은 식탁을 차리느라 바빴다. 깜빡 잊고 호수만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것이 미안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뭐 좀 도와드릴 것 있어요?” 


“아니요. 오늘 저녁은 요리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오느라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레이크에선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정하고 있으니까요”


야채샐러드를 빼고는 거의 전부가 통조림이거나 익혀서 포장한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그게 좋지요. 아무래도 별장은 쉬러 오는 곳이니까요. 여자들도 좀 쉬어야지 레이크에 와서까지 일만 해서야 그게 무슨 휴식이겠어요.” 


“하. 하. 그렇게 이해를 해주니 참 반갑군요. 역시 여자는 여자끼리 통하나 보지요?”


초대받아 가서 주부가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볼 때처럼 마음이 무거워지고 식욕이 떨어지는 일이 따로 없었다. 손님 접대나 피크닉이나 여행 때에도 따라다니는 일 더미는 항상 여자들의 몫이었다. 그런 부담 없이 식사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저녁은 참으로 마음 가벼운 즐거움을 주었다.


‘페이스’가 ‘영’에게 그림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동안 그릇을 모두 접시세척기에 집어넣은 ‘릴리안’과 ‘숙’은 남자들의 화제에 조용히 한 몫 끼일 수 가 있었다.


‘페이스’가 읽는 것을 그대로 따라 읽는 ‘영’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방안에 울렸다. 


 
 벽난로에 타오르는 불꽃


 해가 지자 으스스하니 추위가 엄습해 왔다. 숲의 나무들은 새까만 이불을 덮고 쉴 채비를 하는 지 바스락 속삭임만 소곤소곤 떠 다녔다. 호수는 까만 비단 천 밑에서 숨고르기라도 하는 듯 고요하기만 하였다. 


“ ‘수지’ 이거 걸쳐요.” ‘릴리안’이 두터운 털옷을 한 아름 안고 나왔다. ‘프레드’가 커다란 바구니에 장작을 가득 담아가지고 들어오더니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길다란 마분지원통에서 향료가루를 한줌 털어 넣자 확 불꽃이 일어나면서 솔향기가 집안 가득 퍼져나갔다. 한 여름 밤 스웨터를 둘러쓰고 모여 앉은 얼굴들에서 각가지 불꽃 그림자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 ‘톰’은 영어 많이 배웠습니까.” 


“배우긴 많이 배웠는데…” 머뭇거리자 


“그래도 애들이 말을 더 빨리 배울 겁니다. 아마 지금도 ‘톰’이 ‘수지’보다 더 잘할 걸요.”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릴리안’이 깔깔거리고 큰소리로 웃었다. 


“낫고말고요. 벌써 전화를 받을 정도인데…” 그러자 이번엔 ‘프레드’도 ‘페이스’도 합창이라도 하듯 함께 따라 웃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아빠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집에 온 ‘웨슬리’가 온 집안 친척들 앞에서 들려준 이야기라 하였다. 


‘버펄로’에 온지 2개월쯤 지난 어느 날, ‘웨슬리’가 볼일이 있어 ‘쏭’을 찾았다. 학교에서는 찾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영’이 받았다고 한다. 


“헬로” 단번에 ‘영’인걸 알아챈 ‘웨슬리’는 그대로 전화를 끊을까 하다가 눈을 말똥이고 수화기를 들고 있을 ‘영’이 생각나서 잠깐 망설이다가 불현듯 한 꾀가 생각났다고 한다.


“헬로. ‘타이용’” 


“아 ‘웨슬리’ (아 찌 구 나.)”


“이즈 유어 (아빠) 앳 홈?”  


“노. (아빠 스쿨 갔어.)”


“오케이 댕 큐. ‘타이용’ 굿바이”  


‘쏭‘이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전화를 건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기분 좋게 끊었다는 것이다. 성탄 파티가 웃음으로 진동하였다한다.


 
  ‘톰’은 아주 똑똑한 아이입니다. 겨우 두 살 지났는데 그처럼 의젓하고 영리하지요. ‘릴리안’이 그렇게 끝말을 달았지만 이번엔 아빠와 ‘숙’이 큰소리로 웃었다. 엉뚱한 ‘영’만 우스운 게 아니라 기발한 착상을 한 ‘웨슬리’도 우습긴 마찬가지였다. 


옛날얘기 ‘복숭아장군’이 스테이션 웨곤에 보물을 실어왔다고 웃기던 ‘영’과 코넬대학수재 ‘웨슬리’의 순발력 겨루기라도 보는 듯해서 웃음소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밖에는 안개 같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과 ‘현’을 눕히고 나오니 사방은 갑자기 깃털처럼 부드러운 평안함에 묻혔다. 몸은 피곤하지만 무언지 모르게 가슴 충만하게 고여 오는 이 밤을 쉽게 잘 수는 없었다. 어른들은 그대로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서 티를 마시며 한담을 하였다. 


 “ ‘수지’ 미국에 온 인상이 어떻습니까.” 의외로 ‘프레드’가 ‘숙’에게 물었다.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겨우 대답을 하였다. 


“미국에 와서 그간 받은 인상은 ‘신(神)은 미국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응? ‘릴리안’이 고개를 휙 돌려 ‘숙’을 쳐다보았다. ‘프레드’는 말없이 장작불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 확실히 예상 밖의 대답에 놀란 듯하였다.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풍요하다거나, 그런 표현이 아닌 대답을 기대하진 않은 게 틀림없었다.


“어째서 ‘너무 많이’라는 표현이 붙을까요?” ‘릴리안’이 되물었다. 


“미국인들은 신(神)의 축복이 어느 만큼인지 미쳐 깨닫고 있지를 못하니까요.”


‘릴리안’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시선을 멀리 두고 잠잠하였다. “참 멋진 표현 이었다”며 아빠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 ‘수지’ 말이 옳습니다. 그 말은 나로 하여금 슬픈 반성을 하게 만듭니다.”  ‘프레드’가 말문을 열었다. 


“미국은 큰 대륙입니다.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대서양연안에서 태평양연안까지 속속들이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어디를 가나 아름답고 풍요한 자연이 있고 먹을 것이 있습니다. 지방마다 특이한 자원들이 풍부하고 모자라는 것이 없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지만.” 차로 목을 축이고 다시 계속하였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보았겠지요. 정신을 좀먹는 근대문명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또 그것은 인간의 건강자체도 해칩니다. 인종차별이 있고, 반전데모가 있고, 히피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국을 거부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당연하게 보이는데 고마운 생각이 들 리가 없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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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65988
9203
2018-05-13
일부변경선 동과 서(58)

 

(지난 호에 이어)
죄인이라는 생각을 넘어 삶 자체가 죄스럽고 짐스럽게 버겁던 나날이었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나가도 자꾸만 그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는 듯 가슴 쓰린 통증이 짓누르던 생활에서 홀연히 벗어나 대지에 두발 딛고 우뚝 선 상쾌함이 용솟음쳤다. 


벽에 걸려있는 밀레의 만종이 푸근한 대지의 향기를 안개처럼 흩뿌리고 있었다. 저녁노을을 등지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농부의 아내가 자신인 듯 평안과 감사가 끓어올랐다. 


‘아멘’ 기도가 끝났는데도 두 손을 깍지 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영’을 팔 굽으로 툭 쳤다. 기도는 필요하다. 정신세계에서 찌꺼기를 걸러주고 새롭게 쇄신하기 위한 전능자와의 대화로서 기도는 절대 필요하다고 확신하였다.


 ‘프레드’ 목사와 ‘훈’은 밤늦게까지 리빙룸에서 한담을 하고 있었다. 음양학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주장과 목사님의 개혁신학종교관이 어떻게 합일점을 찾았는지 다 듣지 못하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프레드’와의 대화를 이렇게 전해주었다. 


“한국의 일반 목사들 하곤 격이 다르지. 학위를 받고 공부를 많이 한 목사로서 서슴지 않고 자기비판도 할 줄 알고 주장이 명확하더군. 이론적인 종교로서야 모든 종교가 다 합리적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활인의 종교로서는 기독교의 박애정신이 으뜸이라고 하더군.”


청교도들에 의해 이룩된 미국은 사랑의 실천신앙으로 개척된 나라임을 되새기게 하였다. 200여 년 전 새로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메이플라워(Mayflower) 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뉴잉글랜드의 혹독한 겨울과 싸우고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 박애운동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세계인류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사랑받을 존재임을 삶 속에서 솔선하고 있었다. 


오래 전 성가대, 주일학교반사로 봉사하던 신앙의 그루터기가 비장된 보배처럼 빛을 발하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에 왕성한 힘을 실어주었다. 

 

호숫가 별장 ‘투굿투큇’(TUGUDTUQUIT)


커피향이 코끝에 넘실대서 눈이 떠졌다. 벌써 8시, 늦잠을 잤나 보다. 집에서는 6시만 되면 벌써 깨어서 수선을 떨 텐데 조용한 걸 보니 아마도 어제의 여정에 애들도 몹시 피곤했던 모양이다. ‘릴리안’이 애들은 자기가 봐줄 테니 염려말라며 옆방에 재워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정말 푸욱 잘 잤다. 아빠는 이미 일어나 나간 듯하였다. 퍼뜩 새 정신이 들어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달려갔다. 


 “하이 ‘수지’ 굿 모닝. 잘 잤어요?” ‘릴리안’이 웃으며 인사하였다. 


“엄마!” ‘영’이 달려와서 허리를 얼싸안는다. ‘현’은 크리브 안에서 맘. 맘. 소리를 질러댔다. 두 아이를 씻겨서 똑 같은 모양의 셔츠와 바지로 갈아 입히고 머리까지 곱게 빗겨 놨다. ‘영’의 얼굴엔 베이비로션이라도 발랐는지 콧잔등이 반짝거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내가 그처럼 세상 모르고 잘 수 있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친정집에 다니러 온 착각이 들었다. 내 방에서 푹 자고 나온 듯 가벼운 기분이었다. 친정부모 같은 ‘릴리안’과 ‘프레드’. 하나도 낯설지 않고 스스럼이 없어졌다. 


마음대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수선을 떨면서 응석 어린 억지를 부려도 격의 없이 다 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이 햇솜처럼 포근하게 온 몸을 감싸주었다. 


“고마워요”라고 밖엔 할 말이 없었다. “천만에 말씀. 문제없어요.” 화답이었다.


“ ‘타이용’ 저기 언클 ‘프레드’에게 가봐요.” “오케이”


 언클 ‘프레드’와 앤트 ‘릴리안’이라는 호칭이 당연한 듯 경쾌하게 후다닥 뛰어갔다. 


 식당전면 창으로 내다보이는 뒤뜰은 20여 미터 저쪽부터 깊은 상록수림으로 둘러있었다. 군데군데 새 모이통을 매단 정원수 사이로 석상을 세우고 화단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7월의 밝은 아침햇살에 날개만 파닥이는 작은 새들이 모이통 주위를 부지런히 날고 있었다. 


“하이 ‘수지’, ‘톰’ 굿 모닝.” 또그르르 구슬 굴러가는 맑은 소리가 울려왔다. 


“ ‘톰’ 이라고 옆집 친구가 붙여준 이름이래요.” ‘페이스’가 깔깔거리며 설명하였다. 


 “그새 자기소개를 정식으로 한 모양이군.” 모두들 소리 내어 웃었다. ‘현영’은 출생신고 때 영문이름을 ‘헨리’라고 기입했지만 ‘태영’은 영문 이름이 없었다. ‘언클’, ‘앤트’, ‘톰’, ‘헨리’… 새로운 명명식의 아침이었다. 


 식탁상석에 앉은 ‘프레드’ 목사님이 반절짜리 신문을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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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hon
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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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일부변경선 동과 서(57)

 

(지난 호에 이어)
‘게일’이 어느 날 무심히 들려준 이야기도 있다. 8월에 이사를 가기 위해 집을 내놓고 한 중국인과 계약이 거의 성사되려는 때였다.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아이비엠 일을 한다는 이 중국인 부부는 아주 조촐하고 교양도 있어 보였다. 


하루 저녁 이웃집 사람들 몇이 찾아왔다.


“집을 중국인에게 팔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집을 자기 마음대로 팔고 사는 거야 자유이지만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인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으니 중국인들께 집을 팔지 않는 것이 살던 마을 이웃에 대한 온정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해 매매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도 너희 집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약간 빼딱한 음성으로 되받았었다. 


“오. 너도 그런 생각이냐. 도대체가 모두들 멍텅구리 돌대가리들 생각인 걸. 그들은 타민족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동족끼리도 다른 고장에 가면 질시를 받을 사람들이야.” 


‘게일’이 극구 변명을 하고 기분을 가라앉혀 주었지만 미국엔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텃세와 인종적 우월감이 미국인들의 생각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 ‘릴리안’이 사는 이 동네는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할 것 같은 초조감이 생겼다. 


 “저건 무슨 차에요?” 


“글쎄 아주 옛날 차 같은 데…”


앞이 둥글고 차체가 높은 구식의 검은 색 자동차가 드라이브 웨이를 기어 올라왔다. 소리도 요란스럽게 크르릉, 크르릉 하는 차가 집 앞을 지나갈 때 ‘숙’은 놀란 얼굴로 아빠를 돌아보았다. 까만 양복에 흰 컬러를 세운 사제복의 ‘프레드’ 목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마미 대 디 왔어요.” ‘페이스’가 소리지르며 뛰어나갔다. 


“하. 하. 하. ‘프레드’ 목사도 걸작이군 그래. 이제 봤더니.” 아빠가 웃었다. 지금까지 하던 우울한 생각들을 단숨에 날려버린 홀가분한 웃음소리였다. 


1950년대의 구식 ‘닷지’ 차를 아직도 끌고 다니는 인간성이라면 하나도 걱정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거기다 대면 메뚜기 차는 오히려 새 모델이었다.


“녹이 슬어서 그렇지 어때. 이차 엔진은 아주 좋은 거라구.” 


 눈을 찡긋하고 어깨를 재며 문으로 나갔다.


“하이. 닥터 ‘쏭’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내일부터 며칠 쉬려니까 어찌나 할 일이 많은지 다 정리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군요.”


 “닥터 ‘쏭’ 차를 안에 넣어요.” 


“아. 우리 차는 밖에 두어도 됩니다. 다 낡은 차인걸요.”


“네? 하. 하. 새 차가 안에 들어가야지 헌 차가 들어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도 닮아가는지 껄껄 웃더니 기어코 닥터 ‘쏭’ 차를 안에 넣게 하고는 들어왔다. 


“오호. 하이. 타이용! ‘헨리!”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악수를 청하였다. ‘숙’이 손을 잡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애들이 시끄럽게 해서 참 미안합니다.”


“노오. 난 아이들 아주 좋아합니다. 애들 떠드는 소리야말로 삶의 소리 아니겠습니까.” 


“노오. ‘수지’ 우리 집도 그리 조용하기만 하진 않아요. 피아노가 꽝 꽝 거리구, ‘푸 씨’가 짖어대구…” 곁에서 ‘릴리안’이 감싸며 위로해 주었다. 


“옆집 ‘마가렛’네엔 이제 막 한 살 된 어린애도 있어요. 이 플레이 팬 그 집서 빌려왔지요. 플레이 팬을 리빙룸 한가운데 펼쳐놓고 ‘현’을 그 안에 넣은 뒤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하얀 테이블보를 씌운 식탁에는 은수저와 은그릇들이 빳빳하게 다려서 접은 하얀 리넨냅킨과 함께 제자리에 반듯하게 차려있었다. 목사님 댁의 오랜 관록이 밴 정중한 손님맞이 식탁이었다. 


 “디 어 갇. 당신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멀고 먼 한국에서 온 이들 젊은 가정을 우리 가까이에 불러주사 우리로 하여금 주 안에서 모든 인류가 형제 됨을 알게 하여 주심을 깊이 깨닫고, 더욱 감사 드립니다. 어머니의 모태를 떠나듯 먼 이곳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들 젊은 가족 모두를 주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여 주시고 당신의 사랑이 충만하기를 비옵나이다. 아 멘” 


 ‘장 발장’이 은 촛대를 훔치던 목사님 댁에서의 저녁 식탁이 언뜻 떠올랐다. 기도를 들으면서 서럽도록 경건한 감동을 받았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속삭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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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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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일부변경선 동과 서(56)

 

(지난 호에 이어)
‘페이스’는 그 앞 흔들의자에 ‘영’과 ‘현’을 한데 앉혀놓고 흔들어 주고 있었다.


“헤. 헤. 헤” “까르륵, 까르륵” 두 아이들이 좋아라고 간드러지게 웃어댔다. 수런거리는 활기가 집안 가득 넘실거리며 퍼져나갔다. 


 여행이 순조로웠느냐며 이것저것 묻던 ‘릴리안’이 잠깐 부엌에 나간 사이 아치형 전면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무래도 이 집 스타일 우리가 구기겠는걸” 아빠가 중얼거리며 빙긋 웃었다. 주춤하니 엉덩이를 들고 서있는 녹슨 자동차가 나무들 그림자를 일렁이며 서 있었다. 한층 높아진 리빙룸에서 내려다보는 메뚜기 차는 유난히 납작하고 더 초라해 보였다. 


 시원하게 냉방이 되어있고, 육중하니 조화된 방안에서 바라보니 수목은 그리 동떨어지게 높지 않았고 바람소리 또한 그리 을씨년스럽게 요란하지 않았다. 빨강 꽃, 파랑 자동차… 모두가 눈을 자극하는 색이 아니었다. 


규모가 큼직큼직하고 색깔이 화려한 이 모든 것들이 그대로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풍경에서 한쪽이 떨어져 나간 듯 메뚜기 차는 균형을 잃고 서 있었던 것이다.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점잖고 부유한 가정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오란다고 앞뒤 생각 없이 덜렁 찾아온 게 잘못일지 모르겠네요.”


“응?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우리가 어떤 처진 거 다 보고 아는데…”


하긴 그렇기도 하다. ‘현’이 출생하고 두어 주 후, ‘웨슬리’를 방문한 ‘릴리안’은 ‘쏭’의 새아기 ‘현’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우중충하고 가구라고는 보잘 것 없는 방에서 애기를 키우느라 정신 없던 ‘숙’의 다듬지 않은 초라한 모습도 보았고, 갓난 애기한테서 풍기는 특유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먼지를 뽀얗게 피우던 ‘영’을 보고 귀엽다고 손을 잡고 볼을 비볐다. 


티 테이블도 없이 뜨거운 인삼차 한잔을 마룻바닥에 놓고 불어가며 마시던 그들이 왜 사정을 모르겠는가. 그들 일행이 방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방안이 하나 가득 차는 듯 환해지고 자신과 주위가 한없이 빈약해 보이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고도 집으로 초청한 ‘릴리안’인데 설마하니 어떤 감정을 감추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숙’의 협심증은 자꾸만 기분을 갉아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미안 한데요.” 공연히 궁상이나 더 잡힐 이 여행을 너무 경솔하게 떠나온 것이 아닌가 후회되었다. 


아직도 일부 미국의 부유층은 보수적이라고 들었다. ‘보스톤’ 근처 뉴욕 주는 ‘보수적’의 대명사였다. 계급의식이나 인종문제에 있어 예민하고 배타적이었다. 평소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조용하다가도 막상 자기들 주위에서 그런 문제가 생기면 맹렬하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기도 하고 아니면 점차적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해오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었다. 


미시스 ‘황’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버펄로’ 국립공원 뒤에 버펄로에서도 이름 있는 사회적 유지급 부자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었다. 이 동네를 지나가노라면 꼭 중세시대 성곽지대를 도는 느낌이 들었다. 수목이 울창하고 잘 다듬어진 잔디를 이리저리 모양을 넣어 화단을 가꾸고 자연석이 보기 좋게 깔린 넓은 정원 뒤에 우뚝 솟아있는 집들은 그대로 궁궐이었다. 


육중한 화강암이나 대리석 원주를 세워서 받쳐놓은 웅장한 집은 하얀 벽돌이나 자연석벽에 기어오른 넝쿨이 세월만큼 한층 장중함과 우아함을 더해주었다. 의식주(衣食住)의 주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해 편리를 위해서만 지어진 집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건축미를 돋보이게 지은 예술품이었다.


여기에 어쩌다 아파트가 끼게 되어서 말썽이었다. 실은 이 집도 처음부터 아파트가 아니라 몰락한 집주인이 뜯어고쳐서 몇 개의 아파트로 만들어 세를 준 것이었다. 집 외관이 가장 지저분한 것은 물론이고 우선 주차공간이 적어 길에다 차를 세워놓는 것이 큰 문제였다. 


돌기둥을 세우고 철 대문을 한 이들 궁궐의 바로 문 앞에까지 차를 세우곤 하였다. 직장이 가까워서 멋모르고 이곳에 세 들어 살게 되었던 닥터 ‘황’네는 참 희한한 구경을 많이 하였다. 


어느 날 경찰차가 두어 대의 견인차를 대동하고 오더니 무조건 아파트주민들의 차를 끌고 가더라는 것이다. 이유는 ‘교통방해’였다고 한다. 아파트주민들이 떼로 몰려가서 항의하고 소동을 벌인 끝에 차를 찾아오긴 했지만 그 뒤로도 이런 일은 빈번하였다고 한다. 


“지네들이 좀 참을 것이지 주차공간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길가까지 지들 소유인가”, 불평이 들끓었다. 닥터 ‘황’ 댁은 곧 이사를 나왔지만 지금은 그 아파트도 없어졌다고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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