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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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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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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66215
9203
2018-05-27
일부변경선 동과 서(60)

 

 

(지난 호에 이어)
차로 목을 축이고 다시 계속하였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보았겠지요. 정신을 좀먹는 근대문명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또 그것은 인간의 건강자체도 해칩니다. 인종차별이 있고, 반전데모가 있고, 히피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국을 거부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당연하게 보이는데 고마운 생각이 들 리가 없지요.” 


“나는 미국 밖의 다른 나라에 나가보지 못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당신들의 눈엔 어떻게 비치리라는 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너무 복에 겨워서 날뛰는 헛 투정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 사람들만이 사는 곳이 이처럼 기름지다면 정말 지나치게 축복해 주었다는 탄식이 나올 것입니다.


이 지구상엔 얼마나 가난한 나라들이 많습니까? 작은 땅덩이를 금 쪽 같이 여기고 빈약한 자원을 더 할 수 없이 감사하게 생각하며 사는 백성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가벼운 기분으로 던진 질문이 묵직하게 자신의 정수리에 떨어진 듯 심각해졌다. 어쩌면 그건 오래 동안 생각해 오던 마음의 응어리였는지도 몰랐다. 정중하게 사과라도 하듯 여기까지 이야기 하던 ‘프레드’는 ‘숙’을 한번 건너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미국의 젊은이들은 중대한 과오를 범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 기정사실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런 모든 것에서 탈피하고 싶은 돌파구를 파괴에서 찾으려 합니다. 다 때려 부수고 새로운 것,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잠재의식, 그것은 확실히 잠재적인 신념이지만 그런 것들에 등대고 폭력을 꾀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파괴는 그들의 신념대로는 되지 않습니다. 때려 부수면 그대로 멸망하지 다시 세울 여력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파괴력은 다시 세울 여지를 남기지 않는 완전 파괴이고 그만큼 지구의 멸망은 무섭습니다. 멸망이 오기 전, 때려 부수기 전에 무엇보다 이들은 신의 축복을 고마워 할 줄 아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멸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구하는 단 한 가지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신중하게 이야기하는 ‘프레드’의 속생각을 듣고 나니 약간 계면쩍어졌다. 좁고 빈약한 조국에 비해서 한 없이 아름답고 풍요롭고 광활한 대지. 여기 사는 미국인들이 이 모든 혜택을 귀히 여기지 않는 모습들이 울분을 일으켰는지도 몰랐다. 


비경작료까지 주어가며 버려 둔 농토, 지나치게 내버리는 소비성향을 볼 때마다 신은 참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생기곤 했었다. 그렇다고 가진 자의 변명이 덜 가진 자에게 무슨 속 시원한 해결책이 되겠는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엔 목사님 같은 생각을 하는 미국인이 또 몇 사람이라도 있기에 미국은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섭니다. 오직 다섯 사람의 의인이 있었다면 소돔 성을 구할 수 있었듯이 목사님 같은 분들의 할 일도 무척 어렵고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생각은 모두 옳습니다만, 전 아직도 신(神)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빠가 이의를 달아 보았다. 


“아. 아니요. 신은 만민에게 공평합니다. 신이 불공평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축복을 찾지 못한 이유로 해서 빈곤한 것뿐이지요.”


“이젠 그만 주무시지요. 너무 늦어서…” 


쪼그리고 앉아 어른들 이야기를 듣던 ‘페이스’도 어느새 빠져나가고 벽난로의 불꽃도 사그라졌다. 토론의 열기가 가시자 체온도 내리는지 온 몸이 살살 떨려왔다. 


벽장에서 담요를 있는 대로 다 꺼내 세장은 덮고 두 장은 바닥에 깔았다. 이불 속이 차츰 따뜻해지자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은 잠에 빠져 들었다. 

 

‘투굿투큇’의 시간들 


‘릴리안’의 옅은 기침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커피내리는 주전자 소리도 들리고 은은한 커피향이 집안 가득 감돌았다. 


신호라도 된 듯 수런거리는 활기가 솟아났다. 아침10시였다. 모두들 늦잠을 잔 것이다. 


활짝 갠 날씨였다. 새 아침에 맞이하는 호숫가는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원색의 제전이었다. 이슬비를 촉촉하게 맞은 잔디가 햇빛에 반짝반짝 선명하게 빛났다. 한 폭의 정물화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잔잔한 호반에서 싸늘하고 맑은 공기가 몰려들었다. 


“이건 브런치(아침 점심겸한 식사)입니다.” ‘프레드’가 껄 껄 웃었다. 시간에 매이지 않고 마음껏 늦장을 부릴 수 있는 휴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아침이면 숲에서 새들이 날아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여러 새들이 제각기의 소리로 울어댔다. 그 소리들은 한 결 같이 뽀르르~ 구르는 맑은 소리였다. 잔잔한 호반에 미끄럼이라도 지치듯 청명한 공간을 긴 여운으로 채우며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시선을 끄는 새가 있었다. 골드핀치라는 이름을 가졌다. 


크기는 꼭 작은 참새만한데 배 밑은 하얗고, 양 옆구리와 날갯죽지는 짙은 쪽빛으로 반드르르 윤이 나는데 머리와 등은 아주 선명한 황금색, 입부리는 빨갛게 생겼다. 


봉제장난감 같은 이 새들은 꼭 대 여섯 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다녀서 멀리서 보면 갑자기 그 자리에 작은 꽃밭이 생긴 듯 착각이 들었다. 짓 푸른 호수와 수풀을 배경으로 작은 화단이 움직이는 듯, 때로는 공중에서 여러 개의 꽃 뭉치가 어우러져 춤추듯 현란하였다. 


‘영’은 새 모이를 땅에 흩트려 놓고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새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보는 것이 큰 재미였다. 


“아 이. 아 하하.” ‘영’의 손바닥에서 모이를 쪼고 있던 새들이 후루룩~ 날아올랐다. 


‘윌스보로’는 이곳에 정착한 아이리쉬(IRISH)후손으로 뉴욕의 거부상인 윌리암(WILLIAM GRILLAND 1765년)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마을이라는데 그가 살던 통나무집은 현재 특수식물을 기르는 식물원 온실로 공개하고 있었다. 1800년대에는 석회석 채석장으로 300여명의 일꾼을 고용했던 유명한 건축자재상은 영국군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역사가 있었다. 


아빠와 ‘페이스’는 밤에 손전등을 비쳐가며 잡은 지렁이로 도크에서 밤낚시를 하였다. ‘영’이 책 페이지를 넘기면서 저 혼자 술술 읽고 있었다. 글자는 잘 모르지만 그림과 이야기를 다 외워버린 것이었다. 


“Henry has a small Tiger cat / Play with a ball / Sleep in a hat/…” 모두들 놀랐다. 

 

모터보트를 타고.


‘프레드’가 스토레지에서 구명조끼를 들고 나왔다. 보트에 엔진을 달고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하였다. 좀 망설였지만 먼저 타본 아빠가 괜찮다고 하였다. ‘영’은 벌써 앞서 깡충거리고 도크로 가고 있었다. 잔잔한 호반을 보트를 타고 달린다는 흥분이 슬그머니 호기심을 충동이질을 쳐댔다. 


조끼를 입고 ‘영’과 둘이 가운데 앉고 ‘프레드’가 뱃머리에서 방향을 조정하였다. 보트가 부르릉~ 미끄러져 나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하고 물굽이 따라 숲속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차분한 즐거움이 일었다. 


얼마를 갔을까. ‘릴리안’이 손사래를 치며 돌아오라고 불렀다. “멀리 가지 말고 어서 돌아와요.” 


“조끼를 입어서 괜찮아요.” 


‘프레드’의 대꾸에 더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보트를 돌려서 도크 가까이 오니 그제서야 ‘릴리안’이 안심을 하는 것이었다. 


“구명조끼를 다 착용했는데 왜 그렇게 공포에 질려 고함을 질렀어요.” 


“당신은 비상구조방식을 잘 알지만 ‘수지’와 ‘톰’은 전혀 모르잖아요.”


그때 뇌리를 치듯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안내자와 구명조끼, 설비가 아무리 잘 갖추어 졌더라도 내 생명은 스스로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떠나기 전날은 한국음식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간 이웃에서 파이니 빵 같은 걸 구워오고 저녁초대도 몇 번 받았기에 모두를 부르기로 하였다. 낮에 ‘윌스보 로’에 나가니 유명한 관광지 탓인지 쌀도 있고 당면도 있었다. 불고기와 잡채, 오이채를 만들었다. 


 “ ‘릴리안’ 한국음식이 왜 이처럼 맛있는지 알아냈어요.” 음미하듯 잡채를 입안에서 씹고 있던 ’프레드‘가 불쑥 말했다. 


“잘게 썰기 때문이오. 아주 정교하게 잘게 썰어 만든 음식이라 겉보기에도 예술적이지요. 당신도 이렇게 잘게 썰구려.” 모두들 웃었다. 그럴듯한 조크였지만 내심 좀 불편하였다.


한국음식은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시간들의 반 이상이 써는데 드는 것 같다. 얇게 저미고, 다지고, 채 썰고. 고기를 덩어리 채 로스트하거나 생선을 모양대로 구워서 소금 후추 가루를 쳐서 먹는 이들의 식생활과 비교하면 시간 면에서 얼마나 비경제적인지 모르겠다. 치하보다는 시정해야 할 사항으로 지적 받은 듯 무안하기도 하였다. 

 

별장 ‘투굿투큇’에서 얻은 것


신선한 자연과 어울려서 지낸 며칠간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진 듯하였다. 머리 아픈 문명을 비켜놓고 시간에 쫒기지 않고 넉넉하게 몸의 리듬을 맞추어 가며 지낸 생활은 일주일로서 나의 정신세계를 정비하는데 충분했다. 좀더 가벼워진 심신으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나에게 닥친 삶을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골드핀치들이 여전히 꽃밭을 지고 몰려왔다. 보트는 끌어 올려서 덮개를 씌우고 고기바구니와 자잘한 기구들은 모두 스토레지에 집어넣었다. 도크까지 걸어 나가서 호수를 찬찬히 드려다 보았다. 가슴가득 담아가기라도 할 듯 큰 호흡을 몇 번 하였다.


돌아서서 집 쪽을 올려다보았다. 집에서 나오기만 했지 한 번도 들어가며 본 일이 없는 베란다 지붕추녀에 현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물에서 떠내려 온 하얀 널 판지에 글자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TUGUDTUQUIT’ 이라 쓰여 있었다. 인디언의 이름인가? ‘릴리안’에게 물으니 깔깔거리고 웃는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그의 작품이었다. 
TOO GOOD TO QUIT (그만 두긴 너무나 좋다), 삶이란 포기하기엔 너무 좋은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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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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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3
2018-05-22
일부변경선 동과 서(59)

 

 

(지난 호에 이어)
 “마나스 드라이브(MANAS DRIVE), ‘프레드 바움가드너’ 목사 댁에 아주 귀한 코리언가족이 손님으로 왔다. 닥터 ‘쏭’, 미시스 ‘쏭 수지’와 ‘톰’ ‘헨리’ 두 작은 보이들이다.” 


“어. 진짜? 그런 거 신문에 났어요?” ‘영’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 ‘마나스 가제트’(MANAS GAZETTE)에 났지.” ‘릴리안’과 ‘페이스’가 폭소를 터뜨렸다. 


언 클 ‘프레드’의 “오늘의 개그 1호”라고 하였다. 웃음을 깔고 기도로 시작한 아침식사는 그대로 기쁨이고 축복이었다.


“ ‘수지’ 여기 ‘톰’과 ‘헨리’의 옷은 빨아서 드라이어에 말렸어요. 별장에도 세탁기가 있으니까 나머지는 그곳에 가서 하기로 해요.” 어느새 아침에 벗어놓은 옷들을 곱게 개켜주었다. 


11시경에 수박색 ‘릴리안’의 새 차에 전부 타고 레이크로 출발하였다. 오대호를 끼고 있는 북미주의 도시엔 산이 없었다. 가도 가도 훤히 트인 시야에 가끔 낮은 구릉이 보이긴 했지만 산이라고 붙여 줄만한 곳은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공간을 울창한 수림들이 가로 막기도 하고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옆으로 끼고 길이 꼬부라지기도 했다. 요트와 모터보트가 시원스레 흰 물거품을 내뿜으며 호수를 가르는 게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미국을 아름답게’라는 팻말이 가끔 눈에 뜨이기도 했지만 미국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이 오대호 연안의 국도주위는 카메라의 앵글을 아무렇게나 갖다 대어도 멋진 풍경화가 될 만큼 산수가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경관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스케넥타디’에서 북으로 두 시간 정도 캐나다국경 쪽으로 달리면 ‘몽트레알’ 못 미쳐 호수의 한 줄기가 미국 쪽으로 흘러내린 중간쯤에 작은 도시 ‘윌스보 로(Willsboro)’가 있다. '부케'강(Boqet River)이 ‘챔프레인’ 호수로 흘러 들어 아름다운 휴양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한 20여분, 숲 속 길을 달려야 ‘릴리안’네 별장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식료품점에 들려 빵과 고기 야채 등 한 주일간의 식료품을 잔뜩 사서 실었다. 


 목조 카티지가 여러 채 있는 둔덕을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가니 바로 호숫가에 세 채의 별장이 멀찍멀찍 떨어져 서있었다. 그 중 가운데 집이 ‘릴리안’네 별장이었다.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서니 오래 동안 비워두었던 집 안에서 축축한 더운 기운이 확 끼쳐왔다. 곰팡이냄새 같은 건 전혀 없이 밝고 깨끗하게 정리 되어있었다.


 높은 천장과 대들보는 굵은 통나무로 삼각지붕인데 바닥은 부엌, 식당, 그리고 아주 넓은 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구조였다. 접시세척기(Dishwasher)까지 갖추어진 부엌을 지나면 넓은 식당이 있고, 식당 양 옆으로 하나씩 두 개의 방, 그리고 넓은 홀의 양 옆으로 큰 방이 두 개씩 4개의 방이 있어 도합 6개의 방이 있었다. 부엌 옆문을 열면 양 옆으로 세탁장, 화장실과 욕실 샤워장이 있었다. 


홀에는 장작을 때는 화이어 플레이스가 있고 그 앞에 아주 커다란 흔들의자, 풍금 라디오, 전축 그리고 티 테이블 등 가구가 적당히 배치되어 있었다. 단순한 디자인의 응접세트엔 두터운 마직 시트가 덮여 있어 방안 분위기는 투박하면서도 차분해 보였다. 마디가 그대로 들어난 마루엔 군데군데 터키산 알파카 울 양탄자가 깔려 있어 휴양지 운치를 더해 주었다. 


왼쪽 두 방을 정해 주었다. ‘영’과 아빠, ‘현’과 엄마가 한 방을 쓰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방엔 높은 침대와 거울 달린 서랍장, 책상이 있고 옷장엔 두터운 이불이 여러 채 쌓여 있었다. 물가이고 숲 속이라 새벽녘엔 무척 춥다고 하였다. 


홀의 전면은 전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나서니 호수가 그대로 폐 속으로 흘러들 듯, 상쾌한 물 냄새가 흠씬 밀려들었다. 바다를 쓸고 온 시원한 바람이 으스스한 한기마저 느끼게 하였다. 


홀만큼 넓은 베란다의 오른쪽은 스크린 룸, 왼쪽엔 스토레지(보관실)가 차지하고 있었다. 넓적한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뜰이 있고 뜰 끝에 있는 돌층계를 내려가면 모래사장까지 나무판자길이 물가 도크가 이어져 있었다. 작은 보트 하나가 물결이 치는 대로 흔들거리며 매어있었다. 


만처럼 구부러져 돌아간 호수는 양 기슭에 청청한 나무들이 울창해서 잔잔한 호수는 눈 닿는 저 끝 수평선에서 숲 뒤로 숨어 있었다. 고요함, 맑고 깨끗하고 청순한 대기는 날숨을 뿜기조차 두렵도록 장엄하였다. 


광활하고 치밀하게 조화된 자연미는 보면 볼수록 자신을 아주 작은 모래알로 부스러뜨렸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 한없이 원대한 것들과 마주서면 언제나 슬퍼졌다. 보잘것없는 존재의 무상함이 눈물마저 어리게 하였다. 


 나를 잊은 채 언제까지나 망연히 호수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호반위에서 물의 요정 님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추며 아른거리고, 더욱 더 멀리, 물위를 거니는 하얀 옷자락이 살랑살랑 나부끼는 환상이 비쳐왔다. 우주 생명의 근원이 된 물, 호수는 만물을 품고 위대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호수 가에는 저녁이 일찍 왔다. 아직 해가 지려면 먼 시간이지만 울창한 나무그늘에 덮인 호수엔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물굽이가 돌아간 저쪽 호수 끝엔 나무들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들이비친 듯 금빛파도가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추워 엄마. 고만 들어가.”


 안으로 들어오니 ‘현’을 안고 앉은 아빠와 ‘프레드’는 이야기에 열중해 있고 ‘페이스’와 ‘릴리안’은 식탁을 차리느라 바빴다. 깜빡 잊고 호수만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것이 미안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뭐 좀 도와드릴 것 있어요?” 


“아니요. 오늘 저녁은 요리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오느라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레이크에선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정하고 있으니까요”


야채샐러드를 빼고는 거의 전부가 통조림이거나 익혀서 포장한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그게 좋지요. 아무래도 별장은 쉬러 오는 곳이니까요. 여자들도 좀 쉬어야지 레이크에 와서까지 일만 해서야 그게 무슨 휴식이겠어요.” 


“하. 하. 그렇게 이해를 해주니 참 반갑군요. 역시 여자는 여자끼리 통하나 보지요?”


초대받아 가서 주부가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볼 때처럼 마음이 무거워지고 식욕이 떨어지는 일이 따로 없었다. 손님 접대나 피크닉이나 여행 때에도 따라다니는 일 더미는 항상 여자들의 몫이었다. 그런 부담 없이 식사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저녁은 참으로 마음 가벼운 즐거움을 주었다.


‘페이스’가 ‘영’에게 그림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동안 그릇을 모두 접시세척기에 집어넣은 ‘릴리안’과 ‘숙’은 남자들의 화제에 조용히 한 몫 끼일 수 가 있었다.


‘페이스’가 읽는 것을 그대로 따라 읽는 ‘영’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방안에 울렸다. 


 
 벽난로에 타오르는 불꽃


 해가 지자 으스스하니 추위가 엄습해 왔다. 숲의 나무들은 새까만 이불을 덮고 쉴 채비를 하는 지 바스락 속삭임만 소곤소곤 떠 다녔다. 호수는 까만 비단 천 밑에서 숨고르기라도 하는 듯 고요하기만 하였다. 


“ ‘수지’ 이거 걸쳐요.” ‘릴리안’이 두터운 털옷을 한 아름 안고 나왔다. ‘프레드’가 커다란 바구니에 장작을 가득 담아가지고 들어오더니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길다란 마분지원통에서 향료가루를 한줌 털어 넣자 확 불꽃이 일어나면서 솔향기가 집안 가득 퍼져나갔다. 한 여름 밤 스웨터를 둘러쓰고 모여 앉은 얼굴들에서 각가지 불꽃 그림자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 ‘톰’은 영어 많이 배웠습니까.” 


“배우긴 많이 배웠는데…” 머뭇거리자 


“그래도 애들이 말을 더 빨리 배울 겁니다. 아마 지금도 ‘톰’이 ‘수지’보다 더 잘할 걸요.”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릴리안’이 깔깔거리고 큰소리로 웃었다. 


“낫고말고요. 벌써 전화를 받을 정도인데…” 그러자 이번엔 ‘프레드’도 ‘페이스’도 합창이라도 하듯 함께 따라 웃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아빠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집에 온 ‘웨슬리’가 온 집안 친척들 앞에서 들려준 이야기라 하였다. 


‘버펄로’에 온지 2개월쯤 지난 어느 날, ‘웨슬리’가 볼일이 있어 ‘쏭’을 찾았다. 학교에서는 찾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영’이 받았다고 한다. 


“헬로” 단번에 ‘영’인걸 알아챈 ‘웨슬리’는 그대로 전화를 끊을까 하다가 눈을 말똥이고 수화기를 들고 있을 ‘영’이 생각나서 잠깐 망설이다가 불현듯 한 꾀가 생각났다고 한다.


“헬로. ‘타이용’” 


“아 ‘웨슬리’ (아 찌 구 나.)”


“이즈 유어 (아빠) 앳 홈?”  


“노. (아빠 스쿨 갔어.)”


“오케이 댕 큐. ‘타이용’ 굿바이”  


‘쏭‘이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전화를 건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기분 좋게 끊었다는 것이다. 성탄 파티가 웃음으로 진동하였다한다.


 
  ‘톰’은 아주 똑똑한 아이입니다. 겨우 두 살 지났는데 그처럼 의젓하고 영리하지요. ‘릴리안’이 그렇게 끝말을 달았지만 이번엔 아빠와 ‘숙’이 큰소리로 웃었다. 엉뚱한 ‘영’만 우스운 게 아니라 기발한 착상을 한 ‘웨슬리’도 우습긴 마찬가지였다. 


옛날얘기 ‘복숭아장군’이 스테이션 웨곤에 보물을 실어왔다고 웃기던 ‘영’과 코넬대학수재 ‘웨슬리’의 순발력 겨루기라도 보는 듯해서 웃음소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밖에는 안개 같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과 ‘현’을 눕히고 나오니 사방은 갑자기 깃털처럼 부드러운 평안함에 묻혔다. 몸은 피곤하지만 무언지 모르게 가슴 충만하게 고여 오는 이 밤을 쉽게 잘 수는 없었다. 어른들은 그대로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서 티를 마시며 한담을 하였다. 


 “ ‘수지’ 미국에 온 인상이 어떻습니까.” 의외로 ‘프레드’가 ‘숙’에게 물었다.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겨우 대답을 하였다. 


“미국에 와서 그간 받은 인상은 ‘신(神)은 미국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응? ‘릴리안’이 고개를 휙 돌려 ‘숙’을 쳐다보았다. ‘프레드’는 말없이 장작불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 확실히 예상 밖의 대답에 놀란 듯하였다.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풍요하다거나, 그런 표현이 아닌 대답을 기대하진 않은 게 틀림없었다.


“어째서 ‘너무 많이’라는 표현이 붙을까요?” ‘릴리안’이 되물었다. 


“미국인들은 신(神)의 축복이 어느 만큼인지 미쳐 깨닫고 있지를 못하니까요.”


‘릴리안’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시선을 멀리 두고 잠잠하였다. “참 멋진 표현 이었다”며 아빠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 ‘수지’ 말이 옳습니다. 그 말은 나로 하여금 슬픈 반성을 하게 만듭니다.”  ‘프레드’가 말문을 열었다. 


“미국은 큰 대륙입니다.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대서양연안에서 태평양연안까지 속속들이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어디를 가나 아름답고 풍요한 자연이 있고 먹을 것이 있습니다. 지방마다 특이한 자원들이 풍부하고 모자라는 것이 없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지만.” 차로 목을 축이고 다시 계속하였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보았겠지요. 정신을 좀먹는 근대문명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또 그것은 인간의 건강자체도 해칩니다. 인종차별이 있고, 반전데모가 있고, 히피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국을 거부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당연하게 보이는데 고마운 생각이 들 리가 없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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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65988
9203
2018-05-13
일부변경선 동과 서(58)

 

(지난 호에 이어)
죄인이라는 생각을 넘어 삶 자체가 죄스럽고 짐스럽게 버겁던 나날이었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나가도 자꾸만 그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는 듯 가슴 쓰린 통증이 짓누르던 생활에서 홀연히 벗어나 대지에 두발 딛고 우뚝 선 상쾌함이 용솟음쳤다. 


벽에 걸려있는 밀레의 만종이 푸근한 대지의 향기를 안개처럼 흩뿌리고 있었다. 저녁노을을 등지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농부의 아내가 자신인 듯 평안과 감사가 끓어올랐다. 


‘아멘’ 기도가 끝났는데도 두 손을 깍지 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영’을 팔 굽으로 툭 쳤다. 기도는 필요하다. 정신세계에서 찌꺼기를 걸러주고 새롭게 쇄신하기 위한 전능자와의 대화로서 기도는 절대 필요하다고 확신하였다.


 ‘프레드’ 목사와 ‘훈’은 밤늦게까지 리빙룸에서 한담을 하고 있었다. 음양학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주장과 목사님의 개혁신학종교관이 어떻게 합일점을 찾았는지 다 듣지 못하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프레드’와의 대화를 이렇게 전해주었다. 


“한국의 일반 목사들 하곤 격이 다르지. 학위를 받고 공부를 많이 한 목사로서 서슴지 않고 자기비판도 할 줄 알고 주장이 명확하더군. 이론적인 종교로서야 모든 종교가 다 합리적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활인의 종교로서는 기독교의 박애정신이 으뜸이라고 하더군.”


청교도들에 의해 이룩된 미국은 사랑의 실천신앙으로 개척된 나라임을 되새기게 하였다. 200여 년 전 새로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메이플라워(Mayflower) 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뉴잉글랜드의 혹독한 겨울과 싸우고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 박애운동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세계인류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사랑받을 존재임을 삶 속에서 솔선하고 있었다. 


오래 전 성가대, 주일학교반사로 봉사하던 신앙의 그루터기가 비장된 보배처럼 빛을 발하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에 왕성한 힘을 실어주었다. 

 

호숫가 별장 ‘투굿투큇’(TUGUDTUQUIT)


커피향이 코끝에 넘실대서 눈이 떠졌다. 벌써 8시, 늦잠을 잤나 보다. 집에서는 6시만 되면 벌써 깨어서 수선을 떨 텐데 조용한 걸 보니 아마도 어제의 여정에 애들도 몹시 피곤했던 모양이다. ‘릴리안’이 애들은 자기가 봐줄 테니 염려말라며 옆방에 재워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정말 푸욱 잘 잤다. 아빠는 이미 일어나 나간 듯하였다. 퍼뜩 새 정신이 들어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달려갔다. 


 “하이 ‘수지’ 굿 모닝. 잘 잤어요?” ‘릴리안’이 웃으며 인사하였다. 


“엄마!” ‘영’이 달려와서 허리를 얼싸안는다. ‘현’은 크리브 안에서 맘. 맘. 소리를 질러댔다. 두 아이를 씻겨서 똑 같은 모양의 셔츠와 바지로 갈아 입히고 머리까지 곱게 빗겨 놨다. ‘영’의 얼굴엔 베이비로션이라도 발랐는지 콧잔등이 반짝거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 내가 그처럼 세상 모르고 잘 수 있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친정집에 다니러 온 착각이 들었다. 내 방에서 푹 자고 나온 듯 가벼운 기분이었다. 친정부모 같은 ‘릴리안’과 ‘프레드’. 하나도 낯설지 않고 스스럼이 없어졌다. 


마음대로 집안을 돌아다니고 수선을 떨면서 응석 어린 억지를 부려도 격의 없이 다 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이 햇솜처럼 포근하게 온 몸을 감싸주었다. 


“고마워요”라고 밖엔 할 말이 없었다. “천만에 말씀. 문제없어요.” 화답이었다.


“ ‘타이용’ 저기 언클 ‘프레드’에게 가봐요.” “오케이”


 언클 ‘프레드’와 앤트 ‘릴리안’이라는 호칭이 당연한 듯 경쾌하게 후다닥 뛰어갔다. 


 식당전면 창으로 내다보이는 뒤뜰은 20여 미터 저쪽부터 깊은 상록수림으로 둘러있었다. 군데군데 새 모이통을 매단 정원수 사이로 석상을 세우고 화단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7월의 밝은 아침햇살에 날개만 파닥이는 작은 새들이 모이통 주위를 부지런히 날고 있었다. 


“하이 ‘수지’, ‘톰’ 굿 모닝.” 또그르르 구슬 굴러가는 맑은 소리가 울려왔다. 


“ ‘톰’ 이라고 옆집 친구가 붙여준 이름이래요.” ‘페이스’가 깔깔거리며 설명하였다. 


 “그새 자기소개를 정식으로 한 모양이군.” 모두들 소리 내어 웃었다. ‘현영’은 출생신고 때 영문이름을 ‘헨리’라고 기입했지만 ‘태영’은 영문 이름이 없었다. ‘언클’, ‘앤트’, ‘톰’, ‘헨리’… 새로운 명명식의 아침이었다. 


 식탁상석에 앉은 ‘프레드’ 목사님이 반절짜리 신문을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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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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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일부변경선 동과 서(57)

 

(지난 호에 이어)
‘게일’이 어느 날 무심히 들려준 이야기도 있다. 8월에 이사를 가기 위해 집을 내놓고 한 중국인과 계약이 거의 성사되려는 때였다.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아이비엠 일을 한다는 이 중국인 부부는 아주 조촐하고 교양도 있어 보였다. 


하루 저녁 이웃집 사람들 몇이 찾아왔다.


“집을 중국인에게 팔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집을 자기 마음대로 팔고 사는 거야 자유이지만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인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으니 중국인들께 집을 팔지 않는 것이 살던 마을 이웃에 대한 온정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해 매매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도 너희 집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약간 빼딱한 음성으로 되받았었다. 


“오. 너도 그런 생각이냐. 도대체가 모두들 멍텅구리 돌대가리들 생각인 걸. 그들은 타민족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동족끼리도 다른 고장에 가면 질시를 받을 사람들이야.” 


‘게일’이 극구 변명을 하고 기분을 가라앉혀 주었지만 미국엔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텃세와 인종적 우월감이 미국인들의 생각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 ‘릴리안’이 사는 이 동네는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할 것 같은 초조감이 생겼다. 


 “저건 무슨 차에요?” 


“글쎄 아주 옛날 차 같은 데…”


앞이 둥글고 차체가 높은 구식의 검은 색 자동차가 드라이브 웨이를 기어 올라왔다. 소리도 요란스럽게 크르릉, 크르릉 하는 차가 집 앞을 지나갈 때 ‘숙’은 놀란 얼굴로 아빠를 돌아보았다. 까만 양복에 흰 컬러를 세운 사제복의 ‘프레드’ 목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마미 대 디 왔어요.” ‘페이스’가 소리지르며 뛰어나갔다. 


“하. 하. 하. ‘프레드’ 목사도 걸작이군 그래. 이제 봤더니.” 아빠가 웃었다. 지금까지 하던 우울한 생각들을 단숨에 날려버린 홀가분한 웃음소리였다. 


1950년대의 구식 ‘닷지’ 차를 아직도 끌고 다니는 인간성이라면 하나도 걱정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거기다 대면 메뚜기 차는 오히려 새 모델이었다.


“녹이 슬어서 그렇지 어때. 이차 엔진은 아주 좋은 거라구.” 


 눈을 찡긋하고 어깨를 재며 문으로 나갔다.


“하이. 닥터 ‘쏭’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내일부터 며칠 쉬려니까 어찌나 할 일이 많은지 다 정리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군요.”


 “닥터 ‘쏭’ 차를 안에 넣어요.” 


“아. 우리 차는 밖에 두어도 됩니다. 다 낡은 차인걸요.”


“네? 하. 하. 새 차가 안에 들어가야지 헌 차가 들어가서야 되겠습니까.” 그도 닮아가는지 껄껄 웃더니 기어코 닥터 ‘쏭’ 차를 안에 넣게 하고는 들어왔다. 


“오호. 하이. 타이용! ‘헨리!”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악수를 청하였다. ‘숙’이 손을 잡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애들이 시끄럽게 해서 참 미안합니다.”


“노오. 난 아이들 아주 좋아합니다. 애들 떠드는 소리야말로 삶의 소리 아니겠습니까.” 


“노오. ‘수지’ 우리 집도 그리 조용하기만 하진 않아요. 피아노가 꽝 꽝 거리구, ‘푸 씨’가 짖어대구…” 곁에서 ‘릴리안’이 감싸며 위로해 주었다. 


“옆집 ‘마가렛’네엔 이제 막 한 살 된 어린애도 있어요. 이 플레이 팬 그 집서 빌려왔지요. 플레이 팬을 리빙룸 한가운데 펼쳐놓고 ‘현’을 그 안에 넣은 뒤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하얀 테이블보를 씌운 식탁에는 은수저와 은그릇들이 빳빳하게 다려서 접은 하얀 리넨냅킨과 함께 제자리에 반듯하게 차려있었다. 목사님 댁의 오랜 관록이 밴 정중한 손님맞이 식탁이었다. 


 “디 어 갇. 당신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멀고 먼 한국에서 온 이들 젊은 가정을 우리 가까이에 불러주사 우리로 하여금 주 안에서 모든 인류가 형제 됨을 알게 하여 주심을 깊이 깨닫고, 더욱 감사 드립니다. 어머니의 모태를 떠나듯 먼 이곳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들 젊은 가족 모두를 주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여 주시고 당신의 사랑이 충만하기를 비옵나이다. 아 멘” 


 ‘장 발장’이 은 촛대를 훔치던 목사님 댁에서의 저녁 식탁이 언뜻 떠올랐다. 기도를 들으면서 서럽도록 경건한 감동을 받았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속삭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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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일부변경선 동과 서(56)

 

(지난 호에 이어)
‘페이스’는 그 앞 흔들의자에 ‘영’과 ‘현’을 한데 앉혀놓고 흔들어 주고 있었다.


“헤. 헤. 헤” “까르륵, 까르륵” 두 아이들이 좋아라고 간드러지게 웃어댔다. 수런거리는 활기가 집안 가득 넘실거리며 퍼져나갔다. 


 여행이 순조로웠느냐며 이것저것 묻던 ‘릴리안’이 잠깐 부엌에 나간 사이 아치형 전면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무래도 이 집 스타일 우리가 구기겠는걸” 아빠가 중얼거리며 빙긋 웃었다. 주춤하니 엉덩이를 들고 서있는 녹슨 자동차가 나무들 그림자를 일렁이며 서 있었다. 한층 높아진 리빙룸에서 내려다보는 메뚜기 차는 유난히 납작하고 더 초라해 보였다. 


 시원하게 냉방이 되어있고, 육중하니 조화된 방안에서 바라보니 수목은 그리 동떨어지게 높지 않았고 바람소리 또한 그리 을씨년스럽게 요란하지 않았다. 빨강 꽃, 파랑 자동차… 모두가 눈을 자극하는 색이 아니었다. 


규모가 큼직큼직하고 색깔이 화려한 이 모든 것들이 그대로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풍경에서 한쪽이 떨어져 나간 듯 메뚜기 차는 균형을 잃고 서 있었던 것이다.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점잖고 부유한 가정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오란다고 앞뒤 생각 없이 덜렁 찾아온 게 잘못일지 모르겠네요.”


“응?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우리가 어떤 처진 거 다 보고 아는데…”


하긴 그렇기도 하다. ‘현’이 출생하고 두어 주 후, ‘웨슬리’를 방문한 ‘릴리안’은 ‘쏭’의 새아기 ‘현’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우중충하고 가구라고는 보잘 것 없는 방에서 애기를 키우느라 정신 없던 ‘숙’의 다듬지 않은 초라한 모습도 보았고, 갓난 애기한테서 풍기는 특유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먼지를 뽀얗게 피우던 ‘영’을 보고 귀엽다고 손을 잡고 볼을 비볐다. 


티 테이블도 없이 뜨거운 인삼차 한잔을 마룻바닥에 놓고 불어가며 마시던 그들이 왜 사정을 모르겠는가. 그들 일행이 방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방안이 하나 가득 차는 듯 환해지고 자신과 주위가 한없이 빈약해 보이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고도 집으로 초청한 ‘릴리안’인데 설마하니 어떤 감정을 감추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숙’의 협심증은 자꾸만 기분을 갉아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미안 한데요.” 공연히 궁상이나 더 잡힐 이 여행을 너무 경솔하게 떠나온 것이 아닌가 후회되었다. 


아직도 일부 미국의 부유층은 보수적이라고 들었다. ‘보스톤’ 근처 뉴욕 주는 ‘보수적’의 대명사였다. 계급의식이나 인종문제에 있어 예민하고 배타적이었다. 평소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조용하다가도 막상 자기들 주위에서 그런 문제가 생기면 맹렬하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기도 하고 아니면 점차적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해오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었다. 


미시스 ‘황’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버펄로’ 국립공원 뒤에 버펄로에서도 이름 있는 사회적 유지급 부자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었다. 이 동네를 지나가노라면 꼭 중세시대 성곽지대를 도는 느낌이 들었다. 수목이 울창하고 잘 다듬어진 잔디를 이리저리 모양을 넣어 화단을 가꾸고 자연석이 보기 좋게 깔린 넓은 정원 뒤에 우뚝 솟아있는 집들은 그대로 궁궐이었다. 


육중한 화강암이나 대리석 원주를 세워서 받쳐놓은 웅장한 집은 하얀 벽돌이나 자연석벽에 기어오른 넝쿨이 세월만큼 한층 장중함과 우아함을 더해주었다. 의식주(衣食住)의 주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해 편리를 위해서만 지어진 집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건축미를 돋보이게 지은 예술품이었다.


여기에 어쩌다 아파트가 끼게 되어서 말썽이었다. 실은 이 집도 처음부터 아파트가 아니라 몰락한 집주인이 뜯어고쳐서 몇 개의 아파트로 만들어 세를 준 것이었다. 집 외관이 가장 지저분한 것은 물론이고 우선 주차공간이 적어 길에다 차를 세워놓는 것이 큰 문제였다. 


돌기둥을 세우고 철 대문을 한 이들 궁궐의 바로 문 앞에까지 차를 세우곤 하였다. 직장이 가까워서 멋모르고 이곳에 세 들어 살게 되었던 닥터 ‘황’네는 참 희한한 구경을 많이 하였다. 


어느 날 경찰차가 두어 대의 견인차를 대동하고 오더니 무조건 아파트주민들의 차를 끌고 가더라는 것이다. 이유는 ‘교통방해’였다고 한다. 아파트주민들이 떼로 몰려가서 항의하고 소동을 벌인 끝에 차를 찾아오긴 했지만 그 뒤로도 이런 일은 빈번하였다고 한다. 


“지네들이 좀 참을 것이지 주차공간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길가까지 지들 소유인가”, 불평이 들끓었다. 닥터 ‘황’ 댁은 곧 이사를 나왔지만 지금은 그 아파트도 없어졌다고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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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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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5
일부변경선 동과 서(55)-레이크 챔프레인



7월 하순, 뉴욕 주 ‘알바니’근처 ‘스케넥타디(Schenectady)’에 있는 ‘프레드 바움가드너’(Fred Baumgardner) 목사 댁을 방문하였다. 하루 이틀 묵고 챔프레인 호수에 있는 여름별장에 가서 함께 지내기로 한 것이다. 


대개 별장으로 초대하는 일은 아주 특별한 친분관계가 아니면 하지 않는데 ‘웨슬리’ 부모가 닥터 ‘쏭’ 가족을 초대했다는 사실에 모두들 놀라워하였다. '게일‘은 호숫가 별장은 자기도 가보고 싶은 곳이라며 아주 부러워하였다.


 “우리 집은 에어컨도 되어있고 호숫가에 여름 별장도 있으니 얼마간 지내기에 좋을 것입니다. 애들도 보고 싶고 하니 휴가를 얻어서 꼭 좀 다녀가십시오.” ‘릴리안’의 편지는 포기와 좌절로 우울하던 일상에서 훌쩍 벗어나 호기심과 기대에 찬 즐거운 고민을 하게하였다. 


‘게일’은 다른 생각 말고 어서 가서 놀다 오라고 떠밀듯이 권하였다. 


“남 들은 경비를 들여가며 휴가를 다니는데 우린 레이크에나 가보자구.” 덧붙여 미국 상류사회는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은 것도 숨은 이유였다. 


‘웨슬리’가 그려준 지도 한 장 들고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90번 국도를 6시간 넘게 달렸다. 창문을 전부 열어놓고 달렸어도 얼굴에서는 비지땀이 흘러내리고 세찬바람결에 머리카락은 엉킬 대로 엉켜서 부수수하니 새 둥지 같았다. 


차 안을 여기저기 만지작거리며 몸을 뒤틀던 ‘영’은 그 손으로 땀을 문질러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 얼룩덜룩 검둥이가 되어 있었다. 


‘스케넥타디’에 들어와서도 한 시간 정도 더 뱅글뱅글 돌고서야 ‘릴리안’네 집 앞에 도착되었다. 모두가 지쳐서 후줄근하니 늘어진 모습들이었다. 


“하이, ‘수지’ 하이, 우리 귀염둥이들!” 약간 경사진 긴 드라이브 웨이에 들어서자 ‘릴리안’과 ‘페이스’가 달려 나왔다.


“‘웨 스’가 아침 9시경에 떠났다는 전화를 해 주어서 2시경부터 기다리는 중이었어요.” 하니까, 두 시간 이상을 밖을 내다보며 기다려 준 것이다. 어머니 품을 떠나온 이래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마음 샘 깊은 곳에서 불쑥 두 줄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현’을 받아 안고 가는 ‘페이스’의 뒤를 따라 구부렸던 다리를 겨우 펴고 일어서 나온 ‘숙’은 잠시 거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게 뻗어오던 길이 열쇠 끝처럼 둥근 광장을 끼고 돌게 되어 있었다. 일종의 막다른 골목(Cul-de-sac) 형상인데 중앙에 자리 잡은 광장은 숲 인지 공원인지 아름드리 울창한 전나무들이 하늘 높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공원의 둘레를 따라 대 여섯 채의 큰 집들이 터를 넓게 잡고 드문드문 서 있고 ‘릴리안’네 집 쪽은 야트막한 언덕이 되어 있어 광장의 나무들 때문에 저쪽은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보면 컴컴한 나무 밑 사이로 하얗게 반짝거리는 차도가 군데군데 보일 뿐이었다.


모두들 퇴근을 하였는지 차고에 넣지 않은 차들이 집 앞에 주차되어 있고 주위엔 사람의 그림자도 없이 조용한데 나무들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소리만 솨~아 솨~아 들려왔다. 깨끗하게 정돈되어서 오히려 쌀쌀해 보이는 인상의 주택가였다.


 “‘프레드’는 좀 있다 돌아올 거에요. 집에서 마중치 못해 미안하다고 전화가 왔었어요.”


더블 카 차고의 위 창문으로 수박색 차가 반짝반짝 윤을 내며 들어앉은 것이 보였다. 언덕 위 현관에 이르는 양 옆으로 둥글둥글한 돌들을 고여 조성한 록가든에는 제라늄이니 금잔화, 칸나 같은 꽃들이 어우러져 한창이었다. 


 “야이! 엄마~” 리빙룸에서 ‘영’의 다급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흰털이 길게 늘어진 커다란 개가 으르렁거리며 ‘영’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현’은 푹신푹신한 양탄자 위를 기어 다니며 이것저것 잡아 다니기에 바빴다.


 “푸 씨. 푸 씨.” ‘페이스’가 꾸짖듯 부르자 ‘영’을 따라 다니던 걸 고만두고 혀를 길게 내밀고 헐떡거렸다.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 다시 명령하였다. 


 새 침입자들을 쫓고 있던 ‘푸 씨’는 아직도 미진한지 한참을 헐떡거리며 두리번거리더니 길다란 혓바닥으로 ‘현’의 볼을 쓰윽 핥아주고는 비켜서 쭈그리고 앉았다. 


“아 앙” 깜짝 놀란 ‘현’이 큰 소리로 우는 바람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얼음을 띄운 진저에일 한 컵을 받아 들고 소파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이 새롭게 몰려들었다. 발등이 퉁퉁 부어서 발가락을 꼬무락거릴 수도 없었다. 피아노엔 조금 전까지 누가 쳤는지 악보가 펼쳐진 채 열려있고, 전축에선 부드러운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악보는 ‘페이스’가 칠 곡은 아니었다. 문득 ‘릴리안’이 교회 반주자였다는 사실이 스쳤다. 화이어 플레이스를 가운데로 양 옆 천장까지 올린 높은 선반엔 두터운 책들이 촘촘히 꽂혀 있고 그 한 귀퉁이엔 ‘페이스’의 수집인 듯 만국인형들이 갖가지 모양과 색상의 전통의상을 입고 진열되어 있었다. 브라운 계로 배색된 가구는 오래되어 윤이 흐르고 손에서 닳아 품위가 더해진 것 들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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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3
2018-04-05
일부 변경선 동과 서(54)

 

(지난 호에 이어)
흑인들의 지위향상과 사회적 참여기회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속도는 너무도 느리고 미약해서 아직도 미국인의 깊은 의식 바닥엔 불평등의 사회부조리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문득 공원에서 만난 낚시꾼의 말이 떠올랐다. “더 많은 인재들이 와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스스로 성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구실에서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수많은 인재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몰려 온 ‘엘리뜨’ 들이었다. 보다 나은 조국을 위해 정신적 힘을 높여줄 미래의 인력자원들이었다. 미국은 개척자들에게 능력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부여의 땅이었다. 


 추천제도가 위력을 발휘하는 사회에서 연구파트너의 ‘죤스 홉킨스’ 의대 입성은 함께 환호하고 흥분할 만한 기쁜 일이었다. 게일은 ‘쏭’과의 연구 설계를 벌써부터 하고 있었다.


1889년에 세운 ‘존스 홉킨스’ 병원과 4년 후(1893년)에 설립된 의과대학은 ‘쏭’도 언젠가는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의형제 


 “이 농장도 당분간 오기 힘들거야.” ‘게일’이 혼잣말을 하였다. 떠난다는 섭섭함이 모두들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그늘을 스치게 하였다. 식탁만 내려다보며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쏭’이 농장키를 맡아 줄래요?” 


“뭐. 뭐라구?” 깜짝 놀라 고개를 퍼뜩 들었다.


“어머니는 노쇠 하시구... 닥터 ‘쏭’은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니까.”


어안이 벙벙하여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걸 내가 맡아서 어떻게 하라구” 


“주인 노릇 좀 하라는 거지.” 전혀 농담 같지는 않았다.


농장 관리나 필요한 서류는 자기가 모두 작성해서 해결하고 갈 테니까 시간이 나는 대로 ‘수지’하고 애들 데리고 와서 놀고 즐기라는 것이었다. 200에이커의 땅을 내려다보았다. 바람 한 점 없는 푸른 능선이 한가하게 뻗어 있었다. 울창한 숲 저 끝은 벌써 땅거미가 지는 지 거뭇하게 번진 먹빛으로 덮여 가고 있었다.


 “아니. 난 이 넓은 땅을 지닐 능력이 없어.” 


“땅은 노력해서 얻은 사람의 것이지. 나는 아니야.” 머리를 저었다. 


 “‘쏭’. 어차피 내가 가면 이 땅은 비어 있게 돼. ‘쏭’이 와서 즐기는 것이 땅에게도 좋을 거야. 땅에는 동식물도 살아야 하지만 사람이 있어야 활기가 돌고 완전하다고 생각 하거든.”


인종차별에 대해 서글픔을 씹고 있었던 시야에 혼선이 일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땅. 황폐한 들판. 과연 땅은 사람이 있어 생활을 함으로서 생동의 가치가 지어지는 것이라 여겨졌다. 


‘게일’은 독일계통이었다. ‘낸시’는 영국계. 그러니까 그들의 조상도 누군가에게 이 땅의 관리권을 얻었을 것이고 그 사람은 또 그 전, 그 전... 결국 땅의 임자는 창조주일 뿐이다. 


자기가 비우는 동안에 주인 노릇 좀 하라는 ‘게일’의 주장이 오히려 정당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오랜 역사의 흐름으로 본다면 땅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성발전은 그 근원이 토양의 차이에 있을 뿐이라는 어렴풋한 깨달음이 스며들었다. 


 “‘쏭’ 내가 ‘쏭’ 자리를 만들어 놓을 거야. 우리 ‘벌티모어’에서 만나자구.” 


 그 때 가지고 와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몇 번이나 올 수 있겠다고 열쇠를 맡겠나, 사양하였다. 


“그럼 우선 ‘크리스마스’까지만 이라도 맡아. 어머니 뵈러 한번은 올 거니까.”


200에이커의 묵직한 열쇠뭉치를 싣고 메뚜기 자동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스름한 여름 밤으로 덮여있었다. 낮 달이 서서히 금빛을 더해가고 있었다. 


 (*추신: 닥터 ‘게일’과의 약속은 ‘쏭’이 캐나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웨스턴의대에 재직하던 첫 안식년에 이행되었다. Parker B. Francis Foundation, SEH-HOON SONG, Was Parker Francis Fellow in Pulmonary Research at Johns Hopkins University, 1977-1978)


 닥터 ‘쏭’은 골수에서 태어난 조혈줄기세포가 비장(Spleen)에서도 분화 발생해서 백혈구와 적혈구로 생성된다는 새 학설을 발표하였다. 이를 증명하려는 연구가 학계에 뜨거운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 ‘존스 홉킨스’ 핵의학과 주임교수 닥터 ‘헨리 와그너’(Henry Wagner)연구팀은 미국보건성의 연구비를 받아 원자로를 도입하며 연구원을 초청하게 되었다. 닥터 ‘와그너’와 닥터 ‘게일’의 추천으로 영예의 기회가 성사된 것이다. 자녀들은 ‘벌티 모어’ 이주를 원치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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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hon
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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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9
일부 변경선 동과 서(53)

 

(지난 호에 이어)
“이게 시련기야. 내가 굳건히 서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뚫고 나가지 않으면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은 한데 엉켜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 


물위에 떠있는 빨간 찌가 크게 흔들렸다. 엉뚱한 생각들에 한참 몰입해 있었나 보다. 


“어디서 오셨지요?” 낚싯대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반소매 면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건장한 체격이었다. 한 오십 정도 되었을까 사무실형의 중후한 인상이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아. 한국 사람을 여기서 친히 보다니 놀랍습니다.”


 한국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이유로 한국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놀랍게도 그는 6.25동란과 현재 한국정세, 그리고 36년간의 일제 침략과 광복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아빠가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며 아주 흥미롭게 들어 주었다. 


“한국의 ‘엘리뜨’ 이군요.”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말했다. 


“더 많은 인재들이 와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러 나라들이 도와주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고만 자기소개를 한 이 낚시꾼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내 나라가 있어 고맙고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하는 목적과 보람이 인생행로에 밝고 분명하게 비쳐오던 감격의 순간이었다. 나의 조국은 나와 절대 불가분의 철옹성임을 가슴 깊이 각인하였다. 

 

토양의 차이 


6월 초에 ‘낸 시’는 둘째 아들 ‘그레고리’를 출산하였다. 선수는 닥터 ‘쏭’께 빼앗겼지만 자기네도 두 아들이 있다며 웃음 가득 자랑하였다. 그저 ‘현’ 때문에 ‘수지’가 힘들어 하는 줄 안 그들은 농장피크닉에 온 가족을 초대하였다. 이번에는 엉거주춤한 메뚜기차를 운전하며 뒤 따라갔다. 


지난 5월에 한번 다녀갔다는 농장은 깨끗하였다. 200에이커의 넓은 땅이 연두색 풀 냄새를 내뿜으며 끝간 데를 모르게 펼쳐 있었다.


‘제프리’와 ‘영’은 무얼 하는지 가끔 떠들고 웃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오고 ‘숙’과 ‘낸 시’는 애기를 돌보느라 침실과 거실을 들락거렸다. 밖에서 바비큐를 하여 부엌의 식탁에 둘러앉아 맥주와 콜라를 마시며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게일’은 무녀 독남. ‘쏭’과 똑같은 처지였다. 작고하신 아버님은 치과의사였고, 어머님이 홀로 근처에 사실뿐 친척도 별로 없었다. 


버펄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네소타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내과전문의로 남아 있었다. 해군성지원연구프로젝트, 호흡 순환계생리연구를 위해 닥터 ‘팔 히’와 닥터 ‘라 안’이 버펄로로 불러왔고 한국에서 닥터 ‘쏭’을 불러온 것이다. 


'게일‘이 닥터 ‘쏭’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낸 시’에게 여러 번 들었다. 처음 버펄로에 왔을 때 그의 집에서 거의 한달 간이나 지냈던 일을 떠올리면 빈 말은 아니었다. ‘쏭’이 동생 같다고 주위에서 놀리기도 하지만 둘은 오히려 그런 평을 즐기면서 잘 지냈다. 


닥터 ‘게일’은 8월말에 ‘벌티모어’로 이사를 갈 계획이다.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의과대학에 조교수로 부임하기 때문이다. ‘쏭’도 함께 갈 수 있는 분야이며 위치였다. 같은 의사로서 함께 연구를 하였지만 그는 ‘존스 홉킨스’에 갈 수 있고 자신은 뒤처지는 서러움이 잠시 밀려왔다. 


절대로 민족적 열등감은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이 땅은 그들의 나라이고 나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사람. 아니면 언제까지나 의붓자식의 신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약간 비감해지는 기분이었다. 


능력이 같고 기회가 균등한데 ‘신(神)앞에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는 제한된 땅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인디언들을 없애고 노예들을 잡아다 일군 나라, 아직도 그들의 흘린 눈물과 한숨이 곳곳에서 요동치며 충돌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바로 백악관 뒤 블록에서도 폭발물이 터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의 요구를 현세의 미국인들이 다 갚아줄 수야 없지만 미국인들은 지금 과거에 그들 조상이 저지른 모든 불의를 되받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다. 


결코 융합할 수 없는 종족들을 단지 힘을 얻기 위해 끌어들인 그들은 그 힘의 괴악한 역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두뇌를 빌리는 이 차별대우의 보상이 뒷날 또 어떤 역행으로 나타날지 누가 아는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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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일부 변경선 동과 서(52)


메뚜기를 타고…


 주말이면 메뚜기 자동차에 온가족을 태워가지고 공원으로 나갔다. 늘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숙’의 기분전환도 하고, 바람도 쐬어줄 겸해서 일부러라도 데리고 나갔다. 
미리 계획하거나 일행이 번잡하게 많은 피크닉이 아니라 과자나 음료수를 조금 싸가지고 가는 드라이브에 불과한 나들이였다. 행선지도 정함이 없이 가보지 않은 길로 다니다가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오렌지소다를 사주면 차 속에서는 두 아이들의 환성이 터지곤 하였다.


어린이놀이터가 있는 공원은 언제나 활기찼다. 맺혔던 기분이 확 트이는 듯 시원하였다. 알록달록한 여름옷을 입고 뛰어다니며 떠드는 아이들의 높은 고함소리도 귀 따가운 새떼들의 지저귐에 어울리어 참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영’은 미끄럼틀로, ‘현’은 작은 그네에 앉아서 엄마와 발장단을 치고 있는 사이 아빠는 냇가에서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 곁으로 갔다. 함께 낚시찌를 주시하며 한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영’이 한 살 쯤 되던 여름. 광나루에서 손가락만한 송사리 두 마리를 종일 걸려 잡아와선 식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던 일이 바로 어제 같기도 하고 까마득한 옛날일 같기도 하다. 그날의 광나루는 왜 그리 뜨거웠는지 얼굴과 등허리가 타서 쓰리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영’이 녀석은 “어떤 게 고기냐”며 엉큼 떨었지. 강냉이처럼 튀기라고 했었던가.  


 물속엔 고기가 많은가 보다. 공원에 흐르는 조그만 냇물인데도 손바닥만한 붕어나 그보다 더 큰 메기가 곧잘 잡힌다. 극성스레 훑어대는 낚시꾼들이 없어서 고기들은 마음대로 크고 번식하는지 모른다. 이들 낚시꾼들은 잡은 고기를 물통에 담았다가 전부 놓아주고 있었다.


 취미로 낚는 낚시질. 그게 바로 삼매경에 이르는 낚시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모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한가롭게 낚시질을 하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편편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갈대가 드문드문 길잡이를 해주는 냇물엔 잔잔한 물결 따라 뭉게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갈대밭을 스친 소슬바람이 볼을 간질이자 오수처럼 나른한 상념에 젖어 들었다. 


학점도 다 땄고 실험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연구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미 해군성의 지원으로 버펄로의대 잠수생리연구팀에 합류하여 잠수함선원들이 해저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호흡기 생리학을 연구하였다.


닥터 ‘게일’과는 탄산가스를 폐에서 배출하는 기전의 연구, 그리고 단독으로는 양서류(개구리)가 물속에서도 피부로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의 기전을 연구하여 인간에게도 대용하는 실험연구를 계속하였다. 연구주임 닥터 ‘팔 히’의 말대로 ‘마치 두 손으로 공 셋 돌리기 재주’를 부리듯 연구와 학업, 실험을 열심히 하였다.


 연구결과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터뷰도 여러 번 하였고 과학지에 크게 소개 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분해하고 합성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삶의 모든 분야에서 천천히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낚시터에서, 나의 조국 


 박사학위 코스로 등록하면서 비자 연기신청을 하였다. 국무성에서 요구하는 서류는 병역필증과 조국에 빚이 없다는 두 가지 증명서였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절차를 밟는 중인데 도무지 소식이 감감 이었다. 어렵사리 장거리 전화를 걸면 일이 많고 바빠서라는 응답이었다. 기한도 없고 결과도 없는 기다림만 질질 이어졌다.


 ‘급행료’를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직접 가지 못하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정말 내 조국은 거리상으로만이 아니라 재외국민을 보살피는 일에도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듯 보였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에 있는 웨스턴 의대의 생물물리학(Biophysics)과 교수 닥터 ‘알란 구 룸’이 합동연구차 매주 연구실에 왕래하고 있었다. 주임교수인 닥터 ‘버튼’이 닥터 ‘쏭’을 꼭 데리고 오라고 하는데 오지 않겠느냐고 여러 번 의사타진을 하더니 비자가 늦어지니까 닥터 ‘라 안’과 ‘팔 히’에게 직접 요청하는 것이었다. 


국제생물물리학회 회장인 닥터 ‘버튼’은 캐나다 메디컬리서치센터의 연구비를 신청해 놓고 기다리는 중이라 하였다. 주위에 해결해야 될 일들이 겹겹이 쌓여서 숨쉬기조차 거북할 지경으로 긴장되어 있었다. 고민거리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밤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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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8
일부 변경선 동과 서(51)

 

(지난 호에 이어)


새삼스럽게 믿음과 신뢰가 다져지면서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을 용기가 솟아올랐다. 


‘현’을 살짝 들어내서 흠뻑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안전핀을 꽂고 비닐팬티를 입히고, 바지를 올린 후 아빠 쪽으로 살짝 밀어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힘을 내요. 우리’ 속으로 다짐하며 살며시 문을 닫고 돌아섰다. 

 

체질의 분해, 합성 개선


 “세탁기를 하나 새로 사야겠어.”


‘현’이 출생 할 때 허둥지둥 사온 중고 세탁기는 한 달이 못 가서 고장이 났다. 어느 날, 세탁기를 가동한 후 물이 차는 것을 보고 올라왔다. 한 시간쯤 후에 내려가 빨래를 꺼내보니 비누거품이 묻어 있는 채 물만 빠져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가동하고 곁에서 지켜보았다. 물이 다 찬 세탁기는 덜컹~ 하더니 부웅~ 소리만 내고 움직이지 않았다. 10여분 정도 지나자 위잉~ 하면서 물이 빠지는 것이었다. 빨랫감을 비누와 함께 물에 담갔다가 그냥 꺼낸 형국이었다.


그 후로는 지켜 서 있다가 물이 차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몇 번 휘~ 휘 저어서 물을 빼고 다시 물 채우기부터 시동을 걸어 물 빼기 과정까지를 두어 번 반복한 뒤 줄에 널어 말렸다. 일일이 손으로 빨래를 짜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다며 견디는 중이었다. 


“세탁기도 사고 야전용 콧트(Cot 간이침대)라도 하나 사요. 맨바닥에서 어떻게…”


“콧 트는 해서 뭐해. 카펫위에 슬리핑백만 깔아도 푹신해서 괜찮아. 세탁기는 내가 시간을 좀 벌려고 하는 거지. 급한 것부터 사기로 하자구.”


큰돈을 주고 산 두 번째 가구가 지하실 한 귀퉁이 세탁실에 놓이게 되었다. 첫 번째는 지난 5월에 산 14인치 포터불 텔레비전이다. 만화시간만 되면 그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영’의 눈을 보호해 주기 위한 조치였다.


 “우리도 이젠 부자야. 안 그래? 전화, 냉장고, TV, 세탁기 다 있잖아.”


세탁기를 들여오던 날 아빠는 이렇게 농담을 하며 웃었다. 겉으로는 명랑을 가장하지만 실상은 날이 갈수록 우울해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몸이 무거워 짐에 따라 점점 더 상해가는 ‘숙’의 얼굴. 아무렇게나 하나로 잡아 맨 머리.


결혼한 몸으로 대학원을 마치던 원대한 꿈에의 불길은 볼 수가 없었다. 상대를 감동시키던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여대생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우아하고 교양미 풍기던 엄숙한 표정은 찾을 길 없었다. 있다면, 철두철미한 의지만이 토끼같이 큰 눈에 비칠 뿐이었다. 


 나 때문이다. 꿈이 있고, 이상이 있고, 다정다감하던 ‘숙’을 그 길에서 끌어내려 더 할 수 없는 비참한 나락으로 밀어 던진 것은 나 때문이라는 죄의식이 가슴 아프게 짓눌렀다. 


스스로도 뼈저리게 슬퍼하는 것일까. 쉴새 없이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알 수 없는 노래들이 한 곡에서 다른 노래로 이어지면서 계속되었다. 노랫소리는 떠도는 잡음을 지워버리려는 듯 일부러 더 크게 목청을 높여서 불렀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는 어느 새의 단장의 소리를 지울 수가 없었다. 


 미국. 가기만 하면 삶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돌변해 버리기라도 할 듯 그리던 이곳 미국에 온지 일 년 남짓의 시간, 가냘픈 몸엔 너무도 무겁고 큰일들이 수없이 겹쳐서 휘둘러댔다. 


오자마자 ‘현’의 출생, 뒤따른 어머니의 시한선고, 지금은 ‘숙’을 한 번 더 보려는 희망으로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버티시지만 남은 시간이 급속도로 줄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한 달 사이에 여동생 둘을 부랴부랴 서둘러 결혼시킨 것을 보면 가족들도 이제 마지막을 대비하는 듯하였다. 


 불편스러운 몸놀림으로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닥터 ‘황’이나 ‘정’댁에서 놀러 오라고 아무리 초청을 해도 ‘영’을 데리고 혼자 다녀오라고 하였다.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그들 앞에 서면 더욱 초라해지는 자신의 자격지심 때문일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럴수록 아빠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그 위에 또 큰 불행이 온다면 ‘숙’보다 자신이 더 먼저 큰 죄책감으로 무너져버리고 말 것 같았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제발 어머님의 마지막 소식은 순산한 다음 이기를 빌어 마지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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