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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칼럼

kimjin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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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장로,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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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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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1
복음과 사역과 기도(25)

 

 

(지난 호에 이어)
풍요한 쾌락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며 많은 사람에게 사치와 육정, 주하나님과 떨어져 나가는 이생(離生)에로의 “치명적”인 유혹이다. 육신에 매달리고, 그 편안한 쾌락을 쫓음은 많은 영혼을 파멸케 하며, 영혼의 이익을 해친다. 


고기를 먹고 좋은 옷을 입음은 사실 타당한 것이나, 때때로 그것들이 교만과 사치의 재료와 연료가 되어 죄로 이끄는 것도 사실임을 알자! 자기와 친구들을 위해 잔치를 열면서 동시에 가난한 사람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주하나님을 매우 노(怒)하시게 하며 영혼에게 저주가 된다. 


부자의 죄는 그의 옷이나 음식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었다(눅16:19-31-부자와 나사로). 즉 불쌍하고 신앙 깊은 사람들이 천대받고 소외 당하다가 죽음으로 그 불행을 벗어나 천국에 가서 축복과 기쁨을 누림을 알자!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없는 사람들은 “수고”로 그들을 도와야 마땅하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임무를 행하겠다는 겸허한 약속과 아울러 주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만 한다. 특히 우리 자신이나 남을 위해서 주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할 때엔 그 은총을 얻기 위하여 열심으로 그 <기도>대로 살아야 한다.


포도원의 과원지기(눅 13:6-9)는 “자기의” 할 일에 충성을 다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역자(목회자)들은 각자 맡은 바 일에 충성 하여야 될 줄로 믿는다. 이처럼 나무에 거름을 주듯 교인들을 싸매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복음>의 약속된 바를 들려 줌으로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인이 <성도>로 바뀌는 열매 맺는 주하나님의 사역이 성취되는 것이다. “만일 실과가 열면” 주인과 과원지기가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주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인에 대해서 그렇게 무한정으로 참고 계실 분은 아님을 알고 살아가자! 


그분의 참는 것도 언젠가 끝이 있을 것이니 그분의 인내를 악용한 자에겐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진노의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한 나무들은 마침내 “찍혀” “불 속에 던짐”을 당할 것이다. 


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엔 우리들의 가장 친절한 친구들도 마지 못해 정의의 심판의 결과를 인정할 것이다. <성도>들은 그 심판을 찬양하며 환영하게 될 것이다(계15:3-4). 주 하나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하신다>(눅14:7-14). 


우리는 우리 식탁에서 굶주린 무리처럼 떠들어 대는 위선자들의 무리들의 대화처럼 저속한 대화를 금해야 될 뿐 아니라, 그저 평범한 대화의 한계를 넘어서 식탁에서도 주하나님의 <선> 하심을 말하고 평상적인 일들을 통해 “영적인”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그런 복스러운 대화가 이루어 지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의로운 자의 입술은 “많은 사람들을 먹이게” 될 것이다.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주님은 신앙적인 집회에서뿐만 아니라 식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행동을 “지켜 보시며” 그것을 기억해 두신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또한 주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이처럼 적극적인 자들이 종종 <수치스럽게>밀려나 창피를 당하며, 오히려 겸손하게 있던 자들이,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그 겸손으로 “존경 받는” 것을 보셨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그 곳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세상적인 지위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소양과 그 업적 등으로 우리보다 “더 명예로운” 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늘 눈여겨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좌석을 권하는 자들이 많다고 자만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좌석을 권해야 하는 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겸손>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본분을 모른 채 더 높은 대우를 받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울 것이다. 자만은 “창피”를 낳게 되며 마침내 <타락>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랑과 욕심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받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겸손>과 <자기부인>은 진실로 명예로운 것이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 지리라(눅14:11)”. 우리는 다른 예를 통해서도 <인간의 자랑은 그를 낮추며 마음으로 겸손한 자에게 명예가 주어지고, 겸손한 자가 명예를 얻게 된다.> 는 사실을 목격하게 됨을 알자! 


<사역>은 때때로 세상이 천하게 보고 멸시하는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일과 그의 봉사를 영광으로 여기는 것은, 주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참 사랑의 표시다. <목회직(사역)>은 “영광스런” 직분이다. 사역자(목회자)들은 주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들이요, 주하나님의 “신비”를 맡은 <청지기>로써 그들의 일 자체만 가지고도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내 직분”은 <나의 사역(목회)> 이라는 뜻이다. 나의 지배력, 나의 통솔력이 아니라, 나의 <봉사>인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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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7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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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복음과 사역과 기도(24)

 

(지난 호에 이어)
 구원을 받은 사람은 십자가의 교리에 적용되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그리스도의 신비를 알게 된 사람들임을 명심하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 . 


이 말씀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즉 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펴야 한다. 즉 우리가 신실한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한다.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책망할 일이겠는가?” 


거룩한 신앙을 장식하는 가장 좋은 길은 선을 행하며 칭찬을 받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특별히 가난한 자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주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신앙 활동이 주하나님에게서 와서 주하나님에게 상달되지 않는다. 신실한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충성에 의하여 인정 받고 보상 받음을 알자! 즉 우리가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에 주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부여됨을 알자! 


사역자(목회자)들은 자기들의 사역에 영광을 누리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며 성공과 영광을 주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자기 자랑은 교만만큼 헛된 짓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노력 하여야만 한다. 


한편 참된 신앙인 이라면 누구나 “주여 내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무 제약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 두고 그를 섬기는 일에 쓰여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주하나님의 기호와 축복 속에 안심하고 맡겨 그의 쓰심에 합당하게 쓰여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여 내 가진 것을 돌보소서! 왜냐하면 내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요한복음17:10). 


주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의 계명)은 복종하는 자만이 간직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르치는 사람들(사역자)은 스스로 <말씀의 준행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위임된 말씀(복음)을 지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 의하여 <복음>은 모든 시대에 걸쳐 각처에 전달(전파) 되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악한 자는 심판날을 위하여 남겨져 있는 것처럼 의인은 축복의 날을 위하여 보전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에게 주어진 모든 사람들을 틀림 없이 보전 하신다. 우리가 우리의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된다면 거룩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한다. 이 어둡고 속임수로 가득 찬 세상, 가련하도록 공허하며, 불결한 유혹으로 가득 찬 세상, 가시덤불 같은 이 세상 때문에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겠고 그 함정과 그물의 위협도 더 이상 받지 않을 것이다. 이제 바람이 거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지도 않으리라. 이제 나는 더 세상에 있지 아니하노라. 기쁜 마음으로 세상을 작별하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노라”라고 말이다. 


“이제 나는 내가 택하고, 섬겼으며 내 영혼이 그토록 간구하던 주님에게로 갑니다. 빛과 생명의 근원이시며, 축복과 기쁨의 왕관이시며 중심이신 주님께로 갑니다. 이제 나의 그리움이 충족될 것이며, 나의 소망이 성취되며, 나의 행복이 완성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내가 주님에게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이 거친 세파를 다 거쳐 목적지에 거의 이르렀다고 하면, 이제야 이 세파에 뛰어드는 자들을 동정해야 하며, 우리가 세상을 떠난다면 아직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사람들을 동정해야 한다. 신앙으로 살려는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이익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또 세상을 섬기는 일에 자기를 드려서도 안 된다. 


우리는 주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꼭 알맞은 휘황찬란한 갑옷이요, 주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성령의 은혜>인 ‘빛의 갑옷’을 입은 신분을 가진 <성도>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엡6:13).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크고 튼튼하며 따스하고 질긴 가죽옷을 준비해 주셨다. 그것은 우리가 세례 받음으로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고 고백했다(갈3:27)


우리 크리스천들은 두 가지 금지사항이 따르고 있음을 알자! “무리한 염려로 고민하는 것” “못된 욕심에 탐닉하지 말것”, 크리스천들은 서로 사랑을 빚지고 있으며 이것을 갚아야 한다. ‘정다운 사랑’ 즉 우리들로 하여금 더 없이 겸손하고 공손하게 말과 행동으로 우리자신을 나타내게 하자! 


주하나님!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것을 도모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나와 교제하는 모든 믿지 않는 사람에게 주 예수를 믿는 신앙을 추천할 수 있도록, 주하나님의 영광에 보탬이 되고 믿는 자들의 신용에 위로거리가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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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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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복음과 사역과 기도(23)

 

(지난 호에 이어)
주 하나님께서는 성급히 저희 (자기)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는 (사58:4) 자들의 위선적인, 즉 ‘소리’뿐인 <기도>를 중히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목소리의 진지함이 마음의 열정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우리가 우리 ‘목소리’로 주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소중히 여겨질 것이다. 


우둔하나 겸손한 자들, 즉 그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자들은 주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혜롭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금’, ‘정금’보다 더 사모하게 될 것이다. 금은 땅에서 나온 세속적인 것이나, <은혜>는 거룩한 형상인 것이다. 


또한 금은 오직 육신과 일순간의 염려를 위한 것이나, <은혜>는 영혼과 영혼에 대한 관심을 위한 것이다. 주하나님의 <말씀(복음)>은 영혼에게 달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다”. 


감각적인 즐거움은 저질적인 인간이 누리는 기쁨이므로 인간의 위대한 영혼을 타락 시킨다. <믿음>의 즐거움은 천사들의 기쁨이며, 그것은 <영혼>을 고귀하게 한다. 또한 믿음의 즐거움은 본질적이고 만족감을 주며, 거기에는 과도(過度)의 위험이 없다. 


주하나님의 말씀(복음)은 인생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의무와 우리가 피해야 할 위험, 그리고 우리가 대피해야 할 홍수를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또한 악인에게 <사악>한 길을 계속 가지 않도록 경고하며, 의인에게는 선한 길을 떠나지 않도록 경고하신다. 


진정한 주하나님의 ‘종’인 모든 사람들(크리스천)은 이 경고의 <말씀>-<복음>을 받아들인다. <믿음>은 ‘건강’과 ‘영예’이다. 그것은 <평강>과 <기쁨>이다. 그것은 우리 위안을 달콤하게 만들 것이며 우리의 고난을 가볍게 만들 것이다. 


즉 <생>을 진실로 값어치 있게 하고, <죽음>을 겸손히 청하는데 있는 것이고, 주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 신앙적인 경배의 참된 본질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믿는다면 주하나님은 은혜롭게 들어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가장 훌륭한 성도들까지도 그들의 고통이 심하고 괴로울 때는 쓰러지기 쉬울 것이며, 그들의 ‘영’은 압도되고 몸과 마음은 지쳐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는 <믿음>이 특효 있는 활력제가 된다.


<믿음>은 성도들의 고통 가운데에서 낙심하지 않도록 하고 위로가 끊겨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해준다. 또한 믿음은 계속 소망을 갖고 <기도>하고 기다리게 해주며 주하나님께 대해 선한 생각을 유지하고 스스로 편안한 즐거움을 갖도록 해준다. 


우리는 <영생>에 대한 믿음과 소망의 힘으로 주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철저히 지키고 믿음과 기도로, 그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떤 <긍휼>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신분 상태에 있어서, 곤궁하거나 고통 당하는 자를 고려해 주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알뜰하고도 상냥하게 생각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쓰라림을 주목하고 그들의 처지를 탐색하여 동정하고 그들에 대해 관대한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불쌍한 자들을 지혜롭게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우리는 타인들의 빈궁과 고생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이 긍휼을 베푼다면 우리에게 약속되는 <자비>는 어떤 것인가?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는 자기 하나님으로부터 <권고> 받을 것이다. 


그런 자는 정직한 자들의 부활에서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빈자>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은 번성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확실하고도 안전한 길 임을 알자!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위대하고 인자한 일들을 행해 오셨고, 더 많고 더 좋은 것들을 예비해 두고 계신 주하나님 이심을 알자! 주 하나님을 주목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천국을 보면서 편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는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건한 자의 특권을 알고 살아가자! 믿는 자들은 “진리의 주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며(사65:16)”, 주하나님이 그들의 것일 때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적인 사람들은 세상의 재물로 그들 자신을 축하하며 재물이 풍부할 때만 그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주 여호와를 배반한다>(시10:3).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우리 행위를 옳게 해야 한다. 감사하는 것은 훌륭하다. 그러나 <감사하는 생활>은 더 더욱 훌륭한 것이다! 


우리는 양심적으로 “일을 행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혜(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우리는 “그의 도를 지켜야” 복이 있다(잠8:32). 지혜(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해야 하며 그 길의 철책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그 난간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지혜>의 선로만 따라가고 그 길로 매진해야 하며 그 길에서 참고 견디어야 한다. 크리스천으로서 지혜자에게 득죄하는 자들은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이다. 또한 자신의 양심을 상하게 하고 자신의 영혼에 때와 얼룩을 입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기만하고 동요시키며 스스로의 <사역>을 망치게 하는 자들이다. 주 예수님과 불화하는 사역자들은 자신과 공동체를 멸망으로 이끄는 자들이다.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잠8:36)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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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72607
10790
2019-02-05
복음과 사역과 기도(22)

 

(지난 호에 이어)
 적은 소유를 가진 가난한 자도 그 적은 가운데서 구제를 해야 한다(막12:42).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절제하여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요구하시지, 가지지 못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경건과 자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무엇을 드리나를 보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드리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나,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나,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나를 보시는 <주님>이시다. 곧<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안식일>이 있는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막 2:27).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하나의 과제나 고역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특권>이나 <은총>으로서 영접하고 환영해야만 할 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안식일>이 제정되기 하루 전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창조 되었다. 즉 주 하나님께 영광과 섬김을 위해 창조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의 생활에 필요한 보급을 받는 일조차 <안식일>의 율법에 의하여 제지를 받도록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신앙초기에 부담이 되었던 경건 생활과 헌금 강요에 대해서 어두운 선입감을 가진다. 교회는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갖지 않도록 주의하는 교회의 치리가 있어야 한다. 즉 주님의 영예가 그 본래의 목적대로 쉽고 즐겁고 유쾌하게 하여야 된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주의날>에 대해서 분명한 주 하나님의 뜻을 살펴 보아야 한다. 즉 주 하나님은 안식일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 하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즉 우리의 심신도 힘들고 고달픔에서 자유케 하신 것이다(신5:14). <우리의 육체의 휴식을 위해서>.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경우 몸을 위해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취하는 것을, <안식일> 규례(법령)가 억제케 하는 것을 확실히 의도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안식일>제도는 인간의 교화를 위함이지 인간의 파멸을 위함이 아닌, 그 자체 의도에 모순이 되게 해석 되어서는 결코안 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다만 거룩한 일을 위한 날과, 주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기 위한 날이 되게 하기 위해 쉬는 날로 제정하시었다. 


“인자는 인식일에도 주인 이니라”. 안식일들(주일)은 인자의 날들 임을 주의하자! 주님은 그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의 안식일은 주의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계1:10). 


그러므로 인자, 그리스도, 중보자는 언제나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공경 받아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받은 은사나 은혜를 받을 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활용하고 섬겨야 한다. 은사나 은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등불>과 같이 되게 하고 “여호와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등불과 같이 빛을 받은 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등경>위에 놓아 빛을 잘 비추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잘 포착해서 활용해야 함으로, 우리들이 소속해 있는 공동체(교회)를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자! 


우리는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 빛을 내어서는 안 된다. <만일 내가 주 하나님께 진실한 종이 된다면, 주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진실하신 <주>가 되어주실 것이다>. 좋은 땅에 심겨진 씨처럼, 주 하나님 나라와 <복음>도 인간의 마음에 뿌려지고 받아들여질 때에 그와 같이 말없이 큰 성과를 내게 된다. 


우리는 <복음>이 우리의 심령 속에 자리를 잡고 있게 하여 “위로부터 난 지혜”와 같이 “선한 말을” 하여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한다. 


정당한 <복음>의 원리를 따라서 솔직한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때에 “주님”은 이를 달게 받아주시며, 인간의 심령에 자리를 잡고 역사하시며 무르익어가는 복음의 열매를,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추수 때에 <주님>에게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요4:35).


<복음>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올바로 거쳐 완전히 성숙하였을 때에 추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때에 그들은 익은 곡식과 같이 주 하나님의 곡간에 모아 들여지게 되는 것이다(마13:30).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딤후3:5) 흔히 형식에 대하여는 세심하며, 그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극히 비판적이었다. 만일 우리가 <복음(성서)>에서 읽은 말씀을 회상하게 된다면 우리의 많은 잘못이나, 올바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비난들이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의한 호소는 가장 설득력이 있게 된다. 


<사역자>가 되고자 주 예수님께 나오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기들 자신의 만족의 겉옷을 내어 던지고 모든 자만의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 목회와 사역 위에 가장 달리기에 간편하도록, 즉 거추장스런 겉옷이나 자신들을 넘어지게 할 만한 것들이나 주님께 나아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나 자기의 행동을 둔하게 할 만한 것들을 집어 던져버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하여 조용한 곳에 계셨다>. <복음> <사역자>들은 교회가 졸고 있지 않도록 골방에서 <기도>의 본을 보여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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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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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90
2019-01-27
복음과 사역과 기도(21)

 

(지난 호에 이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더 좋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과객이므로, 천국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한 곳에 정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특권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는 동산(動産)이다. 


<복음>은 어떠한 장소에라도 얽매이지 아니한다. 주 하나님의 말씀은 촛대요, “어두운 곳에서 비추는 빛”(벧후1:19)이기에, 빛이 없다면 세상은 참으로 암흑 천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촛대다. 곧 촛대가 빛을 발하듯이 “생명의 말씀을 발하는” 이 세상의 빛이다(빌2:15-16). 


촛대의 가지들이 사면으로 뻗어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선교에 의해 <복음>의 빛이 온 땅에 널리 퍼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마5:14-15). 무절제한 욕심이 맹목적인 정욕을 부채질하게 되면 그것은 때때로 사람을 가장 부조리한 죄를 짓게 하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게 할 뿐더러,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불붙은 장작개비와 같이 화살을 던지고 죽이려 드는 것이다.


이러한 악랄하고 흥분된 행동에 내 자신이 휘말려 들지 않는다면 내 자신이 유달리 온순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격한 말에 과격한 말로 대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는 것”(잠 15:1) 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원수가 주릴 때에 그를 먹여주고, 그가 목마를 때에 “그에게 마실 것을 주라”고 교훈 하셨다(롬12:20, 마5:44-45). 


우리는 극심한 시련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우리는 <출애굽기(17:8-16)>에서 아말렉인들과 이스라엘과의 전쟁 기록에서 모세의 팔이 내려지면 “곧 기도를 쉬면” 아멜렉이 이겼다고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의 여건도 교인들의 신앙의 강도와 기도의 정도에 따라 흔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 당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의 형 아론과 미리암의 남편이요 매형인 <홀>의 도움을 기꺼이 받았다. 


우리들도 우리교회의 사역자들을 위하여 <기도>의 도움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로서로 한 지체이고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복음>과 은혜 아래서는 성도들은 어느 곳에서나 기도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곧 주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의 이름으로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는 곳은 어디에서나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고 임재 하심으로써 그들을 영화롭게 하시며, 은혜의 선물로 상 주시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예배 가운데 계셔서 <복> 주시는 것을 바랄 뿐, 우리의 신앙적 집회를 아름답게 꾸미려고 다른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 특히 우리는 우리 형제의 앞에 범죄의 기회를 둠으로써(롬14:13) 우리 자신이 타인의 죄에 대한 방조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남이 우리에게 친절함으로 인해서 손실을 입히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손해를 보는 편을 택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죄에 대해 멀어지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배우자! 죄에 대해 기도하는 중에 <죄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자! 우리들은 공동체 안의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여야 한다. 


추악한 자들이 더 추악해지지 않도록, 사악한 자들이 더 사악하지 않도록, 신성한 자들이 더 신성하도록, 선한 자들이 더욱 선해지도록 기도하여야 한다(시7:9). 


우리는 온갖 좋은 선물을 주신 주 하나님께 생활 속에서 감사한 마음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자!(약1:17). 미련한 자가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된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며 매우 온당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뜻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고, 주님에게 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련한 자들이요, 주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로운 <분>이신 까닭이다. 


사람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 뿌리박고 사는 자들일지라도 그들이 시들 때에도,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그의 뿌리에서 기름진 것을 분배 받는 자들은 많은 열매를 맺으며 무성할 것이다. 


<위선과 표리부동 한 것>보다 주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것은 없다. 우리는 패려한 마음을 버리고, 정의를 주장하면서 살아가고, 결코 악을 의도하고, 발각될 것을 피하기 위해 굽은 길로 행하지 말자. 선한 것을 시인하면서도 선한 것에 배치되게 행동하는 자는 “마음이 패려한 자”이며 그러한 자는 어느 죄인보다 <주 여호와의 미움>을 많이 받느니라(사65:5).


성실과 솔직 담백한 것보다 <여호와>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은 없다. <그 행위가 온전한 자>는 신실한 목적을 갖고 신실이 행동하는 자요, 이 세상에서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주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행하는 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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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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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2
복음과 사역과 기도(20)

 

 

(지난 호에 이어)
주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의 부와 출세의 유혹을 깨쳐 버리고, 치욕과 곤경 속에서 신앙을 보호하는 자들은 두 배로 존경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교회 안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교회 밖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보다 나으며, 가난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부유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믿고, 알고 살아가자! 


뜻을 작정하기 전에 조언을 받아 들이며, 무엇이 일어날지 예견할 수 없는 것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별하도록 주의해야 하고,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올 때 우리는 먼저 죽은 우리의 가까운 친척들과 신앙의 선배들의 죽음을 상기해서 죽음과 무덤을 우리에게 보다 친밀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민27:13).


은혜는 자연의 질서를 지키지 않으며, 주 하나님은 우리가 꼭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 맘에 드는 사람을 선택(뽑는다)하신다. <분노>는 큰 죄의 원인이고 원천이며, 우리를 하나님의 저주 그리고 심판에로 보낸다(마5:22). 


우리는 우리의 열의를 표현함에 있어서 사람 대신 죄를 사랑하거나 축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항상 <죄인>과 <죄>를 구분해야 한다. 사역자(교역자)들의 할 일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죄를 알려 주는 것이요,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죄>가 너희를 큰 위험 속에 빠뜨리기 때문이라고” 주 하나님께 지식을 받은 자들은 기꺼이 그것을 남의 유익을 위해 전해야 되며, 전적으로 자기만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대중(공동체)을 속이는 자들이 가장 큰 사기꾼들이다. 만일, 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것이 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악하다면, 같은 법칙에 따라서 공동체(교회)를 속이고 교회나 국가를 착취하는 것은 한 개인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일 것이다.


이제 우리 성도들(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름 속에서와 같지 않고>, “거울에서 보는 것과 같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게 된다”. 만일 우리가 꼭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채 버려두고, 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와의 즐거움을 택한다는 것은 친구에 대한 지나친 아첨이 된다. 


우리는 한껏 자신의 안일을 돌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 근심과 걱정의 짐을 떠맡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자신의 지위 높음이 일(사건)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충실히 봉사하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춰 <선>한 일에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이다. 천사라 할지라도 <봉사>하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은 큰 상급을 받으리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정직하고 성실한 자>가 될 수 있을 가? 그것은 첫째로 언행을 신임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 이어야 한다. 그런 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신의를 배신치 아니하며, 교활한 행동을 하지 않는 자다. 


우리는 또한 판단력과 결단력이 있어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통찰력과 위협이나 불평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마음을 소유한다면, <재덕>이 겸전(겸비)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충고>는 항상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겸손히 순응하는 마음으로 주어져야 하며, 언제나 주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이 서야(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현명한 사람은 남의 말을 들으며 배우기를 쉬지 않는 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자의 충고라도 충고를 경시하지 않는 것이다. 


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혼에 빛을 비출 때에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죄는 죄인 자신의 부패나 타락이고, 곧 <자아> 부패이다. 결국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정욕에 끌려 유혹을 받는다. 


우리를 다스리는 세상 위정자들이나 교회의 사역자들의 눈에는 감추어진 죄악이라도 주 하나님 앞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악>한 비밀은 <비밀>로 남지 않는다. 의로우신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의 됨됨이도 아시며, 우리 생활 속의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 <영>의 기질까지도 아신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약한 것 들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경탄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땅에서 작고” 세상에서 가난하여 보잘것없어도 극히 “지혜로우며” 주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자신의 불완전성과 연약함을 의식한다면 보호와 후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보다 지극히 높은 바위>되신 주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높은 바위에 거처를 마련하도록 하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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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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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복음과 사역과 기도(19)

 

(지난 호에 이어)
우리는 종종 남을 슬프게 하는 소식을 믿음의 친구들에게 전하는 수가 있다. 이것은 그들을 슬프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시련을 대비케 하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 삶의 주위에서 신앙적인 노력이 헛되이 돌아가는 일은 참으로 유감이다. 


어떤 사역자들은 시작은 훌륭하나 드디어 그들의 모든 수고가 헛되게 되는 경우가 우리 한국교계와 이민 동포사회의 교계에서도 너무나 많음을 보았다. 즉 젊어서부터 계명(복음)을 지킨 소망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사랑의 억제와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보다 큰 사랑의 결핍으로 모두를 상실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 모두가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은 이미 얻은 바를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내세의 소망과 성령의 은사를 맛보았던” 우리는 신앙에 대한 좋은 평판을 들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은혜와 죄악에 대한 확신, 세상의 허무성과 <복음>의 우월성,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깨달아 알게 된다. 


주안에서 온전한 <상>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안에서 진실하며, 끝까지 믿음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구원과 자비와 축복은 경건한 자가 바라는 바 가장 큰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주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구속하신 분이요,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신 분이요, 나의 죄를 용서하신 분이요,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나에게 <영생>을 부여하신 <분>이다. 


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멀리 하려는 모든 것에 반해 더욱 더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속 끝까지 순종하자! 또한 우리는 때때로 연령과 은사와 은혜와 신분에 있어서 우리들보다 우위에 있는 자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들을 시기하거나 또는 아첨해서도 안 되며, 그들이 그릇 행하고 있다고 생각될 경우 무조건 그들을 표방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남의 비밀이나 혹은 숨겨진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판단의 결과가 선을 이루기보다 항상 일찍이 염려했던 바 우리의 경솔하고도 불합리한 열심보다 큰 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마13:29-30).


우리는 매일 매시 모순된 내 자신을 발견케 되지만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해서는 안 된다. <경건치 않은 자들>은 세상에서 주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이요, 하나님과 양심에 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예를 들어 주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억제하는 자, 또한 자기들의 사명일지라도 그들이 받기로 되어있는 호의와 이익을 상실할까 두려워, 부유한 자나 세상 권력자들에게 비난하지 못하는 자, 그리고 <주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는데 게으른 자들>이다. 


우리는 놀라운 은혜 아래서 내 자신의 힘을 키우며, 모든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출해 내는데 가장 큰 수단이 되는 <은혜>를 무관심함으로, <은혜>를 역 이용하는 일은 죄인들의 가장 부도덕하며 악한 데로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나의 삶이 나의 믿음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하자! 순간적인 세상의 쾌락이 영원한 <불>의 심판으로부터 오는 나의 고통을 <감>할 수가 있겠는가?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시4;4). 


나의 신앙이 조롱을 당하며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나는 그 신앙을 더욱 견고히 붙들고 고수하도록 해야 한다. <은혜가 넘치는 성도들이나 말씀을 탐구하는 성도들은 교훈과 지도와 그리고 위로를 찾을 수 있는 <샘>이 되고 <우물>이 되는 <목회자-사역자>를 찾아가게 된다. 


이런 것들이 교회 부흥의 원천이 되고 주 하나님의 공동체(교회)가 되는 것인 줄 믿는다. <복음>을 분명히 증거하지 못하는 사역자들은 교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줄 것이 없다. 진리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생명의 <샘물>이 된다. 


복음의 깊이도 별로 없고 복음 증거에 분명함이 없는 무지하고 공허한 사람들로부터 우리들이 성경 지식과 이해력을 얻어 보려고 하면 우리들의 기대는 허사로 끝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비>를 부어주는 <구름>을 따라가자!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사역자)을 떠나자! 그 바람은 성령의 바람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망과 탐욕을 추구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지식(말씀)이 없고 진리가 들어 있지 않은 말로, 교훈(성경, 교리)을 어둡게 한다.


우리는 막차(주님이 주신 복음적인 교회)를 잘 타야 한다. 소리는 크나 의미 없는 허망한 자랑의 말과 그럴듯한 표현으로 교인들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적 분발을 하며 살아가자! 은혜와 경건을 발전시키며 또 유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 하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자! 


우리의 몸은 우리 영혼의 장막에 불과하다. 우리는 육신의 장막(흙집)에서 곧 벗어나야만 한다. 임종시에 우리는 육신을 벗게 된다. 부활의 아침이 이를 때까지는 우리의 육신이 무덤 속에 눕혀질 수 밖에 없다. 기록된 주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실천하고 있는 자가 곧 그 말씀대로 살수 있는 사람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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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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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0
복음과 사역과 기도(18)

 

 

(지난 호에 이어)
주하나님은 종종 그의 언약(복음)에 대해 불평하는 자에게 분노의 검을 보내심을 알자! 주 하나님의 <복음>을 지키며 주 예수님의 증거를 지켰을 때 핍박 당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여러 세대를 걸쳐 로마 교황의 분노와 세력에 의해 잔악하게 살육당했던 크리스천들을 볼 수 있었다. 교리를 지키고 예배의식의 경건과 생활의 변화로 주 하나님께 충성을 다함은,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의 분노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시온산(복음적인 교회)에 선 어린<양>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교회의 존속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힘입었기 때문에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진실한 <유월절 어린양>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중보적 통치가 주님의 고난의 결과요, 주님의 백성의 안전과 충성의 근원이 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에 있으며 우리들의 인간적인 약점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함을 받았다. 이것은 주 예수님을 우리들의 대장과 주님으로 모시는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이다. 


우리는 창세 이후 복음을 상고 해보면서 <내가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으로 서로 원수가 되게 하리라(창3:15)>는 말씀이 분명히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여인(교회)”의 자손들인 우리는 세상에서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신부요, 성도들의 어머니다. 


우리는 또한 교회의 대적에 대한 상징으로 <한 큰 붉은 용>으로 묘사된(계12:3) 것은, 용은 힘이 강하고 무섭게 생긴 때문이고, 붉은 용이라 함은 불길같이 성급하고 잔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별히 알고 있어야 할 점은 창세 이후로 이단과 사탄과 죄악의 홍수로, 하나님의 교회는 박해자들로부터 받는 위험보다 이단들로부터 받는 위협을 더 크게 받아왔다. 우리는 교회의 대적들의 싸우는 모습과 그들의 두 짐승으로 표현된 계시록 말씀(계13장)을 묵상 할 수 있다. 


우리는 주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원수들의 때를 계수해 두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종국을 맞이 할 것이다. 누가? <주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되리라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까? 우상 숭배를 떠나지 아니하고 짐승(세상권세)에게 경배하며 그를 추종하는 종교 단체들이다. 


우리 주 하나님의 교회들은 <바벨론>이 무너지고, 무릎 꿇고, 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 날이 속히 오도록, <오! 주 예수님 이시여 오시옵소서! 이세상의 죄와 슬픔과 시험을 종결시키시고, 이 악한 세상에서 주님의 백성(성도)들을 불러 모으사 하늘나라 곧 온전한 순결과 화평과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사, 주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이룩하시며 모든 말씀을 성취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 


이 <아멘>은 복되신 예수님의 한량없으신 은혜가 우리 영혼에 넘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의 표시이며, 주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의 표시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소서”(시39:4). 라는 말씀의 의미는 <여호와여, 내게 지혜와 은혜를 주사 그 사실을 깨닫게 하시며 내가 그것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하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28:2). 이 말씀은 참다운 성도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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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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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3
복음과 사역과 기도(17)

 

(지난 호에 이어)
 교회는 <복음>의 빛을 발하기 때문에, 교회가 촛대(일곱 금 촛대)로 표상 (表象) 하는 것이었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이며 그의 <복음>이 우리의 등불이 된다. 


교회는 순금에 필적할 수 있을 만큼 귀중하며, 순수해야 하기 때문에 금 촛대가 되는 것이다. 만일에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분하게 여기시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은 교회와 죄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홀연히 그리고 놀랍게 임하시어 교회의 특권을 박탈할 것이며, 그들로부터 복음의 말씀과 목사들과 사역자들의 예배의식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누가 복 있는 자와 복되게 될 자들 일까? 이들은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이다. 즉 그리스도 때문에 죽었거나 또는 그리스도와 생명으로 연합되기 위하여 죽은 자들을 말한다. 


추수의 주인이신 주 예수께서는 추수의 작업을 그의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는 작업을 하시게 될 것이다. 낫은 주 하나님의 <공의의 검>이며 밭은 <세상>을 의미한다. 그럼 주님의 추수의 때는 곡식이 익은 때, 곧 사람들의 죄가 관영하여 멸망에 이르게 된 때다. 


현명한 <목회자(사역자)>는 주의 깊게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주고, 그리스도의 권속들에게 그들이 차지할 <몫>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가장 순진하고 진실한 크리스천들은 죄의 용서함을 받고, 정직하고, 순진하고, 진실한 성도의 친교는 죄의 용서로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요, 나를 구속하신 자요,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신 자요, 나의 죄를 용서하신 자요, 나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나에게 영생을 부여하신 분이시다. 믿음으로 주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자! 더욱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속 순종하며 살아가자! 


우리가 진실 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흠 없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죄가 없는 곳에는 슬픔이 없으며, 온전한 거룩함이 있는 곳에는 온전한 기쁨이 있게 된다. 거짓 선생들(사역자)은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최악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어물 어물하며 거짓을 위장하고, 분명치 못한 말씀 증거와 표리부동한 행동은 사람들을 곁길로 이끄는 자들이다. <주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며 인간의 영혼을 저버리는 자들>은 성도들을 일깨워 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며, 선한 교인들을 그들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꾐에 빠진 교인들은, 그들의 마음이 전적으로 불안에 싸여있고,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파도와 같이 항상 변하기 쉬운 상태에 놓여있어, 이곳 저곳 신실하고 은혜에서 자라날수 있는 교회를 찾게 된다.


주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 행해야 할 바 의무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는 일이다. 죄를 통회자복하며 또한 그 죄를 인정함은 성도들의 임무요 죄에서부터 <구원>을 받는 수단이다. 


우리는 때대로 <영>에 대한 분별을 하고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한 1서 4:1)>. <진리>는 허위와 거짓에 대한 반증이 됨을 알자! <성령>과 영감을 빙자한 모든 거짓된 것과 이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믿어서는 안 된다. 


주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나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에게만 <성령>을 허락하신다. <이성>은 이러한 식별을 위해 주어졌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낳고, 하나님에 의해 가르침을 받으며, 주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고, 악한 미혹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다. 


저희들(세상사람)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다. 그들 안에 있는 영은 세상으로 그들을 인도한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 빠져있다. 그들은 허영과 쾌락과 세상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만 한다. 


<교훈이 순수하고 거룩하면 할수록 이는 더욱 하나님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같은 성령으로 일치한 믿음의 형제, 자매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한1서 4:7). <주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요, 창시자요, 부모요, 명령자이심을 알자!>. 
하나님의 영은 사랑의 <영>이시다. 신자들의 성품의 성격과 외형은 <사랑>으로 나타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다.”(갈5:22). 사랑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전>이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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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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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복음과 사역과 기도(16)

 

 

(지난 호에 이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우리를 잘 아신다. 비록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직을 모를지라도, 주님은 그것을 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간절함과 두려움을 이룬다(고후7:11).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자들은 주님의 어린양과 양을 먹이는 것은 사역자들의 의무인 것이다. “그들을 먹이라” 즉 그들을 가르치라, 왜냐하면 복음의 도(道)는 신령한 식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고통이 올 경우에 그렇지 않으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악화시키기 쉽다. 


또한 우리는 자유와 건강과 풍요의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에 속박과 질병과 빈궁의 고통에 더욱 괴로워하기 쉬운 것이다. 이 세상 위정자들은 “힘(권력)과 명예와 부로” 스스로 띠를 띠며 최대의 자유, 어쩌면 방종에 빠진 자들은 이 모든 것과 대치되는 그러한 처지로 전락하였고, 전락할지도 모른다. 


한번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자연사나 변사, 더디거나 급하거나, 쉽거나 고통스럽거나 어떠한 죽음을 당할 것인지도 각 사람에게 정해져 있다. 


세상으로 들어오는 데에는 한 길이 있으되 나가는 데에는 많은 길이 있으며,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만 하는가는 <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런고로 주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어떠한 죽음을 당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모든 경건한 사람들의 중대한 관심사가 됨으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 우리들의 주요(主要)한 몫이 됨은 얼마나 행복한다.


즉 <복음>을 깊이 깨닫고 신앙의 진리와 덕에 대하여 증거하며, 남을 격려함으로 유익하게 죽는다면, 우리는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경건한 크리스천들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될 줄 믿는다. 


은혜 안에서 주 예수그리스도를 성실하게 따르는 자들은 영원토록 주님의 사랑 안에 복을 누리게 되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의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의 행위와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평강과 진리가 나의 생애 안에 있다면 그것으로 족(足)하지 않을까? 


성경(복음)의 예언들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양심의 길잡이로써 목도(目睹)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 줄 믿는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며”(시편37:23), 사람은 한걸음, 한 걸음 인도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모든 본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한가지로 요약된다”. 우리는 <복음>을 따라야 하며 거기에 순응하고, 그 주인의 종으로서 주님에게 명예가 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그가 계신 곳에 있으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궤사를 부린 사악한 “안나스(가야바의 장인)와 가야바(대제사장)는 악한 자들로 서로 친분을 맺음으로 자기들이 저지른 악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안나스는 <그리스도>를 결박한 그대로 가야바에게 보냈다. 그리스도에게 악의를 품은 <가야바>의 독사 같은 궤변과 진술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라는 말(요11:50)처럼 주님의, 복음의 원수들은 그의 복음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말살 해버리고자 결심한 것이었다. 


만일 사람들이 저지른 악행을 시정하여 본래대로 돌이키지 못한다면 우리들도 그 사건에 대하여 방조자가 되지 않을까? 그리스도(복음)는 바로 능력 있는 사역자와 선별된 성도들을 통하여 증거되신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구별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존귀한 자와 천한 자 사이를 갈라놓으며 최후 심판 날에 교회를 정화(淨化, Purification)시키실 것이다. 우리가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될 때 말씀에 의해 깨끗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성도 여러분! 부지런히 공중예배에 참석하고 듣고 깨달으면, 은혜의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로부터, 세상적이고 육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적인 요소를 제거시킬 것이다.


근검 절약은 가난을 나누는 인간의 방법이지만, 성공은 풍성함을 나누는 주 하나님의 방법임을 알자! 우리 모두는 항.쉬.범.(살전5:16,17,18)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복된 크리스천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드린다. 우리의 행복은 주 하나님의 은총에 있는 것이지, 이 세상의 재물(재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즉 그릇되게 획득한 재물은 오래 가지 못하는데, 바로 그 부패한 기질이 또한 죄스러운 낭비의 길로 기울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부당하게 얻은 재물을 삼대까지 누리기가 힘들다. 즉 “망령되이 얻은 재물”이기 때문이다. 나의 행위가 주 하나님의 법도에 상념하고 행하는 자가 복된 자의 특성인 줄 믿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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