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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열매

kimjin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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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장로,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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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62001
10790
2017-11-09
복음과 사역과 기도(5)

 

(지난 호에 이어)
세상은 때때로 영적 축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 세상의 큰 부(富)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처럼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이 넉넉하다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나는 넉넉하다,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이 다른 사람의 겸손한 친절을 이용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어리석게 다른 사람의 관용에서 자기의 이익을 취득해서도 안 된다. 또한 서로 불화했던 믿음의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 회복되어 화목하게 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참으로 축복이고 즐거움이다.


우리의 신앙이 사람들로 하여금 관대하고, 마음이 자유롭고, 인색하지 않고, 유치하고 간교한 일을 경멸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 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것은 복음 안에 있는 깨(깨닫고), 충(충성하고), 사(사랑함)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불화했던 믿음의 형제, 자매와 화해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그 우정을 더 개발하고 서로 겸양하여 더욱더 예의를 갖추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들의 자녀의 짐은 때때로 장성 하자마자 우리에게 근심거리가 되는 때도 있다. 신앙심 깊은 부모들이나 사역자의 자녀들이 비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괴로울 때, 그것이 자기들만의 유일한 경우이고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한 사람은 놀라서 아무런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기 마음의 평화를 묵묵하게 지켜나간다. 아니면 <다윗>처럼 실수를 범할까 두려워서라도 그러한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시39:12).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어긋남에 침묵의 한계를 넘어서도 안 된다. 그들 앞에 <정직>함을 보이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교육인가! 


부모의 권위가 가정에서 실추되면, 잘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집안 식구들은 각자 규칙을 지키고, 자녀들은 모든 중요한 일에 복종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항상 우리의 감사와 봉사는 주님의 은혜에 합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도록 했다. 사도<베드로>는 좀 더 높은 사랑의 차원을 향하여 순전히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자고 말하고 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벧전1:22), 율법 아래서의 레위인들의 정결케 함이나, 그 밖의 사람들의 위선적인 정결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복음>은 영원한 진리로 존속하여 거듭(중생)난 사람들의 심령에 영원토록 살아남게 된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마음은 복종의 가장 가치 있는 보답이 된다. 우리가 주 하나님을 예배하면 할수록 더욱 하도록 허락 받으며 더욱 더 예배하게 될 것이다. 즉 열매를 맺는 나뭇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될 것이다”(요 15:2).


우리가 돌이켜 보아야 할 사건들 중에 한국 기독교의 참상을 뒤돌아 보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우리의 경제가 비록 지극히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주님의 증거로 우리들의 발을 돌이켰기> 때문에, 또한 신실한 크리스천들은 주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규범으로 삼고 그 규범에 따라 행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들은 곁길로 갔던 다른 길에서 돌아와 주 하나님의 증거로 돌이켰다. 그들은 주님의 증거로, 그들의 눈을 돌이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도 돌이켰고, 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참회>를 실행하도록 주님의 말씀에로 돌아왔다. 그들의 영혼이 주 하나님의 증거와 말씀을 향하여 굽혀지고 기울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복음>에 의해서 다스려지게 되었다. 


그런 연고로 당시에 한국교회는 교회부흥의 횃불이 되었던 참회에서 <회개>로 교인들이 <성도>들로 바뀌는 부흥의 물결을 이루었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천국이 가까워지는, 우리들 앞에 놓여진 <참회하는 반성>으로 결국 경건한 결심을 창출하며, 세상을 향하여 모본을 보이는 <믿음(신앙)>생활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있을 때 우리는 “더 편안한 시기”로 그것을 미루지 말고, 쇠가 달았을 때 때려야 하듯이 신속히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부를 때에 응답 하시는 주 하나님께서는 나의 탄원을 허락하시고, 나의 호소를 판단하시는 주님이다. 


주의 긍휼하심으로 인해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훌륭한 간구가 되는 것인 줄 믿는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며,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비밀을 지킴으로 우리는 바른 교훈과 선한 행실을 더욱 더 열심히 지키게 된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견고히 지키는 길은 경건한 믿음을 사수하는데 있다. 그런고로 건전한 믿음 위에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세우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세우자!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는 가장 큰 효험을 얻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imjinkyu
김진규
61890
10790
2017-11-04
복음과 사역과 기도(4)

 

(지난 호에 이어)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짓밟고 주님의 <메시아>됨을 부인하며 또 그의 지체(성도) 들을 만물의 찌꺼기처럼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짓밟는 것은 가장 용서될 수 없는 죄인인 것입니다. 누가 큰 범죄자 일까요? 즉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또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배격하는 죄가 바로 배교자요 범죄자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확고한 결심을 하고서 우리를 성결케 하시는 유일하신 성령을 멸시하고, 그에게 항거하면 <구원>의 유일한 길이요 영생의 말씀인 <복음>을 멸시하고, 배척하는 것이며, 또한 그들이 이미 배웠고, 인정하였고, 고백하였던 기독교 신앙의 모든 내용을 멸시하고 오만하고 악의 있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큰 <범죄>이고 <죄악>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함께 모이는 교제(사귐)는 서로에게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이 교제는 우리들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꾸준함과 인내를 주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이 교제를 통해 성도들의 마음과 손은 서로 상대방을 격려하게 됩니다. 이러한 교제 속에서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을 권고하고 우리가 타락하게 되는 위험과 죄를 서로 경고하며 우리의 의무를 기억하고 또 실패와 실수와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내 자신과 상대방을 깨우치고 서로 방심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경건한 일에 다투듯이’ 열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복음의 정신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교제는 ‘최상의 진심 어린 우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세의 징조들을 유의하도록 서로 촉구하고 그날을 좀 더 잘 대비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일과 서로 권면하는 일을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시련의 날이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임종의 날 이기도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히10:24).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서로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슨 환상이나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해주며 또 우리의 영혼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고무시켜 주는 실질적인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결실이 없고 믿음이 부족한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게 될 것을 경고해주고 있습니다. 


목자(PASTOR)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풀이해주고 여러 가지 실질적인 문제에 부딪칠 때 필요한 말씀을 적용해 줌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법도 안으로 인도할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사역 자들은 자신이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계율(복음)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쳐야 합니다. 사역 자들의 성경 해석은 어떠한 검토도 없이 즉시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찾아보고 그리고 사역 자들의 성경 해석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을 때 그 말씀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능력 있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사역 자들의 말씀 증거를 통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 증거하는 말씀 속에서 겸손과 온유를 받아야 하고, 스스로 낮춤으로서 겸손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비천한 생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온유함이란 사람이 남을 자극시켜 노하게 하는 것을 꺼려하고, 또 쉽사리 기분 상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그러한 훌륭한 성격입니다. 또한 관용과 인내는 공동체 안에서 각 지체들과의 사이에 상처를 받았을 때 복수를 하지 않고 참는 태도를 말합니다. 


사랑으로 서로서로 인내한다 함은 사랑으로 서로서로의 약점을 이해하고 참고 잊어버리는 마음가짐이 바로 성령으로 하나되고 하나로 일치되는 아름다운 주님의 사랑 받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보배’. 복음 안에는 매우 귀중한 가치가 충만하므로, 끝이 없고 값이 없으므로 우리의 보배다. 우리 신자들은 질그릇 이기에 그 속에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되는 것이다(고후4:7).


우리 마음 속으로부터 맛을 느끼지 않고 단지 복음의 소리를 귀로만 듣는다면,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우리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부지런히 이 보배를 우리의 것으로 만듭시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든지 기도하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고, 사랑 안에서 기도하고, 의심함이 없이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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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61765
10790
2017-10-26
복음과 사역과 기도(3)

 

(지난 호에 이어)
 하나님께 참된 예배 드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항상 차이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거짓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성도답게 신실하게 예배 드리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자기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예배자도 있을 것이요 또 세리와 같이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주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전인격을 아름다운 것으로 받으셨고, 그 다음 그의 재물을 믿음에 의해 드려진 것으로 받으셨습니다. 만약 우리의 인격과 제물이 열납된다면 그것은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기록 가운데서 첫 번 본보기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이 인간의 타락이고, 완전히 두절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자비>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달려야 하는 경주가 있습니다. 그것은 <섬김>의 경주요 <고난>의 경주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코스>는 복종인데 우리는 능동적으로 때로는 수동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과 인내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인내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생생하게 역사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으로 잘 달려가게 격려하고 또 원기를 북돋아 주는 전능하신 분, <주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는 믿음의 시작과 끝이시며 보상자이심을 명심하자! 늘 주님을 바라보며 생각하자! 사역자(교역자)들은 주하나님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그들은 충성을 다 해야 하며, 열심을 다해야 됩니다. 


교역자들은 주님께서 고용하신 사역자들이며 주님은 교회의 이익을 위하여 그 교역자들과 사귐을 가지고자 영적인 영향력을 구사하고 있는다. 일반적으로 성령은 목회를 통해서 활동하시며, 목회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동시에 주하나님의 손이 이 양자(목회와 성령)를 모두 지탱해 주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알맹이 있는 믿음생활, 영혼이 꽉찬 신앙생활, 실재와 내용물이 차있는 믿음생활, 거룩한 욕망으로 채워진 기도생활, 참된 자비에서 우러나온 구제생활, 주일은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참된 봉헌이 드려지는 신앙생활인지, 내 자신을 돌아보고, 처음에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환영하였던가를 기억합시다! 


우리는 때때로 내 자신이 알고 있는 바가 적다는 것(부족함)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욱 나아지게 될 것인가! <사역자들은 비난들을 수밖에 없는 악한 일들을 하지 않음으로 적대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더욱더 돌이켜보아 결코 흠 잡힐 것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반대와 비방은 피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때때로 타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진리에 대적할 것이며, 수시로 사역자들과 진리를 고백하는 자들을 비방할 것입니다.


“축복은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향하여 쫓아갔으나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을 <야곱>에게 주시고, 유대인들은 <에서>와 같이 의법(율법)을 추구하여 축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되는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야곱>처럼 하나님이 보여준 것에 대한 믿음으로 그것을 추구하고, 강제로 그 축복을 획득하였습니다. 


“선한 길을 따르는 사람은 언제나 선한 보호자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평안한 속에 있을 때는 시련을 겪게 해주시고, 시련에 직면할 때는 이전의 경험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에 의하여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다른 사람에게 공평하고, 관대하며, 온유하고, 겸손한 행위로 대하여야 할 이유들을 본보이고, 반드시 사람들과 사회의 품성을 높이는데 유익한 말들로 생활 속에서, <삶의 구원>을 실천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도>일까요! 


옛날에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관용과 따스함으로,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온유한 성품을 지니고, 그 온유함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야 하고, 대접함으로써 전도의 문을 넓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라! 복된자여!”라는 분깃을 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끝날에 복된 업을 누리며 택함 받은 자 가운데서 분깃을 누린다는 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분깃에 만족하고 주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살아가자! 주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안에서, 어떤 직업이나 조건을 우리에게 주셨던 간에 우리 자신을 거기에 적응시키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높은 일들을 바라지 말자”. 높은 직위의 수치보다, 비천한 위치의 신뢰가 더 더욱 중요하고, 아름다운 <덕>이 되는 것입니다(安分自足安心立命). 


지혜 있는 자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 하나님의 사랑의 영향을 받고, 지배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빛에 의해서 조명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더 없이 겸손하고 공손하게, 말과 행동으로, 우리 자신을 나타내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시겠다는 말씀은 그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확실히 말씀해 주신 그의 재림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속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길이 참고 견디게 해줍니다(빌4:5).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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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61660
10790
2017-10-23
복음과 사역과 기도(2)

 

(지난 호에 이어)
노여움은 인간을 극도로 어리석게 만들고, 사나운 짐승과 같은 사람으로 만든다. 우리는 노여움의 코에 고리를 끼고 그 턱에 재갈을 먹일 필요가 있다(삼상20:33). 극도의 노여움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노한 마음을 가지고 멸시하는 말을 아무 말없이 겸손히 받아 들인다는 것은 자기를 매우 낮추는 지혜로운 <겸손>이다.


 “네가 혐의를 받았을 때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이 있다. 교회를 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이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이 악한 죄를 지어 성령을 슬프게 하고 이를 막아 버리면 성령은 그 사람을 떠나고, 그를 위해 애써 주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부리신(일하는)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한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사악한 생각을 하거나 사악한 길로 계속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자신을 기만하는데 불과하다는 점을 유의하자. 죄에 대해 진정으로 슬픔을 표시하지 않고 죄에 대한 진정한 굴욕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금식이 아니고 가장된 신앙인의 거짓 금식기도가 되지 않을 가요? 신앙인의 과시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리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신앙의 본질> 없이는 어떠한 기도도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 가족과 친족이 몰락하는데도 돌아보지 아니하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딤전5:8). 우리는 불쌍한 청원자가 우리를 찾을 때 그를 회피하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또한 자비와 동정의 대상이 나타날 때 딴전을 피워서도 안된다. 


그들은 우리의 살 중의 살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잔악한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의 자비로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베풀어주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사랑해 주는 일을 우리자신의 규범으로 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일줄 믿는다. 참된 지혜는 그 행하는 일로써 알려진다. 즉<선행>은 전 인격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참된 지혜는 영혼과 성격이 온유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야고보서3:13). 


다른 사람의 노함을 끈기 있게 참고 견디는 것은 지혜가 있음의 훌륭한 증거가 된다. <지혜는 온유함을 낳고 온유함은 지혜를 더 해준다> 사역자들의 사역이 실패로 끝나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교우들 모두의 실패가 되고, 그 손실은 교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주님! 우리는 죄악에 있어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어야 되지만 진리를 깨닫는데 있어서는 성인으로 성장하여야 하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를 지나고 청년과 같은 상태를 벗어나 성인이 된 상태의 단계에 이르게 되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로 인해 주어진 생명을 유지해 주는 음식이며 자양분이다. 우리는 새로 태어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젖을 사모하며 자라도록 해야 한다.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 교인들이 목회자들에게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의무다. 사역자들은 교인들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교인들이 사역자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 할수록 교인들은 그들의 사역에서 얻는 유익이 많아질 것이다. 교인들은 자신들을 가르쳐주는 사역자들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여 가르쳐 주시겠지만, 우리는 그들로 용기 있고, 현명하며, 열성적이고, 사역에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 해야만 한다.


또한 사역자들이 유혹 받을 때에 물리칠 수 있는 강한 힘을 주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사역자들은 모든 일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선한 양심으로 양들을 위하여 치리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큰 목자요, 사역자들은 주님께 예속된 목자들이다. “신앙은 인간들에게 가장 진실한 예의와 훌륭한 교양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말씀 속에서 자족의 의무를 권고 받고 있다.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진 자를 시기하여 세상의 부를 모으려 하는 지나친 욕망의 <죄>즉 <탐욕>의 죄를 제압하고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린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 될까! 


또한 우리는 현재의 환경에 만족할 줄 알고 현재의 형편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환경이 향상되면 인간의 욕망도 역시 높아지기 때문에 탐욕의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환경과 욕망을 억제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제단이 되시며, 제물도 되신 주님 앞에 늘 깨어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주 하나님의 자비에 내 자신을 맡기는 신앙생활을 하자! 


이 세상에서 나의 모습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아서 이리 저리로 흔들리며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위기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즉 나의 영혼은 <배>와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줄 튼튼하고 견고한 <닻>을 필요로 한다. 바로 <복음>이 주는 소망이 나와 우리의 <닻>이다. 


그러므로 복음이 주는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하며, 확실하고, 변함이 없으며, 은혜를 통해서 주어진 아름다운 소망이 되는 것이다. 복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만큼 견고하고, 이 소망은 영원한 반석이신 주 예수님에게서 내려진 <닻>이다. 왕 중의 왕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는 우리 신자들의 예표요 첫 열매이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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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61502
10790
2017-10-17
복음과 사역과 기도(1)

 

가장 능력있는 간구는 “말할 수 없는 탄식 (롬8:26)”으로 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명령을 내려서는 안되며 간절한 요청을 해야 한다.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과 존경과 신뢰로써 주님에게 다가 가자! 주님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처지와 필요를 더 잘 아시는 아버지다.  


 우리는 은밀한 곳에 계시는 우리 주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자! 은밀한 기도를 할 때 그곳이 골방이 되고 특히 우리가 “그를 부를 때” 우리 곁에 계시는 곳이 골방이다. “네 골방”이란 즉 개인적이고 외진 장소에 “들어가라”란 뜻이고, 이삭은 들판으로 갔고, 그리스도는 산으로 가셨으며, 베드로는 지붕위로 올라갔다.


즉 겉치레를 피하기 위하여 은밀한 곳에서 수행된다. 산만해지지 않고, 또한 들리지 않음으로써, 보다 큰 자유를 활용하기 위하여, 은밀한 곳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자선은 인간의 역사”이지만 <신앙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다>. 제사장과 레위인 처럼 모세의 율법 즉 율법의 사역자들이 우리를 보았으나 도와 줄 어떤 동정심도 능력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동정해주지도 않고, 위로도 해주지 않고 다른 길로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때에 축복의 예수님 즉 선한 사마리아인이 오셔서 우리를 동정해 주시고 피 흘리는 상처를 싸매 주셨다(시편147:3, 사61:1, 눅10:33-34). 일반적으로 복음의 목적은 비록 연약 할지라도 신실한 자에게 용기를 주는 구원의 방법을 확립시키는 것이다. 복음은 이유 없는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의롭고 자발적인 마음을 받아 들인다. 주님을 온유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떨면서 따르는 특별한 사람들에 대하여 즉 참된 은혜를 소유한 자들을, 비록 그들이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사랑으로 품어준다.


 항상 “진리는 위대하며 승리할 것이다”. 가장 불결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불결함을 비난 하는데 앞장을 서는 법이다. 바리세인들의 오류와 반감, 표리부동한 심사, 잘못과 악으로 점철된 사람이 바로 내 자신이 아닐까?

그런고로 성하지 못한 눈은 밝은 빛을 볼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진리를 은폐하는 사람들을 기뻐하거나, 그들의 오류와 타락함으로 빠져들어가기를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 항상 진리는 소유(인정)되어야 하고 의무는 행해져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고의적으로 무지한 자를 거절 하지만, 기꺼이 배우려고 하는 무지한 자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가진다. 우리는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 이상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이 또 없기 때문에 예배 없는 신앙생활은 “지붕 위의 참새처럼 고독한 몸”이 되기 십상이며, 영적인 신앙인으로부터 멀어져서 변화무쌍한 세상 파도에 휩쓸려 세상 사람의 웃음도 믿을 수 없으며, 오늘 모든 사람으로부터 환대받는 사람도 내일 날에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척을 받을 수 있다.


성령의 검과 믿음의 방패를 가진 신자들은 결코 무장을 풀어 놓거나 또는 언제든지 그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오로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자비를 힘입고, 겸손하고 사랑이 넘치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그리스도인은 사역자들의 가르침이 기록된 말씀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에게 더욱 복종해야 한다. 사역자(목회자)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정직하게 양육해야만 하고, 목자로서의 소임의 모든 부분을 잘 감당해야 될 줄 믿는다. 


그리스도의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야 하며, 그들 앞에 선한 먹이를 놓아 주어야 하며, 병이 난 것들이나 식욕을 잃은 것들을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만 한다. 부드러운 복음주의적인 훈련과 함께 기독교의 가르침을 골고루 먹여 그들을 양육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양들이 영원한 생명에 합당한 존재로 자라는데 필요한 것이 결핍되지는 않았는지 보아야 한다.


사역자는 울 밖에 있는 무리들을 끌어들여 하나님의 교회로 모아 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먹여서 자라나게 해야 한다. 사역자들은 목자들이 밤에도 그들의 양떼를 자지 않고 돌보듯이(행20:31), 깨어서 양떼를 지켜야 하며 그들은 영적인 게으름이나 졸음에 빠져버려서는 안 된다. 꾸준히 분발하여 그들의 임무를 충실히 행해야 한다. 


“모든 일에 근신하여(딤후4:5)”, 양떼에게 해가 될만한 모든 것을 징계하고 이익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기쁨으로 선을 행하여야 한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앞을 내다 볼뿐만 아니라, 과거도 믿음으로 회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현세에 돌아가는 세상의 종말을 내다보아야 할뿐만 아니라 태초의 시기에 대해서도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은 우리에게 모든 만물의 근원에 대하여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지식을 주며, 또한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축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 축복을 간절하고 끈질기게 고하여야 한다. 축복을 받지 않고는 물러나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기도는 타는 듯한 뜨거운 기도다(창32:26).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주님께 의지하며 종종 애통하는 기도의 습관을 사용하자! “비췸을 얻은“ 사람들도 믿음에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발람>은 진리의 눈이 뜨인 자였다(민23:3). 그럼에도 그는 열린 눈을 가지고 캄캄한 어둠의 길로 내려갔다. <뿌리를 내리지 않는 나무는 결코 서지 못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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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61409
10790
2017-10-05
복음과 사역과 치국(4)

 

 

 (지난 호에 이어)
 지금 남한 땅에서는 흥청망청 살아가는 낭비족, 소비대중과 아직도 호구지책을 면치 못하는 부류가 있다는 것을 위정자들과 중산층 이상들이 깊이 깨닫고 있다면, 서울시 음식점에서 하루 버려지는 음식물 값으로 남한의 빈곤층을 해결할 수 있고, 북한땅의 기아생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특히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세계에서 제일 안일하고, 특권을 가진 초 <호화판> 국회임을 알고도, 지난해 <김영란법>대상에서 자신들을 제외시킨 국회는 존속할 가치도 없고, 바른정치를 원하는 정권은 한국 국회의 <특권>을 제거함으로 정권연장과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정부가 되는 것이 철칙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독일 국민들을 보자! 그들은 절대로 분에 넘치는 사치스러운 식사를 하지않고, 가정, 식당, 요식업소에서 절대로 음식을 버리지 않는 국민, <검소하고 분수에 맞는> 생활이 어쩌면 독일통일의 근간이 될 수도 있었다. 


 지난 정부(박근혜)때 당 대표에 선출된 국회의원(이정현)은 세계에서 제일 값비싼 청와대 만찬 대접을 주고받았으니, 천인공노할 노릇이었다. <비빔밥> 한 그릇으로 청와대에서 어느 모임도 화기애애하게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조국의 동포 여러분! 이곳 캐나다 동포 여러분!


 항상 소비와 낭비가 균형을 이룰 때, 국가부흥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실증을 알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46:1>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순결하고 평화롭다.” 과연 한국 교회들이 국가의 최고 통치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간절히 기도 했었고, 하고 있는지요? 


 크리스천들은 조국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불신자들을 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한국(남, 북한)에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광복75년>이 되는 주후 2020년 8월15일경까지 우리 조국을 평화의 통일로 안겨 줌을 확실히 믿는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직전 대통령(박근혜)을 위해서, 그분이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아 거듭난 크리스천이 되어 믿음의 우리들의 <자매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9,10,13>


 <기도>는 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요구의 제시이며 또한 우리의 소원을 주님에게 알리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감정의 불안을 없애 주며 내적 만족을 부여할 것이며, 우리를 평온하고 침착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심지(心志)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실 것이다> (사26:3, 시편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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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61309
10790
2017-09-29
복음과 사역과 치국(3)

 

(다음 호에 계속)
 특히 세계 역사는 보여주었고 직간접으로 살육을 예사로 하는 독재자는 결국 전능자의 징벌을 받게 된다. 바로 북한 정권의 최고 독재자가 이러한 범주에 속할 자임을 알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편 49:20). 


 우리는 앞의 성경 구절에서 악인의 형통함에서 야기되는 주 하나님의 백성과 무고한 국민들의 고통과 근심으로부터 그 국민들을 위로하기위한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우리는 <사악>한 자들의 화려함과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자! 존귀에 처한 사람도 그가 지혜롭거나 선하지 않다면 그 <결국>이 비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존귀에 처해 있으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 교만하고, 관능적이며, 포악한 자들은 짐승과도 같다는 뜻이다.


 즉 그들은 짐승같이 죽지는 않을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짐승처럼 불명예스럽게 멸망할 것이며, 먼저 이 세상에서 죄 값을 받을 것이다. 정직한 마음을 갖고 주 하나님과 그의 섭리와 약속에 대해 생동하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양심>이 깨끗하다는 증거이다. 


 믿는 자들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며-사65:16>, 하나님이 그들의 것일 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적인 사람들은 세상의 재물로, 그들 자신을 축하하며, 재물이 풍부할 때 그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재물을 쌓아 올림으로써 그들 육신을 위해 최선을 기울이나 반면에 그들의 <영혼과 영생>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여호와를 배반한다<시편10:3>.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잠언20:28)>.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선한 왕의 미덕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인자와 진리>이며, 특히 본문에서는 <인자>를 두번씩이나 언급하고 있다. 


 왕(최고 통치자)은 자기의 약속을 충실하고 진지하게 지켜야하며, 어떤 위선도 배격해야 한다. 또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책임을 엄숙히 이행해야 하며, 진리를 옹호하고, 장려하며, 정직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찬가지로 최고 통치자는 온화한 통치를 베풀어야 하며 온갖 <긍휼>의 행위를 통해 국민의 애호를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자와 진리>는 주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이며, 이런 <통치자>의 미덕은 그의 인품을 하나님께서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그의 통치를 옹위(擁衛-escort)해 줄 것이다. 


 최고 통치자가 <인자와 진리>중 하나라도 소유할 수만 있다면 국정은 편안하고 안전하게 될 것이며, 자기 국민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반대자들은 그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직전 대통령(박근혜)은 <소통>의 부족으로 2016년12월31일 <하야>의 호기를 상실하고, 55일간 이란 충분한 시일(2016년11월7일-2016년12월31)동안 <복음-Gospel>을 수긍하거나 심령속에 받아 드리지 못했거나 안했고, 수치의 영오에 들어가고 말았다. 


 <사탄(Satan),마귀(Devil)>는 믿는 자와 믿지않는 자 누구에게도 앞장 노릇을 펼치고 만다. 전임 대통령(박근혜)은 1대 사탄마귀, 최태민한테 20년(1972-1992)을 묶여있었고, 2대 사탄마귀 최순실한테 24년(1992년-2016년)을 묶이어, 총 44년을 마귀한테 이끌리어 수많은 경우 자신의 판단이 흐리게 되고 말았다. 이것은 총체적으로 한국 <크리스쳔>들의 책임이었음을 알자! 


 어느 누구(사역자-목회자)도 그분에게 44년 동안<복음>을 전하지 안했거나 못했던 것은 나변에 있었는가? 한국의 대재앙을 부른 총체적 부실 투자 정부인, 전전 대통령(이명박)정부의 <최악의 경제정책, 수십조원 부실투자>로 인한 천문학적 국가의 부채와 구멍 뚫린 재정난은 전임 대통령(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을 발목잡기까지 했었던 통치 책임자에 비교하면 억울한 <영오>살이가 될 수도 있다? 


 환언하여 한국과 이곳 동포사회의 <크리스쳔>들이 거듭 각성하고 <통회 자백>하여야 할일은 지난 7월17일 한국 국민 설문조사에서 국민 72%가 기독교에 부정적이고 <목회자-사역자, 교회불신>이 전 국민의 75%라는 엄청난 현실을 “CHRISTIAN”들이 극복하고 정화되지 못하거나, 안 한다면 <크리스쳔>들은 어떻게 주님나라를 전파하고 비극의 분단된 조국통일을 위해서 이바지할 길이 어디 있는지 자문자답을 찾아야겠다. 


 우리는 알고 배우고 실천 해야겠다. 지난 1989년 독일 통일의 밑거름은 서독의 <크리스쳔>들이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부지런하고 국민들 앞에 모범을 보인 <신앙심>의 열정과 <기도>로 산업발전을 이룩했다. 정직한 위정자들의 정치 헌신과 이와 더불어 서독의 신앙인들은 정부가 동독에 원조한 양보다 훨씬 많은 기도와 사랑과 생필품과 구호품 및 생활비를 전달한 <사랑의 열매>가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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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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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90
2017-09-21
복음(Gospel )과 사역(使役-Vocation)과 치국(Governing) (2)

 

(지난 호에 이어)
 우리는 의심스러운 논쟁에 있어서 너무 자만해서도 안 되며, 능력 밖으로 뻐기는 것도 안 되며 우리들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해서도 안 되며 육신으로 자랑을 삼으려 해도 안 된다. 이것은 우리 자신(크리스천)에 대한 온건한 평가에서만 얻어지는 <열매>다(신 29:29, 시편 31:12, 고후10:13-18, 골2:18).


 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숨겨두지 않으시고, 우리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 것들만 감추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아울러 우리의 자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복음>을 부지런히 배우며 우리 자손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실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있어야>한다. 오직 그러한 모든 지식을 통하여 우리가 이 복음의 모든 말씀을 실행하여 우리의 행실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활용해야 한다. 모든 아첨 중에서 자기 아첨이 가장 나쁘고 자기 칭찬도 그만큼 나쁘다. 또한 자기 자랑은 교만만큼 헛되다. 


 우리자신을 자랑하는 것보다 자신이 <주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노력하자! 우리는 순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 가장 적합한 지도자임을 알자! 지난 2016년 11월12일(토) 대규모 민중 총궐기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소식을 듣고 위기의식을 느낀 전임 대통령(박근혜)은 2016년 11월7일(월) 오후 청와대로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를 초청했다. 


 김 목사님의 복음 증거는 크리스천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대통령을 전도하여 구원 받도록, 집념으로 말씀을 전한 김 목사님께 동료 크리스천으로써 큰 감사함과 감명을 받았다. 수많은 사역자들이 구원받지 못한 대통령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 하였는지? 


 김장환 목사님이 전도한 성경말씀(롬12:16)은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Be of the same mind one toward another. Mind not high things, but condescend to men of low estate. Be not wise in your own conceits) 였다.


 여기서 우리는 <통일된 사랑> 즉 모두 하나가 되어 평화의 노끈으로 성령의 통일성을 지키도록 힘쓰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네가 네 자신에게 원하는 만큼 남에게도 <동일한 유익을 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통치자에게는 자기 국민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니, 우리 자신처럼 남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윗 성경구절에서 우리는 <공손한 사랑> 즉 높은 것을 마음에 두지 말고 낮은 사람들(일반 국민들)에게 공손하라는 뜻이다. 사역자와 통치자는 명예와 대접받는 일을 너무 욕심내서도 안 되고 이 세상의 영화와 위엄을 무리하게 과대평가해서도, 무리하게 바라서도 안 되고,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들을 모든 통치에, 만국의 제왕위에 군림해서도 안 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라고 골방에서 간곡한 눈물어린 호소를 하고 깨우칠 자가 누구일까요? 또한 <낮은데 처하라>는 말씀은 낮은 사람들에게 공손하라는 뜻인데 비록 천한 것들에게도 공손하라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다.


 우리는 죄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이든 달갑게 여길 줄 알아야겠다. 그게 우리의 몫이라면 천박한 습관에 머리를 굽힐 줄도 알고 가련한 생활에 자족할 줄도 알며, 허름한 옷도 걸칠줄 알며 불편한 숙식도 참아내고 불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우리의 옛 타락한 성품(old creations)이 높은 데로 올라갈 때 우리의 새로운 성품의 힘에 휩쓸려 낮은 데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즉 천한 데도 자족할 수 있어야겠다. 우리의 겸손은 높은 데보다 낮고 천한 것을 우리의 바람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즉 <낮은 사람들에게 공손하라>는 쪽으로 의미를 돌려보자! 우리 자신속에 속임수가 있는 한 우리는 남에게 공손할 길이 없다. 우리가 가진 <지혜>라는 상품은 서로 주고받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지체로서, 서로 의지하고 있으므로 나 혼자 지혜롭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사역자(목회자)나 위정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사랑을 가지고 정직한 <소통>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의 지위나 직업의 거리 때문에 친밀하게 지낼 수 없는 사람들과도 우리는 평화롭게 진실한 <소통>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거짓말은 또 거짓말을 낳고 한 가지 속임수는 거짓말을 덮고 또 하나의 속임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역자들이나 위정자들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직언의 외면은 권력의 침체와 탈선을 초래한다. 대중과의 관계와 정직한 소통의 부재로 권력과 정권은 무너지고 궤멸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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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61077
10790
2017-09-15
복음(福音)과 겸손(謙遜)과 치국(治國) (2)

 

복음(Gospel )과 사역(使役-Vocation)과 치국(Governing)


 


 (지난 호에 이어)
 교리(복음)는 항상 권면에 앞서 있다. 왜냐하면 거룩하고 합당한(영적인)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교리를 통해서만 높임을 받은 성도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복음(Gospel)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주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즉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결과로 가져오는 주 하나님의 능력이다. <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쫓아 나타나나니(롬1:18)>. 여기서 우리는 악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선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들에 대한 주 하나님의 진노라고 정의하며, 죄와 불의에 대해 하나님이 느끼시는 <혐오와 염증>을 의미한다.


 국민이 선택한 최고 통치자는 어쩌면 민심은 천심으로 여겨지기 때문임을 알자! 또한 경건치 않음은 주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의 결여, 불경건, 반신앙 적을 의미한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이 진리에 함축된 도덕적 윤리적 의미를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최고 통치자들이기도 한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집권 전이나 후에도 나라를 다스리는 중에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성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며 인구(人口)의 회자(膾炙)가 되는 선량한 정치를 하는 최고 통치 책임자가 되어야한다. 


 그와 반대로 양심을 망각하고 죄와 불의, 부정, 부패, 불법 가운데 행하고 있는 최고 통치자의 배신행위는 주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범죄(crime)와 죄악(sin)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쫓아 나타나시는 것이다.


 복음에서 우리는 배웠고 배우고 있다. 선과 악, 의와 불의를 말이다. 이런 것들이 사역자나 위정자들이 알아야 할 덕목이다. 주 하나님은 완전함의 목표이시며 표준이심을 알자! 하나님의 <의>는 성서의 기조(基調-keynote)를 이루는 사상이며 표현되지 않는 전제(前提-premise)가운데 하나이다.


 <겸손>은 인간이 자신의 모든 공로를 포기하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며 구속(redemption)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국민의 지지자가 줄면 그 통치자는 악화된다. 즉 <지지하는 백성이 줄어드는 것은 통치권자의 패망이니라>는 말씀을 기억하자! 또한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잠언 29:4>.


 그렇다면 위정자의 <소임과 요건>은 무엇인가? <지혜로운 왕은 악인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로 그 위에 굴리느니라(잠언20:26)> 위정자는 경건한 동시에 사려깊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악을 억누르고 풍습을 개선시키는 데는 신실하면서도 분별있는 현명한 최고 통치자의 판단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욕된 통치자는 이기적이고 거짓되며 자기 국민을 배반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며, 불화를 심고 이처럼 <욕을 끼치는> 자들은 어떤 후원자가 그들을 변호해 주더라도 축출당하고 조정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자! 우리는 거짓말 하는 자와 거짓증인(잠14:25)을 내세우는 왕(최고 통치자)의 결말을 상고해보자! 


 거짓된 증인은 손톱만치도 존중을 받지 못한다. 그런 자는 <거짓말>을 날조하면서도 무죄한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극히 자신만만하게 거짓말을 내뱉는다. 법 앞에는 만민이 평등하기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서 <위증>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거짓말까지도 색출하여 엄단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된다. 


 즉 최고 통치자의 비위를 엄단해야 한다. 즉 진실과 정직은 국가 단결의 접합제가 되는 것이다. 사역자와 위정자는 그들의 하는 일을 더러운 이(利)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일이어야 한다.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서성대는 마음씨야 말로 <고결>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천으로 입문한 신앙인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Lord)로, 받아들여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죄악성의 근원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데 있다. 곧 주 하나님의 존재와 선악 간의 차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으면서도 뻔뻔스레 뒷구멍으로 악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교회 사역자들이나 위정자들은 진실과 진리와 법도와 규례와 규정을, 포로나 죄수마냥 감금하여 이런 것들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은근히 막는 자들이다. 고로 불의하고 사악한 마음은 좋은 <진리>가 묻혀있는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다. 진리와 <복음>을 망각하고 불의로 막는 일은 모두 죄악의 뿌리가 아닐 수 없다.


 신앙생활에서나 크리스천의 자신에 관한 태도는 <온건>이다. 온건한 생활을 망각할 때 교만에 빠지기 쉽다. 교만이란 우리 모두가 천성으로 타고난 <죄>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경계하고 여기에 무장을 갖춰야 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우리의 판단, 능력, 인격 그리고 실천에 대한 <과대평가>를 삼가야 겠다. 스스로 기만에 빠진 나머지, 자신의 지혜나 업적을 너무 추켜세워도 안되며, 스스로 위대한 척해서도 안된다(갈6:3).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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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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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90
2017-09-08
복음(福音)과 겸손(謙遜)과 치국(治國)

 

 
 “복음은 구원이시다”. 복음은 위대한 구원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복음은 인간의 본성과 몸을 입으시고 나타나신 주하나님이시다. 복음은 위대하고 뛰어난 은혜의 섭리 즉 새 계약을 보여 주신다. 


 때때로 내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의 가치를 고려해보지도 않고, 또는 내 자신의 복음이 결여되어 있음과, 복음이 없음으로 인한 비참함을 생각지도 않은 신앙자세, 복음의 진리를 깨닫거나 수긍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태도는 구원을 경시하고 등한히 여기는 신앙자세요, 복음의 은총을 멸시한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크리스천이 아닐까?


 가장 그럴듯한 믿음의 고백이라도 행함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요, 뿌리가 죽은 나무와도 같은 것이다. 믿음은 뿌리요, 복음에 입각한 선행은 열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다 소유해야 할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과 행동(선행)을 함께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영원토록 이 두 가지를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결실(열매)이 있고 믿음이 충만한 주 하나님의 자녀인 줄 안다. 이러한 것들이 평강의 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 진리다.


 “만약 내가 복음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결과가 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 속에서 계속 전진하며 자라야 한다. 우리는 좋은 땅으로 땅위에 자주 내리는 비(복음)를 흡수하여만 한다.


 “나쁜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 악령이 인간을 사로잡으면 어떤 악한 일이라도 시키지 못할 것인가! 악독과 살육은 언제나 거짓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피에 굶주린 폭군(위정자, 독재자)들은 자기 자신처럼 사나운 도구를 찾아내어 그들의 악독함을 실행시킨다(사울과 도엑-사무엘 상22장18절). 


 그들은 간악한 자요, 거짓된 자요, 남을 속이는 자들이다. 남을 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거짓된 색깔을 입히는 악독한 술수를 밥 먹듯이 하는 자들이다. 


 오늘날도 주하나님의 자비를 추호도 느끼지 못하고 완전히 잃어버림으로써 자신의 통치가 가장 완전한 것처럼 떠들다가 자기 자신과 주위사람들을 더욱 가증한 죄로 빠지게 하고, 자살자처럼 위정자들을 타살시켜 영원한 치욕을 남겼거나, 남기고 있는 어리석은 죽음의 통치자, 대통령들, 지금도 거만을 떠는 바보스런 최고 통치자! 인간으로서 이성이나 참된 신앙을 가지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정권 말년에 주위 사람들에 의해 거짓과 위선에 싸여 있었던 최고 통치자들…, 자기들의 우둔한 머리로 무고한 백성들의 소득을 갈취하고 부정부패가 창궐하였던 정권들은 주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독일의 제2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현실을 보면 부정과 부패가 없는 정부를 국민들이 신뢰하고 열심과 최선을 다하여 일할 수 있었던 나라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깨닫지 못했던 역대 대통령들, 정직한 사역자(목사)들을 모시고 몇 번이나 주하나님 말씀을 경청하고 예배를 드렸는지?


 주하나님과 선지자 사무엘을 거역하고 얻어낸 왕이 어떤 왕인가 하는 것을 사울은 잘 증명하여 주었다. 좋은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좋은 척 하는 사람은 정말 악한 사람이다. 내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회개하며 열심히 주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요청을 들어주시지 않겠는가?


 사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을 경멸하고, 광폭하게 되는가? 또 얼마나 자신의 사악한 일을 숨기고, 어두움의 길로 향하고, 빛을 싫어하며 빛이 있는 곳에 나오려고 하지도 않는다. 


 “주여 나를 거짓말하는 데서부터 옮겨 주시옵소서”라는 다윗의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을 명심하며 살아가야 될 줄 믿는다. 사울이 자기의 운명을 가련한 무당에게 물어보려고 갔을 때처럼 비참하게 보일 때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일국의 장로 대통령이 퇴임 후 자기의 거처를 불법, 부정으로 매입하여 국고를 손실시키고, 지관(무당)을 앞세우고, 집터의 길흉을 확인하였던 통치 책임자가 진정한 통치자, 또는 참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신앙은 우리에게 거친 행동과 무례한 행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마땅히 존경할 자들을 존경해야 한다”,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다(사무엘상 18:23)”. 다윗은 오직 그의 참된 겸손에서 나온 말이다. 


 그 당시 다윗은 매우 유서깊고 명예가 있는 유다지파 출신이며, 훌륭한 정치가요, 군인이었다. 그는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고, 사울의 둘째 딸 미갈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리 높게 하셔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낮게 생각하여야 한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질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참된 겸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가! 우리는 종종 푸른 풀밑에 숨어있는 뱀(사울)을 두려워하여야 할 까닭이 있다. 민심은 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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