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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칼럼

kimjin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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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장로,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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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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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복음과 사역과 기도(12)

 

(지난 호에 이어)
위정자나 사역자(목회자)는 보다 많은 사회 대중의 지도를 맡은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가정을 잘 교육시키는 데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녀를 아주 근엄하게 순복 시키지 않고 그들의 선도에 수고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자기의 의무를 수행할 것인가?(딤전3:4,5).


우리는 모든 젊은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어리고 젊을 때 지식과 은혜를 구비하기 위해 고심참담(苦心慘憺)하게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때가 저희들의 학습 시기이며 그때에 그들의 사상이 형성되고 무르익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의 자녀들”이 아니고 우리들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의 어린 시기는 바로 그 시기가 성공할 수 있는 가망이 극히 높은 나이이고 성공의 초행길이 되기 때문이다.


“가지(柯枝)는 어리고 연할 때에 잘 휘는 것입니다.” 교훈 받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은 비록 성인들 일지라도 어린 아이의 기질을 가지고 나오게 되어야 하고 그들은 공손하고 유순하며 수줍어하도록 하여야 한다. 


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는 위엄과 사랑이 실려있는 법, 우리는 젊은이들 앞에 모본을 보여야 됨은 먼저 우리 눈을 지켜야 하며, 우리 혀를 지키고, 또한 우리 발(언어, 행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주님께 눈을 고정시키고 주 하나님께 우리 자신의 그렇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눈을 말씀의 규범과 규칙에 고착시키고 복음과 초점을 일치시킴이 얼마나 복된 삶이 될까.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목표 곧 “높은 데서 부르시는 상”에 못박고 우리의 눈을 전부 그쪽으로 향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저울 한 쪽에 얹고 내가 행한 일이나 행하려고 하는 일을 다른 한 쪽에 얹어서 그 둘이 평형을 이루는지 살펴보자! 


무슨 일이든지 경솔히 행하지 말자! 주님의 길 안에서 두 마음을 품은 사람처럼 불안정하지 않도록 하자! 두 길 사이에서 엉거주춤하니 서있지 말고 평탄하고도 일관성 있는 순종의 길로 나아가자.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내 눈은 바로 보고, 극단을 삼가자. 왜냐하면 거기에는 악이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만 지니도록 노력해야 함이 얼마나 마땅한 일인지. 


“악을 뿌리는 자”는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는 바람에서 부정직한 일을 행하는 자요, 권세를 남용하는 권력은 권세의 지팡이가 “분노의 지팡이”로 변하고 그 권세는 쇠망하게 된다. “인자한 자”의 복됨은 가난한 자들의 허리가 그를 축복할 것이며 그 주위의 사람들이 다 그를 칭찬할 것이고, 그를 위해 드리는 많은 선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 하나님께서도 그를 축복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복을 받으리라”. 


우리는 신앙생활에서나 삶 속에서 늘 유혹에서 지켜줄 지혜와 은혜가 있다면 그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경박한 처신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돼지에 비유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러운 욕망의 진창(mud)에서 뒹굴다가 마음과 양심까지 더럽혀진 사역자들은 씻겨 주어도 다시 진창으로 돌아가는 돼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속이고 저희 처신과는 달리 거짓말로 <기도>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기도와 경건은 죄와 양심에 대한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 주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더 나으며”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보다 낫다”고 말씀 하셨다. 


먼저 순종의 길을 보여주는 모본 된 사역자, 맡겨진 자기 울안의 형제 자매인 성도들을 골고루 사랑하는 사역자, 혹시라도 자기 습관에 대한 경계는 자기 머리에 대한 재갈이 됨을 알고 있는 사역자, 또한 성도들은 사역자들의 행동과 실천에 대해 방심하지 않는 것은 손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우리들의 교회는 마음의 경건한 묵상에 위축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교화(敎化)를 위해 우리의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와 찬송을 드리는 우리 입의 말들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고 마음의 묵상에서 넘쳐 나온 것이어야 한다(시편45:1). 


정직하지 못한 사역자를 통한 예배는 위선적 예배가 됨으로 주님께서는 그 예배를 배척하시고, 죄가 화음을 이루며 소리를 낼 때 주 하나님의 귀에는 그것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경건의 위장은” 이중의 죄가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면을 쓰고 대하며 실제로는 우리를 전혀 존경하지 않으면서 존경하는 체하는 것을 보게 되면 미운 생각이 든다. 


“위선보다 밉살스러운 것도 없으며, 가식보다 비열한 것도 없다.” 복음으로 꽉 차있는 신앙생활과 사역 안에서는 성도의 특권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기도의 응답이 줄지어 서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구원>에로 선택 받은 것이며 하늘 나라와 영광에로 부름 받은 것이다. 우리를 예정하고, 부르시며,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이는 주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시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과 소망에 더없이 막강한 힘이 되시는 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성도들의 심령에는 평강과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모든 바램과 호흡의 원천이 되시는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은혜가 약하고 애정이 메마르며 생각은 중구난방인 터에 “마음이 기도하는 걸 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주 하나님! 은혜로다. 모든 것이 은혜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그리스도와 참 신자들간의 사랑과 우정의 결속을 영원토록 깨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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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71603
10790
2018-11-12
복음과 사역과 기도(11)

 

 

(지난 호에 이어)
 성서의 모든 말씀(福音)은 성령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성서가 가지고 있는 모든 평이하고도 단순하며, 능력과 덕이 함양되어 있으며, 우아함이 있고 예의가 바른 말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성서)은 성령에 의해 감화 받고, 영향 받고, 도움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쓰려진 책(복음, 성경, 말씀)으로서 존중히 여김을 받은 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먼저 그 신성을 깨달아야 하고 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을 다른 책들로부터 성서로 돌리며, 성경이 우리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하여 <복음>을 우리의 행동지침으로 삼기 위해서는, 먼저 나(우리)의 전 존재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며, 거기에는 참으로 주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인하고 전적으로 믿고, 믿어져 야만 한다. 


성서는 우리의 영혼을 점점 더 밝게 하여주고 우리의 인격을 점점 더 증진시켜 준다(잠4:18). 나는 내 자신의 어두움을 인식하고 있는가? 이 성서(복음)의 말씀의 빛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의 소경 된 마음과 어두워진 지각에 비추어 질 때, 나의 심령에는 영적인 새 아침의 서광이 비추어 오고, 샛별이 떠오르게 된다. 


이처럼 여명의 빛이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드디어는 원만한 광명에 이르러 성도의 교제에 큰 모본을 보이고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의 빛에 가까이 이르게 되어 <성도>간에 참 사랑을 가지는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모든 은사가 심령 속에 내재하게 될 때 그 은사들은 성도, 피차간에 증진시키게 되며, 강화되고, 격려하고, 새롭게 하여 준다. 즉 은사가 충만하면 선한 행위도, 경우에 합당한 말도, 풍성하게 된다. 


우리는 크리스천에 입문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항하여 거룩한 싸움을 해야 하며, 육과 세상 그리고 사탄 마귀와 싸우도록 소집을 당한, 거룩한 신앙인(성도)이 되었기에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을 벗어 버리고자 하였던 무리들의 진취적인 마음과 결단을 때때로 기억해 내면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될 줄 믿는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종이다. 모든 그리스도 인은 자유인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뭇 사람”을 공경하여야 하고, 형제를 사랑하여야 하고, <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며>, 정직한 국민이 세워준 <정직한 권위자들>에게 최상의 공경을 드려야 한다. 


진실함이 없는 칭찬과 아첨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이루지 못하며, 거룩한 애정의 진실한 표현과, 사랑의 봉사와 수고만이 그리스도인을 이루게 한다. 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우리의 행실은 진실되며 우리의 말은 참될 수 있다.  


크리스천들은 얼마나 지혜롭고 조심성이 있어야만 하는가!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의 범죄에 참여하게 되는 길이 너무나 많다. 즉 그것은 불의한 침묵, 게으름, 무관심, 사적인 기여, 공적인 지지와 협조, 내적인 시인, 또는 공적인 변호와 방어로써 이루어진다. 


주여! 다른 사람의 죄에 동참한 나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거기에 자신을 적응시키고 참으며 그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신 것으로 여기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어떤 생활 형편에서라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최대로 선용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지혜이며 의욕인 것이다. 세상이 “여호와의 것이라면” 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그곳이 곧 아버지의 땅이요, 즉 우리가 쉼을 얻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의 두 번째 고향인 <캐나다>다.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될 수 있고 일치 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고통 중의 경멸 당함은 일반적인 다른 어느 것만큼이나 두려운 것임을 알자!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열심히 의무에 성실한 크리스천에게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보살펴 주시는 것처럼 미덥고 위안되는 일은 없다. 


주 하나님은 우리의 정직히 갈구하는 바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들어준다. 주 하나님은 “아버지의 뜻에 맞는 것을 청하면 무엇이든지 얻게 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변화를 일으켜 그 변화를 지속하도록 할 때, 나의 마음을 바꾸고,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다. 


즉 나의 체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질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영적인 생활을 하는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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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71524
10790
2018-11-04
복음과 사역과 기도(10)

 

 

(지난 호에 이어)
우리의 신앙은 올바른 생활태도에 이바지하는 실천적 믿음이다. 구원받은 특권에서 우리의 임무를 제거해도 안되고 크리스천의 임무에서 특권을 제거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 특권과 임무가 병행할 때만이 상호간에 크게 이바지하고 조화를 이루기 마련이다.


기독교 실천의 기초는 기독교 진리와 신앙에 근거해야만 한다.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주 예수님께서 뭘 요구하고 계시는가, 복음에 어울리는 우리의 올바른 행동지침이 담겨 있는 보물을 터득해야 한다. 


복음 전파의 생명(핵심)은 교리적 진리의 실제적 적용에 있다. 그러므로 의롭게 하는 신앙이란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에 이르는 길은 성결과 순종의 길목 밖에 따로 없다. 주 하나님의 은혜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경건하고(godly), 온건하며(soberly), 의롭게(righteously)”살고 이것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를 부정하라고 한다. 


크리스천들의 공동체에서 그 구성원들의 분쟁과 의견 충돌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여기서 입는 상처로 인하여 신앙의 진수(眞髓)가 사라져가고 만다. 우리는 성도들간의 덕을 위해 힘써야 한다.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는 동안에는 서로 덕을 세울 수 없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 안에서 곰곰이 그걸 생각하고, 충고하며, 견책하며, 교훈하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도록 하면 덕을 세울 수 있는 길은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건물이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서로 붙들어 세워주고, 서로의 영적 성장을 위해 힘쓸 필요가 있다. <부축>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강한 자도 없고, <덕>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자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남을 붙들어 세워줌으로 우리 자신에게 혜택을 가져오고 복된 열매를 맺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평화의 복음을 전파(전도)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발(언어 행동)이 아름다워야 한다. 


사역자들의 성결한 생활이야 말로 그들의 발의 아름다움이 된다.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의 눈에 “아름답구나”하는 걸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메시지(message)를 환영하는 자들이 그 메시지를 가져오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살전5:12-13).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복음을 알고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하라는 의미다. 즉 실천준칙이라는 얘기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즉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말씀” 이다. 우리성도들은 사역자들을 늘 사랑 안에서 높이 존경해야만 하고, 목자가 자기 양떼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양떼들도 자기의 목자를 알아야만 한다. 


성도들은 사역자(교역자)의 인품을 알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그를 그들의 목사로 존중하며 그의 가르침과 다스림과 권계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항상 정직하고, 신실하고, 근면한 사역자들에게는 영예가 주어져야 됨을 믿는다. 


우리 성도들은 늘 사랑으로 다스림 받아야 한다. 즉 좋은 상담자가 되고 잘못됨을 교정 받고 계도(enlightenment) 받는 것이 우리성도의 의무다. <복음>은 모두가 지혜롭고 선하며 우리를 지혜로운 자로, 선한 자로 만드는 길이요, 생명이며, 우리가 종말이 올 때 주 여호와의 구원을 볼 수 있도록 언행심사를 올바르게 실천하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악인들의 악을 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도록 하자! 모든 일에 있어서 엄정하고 떳떳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될 수 있게끔 행동하자! 의를 세우고 선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 해보자! <복음>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자들을 서로서로 가르치고 북돋아 주고 격려해 주자! 주 하나님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소망을 갖도록 하나님께 우리자신을 맡기고, 하나님 안에서 내 자신을 강하게 하며 즐겁고 만족하게 그날을 기다리자. 


현재의 내 자신을 살펴보고 내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지, 언제까지 생명이 존속될 것인지, 나의 영혼이 바로 내 자신이라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된다. 


<주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이야 말로 썩지도 않고 도둑맞지 않는 천국의 보물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보물을 쌓는다면 나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불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일이 익기도 전에 먹지도 못할걸 달라고 졸라대는 어린애와 같이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성령은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모든 바램과 호흡의 원천이다. 우리 성도들의 특권은 곧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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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71452
10790
2018-10-25
복음과 사역과 기도(9)

 

(지난 호에 이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살펴보자! <복음>에 비추어 볼 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지 또는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 보자.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의 심판자(주 하나님)는 성경(복음)을 기준하여 심판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곧 주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감추어진 것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복음의 지시에 따라 삶으로 주님의 대 심판 날에 자기들이 의롭다 함을 얻으리라는 것을 미리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있는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하늘나라의 설계는 질서 정연히 이루어져 있음을 알자! 즉 “구원 받은 백성(성도)들은 빛 가운데로 행진하게 되며”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활보하며 주 하나님과 성도들 모두가 사귐을 갖는다. 


“구원받은 크리스천들”은 여전히 탐욕과 야망과 어리석음과 욕망 때문에 눈이 멀어 있으면 안 된다. 육신의 눈은 뜨고 마음(심령)의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은 개발은 받기는 하되 <성화>를 받지는 못한다. 


간혹 사람들을 자랑으로 이끄는 지식은 지옥으로 가는 길을 밝혀줄 따름이고,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뜬 채 지옥으로 가고 있다. 우리들은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으로,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이 한결같은 태도를 취하여야 하고 만일 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고난을 겪게 되더라도, 저속한 두려움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저속한 타협으로 내 자신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자!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훌륭하고 어여쁜 단장을 하여야 할까!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복음으로 몸에 단장하지 않겠는가? 


주 하나님은 온갖 <선>의 원천이요, <샘>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 방황하지 말자! 그릇된 견해 속에서 방황하지 말며, 성령의 도움으로 주 예수님께서 받은 바 진리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말자! 영적인 생활을 하는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크리스천인줄 믿는다. 


크리스천들의 의무는 하나님 앞에 꿇어 앉아 그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심이 깊다는 것은 주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림을 뜻한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로서 예배에 임해야 한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소망은 실망으로 끝나는 일이 없다. 그 이유는 이 소망은 사랑의 성령으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혼을 적셔주고 영혼의 열매를 맺게 하는 비처럼 만물 위에 내려 영혼을 향기롭게 하는 좋은 양약이 된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비(복음)를 촉촉히 내려 우리의 위안과 거룩함 안에서 환난을 참는 인내를 감미롭게 적셔준다.


“우리 크리스천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끝까지 우리는 주 하나님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소망을 갖자! 전능하신 주 하나님!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게(계17:16)” 한 것도 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들(열국)은 마침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며 교황에 의해 매혹되고, 노예화 된 것을 깨닫고 분개함으로 로마에서부터 떨어져 나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로마를 멸망시키는 일에 쓰여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라고, 누구의 기도의 몫이 될까? 


어떤 신앙인들은 그들의 주된 관심이 값싸고, 손쉬운 데 있는 자들, 가장 노력과 연보(헌금, 봉헌)가 적게 드는 걸 기뻐하는 자들은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주의하자. 


우리가 재물로 주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재물을 소유한단 말인가? 재물을 주님의 공동체를 위하여 선용하는 것은 가장 값진 선용이다. 지혜롭고 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곤경을 자초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다윗은 인구조사에 대한 징벌을 받았을 때 자기 백성의 수효에 만족하여 잔치를 하려던 때 그의 만족감은, 죄의식이 기쁨을 변질시키고 쓰디쓴 담즙으로 변했다. 즉 그의 양심은 그가 한 일의 나쁜 점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이 범죄했을 때 자신에게 자책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자책>은 은혜의 원리가 마음속에서 작용한다는 좋은 표시이며 회개와 개혁을 향한 좋은 디딤돌이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그 양심이 부드럽고 박식하여 남이 보지 못하는 죄악을 발견한다”. 다윗이 자기 백성의 수효를 자랑했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 이었다. 그들은 자기(다윗)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였음을 알아야 했다. 왜 다윗이 자기 과오에 대한 징계를 받아야 했었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곱 가지 죄 중에서 첫째 가는 것은 교만이었다. (잠6:17,18,19).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받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아직도 그 죄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데 주목하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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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71347
10790
2018-10-23
복음과 사역과 기도(8)

 

(지난 호에 이어)
내세에 대한 교리를 제거해버리는 교훈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교훈이다. 마음의 성화는 모든 복음 안에서의 선행을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나무가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종(사역자)은 반드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 하여야 하며” 또 온유함을 통하여 그가 자신이 설교하고 전파하고 증거하는 내용에서, 거룩한 신앙의 능력 있는 명령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즉 마땅히 가르치기를 잘 하여야 하고, 가급적 설교는 말씀증거 이기에 복음으로 시작하여 복음으로 끝맺음을 맺는 <복음>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그 가르침에서 복음을 깨닫고 찔림을 받아 통회, 자복하므로 “주 하나님의 선물”인 <회개>를 하게 된다. 물론 진리를 반대하는 자들이 돌이키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겠지만…., <회개>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들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와 같이 올무로부터 벗어난 자들이다. 올무는 부서지고, 그들은 거기서 도망치게 된 것이다. 올무는 사탄의 올무이기 때문에 불신자들이나, 위선자들이나, 탐욕에 사로잡힌 자들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으며 덫에 걸린 새와도 같다. 


위험이 클수록 해방도 커지는 것처럼, 죄인들이 회개했을 때 이전에 사탄의 종이 되었던 자가 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뜻이 주 예수님의 뜻으로 변할 것이다. 


선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올무로부터 자유케 하신다. 때때로 믿음의 공동체 즉 하나님의 울 안에서는 3000명의 포위하고 있는 군대보다 아군의 두 명의 배반자가 더 많은 해독을 끼치는 것이다. 더욱이 정직하지 못한 사역자(목회자) 아래에는 공동체의 완전한 파멸을 자초하게 됨을 깨닫자! 


신앙이란 교묘한 논쟁을 일삼는 것이 아니고 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믿고 행하는데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며 “참으며”라고 성경 말씀은 가르쳐 주고 있다. 이것이 진리를 빛나게 또 능력있게 전달하는 방법이며 선을 악으로 이기는 방법이다. 


또한 복음은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주님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사귀며, 사랑하며 화평을 쫓으라고 하였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성도의 교제는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의 나쁜 일들과의 교제를 끊게 하여 준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깨끗한 마음으로 주 예수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들이다”. 


주님을 부른다는 말은 곧 <기도>를 말하는 것이요, 따라서 그리스도는 기도의 대상이 되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즉 모든 크리스천의 특징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면 그 기도는 열납(용납)되지 못하며 또 성공적인 기도가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배워야 하며 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하므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지식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나의 종말이 올 때까지 <복음>을 배우고 실천하고 반추(反芻-rumination)하여야 된다.


크리스천들은 한 교회 안에서 먹고, 같은 성령 안에서 마시며, 단순한 구경꾼이나 손님이나 교인이 아니요, 연합으로 혼인을 맺은 <성도>들이요,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일한 형제요, 자매요,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결코, 우리는 탐욕과 욕심의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되고, 훌륭한 판단력과 조용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수치의 거품을 품어 내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애찬(향연-Love Feast, Gospel Feast)의 암초(暗礎)가 되는 더러운 암초로 남아있어도 안 된다. 그런 자는 신앙과 일치하지 못하고 상반되는 마음과 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고백하며, 신앙적인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연합되어 있는 일보다 더 치욕적인 것은 없다.


“저희가 곧 암초다”. 조금도 예외 없이 이렇게 흠 투성이인 자들이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많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주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면 쭉정이와 함께, 알곡을 거두는 때가 되면, 인간의 우둔하고 경솔한 방범으로가 아닌 주 하나님 자신의 방법에 의하여 암초를 제거 하신다. 음식이 풍성한 잔치는 위태로운 함정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기초 없는 신앙고백 자들이 되지 말자! 주 하나님의 <복음>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와 겸손을 갖도록 하자! 우리 크리스천들은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세상에 살고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소망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참되시고 “복된 소망”이 되심을 알게 된다.


신앙은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므로, 악을 피하는 만큼 선을 행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조화를 이룸으로 성실성이 증명되고 <복음>이 높임을 입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 간에 근신함으로, 모든 욕망과 열정을 다스리며, 절제와 온당(穩當)의 한계를 지키며, 무절제한 과욕을 금하며 살아가야 될 줄 믿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의롭게 대하며 그들의 몫을 침범치 않고,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말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능력과 그들의 필요에 따라 남에게 선을 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정의와 인간 본분의 한 부분인 것같이 여겨 진다.


이기성(利己性)은 불의의 한 종류인 것이다. 그러니 올바르고 의로운 행실로 남에게 대한다면 얼마나 호감 주는 일이 될 것인가! 참으로 크리스천의 향기가 넘치는 성도가 될 줄 믿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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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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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복음과 사역과 기도(7)

 

(지난 호에 이어)
 만약 내가 나의 발걸음을 전속력으로 주하나님의 증거(복음)에로 돌리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목적으로 나의 행실을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세상 창조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전능하심은 나타나셨다.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히1:10)”. 이처럼 태초에 주님께서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에 즉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만물이 그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골1:17). 


또한 주 하나님의 본성 안에 인자하심의 근원이 있음을 알자. 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주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자비 하시며”, 그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그를 찾고 그에게 호소하는 모든 자들에게 “인자 하심이 크시도다”(시145:8).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주시려고 하시며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용서해 주시려고 하신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향하여 모든 성도들이 영원한 할렐루야가 찬송될 것이다. 내 평생 사는 동안 하나의 자비가 끝나는 것이 다른 자비의 시작인 것과 같이 하나의 감사가 끝나면 그것이 다른 감사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쉼 쉬고 있는 동안 나의 입이 하나님의 감사와 영예를 끝까지 말하고 살아가자! 호흡이 있기 때문에 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우리 호흡의 향기가 된다. 또한 우리는 은혜의 시대 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유익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나아져야만 한다. 어떻게 살면 삶의 최상이 되는 복음에 입각한 삶을 살수 있을까? <복음>은 천박하거나, 헛되거나, 가혹한 것이 개재될 수 없다. 
교회는 성서와 정직한 사역자들의 설교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다니엘 7:1-8). 그리고 사역자들은 그들의 설교에서 기록된 사건들의 대략(요지-要旨)을 진술해야 한다.


세상은 흉흉한 바다이고 바람은 거대한 동요를 일으킬 것이다. 지구상에는 네 개의 바람이 패전을 다투고 있다. 미래에 어떤 폭동이 일어날 것인가? 이런 것이 바람 속의 전투처럼 난폭하게 싸우고 있는 세상, 열왕들의 전쟁이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이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은 사탄들(즉 세상 통치자 및 위정자들)의 교만한 야심들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이 본 네 짐승(사자, 곰, 표범, 로마제국)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추호도 믿지 않는 세상권세들 (유럽, 북미, 러시아)과 랍비(유태인)들이 손을 잡고 세상 부(富)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결국 네 번째 짐승의 죽음에서 우리는 “오, 주여! 주님의 모든 적들은 멸망될 것이며, 주님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아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교회의 교만하고 잔인한 적들은 분명히 머지않아 심판을 받아 낮아지게 될 것이다. 


<복음>의 선포에 의해서 이세상 안에 세워진 <메시아>의 나라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이세상으로 오시며, 그의 성령으로 통치하시기 위해서 또한 그분의 모든 성도들은 “주 하나님을 위해서 왕과 제사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유의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감추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자와 목회자들은 주 하나님의 일들을 자기 마음에 쌓아두고 그것을 잘 소화하는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필요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으로 즉시 표현하려면 <복음>을 우리 마음에 항상 갖추어 두어야 한다. 항상 부유함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은 누가 그 부(富)를 거둘는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부가 누구의 것이 될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자비를 구하려고 하는 자는 자기 죄를 먼저 회개 해야만 할 것이다. 재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귀를 열어, 그들의 죄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훈계와 명령을 듣게 하신다".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고, 그 진리의 능력과 권위에 복종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잘못된 길로부터 되돌아올 것이다. 재난 가운데 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속박 하시는데도 부르짖지 아니하는 자들은 죄에서 떠나거나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 곳곳에 재난과 재난이 계속되는 현 세대에 <우리가 녹지 아니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계속 풀무 불에 가두고 그 풀무를 살피셨으니, 풀무를 더욱 뜨겁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무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깊은 생각(숙고)의 부족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행한 봉사에서 교훈을 배우고, 들을 수 있음에 대해 주 하나님에게 감사하자. 


<재난>은 마치 풀무 불 속에 있는 은이 불순물에서 정제되는 것처럼, 저들을 시험한다. <재난>은 마치 헛간 속에 있는 밀이 키질되어 까불러지는 것처럼 그들을 깨끗하게 만든다. 


또 <재난>은 마치 더러운 옷이 세탁에 의해서 깨끗해지는 것처럼 저들과 그들을 희게 만들 것이다.


“진리는 위대하며, 결국은 승리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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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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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9
복음과 사역과 기도(6)

 

 

(지난 호에 이어)
 세상은 때때로 영적 축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 세상의 큰 부(富)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처럼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이 넉넉하다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나는 넉넉하다,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이 다른 사람의 겸손한 친절을 이용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어리석게 다른 사람의 관용에서 자기의 이익을 취득해서도 안 된다.


또한 서로 불화했던 믿음의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 회복되어 화목하게 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참으로 축복이고 즐거움이다. 우리의 신앙이 사람들로 하여금 관대하고, 마음이 자유롭고, 인색하지 않고, 유치하고 간교한 일을 경멸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 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것은 복음 안에 있는 깨(깨닫고), 충(충성하고), 사(사랑함)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불화 했었던 믿음의 형제, 자매와 화해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그 우정을 더 개발하고 서로 겸양하여 더욱더 예의를 갖추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들 자녀의 짐은 때때로 장성 하자마자 우리에게 근심 거리가 되는 때도 있다. 신앙심 깊은 부모들이나 사역자의 자녀들이 비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괴로울 때, 그것이 자기들 만의 유일한 경우이고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한 사람은 놀라서 아무런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기 마음의 평화를 묵묵하게 지켜나간다. 아니면 <다윗>처럼 실수를 범할까 두려워서라도 그러한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시39:12).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어긋남에 침묵의 한계를 넘어서도 안 된다. 그들 앞에 <정직>함을 보이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교육인가! 부모의 권위가 가정에서 실추되면, 잘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집안 식구들은 각자 규칙을 지키고, 자녀들은 모든 중요한 일에 복종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항상 우리의 감사와 봉사는 주님의 은혜에 합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도록 했다. 사도<베드로>는 좀더 높은 사랑의 차원을 향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자고 말하고 있다. 


우리 크리스천은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벧전1:22), 율법 아래서의 레위인들의 정결케 함이나, 그 밖의 사람들의 위선적인 정결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복음>은 영원한 진리로 존속하여 거듭(중생)난 사람들의 심령에 영원토록 살아남게 된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마음은 복종의 가장 가치 있는 보답이다.

우리가 주 하나님을 예배하면 할수록 더욱 하도록 허락 받으며 더욱 더 예배하게 될 것이다. 즉 열매를 맺는 나뭇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될 것이다” (요 15:2). 


우리가 돌이켜 보아야 할 사건들 중에 한국 기독교의 참상을 뒤돌아 보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우리의 경제가 비록 지극히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주님의 증거로 우리들의 발을 돌이켰기> 때문에, 또한 신실한 크리스천들은 주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규범으로 삼고 그 규범에 따라 행할 것을 결심 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곁길로 갔던 다른 길에서 돌아와 주 하나님의 증거로 돌이켰다. 그들은 주님의 증거로, 그들의 눈을 돌이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도 돌이켰고, 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참회>를 실행 하도록 주님의 말씀에로 돌아왔다. 그들의 영혼이 주 하나님의 증거와 말씀을 향하여 굽혀지고 기울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복음>에 의해서 다스려지게 되었다. 


그런 연고로 당시에 한국교회는 교회부흥의 횃불이 되었던 참회에서 <회개>로 교인들이 <성도>들로 바뀌는 부흥의 물결을 이루었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천국이 가까워지는, 우리들 앞에 놓여진 <참회하는 반성>으로 결국 경건한 결심을 창출하며, 세상을 향하여 모본을 보이는 <믿음(신앙)>생활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있을 때 우리는 “더 편안한 시기”로 그것을 미루지 말고, 쇠가 달았을 때 때려야 하듯이 신속히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부를 때에 응답 하시는 주 하나님께서는 나의 탄원을 허락하시고, 나의 호소를 판단하시는 주님이시다. 


“주의 긍휼하심으로 인해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훌륭한 간구가 되는 것인 줄 믿는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며,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비밀을 지킴으로”우리는 바른 교훈과 선한 행실을 더욱 더 열심히 지키게 된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견고히 지키는 길은 경건한 믿음을 사수하는데 있다. 그런고로 건전한 믿음 위에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세우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세우자!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는 가장 큰 효험을 얻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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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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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복음과 사역과 기도(5)

 

 

(지난 호에 이어)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짓밟고 주님의 <메시아>됨을 부인하며 또 그의 지체(성도) 들을 만물의 찌꺼기처럼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짓밟는 것은 가장 용서될 수 없는 죄인인 것이다. 


누가 큰 범죄자 일까요? 즉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또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배격하는 죄가 바로 배교자요 범죄자 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확고한 결심을 하고서 우리를 성결케 하시는 유일하신 성령을 멸시하고, 그에게 항거하면 <구원>의 유일한 길이요 영생의 말씀인 <복음>을 멸시하고, 배척하는 것이며, 또한 그들이 이미 배웠고, 인정하였고, 고백하였던 기독교 신앙의 모든 내용을 멸시하고 오만하고 악의 있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큰 <범죄>이고 <죄악>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함께 모이는 교제는 서로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이 교제는 우리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성도의 교제는 꾸준함과 인내를 주는 좋은 방법이다. 이 교제(사귐)를 통해 성도들의 마음과 손은 서로 상대방을 격려하게 된다.


이러한 교제 속에서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을 권고하고 우리가 타락하게 되는 위험과 죄를 서로 경고하며 우리의 의무를 기억하고 또 실패와 실수와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내 자신과 상대방을 깨우치고 서로 방심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경건한 일에 다투듯이” 열심을 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복음의 정신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교제는 “최상의 진심 어린 우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말세의 징조들을 유의하도록 서로 촉구하고 그 날을 좀 더 잘 대비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일과 서로 권면하는 일을 더욱 힘쓰자! 


우리 모두에게 각각 이 시련의 날이 오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임종의 날 이기도 하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 하자”(히10:24).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서로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믿음>이란 무슨 환상이나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해주며 또 우리의 영혼으로 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고무시켜 주는 실질적인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결실이 없고 믿음이 부족한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게 될 것을 경고 해주고 있다. 목자(Pastor)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풀이해 주고 여러 가지 실질적인 문제에 부딪칠 때 필요한 말씀을 적용해 줌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법도 안으로 인도할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역 자들은 자신이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만 하나님의 계율(복음)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사역 자들의 성경 해석은 어떠한 검토도 없이 즉시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을 찾아보고 그리고 사역 자들의 성경 해석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을 때 그 말씀을 받아 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되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능력 있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사역 자들의 말씀 증거를 통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그 증거하는 말씀 속에서 겸손과 온유를 받아야 하고, 스스로 낮춤으로서 겸손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비천한 생각을 이길 수 있다. 


온유함이란 사람이 남을 자극시켜 노하게 하는 것을 꺼려하고, 또 쉽사리 기분 상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그러한 훌륭한 성격이다. 또한 관용과 인내는 공동체 안에서 각 지체들과의 사이에 상처를 받았을 때 복수를 하지 않고 참는 태도를 말한다. 


“사랑으로 서로서로 인내 한다 함은 사랑으로 서로 서로의 약점을 이해하고 참고 잊어버리는 마음가짐이 바로 성령으로 하나되고 하나로 일치되는 아름다운 주님의 사랑 받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복음은 <보배>다. 복음 안에는 매우 귀중한 가치가 충만하므로, 끝이 없고 값이 없으므로 우리의 보배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은 질그릇 이기에 그 속에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되는 것이다(고후4:7). 


우리 마음 속으로부터 맛을 느끼지 않고 단지 복음의 소리를 귀로만 듣는다면,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우리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부지런히 이 보배(복음)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든지 기도하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고, 사랑 안에서 기도하고, 의심함이 없이 믿음으로 기도하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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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nkyu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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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4
복음과 사역과 기도(4)

 

 

(지난 호에 이어)
하나님께 참된 예배 드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항상 차이점이 있게 마련이다. 거짓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성도답게 신실하게 예배 드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바리새인과 같이 자기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예배 자도 있을 것이요, 또 세리와 같이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전인격을 아름다운 것으로 받으셨고, 그 다음 그의 제물을 믿음에 의해 드려진 것으로 받으셨다. 만약 우리의 인격과 제물이 열납 된다면 그것은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아벨의 제사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기록 가운데서 첫 번 본보기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이 인간의 타락이고, 완전히 두절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자비>다.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달려야 하는 경주가 있다. 그것은 <섬김>의 경주요<고난>의 경주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코스>는 복종인데 우리는 능동적으로 때로는 수동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믿음과 인내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은혜다. 그러므로 믿음과 인내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생생하게 역사 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으로 잘 달려가게 격려하고 또 원기를 북돋아 주는 전능하신 분, <주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습니다. 주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시작과 끝이시며 보상자 이심을 명심하자! 


늘 주님을 바라보며 생각하자! 사역자(교역자)들은 주하나님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그들은 충성을 다 해야 하며, 열심해야 한다. 교역자들은 주님께서 고용한 사역자들이며 주님은 교회의 이익을 위하여 그 교역자들과 사귐을 가지고자 영적인 영향력을 구사하고 계신다.


일반적으로 성령은 목회를 통해서 활동하시며, 목회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주하나님의 손이 이 양자(목회와 성령)를 모두 지탱해 주신다. 우리 성도들은 알맹이 있는 믿음생활, 영혼이 꽉 찬 신앙생활, 실재가 있는 내용물이 차있는 믿음생활, 거룩한 욕망으로 채워진 기도생활, 참된 자비에서 우러나온 구제생활, 주일은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참된 봉헌이 드려지는 신앙생활인지, 내 자신을 돌아보고, 처음에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환영하였던가를 기억하자.


우리는 때때로 내 자신이 알고 있는 바가 적다는 것(부족함)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욱 나아지게 될 것인가! <사역자들은 비난 들을 수밖에 없는 악한 일들을 하지 않음으로 적대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더욱더 돌이켜보아 결코 흠 잡힐 것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아마도 반대와 비방은 피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때때로 타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진리에 대적할 것이며, 수시로 사역자들과 진리를 고백하는 자들을 비방할 것이다. 


“축복은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향하여 쫓아갔으나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을 <야곱>에게 주시고, 유대인들은 <에서>와 같이 의의법(율법)을 추구하여 축복을 놓치고 말았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되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야곱>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에 대한 믿음으로 그것을 추구하고, 강제로 그 축복을 획득하였다.


 “선한 길을 따르는 사람은 언제나 선한 보호자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평안한 속에 있을 때는 시련을 겪게 해주시고, 시련에 직면할 때는 이전의 경험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게 해주신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에 의하여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다른 사람에게 공평하고, 관대하며, 온유하고, 겸손한 행위로 대하여야 할 이유들을 본보이고, 반드시 사람들과 사회의 품성을 높이는데 유익한 말들로 생활 속에서 <삶의 구원>을 실천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도>일까!


옛날에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관용과 따스함으로,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온유한 성품을 지니고, 그 온유함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야 하고, 대접함으로써 전도의 문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라! 복된 자여!”라는 분깃을 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끝 날에 복된 업을 누리며 택함 받은 자 가운데서 분깃을 누린다는 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분깃에 만족하고 주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살아가자! 주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안에서, 어떤 직업이나 조건을 우리에게 주셨던 간에 우리 자신을 거기에 적응시키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높은 일들을 바라지 말자”. 


높은 직위의 수치보다, 비천한 위치의 신뢰가 더욱 중요하고, 아름다운 <덕>이 되는 것이다(安分自足安心立命). 지혜 있는 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주 하나님의 사랑의 영향을 받고, 지배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빛에 의해서 조명 받게 될 것이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더 없이 겸손하고, 공손하게, 말과 행동으로, 우리 자신을 나타내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시겠다는 말씀은 그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님께서 확실히 말씀해 주신 그의 재림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속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길이 참고 견디게 해준다. (빌4:5).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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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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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복음(福音)과 사역(使役)과 기도(祈禱)(3)

 

 

(지난 호에 이어)
노여움은 인간을 극도로 어리석게 만들고, 사나운 짐승과 같은 사람으로 만든다. 우리는 노여움의 코에 고리를 끼고 그 턱에 재갈을 물릴 필요가 있다(삼상20:33).  


극도의 노여움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노한 마음을 가지고 멸시하는 말을 아무 말없이 겸손히 받아 들인다는 것은 자기를 매우 낮추는 지혜로운 <겸손>이다. 


“네가 혐의를 받았을 때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이 있다. 교회를 치리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이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이 악한 죄를 지어 성령을 슬프게 하고 이를 막아 버리면 성령은 그 사람을 떠나고, 그를 위해 애써 주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부리신(일하는)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한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사악한 생각을 하거나 사악한 길로 계속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자신을 기만하는데 불과하다는 점을 유의하자. 죄에 대해 진정으로 슬픔을 표시하지 않고 죄에 대한 진정한 굴욕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금식이 아니고 가장된 신앙인의 거짓 금식기도가 되지 않을까.


신앙인의 과시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리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신앙의 본질>없이는 어떠한 기도도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 가족과 친족이 몰락 하는데도 돌아보지 아니하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딤전5:8).


우리는 불쌍한 청원자가 우리를 찾을 때 그를 회피하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또한 자비와 동정의 대상이 나타날 때 딴전을 피워서도 안 된다. 그들은 우리의 살 중의 살 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잔악한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의 자비로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베풀어 주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먼저 다른 사람을 사랑해 주는 일을 우리자신의 규범으로 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참된 지혜는 그 행하는 일로써 알려진다. 즉 <선행>은 전 인격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참된 지혜는 영혼과 성격이 온유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라(야고보서3:13).


다른 사람의 노함을 끈기 있게 참고 견디는 것은 지혜가 있음의 훌륭한 증거다. <지혜는 온유함을 낳고 온유함은 지혜를 더해준다> 


사역자들의 사역이 실패로 끝나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교우들 모두의 실패가 되고 그 손실은 교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주님! 우리는 죄악에 있어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어야 되지만 진리를 깨닫는데 있어서는 성인으로 성장하여야 하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를 지나고 청년과 같은 상태를 벗어나 성인이 된 상태의 단계에 이르게 되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로 인해 주어진 생명을 유지해 주는 음식이며 자양분이다. 


우리는 새로 태어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젖을 사모하며 자라도록 해야 될 줄 안다.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 교인들이 목회자들에게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의무다. 사역자들은 교인들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교인들이 사역자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 할수록 그들의 사역에서 얻는 유익이 많아질 것이다. 교인들은 자신들을 가르쳐 주는 사역자들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여 가르쳐 주시겠지만, 우리는 그들로 용기 있고, 현명하며, 열성적이고, 사역에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 해야만 한다. 


또한 사역자들이 유혹 받을 때에 물리칠 수 있는 강한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사역자들은 모든 일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선한 양심으로 양들을 위하여 치리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큰 목자요 사역자들은 주님께 예속된 목자들인 것이다. 


“신앙은 인간들에게 가장 진실한 예의와 훌륭한 교양을 가르쳐 준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 말씀 속에서 자족의 의무를 권고 받고 있다.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진 자를 시기하여 세상의 부를 모으려 하는 지나친 욕망의 <죄>, 즉 <탐욕>의 죄를 제압하고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뿌리를 뽑아버린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또한 우리는 현재의 환경에 만족할 줄 알고 현재의 형편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환경이 향상되면 인간의 욕망도 역시 높아지기 때문에 탐욕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크리스천들은 환경과 욕망을 억제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제단이 되시며, 제물도 되신 주님 앞에 늘 깨어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주 하나님의 자비에 내 자신을 맡기는 신앙생활을 하자! 


이 세상에서 나의 모습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아서 이리 저리로 흔들리며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위기 가운데 존재한다. 즉 나의 영혼은 <배>와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줄 튼튼하고 견고한 <닻>을 필요로 한다. 


바로 <복음>이 주는 소망이 나와 우리의 <닻>이다. 그러므로 복음이 주는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하며, 확실하고, 변함이 없으며, 은혜를 통해서 주어진 아름다운 소망이 되는 것이다. 


복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만큼 견고하고, 이 소망은 영원한 반석이신 주 예수가 내려준 <닻>이다. 왕 중의 왕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는 우리 신자들의 열매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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