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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 김수잔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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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 김수잔의 시

부동산캐나다의 칼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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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2017
김수잔
66723
9201
2018-07-09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2)-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바티칸, 2018년 6월 7-20일

 

▲몬세라트 수도원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 검은 성모님 성당에서 수사 신부님들의 거룩한 성무일도 기도와 어린이 합창단의 천사 같은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행복한 미소가 나온다. 성모님께 간절한 전구와 함께 침구한 후 오가며 버스 안에서 성무일도 후 부른 성가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소성당에서 합창할 때 은총의 눈물이 절로 뺨을 적셨던 시간.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의 거룩한 발자취에 회개와 환시로 그리스도께 자기를 바치겠다고 기도한 지하에 가서 우리 모두는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르셀로나에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둘러보고 웅장한 석조건물 안 밖에 풍부한 성서내용 조각에 할 말을 잃었다. 아직 미완성이라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 완공될 예정이라는데 그 때 다시 가보게 될까 생각에 젖어보기도.

 


이탈리아

 


아~~ 카톨릭 신앙의 중심지, 어머니인 곳, 해가 지지 않는 로마, 로마의 거룩한 4대 성당을 성베드로 성바오로(하나이오,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로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셔서 사도로 계승되는 교회의 일원임이 참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산타 마리아 마죠레 바디칸 성베드로 대성당의 그림과 조각품들.


무딘 머리로선 숭고한 사랑의 극치에 이른 예술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미켈란젤로 천재의 그림을 쳐다만 보는데도 고개가 부러지는 듯 했는데 그의 고개 뼈가 비뚤어 졌다는 것이 당연하리라. 절로 고개 숙여지며 어떻게 그 숭고한 유산에 감사를 드려야 할지요. 신앙을 지킨 증거인 유해가 담긴 카타콤베을 봤을 때 신앙의 유산이 얼마나 중요한가 깊이 머리 숙여졌다.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성인의 회심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린 예수님의 팔과 그의 팔에 윤곽 없는 얼굴을 배경으로 한 기쁨에 찬 가난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묻힌 땅에 소박한 제대에서 거룩한 파견 미사로 양 영성체의 성체성사 사랑의 시간을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은총의 순간을 작은 머리로 더듬으며 가슴에 쌓이길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가슴 깊이 감사 올립니다.


뜨겁던 은총의 시간 식지 말고 다 표현 할 수 없는 무딘 이 마음이나마 모든 것 주님께 봉헌하며 이제는 티끌보다 작은 자신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세상에 파견되어 받은 은총을 함께 나누는 시간 다시 알려 주심을 가슴으로 느껴옵니다.


프랑스의 문명이 유유히 흐르는 세느강 처럼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듯 로마의 자존심 중심부를 흐르는 테베르 강물처럼 그간의 은총의 시간이 끓임 없이 가슴으로 흐르면 합니다.


순례를 함께 한 형제자매님들 함께 숨 쉬고 지냈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보잘것없는 저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하늘이 있는 곳,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곳, 하늘에 닿아 있는 곳에 데려다 주셨는지요!


주님은 찬미 영광 받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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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2017
김수잔
66634
9201
2018-06-28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상)-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바티칸, 2018년 6월 7-20일

 


 46명이란 큰 그룹의 성지 순례단이 영적 지도 김영현 요셉 신부님을 모시고 윤정준 율리아노님의 순례 안내로 2주간의 성지순례가 꿈같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집에 오자 그간 밀린 잠과 피곤으로 9시간을 푹 자고 나서 멋진 테이블에 차려있는 호텔이 아닌 아담한 우리 집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나니 정신이 좀 들면서 그간 은총의 시간에 무딘 글이나마 몇 자 써봅니다.

 

 

 

 


주님, 당신께서 하나하나 이끌어주신 순례의 안배였음을 깊이 감사 올립니다. 가는 성지마다 거룩한 장소에서 정성껏 바치시는 미사에 양들을 사랑으로 한데 모으시는 김영현 요셉 신부님의 넓고 깊으신 강론 말씀은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 조용하신 성품으로 순례 일행의 든든하신 울타리가 되셔 따뜻한 분위기로 늘 이끌어 주신 영적 아버지께 감사 드리며 이제부터라도 제 꼴값을 조금이라도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천백 번 결심을 해도 모자라지만 은총의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윤정준 율리아노님의 순례 안내는 전에도 그러셨지만 (바로오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터키 그리스 함께 했음) 이번에 또다시 깊이 느꼈습니다. 가슴에서 퍼 올리는 신덕이 높은 사랑과 박식하고 풍부한 영성으로 가는 곳마다 적절한 설명과 아직도 뜨거운 열정으로 능숙하신 리더쉽 멋졌어요.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이 가슴을 울렸고 눈물과 땀방울 함께 하며 하나하나 가슴에 심고 싶었습니다.


유월의 찬란한 햇볕에 꽃들도 눈부시게 피었고 푸르디푸른 신록도 저희와 함께 호흡하는 걸음마다 은총의 시간을 주셨음에~~


우리 순례자들은 짜인 스케줄에 힘들지만 서로 돕고 위하면서 피곤하지만 얼굴은 나날이 주님을 향한 은총의 빛 사랑의 미소로 묵주기도 바치면서 촛불행렬 때 수많은 촛불처럼 빛났습니다. 세상에 지하 성당이 어쩜 그렇게 웅장하고 큰지, 또 모든 것이 거룩한 모습이고 우리 성가대가 멋지게 성가를 불러서 가슴이 뿌듯했던 시간 감사합니다.
신부님들 행렬에 서셨던 우리 김요셉 신부님을 보자 눈물이 펑 나오면서 제일 환하고 멋지고 빛났어요. 힘이 되어주신 우리 요셉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프랑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와 오클레앙의 잔 다르크 성인의 맑은 영혼이 주는 감동.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노트르담의 웅장한 대성당에 가는 날 30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도 힘차게 걸었고 파리의 성모 뤼뒤박에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신 사건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저희를 위하여 비소서, 라는 금빛 글자가 쓰여지고 성모님의 목소리로 몸에 거는 사람은 은총이 내려질 것이다' 기적의 메달과 기도.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의 한국 진출에 관해 비디오로 자세한 설명을 들었고 또 그곳에 3년간 사목하셨던 고 마테오 신부님을 다시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과 성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총 18번 나타난 발현 장소 루르드의 동굴 성모님 앞에서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땅에 입맞춤하고 퍼붓는 은총의 비를 흠뻑 맞으며 간절한 기도의 시간~


도착하자 벌써 비가 많이 내렸고 그 이튿날까지 퍼붓는 비에 침수로 취소되어 좀 아쉬웠지만 마음으로 다 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정화와 생명을 일컫는 기적의 물을 틈만 나면 호텔에서 달려가 비가 와도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얼마나 퍼마셨던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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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잔
66212
9201
2018-05-29
레일라와 클로버?

 
레일라와 클로버 

 

 

 

애견 레일라(Layla)와 산책길에
클로버 풀밭을 지나는데 레일라가 
흔한 세 잎 클로버 옆자리에
두 개의 네 잎 클로버 위에
얌전히 큰 볼일을 봐서
준비된 봉지에 담고는
참 이상하다 하고는
계속 걸어가는데
또 큰 것을 하기에
레일라의 똥 옆을 우연히 보니
5월의 싱그러운 다섯 잎 클로버였다.

 

아무렴, 믿지는 않지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세 잎은 사랑 희망 신앙에서
네 잎은 행운과 
기적 소원성취라는
다섯 잎 클로버도 만나게 해 준 
오늘 레일라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엊저녁 식탁에 오른
생선냄새에 목이 아프도록 쳐다봐서
덥석 주었더니 큰 것을 두 번 하면서
갖가지 클로버 잎을 보여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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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잔
66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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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당신에게로 가는 길

 
당신에게로 가는 길

 

 

 

당신은 
곱게도 무르익은 봄날을 택해
평화롭게 먼 길 떠나셨지요
그렇게 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데
아무 일 없이 새봄은 제자리에 찾아 왔다오.

 

영원히 당신과 이별하던 날
당신 없이 잠시도 살 수 없는 슬픔에 
몸부림쳤는데
나는 살아 있어 새봄을 맞았고
먼 길 떠난 당신을 영원히 볼 수 없지만
내 마음 안에 함께 숨쉬기에
가슴에 영원히 간직한
당신은 오직 내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재란 생각 안 할래요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날 테니
하루하루가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가까워지는 오늘입니다.

 

당신이 예뻐한 로빈이
오늘은 창가에 앉아서 두리번한데
아마도 당신을 찾는지, 그래서
당신 없는 이번 봄은
너무 쓸쓸합니다.

 

함께 가꾸며 즐겼던 정원에
복숭아, 앵두,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당신만 없구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당신과
식탁에 앉으면 늘 함께 바라보고 즐겼는데
혼자서는 통 재미가 없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울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당신 몫까지도 함께 즐기며
당신을 만나는 그날까지
힘내고 용감하고 감사하게 살게요
그래야 당신이 좋아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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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2017
김수잔
65864
9201
2018-05-09
민들레 친구


 

 

 대부분이 노란 꽃 개나리, 프리지아, 수선화, 노란 장미는 좋아하면서도 노란 민들레 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민들레는 생명력이 강해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좋은 땅인 정원의 예쁜 꽃 옆에도 또 잔디 사이에도 불쑥불쑥 불청객으로 자라는데 사람들은 잡초라 하여 ‘우리 꽃밭에 또는 우리 파란 잔디 사이에 왜 귀찮게 나와 있니’ 하면서 뽑아버린다


뽑힌 민들레는 무참히 쓰레기통에 벼려지기도 하고, 건강식품으로 새콤달콤한 무침이나 살짝 익혀 나물로 식탁에 올려져 맛있게 먹기도 한다. 뽑히지 않고 제대로 자라면 동그랗고 샛노란 미소를 보여 주는데, 한사코 잡초라 천대를 받는 민들레다.


그렇게 귀찮아하면서도 몸에 좋다 하여 잎도 꽃도 뿌리까지 캐어, 정하게 말려서 건강 차를 만들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소화불량도, 관절질환도, 인체에 노화도 막아주는 항산화제 역할을 하는 비타민이 들어 있다니, 뿌리는 간과 담의 질환 치료에 서양에서도 일찍부터 사용해 왔다는 민들레는 쌉쌀한 쓴맛이 나른한 봄에 입맛을 돋워주는 나물로 많이 먹어주는 것이 웰빙 중의 웰빙이 될 것 같다.


나는 민들레 꽃을 볼 때마다 아련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고향을 그리며 옛날의 그리움에 젖는다. 민들레가 피던 들판에서 친구들과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뛰놀면서 토끼풀 꽃처럼 꽃 반지, 팔지도 만들어 서로 끼워주고 어깨동무하며 나물도 캐던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 오기 때문이다.


샛노랗고 쪼개 한 예쁜 얼굴에도 나이가 들면 노란색이 점점 엷어져 가면서 눈 깜박할 사이에 호호백발이 되는 과정이 꼭 짧은 우리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척박한 땅에 떨어져도 억세게 사는 모습과 어떤 놈은 호화롭게 영양이 많은 정원에 떨어져 쑥쑥 미끈하게 잘도 커가는 모습이 부잣집 자식과 가난한 집 자식 같은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던 가꾸지 않아도 열심히 자라서 똑같이 호호백발로 충실하게 수많은 자기 자손을 퍼트리는 민들레를 볼 때마다 많은 교훈을 얻는다. 어떻든 꽃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민들레와 언제부터인지 나는 사랑을 나누고 싶어졌다. 늦은 봄바람이 솔솔 부는 날이면 수많은 민들레 씨앗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정착을 하는데 어떤 것은 수천 리도 날아간다니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약속처럼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낯선 곳으로 별처럼 많은 자손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순종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같아서 보잘것없는 나도 욕심을 버리고 너처럼 가볍게 주님 말씀을 많이 뿌릴 수 있다면 하고 부질없는 마음으로 또 그렇게 해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에 젖어 보기도 한다.


 그러려면 내가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야지, 아니 멀리까지 가지 못해도 가까이에도 많이 뿌리고 잘 가꾸면 언젠가는 말씀의 열매를 맺을 날이 오지 않을까.


꽃밭에 덤쑥 덤쑥 섞여 있는 널 볼 때마다 하잖은 것이라 별 생각 없이 외면 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닌 것 같다. 방긋이 웃는 얼굴로 나를 정답게 의미 있게 또 사랑을 고백하는 것 같아서 볼수록 귀엽게 보인다. 그래서 시인들은 일찍부터 너를 알아보고 봄 향기 노래가 흐르는 너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나 보다.


민들레야! 나도 이제는 너의 친구가 될 거야, 담장 밑 돌 틈에서 햇살을 향해 겨우 잎을 내밀고 자라면서도, 어느 날 까꿍~ 하고 노란 얼굴 환하게 내밀며 오직 당신을 위해서 피어났다는 사랑 고백을 어찌 외면할 손가! 이제부터 나는 너를 귀하게 여기는 너의 봄 친구가 되련다.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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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2017
김수잔
65742
9201
2018-04-26
봄비 속에 왈츠

 
봄비 속에 왈츠
 

 

 

앙상한 나뭇가지를 어루만지고
마르고 딱딱한 대지에
살포시 입맞춤하여

 

조금씩 조금씩 부드럽게
안아주고 안기는
천사 같은 그대는

 

일으켜 세우고 키우고
꽃을 피워주는 귀한 생명에
은은한 입맞춤과 다정한 포옹 

 

신비한 은빛 빗줄기는
새 생명이 태동하는 봄비 속에 왈츠로
찬미 안에 자연과 하나가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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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2017
김수잔
65513
9201
2018-04-12
로빈(Robin)

 
로빈(Robin)
 

 

 

 

창가를 톡톡 두드린다
붉은 가슴의 동그랗고
앙증맞은 로빈(Robin)이 왔다
해마다 봄을 알리는 로빈이 제비같은 철새로
우리 정원에 날아와 친구가 된 지 오래다.

 

네가 날아오면 봄이라 반갑고 
이층 처마 밑에 둥지를 틀려고
가까이 오는 널 보면 정말 사랑스럽고
캐나다 수십 년 세월에 정이 푹 들었다.

 

올봄은 왜 너를 보니 아리고 쓸쓸할까
매년 찾아오는 똑같은 울새인데
나 혼자서 너를 맞이해서일까
내 혼자라는 것 때문일까.

 


-2018년 3월 어느날, Robin이 쌀쌀한 봄날씨에도 우리집에 처음 날아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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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2017
김수잔
65296
9201
2018-04-01
불러 봅니다-Ich ruf dich an

 
불러 봅니다

 


 

볼일도 없으면서 곁에 있으려니
무심코 여보 당신을 불러댄다
전에 느껴 보지 못한 애절함
지금은 너무 그립다, 여보 그 이름

 

내 하는 일마다 자상한 배려로
어딜 가도 같이 가자던 그대
그렇게 함께 보낸 그대와의 세월 

 

좋아도 슬퍼도 늘 부르던 여보를
부를 수 없다니 이리도 허전할 수가
대답 없는 허공, 썰렁한 온집안

 

여기저기 함께 했던 우리 흔적들
내가 좋아한 흑백사진 속 젊은 여보는
웃고만 있구려, 그만 웃어요, 난 울고 있는데
그립고, 보고 싶어, 부르고 또 불러봅니다.

 


<독일어 번역>

 


Ich ruf dich an

 

 


Ohne Bedingungen werde dich dort sein


Schatz, ich rufe dich an. Eine Stimmung,

die ich nicht fuhlte Ich vermisse es jetzt so sehr,

Schatz Name Mit Sorgfalt sorge mich Mochte, dass du dahin gehst, wohin du auch gehst


Zeit mit dir Schatz, gut und traurig.

Ich kann dich nicht einmal anrufen.

Nicht reagierender leerer Speicherplatz Unsere Spuren hatten wir zusammen Junger

Schatz in meinen Lieblingsschwarzweiss-Fotos Lach einfach, hor auf zu lachen,

ich weine Ich vermisse dich,

vermisse dich, rufe dich wieder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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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2017
김수잔
65210
9201
2018-03-28
간장 소동(2)(잊지 못할 독일가정 인연에서)

 

(지난 호에 이어)
옛날 가난한 부부가 조기(생선) 한 손 사다 천장에 달아놓고 한번 쳐다보고 밥 넘기고 하다가 부부 싸움이 일어났는데 남편이 조기를 한 번 더 쳐다봤다나. 독일 음식 먹기 싫을 때 한국 양념 생각하고 군침을 넘기면서, 느끼한 독일 음식을 목으로 겨우 넘기며 유난히 힘들어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질금질금 울기도 했다.


 가까운 가게에서 국수와 캬베추를 빨리 사왔다. 그 삼사십 분 동안 국수를 삶아서 양념간장에 비벼먹고 싶었다. 부엌에 보니 간장은 조금 있었다. 조그마한 병에 든 것인데 몽탕 부어도 거짓말 조금 보태어 병아리 눈물 정도의 양에 가지고 온 양념을 진하게 넣어 삶은 국수에 초스피드로 비벼서 먹으니 얼마나 맛있는지 꿀맛이 따로 없었다. 


두 노인네가 낮잠에서 일어나기 전에 끝내야 하니 그야말로 꿀맛 같은 국수를 즐기지도 못하고 빨리빨리 먹어 치웠다. 흔적 없이 설거지를 말끔히 하고 멀리서 지켜보니, 그들이 일어나다 킹킹 냄새를 맡는 큰 코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베로니카, 수산나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그들 앞에 대령하니 너희들 무엇을 했기에 이상한 냄새가 이렇게 진동하느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머무적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국 음식 해먹었다고 말씀했더니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그래 잘 했다고 웃고 넘어갔다.


그 후 며칠이 지나고 저녁을 먹는데 독일 채소 수프가 나왔다. 간장, 마기(Magi)를 찾는 것이다. 할머니가 부엌으로 가서 자기가 놔둔 곳에 아무리 봐도 없으니 이상하다, 간장 병 못 봤느냐? 찾느라 그야말로 여기저기 뒤적이며 간장 소동이 났다. 발도 없는 간장이 어디 갔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 음식 만들 때 사용해 버렸다고 했더니, 특유의 독일말로 Mein Gott (Oh My God)을 연달아 하시면서 그 많은 간장을 한꺼번에 다 먹다니! 우리는 그 간장을 몇 년째 쓰고 있는데 하시며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병아리 눈물만큼인 간장을, 얼마나 우습고 미안하고 황당한지. 그들의 음식문화와 우리 문화가 다르다고 말씀을 해드리니 고개를 끄덕이긴 하셨다.


 미안해서 다음날 한 십 년은 잡숫게 제일 큰 병의 간장을 골라 사다 놓았다. 물론 그들도 간장이 아까워서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그분 말씀이 그렇게 많은 간장을 한꺼번에 다 먹었다는 그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간장으로 간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 떨어뜨려 간장 맛 즉 맛 (flavor)'으로 사용했다.


 그때 우리의 짧은 독일어로 우리나라의 양념과 간장 사용량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고, 한바탕 웃고 재미있었던 저녁 식탁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후 친구와 나는 진씨 댁 추억에 독일 간장(Magi)을 볼 때마다 진씨 댁 간장 소동이라 이름 지었다.


 그 댁은 무슨 물건이든 다 오래된 것뿐이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가 기차 타고 그 댁 가까이 정거장에 내렸더니, 우리 소식을 받으신 진 신부 아버님께서 자전거로 우리를 마중 나오셨는데, 자전거가 하도 낡아서 우리 둘 가방을 싣고는 30분 거리를 할아버지와 함께 천천히 걸어서 집까지 가는데 두 가방이 넘어질까 두려워 뒤에서 진땀을 흘렀다. 


 집에 도착해서 하시는 말씀이 자전거가 30년이 되었는데 학교 선생님으로 그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셨단다. 오래된 것이라 짐을 실으니 바퀴가 잘 안 돌아가서 집까지 오는 데 힘이 좀 드셨다는 말씀을 듣고 우리는 얼마나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리고 독일이 아주 잘 사는 나라인데 그런 물건을 버리지 않고 사용한다는 그 정신에 우리는 또 놀랬다. 그 당시 우리나라가 몹시 가난했지만 그렇게 낡은 자전거는 처음 보았다. 도착하는 날부터 긴장으로 짧은 독일어 실력에 소통도 원만치 못했고 이래저래 그들과 말수가 적어 두 노인은 또 걱정이 되어서 우리들의 기분을 맞추려고, 시골이니 큰 도시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Oberhausen 이란 큰 도시를 보여줬다. 독일 가서 처음으로 큰 도시 구경을 한 것이다. 


부엌물건 음식 만들 때 저어주는 나무 주걱이 반달 모양이라 원래 모양이 그런 줄 알았더니 주걱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초승달도 반달도 상현달도 있어 물어보았더니 초승달 모양의 주걱은 30년 넘은 골동품으로 닳아서 반들반들했다. 독일 사람들은 버리지 않고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검소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처럼 알뜰한 나라와 가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앉아서 쉬면서도 아프리카에 보낼 뜨개질을 열심히 하시는데 상처에 감아줄 붕대를 목화 실로 뜨시는데 적당한 길이의 붕대가 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있는데 수십 개가 모이면 보낸다고 하셨다. 알뜰하게 살림을 하시고 절약한 돈으로 가난한 나라 즉 후진국으로 미션(mission)으로 보내시는데 그 당시 아프리카 우리나라 등 여러 나라를 꼽으셨다.


 얼마나 감격했고 감사했는지, 입던 옷도 쓸 만한 것 골라 깨끗이 빨아서 보냈다고 하시는데, 구제품 받아 입었던 옷 생각을 하니 이런 가정에서 보내준 것임을 다시 알게 되었고 두고두고 본보기가 되는 거룩한 성 가정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었다.


두 노인은 오래 전에 천당 가셨는데 잊지 못할 은인, 그 가정에 고마운 마음과 착하고 희생정신과 참사랑으로 남을 도우며 사셨던 그들의 깊은 신앙을 본받고 싶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주소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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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잔
65099
9201
2018-03-22
간장 소동(상)-잊지 못할 독일가정 인연에서

 

옛날 독일에서 지냈던 생활로 돌아가 본다. 그곳에서 공부할 때 두어 번 독일 가정에서 여름 방학을 보냈던 이야기다. 여름 방학이 되면 특별히 갈 데가 없는 외국 학생들에게 학교 측에서 독일 풍습도 배울 겸 독일가정을 알선해 주기도 했다.


나는 친한 친구와 한국에서 같이 독일로 갔기 때문에 무엇이든 둘이서 함께 행동했는데 휴가간 독일 가정은 그 댁의 큰 아드님이 한국 내 고향 본당 보좌신부님으로 계신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시면서 학생들과 한국말 대화를 하시려고 무척 노력하시던 중이었다. 


그때 친구와 내가 함께 독일에 가게 되었다니까 우리에게 독일어를 조금씩 가르쳐 주셨고, 신부님은 준비하신 강론이나 다른 문장들을 우리에게 읽어 보고 어색한 부분을 좀 봐달라고 하셨다. 마침 내 친구는 공부를 잘 했고 국어 실력도 아주 좋아 말도 조리 있게 문장 능력도 뛰어나게 글도 잘 썼고 문학 소녀로서 나도 친구 덕분에 독일어를 배울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어떻게 진씨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독일 성씨 Timpte 가 진씨를 선택해서 진 토마스 신부님이다. 독일 가면 우리 양친 집을 꼭 방문하고 또 방학 때면 신부님 양친 집에 가도 좋다고 미리 부모님께 연락하셨던 것이다. 독일 가서 몇 달 후에 주말 몇 번 방문했고 여름 방학을 몇 번 보내게 되었다.


그 댁은 4남매를 키워서 큰아들은 베네딕도회 신부님으로 60년대에 한국선교신부님으로 가셨고, 둘째 아들도 신부님으로 독일 어느 본당 보좌 신부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한국에 계시는 형 신부님의 성격과는 아주 다르게 성글성글하셔서 빨리 친해졌다.


큰 따님은 소아과 의사로 큰 오빠처럼 얌전했고, 사위도 의사였고, 막내 따님도 수도자로서 베네딕도회 수녀님이셨다. 이렇게 모두 훌륭하게 4남매를 키우셨고 어디를 봐도 흩트림 없으시고 신덕이 높으신 신앙생활이며 겸허하신 처신에 조심이 이만저만 아니면서 두 노인을 바라 보기만해도 존경을 넘어서 거룩하게 보였다.


두 분은 학교 선생님으로 어느 스케이트 장에서 만나 열애 끝에 결혼을 하셨다 한다. 첫 방학 때 학교생활이 힘들어서 좀 느슨하게 쉬고 싶었다. 그런데 겨우 통하는 독일어에 꽉 짜있는 그들의 부지런한 생활에 맞추어 지내니 힘들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규칙 생활~ 어려운 독일어 공부에서 벗어나 머리 좀 쉬려고 생각했지만 독일어가 아니면 통할 수 없어 마음대로 농담도 할 수 있는 모국어가 너무 그리웠다. 


휴가인지 수도 생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여유 없는 24시간의 짜인 생활에 머리가 지근거리기도 했다. 숨이 막히는 며칠을 지나고 나니, 조금씩 느껴오는 것이 있었다.


 매사에 배울 것이 참 많다는 것이다. 신부님의 양친인 훌륭한 독일가정에서 외로운 외국생활에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엄격하셨지만 우리를 대할 때는 자기 딸같이 대해 주셨고,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하시던 착한 노부부를 그 후 친구와 둘이 이야기 할 때는 두 분을 독일 진씨 양반 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나면서 우리는 그들의 전형적인 독일 음식, 양념이 거의 없고 소금과 후춧가루뿐인 것에 싫증이 났고, 또 음식 양이 너무 적어 한가지당 일인 한 개씩 돌아가고 사실은 그릇마다 한 개씩 남아 있지만 서로 보기만 하고 더 먹을 수도 없어 한창인 우리는 늘 배가 고팠다.


더 먹으라고 권했지만 어쩐지 싹싹 먹어 치우기는, 우린 손님이고 또 부끄러운 처녀 때가 아니던가. 물론 노 부부는 우리가 배고프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자기들의 양이 적으니 당연히 알 리가 없었을 테지. 나중에 남부 독일 가정을 방문 했는데 그들은 양파와 마늘도 조금씩 넣은 음식을 먹었는데 맛이 딴 판이고 같은 독일 인데 음식이 아주 달랐다.


물론 각 가정마다 음식이 다르겠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남부 독일은 양념을 좀 쓴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꼭 낮잠을 정해진 시간에 대충 30-40분 정도, 그러고는 커피 마시고 간식 먹고 숲으로 산책을 간다.


하루는 내 친구가 더는 못 참겠다고,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서 낮잠을 잘 수가 없다며, 낮잠 자는 틈을 타서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양념은 깨소금 고춧가루 김이 준비되었다. 이 양념들은 우리가 한국 떠나면서 갖고 간 것인데, 기숙사 사감 수녀님이 얼마나 엄격한지 그 양념이 냄새 난다고 해서 감히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다.


 휴가 때 적당히 한국음식 해먹자고 가방 안에 꼭꼭 감추어 두었던 귀하고 귀한, 우리 엄마가 곱게 싸준 토종 한국 양념이다. 고향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을 때는 한국 음식 생각도 유난히 나서 그 양념을 만지작만지작하면서 언제든지 고국 음식 해먹는다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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