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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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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가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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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yoon
윤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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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9
2018-07-16
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6)

 

 

 

(지난 호에 이어) 


스카못지아가 항의했다.


“동무는 어딘가 자본주의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실수했군요, 동무. 동무가 나를 도와줄 의사가 있으시다면, 난 자기 반성을 하겠소.”


페트로프나 동무는 이 솔직한 말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앉으세요, 동무.”


그녀는 엄격한 자세를 조금도 버리지 않고 말했다. “동무의 이야기 좀 들려 주세요.”


“내 이름은 나니 스카못지아요. 나이는 스물 여덟이고 내가 성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공산당원이 되었소. 나는 스쿠터를 판매도 하고 수리도 합니다.”


“스쿠터가 뭔가요?”


그는 주머니에서 자기 사진을 한 장 꺼냈다. 그 사진엔 그가 흰 작업복 차림으로 베스타에 올라 앉아있는 건장한 모습이 보였다.


“이런 것이지요.” 그가 말했다.


“누구든지 한 대씩은 가지고 있지요.”


“정말 재미있군요. 동무의 식구들은 모두 당원입니까?”


“나의 아버지는 레그혼 지구 당원이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오. 누이는 의복 제조업자 노동조합의 세포 조직 지도자요.”


“동무의 부인은요?”


“동무, 내가 결혼한 남자같이 보이나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여자와의 가능성을 두고 무엇 때문에 한 여자에게 매입니까?”


그녀는 이 말에 본능적으로 움칠했다.


“그게 바로 부르조아 정신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 예입니다. 자본주의자들만이 여성들을 가지고 노는 노리개로 취급하며 이용하지요. 사회주의 체제에선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지위와 존엄성을 갖습니다.”


“동무, 내가 표현을 잘못한 것 같군요. 내 말은, 일하기 싫어하고 정치적인 신념이나 사회적인 원칙 같은 게 없이 사는 그런 종류의 여성들을 말한 겁니다. 그런 여성들은 존엄성도 없고 따라서 권리도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녀가 말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당원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가정을 가져야 하며 새로운 당원을 또 키워내야 합니다.”


“동무, 나도 그 말엔 동의해요. 하지만 우린 당신네와는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요. 이기심과 위선이 가득 차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신부들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들에게 순종합니다. 그들 중에도 또 많은 여성들이 성직자의 밀정들이라서 남자는 자기 발걸음을 조심한답니다.”


“훌륭한 여성 당원은 모르시나요?” 


“아니, 많이 알고 있지요.” 그는 지친듯한 몸짓을 하며 말했다.


  그녀는 스카못지아를 엄격하게 바라보았다. “동무 나이엔 여자가 필요하지요.”


“아마 모두 내 잘못이겠지만 마음에 드는 여성은 하나도 없더군요.”


“믿어지질 않는데요, 동무. 정말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요?”


“아니, 한 둘은 있겠지요. 그러나 그 여성들은 결혼했고요.” 


페트로프나 동무는 잠시 동안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사태가 심각한 걸 난 알 수 있어요, 동무. 그러나 동무는 그 사태를 똑바로 보고 있질 않습니다.”


 “동무!”


 그는 방어선을 늦추면서 말했다.


“세월은 흘러갑니다. 우리에겐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이 있고, 갖가지 꽃들이 우리 둘레에서 피어나고 공중엔 노래 소리가 울리고, 우리가 마시게 될 좋은 포도주가 있어요. 그래서 영원히 젊게 산다는 환상에 젖지요. 우리나라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왔지요”


 “동무!” 그녀가 말을 가로겠다.


“그건 이단이요! 신에게 축복을 받았다든가 저주를 받은 나라는 없습니다. 신은 존재하질 않아요!”


“알고 있어요. 그건 다 못된 신부들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와 성당들 때문이고요. 한데도 우린 왠지 하느님이 실제로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거든요.”


“동무, 동무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동무 말이 맞을 거요. 그런데 동무는 내게 이야기할 때 내 눈을 바라봐 줄 수 없겠소?”


‘나는 스탈린과 같은 과오를 저질러선 안 된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짐했다.


“동무는 러시아 사람과 이태리 사람이 같은 언어를 쓰리라고 기대하진 않겠지요? 모든 나라는 각기 다른 그 나라 특유의 기후와 관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개의 열쇠로 모든 자물통을 열 수는 없습니다.”


스카못지아 동무가 그녀의 생각을 흔들어 놓았다.


“동무 이야기나 좀 들어 봅시다.” 그가 제의했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여성입니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당원이며 관청의 관광국 직원이지요. 나이는 26세. 모스코바에 살고 있고요.”


“혼자 살고 있습니까?”


“아니요, 불행히도 그렇진 못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저는 두 여자와 한 방을 쓰고 있지요. 하지만 불평할 이유는 없어요.”


“나도 불평하진 않겠어요.” 스카못지아가 큰 소리로 말했다. 페트로프나 동무가 놀랐다는 듯이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에요?”


“난 동무가 남성 동무와 함께 살고 있구나 생각했지요. 그래서 동무가 두 여성과 살고 있단 말을 들으니 기쁜 것이 당연하지요.”


그녀는 계속해서 스카못지아를 쳐다보았다. “나는 동무의 말을 못 알아 듣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부끄러운 거짓말이었다. 그녀가 스카못지아의 사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그녀의 핸드백 속에 슬쩍 밀어 넣었다는 사실로 보아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아무리 공산주의 사상에 철저히 물이 든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의 연약함엔 어쩔 수 없는 법인가 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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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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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9
2018-07-08
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6)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클럽> 명예회원증

 

 


 
(지난 호에 이어)
종합 판매점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다. 거래는 빨리 진행되었다. 여자 판매원이 그 청구서를 읽자마자 물건들을 챙겨서 빼뽀네에게 넘겨주고 값을 적었다. 


그런데 빼뽀네가 그의 호텔 방에 돌아 왔을 때 그는 기대했던 것만큼 기분이 좋아 보이질 않았다. 그는 돈 까밀로에게 양말을 던져 주었다. 돈 까밀로는 공중으로 손을 날려 받아 쥐고는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양말을 내려다 보았다.


“아름다운데!” 그는 소리쳤다.


“우리나라에선 이 물건의 반 만큼도 만들지 못하지 뭔가. 양말 길이를 다르게 만든 착상이 기가 막히게 현명하군. 사람의 발 길이가 똑같으란 법이 없으니까. 얼마줬나!”


“10루불 들었소.”


면도기 싼 것을 풀면서 빼뽀네가 말했다. “환율이 얼마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다만 1만 리라 지폐 한 장에 70루불을 내게 줬다는 것뿐이오.”


 “그럼 1루불에 150리라를 준 셈이군. 스위스 프랑과 맞먹는데 면도기는 얼마 주었소 !”


“9루불 주었지요.”


돈 까밀로는 머릿속으로 계산하기에 바빴다. “면도기는 1300리라, 양말은 1450리라가 되는군.”


빼뽀네는 얼굴에 비누 거품을 내느라 바빠서 대답하지 않았다.


“이태리에선 이런 면도기는 값이 얼마나 하는가?” 돈 까밀로가 추궁하듯이 물었다.


“미국제가 200리라 하지요.” 빼뽀네도 시인했다.


“그렇게 차이가 나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뭔가 잘못된 게 틀림 없어요.”


“난 그렇게 생각지 않네, 동무. 자네 면도기는 세일할 때 샀을 거요. 그리고 그런 물건은 여기선 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네. 공산주의 체제하에선 공장이나 소매점이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에 서로 경쟁 상대가 될 필요가 없는 거요.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자네 면도기는 미국제였고 여기 이건 러시아제요. 비교가 되질 않소. 루불이 자유 시장에서 겨우 40리라 밖엔 안 하는데 여행자에게 주는 환율은 150리라란 말이오. 공산주의자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방문객들에게 유리한 환율을 주기 위해 투쟁한 적이 40년 동안에 한 번도 없었소. 자네 면도기는 러시아인에게는 350루불 밖에 안 받을 거요.”


빼뽀네는 면도를 시작했다. 갑자기 그는 면도를 멈추더니 얼굴에 비누질을 또 했다. 면도날을 갈아 끼고 면도를 다시 해보았다. 이윽고 그는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면도기를 벽에다 냅다 던져버렸다.


“동무, 자네의 신념은 어디로 갔지?” 돈 까밀로가 차갑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빼뽀네는 얼굴에 비누 거품을 잔뜩 묻힌 채 그를 쏘아 보았다. 돈 까밀로도 약간 수그러졌다. 그는 여행 가방을 뒤지더니 어떤 물건 하나를 꺼내어 빼뽀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이게 바로 자네가 지긋지긋해 하는 미제 면도기란 말이지? 마룻바닥에서 주워온 것이네만.”


빼뽀네는 그에게서 면도기를 낚아채며 말했다. “나는 날마다, 신부를 죽이는 것은 하나도 죄가 될게 없다는 확신을 굳혀가며 살아가고 있소!”


그 동안 페트로프나 동무는 호텔 입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스카못지아 동무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오리고프 동무께서 오늘 아침 시간엔 호텔에서 쉬라고 하셨습니다. 밖에 나가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밖에 나가려고 하는 게 아니요” 스카못지아가 말했다.


“동무 곁에서 쉬고 싶어 그러지요.”


페트로프나 동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호텔의 그 넓은 방을 두고 무엇 때문에 이런 곳에서 쉬려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동무는 당신네 동지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격식을 차리며 대하나요?”


“아닙니다. 자본주의자들만이 격식을 따르지요.”


“난 자본주의자가 아니잖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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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5)

 

 

 

(지난 호에 이어)
빼뽀네가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축복은 당신이나 간직해 두시구랴” 


“예수님, 저 사람을 용서해 주십시오.” 돈 까밀로는 자신이 개량해서 만든 빈 성수병 바닥 위에 모셔놓은 작은 십자가상 앞에 머리를 숙이고 소근거리듯이 말했다.


“그는 너무나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나이다.”


“사람들이 방문을 두드렸을 때 신부님은 신경이 곤두서지 않았었는지 알고 싶나이다.” 빼뽀네가 고함을 쳤다.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구? 난 못 들었는걸”


빼뽀네는 더 이상 고집을 세우진 않았다. 돈 까밀로는 언제나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고, 비록 그 반동분자인 약제사와 꿈속의 여행을 계속하게 된다 하더라도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고 싶기만 했다.


“신부님은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잖습니까? 그러니 이제부터는 제가 옷 좀 갈아입게 제발 그 예복들이나 저리로 치워버려 주십시오” 그는 거친 소리로 말했다. 


“동무, 화가 난 모양이군.” 돈 까밀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소비에트 연방의 기후가 자네에게 안 맞는 모양일세.” 


“나를 미치게 만드는 건 바로 동무요!” 빼뽀네가 소리치면서 문 쪽으로 그를 밀어냈다.


그런데 그를 더욱 화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었다. 문이 아예 잠겨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들을 부르러 오면 손잡이를 돌리고 걸어 들어오기만 하면 되었었다.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가 아침식사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이 다 모이자 그녀는 말했다. “우리부터 먹기 시작합시다. 오리고프 동무는 좀 더 있어야 내려올 모양입니다.”


페트로프나는 가까이 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료적인 태도를 하고,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한 치도 허술한 동작을 보이지 않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아침식사는 단 한 잔의 홍차였다.  


마치 불쾌한 의무나 되는 듯이 산란한 마음으로 홍차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그녀는 마치 얼음으로 만든 칼집 속에 끼어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모르지만 그 칼집 속엔 틈이 있었고 그곳에서 멋진 향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 향기가 그녀의 굳은 자세를 망가뜨려 놓았다. 페트로프나는 자신이 국가의 공복이란 사실을 잊은 채, 스카못지아 동무가 선물로 준 오드콜롱을 몸에 뿌리고 나온 것이다. 스카못지아는 그녀와 약간 떨어져 앉아 있었지만 그는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에게 생긴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


오리고프 동무는 아침식사가 끝날 무렵 식당에 도착했다. 그는 다른 데에 정신을 뺏긴 사람 같아 보였다. 아침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한 다음, 페트로프나 동무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오리고프 동무가 서류 가방 안에서 꺼낸 관인 찍힌 서류에 대해 자주 언급하면서 오랫동안 토의를 계속했다.  


그들은 진행 방침을 분명히 세운 다음, 페트로프나가 빼뽀네에게 말을 옮겼다. “오리고프 동무께서 여러분이 머무는 동안 진행될 확실한 계획서를 여행국으로부터 받아 왔습니다, 오늘 아침 9시에 여러분은 ‘붉은 별 트랙터 공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빼뽀네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동무,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 아닌지, 그건 우리가 어제 오후에 방문했던 공장이 아니던가요?”


페트로프나가 오리고프와 다시 의논했다. “우리가 방금 당국에서 받은 계획서에는, 어제 오후는 휴식으로 여독을 풀고 다음 날인 오늘 그 공장을 가도록 적혀 있습니다. 원래 있던 계획이 취소되었고 어제의 방문은 가지 않았던 것으로 해야겠습니다.”


빼뽀네는 당황하여 두 팔을 불쑥 내밀었다. 그녀는 상관과 다시 의논했다. “계획은 변경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엔 시내 관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리고프 동무께서는 그 공장을 또 한 번 방문하라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아침 시간엔 호벨에서 쉬는 게 어떤가 권하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여행의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오리고프 동무께선 여러분의 방문 날짜를 바꾸려고 공장에 가십니다.” 


페트로프나가 말했다. “저는 로비에 남아서 여러분의 시중을 들겠습니다.”


그녀는 호텔 로비의 구석진 곳에 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녀의 태도는 딱딱하고 거만했으나 그녀가 가는 곳마다 오드콜롱의 향기가 풍겼다.

 

돈 까밀로는 호텔 방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침대 위에 몸을 던지듯이 누워버렸다. 그가 깜박 잠이 들었을 때 빼뽀네는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며 마루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세수를 하고 난 다음에 그의 안전 면도기를 그곳에 두고 내린 것이다.


“내 면도기를 가져다 쓰고 소란 좀 그만 피우게.” 돈 까밀로가 말했다.


“나는 내 면도기만 쓰는 사람인데요.” 빼뽀네가 말했다. “그런데다 그런 구식 칼 같은 것엔 익숙지 않아요.”


“그러면 아래층에 내려가게. 자네가 납세자들에게서 받은 리라를 루블로 바꿔서 새 면도기를 하나 사면 되잖아. 종합판매장이 이 근처에 있더군. 다만 차에 치지 않도록 조심이나 하게”


창 밖엔 그들을 호텔로 태워다 준 버스 외에는 차량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빼뽀네는 바늘에나 찔린 듯 속상했다.


“머지 않아 차들이 오겠지요” 그는 코를 쌜룩 거리며 말했다.


“우린 급할 거 하나도 없으니까. 외지에 나간 사람들이 타고 간 차량이 돌아올 동안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지낼 것입니다.”


“내 털양말도 몇 켤레 좀 사다 주게”


 돈 까밀로가 그의 동에다 대고 소리쳤다.


“혁명이 나고 40년 된 지금 적어도 양말 한 켤레는 만들어 놨겠지”


빼뽀네는 대답 대신에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페트로프나 동무는 빼뽀네에게 최고의 신경을 써서 대접했다. 그래서 호텔 지배인에게 그의 리라 지폐를 루블 지폐로 바꿔주도록 주선했다. 그런 다음엔 러시아어로 몇 자 적어서 빼뽀네에게 건네 주었다.


‘안전 면도기 한 개, 면도날 열두 개, 보통 크기의 남자용 털양말 한 켤레’


종합 판매점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다. 거래는 빨리 진행되었다. 여자 판매원이 그 청구서를 읽자마자 물건들을 챙겨서 빼뽀네에게 넘겨주고 값을 적었다.  


그런데 빼뽀네가 그의 호텔 방에 돌아왔을 때 그는 기대했던 것만큼 기분이 좋아 보이질 않았다. 그는 돈 까밀로에게 양말을 던져 주었다. 돈 까밀로는 공중으로 손을 날려 받아 쥐고는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양말을 내려다 보았다.


“아름다운데!” 그는 소리쳤다.


“우리나라에선 이 물건의 반 만큼도 만들지 못하지 뭔가. 양말 길이를 다르게 만든 착상이 기가 막히게 현명하군. 사람의 발 길이가 똑같으란 법이 없으니까. 얼마줬나!”
“10루블 들었소”


면도기 포장을 풀면서 빼뽀네가 말했다. “환율이 얼마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다만 1만 리라 지폐 한 장에 70루블을 내게 줬다는 것뿐이오”


“그럼 1루블에 150리라를 준 셈이군. 스위스 프랑과 맞먹는데 면도기는 얼마 주었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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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4)

 

 

(지난 호에 이어)
“그 뿐만 아니오. 동무는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이상하게 내 감정을 상하게 해 왔소. 나중에 손 좀 봐주겠소!”


 “오리고프 정치국원께서 동무가 좀 어떻게 되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소. 틀림없이 이곳 기후가 동무에게 맞지 않는 모양이오. 지금부터 한 시간 안에 베를린 가는 비행기가 있는데, 정치국원께서 비행기 좌석을 마련해 줄거요. 거기서부터 동무는 집으로 곧장 갈 수 있게 되오.”


“잘 됐군요!” 론델라가 소리쳤다.


“내가 당신네 떼거리들의 마지막 꼴을 안 보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상상들을 못 할거요.”


“너무 심하다 생각진 마시오. 돌아가서 다시 만날텐데.”


론델라는 그의 지갑을 열어 당원증을 꺼내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말했다.


“우린 또 만나게 되겠지요. 하지만 나는 반대쪽 노선에서 보게 될 거요.”


 “나는 동무처럼 인내심이 없는데.”


 빼뽀네는 그의 궁둥이를 걷어 찾다. 그러나 곧 후회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가 식당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러니 난 여기서 자넬 돌봐주겠소, 바로 지금 말이오!”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론텔라가 일어서더니 돈 까밀로의 턱을 한 대 쥐어 박았고, 돈 까밀로는 그를 되받아 쳐서 제자리에 쓰러뜨렸다. 


여행국 직원이 통역관과 뭔가 상의하더니, 통역관이 그 말을 빼뽀네에게 전했다.


빼뽀네가 일어나서 론댈라의 벽살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동무,”


론델라가 어느 정도 기분을 가라앉혔을 때 빼뽀네가 말했다.


 “일이 잘 되었습니다. 그는 오리고프 동무의 깊은 배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잔을 들어 소비에트 연방의 승리를 위해 건배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대해 오리고프 동무는, 평화를 위해 그리고 이태리 노동자 계급의 자본주의 학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건배했다.


“나디아를 위해서 축배하는 건 어떨까요?”


스카못지아가 돈 까밀로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가만 좀 있게나, 동무!” 돈 까밀로의 대답이었다.


저녁 만찬은 성대하게 끝났다. 한 시간 후, 론텔라 동무가 멍해진 머리와 골치 아픈 당원들을 뒤에 두고 베를린을 향해 날아가고 있을 무렵, 빼뽀네와 돈 까밀로는 방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불 좀 꺼요, 동무. 우리가 침대에 들어간 다음에 다시 불을 켜 세.”


“웃기는군요 !” 빼뽀네가 소리쳤다.


“내가 봐도 우습다고! 신부가 공산당 상원의원 앞에서 속옷 차림을 보일 순 없잖나?”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자, 돈 까밀로는 공책을 꺼내 이렇게 적었다. ‘월터 론텔라 동무, 교회로 돌아가다.’ 그는 큰 소리로 읽어 보았다.


“또 한 사람의 원주민이 굴욕을 당하다!”


“오직 신부만이 그런 치사한 잔꾀를 부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한테 그 이상 딴 짓을 못할 줄 아십시요!”


돈 까밀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그 일에 대해 나의 펜 속에 살고 계신 분에게서 의견을 들어야 하네.”


돈 까밀로가 뚜껑을 돌려 가느다란 물체를 꺼내는 동안 그 펜은 십자가상으로 둔갑해 있었다. 빼뽀네는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예수님.” 돈 까밀로가 말했다.


 “주님의 두 팔과 십자가 양 편에 돌쩌귀를 올려 놓았던 것을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당신을 모시고 올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었답니다.”


 “아멘!”


 빼뽀네가 그의 머리를 이불 속에 파묻으며 악을 썼다.

 

강요된 휴식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레이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다윗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빼뽀네가 탄 비행기에는 약제사도 함께 타고 있었는데, 그 비행기가 갑자기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그는 숨을 헐떡거렸다. 빼뽀네는 그 비행기 안에 붙어있는 방송실에서 뭐라고 떠들어 대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 꼴보기 싫고 냄새 나는 약제사가 자기와 함께 러시아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하기만 했다.


그가 마음 속으로 이 문제들을 풀어 보기도 전에 단조로운 라틴어 소리가 그의 의식 세계까지 뚫고 들어왔다.


“Quae cum audisset, turbata est in sermone eius, et cogitabat qualis esset ista salutatio. At ait Angelus el • Ne timeas M aria, invenisti enimgratiam apud Deum…”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여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


빼뽀네는 무게가 반 톤쯤 나갈 듯이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치켜 떴다. 그의 눈은 차츰 러시아 글자가 새겨진 융단으로 된 벽걸이 위에 머물렀다. “…et vocabis nomen eius jesum. Hie erit magnus, et Filius Altissimi vocabitur…”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빼뽀네가 나머지 한 쪽 눈을 마저 떴을 때 그는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릴 듯했다. 그는 소비에트 호텔 지배인이 이 방에 넣어 준 식탁에서 까밀로 타롯치 동무가 미사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보고 질겁을 하게 놀랐다. 


타롯치 동무는, 《레닌의 어록》이라고 써있는 붉은 표지가 달린 두꺼운 책을 들고 누가복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빼뽀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쪽으로 뛰어가 열쇠구멍에 눈을 대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돈 까밀로의 머리 위에 침대 시트를 씌워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도 저 라틴어 소리가 안 들리도록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생각하고, 될 수 있는 한 요란하게 발소리를 내면서 방안을 돌아다녔다. 


게다가 그 빌어먹을 놈의 작은 종소리까지 윙윙거리며 그의 뇌 속을 후벼대지만 않았어도 그는 이 짓을 수없이 반복하진 않았을 게다. 그는 귀를 기울이고 싶지도 않았건만, 눈 앞의 현실을 인식해야만 했다. 


그래서 돈 까밀로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잔을 성배처럼 높이 들어 올렸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발자국 소리가 복도 바깥에서 울려 왔지만 빼뽀네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느님, 우릴 도와주소서.” 그는 혼자서 중얼거릴 뿐이었다.


발걸음이 문 앞에서 멈추었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태리어로 말했다. 


“동무, 일어날 시간이야!”


빼뽀네가 투덜거리는 소리로 대답하자, 그 발소리는 다음 방문 앞으로 옮겨갔다.


“I te, missa est. ”


돈 까밀로가 마침내 말했다. “이제 시간이 다 됐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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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7)

  

 

 

 

(지난 호에 이어)


“아무 소용도 없는 짓입니다, 동무.”


돈 까밀로가 씁쓸하게 말했다. 자기 머리칼을 쓰다듬는 척 또 윗저고리의 양쪽 옷깃을 털어내는 척하면서 그는 십자가의 성호를 긋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눈뜬 장님이랍니다. 그 사람들은 눈 가리개를 하고 다니거든요.”


페트로프나 동무가 이 말을 통역했다. 여행국 직원은 알았다는 듯이 박박 면도한 그의 머리를 끄덕거리고는 우물우물 대답했다. 


“오리고프 동무는 말씀하십니다. 동무가 아주 정곡을 찔러 말했다고요.”


그녀는 돈 까밀로에게 통역해서 말했다. 그는 그 말이 대단찮은 인사말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타롯치 동무의 말에 늘 동의해 왔던 스카못지아가 자기 자신이 관찰한 대로 말을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1세기나 뒤떨어져 있습니다. 썩어 빠진 산업가들이 형편없는 기계 몇 가지만 생산하고 있으므로, 그네들은 다만 그것만이 전부인 양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네들이, 오늘 우리가 구경한 공장 산업을 둘러보게 된다면 아마도 심장마비를 일으킬 겁니다. 페트로프나 동무, 우리가 본 것이 가장 크고 가장 좋은 건 아니었지요?”


“아, 물론 아니지요. 그건 이류 공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녀가 응답했다. “그건 현대 기술 분야에선 최신의 것이지만 생산량은 비교적 적습니다.”


돈 까밀로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이류 공장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보다 훨씬 앞서있다는 사실에, 우리 이태리인들은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튜린 지구에서 온 페트라토 동무가 여태껏 말이 없다가 그의 지방 특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입을 열고 말했다.


“트랙터 부분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동차에 한해서만은 우리 피아트를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오늘날의 그 실력이 있도록 이끌어온 우리 이태리 노동자들을 무시할 권리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진실이 제일입니다.”


돈 까밀로가 외쳤다.


“진실은 피아트 회사의 자부심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민족적 자부심이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제도의 후진성에 대해 관대하게 구는 한, 우리는 소비에트 연방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 능률에 대한 교훈을 영영 못 배울 것이오. 다리가 한 쪽밖에 없는 애인을 가진 남자가 있는데, 그는 두 다리를 가진 여자가 자기 애인만 못하다고 고집을 세웠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의 부진한 성취에 대해 갖는 자세입니다. 이곳 러시아에선 모든 산업체가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굉장한 다리지요 !” 스카못지아가 맞장구를 치면서 페트로프나 동무를 열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난 동무가 노리는 게 뭔지 모르겠소.” 론델라 동무가 돈 까밀로에게 말했다.


“공산당원은 비록 그 진실이 괴로운 것이라고 해도 그 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돈 까밀로가 설명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진실을 알려고 온 것이지 감상에 빠지기 위해서 온건 아닙니다.”


여행국 직원은 그들의 대화를 열심히 들으면서 페트로프나 동무에게 통역을 자세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빼뽀네는 의자 끝에 불안스럽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마침 음식이 들어 왔으므로 허기진 일행들은 먹기에 골몰했다. 양배추 수프는 그들의 입맛에 잘 맞지 않았으나 알맞게 구운 양고기가 그들의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그들을 대접하는 쪽에선 이미 포도주를 내놓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으며, 포도주는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혀끝을 감미롭게 해주었다.


트랙터 공장 얘기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페트로프 동무는 피아트 자동차 자랑을 하다가 남긴 나쁜 인상을 없애고 돈 까밀로의 주의를 끌기 위해 러시아 트랙터 생산 과정에서 오는 어떤 창의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자 까밀로가 입을 열고 말했다.


“물론 러시아 사람들은 다른 나라 국민보다 재주와 창의력이 뛰어납니다. 그들은 라디오나 인공위성의 발명은 물론이고 다른 작은 기계 장치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재능을 보여주었소. 우리 방에 있는 세면기를 예로 들어 볼까요? 세면기에선 찬물 더운물이 따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꼭지에서 적당한 온도의 물이 알맞게 흘러 나오게 합니다. 이건 언뜻 보기엔 사소한 일 같지만 그런 것을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배관공인 론텔라가 이 말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동무, 바보 같은 소리 작작 하슈. 내 조부께선 수도꼭지 두 개를 하나로 합쳐 만드는 걸 알고 계셨소. 당신 고향은 어디요?”


“공산주의자가 가장 많은 지구에서 왔지요.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보적인 고장에서 왔소. 게다가 내가 바보라고 치더라도 나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소. 《처칠 회고록》을 보아도 이와 똑같은 일을 볼 수 있지만, 아무도 처질을 공산당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습니까?”


론텔라는 생각이 어지러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머릿속이 수정같이 맑아져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더욱 억지를 썼다. 


 “나는 처칠이 어떻게 되었든 개의치 않소. 내 말은 동무가 이런 일들을 과장해 말해서 적을 유리하게 만들어 주고 있단 말이오. 진실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 진실에다 경의를 표시해야겠지요.”


돈 까밀로는 그의 새까만 안경을 벗어서 안경알을 닦더니 다시 끼어들었다. 그런 다음 그는 엄숙한 말로 침묵을 깼다.


“진실이라구요? 진실이란 것은 무엇이든지 노동자 계급의 이해와 일치되는 것을 말합니다. 동무, 동무는 자신의 이성보다 자신의 눈을 믿어야 해요. 동무의 이성은 너무 나약하오. 동무의 머릿속은 자본주의적인 생각으로 온통 거미줄이 쳐있기 때문이오.”


“동무의 머리도 좋지는 않은걸?” 론델라가 화가 나서 대꾸했다.


“그 뿐만 아니오. 동무는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이상하게 내 감정을 상하게 해 왔소. 나중에 손 좀 봐주겠소!”


 “오리고프 정치국원께서 동무가 좀 어떻게 되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소. 틀림없이 이곳 기후가 동무에게 맞지 않는 모양이오. 지금부터 한 시간 안에 베를린 가는 비행기가 있는데, 정치국원께서 비행기 좌석을 마련해 줄거요. 거기서부터 동무는 집으로 곧장 갈 수 있게 되오.”


“잘 됐군요!” 론델라가 소리쳤다.


“내가 당신네 떼거리들의 마지막 꼴을 안 보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상상들을 못 할거요.”


“너무 심하다 생각진 마시오. 돌아가서 다시 만날텐데.”


론델라는 그의 지갑을 열어 당원증을 꺼내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말했다.


“우린 또 만나게 되겠지요. 하지만 나는 반대쪽 노선에서 보게 될 거요.”


 “나는 동무처럼 인내심이 없는데.”


 빼뽀네는 그의 궁둥이를 걷어 찾다. 그러나 곧 후회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가 식당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러니 난 여기서 자넬 돌봐주겠소, 바로 지금 말이오!”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론텔라가 일어서더니 돈 까밀로의 턱을 한 대 쥐어 박았고, 돈 까밀로는 그를 되받아 쳐서 제자리에 쓰러뜨렸다. 


여행국 직원이 통역관과 뭔가 상의하더니, 통역관이 그 말을 빼뽀네에게 전했다.


빼뽀네가 일어나서 론댈라의 벽살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동무,”


론델라가 어느 정도 기분을 가라앉혔을 때 빼뽀네가 말했다.


 “일이 잘 되었습니다. 그는 오리고프 동무의 깊은 배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잔을 들어 소비에트 연방의 승리를 위해 건배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대해 오리고프 동무는, 평화를 위해 그리고 이태리 노동자 계급의 자본주의 학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건배했다 


“나디아를 위해서 축배하는 건 어떨까요?”


스카못지아가 돈 까밀로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가만 좀 있게나, 동무!”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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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2)


 

 

 

(지난 호에 이어)


 “우연히 그렇게 된 거요.”


“그러면 당신 가방 속에 반입 금지품이 들어 있던 것도 우연이었소?”


“아, 그건 별거 아니었소. 성화 그림 카드 몇 장하고, 교황님의 사진 한 장, 그리고 성체봉송에 쓸 제기 몇 개뿐인걸.”


빼뽀네는 그 말을 듣고 온몸을 떨었다. 버스는 끝없이 긴 평원을 달리고 있었다. 들에는 뼈가 앙상한 소들이 여기 저기 조금씩 나있는 가을 풀들을 뜯어먹고 있었다. 


페트로프나 동무는 지금 트랙터 공장을 보러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호텔에서 만찬과 하룻밤 휴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공장은 R도시의 근교에 있었으며, 북쪽으로 가는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우중충한 회색 시멘트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볼품 없는 모습이라니, 이른바 산업문명의 산물이로군.”


돈 까밀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 마을에 갑작스런 향수를 느끼며 서글픈 듯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의 고향에선 벽돌 한 장 한 장을 사람 손으로 쌓아 올렸으며 사람과 사물 사이엔 보이지 않는 끈이 한데 묶여 있었다.


노동자들은 으레 그렇듯이 무심하고 따분해 보였다. 공장의 어떤 부서에는 여공들만 있었는데, 그들은 페트로프나 동무와는 전혀 딴판으로 키가 작고 땅딸막한 여자들뿐이었다. 이제 론텔라 동무 마저 돈 까밀로에게 다가와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무, 여기 있는 여자들은, 우리의 매력적인 통역관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 같지는 않구먼요.”


돈 까밀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동무, 동무는 저 공장 여성 노동자들을 마치 미인대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로 바라봐선 안되오! 자존심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그 정도의 사실은 알고 있지요.”


지금은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었다. 특히 빼뽀네가 그들을 뻔히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장 방문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어떤 열성적인 젊은 공장장이 페트로프나 동무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통역해야만 하는 꽤 많은 통계 자료를 들고, 별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까지 낱낱이 설명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트랙터 조립의 마지막 단계까지 왔다. 돈 까밀로는 완성된 트랙터를 보고는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놀라서 빼뽀네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상원의원 동무, 이 트랙터는 소비에트 정부가 고향에 있는 당신 네 농업협동조합에 선물로 준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려!”


문제의 그 트랙터는 아무리 해도 작동이 되질 않았었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모양을 보고 웃어댔었다. 이제 그는 억지 웃음을 띄우며, 오히려 소작농들에겐 크게 자비로운 일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그 신통찮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기계공 솜씨가 튀어나왔다. 그는 기술자 가운데 한 사람을 옆에 불러내어 연료 분출 펌프의 한 곳을 지적했다. 거기에 대해서 그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기계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 기술자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없는지 어깨만 들썩일 뿐이었다. 다행히도 페트로프나 동무가 달려와서 그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저 사람이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녀가 빼뽀네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당국이 교환해야 할 부분에 대한 필요한 처리를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 기술자는 웃어 젖히면서 무슨 말인지를 더 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마를 찡그리며 잠시 주저했다. 드디어 그녀는 빼뽀네 쪽을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 권위주의적인 당국은 일 이 년은 지나야 올 수 있다고 기술자는 말합니다.”


페트로프나가 다시 일행과 합류하려고 발을 떼기 시작했을 때 스카못지아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할리웃의 영화 배우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어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나는 교체 부분에 관한 마지막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공장장에게 말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해 주도록 해주겠어요?”


공장장은 새로운 통계 숫자를 들어 보이며 호의를 베풀었다. 그것은 계산기를 압도시킬 만큼의 천문학적 숫자였다 스카못지아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공장장과 악수까지 했다.


“고마워요.”


스카못지아가 페트로프나 동무에게 말했다. 


“동무가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주셨는지 모를 겁니다.”


“동무는 농기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 모양이지요?” 그녀는 순진하게도 그렇게 물었다.


“아니요. 동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걸 좋아합니다.”


이 말은 노동의 신성함에 대해 매우 모욕적인 말이었다. 페트로프나 동무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다시 관료적인 자세로 돌아갔다.


“동무…” 그녀는 헛소리를 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로마의 트라스테베르 지구에 가본 적도 없었고, 스카못지아가 지니고 있는 그런 눈매를 본 적도 없었다. 그의 두 눈은 페트로프나를 삼켜 버렸고 그녀의 굳은 자세는 곧 사라지고 말았다.


 R시는 약 15만 명의 인구가 사는 전형적인 러시아식의 도시이며, 자동차나 다른 교통 수단이 별로 없는 도시였다. 호텔은 아주 작고 별로 손질하지도 않았다. 돈 까밀로가 든 방도 아주 불편했다. 그는 그 방을 누구와 함께 쓰게될 것인가 궁금했지만 빼뽀네가 그 방에 들어서자 궁금증은 곧 풀렸다.


“나 좀 보세요, 신부님. 아니, 동무.” 빼뽀네가 말했다.


“제발 론텔라를 물고 늘어지는 일 좀 그만 해두세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시더라도 좀 그냥 놔두시라구요.”


“난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 돈 까밀로가 말했다.


“당의 이해관계가 걸린 한도까지는 나도 규칙을 지킨다네. 그 친구는 정말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마음 속에 아직 부르조아의 잔재가 남아있네. 그 잔재를 말끔히 없애주는 게 우리의 할 일이 아닌가 말일세.”


빼뽀네는 모자를 벗어 벽에 대고 냅다 내던지며 말했다. “며칠 안에 당신 목을 졸라 버리겠소.” 그는 신부의 귀에 대고 위협하듯이 말했다. 


일행은 어두컴컴한 식당에 모였다. 오리고프 동무는 식탁 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았고 오른쪽엔 빼뽀네를, 왼쪽엔 나디아를 앉혔다. 돈 까밀로는 어떻게든지 론텔라 맞은 편에 자리잡고 앉아서 빼뽀네의 열이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돈 까밀로가 앉으면서 이마에 손을 올리며 성호를 긋는 시늉을 할 때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동지 여러분,” 그는 말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 만약 소비에트 연방을 늘 비난하는 어리석은 반동분자들이 함께 있다면 좋겠는데요? 그 사람들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이 장면을 볼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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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1)

 

 

 

 

(지난 호에 이어)
입술은 비웃는 듯 비쭉 내밀고 낡은 비옷을 입은 남자와 함께 마중하며 방문객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인사드립니다. 동무들!”


그 소녀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장한 어깨와 자그마한 엉덩이에 다리는 발레리나처럼 날렵했다. 


그는 꽉 끼는 바지에 붉은 와이셔츠와 검은 가죽 저고리를 입고 담배는 언제나 비스듬히 물고 있었다. 강하면서도 약간은 섬세한 멋을 풍겼다. 주먹을 쓰는데 재빠르며 여성을 다루는 솜씨도 능숙했다.


몇 사람의 일행이 오리고프 동무와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의 안내를 받으며 빼뽀네와 함께 비행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 스카못지아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그는 돈 까밀로에게 말했다.


“저 여자, 사람 죽이게 생겼죠? 저 여자의 눈매를 보면 남자를 쉽게 받아들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네.”


돈 까밀로는 마음 속으로 주님의 용서를 구하면서 말했다. “더 바랄게 없이 예쁜 여자로구만.”


그가 론델라 동무도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자, 론델라는 그 미끼에 걸려들고 말았다. 


“저 여자 아주 예쁜데,” 그도 시인했다. 


“하지만 고향엔 더 예쁜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지. 우리나라 여성들은 옷을 입을 줄 알거든.”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렇다 해도 그 여성들에게 페트로프나 동무가 입고 있는 옷을 입혀 본다면 형편 없어 보일 걸세. 이 여자에겐 고전미가 있단 말이야. 우리 도시에서 흔히 보는 그런 인형 같진 않지. 특히 밀라노의 여자들은 모두 판에 박은 듯이 세속적인 데가 있단 말일세.”


“무슨 소리요, 동무!” 론델라가 반발했다.


“밀라노에도 동무가 보고 싶어 안달할 정도의 예쁜 여성들이 있다구요.” “진정해요, 통무.” 스카못지아가 끼어들었다.


“우리나라엔 예쁜 여자들이 많아요, 맞아요, 하지만 이 여성은 뭔가 특별한 데가 있지요.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그런 게 있어요.”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느냐가 문제지요. 남자나 여자나 환경이 외모를 만들어내니까. 이건 기본적인 진리요.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

 

 

 

 


론델라 동무는 한두 마디 더 하고 싶었으나, 갑자기 “잠깐만!” 하는 소리가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세관 검사요.”


빼뽀네 동무가 그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알려 주었다. 그리고는 돈 까밀로의 귀에 대고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를 곤경에 빠뜨릴 물건을 가지고 계시진 않겠지요?”


돈 까밀로는 그를 안심시키는 듯이 말했다. “나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아는 사람이요.”


검사는 빨리 끝났다. 빼뽀네가 미리 그렇게 되도록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일행이 모두 똑같은 모양의 싸구려 여행 가방을 든데다가 짐의 무게까지 똑같았기 때문이다. 단지 한 가지 말썽이 생겼는데 그것은 스카못지아의 물건 가운데 들어있는 작은 병이었다. 세관 검사관은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 본 다음 페트로프나 동무에게도 맡아 보도록 그 병을 넘겨 주었다.


“세관원은, 왜 동무가 여성의 향수병을 가지고 다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녀가 설명했다


“그건 여성이 쓰는 향수가 아니요” 스카못지아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면도한 다음에 바르는 오드콜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선 어떤 로션을 쓰지요 가솔린을 쓰나요?”


그 여성은 대답을 하려다가 무례한 이 친구가 자기 분수를 알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말한 내용 중에서 앞 부분만 통역해 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였다.


세관원도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그 향수병을 여행가방 속에 다시 넣었다.


“이곳에선 사람들이 순수 알콜을 씁니다.” 그 여성이 스카못지아에게 설명했다.


“세관원이 말하기를, 동무가 동무의 개인 용품으로 그것을 간직해야 하며, 절대로 그 물건을 팔아선 안 된다고 합니다.”


그들 일행이 공항을 나온 다음에 스카못지아가 걸음을 멈추더니 여행 가방을 다시 열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이곳의 관습이 남성용 로션이 알콜이라면, 그 관습을 따르겠습니다. 이것을 여성이 쓰는 향수라고 생각하는 이상 이것은 여성이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그 병을 그녀에게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뿌리쳐 버렸다.


“동무는 여성이 아닙니까?” 스카못지아가 물었다.


 “그렇다면 이걸 받으시오. 파는 게 아니고 선물입니다.”


그녀는 당황한 듯했으나 결국 그 향수병을 받아서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 속에 아무렇게나 집어 넣었다.


“고맙습니다, 동무.”


그녀는 겨우 입을 떼어 말했다. “천만에요. 당신은 참 아름답군요.”


페트로프나 동무는 그에게 딱딱하고 거만한 시선을 보내려고 애썼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사춘기 소녀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다른 당원 동지들을 따라가려고 뛰어갔다. 


한편 스카못지아는 그의 여행가방을 도로 닫고 담배에 불을 붙여 만족스러운 듯이 입술 한 쪽에 꼬나 물고 있었다. 버스 한 대가 그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빼뽀네가 좌석 위에 있는 선반에 그의 짐을 얹어 놓았을 때 돈 까밀로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단장님, 뭔가 좀 바뀐 것 같은데요, 내가 동무 가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빼뽀네는 이름표를 보고 그 여행가방이 정말로 돈 까밀로의 것임을 알았다. 선반에서 그 짐을 끌어내려 보니 까밀로 타롯치란 이름표가 분명했다.


“신경 쓸건 없습니다.”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냥 바뀐 것뿐이니까요.”


빼뽀네는 돈 까밀로와 마주 앉았다. 버스가 떠날 때쯤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 여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세관을 통과할 때 난 당신의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군요.” 빼뽀네가 말했다.


“우연히 그렇게 된거요.”


“그러면 당신 가방 속에 반입 금지품이 들어있던 것도 우연이었소?”


“아, 그건 별거 아니었소. 성화 그림 카드 몇 장하고, 교황님의 사진 한 장, 그리고 성체봉령에 쓸 제기 몇 개뿐인걸.”


빼뽀네는 그 말을 듣고 온몸을 떨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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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9
2018-05-27
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0)

 

(지난 호에 이어)
빼뽀네가 큰 소리로 대꾸했다.


“사제들은 지구의 찌꺼기들이오. 그들은 비겁자, 위선자, 탈취자, 도둑놈 그리고 암살자들이오. 독사도 오히려 물릴까 두려워 신부를 피할 겁니다.”


“상원의원 동무, 말이 너무 지나치군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동무의 그 모욕적인 발언은 아주 개인적인 게 분명하오. 말씀 해보시지, 동무에게 비열하게 구는 신부라도 있는지?”


“내게 비열한 짓 할 수 있는 신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소.” 빼뽀네가 항변했다.


“동무에게 세례를 베푼 신부는 어떤가요?”


“그때 난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었소.” 


“그러면 동무를 결혼시켜준 신부는 어떤가요?” 돈 까밀로가 물고 늘어졌다.


“지도자 동무, 그 사람과 싸우지 마십시오.” 스카못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이 동무는 변증법적이고 따지기 좋아하는 유형입니다. 항상 결론 지을 말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는 돈 까밀로에게 몸을 돌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동무, 당신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오! 자기가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고, 나만큼이나 신부들을 미워하고 있거든!”


그는 포도주를 종이컵에 따라서 건배를 올렸다.


“소비에트 연방을 위하여!” 


“자본주의자들을 타도하자!” 론델라가 말했다.


“신부들을 없애자!”


빼뽀네가 돈 까밀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고함쳤다. 돈 까밀로는 그의 종이컵을 들어 올리면서 빼뽀네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 주었다.


기차는 한밤중에 국경선에 닿았다. 꽉 찬 보름달이 산 속에 있는 마을 위로 내리 비치고 있었다. 여행객들은 평야를 가로질러 리본 모양으로 흐르는 강과,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들을 이따금씩 내다 보았다. 


돈 까밀로는 복도의 창문 앞에서 담배 연기를 뿜으며 그 풍경들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빼뽀네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창 밖을 내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요? 사람은 자기의 조국을 떠날 때는 문득 조국에 감사하게 되나봐요.”


“동무, 당신은 아주 진부한 수식어와 민족주의에 빠져들고 있소. 우리의 조국은 세계를 의미한다는 걸 잊지 마시오.”


“하지만 왜 바보같이 그 많은 사람들이 달나라에 가고 싶어하는 겁니까?” 빼뽀네가 분별없이 물었다.


“동무, 그 질문은 내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소. 그 질문은 듣지 않은 걸로 하겠소.”


“듣지 않은 걸로 하는 게 좋겠군요.”

 

론델라 몰아내기 작전


 몇 명 안 되는 일행이 동독에 있는 비행장에서 3발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안이 너무 시끄러워 서로의 말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돈 까밀로 동무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빼뽀네는 비교적 마음이 편안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계심을 늦춘 건 아니었다. 돈 까밀로는 침묵하고 있는 동안도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동안 그의 레닌의 어록으로 보이는 책을 읽는 것으로 반공 활동을 한정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빼뽀네는 돈 까밀로 신부가 책을 덮고, 지금 막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한 손으로 이마를 세게 치고 났을 때에야 새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빼뽀네는 얼른 일어나서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고 윗 저고리 깃의 먼지를 털어내는 등 경고하는 몸짓을 보임으로써 그 효과를 무산시켜버렸다.


“아멘.”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빼뽀네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컬컬한 목구멍 속까지 시원해졌다.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낮추고 날개를 소련 땅에 내렸다.


“예수님, 나의 작은 교회는 아주 멀리 있는 것만 같습니다!” 돈 까밀로는 대합실 층계를 내려 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천국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느니라.” 예수님은 그에게 확신을 주셨다.


돈 까밀로는 기운을 내어 다시 타롯치 동무의 역할에 들어갔다.


“동무.” 그는 엄숙하게 빼뽀네를 불렀다.


“자네는 이 신성한 흙을 한 줌 집어 들고 입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끼진 않는가?”


“어째서 안 그렇겠습니까? 그런 다음에 당신의 목구멍 속에 그걸 쑤셔 넣고 싶은걸요.” 빼뽀네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방문객이 도착한다는 통고를 미리 받았는지, 한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들의 통역을 맡은 나디아 페트로프나입니다. 그리고 이 분은 양카 오리고프, 정부의 관광국 직원입니다.”


소녀는 이태리 말을 썩 잘했다. 소녀의 날카로운 눈매와 딱딱하게 차려 입은 양장만 아니라면, 우리와 같은 나라에서 온 소녀라고 보아도 틀림없었을 것이다.


빼뽀네는 자기소개를 한 다음에 그의 동행자들을 소개했다. 한 차례씩 악수를 나눈 다음, 그 관광국 직원은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공동 투사인 소비에트 인민의 이름으로 그들을 환영한다는 연설을 했다. 


그는 면도로 박박 밀어낸 머리에 네모진 턱을 하고 있었고, 앓은 입술과 부릅뜬 눈, 그리고 굵은 목덜미를 가진 40세 가량의 건장한 남자였다. 발목까지 덮은 비옷을 입고 서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경찰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얼굴의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연설을 했기 때문에, 그 연설을 통역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환영사로 듣기보다는 검사의 논고로 알았을 것이다.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도 마찬가지로 딱딱한 관료의 티를 보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그런대로 부드러운 데가 있었다.


나니 스카못지아 동무는, 비록 그 소녀가 그의 여성 편력사에 제일 먼저 오를 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못 된다 하더라도 말문이 꽉 막혀 버렸다. 그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어디로 보나 로마인임에 틀림없었다. 윤이 나는 검정 곱슬 머리칼과 어딘가 심술궂은 표정을 띤 눈에 긴 속눈썹을 달고 있었다. 입술은 비웃는 듯 비쭉 내밀고는 낡은 비옷을 입은 남자와 함께 마중하며 방문객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인사드립니다, 동무들!”


그 소녀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장한 어깨와 자그마한 엉덩이에 다리는 발레리나처럼 날렵했다. 


그는 꽉 끼는 바지에 붉은 와이셔츠와 검은 가죽 저고리를 입고 담배는 언제나 비스듬히 물고 있었다. 강하면서도 약간은 섬세한 멋을 풍겼다. 주먹을 쓰는데 재빠르며 여성을 다루는 솜씨도 능숙했다.


몇 사람의 일행이 오리고프 동무와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의 안내를 받으며 빼뽀네와 함께 비행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 스카못지아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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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yoon
윤경남
66093
9209
2018-05-22
신부님 러시아에 가다(9)

 

(지난 호에 이어)
그가 책을 주머니 속에 다시 넣자 빼뽀네가 말을 걸어왔다.


 “매우 좋은 책이겠군요.” 


“최고의 책이오.” 돈 까밀로가 말했다.


“레닌의 말씀을 모아서 만든 어록이니까요.”


그리고 한 번 읽어 보도록 책을 건네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불어로 써 있어서 참 안됐소. 하지만 자네가 듣고 싶은 부분은 번역해서 들려 줄 수가 있네.”


“그럴 건 없소, 동무.” 빼뽀네는 책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그 책의 임자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 보고는, 다른 동료들이 졸거나 만화잡지를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책의 겉 표지는 붉은 색이었고, 《Pensees de L’enine》이라는 불어가 쓰여 있었지만 사실은 그 책이 라틴어로 된 매일 기도서 이었음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 번째 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스가못지아 동무가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왔고, 론델라 동무는 저녁 신문의 호외 뭉치를 들고 왔다. 그는 호외를 들여다 보더니 혐오감을 느끼는지 고개를 저었다. 신문 1면에는 흐루시초프가 미국에서 마지막 날에 찍은 사진들과 그를 둘러싼 군중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난 뭐가 뭔지 모르겠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이 웃고 있는 얼간이들 속에서 흐루시초프 동무가 함께 웃고 서있는 모양은 비위가 틀려서 더 이상 못 보겠소.”


“정치란 건 두뇌가 문제지, 감정이 문제되는 건 아니지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평화의 공존을 성취하려고 여태껏 노력해왔소. 냉전 이데올로기를 키워온 자본주의자들은, 웃을 자격도 없는 자들이오. 냉전의 결말은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테니까 말이오.”


그러나 론텔라는 밀라노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고집을 세우며 말했다.


“다 좋아요. 하지만 난 자본주의자들을 싫어한다고 말할 권리가 있소. 그리고 그자들과 함께 웃다가 잡히느니 차라리 죽는 꼴을 보여주는 게 낫겠소.” 


“동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권리가 물론 있소. 그러나 우리 앞에서 말하지 말고 흐루시초프에게 가서 말해 보시오. 우리 그 양반을 만나자고 해서 이렇게 말해 보시오. ‘흐루시초프 동무, 동무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이오.”


돈 까밀로는 교활할 대로 교활해진 공산당 첩자만큼이나 교활했다. 론델라 동무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동무는 나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할 겁니다.”


그가 항의하며 말했다.


“만약 내가 밭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서 비료를 써야 한다고 칩시다. 난 비료를 쓰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나보고 비료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강제로 말하게 할 순 없습니다.”


“동무,”


돈 까밀로가 조용히 말했다.


“동무는 빨치산들과 싸운 적이 있겠지. 동무가 위험한 곳에 들어 가도록 명령 받았을 땐 어떻게 했나?”


“명령대로 했지요.”


“그렇다면 동무는 동지들한테 내 생명을 걸고 싸우는 일은 비위 틀리는 일이라고 말했소?”


“물론 그런 말은 안 했지요. 그러나 그게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냉전이건 열전이건 전쟁은 전쟁이란 말이오, 동무. 그리고 대의 명분이 있어서 싸우는 사람에겐 자신의 견해를 고집할 여유가 없는 법이오.”


“그 얘긴 그만 집어치워요, 론델라 동무.” 빼뽀네가 끼어 들었다.


“우린 지금 동무가 자본주의자들과 맞부딪치지 않아도 되는 나라로 가고 있소. 그것만은 분명하오.” 


“그래서 난 기분이 아주 좋다오.”


론텔라는 그 점을 인정했다.


“내가 가장 다행이라고 여기는 일은,” 스카뭇지아가 말을 꺼냈다.


“2주일 동안 우리가 신부를 통 만나지 않게 되는 일이오.” 돈 까밀로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동무, 그 일에 관해서 전혀 확신할 수 없소. 소비에트 연방엔 종교의 자유가 있잖소?”


“종교의 자유라구요? 하! 하!” 스카못지아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말라구! 소비에트 연방은 자유를 진지하게 생각하니까.” 


“그곳에도 신부가 있다는 얘긴가요? 그 더러운 종자가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거요?”


“가난과 무지가 사라지는 날, 그것도 추방되겠지요?” 빼뽀네가 끼어들었다.


“가난과 무지가 저 까마귀 제복의 무리들에겐 먹을 것이며 마실 것이니까요.”


그러나 돈 까밀로는 전보다 더욱 냉정하고 엄숙해졌다. 


“상원의원 동무, 소비에트 연방에는 무지와 가난이 이미 없어졌다는 사실을 동무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소. 만약 아직도 그곳에 신부가 있다면, 그건 아직까지 극복할 길이 없는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오.”


“그 사람들이 무얼 갖고 있단 얘깁니까?” 스카못지아가 소리쳤다.


“그들도 우리처럼 살과 피로 되어있지 않단 말이오?”


“아니오,”


빼뽀네가 큰 소리로 대꾸했다.


“사제들은 지구의 찌꺼기들이오. 그들은 비겁자, 위선자, 탈취자, 도둑놈 그리고 암살자들이오. 독사도 오히려 물릴까 두려워 신부를 피할 겁니다.”


“상원의원 동무, 말이 너무 지나치군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동무의 그 모욕적인 발언은 아주 개인적인 게 분명하오. 말씀 해보시지, 동무에게 비열하게 구는 신부라도 있는지?”


“내게 비열한 짓 할 수 있는 신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소.” 빼뽀네가 항변했다.


“동무에게 세례를 베푼 신부는 어떤가요?”


“그때 난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었소.” 


“그러면 동무를 결혼시켜준 신부는 어떤가요?” 돈 까밀로가 물고 늘어졌다.


“지도자 동무, 그 사람과 싸우지 마십시오.” 스카못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이 동무는 변증법적이고 따지기 좋아하는 유형입니다. 항상 결론 지을 말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는 돈 까밀로에게 몸을 돌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동무, 당신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오! 자기가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고, 나만큼이나 신부들을 미워하고 있거든!”


그는 포도주를 종이컵에 따라서 건배를 올렸다.


“소비에트 연방을 위하여!”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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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
65996
9209
2018-05-17
신부님 러시아에 가다(8)

 

(지난 호에 이어)
빼뽀네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고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다음과 같았다.


“난 지옥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는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만약 지옥이란 것이 있다면, 바로 당신이 가야 할 곳이오.”


“그럼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군, 동무.”


 이쯤 되니 빼뽀네가 버티고 있던 담벼락이 무너져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신부님.”


그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신부님은 그렇게도 기를 쓰고 나를 파멸시키려고 드십니까?”


“자네를 죽어라 하고 파멸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소, 동무. 러시아 여행에 내가 낀다고 해서, 러시아 사태에 어떤 영향을 주겠소? 내가 그곳에 가든지 안가든지,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일어나고 마는 것이오. 왜 그리 불안한가? 러시아가 당신네 신문이 만들어 내고 있는 노동자의 천국이 아닌 것이 두려워서인가?”


빼뽀네는 어깨만 들썩했다. “나로서는 말일세.”


돈 까밀로가 말을 이었다.


“러시아가 우리 신문이 그려놓은 것만큼 나쁘지 않기를 바란다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빼뽀네가 냉소를 띠고 소리쳤다. “참으로 사심이 없고 냉철한 분이십니다 그려!”


 “난 결코 사심 없는 사람이 못되오.”


돈 까밀로가 대꾸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내게도 무관한 일이 아니오. 그래야 그들이 집에 조용히 들어앉을 것이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도 않을 테니까.”


일주일이 지나서 까밀로 타롯치 동무는 러시아 여행에 갈 수 있도록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싸구려 가방을 들고 다른 아홉 명과 함께 공산당 본부에서 보고를 했다. 당의 한 젊은 관리가 상원의원이 소개해서 온 사람들을 영접하고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동무들, 여러분들은 완수해야 할 뚜렷한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 분들은 본인은 물론 국내에 있는 다른 동무들을 위해서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와서 친구에게나 적에게나 똑같이 영광스러운 소비에트 연방의 발달된 기술과 평화 정신에 대해서 말해주어야 합니다.”


빼뽀네의 얼굴이 불안감으로 창백해져 갈 무렵, 돈 까밀로는 발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동무.”


돈 까밀로가 말했다.


“우리가 돌아온 다음, 우리 친구들에게는 그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일들을 얘기해줘야 하고, 적에게는 그들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일들을 말해주기 위해서만 우리가 여행한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내 생각에 우리의 사명은 우리의 주인인 러시아사람들에게, 그들이 우리 이태리 사람들을 전쟁의 위협에서 해방시켜준 것에 대해 우리 이태리인이 기쁨과 감사에 넘치는 인사를 전해주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이지요, 동무”


 당의 관리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지요.”


 관리는 가슴을 내밀고, 약간 화가 난 얼굴을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러자 빼뽀네는 험상스레 돈 까밀로를 노려보았다.


 “말할 것도 없는 사실에 대해선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게다가 당신은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소.”


“아니, 알고 있소.” 돈 까밀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지금 스물 다섯 살이며, 전쟁이 났을 때는 열살 이었소. 독일군에 대항해서 싸운 경험도 없고, 따라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임을 알리가 없지, 그리고 평화 문제와 군축 문제를 제안하기 위해서 흐루시초프 동무가 미국 여행을 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얼마나 중대한가를 모르고 있다네.”


“말 잘하셨소.”


나니 스카못지아 동무가 말했다. 우람하게 생긴 그는, 로마의 무산 계급인 트라스테베르 지구 출신으로, 강인하고 저돌적인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싸움이 벌어졌다 해도, 그 현장에 당의 우두머리들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료주의자들이 관료 제도를 확립시켰을 때 말이죠…” 


밀라노에서 온 노동자 계급 출신의 론텔라 동무가 덧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빼뽀네가 가로채고 나섰다.


 “우린 여기에 회의하러 온 게 아닙니다. 우리가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가는 기차를 놓치게 됩니다.”


 그는 돈 까밀로에게 마천루라도 무너뜨릴 만큼의 위력을 갖춘 원자폭탄 같은 눈초리를 던지면서, 문 쪽으로 큰 걸음을 옮겨 놓았다. 그러나 돈 까밀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의 노선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얼굴에 나타내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빼뽀네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악마 같은 까밀로타롯치 동무가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이었다.


 그는 돈 까밀로가 지나갈 길목을 가로막고 마주 앉았다. 그러나 돈 까밀로는 말썽을 일으킬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헤아릴 길 없는 묘한 표정을 하고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책의 붉은 겉 표지에는 황금 망치와 낫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는 이따금 눈을 들어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들판과 마을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가 책을 주머니 속에 다시 넣자 빼뽀네가 말을 걸어왔다.


 “매우 좋은 책이겠군요.” 


“최고의 책이오.” 돈 까밀로가 말했다.


“레닌의 말씀을 모아서 만든 어록이니까요.”


그리고 한 번 읽어 보도록 책을 건네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불어로 써 있어서 참 안됐소. 하지만 자네가 듣고 싶은 부분은 번역해서 들려 줄 수가 있네.”


“그럴 건 없소, 동무.” 빼뽀네는 책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그 책의 임자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 보고는, 다른 동료들이 졸거나 만화잡지를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책의 겉 표지는 붉은 색이었고, 《Pensees de L’enine》이라는 불어가 쓰여 있었지만 사실은 그 책이 라틴어로 된 매일 기도서 이었음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 번째 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스가못지아 동무가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왔고, 론델라 동무는 저녁 신문의 호외 뭉치를 들고 왔다. 그는 호외를 들여다 보더니 혐오감을 느끼는지 고개를 저었다. 신문 1면에는 흐루시초프가 미국에서 마지막 날에 찍은 사진들과 그를 둘러싼 군중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난 뭐가 뭔지 모르겠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이 웃고 있는 얼간이들 속에서 흐루시초프 동무가 함께 웃고 서있는 모양은 비위가 틀려서 더 이상 못 보겠소.”


“정치란 건 두뇌가 문제지, 감정이 문제되는 건 아니지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평화의 공존을 성취하려고 여태껏 노력해왔소. 냉전 이데올로기를 키워온 자본주의자들은, 웃을 자격도 없는 자들이오. 냉전의 결말은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테니까 말이오.”


그러나 론텔라는 밀라노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고집을 세우며 말했다.


“다 좋아요. 하지만 난 자본주의자들을 싫어한다고 말할 권리가 있소. 그리고 그자들과 함께 웃다가 잡히느니 차라리 죽는 꼴을 보여주는 게 낫겠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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