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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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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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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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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여항(閭巷) 시인

 

 조선조는 시(詩)를 써서 생계를 꾸려가는 의미의 전문 시인은 없었다. 그때는 시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존경받는 세상이 아니었다. 시는 어디까지나 양반의 전유물-. 통치자든 유일한 출셋길인 과거에 등과 한 사람이든 아니든, 글깨나 한 사람이면 누구나 시를 쓸 줄 알아야 했기 때문. 증인이나 천민은 어깨너머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와서 증인이나 천민 계층에서 뛰어난 시(詩)적 감각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들이 마음을 모아 갖가지 시회(詩會)를 열었다. 이를 가리켜 여항(閭巷)문학이라 한다. 요샛말로는 '서민문학'이라는 말이 가장 가까운 말일 게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과 그의 누나 난설헌(蘭雪軒) 허초희 남매의 시(詩) 스승이요, 최경창, 백광훈과 더불어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던 손곡(蓀谷) 이달을 여항문학의 비조(鼻祖)로 꼽는 이가 많다.


 본격적인 여항시인으로는 유하(柳下) 홍세태를 꼽을 수 있다. 효종 때 태어나 숙종, 영조 때 이름을 날리던 홍세태는 그의 어머니가 종으로 천민 출신. 어떻게 해서 시(詩)를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임금이던 숙종, 영조의 귀에까지 들어가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


 안대희 교수를 따르면 유하는 시를 잘 지은 덕분에 어느 권세가의 도움으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작은 벼슬자리도 하나 얻었다. 그의 노력을 본받아 도회지 뒷골목의 서민들도 무도 책을 구해서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하니 그의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했던 모양이다.


 유하는 타고난 신분 때문에 평생을 울분으로 지내다가 죽기 전 자기 작품을 모두 모아 편집해서 자서(自敍: 자기가 자기 자신의 일을 서술하는 것)까지 써두고 부인에게 자기가 죽으면 이 문집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이들 여항문인들이 밖으로 내놓지는 않았겠지만 속으로 그들이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기득권 양반사회에 대한 분노와 원망, 불만과 서러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다시 안대희 교수의 힘을 빌려 유하의 늙어가는 말을 소재로 쓴 시(詩) 한 수를 보자.

 

 


시골 마을에 늙은 암말이 있다네
태어날 때는 천리마 망아지였지
남다른 점 보지 못한 촌사람들
앞 다투어 빌려다가 달구지 끌게 하네
.….
서울에는 넓고 큰 길 있건마는
이 말은 촌구석에 처박혀 있네
(田家有老牝 .... 此馬終邨墟)

 

 

 빼어난 자질이 있으나 세상에서 인정을 받아보지 못하고 늙어가는 말의 처지에 자신을 빗대어 신세타령, 울분을 토해놓은 것을 엿볼 수 있다.


 여항문인들이 자취를 감춘 지가 벌써 오래다. 양반-천민 구별도 없어졌다. 시나 산문 따위의 글이 배운 자만의 전유물이던 시대도 지나갔다. 바야흐로 문자 공용의 시대. 누구나 시를 쓰고 누구나 산문을 쓰니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 세상이 되었다.


 지금은 민주화의 시대. 개인의 능력만 있으면 수십 층 고층 건물의 주인도 되고, 심지어 청와대 주인도 꿈꿔볼 수도 있다. 계급간 차별도 옛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다름 아닌 요즈음 심해지는 서울과 지방 간의 차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차이가 옛날 여항문인과 지배층 양반문인의 차이와 비슷하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서울은 대한민국 모든 것의 중심. 대한민국 안에 서울이 있는게 아니라 서울 안에 대한민국이 있다. 뭣이든지 서울이 최고, 지방이면 2류, 3류를 면치 못한다. 대학이 그렇고, 문학 예술이 그렇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과 희망은 요새 와서 지방 문단이 활기를 디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잠잠하던 지방문학 활동이 활발해져 간다. 전주, 강릉, 청주, 경주, 안동 그리고 광주 등 실로 무수한 도시에서 시(詩)나 산문을 쓰는 문학회가 생기고 그들이 발간하는 문예지도 읽기가 바쁘다.


 그러나 걱정도 있다. 시(詩)건 산문이건 글을 쓴다는 것은 얘기도 못 들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문집을 보내 올 때면 불안한 생각이 든다. 대필(代筆)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 얼른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항문인들은 자기들의 문학적 욕구도 발산하고 또 자기들이 얼마나 탁월한 문학적 재질이 있는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시회(詩會)를 가졌다. 오늘날 글 쓰는 사람들 중에서 남이 쓰니까 나도 쓴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랴.(2012. 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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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40년 전의 6월

 

 올 6월 어느 날 토론토 신문에는 어느 동양인의 전신을 담은 큰 사진 한 장이 올랐다. 어떤 여자아이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거리를 뛰쳐나오는 사진. 사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자.


 월남전의 포화가 날로 뜨거워가던 1972년 6월, 월남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살던 9살의 푹(Kim Phuc)이라는 소녀는 미군이 퍼부은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고 거리로 뛰쳐 나와 다른 아이들 셋과 함께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뛰어오고 뒤에는 미국 군인 두세 명이 걸어오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시 21살의 AP 종군기자 웉(Nick Ut)씨.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언젠가 한 번은 보았을 이 사진. 네이팜탄의 화염 공격을 받고 두려움에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거리로 뛰쳐나온 9살 소녀를 찍운 이 사진은 전쟁의 비극을 말해주는 무언의 증거물이 되었다. 기독교의 사랑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은총의 나라, 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려고 애쓰는 전도의 나라,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滿開)했다는 무지개의 나라 미국, 이 미국이 저지른 또 하나의 전쟁에서 일어난 양민학살의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종군기자 웉은 이 소녀를 향해서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그녀의 몸에 찬물을 끼얹고는 자동차에 싣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올해 61살로 접어든 사진기자 웉씨는 아직도 AP에서 일하고 있다. 이 사진으로 유명한 퓰리처(Pulitzer) 상을 받은 그는 그의 집 거실 벽에 이 사진을 걸어두고 요사이도 매일 한 번씩은 들여다 보는데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나오는 눈물을 참기 어렵다고 한다. 미국을 대신한 속죄의 눈물인가.


 푹 씨를 도운 사람은 사진기자 웉 씨만이 아니다. 푹 씨의 치료를 위해서 그를 독일병원으로 옮겨준 크레츠(Perry Kretz) 씨, 푹씨가 살던 마을에서 네이팜탄을 목격했고 화상을 입은 푹 씨를 성형수술 해줄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겨준 웨인(Christopher Wain) 씨가 있다. 모진 것이 목숨이라 푹 씨는 살아서 회복을 하여 2012년 현재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그때 성심성의껏 푹 씨의 망명 신청 수속을 도와주었던 오스먼드(Murran Osmond) 씨, 마지막으로 월남 사이공의 어느 병원에서 화상을 입은 푹 씨를 간호했던 올해 91살의 간호사 아세놀(Martha Arsenault) 씨가 있다.


 2012년 6월 어느 봄날, 푹 씨를 위해서 헌신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다섯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삶을 축하하는 자리, 눈물의 찬란한 빛을 노래하는 자리였다. 어떻게 보면 푹 씨는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 왜냐하면 그가 언론에 소개되어 유명하게 되었으니 말이지 푹 씨가 살던 마을에서 온몸이 화염 속에 쌓여 비참한 최후를 맞은 농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전쟁은 한 인간집단이 다른 인간집단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횡포다. 모든 전쟁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장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발전이나 진보는 있어도 혁명이나 쿠데타는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가 안 된다. 


 이유없이 전쟁을 일으켜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자는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하나 그것도 거짓말. 이웃 나라들을 침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힌 몽고의 징기스칸(Genghis Khan)이나 수백만의 동족 사상자를 낸 북한의 김일성이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더 최근에 와서 미국의 전쟁 연구가 파웰(Powell)이 지구상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한 나라로 지명한 전쟁의 금메달리스트 미국(모두 180번이라던가?)이 어떤 천벌을 받았다는 얘기도 없다.


 미국 군대가 퍼부어댄 네이팜탄 공격이 아니었으면 푹 씨는 언제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사랑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었을까? 목숨을 걸다시피 한 인류애나 도움의 손길은 월남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쏟아진 네이팜탄이 아니었으면 애당초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남을 죽이는 지극히 악독하고 사악한 면이 있는가 하면 남을 도와주고 하늘도 감격할 온정의 손길도 내밀 줄 아는 착한 면도 있다. 둘 다 전쟁 같은 비극이 없이는 동시에 경험하기 어려운 인간들이 가진 특성일 게다. 1972년 6월에 시작한 다섯 사람의 한 인간에게 퍼부은 사랑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연연히 그 빛을 잃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천사여, 사랑의 천사들이여! (20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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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5
봄의 탄식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위는 한국의 데카당(decadent) 시인 손로원의 탄식에 불세출의 작곡가 박시춘이 멜로디를 달고 가희(歌姬) 백설희의 고운 목소리로 음반에 담은 <봄날은 간다>의 첫 번째 절이다. 내가 한국 E 여자대학교에 있을 때였던가. 시(詩) 계간지 <시인 세계>가 전국의 내노라하는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봄날은 간다>가 애창곡 가사로 가장 많은 지명을 받았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대한 것은 대학교 때였지 싶다. 그러나 이 노래는 주인을 잘못 만났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애상적이고 섬세한 것에는 무조건 고개를 돌리는 것이 사나이의 예의라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가정을 버리고 평생을 돌아다니다가 70고개를 넘자 그제서야 슬며시 본처에게 돌아온 난봉꾼마냥 내가 이 노래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 것은 세월이 흘러 내 머리에 흰 머리칼이 부쩍 늘어난 때부터였지 싶다.


 어머님의 가사(歌辭)에 자주 나오는 문구 "슬프다 나의 연광(年光) 일흔이 넘었구나. "처럼 이제 내 연광도 일흔이 넘었으니 꽃이 피었다고 웃을 일도, 꽃이 졌다고 울 일도 없는 감정적으로 무뎌진 하루하루가 아닌가.


 봄이 왔다. 봄은 오면 가는 것을 먼저 걱정하는 계절. 내가 알기로는 여름이나 가을, 겨울이 가는 것을 슬퍼하는 시를 남긴 시인은 없다. 그러나 봄이 가는 것을 탄식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노래한 시인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리만큼 많다. 봄을 여읜 슬픔을 가장 애절하게 노래한 시인은 남쪽 훈픙이 불어오면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남보다 먼저 보내오는 전라도 강진 땅에서 태어난 영랑(永郞) 김윤식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이 찬란한 슬픔의 봄 시심(詩心)에 이르기까지는 당시 신문학의 요람 휘문의숙에 입학하여 박종화, 홍사용, 정지용, 이태준같은 뒷날 문단의 큰 별이 된 선후배들의 영향이 컸지 않을까.


 ‘간밤 비에 피어서/아침 바람에 지누나/가련다 한 봄 일이/풍우 속에 오가네’ (和開昨夜雨 . ?來風雨中)


 비바람에 꽃이 피고 지고는 한 해가 후딱 지나가버린다고 세월무정을 노래한 조선 중기의 문신 운곡(雲谷) 송한필의 탄식이다. 아마도 운곡의 비바람이란 실제 비와 바람이라기보다는 남을 모략중상으로 얽어매어 사화(士禍)를 꾸민 주인공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당나라 때 우무릉이란 시인은 <권주가> 한 수로 비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을 인생 별리(別離)에 빗대어 한숨지었다.


 ‘그대에게 황금의 술장으로 권하니/이 술을 사양 말고 들게/꽃이 비바람에 흩날리니/인생도 만나면 헤어지는 것’ (勸君金屈? . 人生足別離)


 아무리 좀 더 있다 가라고 울며불며 매달려도 봄은 연자방아처럼 한바퀴 빙 돌아서 왔다가는 가고, 갔다가는 다시 오는 것이다.


 봄이 오면 고등학교 고문(古文) 시간에 배운 두시언해의 주인공, 천추만대의 시성(詩聖) 두보의 <춘망(春望)>을 잊을 수 없다.


 ‘나라는 망하였으나 산과 강은 그대로 있고/봄이 찾아온 성에는 풀과 나무만 깊었구나’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


 안록산의 난 때문에 촉으로 피란을 간 당나라 임금 현종이나 정처 없이 떠다니던 시인 두보도 수 백리에 뻗친 피난민의 대열과 쑥대밭이 된 수도 장안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어찌 전쟁의 슬픔을 아니 느낄 수 있었으랴.


 봄이 오면 생각나는 것은 춘원(春遠) 이광수의 <할미꽃>이다. 늦봄 농촌의 서정과 인생유전을 콧등이 시큰할 정도로 서럽게 묘사한 시(詩)가 곧 <할미꽃>이 아닌가.


 ‘보리밭 가에/찌그러진 무덤-/그는 저 찌그러진 집에/살던 이의 무덤인가/할미꽃 한 송이/고개를 숙였고나/아아 그가 살던 밭에/아아 그가 사랑턴 보리/푸르고 누르고/끝없는 봄이 다녀 갔고나/이 봄에도/보리는 푸르고 할미꽃 피니/그의 손자 손녀의 손에/나물 캐는 흙 묻은 식칼이 들렸고나/그 변함없는 농촌의 봄이여/끝없는, 흐르는 인생이여’


 옛날 어렸렸을 때 어른들이 봄을 탄식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때는 왜 그런 탄식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제는 알겠구나. 모든 생물이 다시 살아나는 봄의 향기에 뒤따라 온 무너져버린 자기의 청춘에 대한 회한(悔恨) 때문이란 것을! 달이 두세 번 차고 기울다 보면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20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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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어느 트럼펫 연주자

  

 서신혜 님이 쓴 [열정]이란 책은 조선시대 때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그들이 가진 천부적 재능을 열심히 길고 닦아 드디어 정상의 자리에 오른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그래서 '천한 광대 악인(樂人)의 비범한 삶'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 책에는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玉寶高) 이야기도 나온다. 신라 경덕왕 때 사람 옥보고는 지리산에 들어가 무려 50여 년 동안 거문고를 혼자 익히고 거문고 음악 50여 편을 작곡하였다. 그 후 그가 거문고를 타면 어디선가 검은 학이 날아와서 그 곡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그 때문에 거문고를 현학금(玄鶴琴) 또는 현금(玄琴)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5, 60년 동안 혼자 연습한다고 달인(達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고루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예술에는 반드시 "이렇게 해봐라" 혹은 "저렇게 해봐라" 가르쳐 주는 스승이 있어여 한다고 믿는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열정이 지극히 높은 사람이 피아노 악보를 한짐 짊어지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혼자 피아노를 4, 50년 연습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혼자 익힌 그가 정통(正統) 맥을 잇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배울 때는 코치(coach)가 있어야 하는데 산 속에서 누가 가르쳐 준단 말인가. 정상에 오른 운동선수들. 이를테면 권투의 알리(Ali)나 테니스의 나달(Nadal) 같은 달인들도 아직껏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일러주는 코치가 있다.


 서신혜 님의 [열정]을 보면 남들에게 감동을 주고 천하를 움직이게 한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그들 뒤에는 격려해주며 피나는 노력과 지도를 아끼지 않는 스승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이름이 난 음악가나 무용수, 시인, 화가들을 보라. 그들이 정상에 오르기 전에는 기를 쓰고 뛰어난 선생 밑에 가서 지도를 받으려고 하고, 또 뒤에서 이러한 기회를 얻어 주려는 재정적 후원을 해주는 조직도 있지 않은가.


 예술인의 천적(天敵)은 가난이다. [열정]에 등장하는 천재 음악인들의 경우 자신의 앞날을 경제적으로 스스로 책임질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1960년대 내가 유학을 떠나기 전만 해도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부유한 집 출신들이 많았다. 요사이는 그 경향이 더 심해져서 레슨(lesson)비를 감당할 여유가 있는 부모가 아니고서는 자녀가 음악을 전공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20억 재산도 없는 놈이 제 새끼들을 음대에 보내는 바보"라는 뼈있는 농담이 떠돌아다닌 때가 벌써 몇 십 년 전이 아닌가. 지금은 그 20억이 4, 50억으로 불어났을 것이다.


 몇 주 전 토론토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훈훈한 인정을 담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즉 토론토교향악단 트럼펫 연주자로 있는 맥캔들리스(A. McCandless)는 그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이름을 자렛(Jarrett)이라 지었다. 자렛이라는 이름 뒤에는 다음과 같은 긴 사연이 소개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그러니까 1980년 당시 10살 백인 중학생이던 맥캔들리스는 미국 켄터키 주 렉싱턴(Lexington)에 살고 있었다. 흑백 통합학교를 다니던 맥캔들리스는 자렛이라는 34살의 흑인 음악선생에게서 트럼펫 레슨을 받았다. 아버지가 지붕덮개 공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 맥캔들리스에게 과외레슨은 큰 재정적 부담. 그러나 음악선생 자렛은 맥켄들리스에게는 레슨비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돈으로 새 트럼펫도 하나 사주며 지성으로 트럼펫 연주를 가르쳤다. 이에 힘을 입은 맥캔들리스는 기악을 전공으로 택하고 뉴욕주 로체스터에 있는 명문 이스트만(Eastman) 음대에 입학했다. 과정을 마친 그는 뉴욕, 시카고 등 미국의 여러 교향악단에서 연주자 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 토론토 교향악단으로 오게 된 것이다. 자기를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한 그 흑인 음악선생을 잊지 못하여 아내가 사내아이를 낳자 이름을 자렛이라고 지은 것이다. 그야말로 요새 점점 들어보기가 어려워지는 말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해요(To sir, with love)"의 훈훈한 이야기다.


 이같은 우리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한 이 세상은 아름답고 살맛이 나는 곳. 괴테(Goethe)가 말했던, ‘하늘에는 별이 있어서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나는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고 싶다.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언제고 틈이 나면 나는 맥캔들리스가 부는 트럼펫 소리를 들으러 가볼 생각이다. 트럼펫 소리야 누가 불든 나 같은 귀머거리에게는 마친가지로 들리겠지만 따뜻한 인정의 숨결 아래서 숙성(熟成)된 트럼펫 소리는 더 다정하고 가깝게 들리지 싶다.(20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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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산토끼 토끼야(1999)

 

 O형, 12지(支)란 자(子), 축(丑), 인(寅), 묘(卯)로 시작되는 60갑자의 아랫부분을 이루는 12개의 지지()를 말하는 것으로 세월의 바뀜을 구별하기 위해서 생각해낸 것입니다.


 그 12지(支)에 닭, 쥐, 뱀, 소 등의 그 해[年]를 상징하는 동물들과 짝을 지어놓고 그해에 태어난 사람들 성격이나 팔자까지 점칠 수 있는 '부수입'이 따른다고 하니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재미있는 생각이지요.


 올해는 기묘(己卯)년, 토끼해라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 하나가 토끼인 것을 보면 그 토끼가 얼마나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고 있는 존재인가를 알 수 있지요.

 

 애당초 나는 토끼해라고 해서 "토끼야 토끼야 산속의 토끼야/ 겨울이 되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로 시작되는 강소천 작사 권길상 작곡 <토끼야>가 요사이 우리 현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노래를 적을까 하다가 나와 인연을 맺은 지가 좀 더 오랜 이일래 님의 작사 작곡 <산토끼>를 적고 말았습니다.

 

 

산토끼 토끼야 어데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데를 가느냐

 

 

 지금 생각하니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학예회 때 토끼와 연관되는 연극을 한다고 무대 위에 올라갔던 일이 어슴푸레 생각납니다. 나는 주연급 배우역은 아니었으니 틀림없이 무대에 올라서서 말도 한 번 못하고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내려와야 하는 그런 말단 조역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O형, 이것도 내가 토끼와 맺은 인연이라면 인연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환갑이 내일모레인 이 나이에도 동요를 부르면 마음이 고와지고 기분이 젊어지는 것 같은 것을 보면 세상살이에 시달린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그 착하디착한 어린 시절의 순정이 아직은 조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나는 신년 붓글씨 꺼리를 가끔 동요에서 찾습니다.


 O형, 겨울에 토끼가 어려운 것처럼 요사이는 나라 안팎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경기(景氣)가 풀린다"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떠돈 지가 벌써 언제부터였지마는 일선에서 뛰는 사람들의 말은 "아직 멀었다"고들 합니다.


 중국속담, "끝이 없는 파티는 없다"는 말은 곧 "끝이 없는 불경기도 없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러니 O형, 다음 8글자를 담은 옛말, 즉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괴로움이 다하면 기쁨이 온다(興盡悲來 苦盡甘來)"는말을 믿어 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
설사 저 장천(長天)에서 동아줄을 내려준 대도
이 강산 이 수심(愁心) 버리고 하늘에는 내사 안 갈래
풀피리 불자던 봄이 너 더불어 오지 않는가

 


 시조시인 정완영 님의 책에서 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O형, 얼마 안 있으면 봄이 올 것이고 또 그러다보면 이 어려움도 봄 눈 녹듯 스르르 풀리는 날이 오겠지요. 부디 건강하십시오. (199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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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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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살어리 살어리랏다”

 

 해를 보내며 붓글씨 하나와 거기에 따른 짤막한 글 한 편을 보내달라는 신문사의 청탁을 받고 무엇을 쓸까 생각을 해봤다. 


 "힘차게", "희망 속에서 웃음을 잃지 말고", "인내로 용맹정진", "황소처럼 튼튼하게" 따위의 듣기 좋은 꽃노래는 여러 번 불렀고 올해에도 내가 아니더라도 이 말을 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소재 찾기의 방향을 서정적인 쪽으로 돌렸다.


 도덕적이고 훈계적인 말을 싫어하는 데다가 밝고 힘찬 구절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서정적인 구절밖에 더 없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한문 구절은 피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작자 미상의 노래부터 시작해서 옛시조, 현대 시(詩)를 뒤적였으나 마음에 꼭 드는 것이 눈에 띄질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위에 적은 고려 때의 속요 [청산별곡]이 떠올라서 여간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금년 봄에 안식년으로 경기도 판교에 있는 정신문화연구원에 가 있는 동안 순천대학교 한약재료학과 교수로 있는 Y양의 초청으로 담양의 정자골과 순천에서 가까운 경상남도 하동(河東) 주위를 맴돌다 온 적이 있다. 


 하루는 순천 송광사엘 갔다가 해질 무렵에 그 절 뒤에 있는 법정(法頂) 스님이 기거하던 불일암(佛日庵)에 들렀다. 불일암은 [서 있는 사람들] [영혼의 모음] 등을 비롯한 법정수필 문학이 태어난 곳이다.


 주인은 가고 없는 빈 뜨락 밑으로는 후박나무가 한그루 서 있고 스님이 거처하던 허름한 한일(一)자 건물 벽에는 [청산별곡]을 적어서 걸어둔 현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이런 산 속에 [청산별곡] 같은 노래가 벽에 걸려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공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방은 티 없이 맑고 무덤 속 같은 정적이 깔려 실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생각이 난다.


 [청산별곡]은 모두 8절로 고려 시가(詩歌)에서 공통적 주제인 생(生)에 대한 체념과 고독, 탄식과 허무, 은둔과 비애를 읊은 애절한 노래다. 깊은 산 속과 바닷가 어디를 헤매어도 이 마음의 공허를 메울 길은 없으니 덜 된 술이라도 마시고 싶다는 탄식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청산별곡]은 애처로운 노래만은 아니다. 김희보 님의 말처럼 이 애달픈 사연에는 해학이 있고 우수의 일면에는 낙천적이고 명랑한 기조가 있어서 실로 유연한 정조가 감도는 그런 노래다. 마치 아리랑을 슬프게 부르면 두 눈에 눈물이 고이도록 슬픈 노래가 되지마는 힘을 넣어 부르면 봄날 소풍 길에 나선 것 같이 신바람이 나는 그런 노래가 되는 것처럼.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희열에 차 있는 사람이나 슬픔에 우는 사람,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 우리 모두가 한결같이 그리워하는 것은 그 청산이 아닐까. 


 무의식 속에서 한세월 잊혀져 있다가 그 어느 날 하루 의식세계로 조용히 떠오른는 하나의 소원, 그것이 바로 우리의 [청산별곡]인 것이다.


 꿈속에서 맞았던 새해 무인년, 또 울며 웃으며 묵은해를 보낸다. 잘 가거라. (199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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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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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0
교민사회 수필문학의 현주소

 


 이 글은 세 번째 수필집 [청산아 왜 말이 없느냐]를 위한 출판기념회가 토론토 한인천주교성당 강당에서 열렸을 때 한 답사 내용이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어느 수필가가 [한국 수필 평론]이라는 책을 한 권 보내왔습니다. 그 책의 맨 첫 페이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수필이 어떤 문학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수필이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는 말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잘못된 정의다. 수필은 결코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편지 한 장을 올려도 앞뒤 순서가 있는 법인데 어찌 문학이 붓 가는 대로만 쓸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다만 붓 가는 대로 쓴 것처럼 자연스러운 글이 바로 수필이라는 것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수필이라는 이름을 붙인 글을 써서 남 앞에 내놓은 지가 꼭 12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이번에 나온 책까지 합하면 수필집이 모두 4권, 수필의 낱개 숫자로는 모두 240~250편이 됩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 수필계의 관심거리요 동시에 걱정거리 하나는 수필이 문학의 맨 뒷자리 내지 배 다른 형제 취급을 받기 때문에 수필을 쓰는 사람들은 기가 죽어서 문학적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시나 소설에 비해서 수필가들은 수준이 떨어지고 수필 내지 수필작가가 받는 대접이랄까 인정도 극히 적다는 말입니다.

예로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수필 분야도 있는 신문사는 거의 없습니다. 시, 소설, 동화, 동시, 희곡, 비평 등 여러 분야가 있지마는 수필은 없습니다. 시나 소설에 비교해서 별 볼일 없다는 말이지요. 일본이나 중국 같은 데서는 수필이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한국보다 몇 배 크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수필이 푸대접 받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선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서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작가가 쏟는 정성과 노력이 비교적 적은데다가 수필에 대한 평론도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수필가들이 나같이 문학적 수업을 전연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수필가 자신도 수필을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너무 빨리 자기 작품에 만족 내지 자기도취를 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등단이 되는 것도 수필은 시보다 훨씬 쉽고 등단 기간이 짧습니다. 예로 수필 전문지 대부분이 수필등단 과정은 1회 추천 제도입니다.


 수필이 양적으로 너무 많이 생산되는 것도 수필 내지 수필가에 대해서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요새 한국에서는 누구나 수필을 씁니다. 수필이 선비문학이니 세제여적이니 하는 엘리트 문학 정신이니 하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요사이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수필 홍수시대, 수필집 안 내는 사람이 없습니다. 코미디언, 배우, 가수, 국회의원, 아나운서, 교수, 스님, 운동선수, 깡패, 흉악범, 넘편한테 얻어맞고 일생을 보낸 여자, 수많은 남자를 농락한 꽃뱀, 유부녀를 농락하고 나서 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내는 제비족, 10살 아래 남자하고 사는 50대의 자유부인, 이대로 가다가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흉악범, 모두가 수필집을 낼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수필집 저자들의 삶이 기구하면 기구할수록, 괴상망칙하면 망칙할수록 더 좋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수필집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그 질은 점점 더 떨어지고, 질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수필가가 문학권에서 받는 천대랄까 설움은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 한국에 비하면 우리 한인 동포 사회에서 수필에 대한 대접은 무척 좋습니다. 즉 정서의 황무지인 이 북미대륙의 동포 사회에서는 수필이 동포 정서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보다 훨씬 더 큰 대접을 받고, 상상 이외로 많은 독자들이 수필이나 시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 기사는 우리 해외 동포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질 못합니다. 그러나 시나 수필 같은 문예란은 노래방 다음 가는 정서의 단비를 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부산물의 하나는 예술의 대중화입니다. 이제는 시인만 시를 쓰는 세상이 아닙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화가만이 미술전시회를 여는 세상이 아닙니다. 홀아비 앙상블, 가족 음악회, 장로 합창단, 여느 여고 몇회 졸업생 수필집, 가족 수필집, 주부 미술 전시회 등 제 신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예술 표현의 자유천지가 왔습니다. (199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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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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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창의성과 성격(상)

 

 창의성과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창의성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해야겠다.


 우선 창의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의견을 가장 많이 내놓는 사람이 일등이 된다. "만일 이 세상에 밤이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생각나는대로 모두 적으시오."


 독자들은 위와 같은 질문은 우리가 자주 쓰는 전통적 지능검사 문항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질문에서는 소위 '정답' 이란 것이 없다. "전등회사가 망할 것이다" 라는 것도 대답이 될 수 있고 "유치원 수가 격감할 것이다" 라는 것도(성생활 감소 -> 출산율 감소 -> 신생아들 수 격감 -> 유치원 수 감소) 정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챘을 것이다. 


 전통적인 지능을 재는 검사에서는 정답이 있는, 소위 수렴적인 지식을 주로 측정하고, 창의성을 재는 검사에서는 정답이란 것이 없는, 소위 확산적인 지식을 주로 측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잘 아는 지능이란 개념과 창의성이란 개념은 서로 비슷한 데가 있지마는 서로 다른 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창의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간단히 말해보자. 말하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창의성'이라고 했을 때는 다음 요소가 포함된다.


 첫째, 어떤 철학적, 자연 과학적, 사회 과학적, 예술적 문제를 오리지널하고 혁신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할수 있는 능력.


 둘째, 해결한 결과가 사회적으로 건설적이고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새롭고, 혁신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방법이라 해도 남의 집 물건을 훔치는 것은 그 결과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건설적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베토벤이 내놓은 음악적 산물은 사회적으로 건설적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셋째,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스위치만 누르면 남자가 여자로 변하고,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있는 생각은 어떻게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현실성이 없으면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창의성과 성격특성 관계를 말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자들이 무슨 근거로 창의성에 대해서 말하는지를 말해야겠다. 심리학자들이 창의성에 대해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첫째, 창의성이 높다는 것을 이미 만천하에 보여준 사람들, 이를테면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나, 진화론을 창시한 다윈, 정신의학자 프로이트, 음악가 베토벤 같은 사람들이 창의력이 높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성격특성을 살펴보고 일반사람들과 비교한다면 이것이 곧 창의성이 높은 사람들의 성격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초등학교나 중, 고,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아직 창의성을 만천하에 보여줄 기회가 없었고, 지금 창의성이 막 피어나는 단계, 다시 말하면, 창의성을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창의성 검사를 실시해서 그 결과를 토대로, 즉 검사로 측정한 창의성이 높고 낮은 사람들의 성격특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다.


 창의성이 높은 사람 성격이 어떻다고 몇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다. 창의성이란 실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어떤 성격특성은 사람 A에게는 나타나지만 B에게는 나타나지 않고, B에게는 나타나지만 A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로 연구자들 사이에 서로 상반되는 결과 보고가 너무 많아서 실로 어느것을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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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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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적응 탄력성이 주는 의미

 

 아빠는 술 중독자요 마약중독자, 엄마는 상습도박꾼, 형은 청소년 범죄자, 삼촌은 백수건달. 이처럼 풍비박산이 된 집 안에서 자라는 아이를 상상해보자. 이 아이가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사내아이인 경우 깡패나 술주정뱅이, 여자아이인 경우는 창녀나 좀도둑, 아니면 마약중독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도 많지마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즉, 이처럼 나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 가운데는 바위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끈질긴 풀포기처럼 온갖 역경을 딛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영어로는 resilience, 우리말로는 적당한 말이 없어서 우선 적응 탄력성이라고 해둔다. 이 적응 탄력성 현상이 있기 때문에 인생행로는 수학 공식 같은 궤도에 맞출 수 없는, 삶에는 박진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적응 탄력성이 높은 어린이들은 어떤 특성이 있는가?


 첫째, 적응 탄력성이 높은 어린이들은 어릴 적부터 뛰어난 대인관계 기술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떻게 해서 이 어린이들이 뛰어난 대인 감각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도 비교적 높은 지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탄력성이 높은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성격이 적극적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이 밝은 성격에 가족이나 낯선 사람들로부터 좋은 감정을 유발하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비록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대해도 그 상황을 보통 건설적이고 희망적으로 해석한다.


 둘째, 적응 탄력성이 높은 어린이들 주위에는 인생 초기에 자기에게 많은 시간과 배려를 아끼지 않고 끈끈한 정을 맺어온 보호자가 있다. 부모가 부모로서 제구실을 하지 못할 때는 그들을 대신해서 보호해 주고 감싸주고 격려해주는 사람, 이를테면 외삼촌이나 외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직계 가족이나 친척의 도움이 없는 경우에는 좁게는 그 어린이가 살고 있는 동네, 넓게는 사회에서 그 어린이에게 온갖 정서적 지지와 관심을 베풀어준다.


 셋째, 적응 탄력성이 높은 어린이들은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는 인생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는 특성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 주위에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그들의 생활에 삶의 의미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지연과 혈통으로 이어진 농경 사회에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집단주의 사회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혈통윤리가 우세한 반면 시민 윤리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우리도 이제는 너무 '우리 식구' '우리 집' '우리 동네'만 찾지 말고 좀 더 넓은 시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좋은 사회란 사회구성원들끼리 모두가 서로 보살펴 주고 격려해주는 사회가 아닌가.


 우리는 가끔 우리가 남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깜깜 잊어버리고 지날 때가 많다. 비록 소설 속 이야기지만 은촛대를 훔쳤다가 뜻밖의 관대한 행동을 베풀어준 신부의 행동에 감화를 입어 과거의 잘못된 인생행로를 바꾸게 된 장발쟌(Jean Valjean)은 이 적응 탄력성의 어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실의에 젖어있는 학생에게 무심코 던져준 한마디 격려의 말, 불우한 아동에게 보낸 몇 푼의 성금이 그들이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잊을 수 없는 힘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응 탄력성 개념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 된다.


 적응 탄력성 개념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우리 사회의 어른 구성원 모두가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집 어린이 하나를 맡아서 격려와 배려를 해준다면 20년 후 거리를 방황하고, 밤중에 남의 집 담을 뛰어넘고, 윤락행위로 생계를 이어가는 인생 낙오자가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다.


 아무튼 물고기나 개구리, 혹은 참새 같은 동물세계에서는 남을 돕는 행동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진화발달상 맨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다. 제 새끼 돌보는 것은 동물도 얼마든지 잘하는 일, 남을 돌보는 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20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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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7
부모와 자녀교육

 

 사람들이 모이면 가끔 자녀들 얘기로 꽃을 피운다. 뉘 집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다는 얘기부터 뉘 집 아이는 부모가 공부하라는 성화 한번 안 했는데도 자기가 원하는 그 어려운 과를 쉽게 들어갔다는 것.


 그러나 그렇지 않은 얘기도 있다. 중학교 때까지는 모범생이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와서는 빌빌 기고 있다는 이야기며, 중, 고등학교까지는 모범생이던 아이가 대학에 오더니 게을러지고 행실도 나빠졌으니 애들은 커봐야 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아이들 얘기 끝에는 으레 "그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원인규명이 시작되고 그 원인 규명이 시작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 부모가 어떻다는 등 부모에 대한 평가도 아울러 따른다. 그러니 아이 얘기로 시작되어 부모에 대한 평으로 끝나는 것이다.


 아이들의 잘한 행동에는 으레 그 부모의 피나는 보살핌이 칭찬을 받고, 아이들의 잘못한 행동에는 부모의 무성의 내지 무지가 그 원인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요컨대 "부모가 이런 이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아이에게 저런 저런 일이 터질 수밖에 없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 교육에 대단한 성의와 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집을 뛰쳐나가고 부모 속을 썩이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 부모가 잘못을 저질러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외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소들의 영향 때문인 경우일 때가 더 많다. 인간 행동에서 직접적, 단수적 인과관계는 극히 드물다.


 아이들은 부모 영향도 받지마는 또래 영향도 받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 영향도 받고 좋아하는 가수나 탤런트 또는 운동선수 영향도 받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부모의 영향이 차츰차츰 줄어 들면서 학교 안팎에서 만나는 친구들 영향이 늘고 영화나 소설, 신문이나 잡지 영향도 받는다. 아동에게 영향을 주는 이 무수한 요소 중에 우리 눈에 가장 쉽게 띄고 알기 쉬운 것이 부모의 행동이기 때문에 우리는 걸핏하면 부모 행동을 아이 행동 원인의 전부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신문 배달을 한 두 소년 A와 B를 생각해보자. A는 순조롭게 고등학교를 마친 후 우리가 말하는 '모범 청년'이 되고 B는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건달'이 되었다 하자. 그러면 우리는 A는 그 부모가 어릴 때부터 신문 배달을 시켜서 일찍부터 세상 물정을 알게 하여 오늘날의 성숙한 청년이 되었다 할 것이고, B는 그 부모가 어린놈을 신문 배달을 시켜서 너무 일찍부터 돈 맛을 알게 한 까닭에 오늘날 그 꼴이 되고 말았다고 할 것이다.


 꼭같이 신문 배달을 했는데 왜 한 아이는 모범 청년이 되고 또 한 아이는 건달로 됐는지 그 이유는 너무 복잡해서 차라리 모른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대답일 것이다. 신문 배달이 과연 아이 행동의 원인이 되었는지는 규명하기가 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 설사 원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직접적 원인인지 아니면 간접적 원인이 되었는지를 밝혀내기는 더욱 더 힘들 것이다. 


 또, 신문 배달과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을 시간상의 흐름으로 보면 신문 배달과 공부를 게을리한 것을 시간상의 흐름으로 보면 신문 배달이 공부를 게을리한 것보다 먼저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 즉, 공부에 흥미를 잃어서 그 결과로 신문배달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면 공부를 게을리한 것이 신문 배달의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신문 배달과 공부의 태만이 서로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고 다만 우연의 일치로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일어난 현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려 할 때, 다시 말하면 "왜 그런 결과가 생겼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할 때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구별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것인가 남에게 일어난 것인가에 따라서도 그 원인의 소재를 다르게 생각한다. 나쁜 결과가 일어난 데 대한 원인을 규명할 때는 자기 자신에 일어난 결과는 외부적, 환경적인 요소로 돌리고, 남에게 일어난 나쁜 사건은 그 사람 특성, 예를 들면 "욕심이 지나쳐서" "성격이 칠칠맞지 못해서"와 같이 그 사람이 갖는 특성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예를 보면 어떤 결과를 보고 왜 그것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뿐더러, 흔히 얼토당토 않는, 그야말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식"의 잘못 생각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길을 걷는 자식들 때문에 평생 징역을 언도받은 죄수처럼 활기를 잃어간다. 변호사도 없이 집행된 이 재판에서 언도를 내린 재판장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부모들인 것이다. (200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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