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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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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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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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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교민과 동포

 

 지난 12월에는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장로와 권사 선거가 있었다. 집사 책임을 3년 이상 맡았던 신도 중에서 교회의 지도자 격 일꾼이 될 장로 네 사람과 권사 세 사람을 뽑은 것이다. 선거가 있던 그 다음 주였던가, 새로 장로로 뽑힌 L 씨를 보고 "OO 장로님 안녕하십니까" 하는 농담조로 인사를 던졌더니 그 장로는 머뭇머뭇 하더니 계면쩍은 표정으로 "아직은 장로라고 불러서는 안 되고 '피택장로'라고 불러야 한답니다"라고 친절하게 일러주는 게 아닌가.


 그럼 '피택'이란 무슨 말인가? '피선(被選)'과 의미가 같은 말로 한문에 기반을 둔 말일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 갔지마는, 집에 돌아와서 내가 가지고 있는 꽤 권위 있는 두 개의 국어사전을 열심히 뒤져도 '피택'이란 말은 눈에 뜨이질 않았다.


 몇 년 전에도 신문 부고(訃告)란에 자주 나오는 '소천'이란 말이 무슨 말인가 알아보려고 사전을 뒤졌으나 "사람이 죽는다"는 의미의 '소천'은 사전에 나와 있질 않아서 나 혼자서 "하늘에서 옥황상제가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보내는" 의미겠지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피택'이나 '소천'의 경우에는 이젠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되어 이런 말을 만들어낸 사람보다는 사전에 넣지 못한 출판사를 나무라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어떤 단어가 사전에 들어가는지의 기준을 모르며 사전을 펴낸 출판사부터 나무라는 것은 그다지 공평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해였다. 하루는 신문을 뒤적이다가 '교포' 내지 '교민'이라는 말이 "임시로 붙어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다소 서글픈 뜻이 담겨있는 말이니 '동포'라는 말로 바꾸어 써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는 '교포'와 '교민'을 버리고 '동포'를 따르리라 마음을 먹고 내 수필집 [청산아 왜 말이 없느냐]의 출판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이 사실을 '엄숙히' 선포했다.


 그 뒤에 얼마 있다가 옥편(玉篇)과 우리말 사전을 뒤져 보니 옥편에는 '교포'의 '교(僑)"는 '우거할 교' '나그네 교'라고 적혀있고, 우리말 사전에는 '교포'는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는 동포," '교민'은 "외국에 살고 있는 겨레"로, '동포'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 자매라는 뜻의 '한겨레' 내지 '같은 민족'으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동포'는 '교민'에 비해서 한핏줄, 한민족임을 강조하는, 그 기개에 있어서 좀 더 장엄하고 끈끈한 정이 어려 있다고 볼 수 있고, '교민'은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는 겨레"이니 '나그네'나 '방랑자'의 냄새를 풍기는 그런 단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0년을 넘게 써 온 이 '교민'이라는 정든 말을 하루아침에 말의 근원을 따져 바꾸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구태여 따진다면 그 본래의 의미와는 별 관계가 없이 쓰여 지고 있는 말이 어디 한두 개인가. '화장실(化粧室)'이 그렇고 요즘에 와서 부쩍 흔해진 '사모님'이란 말이 그렇고 뒷골목에 있는 '철학 연구소'도 본래의 의미와는 별 상관없이 쓰고 있지 않은가.


 '교민'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동포라고 하는데 구태여 나 혼자 '교민'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또한 '동포'와 맺은 새 인연을 1년도 채 못 넘기고 다시 '교민'으로 돌아가는 것도 의리를 져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잠자코 있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어딘지 개운치 않은 그 무엇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동포면 어떻고 교민이면 어떠랴. 그 말이 그 말이니 제 마음에 드는 말을 쓰면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을 꼬치꼬치 따지려면 이것 말고도 우리말이 큰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많다. 예로 4천만 겨레가 다 아는 동요 [고향의 봄]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 이 아니라 "내가 살던 고향은..."으로 해야 한다고 이 노래의 노랫말을 쓴 이원수 선생은 말했다. 


 이러다 보면 '동포' 때문에 '화장실', '철학 연구소', '환경미화원', '벼룩시장' 같은 말도 다시 그 뜻을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 (1999. 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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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신동(神童)과 늦둥이

 

 미국 지식층 사람들이 즐겨 읽는 [타임(Time)]이라는 잡지에서 현재 살아있는 세계 신동(神童)에 관한 특집을 낸 적이 있다. 소개된 사람들은 주로 예체능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신동들이었다. "이런 아이가 있을까?" "이게 정말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일찍부터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신동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특집에 적힌 몇 가지 사실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첫째, 신동들을 독점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것.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도 찬란한 재능의 빛을 뿜고 있는 신동들이 많다는 말이다. 둘째, 이들 신동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 보여준 그 놀라운 능력을 계속 보여주는 '성숙한 신동'은 드물다는 것이다. "일찍 핀 꽃이 먼저 시든다"는 말이 있듯이 신동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꾸준하게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한 '늦둥이'들보다 결국에 가서는 더 나을 것도 없다는 말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 거북이가 결국에 가서는 토끼를 따라잡고 만다는 말이다.


 왜 어려서 이름을 날리던 신동들이 자라면서 일찍 시들어지고 마는가? 아직 심리학은 이에 만족할만한 대답은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부분적 이유밖에 되질 않겠지만 부모 형제나 이웃, 더 넓게는 사회 전체가 이들을 보는 시선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신동들이 커서는 뒤쫓아 오는 대기만성형 늦둥이들에게 따라잡힌다는 것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늦둥이 얘기가 나온 김에 퇴계(退溪) 이황 얘기를 해야겠다. 단군 이래 가장 큰 학자로 불리는 퇴계(退溪)는 과거(科擧)에 세 번이나 떨어졌다 한다. 4수 만에 진사시험에 합격한 것은 그가 27살, 문과(文科) 시험에 합격한 것은 33살 때였다. 퇴계에 비해 율곡(栗谷) 이이(13살에 진사시험에 합격했다던가?)나 고봉(高峰) 기대승 같은 사람들은 천재성이 번뜩이는 '토끼반' 출신들이다. 


 율곡이 22살 때 경북 안동 도산에 있는 거유 퇴계를 방문하여 이틀을 자고 갔다. 당시 58살의 대학자였던 퇴계는 22살 청년 율곡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율곡의 학문에 관한 질문에 성실한 자세로 설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율곡이 집으로 돌아갈 때 퇴계는 학풍상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던 이 젊은 학자에게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적어 주었다. 고재희 님의 힘을 빌려 옮겨 적어보자.

 

 

병도 깊고 문도 닫아 봄 못 봤는데
그대 와서 심신 뚫어 꿈 깨듯 했네
이름 아래 헛된 선비 아님을 알고
지난날이 부끄러워 몸둘 바 없네
속이 찬 곡식 숲엔 잡초가 없고
갈고 닦은 새 거울엔 티가 없는 법
.
공부에 힘 쓰며 서로 친하세
 

 

 


 퇴계의 학자다운 풍모와 사람에 대한 공경심을 잘 느낄 수 있는 시조이다. 뒷날 퇴계는 "옛 성인들이 후배를 두려워하라고 했는데 율곡이야말로 두려운 재주를 가진 선비다"며 율곡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400년 전 퇴계같이 꾸준히 노력하는 거북이 특성이다. 우리는 걸핏하면 대가요, 알아주는 권위요, 국제적이요, 최정상급이다. 대가, 알아주는 권위, 국제적, 최정상급이라는 별명이 이렇게 쉽게 붙여지는 풍토에서는 '늙은 신동'은 드물다. 이런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계속 노력은 하지 않으며 이름 쫓기에 바쁘고 공명심과 자만심만 큰 사람이 되기 쉽고, 아동을 어른들의 허영심을 충족하는 도구로 이용당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신동은 "저 사람이 저래도 옛날에는. " 하는 소리나 듣는 평범한 성인이 되고 마는 경우가 흔한 것이다.


 신동들의 어머니 아버지와 그리고 늦둥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이여,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퇴계와 같은 꾸준한 자아계발의 길, 노력의 길인 것을 잊지 말자. (200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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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3
일중 묵연전에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있다가 월북한 미술평론가요 저명한 수필가인 김용준 교수의 주장을 따르면 성공적이니 예술가는 다음 3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그 첫째는 예술에 대한 양심이고, 둘째는 예술에 대한 사랑이요, 셋째는 고집이다. 예술에 대한 드높은 양심 없이는 격(格) 높은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가 없고, 예술에 대한 열렬한 사랑 없이는 피나는 노력과 정신으로 큰 예술가가 되기 어렵기 때문. 마지막으로 고집 없이는 개성 있는 작품을 내놓는 예술가가 되질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4일부터 10일까지 7일간 인사동 백악예원에서 '일중묵연전'이 열렸다. 일중묵연전은 1950년 파고다공원 맞은편 골목 관철동에 있던 동방연서회에서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선생과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선생의 공동 지도를 받던 문하생들과, 그 뒷날 일중 선생 밑에서 글씨를 배우던 문하생들이 정성을 모아 일중 선생을 승모하여 연 서예 잔치이다. 출품을 한 사람은 모두 54명이었고 전시 공간은 일중 선생 아드님의 배려로 이루어졌다.


 일중묵연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부터 20년 전까지 그러니까 1982년까지 일중묵연전이 해마다 열려 왔다고 한다. 그때는 일중 선생 건강이 좋았고 작품 활동도 왕성하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선생의 건강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인데다가 20년을 쉬었다 다시 열리는 전시회니 이번이 제1회 일중묵연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같이 30~40년 전에 한 선생 밑에서 붓을 잡았던 제자들이 스승을 기려 이러한 회고전을 가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가슴 뿌듯한 감회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생각해 보라. 낭랑 18세, 더벅머리 처녀 총각으로 관철동 서실을 드나들던 옛 글벗들이 벌써 백발이 성성한 중노(中老) 인생으로 접어들지 않았는가. 무정한 세월.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감명이 깊었던 것은 걸음마를 시작했던 초심자들이 이제는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경지를 개척해 나간 모습이 뚜렷했다는 것이다. 제각기 독특한 예술의 향기를 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니다. 


 개성이 없는 예술은 조화나 다름없는 것, 김용준 교수의 말처럼 그들은 예술에 대한 양심, 사랑, 고집을 골고루 갖추려고 애를 썼는가.


 전시장을 둘러보며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옛 서우들에 대한 생각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일찍이 서예에 대한 천재성이 번득이던 율리 박준근, 그리고 무척 부지런하면서도 재미를 느끼던 오천 이광범 두 사람이다. 달 따라 왔다가 구름 따라 간 그대들이여, 무슨 갈 길이 바빠 그리 빨리 갔는가?


 또 한 가지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영원한 스승 일중 김충현 선생이다. 선생은 병환으로 그를 승모하는 이 잔치에 얼굴조차 보이지 못할 처지에 계시다. 보내 오신 소품 한 점을 보니 지금부터 6년 전, 그러니까 1996년의 작품이다. 그때 벌써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작품을 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일찍이 추사 김정희 선생이 기력이 쇠진한 상태에서 힘을 모두어 붓을 잡았을 때 손이 떨리고 글씨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본 제자들이 옆에서 '선생님, 글씨가 흔들립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추사는 "이 사람들아, 방 도배지가 반듯반듯하게 제자리에 있기만 하면 무슨 멋이 있나. 어떤 것은 바르고 어떤 것은 삐딱하게 있기도 해야지"라고 대답했다 한다.


 일중 선생은 한평생을 오로지 서예라는 외길을 따라 걸으신 분이다. 서예는 그의 인생이었고, 그의 인생은 곧 서예였다. 그 일중 선생이 이제 붓을 잡으시기가 불가능한 상태에 계시다. 그러나 당신이 대한민국 서예계에 심은 어린 나무들이 커서 이 나라의 서예계를 주름잡는 버팀목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당신은 크나큰 위안과 자부심을 가지셔야 할 것이다.


 그 흔하디 흔한 말, 그러나 요즘 같은 사이비들이 날뛰는 세상에서야 백 번을 되뇌어도 시원치 않은 말, 즉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바로 일중 김충현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0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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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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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5
남(男)과 여(女)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젊은 여자를 좋아한다. 늙은 여자를 좋아하는 사회는 없다. 젊은 여자 중에서도 허리가 가늘고 엉덩이가 큰 여자를 좋아한다. 서울, 뉴델리, 뉴욕은 물로 아마존 밀림 속이나 아프리카의 토인부락에 사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여자 나체사진을 뒤로 돌아선 자세를 여러 장 늘어놓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보라면 그들의 선택은 일반적으로 허리가 엉덩이의 2/3가 되는, 예를 들면 엉덩이 크기가 35였다면 허리는 25쯤 되는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남자는 20을 넘기 전 청소년 시절에는 자기보다 나이가 5살 10살 훨씬 더 많은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나, 20살이 넘어서부터는 자기와 나이가 같거나 아니면 자기보다 2~3살 아래인 여자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남자 나이가 많아질수록 좋아하는 여자와 나이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예로, 30살 때는 자기보다 5살 아래인 여자를 좋아하나, 40대에 가서는 10살 아래를, 50대에 가서는 15살 아래를, 60대에 가서는 20살 아래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80대의 늙은이가 20대의 손녀뻘 되는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럴까? 진화심리학에서 보는 견해는 다음과 같다. 즉, 인간은 자기 씨[種子] 혹은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 점에서는 동물과 별 다름이 없다. 동물 세계를 보면 수컷들이 사모님 한 마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자기 유전인자 전파를 위해서 경쟁자와 목숨을 내건 한 판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은 그 표현 양식이 다르다 뿐이지 근본 동기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돈 있고 권력 있는 남자가 여러 명의 사모님을 거느리고 사는 것은 이런 '전통'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여자를 좋아하고 허리가 가늘고 엉덩이가 큰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임신을 해서 자기 유전인자를 이어갈 수 있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폐경기를 맞은 여자는 이 유전인자의 전수에서 '한물 간 사람'이기 때문에 별 환영을 못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여자는 어떤 남자를 좋아할까? 남자는 80, 90 고령을 제외하고는 씨[種子]를 뿌릴 수 있는 가능성은 나이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거의 무한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이 가능성에 대한 불안 때문에 노루 목을 따서 피를 마시고 뱀탕을 먹으러 태국까지 가지 않을까?) 남자 나이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자기보다 나이가 3~4년 위인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자기가 낳은 자녀를 안전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양육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남자를 선택하려 드는 것이다. 풍부한 자원이란 원시시대에는 남자의 육체적인 힘이 그 중심이었으나 현대사회로 옮겨오면서 재력과 권력이 중요시 된 것이다.

 

 이런 논리로 보면 여자는 선천적으로 남자보다 금전과 권력 앞에 약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주장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다음과 같은 보고가 있다. 즉, 어느 심리학자는 결혼한 부부에게 그들이 결혼 전 구애(求愛) 시절에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보여주던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대답은 예상한 대로 남자와 여자들이 서로 달랐다. 


 즉, 남자들은 주로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앞으로 무슨무슨 중요한 직책을 갖게 될 것이라는 등의 힘과 사회적 지위를 은근히 과시하는 한편, 여자들은 주로 자기 옷과 몸치장, 여성다운 아름다움과 매력 포인트에 대해서 뽐내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외부적인 아름다움보다 마음의 아름다움, 즉 내적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 하더라도 성형외과 대기실은 외부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자들로 붐빌 것이다.


 18세 미만 청소녀 5000명에게 물어 보았더니 4000명 가까이 되는 소녀들이 기회만 있으면 성형수술을 하겠다고 대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 해준다. 이렇게 보면 자기의 피부를 곱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우유에 목욕을 했다는 클레오파트라는 그 정신에 있어서는 성형예술의 선구자가 되고도 남지 않을까.


 아무리 검소한 생활을 부르짖어도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집 사모님들과 그들의 어린 딸들은 틈만 있으면 고급 보석과, 고급 가발, 고급 옷으로 몸을 감싸려 들 것이고 그들의 눈, 코, 입술, 턱, 가슴, 허벅지와 종아리는 언제고 성형외과 전문의의 칼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어느 성형외과 의사가 자기를 찾아온 고객을 유혹해서 성 유린을 했다가 쇠고랑을 찼다는 뉴스를 듣고 퇴근하는 길에 길 건너 XX성형외과라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띄어 몇 자 적어본 것이다. (20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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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7
과학과 여성

 


 노벨상을 받게되는 영광스런 이름들이 신문에 소개되는 계절이다. 노벨상은 물리, 화학, 의학, 생리학, 평화, 문학, 경제 등 6개 부문에서 그 분야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쌓은 사람들에게 노벨의 제삿날인 12월 10일에 주는 가장 권위있는 상이다. 많은 과학분야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벨상은 동경 그 자체요, 꿈이요, 부러움이다.


 우리와 가깝게 지내는 수학자로, 젊었을 때는 이화여대에 잠시 있었고, 캐나다에 가서 40년 넘게 교단에 섰다가 은퇴한 C교수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왜 노벨상에 모든 학문의 왕이라 불리는 수학상이 없는가를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재미 있었다. 즉 노벨이 젊었을 때 자기 애인을 어느 수학자에게 빼앗겼는데(나쁘다, 나뻐. 수학자들이여, 남의 애인을 가로채다니!) 너무 분하고 원통해서 수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지 말라는 유언 비슷한 부탁을 남겨서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그렇다고 한다. 농담으로 한 말인가 생각되다가도 "그분이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어른이 아닌데" 하는 것을 생각하면 "큰일에도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더니 바로 이런 경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벨상은 그렇고,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일간신문을 보니 자연과학 분야에서 2003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용을 당한 피인용 횟수(글이나 논문을 쓸 때 남의 것을 참조, 인용하는 횟수)가 5000 이상인 학자는 물리학에 190명인데 그중 4.7%가 노벨상을 받았고 화학은 170명으로 그 중에서 8.8%가 노벨상을 받았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현재 피인용 횟수가 5000에 도달한 학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 그러나 인용 횟수가 5000은 못 되더라도 1000을 넘는 과학자는 38명이 되는데 그 중 서울대학이 16명, 포항공대가 13명, 과학기술원이 9명이라 한다.


 이와 관련해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용학 교수가 2000년 연합연감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유명인사 가운데 서울대 졸업생이 37.1%, 고대 졸업생이 8.3%, 연대 졸업생이 6.8%, 성균관대 졸업생이 3.47%, 한양대 졸업생이 2.4%라고 한다. 피인용 횟수가 많은 사람과 유명인사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것을 보면 서울대학교를 없애버리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서울대학이 휩쓸고 있다.


 그런데 과학 분야에서 피인용 횟수가 1000을 넘는 과학자 38명과 국내 유명인사 대열에 오른 사람 가운데 여성은 얼마나 되는지, 남녀비율에 대한 정보는 없는 것이 유감이다. 짐작컨대 자연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물론, 유명인사 대열에 오른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을 것 같다. 학업성취나 능력 면에서 남녀간에 눈에 띄는 차이가 없다는 보고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자연과학 분야로 전공을 택하는 것은 비교적 드문 것은 물론, 설사 그 분야로 전공을 택한다 해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 내가 몸담고 있는 심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는 Y씨는 바로 이 궁금증, 즉 "과학의 길로 나서서 자기 전공분야에서 성공한 여성과학자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는 물음에 답을 얻으려 하고 있다.


 전국 1900개 고등학교에서는 이때쯤이면 해마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한다. 자연과학분야로 전공을 택하면 자기 자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또 본인도 만족할 학생이 자연과학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택하여 고생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자신에게는 하나의 비극일 것이고, 자연과학 분야가 아닌 분야로 전공을 택하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본인도 만족했을 학생이 자연과학분야로 뛰어드는 것도 자신에게는 하나의 비극일 것이다.


 아무튼 금년에는 여성들의 정치계 진출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앞으로 여성과학자의 장래도 지금보다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자가 될 여성을 과학 분야로 안내하는 것은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일찍 시작해야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별 말이 없다가 대학갈 때가 되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참, 요새는 여자도 과학 분야에 많이 간다더라. 너도 그쪽으로 한 번 가 볼래?. " 하는 식의 권유는 어리석은 행동부문에 노벨상이 있다면 대상감이다. 초등학교 때, 아니 그전부터 여성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없애고 능력 면에서 성별차이가 없다는 사회적 계몽의식과 나란히 갈 때 여성들을 위한 과학 분야의 문은 활짝 열리는 것이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여러 나라에서 여성 엔지니어의 비율이 한국보다 5~6배가 높은 것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남녀 능력은 같다고 한다. 과학분야가 남성만의 독무대가 된다면 인간 능력의 절반만이 과학분야에 활용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 이 얼마나 큰 인간 능력의 낭비인가? 능력을 최대한으로 계발하는 길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는 길은 물론 남녀평등을 이룩하는 길, 나라가 부강해지고 잘사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20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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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놀이와 여가

 

 지난 12월에 대학 동창회에 갔다. 그 모임에서 K 은사가 "노는 법을 배워라"는 짧은 말씀을 하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K 은사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놀이는 우리 삶의 질이랄까 요사이 유행어 웰빙이라는 말과 퍽 가까운 관계에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우리는 놀 줄 모르는 사람, 여가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지난날 우리가 즐기던 놀이나 여가란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을 치거나 TV를 보는 것이 고작이었지 싶다. 그러나 요사이는 여가에 할 수 있는 놀이 종류가 무척 많아졌다.


 사전을 보면 놀이란 말은 "일 않고 세월을 보내는 것"으로 되어있다. 놀이는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나 일은 힘들고 고단하다는 말이다. 놀이나 여가를 즐기고 나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그로 인해 기분전환이 된다.


 그런데 까마득한 옛날, 그 옛날에는 다스리는 계급과 다스림을 받는 계급 사이에 구분이 없는, 핏줄로 맺어진 사회였다. 그때는 일과 놀이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었으니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놀았다. 일을 하다가 지치면 쉬면서 놀이판을 벌였기 때문에 놀이는 주로 일을 즐겁게 해주는 기능을 했다. 무거운 돌을 여럿이서 함께 옮기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일하는 사람들이 지치면 무거운 돌을 내려놓고 어떤 이는 낮잠을 자고, 어떤 이는 물고기를 잡고, 어떤 이는 꽃을 꺾고, 어떤 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떤 이는 춤을 추고, 어떤 이는 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이 모두가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것, 뱃노래와 농요(農謠)가 그래서 생겼다고 한다. 이러다가 차차 노동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생기는 계급사회로 변해갔다. 윗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힘든 노동을 적게 함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아 놀이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놀이는 화투나 바둑, 장기처럼 주로 앉아서 비벼대는 놀이가 많다. 우리 문화가 벼농사를 짓고 사는 수도작 농경 문화였기 때문에 땅에 대한 집착이 많아 옮겨 다니는 활동이 적어서 그렇다고 한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 사회의 놀이와는 다르다.


 그런데 농사를 짓고 살았기 때문에 그 결과 우리는 심리적으로 이성보다는 감성이 우세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로 시비(是非)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내가 네 아버지와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옛날 정(情)이나 인연에 호소하지 사리를 따져서 옳고 그른 것을 가리려 들지 않는다. 


 이처럼 감성이 우세하다 보니 우리는 굿판의 야성과 격성의 심성이 많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최준식 교수에 의하면 굿판의 야성은 원초적 혼돈, 즉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미치광이가 되어 '나를 잊어버린 상태'에서 엉키고 설킨 감정을 마음껏 내뿜는 열정의 마당이라고 한다.


 농사 사회에서는 경쟁보다는 협동이 요구된다. 친화적 감정을 가지는 것이 경쟁심을 가지는 것보다 살아가기에 더 유용한 사회적 기술이다. 그래서 우리의 놀이는 줄다리기나 횃불 싸움 같이 집단의 단결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많다. 


 캐나다나 미국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인종도 여러 가지일뿐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고 선택하는 놀이도 참으로 여러 가지다. 그러나 한국 같은 단순 문화에서는 여가나 놀이가 한두 가지밖에 안 된다 할 정도로 단순하다. 봄이면 연을 날리거나, 널을 뛰고, 가을이면 농악을 하거나 탈춤을 추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고스톱, 술집, 노래방, TV, 해외여행으로 그 수가 점점 늘어간다.


 캐나다나 미국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놀이에 대한 도덕적 규범이 적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고 자기만의 쾌락에 그치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같은 단순 문화 사회에서는 "놀이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놀이에 대한 규범이 많다. 우선 놀이는 품격에 맞아야 하고, 건전한 것이어야 하고, 점잖은 것이어야 한다. 옛날에는 탈춤이나 풍물 같은 것은 천민들이나 하는 것, 지배층은 시조나 읊조리고 가야금을 퉁기거나 난초나 치는 소위 격조 높은 놀이를 해야 한다. 그러나 물론 뒤로 돌아서는 기생을 품에 안고 별별 원초적인 놀이를 다 즐기는 그런 이중적인 데가 있었지마는.


 이 글 처음에서 말했던 것을 되풀이해보자: 노는 것도 배워야 한다. 놀 때 일 걱정하고, 일할 때 노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이것도 일과 놀이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던 옛 농경문화의 찌꺼기가 아닌가 싶다. 


 '여가'라는 말의 '여(餘)'자는 '먹을 것'과 '넉넉하다'는 두 글자의 만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다. 우선 먹는 것이 넉넉해야 여가고 놀이를 즐길 생각이 난단 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이제는 우리 생활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 놀이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앞으로 일주일에 5일 일하는 때가 오면 "어떻게 놀까?" 하는 놀이 방법이 중요한 사회문제가 될 것 같다. (20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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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물러가면서

 

 맞아죽을 각오를 하며 책을 쓴 사람이 있다더니 나야말로 맞아 죽지는 않더라도 동료 후배들로부터 "제까짓게 뭔데. "하는 비난을 각오하고 펜을 들었습니다. [교수신문사]에서 은퇴를 하면서 후배 교수들에게 교훈될 말을 적어 달라기에 어리석고 용렬한 마음에 우쭐하는 성벽으로 붓을 잡았습니다.


 후배교수들에게 교훈되는 말을 남긴다는 것은 대단한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교훈이란 말을 밖으로 내뱉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저는 뭔데'나 '메스꺼운 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패에서 배운 사람의 말이라도 생각하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아니꼬움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서두가 길어집니다. 내 부탁을 시작하겠습니다.


 첫째는 현실참여에 지나치게 열심이어서 연구할 시간을 뺏기지 말라는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현실참여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현실참여야말로 자기 학문의 뜻을 구체화 해보는 경우도 되고, 상아탑이라 불리는 곳을 떠나 현실 세계를 맛보는 좋은 기회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에 보내는 시간과 정력이 너무 클 때는 책읽고 연구할 시간이 줄어들고 우리의 집중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0년 전에 이 세상을 다녀간 거유 퇴계(退溪) 이황은 풍기를 비롯해서 몇군데 벼슬살이를 하다가 늙어서 그의 고향 도산에 돌아왔습니다. 벼슬살이 때문에 학문에 관심 전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던 그는 다음과 같은 노래 한 수를 남겼습니다. 요새 말로 옮겨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지요.


‘당시에 가던 길은 몇 해를 버려두고/어디가 다니다가 이제사 돌아온고/이제야 돌아왔으니 딴 데 마음 말으리’


 여기서 가던길이란 물론 학문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400년 전 퇴계가 살던 시대와 E-mail이 왔다 갔다 하는 오늘과는 큰 차이가 있겠지요. 그러나 학문하는 사람의 정신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둘째, 학문적으로 너무 일찍 늙지 말기를 바랍니다. 40, 50만 되어도 연구에 열의를 잃고 '원로'가 되어 뒷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애늙은이 같아 보기에 애처롭습니다. 이런 분들이 좋아하는 말은 ". 나도 연구를 해본 사람인데. " 하는 식의 거드름에 가까운 말입니다. 물론 이런 '원로'들은 학회같은 모임에 가서 자기의 연구발표보다는 종합논평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학문적으로 너무 빨리 늙어버리는 풍토에서는 학문이 남에게 내보이려는 패션쇼가 되기 쉽습니다.


 세 번째 부탁은 자연과학 분야보다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더 절실한 것입니다. 학문의 한국 토착화가 절실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몸담고 있는 심리학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심리학이 세계 심리학에 끼치는 영향력은 심리학 분야에 따라 다르지마는 일반적으로 90~99%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나온 석박사 학위논문이나 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의 참고문헌에서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를 헤아려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에서 만들어진 심리학을 '보세가공' 없이 한국에 직수입해서 쓰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화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에서는 미국물[H2O]이나 남미 물이나 한국물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미국 사람 다르고 한국 사람 다르고 남미 사람이 다릅니다. 이렇게 K 문화에서 L 문화로 옮겨 심었을 때는 그 나라 문화 풍토에 맞는 '보세가공'이 필요합니다. 또한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옛날 사람 다르고 요새 사람 다릅니다. 제가 몸담은 상담 심리학은 제가 유학을 떠나던 1960년대 중반에 '한국적 혹은 동양적 상담'을 세우자는 주장이 있었는데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같은 구호만 외쳤지, 그에 대한 큰 진전은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아마 우리 능력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학문이 한국에 뿌리내리기 작업은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네 번째는 대학행정을 맡고 있는 어른들께 부탁입니다. 요사이 무슨 장관이다 무슨 국장이다 하는 거창한 이름의 관직에 있다가 석좌교수나 대학 총장으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앙정부 한 기관에서만 지방대학 총장으로 가는 경우가 20명 가까이 되는 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향이 대학의 무슨 큰 유행이나 된 듯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학에 생기는 이득도 많겠지요.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것이 대학을 썩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대학이 썩었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리와 대학은 다릅니다. 연구업적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 모셔오는 것은 대학의 자존심을 낮추는 일입니다. 제가 있던 캐나다 대학에서는 학장직을 하다가도 평교수로 돌아올 때는 일 년 정도 다른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게 합니다. "네 머리에 녹이 슬었으니 가서 충전을 해서 강단에 서라"는 말이지요. 어느 잡지를 보니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소련의 푸틴 대통령을 석좌교수로 오는 것을 거절했답니다. 이유는 연구업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업적으로는 충분하겠지요. 그러나 대학에서 연구업적 말고 정치업적 같은데 눈을 돌린다는 것은 대학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의 마지막 부탁은 학생들의 말과 글, 특히 글에 신경써달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말이나 글을 보면 쓸데없이 어렵고, 안 써도 좋을 한문이나 영어를 마구 써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내친김에 어려운 말과 글을 쓰는 경향은 학생뿐 아니라 교수들도 많다는 것을 말해 둡니다. 나이가 드신 교수들은 어려운 한문과 일본식 우리말을, 나이가 젊은 교수들은 영어식 우리말을 마구 써대는 분이 자주 눈에 띄지요. 어려운 글을 써서 남이 잘 이해를 못 해야 '깊이가 있는 글', '학문적으로 심오한 글'로 생각되는가 봅니다. 학생들도 덩달아서 '논문개요', '본 연구'에서 시작해서 '평화에로의 길',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방면의 연구는 Maxwell에 의해 연구되어졌다'는 등 어색하거나 필요없이 거창한 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글은 수백 년간 한문 영향에다 35년 2달간 일본 영향, 최근에는 미국영어 영향이 우리말과 우리 글의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일이 그 예를 들 수는 없습니다마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학교단에 서는 사람들은 이 삐뚤어진 자세를 바로잡을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러가는 마당에 할 말이 어찌 이뿐이겠습니까마는 더 했다가는 "이 사람,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하는 핀잔을 들을까봐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맑고 밝게 사시기 바랍니다.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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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일중 김충현 [예(藝)에 살다]를 읽고

 

 전나무나 은행나무, 소나무는 나이가 5,600년을 넘는 것도 있다. 또한 나이가 많은 것일수록 웅장하고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견디어낸 이유로 뭇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꽃이나 사람은 다르다. 꽃이나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윤기가 빠져 볼품이 줄어들고 흉해진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되도록 젊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많은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나무와 사람 사이에서 나무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예술품은 은행나무나 소나무같이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빛과 윤기를 더한다.


 이번에 범우사 도움으로 [예(藝)에 살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그야말로 밤이 늦도록 읽었다. 정완영 님의 [백수산고(白水散稿)]에 이어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정서적 갈증을 축여주는 시원함이었다. [예(藝)에 살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다. 우선 독자 중에 일중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선언한다.


 이 [예(藝)에 살다]가 무슨 내용을 담았으며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면을 더 보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에는 나는 너무 작은 사람이다. 그러기에는 일중이 너무나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이 땅에서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예술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에는 그는 너무 큰배다. 그래서 나는 대신 내가 어떻게 해서 일중 선생을 알게 된 데 대해서 말할까 한다.


 내가 대학에 입학해서 대구에서 서울로 온 것은 1958년 이른봄이었다. 그 당시 나는 고등학교 때 읽은 춘원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의 영향으로 왕위에 대한 욕심으로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 낸 세조에 맞서서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노들강변에 피 뿌리고 돌아가신 성삼문, 박팽년 등 여섯 명 충신(忠臣)의 절개를 드높이 존경하던 피 뜨거운 청년이었다. 어느 늦은 오후, 혼자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에 있던 사육신묘에 참배를 간적이 있었다. 그 때 일중 선생이 한글로 쓴 시비를 보고 막연하게 "이런 사람한테 글씨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3년 후에 그 꿈이 실현되었다.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된 미석(美石) 정옥자의 소개로 관철동에 있던 동방연서회 문을 두드리고 지정(芝汀) 이규숙의 안내로 회원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맺은 인연이 1966년 내가 유학을 떠난 후에도 가끔 한국에 들를 때면 일중 선생님을 찾아뵙곤 했으니 오늘날까지 40년에 이른 셈이다.


 [예(藝)에 살다]의 43쪽에 나오는 '동방연서회' 다섯 글자는 지난 2년전 신계 김준섭, 현암 정상옥 등 여러분의 주선으로 결성된 동방연서회에서 붓글씨를 배운 사람들의 모임인 '일중묵연' 회원 여러분들에게도 그들 예술혼의 엄숙한 도장(道場)임과 동시에 안식처임에 틀림없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글씨에 대한 재주는 없지만 그것에 대한 흥취랄까 정서는 나름대로 즐기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동방연서회에서 백석, 석창, 신계, 중관, 현암 등 오늘날 서예계의 대가들과 함께 배웠다는 사실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하물며 일중 선생 밑에서 가로, 세로줄 긋기, 파임, 길 영(永)자부터 배운 영광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내 비록 뛰어난 제자는 못되었다 하더라도 40년 동안 변함없는 내 인생 자랑거리의 하나인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 때 일중 선생이 나를 옆에서 지도하는 사진 하나라도 찍어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늦은 후회를 해본다.


 [예에 살다]에 등장되는 인물들, 다시 말하면 일중 선생과 가깝게 지내던 어른들은 당시 이 나라 예술계를 주름잡던 큰 별들이었다. 그것은 한국 근세 서예사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한국 종합 예술의 한마당 축제가 펼쳐지는 것을 보는 것 같은 화려함과 웅장함을 준다.


 [예에 살다]를 보면 일중 선생은 영어로 말하면 그야말로 꽉 찬 삶(full life)을 산 어른이시다. 본인 자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산악같이 우뚝한 세 자녀에 쌍둥이 손자까지 두셨으니 말이다.


[예(藝)에 살다] 132쪽의 [서예개관: 1970년 서단회고]라는 제목을 단 글을 보면 노(老)대가로서의 선생이 후학들에게 만세에 교훈이 될 수 있는 따끔한 말 한마디를 인용하며 이 글의 매듭을 지으려 한다.


 ". 모든 공부도 다 그렇겠지만 잘못 배우면 안 배우니만 같지 못하다. 한 번 잘못 든 버릇은 고칠래야 고쳐지지 않고 누습만 몸에 배이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딱한 일이겠는가. 그리고 현대 감각이니 현대 의식이니 하여 별로 기초지식도 없는데다가 엉뚱한 멋을 부리려 하여 우스운 꼴을 연출하려 든다. 이것도 큰 걱정거리다. 서투른 멋은 금물인 줄 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작가의 창의성만 알고 그의 공정(工程)을 모른 채 그 창의를 닮으려 한다면 이는 수박 겉핥기라는 옛말도 있듯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아예 그런 생각조차 먹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즈음 그러한 징후를 보았기에 한마다 붙여둔다."


 일중, 그는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다.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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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4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2)

 

 

 (지난 호에 이어)
 행복의 또 다른 요소로 사회적 비교를 들 수 있다. 오늘 나의 행복이 남의 성취에 달려 있을 때가 많다는 것. 행복감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는데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행복감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는데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이것이 왜 어제의 빈곤한 사회가 오늘의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해도 행복감은 그대로 있느냐는 것을 설명해 준다. 


 한마디로 내 손에 든 떡이 남의 손에 든 떡보다 작을 때는 행복감을 못 느낀다.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 20%가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도 안 된다. 대부분은 "남은 부자이고 나는 부자가 아니가"고 생각한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행복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개 적어보자.


 첫 번째는 아주 능동적이고 활동적이고 바쁘게 지내라는 것이다. 조용하게 지내지 말고 아주 바쁘게 지내자. 꽃꽂이를 한다든지, 낚시를 간다든지, 사교춤을 춘다든지, 헬스클럽에 간다든지, 개를 키워보자. 활동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행복감을 낮추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교, 친교, 대인관계를 많이 하라는 것이다. 이 사람도 만나고 저 사람도 만나며 참여하는 집단이 많고 분주할수록 좋다. 온종일 쏘다니고 남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인 동물이라 하지 않았는가.


 세 번째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 일이다.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못 가서 대학교를 못 가면 어쩌나 약 20년 앞을 내다보고 잠을 못 이루는 밤이 있다. 그것은 그때 가서 할 일, 우선 걱정을 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을 하자.


네 번째는 우리가 가진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희망사항이 있는건 좋은데 희망이 너무 크면 실망도 너무 크기 마련이다.


 다섯째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값진 것은 눈물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을 생각하면 슬퍼할 일도 소중한 경험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섯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내 권리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어하던 것을 마음껏 유감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곱째는 내 생긴 대로 살자는 것이다. 호랑이는 고양이를 보면 "조그마한 놈이 무엄하게 나를 닮았다"고 혼을 내준단다. 그런데 사람은 호랑이보다 못해서 그 반대로 "나를 왜 안 닮아주냐"고 야단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권한, 즉 누구를 속일 권한, 누구에게 정직하게 행동할 권한,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앞세울 권한, 남을 도울 권한, 바보짓을 할 권한, 거짓말을 할 권한, 얌체짓, 질투를 할 권한도 있고, 순수하게 살 권한도 있다.


 여덟째는 행복에 가치를 두라는 것이다.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된다. 나에게 행복이 오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사과가 내 입안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아홉 번째, 우리가 행복감을 방해하는 건강하지 못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될 때에는 즉시 다른 생각으로 바꿔치기를 해야 된다. 불안하다, 걱정이 된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걸 더 건강한 생각으로 바꿔치기를 해야 한다.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들 때 손을 쓰지 못하고 운명에 내맡긴다. 행복을 방해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는 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행동을 해야 된다. 많은 사람들은 불행한 생각이 들어도 어찌 할 줄을 모르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하루 종일 '나는 가치 없는 인가', '나는 쓸모없는 인간', '나는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하루 종일 대문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 있다.


 열 번째는 우리의 행복감을 방해하는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생각은 합리적이지 못한 극단적인 생각을 스스로 하고, 그 생각 때문에 우리 감정이 영향을 받는다. 어려운 문자를 쓰자면 자승자박(自繩自縛)인 셈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가끔 "나는 모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스스로 선언한다. "사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모르지만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꼭" "무슨 일이 있더라도" 등의 극한 용어, 즉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을 하고 그 생각 때문에 불행감에 시달린다.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비합리적이다. 이같이 비합리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는 우리는 재빨리 그 합리적 근거를 찾아보고 그 근거를 찾기 어려울 때는 용감하게 그 비합리적인 생각을 떨쳐 버려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비합리적 생각 말고도 우리는 여려 개의 비합리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종합해서 결론을 지어보면 행복이란 우리의 생각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생각에서 끝나는 것이다. 또한 행복은 만들어지는 것인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2002. 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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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이동렬
70500
9216
2018-09-18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1)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맨 첫 번째 나오는 답은 돈이다. 그럼 "돈이 행복을 가져오느냐?고 물으면 "물론"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연구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의 돈은 행복을 가져오지만 그 이상은 행복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인간의 기본권리가 주어지고 의식주가 넉넉하고 여려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 이를테면 캐나다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행복감과 돈은 관계가 없다.


 물질적인 풍요에 비례해서 행복감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효용체감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월급이 처음 10만원 올랐을 때와 두 번째 10만원 올랐을 때는 다르다. 결국 가서 문제 되는 것은 절대적인 부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부이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버는 돈에 어느 정도 만족하느냐 하는 해석에 달려있다. 


 행복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진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가진 것에 얼마나 행복해 하느냐에 달려 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슬픈 일, 기쁜 일이란 없다. 오직 슬프고 기쁜 생각이 있을 뿐이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은 얼마나 "내가 은행에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보다도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얘기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평을 좀 덜해야 된다. 어떤 말을 입 밖에 내놓느냐에 따라 우리 감정과 생각이 달라진다. 물론 우리 감정과 생각에 따라 우리의 말도 달라지지만 우리가 입 밖에 내놓는 말에 따라 우리 감정도 영향을 받는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인 태도를,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불만족스러운 감정이 된다. 한마디로 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똑같은 의견이나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 그것을 정말로 믿게 된다고 한다. 교회에 가면 이 원리를 이용해서 신도들로 하여금 "미쉼다(믿습니다)" "미쉼다"를 수십 번씩 외치게 하지 않는가.


 그러면 약간 말머리를 돌려서 성공과 실패는 어떻게 행복감에 영향을 주는가 생각해보자. 성공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실패를 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 모두가 일시적이다. 복권에 당첨된다든지, 월급이 올랐다든지, 자전거를 새로 샀다든지, 새 집을 장만했다든지, 새 양복을 장만했다든지.  


 이 모든 것도 일시적인 것으로 오래는 못 간다. 자동차 사고라든지 실연의 쓰라림, 심지어 암(癌)에 걸린 사람도 몇 달만 지나면 정상적인 감정상태로 돌아온다는 보고가 많다고 하지만 한 마디로 우리가 흔희 얘기하는 것처럼 "시간이 약"이라는 것이다. 중국 속담에 "끝이 없는 파티는 없다"는 말이 있다. 맹인이나 불구가 된 사람들도 일정한 기간의 적응기가 지나면 정상에 가까운 기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미국 일리노이즈 대학에서 연구한 결과를 보면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은 50%가 행복하다고 대답하였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20% 정도이고, 30%는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니다"로 대답했다. 신체적으로 불구인들의 행복감도 이와 별 차이가 없었다.


 행복감은 우리의 이전 경험에 달려 있다. 심리학의 중요한 원리 하나는 사람은 이전 경험에 비교해서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새 집을 산다든지, 새 자동차를 산다든지, 월급을 받는다든지 이 모든 것이 이전과 비교해서 상하로 감정이 구분된다. 경험이 바뀌면서 옛날의 사치가 오늘의 빈곤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정신과 의사는 "이따위 연봉을 받고 공직에 있는 의사로 있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 따위 연봉이라는 게 2억원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눈알이 튀어나올 돈을 가지고 이따위 연봉이라고 했다. 왜나면 자기의 과거 수입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전과 비교하는 이러한 현상 때문에 사람들은 욕심을 내고 더 큰 것을 성취하려고 애쓴다. 만약 이 현상이 없다면 우리는 첫번 성공에 만족하고 절대로 더 올라가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환경에 적응하는 현상 때문에 복권 당첨의 행운이라든지, 새 자동차라든지, 교통사고라든지, 잃어버린 애인리라든지, 암이라는 것은 시간이 흐르며 이에 대한 우리의 불행감도 줄어든다.


 우리의 행복은 그날그날 일어나는 작은 일에 따라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에게 쌀을 보내 주어야 하는가?" 같은 제목으로 싸우는 부부는 없다. 아주 시시콜콜 작디작은, 남에게 이걸로 싸웠다 하기에 창피한, 별것 아닌 걸 가지고 원수나 만난 것처럼 싸운다.


 둘째 원리는 반작용의 원리이다. 반작용 원리라는 것은 한 가지 감정은 반드시 그 반대되는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가 끝나면 그 반대되는 감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술꾼이 술기운이 떨어지면 견디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행복의 또 다른 요소로 사회적 비교를 들 수 있다. 오늘 나의 행복이 남의 성취에 달려 있을 때가 많다는 것. 행복감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는데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행복감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는데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이것이 왜 어제의 빈곤한 사회가 오늘의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해도 행복감은 그대로 있느냐는 것을 설명해 준다. 


 한마디로 내 손에 든 떡이 남의 손에 든 떡보다 작을 때는 행복감을 못 느낀다.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 20%가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도 안 된다. 대부분은 "남은 부자이고 나는 부자가 아니가"고 생각한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행복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개 적어보자.


 첫 번째는 아주 능동적이고 활동적이고 바쁘게 지내라는 것이다. 조용하게 지내지 말고 아주 바쁘게 지내자. 꽃꽂이를 한다든지, 낚시를 간다든지, 사교춤을 춘다든지, 헬스클럽에 간다든지, 개를 키워보자. 활동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행복감을 낮추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교, 친교, 대인관계를 많이 하라는 것이다. 이 사람도 만나고 저 사람도 만나며 참여하는 집단이 많고 분주할수록 좋다. 온종일 쏘다니고 남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인 동물이라 하지 않았는가.


 세 번째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 일이다.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못 가서 대학교를 못 가면 어쩌나 약 20년 앞을 내다보고 잠을 못 이루는 밤이 있다. 그것은 그때 가서 할 일, 우선 걱정을 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을 하자.


네 번째는 우리가 가진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희망사항이 있는건 좋은데 희망이 너무 크면 실망도 너무 크기 마련이다.


 다섯째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값진 것은 눈물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을 생각하면 슬퍼할 일도 소중한 경험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섯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내 권리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어하던 것을 마음껏 유감없이 할 수 있어야 하낟.


 일곱째는 내 생긴 대로 살자는 것이다. 호랑이는 고양이를 보면 "조그마한 놈이 무엄하게 나를 닮았다"고 혼을 내준단다. 그런데 사람은 호랑이보다 못해서 그 반대로 "나를 왜 안 닮아주냐"고 야단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권한, 즉 누구를 속일 권한, 누구에게 정직하게 행동할 권한,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앞세울 권한, 남을 도울 권한, 바보짓을 할 권한, 거짓말을 할 권한, 얌체짓, 질투를 할 권한도 있고, 순수하게 살 권한도 있다.


 여덟째는 행복에 가치를 두라는 것이다.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된다. 나에게 행복이 오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사과가 내 입안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아홉 번째, 우리가 행복감을 방해하는 건강하지 못한 생각을 한다고 생각될 때에는 즉시 다른 생각으로 바꿔치기를 해야 된다. 불안하다, 걱정이 된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걸 더 건강한 생각으로 바꿔치기를 해야 한다.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들 때 손을 쓰지 못하고 운명에 내맡긴다. 행복을 방해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는 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행동을 해야 된다. 많은 사람들은 불행한 생각이 들어도 어찌 할 줄을 모르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하루 종일 '나는 가치 없는 인가', '나는 쓸모없는 인간', '나는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하루 종일 대문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 있다.


 열 번째는 우리의 행복감을 방해하는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생각은 합리적이지 못한 극단적인 생각을 스스로 하고, 그 생각 때문에 우리 감정이 영향을 받는다. 어려운 문자를 쓰자면 자승자박(自繩自縛)인 셈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가끔 "나는 모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스스로 선언한다. "사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모르지만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꼭" "무슨 일이 있더라도" 등의 극한 용어, 즉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을 하고 그 생각 때문에 불행감에 시달린다.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비합리적이다. 이같이 비합리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는 우리는 재빨리 그 합리적 근거를 찾아보고 그 근거를 찾기 어려울 때는 용감하게 그 비합리적인 생각을 떨쳐 버려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비합리적 생각 말고도 우리는 여려 개의 비합리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종합해서 결론을 지어보면 행복이란 우리의 생각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생각에서 끝나는 것이다. 또한 행복은 만들어지는 것인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200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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