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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福泉) 칼럼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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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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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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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마리화나 자유화가 그리 급한지…

 

 


 
금년들어 유달리 극성을 부리는 무더위로 지구촌이 몸살이다. 우리가 태어난 고향 땅 그곳에도 찜통 더위와의 전쟁터를 방불케 해 아우성이라고 매스컴을 장식했다.


북극에 빙하가 녹아 침수된 바닷물이 넘쳐나 섬나라들의 생태계는 물론 생계 유지에 위협받아 절박한 모양이다. 백년에 한번 필까 말까 한, 마치 무궁화 꽃을 닮은 고구마 꽃들이 피어나는 이변도 생겨나고 있다. 고구마 꽃은 행운을 상징한다는데…


온난화의 수온계가 겨울의 나라 이곳 캐나다 토론토까지 기준치를 상회하는 이변을 속출하고 있다. 왕년엔 한여름 4, 5일 틀었던 에어컨이 두 달 이상 아예 온도계를 고정해두고 한여름을 견뎌야 했다.  


온난화가 지구촌을 위협하는 데도 그런 자연의 섭리엔, 과학문명의 손길로는 아예 손을 쓸 수가 없다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훌러덩 옷을 벗어 던진 모습들 길거리마다 요란하다.


 스트레스가 넘친다. 불쾌하고 끈적이게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열기로 몸살을 앓는다. 해마다 이럴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혼란을 부추기려는 듯 기쁜 소식은 아니다.


Adult village가 넘쳐 난다는 뉴스도 있다. 옷을 벗고 물놀이로 폭염을 달래고 있는 곳이 미어지는 모양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중엔 그 모양이 최고일 것 같은데, 뭘 먹고 살아야 용기백배 남의 눈길 아랑곳 없이 남녀가 그 모습으로 모래사장을 활개칠까?


마리화나가 시중에 범람하려는 모양인데, 그걸 피워대면 걸쳤던 옷가지마져 팽개치려나? 인간들이 옷을 입는 것, 만인을 위한 예의요 상식이 아닌가. 


저스틴 트뤼도가 마리화나 시장을 확 열어 버린단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고 이 나라를 모두 벗게 만들려나. 폭염일까. 마리화나일까? 끈적거려 열불 나게 찌는 더위가 동장군의 추위보다 훨씬 강력한 파워이구나 싶었는데. 


마약의 기본이 마리화나라는데, 이거야 원 헷갈려서, 과연 당연한 정책일까? 마약소유죄로 사형이라는 최고의 법적 제재까지 집행하는 곳도 있는데 유독 캐나다만 어찌 거슬려 가려는가? 

 

해롱해롱 초점 잃은 눈으로 자동차를 몰고 다닐 것은 뻔한데, 어찌하려고 몰핀의 씨앗을 우물거려도 좋다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곧 닥칠 모양이다.


신기하고 환상적이라는 학교 친구들의 꼬드김에, 뒷전에서 수근거리며 피워대던 환각의 요물들이었다. 이제는 히히덕거리며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대놓고 피워댈 수 있을 것이니, 이 나라의 자의적인 평화라고 기쁨을 즐기려는 것인가?


 염려와 불안만이 아니다. 도덕과 치안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적립되어 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가? 훌러덩 벗어 던진 모래사장의 자유와, 해롱대는 눈빛으로 세대를 희롱하는 평화에 대해 매우 혼란스럽다. 자유와 평화는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라고 행여 교육과목에 실을 것인가?


멋 모르고 뻐끔거리다가 패가망신한 눈에 띄는 사람들의 허덕이는 모습들, 측은하고 안타까움에 동정도 도움도 애처로웠는데, 이것 참 야단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참상이 이 시대에 재연되려나?


시대적 물줄기가 겨우 마리화나의 개방으로 신세대를 아우르려 하는 거라면, 정치적 타산에 발맞추어 국민성을 난도질한다는 건데, 보수와 진보가 어우러져 두 손가락에 끼워 피우려는 마리화나의 연기에 눈을 꿈뻑일 모양이다.


아침 저녁으로 가을이 밀려드는 시절의 변화를 거부할 수 없듯이, 이 나라 마리화나의 정책 역시 손사레를 칠 수 없는 것인가? 이 일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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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일기장을 뒤적이며

 
 
얼마 전에 대학노트에 빼곡히 쓰여졌던 학창시절의 일기장을 미련없이 버렸다. 가치 평가의 수준이 미달해서도 아니었다, 애지중지 때묻은 애환의 설움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허지만 이제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기억들이 전설은커녕 오히려 회한의 뿌리들로 우울한 환상만을 자아냈다. 


그 옛날의 이야기들은 오늘의 내 삶에 부담스럽게 심란하고 어설픔이 배어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때 그 시절의 한이 서린 나의 모습들이 뒤적거릴 때마다 다시 떠올라 눈시울이 시큰거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 풍족하지 않았고, 찌들은 가난의 후예들이었다. 상상하기 조차 불편하고 처연한 안타까움이 머리를 흔들게 했다. 분명한 것은 그 일기장에서부터 읽고 쓰기의 습관이 길러져 왔다,


그렇지만 쌓여 묵혀있는 서랍 속을 비워버렸다. 무려 대학노트 다섯 권이나 되었다. 스스로의 생각과 마음속을 털어내어 요원했던 격동의 시절이 질서정연 하게 표현된 일기장들이었다.


50, 60년대의 흙과 바람 내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던 일기장이었다. 나를 표현하고 정리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함을 절대로 감사해야 할 것을… 그런데 왠걸 그 헐벗고 심란했고 암울했던 옛 시절이 싫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감사할 것이 있다. 학교 친구들과 책들을 서로 돌려가며 함께 읽고 독후감들을 써서 발표해봤던 동인지 활동이었다. ‘능암’(언덕 위의 바위가 되자) 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독서 친구들의 작품집이었다.


인쇄기를 등사기로 사용했던 그 시대의 모습, 요즘 컴퓨터 세대는 무슨 단어 일까? 알 수도 없는 외래어로, 그래도 그것으로 이 세상은 밝혀지고 있었다. 시 와 수필, 단편과 콩트들이라고, 그래도 글쓰기란 낙서들이 주섬주섬 일기장에 담겨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의 새벽은 일터다. 논두렁 밭두렁이에 먹을 것들을 가꾼다."


"아빠의 장날은 술에 취해 휘청거리면서도, 양손엔 생선이 들렸다. 취했어도 5일마다 물고기 반찬을 꼭 챙기신다"


"밖에 빗소리가 새벽을 깨워 아빠 엄마의 소곤대는 이야기가 잠을 깨웠다. 다툼인가? 들리는 소리는 논과 밭으로 지혜를 모아 쏟으려는 대화들이었다."


"룡이란 녀석, 내게 빌려간 책을 오늘도 깜박 잊고 안가져 왔잖아,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가 다정한 내 친구 아닌가. 내일은 잊지 않겠지!"


친구 집에만 가면 친구엄마는 쪼들린 생활을 쥐어짜 먹을 것들을 삶아낸다. 고구마였다. 한 광주리 사다가 양판 속에 푸짐하게 쪄내시며 "많이들 먹어라!"  아들 친구들에게 인기만점이셨다. 어찌 그리도 배가 고팠던가?


죽순처럼 자라나는 세대가 아니던가, 그때 그 고구마가 아니었으면 아마 내 키가 지금보다 몇 센티는 못 컸을 게다. 못 먹어서, 그때는 라면이 나오기 직전이었으니 더 허덕일 수밖에. 한 많은 가난이여!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여름, 겨울 방학 때였다. 자활 능력을 체험하자는 기발하고 대담한 발상이었다. 생활용품들을 구비해 농어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비누, 연필, 치약, 칫솔 등등 들쳐 메고 골목길을 뒤지며 고학생 역할을 실제로 경험했다.


배우려고 학자금을 조달하는데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민심의 동향파악으로 국민적 정서를 확인하여 보려는 소년시절의 값진 이력서였다. 인간세상의 접촉으로 친근함을 배양하고, 대범함의 이치를 깨우치려는 소년시절의 절박한 투신이기도 했다.


 ‘구리무’(피부크림)며 성냥, 초 등의 농촌생활에 필수품들을 팔고 다녔다. 현금이 없다고 곡물로 값을 계산해주는 농촌의 풍경이었다. "아이고머니나!" 학생들이 공부할라고, 세상에나… 있는 것들 더 주고 싶어하는 인정이 차고 넘쳐났다.


한여름 방학을 풍성하게 값지고 진귀한 생활체험으로 유익하고 멋진 젊음의 추억이었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은 한국사의 ‘탈무드’에 등재한다 하더라도 분명 성현의 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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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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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장작불과 모닥불의 사랑

 
 
 한국의 예능 방송을 가끔 시청한다. 얼마 전 부부살이의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은 프로를 보게 되었다. 놀라웠던 사실은 부부학 강의를 하는 강사의 고백이었다. 전공분야임에도 도전에 직면하여 헷갈리는 어려움이 부부생활임을 실토한 것이다.


평소 하루에 네 다섯 번씩 부부의견이 충돌하는 모양새를 겪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헤어지면 끝나는 것 아니냐는 방청석의 의견에, 혼자 사는 것보다는 하루10번을 토닥거려도 아내가 있어야 좋단다.


다툼은 헤어짐의 불씨가 아니라 부부사랑을 확인해가는 기본이요, 과정이라는 것이다. 토닥토닥 장작불 타는 소리가 없으면 불길이 타오르지 않는다는 이치요, 논리다.


투덜대는 부부가 아니라면 사랑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론과 상응하는 말이다. 불만과 불평의 원론적 주장은 아직도 상대의 의중에 나를 포기할 수 없어 절충하려는 과정일 뿐이다.


뭔가의 생태적 의견충돌이란 바로 사랑하련다는 의식적 발로요, 잠재된 사랑의 함축성이 좀 거세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찌그럭 찌그럭, 토닥거린 사랑의 불꽃은 부부생활을 원활하게 추스르려는 소화제요, 영양제의 효능을 발휘할 것이다.


 생판 서로 아무 것도 몰랐던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서로 손길 한번 마주친 적 없었던 인연 속에서 무슨 각별함인지 부부가 되어 귀한 자식들과 함께 알콩달콩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잔주름들 헤아릴 틈 없이 먹고 사는 것 해결하며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함께 겪으며 살았던가. 힘들었기에 짜증부리며 한숨 쉬며 눈길에 밟히는 남편이요, 아내 아니던가.


흉허물 없는 편안한 관계였기에 입 속에 있던 것까지도 꺼내어 나눠먹을 정도로 아무것도 계산할 필요 없는 관계가 바로 무촌(無寸)인 부부다. 그래서 할말 못 할말 하다 보니 눈길이 험해지고 목소리가 커지며 이것저것 따지고 들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을 큰 변이나 날 것처럼 양말짝이 왜 이렇게 굴러다니냐? 부엌에 설거지가 왜 이렇게 엉망이냐?. 그렇다. 살다 보니 부부생활의 기본이 눈살 찌푸리는 관계들의 연속이다. 


 서로 철저하게 속물 같은 인연으로 함께한 남녀관계다. 오죽해야 부부관계는 험악하게 말해서 악연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둘이서 서로 포용하고 이해해주지 않으면, 누가 해줄 것인가? 자식 새끼들 없었을 때 첫사랑의 눈빛만 상상해보자.


무지갯빛이 사랑의 눈빛보다 더 아름답던가? 보이는 색깔의 자연현상과 남녀간의 연정이란 가슴속에 숨겨진 천태만상의 색깔과 어찌 견줄 수 있을까? 애정의 불길 속엔 토닥거림도 필요 없다. 불길도 없는 뜨거움의 정체가 바로 남녀간의 위대한 사랑이 아니더냐 말이다.


 두근두근 가슴이 철렁거리던 그 순간의 눈빛이 겨우 일년 반이란다. 일년 반으로 평생의 투덜거림을 통달하라는 초자연적 남녀 관계가 부부라는 인연이다. 그때 그 시절로 평생 살아갈 정신적 육체적 양식을 부축해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대 하나만이 전부였던 첫사랑의 시절 말이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사랑으로 포용의 양식, 이해하며 용서의 양식, 배려와 나눔의 양식, 노력으로 성취의 양식들을 비축해둬야 했다. 18개월의 눈멀었던 사랑이었다. 참으로 뜨겁고 황홀했던 추억이 그대와 나에게 메아리처럼 여운으로 숨쉬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도 겁날 일 있으랴.


훨훨 타는 장작불에 구워지지 않을 것들이 있던가! 토닥거림의 불길 속에 눈에 밟힌 부부간의 찌꺼기들 다 태워버리자. 토닥거림이 없는 불길이 바로 모닥불이고, 화롯불이다.


곧 꺼져가는 불씨도 잿더미에 깨끗이 잠재워버릴, 원성과 불만의 씨앗마저 모두 없어졌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흥얼거림으로 노래하자.


그토록 알뜰히 사랑에 취해서 함께 살자고, 주례 앞에서 손가락 내밀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겠다고 약속했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렇다면 웬만한 건 눈감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그리 잠자리는 뒤척일꼬? 코는 왜 그리 고는가? 하루 이틀 살아온 것도 아닌데,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며 들볶아서야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 건가.


당신 없는 세상 하루도 못 살 것 같았던 인연, 붙잡고 늘어져 환성이라도 질렀다면 책임도 감수해야 하잖은가. 


“여보! 어제 당신 피곤했수? 오늘 푸욱 쉬어요. 밀린 집안일들 내가 하리다.” 꿀물처럼 달콤한 한마디가 백년해로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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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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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선불 15만 불에 정기적으로 해마다 1만불씩, 동포장학재단을 후원하련다는 약속이다. 서툴고 어설픈 정원사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파트타임으로 푼돈을 만들어 학업을 유지했던, 존 박이란 사나이가 펼쳐 보인 삶의 노래다.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부모님의 상황을 직시한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캘리포니아에서 내과 전문의 과정을 이수했다. 험난한 의학계의 과정들을 넘고 넘어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취득하여 전문인의 입지를 다져갔다.


그는 아버지의 죽마고우의 여식인 애리 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2남1녀의 가정을 아름답게 꾸며가고 있다. 아내인 박애리, 예일대 법대를 수석 졸업한 수재다.


회사경영 전문변호사로, 캘리포니아 유명 로펌에서, 캐나다펜숀 투자관리 업무까지 총괄하는 국제변호사다. 그녀의 당차고 기발한 업무처리 능력은 전문의인 남편을 능가한다니, 부부의 활기찬 패기와 돌파력은 타의 추종을 뛰어넘는, 신세대의 거울이요 모범적인 우상임이 틀림없다.


이제는 그들을 낳아 성장시킨 부모의 은혜에 보답할 순서를 찾은 것이요, 꿈을 여물게 한 고향땅 토론토의 장학재단을 지원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아빠 엄마의 이름으로 거금을 후원한 것이다. 이 얼마나 대견하고 모범된 일인가.


그의 부모는 박하규, 박선근 님. 박하규 박사는 토론토대학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다년간 저서활동은 물론 영혼구원 사역에 부름받은 분이다. 명문 전주고를 수석 졸업 후, 서울대 문리대 수학 도중에 중단하고 한국신학대학으로 전입해 창조자의 증언대에 올랐다. 부모님의 빗발치는 반대로 학비지원까지 중단해 버렸지만, 끝까지 불효했던 결과 조직신학박사가 됐다. 


현재 88세 노령이지만, 번뜩이는 눈빛은 총칼이 인권을 짓밟았던 시절에 해외 민주화의 선봉장이셨던 기개가 서릿발처럼 이글거린다. 한동안 입국금지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핍박과 억압의 처절한 아픔을 견뎌내신 숨은 영웅이다.


내과의사 존 박은 억만장자의 대열에 서서 이런 삶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의지적 용단과 꿈틀대는 결단의 산물이다. 격려와 사랑의 실천이요, 기쁨을 노래한 베품과 나눔의 행위일 뿐이다.


 돈이 남아나서 후원한 것이 절대 아니다. 필요한 곳이 어딘가? 우리 함께 장학이라는 실증을 경험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감에 우선 선택한 것뿐이다. 이 사회가 베푼 복지정책에 힘입어 입지를 굳혔다고 빚을 갚는 것 역시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후원자들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존은 고백한다. “기회는 붙잡는 자의 열정적 노력과 결과로만이 바람직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또한 “그 기회를 포착하는 순발력을 부여받은 이 사회의 환경이 나의 입지를 마련해준 것”이라고… 


부모님의 확실하고 애절한 염원이 자손대대 이어져 있었기에 성취의 완성을 이루었으며, ‘나누며 살라’는 가훈이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다. “어쩌면 생태적 리듬의 유전학적 인자가 나를 감싸주는 것이 아닐까. 잊지 못할 벅찬 감사를 부모님께 드린다.” 


아프리카의 불우 아동과 탈북새터민들의 처절한 삶의 모습들, 외면할 수 없기에 잠결마저 뒤척이며 자선행위에 손길을 뻗쳐야 했다. 


 캘리포니아 역시 어려운 이웃이 많다. 그래서 Parks family 재단을 결성하고, 뜻에 동참하는 이들과 어둠을 밝히는데 열성을 다하고 있다. 아! 어찌 10만 동포들의 귀감이 아니랴. 


 지난해 동포사회에서 들끓었던 무궁화양로원 건립기금 350만 불 모금의 환희를 우리는 실증했다. 단 몇 개월 만에 목표액을 훌쩍 넘기는 기적같은 경이로움을 보았다. 5대호의 호숫물처럼 넘실대는 저력이 가득한 이곳 토론토다. 


 존 박, 애리 박 두 분의 알뜰한 가정 위에 날마다 넘치는 기쁨으로 충만하길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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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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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주검의 소리

 
 
먹은 돈이 많고 적음에 목숨을 던진 것 아니다. 나는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안면 몰수는 하지 않겠다는 결단과 각오를 스스로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를 실수로 챙겼지만, 평소 주장하며 소신을 피력했던 나의 역동적 삶의 모습에 진흙을 발라야만 하느냐고 반문하며 나는 내 몸을 던졌다. 


민의를 대변한다는 정치인들이여! 내 주검의 소리가 들리는가? 정치바닥에 혀를 날름거리는 경제단체 핵심 인물들이여! 치맛자락이라도 붙들어 사리사욕에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이여, 내 죽어가는 영혼의 소리를 들어라. 이제라도 무엇으로 이 나라의 불의를 뿌리뽑고 정의롭게 세상을 밝혀갈 것인가. 자신이 없는 자들이여, 내 뒤를 따르라. 


수백 년 조선 민족성의 나약하고 무모함에 과감하게 반기를 든 그의 창연한 성품은 양심의 빛과 그림자를 펼쳐 보인 것이다. 그의 영혼의 울부짖음으로 이 혼탁한 한국 정치, 경제, 교육계를 망라한 모든 영역에 횃불이 밝혀지려나.


구태의연한 헌정 질서와 사회전반에 널려있는 쓰레기 같은 악습을 타파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태우던 한 정치인의 죽음의 소리에 온 나라가 비통함과 안타까움, 애끓는 통탄함이 몇 주일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귀하고 값진 목숨을 버리면서 병들어 썩어가는 조국의 현실을 통탄해하며 4천만 원의 돈다발을 시궁창에 던졌다. 칼날 같은 성품과 비단결 같은 그의 양심으로, 몇 천만 원의 뇌물을 챙기는 것보다 떳떳했을 것이다.


수 억원 정치자금을 받고서도 눈빛을 흘겨 뜨며 수갑을 차고도 거짓말이 입술에 발려있는 정치인들의 몰지각한 행태와, 불합리하게 변질된 사회적 온갖 비리들의 온상을 뒤엎을 수 없다는 실망과 회의가, 던져버리자 이 한 몸, 노회찬 국회의원의 주검의 소리가 메아리 되어 한반도를 울리고 있다.


아니 그의 버린 생명이 파란 하늘빛으로 동녘이 밝아오는 듯 희망을 태동 시킬까? 빛 좋은 이상을 꿈꿔본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살신성인의 대열에 과감히 뛰어든 그의 영혼의 소리를 이 사회가 외면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까짓 4천만 원이 아니다. ‘탈무드’의 자손 유대인 친구들의 생활철학을 곁에서 봤다. 함께 길을 걷다가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다. 호주머니에 넣겠지, 왠걸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둔다.


놀라워라, 아니 네 것이 아닌가? 묻는 내가 한심할뿐더러 몹시 부끄러웠다. “내 것이 아니란다” 주인이 나타날까? 아니란다. 누가 주워가도 내 맘이 편하단다. 탈무드의 교육일까? 지혜의 산물일까? 


그는 교육자다. 그에게 교육받고 자란 이곳 캐나다의 자녀들, 무슨 선물을 받든 한국 아이들처럼 “이게 진짜예요?”라고 묻지 않는다. “탱큐” 만이 입에서 함박웃음으로 감사를 표한다. 뿐인가. 장애인들을 위한 자동화된 문을 아빠가 사용하는 걸 보고, 아들이 말한다. “아빠는 장애인이 아니면서 왜 그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것이다.


단군의 자손들은 뭘 보고 배웠나. 탈무드가 도덕책으로 정규교육을 시켜도 될성 싶은데.


 노회찬 의원, 그의 손으로 만진 별것 아니라는 떡값의 실체는 드루킹이란 요상한 범행이 법적으로 증명되리라 믿으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젊음을 불태웠던 그의 탁월한 신념과 의지력으로 한국 정치사에 변화와 희망을 접목시키려 했던 투쟁의 불꽃이 다시 되살아나야 할 것을, 그의 주검의 소리가 영원히 온 국민들의 귓가를 울려주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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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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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금고지기들의 환란

 


 
 해킹(hacking)이라는 도둑을 맞았다. 방심은 금물이라는데, 금고지기들의 근무태만이 빚은 결과로 수십 명이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야기다. 요즘엔 인터넷 네트워크의 연결로 방안에 앉아서 은행출입을 대신하는 편안하고 요긴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Online banking의 편리함을 더 이상 말해 뭐하랴. 줄 서서 행원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를 줄여 주었고, 왔다 갔다 운전시간 절약은 물론 기름값마저 절감하는 편리함으로, 모든 입출금 관리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세상을 누리고 사는 세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잔고확인을 하는 중에 지난 3일 동안에 몇만 불이 빠져나갔다. 식은땀은 물론 눈앞이 캄캄했다. 태어나 처음 당해보는 청천 벽력같은 놀라움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럴 수가? 체킹어카운트가 부족하니 저축계좌 금액이 자동으로 이체되어 몇만 불이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실수라면 저축계좌에서 자동이체 되도록 해두었다는, 편리하리라고 믿어 방치해둔 것이 실수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럴 수가 없었다. 구좌를 개설할 때 개인 사인을 철저히 보강해 두었기에 한두 장의 가짜 수표는 금세 대조 식별하는 은행원들의 대처를 항상 믿고 있었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3일 동안에 10번을 남의 주머닐 털어갔던 일에, 시중은행은 무방비 상태였다면, 이거야 원, 도둑들이 활개를 치며 훔쳐가도록 뭣들하고 있었단 말인가.


10여 년이나 집 근처 은행창구를 이용했던 고객의 구좌내역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털어가도록 허술한 시스템을 어찌 그냥 방치해두었을까? 천만다행 3일만에 발각된 해킹의 실체는 수만 건의 대량 유출된 은행구좌의 무방비 노출이라는 허점이었음이 밝혀졌다.


유출된 액수야 이유 불문하고 전액 환원이 되었지만, 당황하며 안절부절 날강도에 된서리 맞은 후유증은 뭐로 달래주려나? 새롭게 개설해야 했던 모든 구좌들, 바꿔버린 구좌들의 내역을 관계부처와 통상거래처에 일일이 다시 연결해야 하는 번거로움, 신용카드며 데빗카드까지 모조리 비밀번호를 새롭게 바꿔야 하는 귀찮은 순서들, 부부가 연합으로 개설된 구좌들이었기에 함께 새롭게 설치해야 하는 이중적 고통의 피해자는 누군가? 


 구멍난 것 때워주면 그만이라는 구조의 난맥상, 언제까지 안일한 처리방식으로 땜질해야 하는가. 3개월 동안 특별지원 된 행원의 친절하고 세심한 보살핌이 있었기에 그나마 위로가 되였지만,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사실에 얼마나 긴장했던가. 


법적대응으로 환란의 책임과 정신적 고통과 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변호인을 선임하련다는 피해자의 억울함에, 극구 자제해줄 것을 당부 또 당부하면서 거의 지점 전 직원이 손발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범벅이 된 상황은 은행업무처리 능력에 대한 실망이 컸다. 


대량 유출된 은행구좌들의 실체가 아직 공식 절차를 확인중이라기에, 합법적 공증변호인들의 법적 대응책에 중지를 모아야 함을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편리함의 최대한 보장은 물론 금고지기의 철저함이 완벽을 약속해줄 수 있다는 은행업무였기에 전 재산을 다 맡겨버리고 있었건만 이토록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고객정보의 도용을 눈감은 상태로 팽개쳐 버릴 수밖에 없다는 위험성을 어찌하려는지?


 대중을 매개체로 한 은행들의 사무착오는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거국적 차원에서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중차대한 사항이 아닌가!


Online banking의 취약점을 보다 더 철저하게 보강해야 함은 물론, 고객 보호 차원에서의 근본적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십여 년씩 몸담았던 행원들만 실업자로 전락시킨 은행의 인사관리 체제로만 해결을 모색하려 한다면, 또다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실수가 재연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연결된 구좌들의 자동이체 시스템의 허점들, 시급히 보완해야 될 과제임을 제고 해야 함은 물론, 자유롭고 믿음직스러운 고객들 편의를 철저하고 세부적인 운영의 묘를 구체적으로 체계화시켜야 할 것이다. 


사유재산 관리로 천문학적 이익을 창출하는 은행들의 역사가 몇 백년인가? 아직도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미숙함이 고객들의 잠결을 방해한다니 이거야 원. 금고지기들이여, 졸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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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66991
11090
2018-07-26
특별 활동비

 

 

 태곳적부터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종이 멸살되지 않는 한, 이세상은 도둑들과 공존해야 한다니, 참으로 서글프고 매우 신경 쓰여 고약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어쩌랴. 그런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며 살아야 한다고 인간수양의 교육과 총명한 재치와 능력을 부여 받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려니 이해하며 포용하라는 성현의 말씀 앞에 고개를 떨구지만, 그러다가도 눈만 감았다 하면 코라도 베어갈 듯한 세상. 눈 똑바로 뜨고 볼 때 껄끄럽고 볼썽 사나운 환경을 결코 그냥 넘겨버릴 수 없다.


어떤 인종이라고 별 수 없다. 일등, 이등 국민 역시 훔치고 퍼가며 챙겨가는 도둑들의 등살에 고역을 치르며 험악한 세상이라고 악을 쓰지만, 근절될 수 없는 악종 중에 최악이 언제 없어질지. 종말이 오고야 끝장이 나리라.


가게를 했을 때의 일이다. 복권 판매대에 줄을 서 있으면서 무료하고 시장기를 달래야 하는 퇴근시간인지라 진열된 초코바며 먹음직스러운 것들을 훔쳐 먹으며 모른 척 복권만 계산하고 빠져나간 얼빠진 좀도둑들 한둘이 아니다


물론 먹은 후 빈 포장지를 내놓고 계산을 하는 자들이 있다지만 철면피 얄미운 도둑들이 훨씬 더 많다. 복권을 팔면서 긴장하고 세심한 촉각을 곤두세워 포켓에 집어넣고 모른 척 그냥 빠져나가는 도둑들 잡아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행운의 복을 구가하면서 천운을 꿈꾸는 그 순간에 못된 짖을 저지르고 무슨 복이 주어지길 바랄까! 


요즘 떠들썩한 한진그룹의 엄청난 도둑질들, 너무하지 않는가! 두 딸이며 엄마까지도 아니 사주(社主), 그 알량한 재벌의 한없이 불거지는 도둑질 말이다. 이제는 아들까지 대학 부정입학의 볼썽사나운 비리들로 한진그룹이 박살나기 일보전이다. 재벌들의 구린내가 어찌 한진 뿐일까?


또한 국회의원 삼백 명의 선택받은 선량들. 내놓고 버젓이 저지른 행패들은 어떤가! 보통활동은 무엇이고, 특수활동이란 오리무중인 그들의 활동무대는 무엇인가? 특수활동비는 국회의원들의 특별한 권력에 대한 위로금이었을까? 


뭐가 특별히 구분되는 그들의 임무였기에 해괴망측한 활동비를 남용하여 국민들의 피땀을 공공연히 훔치고 있느냐는 얘기다. 앞으로 ‘특별배설비’도 책정하고, 곁눈질하며 비서진들의 생김새에 눈독 드린 ‘특별눈독 처리비’도 곧 생겨날 것 같다. 


 수십 년 배불리던 특별활동비를 엊그제 새 국회의장이 들어서자마자 뜯어 고친다니 훔쳐먹은 근성을 다행스럽게도 양심의 저울로 재조정할 모양이다. 설마 ‘특별조정활동비’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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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6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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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3
동포사회를 빛낸 인물들

 

 

 조성준(Raymond Cho), 조성훈(Stan Cho), 조성용(Sonny Cho), 이 분들이야말로 온타리오와 토론토의 한인사회 위상을 크게 격상시키고 있다. 이제 동포사회의 힘들고 억울한 부분을 세심하게 보살펴줄 것이다. 


동방의 이민자 한인들이 이 분들의 이름 앞에서 희망을 봤고,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기둥이 세워지고 주춧돌이 마련된 것이다. 어찌 우리 이 기쁨을 가슴에 품지 않으랴.


 주류정치에 참여한 이 분들의 과감하고 탁월한 활동이 과연 기대를 충족할지는 안개 속에 희미하다지만, 허덕이던 이민의 삶 속에 빛을 향한 발걸음이 있었다면 그래도 10선이란 세월 동안 정치인으로 살아온 조성준 장관이 우리에게 행복을 채워 주었다고 하겠다.


 최근의 건강 걱정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역량을 펼쳐주리라 기대한다.


 다른 성씨들은 모두들 뭐하고 있기에 한인사회는 조씨들만 있느냐고 유대인 친구가 내 곁에서 물어왔다. 그럴 수밖에. 흔한 김, 이, 박씨는 정치현장에 한사람도 보이지 않기에 외국인들마저 한인 커뮤니티엔 미스터 조가 많으냐고 물을 수밖에. 조씨 성은 열 번째도 안 되는데, 유달리 한인사회는 정치성향에 특출한 인물들이 조씨인 것 같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누가 해도 해야 할 일들, 우연히도 조씨 성 셋이 이 사회에 한인들의 위상을 격상해주고 있으니, 박수와 격려, 사랑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10선까지 훨훨 날아오른 노장 조성준 주의원으로서, 노인복지 장관으로서 그의 필살기는 신삼국지에 등재되어야 할 입지전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 세대가 낳아 스스로 외롭고 험한 길을, 히말라야 산등성을 기어오르듯 달성한 의지와 긍지를 어느 누가 흉내내며 이어갈 수 있을까? 지하광원으로 접시닦기로, 그의 투철한 입지전적 이민자로서의 투쟁사야말로 감히 어떤 정치인과 비교할까. 


 우리는 보고만 있었지만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동포사회의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이기에 반세기 이민사에 화려하게 기록될 것이다. 


그를 따라 새로운 길을 파헤친 젊은 패기의 사나이 조성훈 주의원. 이민 2세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는 물론 많은 정치적 지략을 겸비한 신세대의 면모, 캄캄하고 암울했던 문을 두드리며, 새로움의 열정을 불길처럼 번지게 했다. 그의 강한 돌파력은 가가호호 유권자들 문을 열게 했다. 


 이 어찌 기적에 버금가는, 첫 번째 도전임에도 야무지게 쟁취한 것을 축하하지 않으랴. 이 불씨를 이어 그가 정치인의 면모를 어찌 펼칠지. 대선배인 조성준 장관의 소중한 조언과 그가 걸었던 과거사에서 교훈을 배워 이민의 땅 캐나다 정치현장의 획을 넓혀 나아갈 때, 스탠 조의 미래 역시 신선하고 알찬 새 세대의 역량으로 동포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연방의원 자유당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열 손가락만큼 부족한 통한의 투표에 씁쓸하게 시름을 달래야 했던 조성용씨가 오는 10월 토론토시의원에 도전장을 냈다. 모두들 동참하여 힘을 보태야 하리라. 


윌로우데일 지역구 유권자인 동포들은 조성용 후보의 출중한 인품과 뛰어난 정치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이미 증명했기에, 망설일 이유 없는 투표에 참여해 한인동포들 위상을 표출해내야 할 것이다.


 1.5세인 써니 조 역시 한국어 및 영어구사력은 물론 다년간 부동산업에 종사하여 동포사회에 이바지해왔다. 다시 웅지를 틀고 용트림하는 그의 도전에 지역 유권자들의 본격적 참여로 또 한사람인 조씨가 시정활동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한 표를 주저없이 보태야 할 것이다.


또한 연방의원에 도전해 불굴의 역량을 발휘하려는 한인여성 신윤주(Nelly Shin)씨의 출발에 어찌 우리 외면할 수 있으랴. 생소한 듯한 제2, 제3의 인물들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소신이 동포들의 환호와 격려에 힘입어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어느 정치인의 자서전에서 은퇴사 한 구절을 음미해 본다.


"정치를 감투라 생각할 때 그의 양심은 이미 정치인생을 끝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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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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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4
만남은 기쁨이어라

 

 

 꽃과 향기처럼 해야 함이 인사요, 꿀의 달콤함처럼 친절해야 함이 세상사는 방법이라 한다면 억설일까? 단연코 우리는 자연을 벗삼아 꽃과 꿀의 합창으로 아름다운 삶을 엮어가야 할 것이다.


만남의 첫 대면에 미소와 함께 정겨움으로 가슴을 열어 표현하는 포근한 인사 속에 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꽃이 주어지고 향기로운 정겨움에 기분이 상쾌할 것이다. 오랜만의 만남일수록 간절함에 기분 좋은 격려와 사랑을 함께 엮어 청량제 같은 미소를 쏟아내는 모습이 아름답다.


바로 이것이 세상살이요, 교제요, 소통이다. 우리는 뭐가 어찌되었든 탐스러운 꽃의 향기와 함께 달콤한 꿀맛 같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길 기대하며 하룻길을 가고 있다.


고통과 번민, 불편함과 괴로움, 외로움과 쓸쓸함, 그늘 밑만 서성인 것처럼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면 그 인생은 참으로 초라하고 측은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역시 순간의 과정이고 지나고 생각하면 별스럽게 까다로운 일들도 모두 해결될 것이었기에 그 다음에 펼쳐질 그림은 결코 흠을 메우기 위한, 검은색으로만 덧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쨍 하고 해 뜨는 날이 날마다 계속되던가!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련다 작정하고 포용하며 유쾌하게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살겠다고 요구하지도 투정하지도 않았어도 덤으로 주어진 듯 베풀어진 우리들의 삶은 결코 비관적이며 따분하지도 않다.


인사하며 친절하리란 지극히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인간적인 행위에 우린 충실해야 하고 또한 의무를 다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란 속담이 예부터 우리 곁에 살아 진리를 터득하게 한다.


꽃과 꿀이란 합성어 같은 상대성 이론과 초자연적 생태적 리듬에 인간의 기초적 정서가 보다 더 친근함으로 펼쳐져야 할 것이다. 밤을 깨워 동이 트면 이 하루살이의 이런저런 만남들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취할 듯 향기로움에 탐스런 꽃처럼, 안녕하세요, 좋은 날씨네요, 건강미가 넘치시네요, 평안하신 모습 뵈니 기쁩니다, 활기가 넘치십니다, 참 상큼하고 멋지십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하잖던가. 바쁘고 허덕이며 뛰고 달리며 허덕였던 삶 가운데 모쪼록 여유로운 만남의 첫 인사를 티없이 고운 표정 속에 분위기 있게 최상의 친근함으로 완전 탈바꿈 해버린 인사들로 채워주는 만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격려와 칭찬으로 기분이 상쾌한 인사에 무슨 수고와 돈 같은 것이 필요한가. 


많이 상하셨네요, 늙으셨네요, 흰머리가 많이 보이시네요, 힘들어 보이시네요, 편치 않아 보이시네요, 옷이 너무 크네요 등은 결단코 듣기 좋은 인사말이 아니잖은가.


듣는 상대편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껄끄럽고 쓴맛에 비위 상한 모습으로, 당신도 보기에 참 딱하구려! 상한 마음을 눈빛에 담았다면, 만남이 아니라 피했어야 할 안타까움이다.


행여 씁쓸하게 뒤틀린 감정의 화살이 꽂혀진다면 인사가 아니라 상식의 파괴요, 인격수양의 나락이다. 몰지각한 수준의 행패다. 면박도 그 정도라면 불량자들의 만행임을 어찌 부정하랴. 돌이킬 수 없는 미성숙이 아닌가. 품위도 고급스러움도 실종된 인간적 예의범절 역시 파괴돼버린 서글픈 상황이 불편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친근한 대화의 기본이 가족들의 안부일텐데 상식이 아닌가. 자식들의 상황이라든가, 생존해 계신 부모형제들의 근황, 이웃친지들의 잊혀져 가는 소식들, 만남 속에 갖춰져야 할 소박한 안부들 속에, 정겹게 엮어가야 할 매우 기초적 인간의 모습이 향기롭게 펼쳐져야 할 것이다.


눈과 눈이 마주했기에, 가는 세월의 흉터를 덮어주는 만남을 이뤄야 할 것이다. 반가움의 상황판단은 포옹과 껴안음의 상대적 반올림이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했던 사랑하던 남녀간의 만남이라면 더욱 큰 황홀한 기쁨으로 승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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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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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잃어버렸던 인연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아 숨쉬면서도 30여 년을 나 몰라라 살아버린 친구 부부를 놀랍게 만났다. 나쁘게 헤어진 일도 없었다. 


하루라도 못 보면 눈에 가시가 돋듯 전화하고, 주말만 되면 이 친구 저 친구 불러내어 함께 살뜰히 살아왔던 그런 사이들이었는데, 어느날 언제부턴가, 안부 한 번도 없이 그렇게 헤어져 잃어버린 인연이 돼버렸다.


젊은 시절은 열정을 불태워 새터민의 삶을 개척해야 했기에 누굴 탓하랴. 만남이 이뤄진 건 하늘의 섭리라는데, 우리는 관계를 형성해가는 인간적 책임감을 너무나 허술하게 팽개치듯 살았던 것이다. 


 허덕이며 쫓기듯 중년의 삶을, 아이들 낳아 복되게 성장시켜 짝을 맞추어 손주들 안아보기까지 분명히 쉬운 삶은 아니었다. 팔팔하던 젊음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역경과 혼란 속이었지만 숙명적인 삶의 여정을 더러는 환한 기쁨 가운데서 엮어갈 수 있었다.


그들이 곁에 있었기에 세상이 주는 희비쌍곡선을 넘나들 수 있었고, 갈고 닦은 인륜의 온갖 지혜와 사랑을 함께 나누며 천둥, 번개, 비바람을 피해갈 수 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캐나다에 정착하여 뭘 해야 먹고 살꼬? 걱정과 염려도 필요없이 어느 누가 일터에서 부르거나 예비된 것이 없었어도 밥 세끼는 마련되어 있던 캐나다 이민생활이었다.


공무원으로 연봉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로라 하는 회사의 중역자리를 꾀여 찾는가. 결코 아니다. 이 사회에 발 딛고 삶을 적응하려면 소통의 원칙은 기본이었기에, 국가 장학금이 배당되어 말을 배워야 했고 생활비 조달까지 깍듯이 챙겨주는 이곳 이민의 나라 캐나다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젖과 꿀이 흐른 가나안의 정착지라 일컫지 않았나. 캐나다는 지금도 부정할 수 없는 복지정책이 야무진 최고의 국가라는데.


젊어 넘치는 패기와 열정이 용광로처럼 들끓던 시절에 함께 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숨가쁘게 겪은 세월의 흔적이 이곳 저곳에 흠뻑 배어 있었다. 온갖 풍파를 이겨내며 버텨냈던 지난 이야기들, 세월은 주름살로만 연륜을 덮어버린 게 아니었다.


세월호의 슬픔이나 천안함의 원통함이 물 건너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치 없이 밀려드는 하세월은 지구촌 어디에나 고통과 절망으로 몸서리치게 찾아들고 있었다.


 숙명적이라 할지라도 유방암이란 살인병의 침범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큰딸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고, M형의 혈관수술에 심장병 후유증까지 버거운 건강의 위태로움에 속수무책 가는 세월은 참으로 야속했던 것이다. 


두 손주를 낳아놓고 싱싱한 젊음을 앗아가버린 조물주는 어찌 그리도 야속하단 말인가. 차라리 손발이 잘려나간 거라면 견뎌낼 수 있으련만, 생떼 같이 딸아이가 무슨 죄값을 치르면서 그런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하늘도 땅도 무너지고 꺼진들 부모의 고통과 슬픔에 무엇으로 견주며 치유받을 수 있을까? 가버린 세월이 그래도 위로와 희망을 안겨줬기에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와 정겨움에 시간 헤아릴 틈도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잃고 흘러가버린 관계 속에 못다 퍼낸 사연들, 이제는 한과 설움을 토해낼 수 있는 옛 친구를 다시 만나지 않았는가.


그대 이야기도, 내 이야기도 함께 퍼내며 찬란한 이 세월을 맞이하세. 못다한 이야기며 숨겨졌던 얘깃거리까지 죽기 전에 다 펼쳐내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잃어버렸던 30년의 주고받지 못했던 남은 정들 맘껏 퍼내고 살아가잔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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