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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福泉) 칼럼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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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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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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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4
만남은 기쁨이어라

 

 

 꽃과 향기처럼 해야 함이 인사요, 꿀의 달콤함처럼 친절해야 함이 세상사는 방법이라 한다면 억설일까? 단연코 우리는 자연을 벗삼아 꽃과 꿀의 합창으로 아름다운 삶을 엮어가야 할 것이다.


만남의 첫 대면에 미소와 함께 정겨움으로 가슴을 열어 표현하는 포근한 인사 속에 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꽃이 주어지고 향기로운 정겨움에 기분이 상쾌할 것이다. 오랜만의 만남일수록 간절함에 기분 좋은 격려와 사랑을 함께 엮어 청량제 같은 미소를 쏟아내는 모습이 아름답다.


바로 이것이 세상살이요, 교제요, 소통이다. 우리는 뭐가 어찌되었든 탐스러운 꽃의 향기와 함께 달콤한 꿀맛 같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길 기대하며 하룻길을 가고 있다.


고통과 번민, 불편함과 괴로움, 외로움과 쓸쓸함, 그늘 밑만 서성인 것처럼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면 그 인생은 참으로 초라하고 측은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역시 순간의 과정이고 지나고 생각하면 별스럽게 까다로운 일들도 모두 해결될 것이었기에 그 다음에 펼쳐질 그림은 결코 흠을 메우기 위한, 검은색으로만 덧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쨍 하고 해 뜨는 날이 날마다 계속되던가!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련다 작정하고 포용하며 유쾌하게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살겠다고 요구하지도 투정하지도 않았어도 덤으로 주어진 듯 베풀어진 우리들의 삶은 결코 비관적이며 따분하지도 않다.


인사하며 친절하리란 지극히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인간적인 행위에 우린 충실해야 하고 또한 의무를 다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란 속담이 예부터 우리 곁에 살아 진리를 터득하게 한다.


꽃과 꿀이란 합성어 같은 상대성 이론과 초자연적 생태적 리듬에 인간의 기초적 정서가 보다 더 친근함으로 펼쳐져야 할 것이다. 밤을 깨워 동이 트면 이 하루살이의 이런저런 만남들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취할 듯 향기로움에 탐스런 꽃처럼, 안녕하세요, 좋은 날씨네요, 건강미가 넘치시네요, 평안하신 모습 뵈니 기쁩니다, 활기가 넘치십니다, 참 상큼하고 멋지십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하잖던가. 바쁘고 허덕이며 뛰고 달리며 허덕였던 삶 가운데 모쪼록 여유로운 만남의 첫 인사를 티없이 고운 표정 속에 분위기 있게 최상의 친근함으로 완전 탈바꿈 해버린 인사들로 채워주는 만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격려와 칭찬으로 기분이 상쾌한 인사에 무슨 수고와 돈 같은 것이 필요한가. 


많이 상하셨네요, 늙으셨네요, 흰머리가 많이 보이시네요, 힘들어 보이시네요, 편치 않아 보이시네요, 옷이 너무 크네요 등은 결단코 듣기 좋은 인사말이 아니잖은가.


듣는 상대편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껄끄럽고 쓴맛에 비위 상한 모습으로, 당신도 보기에 참 딱하구려! 상한 마음을 눈빛에 담았다면, 만남이 아니라 피했어야 할 안타까움이다.


행여 씁쓸하게 뒤틀린 감정의 화살이 꽂혀진다면 인사가 아니라 상식의 파괴요, 인격수양의 나락이다. 몰지각한 수준의 행패다. 면박도 그 정도라면 불량자들의 만행임을 어찌 부정하랴. 돌이킬 수 없는 미성숙이 아닌가. 품위도 고급스러움도 실종된 인간적 예의범절 역시 파괴돼버린 서글픈 상황이 불편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친근한 대화의 기본이 가족들의 안부일텐데 상식이 아닌가. 자식들의 상황이라든가, 생존해 계신 부모형제들의 근황, 이웃친지들의 잊혀져 가는 소식들, 만남 속에 갖춰져야 할 소박한 안부들 속에, 정겹게 엮어가야 할 매우 기초적 인간의 모습이 향기롭게 펼쳐져야 할 것이다.


눈과 눈이 마주했기에, 가는 세월의 흉터를 덮어주는 만남을 이뤄야 할 것이다. 반가움의 상황판단은 포옹과 껴안음의 상대적 반올림이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했던 사랑하던 남녀간의 만남이라면 더욱 큰 황홀한 기쁨으로 승화될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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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잃어버렸던 인연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아 숨쉬면서도 30여 년을 나 몰라라 살아버린 친구 부부를 놀랍게 만났다. 나쁘게 헤어진 일도 없었다. 


하루라도 못 보면 눈에 가시가 돋듯 전화하고, 주말만 되면 이 친구 저 친구 불러내어 함께 살뜰히 살아왔던 그런 사이들이었는데, 어느날 언제부턴가, 안부 한 번도 없이 그렇게 헤어져 잃어버린 인연이 돼버렸다.


젊은 시절은 열정을 불태워 새터민의 삶을 개척해야 했기에 누굴 탓하랴. 만남이 이뤄진 건 하늘의 섭리라는데, 우리는 관계를 형성해가는 인간적 책임감을 너무나 허술하게 팽개치듯 살았던 것이다. 


 허덕이며 쫓기듯 중년의 삶을, 아이들 낳아 복되게 성장시켜 짝을 맞추어 손주들 안아보기까지 분명히 쉬운 삶은 아니었다. 팔팔하던 젊음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역경과 혼란 속이었지만 숙명적인 삶의 여정을 더러는 환한 기쁨 가운데서 엮어갈 수 있었다.


그들이 곁에 있었기에 세상이 주는 희비쌍곡선을 넘나들 수 있었고, 갈고 닦은 인륜의 온갖 지혜와 사랑을 함께 나누며 천둥, 번개, 비바람을 피해갈 수 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캐나다에 정착하여 뭘 해야 먹고 살꼬? 걱정과 염려도 필요없이 어느 누가 일터에서 부르거나 예비된 것이 없었어도 밥 세끼는 마련되어 있던 캐나다 이민생활이었다.


공무원으로 연봉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로라 하는 회사의 중역자리를 꾀여 찾는가. 결코 아니다. 이 사회에 발 딛고 삶을 적응하려면 소통의 원칙은 기본이었기에, 국가 장학금이 배당되어 말을 배워야 했고 생활비 조달까지 깍듯이 챙겨주는 이곳 이민의 나라 캐나다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젖과 꿀이 흐른 가나안의 정착지라 일컫지 않았나. 캐나다는 지금도 부정할 수 없는 복지정책이 야무진 최고의 국가라는데.


젊어 넘치는 패기와 열정이 용광로처럼 들끓던 시절에 함께 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숨가쁘게 겪은 세월의 흔적이 이곳 저곳에 흠뻑 배어 있었다. 온갖 풍파를 이겨내며 버텨냈던 지난 이야기들, 세월은 주름살로만 연륜을 덮어버린 게 아니었다.


세월호의 슬픔이나 천안함의 원통함이 물 건너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치 없이 밀려드는 하세월은 지구촌 어디에나 고통과 절망으로 몸서리치게 찾아들고 있었다.


 숙명적이라 할지라도 유방암이란 살인병의 침범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큰딸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고, M형의 혈관수술에 심장병 후유증까지 버거운 건강의 위태로움에 속수무책 가는 세월은 참으로 야속했던 것이다. 


두 손주를 낳아놓고 싱싱한 젊음을 앗아가버린 조물주는 어찌 그리도 야속하단 말인가. 차라리 손발이 잘려나간 거라면 견뎌낼 수 있으련만, 생떼 같이 딸아이가 무슨 죄값을 치르면서 그런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하늘도 땅도 무너지고 꺼진들 부모의 고통과 슬픔에 무엇으로 견주며 치유받을 수 있을까? 가버린 세월이 그래도 위로와 희망을 안겨줬기에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와 정겨움에 시간 헤아릴 틈도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잃고 흘러가버린 관계 속에 못다 퍼낸 사연들, 이제는 한과 설움을 토해낼 수 있는 옛 친구를 다시 만나지 않았는가.


그대 이야기도, 내 이야기도 함께 퍼내며 찬란한 이 세월을 맞이하세. 못다한 이야기며 숨겨졌던 얘깃거리까지 죽기 전에 다 펼쳐내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잃어버렸던 30년의 주고받지 못했던 남은 정들 맘껏 퍼내고 살아가잔 말일세.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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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나이야 가라!”

  

▲나이아가라온더레이크에서 펼쳐지는 ‘Shaw Festival 2018’ 공연 무대 

 

 

 

 위 제목은 ‘아버지날’에 딸이 카드에 써서 준 글귀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나이만 가게 하소서. 그리고선 Niagara on the Lake 주말여행을 세심하게 주선해 2박3일 “나이여 가소서! 삶만을 즐기게 하소서. 제발 나이만 들지 않게 하소서!” 신비주의자들의 외침인 양 나들이의 목적을 향해 오랜만의 가족여행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곳엔 수억 톤이 쏟아지는 폭포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곁에 있는 식물원과 박물관들만이 대표적 세계의 유명 관광지로 이제껏 자리매김했던 곳으로 겨우 알고 있었다. 빈약한 폭포 주변 환경에만 치중했던 수박 겉핥기 여행자의 섬세하지 못했던 관광자료 수집이었음을 돌이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국에서 친지들의 방문길에 빼놓을 수 없었던 곳이 바로 폭포의 우람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만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아가라 다운타운에 위치한 문화적이고 전설적인 고장의 산 역사들, 또 다른 알차고 값진 교육학적 공연들로 가득했다. 


그 중에 하나, Shaw Festival 2018이란 생생한 공연현장은 스트라트포드 페스티벌 극장가에 비길 수 없는 음향시설과 조화로움에 라스베이가스에 버금가는 퍼포먼스로 매우 교육학적 뮤지컬들을 공연하고 있었다.


 THE ORCHARD by Sarena Parmar "My parents are from India, But l was born here. I wanted to fit in, be normal, and be Canadian”


복합문화를 지향하는 국가정책에 적응하려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들을 코믹하고 눈물겹게 펼쳐 보이는 2시간이 넘는 공연은 바로 코리언캐네디언의 정착 과정과 다름없이, 같은 인간적 핏줄임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오후 프로그램인 ‘그랜드호텔’이라는 또 하나의 방대하고 웅장한 뮤지컬의 무대 Jackie Maxwell Studio Theatre엔 인간으로서 펼쳐보일 수 있는 최상의 퍼포먼스가 최상의 관현악단인 섬세한 음률과 더불어 극장 안에 별세계를 공연한 축제가 아니었을까.


바다같은 온타리오 호수 주변으로 복합문화의 산실답게 온갖 맛깔스런 국제 식당들의 진미들은 매끼마다 입맛을 새롭게 돋구어 주었고,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근교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하는 눈으로 많은 것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었다. 


 늙지 않도록 나이야 가라! 이번 나이아가라 주말 여행으로 거듭난 젊음을 되찾을 것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이토록 넘치는 풍성함으로 즐거운 삶을 부추기는 관광명소가 있었기에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여행은 나이만 가고, 늙지 않게 도와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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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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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초원의 향기, 골프의 계절

 

 반가운 초원의 향연이 올해도 즐거운 삶을 전해준다. 기다렸던 잔디의 그리움이 어느 누구와 약속만 해도 가슴이 뛰고 손목에 힘이 간다. 약속만 해도 피곤하고 무료했던 심신의 괴로움이 말끔히 물러가는 신비스런 운동 골프.  


 꿈결에도 18홀까지 가슴 뛰며 돌고, 친구들과 최소 4시간을 즐거움 속에 전신 운동을 한다. 바야흐로 골프의 계절이다. 지치도록 기다려온 잔디의 풍경, 이를 천국에 비할까. 


 힘을 빼야 한다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첫 번째 친 볼이 빗나가 숲속을 더듬게 한다. 잃어버린 공을 찾아 헤매는 풍경은 그토록 흥분으로 가슴 태우던 라운딩의 비애다.


 예의와 인격을 중시하고 또한 나를 다스리는 운동, 실수를 해도 인내하며 남에게 티를 내지 않아야 하는 운동이 바로 골프다. 룰에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 두번 세번 실수해도 옆사람이 모르게 가슴을 쓸어 내리며 심호흡으로 다음 샷을 가다듬어야 하는 특별한 운동.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한번 잘못 쳐도 다음 홀 시원한 샷에 말끔히 화가 가시니, 골프라는 마력에 지칠 줄 모른다.


 4시간씩이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만 두기 싫은 운동이기 때문에 스스로 나의 실수를 숨김없이 양심의 도화지에 표시해야 하는 예술가적 운동이기도 하다. 이겨야 한다는 집착과 강박관념에 아직도 못 버린 성깔이 눈빛을 바꾸기도 한다. 그게 골프란 운동이다. 신비스런 유혹이 꼼짝없이 흔들어댄다.


 나보다 못 친다고 레슨을 하려 드니,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는 것보다 더하고 싶은 자선운동이 또한 골프다. 100을 넘는 핸디맨은 2-3홀부터 가르치려 한다. 100에 가까운 핸디맨은 9홀부터, 90 정도 치는 분들은 대여섯홀 남겨놓고 가르치고 싶어 하고, 80이 넘는 분들은 3홀 남겨두고 가르치려 드는데, 70 대를 마크한 분들은 끝나고도 입을 닫고 있기에, 좀 가르쳐 달라면 30분에 75불이란다. 


 짜릿하고 감미로운 흥분… 모처럼 파란 잔디와 신선하고 상쾌함으로 산천초목이 함박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잘 다듬어진 18홀과 세심하게 조화를 이뤄낸 체력의 단련장이다. 열심을 다해 걷고 최선을 다해 그간 갈고 연마한 몸놀림에 순응하는 운동을 맘껏 펼쳐,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하는 값지고 소중한 운동이다. 


 넓고넓은 골프장에 어찌 그리 인색하게 홀은 작게 뚫어둔 걸까? 옛날 목동들의 자치기 노름이던 것이 전설적으로 수백 년을 이어오는 마법 같은 운동으로 국제화되었다.

다른 것들은 많이도 근대화되고 개발되었건만, 작은 홀을 더 넓혀야 한다는 골프 이론은 아직 없다. 


 평생직업이라고 연습벌레로 열정을 쏟아낸 PGA, LPGA선수들, 그들도 한 홀에서 5~6개를 오버하는 운동이 골프다. 나를 다스리는 운동이기에 화를 잠재우고, 0.1 m에 홀을 놓쳤다고 하늘 보고 악을 쓰고 퍼터를 던져 속풀이를 하는 대신, 바나나 반개를 더 먹었다면 틀림없이 들어갔으련만, 힘과 자신감이 부족했음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두 번 세 번 칩샷이 실수로 연결된다면 어깨리듬으로 클럽을 리드할 것을 손으로만 냅다 서둘렀으니. 어깨에 팔에 손이 느슨해야 하지만, 그립에 의존한 악력은 손톱 밑에 핏기가 보이지 않도록 부드러워야 하리.


 깔끔하게 차려입은 내 모습에 골프 좀 못쳤다 할지라도 그게 무슨 부끄러움인가. 신선하고 멋진 골프장 풍경에 유산소 운동을 심호흡으로 하면서, 골프 옷 가게를 뒤져 골라 입은 패션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그래서 골프장엘 더 자주 간다. 부모님 산소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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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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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쵝오다, 쵝오야(?)”

 
 
 “쵝오다, 쵝오야” 스케이팅의 여왕 이상화 선수가 함께 참가한 동료선수들의 피말리는 투쟁을 힘찬 박수와 함께 격려와 사랑으로 극찬한 표현이다. 들고 있는 응원피켓의 표현이 순발력과 재치있는 세 글자의 묘미로 얼음판에 펼쳐 쏟아부은 것이다. 


그 여왕이 달성한 으뜸의 영광, 으뜸이 되려면 하고 싶은 것, 꿈꾸던 희망들, 모든 역량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가 최상이어야 얻어지는 월계관이 될 것이다.


우리 곁엔 꿈과 소망들을 당차게 이뤄 정상의 환호성에 흠뻑 취하여 으뜸의 기쁨을 누리며 후회없이 사신 분들이 많다. 온타리오주 보수당의 집권과 함께 동포사회의 정치인들이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이 역시 “와우, 으뜸의 순간이 아닌가.”


우리말의 의미가 함몰되어가고 있다. 근세에 변화된 우리글 속에 남용되고 변질되어 오염돼버린 한글의 참뜻은 이미 상실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다고 해도 슬프지만 결코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언어는 소통의 문화이기에 쉽고 간결함이 생명임에 틀림없으련만, 언론이며 문화계까지도 앞다퉈 외래어를 남용, 비빔밥처럼 얼버무려 우리글이 있는데도 외래어가 밀고 들어온 상황은 참으로 보통 일이 아니다.


수백 년 찬탈당한 조공정치의 역사며, 6.25 전쟁 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부산까지 떠밀렸던 잊을 수 없는 서글픈 역사가 있었건만,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도용해 부끄럼 하나 없이 공용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영문이야 중국어에 비하면 그래도 은혜로움을 갚기라도 해야겠기에, 5만여 명의 젊음을 희생시키면서 우리땅을 그나마 유지시켜준 동맹국이었기에, 그래서 수억 불씩 쏟아부어 첨단무기 구입의 일등국으로 눈물어린 관계를 유지해가야만 숨을 쉬는 국민들이 아닌가.


우리는 영어단어들마저 공용어로 분칠을 하고 멀쩡한 한글의 의미들을 먹칠해야 한다면, 그 애석함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길거리 간판들이며 각 신문 기사들마저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글을 뒤로 미뤄가며 외래어의 사전처럼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로 도배하다시피 자꾸만 한글 정체성이 침몰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한국문화계마저 국어사랑이라는 단체까지 활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글의 기본과 실체가 흐물흐물 사라져가는 염려스러움이 안타깝다. 세계는 한글문자의 구성 요법이 배우기도 쉽고 쓰기 쉽고 표현력이 다양하다는 요지의 흥미로운 관심을 쏟아내고, 아프리카 몇 개국은 한글로 나라글을 하련다는 관심사가 얼마 전까지 신문기사를 장식하기도 했다.


세계는 열광하는데 한국은 나라말인 한글을 찬밥취급 하여, 영어며 중국어며 불어와 일본어까지, 합성어로 비벼 만든 글들. 과연 국민들 중 얼마가 그 외래어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코스프레, 트라우마, 포스트 모던, 네트웍크, 스타트업, 엔슬파트너스, 멘토단, 벤처스퀘어, 인사불성, 안하무인, 랑데뷰, 멜랑꼬리… 어찌 다 열거하리. 뭉뚱그려진 일본어들까지, 자존심도 없는가?


온갖 실력과 인격을 갖추었다는 우리 국민들 수준에, 저 정도의 외래어쯤은 ‘가갸거겨’ 같은 기본에 부합할 수 있다는 주장일까? 아는척 잘난척, 일반적으로 저 정도의 외래어쯤 알고 있어야 교육수준의 격상하는 모양새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순수한 우리글의 기본적 혼은 어찌하란 말인가? 


인간적 내면의 깊이나 그들 영혼의 사상적 뿌리가 외래어로 평가기준이 책정되어야 한다면 아예 초등생의 교과 과정부터 짬뽕국어로 편성해야만이 국가관을 정립시킨다는 변화된 이론에 접합시킬 것을? 


 온갖 언론이 지향하는 조국땅의 정체성마저 언론계는 물론 문화계 모두 양판 비빔밥에 엉망이 되어가는 현실이 답답해서 낙서로 불평을 터트려 본다. 


한글 표현이 없어서라면 당연히 남의 나라 글로라도 소통해야겠지만, 우리글의 다양성과 감성적 표현들은 분명코 세계 언어사에 기록될 수 있는 으뜸의 경지라 믿어 의심치 않는데.


 ‘봄이 왔어요’ 우리말 글짓기대회 초등4학년 유한나 양의 수상작 중에 발췌한 몇 줄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나비, 아빠가 좋아하는 하늘, 제가 좋아하는 꽃이 다 보이네요."


북한에서 사용되는 화장품 용어들도 순수하고 맑은 때묻지 않은 순수 한국어들이다. 스킨-살결물, 선크림-햇볕방지용, 립스틱-입술연지, 아이브로-눈썹연필… 


 언문이 으뜸이다, 으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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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별스러운 날에 혼의 찬미

 
 
분명히 40불 개스값을 치르려고 50불짜리 지폐를 줬다. 계산서와 거스름 돈을 서둘러 운전석 옆에 던져두고 방향전환으로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빨리빨리의 적자 출신답게 숨가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슈퍼마켓에 들러 필요한 먹고 마실 것을 사기 위해 주차를 하고 방금 던져두었던 옆자리 거스름돈을 챙겼다. 어! 그런데 20불짜리가 개스 영수증에 덮여 있지 않은가. 한쪽 귀에 전화기를 대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억양으로 톤을 높이던 캐쉬어의 실수였다. 10불이란 덤이 주어졌구나! 순간적으로 머리에 혼란이 왔다. 커피값이 덤으로 생겼네. 에잇 까짓 거 10불 갖고서 양심선언까지 할거야, 어찌할까? 다시 주요소로 돌아가야 하나? 


 주춤거리며 양심의 저울대가 널뛰기 한다. 속이려는 것도 아니었고, 있다면 거스름돈을 받자마자 확인을 않고 ‘빨리빨리’의 한국적 습성이 지금도 남아 덤벙대는 모습 때문이다. 아직도 매사에 서둘러대는 고질적 모양새는 언제나 없애나. 


 주섬주섬 먹거리 쇼핑을 끝냈다. 이때까지도 돌려줘, 말어… 묵살이란 단어까지 요동치고 있었다. 그래도 진로를 북북서로 돌려라. 5분 정도의 지척인 주요소로 차를 몰았다. 밀리언 달러가 덤으로 생겼다면, 밤잠을 뒤척이며 혼란에 안절부절 할 수도 있으련만, 10불로 남자가 치사하게 졸장부 노릇에 휘말려야 쓰나! 종일 씁쓸할 터인데… 콧수염에 터번을 썼던 캐쉬어는 왠걸 30분 전에 퇴근한 뒤였다.


또 다른 갈등이 양심을 흔들었다. 그냥 나가버려 말아! 부부간일까? 남녀 두 사람이 캐슈어 앞에서 행운의 복권을 마크하고 있었다. 옆으로 끼여들어 10 불짜릴 카운터에 올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방금 퇴근한 사람의 실수라고 전해달라 했다.


복권을 구입하는 두 사람이 옆을 슬쩍 쳐다보며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와우! 와우! 판타스틱, 그레잇, 수펍” 야단법석이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아유 촤이니스?” 나를 중국인 취급한다. “노, 아임 코리언” 이때라도 당당해야지, 어깨가 으쓱했다. 국위선양이라도 하는 양 흐뭇한 가슴을 애써 진정했다. “My father was in Korea.” “What? 와우” 이제는 내 입에서 또 다른 놀라움이 터졌다.


참전용사의 자녀였던 것이다. 감사와 경외함이 그의 아버지를 향했기에 이 글 속에 어찌 그 얘기를 다 담으랴. 태연한 척 “It's only 10 bucks!” 


밖으로 나가려는데 캐쉬어가 포인트카드를 달란다. “For what?” Gifts를 준단다. “Are you sure?” “당신 같은 사람 별로 없었다”고 한다. 무려 2천 포인트나! 횡재다. 대박처럼 기분이 짱할 수밖에… 


 후련했다. 어깨마저 들썩이며 졸장부였던 가슴이 이제야 펴졌다. 훔친 것마냥 편치 않던 10불의 위력이 이토록 나를 자유롭게 하며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우쭐하기까지 했다. 덤으로 선물포인트까지 얻어 챙겼으니, 10불짜리 돈의 위력이 새삼스럽게 심적 효소들을 낙하산에 태워 구름 속에 띄워준다. 나는 듯한 기분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짜릿함이 온종일 계속될 것 같다.


시장에 왔기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려고 다른 곳을 향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비어스토어를 들렀다. 예사 비어스토어는 항상 붐비는 곳 아니던가. 28병 스페셜, 끙끙거리며 맥주를 트렁크에 싣는데 우연히 타이어에 시선이 멈췄다. 아니 이건 또 뭐야? 타이어에도 깔리고 주변에 코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있잖은가. 옆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흘렸나? 날보고 주워담으라는 것들인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주섬주섬 양손이 바쁠 수밖에… 5, 10, 25센트는 물론 2불, 1불 코인들이 도합 거금 12불이나 됐다. 10불로 푸른 하늘 구름까지 태워주던 몇 분 전의 환희가 2불을 더 보태어 이젠 뭘 태워주려나? 맥주를 구입한 누군가가 주르르 흘리고 갔기에 이거야말로 임자 없는 코인들이다. 


경찰을 부를 수도 없겠고, 비어스토어에 줄 수도 없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정신 감정을 받아야할 테다. 참 이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언제 정신감정이라도 한번 받아봐야 하나. 이런 돈 주워도 되느냐고? 오늘은 참 별스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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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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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너무합니다”

 
 
“여보! 1, 2, 3 다 챙기셨지요?” 현관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순간, 아내가 남편의 나들이에 필요한 것, 빠진 것은 없는가 확인시킨 것이다. 1은 운전면허, 2는 셀폰, 3은 전기스위치 등을 일컫는다.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설 때, 언제부턴가 측은하게 닥달하는 모습이 예삿일이 아니다. 까딱하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집을 떠나며 확인할게 한두 가진가.  주머니에 돈은 챙겼는가? 스토브에 얹혀져 있는 건 없나? 방방에 켜둔 불은 없는가? 건망증 세대에 접어든 서글픈 모습에 시시각각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미덥지 않아 아내의 염려와 배려가 깍듯이 함께 담긴 사랑의 표현이다. 지난해 여름, 주말 나들이를 하고 돌아올 때 지갑을 깜박하고 챙기지 못해 30 km를 되돌아가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젊음이 요동쳐 세상을 누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0대 때는 40대 보고 저렇게 나이 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나는 늙음이란 절대 겪지 않을 것처럼 했었는데, 어느새 맥잃은 모습이 허무함으로 다가온다.


 나만 겪는 것도 아니고 세월이 잠식한 젊음인데, 누굴 붙들고 하소연 할건가. 세상살이 따지고 보면 다 겪고 늙어 운명의 물줄기 따라 흘러가듯 가련만 아쉽고 애태우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 어느 사이에 이토록 늙어가는 신세로 추락했는지.


 종교에서는 인간은 죽어도 혼의 세계를 넘나들고, 죽은 영이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다 하는데, 그렇다면 밖에 나부끼는 미물들도 죽은 인간의 혼이 되살아났기에 저리 날아다니고 온갖 새들은 어떤 영이 환생하여 이른 새벽을 깨우며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가. 혼이 살아 그렇다면 이 세상 살아 있는 우리들 의식으론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미물들의 날갯짓도, 노래도, 울음소리도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는가? 


 태곳적부터 수억이 죽은 채로 묻혀 썩고, 더러는 불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인생인데, 그렇다면 그 수억 중에 신이 어쩌다 다시 살려낸 한 사람 쯤 누군가가 죽음의 세계를 증거하며 살아있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위대한 절대자의 각별한 긍휼을 베풀어 보여주시고, 이해시켜 줄 수도 있으련만, 그 분은 어찌 살아있는 인간에게 무정하고 야멸차단 말인가.


 태어나게 했다면 늙지 않게 해달라. 젊음을 환원해라. 어찌하여 인간의 숨통을 죄이는가? 늙은 것도 서러운데 기억력까지 거두시는가? 그리 젊음을 혹사 시키고도 하릴없어 주름살만 늘리시는가?


 숨을 거둔 나무토막 같은 모습이 과연 당신이 보고 즐기는 영역인가? 매정하고 야멸찬 신이여, 천국이 죽어야 허락되는 곳이라면 살아 생전이 지옥이란 말인가? 지옥 같은 세상을 헤치고 떠난 길이 분명 당신이 펼쳐둔 길인가?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합니다” 노래라도 불러야 속이 후련할 것 같다. 나약하고 연약한 잡초 같은 인생길, 태생의 뿌리부터 주검에 이르도록 간섭하시고 다스려준 고마움과 감사가 겨우 이렇게 ‘당신은 너무합니다’란 원망과 불평으로 눈감는 길이라면, 나의 혼은 무엇으로 다시 환생하리까. 


 애태우는 노년에1, 2, 3도 잊어먹고 허둥대고 발버둥친다. 나이는 기억력을 감퇴시킨 대신 통찰력을 겸비해준다는데 “여보 1, 2, 3 다 챙기셨지요?” 아직도 곱기만한 아내의 목소리가 나의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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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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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나의 잇몸 치료 경험

 

 

 그게 사실일까? 고개를 저으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시작했다. 소주가 바로 곁에 있음을 확인하면서, 유튜브에 떠도는 잇몸 치료의 효능이란 뉴스를 보고서다. 인터넷 정보를 다 믿을 순 없지만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 


알콜 농도가 짙은 소주를 반모금 정도 입에 물고 오물오물 2-3분 정도 하다가 뱉어내는 걸 아침저녁으로 하란다. 매일 반복해 3-4일간 정도면 치료가 된다는데 믿어 봐야지.


"이의 염증이 반복되는데 어찌해야지요?” 몇달 전 치과의사와의 대화였다. “어디 한번 봅시다.” 눈여겨 살펴본 치과의사는 “신경치료와 더불어 몇 번 오셔야 하겠네요.”라고 했다. 


낭패다. 돈도 돈이지만 몇 번씩이나. 정말 싫은 이빨 가는 소리 때문이다. 칫솔 역시 소금물에 담가두며 언제나 잇몸 마사지 등 위생관리에 최선을 다하는데도 어찌하여 입 속은 이리도 자주 탈이 생길까.


 사실 얼마나 혹사시키며 부려먹는 입인가? 웃고, 칭찬하고, 위로하고, 힘든 이웃에 함께 소리 내어 울어주며, 사랑해요, 미안해요, 용서해요, 입이 없다면 뭐로 표현할까. 위험할 때 소리 질러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야 입으로 표현하는 최대의 효과라지만, 짜증 부려 악을 쓰고, 억울하다 소리치며, 미워해서 험담 등 한둘인가.


한 4-5일 했나? 알콜 기운으로 혼을 흔들어댈 줄만 생각했던 소주의 효력은 성가시게 굴던 잇몸의 치료를 깔끔하게 마무리 해줬다. 신기하리만치 대단한 효과다. 벌써 일년이 다 된다. 염증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멀쩡하다.


 소주의 효과가 인종이나 남녀 차별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들 치은염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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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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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4
북녁땅에도 변신의 봄빛이?

 

 완연한 봄빛에 머리 들고 하늘을 향해 미소짓던 싺들이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온누리가 푸르름으로 이 땅을 화려하게 장식해주고있다. 해마다 보았는데도 다시 새로움에 신비스럽고 황홀한 대자연의 멜로디에 감탄과 경이로움에 머리 숙여 감사할 뿐이다. 


 죽은 듯하던 나뭇가지에 꽃이 피고, 얼어 붙었던 땅에 떨어진 꽃씨며 움추린 뿌리들이 하늘을 향해 미소 짓는다. 온갖 새들의 지저귐 역시 지난 겨울의 우울하고 답답했던 움추림을 탈피했다는양 환호성친다. 


 봄이란 계절은 아예 숨겨버릴 것처럼 암담하고 드세었던 겨울도 물러갔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듯 따스한 봄바람에 맥을 놓아 버렸다. 사계절의 순환법칙 속에 온세상을 푸르름으로 채색하고 있다. 닫혔던 북녁땅에도 변신이 봄빛과 함께 꿈틀댄다. 


 삼대를 이어온 독재의 유훈을 받들어 세상을 변화시킬 줄 오판했다고 자백한 듯 다 내려놓겠다는 선언이 며칠이나 지났나. 굶주림에 허덕이는 인민에게 쌀밥 고깃국에 전념하련다는 고백이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속고 또속았던 정치판은 사계절의 변화처럼 북한의 변신이 또 언제 도질까, 두렵고 못 미더워 대책 마련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김정은의  변신은 지난해 가을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마치 준비된 새봄을 완성하듯,  봄빛이 거두어 가버릴 풍계리 핵확산실험장 폐기도, 미국본토를 겨냥했다는 핵 장거리 미사일도 모두 다 땅속을 뚫고나온 대자연의 숨소리와 함께 평화와 번영을 일구어 내려고 폭파해 버리기로 했다.


 두번씩이나 중국 방문기를 연출했고, 폼페이오와의 미소의 의미를 함께 했던, 베일에 덮혀 있던 이북땅에 부디 사계절의 변화대로 순리를 따랐으면좋으련만. 녹음이 우거짐과 함께 그땅이 거짓과 해괴한 술수로 또다시 용트림하려는듯 낌새가 심상치 않다.


 미적분적 정치적 계산일까? 그의 말대로 순수한 경제적 변화만으로 회귀하려는 순수함일까? 잃어버린 국제적 신망을 되찾으려는 당차고 획기적인 꿈이 순수한 봄향기처럼 청순해야 할터인데, 그 땅에 언제또 폭풍우가 몰아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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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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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꿈만 같던 그 시절의 부동산시장”

 
  
 부동산 마켓이 천정부지로 뛰어 온타리오주를 요동칠 때가 있었다. 마치 최근 몇년 동안 치솟았던 온타리오 주택 마켓처럼 주체할 수 없이 펄펄 끓던 지난 몇 년 동안 겪어보았던 것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제질서가 아닐까.


 우리는 그 돌연변이처럼 요동치는 부동산 경기에 바짝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갑돌이 갑순이도 돌쇠도 무슨 돈을 짜내든 부동산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80년대 초부터 근 7-8년간 집값은 상승할대로 올랐다. 오두막이든 빌딩이든 모텔이든 호텔이든 사기만 하면 뭉칫돈이 굴러들던 호황기였다. 백만장자들 별볼일 있나! 동포사회가 너나 할 것 없이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주머니에 몇 만불 있으니, 갑돌이네가 잘나간다고 몇 백만불씩 투자한 분들도 있었다. 어쩌다 타이밍을 놓쳐 기회손실을 면치 못한 분들도 더러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파도를 잘 타고 왔던 분들, 노년을 건실하고 넉넉하게 잘 살고 있음을 우리 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로 봐선 과욕인가 싶은 투자자들, 승승장구 이리 튕기고, 저리 튕켜 부동산 투자 타이밍의 귀재들인 그들은 분명 재벌의 반열에 슬쩍 이름을 올려 두었겠다.

 


"2.5에이커 14개 가게 쇼핑 플라자
토론토에서 한시간 거리 10 % 리턴"

 


 ‘For sale’ 딱 두줄 짜리 광고가 토론토스타지에 실렸다. 물론 전화번호와 함께, 부랴부랴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부동산중개인이면서 플라자 주인이었던 사람의 광고였다.


숨가쁘게 어디에 몇 년 된 플라자며 빈 공간은 몇 가게나 되며 리스는 몇년씩이나 남았는가? 무슨 가게들이 있으며 이웃 플라자는 몇 개나 있으며, 인구 분포도는 어떤가? 투자가의 기본을 낱낱이 파헤쳐 봐야 함은 필수 상식과 기본이 아닌가.


운전하는 그에게 한시간을 함께 하며 대충 투자가치 평가를 산출해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 딱 한가지 질문을 심각하게 물었다. 어찌하여 이 플라자를 팔려느냐고?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인데 관리하는데 부담스러워서 그렇단다. 젊고 패기가 넘치는 30대 중반의 눈빛이 총명한 남자였다.


 생김새 그대로라면 유산으로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굴러들어온 자산이었는데 귀찮아서 정리한단다. 복많은 자손이란 바로 이런 삶도 있구나! 부러움에 앞서 헐값에 팽개쳐 내던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내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뭐가 그리도 속을 썩혀 관리하기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부동산 에이전트로 폭주하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짜증스러움이 엿보였다. 출렁이는 마켓이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실상은 또 누가 알까? 더 좋은 곳에 재테크하려는 것일지도? 금덩이도 싫으면 던져버릴 수도 있겠지! 아니 금덩이 팔아 다이아몬드를 살려고 그럴 수도.


 플라자 주위를 둘러보며 평방피트당 얼마나 여유로운 임대가 책정되었나? 몇 년씩이나 리스가 남아 있는가? 투자목적에 부합되는 실체를 섬세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영업이 위축되어 곧 문 닫을 가게는 없는가? 3-4년이면 2/3의 소매상들이 종료되는 리스들이었다. 5분 거리의 길가에 여러 가게의 렌트가 평방피트당 8, 9 불인걸 보면 충분히 승산이 넉넉히 있었다. 평방피트당 5, 6불에 3, 4년씩 남은 리스였다.


절충안을 적정선에 맞추어 오퍼를 띄웠다. 요구가격보다 10% 다운시켜 변호사의 최종검토가 끝나는 2주 후에 최종 옵션을 끼웠다. 부동산 관리에 염증을 겪은 터라, 일사천리 부담없는 딜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두 달 후 클로징이라 서둘러야 할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 번째 해야 될 기존 임차인들의 문제였다. 그들이 새로운 오너와의 관계 정립에 무슨 이의가 있는가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임차인이라면 무조건 렌트가 유효적절해야 함은 당연하기에 우선 가게 주인들의 의향을 탐문했다. 두 가게는 눈을 치켜 뜨며 요즘 유행어로 갑질 버금가는 상투적 투박스러움에 매우 거슬렸다. 그들 역시 결국 새 리스를 울며 겨자먹기로 하면서도… 하지만 두 임차인은 적절한 리스를 다시 받고 싶어했다. 50%만 임대를 유지한다는 최하의 귀착점 만으로도 투자의 원칙엔 아무 하자가 없다는 기본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14 임차인들 리스에 2년마다 5%의 상승폭을 제외시켜 5년 텀으로 새로운 리스를 만들어 근접한 20% 리턴 재무구조를 역발상시켰다. 6개월이 소요되었다. 3~4년 남은 리스를 10년 리스로 확장해준 대신에 적정선으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1년 후 투자금의 180 %를 환원할 수 있었던 호황기를 실감했던 시절이었다.


 단 두 줄 눈에 띈 광고로 쏟아지는 카지노의 #777 같은 대박을 엮어낸 것이다. 단 일년도 안되던 짧은 기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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