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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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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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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인간 로드킬

 

 

▲자전거를 타고 가다 트럭에 치여 사망한 토론토의 사고 현장

 

 

 

지난 금요일 저녁 색다른 추모 의식이 벌어졌다. 자전거 150여 대가 떼를 지어 토론토 거리를 질주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죽은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행렬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추모 의식은 흔히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의 경우다. 기억에도 생생한 건 지난 4월 토론토 영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밴의 돌진 사건이다. 정신 나간 자가 인도로 밴을 돌진시키는 바람에 20여 명 이상의 행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조객들은 그 사고 지점에 산더미 분량의 꽃들을 바쳤다.


자전거의 경우 추모 의식이 다르다는 것을 전엔 알지 못했다. 미첼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차에 치인 것은 지난 5월 15일. 36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6월 7일 사망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150여 명의 조객들이 모였다. 모두 자전거를 타고 였다. 다운타운인 스파다이나 거리와 블루어 거리 교차지점에 모인 그들은 사고가 났던 지점인 하이파크 근처의 거리까지 행렬을 지어 달렸다. 어쩌면 10 Km 정도 되는 거리일 게다.


사고 지점에 도착하자 그들은 꽃을 바치는 대신 자전거를 바쳤다. 망자의 이름을 적은 하얀 색깔의 자전거다. 행인들은 주인 없는 자전거가 왜 거기 서 있나 잠시 서서 바라볼 것이다. 이 자전거를 혼령 자전거(Ghost Bicycle)라고 부르는 건 주인은 보이지 않지만 망자의 혼령이 대신 타고 있기를 바라여서인지 모른다.


자전거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추모도 추모지만 이 도시의 거리가 더 이상 안전치 않다는 것을 시위하기 위해서일 게다. 이들은 같은 행사를 이번 달만 네 번을 더 해야 할 처지다. 지난 월요일 3시경 한 여인을 치어 죽인 자동차 운전자는 뺑소니를 쳤다.


다음날 또 다른 여인이 트럭에 치어 숨졌다. 이처럼 추모 자전거 행진이 거듭되다 보면 당사자들만이 아니고 지역사회의 이슈로 부각되는 날이 멀지 않을 게다.


요즘은 러시아워가 따로 없는 게 토론토의 교통 사정이다. 집에서 다운타운의 병원까지 이전엔 반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두 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유 중의 하나는 자전거들과 거리를 나눠 써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체크하기도 바쁜데 자전거까지 감시를 하면서 운전을 하자니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특히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차를 꺾는 순간 난데없이 자전거가 지나가는 바람에 놀란 적이 여러 번이다. 다운 타운에 차를 가지고 가는 게 갈수록 겁나는 이유는 그래서다.
너구리나 다람쥐가 차에 치여 죽는 동물 로드킬(Roadkill)은 다반사가 된지 오래다. 근래 사람들이 차에 치여 죽는 인간 로드킬이 점차 그 수준에 미치고 있다.


지난 2년간 토론토의 경우 93명의 행인들과 자전거 운전자들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건 캐나다 전체 총기사고로 죽은 숫자나 엇비슷하다. 로드킬을 막기 위해 고속도로의 경우는 도로 밑으로 터널을 파 야생동물의 안전이동을 도와준다.


인간 로드킬을 막으려면 그에 못지 않게 더 다각적인 대책이 요청된다. 자동차의 운행속도를 더 줄이던가 아니면 자전거와 자동차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도로 디자인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론토 거리들이 킬링 필드가 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게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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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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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산책의 힘

 

 

 

▲트럼프와 김정은이 점심 후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산책하고 있다. 

 

 

 

산책은 생산성이 높은 운동이다. 칸트처럼 혼자 하는 산책은 ‘인간은 이성의 존재’라는 철학적 명제를 발견하게 한다. 누구든 두 사람이 하는 경우 ‘인간은 우정의 존재’라는 보편적 사실을 발견하게 한다.


맛을 들이긴 정치가들도 마찬가지다. 근래 국가 원수들이 정상회담을 할 경우 두 사람만의 산책이 특별 메뉴로 자리잡았다. 당연히 배석자나 통역은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북한의 김정은이 남한의 문재인과 만났을 때나 트럼프를 만났을 때 그랬다. 하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지난 달 초 다롄의 해변에서 산책을 할 때는 통역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아무리 짧아도 산책은 두 사람을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준다. 공식 석상에선 배석자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카메라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악수나 미소가 물리적 결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이 김정은을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말한 것은 두 사람만이 따로 도보다리에서 대화를 나눈 뒤부터였다. 그로부터 한달 후 두 사람은 북측의 통일각에서 다시 만났는데 김정은은 문재인을 밀착 포옹했다. 도보다리에서 화학적 교감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게 가능한 장면이겠는가.


산책은 공식석상에선 할 수 없는 거래를 가능하게도 한다. 이를테면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동지, 노쇠한 참매1호기를 타고 싱가포르까지 간다는 건 무리일 수 있어요. 우리나라 총리가 타는 보잉 747 여객기를 보낼 테니 아무 말 말고 내 호의를 받아줘요.”라고 했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자존심의 벽을 그렇게 무너뜨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점심을 먹은 후 트럼프와 김정은은 호텔 정원을 10분 간 함께 산책했다. 통역이 동행하지 않았으니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TV 인터뷰에서 단서는 곧 떠올랐다.


“앞으로 전쟁 연습을 중단할 생각이지요. 괌에서 한반도까지 전폭기를 띄우자면 막대한 경비가 나고 또한 북한을 자극하기도 하니까요.” 천만 뜻밖에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가면서까지 트럼프가 측은지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전에 미국과 합의를 해 놓고도 깨지 않았는가. 그런데 김정은을 어떻게 믿겠다는 건가요?” 기자의 질문이다.


“거기에 대해 그도 말했지요. 그렇게 합의를 해 놓고 미국이 지키지 않은 면도 있었다는 거지요. 그건 적절한 지적이라고 봐요.” 이것 역시 역지사지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기자의 질문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잔인한 독재자로 국민을 굶기고 강제노동수용소에 가두는가 하면 자기 가족도 살해한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주어진 여건을 피하지 않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보지요. 나는 일생 동안 많은 딜을 해본 사람이요. 믿음이 갔었는데 신용을 지키지 않을 사람이 있었고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지요. 나는 그를 믿어요. 그 역시 나를 믿는다고 했고요.” 


만나자마자 일분 안에 상대방을 파악한다는 트럼프. 선수끼린 서로 믿을 수 있다는 거다. 어쨌든 마지막 발언은 앞으로의 북미관계를 안심케 하는 대목이다. 두 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이 서로 신뢰를 운운한다는 것만도 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그 신뢰는 두 사람이 산책했을 때 시작된 화학적 반응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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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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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5
2018-06-11
거머리 변호사

 

 

▲온타리오 보수당 당수 덕 포드

 

 

 

선거판에서는 유력후보일수록 집중포화를 받는다. 맷집이 좋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는 얘기다. 이번 온타리오 주의원 선거는 보수당의 세몰이로 시작됐다. 그러자 곧 역공이 뒤따랐다. 자유당과 신민당의 흠집내기가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어느 유력언론은 신민당의 집권을 호소하며 지지의사를 드러냈다. 나아가 보수당 당수인 덕 포드의 신상털기도 부지런히 기사화한다. 


어제 저녁 머리기사는 덕 포드가 작고한 동생의 미망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러한 네거티브 공세가 언제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가족으로부터라면 그 시도는 역풍을 자초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선거를 3일 앞둔 경우라면 고소인의 인격부터 의심받게 된다. 동생 로브 포드가 토론토시장이었을 때 형 덕 포드는 시의원이었다. 동생이 마약에 연루됐다든가 불명예스러운 기사가 터질 때마다 방어에 나선 사람이 그였다. 
 2년 전 동생이 암으로 별세하자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맷집이 유난히 큰 체구인데도 속은 나약함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고소는 덕 포드와 그 동생인 랜디, 그리고 가족회사인 데코 라벨회사를 묶어서 한 것이다. 미망인인 레너터는 가족회사로부터 몇 백만 불의 수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서 1,650만 불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그녀의 변호사는 돈을 내놓던가 아니면 세상에 알리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선거를 3일 앞두고 그 말대로 한 것이지요.” 덕 포드의 대변인이 한 말이다.
레너터의 시어머니인 다이앤 포드는 이렇게 말한다. “선거운동기간 중 레너터가 이처럼 근거없는 허위의 무고를 우리 가족에게 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로브의 자녀들을 돌보고 장차 재정적으로 안전케 하는 것은 한 가족으로서 우리의 목표다. 그녀 자신과 자식들을 위해 레너터가 마약중독에서 헤어나는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게 우리의 소망이다.”


미국의 범죄 드라마에서 악당들이 가장 많이 하는 대사가 “변호사하고만 이야기할 거에요.”다. 이 말은 경우에 따라 변호사를 공범자로 만들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범죄의 질이 아예 법망을 피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수임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가 취할 태도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꼬투리가 미미한데도 놓치지 않는 게 변호사들의 비즈니스 마인드다.


이런 경우도 있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는데 파손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운전자는 변호사를 통해 배상을 청구했다. 1차 청구는 보험회사에서 잘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2년쯤 됐을 때 다른 변호사를 통해 또 법원에 고소를 하는 것 아닌가. 1차 청구시 일단락됐다는 건 합의로 끝났기 때문인데 이 무슨 어거지인가.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 남의 피를 뽑겠다는 것은 변호사의 돈벌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 변호사들을 여기서는 ‘거머리’라고 부른다. 덕 포드를 고소한 변호사도 같은 종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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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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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2
미완의 추적

 

▲제약회사 재벌 고 배리 셔먼과 부인 허니

 

 

 

‘추적 60분’은 KBS 2TV에 나온다. 매주 수요일 밤 11시 10분에 방영되는 탐사보도다. 때로는 민망할 정도로 사실을 까발리기도 한다. 근래 조양호 대한항공 사주 가족의 갑질 행태를 심층 보도한 것은 5월 9일이다. 


5월 16일에는 귀신 쫓는 피복음교회의 진실을 파헤치기도 했다. 5월30일에는 북미 정상회담 첩보작전의 비밀을 밝힐 모양이다. 60분 만에 속 시원한 결론을 내놓으려면 제작에 피 말리는 고충이 따를 게 분명하다.


토론토에는 5개월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살인사건이 있다. 살인이라고 결론이 났는데도 범인에 대한 어떤 단서도 수면 아래 잠수 중이다. 거대 제약회사 사주인 배리 셔먼과 그의 부인 허니가 시체로 발견된 건 지난 해 12월 15일 아침 11시경. 부부는 401 HW 남쪽과 베이뷰 근처에 있는 집을 매물로 내놓고 있었다. 리스팅 프라이스는 6백9십만 불.


그날 아침 부동산 중개인이 고객을 데리고 그 집을 구경시키던 중 수영장에서 부부가 한데 묶인 채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목에는 가죽 허리띠가 둘러져 있었다. 하나는 남편인 셔먼의 것이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누구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지문채취가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6백 9십만 불짜리 집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재산은 수십 억대다.


그런데도 재산을 노리는 자가 누구인지 그 혐의에 대한 조사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5개월이 지나 이 기사가 다시 토론토스타지에 등장하자 더 이상 추적을 거부할 수 없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현직 검시관에게 부검을 의뢰했고 그는 타살의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처음엔 남편이 아내의 목을 조른 후 자살했다는 가정도 배제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별도의 대책을 세웠다. 범죄사건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했고 최고의 검시의와 최고의 형사들을 고용했다. 검시의는 두 사람의 손목이 줄로 묶여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그들의 목을 조른 것은 가죽 허리띠가 아니라 줄인 것도 발견했다. 


경찰은 금년 2월 15일에야 두 사람이 피살됐다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일 거 같다는 경찰의 혐의는 기사에 보이지 않는다. 피살된 재벌 부부에 대한 원한 관계나 아니면 재산을 노린 주변 가족들에 대한 수사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언제 경찰이 목을 조른 줄과 목에 두른 가죽허리띠의 출처를 밝혀낼지 알 수 없다. 가족들이 고용한 사설탐정들이 먼저 범인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KBS 2TV의 ‘추적 60분’이 사건의 전모를 60분 안에 밝히는 데 비해 토론토 스타는 앞으로 60일은커녕 6개월 안에라도 추적의 성과를 보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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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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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모방범죄

 
 
   
 

 

 

테러리스트들을 미국은 그냥 두지 않는다. 끝까지 쫓아가 요절을낸다. 헬리콥터 3대에 해군 참수부대를 실어보내 빈 라덴을 사살할 정도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폭파시킨 9.11 사건의 배후라는 이유였다. 그보다 10년 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숨어있던 빈 라덴을 인도하라고 요구했으나 당시 탈레반 정권이 거부하자 아예 아프가니스탄으로 쳐들어갔다.


이처럼 외국인 테러리스트에 대해서는 남의 나라까지 침공하는 미국이 정작 안방에서 벌이는 자국민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는 왜 손을 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기 보다는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는 헌법 제2조 앞에 왜 몸을 사리는지 모르겠다.


지난 18일 미국 텍사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또 발생했다. 10명이 죽고 그 이상이 다쳤다. 이 테러리스트는 17세의 평범한 학생인 파구르치스(Pagourtzis)라고 한다. 아버지의 엽총과 권총을 훔쳐다가 동료학생들을 사살한 그는 총기나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평소 조용하고 겸손한 학생이라고 알려졌다. 조용하고 겸손한 그의 가슴 속에 어떤 용암이 들어 있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도사리고 있는 자폐증이 하루 아침 어떻게 터질지 어떻게 알겠는가. 


토론토 영스트리트에 날벼락이 떨어진 건 지난 4월 23일. 난데없이 인도로 올라선 밴이 돌진하면서 20여명의 이상의 행인들을 들이받았다. 10명의 사망자 가운데 2명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한인사회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이 범인 역시 청소년기에 친구가 많지 않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자폐증을 의심받고 있다.
하지만 텍사스의 학생 파구르치스나 토론토의 밴 운전자 25세의 청년 미나시안(Minassian)의 성격이나 범행동기에 대해서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 이 글의 목적 역시 그 어떤 속단도 배제한다.


플로리다에 판박이 총기사건이 발생한 건 2월 14일 오후. 마이애미서 멀지 않은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이 학교 출신인 19세의 크루스는 반자동소총을 난사해 17명의 학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떼죽음을 당했다. 크루스의 경우는 자폐증과는 상관 없고 교칙 위반으로 퇴학을 당한 분풀이였을지도 모른다.


작년 8월 중순 미국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 폭동이 일어나 주지사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폭동이 일어난 건 샬러츠빌의 한 공원에 남군총사령관이었던 리장군의 기마동상이 서있는데 시의회가 제거할 것을 결의하자 시위대들이 몰려든 것이다. 주로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이었다. 극렬한 백인 우월주의자인 20세의 필즈는 맞불집회를 하는 쪽을 향해 차를 몰아 돌진했다. 한 명이 죽고 19명이 다치는 날벼락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필즈가 차를 몰아 반대파 시위군중들 속으로 차를 몬 것과 토론토의 미나시안이 밴을 몰아 영스트리트 인도를 돌진한 사건을 연관시키는 것과 텍사스의 총기사건과 플로리다의 총기사건을 연관시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멀티 미디어 세상이고 보니 뒤에 일어난 사건들의 범인들이 이전 사건들을 눈여겨 보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밥 먹듯 일어나는 폭력에 현혹될 수 있는 모방범죄의 유혹이 그래서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 TV의 프로그램, 언론의 사실적인 범죄보도, 인터넷 게임 등은 모방범죄의 온상이다. 범죄수법을 자세히 묘사한 경우이거나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사건 일수록 범행을 더 충동질 할 수 있다. 하루가 멀게 끔찍한 사건들이 터지는 게 마치 모방범죄의 연쇄반응인 거 같아 미국이나 캐나다나 편안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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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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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9
튤립과 수선화

 

 

 

공원에도 그렇지만 집 앞뜰에도 튤립과 수선화가 함께 핀다. 마치 셀카를 내밀고 자매가 사진을 같이 찍는 모습이다. 함께 사진을 찍는 건 뭔가 통할 때의 경우다. 
어쩌면 두 꽃들이 어깨를 맞대는 건 자존심의 수준이 비슷해서일 게다. 전설에 의하면 둘 다 자존심의 덩어리들이다. 죽음을 택할지언정 자신을 함부로 내주지 않는다. 아마 그런 결기 때문에 6개월이나 되는 토론토의 겨울을 견뎌내는지도 모른다.


자존심의 강도로 치면 튤립은 수선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비가 오면 튤립은 고개를 숙이고 얼른 꽃잎들을 오므리지만 수선화는 꼿꼿이 피하지 않는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수선화의 자존심을 일컫는데 이건 자기애(self-love)나 자아도취를 뜻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르키소스가 나온다. 나르시시즘은 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나르키소스를 나은 어미요정은 예언자를 찾아간다.


“이 아이가 자신을 알아보는 날 죽게 될 것이요.”가 예언이었다.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그 누구의 구애도 거부한다.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간 그는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만다.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빠져 죽었다고 한다. 자신을 알아본 결과다. 자기애가 지나치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함의다.


튤립의 전설 역시 자존심이 키워드다. 아름다운 소녀는 세 종류의 프러포즈를 받는다. 한 사람은 왕관을 쓴 왕자였고 한 사람은 칼을 찬 기사였으며 다른 또 한 사람은 황금을 보유한 청년이었다.


프러포즈에 실패한 청년들이 떠난 다음 소녀는 죽어서 튤립 꽃이 됐다. 꽃은 왕관 모양이 됐고 잎은 칼처럼 생겼고 알뿌리는 황금알 모양이 됐다. 하지만 왕관 모양은 아니고 손에 들고 흔드는 종(鐘) 모양이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튤립이 피는 건 긴 겨울이 마침내 끝났다는 해방의 종소리가 아닌가.


튤립은 해가 나면 꽃잎을 열고 해가 지면 닫는다. 게다가 비가 오면 꽃잎을 오므리는 비밀은 알 수가 없다. 미모에 그치는 게 아니라 무뇌아가 아니라는 몸짓이 아닌가. 어쩌면 알뿌리에 정교한 프로그램이 저장돼 있는지도 모른다.


이 집에서 튤립과 40여 년 동거를 하는 동안 또 하나의 불가사의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 튤립이 새로 피어난다는 사실이다. 알뿌리가 땅굴을 파고 이동할 수야 없는 일이 아닌가.


굳이 캐내고 싶지 않다가 이제야 사실을 발굴해야 했고 그건 씨앗이 날아가서 파종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집 종자의 튤립이 옆집 화단에까지 날아가 우아하게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그 행로가 오묘하기 그지없다.


꽃이 지고 잎이 마른 후에 구근을 파내면 작은 구근들이 몇 개 생긴다고 한다. 그걸 분리해서 말려서 저장한 다음 가을에 심으면 튤립의 인구를 늘릴 수 있다고 한다. 화원에서 사온 알뿌리를 심는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40년은 좀 긴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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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2
인생의 뿌리

 


 
 

▲동네 어느 집에 쓰러진 나무가 차 트렁크를 덮쳤다.

 

 

다행히 전화는 연결됐다. 하지만 엉뚱한 대답이 흘러 나왔다. “바빠. 바빠. 주소. 텍스트로 보내” 루핑(Roofing)회사 사장의 토막영어였다. 8년 전 우리 집 지붕을 새로 했던 중국계 사장은 자초지종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폭풍에 지붕널(Shingles)이 날아간 집들이 한 둘이 아닌 모양이다. 
전화를 급히 하게 된 건 산책을 하고 돌아온 후다. 창 밖을 내다보니 수선화 꽃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다 못해 땅에 머리들을 부딪는다. 하지만 산책의 일과를 감행하기로 했다. 아직 앙상한 가지들의 낙엽수는 온 몸을 떨고 있고 높은 키의 침엽수들도 미친 듯 춤동작을 멈추지 않는다.


서북풍은 저공 비행하는 폭격기 소리를 멈추지 않고 하늘의 구름들은 과속으로 도주하고 있다. 어렵사리 공원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보행속도는 달팽이 수준. 가까스로 집에 돌아오는데 지붕이 시선을 포박한다. 일부 지붕널 들이 벗겨져 날아가고 일부는 아직 찢기지 않은 채 펄럭이고 있지 않은가.


40여 년 이 집에서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비가 자주 오는 요즘 천장으로 물이 새들어 오기라도 한다면 이 무슨 재앙인가. 이건 911을 호출하는 거나 마찬가지 비상사태다. 급히 전화를 했더니 루핑회사 젊은 사장은 바쁘니까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지난 금요일 오후에 분 바람은 시속 110Km. 초속으로 환산하면 약 30m. 초속 25m면 지붕이나 기왓장이 날아가고 30m면 허술한 집은 붕괴하기도 한단다. 금요일의 강풍은 다섯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밀턴에서는 전깃줄에 걸린 나무를 치우다가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해밀턴에서 한 남자는 거리에 떨어진 전선줄을 치우다가 변을 당했다. 어떤 자원소방관은 신호등이 꺼진 거리를 건너다 차에 치여 사망했다. 우리 집도 오후 4시경 전기가 나가 12시간 정전이 되는 바람에 찬밥으로 저녁을 때워야 했다.


재앙의 흔적은 우리 집 지붕만이 아니었다. 동네 어느 집은 약 10m의 전나무가 쓰러져 드라이브 웨이에 있는 차 트렁크를 덮쳤다. 쓰러진 전나무를 보니까 뿌리가 문제다.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 게 아니라 사방으로 잔뿌리들만 무성하다. 온타리오 주는 비교적 지표면에 수분이 많다 보니 뿌리를 깊이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생도 뿌리가 문제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나 같은 이민자가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지금까지 견딘 것은 보이지 않은 은총이 강풍으로부터 보호해 줬기 때문일 게다. 


공포의 바람이 지나간 다음 날 잔잔한 햇볕 속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연약하기 짝이 없는 수선화들이 고개를 곧추 세운다. 긴 겨울 땅속에서 얼지 않고 매년 착실하게 비축한 양분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구근(球根)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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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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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잃어버린 11년

  

 

▲판문점선언 후의 남북 두 정상

 

 

 

”잃어버린 11년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시로 만나서 걸린 문제를 풀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두 발언이다. 지난 4월 27일 오전 평화의 집 회담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처음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한 말이다.


“역사적인 이 자리까지 11년이 걸렸는데 오늘 걸어오면서 보니까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렸나, 왜 오기 이렇게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전제도 있었다.


11년이라는 시간은 제2차남북정상회담 이후부터를 말한다.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은 후 평양에 가 김정일위원장과 정상회담을가졌다.


그때도 종전선언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하일라잇은 ‘서해평화지대 설치’였다. NLL(Northern Limit Line 북방한계선)을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 위에 ‘서해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무현(존칭 생략)의 제안이었다. 


NLL은 1953년 한국해군이 그 이상은 근접하지 못하도록 클라크 UN군 총사령관이 그어놓은 것이다. 연안수역 3해리를 주장한 UN과 12해리를 주장한 북한과 합의가 이뤄지자 않자 클라크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노무현은 NLL을 건드렸다가는 벌떼같은 반발이 일어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 굳어진 만큼 그건 그대로 두고 대신 그 위로 ‘서해평화지대’의 청사진을 내보인 것이다. 해주를 개방해서 경제구역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에 대해 김정일(존칭생략)은 난색을 표했다.


“해주는 군사력이 개미 한 마리 들어가 배길 수 없는 곳”이라고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오전회담이 끝나고 군부와 협의를 한 김은 오후 회담에선 해주를 내주겠다고 했다. 개성공단과 연계되는 해주공단의 건설을 허용하겠다는 거였다. 개성이나 해주나 공단이 들어가면 군사대결은 그만큼 뒤로 물러서고 평화의 완충지대가 늘어나는 보너스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연평도와 백령도 어민들이 이번 제3차 정상회담에서 바라는 것도 NLL을 넘나드는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고기떼들이 몰리는 구역으로 안심하고 출어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평화지대로 확정되면 남북의 해군들이 포격전을 벌일 일도 없게 되지 않는가.


합의를 해 놓고도 정작 걱정을 떨치지 못한 것은 김정일이었다. 남한의 야당과 언론 그리고 국민여론 특히 보수층이 받아들이겠느냐는 거였다. 후속 조치가 이어졌다. 총리회담도 열렸고 국방장관회담도 열렸다. 그 해 11월 14일 남북은 총리회담을 열어 ’10.4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 속엔 해주경제특구 건설의 청사진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 한달 후쯤 대선이 있었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 ’10.4 공동선언’은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경제대통령이라고 호언한 사람이 경제성 타당 조사는커녕 무조건 전임 대통령들의 흔적 지우기에 눈이 어두웠던 것이다.


그 이명박은 지금 구속이 돼 있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을 환희했던 국민들은 그가 검찰청에 불려 갈 때 어느 누구도 나와서 역성을 들지 않았다. 보수층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정죄했다. 햇볕정책을 한답시고 퍼주기를 해서 북한이 원자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퍼주기를 중단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 기간은 어떠했나. 북한은 미사일 사거리를 한반도 일대를 벗어나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으로 늘렸고 원자탄을 수소탄으로 만들었다. 김정은이 말하는 ‘잃어버린 11년’의 성적표인 것이다.


회담에서 “어떤 합의와 글이 나와도 지난 시기처럼 이행되거나 발전되지 못하면 낙심될 수밖에 없다.”고 그가 강조한 것은 바로 ‘잃어버린 11년’이 왜 일어났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우려와 경고가 아닐 수 없다. 반복될 경우 그 후과가 얼마나 엄중하다는 것을 이번엔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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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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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7
평화의 집

 
 
분계선 북쪽에서

 

 

남쪽에 살 때 구경을 왔던 곳
30여 년 후
분계선 북쪽에 서 있는 나를
열심히 구경하는 사람들 있네
남쪽 병사들이 저 쌍안경으로
비디오를 찍고 있다고 하네

 

저기 ‘평화의 집’ 너머
산들이 이어지고 그 너머엔 서울
손자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는 형은
내가 여기 왜 서있는 지를 알지 못할 거네

 

“통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확성기는 힘주어 소리치고 있지만
광복 50년, 여전히 금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검은 쌍안경 속 저 눈초리들.

 

- 1995년 8월


 
 

 

 

 

 

남북정상회담이 며칠 남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도착하는 북측 구역 ‘판문각’까지 남한 생중계팀의 진입이 허용됐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판문각’에서 회담장소인 남한의 ‘평화의 집’으로 그는 걸어서 이동할 거란다.


내겐 ‘판문각’이나 ‘평화의 집’이 낯설지 않다. 23년 전이지만 추억은 풍화를 거부한다. ‘판문각’에서 열린 통일 심포지움에도 방청객으로 참석했고, 군사분계선 북쪽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평화의 집’을 응시하기도 했다.


그때 느낀 감회를 적은 게 인용된 시다. 시에서도 말했지만 아무나 분계선을 넘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작년 11월 북한병사가 분계선을 넘다가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분계선 북쪽에서 경축행사가 열렸는데 전면에 건장한 청년들이 열 지어 서있는 것은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남쪽으로의 이탈을 예방하기 위한 거였다. 분계선 남쪽 병사들 역시 이쪽의 동향을 주시하고 또 어떤 인물들이 나타났는지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은 광복 50주년이어서 남한이나 북한이나 경축행사를 크게 벌였다. 분단의 실체 파악은 다수 민족 구성원의 화두가 아닌가. 글을 조금 쓰는 사람으로서 그 책무는 북한 방문을 주저치 않게 했다. 비교적 편향이 심하지 않은 통일운동 단체의 일원으로 방북을 하게 된 것은 민족의 고민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핑계가 될 수도 있겠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어쩐지 피날레가 괜찮을 거 같다. 배우들의 캐릭터들이 상식파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문대통령은 굴신(屈身)이 자유로운 성격이다. 장애인 올림픽에서는 장애인 선수를 격려하기 위해 얼음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람이다. 독재자로 알려진 김위원장 역시 정의용 특사가 대통령 친서를 건네려 하자 마주 걸어나와 접수를 했다. 역시 굴신(屈身)의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두 정상 간에 코드가 잘 맞아 남북이 같이 살 길을 찾았으면 한다. 


가장 큰 고비는 북미정상회담이다. 트럼프의 한 마디가 역사를 뒤바꾼다. 그는 뻥을 쏟아내는 캐릭터다. 북핵문제 해법을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한다. 상대방에게 충격적인 공갈을 한 방 먹인 다음 협상의 고지를 차지하는 식이다. 대북제재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건 그래서다. 그게 먹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협상의 결과물에 연연할 수밖에 없을 게다.


이번에 북미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요동칠 것이다. 남한의 경제도 활로를 찾을 뿐 아니라 북한의 경제도 기사회생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팽창을 두려워하는 시점에 와 있다. 앞으로 점점 견제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더 이상 매달릴 여유가 없는 장애물일 수도 있지 않은가. 평화협정을 맺고 상호 경제교류가 이뤄진다면 북한이 베트남처럼 자유시장경제로 바뀌지 않겠는가. 미국과 전쟁을 벌인 베트남은 현재 중국에 등을 돌리고 미국을 수용하는 자세다. 


북한 역시 개방이 되면 장차 어떤 관계로 돌아설지 어떻게 알겠는가. 미국이 속으로 노리는 것은 그것일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이 장차 어떻게 갈등할지 다만 우리는 남북이 서로 평화스럽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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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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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5
4월의 눈

         

눈에 덮인 앞뜰(2018년 4월 15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토론토 사람들이 가장 애송(愛誦)하는 ‘애송시(愛誦詩)’의 한 구절이다.
큰 소리로 낭송하는 사람도 있고 속을 삭이며 암송하는 사람도 많을 게다. 특히 4월에는 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이다. 약 2천년 전 전한(前漢)의 왕은 북방 흉노족의 왕에게 왕소군이라는 궁녀를 바친다. 침략을 하지 말아달라는 뇌물로서다. 그녀는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4대 미인 중의 하나다.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 삭막한 땅. 그 왕소군의 심사를 당나라의 시인 동방규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탄식했다.


 
 입원해서 5주간의 항암 치료를 받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부터 눈보라가 기습했다. 강풍에 나무들이 쓰러지고 하이웨이에선 트랙터 트레일러가 미끄러져 도랑에 처박힌다. 밖을 내다 보니 항암치료를 받아 머리털이 빠진 것처럼 그간 솟았던 튤립이며 수선화의 순들이 보이지 않는다. 눈과 얼음비에  묻혀 화단 전체가 탈모상태로 번들거리고 있다.

 노크 소리가 났다. 순간  문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마침 아내는 어디 가고  머리털이 많이 증발한 모습으로 누굴 대면하기가 쑥스럽다. 하지만 나이 탓에 이미 타인의 얼굴로 풍화된  지도 오래지 않은가. 병색의 얼굴인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문을 열었더니 옆 집 마리아다. 꽃다발과 선물을 내민다.

 “생큐 소 머치, 마리아. 하지만 면역력이 약화돼 꽃은 받을 수 없군요.”

나의 경우 균들이나 박테리아의 감염이 제일 무섭다. 그래서 집에 있는 화초들도 다 내 보내야 한다.
 감염을 무서워하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병실을 매일 같이 소독약으로 청소를 한다.
그 청소부가 변소는 물론 사람 손이 닿는 문의 손잡이며 매일 소독을 하는 것을 보고 그의 임무가 간호사 못지  않게 프로페셔널하게 인식됐다.
 고마움에 나오면서 조그만 선물을 주고 “씨 유 어게인(다시 만나요)” 인사를 했다.
헌데 마르코스(청소부)가 큰 소리로 손사래를 치는 게 아닌가.
 “미스터 리. 여긴 다시 오면 안 돼요.” 환자로 또 오지 말라는 얘기다.


 이웃 동네에 사는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내 마음을 얼마나 괴롭게 할까? 하지만 석천을 본 순간 얼마나 나는 안도의 감을 느꼈는지!”
 ‘내 마음을 얼마나 괴롭게 할까?’는 문장은 글을 만지작거리는 나도 미치지 못하는 진정성의 한 꼭지점이다.

 바깥 햇볕이 좋은 날은 매일 점심을 가져오는 아내에게 튤립과 수선화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묻곤 했다. 겨우 손가락 크기인데 4월 들어 벌써 보름이 가까운데도 밖은 한파의 연속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 연거푸 토론토는 눈보라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전기가 나가고 꼭 필요하지 않는 한 밖에 나오지 말라는 당국자의 경고도 스타지에 기사화 됐다.
 아무래도 수정해야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토론토 사람들이 가장 애송(愛誦)하는 ‘애송시(愛誦詩)’가 아니라 가장 애통(哀痛)하는 ‘애통시(哀痛詩)’가 아니겠냐고.
 빙판으로 변한 화단 위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수북하다. 마리아와 마르코스와 이웃동네의 오랜 친구, 그리고 기도를 멈추지 않겠다는 많은 지인들의 얼굴들이 빙판 위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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