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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장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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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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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노인의 허상(虛想)

 

  

인생 80부터는 세상 삶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세대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죽어도 아쉬움이나 여한이 없다는 말이다. 살 만큼 살았으니 억울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천년, 만년 살 것으로 생각하는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노인들을 만나면 왜 그리 말들이 많은지! 첫째로 자기 자랑부터 시작해서 항상 남의 이야기로 그치고 있다. 남의 이야기는 칭찬보다는 흉허물에서 시작하여 비판과 저주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고집이 매우 강하다. 인간이란 날 때부터 죄성을 갖고 태어났기에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죄인이 죄인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두 귀로 들었다고 다 말할 것이 못 되고 두 눈으로 보았다고 다 말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남의 욕설이나 비평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남의 단점을 보려고 하지도 않으며, 또한 남의 잘못을 말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아무리 조리 있게 말을 잘한다 할지라도 사람으로 갖추어야 할 예의를 갖추지 못한다면 이런 노인들은 자기의 허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노인들의 말씀이 진실하여 후손들에게 감동을 주는 말이 되어야 한다. 


반면 말 한마디로 실망을 주고 심지어는 죽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위와 같은 상황의 노인들은 아직도 기력이 있는 세상의 복을 타고난 노인들이다. 이와 반대로 자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던지, 내외 중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 외롭게 독신으로 살든지, 노화로 인한 갖은 병으로 심신이 불편한 노인들은 항상 근심과 걱정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노숙하며 구걸하는 상태에서 보내는 노인들의 경우에는 국가에서 노인요양소에 입소시켜 살게 하고는 있지만 일정한 규율 속에서 노인들의 자유는 물론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노인들은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젊은이들로부터 증오 및 기피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왜냐하면 노인이 될수록 자기 고집이 강해지며 노인이기에 젊은이들로부터 노인이라는 허상만으로 존경 받기를 바라며 젊은이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지 않고 있으면서 요사이 젊은이들은 예의가 없으며 노인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고 말 들을 하고는 한다.


이것은 노인들의 자녀가 되는 젊은이들에게 예의와 도덕 등 교육에는 관심이 없이 소홀히 하였고 오로지 존경의 대상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노인들의 잘못인 것이다. 따라서 항상 젊은이들에게 표본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인의 백발은 사회의 지혜라고 하는데 오히려 어린아이가 되어간다는 속어가 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착하고 진실한 어린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점점 고지식화 되고 세상 지혜와 지식에서 멀어져 간다는 뜻이다. 


옛날 유교사상에서 살던 시대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도덕지침이 되어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였다. (三綱;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 五倫; 君臣有義, 父子有親,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이는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 지배층의 통치이념으로 인한 문제점으로 퇴보된 사상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사상은 권력과 빈부, 노인이나 젊은이나 모두 서로 존중하며 동참하는 세대이므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로 돕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상임을 노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노인들도 늘 겸손하여 노인간 노소간에 서로 화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항상 젊은 세대를 바르게 인도하여야 하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깨달아야 한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 15:31).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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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71604
9213
2018-11-12
전도서에 대한 감회

 

세상은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사악하고 거짓과 위선으로 변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 인간들 사이의 사랑마저 메말라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따라서 혹자는 말세지 말의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따스하고 온화했던 어머니 태 속에서 차가운 공간의 세상으로 태어날 때부터 불편한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나 갖은 고통과 고난 속에 인생의 삶을 살아가게 하셨는가? 생각도 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셔서 고생을 겪게 하시고, 또 이 고난에서 구원하고자 하나님 자신마저 십자가상에서 고난을 받으셨는가? 


인간을 만드신 목적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간이 기업이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고 하셨고(엡 1:12),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로 예비한 긍휼의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시려고 하셨으며(롬 9:23),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인간을 만드셨으며(사 43:21),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다(엡 22:10)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으로부터 발생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결과를 모르시고 인간을 만드셨다는 말인가?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시는 일을 인간이 어찌 다 알 수가 있겠는가?


오늘날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통치자들은 물론 모든 인간이 위선과 거짓 없이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 갈수가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세상이다. 그래도 잠깐 왔다가는 세상 삶에서 하나님께서 통치자로서 권력자로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상 최고의 은총을 입은 솔로몬과 같은 자들도 해 아래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하였으니 타고날 때부터 가난하고 장애인인 인간들은 어찌하란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후 인간을 만드실 때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고 하셨으니, 창조주 하나님 뜻에 피조물인 인간이 이에 대해 대적할 수 있겠는가?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냐고 말을 하겠는가? 


이것에 대해 하나님은 불공평 하시다고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영원하신 분으로 언제고 공평하게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매우 공평하신 분이다. 


또한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같은 분이시기도 하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고 하시면서 또한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영광 받기로 예비하셨으며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다 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롬 9:19-23 참조).


그럼으로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같이 금이나 은 덩어리도 아닌 흔한 흙덩어리로도 하나님 손에 붙들리게 되면 흙을 불에 달구어 급기야 값나가는 청자나 백자와 같이 되듯이 인간 성군 다윗도 양치는 목동에 불과했고 나합은 이방 여인의 신분임에도 왕의 조상 할머니가 되었다. 


보잘것없는 흔한 진흙 덩어리 같은 미천한 인생도 귀하고 복된 인생으로 만드신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택한 사람을 귀한 그릇으로 만드실 때나 또한 자기 백성을 택해서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실 때에도 마찬가지로 훈련과 연단 후의 과정을 겪게 하신 후 거룩하고 청결한 것으로 만들어 쓰신다는 사실이다. 하물며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훈련과 연단의 과정이 필요한가? 추상이 된다. 


결론적으로 2018년에 전도서를 읽으면서 느낀 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인간 중 솔로몬만큼 세상 축복을 주신 적이 없음에도 솔로몬은 세상 축복 속에서도 허무함을 느끼면서 평안을 갖지 못하고 결국은 오직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며 순종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본분이라고 잠언서를 끝맺고 있다.


이는 진실한 의와 평강은 세상 속에서는 찾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만이 진정한 평강의 안식처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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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71525
9213
2018-11-04
세월에 대한 추억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가고 있다. 80년의 세월을 흘려 보내고 나니 남는 것은 아쉬움과 추억뿐이다. 내가 고국을 1993년도에 떠나 지금은 수만 리 미국 땅에 와서 살아갈 줄이야 상상도 못 하였었다. 


아브라함은 태어난 고향인 갈대아 우르 지방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민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명령에 기어코 가나안 땅으로 이민하고 말았다. 역경의 이민의 삶을 지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인간들로부터 믿음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이민은 나의 결정으로 이루어졌으나 이것 역시 하나님의 역사 하셨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나의 이민의 삶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조국을 한시라도 잊을 수가 없다. 개천에서 미생물인 연어 알이 부화되어 새끼 연어가 애초 태어난 개천을 떠나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넘어 북쪽 태평양 연안 대륙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어미 연어가 되어 뱃속의 많은 연어 알을 품고 다시 태평양을 거쳐 부화했던 개천에 다시 찾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미천한 물고기도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죽는데 하물며 인간이 죽어서 조국 땅에 묻혀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의 경우 캐나다에 이민해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좋은 곳에 우리 내외 묘지를 구입하였다. 그러나 다시 미국으로 이민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다. 또다시 이곳에 묘지를 물색하였으니 왜 가는 곳마다 묘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나? 


우리나라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충효 사상으로 인해 죽은 조상들의 영혼으로부터 세상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미신에 가까운 사상에 젖어있다. 그래서 조상의 묘지를 좋은 곳에 마련하고 명절, 또는 수시로 묘소를 찾아 절을 하며 재단에 음식까지 차려놓고 축복을 빌기도 한다. 


따라서 명당의 묘지를 찾기에 매우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이를 풍수지리라 말하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묘소는 산을 등지고 산 능선의 언덕 끝부분에서 남향으로 하여 좌측은 동쪽이 되며 우측은 서쪽이 되어 동쪽을 청룡, 서쪽을 백호라고 부른다. 이 형상의 지형을 좋은 명당자리로 조상의 영혼으로 자손이 부귀영화를 노린다는 내용이다. 


나는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는 등 가정의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을 못 하고 4년간 한서에 통달하였으며 제사 문화와 당시 시대적인 샤머니즘에 젖어 살아왔다. 


어머님께서는 그 당시 여인들의 문맹률이 95%에 이를 때에 외동딸로 태어나셔서 국문을 터득하셨으며 우리 가문의 맏며느리가 되셨기 때문에 선조들의 제사는 물론 가족 모두의 생일 절기에 따른 우상숭배로 인한 고사 등으로 어려운 시집살이를 하셨다. 그 당시에는 지식인으로 존경을 받으셨으나 전통적인 조상 숭배를 비롯한 우상숭배에 대해 항상 마음에 거부감을 느끼시고 계셨다. 


때마침 집에서 4km 거리에 조그마한 천막 교회가 설립되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혼자서 교회를 나가셨다. 대대로 유대 가문의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 하심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유다 나라의 요시야 왕 같이 전통적인 우상재단(신주단지 등)을 소탕하시고 우상숭배의 관습을 철저히 배척하셨으니 나는 어머니의 영혼이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칭찬받고 계시리라 확신한다. 이로 인해 모든 자손이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어머님을 도구로 쓰시는 믿음의 유산인 것이다.


지금은 자손들 중에서 목사, 목사 사모, 선교사, 장로 및 권사 등 주님의 직분을 받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내가 주님을 영접하기 전 유교 사상에서 살던 때와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는 세월에 대해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교 시대의 충효 사상에서 조상들의 영혼에 따라 세상에서 축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여 조상들의 묘지까지 풍수지리설에 따라 선택하고 절기마다 수시로 묘소를 찾아 절을 하고 축복을 기원하였던 추억과 주님을 영접한 후로는 묘소를 방문할 때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조상들의 육체가 이곳에 매장되어 흙만이 있는 곳이라고 인정하고 이제는 흙에 대해 절하지 않기로 하고 반면에 묵도로 조상들의 생존시의 추억에 대해 회상하곤 한다.


하지만 나이 80에 죽을 날이 가까움으로 인해 내가 죽으면 묻힐 나의 묘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캐나다에서 미국 이민 이전에 묘소를 마련하였으니 그곳을 우리 내외의 최종묘소로 결정하였다. 이것도 또한 우상숭배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주님께서 공중 재림 시 무덤이 열리며 승천하시는 것이나, 주님의 시체를 동굴에 모시고 큰 돌로 막아 놓는 것들을 성경을 통해 보면서 무덤의 묘소가 중요한 것을 느끼며 또한 우리 민족은 중국 문화의 영향하에 조상 묘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하였다.


직업상 여러 민족의 서민들의 장례문화를 듣고 보아왔다. 예로 중동국가의 경우 온 사방이 사막의 나라로 산이 없어 일정한 묘지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가까운 근처 모래 속에 시체를 묻고 모래 돌로 표시를 하였으나 강한 모래바람이 불고 나면 흔적도 발견할 수 없게 된다. 


중국도 이제는 시체를 화장하여 집 근처에 뿌리곤 한다. 또한 어떤 민족은 시체를 언덕 옆을 파고 넣어 방치 함으로 짐승과 새의 밥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서에 의하면 묘소는 100년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고 부모, 조부모, 증조부까지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현대에는 시체를 화장하여 공중에 뿌리기까지 함으로 묘소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수천 년의 모든 민족의 죽은 시체들을 믿는 자들의 무덤은 공중재림 시에, 불신자들은 백보좌 심판 때 무덤을 여시고 다시 인간으로 부르시어 심판 하신다. 


오늘날에도 모든 종족 인간들에게도 삶과 죽음의 관습의 문화도 인정하시며 지켜주시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관심에 따른 행동이나 실천은 사전사후를 막론하고 영육간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동행하기만 하면 모든 소망하는 것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내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시편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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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eungo
이승고
71348
9213
2018-10-17
요지경 속의 신앙생활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와 찬송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형식적인 예배와 찬송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믿는 자들은 알고 있는가? 나는 80세에 은퇴 장로로 이 교회에 온 지가 1년밖에 되지 않아 순수한 하나님 파로 그 동안 느낀 소감을 피력하기에 아무 장애가 없으리라 본다. 


요사이 교회 성도들이 서로 의견이 달라서인지, 양파로 갈라져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성도들을 하나로 화합하게 하여야 할 직임을 맡은 목사 그리고 장로들의 사명이다. 믿음의 젊은 후배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 부끄러운 일이다. 


목사들 중 대표 두 명의 불화로 인해 성도들마저 불안과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게 하니 하나님이 무섭지 않은가? 우선 목사라는 이름을 받고 보니 목사가 해야 할 일을 잊었는가? 목사들 개개인의 잘잘못은 목사들의 양심에 맡긴다고 하더라도 목회로 인해 교회의 성도들이 허구의 성도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교회가 주님이 주신 목회의 사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이를 떠나 이방인을 선교한다고 하며 또한 선교지를 개척한다고 하니 이것이 요지경이 아니고 무엇인가? 많은 목사가 배출되어 있는데 그 중 양심적인 훌륭한 목사님을 선택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담임목사님을 장로교회 노회에서 지정한다고 하니 노회는 각 교회에서 결정 사항을 보고받고 확인하여 인정하는 것이 사명이다. 


예로 장로교회 담임목사가 장로교회 출신인지, 그간 목회 신앙생활 사실을 조사 확인한 후 사실을 당 교회에 알리고 지도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당교회에서 이어서 이탈하여 보고되면 승인 여부를 명료하게 교회에 알려주어야 한다. 예로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올바른 투표로 할 수 있게 하고 후보자들의 설교를 전 성도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하루속히 교회가 정상궤도에 이르도록 진심으로 기도 드린다. 


때마침 본국 장로신학대학 교수이신 김운용 목사님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말씀 성회가 이루어져 현장 목회 경험이 없이 순수한 교수로서의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 앞으로 교회에서 목회자로 사명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하였다. 짧은 나의 생각이니 이해하고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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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eungo
이승고
71257
9213
2018-10-16
친구가 되신 주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세상 만물을 만드셔서 관리 주관하고 계시는데, 주님께서 일개 피조물인 인간에게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으니 상상도 못할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인간들 간에서도 세상에서 진실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큰 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하물며 영이시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께서 인간들에게 나의 친구라고 하셨으니 일방적인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인간들 간에 친구를 살펴보면 어린아이 때에는 같은 동네 아이들이 아무런 신의(信義)와 관념도 없이 만나 놀고 하는 것을 동무라고 하고, 이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우(親友)라고 부르며, 친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서로의 신의(信義)가 생기고 친구(親舊)가 되는 것이다. 


이를 한서에서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고 한다. 따라서 친구가 되어 신의 속에 서로 만나게 되면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희열을 느끼겠는가? 한서인 논어에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면 불역락호(不亦樂乎)아 라는 글이 있다. 서로 오해 없이 수시로 흉을 말해줌으로 고쳐가며 서로 배우며 좋은 친구를 유지하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또한 이러한 친구가 멀리에서 찾아와 종종 만난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친구에 대해 논할 때마다 나는 친구에 대해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다시 소개하면 부유한 가정의 외아들이 친구가 많이 있다고 아버지께 자랑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들을 보면서 늘 돈을 허비하며 방탕한 아들을 걱정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묘책을 발견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 털을 뽑고 사람의 시체처럼 흰 천으로 싸서 지게에 싫고 지게하고는 아들의 친한 친구부터 찾아가서 내가 어찌어찌 하다가 사람을 죽였으니 산에 함께 가서 파묻자고 요구하게 하였다. 과거에는 그렇게 반가워했던 친구들이 모두 다 아들을 문전박대 하였다. 


하는 수 없어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자고 하여 찾아갔는데, 아버지의 친구는 만날 때 겉으로 반가워하지도 않았으나, 아버지가 내가 여차여차 하다가 사람을 죽였으니 함께 가서 땅에 파묻자고 요청하니 잠깐 기다리게 하고는 집으로 들어가서 곡괭이를 갖고 나오자 아버지는 그때서야 아들을 교육하기 위한 나의 계책이었네 하니 친구는 그럼 그렇지 어찌 자네가 살인할 사람인가? 라는 야화다. 


여기서 과연 아버지의 친구는 진실한 친구인가? 그래도 친구를 위해 자기가 시체은닉죄 또는 은닉방조죄를 각오하고 친구를 도와주려는 우위는 인정되나 만일 진실한 친구라면 시체매장에 호응할 것이 아니라 살인사실을 고백하게 하여 그에 대한 대가를 감수하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권고 하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님과의 친구 관계는 십자가 사건처럼 독생자 예수님께서 죄인 된 인간들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리는 아가페의 사랑 안에서만 이뤄지는 관계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마리아의 몸을 빌려 율법 시대에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율법대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친구관계는 오직 인간들의 신의(信義)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예수님의 친구와는 별개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돌아가신 지 삼일 만에 부활시키시고, 40일 만에 승천하시게 하셨다. 우리 믿는 자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기만 하면 사망권세에서 벗어나 부활 승천하여 영생할 수 있다. 따라서 부활승천 하는 성도들을 예수님께서는 나의 친구라고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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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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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3
2018-10-09
오묘한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마다 만든 목적과 이유를 알고 계시지만은 인간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인 것이다. 인간들 간의 비밀도 오래 숨기는데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인간의 영생과 사망을 분별하여 창조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천사장 루시퍼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이 되어 인간을 유혹하여 인간이 죄인이 될 것을 모르실 리가 없다.


천사장 루시퍼는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은총과 영광과 지위를 누렸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고 질투하였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사 14:13-14).


천사장 루시퍼는 하나님의 최고의 은총과 영광과 지위를 누렸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고 질투하였다. 그래서 하늘에서 천사장 미카엘과 사탄이 된 루시퍼와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카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어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계 12:7-9).


사탄 루시퍼는 인간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으므로 사망의 권세를 잡은 악의 영이지마는 하나님께서는 욥기에서 보듯이 세상을 치리 하시기 위하여 사탄도 이용하고 계심을 본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 온지라” (욥 1:6). 사탄 루시퍼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기 위한 욕심과 질투로 하나님의 나라를 뒤엎기 위해 반역을 선동하니 하나님은 사탄의 무리를 하늘에서 땅으로 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땅으로 내어쫓긴 사탄은 이제 인간을 유혹하고 선동하여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 및 계명에 불순종하게 만들어 범죄케 함으로 땅에서도 하나님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을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앎으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계 12:12).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에게 자기의 사랑 어린 호소와 간청으로 오래 참으시면서 그가 하나님의 주권에 완전히 복종하든지 공공연히 반역하든지 결정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넉넉한 은혜의 시간을 주었으나 인간을 유혹하여 자기의 창조주를 대항하는 대투쟁을 계속하였으리라고 본다. 


여기서 인류가 비록 죄인 일지라도 사탄과는 다른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는 사탄에게 속임을 당했으며 사탄의 궤변에 의해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며 무한한 권능자 이시므로 사탄을 궤멸할 수 있음에도 당신의 사랑과 자비의 품성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 필요하셨고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사를 주셔서 모든 것을 자신의 의사대로 결정하고 행하게 하셨기 때문에 인간들이 만물을 통하여 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와 자유를 깨닫게 하시고 선악을 분별케 하시는데 조금도 하나님의 일반적인 속박을 하지 않으신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지상에 오셔서 계명을 지키시는 거룩한 생애를 사시고 의를 이루셨다. 따라서 주님을 믿고 그 의를 받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시고 계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를 손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죄는 용서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계명은 의로우며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하셨기에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의 비밀을 깨닫고 구원받아야 할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나니 그가 나를 단련한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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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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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성도의 화합

 
  

주님이 머리이신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서로 사랑하는 성도들이 예배와 찬송을 드려야만 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으며 하나님께 나와 예배와 찬송을 드릴 수가 있을까? 이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거짓과 위선을 제일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근래에 교회 직임을 맡은 목회자들과 장로들의 불화로 인하여 성도들의 화합은 고사하고 오히려 서로 간의 반목과 대립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으니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한다. 


목회자들이 사명을 망각함으로써 교회의 질서가 파괴되어가고 있는 경우를 본다. 목회자들의 사명은 목회의 직분이 권위와 권력이 아니라 최고의 겸손으로 낮아져서 오직 성도의 종으로 봉사하는 직분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드려야만 할 목회자들이 하나님께만 드릴 영광의 일부를 자기 영광을 위해 성도들에게 자기의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경우를 본다. 그래서 목자 간에 경쟁으로 불화합의 추태를 볼 때가 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소유주가 되신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죄인 된 인간들을 위해 종으로 봉사하고 계시는데 어이가 없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다하여 겸손하게 목회를 할 수 있는 목회자는 없는 것인가? 이것이 목회자의 사명이다. 일반인의 경우에도 양심적으로 선하게 살아가는 경우를 보면 얼굴에 겸손과 선한 양심이 보이며 친근감을 갖게 한다. 


어느 목자의 경우 목사 직이 큰 권력인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굳은 표정과 걸음걸이부터 모든 형태가 오만과 거만이 가득하여 성도들이 자기의 부하인 양 행동을 보임으로써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80대 노인들의 마음을 거슬리고 있으니 어떻게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기성세대가 끝날 경우에 교회가 생존 될지 걱정이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교회가 폐쇄되어 성도 수는 날마다 줄어드는데 오히려 목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목회생활을 못하고 있는 목사들이 생계마저 어렵다고 한다. 


기독교 국가라고 부르던 영국과 미국도 한때는 웅장한 석조 건물이 지어지며 신앙이 부흥되었지만 지금은 주일이면 젊은 층의 교인은 거의 없고 그 웅장한 석조 건물 교회에 일부 노인들만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직접 목도한 사실을 피력하고자 한다. 토론토에 Church Street가 있다. 그 거리에는 과거 웅장한 석조 건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교회는 주일에 일부 노인 성도들밖에 없어 교회 건물 운영비 즉 난방비 마저 충당이 안 되어 교회 내부의 일부분을 일반 상인들에게 임대를 주어 운영되다가 이도 불가능하여 하는 수 없이 그 웅장한 석조건물과 내부 기독교 조각 및 그림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헐어 버리고 그 대지 위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한국인의 경우는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조국이 아닌 캐나다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깊은 묵상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우리 이민교회도 젊은이들은 대부분 현지 미국 교회로 가고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이민 교회도 젊은 세대를 위주로 교회를 운영해야 하겠다. 예로 이방인의 선교도 중요하지만 젊은 세대 인재 양성도 해야 한다. 교회가 생존 해야 하므로 젊은 세대들에 대해 장학금을 주어 신학을 전공하게 하여 차세대의 인도 자들을 배출해야만 한다. 


교회 직분 자들은 늙은 세대가 가기 전에 젊은 세대를 교회로 인도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 현 상태로 간다면 한인교회 생존은 불가능하다. 기존 목사와 장로들이 자기들의 신앙생활 영역을 늘리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지 말고 온몸을 바쳐 자기 인기와 명예를 버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다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치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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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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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4
조물주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고 계시다.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만물을 창조하신 뜻과 계획을 상상해 보면 먼저 모든 피조물들을 대칭적으로 창조하셨음을 본다. 하늘을 만드시고 땅을 만드시며 밝음을 만드시고 어둠을 만드시며 생물을 만드시고 무생물을 만드시듯이 만물을 만드셨다. 대칭적인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통해 인간들에게 만물을 깨닫게 하시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이유를 알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를 깨닫게 하신다.


또한 피조물들을 관리 운영하시면서 선과 악을 구분하여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계신다. 악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어 사망으로 인도하지마는 선은 인간을 영생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인간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때도 하나님의 뜻대로 피조물마다의 뜻을 가지고 만드시고 또는 관리 운영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하시니 어찌 그 뜻을 인간들이 알 수가 있는가? 


성경을 보면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로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충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롬9: 20-23).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 사람을 그의 뜻대로 만드시고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27-28 참조).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사건 이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들의 죄성 속에서 태어난 후손들도 죄성을 갖고 태어나 세상에 번성된 것이 오늘날의 인간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에 죄를 지었더라도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지금까지 인간을 관리 운영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만드실 때도 자기 마음대로 만드시고 관리 운영할 때도 하나님의 맘대로 하고 계시다. 인간을 사랑하고 운영할 때에 예를 보면 이스라엘의 조상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인생의 나이로는 임신할 수 없는데도 쌍둥이를 임신토록 하시고 아이가 아직 탄생도 하지 아니하여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 한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고 잉태 중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고 하셨으니 이에 대해 하나님께 불의가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는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롬 9:13-18 참조).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도 바로 왕을 완악하게 하여 출애굽 사건에 방해토록 하게 하여 급기야는 애굽의 첫아이는 물론 첫 새끼의 짐승들을 죽게 함으로써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허락하게 된 것은 바로를 왕으로 세워 이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고 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롬 9:17). 따라서 믿는 그리스도인 중 일부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완악하게 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선하게 하시니 믿는 자들은 인간들이 선하고자 하여도 마음대로 못하고 악한 데서 떠나려고 해도 마음대로 못하니 누가 하나님의 뜻과 행함을 대적하느냐? 의문을 갖게 된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는냐" 라고 반문하신다. 


또한 예로 나서부터 불구자로 걷지도 못하는 거리의 거지를 보고 제자들께서 저 불구자 거지는 누구의 죄로 된 것이냐는 질문에 죄로 인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때로는 인간들이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인가? 긍휼히 없으신 사랑이 없는 매정한 분이신가? 의문을 갖게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공의로우며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경우 부자는 죽어서 불꽃 옆에서 덥고 목이 말라 고생하지만 나사로는 거지로 구걸하며 비참한 세상을 살았지만 믿음으로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어 최후 심판 후 천국에서 영생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 인간이 살아가는 기간의 세상은 잠깐의 순간이지만 하나님의 세상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모든 죽은 인간들의 영혼은 불멸함으로써 짧은 인간 세상에서 불의로 악하게 살아온 인간들의 영혼은 꺼지지 않고 불꽃 속에서 죽지 않고 영생하지만 의로운 믿음의 영혼은 영원히 모든 근심 걱정이 없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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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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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부활은 고난의 순종

 
 

고난주간을 매일 새벽 5시 30분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께 주신 고난에 대해 묵상하며 기도 하였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제일 사랑하며 매우 기뻐하고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과 질고를 왜 받게 하셨는가? 생각해 보았다. 


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어 자기에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이 되게 하시고 멜기세댁의 반차에 따라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게 하셨다(히5: 8-10 참조).


여기서 온전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자들 각자에게 분량대로 고통과 고난을 반드시 주신다. 주시는 고통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어려운 일들을 인내하고 하나님의 뜻하는 바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의로워져서 구원 받는데 아무 지장 없이 완전(perfect)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은 한 점의 죄도 없으시면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시며 죽으신 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피는 죄를 씻는 유일한 보혈의 피가 된 것이다. 죄로 인해 죄성을 가진 피로는 죄를 씻을 수가 없다. 따라서 죄성이 없는 피는 동물의 피와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 


그럼으로 구약시대에는 제사에서 동물의 피로 일시적인 구원을 받았지만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영구적인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구원을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으나 본래 아무 죄도 없으시기에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고난의 순종케 하시고 부활의 능력을 부여 하심으로써 3일만에 살아나게 하심으로 영광의 부활절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땅에서 이루고자 하신 모든 일을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인간구원 역사에 있어 큰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신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상에는 고독의 절규, 비탄의 절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일을 “다 이루었다”라는 승리의 절규인 환호성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살아도 죽어도 자신이 아닌 그의 백성을 위해 대표자로 십자가상에 달리셨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셔서 승천하신 것이다. 따라서 고난과 부활과 승천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은 처참한 고난과 질고 속에 처절하게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 듯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무덤을 깨뜨리시고 그를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소망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산 자의 소망이 되고 부활과 승천은 죽은 자의 소망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몸된 교회가 탄생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인류의 운명과 세상 역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 달라지게 되었고 또한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새 세계가 창조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행사로 이루어진 초 자연적인 구원 사건이며 종말론적 구원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게 만드셨다. 


따라서 예수님에게만 부활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로 맞이하고 영과 혼과 몸을 다 바쳐 믿음으로 부활하는 구원의 은총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님은 우리를 사나 죽으나 보장해 주시고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어진 각자의 고난 속에서 순종하는 자만이 구원의 은총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 (롬1: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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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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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교회 지도자의 사명

 
  
날이 갈수록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 기독교가 점점 쇠퇴하여가고 교회가 폐쇄되어 기독교인들이 줄고 있다고 한다. 대개 교회의 지도자로는 목사와 장로로서 무거운 사명감을 느낀다. 내가 기독교 지도자로 존경하는 목사님은 길선주 목사님(1869년 3월 25일 - 1935년 11월 26일)과 주기철 목사님(1897년 11월 25일 - 1944년 4월 22일), 그리고 오늘날 살아계신 김장환 목사님이며 외국인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있다.


길선주 목사님은 한학(漢學)교육을 받았고, 기독교에 입교하기 전 선도(仙道)에 심취되었던 때 당시 친구로부터 받은 영국 청교도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하고, 1903년 평양 장로신학교에 입학, 1907년 한국최초 신학교 졸업생 7명 중 한 명이 되었다. 1907년 9월에 목사로 안수 받고 10월에 장대연 교회의 목사로 취임하였다. 그 해 장대연 교회에서 평양 대부흥 운동이라는 한국 교회사의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몇 천명의 교인들이 다 성령의 불길에 휩싸였다고 한다. 


또한 주기철 목사는 한국교회가 낳은 최대의 순교자로써 그는 해방 이후 한국 교회에 순교의 실체성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주기철 목사님은, 마산 문창교회에서 김익두 목사의 부흥 집회에 참석 후 은혜를 받고, 1922년 평양의 장로신학교에 입학, 192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교회 등에서 목회자로 사역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싸우면서 7년간의 옥살이 중에서도 투쟁하였다. 마침내 항일투쟁으로 47세에 순교하셨다. 두 목사님들은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고인이 된 외국 목사로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존경한다. 그는 목자로서가 아니고 오직 전도 목사로 세계 185개국을 순방하며 집회를 가졌고, 총 집회 참석 인원이 2억1천만 명으로 그 중에 십 분의 일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1973년 6월 3일 우리나라 여의도 광장에서 110만 명이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다. 김장환 목사님의 성령의 권능적인 통역은 큰 은혜를 낳는 결과의 주역이 되었다. 이 집회를 통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김장환 목사님이 인연이 되어 두 목사님이 함께 하나님의 복음이 세계로 전파된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졌다.


생존하시는 목사님으로는 김장환 목사님을 존경한다. 내가 대사관에 근무할 때 대사님이 김 목사님과 중학교 동창이시여 방문하셨을 때 인연이 되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목사님은 미군 부대에서 구두를 매일 닦아주어 성실성을 인정한 미군 병사의 소개로 미국에 유학을 하게 되어 영어도 모르고 돈도 없고 미국에서 일하면서 고학으로 눈물도 많이 흘리셨다고 한다. 


학생 시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을 영접하고 영어공부에도 열심히 하여 영어 웅변대회에서 일등으로 당선되어 많은 미국 여학생들의 인기 하에 그 중 한 명과 결혼하였으나, 졸업 후 미국에서 본인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물론 조국에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처의 불편한 한국 생활을 무릅쓰고 귀국했다. 


고국의 복음화에 매진하여 수원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또한 극동방송국을 설립하고 공산국에 전파방송으로 지금도 복음을 전하시고 계시며 사모님은 고아원을 설립하고 구제사업에 힘쓰고 계시다. 


두 아들도 모두 목사로 양성하여 대전 등에서 교회의 목회자로 있음에도 수원침례교회를 은퇴 하시면서 아들에게 세습하지 않고 부목사에게 물려주셨다. 극동방송국도 은퇴하시면서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분에게 인계하고 이사장으로 뒤에서 돕고 계시다. 


한국인으로서 세계침례교회 회장을 역임하고, 교계는 물론 각국의 대통령 및 정치계 지도자들을 상대하면서 조국의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하는 등 종교적 정치적으로 애국자이신 훌륭한 분이다. 김장환 목사님께서는 저를 이민 오기까지 극동방송국 조찬기도회(극동방송운영위원회)에 참석하게 하셨고, 이민 온 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시고 계신다. 


목사의 사명을 다하는 목사님을 존경한다. 오늘날에는 기독교의 종파간 경쟁 등으로 무조건 목사님을 다량으로 배출하여 L.A.에서만도 3천 명의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한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 교회를 개척하여 운영하기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큰 교회로 출석함으로써 목사의 배출을 줄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종이 아니고서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한 목회생활은 힘들 것이다. 부르심 받은 모든 목회자는 영혼을 다 바쳐 진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봉사할 것을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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