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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장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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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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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부활은 고난의 순종

 
 

고난주간을 매일 새벽 5시 30분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께 주신 고난에 대해 묵상하며 기도 하였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제일 사랑하며 매우 기뻐하고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과 질고를 왜 받게 하셨는가? 생각해 보았다. 


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어 자기에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이 되게 하시고 멜기세댁의 반차에 따라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게 하셨다(히5: 8-10 참조).


여기서 온전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자들 각자에게 분량대로 고통과 고난을 반드시 주신다. 주시는 고통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어려운 일들을 인내하고 하나님의 뜻하는 바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의로워져서 구원 받는데 아무 지장 없이 완전(perfect)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은 한 점의 죄도 없으시면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시며 죽으신 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피는 죄를 씻는 유일한 보혈의 피가 된 것이다. 죄로 인해 죄성을 가진 피로는 죄를 씻을 수가 없다. 따라서 죄성이 없는 피는 동물의 피와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 


그럼으로 구약시대에는 제사에서 동물의 피로 일시적인 구원을 받았지만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영구적인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구원을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으나 본래 아무 죄도 없으시기에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고난의 순종케 하시고 부활의 능력을 부여 하심으로써 3일만에 살아나게 하심으로 영광의 부활절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땅에서 이루고자 하신 모든 일을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인간구원 역사에 있어 큰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신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상에는 고독의 절규, 비탄의 절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일을 “다 이루었다”라는 승리의 절규인 환호성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살아도 죽어도 자신이 아닌 그의 백성을 위해 대표자로 십자가상에 달리셨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셔서 승천하신 것이다. 따라서 고난과 부활과 승천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은 처참한 고난과 질고 속에 처절하게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 듯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무덤을 깨뜨리시고 그를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소망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산 자의 소망이 되고 부활과 승천은 죽은 자의 소망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몸된 교회가 탄생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인류의 운명과 세상 역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 달라지게 되었고 또한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새 세계가 창조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행사로 이루어진 초 자연적인 구원 사건이며 종말론적 구원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게 만드셨다. 


따라서 예수님에게만 부활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로 맞이하고 영과 혼과 몸을 다 바쳐 믿음으로 부활하는 구원의 은총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님은 우리를 사나 죽으나 보장해 주시고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어진 각자의 고난 속에서 순종하는 자만이 구원의 은총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 (롬1: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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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eungo
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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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3
2018-09-12
교회 지도자의 사명

 
  
날이 갈수록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 기독교가 점점 쇠퇴하여가고 교회가 폐쇄되어 기독교인들이 줄고 있다고 한다. 대개 교회의 지도자로는 목사와 장로로서 무거운 사명감을 느낀다. 내가 기독교 지도자로 존경하는 목사님은 길선주 목사님(1869년 3월 25일 - 1935년 11월 26일)과 주기철 목사님(1897년 11월 25일 - 1944년 4월 22일), 그리고 오늘날 살아계신 김장환 목사님이며 외국인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있다.


길선주 목사님은 한학(漢學)교육을 받았고, 기독교에 입교하기 전 선도(仙道)에 심취되었던 때 당시 친구로부터 받은 영국 청교도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하고, 1903년 평양 장로신학교에 입학, 1907년 한국최초 신학교 졸업생 7명 중 한 명이 되었다. 1907년 9월에 목사로 안수 받고 10월에 장대연 교회의 목사로 취임하였다. 그 해 장대연 교회에서 평양 대부흥 운동이라는 한국 교회사의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몇 천명의 교인들이 다 성령의 불길에 휩싸였다고 한다. 


또한 주기철 목사는 한국교회가 낳은 최대의 순교자로써 그는 해방 이후 한국 교회에 순교의 실체성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주기철 목사님은, 마산 문창교회에서 김익두 목사의 부흥 집회에 참석 후 은혜를 받고, 1922년 평양의 장로신학교에 입학, 192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교회 등에서 목회자로 사역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싸우면서 7년간의 옥살이 중에서도 투쟁하였다. 마침내 항일투쟁으로 47세에 순교하셨다. 두 목사님들은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고인이 된 외국 목사로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존경한다. 그는 목자로서가 아니고 오직 전도 목사로 세계 185개국을 순방하며 집회를 가졌고, 총 집회 참석 인원이 2억1천만 명으로 그 중에 십 분의 일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1973년 6월 3일 우리나라 여의도 광장에서 110만 명이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다. 김장환 목사님의 성령의 권능적인 통역은 큰 은혜를 낳는 결과의 주역이 되었다. 이 집회를 통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김장환 목사님이 인연이 되어 두 목사님이 함께 하나님의 복음이 세계로 전파된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졌다.


생존하시는 목사님으로는 김장환 목사님을 존경한다. 내가 대사관에 근무할 때 대사님이 김 목사님과 중학교 동창이시여 방문하셨을 때 인연이 되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목사님은 미군 부대에서 구두를 매일 닦아주어 성실성을 인정한 미군 병사의 소개로 미국에 유학을 하게 되어 영어도 모르고 돈도 없고 미국에서 일하면서 고학으로 눈물도 많이 흘리셨다고 한다. 


학생 시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을 영접하고 영어공부에도 열심히 하여 영어 웅변대회에서 일등으로 당선되어 많은 미국 여학생들의 인기 하에 그 중 한 명과 결혼하였으나, 졸업 후 미국에서 본인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물론 조국에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처의 불편한 한국 생활을 무릅쓰고 귀국했다. 


고국의 복음화에 매진하여 수원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또한 극동방송국을 설립하고 공산국에 전파방송으로 지금도 복음을 전하시고 계시며 사모님은 고아원을 설립하고 구제사업에 힘쓰고 계시다. 


두 아들도 모두 목사로 양성하여 대전 등에서 교회의 목회자로 있음에도 수원침례교회를 은퇴 하시면서 아들에게 세습하지 않고 부목사에게 물려주셨다. 극동방송국도 은퇴하시면서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분에게 인계하고 이사장으로 뒤에서 돕고 계시다. 


한국인으로서 세계침례교회 회장을 역임하고, 교계는 물론 각국의 대통령 및 정치계 지도자들을 상대하면서 조국의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하는 등 종교적 정치적으로 애국자이신 훌륭한 분이다. 김장환 목사님께서는 저를 이민 오기까지 극동방송국 조찬기도회(극동방송운영위원회)에 참석하게 하셨고, 이민 온 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시고 계신다. 


목사의 사명을 다하는 목사님을 존경한다. 오늘날에는 기독교의 종파간 경쟁 등으로 무조건 목사님을 다량으로 배출하여 L.A.에서만도 3천 명의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한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 교회를 개척하여 운영하기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큰 교회로 출석함으로써 목사의 배출을 줄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종이 아니고서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한 목회생활은 힘들 것이다. 부르심 받은 모든 목회자는 영혼을 다 바쳐 진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봉사할 것을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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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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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하나님의 비밀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비밀이란 서로가 알수 없게 숨기는 것이다. 나의 결점이나 잘못한 것이 있으면 남들이 알까 숨기며 나만이 알고 취득할 수 있는 이익을 남들이 알고 침범하여 이익에 손해가 초래될까 숨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은 숨기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에게 알리는 것으로 완전히 인간의 비밀과 정반대이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비밀이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권능과 천지만물 중 인간을 제일 사랑하셨으나 죄를 짓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성부 성자의 비밀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요사이 나는 민수기를 읽으면서 민수기 14장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죄지은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애굽땅에서 노예로 400여 년간을 단련시키신 후 40여 년간을 험악한 광야 생활을 통해 연단시키시는 가운데 모든 인간들에게 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여주시며 순종토록 하였으나 계속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원망과 불만으로 가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하신대로 모세를 통하여 선민으로 삼은 이스라엘 민족을 당시 천국의 예표가 되는 가나안 땅 인근까지 도착한 후 이스라엘 민족 12지파의 지휘관 1명씩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다. 


정탐 결과 12지파 중 유다지파의 지휘관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의 지휘관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탐방 후 모두가 가나안 땅에는 네피림 후손인 아낙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는데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고 그들 칼에 전부 죽게 되었다고 하면서 오히려 애굽에서나 이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푸념하며 온 백성과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는 선민 박탈은 물론 전 이스라엘 민족을 전멸한다는 뜻으로 매우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기를 여호와께서 이 백성과 함께 하셔서 주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모든 인간들이 보았으니 이들이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어 광야에서 죽었다고 할 것임으로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애굽에서 지금까지 사하신 것 같이 하옵소서 라고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백성을 사하나 애굽과 광야에서 내 이적을 보고도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었다. 


하나님은 공의로워 불의를 묵과하시지 않는 분으로 이스라엘 민족 중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로 나를 원망한자 전부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려질 것이라고 하면서 너의 자녀들은 너의 반역한 죄를 지고 너의 시체가 광야에서 죽어서 소멸될 때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고 했다.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40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40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한다면 어떻게 될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민 14:34).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애굽에서 노예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탈출시키기 위해 인도하셨다. 모세는 매우 겸손하여 하나님은 모세와 직접 대화하며 출애굽에 대해서 함께 역사하셨다. 


그러나 모세도 인간이기에 하나님께 불평하곤 하였다.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며 주의 목전에서 내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임신하여 그들을 낳고 젖 먹는 아이를 품에 품고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주께서 나를 이같이 하시려면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은혜를 주시기를 요구하였다 (민 11:11-15 참조).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직접 보고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으니 인간이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비밀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가. 하물며 말세지말의 현세상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인간들이 어찌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가 있겠는가?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며 오히려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바다의 모래알과 사람의 머리털 숫자까지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지 숨길 수가 없다. 따라서 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무한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지만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절대로 묵과하시지 않는 무서운 분이심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잠시라도 살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기에 무조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복종하며 순종하는 길만이 현세와 내세에 우리들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민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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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68299
9213
2018-08-23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거기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분명히 약속하셨다. 믿는 성도들을 하늘 본향으로 데려가신다는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천사가 말하기를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 11).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반드시 재림 전 누가 하늘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인지 고르시고 결정하는 심판이 이루어져 가고 있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늘 성소에 계시면서 우리의 죄를 위해 중보사업을 하시는 제사장으로 봉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제를 이루시고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 (히 9: 11-12 참조). 따라서 성도들이 거할 하늘 처소는 거의 다 완성되었고 이제 주님께서는 그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하늘 본향에 누가 들어와서 살 것인지 결정할 일만 남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재림 후 심판에서 천국과 지옥에서 살 인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재림 전에 모든 인간들이 정말 예수님을 믿어 그 마음과 성품이 변화되었는지, 아니면 말만 믿는다고 하면서 그대로 죄의 욕심과 부패한 마음 그대로 살고 있는지 새로 시작될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사람을 반드시 미리 고르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마지막 백보좌 심판에서는 생명책에 기록 여부만을 보고 천국과 지옥에 대해 구분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 하시고(창 1:1), 만물을 만드셔서(창 2:1) 하늘과 땅 사이에 질서 있게 배열하시고 오늘날까지 관리 역사하고 계신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피조물 중 하나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마다 만드신 이유와 품성과 본질이 무엇인지 하나님 이외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천사와 인간) 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으며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자발적이고 우러나오는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하셨다, 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은 하나님보다 더 높은 보좌를 원하였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겔 28: 15). 따라서 일부 반역의 천사들은 하나님 정부의 법인 율법에 도전하며 불순종하는 큰 죄를 짓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회개하고 돌아 올 수 있는 넉넉한 은혜의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창조주를 대항하는 투쟁으로 인한 범죄로 대적 사단이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땅으로 내어쫓긴 사단은 이제 인간을 유혹하고 선동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게 만들고 범죄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의로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천사와 인간들이 자기를 배반 할 것을 모르고 계셨을까? 다 알고 계시면서 앞으로 하나님과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하시는 것을 인간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한 위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여기서 하나님을 거역하기 위한 시기와 욕심이 사단과 인간의 마음에 어떻게 생기었는지가 의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역사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밖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하면서 내 지체 속에는 또한 한 개의 다른 법이 있어 마음의 법과 싸워 죄의 법이 나에게 침입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하였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 24-25).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실 때 모든 만물을 대칭적으로 만드시고 운행하고 계시다. 선과 악, 그리고 선행과 악행을 하나님의 법에 따라 점검하시며 심판하여 천국에 들어갈 자는 생명책에 기록하고 계시기 때문에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법에 순종하며 백보좌 심판 전에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고 생명책에 없는 자는 불못인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계 20:11-15 참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믿는 자들이여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과 천사들과 대면하여 교제를 나누며 살 그 날에 누가 천국에서 살 수 있는가?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고르시고 계시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의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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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67195
9213
2018-08-19
하나님의 시행착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라고 성경은 시작된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시행착오라는 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운행하시기 위해 부리시는 천사들 중 3분의 1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탄이 되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 사탄의 종으로 만들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강함과 지혜와 지식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의 헤아리는 능력을 초월한다. 하나님의 길, 모든 행동은 이해되거나 탐지될 수가 없다. 인간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며, 유지하시며, 목적지가 되시기 때문에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만드셨는데 만물 중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고 자기의 영을 부어 넣어 주셨으니 생물 중 인간에게만 영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자기와 닮은 모양의 인간을 직접 만드셨으니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번성하기 위하여 아담의 몸에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말하기를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라고 하였다. 


이것을 여자라고 하셨으니 이가 하와이다. 그리고는 남자와 하와를 한몸 되게 하셔서 이들로 하여금 인간들을 번성하게 하셨다(창 2:20-25 참조).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여 아무 노력도 없이 편히 살게 하셨으나 선악과 사건으로 죄를 짓고 낙원에서 추방당한 후 오늘날 후손들까지 땀을 흘리며 정신적 육체적 노동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들을 사랑하고 계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생물인 동물과 인간들에게서 자기에서 낳은 새끼와 자식들을 사랑하도록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승들에게는 새끼가 자랄 때까지만 사랑하게끔 하셨으나 인간에게는 자기 생명이 다할 때가지 사랑하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영원히 인간을 사랑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까지 사랑하심으로 인해 독생자의 몸으로 성육신하여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리고는 부활 승천하심으로 이를 믿기만 하면 우리 믿는 자들도 부활 승천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얼마나 끔찍한 사랑인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계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빌립보 기자가 말하듯이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늘의 보좌에 앉으시고 땅이 발등 상이 되는 전지전능하신 분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태어나셔서 사람이 되셨고 율법 시대에 태어났으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율법 아래에서 성장하였으므로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한다는 율법대로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으므로 율법을 완성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명목상 마리아의 남편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성령이 임하기 전 30년은 목수 일을 하면서 평범하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 수가 있다. 예수님은 12살 때에 부모와 함께 유월절 절기의 관례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부모님은 함께 돌아오는 줄로 알았던 예수가 보이지 않음으로 예수님을 찾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찾으니 예수는 성전에서 선생들과 논쟁 중에 있음을 보고 꾸짖으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대답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뜻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그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의 강림을 받은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의 도전을 물리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중풍 병자를 비롯한 온갖 병자를 고치시며 호수에서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시는 이적을 베푸시며 열두 제자를 삼으사 이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병을 고치게 하는 동시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비취시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집중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 당시 권세자 이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 율법 학자들의 시기가 대단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그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총독이었던 로마인 빌라도에게 십자가의 처형을 요구하였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사형당할 죄가 아님을 설명하나 이들은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라고 하며 유대 통치자는 빌라도인데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면 조국에서 오해가 될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 자기의 우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의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삶으셨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머리이신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항상 산 예배를 드림으로써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이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로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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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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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솔로몬의 행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충만한 성령의 은혜를 주셔서 지혜와 부귀 권세 영화를 누리도록 하셨다. 세상 누구에게도 이러한 은혜를 베푸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 과연 솔로몬은 누구인가? 다윗은 그의 부하 우리아의 부인 "밧세바"를 간음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결국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까지 죽이는 살인을 감행 하였다.


그리고 밧세바를 후궁으로 삼고 그의 몸에서 태어난 자가 솔로몬이다. 다윗의 사악한 마음속의 행위에서 잉태하고 태어난 솔로몬의 품성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동양에서도 여자가 임신하게 되면 태아 교육으로 몸가짐, 태도는 물론 먹는 음식도 정갈하고 모양까지도 반듯한 음식을 먹으며 남편과 함께 예의범절을 지키며 심지어는 한서인 명심보감, 소학 등을 배우고 습득하였다. 특히 소학은 남녀 8세가 되면 반드시 배우고 읽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은 마음의 사악한 행위의 상황에서 간음 하였고 또한 어머니 밧세바는 왕의 권력으로 하는 수 없이 강간을 당하는 상황에서 잉태 되었다. 밧세바는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슬퍼하였으니 남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으며 왕에 대해서는 호기심이나 조금의 사랑도 없이 간음으로 솔로몬이 태어났음이 증명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솔로몬을 사랑하셨고 지혜의 은혜도 주셨다. 따라서 솔로몬은 충만한 지혜로 인간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잠언 3천가지와 그의 노래 천다섯 편으로 잠언서가 기록되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솔로몬을 논하기 전 먼저 다윗을 고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윗의 영향으로 솔로몬이 왕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세의 아들 중 목동이었던 다윗을 택하여 왕으로 기름 부으셨고 그의 아들 솔로몬으로 왕위를 계승할 것을 약속 하셨다.


왕이 된 솔로몬이 기브온 제단에서 일천 번 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시기에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으나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사오니 모든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할 수 있도록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사 하는 순박한 요구에 하나님께서는 부귀와 영광도 함께 주셨다 (왕상 3:7-13 참조).


따라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됨에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하였으며 솔로몬 왕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림으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모든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평안히 살았다 (왕상4:20-21 참조).


특히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태평치 못하니 너의 아들 솔로몬이 선전을 건축하라는 언명대로 솔로몬왕은 거룩한 성전건축까지 하게 되는 영화를 갖게 되어 성전건축 후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 내소인 지성소에 안치 하였다.


성전건축을 완성한 후의 솔로몬의 연설과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령 충만한 믿음의 연설이요 기도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사 사하여 주옵소서" (왕상 8:29-30).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사랑하셨던 솔로몬의 마음이 변하여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애굽의 바로의 딸,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들을 위시하여 후궁이 칠백명이고 첩이 삼백명으로 급기야 그들이 믿는 우상신을 섬기도록 솔로몬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솔로몬이 아무리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신중에 신인 하나님을 배반하고 은혜까지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한 행위를 할 수가 있는가? 믿을 수가 없다.


금년도 성경 열왕기상을 통독하면서 어떻게 솔로몬이 마음이 변하여 여호와를 떠나 여자를 좋아하며 우상을 숭배 할 수가 있겠는가? 가축인 짐승들도 주인을 알고 따르며 순종하거늘 어찌 금수보다 더 못하단 말인가?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사료된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마다 믿음의 분량대로 영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해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교회 직임자나 모든 성도들은 성경해석에 대해 서로가 각자 깨닫고 기도로써 성령의 도움을 받아 속 깊이 진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같이 사랑과 모든 축복을 주신다고 해도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은 온 인류에게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일환이 아닌가, 나만의 생각이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영혼이 하늘나라에서의 영생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여호와께서 일찍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상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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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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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성령과 교회의 조직

 
  
우리나라 성령 운동의 선구자인 대천덕(戴天德) 신부님, 그의 본명은 R. A. Torrey이다. 성령 운동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시다. 아버지가 선교사로 계시던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1918년 1월 19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에서 한 팔을 잃고서 장애인을 위한 목회에 전념 하였다. 


할아버지 역시 목사로서 유명한 D.L. Moody와 함께 사역 하였으며 무디성경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하였고, 세계적인 부흥사이기도 하다. 이는 하나님께서 동양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부르심으로 인한 대대로 이어온 가문의 사역자들이시다.


또한 대천덕신부님은 산동성과 한국의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미국 무디성경학교, 데이빗슨대학교, 프리스턴 신학대학원, 남부대학교, 하버드대학교, 한국의 연세대학교, 영국의 성어거스틴 중앙신학대학원 등에서 수학하셨다. 1952년 한국으로 오셔서 대한성공회 성미가엘 신학원을 재건하고 원장을 역임하였다.


1965년부터 강원도 황지 산골짜기인 하사마리 마을에 믿음의 공동체 "예수원"을 설립 운영하면서 수도자, 전도자 배출과 많은 성경연구 강사로서 출강했다. 성공회 신부로서 강원교무국 월간 신앙계에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를 집필했다. 그의 성경론 저서중 제1권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와 제2권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나는 제2권만을 2차에 걸쳐 정독하였다. (1차 1990년 1월 21일, 2차 2009년 11월 22일).


오늘날 성령으로 세우신 교회가 목회자 및 성도들 간의 불화와 반목으로 성령님을 거역하여감에 따라 성령의 선구자인 대천덕 신분님의 성령론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에 기록된 성령과 교회조직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다. 


내용인즉 성경의 은사와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직임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 4-7). 


나는 어느 목사님의 권유로 대천덕 신부의 성령론 제2권을 읽게 되었다. 먼저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책을 제목부터 매력을 느끼고 읽다 보니 나의 신앙생활 중에 어느 목사나 성경 연구가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는 깊이 있는 성경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깊고 넓은 성경말씀을 해석할 수가 있는가? 성령의 권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분은 성령 안에서 또한 성령이 마음 안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해박한 세상지식도 겸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접목시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사도행전을 통하여 말씀 하셨다. (행 1: 4-5 참조) 


성령세례를 받은 후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여기서 세례라는 것은 요한의 세례로 오직 죄악을 씻는 회개의 징표일 뿐이다. (슥13: 1-2) 


그러나 회개를 위한 세례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할 때 가능한데 회개에서는 그 고백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만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 3: 11). 


여기서 물세례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며, 성령세례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구원자이심을 깨닫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물세례는 상징적이고 성령세례는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령으로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 없이는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이다. 따라서 각 성도의 은사의 협동과의 결핍과 성령의 능력이 부족한 사역자, 성령의 열매가 결여된 채 살고 있는 직임자를 둔 교회보다도 더 슬픈 것은 없는 것이다. 


특히 직임이란 교회에 의해서 결정되고 위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지체)이므로 그리스도에 의해 위임되는 직임에는 매우 분명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도 교회의 어떤 조직도 누가 방언의 은사를 가지는지 또는 누가 치유의 은사를 가지는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또한 은사는 그것이 단지 한차례로 끝날 수도 있으므로 은사가 교회에 있어 임원임명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교회가 어떤 의미로든지 건강치 못할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주의해서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교회는 일반성도 그리고 직임자들의 집합체로 성령을 떠나 각자의 자존심과 망상의 자기 대가성 영광을 위해 서로 비방과 반목이 계속될 경우 이는 몸 된 주님의 몸에 상처의 피를 흘리게 됨으로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반드시 최후 심판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 연못에 던져져 영원히 그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인성과 신성을 겸비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직접 부어 주심으로 인해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신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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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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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동행하고 계시다. 흑암의 권세 하의 세상 속에 살면서 별다른 위기 없이 자신을 자랑스럽게만 느끼며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조금의 우울함도 없이 항상 명랑하게 사는 사람들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할 수 없이 지은 죄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는 자들까지도 슬프게도 절박한 문제나 고통, 불확실한 상황을 맞이 하여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좋을 때 자진해서 하나님께 달려가 진심으로 그 분을 섬기고 기쁘게 해드릴 마음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말고도 더욱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면서 함께 동행 하시기를 고대하고 계시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최고의 친구이자 신실한 동반자가 되어 우리들을 안내하고 이끌고 힘을 북돋워 주며 상상할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신다.


반면 우리들은 어떠한가? 상처받고 갈등하고 혼란스러울 때, 심한 고통으로 괴로울 때만 하나님을 찾게 되니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반쪽 짜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그분의 전체 모습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시요,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으시니라." (히 1:1-3 참조)


하나님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리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애타게 원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에게 그 분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셨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 (요 1:14 참조)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제자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요 14:8-14 참조)라고 간략하게 직접 대답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가장 명료하고 완전하게 드러내셨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성경에서는 7가지의 예증으로 증언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은 만유의 주시다."라고 한다. 즉 당신이 예수님을 모셔 들이기만 하면 당신과 함께 하시겠노라 약속 하셨다. 우주의 왕께서 당신에게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최고의 동반자와 함께 있다. 둘째 "예수님은 선한 목자시다"라고 한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는 양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는 것처럼 우리가 그분을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목자로 인정하기 원하신다. 


셋째 "예수님은 당신의 창조주시다"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 "모태에서 우리를 지으셨음"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당신을 창조하는 과정에 친히 참여 하셨다는 사실 즉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당신의 아름다움과 삶의 목적을 발견하도록 도울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당신의 구원자이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죄에서 건지셨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따라 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어두운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것이라고 부르짖고 계시다. 다섯째, "예수님은 당신의 피난처이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라고 약속하셨다. 


여섯째 "예수님은 당신의 구세주이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눅 19:10 참조). 즉, 건강한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병든 자와 곤경에 처한 자를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마 9:10-13 참조)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거리감을 느낄수록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더욱 바싹 다가와 자비와 용서를 베푸신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씀 하신다. 일곱 번째 "예수님은 당신의 친구이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제자들에게 모세를 나의 친구라고 하셨듯이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5)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들과 친구 되기를 원하며 말씀을 통해 당신을 인도하기 원하신다. 따라서 우리들은 항상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려운 고비를 넘을 때 뿐만 아니라 순조롭고 풍요로운 시간에도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만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인도와 격려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불행이 닥치거나 주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천국에 우리들의 예비된 처소가 있다는 것과 영원한 소망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예비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연못이 있어 영원한 절망만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나는 마음이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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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부모와 자녀관계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만드셨다. 만물 중 인간을 만드실 때 남녀를 만드시고 한 몸을 이루게 하고는 인간 창조 권한을 이들에게 위임하셔서 세상에 인간들을 번성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기에 하나님은 인간들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고 만들어진 인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듯이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도 자녀를 낳았을 때 낳은 인간은 부모가 되고 아이들은 자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의 따라 부모와 자녀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라고 명령하셨다. 따라서 성경 구약에서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신 27: 16), 신약성경에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 1) 라고 대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서도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며 존경해야만 했고 (출 20: 12, 레 19: 3, 신 5: 16), 신약시대에서도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골 3: 20).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 1-4).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목사님들의 주일 설교가 대부분 에베소서 6장 1-4절 말씀을 선포하셨으리라 생각된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율법에 명시된 하나님의 계명으로 불순종자는 죄를 짓게 되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은혜를 받은 예로 성경 "룻기" 를 살펴보면 유다인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처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타국 모압으로 이주하여 살았는데 본인은 죽고 처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그 후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자와 결혼 시키었으나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도 흉년이 들어 며느리들과 함께 조국으로 다시 오려 하였으나 자기는 나이도 들고 며느리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 나이가 젊으니 너희 나라에서 다시 결혼하여 새출발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니 한 며느리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며느리 룻은 이를 거절하고 끝까지 나오미를 따랐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어머니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다”며 “어머니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니 어머니 계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호소한 내용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인간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룻 2: 16-17 참조) 


룻에게는 시어머니가 이방인이고 나이 들어 모시기에 점점 큰 짐이 되지마는 그의 효성과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아 유대왕국이 건설된 하나님의 큰 뜻이니라. 이는 메시야의 조상 다윗 계보에 이방 여인이 등장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한 민족과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 이른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어버이날은 우리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르신을 공경하는 믿음을 키우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어버이날의 유래는 미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가 이를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국가적으로 어머니날을 지키게 된 것은 1956년 국무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한국전쟁 이후 경제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어머니들이 자녀의 양육은 물론 생업에도 책임이 무거워졌기 때문에 이를 위로하기 위하여 어머니날을 만들어 17회까지 기념하다가 1973년 3월 30일 어버이날로 개정하였다. 


따라서 어버이날이 되면 자녀들은 부모와 조부모에게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선물, 효도관광, 효자 효부를 선발하여 상금을 수여 하였다. 이날을 전후해 1주일 동안을 경로주간으로 정하였으나 1997년 이를 폐지하고 매년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10월은 경로의 달로 정해 시행하고 있다(자료 인용).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서 인간을 창조한 후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민족과 국가마다 문화 및 경제, 정치적인 자유와 평등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 나의 청소년 시절만 보더라도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워 부모님들이 영양실조로 대부분 60세 이상 생존하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영양 과다로 인한 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웠던 시대는 부모에 대한 효도 요건이 부모님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부모님들은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을 제외하고는 고기를 맛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설날 전후에 마을 사람들이 기르는 소도 아닌 돼지를 잡아 그것도 수요공급에 따라 고기를 살 수 밖에 없으니 식구가 많은 집은 국을 끓여 나눠먹으니 당시의 부모님들은 배불리 먹지도 못하므로 얼마나 불쌍하신가. 가슴이 아련해진다. 


풍부한 경제 속의 오늘날 청소년들은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요사이 부모에 대한 효도 요건은 대부분이 관광, 값비싼 의료, 보석이겠지만 부유하지 않은 자녀들은 "너희들이 몸 건강히 잘살고 있는 것이 효도”라는 부모님들의 말씀에 따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고 소식마저 두절되어 그리운 손주 손녀의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게 된다. 오히려 부모가 문안 드리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요사이는 부모 자식 사이가 경제적 이익 사이로 흘러가 부모가 재산이 있으면 부모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하고, 부모 또한 잘하는 자식에게 유산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자식들의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지금은 미국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유서를 자주 변경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부모에게 잘한다는 자식에게 많은 양의 재산을 준다는 유서를 수시 변경하여 유지한다는 것이다. 만일 부모가 재산이 없고 노화로 인한 병으로 돈이 요구될 경우 부모를 멀리하며 부모 모시기를 기피할 뿐 아니라 부모 몰래 이사하여 인연을 끊고 결별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에 대한 청지기임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자녀들의 은사를 무시하고 자기들의 소망에 따라 강제 또는 육욕으로 양육하고 있다. 따라서 자식들 마음에 자기 취미와 재능에 따라 하고 싶은 것도 못하니 당연히 자식들은 분노가 생기게 되어 있다. 


또한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부모들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하겠는가? 성경에도 부모를 무시하고 경이 여기며 공경하지 않는 불효자는 죽이라고까지 하였으며 예수님께서도 어머니 마리아 몸에서 태어난 동복형제를 제외시키고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너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심에 따라 요한이 모시었다. 


예수님으로부터 자식 됨이 거부된 동복형제들은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는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부모나 자식이나 주안에서 공경하고 순종하여 서로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뜨거운 눈물의 샘이 솟아나기를 기도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하늘나라인가 생각해 보았다.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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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eungo
이승고
66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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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성경(聖經)

 
 

성경은 처음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 1) 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태초는 천지를 창조하신 때를 나타내지만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인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만물을 만드시어 인간들과 함께 운행하시기를 원하셨기에 만물 중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들에게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선지자 그리고 예수님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넣어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으니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믿음의 수준에 따라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회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은 수시로 성경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 하심에 의해 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 진리의 말씀의 꼴을 먹여 주시니 매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라. 따라서 믿음의 우리들은 믿음이 성장 하도록 수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더욱 깨달아서 천국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구약은 율법 시대로 신약은 은혜 시대로 구분한다. 신 구약이 인간과의 언약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 따라서 율법시대에는 선지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으로 하나님에 대해 계시하였고 은혜시대에는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을 완전히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럼으로 율법시대를 반드시 거쳐야 신약시대인 은혜시대가 도래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 없이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세상 학문으로 비교설명을 한다면 율법은 초등 학문이요, 은혜는 고등 학문이며 율법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이며 은혜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적인 학문이 아닌 하나님의 영적인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한 점의 오류나 착오가 없는 완전무결한 책으로 세상 모든 서적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의 유일한 책이다. 따라서 성경은 세상에서 가식이나 거짓이 없는 진실만의 거룩하고 정의로운 서적이다.


결론적으로 나약한 나의 믿음으로 성경을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다만 성경은 인간의 사고나 집념으로 기록될 수 없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셨으므로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알 수 없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수시로 매일 기도 없이는 성경을 읽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져 가는 즉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전지전능하신 오직 유일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들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뼛속까지도 알고 계시므로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의 거짓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사화복 등 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께 주셨다. 따라서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님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통해 구원받고 영생하여야 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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