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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장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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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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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성령과 교회의 조직

 
  
우리나라 성령 운동의 선구자인 대천덕(戴天德) 신부님, 그의 본명은 R. A. Torrey이다. 성령 운동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시다. 아버지가 선교사로 계시던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1918년 1월 19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에서 한 팔을 잃고서 장애인을 위한 목회에 전념 하였다. 


할아버지 역시 목사로서 유명한 D.L. Moody와 함께 사역 하였으며 무디성경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하였고, 세계적인 부흥사이기도 하다. 이는 하나님께서 동양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부르심으로 인한 대대로 이어온 가문의 사역자들이시다.


또한 대천덕신부님은 산동성과 한국의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미국 무디성경학교, 데이빗슨대학교, 프리스턴 신학대학원, 남부대학교, 하버드대학교, 한국의 연세대학교, 영국의 성어거스틴 중앙신학대학원 등에서 수학하셨다. 1952년 한국으로 오셔서 대한성공회 성미가엘 신학원을 재건하고 원장을 역임하였다.


1965년부터 강원도 황지 산골짜기인 하사마리 마을에 믿음의 공동체 "예수원"을 설립 운영하면서 수도자, 전도자 배출과 많은 성경연구 강사로서 출강했다. 성공회 신부로서 강원교무국 월간 신앙계에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를 집필했다. 그의 성경론 저서중 제1권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와 제2권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나는 제2권만을 2차에 걸쳐 정독하였다. (1차 1990년 1월 21일, 2차 2009년 11월 22일).


오늘날 성령으로 세우신 교회가 목회자 및 성도들 간의 불화와 반목으로 성령님을 거역하여감에 따라 성령의 선구자인 대천덕 신분님의 성령론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에 기록된 성령과 교회조직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다. 


내용인즉 성경의 은사와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직임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 4-7). 


나는 어느 목사님의 권유로 대천덕 신부의 성령론 제2권을 읽게 되었다. 먼저 "산골짜기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책을 제목부터 매력을 느끼고 읽다 보니 나의 신앙생활 중에 어느 목사나 성경 연구가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는 깊이 있는 성경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깊고 넓은 성경말씀을 해석할 수가 있는가? 성령의 권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분은 성령 안에서 또한 성령이 마음 안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해박한 세상지식도 겸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접목시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사도행전을 통하여 말씀 하셨다. (행 1: 4-5 참조) 


성령세례를 받은 후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여기서 세례라는 것은 요한의 세례로 오직 죄악을 씻는 회개의 징표일 뿐이다. (슥13: 1-2) 


그러나 회개를 위한 세례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할 때 가능한데 회개에서는 그 고백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만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 3: 11). 


여기서 물세례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며, 성령세례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구원자이심을 깨닫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물세례는 상징적이고 성령세례는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령으로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 없이는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이다. 따라서 각 성도의 은사의 협동과의 결핍과 성령의 능력이 부족한 사역자, 성령의 열매가 결여된 채 살고 있는 직임자를 둔 교회보다도 더 슬픈 것은 없는 것이다. 


특히 직임이란 교회에 의해서 결정되고 위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지체)이므로 그리스도에 의해 위임되는 직임에는 매우 분명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도 교회의 어떤 조직도 누가 방언의 은사를 가지는지 또는 누가 치유의 은사를 가지는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또한 은사는 그것이 단지 한차례로 끝날 수도 있으므로 은사가 교회에 있어 임원임명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교회가 어떤 의미로든지 건강치 못할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주의해서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교회는 일반성도 그리고 직임자들의 집합체로 성령을 떠나 각자의 자존심과 망상의 자기 대가성 영광을 위해 서로 비방과 반목이 계속될 경우 이는 몸 된 주님의 몸에 상처의 피를 흘리게 됨으로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반드시 최후 심판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 연못에 던져져 영원히 그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인성과 신성을 겸비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직접 부어 주심으로 인해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신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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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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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동행하고 계시다. 흑암의 권세 하의 세상 속에 살면서 별다른 위기 없이 자신을 자랑스럽게만 느끼며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조금의 우울함도 없이 항상 명랑하게 사는 사람들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할 수 없이 지은 죄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는 자들까지도 슬프게도 절박한 문제나 고통, 불확실한 상황을 맞이 하여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좋을 때 자진해서 하나님께 달려가 진심으로 그 분을 섬기고 기쁘게 해드릴 마음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말고도 더욱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면서 함께 동행 하시기를 고대하고 계시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최고의 친구이자 신실한 동반자가 되어 우리들을 안내하고 이끌고 힘을 북돋워 주며 상상할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신다.


반면 우리들은 어떠한가? 상처받고 갈등하고 혼란스러울 때, 심한 고통으로 괴로울 때만 하나님을 찾게 되니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반쪽 짜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그분의 전체 모습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시요,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으시니라." (히 1:1-3 참조)


하나님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리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애타게 원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에게 그 분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셨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 (요 1:14 참조)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제자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요 14:8-14 참조)라고 간략하게 직접 대답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가장 명료하고 완전하게 드러내셨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성경에서는 7가지의 예증으로 증언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은 만유의 주시다."라고 한다. 즉 당신이 예수님을 모셔 들이기만 하면 당신과 함께 하시겠노라 약속 하셨다. 우주의 왕께서 당신에게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최고의 동반자와 함께 있다. 둘째 "예수님은 선한 목자시다"라고 한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는 양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는 것처럼 우리가 그분을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목자로 인정하기 원하신다. 


셋째 "예수님은 당신의 창조주시다"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 "모태에서 우리를 지으셨음"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당신을 창조하는 과정에 친히 참여 하셨다는 사실 즉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당신의 아름다움과 삶의 목적을 발견하도록 도울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당신의 구원자이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죄에서 건지셨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따라 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어두운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것이라고 부르짖고 계시다. 다섯째, "예수님은 당신의 피난처이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라고 약속하셨다. 


여섯째 "예수님은 당신의 구세주이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눅 19:10 참조). 즉, 건강한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병든 자와 곤경에 처한 자를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마 9:10-13 참조)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거리감을 느낄수록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더욱 바싹 다가와 자비와 용서를 베푸신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씀 하신다. 일곱 번째 "예수님은 당신의 친구이시다"라고 한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제자들에게 모세를 나의 친구라고 하셨듯이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5)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들과 친구 되기를 원하며 말씀을 통해 당신을 인도하기 원하신다. 따라서 우리들은 항상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려운 고비를 넘을 때 뿐만 아니라 순조롭고 풍요로운 시간에도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만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인도와 격려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불행이 닥치거나 주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천국에 우리들의 예비된 처소가 있다는 것과 영원한 소망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예비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연못이 있어 영원한 절망만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나는 마음이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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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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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3
2018-06-01
부모와 자녀관계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만드셨다. 만물 중 인간을 만드실 때 남녀를 만드시고 한 몸을 이루게 하고는 인간 창조 권한을 이들에게 위임하셔서 세상에 인간들을 번성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기에 하나님은 인간들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고 만들어진 인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듯이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도 자녀를 낳았을 때 낳은 인간은 부모가 되고 아이들은 자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의 따라 부모와 자녀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라고 명령하셨다. 따라서 성경 구약에서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신 27: 16), 신약성경에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 1) 라고 대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서도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며 존경해야만 했고 (출 20: 12, 레 19: 3, 신 5: 16), 신약시대에서도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골 3: 20).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 1-4).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목사님들의 주일 설교가 대부분 에베소서 6장 1-4절 말씀을 선포하셨으리라 생각된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율법에 명시된 하나님의 계명으로 불순종자는 죄를 짓게 되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은혜를 받은 예로 성경 "룻기" 를 살펴보면 유다인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처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타국 모압으로 이주하여 살았는데 본인은 죽고 처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그 후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자와 결혼 시키었으나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도 흉년이 들어 며느리들과 함께 조국으로 다시 오려 하였으나 자기는 나이도 들고 며느리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 나이가 젊으니 너희 나라에서 다시 결혼하여 새출발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니 한 며느리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며느리 룻은 이를 거절하고 끝까지 나오미를 따랐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어머니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다”며 “어머니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니 어머니 계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호소한 내용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인간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룻 2: 16-17 참조) 


룻에게는 시어머니가 이방인이고 나이 들어 모시기에 점점 큰 짐이 되지마는 그의 효성과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아 유대왕국이 건설된 하나님의 큰 뜻이니라. 이는 메시야의 조상 다윗 계보에 이방 여인이 등장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한 민족과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 이른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어버이날은 우리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르신을 공경하는 믿음을 키우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어버이날의 유래는 미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가 이를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국가적으로 어머니날을 지키게 된 것은 1956년 국무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한국전쟁 이후 경제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어머니들이 자녀의 양육은 물론 생업에도 책임이 무거워졌기 때문에 이를 위로하기 위하여 어머니날을 만들어 17회까지 기념하다가 1973년 3월 30일 어버이날로 개정하였다. 


따라서 어버이날이 되면 자녀들은 부모와 조부모에게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리고 감사의 선물, 효도관광, 효자 효부를 선발하여 상금을 수여 하였다. 이날을 전후해 1주일 동안을 경로주간으로 정하였으나 1997년 이를 폐지하고 매년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10월은 경로의 달로 정해 시행하고 있다(자료 인용).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서 인간을 창조한 후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민족과 국가마다 문화 및 경제, 정치적인 자유와 평등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 나의 청소년 시절만 보더라도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워 부모님들이 영양실조로 대부분 60세 이상 생존하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영양 과다로 인한 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웠던 시대는 부모에 대한 효도 요건이 부모님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부모님들은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을 제외하고는 고기를 맛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설날 전후에 마을 사람들이 기르는 소도 아닌 돼지를 잡아 그것도 수요공급에 따라 고기를 살 수 밖에 없으니 식구가 많은 집은 국을 끓여 나눠먹으니 당시의 부모님들은 배불리 먹지도 못하므로 얼마나 불쌍하신가. 가슴이 아련해진다. 


풍부한 경제 속의 오늘날 청소년들은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요사이 부모에 대한 효도 요건은 대부분이 관광, 값비싼 의료, 보석이겠지만 부유하지 않은 자녀들은 "너희들이 몸 건강히 잘살고 있는 것이 효도”라는 부모님들의 말씀에 따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고 소식마저 두절되어 그리운 손주 손녀의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게 된다. 오히려 부모가 문안 드리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요사이는 부모 자식 사이가 경제적 이익 사이로 흘러가 부모가 재산이 있으면 부모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하고, 부모 또한 잘하는 자식에게 유산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자식들의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지금은 미국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유서를 자주 변경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부모에게 잘한다는 자식에게 많은 양의 재산을 준다는 유서를 수시 변경하여 유지한다는 것이다. 만일 부모가 재산이 없고 노화로 인한 병으로 돈이 요구될 경우 부모를 멀리하며 부모 모시기를 기피할 뿐 아니라 부모 몰래 이사하여 인연을 끊고 결별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에 대한 청지기임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자녀들의 은사를 무시하고 자기들의 소망에 따라 강제 또는 육욕으로 양육하고 있다. 따라서 자식들 마음에 자기 취미와 재능에 따라 하고 싶은 것도 못하니 당연히 자식들은 분노가 생기게 되어 있다. 


또한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부모들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하겠는가? 성경에도 부모를 무시하고 경이 여기며 공경하지 않는 불효자는 죽이라고까지 하였으며 예수님께서도 어머니 마리아 몸에서 태어난 동복형제를 제외시키고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너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심에 따라 요한이 모시었다. 


예수님으로부터 자식 됨이 거부된 동복형제들은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는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부모나 자식이나 주안에서 공경하고 순종하여 서로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뜨거운 눈물의 샘이 솟아나기를 기도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하늘나라인가 생각해 보았다.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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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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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3
2018-05-27
성경(聖經)

 
 

성경은 처음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 1) 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태초는 천지를 창조하신 때를 나타내지만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인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만물을 만드시어 인간들과 함께 운행하시기를 원하셨기에 만물 중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들에게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선지자 그리고 예수님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넣어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으니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믿음의 수준에 따라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회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은 수시로 성경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 하심에 의해 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 진리의 말씀의 꼴을 먹여 주시니 매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라. 따라서 믿음의 우리들은 믿음이 성장 하도록 수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더욱 깨달아서 천국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구약은 율법 시대로 신약은 은혜 시대로 구분한다. 신 구약이 인간과의 언약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 따라서 율법시대에는 선지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으로 하나님에 대해 계시하였고 은혜시대에는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을 완전히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럼으로 율법시대를 반드시 거쳐야 신약시대인 은혜시대가 도래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 없이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세상 학문으로 비교설명을 한다면 율법은 초등 학문이요, 은혜는 고등 학문이며 율법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이며 은혜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적인 학문이 아닌 하나님의 영적인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한 점의 오류나 착오가 없는 완전무결한 책으로 세상 모든 서적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의 유일한 책이다. 따라서 성경은 세상에서 가식이나 거짓이 없는 진실만의 거룩하고 정의로운 서적이다.


결론적으로 나약한 나의 믿음으로 성경을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다만 성경은 인간의 사고나 집념으로 기록될 수 없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셨으므로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알 수 없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수시로 매일 기도 없이는 성경을 읽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져 가는 즉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전지전능하신 오직 유일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들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뼛속까지도 알고 계시므로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의 거짓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사화복 등 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께 주셨다. 따라서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야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님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통해 구원받고 영생하여야 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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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65995
9213
2018-05-12
노인들의 평안(平安)

 
 

오늘날에는 65세부터 노인으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내 나이가 80대가 되다 보니 나도 살 만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기에 그때는 주로 농경시대로 먹고 사는 것조차 어려울 때이다. 현재와 같이 개발된 농기계도 없이 또한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오직 육체만의 힘든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니 그 당시 60세만 살아도 장수하였다 하여 회갑 잔치를 하는 등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꿈 같은 세월이었다. 영양실조로 치아는 다 빠져 없고 허리는 굽어 걷기조차 힘들었으며 병이 들면 민간요법의 한약치료로 장기간 병에 시달리었다.


그나마 농사로 얻은 식량은 일본 침략자들의 탈취로 인해 빼앗기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다시피 하니 60대가 되면 대부분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그 당시의 문화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자손이 번성하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하고 보통 7-8명의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있으니 생활은 더욱 빈곤하게 되었다. 우리 가문도 농촌의 한 유대 가문으로 아버님은 6.25때 돌아가시고 어머님께서 3남 1녀의 자녀들과 함께 농촌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살아가던 중 하나님께서 어머님을 부르셔서 자손들까지 진정한 하나님의 평안의 은총을 입게 되고 보니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항상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선민으로 택한 유대민족의 일부는 수백 년씩 장수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평균수명이 120세로 되어 있으나 그 외 인간들의 수명은 장수한즉 70~80세라고 되어 있으니 인간들이 어찌 사망을 두려워하며 아쉬워하지 않는 인간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그리스도인인 노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영혼이 영생할 수 있는 소망이 있으나 불신자 노인들은 오직 육신만의 삶의 기간만을 생각하게 되니 사망이 두렵지 않겠는가? 따라서 일부 노인들은 삶에 지쳐 입으로는 죽고 싶다고 말들하고 있지만, 막상 죽음에 도달하면 죽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 것이다.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젊은 날에 큰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심히 통곡하며 더 살기를 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의 수명을 더 살게 하셨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 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결론적으로 노인들의 진정한 평안은 사망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망이란 육신적인 사망과 영적인 사망을 말한다. 육신적인 사망은 수명이 평균 70~80세로 누구나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영적 사망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호흡으로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 주셔서 생영의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영원한 불멸의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 사망이란 것은 인간들의 죄로 인해 악령이 침투되어 하나님의 영이 사탄의 영으로 바뀌게 된 것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들의 영혼은 영원한 평안의 천국으로 승천하게 되며 악령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영혼은 불꽃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시간을 떠나 하나님 날을 기준으로 보면 인간들이 공중 권세 잡은 어둠의 세상에 사는 기간은 번개처럼 찰나에 지나지 않는데 이러한 세상에서 부귀와 권세 그리고 명예 그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성경을 통한 부자와 거지의 비유에서 부자는 목이 타는 불꽃 옆에서 그리고 거지는 아브라함 품에 거하다가 최종 심판 때에 부자는 지옥으로 거지는 천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노인들이시여!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또한 사람을 만드셔서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노인들이시여!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진정한 하나님의 평안을 받으시기를 간곡히 말씀 드린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에서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 27).


교회에서는 매일 오전 5시30분에 아침 새벽기도예배를 드린다. 매일 아침 참석하는 부러운 성도들도 계시지만 나의 경우 영육간의 강건함을 이유로 육체도 건강해야 한다는 핑계로 격일제로 참석하고 있다. 아침 새벽 교단 높은 곳에 십자가를 바라볼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얼마나 평안하셨겠는가? 생각하며 마음에 평안을 느끼곤 한다. 이 외에 그 무엇이 나에게 평안을 주겠는가?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8: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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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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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하나님의 영존(永存)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영원하신 분이다. 과거와 미래도 없으시며 시간을 초래해 계시는 영원한 자존(自存)자 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나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천지가 있기 전에 계신 자, 그 무엇에 의해서도 지음 받지 않으신 분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성경은 시작부터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태초(太初)는 하나님이 아시는 태초요, 사람이 알 수 없는 태초이다. 따라서 모든 때와 기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우리의 알 바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24: 36)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자 라고 하셨다.


금년(2018)에도 성경 여호수아를 읽던 중 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가나안 땅의 정착민을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 죽이라고 명령 하셨나에 대해 묵상해 보았다. 가나안 땅의 정착민들은 모두가 우상숭배자들로 구약에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상징하므로 우상숭배 족속과 그 후손들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죽이라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모태에서 방금 태어난 신생아가 무슨 죄가 있는가?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왜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기 위해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으나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고 이들 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가 죄성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번성케 하시고 긍휼과 자비로 보호하시며 그들의 죄까지도 보혈의 피로 씻기시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하셨는데 왜 모두 죽이라고 하셨는가, 생각하던 중 문득 성경구절이 떠 올랐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신이 없고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므로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다(신32: 39 참조).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권능과 능력을 세상 속에서 잠깐 살다가는 인간들이 인간들의 시간에 따라 변론하려 하니 큰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의 비난이나 정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써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비판적일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으로 모든 인간들을 심판하실 때 하늘나라에서 영존할 것인가 아니면 꺼지지 않는 불못인 지옥에서 영벌을 받을 것인가 심판결과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경우를 생각하였다. 두 아들 중 큰아들이 50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려 들지 않고 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청혼이 있음에도 응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결혼하지 않고 독신생활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릴 것 같아 말을 안 하고 있는 것 뿐이다. 


만일 여자를 좋아했다면 결혼을 하였을 것이다. 신앙심도 좋고 부모에 대한 효심도 크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는 것과 비교는 될 수 없으나 베드로와 같이 여자를 좋아했으면 어찌 결혼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간혹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험난한 세상에 결혼해서 처와 아이들 고생시키며 살게 하는 것보다는 나 혼자 고생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다. 결혼한 친구들 그리고 주위에 결혼한 가정들이 부부싸움은 물론 이혼율이 늘어나면서 고아 된 아이들의 방황은 물론 비참한 경우를 목격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없는 사람 도와주며 사는 것이 즐겁다고 하니 부모인들 어찌할 수가 없다. 끝까지 착하게 살다가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기를 쉬지 않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오직 기독교만이 성경 첫머리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라고 선언 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다. 어느 종교에도 그 교주가 천지를 창조 하고 운영하시며 심판하신다는 말은 없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은 현세와 내세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큰 아들의 경우 자기 결혼의 인생관(人生觀)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영원한 하늘나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아들이 구원을 받아서 잠깐 왔다 가는 세상보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묵상 하였다. 때로는 부모로써 아들이 애처로워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 드리곤 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2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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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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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회상(回想)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 혹서의 사막이 아닌 기후가 좋은 곳에 땅을 주셔서 살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 민족성 때문에 단결하지 못하고 만주의 큰 땅을 중국에 빼앗기고 일본에게는 36년간 나라를 잃어버렸다. 다행히 1945, 8, 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 되었으나 5년 후인 1950, 6, 25일 북한의 기습으로 비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많은 동족들이 죽었다. 


미소에 의거 휴전이 선포되고 38선 이북은 소련의 통치하에, 남쪽은 미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내 나이 80세로 일제시대와 6,25 전쟁의 비극적인 일 들을 겪은 불운의 세대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홍난파 선생과 동향인 수원에서 6Km 서쪽 방향의 경기도 남양반도의 농촌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우리가문은 전주 이씨로 조선의 유교사상인 유대 가정으로 대대로 우상숭배를 겸한 제사문화 속에서 생활 하였다. 


어머님께서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조상들에 대한 모든 제사, 절기에 따른 우상숭배 등으로 고생 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제사는 물론 우상숭배물들을 다 깨부수고 농촌 교회에 출석하심으로써 우리 가정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기원이 되었다. 그 당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리라.


일제시대 때 일곱 살에 소학교에 입학하고 아버님은 6.25사변으로 48세에 세상을 떠나시고 두 형님은 모두 군에 입대하면서 우리가정엔 노모님, 형수님, 누님만 계셔서 도저히 나는 중학교에 입학 할 수가 없어 한문 서당에서 4년간 한학을 공부 하였다. 한학이 오늘날 성경을 이해 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학문을 배우기로 하였으나 나이 관계로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신설 고등학교와 대학들은 돈만 지불하면 입학 할 수 있어 그만큼 학사관리가 엉망이었다. 


신설 대학이 지금은 일류대학교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수학은 나에게 큰 문제로 이를 위한 노력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선교사들이 설립한 미션스쿨인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과거 일본은 한국을 침략한 후 중국 및 동남아 국가를 정복하기 위해 한국을 기반으로 이용하였다. 일본이 전쟁에 패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미소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고 북한은 소련의 통치하에 김일성을 앞세워 북한의 공산정부를 세웠다. 


남한은 미국의 통치하에 이승만은 이미 배제학당을 거쳐 미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을뿐 아니라 자유와 민주 그리고 평등의 지식을 습득하고 세계의 모든 정세를 몸소 경험하였으며 귀국 후 이씨 왕족의 후손이면서도 왕족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앞장섰으나 옥에 투옥되어 손가락조차 쓸 수 없을 정도의 고문과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출옥하여 계속된 투쟁으로 독재 왕권을 타파하고 민주주위의 토대를 마련 하였다. 


민족 지도자 김구 선생은 국내파로써 세계정세와 공산주의자들의 성격에 대해 자기만의 양심적인 애국심만 믿고 지금도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인 연합정부를 받아드리려 할 때 기만적인 공산화 전술에 말려들어 공산화될 것이 분명함으로 이승만은 김구선생과 대립하고 미국의 협조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우는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도 김구선생을 아쉬워하면서 이승만을 원망하며 비판하는 것이다.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제정하여 민의의 국회를 만들고 누구나 남녀 차별 없이 평등권을 부여하여 백성이면 누구나 선거권과 피선권을 부여하고 토지개혁 등 놀라운 개혁을 감행 하였다. 그러나 북한 김일성은 군사력을 강화하여 남침을 작심하고 1950년 6월25일 새벽 기습남침으로 낙동강까지 진격하여 거의 남한을 점령 하였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우의를 맺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서울을 탈환하여 다시 조국을 수호하신 분이다. 이승만은 그리스도인으로 동족을 사랑한 이념에서 남침한 인민군들을 반공 포로로 석방 하였으니 참전한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한 애국애족의 민족 지도자이다. 


오늘날에도 북한은 김씨 일가의 독재정권으로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무기개발에 치중하고 있고, 남한의 경우 역대 대통령 중 일부는 무능하고 부정부패로 국고를 횡령 하였다. 나는 교인으로 북한 지도자들은 2천만 동족을 위해 남한 지도자들은 5천만 동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가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지정학적으로 대국 사이에서 또한 세계패권국가에 의해 이용 당하면서 급기야 동족간에도 적대관계로 싸우고 있으니 동족의 운명이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본래 미개국으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전수받고 세워졌으나 오히려 우리나라는 침범을 당하였다. 36년간의 일본의 식민지와 6.25 전쟁으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리는 거지의 나라가 되었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 고속도로, 조선소, 포항제철 등의 기간 산업을 구축하고 강압적인 경제개발로 짧은 기간에 세계가 놀라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남침을 위한 핵개발 및 미사일 발사 등에 투자함으로 백성들은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 북한 동족이 얼마나 불쌍하고 안타까운가! 왜 우리 7천만 한민족이 비운의 처지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 민족 자신의 잘못에서 기인 된다. 


우리민족의 민족성은 단결력이라곤 전혀 없는데 원인이 있다. 민족성에 대해 예를 들면 바다 모래에 사는 꽃게 근성이라고 한다. 꽃게를 잡아 그릇에 넣으면 그릇의 뚜껑이 필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 마리가 그릇에서 탈출하기 위해 기어 오르면 다른 놈이 잡아 당기고 그릇에 있는 모든 꽃게는 서로서로 물고 있어 한 덩어리로 급기야 모두 몰살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근성에서 백성의 지도자가 나오니 백성들은 얼마나 고통에서 살아야 하나!


오늘날에 남한은 민주와 자유의 한계를 넘어 불법행위로 법을 지키지 않는 무법주위로 공권력이 파기되어 사회가 혼란에 처해있고, 북한은 백성들을 억압하여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실정이다. 


우리 민족의 재능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지만 단결력이 없기 때문에 패권주의 국가에 이용 당하고 있다. 7천만 동족이 단결해야 하는데 사상적으로 대립되어 있으니 한탄 할 일이다. 아무리 남북대화니 경제협력이니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이 시간만 지연될 뿐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지도자나 백성들이 모두가 오합지졸이다. 


결론적으로 7천만 우리 한민족을 위해 북한 동포들에게는 자유와 평등을 알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남한 동포에게는 자유와 평등의 기본 질서와 법규를 계도하여 준법정신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단결하여 통일된 국가에서 함께 공존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민족이 중국이나 미국의 패권국가로부터 이용 당하지 않는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자나 깨나 7천만의 한족을 위해 기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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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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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5
고난과 부활에 대한 묵상(默想)

 
 

매년 3월이 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된다. 묵상의 내용이 해마다 다를 수가 있기에 금년도에도 묵상을 피력 하면서 늘 계속해서 회상 하고자 한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계획 하시고 수천 년에 걸쳐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 하시며 역사 하시어 이루어 내신 엄청난 사건이다. 어떤 혀와 붓으로 구주의 고난과 부활의 사건을 다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먼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운영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품성과 권능 또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찌 그 내용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7).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이시오 또한 동시에 바로 사람 이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역사 하시기 위해 성부, 성자, 성령의 3의 위상으로 계획과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시다. 성부께서는 계획 하시고 성자께서는 실천 하시고 성령께서는 도와 주시므로 모든 것이 운행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인간으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지적인 분별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115:3).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기형상과 영광을 따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킴으로써 그의 은혜를 나타내고 그의 사랑 하시는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위대하게 만드셨다. 이를 위해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가능케 하며 실현시킬 기초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사건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의 기본 원리의 중추가 되는 놀라운 사건으로 이는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따라서 사랑은 기독교 윤리의 대 강령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은 주님께서 ‘슬픔의 사람’으로 십자가 상에서 사람의 손과 사단의 손과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들을 대신해서 고통을 받으셨다. 따라서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깨달을수록 묵상할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욱 뜨거워지고 우리의 감사는 더욱더 깊어져만 간다. 


주님께서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그의 영혼의 고뇌로 더욱 괴로워하셨다. 모든 고통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하늘로서 땅에 이루시고자 오신바 모든 일이 이제 다 성취 되었으며 죄인들이 구원을 얻기에 필수적인 모든 율법의 요구가 이제 다 수용 되었고 우리 구속의 온전한 값이 이제 다 지불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필요한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지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역사에 있어 큰 목적이 온전히 성취된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 상에는 고독의 절규, 비탄의 절규 그리고 “다 이루었다” 라는 승리의 절규인 환호성이 있는 것이다.


죄인들은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저들의 죄를 짊어지신 분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 또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신 다른 분에 의해서 구속을 받을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죄는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뿌림을 받을 때에만 깨끗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살아도 죽어도 자신이 아닌 그의 백성을 위해 십자가 상에서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 달리셨다. 그리고는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실 때 우리의 영혼도 함께 아버지의 돌보심에 일임하셨다. 하나님께서 최초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영혼을 우리 속에 지어주셨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께 연결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육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전12:7). 주님의 고난과 부활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셨다.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산 자의 소망이고 그의 부활하심은 죽은 자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은 우리를 사나 죽으나 보장해 주시고 책임져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따라서 죄인인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다만 이제부터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믿고 의지하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의 값으로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는 생활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만 하면 당신이 가지고 계신 모든 것으로 우리를 축복 하시므로 값없이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사해주시고 또한 주님을 믿고 섬기며 의지하기만 하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구원하여 주시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혼의 영원한 참된 피난처 이시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기도의 눈물로 나의 눈을 씻어 주시고, 말씀의 눈물로 나의 눈을 뜨게 하시고, 찬송의 눈물로 나의 귀를 열어 주시고, 믿음의 눈물로 나의 영혼을 씻어 주소서. 그리하여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떳떳하게 부탁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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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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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3
2018-03-18
고난과 부활주일 감회

 

고난과 부활주간을 보내면서 느낀 감회가 해마다 다른 소감을 갖게 한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 신앙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가 있을까? 묵상 하였다. 


하나님의 인간구원 계획은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고난(주검),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심판)의 다섯 가지의 과정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고 계시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 구원의 사랑내용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을 한마디로 사랑의 책이라고도 부른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은 중추적인 기독교 사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마치 태양이 하나지만 태양과 빛과 열의 역할 3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하나님도 한 분이지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이 각 위상대로 함께 동시에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주관하고 계시다.


성경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 하시므로 성부와 성령이 함께 역사 하셨고(창1: 1-2). 그가(성자)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므로 성부 성자가 함께 만물을 창조 하셨다(요1: 2-3)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3위로 동시에 함께 역사 하시기 때문에 그의 역사의 비밀은 피조물인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으면서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갈보리언덕 십자가 고난 사건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지은 죄로 인해 대신 죽으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망은 형벌적인 사망으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육체의 사망은 3일만에 부활 하셨고 영혼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사망을 이루게 된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님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를 아들에게 쏟으셨으며 인간들은 구세주로 온 예수님을 탄생부터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고통과 고난을 주었고 사탄마귀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인한 그리스도에 대한 증오로 인해 사랑하는 인간을 사악하게 한 마귀의 타락한 본성이 예수님에게 고통과 고난을 가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 상에서의 고난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손과 사탄의 손과, 하나님의 손에서 고통을 받으셨으나 속죄 제물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심으로써 보혈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죽은 지 3일만에 부활 하심으로 인해 인간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드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광활하신 사랑과 그의 영원불변 하신 공의와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연합하여 믿는 자들의 구원을 가능케 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도 세상 삶이 아무리 고통과 고난 속에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에 비길 수가 있겠는가?


오직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의 죄로 돌아가신 십자가 사건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즉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기만 한다면 값없이 우리도 부활 할 수가 있는 은혜를 받게 되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따라서 십자가 상에서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하여 생각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부활절의 기적이 십자가의 비극을 복음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버러지만도 못한 죄 많은 인간이 부활한다 하니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주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이다. 마치 걷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는 송충이가 조금씩 꿈틀거리며 움직이어 솔잎만 먹고 살다가 다시 화려한 호랑나비로 부활되어 훨훨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꽃들 속에서 맛있는 꿀만 먹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활한 몸은 질병과 사망에 매어 있는 몸이 아니라 변화되어 다시 썩지 않을 몸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형상대로 만드시고 그의 영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초 인간 아담이 죄를 짓게 됨으로써 후손인 우리들은 죄인의 형상대로 태어났다. 형상은 속성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과 죄인의 속성에 따라 인간의 형상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성은 영이시며 영원하시며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며 사랑이시며 자비로우시며 진실하시므로 그 속성대로 하나님의 형상이 되며, 그리고 죄인의 속성은 거짓과 사악과 유혹과 사망과 불의와 사랑이 없는 무자비한 죄인의 속성대로 형상이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의 경우는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지시고 계시기 때문에 형상만은 하나님 속성의 형상과 인간 속성의 형상으로 탄생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신 후 그의 보혈의 피로 죄를 사하셨기 때문에 인성은 없어지고 신성만 남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전 복원되어 승천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부활 후 변화되어 처음에는 제자들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도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죄 사함 받아 믿음으로 거듭나면 예수님 재림 시 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살아서 믿는 자들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부활의 최대 사건이다.


부활하신 예수는 공간적 제약을 초월 하였고 말세에 다시 승천하던 모양대로 재림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흑 암의 세력하에 있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언제나 십자가를 바라보며 모든 핍박과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여 육체의 장막이 다하는 날 영혼이 구원 받고 부활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 종말에는 사탄마귀가 믿는 자를 유혹하여 실족하게 하므로 항상 깨어있어 겸손히 날마다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열 처녀가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렸으나 그 중 다섯 처녀는 미련하게 그때 마침 믿음에 게을리하고 소홀하여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거부당한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다. 


주님의 재림은 오늘 또는 내일에 또한 낮이나 밤에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쉬지 말고 기도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늘 깨어있는 믿음 속에 주님을 맞이하여 영원히 함께 영생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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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eungo
이승고
65025
9213
2018-03-12
노인들이여, 웃으며 삽시다(Smile, Senior…)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만드실 때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주셔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주셨는데 웃으며 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믿는자들에게 “너희들과 함께 하리라”는 말씀만으로도 믿음의 평강을 느끼는데 말이다. 


하나님께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들과 함께 운행하시기 위해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신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이 선하시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선한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인간들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 사전 예비하시고 인간을 만드셨다고 한다(엡 2: 10 참조). 그러나 인간이 이를 떠나 죄성의 뿌리가 생겼으니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생의 영을 주셨기 때문에 영원히 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죄의 영을 따라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느냐 아니면 성령의 하나님의 영을 따라 영생을 맞이 하느냐는 우리의 결단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강압적인 강요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악인이나 선인이나 모두 다 사랑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호흡하는 공기와 먹을 물, 일월성신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의식주 등 모든 것을 해결하시며 온 인간들에게 차별 없이 사랑을 베푸신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40 참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인간들에게는 엄격한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선하심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고 믿은 후에도 예전과 같은 불법과 불의의 생활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진리를 묵상하며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 불신자들은 인간들의 운명을 사주팔자 소관이라며 변하지 않는 고정된 개념으로 알고 있다.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의지력에 의해 변화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각 사람마다 하나님으로 받은 탈란트를 의지력을 발휘하여 개척하여 추진하면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운명은 자기가 어떻게 개척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음악의 탈란트를 갖은 음악가가 운동선수가 되었다면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모든 탈란트의 화합과 조화로 세상을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질서의 파기하는 죄까지 짓게 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의 탈란트로 의지력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했더라면 더 좋은 운명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2월 17일) 과테말라 선교사로 계신 79세의 노년의 선교사 김영환 장로님의 “아름다운 인생 후반전” 이라는 선교 말씀을 행복대학에서 들었다. 이 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선교사 탈란트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 자기의 노년의 의지력을 발휘하여 이국에서의 악조건 하에서 하나님의 전도의 많은 업적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우리 노인들도 “아름다운 인생후반전”이라 생각하고 각자 자기 탈란트 위에 빛이 되어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웃으며 젊은 이들에게 빛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가는 길을 아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쉴 곳이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광야의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 넘어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아멘!” (찬송가 479장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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