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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봉 칼럼

samkang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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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http://skang3441.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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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ang39
강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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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4
설마의 역사 500년(57)-대한민국의 국운(國運)은 하향길인가?(상)

 
 

먼저, 대한민국의 국운이 왜 하향길인가? 그 이유와 원인부터 말씀을 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이유는 촛불세력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 가고 문재인 대통령이 세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국운이 바뀌는 것은 대통령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의 통치 이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종전의 대한민국 국가이념인 자본주의 자유 민주주의 이념이 사회주의(내지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실각과 문재인 정권의 득세를 변곡점으로 하여 대한민국의 국운은 이념적으로 이미 하향 길로 접어들은 것이다.


하향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념을 지향하는 정권임을 알면서도 그를 택한 것이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그래서 국운이 하향길인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하나로 뭉칠 수 없는, 다시 말해서 통일이 될 수 없는 상극의 이념 국가다. 이 지상에 이웃을 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 간에는 항상 대소의 충돌이 있다. 그렇지만 양국간에 이념이 같으면 전쟁은 없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미워하지만 이념이 같기 때문에 전쟁으로 번지지는 아니한다.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웃을 하지만 같은 이념국가이기 때문에 전쟁은 아니한다. 반면 이념이 다르면 전쟁은 물론이고, 도저히 통일이 될 수가 없는 운명적 적국이 되는 것이다. 


우리 한반도에서 남북이 통일을 이룰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극의 이념을 서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재 장기 집권자들은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념이란 두 글자로 국민을 세뇌시키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북한의 이념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요,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념적으로 상극인 국가가 통일을 이룩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첫째는 한 쪽이 이념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변화하는 길이고, 둘째는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여 강제로 통일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에서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통일의 방법이 달라진다. 그 첫 번째의 통일 방법은 독일식 통일이다. 이념이 다른 양국간에 협의에 의한 통일방법이기 때문에 구태여 피를 흘릴 이유가 없다. 


동독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서독의 자본주의를 따랐기에 통일이 이루어졌다. 두 번째 강압식 통일은 월남식 통일이다. 어떠한 이유를 붙이거나 회유작전을 쓰거나 제3자의 힘을 동원하여 상대국을 힘으로 통일하는 방법이기에 합리적이 못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통일은 전쟁을 일으키거나 피를 흘리게 되고, 많은 살상과 숙청을 각오해야 하는 아주 잔인한 방법이다. 


다른 이념은 다른 체재를 동반한다. 1948년, 국제공산주의 체제로 시작한 북한은 세습 사회주의 체제로 변질 되었고, 지금은 왕권 봉건주의와 다름 없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남한은 1948년 UN감시하에 총선거를 치러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여 변질없이 70년을 유지해왔다. 그동안 동서의 이념적 냉전시대, 1990년대에 국제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공산체제 자본주의 경제(중국) 같은 합작성 체제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볼 때에 공산주의는 이 지상에서 이미 실패한 사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이념인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좌파정부는 왜 그 방향으로 국가의 미래를 몰고 가려는 것인가?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운은 하향길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념이 변질되어 가는 원인은 문재인 대통령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정객, 법조인, 언론인들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청와대를 구성하고 있는 비서관, 행정관, 보좌관들의 주류세력이 문재인 대통령과 같이 박정희, 전두환 군부세력에 반기를 들고 데모를 하던 학생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소위 김일성 장학금이라고 하는 공작금을 받고, 고시원에서 공부하던 고시원 출신의 법조계, 언론계 인사들이 오늘날 실세가 되어있는 때문이다. 


70-80년대에 데모를 하던 많은 대학생들은 공산주의 책자나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부류였고, 그러한 반공 사상에 대한 반항의식은 당시에 유행병처럼 대학가를 휩쓸었다. 


그들의 그러한 젊었을 시절의 이념이 오늘날 좌파세력으로 뭉쳐졌고, 드디어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을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념은 이미 세계 역사 속에서 심판을 받은 내용이고, 성공할 수 없는 이념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인데, 이를 고집하여 재생하고 있는 것이 현 대한민국 정권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앞날은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선평(先評)을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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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ang39
강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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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설마의 역사 500년(56)-물질문명 - 세대간의 격차(하)

 

(지난 호에 이어)
6.3세대, 386세대, 7080세대, 20/30세대, 60/70세대, 수구꼴통 세대, SNS세대… 이 지구상에 이렇게 철저하게 격차가 발달해 가는 나라라면 단연 대한민국이 그 선두다.

SNS와 핸드폰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자랑을 하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국민의식이 이렇게 격하되어 가는 것을 말하는 이가 없다. 


캐나다나 미국에는 아직 이러한 계층이 두드러져 있지는 않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 세대들이 서로 소통하고 융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반목하는 데에 있다. 신세대는 구세대를 몰아내는 것을 승리감으로 희열을 느낀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못하는 늙은 세대들은 젊은이들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고, 3등 인생으로 열외 되는 경향이 짙다. 


 한 가정 내에서도 부모 자식 사이의 천륜적 인간관계가 소원해져서 아예 정치적 대화에는 서로 삼가 해야 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자손녀사랑도 그들이 조금만 자라서 통신기기에 빠지고 나면 섭섭할 정도로 소외된다. 


 소통이 없는 메마른 가족관계로 변모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야단칠 수도 없고, 달래기만 하여도 아니 되는, 참으로 기기묘묘한 세대간의 격차문제가 가정 속에서도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여도 아예 자식 낳기를 꺼려하고, 낳는다 하여도 마치 장난감을 하나 마련하는 듯이 겨우 하나나 둘을 낳고 만다.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율이 그 첫 번째다. 2018년 현재 출생률 발표에 의하면 한국이 1.09%란다. 부부 두 사람이 겨우 아이 하나를 낳는 꼴이니 인구가 반으로 격감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어찌 보면 천륜을 거역하는, 반인륜적 현상의 일등국이 대한민국이란다. 한국인이 그렇게 시대에 예민하고, 삶에 이기적이고, 사회생활에 감성적이라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드디어 SNS 세대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감소하고 뚜렷한 이유가 없이 사회가 불안정해 가는 이유는 어느 문제보다도 심각한 미래사의 어둠이 아닌가? 


 미국에서는 학교폭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학교와 경찰과 종교단체와 학부모들이 단합을 하여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와 반대로 새삼스럽게 뭐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특별한 조례를 만들고 그들의 정치성 집회도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고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는 떠들고 있다. 


프랑스 속담에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는 말이 있다. 학생들에게 매를 아끼기는커녕 오히려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얻어 맞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의 비위나 맞추는 것이 올바른 교육방법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제는 이 시대적인 문제를 정치가들에게만 맡기는 것도 큰 잘못이라고 생각이 든다. 썩은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수단으로 포퓰리즘 정책에 혈안이 되어 있고, 학생들에게 아첨을 하여 선거 때의 표나 구걸하는 정치인들로 타락이 되어 있다. 


장기 안목과 미래의 비전이 없이, 국가의 미래를 팔아 현실적인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얌체족 정치인들이 나라를 지배해 가고 있으니 그 또한 희망이 희미한 일이다. 


선거 때만 되면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것이 정치인들 아닌가? 대한민국에는 이러한 포퓰리즘 세대들이 학계, 정치계, 법조계, 재계에까지 골고루 침투되어 있고, 이를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깊이 정신병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이전에도 연령별 세대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 때에는 인간 대 인간의 이념상 문제가 상호 소통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인간대 통신 기기 사이의 소통이기에 그 방법이 종전의 경우와 같지가 않다. 


인간 대 기기, 인간 대 동물, 그렇게 우리의 인간성이 변질되어 간다. 문명국일 수록 더 애완동물이 유행한다. 왜 인간의 사랑소통이 동물에게로 흘러가는 것인가? 이것도 물질문명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인간들 간에 서로 마음 놓고 믿을 수가 없는 사랑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계산하고 물질로 따지는 인간사회의 메마름을 메우기 위하여 죽어도 충성을 다하는 애완견에게 사랑이 가는 것이다. 


 미국의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엄청난 문명의 통신기기를 만들어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과 인간성 파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빌 게이트는 자기 자녀들에게 하루 2시간 이상 TV를 보지 말고 SNS기기를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급속으로 발전하는 통신기기가 가져다 주는 세대간의 불화, 가정에서의 갈등, 학교에서의 범죄 불감증 등은 우리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가장 큰 문젯거리로 영영 남을 것이다. 가정과 사회와 학교와 종교단체는 이 새로운 도전에 도덕적 윤리적 정신문화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새롭게 나타난 물질문명이 정신을 병들게 함은 새로운 ‘설마’의 요인이다. 편의를 빙자한 물질문명의 개발은 그 편의 가치 이상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새로운 설마의 세상이 암세포같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문명이 세계에서 4차 산업을 떠드는 것 같이, 정신문화 속에서도 4차적인 병폐를 치료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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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ang39
강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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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설마의 역사 500년(55)-물질문명 - 세대간의 격차(상)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니 정신적인 문화가 그에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한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Unbalance로 인하여, 오늘의 이 사회 속에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그 부작용 중의 하나가 바로 세대간의 격차다.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비인간적 부작용이 곧 사회적 범죄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인 문제인 것이다. 


특별히 근래에 와서 초속으로 발전하는 인간 문명의 통신기기와 편의 기기로 인해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세대간의 격차의식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현상이기에 어떻게 하면 이 난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 것인가? 참으로 암담한 이 과학문명의 현실적 부작용 앞에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부작용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현실적인 편의주의 기기에 몰두되어 자기 자신의 정신적 상실이나 파괴를 생각지 못한다. 다만 그 일부가 가시적인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기에 이를 우려할 뿐이다.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발생하는 무형적이고 정신적인 손실을 어떻게 예측하고 측정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것을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고, 최선책이라고 지시한 바도 없는데, 가정에서는 부모를 기피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따돌리며, 사회에서는 기성층에 반기를 드는가 하면 같은 동료끼리도 왕따로 따돌림을 하고 남을 괴롭히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는 도덕불감증의 세대가 나타난 것이다. 


학교 교정으로 총기를 들고 들어와 동료들에게 난사를하여 죽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서 증오가 일고, 협조가 필요한 곳에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니, 인간사회가 나날이 메말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로 만든 기기로 말미암아 인간이 오히려 지배를 받는, 기계의 노예가 된 세상이 나타난 것이다. 인간 대 인간의 소통은 멀어져 가고 기계 대 인간의 소통세계가 형성된 것이다. 


기계와 소통하는 내용물에 의해 세뇌가 되면, 인간사회가 주는 기존적 가치관은 배척을 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기존적 가치관은 자기들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인간의 유심론적 사고가 아닌, 물질문명의 유물론적 지식소통이기 때문에 인간성, 양심, 도덕 윤리 같은 유심론적인 가치관은 나날이 희미해 가고, 사회적인 문제가 더 더욱 고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그 기기가 바로 PC방의 게임 컴퓨터이고, 스마트폰이고,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인간 살해용 무기들이다. 청소년들은 자고 깨면 이 기기에 노예가 되고, 손바닥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이 매일 매일의 생활이다. 


이러한 통신기기에 중독된 그들에게는 부모님의 염려도, 선생님의 학교교육도 모두가 부차적이다. 그들은 옳고 그름의 사실여부를 기존적 지식으로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그 손바닥 기기가 말하는 것이면 우선적으로 받아 들이고 그 가치관을 그대로 인정한다. 


이 기기가 전달을 하는 모든 정보는 정제되지 않은 정보가 대부분이다. 아무나 어떤 내용을 진실인 것처럼 입력을 시키면 거침없이 사방으로 퍼져서 돌아 다닌다. 


댓글이란 것이 다 그런 것이다. 같은 소리를 하고 또 하고, 3번만 반복하면 반은 진실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판단은 일방적이고 편파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들은 TV, 라디오, 신문 같이 공개적으로 정제된 지식이나 정보를 오히려 배척하고 손바닥에서 움직이는 그 기기의 내용을 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기기가 많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부수적인 부작용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대를 SNS(Social Network Service) 세대라고 한다. SNS 세대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배척하고, 자기들만의 가치관으로 성취한 일에 대하여 상당한 승리감을 만끽한다. 


특별히 선거 때가 되면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는 자기들대로의 돌출행동을 이 기기들을 통하여 전개한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선거 때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선거 때에 전혀 예상치 못한 돌출행동이 나타남으로, 예상했던 선거결과를 뒤집어 버리는 사건 들을 경험하였다. 


대한민국의 전체 국민 5,300만 명 중 약 1/3인 1,700만 명의 SNS 세대가 이러한 행동을 하는 부류에 속한다. 기계소통의 왕국, 대한민국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기중심의 이기적으로, 물질적으로, 수리적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윤리 도덕성이 결여되어 가고, 자기의 의식 속에 범죄의식이라는 한계성을 가늠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범죄불감증에 걸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이기에 교육자들은 그러한 것이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라 한다. 선생이란 단어가 옛날과 같이 사제지간의 의리와 법도를 생각하는 선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직업인으로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가치관을 상실한 세상이다. 공장의 직공이나 다름없는 월급쟁이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누가 이 그릇됨을 교육하고 고쳐야 하는가? 


생각은 많지만 확실한 방법을 모른다. 가정교육이다 아니면 학교교육이다. 그도 아니면 사회교육이나 종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갑론을박을 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여 가니, 의사소통의 방법에 따라, 의사소통 기기의 발전에 따라, 세대의 계층이 세분화된다. 특별히 전쟁으로 인하여, 정치사상과 이념으로 인하여, 근래의 초속적인 통신기기의 발달로 인하여, 한국은 그 어떠한 나라보다도 더 빨리 세대별 계층이 분화되었고 형성되어 간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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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ang39
강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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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0
‘설마’의 역사 500년(54)-인성윤리교육(人性倫理敎育)의 필요성(하)

  

 

 

 

(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 예기치 못한 대한민국의 앞날에, 불안의 미래관이 나타났다. 자칫하면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망한다는 경제학자들의 미래관이다. 망하는 미래관이 예견되지만 문제는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탄스러운 표현을 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재인 정권이 지향해 가고 있는 공산주의-사회주의화 정책은 3년 이상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붕괴될 조짐인데, 이에 대처할 수 있는 20/30대들의 정신적, 윤리적 자립성과 책임성이 문제라고 한다. 


“오냐, 오냐 하고 곱게만 키워 온 자식들이기에 경제적 붕괴가 가져올 불행과 고통을 이겨낼 자신감과 자립성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몇 번의 경제위기가 있었다. 1974년경의 세계 오일파동, 1997년의 IMF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 온 국민들은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능력이 있었다고 경제학자는 분석하고 있다. 


IMF때에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책임을 남에게 미루지 아니 하고, 금반지를 빼서라도 국가의 위기를 구제하려는 국민들의 의지가 충만하여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불과 2년 만에 모든 경제적 위험을 극복 하였다. 


그렇지만 앞으로 그와 같은 위기가 온다면 이제 상황은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국가정책은 “무엇이건 국가가 해준다”는 정책이다. 이것도 해 주고 저것도 해준다는 포퓰리즘에 국민들이 현혹되어 있다.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이 국가의 돈을 타 먹고 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국가인가? 그리스, 칠레, 브라질, 베네수엘라가 그렇게 하다가 망했다. 


오냐 오냐 키운 젊은이들에게 지적이고 물리적인 능력은 키워 주었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과 자립성이 부족한 정신박약아로 키워온 것이 사실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남에게 주는 것을 모르고 받기만을 바란다. 책임을 남에게 돌리기는 쉬우나 자신이 느끼지를 못한다. 현 정부의 국민소득 성장 이론, 최저임금 국가정책, 재벌추방정책, 노동조합주도정책, 북한 퍼주기 정책, 국제외교의 고립, 미-중간의 무역관세 전쟁… 등으로 인해 한국의 경제는 하락할 것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차세대가 정신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너무도 허약하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이러한 미래관을 예견하지 못한 것도 실책이라 하겠지만, 어쩌면 불가피한 역사의 충돌이 아니겠는가? 


알고 있지만 개선의 방법이 요원하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에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물질문명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신교육 (인성윤리교육)이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는 나날이 더 뚜렷하게 미래역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지난 일이지만, 국가 중흥에만 열을 올리던 그 시대 그 시절이었기에, 실로 후예들을 위한 인성 교육을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겠는가? 


이제야 우리는 안다. 그 성급하게 쌓아 올린 탑의 밑뿌리가 얼마나 허약한 작품이었던 가를. 앞으로 “대한민국이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물질교육에 부응하는 정신교육(인성윤리교육)이다.” 


늦은 후회라고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지금도 늦은 것은 아니다. 역사에 늦은 것은 없다. 언제고 새로 시작을 할 수만 있다면 새 역사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인성교육의 시대를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 하는 결정이 미래의 문제다. 


인성윤리 교육정책을 펼치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앞날에 어떠한 미래관이 전개 될 것인가? 그 원인을 온 국민이 각성해야 한다. 인성윤리교육만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그 첫 번째 요인이라는 것을 속히 인식하는 세상이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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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ang39
강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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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설마’의 역사 500년(53)-인성윤리교육(人性倫理敎育)의 필요성(상)

 

 

 

 인성(人性)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사람의 성품”, 더 솔직히 표현하면 “사람 됨됨이”를 말한다. 국민의식 개조론이나 민족관념의 고취를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 사람 됨됨이가 제대로 되지 못했는데 그러한 고차원적인 개념은 다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성윤리교육이란 품격이 있는 전인(全人)적 교육을 의미한다. 전인이란 쉽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됨됨이”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 어떤 수리적 물리적 교육을 실시하기 이전에 사람의 품격과 됨됨이를 먼저 가르치는 교육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전인적 인성교육이다. 


물질이 풍부한 문명시대에,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교육내용이 바로 이 “인성윤리교육”에 있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다.


 인성윤리교육은 우리의 역사, 전통, 예의, 애국애족의 사회와 가정중심의 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이다. 윤리교육은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지켜온 삼강오륜 (三綱五倫)이나, 세속오계(世俗五戒)나, 효문화사상(孝文化思想)이나, 인의사상(仁義思想) 같은 것이 모두 이 분야다. 


서양의 물질문화를 맹종하는 교육이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전통적인 것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오늘날 세상이 점점 사악해지는 것은 인성윤리교육의 결핍에서 유래한다.

 유태인들은 13세가 되기 전까지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인성교육에 치중한다. 사람 됨됨이를 먼저 만들고, 그 이후에 수리교육, 물질교육을 실시한다. 이것이 우리와 다른 교육방법이다. 


훌륭한 인성의 바탕 위에 이 세상의 일을 가르치고 넣어 준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의 이러한 교육방법은 아주 고루할 정도로 엄격하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은 인성교육은 없고 어려서부터 대뜸 물질교육, 수리교육을 실시한다.


사람 됨됨이는 텅 비어 있는데 물욕, 탐욕, 색욕을 부어 넣는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부조리 현상이다. 혼탁한 세상이 전개되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보다 물질의 가치를 더 귀중히 여기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람을 토막살인을 하고 그 시신을 개천에다 버려도 죄책감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 됨됨이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정신이 아주 썩어진 것이다. 정신이 썩어진 현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 정신 썩음 병은 현대의학으로는 고치지 못한다. 이 병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길은 어려서부터 인성교육으로 사람으로서의 바탕을 잡아주는 방법뿐이다. 그 썩음 때문에 오늘의 사회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이 정신적 썩음 병은 아예 어려서부터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물질문명에 도취해서, 가지면 더 갖고 싶은 무한대의 욕망을 채우려고 지독하게 생존경쟁을 한다. “많이 갖는 것이 삶의 힘이요, 보람이요, 능력이다.”는 자본주의 공식에 도취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뛰고 또 뛰는 세상이 되었다. 


삶의 가치를 사람 속에서 찾지 아니하고 물질 속에서 찾으려 하니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맛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인간의 고독을 느끼고, 외로움을 타령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정 내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손녀 세대가 남처럼 살아가는 것이 이민사회다. 언어의 불통, 윤리도덕의 결핍, 문화의 상이성이 그렇게 한 지붕 아래에서 다른 이질성의 삶을 만들고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6.25사변을 겪고 4.19와 5.16을 치른 세대들은 인생의 외로움이나 인성의 결핍증 같은 것은 모르고 자랐다. 전쟁통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기아선상에서 잔뼈가 굵어진 세대들이기에 문화적 사치성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사람들이 오늘날 젊은 후예들로부터 수구꼴통이란 천대를 받는 세대들이다. 하루 하루의 생존을 위해서였지만, 그래도 새롭게 생겨나는 자녀들을 위해서, 자기 몸 깨지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희생적으로 노력을 한 세대들이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의 무대에 우뚝 서는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내 자식들에게는 그러한 배고픈 비극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노력해온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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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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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강신봉 설마의 역사 500년(52)-아웅산 테러와 KAL기 폭파 사건(2)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의혹사건(Korean Air Lines 858 Suspicious Bombing)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UAE 아부다비를 경유, 한국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가 1987년 11월 29일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되어 탑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모두 희생된 사건이다.


한국의 국가안전기획부(KCIA)는 사건 직후, 이 사건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에 의한 폭파 테러사건으로 공식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이 사건 피해자 가족들과 인권 NGO, 종교단체, 언론에서는 사건 직후부터 여러 가지 의혹 사항을 제기한 바 있고, 2007년 한국 정부의 재조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의혹은 명쾌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자기 나라 정부를 믿지 아니한다. 믿지 않는 것이 아니고 종북세력이 그렇게 퍼트리고 악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종북세력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생존한 폭파범 김현희가 누차에 걸쳐 증언을 하는 데도 그것이 아니고, 남한 정부의 정치싸움 음모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우겨대는 것이다. 십 년이 지나서야 겨우 김현희의 말을 믿어 가는 세상이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염려된다. 


멀지 않은 날, 대한민국은 이렇게 역공 세력에 의해 공산화 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 때부터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사건,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 납치 사건,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 사건, 1987년 11월 29일 KAL기 사건 등 김일성의 대남 살해공작사건은 세계 역사에서도 지워질 수 없는 대형 사건들이다. 


이렇게 잔학한 사건으로 한국정부를 전복하려 하였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적화통일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김일성은 대남공작 정책을 변경하였다. 


 남조선에서는 지도층 몇 사람을 제거한다고 해서 국가가 전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국가의 엘리트 계층을 공산화시키는 이념적 지하공작정책을 수립하였다. 


고등고시 공부를 하는 고시원 같은 하부조직에 공작금을 살포하여 이념적 변화 정책을 심어 놓은 것이다. 그것이 소위 ‘김일성 장학금’이란 속칭으로 고시원에 뿌려진 지하공작금이다. 


오늘날, 이 장학금을 통해서 키워진 법조계, 정치계, 언론계 등에 흩어져 있는 인사들이 대략적으로 약 2,000명쯤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이 드디어 집권세력이 되었으며 바야흐로 한국의 정세가 복잡해진 것이다.


 70-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고시원을 출입하던 젊은 층들은 김일성 주사파 이념에 아주 가깝게 접근 되었고, 고시원과 연계하여 김일성 장학금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김일성의 주사파 사상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들이 결국 오늘날 종북세력의 뿌리가 되었고, 드디어 대한민국을 사회주의화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각계 각층의 지도급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실권을 잡은 대한민국은 아주 이상하게도 세계의 추세에 역행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로 서서히 방향을 틀어가고 있다. 설마 종북이념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던 일이 결국은 현실화 된 것이다.


자본주의적 자유 민주주의는 대한민국 땅에서 종북세력의 협박을 받고 있으며, 공포감을 느낀 시민들은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현 단계에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풀려갈 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이 위험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북한정권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 설마 그들이 남의 나라에 가서 까지 그렇게 폭탄 테러를 하고, 비행기를 납치하여 폭파하는 살인마들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는 모두 남한 정부와 국민들은 물론 자기 국민들의 인권마저도 동물처럼 취급하고 기분 나는 대로 폭파하고 살인하는 것을 식은죽 먹듯 한다. 도끼만행, 서해 해전,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악마들을 달랜답시고 퍼다 준 돈은 얼마고, 지금에 와서 뻔뻔한 얼굴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파기하겠다고? 남북 화해를 하자고? 


판문점에서 김정은이 문재인과 정상회담을 한답시고 웃음을 던지니, 대한민국 국민들은 김정은을 귀엽다고까지 평하고 있다. 북한 정부나 김정은은 거짓 말과 속임수의 명수다. 


고모부와 큰형을 어떻게 죽였는가? 자기의 심복들을 140명이나 처형하였다. 그는 정권유지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독재라 해도 그런 독재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종북세력은 이승만, 박정희를 민족의 역적으로 몰기에 게거품을 흘리지만, 김정은에게는 절대로 욕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이미 김정은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설마, 설마를 믿고 있는 엉성한 대한민국의 선량한 동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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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2
설마의 역사 500년(51)-아웅산 테러와 KAL기 폭파 사건(1)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은 1983년 10월 9일에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의 암살조가 미리 설치한 폭탄이 터져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 정찰국이 기획한 폭탄테러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기타 수행원들이 부상당하였다. 사건 직후 대한민국의 대통령 전두환은 공식 순방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경과


 1983년 10월 8일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전두환은 공식 수행원 22명, 비공식 수행원 등을 대동하고 동남아 5개국의 공식 순방길에 올랐다. 미얀마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순방의 첫 방문지였으며, 이 날은 미얀마의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에서 참배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10월9일, 부총리 서석준을 비롯한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들은 행사 준비 및 예행 연습을 하고 있었고. 같은 시각인 오전 10시, 전두환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출발한다. 예행연습을 마치고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를 한 서석준을 비롯한 수행원들은 오전 10시 26분에, 전두환 측근으로부터 무전 연락을 받아 "차량 정체로 인해 전두환 대통령이 약 30여 분 뒤에 지연도착" 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한번 더 애국가의 예행 연습을 한다. 


 그런데 미리 대기해 있던 폭탄테러 용의자 중 1명인 신기철은 전두환 대통령이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첩보를 통해 파악한 상태였고 예행연습 중에 나온 음악을 듣고 전두환이 도착했다고 오인하여 오전 10시 28분에 미리 설치해 두었던 폭탄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이 폭발로 예행 연습 중이던 경제부총리 서석준과 수행공무원, 기자를 포함하여 17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한다. 전두환은 차량정체로 인해 애당초 도착 예정인 10시 30분에서 30분 뒤인 11시에 도착했다. 따라서 30분에 정상적으로 도착을 했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다. 이후 전두환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한다.


사건 이후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 성향으로 대한민국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가까운 국가였으나 자국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묘역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에 대해 격노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국교를 즉시 단절하였다. 


또한 미얀마 경찰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의 범인 3명 가운데 신기철을 인근에서 사살하고, 처음에 진씨라는 성으로 알려졌던 김진수와 강민철 두 명을 체포하였다. 김진수는 1986년에 사형이 집행되었고, 강민철은 미얀마에서 복역 중이었으며, 2008년 5월 18일 53세를 일기로 중증 간질환으로 사망하였다. 사건 당일로 전두환은 모든 순방길을 취소하고 특별기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파편화된 시신들은 수습되었으며, 현장에서 희생된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은 합동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이 사건으로 미얀마를 포함한 서사모아 등의 국가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수교를 단절했고, 비동맹국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발언권이 약화되었다. 


한편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가을 축제를 모두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KBS, MBC 등의 방송국은 쇼 및 오락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방송 일정을 취소하고 보도프로그램을 방송하였다.


 이후 29년간 대한민국 대통령이 방문을 하지 않다가 2012년 5월 14일 베이징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마친 다음 이명박 대통령이 극비리에 미얀마를 방문하였고, 같은 해 10월 8일 미얀마 대통령인 테인 세인이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하였다.


 사망자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이계철 미얀마 주재 대한민국 대사, 김재익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 비서관,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부 차관, 강인희 농림수산부 차관,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 심상우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이재관 청와대 공보비서관, 한경희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 정태진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사(이상 17명)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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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5
‘설마’의 역사 500년 (50)-반공의식의 쇠퇴(5)

 
 

 

 

(지난 호에 이어)


- 평화올림픽이다. 북한도 손님인데 어떻게 대해야 하나?


 “손님으로만 대해주면 된다. 박수 치고 환호하게 되면 북한은 대한민국을 자신들이 장악했다고 선전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전술을 너무나 모르는 것 같다.”


- 현 정부 대북 정책은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 문제는 많이 연구하고 분석한 전문가들 얘기를 듣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어느 정부든 내 정권에서 이걸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빼야 한다. 다음 대로 넘긴다고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 서두르면 실수를 하게 된다. 북한은 절대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리 원칙대로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 김신조 “나는 체포된 공비가 아니다. 국방부가 바로잡아 주길”


 개인적인 얘기로 넘어갔다. 동료와 가족들 얘기를 하는 대목에선, 그렇게 무섭게 훈련을 받은 김신조였지만 눈가가 붉어졌다. “나는 체포된 것이 아니고 투항한 것이다.”


- 지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나?


“철길을 깔아야 기차가 달릴 수 있다. 관광지도 자원도 없는 한국이 북한의 도발 등 그 어려움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 철길을 만든 것이 박정희다. 잘한 건 잘한 것이다.” 


- 한국에 왔을 때 한국군은 어떤 상태였나?


“1968년만 해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이 한국보다 많았고, 군 훈련 운영 시스템 등도 북한이 앞서 있을 때다. 휴전선 방어도 북쪽과 달리 남쪽은 허술했다. 나는 1.21사태 이전에 두 번이나 휴전선을 통해 한국에 내려와 정찰작전을 수행하고 돌아갔다. 


당시 한국군에는 ‘유격’이라는 단어도 없었다. 방첩대에서 조사 받으면서 내가 북한에서 받았던 훈련과 전술을 알려줬다. 예비군도 그 때문에 창설된 것이다.


(1•21사태는 지금과 같은 한국의 방위 체제가 새로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그해 2월 육군 병사의 복무 기간이 2년 6개월에서 3년으로 늘어났다. 같은 해 4월 1일엔 예비군이 창설됐다. 모든 성인에게 12자리(지금은 13자리)의 숫자가 부여되는 주민등록증이 처음 발급된 것은 11 월이었다. 2년 넘게 효자동 방첩대에서 조사받으며 지내오던 김 목사는 군에 많은 정보를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4월 10일 풀려났다. 자유인이 된 것이다.)


 - 방첩대에서 풀려난 이후 사회생활 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정부에서 한국화약에 일자리를 만들어줬다. 2, 3개월 다니다 인천에 있는 화약공장 견학을 다녀와서 바로 그만뒀다. 만약 공장이 무슨 사고로 폭파되기라도 하면 바로 내가 뒤집어쓸 것 같았다. 폭파범 누명을 씌워 희생양을 만들까 봐 걱정됐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3년 후 이리역 폭파사고가 있었다. 도시가 잿더미가 됐다. 그게 그 회사 관련 사고였다. 계속 다녔으면 난 이미 (폭파범으로 몰려) 죽었을 것이다.”


 - 사회에 나왔을 때 사람들 시선은 어땠나?


 “난 지금도 지하철을 잘 안 탄다. 얼굴 알아보고 대뜸 ‘너 김신조지? ×××’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 때문에 군대 6개월 더 복무했다. 엄청 고생했다’며 화를 낸다. 처음 회사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욕 정말 많이 먹었다. 당시에 언론에 너무 많이 보도가 돼서 어른들 중에는 지금도 얼굴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 생계는 어떻게 유지했나?


 “이후 건설회사에 다시 취직이 됐다. 그리고 결혼을 했고, 아내 덕분에 신앙을 갖게 됐다. 1996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보강연과 신앙생활하면서 살고 있다. 이제는 아들딸과 손주 등 10명이 넘는 가족을 이뤘다.” 행복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다시 입을 여는 데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한국에서 행복을 얻었는데… 경기 파주 문산 쪽에 가면 적군묘지라고 있다. 1•21사태 때 숨진 동료, 친구들이 묻혀있다. 북한이 이제 그들의 유골을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가족 생각이 난다.”


- 북한의 가족은 어떻게 됐나?


“처음에 내가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다’고 했을 때는 북한에서 나를 영웅 대접했다고 하더라. 그러나 내가 안보강연 다니고 하니까 1980년쯤에 부모님을 고향인 함경북도 청진 시내 운동장에 세워놓고 1만 명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 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인민재판을 한 거지. 그 얘기도 몇 년 후에 청진에서 온 탈북자에게서 들었다. 7남매였는데 6명의 형제는 아예 행방을 알 수 없다. 여러 루트를 통해 수소문해 봤는데 북한에서 아예 주민등록이 말소됐다고 한다. 우리 가족의 기록 자체가 없어진 거지…!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 언젠가 고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보고 싶다. 그런데 통일이라는 것은 누구도 모른다. 그건 미래고, 빨리 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노력할 뿐이다. 아들딸과 손주들에게 고향집 약도를 그려줬다. 혹시 내가 쓰러지고 나서 통일이 되더라도 꼭 고향에 가보라고 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없나?


 “50년 전 나는 분명히 투항했다. 그런데 국방부 기록은 아직도 ‘체포’로 돼있다. 당시 군인들이 자신들의 공을 내세우기 위해 그렇게 기록했을 것이다. 내 아이들은 어릴 때 내가 ‘체포된 무장 공비’라는 교과서를 읽고 자랐다. 난 체포된 게 아니다. 국방부가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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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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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설마’의 역사 500년(49)-반공의식의 쇠퇴(4)

 


 

 


 

(지난 호에 이어)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한국과 북한 모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한 대통령을 직접 살해하려는 원시적인 도발이 핵개발이라는 치명적 도발로 바뀌었을 뿐, 남북간의 대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1.21사태 50년을 사흘 앞두고 서울 구로구 성락교회에서 김 목사를 만났다.


그는 “26세 젊은 총각 군인으로 한국에 왔는데 벌써 50년이 지났다. 이제 76세가 됐고 손주들을 포함해 11명의 대가족을 이뤘다. 나도 내 인생을 한번 정리할 시점이 된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 북한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


1.21사태 당시 북한군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 목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걱정부터 했다. 


- 50년 전과 지금의 남북 관계를 비교한다면?


“북한의 속성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는데 북한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생각만 너무 많이 바뀌었다.”


-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180도 바뀌었다.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에는 6.25를 직접 겪었던 사람들이 많았고, 늘 북한의 위협과 도발 속에 살았다. 그런 고난 속에서 나라를 지켰고 한국이 여기까지 왔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북한 정권에 대해 적개심이 없다. 오히려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늘고 있다.” 


- 50년이 흘렀다. 북한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북한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예전처럼 적화통일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이다. 요즘은 ‘한민족’이라고 강조한다. ‘한민족’에 대해 대한민국에 반대할 사람 얼마나 있겠느냐. 하지만 그게 잘못된 생각이다.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바뀌었지만 북한은 한 정권이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북한은 망할 때까지 절대 대남전략을 바꾸지 않는 다.”

 

 

 

 


그가 남파됐던 1968년은 1년 내내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남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북한이 김신조 등 특수부대원 31명을 보낸 1.21사태를 시작으로 이틀 뒤인 1월 23일엔 미국 해군 소속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에 나포됐다. 승무원 83명을 태운 채였다. 


미국은 동해에 항모와 함정 30여 척을 배치했다. 11월에는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 북한 특수부대원 120명이 침투했다.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해당한 9세 소년 이승복도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서울 광화문에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도 1968년이었다. 왜구를 물리친 충무공이 북한을 막는 국가의 수호신으로 등장한 시기였다. 


- 남북 관계가 긴박하다. 한반도 비핵화 가능할까.


“비핵화? 안 된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뭐라고 했나. 북한은 인민들이 풀을 먹어도 핵 포기 안 한다고 했다.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체제가 무너지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죽는 것이다. 


김정은에게 핵은 생존이다. 북한 지도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북핵시설 폭격 계획대로) 했으면 북한이 저렇게까지 가지 못했다. 이젠 붕괴가 안 된다. 북한은 이제 가질 것을 다 가졌다.”


-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보나.


“2003년도 6자 회담 때부터 잘못됐다. 나는 분명히 반대했다. 난 탈북자가 아니다. 북한의 군사전략과 전술을 훈련하고 분석한 사람이다. 6자 회담 자체가 핵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봤다. 필요할 때마다 빠졌다 들어갔다 하는 것이 공산주의 전략이다. 


-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단과 예술단 등 대규모 대표단을 보냈는데?


“북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북 체제는 선전.선동으로 유지된다. 국가적으로 선전.선동에 엄청 투자한다. 평창에 온 것은 오래 전부터 세워진 계획이라고 본다. 한국이 이명박 정부때 올림픽을 유치했을 때부터 계산한 거라고 본다. 먼저 핵 개발하고 올림픽을 통해 북한의 체제와 북한이 살아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선전하려는 계획이 서있었을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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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8
‘설마’의 역사 500년(48)-반공의식의 쇠퇴(3)

  

 

 

 

(지난 호에 이어)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마르크스와 레닌에 관한 책을 읽은 사람이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반공주의자들을 알아보냐고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겠죠." (로널드 레이건)

 


 한국의 주사파 학생들은 어떻게 태동하였나

 


1970년 – 1980년대에 대한민국의 많은 대학생들은 박정희 군사정부의 반공사상에 반항하여, K. Marx나 Lenin 서적을 가방에 감추고 다녔다. 왜냐하면 그 때에 그러한 책자를 공개적으로 가지고 다니면 금기서적 은닉죄로 반공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불온 문서를 몰래 구입하여 소유하면, 그러한 책을 갖고 있지 못한 학생들은 꽤나 부러워하기도 했다. 비밀리에 공산당을 연구한다는 것은 무언가 신비로운 학문을 연구하는 것으로 생각이 들던 때였다. 


인간 심리에 있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을 구태여 못하게 하면 더욱 호기심이 나고,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매력적인 심리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Karl Marx와 Lenin, 그리고 김일성을 연구하며 북한의 주사파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연구하지 못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으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 반공주의 학생들은 그러한 독존적 자부심을 가슴에 품기 시작하였다. 그 때의 그 사람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청와대를 점령하였고 대통령이 됐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주사파 쪽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의 그 사람들이 연구했던 그 공산주의 이념은 아주 완벽한 이념이라고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었고, 그러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이념은 착취 내지는 독점의 이념이라고 배타적으로 여겼다. 실로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그러한 생각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뇌리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상에서 공산주의 실험 70년의 결과는 실패작이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이를 자인하였고,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왔지만, 한 번 실패를 다시 회복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소련은 지금 무던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며, 경제적으로 후진국 생활을 감수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국가의 정치와 경제는 실험대상이 아니다. “해 봐서 안 되면 다시 하겠다”는 식의 정치나 경제는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로서, 절대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금기 사항인 것이다. 


삶이란 한 번 살고 가는 것이듯이 ‘지도자 노릇’도 한 번으로 지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한 지도자가 국가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여 실패를 하면, 실로 고생을 하는 것은 지도자 자신이 아니라, 온 국민이 그 짐을 다 같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소련이 바로 그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그 길을 따라가지 않기를 기원해 마지 않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 흔들고 있으니, 그 부작용이 말이 아니다. 정책마다 부작용이 따르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신조가 말하는 1•21사태


김신조 목사는 2017년 12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0년이 지났지만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북한은 망할 때까지 절대 대남전략을 바꾸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1•21사태가 일어난 지 50년이 지났다.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 살해를 목적으로 청와대 근방까지 침투했던 1968년 그 해는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등 한반도 전쟁 기운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다음은 김신조 목사의 증언이다. 


“ 1968년 1월 22일 오전 1시경. 영하 10도의 칼바람까지 몰아쳤다. 세검정계곡(서울 종로구)은 조명탄과 플래시 불빛, 확성기 소리로 가득 찼다. ‘나와라. 살려준다. 투항하라.’ 계곡의 바위 뒤 곳곳에 자리잡은 육군 30사단 92연대 소속 장병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무기는 수류탄 하나뿐이었다. 북한에서 가져온 총과 350발의 실탄, 13개의 수류탄은 도주 과정에서 인왕산 바위 밑에 숨겼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됐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수류탄 안전핀에 손가락을 걸었다. 수년 동안 훈련 받은 대로 자폭해야 할 시간이었다. 확성기 소리가 다시 귀를 파고들었다. ‘반드시 살려준다. 믿고 나와라’. 그래서 두 손을 들고 플래시 불빛을 향해 걸어 나갔다.”


김신조 목사는 탈북자 또는 귀순용사가 아니다. 1968년 1•21사태 당시 투항한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 부대 6기지 2조 조장(소위)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지시를 받고 남파된 특수부대 장교였다. 당성과 실력을 인정받은 엘리트 군인이었다. 투항 직후 기자회견에서 “왜 내려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말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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