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별들도 함께 살더라

srkang
421E6E2D-894D-4995-B4DA-7AE0411A576E
58050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5
,
전체: 7,453
강숙려

www.budongsancanada.com
기고글
메뉴 열기
srkang
강숙려
65522
10291
2018-04-15
외롭다고 울지 마라

 


삼라만상의 오묘한 조화를 인간이 감히 어떻게 짐작이라도 하랴. 다시는 봄 같은 것은 오지 않으리라 싶었던 찬 겨울을 이겨내며 눈을 덮어쓴 채 복수초가 피어 오르면, 설한폭풍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사군자의 도도한 매화가 드디어 피어난다. 이어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다투어 피기 시작하고, 4월을 맞는 마음엔 벌써 벚꽃이 팝콘을 튀기듯 피어 오른다.


이렇게 시작되는 봄을 맞으면 농부들의 손길은 바빠지기 시작하고 내 마음도 손길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는 지렁이를 내고 흙들이 살아 움직인다. 작년 가을에 떨어졌던 씨알들이 파랗게 솟아오른다. 생명력이 강하디 강한 풀들은 한 여름 내내 나와의 씨름을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봄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면서 또 다시 겨울이 오고, 인생의 봄날도 사계절을 보내듯 겨울도 온다. 


바람이 몹시 부는 어느 봄날 꽃들이 몸살을 하고 있었다. 누군 가에게는 아내요, 엄마요, 딸이 될 그 여인은 외롭고 슬픈 밤을 보내면서 앓다가 결국 소천 하였다는 소식이 왔다. 누구든 언젠가는 한번은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이겠지만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여인을 오늘 상기해야 하는 이유가 나에겐 있다. 중년에 그녀의 팔자타령을 우연한 기회에 내가 듣게 되었고, 그 이후 나와는 마음을 나누면서 공유하는 비밀 아닌 비밀을 가진 특별한 관계로 지내 오게 되었다. 유달리 외로움을 타는 그녀를 위한답시고 나는 위로와 격려의 말로 ‘외롭다고 울지 마라’ 라는 말을 곧장 써서 때론 ‘그래그래 외롭다고 울지 마란 말이지’ 먼저 되뇌이며 공격을 해 오기도 하여 웃기도 하곤 하던 사이였다.


그녀가 투병 중 먼저 소천하고 보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난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천성 여자였는데 자기는 엄마 팔자를 닮아 청상이 되었다고 푸념을 곧잘 했다던 그녀. 그러나 자기가 혼자가 된 한참 후에야 엄마의 외로움을 알았다고 스스로를 탓하며 엄마에게 미안해하던 그녀가, 하늘로 외롭게 떠나고 보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었지만 ‘외롭다고 울지 마라’ 했던 지난날이 이제 후회가 많아진다. 


혼자라는 것은 슬프고 외로운 일이다. 누구든지 자기 운명이 될 수 있는 그 일이지만 아무도 받아들일 자세는 갖지 못한다. 그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아야 한다. 자유로워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미련하여 한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흘러가는 물도 물고를 틔어주면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팔자를 고친다는 말이 있다고 생각된다.


타고난 팔자가 정녕 있다 하더라도 팔자대로 흘러가지 말고 우리가 고쳐 길을 만들면 된다고 나는 믿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길을 찾아 물고를 틔며 살아왔다.


누가 무어라나 귀를 세우기도 했지만 누구도 내 길을 열어주지는 못하였고, 위로와 격려마저도 삼자여서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오직 내 믿음으로 내 길을 개척하는 일만이 스스로가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생명 있는 모든 물체는 환경에 적응한다.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이랴! 


외롭고 슬퍼도 울지 말기다. 꿋꿋이 서서 하늘 향해 두 팔 들고 나아갈 일이다. 세상은 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죽을힘이 있으면 살아볼 일이다. 뜨락엔 봄 꽃들이 화창하다. (2018.0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5424
10291
2018-04-05
내일이란

 

내일이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보면, 내일이란 참으로 귀중하고도 애틋하고 간절한 시간 속의 이름이다. 내일!!


오늘은 나의 시간으로 받지만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신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일이다. 신이 내일을 주실 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어둠은 도처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고 위험은 언제든지 우리를 덮칠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보면 우리는 죽음으로 날마다 한 걸음씩 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아등바등 살아가는 일이 죽음으로 다가가는 길인 것이다. 세월을 죽이고 있고 시간을 잡아가는 일인 것이다.


며칠 전에 사랑스럽고 고운 여인이 세상을 떠났다. 투병을 하고 있긴 하였지만 함께 차를 마시고 우리 집 텃밭에서 푸성귀를 뜯어가며 웃던 여인은, 이제 다시는 그 고운 웃음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믿기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홀로 남겨진 그녀의 남편을 보면 제대로 격려도 할 수 가없었다. 산 사람은 또 아픔을 견디며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겠지만 한번 간 사람은 그리움만 남기고 사라져간다. 내일은 신기루처럼 우리를 비춘다. 내일은 희망이고 그리움이다. 


요즘의 세대를 흔히 내일이 없다고 한다. 얼마나 아득한 말인가. 비전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면 어둠인 것이다. 희망이고 그리움인 내일을 잃어버리면 아득한 절벽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요즘엔 자주 눈에 보이게 됨이 심히 안타깝다. 


결국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인 사람들이 많다. 듣기만으로도 부끄러운 일들을 스스로 만들어서 자기 감옥에 스스로 갇힌 사람들. Me Too운동의 주인들이다. 내가 보기엔 내일이 없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가족들을, 친지들을,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결국 죽음을 택한 자는 그래도 부끄러움을 아는 자가 아닐까 싶다. 내일이 없음을 알고 죽음으로 간 것일 것이다. 죽지 못한 자는 어둠이라도 내일을 희망하며 변명하는 자 일 것이기에, 그래도 침을 뱉지는 말자. 어떤 이름으로든 심히 불쌍히 여겨버리자. 내일은 신이 주시는 것이기에.


일을 하다 보면 매듭이 풀리지 않아 영 형통치 못할 때가 더러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날엔 일단 멈추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멈춘 후 원인을 찾다 보면 길이 열리게 될 때가 있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내가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속담을 새겨 들어야 한다. 우리에겐 내일이란 신이 주시는 좋은 날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 참되고 선한 싸움으로 세상의 악을 이겨 나가야 한다. 그래야 내일의 빛난 날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8. 0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5328
10291
2018-03-29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선물

 

 

받아서 기쁘고 줄 수 있어 기쁘다면 그 기쁨은 즐길 만 하리라 여겨진다. 선물하면 비싼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선물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아 또 주고 싶고 또 받고 싶은 것으로 고른다면 좋을 것 같다. 이른 아침 이슬처럼 싱그러운 한 묶음의 꽃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싱그러움으로 인하여 며칠을 즐거움의 향기로 살게 되리라 여겨진다.


몇 년 전 그 해 여름과 가을로 이어 흰 눈꽃송이가 내리는 겨울이 되도록 내내 나의 거실엔 향기로운 꽃이 번갈아 꽂히기 시작하였다. 우연히 나의 시를 읽고 가슴으로 받아 나를 찾게 되었다는 고운 여인이 백합 세 송이를 들고 왔다. 그때 나의 눈엔 수줍은 듯 미소하는 네 송이의 백합이 들어오나 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인연은 진한 향기를 내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보름이나 한 달쯤으로 새로운 향기의 꽃을 들고 와 나와 담소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풀어 놓았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꽃을 고르고 향기를 맡으며 찾아온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볼우물을 예쁘게 지으며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그래서 즐거움의 엔돌핀을 가질 수 있다면 그녀의 행복한 순간을 뺏을 수는 없는 것이라 본다. 나 또한 그녀의 맑은 태도에 기쁨을 느끼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작은 한 송이 꽃이지만 주고받으면서 기쁨이 피어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를 위하여 꽃을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은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일이므로 행복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복권 두 장을 선물해 왔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왔다. 만약에 행운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우리는 석양이 내리는 배란다의 티 테이블에서 그 이야기로 한참을 즐거울 수 있었다. 돈이 많아지면 그 만큼 여유가 있게 되는 것이니 필요한 만큼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린 어디에 주고 어떻게 주고 다 퍼주고는 두 손을 털고는 한참을 즐거울 수 있었다. 


오래도록 즐거움이 기억에 남을 좋은 추억을 그녀는 선물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 지혜로운 여인이라 여겨진다. 나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세월이 지나기 전에 좋은 배필을 선물하고 싶다. 그녀의 향기에 꼭 맞는 배필을 그녀가 나를 위하여 꽃을 고르듯 나도 눈 여겨 고르고 싶다.


흰 눈이 소복이 내린 크리스마스 전 날에 동경에 있는 막내 딸아이에게서 가벼운 상자의 소포가 왔다. 나는 딸아이가 곁에 있기라도 한 듯 중얼거리며 자리도 옮기지 못한 채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서 급하게 딸아이를 보듯 속에 것을 뽑아내고는 환성을 질렀다. 


그 속에는 크리스마스 츄리와 여러 가지의 소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하루를 나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루돌프의 방울이며 요술공주의 빗자루며 천사들의 나팔과 별들을 매달아 놓느라고 완전히 동심의 소녀가 되어 엔돌핀을 생산하고 있었다. 


곁에서 아들이 우리 엄마의 기쁨은 아무도 못 말린다고 웃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츄리는 내 거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그 겨우내 기쁨을 주었었다. 마침 간밤에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캐나다 특유의 츄리로 변해 있었다. 어딘가에서 루들프의 방울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아침이었다.


때맞추어 알맞은 선물은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 선물이란 꼭 물건이 아니어도 좋다. 지나가는 아름다운 말의 선물도 때론 물결이 일 듯 큰 기쁨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편지의 다정한 글귀 한 구절도 마음에 훌륭한 무늬를 놓을 수 있는 선물일 것이다. 서로에게 기쁨이 되면 나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저녁 늦은 이 시간에 나는 한 통의 팩스를 받았고, 원고 정리에 머리를 들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던 가슴에 출렁이는 물결 같은 연정을 퍼내어야 했다. 누구인지 기억해 낼 수가 없어도 좋다. 받아서 기쁘고 보내는 쪽에서도 기쁨이었으리니 우리는 서로 성공하고 있는 것이라 여긴다.


 “그대를 생각하고 있으면 향기 같은 것이 날아오지요. 그대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황홀한 향기를 내는 존재입니다. 나는 그 향기에 늘 취해 있습니다.” 감사하다. 한 장의 팩스는 이 밤, 더 바랄 것 없는 향기로운 선물로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5234
10291
2018-03-25
길 위에서 길을 떠나다.

 

 

진정한 내 삶의 길을 찾으려면 두 번의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고 한다. 첫 번째 여행은 나 자신을 잃는 것이고 두 번째 여행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행에는 여러 종류의 길을 연상하게 된다. 행복한 연인과 목적지 없이 떠나도 좋고, 가족 간에 오순도순 떠남도 좋으리라. 


그러나 마음의 슬픔이나 고뇌를 안고 아프고 쓰리고 나를 잃어버리고 싶은 길 떠남의 여행도 있을 것이다. 갈급한 삶이 나를 찾아왔다면 더욱 그러할 때가 있으리라 여긴다.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나고 보면 언제나 그때가 참 좋았구나 싶을 때가 종종 있게 된다. 나 역시 오십대 초를 어렵게 지났었다. 꼭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위로를 길 떠나는 일로 채워갔었다.

새벽이고 밤이고 훌 떠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던 그 시절, 떠나고 또 떠나도 지칠 줄 모르고 나는 길 위에서 산 적이 많았다. 가다가 마음이 머무는 곳에선 하루도 지내고 이틀도 지내면서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었다.


무엇이 급하였던지, 아님 꼭 자기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는 듯이 우리 곁을 유유히 떠나 하늘 사람이 된 그 사람. 그 사람을 찾기라도 시작한 듯이 국내의 방방 곳곳을 그냥 누비고 다녔었던 그 시절이, 그렇게도 아파서 울며 다녔었던 그 때를, 지금은 아련히 그리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실소를 금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이게 인간이지 싶다.


그 시절을 여행이었다고 한다면 어폐가 있으려나? 아무튼 눈물을 뿌렸던 길인만큼 많은 경험도 하였고 위로도 받았었다. 첫 번째 떠남에 있어서는 그냥 나를 버리려, 나를 잃어버리려 길을 떠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해가며 나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사는 길 친구도 만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날이 더러 생기기 시작했었다. 


나의 그런 행동이 때론 사치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것도 알게 되었던 그 시절. 어떻게 인간이 겸손해져야 하는 지를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참 많은 것을 배우며 느끼며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나의 마음자세도 공부했던 것 같다. 한번으로 족하다 여긴 삶의 자세를 서서히 바꾸어 나가기 시작하였고 오늘 나는 캐나다에 정착한 영 캐네디언이다. 이제는 한국에 가서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머니가 계시니 오직 그것이 끈이 되어 있을 뿐, 어머니마저 저 세상으로 가시고 나면 나는 과연 한국을 찾을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리움으로 남을 것 같다. 내 유년이 있고 아이들이 자라던 모습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이 세상과의 결별로 여기고 싶다. 내가 크리스천이라서 꼭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무덤은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때마다 찾아가야 하는 산소를 자식들의 어려움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내가 가기 전에 그 사람의 산소도 정리해주려 한다. 물론 나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이 처음엔 낭패스럽게 여길지 몰라도 언젠가는 다행으로 여길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세상 잠시 잠깐 소풍 왔다가 가는 것인데 가는 길이 깨끗하여야 정신도 맑게 떠날 것이라 여긴다.


남은 내 여행지는 이 세상에 태어나 여러 인연을 맺고 아름답게 살다가, 주어진 내 삶의 무게를 다하고, 그 분이 주신 사명을 이루어 ‘잘 했다’ 칭찬 받는 여정을 넘어 훌훌 떠날 수 있는 여행이 되길 기도한다. 그래서 그 분의 나라에서 영생복락하길 기도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5124
10291
2018-03-18
공부(工夫)를 시작하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글로벌(Global) 시대에 발맞추어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잠깐 멈추다간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으로 취급 받기 일쑤가 될 것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기도 하다. 하긴 쌍둥이도 세대차이가 난다고 하는 시대고 보니 무어라 변명을 하리오 싶어진다. 하여 나도 도전장을 던져본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하여 준비해야 할 당면문제는 게으름에서 벗어나서 용기를 갖는 일이었다. 늘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어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용기를 갖는 일이다. I can do it! 나는 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백세시대라는데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합당한 날을 모낼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려 한 것이다. 


 공부란 미래의 꿈을 향하여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기 개발을 위하여, 자기 경영을 위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님을 알기에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시작해 두고 있는 것도 많다. 아직 다 읽지 못하고 책갈피를 꽂아둔 채 덮여있는 책들, 쓰다 둔 수필, 완성되지 못한 두어 편의 시들이 책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젤에는 그리다 만 오로라가 펄럭이고 있고, 티비 앞 탁자엔 뜨다만 뜨개질 감이 얹혀있다. 내가 움직이는 반경 내에서 앉으면 잡을 수 있는 일거리를 두려는 속셈으로 계획한 일이다.


그래도 나는 무언가 더 배우기를 꿈꾼다. 종이접기도 배웠다. 손녀들이 오면 할머니와 놀아줄 거리를 찾기 위하여서다. 남편이랑은 오목도 두고, 다이아몬드 게임도 즐긴다. 그러고 보니 많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편이다. 


사실 나의 24시간은 바쁜 편이다. 산에도 가야하고 수영도 해야 하니 얼마나 바쁜가. 그런데 이 와중에 서예를 시작했다. 80년 때 초에 붓을 놓고 30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붓을 잡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나이 더 들어 움직이기 힘들 때 집안에서 조용히 하는 것으론 제격이라고 부추기는 친구등살에 시작은 했지만 진도가 나갈지는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등불 삼아 본다. 


재수 없어 120살을 산다면 큰일이라는 말들에 참 씁쓸해 진다. 결코 오래 산다는 것이 좋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열심히 내 일을 하다가 좀 더 살아도 되는데 아쉽다 할 때에 가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이런 말로 생각에 잠기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섭섭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직은 살날이 많이도 남았으니 게으름 부리지 말고 무엇이든지 도전하는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엄두를 못 내는 것이 있으니 어쩌랴. 영어다. 그 놈의 것은 엄두가 안 난다. 수 백 번 시작했다가 끝을 못 보는 것이 내 한계다. 몰두하여 사전을 찾다 보면 신바람이 나서 아, 하면 되겠구나 싶다가도 좌절의 잔을 마시고 멀리 떠나 있는 나를 만나면 스스로 기가 죽는다.


용기가 부족한 탓이다. 내 한계에 기가 죽는 탓이다. 그러다 보면 I can do it! 은 멀리 가고 기 죽은 내가 가엾게 쭈그리고 있다. 정말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영어권에서 태어나리라. 꿈에서도 루루랄라 영어로 꿈을 꾸고 싶다. 


캐네디언 할머니들은 유난히 친절하고 곱다. 친구가 되자고 찾아오는 분들이 더러 있지만 움츠려진 얄미운 내가 손사래를 치고 있으니 어쩌랴. 오늘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용기를 잃지 말자. 도전하자. I can do it! 아자아자~. (2018. 0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4926
10291
2018-03-08
이 보시게

 
이 보시게

 

 

여기 미스 김 라일락 연보라 꽃잎이 
봄비에 젖어 돌아 눕는다.
말없는 초목이라고 어디 아프지 않으랴
이민의 땅 바람 흙 이슬인들 어디 내 땅만 하랴
아픈 가슴 달래며 아버지 깃발 펄럭이길 엿듣는다.

 

이름마저 뺏기고 국적 잃은 
제파니스카멜리아 제파니스레드파인 제판이스채리 제판이스메풀 
제판이스 블라블라 라 불리어지는 내나라 동백 내나라 해송 
내나라 벚꽃 내 조국 단풍 등 무엇 무엇.
아픈 가슴 달래며 허기진 꽃술을 열어 숨을 쉰다.

 

이 보시게!
우리의 것을 뺏기고 있는 분통 나는 이 일을 기억하게
나라를 훔치고 우리의 혼을 말살하려들던 그들의 만행을 
어린 소녀들의 꿈을 짓밟고 멀쩡한 우리의 영토를 
자기들 것이라 말하는 그 뻔뻔한 모습을,
이제 우리의 산천에 푸르게 퍼져 살든 내나라 나무들마저 
가져다가 자기들 이름으로 세상에서 살게 하는 
이 억울함을!

 

IT산업이, 한류가 물결치면 무엇 하랴! 
우리의 자동차가 거리를 자리하여 얼마나 기뻤든가 
그것이 다 무엇이랴 나라 밖을 나와 보라 
국력이 얼마나 이민의 가슴을 울고 웃게 하는지를
위정자들은 오로지 각성할 일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건축가의 초석이 되어야 하는 일인 것을.
아직도 세월호 노랑깃발을 가슴에 단 위정자 
그들을 보면 멀미가 인다. 

 

만능 안일주의에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할 일이라
국민 각자가 회계하고 반성하여야 할 일이라
이제 일어나자 고국이여
말이 없다고 입도 없는 것이 아니다
꽃 이름도 찾아오고 우리의 혼을 불러오자
이민의 땅 이 불모지에서도 우리의 얼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이 몸부림에 맞는 네가 되어다오.
아버지 깃발 펄럭이는 푸른 하늘이 되어다오.

 

 

 

***대한의 하늘은 분노의 하늘이다. 저 검붉게 타는 노을 앞에 우리의 각성은 피를 토해야 한다. 여기 나는 이민의 땅 한 모퉁이에서 초록나무를 키우며 살아간다. 때때로 내 조국의 이산 저산에서 자생하던 토종 꽃들을 대하며 깜짝 깜짝 놀란다. 


 그리고 억울하다. 왜 그 이름이 다 일본 이름인가에 대하여서. 너무나 먼 태고에서 울음 우는 조국의 선진들에게 혹은 자신들에게 호소한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고, 산업체가 있어야 개인이 있게 된다는 것을.


나라의 자존심도 자신의 자존감도 스스로 지켜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자. 스스로를 팔지 말고 서로 사랑하여야 하는 일 명심하자.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3277
10291
2018-02-13
인생은 부메랑인 것을

 
                                                                         
세 명의 도적이 부잣집으로 도적질을 하려고 계획하고 어느 날 그 집을 갔습니다. 곡간엔 금은보화가 가득하여 큰 자루에 가득가득 채워 짊어지고 온 도둑들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로 수고하였으니 똑 같이 나누기로 했습니다. 자축연을 열기로 하고 제일 어린 도독이 술을 사러 산을 내려갔습니다. 남은 두 명의 도독이 앉아서 모의를 합니다. 


“저 놈을 죽여 버리고 둘이서 나누면 우리의 몫이 커지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둘은 살인 준비에 매장 준비까지 다 해놓고 기다립니다. 


한편 술을 사러 내려간 어린 도둑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두 놈을 죽여 버리면 다 내 몫이 되겠구나” 그래서 술에 독약을 타게 됩니다. 그리고 태연하게 올라옵니다. 기다리던 도둑들은 어린 도독이 올라오자 말자 목을 졸라 죽여 암매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형 먼저 아우 먼저 술을 마시고 다 죽어 버렸습니다.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두는 부메랑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철학을 잘 계획하여 첫발부터 마지막까지를 잘 경영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부메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던진 것을 자기가 받으며 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부메랑의 법칙은 *멀리 던지지만 되돌아와야 한다. *상상을 초월하게 갔다가 되돌아와야 한다. *던진 자리에서 그대로 받아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젊은 날엔 아이들이랑 야외에 나가서 놀던 놀이 중 하나입니다. 맨발로 잔디 위에서 뛰놀던 기억이 모두들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연습이었습니다. 하하 호호 웃으며 놀던 기억과 함께 우리는 인생을 공부했고 공부하며 나아갑니다.


멀리 이민자의 삶 가운데서 일 년에 한번 고국에 들어가는 일은 퍽이나 사치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10년 혹은 20년이 지나도 아직 한 번도 고국에 가 보지 못했다는 분이 많다 보니 뜻밖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부모형제를 만나고 지인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지만 돌아와 보면 무언가 찜찜함을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한국은 서로에게 느끼는 상대적 빈곤이 잠재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 잘 살고 있으면서도 더 잘 살려고 경쟁하는 것이 눈에 보여 서로가 괴로운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메랑의 법칙을 어기고 던지기만 할 줄 알았지 그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부작용이 집안에서, 이웃 간에서, 나라 안에서 온통 법이 없는 듯 보입니다. 모두들 자기울타리만 알고 자기생각만 옳다 여깁니다.


나는 내가 안주하고 있는 캐나다가 참 좋습니다. 법이 확실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법만 잘 지키면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라도 일 년 내내 행복합니다. 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양심 있게 산다는 것이 됩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엔 절대 귀를 기울이지도 손을 대어서도 안 됩니다. 


봄이 되면 또 다시 나를 유혹할 고사리가 아무리 살찌게 올라와도 절대 꺾지 않아야 합니다. “아유 고와라”하고 꽃을 바라보아야 서로가 다 볼 수 있어 아름다운 날이 이어지고, 늘 새로운 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가 지켜야 할 법입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7. 1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3196
10291
2018-02-04
정리된 삶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할 시간이 된 것일까? 고희를 넘기면서 참 많이 산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되지만 역시 아닌 것 같음은 우스운 일인가?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인생은 예로부터 70을 살기가 힘들다고 해서 한 말이며 줄여서 고희(古稀)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래 살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도 이제는 옛 말이 된 것 같다. 어제 인터넷 상에 오른 말을 들어보니 요즘은 60세부터 75세까지를 신중년이라고 한다니 그 말에 또 한 번 실소를 담게 된다. 세상은 참 빠르게 달라지고 그에 맞추어 사람도 급히 맞추어 따르고 있는 것 같다.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우리 앞을 3세대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본다.


‘47년생 내가 진양 강씨 양반가의 첫 손녀로 세상에 나올 때만 하여도 마당엔 머슴들이 오가고 부엌어멈이 부산을 떨며 아씨의 시중을 들던 때였다. 머슴이 업어서 학교를 데려다 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로봇이 업무도 대신 해주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


인간 수명도 120은 살아야 제 나이를 사는 거란다. 살기 좋은 세상인가? 무서운 세상인가? 좋아만 할 일인가? 


친구들이 모이면 이제는 걱정이 아니게 걱정이 되어야 하는 걱정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다르다는 말이 나와 나도 처음 듣게 된 말이다. 요양병원은 죽음과 달리 치료 가능한 노인환자들이 재활을 꿈꾸며 있는 곳이고 요양원은 요양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한 노인들이 하루하루 평안을 위하여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식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그땐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자식이 있어도 이제는 병석에 누운 부모를 돌볼 자식은 더 없다는 얘기다. 더 앞선 문제는 귀찮아 구박할 자식 곁보다는 스스로 요양원을 택하여 먼저 들어가는 것이 옳다는 이구동성의 의견이다.


자기 돈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꼭 쥐고 요양원에 미리 들어가 친구 사귀고 편안한 안식을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엔, 나도 동참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고희란 나이는 이러한 나이인가? 마음은 아직도 꽃-다지를 따는 청춘의 봄 같은데도 늙은이라는 말이 가당한가? 통념이 주는 나이와 본인이 갖는 나이는 늘 상충한다.


‘내 나이가 어땠어,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야’ 한창 유행하던 노랫말이 생각난다. 그 노래 역시 스스로 부정하고 긍정을 가지려는 노력의 노래이고 보면 늙어진다는 것에 대한 저항의 몸짓인 것일 것이다. 


중국의 철강성 경제계인물 왕쥔야오 회장은 380억 원(19억 위안)의 예금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 이후 부인이 남편의 운전사와 재혼을 하게 되고, 그 운전사가 말하길 “예전에 나는 왕 회장님을 위하여 일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야 왕 회장이 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니 듣기에 따라 기가 막히는 일이다. 무엇이 최선인지를 먼저 알고 살 일이다. 


필요와 불필요를 알고 사는 일이 최선이라 여겨진다. 최고급 핸드폰 사용 중 70%, 최고급 승용차가 낼 수 있는 속도 중 70%는 불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인생의 70%를 다 헛된 일로 시간을 버린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나를 찾아 일할 일이다.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말고 서로 돕고 사랑하며 남은 시간을 잘 정리하며 떠난 후의 뒷자리가 맑고 깨끗하게 살 일이다. (2018.1.8)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3110
10291
2018-01-25
별 중에 가장 슬픈 별은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 잠깐 생각에 젖게 된다. 아주 색다르지 않은 작은 순간을 생각하게 되고는 웃게 될 것이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을. 눈 녹은 물. 눈 물.


그럼 소가 웃는 소리를 세 글자로? 우, 하하! 이게 정답입니다. 사는 일 더러는 웃으며 서로를 바라볼 일이다. 밤사이 안녕이 어디 빈말이던 가요? 한치 앞을 모르면서도 큰소리치며 사는 것이 인간이고 보면 한 세상 사는 일 헛방 딛는 일인 것이다.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경험은 숱한 실수를 저질러야 천천히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뛰어가면 넘어지기 십상일 뿐이다. 천천히 걸어가며 찬찬히 생각할 일이다. 


세월은 원래 긴 것이지만 사람들은 늘 바빠서 스스로 재촉하여 한 세상을 길다 짧다 하며 시간에 매여 사는 것을 본다. 결국은 누구나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함을 알면서도 잊은 척 혹은 잊은 채 천년을 살고 싶다 한다. 세상 것들을 놓기 아까워서 그러할 것이다. 재물 혹은 명예, 사랑과 정. 


놓는다는 것은 곧 그것과의 이별이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건만, 꼭 쥐고 나온 손 때문인가? 빈손이면서도 꼭 쥐고 있어 펼 수 없었던 아기들의 손이 참 있었지. 왜 그렇게 펼 수 없도록 쥐고 있는지? 세상 것 움켜쥐려 나온 것인가? 아무리 움켜쥐려 하여도 이 세상 떠나는 날엔 결국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인 것을.


새파랗게 젊어 새 신랑 같으시던 쉰 넷의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젊은 작은댁을 두고 홀로 가셨다. 어머니의 슬픔도 작은댁의 슬픔도 나름 다른 슬픔으로 철철 흐르는 눈물로 이별의 강을 건너고 보면 결국 한세상 사는 일 혼자 가는 길이다. 


나의 한 분뿐이신 숙부님은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하셨으나 내외분이 정이 좋아 비둘기 같으시더니, 겨우 쉰을 넘기시고 간암으로 숙모님을 두고 또한 홀로 가셨다. 붙들지도 잡지도 못했다.


슬픈 일이 어디 그 뿐이랴. 뜻하지 않은 일들은 언제나 우리를 슬픔에 빠뜨리기 위하여,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것처럼 분별없이 닥치기 마련이다. 사별은 남은 자의 아픔으로 오래도록 상처로 남는다. 


어디 이별이 사별뿐이랴! 젊은 청춘의 헤어짐도 이별이요. 서로의 앞날을 기약하며 잠시 떨어짐도 이별이니, 이별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슬픈 일이다. 이별의 정거장은 늘 슬픔으로 가득하다. 나를 세우기 위하여서는 때로는 이별이란 아픔도 친해질 수 있어야 내일을 살수가 있다.


슬픈 이별은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하늘의 별은 사막의 모래알보다 더 많다 하였다. 밤하늘 가득한 별들이 어둠이 내리면 반짝인다. 못다 이룬 사랑으로 슬픔을 나누느라 반짝일지도 모르겠다. 


별 중에 제일 슬픈 별은 역시 이별이다. 이별의 색깔은 아마도 푸른 흰빛일 것이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애잔하고 찬 색깔이 아닐까 싶다. 놓지 못하는 것들, 놓을 수 없는 것들마저도 이 세상과의 이별 앞에서는 살아온 한 날이 헛방으로 남으리니, 어느 날 나도 반짝이는 별 중에 하나로 두고 가는 아픔 혹은 아쉬움으로 반짝이지 않을까.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rkang
강숙려
62894
10291
2018-01-10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세상이 각박해진 탓인지 너무 바쁜 탓인지 사람들은 계절을 잊고 사는가 하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늦게야 발견하곤 어머 꽃이 벌써 졌네 혹은 피네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만큼 모두가 삶에 지쳐 허우적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웃음을 잃고 사는 경향이 크다 여겨진다. 웃음처럼 우리를 여유 있게 하고 삶을 풍성히 하는 것도 없지 싶다.
2017년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며 이요셉 선생님의 웃음십계명을 상고해 보고 싶다.


펌프질을 할 때 물을 조금 넣어주어 펌프질을 하면 그 물이 땅속의 물을 퍼 올리는 마중물이 되는 것처럼, 웃음도 처음엔 쉽지 않지만 웃음의 근본이 될 억지로라도 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웃으라’ 라고 말한다. 


헛웃음부터 시도하여 억지로라도 웃다 보면 웃음은 웃음을 낳는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웃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남편을 쳐다보고 웃기 시작하였더니 영문도 모르는 남편도 왜 웃지 하면서 웃기 시작하고 정말 둘이서 서로 쳐다보고 웃기 시작하여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한참을 웃었던 기억을 상기해 보니 정말 타당한 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웃음은 우리의 몸을 깨우고 엔도르핀으로 가득 찬 몸과 마음을 만든다. 한동안 웃음으로 인하여 행복한 우리를 보게 되었다. 그 이후 때때로 우리는 그런 식의 웃음으로 훈훈한 하루를 갖게 되었다. 


또한 ‘이왕이면 크게 웃으라’라고 말한다. 크게 웃기 시작할수록 큰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기 시작하고 배짱까지 생긴다니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겠는가.


‘일어나자마자 웃어라’ 그러면 하루가 즐겁고 평강해질 것이다. 웃음은 보약 열 첩보다 낫다고 동의보감에서 허준선생이 말한 바도 있지 않던가. 


‘시간을 정해 놓고 웃어라’ 괜찮은 방법이다. 시간을 정해 놓고 웃으면 정말 행복을 예약했다가 찾아 쓰는 것과 같을 것 같다. 행복해지면 웃음이 절로 나오듯이 자주 웃기 시작하면 늘 행복해지고 미운 사람도 더러는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웃음의 묘약이다. 나 자신에게 주는 약이기 때문이다. 즐거워지면 따라서 행복해져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니 그러하다. 


웃음의 근육을 자꾸 건드려 근육화 되게 하여야겠다. 웃기를 생활화시켜 가면 내 삶은 웃음의 꽃으로 만발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손녀들에게 웃음할머니로 불리게 될 것이기에 그 날을 상상해 보며 즐거워져 웃고 있는 나를 보게 되어 기뻐진다. 


으하하하! 크게 눈물이 나도록 웃어보자. 웃고 살자. 좀은 헐렁하게 내 것을 흘리고 사는 사람처럼 살아보자. 웃음은 웃음을 낳고 웃음은 일파만파(一波萬波) 한 물결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듯 전염성이 강하여 마침내 모두가 웃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희망해 보며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 오늘은 곁에 있는 옆 지기를 쳐다보며 웃음으로 첫 시작을 하며 환히 크게 웃어보자.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 않던가! 


2018년 새해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를 걸어 놓고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해 볼 일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