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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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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supyoon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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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종교에 대한 비전문인의 노닥거림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은 정치인과 종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인이야 말로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세상의 방향을 잡아 틀기도 하는 무지무지하게 힘센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힘으로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들이건만 정치인들은 대부분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닌 비정치학 출신들이다. 


그래선지 그들 중에는 권력을 사적인 소지품처럼 써먹으면서 도무지 상식 밖의 이해 불가한 부정부패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이 예상외로 많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민주정치체제의 나라에선 정치인에겐 임기란 것이 있고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부적격자들은 퇴출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아주 흥미 있는 점은 부적격정치인을 걸러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일반국민들, 곧 정치학에 대해 전혀 비전문인들이란 점이다.


 그에 비해 종교인은 전문교육을 받고 전문적 지식으로 전문분야에서 일하면서 그 전문성과 부여 받은 권한으로 인간의 정신생활을 관리 관할하고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어떤 경우를 보면 실로 인생 자체를 통째로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한다. 


실로 막강한 힘을 가진 직업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들 중에도 도무지 상식마저 건너뛰는 이상한 논리를 펴거나 이상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무런 재검과정 없이 그 직업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종교인이야말로 정치인보다 더 힘센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뭔가 모순된 현상을 보노라면 그런 모순이나 악폐를 제어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 하나가, 그게 종교에 대해서 전혀 비전문적인 사람들이 종교에 관해서 또는 경전의 내용에 대해서 과감하게 노닥거려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종교와는 거리가 먼 과학자나 역사가나 언론인 같은 사람들이 순전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종교를 말해보고 경전을 논해보고 신을 이야기 해본다면 그러는 가운데서 보다 보편적인 어떤 종교관 경전관 신관 같은 것이 만들어져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관조들에 의해 종교인들이 말하거나 보여주는 도무지 이상한 논리나 행태들이 점검되고 걸러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내 생각엔, 인간이란 존재는 유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마음의 저 밑바닥에 내려가 보면 그 어떤 원초적인 것과 관계 지워져 있지 않겠나 싶다. 단지 삶과 죽음이란 존재적 한계상항 때문만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실존적으로 거처하는 사회의 현장에서 소위 선과 악이라는 것, 의와 불의라는 것, 사랑과 미움이라는 것, 이롭고 해롭다는 것 등등과 잠시도 빗겨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인간의 존재적 한계성과 실존적 불가피성에 대한 자각과 그리고 그런 것들과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유익관계성을 언어화 한 것이 경전이고 행태화한 것이 종교의례가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 때문에 거기까지는 좋은 것이라고 본다. 


한데 문제는 종교의 그 아리송한 면을 인간의 이해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희화화시키거나 편파화시켜서 심지어 그걸 사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데 심각한 폐단이 있다고 보아 진다. 바로 그런 잘못된 편집성을 막는 방법의 하나가 위에서 말한 종교에 대한 비전문인들의 노닥거림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나는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내가 죽은 후에 갈 나라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인간의 두뇌로선 어느 누구도 경험해본 일이 없는 어떤 공간적 ‘나라’를 실재하는 나라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종교가 종교라는 이름을 빌려서 인간이 결코 경험할 수 없고 또 인간의 두뇌가 표현시킬 수 없는 그 어떤 나라를 언급하고 강조하는 것은 내 견해로는 종교로서의 본질에서 벗어나도 한 참 벗어난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종교란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마땅한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고 연습하고 필요하면 토론도 하고 그래서 그것을 생활로 나타내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행위다. 해서 필요하면 기도도 하고 경전도 읽고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부르고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종교란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인간의 두뇌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전혀 불가해한 영역으로 유혹하거나 빠져들게 하는 것은 종교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이 크리스마스 계절에 우연히 TV에서 요즘 가짜뉴스가 엄청나게 횡행한다는 뉴스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을 적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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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supyoon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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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1
2017-10-27
‘나그네가 되십시오’

 

올해는 마르틴 루터가 개신교를 개혁한지 5백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해이다. 정확히 말하면, 루터는 종교를 개혁(revolution)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교를 개혁(reformation)한 인물이다. 그는 강력한 성경주의자로서 당시의 교회(가톨릭)가 면죄부를 파는 등 잘못된 관행에 젖어있는 것에 반기를 들고 성경의 본래의 정신과 노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폈던 것이다. 


 그가 외골수 성경주의자임을 입증하는 한 예로, 그는 당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것은 성경의 내용을 파괴한다고 해서 코페르니쿠스를 강력히 비판했다. 물론 당시 지동설을 반대한 것은 단지 루터만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면에서 볼 때, 루터는 종교적으로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어도 사상적으로는 개방적이라고 평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는 희랍사상 같은 것은 거부했거나 무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글의 제목 ‘나그네가 되십시오’는 도마복음에 나오는 말이다. 모두 114절로 되어있는 도마복음서는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인 도마(Thomas)가 전한 복음서라고 하는데, 그 중 제42절은 고작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그네가 되십시오’”란 짧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기적, 재림, 종말, 부활, 심판, 대속 등의 어휘가 거의 나오지 않는 도마복음서를 읽어가다 보면 마치 노자의 도덕경을 읽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예수의 행적이나 말씀을 기록한 문서는 원래 네 개의 복음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훨씬 많은 종류의 글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로마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의 신조와 경전내용을 통치이념으로 사용할 마음을 먹고 성서의 통일을 요청함에 따라, 교회가 공의회(니케아 공의회 325년)를 열어 여러 다양한 복음서들 중 네 개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모두 폐기처분했다고 한다. 


 도마복음서도 그렇게 폐기처분당한 책인데, 일부 교도들이 다른 여러 복음서들과 함께 항아리에 담아 땅 속에 묻었던 것을 1945년 어느 날 이집트의 한 농부가 밭갈이를 하다가 항아리를 발견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도마복음을 ‘또 다른 예수’란 책으로 풀이한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위 “나그네가 되시오”를 “집착에서 해방되라”는 말로 볼 수 있다면서 “우리의 인습적이고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생활방식이나 사유방식을 뒤로하고 새로운 차원의 삶, 해방과 자유의 삶을 향해 출발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설해 놓았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신도 알게 모르게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위에서 루터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냉정하게 보면 그가 성경만이 절대진리라는 절대편견에 얽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당시 루터의 자리에 예수가 있었더라면 어쨌을까 생각해보면서, 요즘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만일 예수가 오늘을 살아간다면 그도 동성애자를 거부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훈계나 교육적 훈련으로 바꿔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섹스와 관련된 것이라서 도덕적 관념 면에서 수치스러운 바가 없진 않지만, 그러나 마치 빨간 머리카락이나 파란 눈처럼 그가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차원에서 만이 아니고 교회차원에서마저 그들을 죄인으로 취급한다. 


 세상은 쉬지 않고 변하고 발전한다.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새로운 이론들이 끊임없이 산출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새로운 사실과 이론에 힘입어 더 풍요롭고 더 자유롭게 살아간다. 창조의 세계에 절대진리가 없지 않겠지만, 그러나 피조물로서의 우리의 삶은 상대적 리얼리티 가운데서 영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이런 저런 편견이나 아집에서 되도록 벗어날 때 우리는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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