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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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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byungyong
유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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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7
2018-05-16
동무생각(思友)(3)

 

내 어릴 적 소중한 친구여!


고국 산천에는 지금 진달래, 철쭉이 지천으로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중이라네. 그간도 잘 지내고 계신가?


먼저 답신이 늦어서 미안하네. 공사간 바삐 돌아다니다 보니 차분히 글을 적기 어려웠음을 널리 이해하여 주시게나. 자네가 정성으로 써서 보내준 편지와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가족사진들, 좋은 추억의 글도 잘 읽어보았다네. 


친구, 보내준 사진에 비친 친구의 안정된 이민생활, 그리고 자녀교육에서 성공한 모습을 전해주었기에 지난 세월 온갖 어려움을 오롯이 이겨내고, 노신사가 되어 나를 다시 찾아준 친구가 한없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네. 오늘 다시금 전화로 밝고 건강한 음성을 들려주시니 더욱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라네. 


편지에서도 친구의 어릴적과 조금도 변함없는 어진 인성과 고운 마음결이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고마웠다네. 특히나 어릴적 내가 느끼었던 친구의 그 다정하고도 그윽한 마음씨, 어른스러운 배려심이 되살아나서 마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 행복하였다네. 


친구! 나이 들어갈수록 행복의 비밀은 아주 단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네. 그건 바로 비록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함을 나누며 살아가는 순간순간들이 아닐까? 


사람의 삶 속에서 이런 소박한 행복을 나누며, 서로 공감이 일어날 때만큼 좋은 감정이 있을까 싶구먼. 따뜻함과 든든함, 연대감 등등… 연애의 감정보다 더 뿌듯하고 흐뭇하였다네.

 

 

 ~~~~~~~~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친구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내 어릴 적 소중한 친구여!

 


노산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이 정다운 노래 "사우"를 아시는가? 언제 들어도 좋은 곡일세.


가사와 같이 정말 멋진 모습으로 이국 땅에서 모진 세월 다 견디어 내고 멋지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나의 고향 동무와 함께 하는 이 복된 삶 속에서 어릴적을 떠올리면 금새 모든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네.


친구, 중학시절 어여쁜 처녀 선생님(000 음악선생님)을 기억하시는가? 지금 75세이신데 가끔 모시고 식사도 하는 인자하고 고마운 은사님이시지. 


근데 몇 해 전,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네. 이민 가서 워싱턴DC (Virginia)에 사는 노래 잘 하는 우리 1년 선배 000씨(음악경연대회에서 1등 수상) 그립다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부탁하시더구먼. 어찌어찌 수소문 끝에 찾아 알려드렸더니, 글쎄 일부러 그 멀고도 먼 미국 버지니아로 찾아가셔서 그 옛날 불렀던 수상곡 "가고파"를 함께 부르시며 감격의 시간을 나누셨다지 무언가?


누구나 노년엔 추억을 먹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 내가 역시 친구와의 추억에 젖어 하염없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언제 서울 오실 기회는 없으신가? 나도 캐나다 출장 기회라도 만들어 꼭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구먼.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고 또 연락하겠네. 늘 건강하시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인자하신 부인과 더불어 보람찬 나날 엮어가시길 비네. 굿~나잇!

 

과천에서 00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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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byungyong
유병용
65868
14217
2018-05-09
동무생각(思友)(2)

 

(지난 호에 이어)

 


 보고픈 친구여,
 지난 2주간은 약간의 불안과 설렘 그리고 다시 큰 기쁨과 환희를, 실낱 같은 기대와 한편 일말의 조바심 가운데 가파르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격정의 순간 이었다네.


이제 인생의 연륜이 쌓인 탓인지 아니면 인간 본연의 회귀본능이 작용하였는지, 얼마 전부터는 옛 시절이 아련히 그리워지며 나의 출생시부터 자라온 온 과정을 뒤돌아 보는 마치 명작의 영상을 감상하듯 되돌려 보기를 하는 그런 습성이 생겼다네.


그러던 중 중요한 장면을 또 한번 되돌리는 과정에, 바로 그 자리에 친구 ‘ㅇㅇㅇ’ 란 이름이 나의 마음을 꼭 붙들고 말았다네. 


친구, 근 반세기 동안을 무심히 잊고 살았던 이 부족한 사람을 너그럽게 받아주기 바라네. 하지만 한번 그대의 생각이 떠오르자, 그때부턴 왜 그리도 마음이 조급하던지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 검색에 친구의 이름을 치고, 혹 전화번호나 메일 주소는 없는지, 수십 번을 검색하고 또 반복하기를 셀 수 없이 하였네만.


마침내 친구의 블로그에 회사 전화번호를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그 번호가 꼭 살아있길( ? ) 소원하며 시간에 맞춰 다이얼링을 하고, 드디어 친구의 휴대전화 번호를 친절한 여직원으로부터 받게 되었네(요즘은 세태가 험악해 아무에게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없는 시절인데, 고맙게도 그 여직원의 현명한 맘 씀씀이 덕에 행운을 얻었다네). 나의 이 고마운 뜻을 전해 주게나.


그렇게 갈망하던 친구와 ‘전격’ 비록 전화기를 통하기는 하였지만 서로의 목소리를 나누며 만남을 갖고 보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개가 무량하였던지 그 마음을 다 설명하기 어려울 뿐이라네.


전화를 통하여 내가 보낸 메일을 알리고, 바쁜 일상 탓에 짧은 대화를 마친 후 친구의 답신을 기다리는 그 한주간이 내게는 왜 그리도 멀고 더디게만 느껴 지던지, 언제부터인가 젊은 열정이 식은 탓인지 그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는데.


 실로, 오랜 세월의 벽을 관통한 극적인 통화에서 그 무수한 시간들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목소리가 전혀 낯설지 않게 내 귀에 와 닿는 그 점도 새로웠고, 친구의 억양이 진정 나의 옛추억을 새록새록 되살려 주었으며, 아울러 나 자신도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르는 지난 세월 나의 삶, 나의 궤적들을 한 조각 한 무더기씩 일깨워주는 자네의 그 세밀한 기억의 보따리가 놀랍고 경이롭기도 하였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친구의 그 깊은 인성 속에 간직해 있던 나에 대한, 우리가정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관심, 보잘것없는 이 사람에 대한 애틋한 우정 (심히 무익한 나에 대한 과분한 인상 등), 내 일찍이 보아왔던 그대의 인품이 지금껏 고이 지켜져 온 것이 진정 나를 기쁘게 하였다네.


정녕 그대와 전화 상면을 하고 나는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흥분을 하였던지 아마도 어린 시절에나 느껴 보았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내 가슴을 격렬하도록 일렁거리게 하였다네.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하여준 친구, 진실로 고마우이…이젠, 앞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간 못다한 우리의 우정을 잘 되살려 보자꾸나. 난 어릴 적 꿈이 그 시절 하도 고생을 하여서 그랬는지, 좀 풍요롭게 사는 것과 또 한가지는 우리 가정이 순탄치 못하여 나의 오롯한 바램은 ‘Sweet Home’을 이루는 것이었다네.


이민 오기 전 나름 열심히 치열한 삶을 살아오며, 어느새 가정을 이루고선 그런 소망을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하지만 나의 생각이 더 성숙하여진 것인지 그것으론 나의 인생이 진정 행복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새로운 바람, 하루를 살더라도 참 사람답게 물질을 뛰어넘어 참 가치 있는 삶을 살아 보자는 소박한(어찌 보면 절대 소박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으로 이민을 하게 되었다네…


그렇다고 이곳의 삶이 유토피아 같은 그런 삶은 아니라네, 자네도 알겠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어디든 고충과 애환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사실 나의 경우엔 경제적으론, 이곳에서의 삶이 한국에서 살았던 과거에 비하면 5분의 1 아니 그 이하로 형편없이 떨어진다네.


하지만, 상기한 대로 경제적인 것만을 인생의 가치로 정하지 않았기에 이민의 삶을 그렇게 후회하거나 되돌릴 생각은 아직까진 없다고 말할 수 있네. 그저 큰 욕심 없이 자족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삶이라네.


 내가 너무 나의 미흡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을 용서해 주시게, 친구의 지금의 모습을 내 아직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의 느낌엔 지금의 친구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가정과 사회, 그대를 아는 모든 구성원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족한 이 사람은 감히 말할 수 있다네.


내 일찍이 친구의 됨됨이를 잘 알아보지 않았겠는가? 나의 벗이여, 나의 허물을 너그러이 덮어주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서 글을 맺으려 하네, 이제 여유롭게 생각나는 대로 만나 보기로 하세.


광수에게도 나의 소식을 전해주게나, 전화번호나 멜 주소도. 내가 부족하여 좋은 친구를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지 못한 점 크게 뉘우친다고 전해주시게. 친구와 가족 모두의 건강, 행복을 기원하면서

 

-리치몬드힐에서 병용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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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용
65773
14217
2018-04-27
동무생각(思友)

 

 

옛친구 00兄 前,


벗이여 나를 기억하겠소? 유병용(劉秉鎔)이라고, 아주 먼 옛날 65~67년여 간에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서 잠깐 살았고, 학교는 감곡중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칠 즈음 그만두고 집안 사정상 서울로 이주하였던… 그때 나의 부친이 감곡 지서에 근무하시어 지서 근처에 살았었고, 친구도 근처에 살았던 걸로 기억되기도 하고.


 한가지 확실히 추억되는 것은 친구가, 그때는 해마다 실시되는 교내 ‘반공(反共)’ 웅변대회에 나아가 ‘육이오’를 주제로 웅변을 하였던(외쳤던) 사건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다는 것이오. 그 내용이 이렇게 시작되었던 같으오. ‘. 잔잔한 호숫가에 집어던진 하나의 돌이 온 호수를 메아리 쳐나가듯 청천벽력과도 같은 삼팔선 전역에 걸친 육이오 불법 남침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후 몇 수년이 지나, 서울에서 친구가 OO대학에 다닐 때 우연한 기회에 잠깐 재회하였던 기억이 지금 가물가물 하기도 하다오. 그러고서는 지금까지, 근 사십 수년을 서로의 소식(생사)을 모른 채 긴 세월 동안 단절이 되었으니. 국토분단의 비극도 아니고, 이 무슨 인생의 장난이란 말이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나는 가끔은 옛 시절을 떠올리며 아울러 친구 그대의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오. 얼마 전 어린 그 시절이 그리워 옛 정취와 옛 친구들을 더듬어보던 중 친구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인터넷 인물검색 창에 OOO 세 글자를 쳤더니, 아아 반갑게도 OOO란 인물이 뜨는데 너무 오랜 세월 격세지감 탓인지, 처음엔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친구인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오.


 그래 몇 번을 더 확인해보니 친구의 얼굴이 40~50년의 시간을 유추해 보아도 확실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더 검색해보니 친구의 블로그에 옛 시절 감곡, 매괴성당 사진과 그 시절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여러 차례 뒤져본 다음 친구의 전화번호나 아니면 이멜 주소라도 찾으려 했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오. 인내 끝에 친구의 옛 친구와의 서신교환을 찾아 간신히 이멜주소를 알게 되고, 오늘은 마침내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오.


 블로그를 보니 친구는 과천에 살고, 지금은 부동산 감정평가사란 사업을 펼치며 열심히 살아 그 분야의 큰 역할을 하는 귀한 자리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소. 나도 실은 친구를 생각하며, 비록 긴 세월을 함께 하지는 못하였지만 어린 시절에도 친구의 모습에서 가볍지 않은 어떤 저력과 진지하고 결연한 생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예견해 보았었소. 그러한 나의 기대가 이렇게 현실로 입증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기쁘고 대견한 일이오.


나는 지난 97년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한 후 21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오. 그곳을 떠날 땐 사십 중반이었는데 지금은 시니어로 불려지는 네 손주들을 본 할아비가 되었구려.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둘 다 결혼하여 아들은 현재 한국에서 미국계 금융회사 한국지사에 근무하며 그곳에 십년 째 살고 있고, 딸도 한국에 나가 십 년을 살다 그곳에서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약 한달 전쯤 사위와 함께 네 식구가 이곳으로 막돌아 왔다오.


둘 다 이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 아들은 유학생 며느리를 맞아 그곳으로 갔고, 딸도 한국생활을 하고 싶어해 그곳에서 십년을 살다 이제야 회귀하게 되었소.


나는 한국에서 어쩌면 내 인생 사업적인 면에서는 가장 정점인 사십 중반에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오. 이곳의 삶은 고국에서와 같이 왕성한 사업과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지는 못하나 그저, 조용히 자유롭게(?) 내 삶을 영위해 나가는 소박한 삶을 누리는 그러한 생활이라오. 지금 거주하는 곳은(Toronto G.T.A) Richmond Hill이라는 곳이고…


나도 이곳에 오기 전 과천 4단지에서 6~7년을 살다 일산 신도시에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아 5년을 살고 그 다음 이곳으로 오게 되었소. 과천은 나도 좋아하고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오.


 거의 반세기만에 이렇게 그대 앞에 나오니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수월하지가 않구려, 오늘은 예서 줄이고 우리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오. 이곳 우리 집엔 한국 070 전화가 있어 통화가 부담이 없으니 가능하면 내가 보내는 이 번호(000-0000-0000)로 전화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오. 친구의 전화번호를 보내주면 나도 전화로 통화할 수 있을 것이오.


 두서없이 횡설수설한 것을 양해해주기 바라며, 친구와 가족 모두의 평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난필을 줄이오. -유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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