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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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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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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4
꿈의 현실(The Reality of the Dream)(7)

 

 

(지난 호에 이어)


진기가 폭포를 배경으로 하고 진지한 얼굴로 뭔가를 낭송하고 있다. 그러나 거세게 내리는 폭포물소리에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훗날 그가 써준 것을 읽어보니 그것은 이렇다.

 

 

시냇물에
빠진 달이 
물에
젖지 않음은, 
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에 섞이지 않음이라. 
누가
이 도리를 알겠는가?**

 

 

그는 즉석에서 자신이 물속에 있음에도 젖지 않음과 저 멀리 눈앞에 펼쳐지는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섞이지 않음을 비교하여 즉흥적으로 파악하여 말한 것이다. 


그리고 끝 줄은 스님들이 읊는 게송의 한 줄로 많은 게송에 나오고 또 인용한 것이다. 마치 흰 구름을 누구나 읊어도 저작권 침해에 상관 없듯이 선가에서 이 한 줄을 누가 써도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훗날 내가 놀란 것은 진기가 자신의 살가죽이 물에 젖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연이 마음이라는 물, 즉 순간 순간에 수 없이 들고 나는 마음의 물에 젖지 않은 순간을 알아차리며 그것을 자신의 시로 표현한 재치인 것이다.


나에게도 의연히 내가 놀란 것은 진기가 처음 건넨 그 시를 읽으며 그 뜻대로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후로 어느 순간에 혼동이 온 것인지 그의 몸이 젖어 있었는데, "젖지 않음"이란 대목에 뭔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진기의 "물 속에 빠진 달"을 그리며 전에 들어 왔던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라든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서 와 같이 "진주"와 "달"이 진리나 본연을 가리킨다는 것으로 이해될 때 진기의 그 물속에 빠진 "달"을 그 자신의 본연을 가리킴이 즉시로 이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온청이를 생각하며 아래와 같은 시를 쓴 것이다. 온청이의 분연한 이타적인 행동을 보아온 것이 나에게 어떤 영감으로 작용한 것이리라. 

 

 

그렁께,
거시기 그 머시냐, 

귀머거리 벙어리가 헌 말인디 

말이 이 말이여, 

 

바깥
세상은 어쩔 수 없나니 

안에서라도 바른 
마음씨를
내가 지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아픔과 후회가 
남을
볼 수 있는 눈이 될 것이니 
주저 없이
용서 할 것이라 

 

나의
아픈 겨울의 고민에서 
그리고,
나의 올곧은 행동에서 

봄이 피어 나는 것이리니 

 


몸도 내가 어쩔 수 없을 것이나 
그래도
내 마음만은 
내가
가꾸어야 할 것이라.***
 

 

 

지으며 쓰면서 고치고 고쳐 쓸 때 온청이의 성난 얼굴과 뭔가의 기쁨에 젖어 환히 웃는 얼굴이 몇 번이고 겹쳐와 지나 갔을까?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oung2017
유길영
73504
9196
2019-04-17
꿈의 현실(The Reality of the Dream)(5)

 

 

(지난 호에 이어)
그리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내 여기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를 지날 때, 내 마음은 '가난한 노래'에 멈추고 있었다. 무엇이 '가난한 노래' 일까? 왜 가난한 노래일까? 장엄한 노래나. 그리고 왜 노래인가? 가난, '가난'을 무슨 의미로 이육사 시인은 쓰고 있을까? 이 시인께서 '가난'에 부여하려는 의미는 무엇일까?


 싯달타는 아내와 아들과 그리고 물려 받아 갖게 될 왕좌을 버리고 깨달음의 길에 나섰다. 아직 둥근 달빛이 자신과 하얀 빛 백마를 비추고 있는 이른 새벽, 싯달타는 하인 찬탈라가 대령한 그 빛의 말 위에 올라탔다. 


싯달타와 찬탈라와 흰 빛 말은 천천히 강을 향하여 걷고 있었다. 네란자의 강 기슭에 도달하자 싯달타는 그 흰빛 빛의 말에서 내렸다. "찬탈라, 이 칼로 내 긴 머리를 잘라라!"

싯달타는 칼을 찬탈라에게 건네면서 말 하였다. 길고 기름진 머리카락 뭉텅이가 어떤 감정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싯달타의 발아래 떨어졌다. "찬탈라 네 옷과 내 옷을 바꿔입자." 


차가 덜컹하고 튀었다가 다시 달려 나갈 때 "나"는 어떤 "의식"이 드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체류탄 냄새에 섞이어 나는 *묵향을 들이 마신다. 누이와 붓으로 먹물을 뿌리며 싸우던 기억이 확, 내 의식에 들어온다. 떨어지는 매화 꽃잎을 받아 드는 누이의 하얀 손이 슬로우 모션으로 비치며, 그 손으로 붓을 잡고 내 하얀 저고리에 먹물을 뿌리는 것이다. 먹물의 내음이 코에 스미고 그 먹향이 누이의 방안에 나는 기억이 선연히 떠오르며 그것이 화선지 위에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 때가 이런 날이었다. 누이가 하얀 화선지 위에 그리던 난초 위에 내가 붓에 가득 머금은 검은 먹물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누이가 화가 난 것이다. 나는 그런 험한 장난을 여러 번 했는데 그때마다 누이는 나에게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다정하면서도 엄중히 타이르곤 했는데, 화내지 않는 누이를 시험하고 싶었는지 나는 그런 짓을 또 한 것이다.


 이제 내 눈에, 내 의식에 검은 먹물이 붓끝에서 서서히 커지다가 누이가 그리는 하얀 화선지 위의 난초를 향하여 아주 천천히 떨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먹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배경에 있는 사물들이 뚜렷이 내 의식에 들어 오다가 안개처럼 희미해지며 그 먹물 방울이 선명히 내 의식에 들어 천천히 떨어진다. 마침내 그 먹물 방울이 누이가 그리는 난초 잎들 사이의 하얀 평면 위에 떨어지며 산산 조각의 작은 검은 방울들로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 


그 때 누이의 화난얼굴이 나를 향해 치켜들어 올린다. 누이의 고운 머리 결이 바람을 안고 넘어지듯이 제쳐지며 옆 모습이 천천히 보이며, 그리고 정면 얼굴이 나를 차갑게 쏘아보며 일어선다. 그리고 마-악 난초의 다른 선을 그리려고 붓에 가득 묻힌 먹물을 나를 향하여 뿌리며 덤벼들어 그 붓을 나의 하얀 저고리에 그어댄다.


 순식간에 내 의식에서 묵향이 걷히고 천천히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가던 그 영상이 최루탄 내음 속에서 재빠르게 다시 한번 지나간다. 나를 싣고 가는 앰브런스 차가 덜컹하며 지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 앰브런스에 실려가고 있는 것이다.


 찬탈라의 옷으로 바꿔 입은 싯달타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모이는 것을 느끼니 강변에 불어오는 새벽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싯달타는 머리카락 한 움큼을 쥐어 찰탈라에게 주며, "이것을 아버님께 드려라. 그러면 내 뜻을 알아차리실 것이다." 


찬탈라는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에 서녘의 새벽 별빛이 묻어 반짝이며 떨어진다. 마침 한 사공이 배를 저어 이 언덕 기슭으로 다가와서 멈추고 있었다. 이제 싯달타는 그 배에 오르고 저편 강 언덕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앰브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귀에 들려오더니 거세게 흐르는 폭포소리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진기와 함께 폭포 아래서 수영하며 물싸움하고 있다. 우리 서로가 뭐라고 외쳐대지만 정확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서로가 이해하며 소통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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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73415
9196
2019-04-10
꿈의 현실(The Reality of the Dream)(5)

 

 

(지난 호에 이어)
선생님께서 어떤 무한한 세계로, 내가 아직 발 디디지 못한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어떤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눈물"이라는 단어가 내 생각을 눈물로 범벅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물"이라는 단어가 나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하고 있었다. 마치 하얀손 누이의 눈에서 고이는 느낌으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들이 들어와 나가고 혹은 그 이미지들이 가슴속에 남아서 그 이미지들이 다른 이미지들을 불러오기도 하겠지요. 그런 것은 고무할 만한 참 좋은 현상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면서도 짧은 순간에 그런 것을 문장화하여 말로 하기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떠오르는 이미지 그리고 가슴속에 도사리는 그 이미지들과 같이 일어난 감정들을 고이 간직하며 또 음미하기 바랍니다. 이런 일로 시를 읽는다는 것이 여러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지요. 시를 읽고 낭송하고 경청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의미가 보람으로 느껴지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 후에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학기 초에 말했지요. 이 학기의 최종 점수를 받기 위하여, 학기말 고사와 함께 1)자신이 쓴 시 한편과 2)그 시와 다른 시인의 시 한편과 비교하며 쓴 에세이 하나씩 제출해야 한다고."


그 순간 나는 '아 ㅡ 재미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누구의 시를 고르고 그리고, 나는 어떤 시를 쓸까?'. 그때부터 나의 고심 '무엇을 쓸까'는 진행되고 있었다.


 아스라히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그때 내가 지은 시와 에세이를 쓰기 위하여 고른 친구의 시가 어렴풋이 그리고 점점 선명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아직 자신들의 시를 써놓지도 않은 채, 비교하여 쓸 시를 고르고 있었다.


 "진기야, 너 누구 시를 고를 것이냐?" 나는 물었다. 그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응 ㅡ 골랐어. 아직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하고 웃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근데 아직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게 말이 돼, 읽어 보지도 않았다니? 어떻게 읽어보지도 않고 정할 수 있어? 그나 저나 너의 시를 지어 놓기나 했냐?" 나는 물었다.


 진기가 대답했다. "응 ㅡ 저기, 저 흰 구름과 파아란 하늘,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고민 중이야, 선언을 해야 할지 속삭여야 할지를." 그의 표정과 제스처로 봐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쓰지, 나는 무엇을 쓰지, 나는 무엇을 쓰지?' 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시궁창에 넘어지는 순간, 바보 온청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온청이를 바보라고 부르는데, 바보처럼 순수하다고 느끼곤 하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온청이의 나이가 진기와 나보다 더 많다고도 하고 우리보다 어리다고도 한다. 그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어리광 부리듯이 먹던 것을 나눠먹자고 다가올 때는 우리보다 어린 것 같고, 그가 화가 나서 달려들 때는 우리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것으로 느꼈다. 


그가 화내는 일은, 누군가 약한 아이를 놀려먹거나 때릴 때이다. 그럴 때 분기하며 달려들어 막아주는 것이다. 그는 누가 말려도 듣지 않고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치며 달려들어 약자를 보호하려 드는 것이다. 그의 미소와 화난 얼굴이 귀머거리와 벙어리의 이미지로 연상되어 왔다. 


그 순간, 아 ㅡ 온청이를 시로! 그러면서, "진기야, 너는 하늘과 구름 ㅡ 자연을 쓰고, 나는 사람 ㅡ 사람의 마음을 쓴다." 나는 시궁창에 빠졌다 일어나면서 말하고 있었다. 


내 젖은 꼴에 진기가 우스워 바라보며, "응, 그래 ㅡ" 하였다. 진기는, "나는 너의 그 시와 비교하여 에세이를 쓸 거야." 하고 말한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며, "나도 네 것과 비교하여 쓸 것이야!" 라고 말해버렸다. 


우리는 아직 쓰지도 않은 서로의 시를 비교하여 에세이까지 쓴다고 말해버렸다. 


아스라히 다가오는 체류탄가스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 아스라히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낭송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근엄한 선생님의 표정과 온청이의 순수하게 느껴졌던 모습이 겹쳐 연상되어 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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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73339
9196
2019-04-02
꿈의 현실(The Reality of the Dream)(4)

 

 

 

(지난 호에 이어)
그때 나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아마 '감상과 지음'이 같이 한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리라. 


열망과 영감이 만나서 이루는 노래, 아픔과 슬픔이 새로운 북소리가 되어 울리는 비장함이 흐르는 노래, 한이 어리어 흐르는 강의 노래, 기운차 흐르는 산맥을 광활한 대지가 바라보는 노래, 그리고 '내 여기 기백의 씨앗을 이 가슴에 뿌리노라' 라고 외치는 나의 목소리. 아마 다른 아이들도 자신들의 가슴 가슴에 그 시의 작자에게서 흐르는 기백의 씨앗을 그들의 가슴에 뿌렸을 것이다.


 알코올 내음이 아득한 매화향기처럼 밀려오고 선생님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자ㅡ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제 3연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에 대해 우리 함께 숙고해봅시다." 선생님의 맑고 근엄한 목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왔다.


 등굣길, 개나리 피는 봄에 부는 봄바람이 보리밭 위에 파도를 그리며 지날 때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가 떠 올랐다. 함박눈이 진녹의 보리밭에 내리는 것이 연상되었다. 하얀 눈송이가 푸른 보리잎 녹색 끝에 닿자마자 사라져버리는 풍경이었다.


 그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선생님께서 "누가 이 연을 한번 읽어 보겠는가?" 하시었다. 잠시 고요함이 흐르고 있는데, "제가요" 하며 제천(帝天)이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제천이는 항상 싱글벙글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괜히 수줍어 하고 쑥스러워 하는 아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차례가 오면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그런 아이다. 그런 제천이가 수줍어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할 때 어떤 아이들은 키들대며 웃곤 하였다.


 선생님께서 "응ㅡ 제천이 읊어라" 하셨다. 아이들이 조용히 그를 응시하며 듣는다. 제천이가 "흠ㅡ"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라고 소중한듯한 목소리로 읊었다. 


보통 수줍어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 할 때와는 달리 그의 목소리에, "또 다른 제천이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의 목소리가 "끊임없는 광음을" 말할 때 내 마음에서 낮과 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연상 되었다. 순식간에 연상되는 광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눈 내리는 들판, 꽃 피는 대지, 출렁이는 강물이 흐르고, 양떼 구름이 어리고, 서늘한 가을 기운이 사라지며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꽃과 나무들이 많은 빛의 색으로 피어서 빛으로 사라지고는 했다. 그러면 그런 빛이 내 가슴에 빛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제천이의 가슴에서도 그렇게 피고 지며 빛으로 차오르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로 나온 제 3연과 제천이의 목소리로 읊어진 제 3연이 다르게 각각의 개성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시었다. "무엇이 여러분의 가슴에 내리는 가요?" 라고, 그러시면서 "누가 자신의 가슴에 느낀 것을 말해 줄 수 있나요?" 정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으셨다. 


우리에게 잠시 고요함이 드리웠다. 나는 순간 '내가 말해 볼까'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다. "'지금 눈 나리고'에서 '지금'이 어떤 한 현장의 시간으로 작용하는 것이 느껴지지요? T S Eliot가 'still point'라고 말할 때 느끼는 어떤 것, 여기에서 '스틸 포인트'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어떤 무한대의 시간에서 한 점을 상정하는 느낌을 준다면, 이육사님의 '지금'이 주는 느낌은 지금 '여기'에 공간화 되어 내가 서 있는 땅을 느끼게 하는 느낌. 바로 내 육신이 지상에 내리는 느낌이랄까요. 무한의 공간에서 유한의 육신이 멈출 집에서 쉬고 일어나 다시 걸어 나아가는 자리를 '지금'이 가리키는 것 이랄까요. 그리고 그 다음, '눈 나리고'가 풀어주는, 어떤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그러나 곧 멈춤으로 쉬는 자유, 귀향하며 땅에 내리어 녹아 드는 빛, 귀향의 어떤 본원적임을 시사하는 느낌, 땅의 물이 하늘의 물이 되었다가 다시 내리는 땅으로의 귀환, 눈이 땅 위에 내리어 자신의 몸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뒤 녹으며 되는 눈물, 변신한 눈에서 다시 변신하여 눈물이 되어 다시 '물(水)이며 물질(物質)'로의 귀향이랄까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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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73239
9196
2019-03-26
꿈의 현실(The Reality of the Dream)(3)

 

 

(지난 호에 이어)


나의 코 끝에 매화향기가 그윽이 흐르고 있었다. 누이의 손이 눈송이 잡으러 내미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의 아픔으로 고이어 가는 것이 내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벽돌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아버지의 서재를 지었고, 이제 아버지와 내가 나의 서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아버지와 함께 또 다른 어느 날의 기억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까마득한 날에" 처럼 까마득히, 아련히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 자, 자ㅡ 지난 시간에, 오늘은 이육사 시인의 詩 "광야"를 읽는다고 했죠?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소리 내어 누군가가 쓴 글을 낭송하는 것, 그리고 눈으로, 즉 침묵으로 읽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읽는 것이 있을까요?"


 두런거리던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모두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곧 내 자신을 생각한다. 읽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 ㅡ 소리 내어 읽고, 눈으로 침묵으로 읽고 그리고 어떻게 읽는다는 말인가? 


"그래요. 소리 내어 낭송하거나, 그리고 눈으로 침묵으로 읽으며 내 자신의 마음에서 읽히어 들려오는 또 하나의 목소리, 그런 것 ㅡ 그런 것이 있지 않나요?" 


그런 것 같다. 뭔가 또 읽히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 듯이 아이들의 뒤 꼭지가 빙그레 웃는다. 우리 반은 한 60명 쯤이었고 내 자리는 교실의 중간 뒤쯤에 있었다. 앞에 앉은 아이들의 뒤 꼭지만 보아도 내 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짐작이 간다. 


호기심 어린 표정에 뭔가 얄궂은 표정들이 나와 다른 아이들의 뒤 꼭지 사이로 선생님의 표정과 동작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는 것 말고 눈으로 침묵으로 읽는다는 것은?' 이렇게 속으로 질문하며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자ㅡ 그러면 선생님이 이 시를 한번 낭송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낭송합니다." 선생님의 낭랑하고 어딘가 우수에 찬 듯한 목소리로, "까마득한 날에"가 시작되며 "날에"부터는 우리 반 학생들의 목소리가 같이 울려 나오기 시작 한다. 


그리고 "하늘이 처음 열리고" 하며 조금 쉬는 듯 하더니,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읊고 나서 조금 쉰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한 연이 끝나고 다음 연이 시작되기 전에 숨을 멈추고 들이 마시고 나서 다음 연을 시작하는 것이 자연적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말씀 하실 때, 스쳐가는 그 순간에 '아 ㅡ 뭔가가 읽히는 것이 있구나'라고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세상이 시작된 날!' 그런 것이 떠오를 때 선생님과 우리들의 목소리는 다음 연을 시작 하고 있다.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하며 우리는 조금 숨을 멈춘 듯 하다가 다음으로 이어간다.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했으리라". 이럴 때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 옆에선 나의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느낌과 또한 내가 광야의 한 가운데 서서 바라보는 저기 저 멈추며 서 있는 산맥들이 달리는 연상과, 그리고 그런 것들을 휘 한바퀴 돌면서 서 있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아이들도 이런 어떤 것을 느끼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순간이 스쳐가고 있을 때, 선생님과 우리들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분명하면서 의지가 깃들인 목소리들이, "끝없는 광음을" 하며 이어져가고 있다. 구름의 그림자들이 빠르게 대지 위에 지나가는 것같이 느껴질 때,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할 때, 내가 대지의 예스러운 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밤과 낮에서 빠르게 피어나 지고 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이 연상되었다. 


아ㅡ 이런 것이 '눈으로 침묵으로' 그리고 읽는다는 것이구나, 라고 느껴졌다. 빠르게 천천히 빛과 어둠이 사계의 밤과 낮이 함께 어우러져 흐르는 그 속에 있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느낌, 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이런 속에서 선생님과 우리들은 이 시, 이육사님의 "광야" 전체를 읽어 내려갔다. 


우리가 그렇게 선생님과 "광야"를 읽고 나자 내게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떤 힘이었으며, 그런 것을 '기백' 이랄까 힘, 분노, 한(恨) 그리고 고요히 생각에 젖게 하는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에서 오는 고요한 그러나 비통함이 서린 침묵 같은 것.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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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7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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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꿈의 현실(The Reality of the Dream)(2)

 

 

 

(지난 호에 이어)
아버지와 내가 핏빛처럼 빨간 황토 흙을 파서 물을 붇고 맨발로 이기고 있다. 바지가랑이 걷어 부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개어진 진흙을 느끼고 있다. 아주 아주 천천히 아버지와 나는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내가 아버지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아버지가 내가 느끼고 있는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진흙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빨간 핏빛 같은 황토 흙을 이기고 있다.


 아버지가 벽돌 거푸집을 물에 담갔다가 빼며 나에게 눈짓 하였다. 진흙을 삽으로 퍼 거푸집에 담으라고 웃는 아버지의 눈이 천천히 감기는 것을 보며 붉은 흙을 한 삽, 두 삽 떠서 거푸집에 넣었다. 아버지는 거푸집을 흔들며 흙을 가라 앉히고 흙손으로 벽돌 윗면을 골랐다. 이제 아버지는 흙이 담긴 거푸집을 들어다 준비된 마당 저쪽에 내려 놓는다. 


아버지는 밑바닥 거푸집을 앞으로 당겨서 빼고 그리고 몸틀을 위로 당겨서 뺐다. 그러면, 네모난 붉은 진흙 벽돌 하나가 반드시 마당 위에 앉았다. 그 앞에는 수 많은 벽돌들이 종렬로 횡렬로 태양아래 늘어서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과 마당 사이 저쪽에는 대숲의 대나무들이 바람에 서걱 서걱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의식이 내 머리 위 공중에서 선회하는 듯이 느끼며 천천히 들려오는 그 광장의 소음이 함께 서서히 전해오는 매캐한 내음을 느끼고 있었다. 가버린 어느 봄에 아버지가 기와 굽는 가마를 수리하는 모습이 아스라이 내 앞에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는 기왓장도 직접 만들었다.


 아버지와 나는 그 해 여름 나의 단칸 서재를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을 보여 주며 나에게 실제로 경험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터를 잡으며 주위의 경관은 물론 실제로 관계되는 다른 집이나 나무들이나 바람이 불어오는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러면서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들을 말하며 그날을 회상 하시는 듯 하였다. 그럴 때 그의 눈은 빛났으며 그의 가슴에 흐르는 그 즐거운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기쁨은 아마도 아버지의 아버지에게서 그 아버지의 아버지에게서부터 흘러온 어떤 기쁨이라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집을 짓는 시작부터 끝내는 것까지 직접 경험하게 하는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어느 밤이었던가, 낮의 햇빛을 받아 안고 익은 벽돌들이 밤의 달빛 아래서 네모난 빛들로 종으로 횡으로 빛나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작은 단칸짜리 기와집이 여러 채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그 집들은 아무렇지도 않고 그냥 자연스러웠다. 지금 봐도 한 집과 집사이의 간격이나 크기 그리고 안채나 사랑채와 어우러지는 것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조그만 단칸짜리 기와집들이 여기 저기에 있을까? 그런 의문이 일어나는 그 봄에 아버지는, "올 여름에 너의 서재를 짓자." 하시었다.


 매캐한 불 냄새가 내 코 끝에서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슬로우모션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마 아궁이 앞에서 타는 불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자신은 기와를 만들기 위해 하인들과 함께 갯벌 흙을 날라와서 커다란 바위 통에 넣어 두며 샘물을 갈아 부어가며 소금기를 제거하고 구리로 만들어진 기와 거푸집으로 찍어 기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서재 기와는 황토 흙을 그냥 쓰기로 하였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아버지와 함께 바라보던 불이 우리를 삼켜 버렸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아련히 몰려오는 것이 느껴지고 소음이 점점 크게 들려오더니 앰불런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있었다. 


서서히 내 시야가 밝아오고 있다. 내가 앰불런스에 실려가고 있고 그가 옆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무얼 하는지 그의 하얀 손이 내 눈 앞으로 지나간다. 마치 누이의 손이 매화향기 속에서 눈송이를 받으려 내미는 모습으로 지나간다. 나는 그 손을 잡으려 내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팔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상태를 그에게 말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나의 의식은 살아있지만 말을 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낄 때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슬픔이 아픔으로 채워지는 눈물이 흐르고 있을 때, 차가 덜컹하며 기우뚱 할 때, 그가 내 손을 꼭 쥐었을 때, 그의 눈에 얹혀 있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슬로우모션으로 천천히…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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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7
꿈의 현실(The Reality of the Dream)(1)

 

 

내가 '그날 그곳에 없었더라면'이라고 말해보지만, 누구나가 항상 그날 그곳에 있지 않을 수가 없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나’는 항상 ‘지금 여기’에서 깨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깨어있음이란 내가 항상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지금의 내 경우는 이렇게 이 글을 쓰고 있는)을 감지하고 있음이다. 


이 깨어있음이 나를 "("나")"로 살게하는 것이다. 나는 오직 하나인 이 몸과 이 마음을 가진 "나"이며,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들처럼, 일상을 사는 ("나)"이며, 또 내 자신이 내 자신의 존재마저 초월하며 사는 "("나")"인 것이다. 


 그날 그곳에서, 꽝ㅡ 하고, 터지는 폭음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리고 나는 어딘가로 아스라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 곳이 어디였을까. "까마득한 날에" 천지가 열리기 이전의 무중력으로 깊은 침묵이었을까. 아니면,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눈 내리고 매화향기 아득한 날, 내가 그곳에 서서, 서 있는 나를 바라보는 광경이었을까.


 푸른 하늘에 빠르게 지나가는 흰구름은 마치 한 떼의 백마(白馬)들이 푸른 파도 위를 질주하며 달리는 듯하고, 그리고 거대한 한 자락의 하얀 파도가 나를 향해 몰려와 나를 덮치며 감싸 안고 있었다. 


 하얀 빛이 나의 정수리에서 노닐고 있었다. 그 빛은 나였고 정수리는 광야였고, 나와 광야는 하나의 빛이었다. 나는 하나의 빛으로 눈 쌓인 들녘을 걷고 있었다. 발이 눈 속으로 푹 빠지는 느낌과 발을 뺄 때 쑥 올라오는 느낌을 나는 양쪽 발에서 번갈아 느끼고 있었다.


 코끝에 스쳐가는 매화향기를 느끼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다 보니 산맥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흐르듯이 아스라이 달리고 있었다. 곁에서는, 누이의 손이 매화향기 위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받아 들고 내게 먹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걷는 광야에 탐스런 함박눈이 다소곳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눈을 그리고 눈 속을 걷는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쓰러져 있다는 것을 느끼고 팔을 땅에 짚어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 오른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듯한 땀을 닦았다. 손을 보니 손바닥에 묻은 빨간 피가 보였다. 아스라이 소란스런 소음이 들려오고 한 손에 들린 하얀 손수건이 내 이마 쪽으로 슬로우모션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피 묻은 손바닥으로 코를 감쌀 때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다시 천천히 바닥으로 누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폭죽소리 같은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침묵의 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대화를 하자고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스라이 스쳐가는 생각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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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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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7
Variation No. 2-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행동하라

 

 


Variation No. 2-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행동하라 

 

 

 

동방은 스스로 붉게 물들었도다. 
어찌 그뿐이었으랴, 
푸른 바다에 서린 붉은 기운이 
하늘에 기대어 흐르렀도다. 

 

어제 그 짝지어 노던 동방에  
동녘새 서녘새 
푸르륵 날아가노니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산나루에 선 나그네가 
작별을 고하노니 
서녘의 노을이 
동방에 기대어 흐르고,  

 

그 작별의 인사에 맞추어 
돌아오는 아들 딸 맞이하노니 
뜰 밝히던 등불이 사위어 가고 
황금빛 햇살이 내리는도다. 

 

그러나, 이제 
침묵이 황금만은 아니리니 
대한의 지성이여,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행동하라. 

 

불의를 쫓는 자도 정의를 잘 안다. 
그러나 그는 다만 정의를 외면하고 
이익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리니 
정의는 그것을 알아볼 지어라!   

 

죽어가는 것들 속에서도 삶은 피어나리니 
그대의 한 생각 한 행위가 
그대의 아들 딸들에게서 피어나리니, 
그대여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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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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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Variation No. 1 ㅡ 내 꿈에는 사람들이 사오

 

 


Variation No. 1 ㅡ 내 꿈에는 사람들이 사오

 

 

 

내 꿈에는 사람들이 사오. 
그들을 인간이라 하오, 그리고 
그들은 사람답게 살고싶어 하오. 

 

내 꿈에서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고싶어 하고 
인간들이 사람답게 살고싶어 하오. 
그들은 서로 서로 닮아 살기를 
바라며 살고 있소. 
같이 살기가 편하기 때문이오 
같이 살기가 즐겁기 때문이오 
같이 살기가 기쁘기 때문이오. 

 

어찌 그들이라고 
그들에게 아픔과 슬픔이 없겠소마는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것은 
아픔이 슬픔이 그들에게서는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자라게 되오. 
참으로 신기한 일이오. 

 

내 꿈에서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고싶어 하고 
인간들이 사람답게 살고싶어 하오 
그리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게 뭐냐고 묻지도 않고 
인간이 사람답게 사는게 뭐냐고 묻지도 않소  
그런데도,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고 있고 
인간들이 사람답게 살고 있소. 

 

참으로 신기한 일이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고 있고 
인간들이 사람답게 살고 있소. 

 

참으로 거룩한 일이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일이 
인간이 인간답게 있는일이 
그것이 참으로 거룩한 것은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스스로 그렇게 사오. 

 

내 꿈에서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 
참으로 거룩한 일이 일어나고 있소! 
나와 같이 
내 꿈에서 살고싶지 않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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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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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침묵을 침묵으로 침묵해버리기에는

 

 


침묵을 침묵으로 침묵해버리기에는

 

 

 

침묵에 잠긴 말 할 수 없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자 하면 
그 의미를 잃어 버리고 만다. 

 

침묵이 지니고 있는, 그런 침묵을 
말 할 때, 나의 세계가 안고 
그 침묵이 감싸고 있는 
마음과 시공에 걸쳐있는 의미가 
나의 의도나 바램과는 상관없이 
드러나지 않고 만다. 

 

거기에 다가, 
'침묵과 침묵 사이'라든가 
'침묵의 끝'이라든가 
'침묵 이전'이라든가 라고 
주위를 드러내고자 할 때는 
그 본의의 밖에서 맴돌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침묵하고 있지 않은 내가 
침묵해버리면 
나는, 침묵에서 얻은 그것 
그것을  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침묵을 침묵으로 침묵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워서 
침묵하지 아니하게 되고 만다. 
그럴 때, 침묵을 침묵으로  놔두어야 하는 
어떤 귀함을 잃어버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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