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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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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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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서부 영화 시리즈(II)'셰인' (Shane)(1)

 


거칠고 삭막한 카우보이 세계를 
인간적•낭만적으로 표현한 걸작

 

 

 

 

 

 '하이 눈'이 나온 다음 해인 1953년에 파라마운트사에서 처음으로 '평면 와이드스크린' 총천연색으로 제작한 '셰인(Shane)'을 선보였다. 조지 스티븐스 감독, 앨런 래드, 진 아서, 밴 헤플린, 잭 팔란스, 벤 존슨 등 호화 캐스팅. 음악감독은 빅터 영. 러닝타임 118분. 


 '셰인'은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컬러부문)촬영상(로열 그릭스)을 수상했으며, 존 포드 감독의 '수색자(The Searchers•1956)',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 눈(High Noon•1952)'과 더불어 미국영화협회(AFI, 2008년)가 선정한 '서부영화 3대 걸작'으로 꼽힌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주연의 '페일 라이더(Pale Rider•1985)'는 이 작품에 바치는 오마주다. [註: 오마주(hommage)는 '존경•존중(respect)'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헌사•헌정(獻辭•獻呈)'의 의미이며 패러디나 표절과는 다른 의미다.]


 또한 '셰인'은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1951)' '자이언트(Giant•1956)'와 함께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미국적인 영화 3부작'으로 평가받는 걸작이다.


 미리 초치는 얘기지만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에서 주인공 셰인의 총쏘는 장면은 '하이 눈'처럼 마지막에 세 번(4발) 밖에 없는데도 결코 지루하지 않고 대단한 몰입감을 주는 영화이다. 


 '셰인'은 '하이 눈'과는 달리 와이오밍주의 그랜드 테튼 국립공원(Grand Teton National Park)의 장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거칠고 삭막하고 심각할 수밖에 없는 서부영화를, 초롱초롱한 눈빛의 소년과의 우정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연정, 폭력에 저항하는 모습 등을 통해 품위있고 인간적•낭만적으로 맛깔스럽게 표현한 수작이다. 


 시대적 배경은 '자영농지법'(1862)이 제정된 이후 1880년대 후반 늦여름. 오픈 크레디트에 유명한 주제곡 '황야가 부르는 소리(The Call of the Faraway Hills, youtube.com/watch?v=_EwaQHJJjn8)'가 흐르면서 그랜드 테튼의 수려한 경관을 품고있는 잭슨 홀(Jackson Hole) 계곡의 장관이 펼쳐진다. 


 이 곡에 가사를 붙여 여러 가수가 불렀는데, 주인공 셰인의 성격과 미국 개척자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어느 한 곳에 머물거나 속박된 인간이 아니라, 황야가 부르는 소리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랑자, 자유로운 영혼임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말로 잘 번역된 글이 있어 여기에 인용한다.


 "초원에 땅그림자가 지고/ 하루가 저물고 해가 우리의 시선에서 점차 사라질 때/ 나는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를 한 밤중에도 똑똑히 들을 수 있다네/ 그래, 황야가 부르는 부드러운 소리가 똑똑히 들려.
 초원에는 편안한 쉼터란 없는 거야/ 뼈속까지 떠돌이 신세인 정처없이 떠도는 영혼을 위한 쉼터는 없어/ 누군가 말할 수는 있지, 내 마음의 쉼터가 저 너머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또 황야가 날 부르는 소리가 감미롭고도 똑똑히 들리네.
 내가 가본적 없는 길도 많이 있다네/ 나의 꿈은 자꾸 그 가보지 못한 길로 가자고 하네/ 해지는 서쪽 초원 너머에는/ 또 새로운 스릴이 많이 있을 거야/ 별 빛 넘어 저 어딘가에서 꿈 한 두 개가 이뤄질지도 몰라/ 난 황야가 부르는 소리에 오늘도 어김없이 그 소리를 따라 간다네."

 

 

 

 


 거울처럼 맑은 물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사슴을 향해 장전되어 있지 않은 빈 총을 겨누면서 놀던 8살 소년 조이(브랜든 드와일드)는 사슴 너머로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는 한 사나이를 발견하고는 호기심과 두려운 눈으로 한참을 쳐다본다. 물을 마시던 사슴도 고개를 쳐들고 말을 타고 오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드디어 그 사나이가 가까이 나타난다. 신사적인 풍모와 침착한 태도에 흰 모자를 쓰고 녹비(鹿皮)옷을 입은 훤칠한 미남자인 사나이는 여느 뜨내기 카우보이와는 달리 보인다. 정착민인 조 스타렛(밴 헤플린)의 집에서 물을 얻어 마신다. 그때 아들 조이가 빈 총의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에 즉각 반응하는 사나이. 총잡이의 과거가 있는 듯한 강한 암시를 주는 장면이다. 

 

 

 

 


 공교롭게도 그때 루퍼스 라이커(에밀 마이어) 일당이 들이닥치자 스타렛은 그도 한패인 것으로 오해하고 당장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잠깐 사태를 관망하던 그 사나이를 보고 루퍼스의 동생 모건(존 디어키스)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스타렛의 친구"라고 대답한다. 

 

 

 

 


 라이커 일당이 떠나고 오해가 풀린 스타렛과 그의 부인 마리언(진 아서)과 아들 조이의 호의로 저녁 식사까지 초대받는 사나이. 그제서야 자기 이름이 '셰인'(앨런 래드)이라고 소개한다. 


 스타렛은 의지가 강인하여 그곳 정착민들의 대변자이다. 셰인은 오래 전부터 목축업을 하는 라이커 일당이 개척민들이 피땀 흘려 개간해 살고 있는 토지를 독차지하기 위해 거주민들을 협박하고 있으며, 그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녁 식사 후 셰인과 스타렛이 집 앞의 큰 나무등걸을 도끼로 찍어 파낸다. 그동안 스타렛 혼자서 할 수 없었던 일을 둘의 협동을 통해 해결하게 된 것이다. [註: 나중에 읍내에서 주먹싸움이 일어났을 때 스타렛이 셰인을 도우는 협업이 또 한 번 있다. 이 나무뿌리는 악질 라이커를 상징하며 서로 힘을 합치면 결국 그 뿌리를 뽑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다른 연장을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땀과 힘'만으로 자연력에 대항해 이뤄내 앓던 이가 빠진 듯 흐뭇한 스타렛은 셰인에게 월동준비가 끝날 때까지라도 같이 지내자고 제의하는데….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25일(토) 오후 5시에 있을 예정이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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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8
2019-05-20
서부 영화 시리즈(I)-'하이 눈'(하)(High Noon)

 
'보통 영웅'의 '행동하는 양심'의 상징

 

 

 

(지난 호에 이어)
 정의를 지향하여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윌 케인에 반해 소시민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퀘이커 교도인 에이미. 서로는 갈등 관계에 놓이며 이들의 대립과 갈등이 심리적인 스릴러로 작용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긴장감은 점증되며 관객도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심리적 압박감을 받게 되지만, 사랑은 종교적 신념에 우선한다.


 '하이 눈'은 마을 사람들을 짓누르는 두려움의 분위기와 그들의 암묵적인 비겁함은 당시의 해들리빌 마을을 초월하여 오늘날 어느 사회에도 존재하는 일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해야 할 일'을 하려는 '행동하는 양심'의 전형인 '하이 눈'은 결코 자신감 넘치고 멋있는 영웅이 아닌 극히 인간적인 '보통 영웅'을 창조하였다. 


 따라서 미 의회도서관 소속 국립영화등기소 설립 첫 해인 1989년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영화로 선정되었고,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등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보기를 권장했던 영화로 기록되었다. 

 

 

 


 '하이 눈'은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1929~1982)의 실질적인 영화 데뷔작이다. 이듬해 1953년 존 포드 감독의 '모감보'에 출연한 뒤부터 그녀는 본격적인 스타의 길을 걷게 된다. 

 

 

 


 1954년에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에게 발탁되어 '다이얼 M을 돌려라'와 '이창(裏窓)' 등 2편에 출연하고, 빙 크로스비와 공연한 'The Country Girl'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또 이듬해 케리 그랜트와 공연한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1955)'에도 출연했다. 

 

 

 


 그녀는 프랭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와 공연하고 루이 암스트롱이 출연한 '상류 사회(1956)'를 마지막으로 나이 26세 때 모나코의 레니에 3세 대공(大公)과 결혼하여 대공비가 된다. 그녀는 모나코 공녀 카롤린과 알베르 대공, 그리고 스테파니 공주를 낳았다. 


 그러나 꿈을 이룬 신데렐라를 운명의 여신이 질투해서인가? 1982년 9월14일 그녀는 자동차를 운전하던 도중 갑작스런 발작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5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차에 같이 타고 있던 딸 스테파니 공주는 살아남았다. 


 케이티 후라도(Katy Jurado, 1924~2002)는 '하이 눈'으로 골든 글로브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첫 번째 멕시코 출신 배우이다. 그녀는 71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스펜서 트레이시, 로버트 와그너, 리처드 위드마크 등과 공연한 '부러진 창(Broken Lance•1954)'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말론 브랜도 감독•주연의 '애꾸눈 잭(One-Eyed Jacks•1961)'에서 칼 말덴의 아내 마리아 역으로도 출연했다.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 1907~1997) 감독은 몽고메리 클리프트, 버트 랭카스터, 데보라 커 주연의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70mm 대형 스크린의 효시인 '오클라호마!(1955)',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노인과 바다(1958)', 오드리 헵번 주연의 '파계(破戒•1959)'를 비롯하여 '사계절의 사나이(1966)' '자칼의 음모(1973)' '줄리아(1977)' 등의 숱한 명작을 남긴 거장이다. 


 그는 65편을 오스카상 후보에 올려 본인은 물론 연기자에게 24개의 상을 안겨준 '스타 제조기'라는 관록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이다. 


 진네만 감독은 영국 런던에서 심장마비로 1997년 3월에 90세로 사망했는데 그의 부인도 같은 해 12월에 사망했다.


 게리 쿠퍼(Gary Cooper, 1901~1961)는 장신(長身) 미남배우로 수줍어하는 동작이 지니는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마카로니 웨스턴'과는 달리 인간미를 풍기는 서부영화의 대명사가 되었고, 또한 '마천루(摩天樓•The Fountainhead•1949)',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원작의 '무기여 잘 있거라(1932)'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 그리고 '우정있는 설복(1956)'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갖기도 했다. [註: '무기여 잘 있거라'는 1957년 찰스 비더(Charles Vidor, 1900~1959) 감독에 의해 제니퍼 존스, 록 허드슨 주연의 딜럭스 컬러 시네마스코프로 리메이크 되었으나 작품성은 1932년 흑백판보다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 '우정어린 설복'에서는 '하이 눈'과 반대로 게리 쿠퍼가 퀘이커 교도인 제스 버드웰 역을 연기했다.] 


 '하이 눈'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음악감독 디미트리 티옴킨(Dimitri Tiomkin. 1894~1979)은 서부 영화 음악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러시아 이민자 출신이다. 그가 만든 주제곡들은 '비상 착륙(The High And The Mighty•1954)‘ '우정어린 설복' '자이언트(1956)' ‘O.K.목장의 결투(1957)‘ ‘로하이드(1959)‘ ‘리오 브라보(1959)’ '알라모(1960)' 등 셀 수 없이 많다. 


 리 반 클리프(Clarence Leroy "Lee" Van Cleef, Jr., 1925~1989)는 뉴저지 출신 미국 배우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해군에 복무한 후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188㎝의 훤칠한 키에 실눈과 매부리코 그리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덕분(?)에 존 스터지스 감독의 '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1957)'에서 에드 베일리 역, 존 포드 감독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에서 악당 리 마빈의 부하 역 등 주로 악역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속 황야의 무법자(1965)' '석양의 무법자(1966)'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했지 싶다. 그는 심장마비로 64세로 죽기까지 90편의 영화와 109편의 TV극에 출연하였다. 


 이안 맥도널드(Ian MacDonald, 1914~1978)는 '쟈니 기타(1954)' '아파치(1954)' 등의 서부 영화로 우리에게 알려진 미국 배우이다.


 군더더기: 제작자 스탠리 크레이머가 윌 케인 역으로 맨 처음에 그레고리 펙을 지목했으나, 그가 주연했던 '건파이터(1950)'와 비슷한 역이라 거절했는데, 펙은 나중에 그것은 그의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였다고 술회했다. (끝)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5월 25일(토) 오후 5시에 있을 예정이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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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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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9
서부 영화 시리즈(I)-'하이 눈'(중)(High Noon)

 


'보통 영웅'의 '행동하는 양심'의 상징

 


 

 [註: 마치 윌 케인이 이 마을에 평화와 질서를 세우고부터는 모든 게 뜸해지고 먹고살기 힘들어져서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프랭크 밀러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는 듯한 태도이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추한 정치•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그 사이에 윌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같이 싸울 동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밀러에게 선고를 내린 재판관도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며 윌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고, 윌의 전임 보안관은 너무 늙어 도울 수 없다며 윌에게 역시 마을을 떠나라고 충고한다. 


 마을 술집, 이발소, 교회 등을 방문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모두가 한결같이 윌에게 마을을 떠나라는 말밖엔…. 특히 교회에서 해들리빌 시장 조나스 헨더슨(토머스 미첼)이 처음에는 윌을 도와줄 것처럼 마을사람들을 설득하다가 결국 그를 외면하도록 선동하는 장면은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궤변의 극치를 보여주는 명연기다. 


 심지어 윌의 절친한 친구 샘 풀러(해리 모건)의 집을 방문하지만 그는 그의 아내에게 집에 없다고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하여 외면한다. 모두들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믿은 탓에 5년 전 윌이 악당들을 처치함으로써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던 기억을 이미 잊은 것이다. 기껏 애꾸눈의 술주정뱅이와 어린 소년이 자원하지만 오히려 윌은 돈을 주고 이들을 설득하여 돌려보낸다.

 

 

 

 


 한편 호텔 로비에 있던 에이미는 라미레즈의 방으로 올라가 같은 여자로서 궁금한 질문을 던진다. 케인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그녀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를 놓아달라고 부탁하는 에이미.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와 19살의 오빠가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을 보고 퀘이커 교도가 되었으며, 옳건 그르건 싸우는 건 반대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그가 내 남편이라면 총을 들고 같이 싸우겠다."고 말하는 라미레즈. 에이미가 "왜 그러지 않느냐?"고 묻자 라미레즈는 "그는 내 남편이 아니니까…."라고 대답한다. 드디어 오해가 풀리고 둘은 같은 12시 기차로 떠나기 위해 라미레즈의 방에서 함께 기다리는데…. 

 

 

 

 


 윌은 내면적 갈등에 빠진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승산 없는 뻔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윌이 낙심하여 차라리 자기도 떠나버릴까 하는 순간적인 생각에서 마구간에 갔을 때, 갑자기 하비 펠이 나타나 말 안장 등을 올려놓으며 강제로 윌을 말에 태우려 한다. 


 그러나 완강히 거절하는 윌. 급기야 둘은 주먹싸움을 벌인다. 늙은 윌이 젊은 하비를 때려눕히긴 했지만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다. 

 

 

 

 


 윌 케인은 사무실에 앉아 유언장 같은 편지를 쓴다. 에이미와 라미레즈가 기차역으로 출발한다. 악당 3명은 우두머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계가 2분 전 정오를 가리킨다. 저만치서 기적소리가 울리고 악당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마을사람들은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술집과 집안에 모여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밖을 쳐다본다. 

 

 

 

 


 사람들은 용기가 없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행동도 할 수 없다. 그저 모든 일이 별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거리엔 적막만이 감돈다. 카메라가 크레인을 타고 공중으로 이동하면 마을거리에는 윌 케인 혼자만 보인다. 결국 혼자서 프랭크 밀러와 그의 똘만이 3명을 상대해야 하는 윌 케인!

 

 

 

 


 정각 12시에 기차가 해들리빌 역에 도착한다. 그의 부하들의 마중을 받으며 기차에서 내리는 프랭크 밀러. 4명의 악당은 곧바로 텅빈 마을로 의기양양 쳐들어간다. 


 윌은 침착하게 먼저 벤 밀러와 잭 콜비를 저격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왼팔에 총상을 입는다. 이때 총소리를 듣자마자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에이미! 


 보안관 사무실로 달려간 그녀는 창문을 통해 등 뒤에서 남편 윌을 겨냥하는 짐 피어스를 발견하고 총을 쏘아 죽임으로써 종교적 신념을 뛰어넘어 남편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프랭크 밀러에게 인질로 붙잡혀 윌 앞에 나타나는 에이미…. 이윽고 윌이 투항하려는 찰나에 그녀가 갑자기 밀러를 제치고 몸을 빼는 사이, 윌의 총이 불을 뿜고 드디어 밀러는 사살된다. 

 

 

 

 


 상황은 끝났다. 그제서야 쥐 죽은 듯 몸을 사리던 마을 사람들이 우루루 거리로 몰려나온다. 윌은 보안관 배지를 땅바닥에 던져버리고,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던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에이미와 함께 마을을 떠나면서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하이 눈'은 서부영화라고는 하지만 긴박한 액션 장면은 마지막 10여 분뿐이고, 그것도 다른 서부영화처럼 화끈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영화가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까닭은 보안관 윌 케인의 캐릭터에 있다. 정통 서부극은 영웅담이었다. 그래서 숱한 악당과의 결투에서 사나이다운 기개와 멋과 낭만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거기에 열광했다. 


 그러나 '하이 눈'은 불과 4명의 악당과 대결하지만 망설이고 초조•불안해 하며 갈등한다. 이 점에서 윌 케인은 지극히 인간적이며 사실적이다. 막 결혼식을 올렸다. 보안관 직도 그만뒀다. 그 앞에 위기가 닥친다. 아무도 그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도와주지 않는다. 고독하다. … 인간관계의 비애를 느낀다. 


 하지만 보안관의 가슴에 달린 별은 정의를 상징했다. 그는 마을을 떠나 행복하게 살 수도 있는 입장이지만 떠날 수 없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겠냐만 보안관이기 때문에 마을을 지켜야 하는 공적인 책무를 애써 떠맡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내일(토) 오후 5시에 있을 예정이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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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서부 영화 시리즈(I)-'하이 눈' (상)(High Noon)

 
'보통 영웅'의 '행동하는 양심'의 상징

 

 

 


 

 주제곡 '오 나의 사랑, 나를 떠나지 말아요(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로 서부 영화의 전설이 된 '하이 눈(High Noon)'! 과거 서부극 전성시대에 헐리우드의 대표적 영화로 게리 쿠퍼의 대명사가 된 영화 '하이 눈'을 서부영화 시리즈의 첫 번째로 꼽아보았다. 


 1952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사 배급 흑백 스탠더드. 감독 프레드 진네만. 출연 게리 쿠퍼, 그레이스 켈리 등. 러닝타임 85분.


 '하이 눈'은 영화 속 시간 경과가 실제 상영시간과 일치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최우수 남우주연상, 편집상, 작곡상 및 주제가상 등 4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그리고 최우수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작곡상 및 흑백촬영상 등 4개 부문의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한 작품. 


 '하이 눈의 발라드(The Ballad of High Noon, youtube.com/watch?v=CUvNfaq-ItM)'로 불리는 주제가는 음악감독 디미트리 티옴킨이 작곡했고, 가사는 네드 워싱턴(Ned Washington, 1901~1976)이 지었다. 가사 내용은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있으며,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이 한 곡 만으로 하모니카 때로는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긴장감 넘치게 변주되면서 흐른다.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 나의 사랑, 나를 떠나지 말아요. 여기 우리의 결혼식 날에…. 기다려 줘, 좀 더 기다려 줘. 정오 기차로 프랭크 밀러가 오는데, 내가 남자라면 용기를 갖고 그 살인자와 대결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묘비에 겁쟁이, 비참한 겁쟁이로 새겨질 거야. 오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내 마음은 갈갈이 찢어지네. 나의 아름답고 고운 님을 잃을지도 모르고,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저 큰 손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그는 감옥에 있을 때 맹세했다네.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난 죽음 따윈 두렵지 않아. 다만 당신이 날 떠난다면 난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 그러니 오 내 사랑, 나를 떠나지 말아요. 우리가 결혼식을 올릴 때 당신은 약속했잖아. 설령 당신이 (내가 죽고) 비통해 할지라도 난 프랭크 밀러를 쏴 죽이기 전에는 떠날 수가 없어…." 


 영화의 시작부터 텍스 리터(Tex Ritter, 1905~1974)의 굵직한 목소리로 주제곡이 나오면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 등장한다. 훤칠한 키에 앳되어 보이는 리 반 클리프의 27살 때 모습이다. 잭 콜비(리 반 클리프)가 있는 곳에 프랭크 밀러의 동생 벤 밀러(쉐브 울리)가 오고 곧 짐 피어스(로버트 J. 윌크)가 합류한 프랭크의 부하 3명이 마을 한복판을 지나 기차역으로 가는데….

 

 

 

 


 뉴멕시코 변방 해들리빌 마을의 보안관 윌리엄 '윌' 케인(게리 쿠퍼)은 독실한 퀘이커 교도인 에이미 파울러(그레이스 켈리)와 오전 10시 35분에 결혼식을 올리고, 오랫동안 달고 있던 보안관 배지를 내려놓은 후 가게나 운영할 생각으로 정든 마을을 떠난다. [註: 이때 그레이스 켈리가 22세인데 반해 게리 쿠퍼는 50세여서 상대적으로 엄청 늙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프랭크 밀러(이안 맥도널드)가 정오 기차로 해들리빌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밀러는 5년 전 윌 케인이 붙잡아 법정에 세운 흉악범으로 교수형 선고를 받았던 인물인데 무기형으로 감형됐다가 이젠 보석으로 풀려난 것이다. 부정부패가 개입됐다는 강한 암시를 주는 대목이다. 그는 법정에서 윌 케인을 포함한 고소자에게 복수를 맹세했던 유명한 악당이었다. 


 무법자 3명은 기차역에서 술을 마시며 잭 콜비가 주제곡을 하모니카로 불면서 12시에 도착할 우두머리 프랭크 밀러를 기다리고 있다.

 

 

 

 


 갓 결혼한 윌은 신부 에이미를 마차에 태우고 저만치 마을을 떠나다가, 불현듯 프랭크 밀러 악당들이 어디를 가든 그를 추적할 것이고 또한 마을과 마을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차를 돌려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데…. [註: 당시 영화 포스터에 "도망가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던 한 사나이의 이야기"라는 카피가 붙어 있었다.] 

 

 

 

 


 떠나기 전에 임시 보안관 대리인으로 지정했던 하비 펠(로이드 브리지스)은 싸움이 두렵고 보안관으로서의 책무를 회피하려는 속셈으로 다시 돌아온 윌에게 자기를 정식 보안관으로 추천해 주지 않았다는 비겁한 구실을 내세워 사임한다.


 먼저 윌은 그의 옛 애인이었지만 지금은 하비 펠의 연인인 헬렌 라미레즈(케이티 후라도)를 찾아가 마을을 떠나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헬렌은 한때 친구였던 밀러가 그녀를 찾으면 어떤 짓을 할 지를 이미 예견하여 운영하는 술집 등을 싼 값에 팔아버린 뒤였다. 사실 라미레즈는 밀러를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한때 사랑했던 케인이 죽는 것을 보지 않을 요량으로 마을을 떠날 준비를 했던 것이다.

 

 

 

 


 한편 에이미는 사랑보다 의무가 우선하는 남편 윌에게 최후통첩을 한다. 그가 동행하든 말든 자기는 12시 기차로 떠나겠다고…. 에이미는 말 상대도 없이 기차 시간을 기다리기가 무료하여 호텔로 간다. 거기서 라미레즈 방에서 내려오는 윌과 맞닥뜨리지만 모른 척 한다. 

 

 

 

 


 그리고 호텔 지배인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이다. 


 에이미: 당신은 제 남편을 싫어하는군요.


 지배인: 그래요.


 에이미: 왜죠?


 지배인: 이유가 많죠. 프랭크 밀러가 있을 때는 장사도 잘 되고 떠돌이도 잔뜩 밀려와 흥청망청 했었죠…. 물어보니 대답한 거요!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5월 11일(토) 오후 5시에 있을 예정이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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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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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5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2,300여 km의 자전거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달성



손영호씨의 부인 이양배씨의 쾌거

 


 2017년 10월28일에 한국 자전거 여행기인 ‘강물 따라 역사는 흐르고’라는 책을 출간하였던 손영호씨(부동산중개인•본보 칼럼니스트)의 부인 이양배씨가 마지막 남은 '동해안 자전거길'과 '오천 자전거길'을 완주함으로써 2,300여 km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였습니다. 이에 손영호씨가 보내온 글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주 

 

 

 '동해안자전거길'은 원래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부산 낙동강 하굿둑까지 720여km 구간을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통일전망대 ― 삼척 임원 구간(242km) 및 경상북도 울진 ― 영덕 구간(76km)만 개통하고, 이를 종주하면 완주로 인정한다는 발표가 있자 작년 3월에 우리 부부는 한국으로 가서 도전에 응했다. 


 그러나 그랜드 슬램 달성을 위한 마지막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팔당대여점에서 빌린 자전거를 테스트하다가 어쭙잖게 넘어진 집사람이 무릎 뼈에 타박상을 입고 깁스를 했던 것이다. 다행히 3주 후 정상으로 회복되자 4월17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진버스터미널에서 두 바퀴에 의지하여 약 3km 떨어진 통일전망대로 가서 첫 인증샷을 했으나 늦은 시간이라 통일전망대는 가보지 못하고 화진포 해변까지 두어 시간을 달려 첫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화진포 이승만 대통령 및 김일성 별장을 둘러보고, 내친 김에 고성군의 왕곡마을, 송지호, 천학정, 청간정 등 동해안의 유려한 명승지를 답사하면서 백도 해변, 봉포 해변, 영금정을 거쳐 속초시 대포항에서 두 번째 밤을 보냈다. 동해안의 아름다운 경관에 탐닉하느라 궤도를 벗어나기도 하고, 해안철조망 때문에 걸어서 우회하는 구간도 많았던 탓에 약 60km밖에 못달렸지만 무엇보다 싱싱한 회를 맛보기 위해 멈춘 것이다.


 다음 날 양양군의 낙산사, 동호 해변, 하조대를 지나 역사의 현장인 38선 휴게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지경 공원과 강릉시 주문진을 거쳐 경포대 해변에 다다르자 자전거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수리점이 없어 응급조치를 한 후 선교장 부근에서 할머니집 민박을 하고 다음날 일찍 출발하여 정동진과 동해시 망상 해변까지는 낭만을 즐기며 그럭저럭 잘 왔으나 결국 추암 촛대바위 고갯길에서 체인이 끊어지면서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십여리를 걸어서 유일한 자전거수리점이 있다는 동해항까지 끌고 되돌아가는 바람에 반나절을 완전히 허비해 버렸고, 수리비용이 만만찮게 들었다. 게다가 오후 6시가 지나면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모른 우리는 저녁도 굶고 편의점에서 빵과 라면으로 때워야 했다.

 

 

 

 


 동해안자전거길은 길이로 보면 약 400km의 낙동강 자전거길보다 조금 짧지만 그 난이도는 비교가 안 되게 험난하고 힘들었다. 자전거길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 많은 곳을 차도와 같이 달려야 했으며 높은 산들의 오름과 내림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피로가 엄청 쌓였고 '끌바'(자전거를 끌고 감)의 연속이었다. 

 

 

 

 


 특히 삼척 한재공원에서 임원에 이르는 33km의 강원도 마지막 12번째 구간은 길기도 하지만 계속 산을 굽이굽이 돌며 산 정상에 있는 인증센터까지 올라가야 하는, '낙동강길 박진고개'는 비할 바 아닌 지옥 구간이었다.


 강원도 삼척 임원과 경북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를 잇는 약 40km 구간은 아예 자전거길이 조성되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용달차를 대절하여 이동했다. 한 쌍의 은어를 다리 좌우에 조형해 놓은 은어다리는 바다풍경과 어우러진 훌륭한 예술품이다. 거기서 망양휴게소를 지나 월송정 내부를 휙 둘러본 다음 고래불 해변에 다다르니 해가 꼴깍 넘어가 버린다. 

 

 

 

 


 울진 고래불 해변에서 22km 떨어진 영덕 구간 중 마지막 인증센터인 해맞이공원까지는 또 한 번 힘든 고갯길 구간이었다. 드디어 영덕 해맞이공원 인증센터에서 종주완료 스탬프를 찍고 만세를 부름으로써 모두 350여 km의 여정을 5박6일에 끝냈다. 정말 힘든 종주였고 말썽자전거 때문에 일정이 지연된 점이 아쉽다. 

 

 


 

 


 세차게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날씨에 또 10여 km를 달려 강구버스터미널에서 포항으로 가서 고속버스로 서울에 올라왔다. 다음날 팔당 자전거대여점으로 가서 수리과정을 찍은 사진과 수리비 영수증을 근거로 보상을 요구했지만 다짜고짜 사용자 과실이라며 우기는 갑질은 정말 대단했다.


 그 후 그랜드 슬램 달성을 위해 딱 하나 남은 100km 구간의 '오천 자전거길(충북 괴산 ― 충남 세종시)'은 내가 토론토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동행을 못하고 아내 혼자 도전해야 했다. 


 드디어 5월21일에 친구와 함께 여정에 올랐다. 1박을 하며 순조롭게 쌍천, 달천, 성황천, 보강천, 미호천 등 다섯 천을 지나 세종시에 있는 마지막 코스인 합강 인증센터에서, 친구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온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축하 플래카드를 들어보이며 자축했다. 

 

 


 

 


 최근에 행정자치부 및 국토교통부가 발급한 인증서를 받았다.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등 '4대강 종주', 섬진강길, 제주환상길, 그리고 동해안길, 오천길 등 2,300여 km의 자전거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달성은 열정과 도전의 상징이며 낭만과 성취감을 만끽하게 해준 값진 결실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토론토 2019. 4. 26)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 강의가 내일(토) 오후 5시에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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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8
'동심초(同心草)'를 아시나요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風花日將老)/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佳期猶渺渺)/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空結同心草).


 바로 김성태(金聖泰, 1910~2012) 작곡의 우리 가곡 '동심초(同心草)'의 노랫말이다. 이 시의 원전이 중국 쓰촨(四川)성의 성도인 청두(成都)시 중심을 흐르는 금강(錦江) 강변 완화계(浣花溪) 개울가에 세워진 망강루(望江樓) 공원에 있다. 이 망강루는 당나라 때 기생 시인이었던 설도(薛濤, 768~832)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망강루 공원에 있는 설도기념관은 입구에 설도의 조각상과 그녀가 좋아했던 대나무로 장식해 놓았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연분홍과 연보라색 엷은 천들이 드리워져 있고, 아련히 고운 빛깔을 내며 매달려 있는 등에서 애틋했던 설도의 사랑이 느껴진다. 벽에는 설도의 인생이 한 편의 이야기처럼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그녀가 쓴 시들이 그녀가 만들었다는 빛깔 고운 편지지와 함께 전시돼 있다. 

 

 

 

 

 그녀의 무덤에는1994년에 ‘당여교서설홍도묘(唐女校書薛洪度墓)’라고 새긴 새 묘비가 세워졌다. 홍도는 그녀의 자(字)이다. 검남절도사로 설도의 문객 시인이었던 단문창(段文昌, 773~835)이 쓴 원래의 묘지명(墓誌銘)은 문화대혁명 때 소실되었다.

 

 


 

 

 

 

 설도는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西安) 사람인데 당나라 때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청두에 왔으나 부친이 사망하자 모녀의 생계를 위해 16세에 악기(樂妓)가 되었다. 음률, 시, 서예, 용모가 매우 뛰어난 그녀는, 807~813년간 당시 서천(西川)절도사로 있던 무원형(武元衡, 758~815)이 그녀의 재능을 총애하여 교서(校書, 책의 잘못된 글자를 교정하는 관직)로 임명하여 교서랑이 됨으로서 악적(樂籍)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다. 


 그 후 설도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완화계의 우물, 즉 '설도정(薛濤井)'에서 물을 길어 연꽃과 맨드라미 꽃잎을 섞어 손바닥만한 크기의 아름다운 붉은색 종이, 이른바 '설도전(薛濤箋)'을 만들어 거기에 시를 써서 시인들에게 주었다. 이것이 유행을 낳아 촉(蜀) 땅을 찾는 절도사를 비롯한 벼슬아치들과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이곳에서 설도와 교류하였으니, 청두 땅 완화계야말로 당시의 문학 살롱이었다고 하겠다. 


 늦은 나이 42살 때 설도는 그 살롱의 문객(文客) 중 11살 연하의 원진(元?, 779~831)과 사랑에 빠진다. 원진은 백거이(白居易, 772~846)와 평생 교유하여 ‘원백(元白)’이라 불릴 정도로 시와 소설에 능한 작가이기도 했던 허난(河南)성 뤄양(洛陽) 출신 관료로, 그가 쓴 '회진기(會眞記)'는 일명 '앵앵전(鶯鶯傳)'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의 대표적인 연애소설이다. 그 후 원나라 때 왕실보(王實甫, 1260~1336)가 쓴 희곡 '서상기(西廂記)'의 원전이 바로 이 소설이다. 다만 앵앵전은 비극적 결말인 데 반해 서상기는 해피엔딩이라는 점이 다르다. 

 


 

 

 


 주인공 장생(張生)은 애인 최앵앵(崔鶯鶯)을 두고 과거시험을 보러 장안으로 떠난 뒤 급제하지만, 그녀를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장안의 재상집 딸과 혼인한다. 하지만 장생은 나중에 앵앵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가 먼저 사랑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앵앵이 꼬드긴 것이며 어떤 남자라도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는 식으로 비겁한 변명을 한다. 앵앵은 "그따위 소리 할 시간 있으면 네 마누라한테나 잘해라"며 매몰차게 대한다. 봉건시대 당시에 여간 당찬 여자가 아니다.

 


 

 

 


 사실 원진은 24살 때 문벌 집안 위하경의 딸 위총과 혼인했는데 결혼 7년 만에 4살 연하인 아내가 병사하여 시름에 차 있을 당시 청두에 감찰어사로 부임해서 설도를 만나 2년 남짓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원진은 기생 신분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임신까지 했던 설도와 맺지 못하고 다른 첩실을 들인다. 


 설도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장안으로 돌아간 원진이었지만 그가 시로 써서 보낸 편지 '설도에게 보냄(寄贈薛濤)'에는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금강의 매끄러움과 아미산의 빼어남이/ 변하여 탁문군과 설도가 되었구나/ 말씨는 앵무새의 혀와 같고/ 문장은 봉황의 깃털같이 화려하네/ 시인들 부끄러워 붓을 멈춘 이 많고/ 공경대부들 꿈속에서라도 그대와 같은 시를 쓰고 싶어하네/ 헤어져 서로 그리운데 아득한 강 저편에는/ 창포 꽃 피고 오색 구름 높겠지. 

 [註: 탁문군(卓文君)은 한무제 때 실존인물로 16세에 과부가 되었는데, 어느 날 준수하게 생긴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거문고를 타며 부르는 ‘봉구황(鳳求凰•수컷인 봉이 암컷인 황을 구한다는 뜻)’이라는 노래에 반해 그날 밤 함께 도주하여 결국 사랑과 경영에 성공한 사천 성도판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한편 설도는 그때의 사랑을 잃은 처연한 아픔을 '봄날의 기다림’ 즉, ‘춘망사(春望詞)’라는 가슴 저린 4수(首)의 시로 남겼는데, 그녀의 500여 수의 시 작품 가운데 백미(白眉)로 꼽힌다. 바로 그 중 세 번째 수를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의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학교의 스승이었던 안서(岸曙) 김억(金億, 1896~?)이 우리말로 맛깔스럽게 번역한 것이 ‘동심초’로 오늘날 널리 알려진 것이다. 
 [註: ‘동심초’의 2절 가사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는 같은 시를 1절과 맛이 다르게 번역한 것이다.]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4월 27일(토) 오후 5시에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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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마리아 바이 칼라스’ (Maria by Callas)(하)

 

오페라의 성녀(聖女) '칼라스'와 아내•엄마가 
되고픈 여성 '마리아'의 내적 갈등 묘사

 

 

(지난 호에 이어) 
 칼라스가 오페라에 바친 공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막대한 것이다. 특히 케루비니, 벨리니, 도니제티, 로시니 등의 고전적 벨 칸토(소리 자체의 아름다움과 균등한 울림에 중점을 두는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성립된 발성법) 오페라의 음악적, 극적 가치를 부활, 전성기의 길을 터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녀는 벨 칸토 콜로라투라(가장 음이 높고 까다로운 화려한 고난도 창법)에서부터 푸치니의 '토스카' 및 '투란도트', 베르디의 '아이다' 및 '일 트로바토레',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의 가혹한 도전에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 그녀가 부른 아리아가 10곡 정도 나오는데 그 중에서 빈첸조 벨리니의 '노르마(Norma)' 제1막에 나오는 '정결한 여신(Casta Diva)'을 두 팔을 가슴에 안고 부를 땐 눈물이 나온다(특별히 컬러로 처리했다). 


 또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세니에(Andrea Chenier)' 중 제3막에 나오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는 1993년 동성애자 영화 '필라델피아'에 삽입되어 톰 행크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곡이다.

 

 

 


 이러한 마리아에게 '라 디비나(La Divina)' 즉 '성녀(聖女)'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칼라스는 20세기 후반에 있어서의 오페라계의 성자이며 순교자, 아니 순교자였기 때문에 성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그녀를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순수한 에너지 자체'라며 '오페라의 바이블'이라고 극찬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에서 앤 공주 역으로 나오는 날씬한 오드리 헵번을 동경하던 칼라스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당신 몸매가 오드리 헵번 같다면 진정한 트라비아타가 될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1954년, 10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체중을 30여 ㎏ 줄이는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키 174㎝의 늘씬하고 우아한 몸매의 여인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다. 195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성공적인 데뷔 직전에 칼라스는 은인 세라핀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그 이유는 세라핀이 그녀와 한마디 상의 없이 다른 소프라노 가수를 뽑아 '라 트라비아타'의 전곡 녹음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칼라스의 끈덕진 보복으로 일을 얻을 수 없게 된 20세기 최고의 오페라 연출자•지휘자였던 노(老) 세라핀은 불우한 만년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1958년, 칼라스는 공연계약 파기, 공연 포기 등을 거듭하면서 불화와 분쟁의 씨를 뿌린다. 1월2일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이탈리아 조반니 그론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벨리니의 '노르마'를 공연할 때 몸이 좋지 않아 약을 먹고 공연했으나, 통증과 약기운 때문에 결국 공연 중간에 그만두게 됐다. 청중들은 화가 나서 그녀를 맹비난했다. 


 5월에는 라 스칼라 극장에서 벨리니 오페라 '해적(Il Pirata)' 공연 중, 감독 안토니오 기린겔리와의 오랜 갈등으로 1959년 말까지 남은 계약 기간 동안 공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설상가상으로 11월6일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루돌프 빙 총감독은 1959년 시즌에 칼라스를 투입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해고를 통보해 왔다. 


 칼라스는 극장 측이나 동료들뿐만 아니라 종종 본인의 팬들과 언론에까지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그러나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수록 칼라스의 지명도는 더욱 높아졌고, 극장 앞은 그의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편 남편인 메네기니는 유럽의 콘서트를 알아보았고, 드디어 1958년 12월19일 칼라스는 파리 오페라 콘서트에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1907~1975)의 요트항해에 남편과 함께 초대받은 칼라스는 '세기의 연인'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진다. 자신 안의 여성 '마리아'를 재발견한 것일까. 


 1959년, 만 35세의 칼라스는 당시 53세였던 오나시스와 호화 요트로 애정 도피를 감행, 전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메네기니와의 10년에 걸친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결국 자기를 '세계의 디바'로 키워 주기 위해 물심 양면의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메네기니와 세라핀을 버렸고,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조차도 아랑곳하지 않은 마리아 칼라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 목소리와 예술의 쇠락뿐이었다. 

 

 

 

 


 1966년, 법에 따라 그리스 국적을 획득하기 위해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오나시스의 지시를 따라 그의 아이를 유산하면서까지 그와의 결혼을 갈망했지만, 오나시스의 사랑은 그녀의 재능과 명성만 갈구했을 뿐 일시적인 희롱에 지나지 않았고, 그는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1929~1994)과 결혼했다. 


 이후 파졸리니 감독의 '메데아(Medea•1969)'에 첫 출연하나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나시스는 재클린과의 결혼 이후에도 칼라스를 그리워했고 종종 그녀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이러한 복잡다난한 개인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 무리한 다이어트와 일정 소화 등이 그녀의 목소리를 너무 일찍 시들게 한 요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어쩌면 자기의 신념을 관철하고자 하는 그녀의 불 같은 성격이 자기 스스로를 비극으로 내몰았는지 모를 일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1965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참석한 코벤트 가든 왕립오페라 극장에서의 '토스카(Tosca)'를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사라진다. 영화에서는 이때 2막에 나오는 유명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가 나온다. 역시 컬러 화면으로 처리했다.

 

 

 


 자료화면에 루키노 비스콘티 및 비토리오 데 시카, 장 콕토 등 영화감독, 그리고 배우 오마 샤리프, 카트리느 드뇌브, 브리지트 바르도 등이 잠깐씩 보인다. 


 칼라스가 1974년 옛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이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1921~2008)의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 유럽, 아시아에 이르는 세계투어 공연의 일환으로 그 해 10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이화여대 대강당에 섰던 그녀는 카르멘과 라 조콘다, 메피스토펠레스, 라 보엠, 토스카 등의 타이틀 롤을 선보였다. 


이때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의 칼라스를 연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지만, 관객들은 칼라스의 주옥 같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서 있는 칼라스의 전설적인 모습을 감상하는 것에 만족했다. 


 마리아 칼라스는 1977년 9월16일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쓸쓸히 53세의 일기를 마쳤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어 에게해에 뿌려졌다. 지난 날 그녀 자신이 "고독은 공허하며 그것은 무(無)"라고 했지만 이 말 자체가 그녀의 만년을 선명하게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는 것이 진짜 여자가 되는 일"이라고 말했던 '마리아'는 이제 만인의 연인, 전설의 디바 '칼라스'로 남아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 (끝)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 강의가 내일(토) 오후 5시에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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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4
'마리아 바이 칼라스’(Maria by Callas)(상)

 

오페라의 성녀(聖女) '칼라스'와 아내•엄마가 
되고픈 여성 '마리아'의 내적 갈등 묘사

 

 

 

 

 

 최근에 신복고(新復古) 트렌드의 영화가 유행하고 있는 듯하다. 영국 록밴드 퀸(Queen)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비롯하여[註: 본보 1월25일자 '손영호 칼럼' 참조] 벌써 대여섯 번 리바이벌 된 '스타 탄생(A Star Is Born)',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를 그린 '영원의 문에서(At Eternity's Gate)'도 두세 번 리바이벌 된 영화이다.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1993)'가 제작 25주년 기념작으로 다시 상영되었다.


 또 있다. '전설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아 바이 칼라스(Maria by Callas)'가 출시되어 뉴트로(Newtro) 열풍에 가세했다. 


 프랑스 사진작가이며 파리 샤틀레 극장(Theatre du Chatelet)의 디지털 AV담당자인 톰 볼프(Tom Volf)가 2013년 뉴욕에서 의학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를 녹음한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광팬이 되었다. 그 후 3년여 동안 전 세계를 돌며 그녀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아 바이 칼라스'는 칼라스 사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녀 자신의 목소리와 노래만으로 구성되어 새로운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런데 중간에 들어간 ‘By’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마치 오페라 가수로서의 직업적 이름인 ‘칼라스’와 여성으로서의 이름인 ‘마리아’라는 두 성격이 내적으로 갈등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러닝타임 113분.


 "20세기 오페라의 역사는 칼라스 이전과 이후 두 개의 시대로 나누어진다"고 할 만큼 전무후무한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 그녀의 위대한 업적을 요약한다면, 음악과 언어의 상호 관계가 지니는 의미를 철저히 캐고 들어가 음악 속에 간직된 드라마와 감정 및 성격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냈다는 점에 있다고 한다. 


요컨대 예술적 표현력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다양한 영역과 음역을 넘나들면서 자신이 맡은 배역을 최고의 인물로 승화시켰던 진정한 예술가요 배우이자 음악가였던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12월2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그리스 출신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11세 때 방송국의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 '라 팔로마'를 불러 1등을 할 정도였다. 마리아의 목소리에 기대를 걸었던 어머니는, 마리아가 14세 때 그리스로 건너가 아테네 국립음악원 최고의 성악 교사였던 마리아 트리벨라에게 딸의 오디션을 의뢰, '하바네라'라는 노래로 그의 제자로 만든다. 나이를 17세로 속여 1938년도 학기부터 마리아가 스칼라십을 얻어 아테네의 국립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마담 트리벨라의 도움 때문이었다. 

 

 

 

 


 칼라스는 음악원에서 스페인의 왕년의 명 프리마 돈나였던 엘비라 데 이달고(Elvira de Hidalgo, 1891~1980)의 지도를 받게 된다. 이달고는 마리아에게 오페라에서의 노래의 비결을 속속들이 다 가르쳐 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칼라스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7월에 마리아가 출생지인 뉴욕으로 돌아가서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총지배인 에드워드 존슨을 찾아가 오디션을 받아냈을 때의 일이다. 존슨은 그녀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 '나비 부인'의 초초상 역과 '피델리오'의 레오노레 역을 제의했다. 마리아는 이런 역을 하기에는 너무 뚱뚱했기 때문에 무료라도 좋으니 '토스카'나 '아이다'를 부르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존슨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구엘프 출신의 오페라 테너 가수였다. 


 그러자 마리아는 총지배인에게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다. "언제건 메트로폴리탄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노래해 달라고 애원할 날이 올 거예요. 그때가 와도 나는 절대로 응하지 않을 테니 단단히 기억해 두세요." 그로부터 거의 11년 후에 정말 그때가 왔을 때 존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1947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아밀카레 폰키엘리(1834~1886)의 '라 조콘다(La Gioconda)'의 주역으로 데뷔함으로서 그 전설적인 활약이 시작된다. 이때 그녀에게 인생의 일대 전환기가 찾아온다. 이 고장의 재벌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1896~1981)와의 만남이었다. 체중이 90㎏이 넘는 뚱뚱보에 대식가인 마리아는 그녀보다 나이가 배도 넘는 아버지뻘인 메네기니의 헌신적인 봉사에 감동하여 1949년 봄에 결혼한 것이다. 


 그와 결혼하기 전후 4년간, 당대 최고의 이탈리아 오페라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1878~1968)은 마리아를 지도하여 그녀를 위대한 드라매틱 아티스트로 만들어 놓았다. 메네기니의 후원으로 마리아의 멘토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생활이 어려운 상태에 있던 어머니가 딸 마리아에게 월 100달러라도 좋으니 생활비를 좀 보내달라는 애원의 편지를 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줄 수가 없습니다. 돈이란 마당에 솟아나는 화초가 아니에요. …나는 살아가기 위해 목청을 돋우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아직 젊고(당시 54세) 일도 할 수 있잖아요. 살아갈 만큼의 벌이를 할 수 없다면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편이 낫겠지요." 이것이 마리아가 어머니에게 쓴 마지막 편지였다. 


 사실 셋째 딸 마리아를 낳았을 때 그 어머니는 또 딸이라고 나흘 동안 보지 않을 정도로 모녀의 갈등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 언니들과는 달리 노래 부를 때 외엔 늘 찬밥 신세였다고 알려졌다.


 1950년 4월, 칼라스는 자기의 라이벌 레나타 테발디(1922~2004)가 갑자기 아파서 '아이다(Aida)' 대역 요청을 받은 것을 계기로 유럽 오페라의 메카로 알려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 데뷔하여 이듬해부터 영광의 길을 내딛게 된다. 

 

 

 


 당시 타임지에 칼라스가 테발디에 빗대어 "샴페인과 코냑, 아니 코카콜라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하자, 발끈한 테발디는 "나는 칼라스가 갖고 있지 않는 한 가지 ―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의 라이벌 관계 및 성격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얘기로 회자된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4월 13일(토) 오후 5시에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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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초원의 빛’ (하)(Splendor in the Grass)

 

빈곤의 시대에서 풍요사회로 급변하는 
사회 규범 속 청소년의 성 문제를 다룬 수작

 


 

(지난 호에 이어)
 사랑과 청춘의 덫, 사랑이란 욕망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 삶은 사랑의 이름만으로는 결코 아름다워질 수 없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소유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런 저런 느낌과 회한 속에서 디니는 버드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버리고 차츰 순수하고 맑은 자신을 되찾아간다. 


 반면 그녀의 부모는 디니를 치료하는 프로이트식 섹스심리치료법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왜냐하면 그녀를 프로이트식 정신치료의 실험 대상으로 삼고 그 비용을 모두 자기들에게 전가시킨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929년 10월에 버드의 아버지 에이스가 버드를 줄곧 감시해온 사설탐정의 부정적인 보고를 받고 예일대 폴라드 학장을 만나기 위해 뉴 헤이븐에 온다. 학장을 만난 자리에서 버드는 "오로지 농장 생각뿐이기 때문에 공부에 소홀했다"고 털어놓는다. 학장은 학교를 그만두도록 권유하는데, 아버지는 아들 버드가 하층민 식당 여자의 꼬임에 빠져 학업을 중단하게 됐다며 심하게 나무란다.


 그때 주식시장이 붕괴하는 바람에 뉴욕으로 온 에이스는 아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들른다. 클럽소유주이자 호스티스인 '텍사스 귀난'(필리스 딜러)이 개그를 한다. "…오늘밤 내가 택시를 타기 위해 파크 애비뉴를 걷고 있을 때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시체들을 피해 가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죽지 않길 바래요." [註: 텍사스 귀난(Texas Guinan, 1884~1933)은 텍사스 출신 배우, 영화제작자, 사업가로, 1920년 제정된 '금주법(Prohibition)' 시기에 'speakeasy club'을 만든 여장부로 유명하다. '스피크이지'는 '쉬쉬 조용히 말해라'는 뜻이지만, 당시 법망을 피해 밀주를 만들어 은밀히 마신다는 은어이다. 그녀는 1933년 12월5일 금주법 폐지 꼭 한 달 전인 11월5일에 아메바성 이질에 걸려 캐나다 밴쿠버에서 49세로 사망했다. 이 금주법을 기점으로 마피아 알 카포네(Al Capone, 1899~1947)가 승승장구하게 되는데, 이 흑역사의 시기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 'The Untouchables(1987)' 등이 있다.]


 이미 알거지가 된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격려하고 무대에 있는 디니를 닮은 여자를 선물로 안겨주며 "이 세상은 네 것이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정말 간밤의 개그처럼 테라스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아버지의 시체를 확인해야 하는 비운의 버드! 

 

 

 

 


 한편 화사한 차림을 한 건강한 모습의 디니가 요양원을 퇴원하여 2년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신시내티로 돌아가서 의사 개업 준비를 하고 있는 존 마스터슨은 디니에게 프로포즈를 한 상태였다. 반면 전 재산을 잃고 과부가 된 스탬퍼 부인(조안나 루스)은 친척들과 살기 위해 마을을 떠났고, 버드의 누이 지니는 교통사고로 죽어 갑부였던 스탬퍼 일가는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다. 

 

 

4. 재회 그리고 이별

 


 버드의 사진을 떼어낸 벽의 빈자리를 보며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디니는 어머니를 조르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사실을 직시하는 게 딸에게 이롭다고 판단한 아버지 델 루미스(프레드 스튜어트)는 버드가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친구들이 디니를 데리고 먼지 나는 길을 달려 버드의 농장에 다다른다. 디니는 어색한 표정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지저분한 작업복 차림으로 건초 트럭에서 일하던 버드와 둘째 아이를 가진 임신복 차림의 안젤리나를 만난다. 바로 뉴 헤이븐 식당 종업원이었던 그녀와 결혼한 것이다. 아이를 안아보는 디니, 짠하다!

 

 

 

 


 버드는 그가 택한 삶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부럽지 않은 풍족한 삶에서 노동에 시달리는 농부의 삶으로 급작스럽게 바뀌어 옛날의 열정과 행복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은 디니는 "난 다음 달에 신시내티에서 막 개업한 존과 결혼해. …난 행복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하고 말하자 "그게 무슨 말이야? 닥쳐올 것은 꽉 붙들어야 해."하고 대꾸하는 버드.

 

 

 

 

 


 곧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차로 돌아가는 디니를 다시 불러 세우는 버드. 뭔가를 기대하고 다가오는 디니…. "다시 만나서 정말로 반갑다." 그게 다였다. "고마워 안녕!"… 젊은 날 순수와 열정으로 그토록 뜨겁게 첫사랑을 했던 두 사람은 다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고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돌아오는 차에서 친구 헤이즐(크리스탈 필드)이 디니에게 아직도 버드를 사랑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고, 대신 그녀가 낭송하는 워즈워스의 네 줄의 시구(詩句)가 관객에게 전달된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 시절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슬퍼하지 말라/ 차라리 그 속 깊이 숨겨진 오묘한 힘을 찾을지라."


 요즘에는 성적 자유를 넘어 성적 개방을 주장하는 세태이지만, 빈곤의 시대에서 풍요 사회로 급변하던 당시는 전통적으로 혼전에는 육체적 순결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교육을 받아왔고, 순결을 일종의 보험처럼 여겼다. 


따라서 '초원의 빛'에서 틴에이저 디니와 버드를 통해 전통적 사회규범에 의해 억압된 성과 열정, 부모의 전권적인 간섭과 압력, 사회계층 차별 등의 모순이 집중적이고 명료하게 묘사된다. 


 그래서 첫사랑의 아름다움은 초원의 빛처럼 순간적이지만 그 영광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그 속에 숨겨진 힘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 마지막 가슴 저미는 애틋한 메시지는, 불안한 방황과 정신적 혼란의 시기에 사랑의 시련을 겪는 젊은이들에게 극복과 치유의 방법을 제시하는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영화 출연시 23세였던 나탈리 우드(Natalie Wood, 1938~1981)는 1957년 19살 때 8세 연상인 미남 스타 로버트 와그너(89)와 결혼했으나 1981년 11월28일, 부부가 함께 요트 여행을 떠났다가 익사체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가 43세로 사망한지 29년만인 2010년에 동생 라나 우드(73)와 당시 요트 선장이었던 데니스 대번(2006년 'Goodbye Natalie, Goodbye Splendour' 저자)이 나탈리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2018년 2월 로버트 와그너를 처음으로 용의자로 지목해 귀추가 주목된다. (끝)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4월 13일(토) 오후 5시로 변경되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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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초원의 빛’(중)(Splendor in the Grass)

 

빈곤의 시대에서 풍요사회로 급변하는 
사회 규범 속 청소년의 성 문제를 다룬 수작

 


 

(지난 호에 이어)


2. 정신적 방황: 사랑의 부재(不在)

 

 

 


 송구영신 파티장. 풍선에 '28'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면 1929년 새해 전야인 것 같다. '올드 랭 사인'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버드가 모형 유전탑 꼭대기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동안 아버지 에이스 스탬퍼는 새해가 번성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는데…. 

 

 

 


 그러나 술에 취한 지니가 뭇 남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버드는 한 사내가 누나를 겁탈하려는 것을 보곤 그를 끌어내 싸움이 벌어진다. 입술이 터지고 얼굴에 멍이 든 버드는 디니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역겨움에 "이제 차속에서 키스나 하는 일 그만하자"며 당분간 만나지 말 것을 선언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다음, 버드가 학기말 성적표를 받는데 'C' 학점을 받는다. 담당 여선생 롱필드는 "가을에 예일 대학에 진학하려면 이 성적으론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버드가 농구게임을 하던 중 골 밑에서 점프슛을 하다가 폴대에 부딪쳐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스탬퍼 가정의인 닥터 스마일리(존 맥거번)가 진찰한 결과 폐렴인 것 같다며 입원하기를 권유한다. 


 병원에 온 에이스 스탬퍼에게 닥터 스마일리가 "난 종교인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엿들은 디니는 화이트맨 목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가 그의 완쾌를 빌며 간절히 하느님께 기도한다. 

 

 

 


 하지만 늦은 봄날, 응답이라도 하듯 완쾌된 버드는 개방적이고 난잡한 여자친구 화니타와 어울려 폭포에서 섹스를 즐기며 디니를 만나주지 않는다. 

 

 

 

 


 학교 수업시간. 멧카프 선생이 디니에게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를 낭독하게 하고 그 시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외롭고 우울증에 빠진 디니는 버드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자 왈칵 눈물이 나오고 목이 메지만 꾹 참고 크게 말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젊음의 이상향을 잊고 강인함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에요."하곤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디니.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수록 버드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가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이성적인 생각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점점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디니는 욕실에 온 엄마에게 오직 "죽고만 싶다"고 말한다. "버드가 널 더럽혔니?"하고 묻는 엄마의 말에 "더럽혀요? 난 태어난 상태 그대로 순결하다고요. 정숙한 숙녀라고요. 난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복종해 왔다고요. 난 부모님이 미워요. 증오한다고요." 히스테릭하게 고함치며 욕탕에서 나와 알몸으로 자기 방으로 냅다 뛰어가는 디니! 


 학교 체육관에서 열리는 졸업댄스파티에 데려가기 위해 버드가 아닌 친구 앨런 '투츠' 터틀(게리 락우드)이 디니의 집에 찾아온다. 


 "문 열어놓을게. 너무 늦지 말아라"는 엄마의 당부를 듣는 둥 마는 둥 우미한 붉은색 정장을 하고 떠나는 디니는 과잉보호 하는 어머니를 비판한다. "엄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렇게 얘기해 왔지. 난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생각하곤 했지만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무것도!"


 댄스파티장에 당도하자 여자친구들이 디니를 반기고 포옹한다. 버드를 찾다가 주차장에서 그를 발견한 디니는 마치 그의 누나 지니처럼 행동해 보인다. 그리고 버드를 그의 차 속으로 끌어들여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나 정숙한 여자 아니야. 난 너를 원해." 돌발적 행동에 충격을 받은 버드가 "넌 정숙한 여자야 디니. 왜 그래? 네 자존심은 어디 갔니?"라며 말리자 "난 자존심도 없어. 없다고! 그저 죽고 싶을 뿐이야."라며 신경질을 부리다가 보란 듯 투츠의 차를 타고 떠나버리는 디니. 


 차를 몰아 폭포가 있는 주차장에 다다른 투츠가 디니를 덮친다. 간신히 그의 애무를 뿌리치고 도망친 디니는 자살을 결심, 강물에 뛰어들어 폭포 가까이로 떠내려 갈 무렵 이를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된다. 한편 버드는 디니의 집을 찾아갔지만 디니는 없다…. 

 

 

 


 아직 디니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병원에서 버드는 닥터 스마일리에게 "아버지가 뭐라 하든 (법적)성인인 나는 디니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는데 그는 "진정으로 디니를 위한다면 그녀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얼마나 오랫동안이요?" "그건 모르지." 이에 울음을 터뜨리는 버드. 


 "저기 누구에요? 누군가 여기 있었어요." 정신을 차린 디니의 말에 퉁명스런 간호원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디니는 버드가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결정적 장면이다! 여기서 만약 간호원이 버드를 불러들였다면, 디니는 분명히 좋아졌을 것이고, 둘은 행복한 결합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게 호락호락 진행되지 않는다.

 

3. 시련 그리고 뒤바뀌는 운명


 가난한 디니의 부모님은 그녀의 위치타 정신병원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스탬퍼 오일회사의 주식을 팔게 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큰 행운이 되었다. 왜냐하면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발단이 된, 이른바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 직전에 팔았기 때문에 큰 돈을 벌게 되었던 것이다. [註: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뉴욕 주식시장 대폭락을 말하며, 이 '검은 목요일'은 수많은 사람들의 재산을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따라서 그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도 큰 손실을 보고 1930년부터 전국적으로 은행들이 연달아 파산하기 시작하여 전 세계로 확산됨으로써 경제대공황을 맞게 되었다.]

 

 

 


 장면은 울적한 색소폰 음악과 함께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New Haven) 소재 예일 대학교 캠퍼스를 보여준다. 버드는 예일 대학에 진학했으나 학업에는 뜻을 두지 못하고 자포자기한 상태이다. 그가 위로 삼아 찾아간 조그마한 이탈리아 피자 식당에서 검은 머리의 종업원 안젤리나(조라 램퍼트)가 술을 더 요청하는 버드를 말린다. 그녀는 이탈리안 이민자의 딸이었다. 


 한편 위치타 정신병원에 있는 디니는 옥외에서 흔들의자에 앉아있다. 그 옆에 또 다른 환자 존 마스터슨(찰스 로빈슨)이 금속 조각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완벽주의자인 아버지가 그를 의과대학에 진학시키려는 압력으로 인해 발병한 '분노에 찬 공격적 성향'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해 있었다. 처지가 비슷한 둘은 금세 친해지고 디니는 차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한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4월 13일(토) 오후 5시로 변경되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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