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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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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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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천국의 열쇠(3)(The Keys of the Kingdom)

 

인내와 신념과 용기로 참된 섬김과 사랑을 몸소 
실천한 신앙인의 거룩한 삶을 그린 감동의 작품

 

 

 

 

 

(지난 호에 이어)
 어떻게 일군 선교지인데 갓 온 마리아 베로니카 수녀가 주인 행세를 하고, 사기꾼 신자인 왕 부부를 이곳 숙소에서 지내게 하는 등 제멋대로 행동함으로써 서로 긴장이 가중될 즈음, 프란치스의 친구인 윌리 박사가 스코틀랜드에서 이 먼 곳을 방문한다. 


 둘은 차를 마시며 노라의 딸인 주디에 대해 얘기하다 '인생의 행복'에 대해 논한다. 윌리는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주고 받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수천 수만 개의 아스피린을 주고 아일랜드산 위스키 한 병을 얻었지."하고 익살스럽게 얘기하는데… 식사 서빙을 하는 조셉의 눈가에 멍이 들었다. 

 

 

 


 호사나 왕이 프란치스 신부님을 욕하기에 경고를 주었지만 계속 지껄였기 때문에 두들겨 팼는데, 그의 아내 필로메나 왕이 빗자루로 때려서 상처가 났고 그래서 그녀도 패주었다고 경위를 설명하는 조셉. 


 듣고 있던 윌리가 "여자에게도 동등한 (두들겨 맞을) 권리를 부여했다"고 치하하고, "원장수녀는 위대한 수녀이고, 신부는 조그만 티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에 프란치스가 "어차피 인간은 모두 먼지에 불과한데 욕을 하더라도 자네가 좀 참았어야지!"하고 나무라자 "아마도 인내와 자비로 가득찬 사람이 있다면 바로 신부님일 거예요."라고 볼멘소리로 대꾸하는 조셉. 

 

 

 


 이때 원장수녀의 급한 전갈을 받고 수녀원으로 가는 프란치스. 왕 부부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쌈짓돈과 두 수녀의 은 십자가와 원장수녀의 상아 십자가 등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수녀원장은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진짜 상아는 아니지만 천 년이나 오래된 가보(家寶)였기에 아쉽다고 말하곤 숙소로 돌아간다.


 이 무렵 치아가 방문하여 청나라 제국 군대와 혁명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알린다. 성당 및 수녀원의 안전을 위해 대피하도록 종용하고 자기는 여름 별장으로 피신한다며 급히 사라진다. 


 프란치스 신부는 곧 혁명군의 중대장 선 대위(리처드 루)를 만나 이동병원으로 사용할 장소 제공을 부탁하는데, 치아의 빈집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병사를 치료하는 프란치스 신부에게 대위가 "내가 부상 당하면 치료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라고 말하자 "이것이 다 주님의 덕분입니다"라고 대답하는 프란치스 신부. 

 

 

 


 이에 대위가 "그럼 이런 전시상황을 만든 것도 하느님 때문이군요"라고 말하자 윌리가 "다 종교의 차이 때문입니다. 신부는 하느님을 믿고 당신은 공자를 믿지만 내가 믿는 것은 예방의학밖에 없어요"라며 흑사병(페스트) 예방을 위해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당장 치워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대위는 시체들을 빈집들 속에 옮겨놓고 모두 불을 질러 태워버린다. 지옥이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광경이다.


 환자를 돌보던 윌리가 "또 다른 밤이 지나가고 또 다른 새벽이 온다. '중국의 뱃속에서의 엿새 동안의 밤과 낮'이라는 책을 써야겠다"고 말하는데 프란치스가 졸고 있다. 전쟁 부상병과 전염병 치다꺼리 등으로 일주일간 잠을 못 잤기 때문이다.


 이때 조셉이 헐레벌떡 달려와 교회가 정부군의 포격으로 파괴됐다고 알린다. 세 명이 교회로 가던 길에 윌리가 부상병을 발견하고 치료하기 위해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는 찰나 정부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윌리가 침대에 누워있다. 그 옆에서 프란치스가 그를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윌리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자 함께 기도하던 마리아 수녀는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린다. 


 윌리는 "자네가 천국에 가거든 명부에 내 이름을 찾지 말게. … 하지만 난 자네를 지금만큼 더 사랑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하네. 왜냐면 자넨 (신자가 아님에도) 날 천국으로 보내려고 기도했으니까."라며 유머의 끈을 늦추지 않다가 끝내 객사한다. 

 

 

 


 윌리 털로크는 당시 서구의 전통적인 사상이나 신구교도의 종교적 가르침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의 온 삶을 던져 몸소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면서 의롭게 죽었다. 절친한 친구 프란치스 신부의 기도가 심금을 울린다. "자네가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네 행위를 보아 하느님께서 너를 믿을 것이야…주님, 이번만은 주님 뜻대로 마시고 제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정부군 웨이 장군으로부터 세 가지 제안을 강요 받는 프란치스 신부. 첫째 혁명군 부상자 치료를 중지할 것. 둘째 800파운드의 쌀과 미국산 통조림 등 보급품과 귀금속을 정부군에 넘길 것. 셋째 보호하고 있는 중국인을 모두 정부군으로 보낼 것. 이를 거절하면 모두 몰살시키겠다며 오늘밤 자정까지 회신을 달라고 명령하곤 장군부대는 포대로 돌아간다.


 조셉과 프란치스는 혁명군과 합세하여 사보타지할 계획을 세운다. 결국 신부로서의 불편부당함을 넘어, 요청한 보급품을 가져온 것처럼 위장하여 숨겨온 폭탄으로 정부군 포대를 기습, 성공한다. 그러나 폭발 때 파편에 맞아 다리를 다치는 프란치스 신부!


 몬시뇰 슬리쓰의 내레이션과 함께 프란치스의 고향친구 앵거스 메일리가 파이탄의 선교지를 방문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를 환영하는 프란치스. 앵거스는 '국제선교회'의 특사로 세계 선교지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온 것이다. 


 거만하지만 사교적•정치적이며 언변과 수완이 좋은 앵거스는 파괴된 교회를 보고 놀란다. 여기서 대미사를 집전하고, 런던 본부에서는 '성 앤드류스 선교' 또는 '가장 암울한 중국에서의 하느님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자기를 돋보일) 강연을 할 계획이었는데 실망스럽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자네의 실망은 우리의 실망에 비할 바 아니라네"라고 에둘러 대꾸하는 프란치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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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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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천국의 열쇠"(2)(The Keys of the Kingdom)

 

인내와 신념과 용기로 참된 섬김과 사랑을 몸소 
실천한 신앙인의 거룩한 삶을 그린 감동의 작품

 

 

 

 

(지난 호에 이어)
 선착장에 마중 나온 호사나 왕(Hsi Tseng Tsiang)과 필로메나 왕(Si-Lan Chen) 부부가 그를 안내하다 폐허가 된 성당 앞에서 멈춰 선다. 약 400명의 신도들이 있다고 들었던 프란치스는 복구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왕 부부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이른바 ‘쌀 신자들’(Rice Christians)이었다. 말하자면 왕 부부를 포함하여 돈을 받고 신앙인인 척 하는 가짜 신자들로, 교회가 쌀을 구입할 '현금' 지원을 1년 이상 끊자 그나마 척하던 신앙심마저 떠나버렸던 것이다. 

 

 

 


 프란치스는 파이탄의 어느 폐가를 빌려 전도의 본거지로 삼고 '천주당(天主堂)'이란 간판을 내걸지만 배타적인 사람들이 던진 돌에 몸도 다치고, 돈 한 푼커녕 영향력도 없어 견디기 어려운 막막한 처지에 놓인다. 


 맥나브 주교에게 이러한 상황을 보고하는 편지를 쓰고 있던 어느 날, 본명이 타밍, 세례명 조셉이라는 젊은 청년(벤슨 퐁)이 불쑥 찾아온다. 처음에는 그도 '쌀 기독교인'이라 생각했지만 진정한 신앙인과 봉사자로 교회 건축에 도움을 주기 위해 4박5일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얘기를 듣고 사과하는 프란치스. 조셉이 준비해온 음식과 차로 모처럼 프란치스는 활기를 되찾는다. 

 

 

 

 


 이윽고 친구 윌리 박사로부터 의약품과 사용설명서 등을 공급 받은 프란치스 신부는 나무궤짝 속에서 발견한 그의 편지를 읽는다. "살릴 사람은 치료하지만 할 수 없다면 죽게 내버려두라"며 추신에는 "면허 없이 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영국의학협회, 교황 및 자기집 중국인 세탁부에게 고발하겠다"고 익살스런 유머까지 썼다. 


 마을사람들에게 무상 의료지원을 공고하자 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아무도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 병에 걸린 노파가 찾아와서 죽기 전에 고아가 될 손녀딸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여아라서 아무 쓸모가 없어 맡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프란치스 신부는 기꺼이 그 아이를 맞아들이며 장차 수녀들이 오면 학교를 만들어 글도 가르치고 교리문답도 하며 놀이터도 만들 꿈에 부푼다. 

 

 

 

 


 노파와 손녀딸이 프란치스에게 엎드려 큰절을 하는데, 마을 부호인 치아의 사촌인 파오 집사(필립 안)가 찾아온다. 그는 치아의 외아들이 놀다가 엄지손가락을 다쳤는데 몸의 오행(五行)이 막혔는지 고열이 나고 한쪽 팔이 검푸른 색으로 변하여 다 죽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프란치스는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묻는다. 3명의 한의사와 도교승이 정기적으로 체크하며 한방 치료를 한다고 대답하는 파오.


 그러나 프란치스가 자기는 훈련 받은 의사가 아니라고 말하자 파오는 "신부는 세상에 선행을 베풀기 위해 왔으며 그의 축복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베푼다"고 들었다며 마지막 축원이라도 해달라고 애원한다. 


 한편 조셉은 만일 아들이 죽으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치아로부터 프란치스 신부가 위험에 처해질 것이라며 걱정하는데…. 이런 조셉에게 돌아올 때까지 쉬지 말고 기도에 전념하라는 말을 남기고 결연히 치아의 집으로 향하는 프란치스. 

 

 

 

 


 향을 피우고 부적을 써붙인 벽에 대고 연신 절을 하고 있는 도교승과 이를 지켜보는 한의사들은 서양귀신(?)을 본 듯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뜨거운 대야물을 준비시키고 아이의 왼팔에 고름이 엉겨붙은 수십 겹의 부적을 걷어내고 수술을 하여 고름을 짜낸 후 절대 다른 조치를 못하도록 당부하고 떠나는 프란치스. 


 다행히 아들은 살아났지만 치아의 가족들은 전혀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전통적 방법과는 달리 몸에 칼을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몇 주가 지난 어느 일요일 오후, 조셉이 노파의 손녀딸에게 안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헝겊인형을 만들어 주며 놀고 있을 즈음, 치아(레너드 스트롱)가 프란치스 신부를 찾아온다. 바쁜 공무 때문에 기회가 없었다며 그는 대뜸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자기가 개종하면 파이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따라 크리스천이 될 것이고 그것이 곧 감사에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개종의 합당한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프란치스는 거절하고 보답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라며 그를 타일러 돌려보내는데…. 


 가마를 타고 가려던 치아가 페허가 된 본당 앞에 멈춰서더니 뒤따라온 프란치스에게 '화려한 비취(翡翠) 언덕'이라 불리는 전망 좋은 언덕을 가리키며 자기 땅이란다. 치아는 아들을 살린 감사의 표시로 이 땅과 20명의 일꾼 그리고 원하는 건자재 등을 대주어 교회를 짓게 하고 법적인 서류와 토지대장 등을 내일 당장 준비하겠다고 약속한다. 


 기쁨에 넘쳐 언덕 위로 달려가는 프란치스와 조셉. 그 뒤를 안나가 아장아장 쫓아간다. 프란치스는 하느님께 기도한다. "내 영혼은 주님 속에서 기쁨이 넘치나이다. 전지전능하신 주께서 저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주여!"


 몬시뇰이 읽는 일기장을 보여주며 장면은 바뀐다. 2년 동안의 계획과 건설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회중은 번성하고 건물이 거의 완공될 무렵, 예정보다 하루 먼저 수녀들이 도착한다. 이를 모르고 중국인 복장으로 한창 밭일을 하고 있던 프란치스 신부의 남루한 모습을 보고, 마르타 수녀(새라 올굿)와 클로틸데 수녀(루쓰 포드)를 대동한 마리아 베로니카 원장수녀(로즈 스트래드너)는 노골적으로 그를 경멸한다. [註: 로즈 스트래드너(Rose Stradner, 1913~1958)는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로 당시 제작자 조셉 L. 맨키비츠의 부인이었는데 1958년 45세 때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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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1
‘천국의 열쇠’(1)(The Keys of the Kingdom)

 

인내와 신념과 용기로 참된 섬김과 사랑을 몸소 
실천한 신앙인의 거룩한 삶을 그린 감동의 작품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은 '로마제국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에서 엄청난 규모의 카라칼라 대욕장(Terme di Caracalla) 등 공중목욕탕의 건립을 로마 멸망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AD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파묻혔던 나폴리 인근의 폼페이 유적지에 가면 당시 큰 규모의 냉탕, 온탕, 열탕으로 이루어진 공중목욕탕을 볼 수 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자연 태양열 이용 및 통풍을 위해 천장에 뚫어놓은 돔 또는 열쇠 모양의 형상들이었다. 


이 형상은 바티칸 시티의 성 베드로 성당의 돔 설계 및 베드로 광장과 연결되는 이른바 '화해의 길(Via della Conciliazione)'의 열쇠 모양 설계의 원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6:16~19에 의하면 예수님은 중요한 시기를 맞아 열두 제자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다. 이에 시몬 베드로는 대답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축복을 내리고 이렇게 말씀 한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로마 가톨릭은 이 구절에서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되었다는 근거를 찾는다. 이후 열쇠는 교황권의 상징이 되었고, 모든 교황은 '열쇠의 권능'을 가졌다고 추앙 받았다.
 '천국의 열쇠'라는 영화를 소개하기 위한 서론이 좀 길어졌다. 75년 전 흑백영화로 원제는 'The Keys of the Kingdom'이다. 여기서 'Kingdom'은 엄밀히 말하면 'Kingdom of Heaven'이다. A. J. 크로닌(Archibald Joseph Cronin, 1896~1981)의 1941년 소설을 원작으로 조셉 L. 맨키비츠와 누날리 존슨이 각색, 존 스탈(John M. Stahl, 1886~1950)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1944년 20세기 폭스사 배급. 출연 그레고리 펙, 토머스 미첼, 빈센트 프라이스 등. 음악감독 앨프리드 뉴먼. 촬영감독은 '내 계곡은 푸르렀다(1941)' '베르나데트의 노래(1943)' '왕과 나(1947)' 등으로 유명한 아서 C. 밀러. 러닝타임 136분.

 

 

 

 


 첫 장면은 1938년 스코틀랜드 트위드사이드 시골마을의 작은 교회. 가정부와 고아 앤드류와 함께 살고 있는 늙은 프란치스 치숌 신부(그레고리 펙)의 교구이다. 몬시뇰(주교의 비서신부, 집무관) 슬리쓰(세드릭 하드윅 경)가 방문하여 주교의 뜻에 따라 은퇴를 권고하는데, 고향인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봉사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프란치스. 
 몬시뇰은 냉정하게 대하고 하룻밤을 묵기 위해 목사관의 방으로 올라간다. 거기서 우연히 발견한 프란치스 신부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그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8년, 어부로 가톨릭 신자인 아버지 알렉(데니스 호이)과 개신교도인 어머니 리스벳(루스 넬슨)과 함께 단란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어린 프란치스(로디 맥도월). 당시는 신구교도가 대립하던 시기였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밤, 읍내에 나갔던 알렉이 반가톨릭 교도들에 의해 몰매를 맞아 길거리에 쓰러진다.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리스벳이 나가 그를 찾아 부축해서 돌아오던 중 출렁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급류에 휩쓸려 둘 다 사망한다. 

 

 

 

 


 졸지에 고아가 된 프란치스는 아버지의 먼 사촌 뻘인 폴리 숙모(에디트 바레트)에 의해 부양된다. 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폴리의 딸 노라(페기 앤 가너)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제 성인이 된 프란치스(그레고리 펙)와 노라(제인 볼). 고향친구 안셀름 '앵거스' 메일리(빈센트 프라이스)와 함께 타인캐슬에 있는 홀리웰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는 프란치스는 교회의 모든 가르침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아마도 사랑하는 노라가 그가 사제가 되면 영원히 떠날 거라며 두렵고 고독을 느낀다고 호소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부 때문에 방학 때도 귀향을 못하던 프란치스는 이를 눈치 챈 학장 해미쉬 맥나브 주교(에드먼드 그웬)의 도움으로 노라를 만나러 기차로 고향 트위드사이드로 간다. 

 

 

 

 


하지만 의사 친구 윌리 털로크(토머스 미첼)로부터 노라가 사생아를 낳고 방금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는다. 윌리는 그녀를 보기 위해 이층으로 올라가려는 프란치스를 극구 말리고 함께 마을 길을 걷는다. 이때 종소리와 미사 합창이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이제 노라가 없는 프란치스는 학업에 정진하여 마침내 신부가 된다. 어느 날 맥나브 주교가 프란치스에게 중국 자원 선교사직을 제안한다. 주교의 낚시광 친구이며 고아로 자랐지만 성실성과 양심을 바탕으로 오롯이 해맑은 영혼을 지니고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제자인 프란치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고향으로부터, 또 보살펴주던, 죽은 노라의 딸 쥬디와도 멀어지지만 이를 선뜻 받아들이는 프란치스 신부. 주교는 그가 훌륭한 신부가 되고 반드시 교회를 일으켜 세우리라고 믿는다며 낚시할 때 늘 갖고 다니던 애지중지하는 낡은 우산을 그에게 선물로 준다.


 드디어 중국 처코우성 파이탄 오지로 간 프란치스. [註: 추측컨대 홍콩과 인접한 중국 광둥성(廣東省)에 있는 쩡청구(增城區) 파이탄진(派潭鎭)인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2월 6일(수) 오후 1시 30분 갤러리아 쏜힐 문화교실에서 강사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강좌가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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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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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전설적 록밴드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그린 '뉴트로' 영화

 

 

 

 

 지금도 스포츠 경기장 등에서 관중들의 응원가로 1994년 FIFA 월드컵 공식주제가로 지정되었던 승리의 찬가인 'We Are the Champions' 또는 발을 구르거나 손뼉을 치며 노래하는 'We Will Rock You'를 듣게 되는데 그 원곡이 영국 록밴드 퀸(Queen)의 히트곡이다. 


최근에 퀸의 탄생부터 1985년까지 15년간 일어난 일화들을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의 삶을 중심으로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나왔다. 


 퀸이 크게 활동하던 시기인 1978~1982년에 필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주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인기절정의 아바(ABBA)와 함께 퀸의 공연을 TV를 통해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이 있었던 1985년에는 미국 LA에 주재할 때라 퀸의 광팬은 아니었지만 그 언저리를 맴돌고는 있었다고 보겠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유독 광풍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궁금했다. 여러 평론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대체로 '뉴트로(New+Retro의 복합신조어)', 즉 '신복고(新復古)' 트렌드를 꼽고, 이는 경제가 불황임을 반증하는 현상이라고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영화관 상영기술의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도 한몫 했지 싶다. 한국상영관(2018년 7월23일 기준 전국 50개 극장 83개 상영관)에서는 중앙 화면과 좌우 3면으로 된 270도 파노라마, 이른바 '스크린 엑스(Screen X)'라는 포맷으로도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이 다면상영시스템 기술은 2012년 우리나라 CGV와 KAIST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현재 미국, 캐나다, 프랑스, 스위스, 일본, 중국 등 해외에 진출하였다. [註: 토론토에서는 현재 'Aquaman(2018)'이 스크린X로 상영 중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기근 돕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된 'Live Aid' 공연이다. 1985년 7월13일 약 10만 명이 모여든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과 약 15만 명의 관중이 참여한 미국 필라델피아 존 F. 케네디 스타디움에서 동시에 진행된 세기의 공연이었다. 당시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총출연한 이 공연은 TV위성중계(BBC, MTV, ABC)로 세계 150개국에 세계인구의 40%인 19억 명이 시청한 사상 초유의 지구촌 잔치였다. 총모금액은 무려 1억2,700만 달러.


 퀸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오후 6시41분부터 21분간 1970년대 중후반에 작곡했던 'Bohemian Rhapsody' 'Radio Ga Ga' 'Hammer to Fall'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We Are the Champions' 등 6곡을 불렀는데 록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로 꼽힌다.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 역의 라미 말렉(37)의 연기 및 모습이 마치 머큐리가 환생한 듯 빼닮았는데 라이브 무대 공연을 스크린X의 입체적 화면으로 본다면 퀸을 모르는 1020세대들도 저절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했으리라. 거기에 '떼창'까지 곁들여졌으니. [註: 결국 일 냈다. 지난 6일 베벌리힐즈 힐턴호텔에서 개최된 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및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70년 인도계 영국인으로 히드로 공항 수하물인부로 일하던 파로크 불사라(라미 말렉)는 나이트클럽 밴드 '스마일'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벤 하디)와 함께 베이스 기타리스트 존 디콘(조 마젤로)을 영입하여 '퀸' 밴드를 결성한다. 그는 밴을 팔아 자신들의 데뷔 앨범을 제작한 것이 EMI레코드사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스타가 아닌 전설이 되기 위해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로 바꾼다. 

 

 

 

 


 프레디는 비바 패션가게 점원인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튼)과 약혼을 한다(결혼은 안 했다). 1975년 퀸의 4번째 앨범 'A Night at the Opera'에 삽입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당시 통념인 3분대를 배로 뛰어넘는 길이 때문에 EMI 사장 레이 포스터(마이크 마이어스)로부터 거부 당한다. 


그러나 프레디는 친구인 DJ 케니 에버레트(디키 보)를 통해 라디오 방송에 띄웠는데 대히트를 쳤다. 이 곡은 아카펠라, 발라드, 오페라, 하드 록 등 전혀 다른 장르들을 조합한 실험적 구성으로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를 열었으며 또 홍보영상을 제작, 세계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1976년에 프레디는 메리에게 양성애자라고 고백하는데 그녀는 그가 게이라고 믿는다. 퀸의 성공은 계속되어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지만 1982년 앨범 'Hot Space'의 프로모션 기자회견에서 프레디의 개인 성생활에 대한 폭탄 질문이 쏟아지면서 불거지고, 그의 개인비서이자 파트너였던 폴 프렌터(앨런 리치)가 해고에 앙심을 품고 그의 게이 행각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대중에게 알려진다.


 프레디가 독일 뮌헨에서 1984년 CBS레코드사와 당시 4백만 달러 계약의 첫 솔로 앨범 'Mr. Bad Guy'를 취입했을 때, 메리가 찾아와 봅 겔도프(더모트 멀피)가 '라이브 에이드' 출연 제의를 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밴드로 복귀할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런던으로 돌아온 프레디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폴을 해고하고 동료들과 변호사 겸 매니저인 짐 비치(톰 홀랜더)에게 용서를 빌고 공연 출연을 수락한다. 하지만 이때 AIDS에 감염된 사실을 발견한 프레디는 리허설 중 동료들에게 진실을 밝히는데…. 

 

 

 


 드디어 '라이브 에이드' 공연 날 그의 가족과 상봉한 자리에서 프레디는 그의 아버지의 조로아스터교 교리인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가슴에 새기고, 평생을 함께 한 메리 오스틴(현 67세)에게 1천만 달러의 유산과 런던 켄싱턴 대저택 상속을 유언으로 남긴다. 1991년 프레디가 죽은 다음 해에 메리 오스틴, 짐 비치와 퀸의 멤버들이 AIDS 퇴치를 위한 세계적인 '머큐리 피닉스 트러스트' 재단을 창립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 프레디 머큐리와 퀸을 아는 5060 이상의 아날로그 세대는, 모르는 젊은 디지털 세대보다는 그래도 행복한 세대였지 않았나 싶다. 

 


※ 군더더기: 이 영화에 미국 '아메리컨 아이돌' 출신 가수로 퀸의 오리지널 맴버인 브라이언 메이(71)와 로저 테일러(69)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애덤 램버트(36)가 트럭운전사로 카메오 출연했다. 

※ 알림: 2월 6일(수) 오후 1시 30분 갤러리아 쏜힐 문화교실에서 강사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강좌가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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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XI)-'사운드 오브 뮤직' (하)(The Sound of Music)

 

 
음악과 사랑이 살아 숨쉬고 우리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장면으로 가득한 뮤지컬 명화 


 

 

 

 

 

 

 

 

(지난 호에 이어)
 평생 조국 오스트리아를 위해 충성을 바쳐온 전역 군인인 그에게 '게양하지 못하는 국기'는 곧 절망과 같다.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치의 깃발을 찢어버리는 일 뿐인 대령은 소집명령을 피해 당장 망명할 계획을 세운다. 


 그날 밤, 캡틴 가족이 차에 시동도 걸지 않고 전조등도 끈 채로 집밖으로 살살 밀고 나오다 기다리고 있던 나치 돌격대인 '갈색 셔츠단'과 맞닥뜨린다. [註: '돌격대(Stormtrooper)'는 나치당이 주최하는 연설회 등 정치 활동의 경호 및 반대 정당을 제압하고 당 간부의 신변 보호를 목적으로 창설된 준군사적 조직이었다. 제복의 색깔 때문에 '갈색 셔츠단(Brownshirts)'으로 불렸다. 후에 독립하는 친위대(Schutzstaffel, SS)는 검은색 제복을 착용하여 구별된다.] 


 지방장관인 한스 첼러의 질문에 합창경연대회에 참석한다고 하자 첼러는 에스코트를 해주겠다고 한다. 호위를 빙자한 감시를 받으며 대회장으로 향하는 폰 트랍 가족. 잘츠부르크 축제 합창대회 공연장. 폰 트랍 일가는 다양한 화음으로 '도레미송'을 선보인 후, 대령이 징집되었음을 밝히며 "오스트리아 동포들이여, 이 노래에 대한 사랑을 잊지 마십시오."라며 "에델바이스"(youtube.com/watch?v=8bL2BCiFkTk)를 부른다.


 이 노래를 부르던 대령이 목이 메어 노래가 끊기자 관중들이 받아서 합창을 하고 이에 나치 인사들이 안절부절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그리고 "다시 뵈요, 안녕" 합창을 부른다. 이 마지막 노래는 파티장에서 어른들을 즐겁게 해 주던 귀여운 아이들의 노래가 아닌, 집과 터전을 떠나야 하는 그들의 마지막 인사에 다름 아니다. 


 콘테스트가 끝나고 경연대회의 진행을 맡은 막스가 수상자를 하나씩 발표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에 폰 트랍 가족은 교묘하게 도망쳐 가까운 수녀원을 찾아가 아베스 수녀원장의 도움으로 원내 묘지의 비석 뒤에 몸을 숨긴다. 


 그러나 롤프에 의해 발각된다. 그는 폰 트랍 대령을 권총으로 죽이려고 하지만 대령은 롤프를 설득하면서 가족들을 미리 차에 태운다. 뜻을 이루지 못한 롤프는 호루라기를 불며 "여기에 그들이 있어요!"라고 소리친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긴 가족은 대기해 놓은 차로 탈출하려고 하나 "라디오에서 들으니 국경이 닫혔답니다."라는 아베스 수녀원장의 말을 듣고 안전하게 먼 길을 걸어서 야반도주를 시도한다. 

 

 

 


 한편 수녀원장의 지시로 버니스 수녀(에바드네 베이커)와 소피아 수녀(마르니 닉슨)가 미리 나치 차의 엔진 부품을 제거해 놓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마리아 가족은 드디어 스위스 국경에 다다른다. 용기와 신념을 갖고 밤을 새워 걸어서 다음날 아침 마침내 스위스 땅을 밟는 폰 트랍 일가는 안전과 자유를 얻게 되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5개 상을 수상했으며,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 및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흥행에도 대박을 터뜨려 제작비 820만 달러의 이 영화는 전 세계 29개국에서 23억6,600만 달러(2014년 가격환산 기준)를 벌어들였다. 


 한국에서는 4년 뒤인 1969년 개봉, 서울관객 18만 명을 기록하여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흥행에 성공했었다. 2001년에 미국 국회 도서관 소속 국립영화등기소에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로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는 2000년 8월22일에 발매되었는데 16개의 오리지널 곡이 포함되어 있다. 2010년 45주년 기념판에는 26곡이 담겼다. 같은 노래의 다른 버전의 연주 및 뮤지컬 버전의 노래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폰 트랍 대령 가족들은 그 후 미국으로 이주해 왔으나 세계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은행들이 파산하면서 토지와 저택을 제외한 대부분의 재산을 잃게 되어 수녀들과 가톨릭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숙집을 운영해 생계를 유지했다.


 마리아는 실제 미국에서도 음악활동을 펼치다가 아이들이 다 큰 1955년에 활동을 중단하고, 버몬트의 농장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작은 리조트 호텔을 운영했으며, 증손자까지 100여 명의 자손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다가 1987년에 사망하여 40년 전에 죽은 남편 곁에 묻혔다.


 현재 영화 속 7명의 아이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마리아와 폰 트랍 대령 사이에서 난 1남2녀는 아직 생존해 있다. 맏딸 로즈마리(90)는 파푸아 뉴기니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최근에 돌아와 피츠버그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자녀는 없다. 둘째 딸 엘리뇰(87)은 1954년 결혼하여 7공주와 함께 버몬트에 살고 있으며, 요하네스(79)는 1969년 결혼하여 1남1녀를 두고 역시 버몬트에서 아들 샘과 함께 살고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영화의 아역 배우 7명은 영화 출연을 큰 축복이자 행운으로 여기면서 SOM7(Sound of Music 7. 샤미안 카의 별세 이후 SOM6)을 결성하여 스스로를 논 트랩(Non Trapp•짝퉁 트랩) 또는 Trapped(Trapp화 된, 덫에 걸린의 이중적 의미)라 부르며 실제 가족과도 같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 오고 있다. 2010년 이들과 줄리 앤드루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이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한자리에 모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메리 포핀스(1964)' [註: 지난 12월에 '메리 포핀스 리턴즈'로 반세기만에 리바이벌 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등에서 청순하고 발랄한 연기를 보여줬던 줄리 앤드루스의 이미지는 1969년 재혼한 남편 블레이크 에드워즈(Blake Edwards, 1922~2010) 감독의 1979년 영화 '10'을 통해 비로소 바뀌었지 싶다. 1997년 성대 결절 때문에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4옥타브의 소프라노 목소리를 잃게 되어 수술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2000년에 합의를 보았으나 보상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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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유명 음악가 시리즈(XI)-'사운드 오브 뮤직'(중)(The Sound of Music)

 
음악과 사랑이 살아 숨쉬고 우리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장면으로 가득한 뮤지컬 명화
 


 

 

 

 

 

 

 

(지난 호에 이어)
 대령은 엘자 폰 쉬레더 남작 부인(엘리너 파커)과 그들의 친구이자 중매자인 막스 데트바일러(리처드 하이든)와 함께 잘츠부르크 집으로 돌아온다. 결혼할 마음으로 아이들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남작부인을 데리고 왔지만, 그 때 호수에서 보트놀이를 하고 있던 마리아와 애들이 탄 배가 뒤집혀 물에 빠져버린다. 


 이를 본 대령은 자신의 아이들이 커튼 쪼가리나 걸치고 품위없이 행동했던 일에 분노하여 따진다. 마리아도 지지 않고 대령의 교육방식의 문제점을 낱낱이 열거하며 비판한다. 당돌한 항의에 기분이 언짢아진 대령은 마리아를 해고한다. 

 

 

 

 


 그때 들리는 노랫소리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는 캡틴. 놀랍게도 아이들이 리즐의 기타 반주에 맞춰 남작부인을 위해 "Sound of Music"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폰 트랍 대령은 첫부인과 사별한 후 잊어버렸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과 예전의 활기가 되살아난 듯 마리아와 아이들의 권유에 못이기는 척 기타를 치며 "Edelweiss"를 부른다. [註: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노래는 플레이백 가수인 빌 리(Bill Lee, 1916~1980)가 더빙했다.] 


 더 나아가 준비한 인형극으로 남작 부인을 즐겁게 하는 아이들과 마리아. 이때 나오는 요들송은 "The Lonely Goatherd(외로운 염소치기, www.youtube.com/watch?v=9vtq9t08ktU)"이다. 아이들의 노래에 감명을 받은 막스가 '잘츠부르크 노래 축제' 참가를 권유하지만 "아이들이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며 이를 즉각 거부하는 캡틴.

 

 


 이때 엘자 남작 부인이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대령에게 갑자기 "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세요"라고 요청한다. 이윽고 캡틴은 마리아에게 "당신이 우리집에 음악을 다시 찾아 주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정중히 사과하고 계속 머물러 달라고 부탁한다. 


 파티가 열린 날 저녁, 연회복을 입은 손님들이 무도회장에서 월츠 춤을 추고 있는 동안 마리아와 아이들은 가든 테라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잠시 후 11살짜리 쿠르트에게 오스트리아 전통 민속춤인 랜들러(Landler)를 가르치고 있는 마리아를 발견한 캡틴이 가로채 그녀와 춤을 춘다. 우아한 춤동작으로 포크 댄스를 추고 마지막에 서로 포옹하며 끝나는데…. 

 

 

 


 마리아의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여자의 육감은 예리하다. 캡틴의 마리아에 대한 연정이 이미 심상찮은 수준까지 이른 것을 눈치챈 엘자 남작부인은 질투심을 감추고 마리아에게 접근해 수녀원으로 돌아갈 것을 부추긴다. 게다가 그녀에게 '좋은 수녀가 될 것'이라고 막장까지 치곤 파티장으로 돌아가는 엘자. 


 한편 이 파티장에 걸린 오스트리아 국기를 보고 불쾌해 하는 지방장관인 한스 첼러(벤 라이트)의 등장으로 트랍가의 위기가 암시된다. [註: 지방장관, 엄밀히 말하면 대관구지휘자(Gauleiter)는 나치(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대관구 또는 국가대관구 지구당을 총괄하는 당 직책으로 나치 당료 계급 중 국가지휘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직급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관구지휘자들은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직접 재가를 통해서만 임명되었다.]


 7명의 아이들이 참석객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마리아와 특별히 준비한 노래 "So Long, Farewell (다시 뵈요, 안녕! www.youtube.com/watch?v=Qy9_lfjQopU)"을 부른다. 같은 멜로디를 아이들이 혼자서 또는 짝을 지어 변화된 템포로 노래한 후 한 명씩 자러 위층으로 올라간다. '쿠쿠 쿠쿠'가 귓가에 맴도는 노래다. 


 이날 밤 마리아는 폰 트랍 대령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을 느끼고 수녀로서의 파계(破戒)의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에 애들에게조차 작별 인사도 없이 몰래 '행복이 완성된 곳'을 떠나 수녀원으로 도망친다. 여기까지가 전반부이고 잠시 휴식시간이 있다. 


 폰 트랍 대령은 마리아가 떠난 것에 무관심한 척 하면서 아이들에게 엘자 남작부인과 결혼할 것을 선언한다. 아이들은 마리아를 그리워하며 매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수녀원으로 가지만 마리아는 만나주지 않는다. 엄마 같던 마리아가 없어 기분이 울적한 어느 날 아이들은 "My Favorite Things" 노래를 부르는데, 그 때 마법같이 마리아가 다시 돌아온다. 


 아베스 수녀원장은 "마리아, 수녀원은 세상에서 도망오기 위한 곳이 아니에요"라며 "Climb Ev'ry Mountain"을 부르면서 꿈을 찾을 때까지 어떤 시련이든 참고 극복하고 도전하라고 격려한다. 마리아도 아이들을 그리워하다가 자기 행동에 책임감을 느끼고 현실에 용기있게 맞서기 위해 다시 폰 트랍 대령 저택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이들이 달려들었을 때 마리아는 먼저 막내 그레틀의 상처를 알아보고 "어쩌다 손가락을 다쳤니?"하고 묻는다. 아이들과 내내 공놀이를 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엄마가 될 뻔했던' 엘자 남작부인과는 대조되는 점이다. 


 한데 마리아가 돌아오기 전에 대령은 이미 남작 부인과 약혼하고 가정교사를 새로 구할 때까지 함께 지내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가 나타나자 캡틴의 마리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마리아에게 폰 트랍 대령을 양보하는 엘자 남작부인.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마리아와 대령은 정자에서 듀엣곡 "Something Good"을 부른다. 폰 트랍은 '첫날 만찬 때 솔방울을 깔고 앉았을 때' 마리아에게 반했으며, 마리아는 '바보 같은 호각을 불었을 때' 반했다고 서로 고백한다. 폰 트랍 대령은 곧 엘자에게 결별을 고하고 마리아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식을 올린다. 


 신혼여행을 가 있는 동안 막스는 캡틴 몰래 잘츠부르크 노래 경연대회에 아이들을 등록해 놓는다. 신혼여행 중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제3제국)에 의해 병합된 사실을 알고 폰 트랍 부부는 급히 집으로 돌아온다. 


 리즐의 애인인 집배원 롤프가 나치에 가담하여 폰 트랍 대령에게 거만한 태도로 전보를 전달한다. 그것은 대령을 브레머하펜 독일 해군기지 소속으로 소집하여 당장 내일 입대하라는 명령서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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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유명 음악가 시리즈(XI)-'사운드 오브 뮤직'(상)(The Sound of Music)

 
음악과 사랑이 살아 숨쉬고 우리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장면으로 가득한 뮤지컬 명화 


 

 

 

 

 1950~1960년대 미국영화의 트렌드는 대형화였다. 와이드스크린 호화판 고대극 '벤허(1959)'로부터 70mm 스펙터클 대서사극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뮤지컬도 대형화 시대로 돌입되어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지지(1958)'를 거쳐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공동감독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에서 크게 성공을 거뒀다. 이어서 조지 쿠커 감독의 '마이 페어 레이디(1964)'와 다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이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여 이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화니 걸(1968)'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 이미 반세기가 지난 고전이 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을 딱히 유명음악가 시리즈는 아니지만 보너스 작품으로 꼽아보았다. 


 1965년 20세기 폭스사 배급. 감독은 '본 투 킬(1947)'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1958)' '나는 살고 싶다(1958)'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샌드 페블즈(1966)' 등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와이즈(Robert Wise, 1914~2005). 출연 줄리 앤드루스(83), 크리스토퍼 플러머(89, 캐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몬트리얼 고등학교 및 맥길대를 나왔다), 엘리너 파커(1922~2013), 리처드 하이든(1905~1985), 페기 우드(1892~1978) 등. 러닝타임 174분.


 줄거리는 구(舊)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장교였던 게오르크 루드비히 폰 트랍(Georg Ludwig von Trapp, 1880~1947) 남작과 그와 재혼한 마리아 아우구스타 쿠체라(Maria Augusta Kutschera, 1905~1987), 즉 마리아 폰 트랍 남작부인의 가족사에 바탕한 실화이다. 1959년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작곡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 1902~1979), 가사는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Oscar Hammerstein II, 1895~1960)가 지었는데, 이 영화의 편곡•지휘를 맡은 어윈 코스탈(Irwin Kostal, 1911~1994)이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배경은 1938년 잘츠부르크. 이야기는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젊은 오스트리아 여인 마리아(줄리 앤드루스)가 주제곡 "Sound of Music" 일명 'The Hills are Alive"(youtube.com/watch?v=wbQSAdU4Qb4)를 부르면서 언덕과 들을 누비며 놀다가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미사에 늦은 걸 깨닫고 뛰기 시작한다. 

 

 

 

 


 한편 수녀원의 수녀들이 수녀 수련생 마리아를 찾아 헤매다가 수녀원장 아베스(페기 우드)에게 마리아의 장점과 단점을 "Maria"라는 노래로 표현하는데…. [註: 아베스(Abbess)는 수녀원장이란 뜻인데, 그녀의 본명은 비르길리아 뤼츠(Virgilia Luetz, 1869~1949)로 1921년부터 그녀가 죽기까지 잘츠부르크에 있는 논베르크 수녀원(Nonnberg Abbey)의 원장을 지냈다. 나치에 쫓기는 마리아 가족을 수녀원에 숨겨줘 스위스로 망명하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그녀는 악마다. 순한 양이다. 명랑하다. 말썽꾸러기다. 수수께끼. 골칫덩이. 아이같다. 천사다!…" 한마디로 마리아는 도통 알 수 없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말괄량이 수녀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수녀원장 아베스는 마리아는 음악과 자연에 대한 사랑, 젊은 열정과 상상력 등이 풍부함으로 수녀원이 아닌 바깥 세상에서 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녀를 어머니를 여읜 일곱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예비역 해군 대령 폰 트랍(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집에 가정교사로 보낸다. 

 

 

 

 


 "I Have Confidence"를 부르며 폰 트랍가의 저택에 도착하지만, 캡틴 폰 트랍이 호루라기를 불며 똑같은 유니폼을 입힌 아이들을 행진시키고 군대식으로 엄격하게 다루는 걸 발견하곤 놀라는 마리아. 아이들은 처음에는 12번째로 온 가정교사라며 마리아를 놀리지만 친절과 사랑과 인내심으로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대하는 그녀에게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신뢰와 존경심으로 따르게 된다. 


 여기서 7명의 폰 트랍 아이들 및 배역에 대한 정리를 좀 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생존해 있으나 다 60살을 넘겼다.


- 첫째 16살 딸 리즐 (샤미안 카, 1942~2016; 이 작품이 데뷔작이었고, 치매합병증으로 사망)
- 둘째 14살 아들 프리드리히 (니콜라스 해먼드•68)
- 셋째 13살 딸 루이자 (헤더 멘지스•69)
- 넷째 11살 아들 쿠르트 (듀안 체이스•68)
- 다섯째 10살 딸 브리기타 (안젤라 카트라이트•66)
- 여섯째 7살 딸 마르타 (데비 터너•62)
- 막내 딸아이 5살 그레틀 (킴 캐러스•60) [註: 킴 캐러스(Kym Karath)는 이보다 2년 전인 5살 때 델머 데이비스 감독의 '스펜서의 산(Spencer's Mountain•1963)'에서 클레이 스펜서(헨리 폰다)와 부인 올리비아(모린 오하라) 사이에서 난 9명의 아이들 중 한 명으로 출연했다.]

 

 

 

 


 첫날밤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치자 아이들이 무서워 하나 둘씩 마리아 방으로 몰려온다. 마리아는 '마음이 슬플 땐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My Favorite Things"를 부르며 애들을 달랜다. 


 한편 16살의 맏딸 리즐과 마리아의 첫만남은 '가정교사는 필요없다'는 까칠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사춘기 사랑에 눈을 뜨는 리즐은 집배원인 남자친구 롤프(대니얼 트루이트•75)를 가제보(정자)에서 만나 유명한 "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부르며 데이트를 하다 천둥과 비바람 속에 첫 키스를 하고 헤어져, 늦은 시간 비에 홀딱 젖은 채로 마리아의 침실 창문을 통해 몰래 들어옴으로써 서먹했던 둘은 금세 친해진다. 


 마리아가 저택으로 온 뒤 얼마 안 되어 폰 트랍 대령은 비엔나로 떠난다. 그 사이 마리아는 내버릴 커튼 천으로 애들에게 놀이옷을 만들어 입히고 잘츠부르크 온 시내를 누비며 재미있는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산에 올라 "Do-Re-Mi" (youtube.com/watch?v=k33ZQ4I4p24) 송을 통해 음계를 알면 어떤 노래든지 부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마지막으로 저택의 분수대 계단에서 도레미송의 화음을 맞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또 다른 감동 포인트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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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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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손영호 칼럼 300회 연재에 부쳐"

 

 

 2018년 무술년(戊戌年)도 저만치서 가녀린 긴 꼬리를 감추려 하고 있습니다. 단주(檀柱) 손영호 인사 올립니다. 2012년 9월7일 "구스타보 두다멜의 연주회를 보고"를 시작으로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발행인 조준상, 사장 이용우) 주간신문과 인연을 맺은 후, 2018년 12월 말 현재까지 6년여 동안 총 300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5년 12월까지 157회를 맞았을 때 정리도 할 겸 인사를 올린 후, 또 143회를 연재하게 돼 다시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돌이켜 보면, 어떤 한 분야에 치우치기보다는 다방면에 걸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얘기들을 두서없이 하기 시작하다가 음악과 영화의 만남을 통해 영화 칼럼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본 영화 중에서 선별해 지면에 올렸는데, 횟수를 늘리더라도 글과 사진의 입체감 있는 내용을 싣는 게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만, 어떨 때는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2016년 2월부터 6월까지 '서부영화 시리즈'로 "황야의 무법자"를 시작으로 "와일드 번치"까지 9편의 전설적인 영화를 소개했습니다. 중간에 "홍콩 리카싱과 이내건 회장"이라는 칼럼을 싣기도 했지요. 

 

 

 


 다음으로 '앤서니 퀸 시리즈'로 넘어가서 "바렌" "길" "그리스인 조르바" "25시" "산타비토리아의 비밀" 등 5편을 연재했는데, 그 사이 해가 바뀌어 2017년이 되었습니다. 그 중간에 대서사극인 "닥터 지바고"와 "아라비아의 로렌스" 그리고 영화보다 음악으로 더 많이 알려진 "가방을 든 여인"을 소개했고, 또 시사 칼럼 "중국 완다(萬達)그룹의 거침없는 행보"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즈음 부동산캐나다의 호스트 컴퓨터 다운으로 위에서 언급한 200여 회에 상당하는 옛 칼럼이 날아가 버린 점이 무척 아쉽습니다. 복구를 하려면 또 다른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5월부터 새로운 '청춘예찬(靑春禮讚) 시리즈'로 "틴에이저 스토리" "멋대로 놀아라" "산딸기" "버킷 리스트" "송포유" "유스" 등 6편을 통해 젊음과 늙음의 문제를 생각해 보았고, 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루터"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소개했습니다. 

 

 

 

 


 2018년 1월부터 '유명음악가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설적인 카스트라토의 얘기 "파리넬리"를 시작으로, 구스타프 말러와 그의 아내 알마의 생애를 그린 "바람의 신부", 베토벤이 남긴 마지막 편지의 주인공을 찾는 "불멸의 연인", 슈만의 아내, 브람스의 연인 클라라 슈만의 생애를 그린 "클라라", 피아노의 시인 쇼팽과 여걸 문학가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 "쇼팽의 연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코코 샤넬의 불륜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를 상반기까지 올렸습니다. 

 

 

 


 이어서 하반기에 안토니오 비발디의 생애를 그린 "비발디", 왕과 음악가의 '음악적 헌정'을 통한 교감을 그린 수작 "나의 이름은 바흐",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세상의 모든 아침",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아마데우스" 등 모두 10편을 소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기서 '음악가'는 작곡가, 지휘자, 성악가, 연주자 등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상당한 음악적 전문 지식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음악가와 관련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연관 인물들이 주는 의미와 비중까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솔직히 다루기가 쉽지 않은 영역으로 시간과 노력이 엄청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첫 회부터 300회까지 영화는 모두 96편을 소개했는데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독일, 그리스, 멕시코, 미국 및 한국 영화 '국제시장'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섭렵했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분위기를 바꿔 '서부 영화 시리즈'로 시작할까 합니다. 이미 3년 전에 연재를 했지만 호스트 컴퓨터 다운으로 저장 파일이 없어져 이를 못 본 많은 독자분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기회에 미처 소개 못했던 영화도 추가하고 내용도 대폭 수정 보완하여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오니 많이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서부 영화 시리즈 전에 음악가 시리즈의 보너스판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고 "초원의 빛"을 소개할까 합니다. 또 지금은 고전이 되었지만 다시 봐도 감동적인 영화 "천국의 열쇠"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존경하는 유니스 윤경남 선생님이 오래 전에 추천하셨는데 죄송하게도 시리즈 연재를 끝낸 다음으로 미뤄왔거든요. 


 기해년(己亥年) 새해에도 계속 많은 관심과 성원으로 보듬어 주시기를 부탁 드리고, 독자 여러분 및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 임직원들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가정과 하시는 사업에 평강과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12월 21일
단주(檀柱) 손영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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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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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Amadeus)' (7)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지난 호에 이어)
 좀 정신을 차린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공연이 끝났느냐고 묻고, 공연에 참석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이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살리에리가 대신 나간다. 병 문안을 온 쉬카네더 일행이 공연은 대성공이었다며 수익금 중 모차르트 몫의 큰돈을 건네주고 돌아간다. 


 살리에리는, 아버지의 혼령이 미사곡을 재촉한다고 믿는 모차르트에게 진혼 미사곡의 작곡 대가로 돈을 받았고, 게다가 내일까지 완성하면 100두카트(약 2천만원 상당의 금화)를 더 주겠다고 말하고 갔다고 속인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병약한 모차르트는 쉬지도 않고 진혼 미사곡의 작곡을 계속하게 되고, 살리에리는 도와주겠다며 그가 불러주는 내용을 악보에 그대로 받아 적는다. '레퀴엠' 중 1. 죽은자의 안식을 비는 입당송(Introitus), 3. 부속가 중 진노의 날(Dies Irae) 등이 부분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살리에리의 비겁한 행동은 전혀 모른 채, 오히려 그에 대한 자신의 오해에 대해서 용서를 비는 모차르트. "제가 눈을 붙이고 있는 동안 제 곁에 있어 주시겠어요?"

"떠나지 않겠네." "부끄럽군요." "뭐가?" "어리석었어요. 당신이 날 별볼일 없게 보는 줄 알았어요.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진혼 미사곡이 점점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춰 가고 있던 무렵, 콘스탄체가 남편을 염려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자신을 모욕했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 콘스탄체는 남편의 필체가 아닌 진혼 미사곡의 악보를 보곤 살리에리를 내쫓는다. 

 

 

 

 

 

 

 

 


 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에 7살짜리 아들 카를 토마스는 아버지 손에 쥐어진 금화를 만지작거리는데, 모차르트는 결국 숨을 거두고, 끝내 "레퀴엠(Requiem Mass in D Minor, K.626)"은 완성되지 못한다. [註: 모차르트가 1791년 12월5일 새벽 1시경에 35세로 사망했을 때 그의 후원자였던 판 슈비텐 남작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장례일정을 준비했으며 장례식은 바로 다음날에, 9년 전인 1782년 결혼식을 올렸던 슈테판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콘스탄체의 기록에 의하면 판 슈비텐은 모차르트 사후에도 그의 가족을 돕기 위해 1793년 1월2일 그가 작곡한 '레퀴엠'을 공연하는 자선연주회를 열어 당시 거액인 수익금 300두카트(약 6,100만원)를 전달했으며 아들 카를 토마스가 프라하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는 등 도량이 크고 신의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폭풍우와 진눈깨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모차르트의 시신은 비엔나 외곽의 빈민 공동묘지에 이름없는 시체들과 함께 묻힌다. 모차르트가 가난해서 빈민묘지에 공동매장된 것으로 묘사되어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註: 그러나 당시 요제프 2세 황제의 칙령으로 1784년부터 개별 매장을 금지시켰고 관 및 방부제 사용과 위치표시(묘비)를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그 규정에 따라 엄격히 집행된 것이다. 이 집단묘지는 '성 마르크스 평민묘지'로 1874년에 폐쇄되었으나 1937년에 역사적 유물로 지정되면서 1950년에 조각가 요제푸 드로우옷(Florian Josephu-Drouot, 1886~1978)에 의해 새로 단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인 작곡가•바이올리니스트로 비엔나에서 객사하고 행방이 묘연한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에 비하면 그래도 모차르트는 행복한 편이라고나 할까…. 또 기록에 의하면 영화와는 달리 날씨는 평온하고 온화했다고 하며, 문상객은 판 슈비텐, 살리에리, 쥐스마이어(모차르트의 미완성 '레퀴엠'을 완성시킨 제자로 그도 이 묘지에 묻혔다) 그리고 2명의 음악가였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장모 베버 부인, 쉬카네더, 카발리에리, 하녀 로리 등이 보인다. 당시 장례예식은 영화에서처럼 상주를 비롯한 문상객은 하관식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이때 흐르는 음악이 '레퀴엠' 3악장 '부속가(Sequentia)' 중 마지막 여섯 번째 단인 '눈물 겨운 그날(Lacrimosa)'로 음악 자체가 관객의 슬픔을 그대로 대변하는 곡이다. 합창으로 된 그 가사를 보면 다른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Lacrimosa dies illa(눈물 겨운 그 날이 오면) / Qua resurget ex favilla(티끌로부터 부활하여) / Judicandus homo reus.(죄인은 심판을 받으리라) / Huic ergo parce, Deus(하오니 주님, 그 사람을 어여삐 여기소서) / Pie Jesu Domine(자비로우신 주 예수여) / Dona eis requiem. Amen.(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아멘)

 

 

 

 


 장면은 고해성사를 받는 포글러 신부의 눈물 젖은 얼굴과 '으흐흐'하고 웃는 늙은 살리에리의 얼굴이 대비된다. 모차르트가 사망한 이후의 불행한 자기 삶을 토로하고 하느님을 저주하며 신부와의 얘기를 끝맺는 노년의 살리에리. 


 "당신들의 자비로운 신은 사랑하는 자녀를 파멸시켰소. 자신의 아주 작은 영광 한 조각도 나눠주지 않으면서, 모차르트를 죽이고 날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들었소. 32년 간을 고통 속에서 아주 천천히 시들어가는 나를 주시하면서. 나의 음악은 점점 희미해져 갔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희미하게, 끝내는 아무도 연주를 하는 사람이 없게 됐지. 한데 그의 작품은…" 

 

 

 

 


 이때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K.466' 중 2악장이 흘러나온다. 보조원의 휠체어에 실려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며 정신병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읊조리는 살리에리!


 "나는 보통 사람들의 대변자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자지. 난 그 평범한 사람들 중 챔피언이요! 그들의 후원자이기도 하고! 으흐흐…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여! 너의 죄를 사하노라! … 너희의 모든 죄를 사하노라…"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에 모차르트(톰 헐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음악과 함께 슬프게 느껴진다….


 모차르트는 사망 후 곧바로 위대한 작곡가로 회자되었다. 콘스탄체의 사업수완도 한몫을 했지만 너무나 짧은 삶에 비해 많은 주옥 같은 작품을 남긴 '노력하는 천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註: 콘스탄체(Maria Constanze Mozart, 1762~1842)는 모차르트가 죽자 1798년부터 세입자였던 덴마크 외교관이며 모차르트 자서전 작가인 폰 니센(Georg Nikolaus von Nissen, 1761~1826)과 동거하다 1809년 재혼했다. 그녀는 모차르트의 악처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으며, 사실은 사업수완이 좋아 재산을 불려 부자가 되었고 막내 동생 소피(1763~1846)와 함께 잘츠부르크에서 살다 80세로 사망하여 제바스티안 교회 묘지에 묻혔다.] 


 '모차르트 효과'란 말이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지능 발달, 심리적 안정 등이 향상되는 효과를 말한다. 사랑이 메말라가는 각박하고 팍팍한 세상이다. 아마데우스의 음악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어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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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1
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Amadeus)'(6)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지난 호에 이어)
 한편 모차르트는 갑작스러운 아버지 레오폴트의 사망 소식에 생기를 잃고, 거기에다 폐렴과 각종 합병증 등, 알려진 바에 의하면 '118가지의 증상'으로 병자의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살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을 즈음, 살리에리는 예전 가면파티에서 레오폴트가 했던 것과 똑같은 분장으로 나타나 돈을 주며 장례식에 쓰일 미사곡 하나를 지어달라고 의뢰한다. [註: 실제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 이는 프란츠 폰 발제그 백작(Count Franz von Walsegg, 1763~1827)으로 알려졌다. 그는 많은 음악가들에게 작곡 의뢰를 한 후 그 곡을 자기가 작곡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별난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1791년 당시 20세로 죽은 그의 아내 안나를 추도하기 위한 진혼미사곡을 모차르트에게 익명으로 요청하고 계약금의 절반을 선수금으로 주었는데 모차르트가 죽는다. 영리한 콘스탄체는 남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Franz Xaver Sussmayr, 1766~1803)를 통해 미완성 레퀴엠을 완성시켜 다음 해인 1792년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제출함으로써 돈을 다 받아냈다. 발제그 백작은 1793년 12월14일, 그리고 다음 해 아내의 기일인 2월14일에 제메링 근교에 있는 순례자 교회에서 자작곡으로 두 번 공연하였지만, 이보다 앞선 1793년 1월2일 콘스탄체의 '레퀴엠' 자선공연을 통해 비엔나 사람들은 이미 이 곡이 모차르트 작곡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때 "돈 조반니"의 서곡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이 곡은 좀 뒤에 다가올 모차르트의 불행과 비극적인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이 어둡고 비장하다.


 광기에 사로잡힌 살리에리는 이 일로 모차르트를 닦달하고 학대하고, 그 누구보다도 모차르트를 사랑했던 아버지의 망령이 병약해진 모차르트의 주변을 떠돌아다니게 하면서 그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결국 그것이 모차르트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되어 스스로 자신의 진혼곡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되는데…. 


 병약한 모차르트가 아내와 아들 카를(밀란 뎀야넨코)과 함께 "돈 조반니" 패러디 공연을 보러간다. 제1막에 나오는 "자 우리 서로 손을 맞잡고(La Ci Darem La Mano)"라는 돈 조반니(바리톤)와 체를리나(소프라노)의 2중창인 노래를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말굽을 준다면 내 마음을 당신에게 주겠어요."라고 패러디한 코믹한 장면이 폭소를 자아낸다. [註: 콘스탄체는 6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4명은 1년을 못 넘기고 죽고 아들 2명만 살아남았다. 영화에 나오는 카를 토마스(Karl Thomas Mozart, 1784~1858)는 6명 중 둘째로, 프란츠 듀셰크와 철학가이며 모차르트 자서전을 최초로 쓴 니메첵(Franz Xaver Niemetschek, 1766~1849)의 지도를 받았으나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사업가 및 오스트리아 재무성 관리로 일하다 거기서 사망했다. 
 6명 중 막내인 프란츠 크사베르 볼프강(Franz Xaver Wolfgang Mozart, 1791~1844)은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서 개인지도를 받고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1844년 7월29일 위암으로 사망하여 칼스바트(현 카를로비 바리)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그의 삶의 전부였기에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묘비명이 되게 하소서." 둘 다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모차르트 가문은 이것으로 대가 끊겼다.]


 공연 중에 무대에서 잠깐 내려와 모차르트를 찾아온 쉬카네더(사이몬 캘로)가 자기 극장에서 공연할 새 오페라 작곡을 그에게 의뢰한다. 수익금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의하지만 궁핍한 콘스탄체는 당장 선수금을 달라고 요청하는데…. [註: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 1751~1812)는 모차르트의 절친한 친구로 '마술피리'의 대본을 만들어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1791년 9월30일, 그가 운영하는 비엔나의 비에덴(Wieden) 극장에서 초연을 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모차르트가 죽기 2개월 전이었다. 쉬카네더가 주인공 파파게노 역을 맡았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였던 요제파 호페르(Josepha Hofer, 1758~1819)가 유명 아리아 '밤의 여왕'을 불렀다. 요제파는 바로 콘스탄체의 맏언니인 요제파 베버로 궁정악단 바이올린 주자였던 호페르(Franz de Paula Hofer, 1755~1796)와 첫 결혼했고,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의 첫 공연에서 교도소장 돈 피차로 역을 맡았던 바리톤-베이스 가수 제바스티안 마이어(1773~1835)와 두 번째 결혼했다.]

 

 

 


 차츰 비엔나 시민들의 냉대를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던 모차르트는 이리저리 손을 내밀지만 퇴짜를 맞는다. 돈 때문에 진혼 미사곡 작곡과 마술피리 오페라 작곡을 동시에 진행하며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간다. 


 진혼 미사곡 "레퀴엠 D단조" 3악장 '부속가(Sequentia)' 중 첫 단인 '진노의 날(Dies Irae)'과 3번째 단인 '지엄하신 왕(Rex Tremendae)'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스탄지(콘스탄체의 애칭)가 잠든 사이에 작곡을 멈추고 술집으로 가서 왕창 스트레스를 풀고 놀다가 다음 날이 밝아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모차르트. 

 

 

 

 


 스탄지와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장모인 베버 부인을 찾아갔으나 딸을 요양차 온천에 보냈다며 '자신과 음악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고 호된 질타를 하는데, 그 앙칼진 목소리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밤의 여왕'(밀라다 체칼로바) 장면으로 절묘하게 전환된다. 

 

 

 

 


 '밤의 여왕(The Queen of the Night, youtube.com/watch?v=YuBeBjqKSGQ)'은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마술피리(Die Zauberflote, K.620)"의 제2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다. 이 노래는 'High F6'의 높은 음역을 요구하여 소프라노에게 꿈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곡으로 알려졌다. 영화 속 노래는 미국 보스톤 출신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준 앤더슨의 목소리다. 


 결국 모차르트는 아내와도 떨어져 혼자 남게 되고, 급기야 1791년 공연된 오페라 "마술 피리(The Magic Flute)" 지휘 도중 몸이 좋지 않아 내려오고, 대신 제2막에 파파게노(사이몬 캘로)가 부르는 아리아 '소녀 혹은 귀여운 아내를(Ein Madchen oder Weibchen, youtube.com/watch?v=QrVHYVLtQkk)' 부분에서 마법의 벨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다 끝내 쓰러지고 만다.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살리에리가 무대 뒤로 와서 쓰러진 모차르트를 자기 마차에 태워 (병원이 아닌) 아마데우스의 집으로 데려간다. 


 '마술피리'의 공연은 계속된다. 유명한 이중창 '파-파-게나! 파-파-게노!'가 브라이언 케이와 길리안 피셔의 목소리로 나온다. 파파게나의 연기는 리스베스 바틀렛이 맡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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