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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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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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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유명 음악가 시리즈(IX)-'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 (5)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그는 죽은 부인을 생각했다. 임종 당시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슬픔이 되살아난다. 부인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모든 밤이 한결 같고 슬픔도 한결 같았다. 부인이 또 나타난다.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부인은 "화채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를 느끼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다. 


 둘은 강가로 간다. 부인이 배에 탄다. 이에 콜롬브가 "새삼스런 얘기지만 세월도 우릴 가르진 못해."하고 말하는 사이 아내가 탄 배는 사라지고 없다. 저승은 배와 같은 것! 영혼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허한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 오직 바람만이 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상트 콜롬브가 추구하는 음악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註: 필자는 여기서 문득 2002년 애덤 섕크먼 감독 영화 '워크 투 리멤버(A Walk to Remember)'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 제이미(맨디 무어)가 연인 랜던(셰인 웨스트)에게 한 말 "사랑은 바람 같아서 볼 순 없어도 느낄 수 있어요."라는 대사를 떠올렸다.]

 

 

 


 어느 날 마들레느가 마랭에게 아버지가 아름다운 곡― 아무도 모르는 '샤론의 배' '슬픔의 무덤(눈물)' 등 ―을 작곡했다는 소식을 알리는데 영 시큰둥한 태도다. 그리고 부엌에서 빨래를 정리하고 있던 마들레느가 차를 한 잔 따라주자 이를 마시던 마랭이 '박하가 많다'며 불평한다. 


 이때 뜨와넷이 막 잡아온 산 물고기를 부엌 바닥에서 놓쳐 이를 줍기 위해 엎드린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보고 음흉한 눈길을 주는 마랭. 

 

 

 

 


 그리고 마들레느의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던 마랭은 갑자기 "당신이 싫어졌나봐. 난 떠나. 새 사랑을 찾아서. 인생은 아름답지만 잔인하지!"라고 내뱉곤 그냥 떠나버린다. 
 화려하고 낭만적인 궁정 생활에 빠져든 그는 단물 신물 다 빼 먹고 이제 어깨 펼 만하니 더 젊고 싱싱한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는 방종과 오만에 빠져, 헌신적으로 몸과 마음을 바친 또 다른 스승이자 연인인 시골처녀 마들레느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이때 그녀는 그의 애를 가졌고 얼마 후 사내아이는 사산이 되어 그 후유증으로 심하게 앓게 된다. 그녀는 살 의욕을 잃는다. 상트 콜롬브는 뜨와넷을 통해 마랭에게 전갈(傳喝)을 보내 그를 집으로 부르지만 그의 아버지가 못 가게 한다는 묘한 이유로 오지 않는 마랭. 


 대신 마들레느에게 노란 가죽구두를 선물하지만 그녀는 벽난로 불에 던져버린다. 이를 본 뜨와넷이 황급히 구두를 건져내 상자에 넣어 쪽방에 보관해 둔다. 


 장면은 마들레느가 수영하던 강과 상트의 죽은 아내가 배를 탔던 강 그리고 상트의 오두막 작업실과 그 실내를 찬찬히 보여준다. 실내의 테이블 위에는 썩은 과일과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인생무상을 말해준다. 

 

 

 

 


 마랭은 스승과 인연을 끊고 궁정지휘자가 되어 결혼도 한다. 뜨와넷은 비올 악기를 만드는 장인과 결혼하여 다섯 아이를 낳는다. 이즈음 마랭은 마들레느를 위해 "La Reveuse", 이른바 "꿈꾸는 소녀(The Dreaming Girl)"를 작곡한다. 


 상트 콜롬브가 마들레느의 침대 곁에 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연다.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마랭이 절 위해 만든 '꿈꾸는 소녀'를 듣고 싶어요." 그는 급히 뜨와넷을 통해 마랭에게 마들레느의 임종을 지켜달라는 전갈을 보낸다. 


 마들레느의 큰 침실은 어둠이 드리운 검푸른빛이고 왼쪽 쪽방은 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황금빛으로 빛나는 장면이 묘한 명암의 대조를 이루어, 언뜻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야경(夜警•The Night Watch)'을 연상시킨다. 마치 그녀의 불타는 정열은 아스라이 스러져가고, 대신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는 비관적 삶을 대비시키는 듯한 뛰어난 영상미다.


 오두막 문 입구에서 뜨와넷이 마랭을 데리고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상트 콜롬브. 한편 마지막 힘을 키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일어나 정원 한 모퉁이에서 왔다갔다 걷기운동을 하는 마들레느! 관객들도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이즈음 궁정악사들을 연습시키고 있는 마랭 마레. 17~18세기의 당시 악기들로 구성된 궁정 관현악단의 연주 장면이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화려하고 장중하다. 이때 마랭이 연습시키는 곡이 장 바티스트 륄리 작곡의 ‘터키 의례를 위한 행진곡’(Marche pour la Ceremonie des Turcs: www.youtube.com/watch?v=Sy-yugPw_X8)인데, 굵고 기다란 쇠파이프 같이 생긴 지휘봉을 박자에 따라 바닥에 치는 모습이 재미있다. [註: 이 곡은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왕의 춤(Le Roi Danse•2000)'에도 나오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장 바티스트 륄리(Jean Baptiste Lully, 1632~1687)이다. 그는 루이 14세의 춤 교사로 고용되어 후에 궁정 실내악단장이 돼 바닥을 치는 이 같은 지휘봉에 발가락을 치어 괴저병(壞疽病)으로 도져서 죽었다.] 


이때 시종이 전갈을 가져오지만 이를 본 마랭은 '노'라며 돌려보낸다. 하지만 마음의 갈등을 느낀 그는 결국 뜨와넷과 함께 마차를 타고 스승의 집을 찾아온다. 오두막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 마랭. 뜨와넷이 언니가 이제 많이 변해 걷지도 못하고 아빠가 밥을 떠 먹여야 할 지경이라고 설명한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들레느가 "멋쟁이가 됐군요. 살도 찌고… 왕림해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넨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해 주기를 간청하며 그 이유를 아느냐고 묻는다. 이에 안다고 대답하는 마랭…?

 

 

 

 


 그런데 따뜻한 말은커녕 기껏 한다는 얘기가 빰도 야위고 눈도 손도 앙상해졌다며 "아직도 날 미워하느냐?"고 묻는 마랭. 그렇다고 대답하는 마들레느는 "당신뿐이 아녜요. 내 자신도 경멸해요. 당신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다가 내 인생을 망친 거죠. 난 바보죠."라며 자조(自嘲)의 웃음을 짓는다. 


 이어서 그녀는 "내가 결혼을 원한다고 생각했죠?"라고 묻는 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겨우 걸음을 떼어 마랭의 멱살을 붙잡고 "당신 사랑은 얇았어요."라고 말한다. 이에 "거짓말"이라고 강변하는 마랭….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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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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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유명 음악가 시리즈 (IX)-'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 (4)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이윽고 자작곡인 "아라베스크(L'Arabesque)"를 연주하는 마랭 마레. 이 연주에 비로소 만족감을 표시하는 콜롬브는 한 달 후에 오면 그때 말해주겠다며 그를 돌려보낸 후, 이 곡을 오두막에서 혼자 연주해 본다. 이같이 그는 자식에게는 물론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온 마랭에게도 그저 무뚝뚝하고 엄숙할 뿐이다. 


 어느 날 두 딸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고, 아버지는 여전히 오두막에서 비올을 연주하고 있는데 오늘도 죽은 부인의 실물 같은 환상을 볼 즈음 마랭 마레가 찾아온다. 


 뜨와넷이 한창 일하고 있는 언니 몰래 달걀 양끝에 바늘로 구멍을 내 후루룩 알맹이를 빼먹는 장면이 우리의 옛날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 영화에서 모두 심각한 표정들인데 웃음을 보이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콜롬브는 연주는 잘 하는 편이고 자세도 좋고 감정도 좋고 기교도 있고 장식음도 매력적이고 매끄러운 솜씨이지만 '음악'은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작곡도 썩 잘하는 편이라 반주자로는 쓸만해서 음악으로 밥벌이는 하겠지만 그래도 '음악가'는 아니라고 말하는 콜롬브. 그는 심장으로 느끼는 음악과 길거리의 음악에서 진짜를 구별할 수 있겠냐며, 잘난 기교 때문이 아니고 고통에 찬 네 목소리 때문에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멀찌감치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 마들레느를 흘깃 쳐다보는 마랭 마레. 얼른 나무 뒤로 알몸을 숨기는 그녀를 강 건너 쪽에서 훔쳐보는 뜨와넷.


 배운지 몇 달이 흐른 어느 겨울날. 손가락이 얼어서 연습을 할 수 없는 마랭이 따뜻한 부엌으로 가서 손을 녹이는데 그의 눈이 마들레느의 눈과 마주치면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사람 보기 힘든 촌구석에 살며 혈기왕성한 나이라 이성에 반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리라. 


 추운 날씨에 콜롬브의 제안으로 스승과 제자는 함께 화가 보쟁의 집으로 간다. 가는 길에서도 세찬 바람소리를 비올의 저음부에서 나는 스타카토의 소리로 해석하며 자연의 섭리에 바탕한 스승의 음악 강의는 그치지 않는다. 

 

 

 

 


 보쟁이 정물화를 그리고 있다. 이때 보쟁 집의 내부장식들을 정지화면으로 보여준다. 박제된 대형 랍스터, 모래시계와 조개껍질, 석류와 테오르보 악기, 데이지 꽃병과 포도주잔 등 아름다운 한폭의 '영상정물화'이다. [註: 영화속 정물화 그림 세팅은 실제 뤼뱅 보쟁이 18세 때인 1630년에 그린 '체스판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Chessboard)'의 구도 배치와 똑같다. 이 그림은 미각, 청각, 시각, 후각, 촉각을 나타내는 정물들의 사진과 같은 정교함과 오묘함이 묻어있어 '오감(五感, The Five Senses)'으로도 불린다.] 

 

 

 

 


 콜롬브가 "죽음은 모든 것의 결산이라네. 세상 모든 환락과의 이별이지."라며 마랭의 손을 붙잡고 "저 붓소리를 들어보게. 연주도 저렇게 하게!" 그림 그리기를 음악에 비유하는 명장면이다. [註: 이와 같이 이 영화는 한컷 한컷이 영상을 종이로, 음악을 붓으로 펼쳐놓은 한폭의 문인화다. 카메라는 고정해 놓고 그 속의 대상이 움직이는 구도이다보니 요즘 현란한 CG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에게는 자칫 지루한 느낌을 주겠지만 17~18세기의 분위기를 듬뿍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치 '느림의 철학'을 배우는 듯한.]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마랭이 궁중악사가 되기 위해 궁중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난 콜롬브가 그를 오두막에서 내쫓고는 급기야 그의 비올을 뺏어 벽난로에 부딪쳐 때려부순다. 마들레느는 마랭을 감싸고 뜨와넷은 아버지를 붙든다. 하지만 "재주는 있어도 예술가는 못 돼. 궁전에서 연주해 술값이나 벌어 먹어라"며 그를 내쫓는 스승. 


 문을 박차고 눈물로 떠나는 마랭을 뒤쫓아간 마들레느는 그를 붙들어두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배운 연주 비법을 전수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첫 키스를 한다. 이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 마랭 마레가 작곡한 "희롱하기(Le Badinage)"이다. 


 한편으로는 마들레느의 방에서 비올 연주 비법을 전수받고 또 한편으로는 오두막에 이르는 비밀 통로를 통해 몰래 오두막 밑에 숨어 들어가서 스승의 연주를 들음으로써 마랭은 모든 비법을 전수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랑도 차지하는데…. 

 

 

 

 


 20살이 되던 1676년 여름, 궁정악사가 되는 마랭 마레. 그러나 어느 폭풍우 치던 날 모든 게 들통났다. 오두막 밑에서 엿듣던 마랭이 기침을 하는 바람에 발각된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뺨을 매몰차게 후려친다. 마들레느가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개죽음이 되었을 것이다. 

 

 

 

 


 상트 콜롬브가 "딸과 결혼하겠는가?"고 묻는다. "아직 모른다"고 대답하는 마랭. 옆에 있던 마들레느가 "뜨와넷은 약혼자가 있어요"라며 대답을 유도하지만 마랭은 애써 피하고 에둘러 스승에게 곡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그의 대답은 의외 ― "난 작곡한 일이 없다네! 난 열정적인 삶을 보내고 있네." 


 장면은 부활절 날. 상트는 교회에서 연주했다. 테네브레(Tenebrae, 라틴어로 '어둠' '그늘'이란 뜻)라는 촛불 끄는 의식이 있었는데 한 사내아이가 받침대를 놓고 올라가 높은 촛대에 있는 촛불을 하나씩 불어 끄는 동안, 배경음악으로 두 소프라노가 부르는 성악곡과 바소 콘티누오(계속저음) 기악의 환상적인 결합은 종교적 경건함과 열정을 생생하게 불러 일으켜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하는 듯하다. 


 유명한 프랑수와 쿠프랭(Francois Couperin, 1668~1733)이 1714년 작곡한 "두 목소리를 위한 세 번째 테네브레 수업(Troisieme Lecon de Tenebres a 2 Viox)"이라는 곡이다. [註: 이 곡은 쿠프랭의 교회음악 중에서 최정점에 도달한 작품이며 방대한 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호르디 사발은 쿠프랭을 음악을 산문과 시로 표현한 '훌륭한 시인 음악가(excellent poet musician)'로 묘사했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 실제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은혜를 받는다고 평가했다.]

<YouTube: youtube.com/watch?v=UbREakKFTow>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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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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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8
2018-10-04
유명 음악가 시리즈 (IX)-'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3)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몇 해가 흘러 딸들은 성장한다. 이제 성인 배우로 바뀌는데 그 모습이 어렸을 때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훌륭한 캐스팅이다. 마들레느(안느 브로셰), 뜨와넷(캐롤 리셰)과 함께 구성된 콜롬브 삼중주단은 유명해져 지방 귀족들로부터 궁정악사보다 낫다는 열렬한 찬사를 받는다. 이때 상트 콜롬브가 마들레느와 함께 연주하는 2중주가 바로 그가 작곡한 "두 대의 비올을 위한 꽁세르 '귀향'(Concert a Deux Violes 'Le Retour')"이다. 

 

 

 


 '귀향(Le Retour)'은 동일한 모티프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이들 모티프에 지속적인 변화를 주는 작품이다. 표현에 있어 두 대의 비올은 화성적 측면보다도 동일한 선율을 때로는 같이, 때로는 엇갈리는 등 멜로디의 교차적인 강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註: 여기서 배우들이 실제 연주하지는 않지만 곡의 멜로디에 따라 모든 동작과 표정이 놀랄 만큼 일치하고 있다. 특히 상트 콜롬브 역의 장 피에르 마리엘은 음표 하나하나가 정확히 일치하고, 마들레느의 아역 비올레느 라크로와도 그랬지만 성인 역의 안느 브로셰도 거의 완벽하다. 또한 귀족들의 의상과 가발, 메이크업 등도 일품이다. 세자르 의상 디자인상(코린느 쥬얼리)을 수상했다.]


 그의 명성은 '태양 왕' 루이 14세의 궁정에까지 알려져서 왕은 캐뉴 대신(이브 가스크)을 보내 궁정에서 연주를 하도록 요청하지만 콜롬브는 "딸들의 연주가 있고 옛 친구의 추억이 있고… 난 여기가 좋소. 내 궁전에는 야생화가 가득하오. 왕의 궁전에 나 같은 놈은 필요없소."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캐뉴가 왕의 명령이며 난 왕의 신하라며 강압적으로 나오자 "난 자연인이요."라며 내쫓는다. 여기서 얀센주의 신교도로서의 자연과 은총에 대한 콜롬브의 종교적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얼마 후 아베 매튜 신부(장 클로드 드레이푸스)가 캐뉴 대신과 함께 방문하여, 촌구석에 숨어 살며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헛되게 하고 있다며 폐하의 성은에 보답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콜롬브는 "난 자연이 좋소. 누더기가 그 가발보다 좋고 내 가축이 당신보다 더 좋소."라며 그냥 내버려 달라고 부탁하지만 막무가내다. 


 이윽고 열 받은 그가 의자를 들어 때려부수자 아베 매튜 신부는 "빌어먹을 촌놈! 촌구석에서 썩어 죽어라"고 독설을 날리고 떠난다. 이에 질세라 등 뒤에 대고 "궁정도 오두막만 못하고 청중도 필요없소!"라고 외치는 콜롬브!


 당시엔 종교의 자유가 없던 때였고 고집 세고 얀센주의의 신교도였던 콜롬브이지만 왕은 이 마지막 말이 맘에 들어 콜롬브 3중주단은 극히 제한된 귀족 앞에서만 연주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세월이 흘렀다. 두 딸이 오두막 주변에 삽질하여 이랑을 만들고 씨를 뿌리며 밭을 일구고 있다. 콜롬브는 활을 손질하고 있다. 작곡한 새 곡들을 빨간 노트에 남겼지만 세상에 발표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일 뿐이라 조잡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세상의 모든 사랑을 잊고 오로지 죽은 아내의 충고와 숨결을 그리워하며 회상에 빠져있던 상트 콜롬브가 옷을 입은 채로 차고 푸른 강물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간다. 그의 허리, 어깨, 목, 드디어 머리까지 물속에 천천히 잠긴다. 그리고는 물결마저 멈춘 강물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비올의 묵직한 선율과 함께 관객도 깊은 슬픔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새벽에 '슬픔의 무덤'을 떠올렸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 만든 곡이었기에 그리움에 차서 연주를 한다. 악보도 필요없이 손은 저절로 제자리를 찾는다.

눈물이 흐른다. 그때 아내(캐롤리느 시홀)가 나타난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아내가 곡에 흠뻑 젖어 미소로 화답하는 모습에 고개를 떨구고 한없이 흐느끼는 콜롬브!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기적이 일어났다. 술병과 포도주 잔과 함께 있던 과자 접시에서 비스킷 하나가 아내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먹다 남은 채로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사랑이 기적을 낳았고 이를 간직하고 싶었던 콜롬브는 화가 보쟁(미셸 부케)에게 그 장면을 그리게 하지만 정작 그 그림에 과자 부스러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완성된 그림을 방에 숨겨두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註: 이 그림은 실제 뤼뱅 보쟁(Lubin Baugin, 1612~1663)이 1630년대에 그린 '웨이퍼 비스킷이 있는 정물(Still-Life with Wafer Biscuits)'이란 작품이다.]


 이 '과자 부스러기'는 함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지 싶다. 콜롬브가 경험한 과자 부스러기의 기적은 아내에 대한 강한 그리움과 사랑의 실체였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허한 것이었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절대경지의 음악을 향한 그의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로 그런 기적이 일어난 것이리라. 과연 '진정한 음악이란 무엇인가?'


 여기까지가 러닝타임 44분으로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붉은 옷을 입은 17세의 마랭 마레(기욤 드파르디외; 제라르의 아들로 2008년 37세에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요절했다)가 비올 연주를 배우기 위해 상트 콜롬브를 찾아온다. 바로 화자인 '나'의 젊은 시절이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6살 때부터 교회성가대에서 노래했고 연주자가 되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소개장을 갖고 찾아왔다고 장황하게 자기 소개를 하는 마랭 마레. 이때 누구보다 뜨와넷이 흥미진진한 표정이다. 


 콜롬브는 "폴리아의 변주곡(Improvisation of La Folia)"을 연주해 보라고 주문한다. 마랭 마레가 작곡한 이른바 "즉흥 스페인 무도곡"을 일컫는다. 이를 듣던 콜롬브는 실망하여 연주는 하지만 음악가는 아니라며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뜨와넷이 자작곡을 시켜보라며 일어서는 아버지를 만류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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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유명 음악가 시리즈(IX)-'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 (2)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註: 여기서 상트 콜롬브를 '종교개혁가'라고 번역한 것은 무리다. '얀센주의 신자'라고 표현해야 맞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는 이른바 얀센주의(Jansenism)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는 네덜란드인 가톨릭 주교였던 얀센(Cornelius Jansen, 1585~1638)이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원죄론과 은총론을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극도로 엄격한 신앙생활과 윤리•도덕을 강조하고 '선택받은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극단적 원리주의에 입각한 종교개혁을 말한다. 
 그 후 오라토리오회의 신부로 극단적인 갈리아주의자인 케넬(Pasquier Quesnel, 1634~1719)에 의해 얀센주의는 절정에 이르렀으나, 그는 1710년 루이14세에 의해 추방 당하고 그 근거지였던 포르루아얄 수도원(Convention of Port-Royal)이 폐쇄되었다. 이어서 1713년 9월8일 로마교황 클레멘스 11세는 교황칙서 '우니제니투스(Unigenitus•독생자)'를 발표해 케넬의 저서 내용 중 101개 명제를 단죄했고 1718년 그들을 파문했다. 그 후 얀센주의 및 갈리아주의는 쇠퇴하여 1764년에 프랑스 교회 역사에서 사라졌다.]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정지된 화면들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무척 아름답다. 아내가 죽은 후 두 딸을 키우는 상트 콜롬브는 전혀 살갑지 않고 엄하게만 보인다. 

 

 

 


 큰애 마들레느(비올레느 라크로와)와 작은애 뜨와넷(나데쥬 태론)은 신교도인 드 뷔르(장 마리 포와리에) 선생에게서 성서, 수학, 라틴어를 배운다. 언니와는 달리 공부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개구쟁이 뜨와넷의 아역인 나데쥬 태론의 연기가 천연덕스럽고 깜찍하다. 

 

 

 

 


 아버지의 비올과 드 뷔르 선생의 '테오르보' 합주에 맞춰 노래도 배운다. 두 딸이 부르는 이 노래는 17세기에 유행했던 "순진한 어린 소녀(Une Jeune Fillette)"라는 아름다운 민요로 호르디 사발이 편곡한 것이다. [註: 요즘 르네상스 말기, 바로크 시대 초기의 악기로 당대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클래식 콘서트가 유행하는데 그 기폭제적 역할을 한 악기가 테오르보(theorbo)이다. 17세기의 음악을 바로크 악기로 연주하는 초기음악 그룹 중 오스트리아의 '아르페지아타(L'Arpeggiata)'가 유명한데 세계적인 테오르보 연주가인 크리스티나 플루하르(53)가 2000년에 창단한 그룹이다.   테오르보는 류트(lute)보다 목이 엄청 길게 확장되어 저음역과 피치의 범위가 넓을 뿐만 아니라 화음과 베이스와 멜로디를 동시에 연주할 수 있어 효율성이 아주 뛰어나고 레퍼토리가 넓으며 다양한 악기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바로크 시대에 솔로 악기를 포함한 소 편성에서부터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의 반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 악기로서 대단한 인기와 지지를 얻었다.]

 

 

 


 너무도 귀엽고 깜찍한 딸들의 노래를 통해 아내의 음성이 울려온다. 점점 세상을 멀리하는 콜롬브는 음악에만 몰두하기 위해 말을 판 돈으로 정원 한 켠에 작업실 용도인 오두막을 짓는다. 이윽고 가정부 귀뇨트(미리암 브와예)와 아이들이 악기와 가구들을 오두막으로 옮긴다. 아버지와 떨어지기 싫은 어린 뜨와넷은 귀뇨트에 떠밀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자꾸만 먼 발치의 오두막을 바라본다. 어린 배우들의 연기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화에 활력과 쏠쏠한 재미를 불어넣는다. 

 

 

 

 


 스스로를 음악에 묻는 상트 콜롬브는 오두막에 들어가 처음으로 연주를 해본다. 이 곡은 17세기 작가 미상의 "E단조 환상곡(Fantaisie en Mi Mineur)"을 사발이 편곡한 것이다. 그는 매일 15시간씩 연습한다. 죽은 아내의 영혼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새 연주법을 개발하고 그윽한 소리를 내기 위해 줄을 하나 더해 7현으로 만들어 그의 연주는 극치에 다다랐다. 여인의 탄식부터 노인의 흐느낌까지 신기의 경지였다.


 그러는 한편 딸들의 양육을 걱정했지만 음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어린 딸들을 다락에 가둬놓고 잊어먹곤 했다. 


 어느 날 엄하기만 한 아버지가 마들레느와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이때 뜨와넷이 벌레를 잡아와 식탁 위에 올려놓자 촛대로 눌러 죽이는 괴팍한 콜롬브. 또 어느날 자다가 엄마를 찾는 뜨와넷에게 "말 잘 듣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나도 네 엄마가 그리워. 내 기쁨이었는데…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책 읽는 것도 싫지만 너희들은 사랑한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콜롬브. 그러나 오두막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딸들에게 무관심해짐은 어쩔 수 없다. 

 

 

 


 마들레느가 좀 크자 연주를 가르치는데 이때 나오는 곡이 상트 콜롬브가 작곡한 "부드러운 가보트(Gavotte du Tendre)"이다. 특히 마들레느의 아역 비올레느 라크로와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마치 원래 바이올리스트인 듯 곡의 멜로디에 따라 코드 잡는 위치와 활질, 악기 다루는 자세 및 표정 등이 놀랄 만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브는 딸의 연주 솜씨에 만족해 한다. 


 이때 아직 어려서 연습을 못하고 마루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뜨와넷이 다가와 자기도 하겠다며 시기하여 언니의 활을 빼앗는 바람에 연습은 중지되지만 어린애의 천진난만한 행동이 재미를 더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아버지로부터 골방에 갇히는 엄한 벌을 받는 가여운 뜨와넷. 


 그러나 부정(父情)은 살아있다. 다음날 콜롬브는 악기 제작자를 찾아가 재질 등을 꼼꼼히 점검하며 주문한 비올을 마침내 부활절 아침에 뜨와넷에게 선물한다. 너무 기뻐 울면서 아버지의 품을 파고들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앙증스럽고 귀여운 딸, 뜨와넷!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10월 3일(수) 갤러리아 쏜힐점에서 문화 강의가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서안 둘러보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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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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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5
유명 음악가 시리즈(IX)-'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 (1)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요즘 '세상의 모든 지식' '세상의 모든 꿀팁' '세상의 모든 딸들' '세상의 모든 저녁' 등 '세상의 모든…'으로 시작하는 광고문구가 눈에 많이 띈다. 이는 아마도 "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했지 싶다. 이 영화는 '영상수면제' 같은 음악 관련 내용이라 한국에서는 흥행에 재미를 못 봤지만 그 제목만큼은 유명세를 탄 작품이라 하겠다. 


 원작은 파스칼 키나르(Pascal Quignard•70)의 1991년 출판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으로, 같은 해 동명의 타이틀로 영화화 되었다. 1991년 Koch-Lorber 영화사 배급. 감독 알랭 코르노(Alain Corneau, 1943~2010). 음악감독은 스페인 지휘자•작곡가 및 비올 연주가인 호르디 사발(Jordi Savall•77), 촬영감독 이브 안젤로(Yves Angelo•62). 출연 장 피에르 마리엘, 제라르 및 기욤 드파르디외 부자(父子), 안느 브로셰, 캐롤리느 시홀, 캐롤 리셰 등. 러닝타임 115분. 


 사실 이 영화는 세자르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 등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그 중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음악상, 여우조연상(안느 브로셰) 등 7개 부문을 휩쓴 우수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픽션이지만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는 두 주인공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실존 인물로, 대체로 그들의 생애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람은 프랑스 루이 14세 때 비올 작곡가 및 궁정악단 지휘자였던 마랭 마레(Marin Marais, 1656~1728)이고, 또 한 사람은 그의 스승으로 비올 연주의 대가이며 작곡가였던 상트 콜롬브(Monsieur de Sainte-Colombe, 1640~1700)이다. 


 따라서 줄거리의 중심에 '비올'이란 악기가 자리잡고 있으며 실제 호르디 사발이 연주하는 비올 음악을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시작에 앞서 비올에 대해 좀 알아보고 가는 게 좋겠다. 


 비올(viol)은 15세기 중후반 스페인에서 처음 등장하여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1600~1750)에 인기 절정을 이룬 현악기이다. 정확한 명칭은 '베이스 비올'이다. 

 

 

 

 

 


 비올은 외관상 첼로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르다. 몸체 뒷면이 곡면이 아닌 평면이고, 옆면은 두텁고 깊으며 어깨가 둥글지 않고 아래로 처져 있다. 울림구멍은 f자가 아닌 c자 형으로 되어 있고, 네 줄이 아닌 5~7줄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나 류트(lute)처럼 프렛(fret)이 있고, 운궁법(運弓法•bowing)도 첼로나 바이올린은 손등이 위로 보이게 잡지만 비올은 손바닥이 위로 올라오게 잡는다. 


 비올은 이탈리아어로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viol for the leg'이다. 첼로같이 악기를 세우는 엔드핀이 없어 악기의 허리 부분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연주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바이올린 계통의 악기를 '비올라 다 브라쵸(viola da braccio), 즉 'viol for the arm'이라 구분해 부른다. 


 비올연주가는 감비스트(gambist) 또는 바이올리스트(violist)라고 부른다. 음색은 비올라와 첼로의 중간쯤 되는 저음에 가깝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첼로는 원래는 'violoncello'라는 이름이었는데 이를 줄여 "'cello"라고 불렀던 것이 아포스트로피가 생략되고 그냥 'cello'로 굳어진 것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지금은 잊혀져 가는 현악기 '비올'의 유장한 선율 속에 펼쳐지는 탁월한 영상과 음악의 앙상블이 숨쉬는 '시적(詩的) 영상'으로 가득한 수작이다.

 

 

 

 


 영화의 첫 장면. 이미 늙어버린 궁정 지휘자 마랭 마레(제라르 드파르디외)가 궁정악사들이 조교를 통해 연주 연습을 하는 동안 졸고 있다. 잠이 깼을 때 "모든 음악의 끝은 죽음이야!"라고 외치며 비올 한 곡을 연주한다. 이 곡이 마랭 마레 작곡의 "몽 드 파리의 쥬느비에브 성당의 종소리(Sonnerie de Ste. Genevieve du Mont-de-Paris)"이다. 


 창문을 모두 닫게 하고 악사들 모두를 앉게 한 다음 말을 잇는 마랭. "그는 뻣뻣하고 분노에 차 있었지만 물고기처럼 조용했지. 난 엉터리야!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이룬 일도 없어. 감미롭고 화려해도 부끄러울 뿐…. 그는 음악 그 자체였지. 그는 불꽃같이 세상을 보고 저 세상을 밝혀주었지. 그의 열망은 헤아릴 수 없었어. 그런 스승님이 계셨다네…." 그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마랭 마레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 그 사연은 16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봄날, 상트 콜롬브(장 피에르 마리엘)가 임종을 맞이한 친구의 집에서 비올을 연주하고 집으로 돌아온 오후, 아내가 사망했다는 뜻밖의 비보를 접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충격은 컸다. 그때 '슬픔의 무덤(Le Pleurs)'이라는 곡을 작곡했다. 죽어가는 친구 옆에서 연주한 곡은 호르디 사발이 편곡한 "보클랭을 위한 전주곡(Prelude pour Mr Vauquelin)"인데 일명 "상트 콜롬브 자손의 G단조 전주곡에 의한 즉흥곡"이라고도 한다.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그는 비올 연주로 명성이 대단했다. 위대한 스승이었고 '종교개혁가'였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10월 3일(수) 갤러리아 쏜힐점에서 문화 강의가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서안 둘러보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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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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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유명 음악가 시리즈(VIII)-'내 이름은 바흐' (My Name Is Bach)(6)

 


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지난 호에 이어)
 장면은 바뀌어 바흐와 아들들이 모였다. 바흐는 곧 눈이 멀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아들들은 그럼에도 왜 왕을 위해 작곡을 하시느냐고 묻는다. 바흐는 음악이 좋아서이고 오르간은 안 보고도 연주할 수 있다며 갑자기 힘차게 노래를 부르자 모두 얼싸 안고 합창한다. 


 교황, 국왕을 비롯한 귀족들을 비꼬는 내용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어사출두 전에 변사또의 잔치에서 읊은 시 "금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많은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를 연상시킨다.


 프리드리히 2세는 밤잠을 설치며 새벽 3시경 골츠에게 오늘부로 포고, 발효될 칙령을 받아 적도록 한다. "고문은 재판관이 출석하여야 집행될 수 있으며 다음날까지 반복해서는 안 된다. 모두 해서 고문은 30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 모래시계를 설치하되 희생자는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다.

 

 

 


 프리드리히 2세는 밤마다 폰 카테 대위의 고문과 참수에 대한 악몽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카테는 그의 애인이었기에 더더욱 잊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플루트를 연주하며 그 슬픔을 달랜다. 


 프리데만 바흐가 아말리에 공주의 방 침대에서 자다가 아침이 밝아오자 도망치듯 나간다. 그녀의 함께 살자는 간청을 뿌리치고…. 


 이 사실을 안 왕이 동생을 불러 왕족답지 않은 그녀의 처신에 대해 질타하고, 상수시 궁은 여자는 거처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 포츠담 궁에 남으라고 명령한다. 

 

 

 

 


 이에 아말리에 공주는 "상수시 궁에 대해서는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왕은 왕후 가랑이 사이에서 후계자를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며 자기는 합법적 프로이센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왕의 노리개가 아니라고 담대하게 말한다. 또 프리데만 바흐의 음악적 자질 운운은 왕의 통제 밖에 있는 사항이라고 쏘아 부친다. 그리고 나가면서 스커트를 들어올려 엉덩이를 내보이고 사라진다. [註: 프리드리히 2세는 1733년 21세 때 오스트리아 원수인 영국 왕실 하노버 가문의 페르디난트 알베르트 2세의 딸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1715~1797)와 결혼하였으나, 자신의 뜻과는 무관한 부왕의 뜻에 따른 결혼인 데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별거했고 공식 행사 때만 방문헀다. 둘 사이에 자녀가 없어 결국 그의 조카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내일 상수시 궁으로 이사하기 위해 분주한 틈에 바흐가 하직 인사를 하기 위해 프리드리히 대왕을 찾아온다. 왕은 그를 궁정작곡가로 머물게 하려 하자 바흐는 말한다. "전 평생 남의 요청에 의해 작곡을 해 왔어요. 그러나 이젠 작곡을 하지 않을 겁니다. 전 '레몬처럼 쥐어짜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기쁨'입니다. 무로부터 어떤 것을 창조하는 기쁨 말입니다. 이것은 결국 '자유'를 통해 얻어집니다."

 

 

 

 


 이 말에 고무된 왕의 안내로 악기보관실로 간 둘은 별의별 악기를 어린애마냥 정신없이 두드리고 불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린다. 이제 두 사람은 군신(君臣)의 관계가 아닌 마치 부자(父子)가 된 듯 가슴 깊이 묻어둔 얘기를 나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클라이맥스다. 바흐가 왕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는 와인상이 되고싶어 했는데 작곡가가 되어 자식들은 자기의 그늘에 갇히는 꼴이 되었다며 하지만 '인생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한탄한다. 


 한편 왕은 나의 아버지는 명령만 내렸고 고함치고 때리고 스프에 침을 뱉고 그걸 먹게 했으며 그의 발에 키스를 하게 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플루트를 배웠다. 누나 빌헬미네(Princess Friederike Wilhelmine, 1709~1758)를 사랑했는데 떼놓기 위해 그녀를 강제 결혼시켜 버렸다. 그때부터 난 혼자였다.… 


 적대적인 아버지의 기억에 치를 떠는 프리드리히 왕을 아들처럼 포옹하는 바흐! 이제 영화는 마무리에 바쁘다. 바흐는 라이프치히로 떠나며 요한나에게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라"며 "가족은 영원할 수 없지만 음악은 영원하다"고 말한다. 

 


 궁에 남은 아말리에 공주는 에마누엘이 연주하는 피아노곡(플루트 협주곡 A단조, WQ168)을 들으며 독백을 한다. "왕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뺏어갔다. 나의 행복과 나의 삶 모두를!" 


 상수시 궁으로 옮긴 프리드리히 2세는 비서관 골츠로부터 오스트리아군 암호문을 입수하여 해독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다가 갑자기 '바흐로부터 악보가 도착했느냐?'고 다그치는데…. [註: 그러나 몇 주 뒤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바흐의 '음악적 헌정(The Musiical Offering)' 악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정작 왕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라이프치히로 돌아가는 바흐가 탄 마차가 프로이센령을 벗어날 즈음 첫 장면에 나왔던 세관원이 한 마차에 탄 사람의 이름을 묻지만 불어 외엔 한마디도 알아 듣질 못하는데, 그가 바로 상수시 궁으로 가는 볼테르였다. 바흐가 탄 마차가 지나쳐 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볼거리를 위해 프리데만 바흐와 아말리에 공주와의 로맨스를 억지춘향 격으로 짜깁기 한 것이 흠이지만, 모든 배우들의 연기 및 대사가 훌륭하고 여감독답게 세트, 의상, 분장 등이 섬세하고, 꼼꼼하게 잘 만든 수작이다. [註: 바흐가 다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802년 프리데만 바흐의 제자이며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Johann N. Forkel, 1749~1818)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바흐 사후 약 80년이 흐른 1829년, 열렬한 바흐 팬이자 바흐 음악의 복원자였던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이 '마태 수난곡, BWV244 (1727)'을 복원하면서 다시 한번 바흐 열풍을 일으켰다. BWV 번호는 독일어 'Bach-Werke-Verzeichnis'의 약자로 작품 목록은 1천 곡이 넘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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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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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8
2018-09-06
유명 음악가 시리즈 (VIII)-'내 이름은 바흐'(5)(My Name Is Bach)

 

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지난 호에 이어)
 옆에서 지켜보던 프리데만이 아버지는 보잘것없는 지방 소국의 왕의 도전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있다며 만류한다. 그러나 바흐는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해! 바흐 가문의 장남인 프리데만 바흐는 들어라! 찬란하게 빛나는 작곡가와 음악가들은 전 생애를 그를 위해 바친 사람들이다. 그는 밤새도록 사치를 제공하고 단 한 줄도 작곡하지 않는다…

이제 나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당장에 확장, 카피를 만들어라!"고 술에 취해 잠들려는 아들에게 명령하다시피 말한다. 당시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먹고 사는 예술가의 종속적 본질을 꿰뚫은 노 거장의 뼈있는 일갈(一喝)이다.


 장면은 프리드리히 2세 국왕의 만찬장. 모두 머리에 하얀 천을 두르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식사를 한다. 불어로 오르톨랑(Ortolans)이라고 하는 희귀한 멧새(참새) 요리가 나온다. 베르사유 궁에서도 등장하는 요리로, 참새를 소금, 후추, 육두구(肉荳?) 향신료 등을 섞은 코냑에 담가 숨을 끊고 요리하는데, 누군가가 이 요리를 먹는 것은 음식(meal)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ceremony)이라고 얘기한다.


 이때 시종이 바흐가 당도했음을 알린다. 모두들 참새 대가리를 먹는 소리만 요란할 뿐 이 기괴한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바흐는 냉수 컵으로 머리를 식히는데, 누군가 묻는다. "모페르튀이 씨는 베를린에서 개밥에 인을 섞으면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개의 배설물이 밤에 빛나기 때문에 똥을 밟을 염려가 사라지지요." [註: 모페르튀이(Pierre Louis Moreau de Maupertuis, 1698~1759)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다. 물리학에서는 최소 작용의 원리를 최초로 고안하였고, 생물학에서는 적응도에 따른 종의 발생과 멸종을 설명해 진화론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이때 그는 베를린 과학예술원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는 바흐는 흰 천을 쓴 얼굴들을 요리조리 살피는데, 또 누가 "볼테르는 언제 여길 방문하죠?"하고 묻는다. "그는 상수시 궁의 초대손님으로 올 것이며 그보다 더 훌륭한 선생을 보지 못했다"고 답하는데 영락없는 왕의 목소리다. 덧붙여 "볼테르는 왕의 프랑스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나의 철학적 논문을 손봐 주기 위해 온다"고 목적까지 밝힌다. [註: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필명이고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cois-Marie Arouet)로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였다. 프리드리히 왕은 그의 영향을 받고 그의 손을 거쳐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권모술수를 지향하는 르네상스적인 군주상에 반대 의견을 내세운 '반(反)마키아벨리론'을 저술했다. 그러나 정작 즉위 후 프리드리히 2세가 펼친 정책은 기존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이어서 결국 볼테르에게도 비난 받았다. 
 1750년 무렵 연봉 2만 루블을 받고 프로이센의 상수시 궁에 초대된 볼테르는 비꼬기를 좋아하고 입이 험한 사람이라 당시 베를린 과학예술원장이던 모페르튀이의 이론과 권력남용 등을 들추어내 논쟁을 일으키자 프리드리히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1752년 3월 추방 당한다. 그 후로 만난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은 서신교환을 계속했었고 7년 전쟁(1756~1773) 이후 다시 화해했다.]


 그제서야 천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는 왕. 바흐는 그윽한 미소를 머금고 재미있다는 듯 그를 쳐다본다. 왕은 "우리는 볼테르를 '레몬처럼 쥐어짠' 후 남은 껍질은 던져 버릴 것"이라고 말하며 역시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며 바흐를 바라본다. 개구장이 아들과 아버지 같다.

 

 

 

 

 


 장면은 바뀌어 아말리에 공주의 방. 노크 소리가 들리자 얼른 문으로 달려가는 그녀. 프리데만 바흐가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다량으로 수집해 놓은 북스테후데, 몬테베르디, 에마누엘 바흐 등의 악보를 보여준다. 오빠가 내팽개쳐 놓은 것들을 크반츠 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꼼꼼히 챙긴 결과이다. 프리데만은 자기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윽고 둘은 하나가 된다. [註: 안나 아말리에 공주는 음악가의 후원자 겸 작곡가로 수난 오라토리오 '죽으신 예수(Der Tod Jesu)'를 작곡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당시의 많은 작곡가들의 악보를 600개 이상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들은 현재 베를린 주립 도서관에 보존돼 있다.] 

 

 

 

 


 탐스러운 수박을 직접 칼로 자르며 프리드리히 2세는 "프로이센의 불모지가 에덴의 동산으로 바뀌었다"며 "감자도 재배된다."고 말한다. 당시는 수박이라는 이름이 없거나 생소했기 때문에 이를 맛본 바흐는 '포메라니안의 골수'를 먹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데…. [註: 포메라니안(Pomeranian)은 독일 북동부(폴란드 북서부)에 있는 포메라니아 지역에서 유래된 스피츠종의 애완견을 일컫는다. 프리드리히 2세의 애견 사랑은 끔찍했는데, 바흐가 하필이면 '개의 골'을 먹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은 왕에 대한 또 다른 일격의 기똥찬 유머로 볼 수 있겠다. 
 또한 포메라니아의 농촌에 식량 증대, 전투식량 확보 등의 목적으로 당시 가축의 먹이로 인식되던 감자를 심도록 명했는데 반발이 심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꾀를 내어 "감자는 귀족만이 먹을 수 있다."고 선포하고 실제 궁정식단에 올리고, 거인연대라고 불리는 척탄근위대로 하여금 감자밭을 지키게 함으로서 감자 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 공로로 그는 '감자 대왕'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왕이 바흐에게 "지난 번 연주회는 의도적인 함정인지 진실을 말하라"고 묻자 바흐는 "연주회가 그렇게 끝나버려 유감입니다만 함정은 폐하 스스로 판 것입니다… 폐하의 멜로디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전 다만 조금 복잡한 음조를 덧붙였을 뿐입니다. 제가 폐하께 합주를 부탁한 카논은 좀 교묘하긴 했죠. 허나 그것이 제 음악을 지배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제서야 스타일 구긴 왕의 오해가 풀린다.


 이어서 바흐가 "폐하의 음악이나 제 음악이나 과거에도 그랬듯 '음악적 선물'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렇다면 '음악적 헌정(musical offering)'이란 말이군."하고 웃으며 대꾸하는 왕. 이에 "그러나 우리 중 누가 헌정을 받는 것입니까?"고 되묻는 바흐. 대답을 못하는 왕. 바흐의 거만한 왕에 대한 위트있는 일격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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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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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4
유명 음악가 시리즈(VIII)-'내 이름은 바흐' (3)(My Name Is Bach)

 


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지난 호에 이어)
 다시 영화 속. 프리드리히 왕이 아직 얘기가 안 끝났다며 바흐를 피아노 앞에 앉힌다. 그리고 이른바 '왕의 주제(royal theme)'를 직접 쳐 보이며 3성(聲) 또는 6성의 푸가를 즉흥 연주해 보라고 주문한다. 순간 둘러서 있던 크반츠, 아말리에 공주, 프리데만과 에마누엘 등이 모두 긴장한다. 


 바흐는 누가 만든 곡인지 물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왕은 질문은 해도 되지만 충고는 사양한다고 말한다. 바흐는 왕이 그런 작곡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단순한 음조이지만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왕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내 시간은 당신 것이 아니다"라며 "내 대답은 노!"라고 말하고 떠나는 바흐. 시종이 앞을 가로막지만 묵인하는 사인을 보내는 왕. 자존감이 상하지만 인내한다. [註: 기록에 의하면 바흐가 '왕의 주제(Thema Regium)'를 이용한 3성 푸가를 즉흥적으로 연주하자 왕은 다시 도전하여 6성 푸가를 요청했다. 바흐는 즉흥연주를 한 뒤 악보로 써서 제출하겠다고 하여 라이프치히로 돌아가서 몇 주 뒤 완성한 악보를 송부하였다. 구성은 3성, 6성 두 개의 리체르카레(Ricercars)와 10개의 카논(Canones) 그리고 4악장의 소나타로 되어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적 헌정(Musikalisches Opfer, BWV 1079)'이다. 당시 바흐는 그 악보에 "Regis Iussu Cantio Et Reliqua Canonica Arte Resoluta (the theme given by the king, with additions, resolved in the canonic style)"라고 썼기 때문에, 첫 머리글자를 딴 'ricercar'가 당시의 잘 알려진 음악장르가 되었다.]


 이 영화의 재미는 지나칠 정도의 열정과 고집불통인 35살의 젊고 오만한 프리드리히 대왕과 그 권위와 거만함을 일격필살의 유머와 지략으로 거울을 보듯 드러내 보이는 62살의 노 거장 바흐와의 이와 같은 충돌에서 나온다. 


 새벽 4시. 시종 스툼(베르나르 리그메)이 커피를 대령하는데 한 모금을 마시던 왕은 도로 내뱉으며 하인들까지도 '따뜻한 우유'를 마시게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註: 프리드리히 2세는 커피를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바흐가 '커피 칸타타, BWV 211'을 작곡할 정도로 18세기에 커피가 유행했다. 왕이 마시던 커피는 샴페인으로 끓인 물에 겨자로 맛을 낸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플루트를 불면서, 지키고 있던 골츠 비서관에게 비엔나와 그 창녀(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들의 농부들을 나의 영토인 슐레지엔으로부터 빼앗기 위해 무슨 술책을 꾸미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며 오스트리아 연락망을 중간에서 가로채라고 명령한다. [註: 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아 테레지아가 여제로 즉위하자 이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을 주도적으로 일으켰다. 7년에 걸친 전쟁의 승리로 공업이 발달하고 부유한 슐레지엔(Schlesien)을 오스트리아로부터 획득했다. 이 전쟁을 통해 독일의 작은 연방국이었던 프로이센은 단숨에 유럽의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프리드리히 2세는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겸비한 젊은 명군주로 전 유럽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군주는 국가 최고의 심부름꾼'이라는 그의 명언대로 합리적인 사고와 국가에 봉사하는 태도로 국정을 운영했던 인물로 '대왕'으로 불릴 만큼 그는 러시아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2세(1729~1796),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1741~1790)와 함께 3대 계몽군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프리드리히 2세가 혼자 남은 방에서 애견을 쓰다듬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진다. 그가 왕세자였을 때의 회상이 나온다. 부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688~1740)는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로 어린 왕세자를 구타하기 일쑤였는데 이를 견디다 못한 왕세자는 삶에 대한 미련도 없고 왕이 되기도 싫어서 가출을 시도했다. 


 마침 사촌인 영국의 아멜리아 공주와의 혼담을 기회로 18살 때인 1730년 8월5일 이른 아침, 가장 신뢰하던 친구였던 육군중위 한스 헤르만 폰 카테(1704~1730) 그리고 소위 페터 폰 카이스(1711~1756)의 도움을 받아 영국으로 탈출을 도모했지만 폰 카이스가 이 모의를 사전에 누설하여 왕세자와 폰 카테는 국경지역 근처에서 체포되었다. 


 카이스는 이미 영국으로 도망쳤지만 폰 카테는 모진 고문 끝에 참수당했다. 부왕은 프리드리히가 그 모습을 지켜볼 것을 강요하였는데 중간에 실신했다고 하나, 영화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에 고문 현장에서부터 끝까지 지켜본다. 아무튼 프리드리히는 즉위 뒤, 그의 저술에서 "이 시련기가 나중의 고난에 커다란 훈련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 기억은 평생을 두고 괴롭혔다.


 바흐가 구두 밑창에 박힌 커다란 가시를 빼내면서 며느리 요한나에게 라이프치히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요한나는 이대로 떠나시면 에마누엘이 섭섭하게 여길 거라며 아버님이 첫아들의 대부가 되시는 것에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흐는, 대부는 부자인 대부를 정해야 아담의 평생을 잘 인도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참 현실적인 조언이다. [註: 에마누엘의 대부는 바흐와 헨델의 친구였던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이었고, 텔레만이 86세로 죽은 뒤 에마누엘은 궁정자리를 때려 치고 그의 함부르크의 음악감독직을 이어 받아 죽을 때까지 재직했다.]


 바흐가 산책을 하고 있는데 아말리에 공주가 쫓아와 자기 음악교습본에 서명을 요청한다. 친구인 크반츠가 만든 교본이었다. 책을 받을 때 멍들은 그녀의 손톱을 보고 이 손가락으로 어떻게 피아노를 치냐며 염려하는 바흐. 그녀는 이런 바흐에게서 아버지 같은 느낌을 받은 양 포옹을 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뛰면서 되돌아간다. 

 

 

 


 장면은 포츠담 궁. 에마누엘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형 프리데만에게 무슨 권리로 아담이라고 이름을 지었냐고 따지다가 궁중에 매인 몸인 그는 형의 자유가 부럽다고 말하자 프리데만은 '네가 내 자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냐'며 언성이 높아진다. 다시 피아노를 치면서 프리데만은 "나의 자유는 날마다 음악가로서의 나의 삶을 재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말리에 공주가 왕이 애지중지하는 피아노 한 대를 크반츠의 연습실로 옮겨놓고 자기는 진부하고 유행에 뒤쳐지는 따분한 미뉴엣 같은 음악은 싫다며 하늘의 천사같은, 아직 아무도 그런 코드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자유롭고 대담한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고 말한다. 프리데만의 연주에 매료되어 한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9월 5일(수) 갤러리아 쏜힐점에서 문화 강의가 있습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서안 둘러보기), 천하성, 한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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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유명 음악가 시리즈(VIII)-'내 이름은 바흐'(2)(My Name Is Bach)

 


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지난 호에 이어)
 왕이 계속 읊조리던 다섯 음을 하프시코드로 쳐보이며 크반츠 교수에게 그 뒤를 즉석 연주해 보라고 부탁하면서, 바흐가 포츠담으로 오고 있으며 오늘밤 이 주제에 의한 3성 및 6성 푸가를 즉흥 연주하도록 그를 시험해 볼 것이라고 말한다. 


 바흐의 절친한 친구인 크반츠는 "내가 그에게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라이프치히의 위대한 작곡가이며 오르가니스트인 바흐를 존경심은커녕 이런 식으로 시험하는 건 좋지 않다"고 충언을 하고, 덧붙여 "바흐는 노인이고 당신 아버지 뻘이 된다"고 말한다. 


 이에 왕은 정색을 하며 "당신은 연봉 2천 탈러(1억5천만원) 외에 플루트 교습료를 따로 지불하고 고용된 교수"임을 상기시키며 "나에게 설교 따윈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註: 프리드리히 2세는 청소년기에 바흐와 비발디, 헨델 등의 음악에 정통했고, 크반츠로부터 플루트를 지도받아 자주 연주회를 열곤 했다. 그러나 쾌락이나 즐거움을 주는 예술이나 학문 등을 엄격히 금지했던 부왕은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분노하여 장소를 가리지 않고 회초리나 몽둥이로 그를 때리거나 걷어차고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철저한 반발심리로 예술심취와 함께 부정적인 인간관을 형성했다. 그는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남이 자신의 견해에 토를 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이즈음 포츠담의 에마누엘 집에 도착한 바흐는 손자를 안으며 며느리 요한나 마리아(안체 베스테르만)에게 프리데만이 톨 게이트에서 '아담'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요한 제바스티안 2세'라고 지으려고 했다며 실망스런 눈치다. [註: 에마누엘 바흐는 1744년 와인 가게의 딸인 10살 연하의 요한나 마리아 단네만(Johanna Maria Dannemann, 1724~1795)과 결혼하여 다음해에 아들 요한 아담(1745~1789)을 낳았으나 당시 유아사망률이 높은데다 세례식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그 후 딸 안나 카롤리나 필리피나(1747~1804)에 이어 아들을 낳자 요한 제바스티안 2세(1748~1778)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아무도 음악가가 되지 않았고, 막내는 유망한 화가였으나 1778년 로마로 유학 가는 중에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사망했고, 딸은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대가 끊겼다. 에마누엘은 1788년 12월14일 함부르크에서 74세로 사망하여 성 미하엘 교회에 묻혔다.]


 바흐가 "내 나이에 뼛속까지 흔들어 놓는 마차를 타고 3일 걸려 여기 오느라 피곤하고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註: 라이프치히 - 포츠담 거리는 약 160km로 지금은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18세기에는….]


 요한나가 잽싸게 식사를 준비해 올리는데 왕의 전령이 도착해, '안할트- 쾨텐 궁정의 카펠마이스터'이며 '폴란드왕 겸 작센 선거후의 궁정작곡가'이며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이신 바흐를 국왕께서 소환한다고 정중히 예를 갖추고 길게 알린다. [註: 바흐는 1685년 아이제나흐(Eisenach) 태생이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56)가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1522년 9월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출판했던 유서깊은 곳이다. 바흐가 쾨텐(Koethen)의 궁정작곡가로 있을 때 결혼한, 그의 6촌으로 한 살 위인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1684~1720)가 1720년 5월에 급사한다. 결혼한지 12년 8개월만이었다. 첫 부인과 사별한지 17개월만인 1721년 12월3일에 쾨텐 궁정 트럼펫 연주자의 딸인 스무살의 꽃다운 처녀 안나 막달레나 빌케(1701~1760)와 재혼했다. 안나가 낳은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는 영국 Queen Charlotte (조지 3세 국왕의 왕비) 악단의 음악장을 지냈기 때문에 '런던 바흐'라고 불리고, 에마누엘은 '베를린 바흐' 또는 그의 대부인 텔레만의 카펠마이스터를 계승했기 때문에 '함부르크 바흐'라고 구분해 부른다. 그러나 안나 막달레나는 말년에 돈 한푼 없이 노상에서 사망하여 라이프치히의 성 요한 교회의 묘지에 묻혔으나 그마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버린 비운의 여인이다.]

 

 

 

 


 궁정에는 플루티스트인 프리드리히 2세가 크반츠 작곡의 '트리오 소나타 E단조'를 하프시코드, 바이올린, 바소 콘티누오 등과 함께 연주하고 있다. 집사가 바흐의 도착을 알리자 중간에 연주를 멈추고 내빈들에게 바흐의 출현을 알리는 왕. 


 바흐는 왕에게 대뜸 악수를 청하고, 프리데만은 아말리에 공주의 손에 키스를 하면서 '폐하(Your Majesty)'라고 불러 웃음거리가 되는데….

 

 

 

 


 왕은 "이제 하프시코드 시대는 끝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바흐를 그가 새로 구입한 '피아노포르테'가 있는 방으로 안내한다. 바흐는 "폐하, 이런 기회를 주시니 기쁨과 영광입니다."라고 예를 갖추어 말하고, 한 피아노를 연주해 보고는 "잘 통제돼 있고 음이 정확하며 훌륭합니다"고 격찬하며 "나도 이런 악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한다. 


 왕은 이 말에 신이 나서 "나의 친애하는 바흐 선생이 여기 와 주셔서 얼마나 영광인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또 다른 피아노포르테로 안내한다. 그러나 바흐는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연주해 보며 키가 손가락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조도 맞지 않아 자기 음악에는 이 피아노가 맞지 않는다고 평한다.

 

 

 

 


 결론적으로 이 피아노포르테들은 아직 미완성 상태이며 시스템이 완벽하게 되어야 한다며 "만일 이 상태에서 이들 피아노를 구입했다면 오만하게 뽐낼 이유가 없다"고 내뱉곤 이제 집으로 가겠다고 방을 나가는 바흐….


 여기서 잠깐 '피아노의 역사'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지금의 피아노는 원래 이름인 'pianoforte' 또는 'fortepiano'를 줄여 쓰는 말이다. 마치 'violoncello'를 줄여서 첼로라고 부르듯이. 피아노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하프시코드(쳄발로)와 클라비코드가 대표적인 건반악기였는데, 지금과 같은 효과적인 피아노의 발명은 1700년대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국 파두아 출신인 쳄발로 제작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 1655~1731)에 의해서였다. 그 후 고트프리트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 1683~1753)에 의해 독일에서 피아노가 완성된다. 


 1740년대에 프리드리히 대왕이 질버만의 피아노를 15대나 구입했다고 하는데, 현재 포츠담 궁에는 2대가 보존되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9월 5일(수) 갤러리아 쏜힐점에서 문화 강의가 있습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서안 둘러보기), 천하성, 한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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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9
유명 음악가 시리즈(VIII)-'내 이름은 바흐' (My Name Is Bach)(1)

 


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 게오르크 헨델(1685~1759)과 함께 이른바 '바로크 삼총사'로 일컬어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서양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 J.S. 바흐를 소재로 한 영화가 여러 편 있지만 여기서는 스위스 취리히 출신 여감독 도미니크 드 리바츠(Dominique de Rivaz, 66)의 "내 이름은 바흐(Mein Name ist Bach)"를 소개할까 한다. 


 이 영화는 픽션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에 그 근거를 두고 제작된 수작이다. 2003년 스위스•독일•프랑스 합작 영화. 출연 바딤 글로브나, 위르겐 포겔, 카롤리네 헤르푸르트, 아나톨 토브만, 파울 헤르비크, 안체 베스테르만 등. 러닝타임 97분.

 

 

 


 배경은 1747년 5월 라이프치히. 어느 안과 병원에서 이대로 두면 몇 달 후에 시력을 상실할 수 있다며 백내장 수술을 권고 받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바딤 글로브나). 그는 새 안경을 썼지만 초점이 잘 잡히지 않고 뿌옇게 보이는 눈 때문에 비가 쏟아지는 골목길에서 절규한다. [註: 바흐는 1749년 5월에 뇌일혈로 졸도하여 시력이 더 크게 나빠져, 1750년 3월 존 테일러(John Taylor, 1703~1772)라는 영국인 돌팔이 안과 의사에게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무균, 소독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바흐는 왼 눈 수술 1주 후 다시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백내장이 다시 나타났다는 이유였다. 낙후된 수술방법과 합병증으로 2차 수술 후 바흐는 안타깝게도 완전히 실명했고 심각한 눈 통증과 고열에 시달리다가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4개월 후인 7월28일 영원히 눈을 감았다. 이 존 테일러라는 작자는 1758년 8월 엉터리 수술로 게오르크 헨델도 실명시킨 아주 몹쓸 인간이었다.]

 

 

 


 그리고 타이틀이 뜨고 오픈 크레디트에 두 장면이 겹친다. 하나는 'FR'이라고 쓰인 부항단지를 사용하여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국왕(위르겐 포겔)이 포츠담 궁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FR은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the Great, 1712~1786)을 일컫는 'Friedrich Regium'의 약자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장면은 휘장을 친 마사지 팔러 옆에 거대한 개 조각상이 있고 그 주변에 개들이 먹이를 먹고 있는 광경이다. [註: 프리드리히 대왕은 개인적인 인간관계는 극도의 불신 때문에 폐쇄적이었지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애견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개의 충성심을 극찬했다.]


 다른 하나는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는 J.S. 바흐와 그의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아나톨 토브만)의 모습이다. 


 프로이센 령의 세관원(데틀레브 벅)이 바흐 일행이 탄 마차를 정지시키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 문답을 통해 우리는 여행의 목적과 가족관계를 알게 된다. 일행은 바흐의 차남인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의 첫아들의 세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라이프치히에서 포츠담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에마누엘은 프리드리히 왕세자의 하프시코드 주자로 있다가 그가 프리드리히 2세 국왕으로 등극하자 궁정작곡가가 되었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Wilhelm Friedemann Bach, 1710~1784)는 당시 할레(Halle)의 리브프라우엔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재직 중이었다. 


 세관원이 아기의 이름을 묻지만 바흐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아서 이름이 없다고 하자 프리데만이 즉석에서 '아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작 에마누엘과 그의 부인 요한나 마리아의 의사에 관계없이 아담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이때 흥미롭다는 듯 마차에 실려있는 바흐의 하프시코드(쳄발로)에 손을 댔다가 바흐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고 혼줄이 나는 세관원.


 한편 에마누엘 바흐(파울 헤르비크)가 마사지를 받고있는 프리드리히 국왕에게 그가 작곡한 새로운 곡 '트리오 다듀(Trio d'Adieu)' 악보를 갖고 온다. 새로 짓고 있는 상수시 궁(Sanssouci Palace)으로의 이전을 축하하고, 현재의 포츠담 궁에 이별을 고하기 위해 작곡했다고 동기를 밝히는데, 왕은 돈은 받았냐고 물으며 자기는 작곡하라고 명한 적이 없다고 차갑게 반응한다.


 그러나 에마누엘은 아내가 첫아들을 낳았는데 세례식 등 가계 부담이 크다며 연봉 인상을 요구하지만, 왕은 현 연봉 300탈러(약 2천만원)는 충분하다며 더 이상의 인상은 안 된다고 못박는다. 사실 왕은 이때 다섯 음으로 된 멜로디를 읊조리며 에마누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눈치 없이 때를 잘못 택한 것 같다.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서 있는 그를 보고 왕은 J.S. 바흐가 이리로 오고 있는 중이라며 오늘 저녁에 궁정악사 없이 연주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갖고 온 악보는 비서관 골츠(길레스 츄디)에게 건네라고 하지만 골츠는 슬쩍 구석에 내버린다. 그리고 왕은 재미있다는 듯 또 그 멜로디를 읊조리는데…. 

 

 

 

 


 장면은 바뀌어 아말리에 공주(카롤리네 헤르푸르트)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있는데, 음악지도교수 크반츠(필리프 뷔유미에)의 플루트 연주가 곁들여지지만 템포가 맞지 않다. 그녀는 이런 따위의 음악을 지겨워 했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註: 요한 요아힘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 1697~1773)는 플루트 제작자 및 연주가 겸 작곡가였다. 1728년 작센 선거후이자 폴란드 왕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를 따라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당시 왕세자였던 프리드리히 2세를 만나 그의 플루트 선생이 되어 드레스덴에서 베를린을 오가며 가르쳤다. 1740년 프리드리히 2세가 프로이센의 국왕으로 등극하자 그의 궁에서 평생을 머물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플루트 디자인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으며 18세기의 플루트 기교와 연주법에 관한 논문 '플루트 연주의 예술(On Playing the Flute•1752)'은 연주법 습득을 위한 입문서인 동시에 응용미학 개론서로 매우 가치있는 사료로 남아있다.] 


 이때 프리드리히 2세가 들어오면서 아말리에 공주에게 연주를 멈추도록 명령하지만, 계속 하프시코드를 치면서 "왕이랍시고 음악은 그만 두고 이제 춤을 추라고 명령한다."며 큰소리로 대들자 그가 악기의 뚜껑을 확 닫아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손가락을 다친다. 


 안나 아말리에 공주(Princess Anna Amalie, 1723~1787)는 프리드리히 2세의 막내 여동생으로 자유분방한 막내기질이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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