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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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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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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7
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Amadeus)'(6)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지난 호에 이어)
 한편 모차르트는 갑작스러운 아버지 레오폴트의 사망 소식에 생기를 잃고, 거기에다 폐렴과 각종 합병증 등, 알려진 바에 의하면 '118가지의 증상'으로 병자의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살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을 즈음, 살리에리는 예전 가면파티에서 레오폴트가 했던 것과 똑같은 분장으로 나타나 돈을 주며 장례식에 쓰일 미사곡 하나를 지어달라고 의뢰한다. [註: 실제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 이는 프란츠 폰 발제그 백작(Count Franz von Walsegg, 1763~1827)으로 알려졌다. 그는 많은 음악가들에게 작곡 의뢰를 한 후 그 곡을 자기가 작곡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별난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1791년 당시 20세로 죽은 그의 아내 안나를 추도하기 위한 진혼미사곡을 모차르트에게 익명으로 요청하고 계약금의 절반을 선수금으로 주었는데 모차르트가 죽는다. 영리한 콘스탄체는 남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Franz Xaver Sussmayr, 1766~1803)를 통해 미완성 레퀴엠을 완성시켜 다음 해인 1792년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제출함으로써 돈을 다 받아냈다. 발제그 백작은 1793년 12월14일, 그리고 다음 해 아내의 기일인 2월14일에 제메링 근교에 있는 순례자 교회에서 자작곡으로 두 번 공연하였지만, 이보다 앞선 1793년 1월2일 콘스탄체의 '레퀴엠' 자선공연을 통해 비엔나 사람들은 이미 이 곡이 모차르트 작곡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때 "돈 조반니"의 서곡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이 곡은 좀 뒤에 다가올 모차르트의 불행과 비극적인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이 어둡고 비장하다.


 광기에 사로잡힌 살리에리는 이 일로 모차르트를 닦달하고 학대하고, 그 누구보다도 모차르트를 사랑했던 아버지의 망령이 병약해진 모차르트의 주변을 떠돌아다니게 하면서 그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결국 그것이 모차르트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되어 스스로 자신의 진혼곡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되는데…. 


 병약한 모차르트가 아내와 아들 카를(밀란 뎀야넨코)과 함께 "돈 조반니" 패러디 공연을 보러간다. 제1막에 나오는 "자 우리 서로 손을 맞잡고(La Ci Darem La Mano)"라는 돈 조반니(바리톤)와 체를리나(소프라노)의 2중창인 노래를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말굽을 준다면 내 마음을 당신에게 주겠어요."라고 패러디한 코믹한 장면이 폭소를 자아낸다. [註: 콘스탄체는 6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4명은 1년을 못 넘기고 죽고 아들 2명만 살아남았다. 영화에 나오는 카를 토마스(Karl Thomas Mozart, 1784~1858)는 6명 중 둘째로, 프란츠 듀셰크와 철학가이며 모차르트 자서전을 최초로 쓴 니메첵(Franz Xaver Niemetschek, 1766~1849)의 지도를 받았으나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사업가 및 오스트리아 재무성 관리로 일하다 거기서 사망했다. 
 6명 중 막내인 프란츠 크사베르 볼프강(Franz Xaver Wolfgang Mozart, 1791~1844)은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서 개인지도를 받고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1844년 7월29일 위암으로 사망하여 칼스바트(현 카를로비 바리)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그의 삶의 전부였기에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묘비명이 되게 하소서." 둘 다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모차르트 가문은 이것으로 대가 끊겼다.]


 공연 중에 무대에서 잠깐 내려와 모차르트를 찾아온 쉬카네더(사이몬 캘로)가 자기 극장에서 공연할 새 오페라 작곡을 그에게 의뢰한다. 수익금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의하지만 궁핍한 콘스탄체는 당장 선수금을 달라고 요청하는데…. [註: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 1751~1812)는 모차르트의 절친한 친구로 '마술피리'의 대본을 만들어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1791년 9월30일, 그가 운영하는 비엔나의 비에덴(Wieden) 극장에서 초연을 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모차르트가 죽기 2개월 전이었다. 쉬카네더가 주인공 파파게노 역을 맡았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였던 요제파 호페르(Josepha Hofer, 1758~1819)가 유명 아리아 '밤의 여왕'을 불렀다. 요제파는 바로 콘스탄체의 맏언니인 요제파 베버로 궁정악단 바이올린 주자였던 호페르(Franz de Paula Hofer, 1755~1796)와 첫 결혼했고,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의 첫 공연에서 교도소장 돈 피차로 역을 맡았던 바리톤-베이스 가수 제바스티안 마이어(1773~1835)와 두 번째 결혼했다.]

 

 

 


 차츰 비엔나 시민들의 냉대를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던 모차르트는 이리저리 손을 내밀지만 퇴짜를 맞는다. 돈 때문에 진혼 미사곡 작곡과 마술피리 오페라 작곡을 동시에 진행하며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간다. 


 진혼 미사곡 "레퀴엠 D단조" 3악장 '부속가(Sequentia)' 중 첫 단인 '진노의 날(Dies Irae)'과 3번째 단인 '지엄하신 왕(Rex Tremendae)'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스탄지(콘스탄체의 애칭)가 잠든 사이에 작곡을 멈추고 술집으로 가서 왕창 스트레스를 풀고 놀다가 다음 날이 밝아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모차르트. 

 

 

 

 


 스탄지와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장모인 베버 부인을 찾아갔으나 딸을 요양차 온천에 보냈다며 '자신과 음악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고 호된 질타를 하는데, 그 앙칼진 목소리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밤의 여왕'(밀라다 체칼로바) 장면으로 절묘하게 전환된다. 

 

 

 

 


 '밤의 여왕(The Queen of the Night, youtube.com/watch?v=YuBeBjqKSGQ)'은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마술피리(Die Zauberflote, K.620)"의 제2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다. 이 노래는 'High F6'의 높은 음역을 요구하여 소프라노에게 꿈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곡으로 알려졌다. 영화 속 노래는 미국 보스톤 출신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준 앤더슨의 목소리다. 


 결국 모차르트는 아내와도 떨어져 혼자 남게 되고, 급기야 1791년 공연된 오페라 "마술 피리(The Magic Flute)" 지휘 도중 몸이 좋지 않아 내려오고, 대신 제2막에 파파게노(사이몬 캘로)가 부르는 아리아 '소녀 혹은 귀여운 아내를(Ein Madchen oder Weibchen, youtube.com/watch?v=QrVHYVLtQkk)' 부분에서 마법의 벨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다 끝내 쓰러지고 만다.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살리에리가 무대 뒤로 와서 쓰러진 모차르트를 자기 마차에 태워 (병원이 아닌) 아마데우스의 집으로 데려간다. 


 '마술피리'의 공연은 계속된다. 유명한 이중창 '파-파-게나! 파-파-게노!'가 브라이언 케이와 길리안 피셔의 목소리로 나온다. 파파게나의 연기는 리스베스 바틀렛이 맡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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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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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1
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Amadeus)'(5)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지난 호에 이어)
 살리에리가 포글러 신부에게 말한다. "날 조롱하는 건 비천한 웃음을 웃는 모차르트가 아니었소. 바로 신이었소.…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당신을 비웃어주겠소." 

 

 

 


 그런데 모차르트는 음악적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은 폐인에 가까울 만큼 방탕한 삶의 연속이었다. 버는 돈이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아내 콘스탄체에게 선물과 옷 사주고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벌이는 등 버는 족족 모두 탕진해 버렸다. 게다가 워낙 기분파라서 한번 시작한 파티는 모두에게 꼭 ‘쏴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신과 모차르트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염탐할 하녀 로리(신시아 닉슨)를 남몰래 그의 집으로 보낸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하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레오폴트와 돈도 들지 않는 하인을 왜 못들이냐는 콘스탄체 사이에 격렬한 말다툼이 일어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레오폴트는 홧김에 잘츠부르크로 떠나버린다.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모차르트가 비엔나 광장에서 요제프 2세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피아노를 연주하며 "피아노 협주곡 22번, E플랫, K.482"를 오케스트라와 협연, 지휘한다. 콘스탄체가 만면(滿面)의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 한다. 

 

 

 

 


 한편 살리에리는 그들이 집을 비운 틈을 타서 하녀 로리의 안내로 들어가 모차르트의 작품을 훔쳐본다. 살리에리는 그가 새로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K.492)"이 소재 면에서 프랑스 희곡이며, 표현 면에서 이탈리아어로 쓰여있고 발레까지 들어있어 오스트리아 황제의 지침을 모두 어기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방해와 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자신의 온 열정이 담긴 작품을 황제에게 선보인다. 황제는 "정열은 있지만 설득력은 없다."고 평하는데…. 


 그럼에도 리허설을 강행하는 모차르트. 극장장인 로젠버그가 리허설을 지켜보다가 제1막에서 주인공 피가로(미로 그리사)가 결혼침대를 맞추기 위해 마루바닥 사이즈를 재면서 수잔나(수자나 카들레코바)와 함께 부르는 '2중창: 다섯…열…스물 (Duettino: Cinque… Dieci… Venti)'까지는 잘 넘어갔는데, 발레가 나오자 오페라를 늘어지게 한다는 이유로 황제가 금지했기 때문에 발레 부분의 악보를 찢어버린다. '이중창…'은 미국 베이스-바리톤 가수인 새뮤얼 래미와 스코틀랜드 소프라노 가수인 이소벨 뷰캐넌이 불렀다.

 

 

 

 


 그런데 3막의 리허설 중 느닷없이 황제가 나타나 음악이 없는 발레를 보고 이상하다며 음악을 넣으라고 지시하여 극적으로 공연이 이루어진다. 모차르트로 인해 황제의 발레 금지령이 철회된 것이다. 이 발레곡은 "피가로의 결혼" 중 제3막에 나오는 '행진곡이 들립니다(Ecco la Marcia)'이다. 


 제4막의 '아, 모두 만족해(Ah, Tutti Contenti)' 공연에 대해 살리에리는 "신이 그를 내세워 세상에 노래하듯이 그칠 줄을 몰랐소. 소절이 계속될수록 내 패배는 더욱 참담해져 갔소."라고 고백한다.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정말로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쓴 곡으로 그의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히는 걸작이지만 총 4막으로 공연시간이 4시간 가까이 긴 탓에 영화에서는 황제가 하품을 하는 등 당시 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해 단 9회로 끝났다. 

 

 

 

 


 이를 하소연하는 모차르트에게 살리에리는 비엔나 시민들의 저급한 음악 수준 때문이라며 달래고, 자신의 새 오페라 "오르무스의 왕, 악수르(Axur, Re d'Ormus)" 공연에 초대한다. 황제의 축하도 좋지만 누구보다 모차르트의 축하를 받고 기뻐하는 살리에리!

 

 

 

 


 1787년 아버지 레오폴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가 작곡한 새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 K.527)" 공연을 보며 작품의 완성도에 경악하는 살리에리. 제2막에 나오는 죽은 기사장(Il Commendatore)의 무시무시한 형상은 바로 모차르트의 죄를 세상 앞에 사죄하기 위해 죽음에서 소생한 아버지 레오폴트의 혼령이었다. [註: 프라하에 모차르트가 오페라 '돈 조반니'를 완성하기 위해 기거했던 '베르트람카 빌라(Bertramka Villa)'가 있다. 지금은 원 소유주이며 음악가였던 듀셱 부부 및 모차르트의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7개의 방이 있는데, 당시 쓰던 하프시코드와 현악기 등과 직접 쓴 편지, 부인 콘스탄체 사진, 돈 조반니 공연 관련 광고 및 기사 등을 전시해 놓았다. 

작곡가이며 하프시코드 및 피아노 연주가였던 프란츠 듀셱(Franz Xaver Duschek, 1731~1799)은 모차르트의 아들 카를 토마스를 지도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부인 요제파 듀셱(Josepha Duschek, 1754~1824)은 당대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였는데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나의 아름다운 불꽃(Bella mia fiamma, K.528)'은 그녀의 목소리를 위해 작곡된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관심을 끈 것은 벽에 걸린 액자 속에 들어있는 말총같이 보이는 물건이었다. 뭔가 신기해서 보니까 모차르트의 긴 생머리카락 13가닥을 모아 묶어놓은 것이었다. 색깔이 바래서인지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흰색이 도는 엷은 갈색머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경악과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었소. 그때부터 나의 광기가 발동하기 시작했소. 둘로 쪼개질 것 같은 한 인간의 광기… 난 이해할 수 있었소. 무덤 속에서까지 불쌍한 아들을 지지했다는 걸. 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소. 신에 대항해 끝내는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무서운 음모를!…" 


 다시금 신을 저주하고 질투심에 불타올라, 갖은 술수를 다 동원해 모차르트의 공연을 무대에서 5회를 넘기지 못하고 빨리 끌어내려 버리는 살리에리. [註: '돈 조반니'는 1787년 10월29일 프라하의 '에스테이트 극장(Estates Theatre)'에서 초연되었다. 현재 23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극장은 '틸 극장'으로도 불린다. 체코 국가(國歌) 'Kde domov muj (Where is my Home)?'의 작사자이며 극작가•배우로 활동한 요제프 카예탄 틸(Josef Kajetan Tyl, 1808~1856)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12월 5일(수) 12시 30분 갤러리아 쏜힐 문화교실에서 과학 및 인문 강좌가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차마고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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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 (Amadeus)' (4)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지난 호에 이어) 
 황제는 모차르트를 13살짜리 조카 엘리자베스 공주의 음악교사로 삼아 비엔나에 머물게 하려 하지만 살리에리가 그럴 경우 편애(favoritism)로 비칠 수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모차르트는 황실 음악교사가 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어느 날, 콘스탄체가 살리에리를 찾아온다. 이때 살리에리가 가르치는 학생(미셀 에스포지토)이 부르는 노래가 주세페 조르다니(Giuseppe Giordani, 1751~1798) 작곡의 '카로 미오 벤(Caro Mio Ben)'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나의 다정한 연인'이란 뜻의 이탈리아 고전 가곡이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몰래 가져온 그의 악보를 보여주며 그를 황실교사로 채용해 줄 것을 부탁한다. 서먹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비너스의 젖꼭지'라는 이름의 로마산 밤과 설탕으로 만든 과자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다과를 권하는 살리에리. 악보를 두고 가라는 그의 말에 원본이기 때문에 당장 보고 도로 가져가야 한다며 완강하게 거절하는 콘스탄체.


 초고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군데도 수정한 흔적이 없고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한 것을 단지 옮겨 쓴 것에 불과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들어보지도 못한 음악이었다. 여기서 악보를 넘길 때마다 모차르트의 많은 곡들이 나온다.


(1)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K.299 2악장(안단티노) 
(2) 교향곡 29번, A장조, K.201 중 1악장(알레그로 모데라토)
(3)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0번, E플랫 단조, K.365 중 3악장(론도)
(4)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Sinfonia Concertante), E플랫 장조, K.364 중 1악장(알레그로 마에스토소)
(5) 피아노 협주곡 15번, B플랫 장조, K.450 중 3악장(알레그로)
(6) 미사곡 C단조: 자비송(Mass in C Minor, K. 427: Kyrie)


 음표 하나를 바꾸어도 어색해지고, 한 소절만 바꾸어도 전체 구성이 무너져 버리는 그런 작곡! 섬세한 필체를 통해서 들려오는 아름다움의 극치! 대주교 궁전에서 들었던 신의 음성을 다시 들었다고 말하는 살리에리는 그만 들고 있던 악보집을 힘없이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러나 쏟아진 악보를 챙기는 콘스탄체를 도와주기는커녕 그녀에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법, 값은 치러야 한다"며 남편을 위한다면 오늘 밤에 혼자 다시 오라고 주문하는 살리에리. 


 늙은 살리에리가 신부에게 말한다. "더 이상 자비의 하느님은 없었소. 고통의 신뿐이었소. 난 지금까지의 기도와는 다른 기도를 했소. '하느님, 제게 오소서. 진정한 음악으로 절 채워주소서. 그래서 당신이 절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소서. 당신이 제게 주신 은총을 모차르트에게도 보여주소서. 그러면 그 자리를 그에게 주겠습니다. 제게 오소서. 제발, 제발!'"

 

 

 

 


 (여기서부터 극장판에서 잘렸던 부분이 감독판에서 복원된 장면이다.) 이때 콘스탄체가 약속대로 찾아온다. 남편이 연주회에 간 사이에 왔다며 스스로 옷을 벗는 콘스탄체. 그러나 하인을 불러 그녀를 배웅해 주라고 지시하곤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살리에리. 마치 창녀를 대하듯 하는 그의 태도에 부화가 난 그녀는 촛대를 그의 방문에 냅다 던져버린다. 


 오라 가라 하며 심한 모욕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는데 모차르트가 오자 사랑한다고 몇 번을 되뇌이는 콘스탄체…. 

 

 

 

 


 살리에리는 이제 신을 저주하기 시작한다. "당신이 자신의 도구로 오만하고 음탕하고 지저분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녀석을 선택하고선 나에겐 그것을 인정하는 능력밖에 안 줬기 때문이오. 그건 부당해. 편파적일 뿐 아니라 매정한 짓이야. 맹세코 당신을 매장시키겠소. 있는 힘을 다해 당신의 피조물에 해를 끼치겠소."라며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상을 떼내 벽난로불에 던져버린다.


 상심한 살리에리는 이제 황제에게 자기의 학생에게 모차르트가 성희롱을 했다는 험담까지 늘어놓는다. 그런 반면 경제적 궁지에 몰린 모차르트에게는 선심 쓰듯 미카엘 쉴룸베르크(케네스 맥밀란)와 부인(리타 조하르)의 딸 게르투르드(캐시 스튜어트)에게 가정교사 자리를 소개해 주지만, 수 마리의 애완견이 짖는 등 음악을 가르치기에는 모욕적일 정도로 엉망진창인 그 집안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모차르트는 얼른 접대용 샴페인 한 병을 챙기곤 그날로 뛰쳐나오고 만다. (중간에 살리에리의 신의 저주 부분을 제외하고 여기까지가 복원된 부분이다.) 

 

 

 

 


 술을 병째로 마시며 비엔나 거리를 활보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5번, B플랫 장조, K.450"의 '3악장 알레그로'의 재기발랄하고 변화무쌍한 음악은 거리 풍경과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곧바로 이어지는 긴장된 분위기의 다음 장면으로의 극적인 전환을 배가시킨다.

 

 

 

 


 신나게 문을 열어 제키고 집으로 들어서다가 잘츠부르크에서 찾아온 아버지 레오폴트(Leopold Mozart, 1719~1787)와 마주치는 모차르트. 이제 음악은 오페라 "돈 조반니"의 '서곡'이 나오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버지는 그의 경제 사정을 염려하지만, 모차르트는 아무렇게나 변명을 늘어놓고는 가면무도회에 함께 참석해 제멋대로 신나게 즐긴다. 

 

 

 

 


 자리찾기 게임에서 자리를 못 찾은 콘스탄체가 벌칙으로 치마를 걷어 올려 속옷을 보여주는가 하면, 모차르트는 몸이 사람들 손에 들려서 앞으로 엎드리거나 뒤로 누운 상태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벌칙을 받는다. 이때 연주하는 곡이 "후궁으로부터의 탈출" 제2막에 나오는 '2중창: 바커스 만세(Duetto: Vivat Bacchus!)'에 바탕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풍의 '즉흥연주(improvisation)'이다. 


 이 무렵 살리에리가 아무도 몰래 가면무도회에 나타나 그를 지켜보는데, 모차르트가 벌칙을 주문하자 글루크, 살리에리 등의 이름이 나온다. 결국 살리에리의 곡을 연주하며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살리에리를 우스개거리로 만드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12월 5일(수) 낮 12시 30분 갤러리아 쏜힐 문화교실에서 과학 및 인문 강좌가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차마고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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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1
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Amadeus)'(3)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지난 호에 이어)
 마지막으로 궁정악장 살리에리의 견해를 묻는 황제. 그는 모차르트를 비엔나에 붙들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그 이유는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결과가 되므로) 대주교를 화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살리에리의 정치적인 답변에 만족해 하는 황제.


 드디어 황제의 명을 받고 모차르트가 궁으로 들어온다. 살리에리는 밤을 새워 그를 위한 환영행진곡을 작곡했지만, 모차르트는 이 곡을 밖에서 이미 듣고 암기했다며 황제 앞에서 바로 편곡까지 하면서 연주한다. 마치 살리에리의 작품을 무시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뽐내듯이…. 


 사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에 나오는 아리아 '너는 더 이상 가지 못해(Non piu andrai)'라는 곡인데 그의 천재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삽입된 장면이다.

 

 

 

 


 살리에리는 큰 충격을 받고 십자가에 대고 호소한다. "저의 간절한 소망은 신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욕망을 갖게 하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하루하루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채찍질 하는 수도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살리에리에게, 신들린 연주력과 놀라운 편곡 능력 그리고 시대의 감성을 뛰어넘는 작곡 실력까지 갖춘 모차르트란 존재는 경이롭고도 한없이 부러운 존재로 다가온다. 

 

 

 

 


 살리에리에게 그의 뮤즈인 카테리나 카발리에리(크리스틴 에버솔)가 성악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 발성연습을 하는데 하이 옥타브에서 갑자기 장면은 바로 모차르트가 황제의 커미션을 받고 첫 번째로 독일어로 작곡, 초연한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Die Entfuhrung aus dem Serail, K.384)" 중 '고문의 아리아(Martern Aller Arten)'로 연결된다. [註: 카테리나 카발리에리(Caterina Cavalieri, 1755~1801)는 비엔나 출신 소프라노 가수로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서 성악을 공부하고 그의 오페라 "굴뚝청소부(Der Rauchfangkehrer•1781)"에서 프로일레 나네테 역을 맡기도 했다. 특히 1782년 7월16일, 비엔나 부르크극장에서 초연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또는 유괴)"에서 주인공 콘스탄체 역을 맡고, 그 후 "돈 조반니"에서도 도나 엘비라 역을 맡는 등 둘의 관계가 상당히 깊었음을 시사한다. 요제프 2세 황제가 가장 좋아했고 살리에리의 뮤즈였던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45세로 사망했다.] 


 3막 27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최초의 완전한 징슈필(Singspiel, 구어체 대사가 포함되고 대개 희극적 성격을 띤 18세기의 독일어 오페라)이며 독일 오페라의 선구이다. 
 줄거리는 스페인의 귀족 벨몬테의 약혼녀 콘스탄체와 하녀 블론테, 하인 페드리요 등 3명이 배를 타고 여행하던 중 해적들에게 납치돼 터키의 태수인 제림의 궁에 팔려간다. 그녀를 구출하려는 벨몬테를 중심으로 태수와 궁전 경비대장 오스민, 그리고 납치된 3명을 둘러싸고 희극이 벌어지는데 우여곡절 끝에 뜻하지 않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제2막에 나오는 '고문의 아리아'는 협박하는 제림에게 콘스탄체가 '어떤 형벌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며 단호히 유혹을 뿌리치는 내용의 유명한 아리아다.


 이 '고문의 아리아'는 소프라노 가수에게 고난도의 콜로라투라 기교를 약 10분간이나 계속해야 하는 정말 '고문'에 가까운 곡이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의 노래는 아일랜드 출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인 수전 머피가 불렀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태수 제림의 선처로 4명이 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제림의 덕을 칭송하는 합창 '파샤 제림 만세(Bassa Selim lebe lange!)'를 부르는 가운데 막이 내리고 모차르트의 지휘는 끝난다.

 

 

 

 


 살리에리는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지만 음악에 덜떨어진 황제는 "음표가 너무 많다(too many notes)"는 헛소리를 한다. 역시 천재라도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는 법이다. 

 

 

 

 


 이때 하숙집 주인 베버 부인(바바라 브라인)이 '볼프강의 약혼녀'라고 소리지르며 딸 콘스탄체(공연 오페라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와 함께 황제가 있는 무대 위로 올라온다. [註: 체칠리아 베버(Caecilia Weber, 1727~1793) 부인은 당시 '신의 눈동자'라는 이름의 하숙집을 운영했는데, 모차르트가 1781년 비엔나에 정착하면서 이 집에서 하숙했다. 사실 모차르트가 베버 부인을 처음 만난 것은 1777년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만하임에 갔을 때였는데, 그 때 둘째 딸 알로이지아(1760~1839)를 짝사랑했지만 퇴짜를 맞았던 일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1779년 사망하자 생계가 막연한 베버 가족에게 연봉 700플로린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그 해 10월31일 궁정극장 배우이며 화가인 요제프 랑게(Joseph Lange, 1751~1831)와 결혼했다. 랑게가 1782년에 그린 동서지간인 모차르트와 처제인 콘스탄체의 초상화는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체칠리아 베버 부인은 딸 넷을 두었는데 모두 수준 높은 성악 교육을 받아 셋째 딸인 콘스탄체 베버(Maria Constanze Weber, 1762~1842)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문직 가수로 활동했다. 체칠리아의 남편 프란츠 프리돌린 베버(1733~1779)는 더블베이스 연주가였는데,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utz)'로 유명한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는 그의 조카이다.]


 황제가 나이를 묻고 결혼하라고 말하자 모차르트 옆에 서 있던 카발리에리가 '약혼녀'라는 말에 화가 나서 황제로부터 '무대의 보배'라는 찬사와 함께 받은 꽃다발로 그를 냅다 후려치고 퇴장한다. 그리고는 "보잘 것 없는 그녀에게 끌린 것을 보면 밤 잠자리 기술이 상당히 좋은 모양"이라고 독설을 날린다. 카발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그 동안 몸과 마음을 바쳤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에 살리에리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과 모차르트 둘 다를 위해서 그가 잘츠부르크로 제발 돌아가게 해달라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한편, 모차르트는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 레오폴드의 뜻을 거역하고 비엔나에 정착하고는 아버지의 사전 동의 없이 콘스탄체와 결혼한다. [註: 콘스탄체 20살, 모차르트 26살 때인 1782년 8월4일 비엔나의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불과 9년 후 여기서 장례식을 치르게 될 줄이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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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Amadeus)'(2)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주여,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되게 해주소서. 음악을 통해서 당신을 찬양하고 나 자신 또한 영원히 추앙 받는 작곡가가 되게 해주소서. 제가 죽은 후에도 저의 작품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시고 그리하여 당신께 저의 성심과 근면과 가장 겸손한 마음을 평생 바치게 해주소서. 아멘." 


 이때 흐르는 음악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 작곡의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슬픔•고통의 성모)" 중 마지막 12번째 악장 '제 육신이 썩더라도(Quando corpus morietur)'와 '아멘(Amen)'이란 경건한 곡으로 소프라노와 알토 이중창으로 나온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아버지는 식사 중 식도에 생선가시가 걸려 질식사했고, 살리에리는 16살 때 음악의 도시 비엔나로 와서 당시 '오페라 개혁가'로 유명한 궁정지휘자였던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폰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von Gluck, 1714~1787)의 수제자가 된다. 몇 년 후 폰 글루크의 소개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를 만나 그의 궁정음악장이 되는 행운을 얻는다. 


 그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학생들을 공짜로 가르치고 가난한 음악가들을 도우며 또한 자신을 인정해 주는 황제와 비엔나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비엔나에서 가장 성공한 이탈리아인 음악가이자 가장 행복한 음악가였다. 적어도 모차르트가 오기 전까지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인 히에로니무스 폰 콜로레도 백작(니콜라스 케프로스)을 따라 비엔나에 나타난 모차르트. 살리에리는 4살 때 협주곡을, 7살 때 교향곡을, 그리고 12살에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그를 보고 싶어 대주교의 궁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그날 밤, 내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소." 


 이때 홀에서 7명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노래가 18세기 초 집시 음악인 "부박 & 헝가리쿠스(Bubak and Hungaricus)"라는 곡이다. [註: '부박'은 체코어로 애들 침대 또는 옷장에 사는 요정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멜로디는 리코더, 피들(fiddle) 또는 허디거디(hurdy-gurdy)라는 희한하게 생긴 악기로 연주되며 탬버린이 곁들어진 헝가리 스타일의 춤곡이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 장난기가 발동한 살리에리가 음식보관실에 들어가자 모차르트(톰 헐스)와 그의 연인 콘스탄체(엘리자베스 베리지)가 천방지축의 사랑유희를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러나 자기 없이 연주회가 시작되자 허겁지겁 달려가 실내악단을 지휘하는 모차르트. 오만방자하지만 놀라운 천재성을 보이며 지휘하는 모차르트를 보고는, 살리에리는 '신은 왜 자신의 도구로 그를 선택했을까' 하고 깊은 의문을 갖게 된다. 


 대주교는 피고용인인 주제에 늦게 나타난 모차르트 때문에 초대손님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며 봐주면 줄수록 더욱더 무례해진다고 그를 질책하고 당장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이에 모차르트는 싫다며 차라리 쫓겨나는 게 낫다고 당돌하게 저항한다. 

 

 

 

 


 모차르트가 지휘한 곡은 "세레나데 제10번 B플랫 장조, K.361 '그랑 파르티타(Gran Partita)'" 또는 "13대의 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로 불리는 곡으로 모두 7악장으로 구성된 통상 연주시간이 약 50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영화에서는 이 중 가장 유명한 '제3악장 아다지오'와 마지막 '제7악장 피날레, 몰토 알레그로' 중 코다 부분이 사용되었다. 


 '그랑 파르티타'는 대위법적 기법이 능숙하게 발휘되어 각 악기의 개성을 충분히 부각시키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한데,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이 악장을 이렇게 묘사한다. 


"시작은 아주 단조롭고 코믹했소. 조용히 들려오는 바순과 바셋 호른 소리들이 마치 녹슨 아코디언 소리 같았지. 그런데, 갑자기 오보에의 높은 음이 들리더니 그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클라리넷이 넘겨받아서 감미로운 소리가 환희로 바뀌어갔지. 흉내나 내는 원숭이의 작품이 아니었소. …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었소. 동경으로 가득한, 충족되지 못할 동경으로 가득한 음악이었소. 마치 신의 음성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소. …" 


 그의 표현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흐름 속에 가늠할 수 없는 동경과 환상이 담긴, 애틋하고 아름다운 꿈결 같은 음률이 면면히 흐른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살리에리는 신이 주신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아마도 신의 실수였을 거라며 자위하는데…. 


 장면은 바뀌어 요제프 2세 황제(제프리 존스)가 비엔나에도 좋은 독일 작곡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며 왕궁극장에서 상연될 오페라를 독일어로 공연하면 어떻겠냐며 귀족들에게 모차르트에 대해 묻는다. [註: 요제프 2세(Joseph II, 1741~1790)는 1765~1790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 황후와 프란츠 1세(1708~1765) 황제의 장남으로, 프랑스 루이 16세에게 시집갔다가 38살 생일을 2주 앞두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와네트(1755~1793)의 오빠이다. 그는 러시아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2세(1729~1796)와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1712~1786)와 함께 3대 계몽군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특히 그는 '음악 왕'으로 불렸는데 독일어 지향적인 오스트리아의 상류 예술문화를 주도하였다. 예컨대 모차르트에게 독일어로 된 첫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The Abduction from the Seraglio)"을 의뢰했으며, 어린 베토벤에게는 장례 칸타타를 작곡 주문했으나 이는 당시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공연되지는 못했다.]

 

 

 

 


 오페라 극장장인 오르시니 로젠베르크 백작(찰스 케이)과 교회악장 주세페 보노(패트릭 하인즈)는 기교나 부리고 음표가 너무 많다는 점을 들어 모차르트를 좋지 않게 평하고 독일어는 오페라에 적합치 않다는 의견인 반면, 판 슈비텐 남작(조나단 무어)과 폰 스트라크 백작(로드릭 쿡)은 모차르트를 훌륭하다며 천거하고 평민들을 위해 쉬운 독일어 오페라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註: 고트프리트 판 슈비텐(Gottfried van Swieten, 1733~1803)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교관, 궁정도서관장이며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인물로 J.S.바흐, 요셉 하이든, 폰 글루크, W.A. 모차르트 및 루드비히 판 베토벤 등 고전주의 시대의 여러 위대한 작곡가들의 후원자로 유명한 실존 인물이다. 베토벤은 1801년 그의 '교향곡 1번, 작품 21'을 그에게 헌정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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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5
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 (Amadeus)’(1)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아마데우스'! 하도 유명한 대작이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다시 한 번 30여 년 전의 추억의 명화를 산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되어 유명음악가 시리즈의 하나로 꼽아보았다. 


 필자는 1984년 9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출장 갔을 때 막 개봉한 이 영화를 가까스로 심야 표를 구해 관람했었다. 그럼에도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 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사후 200주년이 되는 1991년 가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배낭여행 한 적이 있었다. 18세기 의상을 입고 가발을 쓴 청소년들이 국립 오페라 극장, 슈테판 대성당, 쉔브룬 궁 등 가는 곳마다 출현하여 전 도시가 모차르트 축제로 붐비고, 심지어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은 물론 기념품 가게, 거리의 악사 등 모두가 모차르트 일색이었다. 그의 출생지인 잘츠부르크를 비롯하여 그야말로 거국적인 행사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와 18세기의 감흥을 소롯이 전해주었던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는 체코 출신 밀로쉬 포르만(Milos Forman•86) 감독의 작품으로 원작은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 경(Sir Peter Shaffer, 1926~2016)의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984년 오라이언 픽처스사 배급. 출연 F. 머레이 에이브러햄, 톰 헐스, 엘리자베스 베리지 등. 러닝타임 161분. 


 2002년에 재개봉한 감독판은 180분이다. 첫 개봉 시 제작사 측에서 너무 길다는 이유와 PG 등급을 받기 위해 삭제한 20여 분을 다시 복원하여 출시한 것이다. 제작은 밀로쉬 포르만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 등으로 유명한 사울 자엔츠(Saul Zaentz, 1921~2014)가 맡았다.


 음악감독은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아카데미 실내 관현악단(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을 설립하고, 헨델의 '메시아' 등 바로크 음악의 중흥에 크게 기여한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네빌 마리너(Neville Marriner, 1924~2016). 


 이 작품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포함한 8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영국 아카데미인 BAFTA 및 골든 글로브에서 각각 4개 부문을 휩쓸며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영화였다. 


 줄거리는 18세기 후반 모차르트와 동시대의 이탈리아 작곡가인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가 모차르트의 작곡가로서의 천재적 재능과 성공을 시기하여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픽션이다. 


 모차르트가 실제로 1787년 '돈 조반니'를 첫 공연했던 에스테이트 극장 등 체코 프라하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하고, 의상에서 미술까지 18세기 당시의 풍경을 재현하여 모차르트의 화려한 음악과 함께 죽음의 미스터리를 살리에리의 회상 형식으로 그리는 음악 사극 대작이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감독판 기준). 


 1823년 눈보라 치는 밤. 첫 장면에 "교향곡 25번, G단조, K.183"의 '1악장 알레그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모차르트, 용서해주게. 자넬 죽인 건 바로 날세… 내가 자넬 죽였네. 모차르트, 용서해주게…" 모차르트의 이름을 부르다 자신의 목을 난도질하는 늙은 살리에리(F. 머레이 에이브러햄). 타이틀이 나오기 전부터 격렬한 교향곡(모차르트 심포니 25번)을 통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강렬하게 빨아들인다. 

 

 

 


 정신병원의 원목인 포글러 신부(리처드 프랭크)가 고해성사를 받으러 방으로 찾아오자 하프시코드로 자신의 곡들을 들려주는 살리에리. 하지만 신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내 작품 중 기억나는 것은 없소?" "…" "유럽에선 최고의 작곡가였는데… 오페라만 40개를 썼소." "…" 이때 플래시백으로 살리에리 작곡의 오페라 "오르무스의 왕, 악수르(Axur, Re d'Ormus, 1788)" 제4막에 나오는 아리아 '이들은 희망이다(Son Queste Le Speranze)'가 소프라노의 노래로 나온다. 

 

 

 

 


 "그럼, 이건 어떻소?" 하며 모차르트의 '소야곡(Eine Kleine Nachtmusik)'을 들려주자 신부는 금방 알아차리고 따라 부르기까지 한다.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아주 매혹적인 곡입니다. 그걸 작곡하신 줄 몰랐습니다." "내가 아니오." "…" "모차르트의 작품이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당신이 살해했다고 용서를 비는 사람 말이군요." "그걸 알고 있었소?" "정말입니까?" "…"

 

 

 

 


 살아있는 살리에리의 곡은 아무도 모르고, 죽은 모차르트의 곡은 여전히 사랑받는 것이다. 밝고 명랑한 모차르트의 곡과 어둡고 우울한 정서의 살리에리의 곡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신과 사람들에게 버려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주인공 살리에리의 비참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며 14살 된 살리엘리(마틴 카비나)가 유치한 숨바꼭질 놀이나 하고 있을 때 어린 모차르트는 이미 황제나 로마 교황 앞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늙은 살리에리. 

 

 

 

 


 장면은 바티칸 궁. 6살의 모차르트(미로슬라프 세케라)가 교황과 추기경들 앞에서 눈을 가린 채 하프시코드를 연주한다. 이 곡은 "하프시코드 소품, F장조, K.33B"이다. 아버지 레오폴트(로이 도트리스)가 의자 위에 올려놓자 또 바이올린을 연주해 보이는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우며 자란 모차르트와는 달리 이탈리아 롬바르디의 가난한 시골에서 상인인 아버지 프란체스코(피터 디게수) 밑에서 음악가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조차 제대로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살리에리는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한다. (다음 호에 계속)

 

 

※ 알림: 11월 7일(수) 12시 30분 갤러리아 쏜힐 문화교실에서 과학 및 인문 강좌가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차마고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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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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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5
유명 음악가 시리즈(IX)-'세상의 모든 아침' (All the Mornings of the World)(6)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다시 침대로 올라가려 하지만 힘이 부쳐 못 올라가자 사정없이 그녀를 확 떠밀어 눕히는 마랭. 일말의 사랑은커녕 인간다운 온정마저도 느낄 수 없는 막가파의 행동처럼 보인다. 

 

 

 


 이때 뜨와넷이 언니의 비올을 가져온다. 마랭이 '꿈꾸는 소녀(La Reveuse, www.youtube.com/watch?v=TpZYctXCBdY)' 연주를 시작하자 몸은 쇠약하지만 그의 빠른 템포를 즉시 교정하는 마들레느. 

 

 

 

 


 이윽고 그의 연주에 미소로 화답한 마들레느는 떠나는 마랭을 창밖으로 확인한 후 쪽방을 뒤져 그가 선물했던 구두를 찾는다. "구두장이는 되기 싫다고 그랬지!"라고 되뇌이던 마들레느는 헝겊으로 된 긴 구두끈을 풀어 의자를 끌어다 그 위에 올라가 침대 상단 커튼 봉에 걸고는 목을 매 자살한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인 마레는 힘들고 지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악의 길을 택했고, 스승의 딸인 마들레느의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악용하여 왕의 악사가 되자 그녀 곁을 떠났다. 비정한 사랑에 낙망한 마들레느는 그의 아이를 사산한 후 오랜 병고 끝에 비참한 삶을 비관하여 스스로 세상을 뜨고 아버지 상트 콜롬브는 분노한다.


 내레이션이 나온다.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아침이 오지만 한 번 지나간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Tous les matins du monde sont sans retour.)'" 영화의 제목은 바로 이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상트 콜롬브의 오두막을 보여주고 거기에 있는 화가 보쟁이 그린 정물화가 클로스업 된다. 자식들이 없으니 오두막 주변의 밭도 황폐화 되고, 텅빈 집에서 홀로 식사하는 모습이 너무 애련하다. 이제 더 이상 그에게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딸의 죽음을 부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딸의 죽음이 분노와 증오를 넘어 스승과 제자를 다시 만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할 줄이야! 

 

 

 


 마랭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1689년 1월23일 눈이 시리도록 바람이 매섭고 다리가 얼어붙는 추운 날이었다. 달은 밝고 구름은 높은, 맑고 상쾌한 밤이었다. 마들레느가 죽은 후 잠 못 이루던 마랭은 매일 밤 말을 타고 스승의 오두막으로 가서 엿듣기를 3년! 그동안 결코 연주하지 않았던 스승이 그날 드디어 연주를 한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오두막에서 다시 대좌하는 스승과 제자. 비록 음악을 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했지만 항상 진정한 음악을 찾고자 갈망해 온 마랭은 스승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달라고 간구한다. 


 상트 콜롬브가 입을 연다. "음악은 언어를 초월한다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지. 음악은 왕을 위한 게 아닐세. … 그럼 무엇을 위한 것일까?" 마랭이 대답한다. "죽은 자를 위해 잔을 남기는 것"이라며 "음악은 지친 자를 위한 휴식이죠. 길 잃은 아이를 위한, 구두장이의 망치소리를 잊기 위한, 우리가 태어나기 전 생명도 없고 빛도 없던 때를 위한…." 


 모든 것의 상실 속에서 다시 한 번 음악을 찾고자 자신의 음악 세계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벗'을 기다리고 있던 스승은 마랭의 이 말에 야윈 손으로 그의 통통한 손을 덥석 붙잡고 '죽은자를 부르는 음악'을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마랭이 먼지가 뽀얗게 앉은 마들레느가 쓰던 비올을 닦는 동안 포도주와 비스킷을 준비하던 스승은 과자 한 개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어지자 발로 밟아 으깨 버린다. 이제 영혼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허한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임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옴을 암시한다.

 

 

 

 


 혼자만 간직했던 붉은 노트를 갖고와 이를 제자에게 보여주는 스승. 이 작곡집을 제자에게 넘겨주고 제자는 다시 스승에게 건네는 의식을 치른 후 포도주를 잔에 따라 한 잔씩 마신 다음 드디어 스승과 제자의 협연이 시작된다. 앞에서 죽은 아내의 환영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도 나왔던 '슬픔의 무덤'이란 곡인데 원래 곡명은 '눈물(Les Pleurs, www.youtube.com/watch?v=IMoRPxLdSQ0)'이다. 


 듀엣으로 연주하는 동안 스승과 제자의 눈물과 미소로 얼룩진 얼굴이 교차한다. 이 경지는 이미 예술의 표상(表象)이 아니라 도(道)의 영역에 다다른 것일진대 진작 음악을 통한 슬픔이 강렬하게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상트 콜롬브가 표현해 내려는 슬픔의 의미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히며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용서하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적어도 이 점에서는 한(恨)이 우리의 숨결이 되고 속눈물이 된 임권택(82) 감독의 '서편제(西便制•1993)'가 한 수 위 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장면은 처음의 늙은 마랭 마레로 돌아간다. 얘기를 듣던 제자들도 모두 눈물을 글썽인다. 진정 연인이자 스승이었던 마들레느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제 그녀를 잃은 슬픔에 고개를 떨구고 울고 있던 마랭이 얼굴을 들자 한줄기 빛 속에 스승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말한다. "자네가 자랑스럽네. 그 애가 사랑한 곡을 연주해 주게." 

 

 

 

 


 마들레느를 위해 작곡했던 '꿈꾸는 소녀'를 연주하는 동안 스승은 온화한 얼굴에 눈물을 흘린다. 비로소 제자의 음악성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용서함을 암시하면서 장면은 페이드 아웃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세상을 등지고 '도'의 경지의 예술을 추구하는 '음악가' 스승과 그 스승을 능가하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지만 세상의 부와 명성을 위하여 예술의 기교와 표상을 중시하는 제자 간의 애증(愛憎). 하지만 딸의 죽음으로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애타게 원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마침내 증오와 분노를 넘어 그들은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된다. 그들이 애타게 찾았던 것을!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아침'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 그래서 붙잡을 수 없는 것. 그러나 존재하는 것 ― 진정한 음악의 본질은 삶과 죽음이라는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닐까? (끝)


(지금까지 비올 음악에 대해 도움을 준 분은 네이버 블로그의 '빈들' 님 임을 밝히며 감사를 드립니다.) 

 

※ 알림: 11월 7일(수) 12시 30분 갤러리아 쏜힐 문화교실에서 과학 및 인문 강좌가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강사: 문종명, 손영호(주제: 중국 차마고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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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유명 음악가 시리즈(IX)-'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 (5)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그는 죽은 부인을 생각했다. 임종 당시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슬픔이 되살아난다. 부인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모든 밤이 한결 같고 슬픔도 한결 같았다. 부인이 또 나타난다.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부인은 "화채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를 느끼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다. 


 둘은 강가로 간다. 부인이 배에 탄다. 이에 콜롬브가 "새삼스런 얘기지만 세월도 우릴 가르진 못해."하고 말하는 사이 아내가 탄 배는 사라지고 없다. 저승은 배와 같은 것! 영혼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허한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 오직 바람만이 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상트 콜롬브가 추구하는 음악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註: 필자는 여기서 문득 2002년 애덤 섕크먼 감독 영화 '워크 투 리멤버(A Walk to Remember)'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 제이미(맨디 무어)가 연인 랜던(셰인 웨스트)에게 한 말 "사랑은 바람 같아서 볼 순 없어도 느낄 수 있어요."라는 대사를 떠올렸다.]

 


 어느 날 마들레느가 마랭에게 아버지가 아름다운 곡― 아무도 모르는 '샤론의 배' '슬픔의 무덤(눈물)' 등 ―을 작곡했다는 소식을 알리는데 영 시큰둥한 태도다. 그리고 부엌에서 빨래를 정리하고 있던 마들레느가 차를 한 잔 따라주자 이를 마시던 마랭이 '박하가 많다'며 불평한다. 


 이때 뜨와넷이 막 잡아온 산 물고기를 부엌 바닥에서 놓쳐 이를 줍기 위해 엎드린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보고 음흉한 눈길을 주는 마랭. 

 

 

 그리고 마들레느의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던 마랭은 갑자기 "당신이 싫어졌나봐. 난 떠나. 새 사랑을 찾아서. 인생은 아름답지만 잔인하지!"라고 내뱉곤 그냥 떠나버린다. 
 화려하고 낭만적인 궁정 생활에 빠져든 그는 단물 신물 다 빼 먹고 이제 어깨 펼 만하니 더 젊고 싱싱한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는 방종과 오만에 빠져, 헌신적으로 몸과 마음을 바친 또 다른 스승이자 연인인 시골처녀 마들레느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이때 그녀는 그의 애를 가졌고 얼마 후 사내아이는 사산이 되어 그 후유증으로 심하게 앓게 된다. 그녀는 살 의욕을 잃는다. 상트 콜롬브는 뜨와넷을 통해 마랭에게 전갈(傳喝)을 보내 그를 집으로 부르지만 그의 아버지가 못 가게 한다는 묘한 이유로 오지 않는 마랭. 


 대신 마들레느에게 노란 가죽구두를 선물하지만 그녀는 벽난로 불에 던져버린다. 이를 본 뜨와넷이 황급히 구두를 건져내 상자에 넣어 쪽방에 보관해 둔다. 


 장면은 마들레느가 수영하던 강과 상트의 죽은 아내가 배를 탔던 강 그리고 상트의 오두막 작업실과 그 실내를 찬찬히 보여준다. 실내의 테이블 위에는 썩은 과일과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인생무상을 말해준다. 

 


 마랭은 스승과 인연을 끊고 궁정지휘자가 되어 결혼도 한다. 뜨와넷은 비올 악기를 만드는 장인과 결혼하여 다섯 아이를 낳는다. 이즈음 마랭은 마들레느를 위해 "La Reveuse", 이른바 "꿈꾸는 소녀(The Dreaming Girl)"를 작곡한다. 


 상트 콜롬브가 마들레느의 침대 곁에 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연다.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마랭이 절 위해 만든 '꿈꾸는 소녀'를 듣고 싶어요." 그는 급히 뜨와넷을 통해 마랭에게 마들레느의 임종을 지켜달라는 전갈을 보낸다. 


 마들레느의 큰 침실은 어둠이 드리운 검푸른빛이고 왼쪽 쪽방은 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황금빛으로 빛나는 장면이 묘한 명암의 대조를 이루어, 언뜻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야경(夜警•The Night Watch)'을 연상시킨다. 마치 그녀의 불타는 정열은 아스라이 스러져가고, 대신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는 비관적 삶을 대비시키는 듯한 뛰어난 영상미다.


 오두막 문 입구에서 뜨와넷이 마랭을 데리고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상트 콜롬브. 한편 마지막 힘을 키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일어나 정원 한 모퉁이에서 왔다갔다 걷기운동을 하는 마들레느! 관객들도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이즈음 궁정악사들을 연습시키고 있는 마랭 마레. 17~18세기의 당시 악기들로 구성된 궁정 관현악단의 연주 장면이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화려하고 장중하다. 이때 마랭이 연습시키는 곡이 장 바티스트 륄리 작곡의터키 의례를 위한 행진곡’(Marche pour la Ceremonie des Turcs)인데, 굵고 기다란 쇠파이프 같이 생긴 지휘봉을 박자에 따라 바닥에 치는 모습이 재미있다. [註: 이 곡은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왕의 춤(Le Roi Danse•2000)'에도 나오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장 바티스트 륄리(Jean Baptiste Lully, 1632~1687)이다. 그는 루이 14세의 춤 교사로 고용되어 후에 궁정 실내악단장이 돼 바닥을 치는 이 같은 지휘봉에 발가락을 치어 괴저병(壞疽病)으로 도져서 죽었다.] 


이때 시종이 전갈을 가져오지만 이를 본 마랭은 '노'라며 돌려보낸다. 하지만 마음의 갈등을 느낀 그는 결국 뜨와넷과 함께 마차를 타고 스승의 집을 찾아온다. 오두막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 마랭. 뜨와넷이 언니가 이제 많이 변해 걷지도 못하고 아빠가 밥을 떠 먹여야 할 지경이라고 설명한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들레느가 "멋쟁이가 됐군요. 살도 찌고… 왕림해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넨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해 주기를 간청하며 그 이유를 아느냐고 묻는다. 이에 안다고 대답하는 마랭…?

 

 

 

 그런데 따뜻한 말은커녕 기껏 한다는 얘기가 빰도 야위고 눈도 손도 앙상해졌다며 "아직도 날 미워하느냐?"고 묻는 마랭. 그렇다고 대답하는 마들레느는 "당신뿐이 아녜요. 내 자신도 경멸해요. 당신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다가 내 인생을 망친 거죠. 난 바보죠."라며 자조(自嘲)의 웃음을 짓는다. 


 이어서 그녀는 "내가 결혼을 원한다고 생각했죠?"라고 묻는 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겨우 걸음을 떼어 마랭의 멱살을 붙잡고 "당신 사랑은 얇았어요."라고 말한다. 이에 "거짓말"이라고 강변하는 마랭….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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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유명 음악가 시리즈 (IX)-'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 (4)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이윽고 자작곡인 "아라베스크(L'Arabesque)"를 연주하는 마랭 마레. 이 연주에 비로소 만족감을 표시하는 콜롬브는 한 달 후에 오면 그때 말해주겠다며 그를 돌려보낸 후, 이 곡을 오두막에서 혼자 연주해 본다. 이같이 그는 자식에게는 물론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온 마랭에게도 그저 무뚝뚝하고 엄숙할 뿐이다. 


 어느 날 두 딸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고, 아버지는 여전히 오두막에서 비올을 연주하고 있는데 오늘도 죽은 부인의 실물 같은 환상을 볼 즈음 마랭 마레가 찾아온다. 


 뜨와넷이 한창 일하고 있는 언니 몰래 달걀 양끝에 바늘로 구멍을 내 후루룩 알맹이를 빼먹는 장면이 우리의 옛날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 영화에서 모두 심각한 표정들인데 웃음을 보이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콜롬브는 연주는 잘 하는 편이고 자세도 좋고 감정도 좋고 기교도 있고 장식음도 매력적이고 매끄러운 솜씨이지만 '음악'은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작곡도 썩 잘하는 편이라 반주자로는 쓸만해서 음악으로 밥벌이는 하겠지만 그래도 '음악가'는 아니라고 말하는 콜롬브. 그는 심장으로 느끼는 음악과 길거리의 음악에서 진짜를 구별할 수 있겠냐며, 잘난 기교 때문이 아니고 고통에 찬 네 목소리 때문에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멀찌감치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 마들레느를 흘깃 쳐다보는 마랭 마레. 얼른 나무 뒤로 알몸을 숨기는 그녀를 강 건너 쪽에서 훔쳐보는 뜨와넷.


 배운지 몇 달이 흐른 어느 겨울날. 손가락이 얼어서 연습을 할 수 없는 마랭이 따뜻한 부엌으로 가서 손을 녹이는데 그의 눈이 마들레느의 눈과 마주치면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사람 보기 힘든 촌구석에 살며 혈기왕성한 나이라 이성에 반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리라. 


 추운 날씨에 콜롬브의 제안으로 스승과 제자는 함께 화가 보쟁의 집으로 간다. 가는 길에서도 세찬 바람소리를 비올의 저음부에서 나는 스타카토의 소리로 해석하며 자연의 섭리에 바탕한 스승의 음악 강의는 그치지 않는다. 

 

 

 

 


 보쟁이 정물화를 그리고 있다. 이때 보쟁 집의 내부장식들을 정지화면으로 보여준다. 박제된 대형 랍스터, 모래시계와 조개껍질, 석류와 테오르보 악기, 데이지 꽃병과 포도주잔 등 아름다운 한폭의 '영상정물화'이다. [註: 영화속 정물화 그림 세팅은 실제 뤼뱅 보쟁이 18세 때인 1630년에 그린 '체스판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Chessboard)'의 구도 배치와 똑같다. 이 그림은 미각, 청각, 시각, 후각, 촉각을 나타내는 정물들의 사진과 같은 정교함과 오묘함이 묻어있어 '오감(五感, The Five Senses)'으로도 불린다.] 

 

 

 

 


 콜롬브가 "죽음은 모든 것의 결산이라네. 세상 모든 환락과의 이별이지."라며 마랭의 손을 붙잡고 "저 붓소리를 들어보게. 연주도 저렇게 하게!" 그림 그리기를 음악에 비유하는 명장면이다. [註: 이와 같이 이 영화는 한컷 한컷이 영상을 종이로, 음악을 붓으로 펼쳐놓은 한폭의 문인화다. 카메라는 고정해 놓고 그 속의 대상이 움직이는 구도이다보니 요즘 현란한 CG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에게는 자칫 지루한 느낌을 주겠지만 17~18세기의 분위기를 듬뿍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치 '느림의 철학'을 배우는 듯한.]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마랭이 궁중악사가 되기 위해 궁중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난 콜롬브가 그를 오두막에서 내쫓고는 급기야 그의 비올을 뺏어 벽난로에 부딪쳐 때려부순다. 마들레느는 마랭을 감싸고 뜨와넷은 아버지를 붙든다. 하지만 "재주는 있어도 예술가는 못 돼. 궁전에서 연주해 술값이나 벌어 먹어라"며 그를 내쫓는 스승. 


 문을 박차고 눈물로 떠나는 마랭을 뒤쫓아간 마들레느는 그를 붙들어두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배운 연주 비법을 전수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첫 키스를 한다. 이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 마랭 마레가 작곡한 "희롱하기(Le Badinage)"이다. 


 한편으로는 마들레느의 방에서 비올 연주 비법을 전수받고 또 한편으로는 오두막에 이르는 비밀 통로를 통해 몰래 오두막 밑에 숨어 들어가서 스승의 연주를 들음으로써 마랭은 모든 비법을 전수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랑도 차지하는데…. 

 

 

 

 


 20살이 되던 1676년 여름, 궁정악사가 되는 마랭 마레. 그러나 어느 폭풍우 치던 날 모든 게 들통났다. 오두막 밑에서 엿듣던 마랭이 기침을 하는 바람에 발각된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뺨을 매몰차게 후려친다. 마들레느가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개죽음이 되었을 것이다. 

 

 

 

 


 상트 콜롬브가 "딸과 결혼하겠는가?"고 묻는다. "아직 모른다"고 대답하는 마랭. 옆에 있던 마들레느가 "뜨와넷은 약혼자가 있어요"라며 대답을 유도하지만 마랭은 애써 피하고 에둘러 스승에게 곡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그의 대답은 의외 ― "난 작곡한 일이 없다네! 난 열정적인 삶을 보내고 있네." 


 장면은 부활절 날. 상트는 교회에서 연주했다. 테네브레(Tenebrae, 라틴어로 '어둠' '그늘'이란 뜻)라는 촛불 끄는 의식이 있었는데 한 사내아이가 받침대를 놓고 올라가 높은 촛대에 있는 촛불을 하나씩 불어 끄는 동안, 배경음악으로 두 소프라노가 부르는 성악곡과 바소 콘티누오(계속저음) 기악의 환상적인 결합은 종교적 경건함과 열정을 생생하게 불러 일으켜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하는 듯하다. 


 유명한 프랑수와 쿠프랭(Francois Couperin, 1668~1733)이 1714년 작곡한 "두 목소리를 위한 세 번째 테네브레 수업(Troisieme Lecon de Tenebres a 2 Viox)"이라는 곡이다. [註: 이 곡은 쿠프랭의 교회음악 중에서 최정점에 도달한 작품이며 방대한 그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호르디 사발은 쿠프랭을 음악을 산문과 시로 표현한 '훌륭한 시인 음악가(excellent poet musician)'로 묘사했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 실제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은혜를 받는다고 평가했다.]

<YouTube: youtube.com/watch?v=UbREakKFTow>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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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유명 음악가 시리즈 (IX)-'세상의 모든 아침'(All the Mornings of the World)(3)

 

'비올'에 얽힌 스승과 제자의 애증을 그림과 
음악의 만남, 시적 영상미로 표현한 걸작

 

 

 

 

 

(지난 호에 이어)
 몇 해가 흘러 딸들은 성장한다. 이제 성인 배우로 바뀌는데 그 모습이 어렸을 때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훌륭한 캐스팅이다. 마들레느(안느 브로셰), 뜨와넷(캐롤 리셰)과 함께 구성된 콜롬브 삼중주단은 유명해져 지방 귀족들로부터 궁정악사보다 낫다는 열렬한 찬사를 받는다. 이때 상트 콜롬브가 마들레느와 함께 연주하는 2중주가 바로 그가 작곡한 "두 대의 비올을 위한 꽁세르 '귀향'(Concert a Deux Violes 'Le Retour')"이다. 

 

 

 


 '귀향(Le Retour)'은 동일한 모티프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이들 모티프에 지속적인 변화를 주는 작품이다. 표현에 있어 두 대의 비올은 화성적 측면보다도 동일한 선율을 때로는 같이, 때로는 엇갈리는 등 멜로디의 교차적인 강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註: 여기서 배우들이 실제 연주하지는 않지만 곡의 멜로디에 따라 모든 동작과 표정이 놀랄 만큼 일치하고 있다. 특히 상트 콜롬브 역의 장 피에르 마리엘은 음표 하나하나가 정확히 일치하고, 마들레느의 아역 비올레느 라크로와도 그랬지만 성인 역의 안느 브로셰도 거의 완벽하다. 또한 귀족들의 의상과 가발, 메이크업 등도 일품이다. 세자르 의상 디자인상(코린느 쥬얼리)을 수상했다.]


 그의 명성은 '태양 왕' 루이 14세의 궁정에까지 알려져서 왕은 캐뉴 대신(이브 가스크)을 보내 궁정에서 연주를 하도록 요청하지만 콜롬브는 "딸들의 연주가 있고 옛 친구의 추억이 있고… 난 여기가 좋소. 내 궁전에는 야생화가 가득하오. 왕의 궁전에 나 같은 놈은 필요없소."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캐뉴가 왕의 명령이며 난 왕의 신하라며 강압적으로 나오자 "난 자연인이요."라며 내쫓는다. 여기서 얀센주의 신교도로서의 자연과 은총에 대한 콜롬브의 종교적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얼마 후 아베 매튜 신부(장 클로드 드레이푸스)가 캐뉴 대신과 함께 방문하여, 촌구석에 숨어 살며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헛되게 하고 있다며 폐하의 성은에 보답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콜롬브는 "난 자연이 좋소. 누더기가 그 가발보다 좋고 내 가축이 당신보다 더 좋소."라며 그냥 내버려 달라고 부탁하지만 막무가내다. 


 이윽고 열 받은 그가 의자를 들어 때려부수자 아베 매튜 신부는 "빌어먹을 촌놈! 촌구석에서 썩어 죽어라"고 독설을 날리고 떠난다. 이에 질세라 등 뒤에 대고 "궁정도 오두막만 못하고 청중도 필요없소!"라고 외치는 콜롬브!


 당시엔 종교의 자유가 없던 때였고 고집 세고 얀센주의의 신교도였던 콜롬브이지만 왕은 이 마지막 말이 맘에 들어 콜롬브 3중주단은 극히 제한된 귀족 앞에서만 연주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세월이 흘렀다. 두 딸이 오두막 주변에 삽질하여 이랑을 만들고 씨를 뿌리며 밭을 일구고 있다. 콜롬브는 활을 손질하고 있다. 작곡한 새 곡들을 빨간 노트에 남겼지만 세상에 발표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일 뿐이라 조잡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세상의 모든 사랑을 잊고 오로지 죽은 아내의 충고와 숨결을 그리워하며 회상에 빠져있던 상트 콜롬브가 옷을 입은 채로 차고 푸른 강물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간다. 그의 허리, 어깨, 목, 드디어 머리까지 물속에 천천히 잠긴다. 그리고는 물결마저 멈춘 강물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비올의 묵직한 선율과 함께 관객도 깊은 슬픔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새벽에 '슬픔의 무덤'을 떠올렸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 만든 곡이었기에 그리움에 차서 연주를 한다. 악보도 필요없이 손은 저절로 제자리를 찾는다.

눈물이 흐른다. 그때 아내(캐롤리느 시홀)가 나타난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아내가 곡에 흠뻑 젖어 미소로 화답하는 모습에 고개를 떨구고 한없이 흐느끼는 콜롬브!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기적이 일어났다. 술병과 포도주 잔과 함께 있던 과자 접시에서 비스킷 하나가 아내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먹다 남은 채로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사랑이 기적을 낳았고 이를 간직하고 싶었던 콜롬브는 화가 보쟁(미셸 부케)에게 그 장면을 그리게 하지만 정작 그 그림에 과자 부스러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완성된 그림을 방에 숨겨두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註: 이 그림은 실제 뤼뱅 보쟁(Lubin Baugin, 1612~1663)이 1630년대에 그린 '웨이퍼 비스킷이 있는 정물(Still-Life with Wafer Biscuits)'이란 작품이다.]


 이 '과자 부스러기'는 함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지 싶다. 콜롬브가 경험한 과자 부스러기의 기적은 아내에 대한 강한 그리움과 사랑의 실체였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허한 것이었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절대경지의 음악을 향한 그의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로 그런 기적이 일어난 것이리라. 과연 '진정한 음악이란 무엇인가?'


 여기까지가 러닝타임 44분으로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붉은 옷을 입은 17세의 마랭 마레(기욤 드파르디외; 제라르의 아들로 2008년 37세에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요절했다)가 비올 연주를 배우기 위해 상트 콜롬브를 찾아온다. 바로 화자인 '나'의 젊은 시절이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6살 때부터 교회성가대에서 노래했고 연주자가 되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소개장을 갖고 찾아왔다고 장황하게 자기 소개를 하는 마랭 마레. 이때 누구보다 뜨와넷이 흥미진진한 표정이다. 


 콜롬브는 "폴리아의 변주곡(Improvisation of La Folia)"을 연주해 보라고 주문한다. 마랭 마레가 작곡한 이른바 "즉흥 스페인 무도곡"을 일컫는다. 이를 듣던 콜롬브는 실망하여 연주는 하지만 음악가는 아니라며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뜨와넷이 자작곡을 시켜보라며 일어서는 아버지를 만류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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