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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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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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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오명(汚名·Notorious)" (하)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해 8월6일 히로시마 및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탄 개발 계획)'의 상세한 내용이 공개되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국가 최고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평화의 비둘기는 깃털 하나 다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원자폭탄 투하 후 맨 처음으로 나온 우라늄 소재 첩보영화였으니 흥행에 대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얘기지만 '맨해튼 프로젝트'가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 배우 도나 리드(Donna Reed, 1921~1986)에 의해서였다. 그녀가 아이오와 주 농촌 마을의 데니슨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인 1936년에 화학을 가르쳤던 에드워드 톰킨스(Edward R. Tompkins, 1927~1990) 선생이 학교를 떠나면서 그녀에게 준 책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후 오고 간 서신연락에서 선생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음이 밝혀지면서 원자탄 개발이 노출되는 단서가 되어 1947년 MGM에 의해 원자탄에 대한 첫 다큐멘터리 영화 "The Beginning or the End"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오명'의 스토리는 오래된 주제인 직업상 의무감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데블린의 임무는 앨리시아를 성적 미끼로 삼아 세바스천의 침실로 밀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진작 그녀가 자기의 임무를 훌륭하게 이뤄냈을 때는 곤혹스러워 한다.

   데블린은 직업상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나치 세바스천은 오히려 매력 있는 인물로 비친다. 왜냐하면 그의 앨리시아에 대한 사랑은 데블린보다 더 순수하고 깊어 보일 뿐만 아니라 사랑에 바탕한 그의 신뢰가 결국 배반 당하면서 심원한 질투심과 격분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오히려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 앨리시아는 그녀가 사랑한 남자에 의해 냉정하게 조종 당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오명을 남기는 성적인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녀의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도 자기를 그녀 아버지의 나치 일당들에 대한 스파이로 삼아 참기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한 연인으로부터 오히려 버림 받을까 두려워한다. 애국심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진 이러한 처사는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다름 아닐른지….

 

 

 

   요컨대 '오명'에서 여자는 신뢰와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며 남자는 스스로 사랑을 주어야 할 존재로 그려지는데, '오명'은 이러한 멜로 드라마적 요소를 첩보 영화에 절묘하게 뒤섞는 또다른 장르의 원류를 보여준다.

   또 이 영화에는 아들의 반려자를 죽이도록 무뚝뚝하면서도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는 세바스천의 어머니가 주요 캐릭터로 나온다. 실제 히치콕 감독의 어머니는 1942년 9월에 사망했는데 4년 후인 '오명'에서 처음으로 그의 어머니를 캐릭터로 내세운 것이다. 그 후 어머니의 등장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사이코(1960)', '새(The Birds·1963)', '마니(Marnie·1964)' 등으로 이어진다.

 

   히치콕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이고 가혹한 모성적 초자아(超自我)가 중요한 작품 배경을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는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히치콕 자신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마치 밀로쉬 포르만 감독의 '아마데우스(1994)'에서 모차르트가 유명한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할 때 그를 쫓아 다니는 죽은 아버지의 환상을 테마로 했듯이, 분노와 원망, 죄의식과 슬픈 열망 등의 개인적 표상이며 동시에 모성애와 에로틱 러브가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히치콕이 사용한 충격과 서스펜스 전략의 이면에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인간 내면의 잔혹성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사이코'가 그렇다.

   또 '오명' 영화만큼 술 마실 때 술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표현한 영화도 없는 것 같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술마시기가 주제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마도 앨리시아가 죄책감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첫 도입부 파티 장면에서 한 손님이 앨리시아에게 이제 그만 마시자고 하니까 "중요한 술마시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대답하는 것과 음주 운전 장면은 앨리시아를 '엽기적인 그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교통 경찰이 등장하고 데블린이 경찰에게 뭔가를 보여주자 아무 소리 안 하고 경례까지 붙이고 보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게 만든다. 아무튼 마지막에 독을 탄 커피를 마신 뒤에야 그녀는 아마도 음주는 훨씬 더 위험한 가치 없는 짓임을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히치콕 감독에 대한 평가 중 귀담아 들을 내용은 그의 전성기와 일치하는 전쟁과 파시즘의 득세에 따른 이데올로기 문제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고, 자신이 몸담은 시대정신이나 이데올로기에서 빚어진 고통에도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이나 메시지의 전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관객들을 공포와 두려움 속으로 몰아가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한 인간들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감싸는 '휴머니즘의 부재(不在)'야말로 스릴러의 천재 히치콕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1979년 3월7일, 미국영화협회(AFI)가 히치콕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을 때 열린 축하 만찬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오명'에서 사용했던 유명한 와인창고 소품 열쇠를 그에게 선물했다. 사실은 영화 촬영 후 캐리 그랜트가 갖고 있다가 몇 년 뒤 이 열쇠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며 버그만에게 행운의 기원으로 준 것이었다. 히치콕 감독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도 행운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말: 잉그리드 버그만이 이탈리아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열애로 헐리우드에서 추방되었을 때도, 그후 그와 이혼하여 헐리우드에 복귀했을 때도 변함없이 

우정을 지켜준 이는 캐리 그랜트 단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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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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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오명(汚名·Notorious)" (중)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지난 호에 이어)

 

   이 사실과 지난 만찬 때의 와인병 에피소드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데블린은 직접 조사를 하기 위해 앨리시아에게 큰 파티를 열도록 주문하고 자기도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한편 앨리시아는 비밀리에 세바스천의 열쇠고리에서 포도주 창고 열쇠를 훔친다. 그때 세바스천이 와서 격렬히 포옹하는 바람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왼손으로 옮겼다가 이윽고 카페트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보이지 않게 책상다리 옆으로 밀쳐 놓음으로서 간신히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앨리시아!

   장면은 리우 데 자네이루 해변가에 있는 세바스천의 맨션.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이때 카메라가 이층 발코니에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로비홀을 높이 넓게 보여주다가 점차 아래로 내려오면서 줌 인(zoom-in)하여, 숨긴 열쇠를 불안해하며 꼼지락거리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오므린 손을 클로스업 해 보여주는 장면이 압권이다.

 

 

데블린이 나타나 앨리시아의 손등에 키스하는 순간 그 열쇠를 눈치 채지 않게 그의 손에 교묘하게 전달하는 앨리시아. 이들의 행동을 질투심에 불타서 은밀하게 감시하는 세바스천의 눈을 피해 둘이서 칵테일을 마시러 가는 사이에, 샴페인을 원샷으로 들이키고 사라지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바로 카메오 역의 히치콕 감독이다. 이때가 영화 시작 후 60분이 지났을 때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망을 보는 사이 와인 창고 안을 조사한다. 그때 데블린이 실수하여 와인병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 병엔 술이 아닌 이상한 검은 모래가루(나중에 우라늄석으로 판명된다)가 들어있다. 샘플을 채취한 후 그 자리에 다른 와인병을 채워놓고 깨끗이 정리하고 문을 잠그고 나온 데블린과 앨리시아.

   그때 세바스천이 모자란 샴페인을 가지러 창고로 접근해 오자 관심을 돌리기 위해 둘은 키스를 한다. 위기를 넘긴 데블린은 그 집을 무사히 빠져 나온다.

 

 

   한편 와인 저장고 문을 열려고 열쇠고리를 끄집어냈으나 열쇠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세바스천….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없어진 열쇠가 고리에 도로 끼워져 있다.

   홀린 듯 앨리시아가 침대에 자고 있는 동안 그가 포도주 창고에 내려가 보니 선반 위에 있는 포도주가 모두 1934년산(産)인데 한 병만 1940년산 레이블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수상히 여겨 선반 밑바닥 안쪽을 손으로 훑어보니 1934년 레이블이 붙은 깨진 유리병 파편과 검은 모래가 흩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세바스천!

   세바스천은 데블린과의 관계를 의심해보다가 드디어 앨리시아가 미국의 첩보원임을 눈치채게 된다. 이제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 세바스천! 그의 동료 나치들에게 자기의 실수를 실토하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앨리시아도 위태롭게 될 터이니, 일단 이 상황을 어머니 안나와 먼저 상의하고 도움을 청하는데….

   그녀는 앨리시아에게 독이 든 커피를 마시게 해 서서히 죽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녀를 방에 가두어 두고 나치 관계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앨리시아가 정보국장을 찾아갔을 때 그 검은 가루는 우라늄석으로 밝혀진다. 그러자 그녀에게 우라늄석 채굴 출처를 밝히라는 새로운 임무가 맡겨지는데….

   현기증을 앓고 있던 앨리시아는 어느 날 세바스천의 친구이며 나치 음모자인 앤더슨 박사(레이놀드 슌젤)가 찾아왔을 때 우라늄석 채굴 장소 뿐만 아니라 그녀의 병의 원인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앤더슨 박사가 실수로 앨리시아가 마시던 커피잔을 집어 들자 세바스천과 안나가 새파랗게 질려 둘이 거의 동시에 못 마시게 말렸기 때문이었다.

 

 

   충격을 받은 앨리시아가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려다 층계 밑에서 어지러워 쓰러진다. 그녀는 방으로 옮겨졌으나 전화도 치워버렸고 너무나 허약하여 밖으로 나갈 기운도 없었다. 더욱이 그녀 방엔 안나가 뜨개질을 하며 지키고 있다.

   한편 데블린은 5일 동안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엘리시아가 궁금해 세바스천의 집을 방문한다. 집사로부터 그녀가 약 일주일 정도 몸져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데블린. 그때 세바스천은 나치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참석자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의 정보가 유출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세바스천을 마냥 기다리고 있던 데블린은 살며시 앨리시아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로부터 세바스천과 그의 어머니 안나가 독약으로 죽이려 했다는 얘기를 듣고 데블린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약기운 때문에 몸을 추스릴 수 없는 앨리시아는 "내가 깨어 있게 다시 (사랑한다고) 말해 줘요."라고 속삭이는데….

  

 

이윽고 데블린이 엘리시아를 부축해서 그녀의 방에서 나오다 세바스천과 그의 어머니 안나와 맞닥뜨린다. 남편이 아닌 제3자인 데블린이 나타나 앨리시아를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아래층에서 나치 관계자 3명이 아차 하면 응사할 태세를 갖추고 이들을 지켜본다.

   역시 총을 숨기고 층계를 내려오던 데블린이 모자(母子)가 독약을 먹여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나치 동료들의 의심을 받게 된 세바스천과 안나는 당황한다.

   세바스천은 지난번 잘못된 일로 나치에게 죽임을 당한 과학자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떤다. 집밖까지 따라나온 세바스천은 데블린에게 같이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데블린과 앨리시아는 그를 나치 친구들에게 남겨놓은 채 총총히 차를 몰고 떠나버린다.

   카메라가 절망감에 젖어 넋이 빠진 듯 힘없이 집으로 되돌아가는 세바스천의 뒷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침내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이 닫히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오명'에서 세바스천의 와인 창고에 나치에 의해 숨겨놓은 우라늄은 당시 그것이 원자탄 개발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를 때였다. 히치콕 감독은 1945년 중반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의 192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밀리컨(Robert Andrews Millikan, 1868~1953) 교수를 찾아가 우라늄에 대해 문의한 일로 인해 수개월 동안 미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추적 당한 일이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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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오명(汚名·Notorious)" (상)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최근에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내용은 원폭개발,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개발책임자인 유대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생애와 사상편력을 흥미 있게 그린 영화다. 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내용이 알려지기 전인 1946년 8월15일에 앨프리드 히치콕이 감독하고, RKO라디오 픽처스가 배급한 영화가 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및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 10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제작한 첩보 스릴러 흑백 영화 "오명(汚名·Notorious)"이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에서 히치콕 감독과 첫 인연을 맺고 두 번째로 출연한 작품으로, 당시 캐리 그랜트가 42세, 잉그리드 버그만이 31세였으니 두 주연의 전성기 시절에 이 불후의 명작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리고 '카사블랑카(1942)'에서 루이 르노 서장 역으로 나왔던 클로드 레인즈가 다시 버그만과 공연했다. 러닝타임 101분.

 

 

   참고로 이 영화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의 의상이 계속 바뀌는데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1950)'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1952)' '로마의 휴일(1954)' '사브리나(1955)' '스팅(1973)' 등에서 아카데미 의상디자인상을 여덟 차례 수상한 에디트 헤드(Edith Head, 1897~1981)가 맡았다.

   이 영화의 오픈 크레디트가 끝나면 "1946년 4월24일 오후 3시20분, 플로리다 마이애미"라는 타이틀이 뜬다. 그러나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의 마이애미'라는 정보일 뿐 줄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히치콕 감독은 이와 똑같은 시간과 날짜를 '사이코(Psycho·1960)'에서도 사용했다.   

   이어서 장면은 플로리다 법정. 존 휴버먼이 나치 독일의 전범으로 징역형 선고를 받는다. 법정에 참석했던 그의 딸 앨리시아 휴버먼(잉그리드 버그만)이 아버지의 일을 잊기 위해 파티를 연다. 파티에 온 미국의 첩보원인 T.R. 데블린(캐리 그랜트)이 그녀에게 브라질로 이동해 간 나치의 조직을 찾아내기 위해 리우 데 자네이루로 갈 것을 종용하는데….

   앨리시아가 협조하기를 거절하자 데블린은 그녀가 아버지와 다투면서 '미국을 사랑한다'고 부르짖는 대화가 녹음된 LP레코드판을 틀어준다. 아마 당시에 녹음재생 방법은 레코드판뿐이었던 것 같다. 이때 뼈있는 말을 내뱉는 앨리시아. "한손에는 깃발을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도둑질을 하는 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애국심이 아닌가요?…."

  

 

리우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데블린은 앨리시아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독캡슐을 먹고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

   도착 후 본부에서의 지시를 기다리는 동안 데블린은 정작 앨리시아의 과거 때문에 착잡한 심경이지만 그녀와 열애에 빠진다.

   이때 둘의 키스 장면은 히치콕 영화 중에서 '가장 통정적(通情的)이고 에로틱한 키스 장면'으로 회자된다. 당시 '3초 이상의 키스를 금지'하는 심의 규정 때문에 이를 교묘하게 피해가며 음식과 일상에 대한 사소한 대화를 속삭이고 전화도 받으면서 2분30초 동안 끌어간 이 장면은 강한 격정적인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는 모범적인 트릭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한때 세바스천이 그녀와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데블린.

   데블린은 앨리시아를 만나 짐짓 냉정한 태도를 꾸미고 그녀의 임무를 알려준다. 이에 앨리시아는 데블린이 다만 자기 직업상 목적 성취를 위해 그녀를 사랑한 척 했을 뿐이라고 믿고 보란듯이 이 미션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승마클럽에서 세바스천을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주선한다. 이때 세바스천은 그녀를 즉각 알아보고 레스토랑에 초대하여 "항상 다시 만나게 될 줄 알고 있었다"며 크게 기뻐한다.

   세바스천은 앨리시아를 다음날 그의 집 만찬에 초대하는데 거기에는 몇몇 사업상 지인들만 모이는 극비의 자리였다.

   데블린과 미국 정보국장인 폴 프레스콧(루이스 켈헌)은 앨리시아에게 세바스천 주위 사람들의 이름과 국적 등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고 그녀가 파티에 사용할 고급 목걸이까지 준다.

  

 

다음날 세바스천의 집으로 간 앨리시아는 세바스천의 어머니 안나(레오폴딘 콘스탄틴)와 먼저 맞닥뜨리는데 그녀는 살갑기는커녕 냉랭하게 대한다.

   그런데 만찬석상에서 앨리시아는 한 손님이 와인병을 쑤석거리며 급히 방에서 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어디를 갔다 왔는지 그 신사는 만찬이 끝나서야 돌아와서 사과를 하고는 피곤해서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황급히 떠난다.

   이때 나치 그룹의 다른 사람이 굳이 그를 바래다 주겠다고 나서는데, 그 신사는 곧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다음날 경마장에서 데블린을 만난 앨리시아는 만찬에 참석한 인물들에 관한 정보를 보고한 후 "세바스천의 이름을 내가 상대할 친구 명단에 포함시켜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빨리 가까워졌나!"하고 빈정거리는 데블린.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바가 아닌가요?"하고 냉정하게 쏘아붙이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앨리시아.

   이때 이들을 계속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던 세바스천이 그녀에게 다가와 혹시 데블린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슬쩍 물어보는데….

   그 다음날 미정보국장실에 나타난 앨리시아가 세바스천이 청혼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음 지시를 받고자 왔다고 말한다. 프레스콧 국장이 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데블린에게 의견을 묻자 그는 대뜸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설마 하고 기대했던 사랑하는 데블린의 냉담한 반응에 깊은 실망감을 안고 드디어 세바스천과 결혼하는 앨리시아. 그러나 세바스천의 어머니는 이 결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앨리시아가 데블린을 만나 남편 세바스천이 자기에게 준 집 열쇠뭉치에 포도주 보관 창고 열쇠만 없다고 알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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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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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31
9208
2024-02-29
'사랑할 때와 죽을 때'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끝)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지난 호에 이어)  
   그 후 1942년까지 컬럼비아사에서 반나치 영화를 제작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잠깐 독일로 갔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사에서 1950년대(1952~1959)에 주옥 같은 멜로드라마를 제작함으로서 당시 유행하던 가족 멜로드라마 제작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 중 걸작으로 평가되는 4편의 영화는 '위대한 망령(Magnificent Obsession•1954)', '천국이 허용한 모든 것(All That Heaven Allows•1955)', '바람에 쓴 편지(Written on the Wind•1956)',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1958)' 이다. 
   특히 '슬픔은 그대 가슴에(Imitation of Life•1959)'는 셔크 감독의 "왕관에 박힌 보석"으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당시 유니버설사에 노다지를 안겨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고향인 독일로 돌아간 후 영화에서 손을 떼고 스위스의 루가노에서 30년 가까이 여생을 보내다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존 가빈(John Gavin, 1931~2018)은 친구의 권유로 유니버설사에서 스크린 테스트를 받고, 193㎝의 건장한 체구에 남성적이고 잘 생긴 점이 '제2의 록 허드슨'으로 낙점 받아 1956년 데뷔했다. 그가 첫 주연하여 스타덤에 올랐던 영화가 바로 '사랑할 때와…'였다. 
   그리고 다음 해 '슬픔은 그대 가슴에(삶의 모방)' 출연 이후 그의 전성기인 1960년에 줄리우스 시저 역으로 나온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 도리스 데이와 공연한 '누군가 노리고 있다(Midnight Lace)' 등에 연거푸 출연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경제학사(經濟學史)를 전공하였으며 재학 중 해군 ROTC를 수료한 후, 4년의 군복무 기간 중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1951년부터 종전 때인 1953년까지 미해군 '프린스턴' 함대 소속 공군 정보장교로 근무했다. 
   그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 능통하여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1981~1986년 간 멕시코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 1971~1973년 간 미국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배우로서의 명성만큼이나 사업가로서의 수완이 남달랐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부인은 콘스탄스 타워스(Constance Towers•90)인데, 존 웨인, 윌리엄 홀든 주연의 '기병대(The Horse Soldiers•1959)'에서 한나 헌트 양으로 나와 우리와도 안면을 튼 배우이다. 타워스나 가빈 모두 두 번째 결혼이었고, 자녀도 모두 첫 번째 배우자로부터 2명씩 데리고 온 결혼이었다.

 

 

   릴로 풀버(Lilo Pulver•94)의 본명은 리젤로테 풀버(Liselotte Pulver)로 주로 남자 같은 여자 역으로 많이 출연한 스위스 베른 출신 배우. 그러나 그녀는 항상 얼굴에 따뜻하고 즐거운 웃음을 머금고 있는 배우로 잘 알려졌다.
   음악감독 로자 미클로시(Rozsa Miklos, 1907~1995)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그레고리 펙,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 극중의 반복되는 오셀로 역에 급기야는 자신도 질투의 화신이 되어 무의식 속에서 한 여인을 살해하게 되는 로널드 콜맨 주연, 조지 쿠커 감독의 '이중인생(A Double Life•1947)'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 허(Ben-Hur•1959)' 등의 음악을 맡아 아카데미 음악상을 3번이나 수상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의 유명한 작곡가이다. 

 

 

   여기서 게슈타포 장교 역으로 잠깐 나오긴 했지만 클라우스 킨스키(Klaus Kinski, 1926~1991)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1979)'에서 주연했던 나스타샤 킨스키(63)의 아버지다. 폴란드 조포트 태생 독일 배우로, 튀어나올 듯 부리부리한 눈, 곧잘 삐뚤게 다문 입매에 냉소를 흘리던 그의 이미지는 악역의 대명사처럼 보였다. 
   '닥터 지바고(1965)'에서 굴라크로 돌아가는 기차 속에서 만난 냉소적인 무정부주의자 죄수 역, '속(續) 황야의 무법자(1965)'에서 리 반 클리프에게 고초를 겪다 죽임을 당하는 악당 역 정도가 비교적 알려진 작품들. 
   킨스키의 성장기는 불우하기 짝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 17세의 나이에 독일군에 징집됐던 그는 다음해 1944년 네덜란드에서 전투 개시 이틀 만에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지냈지만, 독일로 돌아왔을 때는 가족 대부분이 죽고 사라진 뒤였다. 갈 곳 없던 그는 연극무대에 올랐고, 터뜨릴 곳 없는 울분의 출구와 같은 그곳에서 광포한 카리스마와 그만큼 사나운 성격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드디어 어렸을 때 동고동락한 인연이 있던 베르너 헤르초크(Werner Herzog•81) 감독의 총애로 발탁되어, 인간의 욕망과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아귀레, 신의 분노(Agurre, the Wrath of God•1972)' 등 5편의 영화에 주역으로 등장함으로서, 그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와 같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스크린에 남게 된다. 
   그는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를 주연하고 연출한 '파가니니(1989)'를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 라구니타스에서 심장마비로 6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태평양에 뿌려졌다. 
   세 번 결혼하여 각각 한 명씩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폴라, 나스타샤 등 딸 둘은 아버지를 돌보긴 했지만 정작 장례식에는 막내인 아들 니콜라이만 참석했다. 안타깝게도 자식들이 부정(父情)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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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사랑할 때와 죽을 때'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3)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지난 호에 이어)
   다음날 에른스트는 게슈타포의 소환장과 관련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빈딩을 찾아 간다. 밤새도록 술 마시고 여자를 껴안고 철야 파티를 하던 빈딩이 역시 반갑게는 맞이하는데, 피아노를 치고 있던 강제집단수용소장 까까머리 하이니(쿠르트 마이젤)가 술에 취해 피아노 위에 성냥개피를 장작더미처럼 쌓아놓고 그 위에 보드카 술을 붓고는 불을 지른 다음 가혹한 고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게 아닌가. "유대인 신세는 이런 거야! 이렇게 불태워 버리는 거라구! 음! 핫핫핫…."
   실망감을 안고 나온 에른스트는 불안에 떨면서 엘리자베스를 대신해 게슈타포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는데, 거기서 뜻밖에 게슈타포 장교(클라우스 킨스키)로부터 장인인 크루제 박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담배상자에 넣은 유골을 전달받는다.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먼저 요셉을 만나 상의한다. 그 사이에 폴만 교수가 체포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성당 묘지에 크루제 박사의 유골함을 묻는다. 엘리자베스가 도착했을 때 성당에서는 아기의 세례식이 거행되고 있어 눈치채지 못한다. 
   파괴된 공장 때문에 3일 간 일을 쉬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 사이 사랑스럽고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에 방 한 칸을 마련한다. 딸같이 대해주는 주인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저녁 식사 때 엘리자베스에게 장인의 죽음을 알리는 에른스트. 오래된 고급 와인을 앞에 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엘리자베스. 에른스트는 그녀를 위로한다. 

 

 

   다음날 휴가 연장을 신청하지만 오히려 즉각 귀대하라는 명령을 받는 에른스트. 엘리자베스도 직장에서 마찬가지로 연장거절을 당하는데…. 
   이제 휴가 마지막 날이다. 꿈같은 신혼생활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6시 기차로 떠나야 하는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에게 절대로 배웅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공습경보가 울리지만 휴가의 마지막 밤을 차마 방공호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 작은 방 안에 그냥 머문다. 이 신혼부부는 포격소리가 울릴 때마다 서로 더 꼭 껴안으며 마지막 밤을 지새운다.
   화면이 서서히 오버랩되며 이른 아침 전선으로 떠나는 이들을 수송하는 열차를 타는 동료 군인들 속에 에른스트의 모습이 보인다. 귀대하는 날 기차역엔 유대인을 색출하려는 게슈타포의 감시망이 삼엄하다. 역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는 남편 에른스트 몰래 역에 나와 몸을 숨기고 먼발치에서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는 엘리자베스! 
   

 

드디어 경적을 울리며 전선으로 가는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창밖에 십자가가 보인다. 그러다 그녀가 아웃포커스 되면서 창틀이 십자가로 클로즈업된다. 이 순간이 그들의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연출이다. 그러나 아는 듯 모르는 듯 기차는 그렇게 떠나가고…. 
   다시 전투가 계속되는 동부 전선.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으며 퇴각하는 비참한 독일군들 속에 에른스트 그래버가 보인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전선을 벗어나 어느 마을에 도착한 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우편물이 도착한다. 

   마을 지하실에서 생포한 민간인 포로들을 헛간에 가두고 보초 임무를 맡은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가 보낸 편지를 꺼내 읽으려 한다. 
   그때 에른스트가 속한 부대가 긴급 후퇴 명령을 받게 되면서 슈타인브레너가 남아있는 민간포로들을 사살하기 위해 창고로 온다. 무의미한 살상에 진저리가 난 에른스트가 그를 제지하자 서로 간에 격한 감정과 몸싸움이 벌어진다. 결국 에른스트가 그를 사살하고는 갇혀있던 포로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미처 읽지 못했던 아내의 편지를 품에서 꺼내 읽는 에른스트. "강가에 있는 자두나무 옆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나무는 잘 자라고 있어요. 우리도 힘차게 살자고 했었죠. 우린 그러고 있어요. 제가 임신했거든요…" 엘리자베스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마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에른스트!
   그러나 그때 풀어준 민간 게릴라 한 명이 죽은 슈타인브레너의 총을 집어들고 에른스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총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미처 다 읽지도 못한 편지는 강물로 떨어진다. 다리 위에 쓰러진 에른스트는 편지를 붙잡으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다 헤진 장갑 사이로 보이는 손가락이 애처롭다. 
   편지는 흐르는 강물 따라 떠내려가고… 에른스트의 처연한 모습만 강물에 비친다. 봄날의 자두꽃 같은 청춘은 그렇게 슬프게 지고 만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2악장(Andante con moto)"이 가슴을 찢어 놓을 듯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에른스트 그래버가 꿈꾸었던 휴가에서의 부모와의 상봉은 물거품이 되고 생사조차 모르게 될 때, 전방이나 후방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비참하게 생활하거나 죽어갈 때, 양심의 유보에 대한 그의 혼돈은 점차 진전된다. 또한 엘리자베스와의 사랑은 전쟁 중에서 인간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만큼 그에게 절대적이었으나,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그만큼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다운 삶을 조금이라도 찾는 그 순간이 그에게는 영원하다. 결국 에른스트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러시아인 포로들을 풀어주기 위해 살인광인 동료 독일군을 살해한다. 그러나 에른스트는 자신이 첫 양심에 따라 움직인 그 행동에 의해 오히려 죽게 된다. 
   요컨대 인간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아름다운 사랑과 행동하는 양심'이며, 인간의 잔인성과 무모함, 무용한 사상•종교 등과 무상함을 극복하여, 남겨진 뿌리로 싹을 돋아내는 자두나무처럼 의연히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글라스 셔크(Douglas Sirk, 1897~1987) 감독은 덴마크에서 독일로 이주한 부모 밑에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본명 한스 데틀레프 시에르크(Hans Detlef Sierck). 1937년 나치 정권 때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두 번째 부인이 유대인이라 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름을 더글라스 셔크로 바꾼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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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2)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지난 호에 이어)   

 

 

상기된 기분으로 임시숙소인 군병원으로 돌아온 에른스트에게 로이터가 새 군복도 빌려주고, 린다 플라츠에 있는 게르마니아 호텔의 비밀 나이트클럽도 소개해 준다. 
그곳은 고급 장교와 극소수 부유층만이 드나들 수 있는 비밀 클럽이지만 엘리자베스를 위해 2년치의 전투수당을 모두 쏟아 부어 로이터의 추천대로 최고급인 1937년 요하니스베르크 성 여름산(産) 와인과 푸아그라, 킹크랩 등을 주문하며 잠시 전쟁을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한 잔의 와인을 앞에 놓고 두 남녀는 건배한다. "우리 삶에서 사라져버린 모든 것들을 위하여!"라며…
그러나 이곳도 공습경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되어 호텔 지하로 대피하지만 그곳도 안전하지 않아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너도 나도 살겠다고 앞다투어 대피소를 빠져 뛰쳐 나갈 때, 에른스트는 유유자적(悠悠自適) 무너지는 셀라에서 고급 와인 두 병을 훔쳐서 맨 마지막으로 나온다. 

 

 

밖에서 그의 생사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그가 안전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고는 기뻐하며 서로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엘리자베스는 에른스트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한다. 집 창문 밖에 집단수용소 재감자(在監者)들이 길거리에서 강제 노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지만 그 속에 크루제 박사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실종으로 마음이 무거운 엘리자베스에게 에른스트가 청혼한다. 
"우리 결혼 할까요?" "비가 올 것 같아요." 동문서답을 하자 농담하지 말라며 그는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준다. "결혼하면 200마르크가 나오고 내가 죽으면 또 돈이 나온다."고….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이따위 청혼이라니! 둘은 잠깐 실랑이 하다가 이내 포옹한다. 결국 청혼을 받아들인 그녀가 말한다.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마음이 아파요!" 전시에 최전방에 있는 군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연히 마음이 아프지만, 농담이 진담이 된다고 했던가… 이들의 대화는 이 영화의 마지막 비극을 암시하기도 한다.

 

 

다음날, 로이터가 에른스트의 결혼 준비를 돕는데, 베처는 귀대 준비를 하면서 시큰둥해서 말한다. "드디어 아내를 찾았는데 100파운드나 살이 빠져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그러고는 병영으로 떠난다. 
결혼신고 사무실. 에른스트는 결혼 신고에 앞서 엘리자베스가 크루제 박사의 딸이란 게 탄로나면 그녀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만일 모자를 내려놓으면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고 도망치는 것으로 약정한다. 
그러나 결혼 신고가 원만히 이루어져 서명을 하기 위해 모자를 벗어 탁자 위에 놓는 바람에 그녀가 사무실 밖으로 도망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신혼부부는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세상 밖 모든 일들은 잊기로 하자며 친구 빈딩이 보낸 결혼 축하 샴페인으로 자축 건배를 하고 술잔을 벽으로 던져 깨트린 후 신혼 첫날밤을 보낸다. 독일인이 유럽 어디를 가든 환영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독일인을 미워하지 않는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엘리자베스!

그 다음날, 에른스트는 그의 어머니가 자기가 있는 전방에 보냈던 양말과 편지가 들어있는 소포가 고향으로 되돌아와 받게 되자 아직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한편 이런 와중에 엘리자베스는 게슈타포로부터 내일 오후 4시까지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받게 되어 희비가 교차되는데…. 
그녀의 구명(救命)을 위해 에른스트는 폭격 맞은 얀 플라츠 시 박물관에 숨어있다는 옛 스승인 폴만 교수(원작자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카메오로 출연)를 찾아간다. 그러나 폴만 교수는 자기는 감시 받고 있다며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을 때 다시 찾아오라고 부탁하며, 아까 올 때 만났던 노동자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더라고 얘기하라고 주문한다. 
그때 또 공습경보가 울린다. 이번에는 공장을 폭격하는 대공습이라는 한 노동자의 얘기에 에른스트는 폭격이 퍼붓는 가운데 엘리자베스가 일하고 있는 군수공장으로 달려간다. 공장은 이미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한 구조대원이 폭격 전에 다른 사고가 있어 직원들을 모두 일찍 집으로 돌려보냈다며 집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두 사람이 살던 집도 폭격을 맞아 아수라장이다. 에른스트는 불타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 가방, 이불과 옷가지 등 그리고 화분과 크루제 박사 사진액자까지 챙겨갖고 나온다.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가 걱정되어 안절부절이지만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인한 둘은 폴만 교수가 숨어있는 시 박물관에서 함께 밤을 보낸다. 
폴만 교수는 에른스트에게 같이 숨어 지내는 유대인 요셉을 소개한다. 게슈타포의 소환장을 검토해 본 요셉은 정보를 캐내기 위한 목적이며 그래서 본인이 출두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에른스트는 10일 후에 휴가가 끝나면 아내 혼자 남아야 하니 친위대 친구 빈딩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며 떠나려 하는데…. 
이때 폴만 교수가 "복귀 안 할 생각도 있는가?"하고 묻는다. 요셉은 탈영은 총살이고 아내와 같이 도망치는 건 힘들 거라고 말한다. 또 폴만 교수도 부모님이 살아있다면 그들을 이용해서 너희들을 찾을 거고 숨겨줘도 사형이니까 탈영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에른스트는 믿을 게 아무것도 없다며 폴만 선생에게 묻는다. "교수님, 이 세상에 아직 믿을 게 남았습니까?" "믿을 만한 게 있지." "뭐죠?" "하느님." "아직도 하느님을 믿으세요?" "더더욱 믿지." "의심 같은 건 없으세요?" "당연히 있지. 하지만 시험 당하지 않으면 믿음도 없는 거라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세요?" "이건 하느님이 뜻하신 일이 아니야. 우리가 저지른 실수이지."
은사 폴만의 신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과 요셉의 모든 독일인을 경멸하지는 않는 지각 있는 결단력에 감동을 받아 그 자신의 공포스런 전쟁에 대한 책임감에 회의를 품게 되는 에른스트. "독일은 이 전쟁에서 패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세계가 불행해진다"고 말하는 폴만 교수. 결국 '인간이 선택하는 일은 신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요셉은 유사시 엘리자베스를 구난해 줄 것을 약속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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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1)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2022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가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에 의해 리바이벌 되었다. 이는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1929년에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리메이크된 것이다. 
   이 원작을 맨 처음 영화화한 작품이 1930년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동명의 흑백영화였다. 요컨대 정작 독일작가의 작품을 독일감독에 의해 제작되는 데 거의 1세기가 걸린 셈이다.[註: 1930년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본보 390회(2020.10.9) 참조]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또 1954년에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쓴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라는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도 동명으로 영화화 되었다. 
   1958년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사 배급. 시네마스코프 컬러 작품. 감독 더글라스 셔크. 출연 존 가빈, 릴로 풀버, 키난 윈, 클라우스 킨스키 등. 러닝타임 132분.
 

 

 

 화사한 자두나무 꽃이 한잎 두잎 떨어지더니 어느새 흰 눈이 흩날리며 눈이 쌓이기 시작하고 퇴각하는 군인들의 처참한 모습이 화면으로 들어온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4년 동부 러시아의 독일 전선. 패색이 짙어 동부전선으로부터 퇴각하는 독일군들이 마을에 도착해 인원 점검을 해보지만 많은 병사들이 실종된 상태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눈 덮인 들판에, 얼어붙었던 눈이 녹으면서 질퍽거리는 진흙 바닥에서 동료의 시체들이 발견된다.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어느 병사가 말한다. "눈이 녹고 시체가 발견되면 봄이 온다는 거지." 
   진흙바닥의 눈 녹은 물은 마치 시체가 흘리고 있는 눈물처럼 보이나 병사들의 가슴에는 그런 낭만적 감정이 전혀 없다.

 

 

   마을에 숨어 있던 러시아 민간인 4명을 게릴라 혐의로 체포한 독일군들은 피에 굶주린 친위대 출신 살인광 슈타인브레너(벤크트 린드스트롬,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 배우)와 신병 허쉬랜드(짐 허튼, 1980년 영화 '보통사람들'에서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티머시 허튼의 아버지)로 하여금 처형토록 한다. 
   그 보상으로 구하기 힘든 보드카가 나오지만 젊고 순수한 허쉬랜드는 자신의 살인적 행동에 심리적인 갈등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를 본 에른스트 그래버(존 가빈)는 착잡해 하지만 중대장은 허쉬랜드의 죽음을 사고 처리하면서 입막음을 하기 위해 얼른 휴가를 떠나라고 말한다. 기차역에서는 휴가병들에게 식료품을 나누어주고 있다. 후방에 있는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얄팍한 위장선전 행위에 불과하다. 
   에른스트는 2년 만에 첫 휴가를 얻어 고향을 찾아온다. 그러나 고향 마을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온통 폐허로 변했고 부모님의 행방 또한 묘연하다. 부모님의 행적을 찾기 위해 우체국에 들렀다가, 몸무게가 200파운드 나가는 아내를 찾고 있던 헤르만 베처(돈 디포르)를 만난다. 베처는 에른스트에게 자기가 있는 의무대에서 같이 지내자고 한다. 

 

 

   그때 의사 얘기가 나오자 어머니의 주치의였던 크루제 박사 생각이 나서 에른스트는 그의 딸 엘리자베스 크루제(릴로 풀버)를 만나러 간다. 
   엘리자베스는 가족과 헤어져서 혼자 피난민들과 함께 방 한 칸을 얻어 불안한 나날을 보내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 전쟁이 연합군에게 질 것"이라는 말 한마디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며 혹시 에른스트가 아버지의 소식을 아는가 해서 반겼는데… 그녀는 저윽이 실망하는 눈치다.
   그들이 헤어지려 할 즈음 공습경보가 울린다. 그러나 그녀는 태연히 키우던 화분에 물을 주면서 이것이 그나마 자유를 오롯이 누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대피하지 않는데, 에른스트가 설득하여 지하방공호로 함께 대피한다. 거기서 에른스트는 많은 이웃들이 죽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비탄에 젖어 있어 전쟁의 또 다른 참상을 목격한다. 엘리자베스가 에른스트에게 말한다. "느껴져요? 공포예요…." 

 

 

    방공호에서 나와 헤어지면서 에른스트가 전선에서 받은 식료품을 주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화를 내며 거절한다. 전쟁 중에 귀한 식료품을 주는 것은 곧 자신의 몸을 대가로 요구하는 것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이에 화가 난 에른스트는 길거리의 여자에게 그 식료품을 줘버리고 숙소인 막사로 돌아온다. 
   의무대에서 베처와 통풍 치료를 받고 있는 로이터(키난 윈)를 만난다. 로이터는 에른스트에게 3주 간의 휴가는 인생으로 따지면 10년과 같다며 휴가를 그의 생애 마지막인 것처럼 보내라고 권고하는데….
   다음날 에른스트는 부모님을 찾을 단서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이며 지금 나치 장교인 친구 오스카 빈딩(대이얼 데이비드, 1976년 영화 '록키'에서 세계적 권투시합 프로모터 역으로 나온 배우로, 별명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을 만난다. 
   빈딩은 에른스트를 자기 차에 태우고 그의 호화저택으로 데려가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라일락향을 듬뿍 뿌린 욕조에서 더운물 목욕까지 하게 한다. 그리고 빈딩은 부모님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하고, 그에게 낙제점수를 줬던 은사 폴만 교수를 투옥시키기도 했다며 폼을 잡는다.
 

 

 친구의 호화 저택에서 후한 대접을 받긴 했으나 마음은 씁쓰름한 채 나온 에른스트는 폐허가 된 건물벽에 엘리자베스가 남긴 메모를 보고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엘리자베스는 자두꽃 향기를 맡으며 봄이 온 것 같다고 말하고, 간밤에 그에게 무례하게 대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두 남녀는 쑥스럽긴 하지만 강가로 산책을 나간다. 
   하늘에 뜬 첫 별을 보자 엘리자베스가 기뻐 소리친다. 에른스트가 "무슨 소원을 빌어요?"하고 묻자 그녀는 "저게 폭격기가 아니기를!"하고 대답한다. 두 남녀는 강가에서 폭격으로 나무의 절반은 죽었지만 절반은 꽃이 핀 자두나무를 보며 우리도 저 나무처럼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면서 첫 키스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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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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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8
'해바라기(Sunflower)' (하)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I)
평생 전쟁터에 간 남편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한 여인의 순애보! 

  
(지난 호에 이어)
 드디어 조반나는 마네킹 공장 노동자 에토레(게르마노 롱고)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민다. 이들 사이에서 아들이 하나 태어난다. [註: 이 아들은 실제 소피아 로렌과 카를로 폰티 부부 사이에서 1969년 12월29일 태어난 장남 카를로 폰티 주니어로 사상 최연소 배우인 셈.]
   어떠한 이별이든 떠난 사람만 괴로운 건 아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남편의 사진을 기차역에 떨어뜨리고 가버린 조반나는 안토니오의 가슴에 깊은 그리움을 남기고, 그 그리움은 향수(鄕愁)가 되어 안토니오는 결국 이탈리아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안토니오가 밀라노에 도착해서 여러 번 전화를 하지만 조반나는 만나주지 않는다. 결국 재회를 승락한 그녀는 안토니오가 결혼 선물로 주었던 귀걸이를 찾아 단장하고 비바람 천둥을 헤치며 찾아온 안토니오와 하룻밤을 지낸다. 
   안토니오는 조반나에게 러시아로 같이 가자고 제의한다. 전쟁이 사람을 변화시켰지만 죽음에서 헤어나 새 아내와의 새 삶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설명하면서…. 
   오직 일편단심 태양만을 바라보며 피어나는 해바라기처럼 평생을 오직 한 남자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기구한 한 여인의 순애보! 그러나 두 사람의 딸과 아들을 위해 각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 운명이다. 
 

 

 

 안토니오는 떠나기 전에 조반나에게 털목도리를 선물한다. 이는 둘의 결혼 때 약속한 것이었다. 이 어색한 어둠 속의 재회에서 아무리 서로를 으스러지도록 안아보아도 그 포옹과 키스가 다시 둘을 갈라놓는 현실의 이별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기에 둘의 입맞춤이 그토록 길었나 보다!
   플랫폼을 미끄러지듯 떠나가는 기차. 조반나는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흐느끼는데… 기차는 안토니오를 싣고 조반나에게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영원히…. 

 

 

   이 영화의 음악감독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 1924~1994)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1961)'의 주제곡인 '문 리버'의 작곡가로 유명하며, '하타리(1962)'에 나오는 '아기코끼리의 걸음마'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샤레이드(Charade•1963)'와 '핑크 팬더(Pink Panther•1964)'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1967)' 등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하여 네 번의 아카데미 음악상과 열 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곡가이다. 
   특히 '해바라기'에서 전편을 통해 사랑과 이별과 추억을 아우르는 주제곡이 악기와 템포를 바꾸어가며 감동적이고 슬프고도 아름답게 연주된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Marcello Mastroianni, 1924~1996)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1960)'과 '8½(1963)'에 출연하여 국제적인 배우로 발돋움한다. 
   그가 췌장암으로 72세로 죽었을 때 스웨덴 출신 글래머 배우 아니타 에크베리와 공동 출연한 '달콤한 인생'에 소개됐던 로마의 트레비 분수(Trevi Fountain)를 상징적으로 멈추고 검은 휘장을 둘러쳐 조의를 표할 만큼 한 때를 풍미했던 유명한 이탈리아 배우이다. [註: 007시리즈 2탄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1963)'에서 제임스 본드의 동료 알리 케림 베이가 러시아 비밀요원 크릴렌쿠를 저격하는 장면이 있다. 건물 벽에는 대형 영화 포스터가 그려져 있는데 크릴렌쿠가 그 포스터에 있는 여자의 벌어진 입술 부분에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도망친다. 이 포스터가 봅 호프와 공연한 아니타 에크베리(Anita Ekberg, 1931~2015)의 '이 몸이 브와나(Call Me Bwana, 1963)'이다. 이때 본드는 "빚을 한방에 갚는군. 여자가 입만 닫았어도…"라고 익살스럽게 내뱉는다. ] 

 

 

   그의 마지막 영화는 포르투갈 출신 거장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Manoel de Oliveira, 1908~2015) 감독의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Voyage to the Beginning of the World•1997)'으로 사후에 개봉되었다.
   미남형인 그는 여성 편력으로 더 유명했는데, '연인들의 장소(A Place for Lovers•1968)'에서 공연한 페이 더너웨이(Faye Dunaway•83)와 재혼할 뻔 했고, 70년대에 네 번이나 공연한 카트리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80) 사이에 프랑스 배우이자 가수인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51)를 낳기도 했다. 
   참고로 둘이 공연한 4편의 영화는 It Only Happens to Others (1971), Liza (원제 La Cagna, 1972), A Slightly Pregnant Man (1973) 그리고 Don't Touch the White Woman! (1974)이다.
   그 외에도 로렌 허튼, 어슐라 안드레스, 아누크 에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등과 염문을 뿌리다가 마지막에 작가이며 영화감독인 안나 마리아 타토(Anna Maria Tato, 1940~2022)와 죽을 때까지 함께 했다.
   루드밀라 사벨례바(Ludmila Mikhaylovna Savelyeva•81)는 러시아 출신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명감독의 '전쟁과 평화(1967)'에서 주인공 나탸샤 로스토바 역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함으로써 일약 이름을 날린 러시아 배우이다. 
   "해바라기"를 통해 고전 영화는 역시 극장문을 나설 때 마음속에 담아 가지고 갈만한 그런 내용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단순히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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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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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1
'해바라기(Sunflower)' (상)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
 

평생 전쟁터에 간 남편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한 여인의 순애보!

 

 

[필자주: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려 왔다. 전쟁에서의 패전은 한 나라의 모든 '보수적 가치'를 박살낸다.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노약자들과 여성들이다. 여기에는 전쟁터나 감옥에 보낸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의 안타까움이 있는가 하면, 약탈과 강간의 희생자 또는 오명을 남기는 성적인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고, 고아가 된 아이들의 아픔도 있다. 필자는 이러한 애절한 슬픔과 한(恨)이 담긴 15편의 작품들을 선정하여 '전쟁과 여인의 운명'이라는 주제로 묶어 소개한다.]

 

   '두 여인(1960)'을 제작한 3총사, 즉 각본을 쓴 체사레 자바티니(Cesare Zavattini, 1902~1989), 제작을 맡은, 소피아 로렌의 남편인 카를로 폰티(Carlo Ponti, 1912~2007), 그리고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1901~1974) 감독이 그후 10년 만에 다시 뭉쳐 만든 영화가 '해바라기(Sunflower)'이다. 
   그러나 3총사도 세월이 흘렀음인지 전성기의 네오 리얼리즘보다는 멜로 드라마쪽으로 흘러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 아마 눈물샘을 가장 많이 자극했던 영화였지 싶다. 거기에 헨리 맨시니의 음악이 큰 몫을 했다.

 

 

   1970년 이탈리아 컬러 작품. 러닝타임 101분. 영화 '해바라기'는 정치성을 완전 배제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에서 촬영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념과 체제가 대립했던 당시 우리나라에는 수입이 금지되어 10년쯤 지난 뒤에야 비로소 개봉되었다.
   우크라이나 대지 위에 흐드러지게 핀 해바라기. 애수에 젖은 헨리 맨시니 작곡의 주제가.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해바라기'는 전쟁에 농락 당한 남녀를 그린 고급 멜로드라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카메라가 러시아에서 실종된 이탈리아 병사를 찾는 전단지가 빼곡히 붙어있는 벽을 천천히 훑으며 시작된다. 마치 우리나라의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12일 전에 결혼한 조반나(소피아 로렌)는 신혼의 달콤함을 알기도 전에, 전장에 나가지 않기 위해 정신이상자로 위장했던 남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결국 발각되어 러시아 최전방 전선으로 떠나보내게 된다. 기차역에서 슬픔과 연민이 교차되는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숱한 해가 지나고 어느 상이군인의 외침으로 전쟁이 끝났음을 안 조반나는 귀환병들이 탄 열차를 뒤지며 남편을 찾지만 그리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소식을 모르던 남편이 전선에서 실종됐다는 통지서를 전달받고 조반나는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안토니오가 소속된 부대에서 제대한 한 군인(글라우코 오노라토)으로부터 전선에서 퇴각하던 중 눈 속에 쓰러진 안토니오를 남겨두고 혼자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조반나! 
   남편이 보낸 편지와 함께 동봉된 사진 뒤에 적힌 사랑한다는 짧은 메모를 보며 살아있음을 굳게 믿는 조반나는 남편의 사진 한장 달랑 들고 멀고 먼 땅 러시아로 향하는데….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까지 계속되는 그녀의 여행은 고달프기만 하다. 그녀가 지나가는 우크라이나의 광활한 들판에는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숲을 이루고 있는 해바라기 밭에서 일하는 현지 러시아 여성(나디아 세레드니첸코)이 조반나에게 말한다. "해바라기 한 그루마다 이탈리아 군인 한 사람씩 묻혀 있어요. 독일 나치가 포로들에게 자기가 묻힐 구덩이를 스스로 파게 했으니까요. 그리고 수많은 러시아 군인과 농민도…."
   먼길을 돌아 간신히 묻고 물어 남편이 살고 있는 집을 찾는 조반나. 거기에는 젊고 아리따운 마샤(루드밀라 사벨례바)라는 러시아 여인이 빨래를 걷고 있다. 
   마샤는 오래전 겨울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죽어가는 남편을 구해주었던 생명의 은인으로 그와 결혼하여 지금 예쁜 딸아이까지 낳아 살고 있는 여자였다.    조반나는 이 젊고 아름다운 러시아 여인 앞에서 남편을 찾아온 자신이 오히려 늙고 초라하게 느껴짐을 어쩔 수 없다.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자 예쁜 딸까지 둔 남편을 놓아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조반나의 찢어질 듯한 심정이 소피아 로렌의 표정연기에 잘 나타나 있다.
   조반나는 마샤와 함께 안토니오를 마중하기 위해 플랫폼으로 나간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남편의 모습이 보이기를 기다리는 조반나 앞에 초췌한 러시아 노동자로 변한 초로(初老)의 안토니오가 기차에서 발을 조금 절뚝거리며 내린다. 
   수년간 그토록 만나보기를 갈망했던 남편이 정작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고, 손 한번 못잡아보고 황급히 그를 피해 그냥 기차에 뛰어올라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조반나의 비참하고 불우한 운명! 그리고 그 기차 안에서 회한의 오열을 터뜨린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다시 이탈리아 밀라노로 돌아온 조반나는 남편을 잊고 살기로 작정하고 방마다 걸어 놓은 안토니오의 사진액자, 그리고 옷가지와 편지 등을 모두 방바닥에 내동댕이쳐 부수고 찢고 발로 짓밟는다. 다시는 생각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 조반나의 격한 행동을 통해 그녀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그리워 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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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4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끝)

WWII 배경 영화 (X)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서스펜스 전쟁영화 

 

 

 

 

(지난 호에 이어)  

제5장: 거대한 얼굴의 복수(Revenge of the Giant Face) ― '조국의 자랑' 갈라 시사회의 밤(Night of 'Naton's Pride' premiere) 
제5장의 첫 장면에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1947~2016)가 작곡하고 부르는 "Cat People (Putting Out the Fire)"가 흐른다. 복수극 직전의 새빨간 투피스를 입고 있는 쇼산나의 모습과 분위기에 상당히 잘 어울리는 노래다.
드디어 '조국의 자랑' 갈라 시사회에 속속 나치 고위 관리들이 모여든다. 그 속엔 괴벨스 외에 헤르만 괴링(Hermann Goring, 1893~1946), 마르틴 보어만(Martin Bormann, 1900~1945)도 보인다. [註: 이때 흐르는 음악이 Davie Allan and The Arrows가 부른 The Devil's Rumble로 영화 '악마의 천사들(Devil's Angels, 1967)'에 삽입된 곡이다.] 

 

한편 보안경비를 담당하는 란다는 브리지트와 그녀의 ‘이탈리아인’ 에스코트들에게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말을 건네는데,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난 브리지트가 등산하다가 다쳤다고 말하자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는 란다. 파리에 산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둘러대는 거짓말이 가소로웠기 때문이다. 
란다는 따로 할 얘기가 있다며 브리지트를 별실로 데려가 의자에 앉히고 술집에서 발견한 하이힐을 신어보게 한다. 사이즈가 맞는 것을 확인한 란다는 브리지트에게 달려들어 목을 졸라 그녀를 살해한다. 

 

 

그리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레인과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별명이 '작은놈'인 스미스슨 우티비크(B.J. 노백)를 체포, 연행하면서 무선으로 레인의 상관과 교섭을 벌이는 란다. [註: 무선으로 협상하는 OSS 사령관은 유명배우 하비 카이텔(Harvey Keitel)의 목소리다.] 
협상의 내용은 극장에 남아 있는 도니와 오마르에게 4명의 나치 고위 관리의 암살을 허락하는 대신, 란다의 공로(?)를 인정하여 연금을 지급하고 기소를 하지 않으며 미국 매사추세츠 주 최남단에 위치한 낸터킷 섬(Nantucket)으로 망명시키는 조건이었다. 

 

한편 극장에서 영화 상영 중, 프레드리크 촐러가 쇼산나가 있는 영사실에 들어온다. 말로 해서 그를 내쫓을 수 없다고 생각한 쇼산나는 그가 영사실 문을 잠그려고 등을 돌리는 찰나에 권총으로 쏴 죽인다. 죽은 줄로만 안 프레드리크가 신음하자 쇼산나가 확인하러 다가가는데,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뒤틀어서 쇼산나를 사살한다. [註: 이때 나오는 배경음악이 엔니오 모리코네 작곡의 '친구(Un Amico)'라는 곡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국의 자랑' 영화 속에서 연합군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레드리크의 얼굴이, 쇼산나가 사전에 편집해 두었던 쇼산나의 클로스업된 얼굴로 갑자기 바뀌며 "나치 관객은 앞으로 유대인의 손에 죽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 영화 상영 중에 미리 극장 출구마다 볼트를 연결해 관객이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조치한 마르셀은 이 장면을 신호로 스크린 뒤에 쌓아놓은 니트로 필름에 담뱃불을 붙이는데…. 

 

다른 한편 도니와 오마르는 발코니석의 히틀러에게 음료를 나르는 척 접근하여 호위병을 사살하고, 기관총을 빼앗아 히틀러와 괴벨스를 비롯하여 화염에서 도망치려고 우왕좌왕 하는 관객들에게 난사한다. [註: 이때 나오는 음악이 '켈리의 영웅들(1970)'에 삽입됐던 랄로 쉬프린 작곡의 'Tiger Tank'이다.]

 

 

 

마지막으로 란다가 레인에게서 빼앗아 히틀러 의자 근처에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극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죽는다. 
드디어 레인 일행을 실은 트럭으로 미군 관할 지역에 도착한 란다는 사전 협의대로 레인에게 투항한다. 자기 총과 칼을 돌려받은 레인은 그 자리에서 란다의 통신병을 사살하고, 스미스슨 우티비크 일병에게 두피를 벗기라고 명령한다. 
협상과 다르다고 발악하는 란다. 레인은 란다에게 “미국에서는 나치 군복을 벗고 나치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살아가겠지?”라고 묻는다. 그리고 우티비크가 란다를 붙잡고 있는 사이에 레인이 칼로 이마에 하켄크로이츠를 새기고는 “멋지지, 우티비크? 이건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이야!”라면서 영화는 끝난다. [註: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음악이 엔니오 모리코네 작곡의 'Rabbia e Tarantella'다. 이 곡은 이탈리아 영화 '알론산판(Allonsanfan, 1974)'에 삽입된 곡으로 '분노의 타란텔라(민속춤)'라는 뜻이다.]

 

 

이 영화의 제목에서 원단어인 'Inglorious'에 u를 슬쩍 끼워 넣었고 'Bastard'의 두 번째 a대신 e를 넣었다. 오타가 맞다. 제목을 굳이 의역하자면 "쪽팔린 줄 모르는 개자식들" 정도쯤 되겠다. 
그런데 '바스터즈'는 실제 존재했던 부대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의 추축군 후방에서 장교와 부사관들을 위주로 잔혹하게 살해하고 일종의 검은 악마의 표식과 부대명칭이 인쇄된 카드를 살해된 시신에 올려서 심리전 요소로 쓰면서 “검은 악마들” 또는 “악마 여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졌다. 1944년 해산되었고, 1983년경 다수의 안건들의 기밀해제와 함께 특수부대로 인정되어 참전용사들과 전사자들은 동등한 의전과 예우를 부여 받는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특수요원 유대계 미국인 8명이라고 하나, 알도 레인 중위와 아치 히콕스 소위는 유대인이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60) 감독의 예측 불가능한 특급 오락물이지만 작품 중 연합군과 독일군의 제복이나 장비, 병기 등의 재현, 영화포스터 등 소품에 이르기까지 고증 수준은 매우 높다.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의 영화사(史) 공부도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그래픽 자막 등을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 자상함을 보인다. 
그가 만든 2015년 영화 '헤이트풀 8'이 겹쳐 보이면서 마치 '폭력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 거칠고 잔인한 장면이 많지만 잘 만든 영화다. 특히 크리스토프 발츠의 연기가 빛을 발한 영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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