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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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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부동산캐나다 칼럼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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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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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마음에도 청소를


                                                                             
 봄이 오면 토론토는 영락없는 쓰레기 천국으로 변한다. 흰 눈에 덮여 마냥 깨끗해 보이던 야트막한 언덕과 잔디가 눈이 녹으면서 초록빛이 돌기가 무섭게 쓰레기들이 얼굴을 내민다.    


 토론토 외곽에 있는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던 중 ‘지역사회 청소의 날’에 관한 안내문을 받았다. 다 읽기도 전에 마음이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정돈된 깨끗한 환경 속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는가 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시간에 맞춰 지정 장소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이미 공원 쓰레기를 줍고 있다. 그냥 각자 쓰레기를 주우면 되는 건가, 그렇다면 어서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나는 괜히 무언가 허전해서 멍하니 서 있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기에 그럴까?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은 허전함, 그런데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공원 한 가운데 자그마한 천막을 쳐놓고 자원 봉사자들이 장갑과 쓰레기 봉투를 나누어주고 있다. 비닐로 된 쓰레기 봉투는 생각보다 커서 바닥에 대고 들어보니 거의 내 가슴까지 올라온다. 다섯 동네가 동시에 치르는 행사에 봉투 1,000개가 준비되었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책로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은 우리가 거의 매일 산책을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길 양옆으로 이어진 풀섶 곳곳에 플라스틱 병과 종이컵, 과자 껍질 등 일회용품들이 숨어 있다. 저만치서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줍고 있는데 마치 재미있는 놀이나 하듯 밝은 표정들이다. 


 한 시간쯤 지나니 봉투 하나가 다 차서 지정 장소에 갖다 두고 이번에는 강 쪽으로 올라갔다. 강이 굽어지는 으슥한 곳에 쓰레기들이 잔뜩 모여있다. 봉투가 모자랄 것 같아 우선 순위를 매겨보았다. 종이나 천 조각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썩겠지만 비닐과 플라스틱이 분해되려면 100년이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한국에서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썩지 않는 것부터 줍기로 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지정된 장소에 버리는 습관을 교육시키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면 일부러 시간과 인원을 들여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캐나다에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육과정에 도덕과목이 따로 없다는데 환경 교육은 어떻게 하는 걸까, 부모의 역량에 의존할 뿐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백발의 노부부가 쓰레기를 줍고 있다. 그들 얼굴에 번지는 편안한 미소를 보자 솟아나던 의구심도 잠시 잊고 청소에 열중하게 된다.


 보이스카우트 아이들이 새로 조성된 언덕바지에 묘목을 심고 있다. 물 차가 와서 물을 공급하고 아이들은 자신이 심은 나무에 물을 주며 땀을 식힌다. 제복을 입고 활동하는 아이들을 보고서야 나는 아까 공원에서 처음에 느꼈던 허전함의 정체를 생각해내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활동을 할 때면 늘 시작이 거창했다. 현수막이 걸리고 확성기가 동원되고 지역 인사들의 격려말씀에 이어 구호가 담긴 어깨띠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왁자지껄하게 흩어지며 활동을 시작하면 주최측에서는 실적을 보고하기 위해 현장을 따라 다니며 사진을 찍던, 그런 형식을 갖춘 행사가 내 뇌속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절차가 없어서 그렇게 허전했나 보다.


 누가 어디서 얼마만큼 일하는지 아무도 모르게 각자 흩어져 묵묵히 땀 흘리는 광경은 아름다웠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라거나 실적을 위한 요란한 행사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를 호소하는 주최측은 일회용품이 아닌 천으로 만든 쇼핑백을 참가자 모두에게 소리 없이 나눠주고 있었다. 


 봄이 들려주는 새 생명의 행진곡을 들으며 내 마음도 청소를 한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2015-03-26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kim3000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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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잠시 만난 젊은 봄빛

 

 


                                                                 
세탁기가 돌고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술렁거림을 지켜보고 있다. 젖은 옷들이 서로 붙어 엉긴 채 소용돌이친다. 놓치면 큰 일이라도 날 듯 두 팔로 바지를 부둥켜 안고 뿌연 구정물 속에서 안간 힘을 쓰는 것이 보인다. 빙빙 도는 공간에서 함께 휘둘리던 바지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바짓가랑이를 풍선처럼 부풀리더니 잔뜩 들러붙어 있던 셔츠의 가슴팍을 한쪽 바짓부리로 한 방 걷어찬다. 


 “저런!” 나는 깜짝 놀라 빨래들을 의인화시키며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생각지 못한 급습에 목 부분이 뒤로 꺾어질 듯 젖혀졌다가 뒤에서 밀려오는 물살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셔츠의 모습이 느린 영상으로 전개된다. 젖어서 더 길어진 티셔츠의 팔이 매달릴 곳이라곤 바지자락밖에 없나 보다. 권투경기에서 몸이 휠 만큼 충격적인 강타를 당하고 나서 상대방 선수의 몸을 부둥켜 안는 것으로 자신을 추스리는 장면을 닮았다. 폭력이나 피를 부르는 행동 앞에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졸였던 가슴을 풀고 슬그머니 눈을 뜨는 장면이기도 하다. 나는 아예 세탁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다란 괴물의 눈알 같아 보이는 세탁기의 둥근 유리창 바깥에서 지켜보던 나는 마치 누군가의 팔이 내 다리를 꽉 끌어안고 있는 느낌에 불편해졌다. 내게까지 전염되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끈적끈적함을 털어내려고 진저리를 치면서, 세탁기 속의 바지를 흉내 내어 한쪽 다리를 오므렸다 힘차게 뻗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꿈속에서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구속에서 몸을 빼내지 못했다. 자유롭기에는, 내가 세탁기 세상에 너무 깊숙이 관여했나 보다.


‘세탁’에서 ‘헹굼’으로 바뀌면서 빨래들 사이에도 조금 여유가 생긴다. 탁한 구정물에서 맑은 물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악스럽게 무엇엔가 매달려야 했던 셔츠의 팔들이 넉넉한 물 흐름을 따라 제풀에 풀어져 흐늘흐늘 자유롭게 유영한다. 나의 호흡도 거기에 영향을 받는지 한결 느리고 깊어진다. 소용돌이 후의 기진맥진함으로 빨래들은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는 웃음을 흘리고 있다.  

 
‘헹굼’에서 ‘탈수’로 이어진다. 헹굼보다 몇 배로 가속이 붙은 세탁기는 세상을 뒤집을 기세로 몸통을 요란스럽게 흔든다. 원심력에 몸을 내맡기고 현기증으로 의식을 놓은 듯한 건, 빨래나 지켜보는 나나 마찬가지다. 세탁기라는 세계의 중앙을 차지하고 유유자적하던 몸들이 탈수를 거치자 숨을 쉴 틈조차 없이 서로 밀착되어 가장자리로 밀려가 납작 엎드려있다. 비록 몸피를 줄여 왜소해 보이기는 해도 홀가분해진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도 함께 빤 것 같아 상쾌해진 기분에 얼른 빨래들을 세탁기에서 꺼냈다. 요즈음은 해가 좋아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지 않고 빨래대에 널어서 말린다. 하나씩 집어서 털어 너는 과정에서 나는 좋든 싫든 빨래들과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다. 서로 뒤엉켜 들러붙어있던 것들을 하나씩 떼어놓으며 때로는 묘한 쾌감을 맛보기도 한다. 


남자 팬티가 보인다. 남편 것이다. 처음 세탁기에 들어갈 때는 그렇게 큰 소리치며 한껏 부풀어 있던 것이 탈수를 마치고 나오자 어린아이의 것처럼 쪼그라든 채 내 손바닥도 넓다는 듯 오롯이 앉아있다. 나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도 그 왜소함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무력함마저 읽은 것 같아 가슴이 짠해온다. 어쩌면 그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세탁’에서 ‘헹굼’을 지나 ‘탈수’를 거치는 삶과의 투쟁에서 그의 몸 속에 지녔던 기(氣)를 죄다 빼앗겨 저리 조그맣게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부러 팽팽하게 부풀리고 싶었을 자존감이, 세월이 들이댄 바늘 끝에 흐들흐들 무너져 작아진 것을 보고 나는 어쩌자고 순간적으로라도 간지러운 희열을 느꼈던가. 지칠 줄 모르고 언제까지라도 뿜어낼 것 같던 마력이 쇠진해버린 텅 빈 공허를 목격한 느낌, 아내인 내 마음인들 편할까마는. 


안되겠다 싶어 나는 쪼그라든 팬티를 탁탁 소리가 나게 털어 허겁지겁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려 놓는다. 두 손으로 양쪽 끝을 붙잡고 펼쳐보니 생각보다 커진다. 나는 몇 번 더 털어서 바람을 넣어 한껏 부풀린 채로 조심스럽게 널어놓는다. 빨래대 위에서 아직도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는 그것은, 본래보다 더 싱싱하고 튼실한 빛을 띠고 있다. 삶의 꿈결 같던 젊은 봄빛을 잠시 만나고 나니 비로소 마음 놓고 느긋한 웃음을 내놓게 된다.  

 

2015-02-26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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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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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기억의 꽃은 피고지고

 

 

 <Away From Her>는 기억력의 파괴로 차츰 인격을 내려놓게 되는 질병인 알츠하이머를 주제로 삼은 영화다. 캐나다의 겨울을 상징하는 끝없이 펼쳐진 눈밭에서 노부부가 스키를 타며 계절을 함께 보내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부부로 정을 쌓아가는 일상을 담담한 스케치로 보여준다. 단조롭고 평범한 생활 속에 담긴 그들 삶의 모습이 지루하다기보다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아내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비정한 바람이 몰아치자 평화롭던 그림이 부분적으로 지워지면서, 기억의 꽃들은 마치 무지개를 헝클어놓은 듯 엉켜버린다. 영혼의 창을 밝히던 불들이 하나씩 꺼짐을 의식한 그녀가 자신을 전문 요양원에 맡겨 달라고 말할 때 망연히 굽어보던 남편의 눈동자를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요양원의 규정상 처음 한 달간 환자가 적응하는 기간에는 면회가 금지된다. 아내와 하루도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는 그는, 그녀의 체취만 남은 텅 빈 집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기간이 아내가 남편의 존재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밀어낼 수도 있는 시간이었음을 누군들 짐작했을까. 


 놀랍게도 아내는 요양원에서 새로운 남자와 사랑을 키운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매일 찾아가 낯설어지는 아내를 지켜보는 그의 인내가 아슬아슬 위태롭다. 자신이 살던 세계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 병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아닌 ‘환자 자신에게도 고통이고 아픔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새로 사귄 연인과 자연스럽게 일상을 함께하는 아내에게 때로는 소외감으로, 때로는 질투심으로 남편은 괴롭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아내가 좋아하던 책을 반복하여 읽어주고 이제는 퇴원한 ‘아내의 애인’을 다시 만나게끔 주선하는 남편의 초인적인 노력 앞에서도 병마는 거만한 웃음을 거두려 하지 않는다. 


  병세가 깊어진 상황에서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잠시 기억을 되찾아 “당신은 나를 버릴 수도 있었는데,” 라며 남편을 껴안는 것으로 아픈 사랑을 마무리한다. ‘당신을 만났던 첫 순간 당신의 손에서 전해지던 따스한 촉감을, 진정 내 생애 최고의 순간들이 바로 어제의 일만 같아요’ 하는 ‘Only Yesterday’ 곡이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다.  


 온 마음을 다해 서로 정을 키우고 그 못지 않은 운명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온 노부부. 아내의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진 남편의 시각으로 전하는, 젊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아릿하다. 작가는 젊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젊은 사랑’에서 노부부의 ‘묵은 정’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사랑과, 관계와, 함께 가꿔온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만큼 차분한 톤으로 한결 같은 사랑을 보여주면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 빠진 노부부의 삶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가능하면 표현을 절제한다. 


 사람이 살아가며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있는 그대로를 겸허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운명과 맞서는 강인한 의지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신적인 존재에 간절히 의지하기도 할 것이다. 의지로 운명을 꺾을 수 없다는 것쯤이야 모를 나이가 아니지만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년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했다. 


 쓸쓸함을 견디는 일, 그것이 노년이 아닌가 싶었다. 작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통이나 고독은 조바심 치거나 엄살을 부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한없이 작기만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의연하게 견디며 화해하는 길임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20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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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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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엄마는 정말 우거지가 좋았을까



 제각기 친정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자리에서였다. 나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특별히 맛있게 먹던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엄마의 손맛’ 하면 우거지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음식이 없었다. 엄마는 요리가 아닌 늘 먹는 평범한 ‘반찬’을 만드셨고 ‘별미 요리’는 손수 요리하기를 좋아하신 아버지가 만드셨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어 내 차례가 올까 봐 마음을 졸였다. 


 기다리던 외식나들이가 엄마의 완강한 고집에 부딪히는 건 우리 집에서는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 엄마는 내 반찬은 있으니 걱정 말고 나가서 맛있게 먹고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반찬이란 별 것도 아닌, 별 것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걸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모를, 고리타분한 냄새가 나는 우거지 찌개였다. 

 ‘엄마는 정말 우거지가 그렇게 좋았을까?’ 문득 의문이 생긴 건 결혼을 하고도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였다. 그날은 어쩌다 신 김치가 남아있어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가며 우거지 찌개를 만든 날이었다. 코를 틀어막고 이게 무슨 냄새냐며 남편과 아들이 식탁에서 찌개그릇을 밀쳐놓는데 문득, 어릴 적 밥상에서 천대받던 엄마의 우거지가 환영(幻影)처럼 떠오른 것이다.


 우거지는, 버리는 것이 죄악시되던 가난한 시대를 살며 어쩔 수 없이 터득하게 된 조리법일지 모른다. 요즈음은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다지만 우거지를 떠올리면 우중충한 색깔만큼이나 서글퍼지는 이유는 궁핍과 결핍의 소산물 같아서다. 그런데도 그 맛이 우물 속처럼 깊은 것은 아마 시린 추억과 곰삭은 세월의 맛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를 먹다먹다 시어터져 허연 골마지가 앉을 때쯤 며칠간 찬물에 우려낸 후 된장과 멸치가루를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끓이면 묘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웅숭깊은 맛을 내는 토속적인 우거지 찌개가 된다. 그 냄새 때문에 서로들 밥상에서 가장 먼 구석자리로 밀쳐놓으면 엄마는 말없이 가만히 당겨다 놓곤 하셨다. 그렇게 길들여진 식성 덕에 엄마의 솜씨 중에서도 가장 촌스럽고 냄새 나던 그것이 때로는 그렇게 그리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거지를 내 반찬이라며 외식나들이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고등어를 구웠다. 세 식구가 먹기에는 한 마리면 충분했다. 삼등분한 고등어 토막을 앞에 놓고, 주저하며 선뜻 젓가락을 옮기지 못하고 망설였다. 남편과 아들 접시를 번갈아 보며 살이 가장 많은 가운데 토막을 어디에 놓을까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심정을 들여다보기나 한 듯 남편이 슬그머니 꼬리 쪽을 집어갔다. 아들 표정을 흘깃 바라다보았다. 의당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니 뭐 그런 사소한 것에 그리 마음을 쓰냐는 듯한 무심한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 아들이 내 나이쯤 되어 누군가의 아비 자격으로 식탁에 앉은 광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제 아버지가 그랬듯이, 제 아이의 숟가락에 토실한 살점을 얹어주고 저는 말없이 꽁지 부분을 집어가는 아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마 사랑은 그렇게 대물림 되어갈 것이다. 


 “엄마는 머리부분이 정말 맛있어요?” 하고 묻는 아들의 말에 나는 어릴 적 엄마와 앉았던 밥상머리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굴비를 구우면 대가리는 늘 엄마 차지였고 우리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굴비가 귀하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밥상에 여러 마리가 놓여 있어 다음 끼니까지 먹게 되는 한이 있어도 엄마는 한사코 살점에는 손을 대지 않으셨다. 뼈까지 꼭꼭 씹어 먹으면 고소한 단물이 나온다며 살이라고는 없는 머리부분을 처량하리만치 알뜰히 드시던 기억에 나는 한숨 섞인 웃음을 내놓고 만다.


 내가 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온 가슴을 송두리째 내주던 우리 어머니 세대만큼 치열하지도 순수하지도 못하다. 어쩌다 한 번씩 내 어머니의 흉내를 내보기는 해도 나는 입술로 사랑을 주는 ‘요즈음’ 엄마이고, 내 몸의 편함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엄마로서도 딸로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받기만 하는 자식들에게 이유도 없이 고마워하고, 잘못한 것도 없이 다 ‘에미 탓’이라며 미안해 하는 그런 사랑을 요즈음 세상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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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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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그들만의 여유

 

  갈수록 신문 펼치기가 겁이 난다. 산불에 지진, 홍수와 폭염,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느 구석에선가는 크고 작은 재해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침수된 주택가 광경을 담은 커다란 사진 옆에 유럽 어느 나라에서 물난리가 났다는 기사가 실려있다. 자주 접하는 소식이다 보니 감각도 둔해진 듯 건성으로 굵은 활자만 훑으며 지나칠 때였다. 무엇인가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당기는 게 있었다. 

 


사진 속의 작은 머그잔, 놀랍게도 그들은 차가 담긴 하얀 머그잔을 하나씩 들고 허리까지 차오른 흙탕물 속에 서있었다. 침수된 마을의 주민들이 현관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장면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사진 밑에 들어 있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혼란이 잠시 일이었다. 아무리 차를 즐기는 민족이라 해도 마을이 통째로 잠긴 상황에서 침수된 자기 집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그들의 여유는 대체 어떤 것일까. 


 목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도 차는커녕 마른 침만 삼키며 넋 놓고 초점 잃은 시선으로 주저앉아 있는 편이 오히려 우리 정서에는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세라도 무너질 듯한 모습 대신에 벽에 기대어 선 채 차를 마시는 그들. 우리에게 차 한잔의 의미가 심적 여유가 있을 때 마시는 것이라면 그들에게는 급박한 상황에서 여유를 찾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나 보았다. 


  서양영화에서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긴박한 상황에서도 배우들이 제 할일 다하는 느긋한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그건 각본이 있는 허구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문화적 거리감을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영화가 아닌 실생활에서 그런 점을 발견하면 더 당혹스러웠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도 그 정도의 민족성이나 문화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들의 사고 깊숙이 배어있는 여유로움은 내게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숨이 차게 뛰며 악착을 떨어야 사는 줄 알고 경쟁심으로 쫓기듯 허둥거리던 우리에 비해, 우리보다 덜 갖고 덜 누리는 계층에서도 천천히 걸으며 삶을 즐기는 여유를 발견하고 놀라던 기억. 그건 어쩌면 광활한 대지를 물려받아 천혜를 누리는 이들과 좁은 땅덩이에 살면서도 외세 앞에 늘 불안하여 마음 졸이며 대비해야 했던 민족성, 그 차이 때문인 지도 모를 일이었다. 


 표정 관리 측면에서도 이들은 절제와 여유를 부릴 줄 아는 것 같아 보였다. 아무리 슬퍼도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소리 없이 구르는 눈물, 그건 우리네가 대성 통곡을 해야 속이 풀리는 것과 많은 대조를 보였다. 화가 날 때도 이들은 여간해서는 표정에 감정을 포개지 않았다. 감정이 앞서 언성을 높이고 얼굴색이 울그락 푸르락 하면서도 인정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우리에 비해 이들의 웃는 얼굴 이면에는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차갑게 날 세운 이성을 숨긴 야멸참이 있었다. 그런 견지에서라면 그 엄청난 재해 앞에서 차를 마시는 여유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인간의 내면에는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이질감을 더 못 견뎌 하는 성향이 있는지 모른다. 그 ‘같지 않음’을 바로 알고 인정하면 문화적 거리감도 조금 수월하게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이 땅에 뿌리 내리면서 언어만큼이나 넘어서기 어려운 문화의 벽을 종종 실감한다. 저절로 해결 될 일은 아니겠지만 언어도 문화도 두드려 여는 만큼은 저 안의 세계를 허락할 것이다. 앞을 막아 선 문이 아무리 높고 육중하다 해도 발 하나 들여놓을 정도만 밀어낸다면, 꿈꾸던 것이 한꺼번에 열리는 벅찬 희열을 느끼리라 기대한다. 마치 어린아이의 말문이 긴긴 동안의 침묵을 깨고 신기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 트이듯이 말이다. 


 힘이 들어도 살아내기로 작정을 한 이상, 꾸준히 두드리다 보면 그 단단해 보이던 벽이 툭, 하고 열릴지 모른다는 희망. ‘희망의 끄나풀만 놓지 않는다면’ 을 주문처럼 외며 그 작은 허세로도 마음이 느긋해오는 느낌이다. 


 저만치 밀어놓았던 찻잔에 차를 따르는 손길이 비로소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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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58031
10288
2015-03-12
살풀이 춤

 


                 
 무대에는 쪽을 지은 머리에 하늘거리는 흰색 한복을 입고 한 손을 치켜든 채 눈을 지긋이 감고 숨을 고르는 여인이 보였다. 잠시 몰입의 시간을 갖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녀의 신(神)께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 무대에도 객석에도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두 손에 힘이 들어가며 숨을 멈추고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물결을 닮은 치마의 곡선이 가늘게 흔들렸다. 한복이 오늘처럼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심금을 훑는 듯한 가락을 따라 놀랍도록 치밀하고 섬세한 손놀림에 맞춰 수건의 흐름이 이어졌다. 한을 푸는 영혼의 울림과 몸 동작이 한데 어우러져, 그녀는 흰 수건 속으로 들어갔고 흰 수건이 그녀를 움직였다. 


 수건이 공중으로 뿌려질 때 옹이진 마음들이 함께 흩어지고, 걷어내는 동작을 따라 허공에 떠돌던 혼백이 평안을 찾는 듯했다. 한복의 어깨선이 미끄러져 내려오다 멈춘 곳, 그 끝자락에 감추어진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이 무대 아래까지 전해왔다.


영과 육의 맺힘과 꼬임을 풀어내는 처절한 혼의 소리요 자아를 초월한 몸의 떨림이 살풀이 춤이다. 이는 아마 슬픔의 몸부림을 춤으로 승화시키려는 삶의 의지를 표출한 예술일 것이다.


 구성진 가락에 맞춰 때로는 가뿐하게 때로는 끈적거리는 동작으로, 보는 이의 가슴에 파고든다. 사소한 몸짓에도 관객들의 호흡이 잠시 멎으며 숙연해진다. 누구의 삶 속에도 들어있을 법한 옹이들을 꺼내어 어루만져 달래는 자리이기 때문이리라. 


흔히 굿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살풀이 춤은 신명과 한을 동시에 품는다. 한 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벌인 굿판에서 즉흥적으로 무당이 춤을 추기도 한다. 지전풀이라 하여 종이 돈을 흔들어 죽은 사람의 혼을 달래거나, 매듭이 진 긴 천을 기둥에 매어 하나씩 풀어가며 죽은 원혼의 길닦음을 하기도 하고, 부채와 방울을 흔들며 넋을 달래는 등 우리 민족은 다양한 방법으로 맺힌 살을 풀며 살아온 것 같다.


‘풀이’라는 단어에는 맺힌 것을 손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잘라내지 않고 하나씩 더디게 흩어놓음으로써 스스로 화(禍)를 달래는 시간을 갖고 인과를 풀어간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가슴에 한을 묻고 사는 일이 누군들 쉬우랴마는, 시간을 들인 견딤과 기다림의 문화답게 ‘풀이’를 통해 승화시키는 방법을 우리 선조들은 알고 있었다. 


 실타래가 하나로 엉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떠올린다. 시간이 곧 돈이고 모든 일을 빨리 처리해야 인정받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버리고 새 것을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버리는 행위가 죄악과 동일시 되던 시대를 살던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버리기는커녕 잘라내는 일도 두려워 풀어내는 방법을 택했는지 모른다. 


 한 올 한 올 풀어가는 과정에서 인내를 배우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까지 자연스럽게 터득했으리라. 매듭풀기에서처럼, 어려서는 이해하기 어렵던 일들도 삶의 기복을 넘고 성숙해가면서 우리는 그 안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차츰 깨닫게 된다.


 맺힘과 풀이가 손끝에 달린 수건의 곡선을 따라 흔들리다 화해하는 과정이 진지하다 못해 서럽다. 손을 꼭 쥐고 긴장할 만큼 불을 뿜는 열정을 토해내다가도 때로는 부드러움으로 달래주고 때로는 애처로움으로 눈가가 젖게 만드는 예술이다. 


 찌를 듯한 곡조에 황홀경으로 내몰려 살풀이가 절정을 이룰 때쯤, 손놀림을 따라 가쁘게 내쉬던 숨결이 잦아들며 비로소 그녀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뜬다. 접신(接神)이 끝났음일까? 육신의 불덩이를 다 소진시켜 하얀 재만 남은 듯 해쓱한 표정이 되어, 그녀는 자신을 불태우던 열정의 무대를 미련 없이 떠난다. 


 긴 시간 동안 섬세한 손놀림이 내 안에 맺혔던 매듭들도 한 가닥씩 풀어내주었는지, 공연이 끝나자 조금 후련하기도 했고 또 조금은 허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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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58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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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5
닭들의 다이어트

 

 

 

“요즈음은 닭들도 다이어트를 한답니다.” 


“살이 많이 찌나 보네요? 그럼 고기가 많아져서 더 좋지 않은가요?” 하면서, 우리는 그저 별 생각 없이 웃었다. 그러나 양계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그분의 나머지 설명을 들으며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장면들을 접하게 되었다. 


  닭장 속의 닭들은 절대 운동량이 부족하게 마련이다. 운동을 못하면 살이 찌고 너무 살이 찌면 닭들이 갑자기 알을 낳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며칠 굶겨서 체지방이 줄어들어야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한다는 말에, 이제는 닭도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대라며 웃었지만 웃음 끝은 허전하고 씁쓸했다. 


기계로 부화된 어미 닭들은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알을 품지만 부화할 때까지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도중에 포기한다고 한다. 자연 부화된 어미만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 알을 부화시킨다. 사랑 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도 할 수 있다는 이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미 닭의 사랑을 받고 부화한 닭들은 마음껏 자연식을 먹고 자유롭게 운동하며 평온하게 자란다. 덕분에 성격이 활발하고 인내심도 강하며 의욕적이고 모성애도 지극하다고 한다. 


수십 가지의 첨가물이 들어간 사료로 사육된 닭들은 모성애도 책임감도 부족할뿐더러 하루 종일 불을 밝힌 좁은 닭장에 갇혀 자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부정적이고 예민한 성격이 된다. 그 고기와 그들이 낳은 알을 먹는 우리 혈관에도 같은 종류의 피가 흐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참을성이 부족하고 허약한 젊은 세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우리는 부적절한 동물 사육 방식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닭들의 다이어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건강과 미용을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그러나 닭들에게는 더 많은 알을 생산하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한다면 닭들의 삶은 형벌인 셈이다. 


 하기는 요즈음 그런 운명을 사는 것이 어디 닭뿐일까. 동물만이 아니라 물고기도, 심지어는 과일이나 채소도 인간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 호르몬으로 억지 성장을 강요당하고 24시간 불을 밝혀가며 잠을 재우지 않아 밤낮없이 뜬 눈으로 지낸다. 


 현대의 채소나 과일은 겉모습은 반듯하게 잘생겼어도 옛날 우리 선조들이 자연에서 햇빛으로 키워낸 제철 먹거리들에 비해 그 영양가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서, 여간 많이 먹지 않고서는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한다. 나날이 비대해지는 인간의 탐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식물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일까.


 비만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아들이 신문에서 읽었다며 기사 한 꼭지를 전해주었다. 개가 비만이 된 죄를 물어, 키우던 개와 주인이 격리조치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 먹던 주인이 자기 음식을 개에게도 늘 나누어주며 함께 먹다가 그만 비만이 된 경우였다. 


 동물이 지닌 본능보다 한 차원 높은 사고능력과 제어능력을 갖고 있다는 주인도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해 비만이 된 상황에서 개에게 다이어트를 시킬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닭들이 다이어트 하는 경우나 인간 위주로 배합한 사료를 동물들이 먹어야 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고 그로 인해 전혀 새로운 자신의 삶과 운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앤디 앤드루스는 그의 책 <선택>에서 “너의 선택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네가 하지 않는 선택 하나하나가, 네가 하지 않는 행동 하나하나도, 역시 그만큼 네 삶을 바꿀 것이다” 라고 말한다. 


 결국 성공한 삶이란 인생의 구비구비에서 수없이 마주치게 되는 선택이라는 갈림의 길목에서 얼마나 지혜로운 선택을 했느냐에 달려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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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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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9
그 해의 봄 눈

 

 


 그날도 오늘처럼 성긴 눈이 바람에 실려 흩날리고 있었다. 영구차 뒤 편의 문이 열리고 그 앞에 간단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세월에 부식된 허수아비처럼 다들 넋을 놓고 서 있어서,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날리는 눈발처럼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3월에 내리는 눈은 서설이라고 위안하며 가슴을 뚫고 올라오는 생각들을 애써 눌러 담았다. 소리 내어 울면 좋은 곳으로 못 가신다는 말을 떠올리며 울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엉엉 울고 싶었다. 인간의 미화된 말간 눈물이 아닌, 짐승처럼 처절한 울음을 한바탕 토해놓고 나면 소낙비가 쏟아진 뒤처럼 몸도 마음도 후련하고 가벼워질 것만 같았다.  


 평소에도 베개가 없이는 한순간도 머리를 눕히지 못하던 분이었다. 염을 할 때는 베개를 빼내어야 한다는데 한 번 베개 위로 올라가 이미 굳어진 머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생을 바꿔가면서까지 그렇게 힘들게 지켜야 할 무엇이 있던 것일까. 꼿꼿이 치켜든 고개 때문에 보통 규격보다 높이가 더 높은 관 속에 몸을 눕혀야 했다. 돌아올 수 없는 먼 길 떠나면서도 살아생전 당신의 올곧은 자존심은 한 치도 낮추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삶이 마지막 문턱에 놓인 상황에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였다. 숨 쉬는 일조차 힘에 겨워하는 모습에 이승에 붙잡아두어야 할 이유를 더 이상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주렁주렁 매달린 주사약 주머니를 바라보는 일도, 눈물 없이 휠체어를 미는 일도 이미 익숙해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아버지 등 뒤에서 휠체어를 밀며 함께 있던 순간도 행복했노라고 먼 훗날 회억(回憶)하리라 짐작하면서도, 그 상황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자체가 불경스러워 애써 떨쳐버리곤 했었다. 


 병실 복도에 깔린 침묵 위로 휠체어를 밀고 가며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차마 묻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분 입김을 통해 우리 누구도 감당 못 할 ‘죽음’이란 단어에 대한 두려움이 실려 나오면 어쩌나 싶어서, 도망치고 싶은 공포를 잠시라도 못 본 척 외면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버지 역시 두고 가는 세상에 대해 끝내 침묵으로 말을 접었다. 나는 그때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에 옹이로 남았다.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식당에 올라가 녹차를 시켜놓고 한참을 앉아있곤 했는데, 그때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둘 만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는데, 죽음의 그림자를 가득 담은 내 눈을 들킬 것만 같아 대화는커녕 아버지 눈을 바로 보기도 두려웠었다. 사십칠 년을 보아온 맏딸의 눈, 언뜻 들여다 만 보아도 무엇을 담고 있는지 단박에 읽어낼 것 같아 아버지 눈과 마주치는 일이 그때는 그렇게 겁이 났었다. 


 “엄만 뭐하니, 엄마 밥은, 니 엄마 잠 좀 자야 할 텐데.” 연신 엄마 타령을 하실 때, 당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두고 갈 아내가 걱정되어 미리 챙기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병명을 감추고 있는 내게 희망을 이야기할 때면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고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했다. 내가 아플 때는 언제라도 나 대신 아프셨던 분인데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앉곤 했었다. 


 며칠 있으면 아버지 기일이다. 돌아가시고 벌써 몇 번째 맞는 기일이던가. 내 삶의 줄기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인생이라는 풀기 어려운 숙제 앞에서는 그분을 불러내어 의논할 일이 더 많아진다. 아직도 함께 풀어가야 할 삶의 과제가 많기만 한데,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아득한 세상에 나 혼자 있다. 어떤 아름다운 것도 끝은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소중한 인연과도 종국에는 이별한다는 것을 미처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해만 지면 살아나는 그리움에 나는 아직도 밤이 두렵다.


 어둠이 자리 잡은 창밖에 눈발이 사납게 흩날리더니 바람이 잦아들면서 비로소 차분해진다. 시간이 치유 못 하는 아픔도 있을까, 세월을 등에 업고 시나브로 슬픔을 삭이며 느린 걸음을 걸어왔다. 이제는 웃으면서 아버지를 말할 수도 있다. 그게 슬픔이든 고통이든 대상이 너무 크면 감히 가슴에서 꺼내지 못하는가 보다. 세월로 오래 녹여내어 작아진 조각들을 최근에야 언어라는 힘을 빌려 하나씩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세월이 못할 일은 세상에 없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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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58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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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5
그릇

 

 

 저녁을 준비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그릇 세일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릇은 많은데 더 사서 뭘 하나 싶으면서도 마음이 흔들렸다. 잠시 망설이다가 기분전환도 할 겸 나가보려고 약속을 잡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요즈음은 아들이 학교에서 점심 저녁을 다 먹고 늦게야 돌아오기 때문에 식사를 보통 우리 부부만 하게 되어 단어 그대로 ‘소박한 밥상’을 차리게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부터는 집에서 접대하는 손님도 거의 없다 보니 아마 앞으로도 그릇이 많이 필요한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릇에 대한 욕심을 좀체 접지 못한다. 


 전화를 받고 오니 물이 벌써 끓고 있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국물을 내고 버섯과 양파, 그리고 호박을 숭숭 썰어 넣었다. 오늘 저녁은 된장우동이다. 구수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 간장 대신 된장으로 간을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고명이나 양념만 달라져도 별난 국수나 되는 것처럼 새로운 이름을 붙여가며 먹는 것일 뿐, 보통 우동과 다를 것도 없다. 


 찬장에서 우동 그릇을 꺼냈다. 도톰하고 하얀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산뜻하다. 한국에 살 때 막내 동생이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아 내게 준 그릇인데 이민 오면서 이곳까지 함께 흘러온 것이다. 냄새에 기억이 불려나오 듯 그릇에 묻어온 동생 생각에 마음이 후드득, 흔들린다. 


 나는 아직도 예쁜 그릇을 보면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지루하도록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에 뭔가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서일까. 남편은 그릇 나들이로 가슴 설레는 나에게 지금 나이가 몇인데, 하다가 말끝을 흐린다. 나이가 그릇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만한 일에도 아직 가슴이 설렌다는 것은 감수성이 마르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안도하다가 불현듯 ‘어떤 낯섦’을 내 안에서 발견하고 만다.  


 딸들을 다 출가시키고 다섯 손주의 할머니가 된 후에도 엄마는 예쁜 브로치나 목걸이를 보면 갖고 싶어하셨다. 나는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은 잊어버린 채, 대체 몇 살까지 여성스러움이 남아있는 것일까 하며 의아해하고 낯설어 했다. 그런데 그때의 낯섦이 오늘 내 안에서 만져진 것이다. 엄마의 가슴설렘은 ‘남세스러운 낯섦’으로 치부해버리던 내가, 나의 가슴설렘은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있는 감수성’이라며 좋아하다니. 


 나이 오십이면 서리가 내리는 계절, 인생의 가을로 들어선 시점일 것이다. 생의 어느 구비에선들 아프고 힘든 굴곡이 없겠는가 마는 육신과 정신이 한꺼번에 몸살을 앓게 되는 시기는 늙음의 문턱에서가 아닌가 싶다.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회의 관심에서 한 발짝 물러선 홀가분함과 허전함이 혼재하는 시기, 여유로운 만큼 고독과 외로움이 달려드는 때이기도 하다.


 생각난 김에 그릇을 정리했다. 많기도 하다. 추억과 사연을 담은 것들로부터 누군가의 체온이 실려온 것들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런데 묘한 것은 거의 삼십 년 전에 신혼살림용으로 구비한 접시들이 아직까지도 가장 자주 식탁에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함께 늙어가는 접시에 대한 애틋한 마음 때문인지 홀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같잖은 의리 때문인지, 한시도 구석에 놓여본 적 없이 늘 당당하게 중앙을 차지한다. 


 부엌뿐 아니라 내 마음에도 세월만큼이나 많은 크고 작은 그릇들을 들여놓으며 산 것 같다. 잘 빚은 그릇은 그릇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고 울림도 크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엇인가를 담고 있고 앞으로도 무엇인가로 채워질 그릇들이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이 다 들락거린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웃음을 담은 달콤한 그릇과 상처로 얼룩진 그릇, 내 가슴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후회막급인 불편한 그릇에서부터 볼수록 대견스럽고 뿌듯한 그릇, 아직도 델 듯이 뜨거운 것, 소름 돋을 만큼 냉기서린 것까지.


 하찮은 국수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내용물뿐 아니라 식탁까지도 빛낼 수 있듯 내 마음의 그릇을 거쳐간 생각이나 감정들도 그렇게 빛날 수 있을까. 어쩌면 내일 그릇을 사는 순간, 부엌에 차고 넘치는 그릇들을 떠올리며 금세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몇 개 사 들고 좋아라 하며 돌아올 것이다. 마음이 행복하면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도 정겹고 따습게 느껴진다. 그런 마음이라면 부엌의 그릇으로는 육신에 공양(供養)을 할 것이고, 마음의 그릇으로는 정신과 영혼에 공양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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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kim3000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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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춤추는 기억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를 실험하는 장면 같았다. 같은 숲을 보여주었는데도 응답자들의 묘사는 세부적인 사항일수록 일치하지 않았고, 같은 사람에게 전해 들은 내용 역시 응답자들 간에 서로 달랐다.

객관적인 사실이라도 자기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릿속에 저장되기 전에 이미 자신이 원하는 주관적인 방향으로 이해하고 판단하여 기억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옆을 돌아보지 않아 독단에 빠지는 경향이 컸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사진을 보여주자 민망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수긍하기보다는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게도 그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을 다시 가보았을 때였다. 내 기억 속의 광경은 평화롭고 정갈하며 무엇보다 아주 커다란 기와집들이 서있는 동네였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그곳에는 조그마한 한옥들이 조금은 추레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있을 따름이었다. 추억 속의 집은 이미 내 머릿속으로 옮겨와 터를 잡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의 옛집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서 여기가 아닌데 아닌데, 하며 같은 골목을 몇 번씩 돌며 찾았을 것이다. 잘 생각해보니 그때는 어릴 때여서 몸집이 작았을 테고 협소한 집도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져 뇌 속에 그렇게 각인되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철모르고 뛰어 놀던 유아적 추억이 세월이 흐르면서 한껏 미화되기도 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기억 속에 여고시절의 P가 보인다. 그녀는 말을 참 잘했다. 급우들에게 연속극 내용을 전할 때면 자기가 그 드라마 작가나 되는 것처럼 실감나게 이야기 했다. 실감날 정도가 아니라 어떤 부분은 덧붙이고 어떤 부분은 잘라내어 새것처럼 지어내면서도 망설임 한 점 없이 당당했다. 실제로 본 것보다도 더 재미있을 만큼 그녀의 화술은 뛰어났고 사람을 홀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학급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다루는 능력과 수완이 뛰어나서 같은 나이인데도 언니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당연히 그녀 주위에는 늘 아이들이 북적거렸고 인기도 최고였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리 가깝게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사춘기 고개를 넘으며 힘들 때마다 선망의 대상이던 그녀를 바라보면 가슴이 훈훈해지고 기댈 곳을 찾은 듯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사십 즈음에 다시 만났을 때 세월의 잔인함 때문인지 놀랍게도 그녀는 누구나 한번쯤 겪는 시련에도 저항 한 번 못하고 그대로 무릎이 꺾여버린 그런 모습이었다. 짙은 화장으로 감추었어도 함부로 늙은 주름을 어쩌지 못했다. 기분 좋게 늙는 세월은 주름도 차분하고 곱게 다져놓을 것이라 여기던 나는, 세상없어도 그녀만큼은 언제 만나도 주위에 명랑하고 가벼운 공기가 출렁일 것 같았었다. 그녀의 자신감 있고 당당하던 모습은 다 어딜 갔는지 삶의 기준조차 온통 타인의 잣대에 달린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정신적인 버팀목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혹시 그것 역시 기억의 오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의 뇌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 중의 극히 단편을 전체인양 확대해서 저장했을 수 있고, 꺼내어볼 당시의 내 기분에 따라 그것이 조금씩 변형되지 않았나 싶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진실 자체를’ 듣기 보다는 ‘진실이었으면’ 하는 것을 듣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경험을 했어도 제각각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 더욱 다르게 바뀔 개연성은 커진다. 문제는, 뇌의 주인도 모르게 잠자는 동안 교묘하게 윤색되고 각색된 기억을, 본인은 정확하다고 믿는다는 점일 것이다. 


 어떤 기억은 무거우면서 아프고 어떤 기억은 공기처럼 가볍고도 즐겁다. 기억의 경중(輕重)에 따라 시간은 스스로의 길이를 조절한다. 그래서 우리 기억 속에는 유난히 길고 느린 시간과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짧았던 시간들이 공존한다. 누구라고 시간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 붙잡고 싶어도 아득히 멀어져 가는 그 기억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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