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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이유식의 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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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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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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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톨스토이와 땅과 나(상)

 
이 글은 15여 년 전에 쓴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이 글을 공지함은 나름대로 조국의 현실이 암담하다는 생각에서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많은 분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정학적인 면에서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나의 조국, 땅 덩이는 좁고 민족의 DNA는 살기 위한 투쟁과 경쟁,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파오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속담의 진실, 끊임 없는 질시와 모함으로 이어져 왔던 생존의 역사, 벼슬아치 들의 끊임 없는 파렴치한 권력욕으로 민초 들은 갈 길을 잃고 살아 왔지 않는가. 나 일찍이 넓은 땅에서 깊은 숨을 토해 내고 살아가고 싶어 먼 나라 이방의 민초로 살아오면서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정의와 진실 정직한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보며 나의 생존의 일 부분을 나열해 본다. 한 마디 더 첨언을 한다면 200불 들고 떠난 조국 그 피눈물 나는 고난과 살아가기 위한 투쟁 속에서도 나 진실로 조국을 원망해 본 적이 없고 우리 민족을 항시 사랑하며 내 능력껏 조국과 동포들에게 바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음을 나의 양심을 두고 부끄러움 없이 말을 해 본다. 원망을 했다면 조물 주는 어이하여 우리의 조국은 이 캐나다가 가진 모든 것의 10분의 1 만이라도 더 주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필자 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을 경영하는 중국인 친구에게 전화가 왔었다. 내용인 즉 여의도 땅의 6 배라 할까 200여 만평의 땅을 좋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으니 와서 구경이나 하라는 제안이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2 박 3 일의 일정 계획을 잡고 밴쿠버에 나간 적이 있었다. 


넓고 광활한 이 캐나다 땅 옛날에는 100 만평 이상의 땅을 판매코자 시장에 광고 기사가 나오면 일본 교포들이 무조건 사들였다는 중국인 친구의 말을 들으며 차에 몸을 싣고 밴쿠버에서 장장 6시간을 달려가 땅 구경을 한 적이 있었다.


200여 만평을 14개 필지로 분할을 해놓고 BC주의 젖줄인 FRASER RIVER 에 붙어 있는 무척 기름진 땅이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의 SUV에 몸을 싣고 1 시간을 소요하며 땅 구경을 했었다. 


현재 이 땅에는 자작나무와 북극의 소나무를 비롯 울창한 산림이 우거져있어 제지회사에서 1천만 불을 지불하겠다는 오퍼가(Offer)가 있었으나 이 중국인 친구는 1천만 불에는 한이 안 차 1,500만불 이하로는 팔지 않겠다는 욕심 때문에 매매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숨을 쉰다.


하기는 2, 3년 전의 캐나다의 경기는 정말 이러다가 어쩌려나 하는 무서움 마 져 안기며 걷잡을 수 없는 성장을 했기에 부르는 것이 값이었고 Seller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으니 누군들 오늘과 같은 세계 경기의 침체를 예측할 수 있었으랴. 


그 때 제지회사의 오퍼를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기회는 가버렸고 다시 그런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특히 제지업이 사양길에 있어 어느 누구도 이 산림자원을 사겠다는 오퍼가 없어 땅 주인은 땅을 팔지 못해 숱한 노력을 하다가 나와 같은 민초에게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음을 알았다. 


얼마나 답답하면 나 같은 빈털터리에게 손을 뻗치나 하는 생각을 하니 이 친구의 입장이 안타깝다. 하지만 이 땅은 산업용, 주택용, 상업용, 농업용지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이 가능하고 필지가 분할되어 나누어서 판매를 하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실지로 이 땅 곁에는 18홀의 골프 코스가 성업을 하고, 골프 코스 주변에는 한창 주택을 건설하고 있어 시장도 그런대로 좋은 듯 했다.


일본에서 외국에 부동산 투자를 할 때는 땅덩이가 큰 것이 시장에 나오면 일본 정부에서 일본 교포들의 이름으로 무조건 땅을 매입 했었다는 데 지금은 일본도 불황이라 땅을 사들이지 않고 있다는 설명은 이해가 간다.


 땅 구경을 한 그날 저녁 온갖 번뇌 속에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땅을 소유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인류의 역사는 땅을 차지 하기 위한 투쟁으로 국가 간에도 끊임없는 영토 전쟁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그 옛날 감동 속에 읽은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 한가”라는 소설 내용이 머리를 스쳐간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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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4
제11회 민초해외문학상 심사평

 

 

 

 

민초(民草)는 재캐나다 한인 시인 이유식씨의 아호입니다. 민초는 캐나다에 40년 이상 살면서 두 가지 큰 일을 했습니다. 첫째가 사업가로서의 자리를 잡았고, 두 번째가 자신의 아호를 딴 '민초 해외동포문학상'을 제정하셔서 올해 11번째 시상을 하는 일입니다. 아울러 민초 선생은 시인으로서 7권의 시집과 칼럼집 등 다수의 저서를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상의 시상에 있어서 큰 난점은 수상 대상자가 전세계에 퍼져있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의 수집과 시상에 세계가 대상입니다. 민초는 이를 위해 묵묵히 현장으로 날아갑니다. 러시아, 유럽, 중국, 몽고를 직접 방문하시고 수상자를 만나고 시상식을 뜻있게 갖기에 방문국 동포님들에게 민족의 정체성 고양과 지속 발전에 기여코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남다른 한국문학 사랑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예선을 거쳐 넘어온 다섯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심사의 난점은, 장르가 다른 작품들 중에서 한 작품을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즉 소설, 시, 수필 중에서 당선작 한편을 뽑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작품들을 비교하여 선정할 수는 없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가지고 비교 우위를 따지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문학작품으로서 완성도를 따질 때 테리사 리씨의 작품이 가장 곰삭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이 투고한 세 편의 단편소설들은 한결같이 주제와 소재 면에서 심사 숙고한 흔적이 있으며,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작품을 이끌고 있습니다.


세 편의 소설 다 주제와 소재 선택에 있어서 좀더 문학적인 구성과 분위기의 효과로 노력 고뇌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없이 달리는 기차간, 황량하게 버려진 옛 감옥의 이미지, 대양 속에 버려진 섬의 이미지 등입니다


다만 선자의 요구가 있다면, 작품전체 분위기가 시적, 서정적으로 흘러 소설이 가져야 하는 서술성이 약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소설은 서사문학입니다. 사건 전개의 시적인 묘사로 치중하기보다도 사건 자체의 심화와 절제된 서사문장으로 표현해야지 계속 시적인 영상에 사로잡히다 보면 소설적인 구성과 주제가 흐려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설적인 전개를 억제된 시적인 이미지로 풀어가는 필자의 자세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란 시인의 시적 영혼 속에 영근 이미지를 새로운 어떤 시적 공간에 운율적인 문장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란 결국 시인의 영혼 속에 영근 시적인 이미지와 음률적인 시적 언어의 내밀한 대화입니다.


강 애나씨의 열편의 시는 작품 하나 하나 강렬한 시적인 이미지를 던져줍니다. 그러나 조금 덜 다듬어진 듯한 거침이 느껴집니다. 이런 견지에서 강 애나씨의 시는 서정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 압축되고 이미지화 되었으면 더욱 감동적인 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서정성은 원래 투고된 시 자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라서 양해할만합니다. 


시인의 영혼 속의 시 세계와 채택된 시어들 사이에는 아무리 억제하려 해도 필연적으로 인간의 감정의 개입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시와 소설의 영원하고 근원적인 재료는 상상력으로 요리되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문학이 철학이나 심리학 수기와 다른 가장 근원적인 이유가 바로 감정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요. 상당한 시적인 구축의 노련미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의 물결이 약한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소설과 시가 인간만이 가지는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라면 수필은 인간의 관찰과 연상으로 이어지는 문학장르 입니다. 본심으로 넘어온 세 분의 근 서른 편 가까운 수필들은 단 한편도 특수작이 없는 수준작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세 분 중에서 관찰의 시야가 가장 넓고 깊은 한나 안씨의 경우, 안타깝게도 컴퓨터의 오작동인지 띄어쓰기가 엉망이라 선자의 의구심을 자아냈습니다. 출품작끼리 경쟁하므로 작은 하자가 결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유금란씨의 능란한 필치는 어떤 기성의 수필가들을 능가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찰도 예리하고 표현도 능숙합니다.


장석재씨의 수필들은 수필의 본령인 관찰과 연상에만 치우치지 않고 상당히 철학성이 가미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수필을 읽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세이를 읽는 기분입니다.


수필가 세 분의 작품들이 이렇게 우수한 문학적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하더라도 소설과 시와 맞붙어 우월을 가린다면 수필이 불리할 수 있습니다. 시와 소설은 인간만이 가지는 문학적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훨씬 더 고차원적인 문학적 미학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작품을 통독한 우리들은 올해 유난히도 투고 작품들의 문학적인 수준이 높은데 놀랐습니다. 다들 상당한 문학적인 수련을 쌓은 분들입니다. 소설 분야에서 테리사 리씨를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심사위원들의 상당한 진통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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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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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제 11회 민초해외문학상 수상 소감-테리사 리(호주 뉴캐슬)

테리사 리

 

 


분주하고 화려한 세상에서 생각해 본다면,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은 조금 억울한 일입니다. 특히 소설을 쓴다는 것은 한참 억울한 일입니다. 


 뉴캐슬에는 낭만이 넘치는 해변도 있고 하얀 모래사장과 광활한 바다도 있습니다. 이따금 나는 바다로 달려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인생의 고독을 느낍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고독하게 글을 씁니다. 


 고독해서 글을 쓰고 글을 쓰면 더욱 고독해집니다. 삶을 충만하게 만들고 내 영혼을 매혹시키는 고독한 글쓰기! 호주의 뉴캐슬엔 고독이 있습니다. 


 나는 종종 뉴캐슬의 하늘과 가장 가까운 대지에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낯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저 멀리서 가물거리는 몽상을 빌어서 글을 씁니다. 글쓰기란 일종의 영혼과의 거래가 아닐까요? 고독한 영혼은 내가 살아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고독의 씨앗을 깨고 무수히 많은 말이 태어납니다. 내가 쓴 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탄생입니다. 말의 생명이 소란스러워질 때 저는 행복해집니다. 


 민초해외문학상에 참여하고 잊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민초해외문학상은 반 수면상태에 잠겨 있었던 제 영혼을 아침처럼 깨어 일어나게 했습니다. 영혼이 깨어난 것은 상을 받은 것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은 못 받아도 괜찮아! 그 대신 작품을 완성하고 또 새로운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동기가 됐잖아. 감사할 일이지!” 혼자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민초해외문학상에 자각을 받고 감사했습니다. 그 계기로 꾸준하게 글을 쓰고 고치며 소설집 발간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눈곱을 떼어 가며 마지막 퇴고를 마치던 날이었습니다. 해뜨기 전에 글을 출판사에 보내려고 서둘러 인터넷을 켰을 때 수상 소식이 와 있었다면 얼마나 태곳적이며 신화적인 일일까요? 그것은 「놀람 교향곡」과 같았습니다. 카를 융의 심리언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동시성(Synchronicity)이 발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손에 한 마리씩, 두 마리 토끼의 귀를 움켜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황홀했습니다. 


 열심히 소설을 써야겠다고 각오를 하던 차에 상을 받게 되어서 앞으로 좋은 소설을 쓰게 되리라 예감합니다. 민초해외문학상의 지향이 저에게는 크게 작용한 셈입니다. 


 어떤 시인은 술과 시가 동의어라고 말을 합니다. 나에게 문학과 시드니는 동의어 입니다. 시드니 문우들과 불콰하게 정이 들었습니다. 뉴캐슬에서 기차를 타고 한 달에 한번씩 7개의 터널을 통과해서 가게 되는 시드니행과 기쁨은 나에게 동의어입니다. 


올해로 만 6년, 문학을 통해 만난 문우들이 일깨워준 무수한 깨우침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문학이 좋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2013년 재외동포문학 소설 대상을 받았고, 또 소설집 『비단밴 쿠니야의 비밀』 을 발간했고, 이번엔 민초해외문학상을 받게 되어 기쁘지만 한 편 사랑하는 시드니 문우들께 송구할 뿐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상을 받게 되어서 부끄럽습니다. 


 이제 굉장히 중요한 인사를 드려야 할 차례입니다. 민초 이유식선생님의 문학사랑에 존경을 표합니다. 한민족 문학의 진흥을 위해 큰마음을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귀한 상을 받게 되어서 큰 영광입니다. 민초선생님의 뜻이 우리 해외동포들에게 자신감을 일깨워주고, 우리 고유의 언어로 문화 활동을 해서 앞으로 2세와, 3세들에게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겨주게 되리라 믿습니다. 


심사위원장 정소성 박사님, 조성국 시인님, 배용파 시인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품을 넘치는 격려와 평을 해주시고 또 선정해 주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창작을 해서 상에 부응하기로 약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드니에서 열리게 될 수상식이 벌써 가슴 설레며 기다려집니다. 시드니 문우님과 더불어 아름답고 뜻 깊은 잔치자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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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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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이슬꽃 낙원

 
이슬꽃 낙원 
 

 

 

떠나왔던 생존은 다시 찾을 수 없다
흘러간 연륜의 쳇바퀴 속
지금도 살아온 날의 뒤안길은 가슴을 저미고
언제나 태양은 떴다가 사라지지만
그리움을 주면 상처만 남아 아롱지고
시를 쓰려하면 나의 뇌리는 파도로 출렁인다

 

떠나는 날까지 쉼 없이 팔닥이는 맥박
사랑하는 사람도 때로는 잊음이 좋다

 

밤이 낮보다 좋은 것은 혼자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슬꽃 솟아나는 폴잎도
바람같이 사라져가는 저 언덕
그리움도 사랑도 이슬꽃 사라지면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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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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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3
2018-08-12
한강

 

한강 

 

 


오! 恨에 강 恨江이여

비무장 지대의 철조망이여 나의 눈물이여

어느 누가 나 같이 너를 사랑했더냐

삼천리 금수강산이 적막 속에 잠들고

여명이 밝아 새벽종이 울릴 때

흘러 흘러가는 인파를 바라보며

나는 홀로 내 가슴에 너의 흐름을 담아내었다

행상을 떠나는 봇짐에도

북녘동포들의 배고픔의 절규를 보며

생존에 빛 바랜 길 떠나왔다

영원히 너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서

나는 너의 곁을 떠나왔다

 


오! 한강이여

나의 그리움을 너는 알고 있느냐

내 심장의 피를 강물에 뿌리며

이방의 뒷골목에서 한숨으로 지샌 밤들을

이방길에 뿌려지는 내 민족의 아픔을

인내의 한계는 끝 없는 강물이었고

파도처럼 울어주던 여명의 찬바람을

내 고난의 슬픔도

나보다 더 아픈 고난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울고 울었노라

저녁 황혼의 한강변

그 조국의 강변에서 너를 그리며

 


(주: 한강의 漢字는 한수 한자가 아니고 恨할 한자임에 이 詩에 메타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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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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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3
2018-07-20
인생길 산책

인생길 산책
 

 


사람

 

사람들 앞에 섰다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고자 했더니
멀리서 보였다

 

내 자신을 모르는 페르소나
모든 것 잊으려 했다 
나를
너를

 

인생사를 하늘 위에 올려 보았다
연꽃처럼 피어난 뭉게구름이다
카멜리온 꽃의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진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지열이 시원하다고 미소 짓는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 어딘가에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간다

 

가변의 진리의 별빛 속
사람 사람
아 아 사람들이여


(*페르소나: 진실한 자아를 대신하는 사회적 심리적 자아발견)

 

 


 제가 좋아하는 이곳 대학의 젊은 교수에게 시 한편을 읽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인생에는 후배이지만 학문에는 나보다 선배입니다. 상기 시에 대한 이 교수의 감상입니다. 시평이 좋아 같이 음미코자 전제합니다.

 


김창한 박사


 민초 선생님의 시적 은유와 깊이를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의 제목은 ‘사람’이지만, 사실 내용은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냥 무시간적 무공간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있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시공을 사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개별적 존재는 그가 그동안 산 삶의 연륜과 궤적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또는 대화를 통해 ‘내’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정체성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타자 없이 나를 말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 1연에서 “사람들 앞에 섰다”라고 시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런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면 ‘사람’이라는 추상적 제목 아래 시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할 수 없었겠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라는 것이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사람으로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예상을 깨고 다르게 다가오는 그 낯섦에 시적 화자는 당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깝다고 생각했더니 사실 멀고 멀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예기치 않게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죠.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바로 그러한 물음을 묻는 것이 제 2연입니다.


 ‘페르소나’라는 말은 배우의 역할이나 가면을 뜻하는데 깊은 자아의식 또는 무의식으로의 ‘나’(I)가 아니라 타자에게 드러난 ‘나’(me)입니다. 영어 식으로 보면, 나의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며, 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대상으로서의 나(me 나를, 나에게), 즉 내 스스로 생각하는 ‘나’와 타자가 나를 보는 ‘나’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엇박자가 일어나 소통이 안되거나 오해되거나 과소 되거나 과대되는 것입니다.


결국 아직 사회에 표현되지 않은 깊은 자아의식과 무의식의 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me)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내가 타자를 보는 ‘너’ 역시 타자의 자아의식이나 무의식이 아니라 타자의 페르소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타자에게 드러난 페르소나로서의 나는 이미 타자에게 각인된 나이기 때문에 잊을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습니다. 


이는 마치 나에게 드러난 타자의 페르소나와 그 이미지가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타자가 자기의 페르소나를 나에게서 지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페르소나로 형성된 타자와의 관계는 가면과 가면이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두 가면끼리의 만남은 뭉게구름처럼 모였다가도 흩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이고, 왜곡되어 멀리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카멜리온 꽃의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진다”라고 제 3연에서 허무함을 내뱉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꼭 허무한 것은 아닙니다. 은유란 다름이 만나 텅 빈 다름 속에서도 묘한 같음을 일으키듯이 우리의 인생도 은유적으로 새로운 관계로 다시 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결과적으로 뭉친 뭉게구름은 영원할 수 없고 흩어졌다가 또 흩어지고 또 모이는 관계입니다. 


내 인생의 벗이 원수가 되기도 하고 원수 같은 존재가 벗이 되듯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새로운 은유형성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유에 절대성을 부여하면 그것은 은유로서의 기능을 상실해서 상투어가 되듯이 우리의 관계는 불변이 아니라 뭉쳤다고 흩어지고 또 새롭게 뭉쳐집니다. 


그래서 내 마음은 호수며, 산이며, 구름이며, 바람이며, 바다입니다. 내 마음이 호수일 때와 내 마음이 바다일 때가 다르듯이 사람들의 관계도 절대적으로 고정된 신뢰와 배신이 아니라 일시적인 흩어짐과 모임의 반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유는 현세의 문제이지 내세나 영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 4연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지열이 시원하다고 미소 짓는다”를 저는 이런 맥락에서 해석합니다. 결국 그 뭉게구름 허망하게 산란한 뭉게구름의 열정, 즉 사랑과 배반의 열기도 식어 다시 빗방울로 떨어지고 다시 지열을 받아 하늘로 올라 뭉게구름이 될 것입니다. 이런 윤회적 반복의 노래가 이 4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시적 화자는 그러한 사랑과 배반의 장미를 넘어 새로움을 꿈꾸는 것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은유가 만들어 내는 예상치 않은 결과에 연연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관조의 단계에 들어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은유는 열정을 주지만 안식을 주지는 못합니다. 은유가 확장되어 이야기로 발전되면 우리는 그러한 은유가 만들어 놓는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초월의 염원은 유한을 넘는 저편, 차안이 아니라 피안을 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연은 그런 초월을 향한 염원 속에서도 여전히 시적 화자는 현실적 존재이며 그런 자각 속에서 다시 관계라는 은유를 되새기는 아픔을 노래합니다. 지적 은유가 수많은 단어들의 조합 속에서 언어와 언어 사이가 필연적인 조합이 되듯이, 사람들의 관계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사람”의 반복은 아직도 은유적 성립과 해체가 연속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 인간적인, 즉 유한한 존재, 다시 말해 문화적으로, 시공으로 조건 지어진 인간이 갖는 한계, 거기에서 오는 좌절 그리고 혹시 모를 예기치 않은 필연적 조우에 미련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초월, 피안, 영원을 꿈꾸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 땅 위에 발을 내딛고 사는 아주 인간적인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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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66557
10333
2018-06-26
여로

 

여로 

 

 

아득한 먼 곳에서
휘파람 불며 오는 사나이
끝없는 캐나다 허허벌판
여명은 쭉지 빠진 날개를 펴고
생존이란 짐짝들이
물구나무를 선 로키산 정상
동굴속에서 잠든 곰들의 꿈들이 
자맥질하는 기러기 떼
북으로 날았다가 
남으로 날았다가
인생행로를
바꾸어 버린 저 번뇌
마음은 대망으로 불타고
길은 방랑과 허무의 터널
갈대밭의 환호
"안드리아 보찰리"의
눈없는 눈으로
밝아오는 아득한 미로의 여로
허수아비들의 노랫소리 들린다

 


Journey

 

A man whistling is coming from distance
Over the vast empty Canadian Plains
The daybreak spreads its disjointed wings.
And upside- down atop the Rocky Mountains is the baggage
Called "Existence"
The bears hibernating in the cave
Dream of a flock of geese diving
As they fly north and south
With evil passion the course of my life has changed
And with ambition my heart burns
The way leads through the tunnel of death
To the field of reeds and joy
With Andrea Bocelli's eye that has no joy
The journey of my heart is dawning
And the bell of wandering is tolling

 

 

 

 

*시작의 산실: 지난 7월 24일부터 27일까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국제시인협회 22회 컨벤션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컨벤션에서 제가 만난 각국의 시인들은 나이지리아, 카메룬, 콩코, 사우스 아프리카, 호주, 인도, 레바논, 아르헨티나, 자메이카, 브라질, 칠레 등 세계 1,200여명의 시인들이 모여 작품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2006년 이곳 시인 ‘Roger Rakman’ 님의 추천으로 작품을 보냈으며, 2006년에는 우수시인으로 선정되어 명시 합편 집의 첫 페이지에 출간된 바 있고, 2007년에는 편집인 선정 상을 수상한 바 있어 이번 행사에는 VIP로 초대받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시 낭송 경연대회에서는 5명의 수상자를 뽑았고, 일등 상금은 3만 불이었으며 전부 미국 작가들이 수상을 했습니다. 작품도 좋았지만 성조기 깃발이 돋보이는 듯했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지만 50여년 작품활동을 하며 각종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 쟁쟁한 작가들이 수없이 많았고, 노부부가 휠체어를 타고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 청중 앞에서 자기의 작품을 발표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자기들만의 삶에 얼마나 충실하며 즐거움을 찾고 있는지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많은 세계의 쟁쟁한 작가들 중 한국인은 저 하나뿐이었기에 우리가 세계화를 한다며 풍악을 친지도 오래이건만 왜 우리 민족은 당당히 이런 문화행사에 참여치 못하나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섭씨 43도의 더위에 한국인의 긍지를 드높이고자 모시적삼과 바지를 입고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시 낭송 경쟁에 임했으나 작품이 좋지 않음도 통감했고, 엉터리 영어로 청중 앞에선 제가 한없이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우수 시인이란 트로피를 받을 때는 미화 200불 들고 공부 좀 더 하겠다고 태평양을 건널 때의 심정. 이민초기의 피눈물나는 이방인의 생활,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며 살아와 오늘 이 자리에 선 자신의 분수를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캐나다의 작가들이 겨우 4명 정도 참여했으니 이 나라도 문화 예술은 황무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자님들의 격려와 지도를 갈망하며 아직 이 작품을 지상에 발표하지 않았기에 퇴고의 작품을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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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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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사랑’ 예술의 전당 공연

 

 

▲작사자 이유식 시인(왼쪽)과 김영식 작곡가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리를 같이 했다. (2012. 10. 13)

 

 

 


사랑

(작사 이유식, 작곡 김영식, 임청화 백석대학교 교수의

데뷔 30주년 기념 독창회. 2015년 5월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IBK 체임버 홀)

 

 


너를 알았기에 먼 하늘을 보았어
하늘은 맑고 푸르다가
뭉게구름과 먹구름을 안고
흘러가더니 가끔은 폭풍우도 안고 와
내 심장을 자맥질 했었지

 

땅 속 깊은 곳에는 늪이 있었어
수렁에 빠진 가슴 속
물안개가 피어나더니
늪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송이들
그 꽃송이가 병이 들었었지

 

칼바람이 불어 주던 날
나는 바람결에 너를 내 가슴에
깊이 묻어 두고자 눈물을 흘렸었지
그리고 하늘을 보았지만
하늘은 언제나 멀고 먼 곳에 있었어

 

 

 

사랑, 그 사랑이란 두 글자의 추상명사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할까. 사랑 없이 못 살아가는 우리 인생살이를 생각하며 써본 사랑이란 시가 너무 좋다면서 독일거주 유명 한인 작곡가가 나의 시를 가곡으로 작곡하였다. 조수미 다음으로 명성을 날린다는 백석대학교 임청하 교수 뮤직 데뷰 30주년 행사에 나의 시가 대한민국 예술의 전당에서 가곡으로 작곡되어 불려지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1천여 관객이 꽉 메운 예술의 전당에서 KBS 인기 아나운서 손범수님이 사랑의 시 작사자 이유식이 멀리 캐나다 캘거리에서 찾았다고 소개를 했다. 그가 일어서라는 명령에 나는 어쩔 줄 모르는 홍당무가 된 얼굴로 일어섰고 당황함과 놀라움 속에서 엉거주춤 일어서서 방청석에 머리 숙여 예의를 표했었다. 어쨌던 임청하 교수의 초청을 받아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 내가 있다는 기쁨을 만끽하였다.


2015년 5월 30일 예술의 전당의 IBK의 체임버 홀에는 관객 1천 여명이 꽉 메운 익을대로 익은 봄의 꽃 그늘 밑에서 나의 시가 명성을 날리는 임청하 교수의 청아한 목소리로 홀 내를 울려 퍼질 때 이민생활 40여 년의 결실이 여기에 있다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한편으로는 그 사랑이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가정의 반대를 물리치고 24살에 2살의 연상의 여인과 결혼을 하고 그 후 94세로 생을 마감을 할 때까지 여섯 번의 이혼과 결혼을 반복했던 버트란트 럿셀 경의 생애도 나의 뇌를 스친다.


뿐만 아니라 하이델베이그가 좋아 두 번을 찾은 18세의 마리안네 본 밀레미어가 68세의 연상의 시인 괴테와 사랑을 속삭이며 네카르 강가를 걸었다는 이야기. 마리안네는 그의 양친이 그토록 반대를 하는 괴테와의 사랑을 극복하면서 양친에게 한말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도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부모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 마리안네는 영원히 인류 역사에 남는다”며 부모를 설득한 사랑. 나는 그 사랑을 찾아 하이델베이그의 괴테의 거리를 무작정 걸어 본 기억이 있다. 


이 뿐이랴 세계적인 유명 시인이며 바람둥이로 인기 절정에 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프랑스 사교계 미녀의 화신 평론가 ‘루 살로메’에게 반해서 내가 루 살로메를 정복하기 전에는 어느 여인도 탐하지 않는다는 결기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마침내 루 살로메를 정복한 후 다른 수 많은 여성들과의 편력을 이룬 바람둥이 시인으로 명성을 날렸다는 일화도 있다. 이 뿐이랴 세계적 염세주의 철학의 선구자 독일의 ‘쇼팬 하우워’는 여자를 증오하고 여자가 있기에 사랑이란 것을 해야 하는 남자들의 입장이 초라하다면서 철이든 후에는 자기 어머니도 만나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이 무슨 괴변인가. 그가 죽은 후 그의 서재와 책장서랍 곳곳에서는 성병을 치유코자 하는 각종 약이 나왔다 하니 참으로 사랑이란 무엇이고, 남과 여의 성이란 무엇일까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조국의 경우 ‘이광수’를 사랑했다는 수덕사의 여승 ‘김일엽’ 스님이 있는가 하면 현해탄에서 돈도 사랑도 명예도 싫다며 몸을 던진 ‘윤심덕’도 있지 않는가. 이뿐이랴 작가이자 기생이었던 김영환, 그는 ‘백석’ 시인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안고 사원 ‘길상사’를 만들어 사회에 환원하고 떠났다.


이 길상사라는 사원의 이름을 지어준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다가 떠난 법정스님은 어떤 사랑을 하였을까 하는 것이 나의 관심이다. 법정 스님도 누구와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여인과의 사랑이 아니라면 형제 자매와의 사랑, 벗들과 사랑 그 어떤 사랑인들 분명한 사랑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다. 


정말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듯 피 토하는 사랑의 절규도 세월 따라 묻히어 가고 이제 이방의 변두리의 사나이가 사랑타령을 하며 황혼 빛에 물들어가는 주름살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나 언젠가 엉터리로 읽고 기억하는 이 분들의 사랑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긴 밤을 지새워 보고 싶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웃음이 나온다. 아마 늙어가는 뒷방노인의 절규가 아니런가. 웃자. 하지만 나대로의 지혜로운 사랑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자연을 벗하며 겸손과 희생과 배려를 벗하며 즐거워도 넘쳐나는 행복감이 있다 해도 무절제하지 않고 슬픔과 고통이 있어도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간직한 생존을 영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이에 더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멋진 인간관계로 맺어진 벗들이 있어 서로 인생사를 논하고 진심으로 고독을 소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여기에는 남과 녀의 불문의 벗이 있다면? 아 숨이 막힌다. 75세에 은퇴는 죽음이란 명 칼럼을 남기고 떠난 뉴욕타임스의 칼럼리스트 ‘윌리엄 스파스’를 생각한다. 은퇴는 죽음이란 말이 두려워 팔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아직도 호구지책에 연연하며 일거리를 찾아 이방의 뒤안길을 헤맨다. 참 한심하다는 자신을 뒤돌아보며 나 같은 생을 영위코자 노력함도 진실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독자님들 우리 다같이 웃으면서 한 세상 살아가자고 제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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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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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자해(紫海) 김복례 여사님의 명복을 기원드리며

 

자해(紫海), 자주빛깔의 구름과 바다, 제가 여사님의 아호를 지은 해는 2005년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 해 늦은 봄, 강릉으로 해돋이 관광을 갔었습니다. 그곳 동해바다의 여명에 해돋이를 보고자 바닷가 모래사장 길을 홀로 걸었습니다.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 그 끝간데 없는 지구의 저편, 우주의 저편, 말이 없이 철썩이는 바다의 풍랑과 해풍의 조화, 그 조화를 만끽하는 아름다움을 어이 필로 표현하오리까. 그 때 태양은 떠 올랐고 태양빛 따라 바닷새의 울음소리 따라 여사님의 환영이 떠올랐습니다. 태양은 곧장 바다와 육지와 저를 삼키며 태양의 주변에 자주색 구름을 아름답게 수놓아 주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 인연의 조화일까, 그 때 여행을 떠나기 전에 회장님의 아호를 지어달라시던 말씀이 저의 뇌리를 엄습해 왔습니다. 항시 인자하시고 자상하시며 사람냄새만 풍겨주시던 님과 바다와 태양 육지와 인간세상의 인연들을 생각하니 여사님의 얼굴이 아름다운 파도로 저의 뇌 신경을 두들겨 왔습니다. 


앞뒤 생각 없는 순수한 마음 한마디 우리 복례 문우님의 아호를 자줏빛 바다와 태양, 이 얼마나 아름다운 아호일까를 생각하며 자해라는 아호를 제 마음대로 지어 보았습니다. 캐나다로 귀국하여 저의 뜻을 전했더니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 그 모습에 당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님을 보내고 나니 어이 이다지 아름다우면서도 부족한 저를 너무나 끔찍이 생각해주시던 추억만이 저의 심장을 자맥질해 오기에 오늘은 그 영원불멸(Immortal)의 이야기만 하고자 합니다


2006년 현 국제문예에 여사님의 수필을 추천하여 등단을 하셨다고 좋아하시던 모습. 여고시절부터 꿈을 꾸어오시던 등단의 꿈을 이루셨다며 천진난만이 기뻐하시던 모습이 새롭습니다. 첨언하여 한국의 5대문예지로서 책이 출간이 되면 매 회마다 500부가 정부의 문화 공보부에 납품이 되는 아주 훌륭한 문예지라는 설명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자부심을 갖게 해드리고자 한국의 250여 문예지 중 다섯 개의 유명 문예지라는 설명을 드렸던 추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언젠가는 문협회장 직에서 물러나겠다 했더니. 회장님이 문협을 이끌지 않으면 누가 문협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느냐면서 흐느껴 우셨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저의 어머니만이 슬피 울어줄 그 울음소리 지금도 잊을 길이 없습니다. 창립에서부터 6년이란 세월을 이끌어온 문협, 메말라가는 동포사회의 정서함양과 민족의 정체성 고양에 일조를 하고자 애를 태우는 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읽으셨던 여사님이었습니다. 그 때 여사님께 말씀했었습니다. 울음을 그치시면 한번만 더 봉사하겠다 하였더니 울음을 그치시고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이 어이 저 생애에서 잊을 수 있는 일이 되겠습니까.


지난 8년간 병마와 싸우시면서도 저의 조그마한 건강에도 신경을 써주시던 여사님. “회장님 제가 이 세상 떠나면 꼭 조사를 써주셔야 합니다”란 말씀을 몇 번을 하셨지요. 회장님이 계실 때 제가 세상을 떠나야 조사를 써주실 텐데, 를 반복하시던 모습 어이 제가 잊을 수 있습니까. 아 부끄럽고 부끄러운 생을 영위하는 이유식 이를 그렇게도 끔찍이 사랑하시고 격려해 주시던 여사님은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길을 떠나셨습니다.


훌륭한 수필을 쓰신 자해 여사님 제가 주장하는 수필의 진수는 살아가면서 엮는 생존의 애환을 진솔하게 파헤쳐, 깊고 얕은 곳과 슬프고 기쁜 곳 외롭고 소외된 부분을 용광로에 녹여 풀무질을 하는 것이라는 것, 즉 내 것을 털어내고 비우면 남의 것이 더해지고 커지며 그 속에서 참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수필을 쓸 수 있다는 저의 지론대로 수필을 쓰신 자해 여사님 존경과 경의를 드립니다.


아울러 설한에서 피운 꽃이라는 첫 수필집에서 "타인의 나라에 살면서"라는 주제의 글에서 여사님은 첫째, 한국 사람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으며 살아가자. 둘째, 이 캐나다의 법을 잘 지키며 살아가자. 셋째,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리라. 넷째, 나의 건강을 잘 지키자, 라는 생존의 좌우명을 천명하시면서 살아오셨는데 이렇게 황망히 저의 곁을 떠나심의 애절함을 한편의 조시로 대신코자 하니 송구함뿐입니다.


자해 여사님의 영면에 명복을 기원 드리며,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저의 이야기만 했다고 돌멩이를 날려도 우리의 인연의 소중함을 고이고이 간직하고자 인생길 산책의 필을 놓습니다. 

 

 

 


자해여사님 영전에 받치는 조시

 

 

로키산의 여명

 

 


로키산의 바다와 자색 빛 석양노을
파아란 하늘 위에 자줏빛 구름의 눈물이 쌓여 갑니다.
자상하시고 자애로운 사랑의 천사
내 자신의 병마와 고통 속에서도
남의 건강과 고난을 걱정하시는 자애의 천사
저에게 눈물만 남기고 님은 저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승길 저승길의 석양에서
저의 애절한 마음은 바람으로 온 천지를 유영한답니다.
인연의 갈대밭에서 휘날리는 꽃잎의 연가
심금을 울려주는 사무치는 따스한 웃음
그 웃음 그 목소리 잊지 못하는 이 마음을 누군들 알까마는
허공에 아롱지는 그 자태를 부둥켜 안고 슬픔에 젖어보나 
메아리 소리는 눈물의 바다로 출렁일 따름입니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을 반추하며 
이제 제가 남을 위하여 사랑하고 베풀면서 살아갈 날이 몇 날일까를 생각하니 
저의 심장도 님의 곁에서 멈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공수래 공수거의 생존을 절감하며 
최근 제가 읽은 글 중 <정목> 시인의 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페러디해 봅니다.

 

가신 님을 그리며 저 자신의 생존은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 합니다.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남을 위한 사랑만 베풀며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님은 해 맑은 미소로 남을 위한 사랑으로 한 생을 살아 오셨습니다.
기쁜 소식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나 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 이틀이 가고 있었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베풂의 사랑만 주면서 나의 생존을 저울질을 하니 
이유 없는 눈물만 흐르는 잠자리의 베갯잇
님은 그렇게 살아 오셨습니다.

 

파아란 하늘을 쳐다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들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는 남을 위하여 얼마나 울어줄 수 있을까
하루는 길고 길어도 일주일 한달 십년 이십년은 
어이 아침 저녁같이 바뀌어지는지 
나 자신의 생존이 얼마나 남았고
보기만해도 따뜻한 눈동자를 마주볼 수 있는 사람들
석양에 꼴깍 해가 떨어지듯 우리의 생존도 
갈 곳을 모르는 보해미안이 되었습니다.

 

생존의 뒤안길에 남겨진 보람찬 눈동자
님의 환상이 천상에서 빛날 날을 기다리며
봄 꽃 아지랑이의 아롱거림 속에 님의 영靈이 환생할 그 날
우리 다시 만나자 약속을 하며 허허로이 떠나신 님이여 
님과 저의 생존의 파노라마에 눈물 자욱이 선연 합니다 
제가 그리는 업보는 천상에서 피어난 사랑의 꽃 입니다 
님이여 부디 부디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곳에서 근심 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영면을 하소서.

 

 

(20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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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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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5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

 


 지난 4월 6일(금) 오후 8시 캘거리 다운타운 잭 씽어 홀(Jack Singer Hall)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이 공연되었다. 60년대에 즐겨 보던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에 이 홀 1층과 3층 그리고 발코니를 메운 관객이 옛날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듯 환상에 젖어 드는 밤이었다. 특히 ‘케서린’이 지휘한 캘거리 소년 소녀 합창단이 도레미 송을 부를 때는 전 관객이 같이불러 줄리 앤드류스를 상상하며 한순간이나마 평화스러운 행복감에 잠기었다.

 

 

 

 


 이날 공연의 지휘자 폴 냉포드(Paul Langford)는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싱어와 지휘자로 관객을 매혹적으로 리드하여 용광로의 불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미주 전역을 순회하는 25 여년의 연예활동으로 그의 명성은 미국이 낳은 명연예인으로 각광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상대역인 다이안 페닝(Diane Penning)은 캐나다가 낳은 줄리 앤드류스로서 온타리오를 중심으로 영화 음악의 아이콘으로 무대를 장식해 주고 있어 이 둘의 앙상블은 관객을 더욱 환호케 하는 밤이 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5년 오스트리아의 촬스부룩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고있다. 이 촬스 부룩이란 타운의 아름다움은 그 곳을 가보지 않고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필자는 20여년 전 이곳을 관광하며 세상에 이렇듯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곳이 있음에 놀란 적이 있다. 이곳에는 모찰트가 출생한 생가가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맑고 맑은 계곡물 옆에 모찰트의 아파트가 있다. 이층에는 모찰트의 생가였다는 메모 한 장의 기록물 사인만 붙어있는 초라한 아파트다. 그의 동상도 찾아볼 수 없고 또한 기념관 하나 찾아볼 수 없어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


 이 타운을 중심으로 촬영된 사운드 오브 뮤직은 뮤지컬 영화로 각광받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줄리 앤드류스의 연기와 노래는 불멸의 영화가 되어 우리의 가슴 속에서 숨쉬고 있다.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마리아’가 수녀가 되고자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하지만 자유분방한 마리아는 수녀원의 수녀가 되기에는 그녀의 성품이 이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는 수녀원 자체에서도 하나의 골치덩이가 된다. 마리아의 성품을 파악한 수녀원 원장은 수녀원에서 그를 ‘폰트랍’ 대령의 7명의 자녀의 가정교사로 보내게 된다. 군대식 가정교육을 받은 폰트랍 대령의 7자녀의 교육을 맡은 마리아는 사사건건 폰트랍 대령과 의견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폰트랍 대령이 집을 비운 날에는 마리아는 규칙적인 가정 교육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을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교육방법, 즉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법을 택한 교육으로 전환함으로 아이들은 마리아의 교육 방법을 좋아하게 된다. 


 출장에서 돌아온 폰트랍 대령은 아이들이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을 보고 마리아의 교육방법이 옳지 못하다며 두 사람은 가끔 마찰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마리아의 교육방법이 신선하고 아이들이 좋아함을 알게 된 폰트랍 대령은 차츰 마리아와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뮤지컬로 이어지는 마리아와 폰트랍 대령의 결혼은 이어지고 독일의 나치가 오스트리아와 합병되자 폰트랍 대령의 가정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오스트리아를 탈출하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이날 이 뮤지컬 공연을 감상하며 생각을 해본다. 도대체 우리 인간들에게 사랑이란 추상명사는 무엇을 의미함일까. 사랑없이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인간들, 그 사랑이란 즉 나 자신으로 완성되며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랑의 완성을 위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내가 진정한 사랑을 주었을 때 진정한 사랑을 받음이 옳고 정의로우며 또한 그 사랑을 받음이 당연하리라는 생각이다. 


 사랑이란, 결국 내가 주는 사랑은 나 자신을 위한 사랑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줄리 앤드류스가 수녀에서 가정부로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폰트랍 대령의 사랑을 얻어 결혼을 하는 과정은 순애의 진정한 희생의 결론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이영화의 주인공 줄리 앤드류스와 폰트랍 대령의 사랑은 참을 수 없는 질곡의 터널 속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 속에서 해피엔딩의 결실을 맺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다.


 2시간의 뮤지컬 공연은 끝나고 캘거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홀을 메운 관객이 일제히 일어서서 에델바이스를 합장한다. 참 아름다운 밤, 봄이 오고 있음을 시샘함일까? 밖에서는 겨울의 진눈깨비가 뿌리고 있었다. 


 *에델바이스는 국화 종류의 꽃으로 노래의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내 마음 갈 곳 없어/그리움도 둘 곳 없어/바람에 띄워 보낸다/내 아픈 기억들/가진 게 너무나 없어/뼈저리게 서러울 땐/사랑도 우정도 내겐/사치라 믿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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