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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이유식의 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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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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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72792
10333
2019-02-14
소유할 수 없는 사랑 안터로프의 계곡

 

 

 

라스베가스에서 5시간 차를 달렸다. 사막을 빠져 나온 차는 붉은 산, 하얀 산, 브라운 산, 산이 마치 인종들의 피부색을 나타내는 양, 시루떡을 겹겹이 쌓아 놓은 것 같다.


이 산속에는 반드시 귀한 비밀과 전설이 아름답게 쌓여있으리라. 억겁의 역사가 잠들어 왔기에 어느 누가 이 토양의 성분을 아름답게 분석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억겁을 살아온 그 산들의 층계속에 너와 나의 계단은 라스베가스라는 도시를 잉태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나 알고 있는 라스베가스라는 도시는 환락 속에 밤과 낮이 없다. 아마 지구상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환락과 향락의 도시가 아니려나 그 환락과 향락의 신음은 돈, 범죄, 도박, 섹스의 광란 속에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악의 도시 즉 SIN CITY라 명하지 않는가. 


밀려왔다가 밀려오는 밀물 썰물 남쪽은 아리조나 주, 유타 주, 그 위쪽에 네바다 주 그 사막의 분지 속에 쌓인 라스베가스 3개 주의 합일 점을 찾은 곳, 그 곳이 내가 찾아가는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사랑 안터로프 계곡의 동굴이다. 태양은 그렇게 떴고 인디언의 멍한 눈동자가 나를 울린다. 나의 눈물 속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랑을 그리며 태양은 떠 오른다.


버진 강(Virgin River)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 19살 처녀의 가슴 속에 흐르던 물은 억겁을 흘러온 물이련만 지금은 강물이 메말라 버렸다. 관광안내원의 의미 있는 농담은 자못 나에게 큰 뜻으로 전해진다. 즉 이 강이 숫처녀 강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한 것은 강물이 멋지게 흐를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지금과 같이 강 바닥이 보이 듯이 물이 없음은 무엇을 뜻하느냐는 질문이다. 


영어로 버진은 새것 즉 처녀 순수하고 깨끗함을 뜻하는데 이 순수하고 깨끗함은 흔히 남자를 경험하지 않은 숫처녀의 몸인데 라스베가스가 저렇듯 환락으로 물드니 이 세상 어디에 깨끗함이 있겠는가. 오염되고 썩어가는 인간사를 대변하는 것 같이 강물도 숫처녀의 깨끗함을 지키지 못하고 말라 틀어지고, 그 후 볼품이 없는 마른 강이 되었다 한다. 


브라질에서 이민을 왔다는 이 관광안내원의 설명은 자못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각을 더듬으니 아담과 이브의 잘못이 인간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성경 구절과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말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이 강은 언제나 처녀의 강 깨끗한 강물로 흐를 텐데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강물이 말라 물이 흐르지 않음은 인간사가 늙고 병들고 말라서 죽는 강물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세월은 못 속이는 것일까. 그렇게 흘러내리던 물이 메말라 흐르지 않는다. 사람도 늙어가면 젊은 시절에 넘쳐나던 젊음을 구가하던 처녀 총각의 맑은 정신의 물, 그 깨끗한 물은 간 곳이 없어졌다.


강물이 마른 길, 강물 중앙에 끝 없이 뻗은 고속도로는 콜로라도 강물의 원류가 되어 흐른다. 그 강물의 원류의 깊은 곳에 한 때는 사슴, 산양, 산돼지 뛰놀던 산야 안터로프 계곡이 사슴의 발자국같이 강물에 쌓인 산야에 콜로라도 캐년의 발전소가 돌아간다. 


 이는 사슴 발자국의 형상의 물의 만남이지만 그때 뛰놀던 사슴과 다른 동물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가끔 인디언의 영가 소리 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그 사슴의 계곡 굴 속, 붉은 바위의 깊은 곳, 그 깊은 곳에 인류는 환희를 한다. 이 진귀한 모습의 자연의 아름다움은 누구의 작품이런가. 인디언 소유의 이 관광지는 인디언의 안내가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라 관광객이 희소하지만 여름 한철에는 관광객이 줄을 서서 찾는 곳이다.


나대로 이 붉은 동굴을 만난 첫 인상은 풍화 속에 억겁의 전설이 쌓여왔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억겁의 역사의 흐름을 사람들은 아는 듯 모르는 듯 자연은 말이 없고 새들의 울음소리 찾아 감각의 정서 사유의 세계가 절절히 융합된 노랗고, 하얗고, 푸르고, 빨간 산 계단을 유지하는 풍화작용은 새로운 미학을 인류에게 수줍음 씻어내고 선을 보이고 있다.


나의 생각은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적 염세주의, 니체의 영겁의 회귀론에도 불교의 존재론적 윤회는 오늘의 안터로프 캐년의 동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움직이고 있는 역사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표시임에 틀림없다. 나 여기서 나의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은 어디에서 신음을 하며 이 밤 어느 누구를 위하여 옷을 벗을까. 오 안터로프의 아름다움이여!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72713
10333
2019-02-13
귀향길

 
귀향길
 

 

 

<구정을 맞이하여>
억새풀에 이슬꽃 맺히던 아침
그 싱그러운 아침에
태양이 떠오릅니다

 

미로의 정처없던 길
돌고 돌아 찿아왔던 길
지금에야 나를 찾아왔습니다

 

타는 목줄을 식히지 못하며
옛 그림자를 그리며
동구밖의 새들의 울음소리 들었습니다  

 

그믐밤에 소쩍재 소쩍이고
북두칠성 당고개의 언덕에
찔레꽃이 피었더랍니다 

 

누군가를 못잊어 발돋움을 하며
찾아왔던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이
눈물임을 이제사 알았답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72381
10333
2019-01-13
이슬꽃 찬가

 

이슬꽃 찬가

 


떠나왔던 생존은 다시 찾을 수 없다
흘러간 연륜이 너무 그리워
언제나 살아온 날의 뒤안길을 후회한다

 

태양은 떴다가 사라지지만
사랑을 주면 상처만 남는 진실도 있더라
빚진 인생은 갈 길이 없기에
떠나는 날까지 인고의 서러움이 있다

 

행 불행의 해탈의 애증
잊지 못할 사람을 잊지 못함은
피어나는 꽃들의 슬픔이다

 

밤이 낮보다 좋은 것은 혼자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있기 때문이고
이승의 여행 길은 윤회의 신비로움이다

 

갈대 숲에서 들리는 함성
바람같이 사라져가는 운명 앞에
생존도 이슬꽃 피어나는 낙원이려니

 

 

 

<시작의 산실>


44년간의 이방의 생활에서 처음으로 혹독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가볍게 생각했던 독감이 폐렴으로 전이가 되었다. 호흡에 곤란을 느끼고 힘이 없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이 나야 하야는 트라우마 속에서 가정의를 찾았다. 가정의의 진단은 아주 심각한 폐렴이라며 놀란다. 


우선 항생제를 일주일간 처방을 해주고 X-RAY 촬영을 했다. 허파가 허옇고 연한 구름에 덮인 것같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피를 세 번 뽑아서 검사를 했다. 흰피톨(백혈구)이 상승되어 있어 적피톨(적혈구)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에 힘이 없다 한다. 


한국에 나가서 빠른 진단을 받고자 하다는 나의 의견에 의사는 분명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의사는 한국에 가라 가지 말라 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 YES or NO의 분명한 의견도 주지 못하는 의사의 의견을 상쇄하고 한국에 나갔다. 


한국은 모든 검사가 빨리 이루어지기에 일원동 삼성병원을 찾았다. CT를 찍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나의 정신상태는 한마디로 내가 나 자신을 잃은 트라우마에서 수많은 망상을 삼켰다. 행여 나쁜 병으로 전이가 되었다면, 나의 생은 어찌될까.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또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우선 현재 진행형인 나의 문학상은 어떤 운영이 될까. 


내 생의 뜻있는 결실을 맺고 싶고 무엇인가 외롭게 살아가는 해외동포들에게 정서함양과 동포애와 조국애를 심어 줌에 일조를 하고 민족 문화의 승계를 위한 우리 글을 후세들에게 영원히 지속함에 기여하고 싶은 나의 대망도 물거품이 되리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가족의 생계도 생각을 하나 부족한대로 남에게 돈 꾸어달라 소리를 하지 않고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 놓았다는 생각을 하니 가족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사라진다. 그저 생존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에서 될 대로 되라는 상념이 나를 자학하게 한다.


한달 사이에 몸무게가 10파운드 빠졌다. 다리는 통통히 근육이 붙어있는데 팔의 근육은 기타 줄이다. 행여 나쁜 질병으로 전이가 되었다면 나의 이승의 생활은 끝이 나리라는 상념 속에 하루하루를 넘겼다. 


결과는 나쁜 질병으로 전이가 되지는 않았으나 6개월간 요주의 사항이었다. 한숨을 쉬며 아직 신이 이 못난 사람을 좀더 이승의 생활을 하라는 명으로 생각하며 한숨을 쉰다. 


상기 작품은 병마와 싸우면서 생과 사에 대한 나대로의 상념을 시로 써 보았다. 내가 이 글을 상세히 쓰고 있음은 나이가 60이 넘으면 어느 누구나 폐렴이란 병을 가볍게 보지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국에서는 폐렴으로 인한 사망률이 세계 2위에 속하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네 인생은 아침 이슬꽃과 같다. 이슬꽃이 태양이 뜨면 자취 없이 소리 없이 사라진다. 억겁의 세월 속에서 사람의 생존이란 이슬꽃과 같음에 당황을 한다. 그리고 나 너 없이 허접한 생존의 뒤안길에서 남은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는 인간의 생존, 그 속의 희노애락의 결실은 무엇일까? 잘 나고 못 나고 많고 적고 전부가 이승의 생존이 끝나면 남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나 자신을 모르고 살아온 지난날이 눈물겹다.


 이슬꽃의 찬가가 끝이 나면 흙이 되고 흙이 됨은 곧 낙원이 되리라. 무아의 경지에서 좀 빨리 가거나 늦게 간다는 그곳 낙원의 세계는 죽음이 아닐까. 흙, 흙을 밟고 살아가는 인생들, 흙이 나의 육신이고 나의 생존임을 다시 한번 각인해 본다.


흙, 흙, 흙을 밟으며 내 마음은 흑흑 흐느껴 울어본다. 내가 밟고 살아가는 흙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가? 내가 흙이 되고, 그 흙 속에서 인류가 일용할 양식을 생산하고 이렇듯 윤회를 하면서 인생살이는 한 생애를 살아가나 보다. 


이슬꽃의 슬픔이여 그 슬픔 속에 이슬꽃들의 찬가를 불러 본다. 언젠가 낙원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기에 생(生)과 사(死)를 두려워하지 말고 내일을 위하여 용기 있는 이슬꽃 찬가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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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7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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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5
[윤동주 서시 문학상]해외작가특별상 수상 소감

 

 

얼마만인가. 언젠가 작고한 황금찬 시인이 운영하는 '한국문학 세계화 추진 운동본부’에서 나에게 우리 문학을 세계화함에 일조를 한다고 문학상 대상을 준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아득한 옛날의 일인 것으로 기억된다. 


상이란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상 같지도 않은 상을 받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나의 생각은 상에 대하여 연연하지 않았음도 사실이다. 가끔은 내가 알지 못하는 단체나 문예지에서 상을 주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양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문학이란 인생사 같기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값어치 있고 나의 양심에 부담감이 없는 생이었나를 반추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음도 사실이다.


내가 40여 년 이상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는 곳은 캐나다 로키산맥 밑이다. 나는 가끔 내 삶을 뒤적일 때가 있었다. 특히 금년 같이 일찍이 찾아온 겨울 30센티 이상의 눈이 산과 들을 덮은 이 황량한 북극, 오늘 따라 헤르만 헤세가 눈 쌓인 알프스를 보며 생존에 참 맛을 느꼈다는 말이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나 또한 생각 한다. 알프스보다 더 아름답게 쌓인 로키산의 눈을 바라보며 로키를 넘지 않으면서도 생존의 참 맛을 느낀다 할까. 


컴퓨터를 여니 시산맥 문정영 발행인께서 보낸 소식, 내가 금년도에 윤동주 서시 문학상 해외작가특별상을 받게 되었다는 통보다.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이 소식이 나의 시신경을 울렸다. 이 얼마만인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황 금찬 시인이 주는 상을 받은 해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상을 받을 일을 했는가 하는 망상이 나를 괴롭혔다.


이 상은 광주일보와 계간 시산맥이 공동주관으로 금년에 3회째를 맞이 하고 있다. 일회의 특별상은 미국의 최연홍 시인, 닥터 최는 해외 동포들 어느 누구나 존경하는 훌륭한 시인이다. 이와 같은 거목이 받은 상을 이유식이도 받게 된다 하니 무척 영광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언젠가 최연홍 시인이 "민초의 마음이 동주의 마음을 닮아서 자네를 윤동주 문학상에 추천하지"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솔직하게 그냥 지나는 말로 알았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인생사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데 내 어이 내 머리를 깎으랴,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 지인이 있다는 것으로 감사를 했었는데!


기실 어디에서 주는 상이던 윤동주 시인의 상, 내 얼마나 그리워하며 기다렸던 상인가. 윤동주 시인의 생활철학을 내가 어이 논하랴마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너무 좋아 연길 용정 명동 윤동주 시인의 생가도 두 번을 찾았지 않았던가. 


하늘을 보고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려는 그의 생존 철학, 이 또한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아니런가. 나아가 그가 민족을 위하여 시 한편 남기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의 빛, 그 빛은 나의 우상이 아니었던가. 


나의 생각은 내가 윤동주만큼 큰 시인은 못 되었다 해도 메말라 가는 해외 동포들의 정서함양을 고취코자 무엇인가를 남기려는 일념이 민초 해외문학상을 제정, 현재까지 11년을 운영해 오지 않았던가. 


지난 11년간의 나의 악전고투의 고난과 희생이 이 상 하나로 보람을 안겨준다. 뿐만 아니라 이제 저승에 가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면 선배 시인님 같은 명시는 못 남겼어도 우리 글과 문화를 승계 발전코자 750만 해외 동포들에게 민족 천년 대계의 뿌리를 심어주기 위한 노력에 일조한다는 신념으로 나의 생을 살아 왔다고 기꺼이 말을 하리라.


조용히 가슴에 손을 대고 말을 한다. 민족이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족이 있으면 문학이 있고 문학이 있으면 그 민족의 글과 말이 있기에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민족의 정체성의 지속적인 유지 발전은 우리글 우리 말이 세세 연연 영원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각인해 보는 순간이다.


이 뜻있는 큰 상을 제정, 나에게 큰 상을 내리는 시산맥 문정영 발행인, 그리고 광주일보와 심사 위원님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첨언을 한다면 좀더 해외 동포들의 정서 함양과 감정 순화 및 정체성의 지속 유지 발전에 일조를 하라는 격려로 생각하며 겸허히 옷깃을 여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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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72056
10333
2018-12-14
이몽룡과 이유식의 고향 경북 봉화

 

 

 

 

<춘향전의 이몽룡은 봉화인. 나의 고향 경북 봉화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같은 고향의 수필가 박성룡 님이 보내왔다. 독자들도 흥미로 한번 읽을만하다는 생각에서 여기에 옮겨본다. –민초 이유식>

 

 춘향전의 ‘이몽룡’ 탄생지가 봉화(1595년). 이몽룡의 본명 성이성(成以性)은 아버지 성안의(成安義)를 따라 13세 때(1607년) 전남 남원에 갔다. 성이성은 남원에서 17세까지 4년간 성춘향과 연애하며 살았다고 하며, 그 후 아버지가 광주 목사로 전임함에 따라 광주로 갔으며 거기서 아버지가 퇴임해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성이성도 고향에 왔다.


그후 그는 공부해서 22세에 경시(京試)에 합격하고, 33세에 문과에 급제해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성이성은 28년 만에(45세)에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의 암행어사로 남원에 갔을 때는 춘향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성이성은 4년간 남원에 있을 때의 스승이었던 조경남(趙慶男) 장군(1570-1641)을 광한루로 모시고 주안상을 차려놓고 마주하며 옛날얘기를 안주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춘향과의 연애에 대한 얘기를 털어 놓았다.


조경남은 장군으로서 전쟁의 잡화록을 잘쓰던 사람이라 이 실화를 설화(소설)로 잘 엮어서 만든 것이 춘향전(성춘향과 이몽룡)이다. 전해 내려오면서 수정하고 수정해서 오늘날의 고전소설로서는 1, 2등에 속하는 유명한 ‘춘향전’이 되었다고 한다.


지난달 10월 22일 경남 하동에서 열린 수필문학추천작가회 강석호 회장의 문학비 건립 제막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남 남원의 광한루를 구경했다. 광한루에는 춘향관이 있었는데, 그 안에 춘향의 영전과 그 좌우에는 춘향의 시와 이몽룡의 시가 걸려 있었다.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계서당에서도 이몽룡(성이성)의 시가 결려 있다.


이몽룡이 봉화인(人)이란 것을 어렴풋이 알기에 광한루의 지인들에게 여기 춘향관은 있는데, 이몽룡관은 어디 있는가? 하고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남원 광한루는 전 세계인들의 관광지가 되어서 일년 사시사철 관광객이 모여들고, 공연장이 별도로 있어서 날마다 춘향전의 판소리와 사물놀이를 공연한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많은 관광객이 모인 가운데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원은 춘향전 덕에 빛나고, 춘향전 덕에 성춘향이가 빛나고, 춘향이 덕에 이몽룡이가 빛나고 있다. 이렇듯이 봉화도 이몽룡 덕에 빛나보자. 


 -이는 봉화의 박성룡 수필가가 보내온 이몽룡의 고향 봉화에 관한 설명이다.

 

“저는 ‘시산맥’ 시상식에 참석한 회원으로서 이유식 선생님이 해외작가 특별상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에 와서 시상식 책을 보고 선생님의 연보에서 봉화 도촌(사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봉화군 봉성이 고향이며, 지금은 서울에서 살면서 심심 소일로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시상일에 선생님을 보고 매우 감동이 깊었습니다. 또한 연보를 보니 고생도 많았으며 다방면으로 노력도 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디 계시는지요? 한국에 있다면 올해 발행한 저의 책 한 권 드리고 싶어서 편지를 씁니다. 연락처 주소를 보내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박성룡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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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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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0
아! 또 가을인가-이유식(시인.민초해외문학상 제정자)

 
 

 

 가을은 추억의 계절입니다. 살며시 웃음짓는 무지갯빛 단풍잎들이 당신의 향내로 세상을 덮어 내 슬픔 알알이 적셔내는 오솔길입니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입니다. 억겁을 쌓아온 인연들, 은하수 길 검은 밤에 묻고 당신을 위한 기도로 눈물 흘려보는 낙엽 굴러가는 소리입니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입니다. 투명한 밤하늘 별을 헤는 당신의 숨소리 그리움 가득히 내 가슴을 저며오는 코스모스 만개한 들판길입니다. 


가을은 황혼 길에서 만나는 기화요초의 아름다움보다 채색되어가는 단풍잎을 보는 눈물의 계절 입니다.

 

아-아-- 이 가을에 불타버린 나의 심장은 당신이 남기고 간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헤아리는 나의 슬픔입니다. 


다운타운에서 "Do you have a Change?”하며 손을 내미는 인디언을 볼 때, 라이솔에 취하고 취해 썩어가는 인디언의 얼굴을 볼 때 애타는 나의 심정은 착하게 감사하며 베풀며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곱씹어 봅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과 낙엽이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슬프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은 이 가을 어느 하늘 아래에서 무엇을 할까? 소식 없는 많은 사람들의 안부가 찡하게 코끝을 찔러옵니다. 


아름다웠던 그리고 슬펐던 인연의 고리에서 추억을 남겼던 못잊을 사람들을 더듬으니 가을 바람이 나를 찾아옵니다. 권력이 있다고, 얄팍한 지식이 있다고, 돈이 많다고 뻣뻣하게 어깨에 힘을 주던 사람들. 나에게 아름다움만 과시하던 어느 여인. 내가 좋아했던 그 여인도 이 가을 멀리 떠나는 기적 소리에 적막이 앗아간 밤의 고독을 인식할 것입니다. 


 또한 미워하고 시기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연줄의 꼬리로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야 된다는 인과응보의 진리를 한번쯤 생각할 수 있다면 가을이 주는 문턱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생존의 진미를 달관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들녘에는 헤이(Hay) 덩굴이 구르고 이삭이 익은 광야에 황홀한 모자이크 젖줄 같은 눈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보우강변 로키 산맥을 넘은 헐벗은 구름 한점 안스럽게 나를 어루만집니다. 


 생존의 터널로 이어지는 함성들, 태초에 아담과 이브를 원망하던 생존의 첫발, 그 후손들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걸어가는 걸음걸음 낯선 고장의 눈물을 맛보고 얄궂은 길목에서 희로애락의 인생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막걸리 한 병들고 장미꽃 한 다발 안고 못 잊을 사람을 찾아갈 수 있는 가을 하늘이 있기에 사람과 사람들은 만나면서 살아가며 웃고 울고 있나 봅니다. 


그 길이 증오의 길이든 저주의 길이든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설사 나와 뜻이 같지않다고 해도 미움을 털어버리면 아름다움만 있을 것입니다. 
생존이 어렵다 해도 생각이 다르다 해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양을 쌓을 수 있다면 서로가 의지해 살아 왔던 태고적 그 옛날 서로를 아끼는 이웃들이 되어 살아 가고 싶습니다. 


인간이 살아 간다는 것, 살아있다 함이 무엇일까? 선뜻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듯 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에 나는 답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쌍한 것은 태어났기에 한번은 꼭 죽는다는 운명입니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공수래공수거… 그런 결론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항시 서운하게 애타는 심정으로 오늘과 내일의 아비규환 속에 하루를 넘겨야 합니다 


순간을 생각하면 내가 떠날 날, 내가 왔다가 가는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면 1분1초라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고 무엇이든 사회를 위하고 남을 위하여 기여하며 살고 싶지만 뜻과 같지 않음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길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한 사람 한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를 심어주고 나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내 가슴에 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불교의 윤회 교리에 의하면 다음 세상에서 태어나 아무도 모르는 길목에서 우연히 만남이 있을 것을 상상하며 정답고 친절한 마음가짐으로 사람들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언제나 왔다가 떠나간 계절이었고 사람들도 왔다가 갔는데 이 가을에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싶고 조국과 내가 속해있는 사회에 무엇이던 능력껏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죽어야 될 날이 가까워 왔음일까?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주변의 사람들께 섭섭한 감정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아 또 가을인가? 


이방의 들녘 헤이 덩굴을 감싸고 도는 노랑색의 단풍만 보며 뒷뜰에 아름답게 하늘하늘 연약한 몸짓으로 나를 부르던 코스모스가 지난 밤 무서리에 시들어 갑니다. 


 어쩐지 나도 모를 눈물이 흐릅니다. 황혼 길이 겨울을 맞이할 운명의 순간을 그리며 무작정 눈물을 흘려봅니다. 아- 아-- 또 가을이 왔고 떠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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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톨스토이와 땅과 나(하)

 

 

 

 

(지난 호에 이어)
 그 시절 일류 직장을 팽개치고 미화 200 불 들고 공부 좀더 하겠다고 떠나온 조국, 그 혹독한 고난과 역경과 싸우면서 캐나다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결과는 무엇인가 내 놓을 것 하나 없는 생애다. 머지않아 한 평 남짓한 땅에 흙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닐까 싶다. 


 다시 돌아가서 땅을 보았으니 땅에 대한 투자분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내가 본 이 땅은 산림자원뿐만 아니라 약 10만 평에는 건축용 자재로 필요한 자갈이 수백만 톤 매장되어 있고, 100만 평에는 소 먹이 사료(Hay)를 재배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울창한 산림자원이다. 


쉽게 생각해서 산림자원은 원목으로 채벌하여 팔고, 자갈은 채취하여 밴쿠버나 다른 도시에 건축용 원자재로 팔고, 자작나무는 유럽에서 구하기 어렵다니 유럽에 가구용으로 수출하고, 조국의 가난한 사람들 50여 가구를 모셔와 원예든 채소든 목장이든 맡기면 이 황무지 같은 기름진 땅은 빛을 보리라. 


뿐만 아니라 좁은 땅덩이인 조국의 현실을 본다면 이 200여 만 평이 대한민국의 땅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종착역은 ‘톨스토이’ 같이 한 평 남짓한 땅에 묻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모든 의욕과 욕망은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부서지고 만다.


또한 해놓은 일 하나 없는 나의 삶이 초라해 몸서리를 친다. 내 나이가 50대라면 인생을 걸고 한번 도전하련만 세월의 뒤안길에서 한숨만 나온다. 여기 누가 있어 좀 더 야심 찬 꿈을 꾸는 사람은 없을까. 이 캐나다는 아직도 무한한 기회가 주어진 땅이다.


우리네 인생의 갈 길은 어디일까. 사의 찬미를 부르며 현해탄에 “돈도 사랑도 명예도 다 싫다”며 생을 마친 윤심덕이 떠오른다. 한 평 정도에 묻히는 육신인 것을 알면서 오늘도 어제도 허덕이고 있는 나 자신이 이렇게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허욕의 야심 때문에 죽어간 ‘바흠’의 생애와 자기의 생애를 참회하고 죽을 것을 예감하며 한 평짜리 땅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종말을 예언한 소설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톨스토이의 생애를 한번쯤 재조명해 보고 싶다. 


행복이란 구하고 찾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욕망과 야심과 불만을 없애고 겸허한 마음으로 참회하며 절제하는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끝으로 톨스토이는 그가 떠날 때까지 참회의 길을 걸으며 살아왔다. 그의 세계 인류를 향한 사랑과 헌신의 빛이 항상 번민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톨스토이는 대문호로 그치지 않고 생애를 통해 반성하고 참회하고 인류를 사랑하며 항시 겸허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절제된 삶을 영위하면서도 어느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치도 않으며 일생을 마친 그의 인격을 흠모하지 않을 자 이세상에 있으랴.


톨스토이의 명복을 빌고 있는 이 나그네 시인이 있음은 톨스토이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결론을 맺는다.


 톨스토이는 1910년 10월 31일 가출하여 몇 년을 유랑하다가 ‘야스타포프역’에 하차 역장의 집에서 임종을 했고, 당시 나이는 82세 였다. 2014년 필자가 대문호의 생가를 찾았을 때 ‘야스타포프역’이란 이름은 ‘톨스토이역’으로 개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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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톨스토이와 땅과 나(중)

 

▲톨스토이

 

 

(지난 호에 이어)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그 소설 내용을 다 기억하기는 어려우나 내용의 개요는 주인공 ‘바흠’이란 자가 ‘바스카라라’라는 곳에 찾아갔다. 그곳 촌장은 '바흠'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1천 루불만 지불한다면 해가 뜰 때 출발하여 해가 질 때까지 밟고 오는 모든 러시아의 땅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제의를 한다.


이에 ‘바흠’은 한치의 땅 이라도 더 많이 자기 소유로 만들고자 걷고 또 걸어서 자기가 걸은 땅에 표시를 하고 해가 질 무렵 출발지점에 도착 하지만 지쳐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 이에 촌장의 하인이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정확히 자로 재어서 무덤을 만들어 준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허욕 때문에 제명에 죽지 못한 ‘바흠’이 묻힌 땅의 면적은 불과 한 평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 바흠의 죽음과 그의 생애를 한번쯤 음미함도 뜻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대문호 ‘톨스토이’의 생애를 보면 그는 아내와 60여 년을 호화저택에서 부유하게 살던 것을 청산하고 인생 무상과 허무 속에 자기의 아내에게 간단한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간다. 


그 메모의 내용은 “우리는 한평생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내가 이렇게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아 오는 동안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고난적인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사치스럽고 호사한 삶을 사죄하기 위한 마음에서 방랑의 길을 떠나련다. 이는 내 생애를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한 속죄의 방편으로 생각한다. 나를 이해 해달라”며 집을 나가게 된다. 


그의 아내는 백방으로 남편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천신만고의 끈질긴 노력으로 ‘톨스토이’를 찾게 된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그의 아내를 만나게 되자 다시 멀고 먼 길을 향해 떠난다. 결국 톨스토이는 모스코바에서 300 Km 떨어진 그의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생가 뒤뜰 정원에 봉분도 뚜렷하지 않은 무덤에 잠들어 있다.


필자는 2014년 모스코바에 갈 일이 있어 그의 비석도 없는 무덤에 장미꽃 한 송이를 놓고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린 기억이 있다. 이렇게 톨스토이의 생애를 더듬어 보며 인간들의 욕심과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를 생각해 본다.


 결국 종말은 한 평 남짓한 땅에 묻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데 어이 그렇게 많은 것을 갖고자 투쟁을 해야 하나 하는 번뇌가 가슴을 친다.


 여기에 우리 이민사회의 형태는 어떤가. 이 척박한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서로 아끼고, 격려하고, 성원하고, 지도하는 사회로 거듭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도 못한 면도 있어 항시 안타까움을 느낀다. 


잘나고 못나고, 가진 것이 많거나 적어도 한 평짜리 땅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운명을 어찌하랴. 2일간 5 스타 호텔 특실에서 VIP 대접을 해주는 친구나 VIP 대접을 받는 나 자신이나 초라하게만 여겨졌다. 


창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값이 비싸다는 중국요리를 이 촌놈에게 대접하는 중국인 친구가 그저 안쓰럽고 마음이 편치 않다. 썰렁한 호텔방에 혼자 누우니 살아온 내 인생 여정을 반추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 적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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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1
톨스토이와 땅과 나(상)

 
이 글은 15여 년 전에 쓴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이 글을 공지함은 나름대로 조국의 현실이 암담하다는 생각에서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많은 분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정학적인 면에서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나의 조국, 땅 덩이는 좁고 민족의 DNA는 살기 위한 투쟁과 경쟁,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파오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속담의 진실, 끊임 없는 질시와 모함으로 이어져 왔던 생존의 역사, 벼슬아치 들의 끊임 없는 파렴치한 권력욕으로 민초 들은 갈 길을 잃고 살아 왔지 않는가. 나 일찍이 넓은 땅에서 깊은 숨을 토해 내고 살아가고 싶어 먼 나라 이방의 민초로 살아오면서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정의와 진실 정직한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보며 나의 생존의 일 부분을 나열해 본다. 한 마디 더 첨언을 한다면 200불 들고 떠난 조국 그 피눈물 나는 고난과 살아가기 위한 투쟁 속에서도 나 진실로 조국을 원망해 본 적이 없고 우리 민족을 항시 사랑하며 내 능력껏 조국과 동포들에게 바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음을 나의 양심을 두고 부끄러움 없이 말을 해 본다. 원망을 했다면 조물 주는 어이하여 우리의 조국은 이 캐나다가 가진 모든 것의 10분의 1 만이라도 더 주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필자 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을 경영하는 중국인 친구에게 전화가 왔었다. 내용인 즉 여의도 땅의 6 배라 할까 200여 만평의 땅을 좋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으니 와서 구경이나 하라는 제안이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2 박 3 일의 일정 계획을 잡고 밴쿠버에 나간 적이 있었다. 


넓고 광활한 이 캐나다 땅 옛날에는 100 만평 이상의 땅을 판매코자 시장에 광고 기사가 나오면 일본 교포들이 무조건 사들였다는 중국인 친구의 말을 들으며 차에 몸을 싣고 밴쿠버에서 장장 6시간을 달려가 땅 구경을 한 적이 있었다.


200여 만평을 14개 필지로 분할을 해놓고 BC주의 젖줄인 FRASER RIVER 에 붙어 있는 무척 기름진 땅이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의 SUV에 몸을 싣고 1 시간을 소요하며 땅 구경을 했었다. 


현재 이 땅에는 자작나무와 북극의 소나무를 비롯 울창한 산림이 우거져있어 제지회사에서 1천만 불을 지불하겠다는 오퍼가(Offer)가 있었으나 이 중국인 친구는 1천만 불에는 한이 안 차 1,500만불 이하로는 팔지 않겠다는 욕심 때문에 매매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숨을 쉰다.


하기는 2, 3년 전의 캐나다의 경기는 정말 이러다가 어쩌려나 하는 무서움 마 져 안기며 걷잡을 수 없는 성장을 했기에 부르는 것이 값이었고 Seller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으니 누군들 오늘과 같은 세계 경기의 침체를 예측할 수 있었으랴. 


그 때 제지회사의 오퍼를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기회는 가버렸고 다시 그런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특히 제지업이 사양길에 있어 어느 누구도 이 산림자원을 사겠다는 오퍼가 없어 땅 주인은 땅을 팔지 못해 숱한 노력을 하다가 나와 같은 민초에게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음을 알았다. 


얼마나 답답하면 나 같은 빈털터리에게 손을 뻗치나 하는 생각을 하니 이 친구의 입장이 안타깝다. 하지만 이 땅은 산업용, 주택용, 상업용, 농업용지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이 가능하고 필지가 분할되어 나누어서 판매를 하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실지로 이 땅 곁에는 18홀의 골프 코스가 성업을 하고, 골프 코스 주변에는 한창 주택을 건설하고 있어 시장도 그런대로 좋은 듯 했다.


일본에서 외국에 부동산 투자를 할 때는 땅덩이가 큰 것이 시장에 나오면 일본 정부에서 일본 교포들의 이름으로 무조건 땅을 매입 했었다는 데 지금은 일본도 불황이라 땅을 사들이지 않고 있다는 설명은 이해가 간다.


 땅 구경을 한 그날 저녁 온갖 번뇌 속에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땅을 소유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인류의 역사는 땅을 차지 하기 위한 투쟁으로 국가 간에도 끊임없는 영토 전쟁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그 옛날 감동 속에 읽은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 한가”라는 소설 내용이 머리를 스쳐간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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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4
제11회 민초해외문학상 심사평

 

 

 

 

민초(民草)는 재캐나다 한인 시인 이유식씨의 아호입니다. 민초는 캐나다에 40년 이상 살면서 두 가지 큰 일을 했습니다. 첫째가 사업가로서의 자리를 잡았고, 두 번째가 자신의 아호를 딴 '민초 해외동포문학상'을 제정하셔서 올해 11번째 시상을 하는 일입니다. 아울러 민초 선생은 시인으로서 7권의 시집과 칼럼집 등 다수의 저서를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상의 시상에 있어서 큰 난점은 수상 대상자가 전세계에 퍼져있다는 사실입니다. 작품의 수집과 시상에 세계가 대상입니다. 민초는 이를 위해 묵묵히 현장으로 날아갑니다. 러시아, 유럽, 중국, 몽고를 직접 방문하시고 수상자를 만나고 시상식을 뜻있게 갖기에 방문국 동포님들에게 민족의 정체성 고양과 지속 발전에 기여코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남다른 한국문학 사랑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예선을 거쳐 넘어온 다섯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심사의 난점은, 장르가 다른 작품들 중에서 한 작품을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즉 소설, 시, 수필 중에서 당선작 한편을 뽑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작품들을 비교하여 선정할 수는 없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가지고 비교 우위를 따지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문학작품으로서 완성도를 따질 때 테리사 리씨의 작품이 가장 곰삭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이 투고한 세 편의 단편소설들은 한결같이 주제와 소재 면에서 심사 숙고한 흔적이 있으며,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작품을 이끌고 있습니다.


세 편의 소설 다 주제와 소재 선택에 있어서 좀더 문학적인 구성과 분위기의 효과로 노력 고뇌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없이 달리는 기차간, 황량하게 버려진 옛 감옥의 이미지, 대양 속에 버려진 섬의 이미지 등입니다


다만 선자의 요구가 있다면, 작품전체 분위기가 시적, 서정적으로 흘러 소설이 가져야 하는 서술성이 약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소설은 서사문학입니다. 사건 전개의 시적인 묘사로 치중하기보다도 사건 자체의 심화와 절제된 서사문장으로 표현해야지 계속 시적인 영상에 사로잡히다 보면 소설적인 구성과 주제가 흐려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설적인 전개를 억제된 시적인 이미지로 풀어가는 필자의 자세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란 시인의 시적 영혼 속에 영근 이미지를 새로운 어떤 시적 공간에 운율적인 문장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란 결국 시인의 영혼 속에 영근 시적인 이미지와 음률적인 시적 언어의 내밀한 대화입니다.


강 애나씨의 열편의 시는 작품 하나 하나 강렬한 시적인 이미지를 던져줍니다. 그러나 조금 덜 다듬어진 듯한 거침이 느껴집니다. 이런 견지에서 강 애나씨의 시는 서정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 압축되고 이미지화 되었으면 더욱 감동적인 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서정성은 원래 투고된 시 자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라서 양해할만합니다. 


시인의 영혼 속의 시 세계와 채택된 시어들 사이에는 아무리 억제하려 해도 필연적으로 인간의 감정의 개입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시와 소설의 영원하고 근원적인 재료는 상상력으로 요리되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문학이 철학이나 심리학 수기와 다른 가장 근원적인 이유가 바로 감정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요. 상당한 시적인 구축의 노련미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의 물결이 약한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소설과 시가 인간만이 가지는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라면 수필은 인간의 관찰과 연상으로 이어지는 문학장르 입니다. 본심으로 넘어온 세 분의 근 서른 편 가까운 수필들은 단 한편도 특수작이 없는 수준작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세 분 중에서 관찰의 시야가 가장 넓고 깊은 한나 안씨의 경우, 안타깝게도 컴퓨터의 오작동인지 띄어쓰기가 엉망이라 선자의 의구심을 자아냈습니다. 출품작끼리 경쟁하므로 작은 하자가 결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유금란씨의 능란한 필치는 어떤 기성의 수필가들을 능가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찰도 예리하고 표현도 능숙합니다.


장석재씨의 수필들은 수필의 본령인 관찰과 연상에만 치우치지 않고 상당히 철학성이 가미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수필을 읽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세이를 읽는 기분입니다.


수필가 세 분의 작품들이 이렇게 우수한 문학적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하더라도 소설과 시와 맞붙어 우월을 가린다면 수필이 불리할 수 있습니다. 시와 소설은 인간만이 가지는 문학적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훨씬 더 고차원적인 문학적 미학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작품을 통독한 우리들은 올해 유난히도 투고 작품들의 문학적인 수준이 높은데 놀랐습니다. 다들 상당한 문학적인 수련을 쌓은 분들입니다. 소설 분야에서 테리사 리씨를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심사위원들의 상당한 진통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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