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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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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이런 사람을 뽑자-한인단체장의 자격조건

 

 

▲2015년 3월에 실시된 제 34대 토론토 한인회장 선거 당시 투표를 위해 한인들이 줄을 선 모습

 

 

 

 연말을 앞두고 한인사회 곳곳에서 송년행사가 열리고 있다. 개중에는 크게 내키지 않지만 주최자의 안면을 보아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행사장에서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대개의 경우 ‘내빈 소개’ 순서가 있는데 그 ‘주요인사’들을 소개할 때 낯이 근질거린다. 좁은 이민사회에 웬 ‘회장님’들이 그리 많은지. 개중에는 한인사회에 이런 단체(장)도 있나 싶은 곳이 적잖다. 이름이 불린 당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를 하는데, 그 모습이 참 어색하다. 


 그런가 하면, 행사장의 헤드테이블엔 미리 좌석이 정해져 있다. 총영사, 한인회장, 평통회장, 노인회장, 실협회장, 향군회장, 여성회장... 앞줄엔 소위 귀빈(VIP)석을 만들어 일반인은 앉지도 못하게 한다. 테이블엔 ‘예약(reserved)’ 푯대가 꽂혀 있는데, VIP란 사람들의 면면도 생뚱맞다. 무얼 하는 곳인지 생소한 자생단체가 많다. 


 단체장 중에는 테이블에 자신의 명패가 없거나 내빈소개에서 빠지면 노골적으로 불쾌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도대체 한인사회의 VIP가 동포 외에 누구일까. 한인행사라면 모든 동포가 VIP가 아닌지. 선진국에서 오래 살아왔으면서도 아직도 설익은 권위의식에 젖어있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이런 분들은 대개 자신이 한인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착각하며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몹시 언짢해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다 누구나 어느 정도 명예지향적인 면이 있기에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심리라 하겠다. 그러나 단체장이 명예와 권위의식에 젖다 보면 결국 병폐가 생기게 된다. 


0…이번 연말과 새해 초에 토론토의 한인단체장들이 많이 교체된다. 대표 단체인 토론토한인회를 비롯해 재향군인회, 캐나다한국학교연합회, 노인회 등등...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누구를 차기 (한인)회장에 추대하자는 모임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단체장 교체를 앞두고 걱정이 앞서는 것은 위의 사례에서 보듯, 쓸데없는 권위의식에 젖은 인물들이 뽑힐까봐서다. 


 동포단체장에 나서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기본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우선 개인적 자질과 품격이다. 먼저, 동포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폐를 끼친 적이 없어야 한다. 또한 최소한의 상식 정도는 갖추고 영어도 주류사회와 소통하는데 지장이 없어야겠다. 


 여기에, 단체를 위해 희생할 시간과 재력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재임기간동안 소신껏 일할 수 있고 주머니가 든든해야 소소한 일에 공금을 기웃거리는 비굴함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심(私心)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체장을 출세나 감투로 생각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자격이 없다. 대표단체장인 한인회장의 예를 보자. 한인회장은 매년 모국에서 열리는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초청받아 특급호텔에 체류하며 유력정치인을 만나고 청와대도 방문한다. 이때 동포단체 대표로서 해외한인사회의 현안과 정치적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 


 이래서인지 한인회장을 잘만 하면 출세할 수도 있다는 허상과 권위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동포사회를 자신의 입신을 위한 디딤돌 정도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이런 위상 때문인지, 이름만 거창하고 하는 일은 전혀 없는 캐나다한인회총연합회란 곳은 지금 둘로 나누어진 상황이다. 토론토와 멀리 노바스코샤에서 서로 총연회장이라고 우겨대니 도무지 헷갈린다.  


 단체장 중에는 자신의 직분을 잊은 사람이 참 많다. 봉사하라고 뽑아 놓았더니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목에 힘이나 주고 행사장의 상석(上席)이나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를 희생해가며 봉사를 할 것인가. 


 말과 행실이 다른 위선자, 남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인정하지 않는 독선자, 자기 말만 늘어놓는 궤변가… 이런 사람을 단체장으로 뽑아서는 안된다. 특히 단체장을 자신의 위상 격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뽑아선 안 된다. 한없이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동포들을 섬길 사람을 뽑아야 한다. 어디가서 “내가 누군지 몰라?” 이렇게 나오는 사람은 절대로 단체장으로 뽑지 말자. 


 특히 단체의 리더는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말없는 다수를 무시하면 안된다. 침묵한다고 자기 의견이나 주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의 말을 존중해서 말을 아낄 따름이다. 이들에게 눈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0…한인단체장도 그렇지만 해외에 파견나와 있는 공직자들도 그렇다. 개중에는 공인(公人)으로서의 처신이 도저히 신뢰가 안 가는 사람이 있다. 공관원 등 공직자들은 평소 동포들의 대우만 받아서 그런지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 많은데, 거기에다 인격수양마저 덜 된 사람은 일반 동포들이 인사를 건네면 받는둥 마는둥 무시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도 이젠 좀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일부 동포단체는 경선 열기가 뜨거운 반면, 단체 중에도 순수한 봉사나 친목단체의 경우는 회장 자리를 서로 고사하는 바람에 리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개중에는 대(代)가 끊길 상황에 이른 단체도 있다. 캐나다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파독동우회 같은 단체는 회원들의 고령화로 인해 회원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데다 더 이상 젊은피 수혈도 안돼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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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4
양심이 답이다-자유와 의무 사이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대한민국 헌법 제19조). 


 양심은 좋을 양(良) 마음 심(心), 문자 그대로 착한(좋은) 마음이다. 사람의 양심은 타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돼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 그런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기에 어찌보면 매우 인위적인 조항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양심)을 어떻게 법과 제도로써 강제로 통제한다는 말인가.


 하기야, 한국에서는 자기 생각(사상)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시대가 최근까지도 존재해왔다. 아니, 아직도 그런 폐습이 잔존하고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남북한이 분단된 상황에서는 좌우 사상(이데올로기) 문제를 자유롭게 논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至難)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은 숱한 양심수(良心囚- Prisoner of conscience)가 양산되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단지 권력자들과 다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히거나 죽기까지 했다. 


 양심은 영어로 conscience를 쓰는데, 여기에는 도덕적 자각(自覺)이란 뜻도 내포돼있다. 즉 양심의 기반은 정직과 도덕이다. 거짓과 비도덕적인 양심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0…최근 한국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파장과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or)란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병역 이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병역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무기를 손에 드는 것을 거부하는 '집총 거부'도 있다. 거부 이유는 신앙하는 종교의 교리와 개인적 신념 등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대표적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로 꼽힌다. 


 이에 앞서 2011년 헌법재판소는 남북한 대치 상황을 고려해 현행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판정한 바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양심의 자유를 적시하면서도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대한민국 헌법 제39조 1항)는 상충적인 조항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의 특성상 징병제를 유지하는 한국은 필연적으로 병역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가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많은 범법자를 만들어왔다. 


0…한국의 남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의무적으로 병역을 이행해야 하므로, 많은 국민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평성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즉 “누구는 황금같은 청춘시절을 군에 갇혀 있고 싶어서 가느냐. 국민으로서의 의무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란 불만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 자체가 잘못됐다. 군대 가는 사람은 양심이 없다는 말이냐?” “양심이 있다면 군대를 가야지…” 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시대가 발전하면서 국민적 의무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양심 자유를 더 존중하는 추세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反戰)주의자, 불교신자이자 평화주의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도 있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과연 ‘양심의 잣대’를 그 누가 공정하게 판별하고 어떻게 객관적으로 입증하느냐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돼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비양심적이고 편파적인 판결을 숱하게 목격해왔다. 법률상 ‘양심’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양심(선량한 마음)’과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병역같은 문제에서 양심이라는 단어는 선한 마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에 기초한 신념을 가리킨다. 개인의 신념이 공동체가 부여한 의무를 동의하지 않을 때 공동체가 그 부동의를 처벌할 것인지가 논란의 본질이다.


0…어차피 사람은 항상 양심적일 수만은 없다. 다만, 사람은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의 양심만은 속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 병역문제도 각자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즉 모든 논란의 해결책은 양심만이 답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특수상황을 감안할 때 군복무는 젊은 남성이 짊어져야 할 의무임에 틀림없다. 이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신체, 정신적 결함 때문에 필할 수 없다면 면제시켜줘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싫어도 가야 하는 의무인 것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이 의무를 피하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한국의 지도층 자녀 중에 이런 부류가 많다. 그러다 보니 ‘군대 가면 바보, 안가는 것이 능력’이라고 여기는 풍조도 만연돼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앞으로 자칫 ‘양심’을 남발하게 할 우려마져 있다.  


어쨌든,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국이 분명 인권자유국가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 기준을 엄격하게 정하고 병역 의무를 마친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대체복무제의 내용을 더욱 합리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불필요한 논쟁이 없어질 수 있도록, 즉 병역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조국의 분단상태가 하루빨리 해소되는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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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8
행운아, 불운아-정치도 운이 따라줘야

 

 
 

 

 아래 사진에 있는 4명은 정치적으로 행운아들이다. 먼저 저스틴 트뤼도 연방 총리(46). 그가 아버지(피에르 트뤼도 전 연방총리)의 후광이 없었다면 오늘이 쉽게 있었을까?

 

 

 

 

 

그는 아버지가 총리 재직 시절 태어나 출생 때부터 세인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한때 고교 교사로 일했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자유당을 지지했던 그는 아버지가 81세의 일기로 세상을 뜬 뒤 2000년대 초반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아버지 서거 당시 그가 작성한 애도문이 많은 정치인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그가 언젠가는 총리직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트뤼도는 2008년 37세의 나이에 몬트리올의 지역구 하원의원(MP)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정치 신인이었음에도 당내 유력한 당수 후보로 거론되던 그는 2011년 재선에 성공했고 이어 경험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도 불구, 열광적 지지 속에 자유당 당수에 올랐으며, 이어 2015년  연방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당시 나이 만 43세. 그는 문자 그대로 정치적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1년 남은 내년 총선(10월 21일)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0…트뤼도에 맞설 야당 당수들도 정치적 행운아들이다. 올해 만 38세인 앤드류 쉬어 보수당수는 지난 2011년부터 4년간 하원의장(Speaker of House)을 지냈는데, 역대 최연소 의장 기록이다. 그는 25살에 사스캐처완에서 보수당 후보로 나와 승리하며 연방정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연방 보수당은 2015년 총선 패배 후 오랜 기간 당수가 없는 상태로 당을 재정비해오다 전당대회를 열었는데 이때 앤드류 쉬어를 당수로 선출했다. 당시 가장 유력한 당수 후보는 퀘벡의 맥심 버니에였다. 내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이길 경우 앤드류는 39세 총리가 되는 것이다.  

 
 토론토 변호사 출신의 원외 정치인 재그밋 싱 신민당(NDP) 당수(39)도 순탄하게 정치 역정을 밟아왔다. 그런가 하면 덕 포드 온주 총리는 토론토시의원 한번 한 것이 정치경력의 전부다. 이들은 모두 단 한번에 대권을 거머쥔 사람들이다. 


 토론토시의원 8선 경력의 조성준 온주 장관도 그렇다. 온주 의원(MPP) 재선에 장관까지… 81세의 고령까지 정치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루키 정치인 조성훈(Stan Cho) 온주의원도 분명 행운아다. 뛰어난 본인의 역량도 있지만, 자유당 정부에 실망한 보수당 바람에 부친의 후광까지 겹쳐 무난히 단 한번에 주의원에 올랐다. 


 최근 연방 보수당 윌로우데일 지역구 후보로 낙점된 이기석 후보 역시 치열한 경선 없이 후보로 지명된 것은 큰 행운이다. 내년에 보수당 바람이 불 경우 일약 국회의원에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 리치몬드힐의 신윤주(Nelly)씨는 당의 전략에 따라 멀리 밴쿠버의 후보로 갈 가능성이 커졌지만, 보수당 바람이 불면 그 역시 연방의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0…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토론토시의원에 출마했다 실패한 조성용(Sonny Cho) 후보는 참으로 안타까운 케이스다. 4년 전,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연방 윌로우데일 지역구 후보 경선에서 쓴 맛을 본 그는 이번엔 절치부심하며 지역정치인으로 재기할 것을 다짐했는데, 결과는 다시 쓴 잔이었다. 


 그는 한인 정치 후보들 모두가 보수당 일색으로 뛰어드는 상황에서 유일한 ‘자유당원’ 임을 외쳤지만, 불출마한다고 했다가 말을 바꾼 현역 존 필리언에게 패했다. 


 조 후보가 만약 토론토 선거구 원안대로 47명을 뽑았다면, 그래서 그 지역에서 유일한 한인으로 출마했더라면 집중도도 높았을 것이고 그래서 당선됐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런데 시의원 수가 절반으로 축소되고 노스욕 터줏대감인 현역 의원이 나선데다 한인후보들마져 난립하면서 또다시 분루(憤淚)를 삼켜야 했다.  

    
 세상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運)이라는 것이 있다. 매사에 일이 잘 풀리는 행운아가 있는 반면, 하는 일마다 잘못 되는 불운아도 있다. 많은 한인동포들이 조성용 후보에게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질과 역량은 충분한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노스욕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수 많은 한인동포들이 크나큰 성원과 지지를 보냈다. 그나마 토론토에서 한인후보의 체면을 세워준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조 후보는 올해 만 58세이니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조성용씨에게 큰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0…세상에서 성공을 하려면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luck)도 따라줘야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피나는 노력을 해도 행운이 함께 따르지 않으면 주저앉고 마는, 안타까운 경우를 자주 겪고 본다. 이처럼 성공은 노력과 행운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중에는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사회가 준 ‘복’에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인정이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들이 행운에 대해 감사하고 자신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줄 알아야 한다. 성공한 기업가가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좋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는가 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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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3
산은 옛산이로되- 세월 따라 변해가는 친구들


    
 가끔 한국의 뉴스를 보면 눈에 익은 모습이 화면에 비칠 때가 있다. 엊그제는 내가 즐겨 보는 MBC 탐사기획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에 언뜻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어느 초호화 골프장에서 전 정부의 정.관.재계 인사들이 접대골프를 즐겼다는 고발프로였는데, 그 중 한명이 고교시절 같은 반 동창이었다. 그는 한국의 최고 권력기관 중 하나라는 국세청의 고위직까지 오른 인물이다. 

 

 

 

 


 고교시절 친구는 수줍고 얌전한 전형적인 ‘범생이’로 학업성적이 뛰어나 전교 5위 안에 들었는데 집안이 어려워 장학생으로 지방대에 진학했다. 우리는 고교 졸업 후 거의 만난 적이 없으나, 그 후 듣자 하니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진출했는데 아주 모범적인 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최고위직까지 승진했고, 소위 지방대-비고시 출신으로 그런 위치까지 오른 친구는 우리 동창들 간에 입지전적 존재로 불렸다.


 그런데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람도 변해가는지, 예전처럼 여전히 깨끗하고 양심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동창생 친구가 진흙탕 같은 공직세계에 오래 발을 담그고 있다 보니 그도 별 수 없이 물이 들었나 보다. “골프비를 누가 내주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왜 당신에게 그런 걸 답해야 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내뱉는 그는 이미 내가 아는 예전의 순진했던 친구가 아니었다. 전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런걸 갖고 귀찮게 구느냐는 식이다. 그 모습을 보며 참으로 입맛이 씁쓸했다.


0…꿈 많던 고교시절, 나에겐 친형제처럼 지냈던 ‘삼총사’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3년 내내 같은 반, 같은 자리에 앉으며 늘 붙어다녀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다. 그런데 그 중 한 친구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일찌감치 세무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세월이 흐른 어느날, 그의 아파트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박봉(薄俸)이 뻔한 말단공무원인데 친구의 아파트 실내 곳곳엔 유명화가의 고가(高價) 그림이 걸려 있고 고급 도자기도 놓여 있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자기가 어딜 가나 사업가들에게 대접을 잘 받는다며 자랑스러운 듯 얘기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 친구가 이렇게 변하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론 이 친구를 만나고픈 생각도 없었고 그럴 기회도 별로 없었다.  

     
 ‘삼총사’ 중 다른 단짝 친구는 나와 이름까지 비슷한데다 사관학교까지 함께 진학해 그야말로 평생동지나 마찬가지였다. 고교시절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말자며 어른들 몰래 막걸리까지 나눠 마시며 우정을 맹세하기도 했다. 특히 이 친구는 다부진 체격에 리더십도 뛰어나고 공부도 잘해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상하게 인생이 뒤틀리면서 일찌감치 사회생활에서 은퇴를 하더니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민을 온 후 9년 만에 한국에 나갔다 친구를 만났는데, 사업에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친구의 초라한 모습을 보니 왈칵 눈물이 솟았다. ‘그렇게도 장래가 촉망되던 네가…’ 그 친구는 그러나 여전히 정의감과 강직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밤을 새워 술을 퍼마시며 옛날 추억에 잠겼다.            


0…엊그제는 한국 외교부 인사를 보니 P국 대사(大使)에 대학 동창 여학생이 들어 있었다. 전문 외교관은 아닌데 워낙 똑똑하고 영어를 잘해서 그런지 외교가에서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아온 듯하다. 


 이처럼 아직 현직에서 활동하는 동창생이 있는가 하면 일찌감치 은퇴를 하고 벌써 노후생활을 즐기는 친구들도 많다. 사실 내 나이토록 현직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자영업자를 제외하곤 절반 정도이다. 공직이나 기업에서 근무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하고 등산이나 다니면서 소일하는데, 그것도 못할 노릇이라고 한다.     


0…누구나 최소한 초,중,고교 동창생에, 대학을 마친 사람은 4단계의 동창생을 두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중도에 그만둔 사관학교까지 5단계의 동창생을 갖고 있다. 그런데 평생 기억에 남는다는 고교 동창 중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대개 공무원이나 기업체, 학계로 빠지고 공부를 못한 친구들은 사업 쪽으로 갔는데, 지금도 일을 하며 친구들 식사비를 팍팍 내주는 사람은 공부 잘했던 모범생이 아니라 바로 말썽꾸러기였던 친구들이다. 


 이들은 대학을 못 갔거나 대충 때우고선 일찌감치 자기 사업을 시작한 이들이다. 처음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으나 지금은 전세가 완전히 역전돼 이 친구들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교실에서의 모범생이 반드시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고교 졸업 후 1년간 다녔던 사관학교. 동기생 중에는 별 4개를 달며 최고위직까지 오른 친구도 있고 도중에 옷을 벗은 친구도 있다. 한 동기생은 군사령관까지 올랐으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벌인 해프닝으로 옷을 벗었다… 추억은 그대로건만 사람은 세월 따라 변해만 간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실버들 향기 가슴에 안고 배 띄워 노래하던 옛동무여/흘러간 구비구비 적셔보던 야릇한 꿈을/어이 지녀 가느냐, 어이 세워 가느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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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1
술을 끊으니…다른 길이 보인다

 

 

 

 시골 종가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 집안에 제사가 많았고, 그럴 때면 술심부름을 내가 가곤 했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들고 읍내 술도가(都家)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 오는데, 처음엔 호기심에서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한모금 마셔 보았고, 이내 그 맛에 길이 들여지기 시작했다. 어느 땐 절반 가까이나 마셔 집에 오면 주전자가 가벼워졌고, 그러면 어른들께 혼이 날까 조바심치던 추억이 아련하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술을 배우기 시작한 분이 많으실 것이다. 그런데 술도 집안내력이 있어 우리 집안 어르신들은 폭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술을 즐기는 편이었다. 달리 오락거리가 없던 그 시절엔 술이 거의 유일한 일상의 배출구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 시절은 그런대로 낭만과 풍류가 흐르던 시절이었다. 


0…나도 그동안 술께나 좋아하고 즐겼다. 특히 이민 오기 전엔 직업상 낮술의 묘미에 빠졌는데, 그 멋이 기가 막혔다. 대낮에 한잔하고 하늘을 보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이미지는 술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나 술이 센 편은 아니고 주로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술을 마시면 흥취가 더했다. 말하자면 술 자체보다 풍류(風流)를 즐기는 편이었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낙엽이 지면 지는대로, 눈이 내리면 또 그 나름대로, 한잔 하면서 즐기는 운치가 참 좋았다. 


 자고로 술을 모르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악인이 없다고도 하잖는가. 나는 술을 하지 않는 사람은 꼬장꼬장 하고 멋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했다. 내 주변에 대체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0…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몸의 이곳저곳에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최근엔 갑자기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화끈거리는 것이 영 불편했다. 걷는 것도 절뚝거리며 이틀을 불편하게 지냈고, 주말 골프약속도 취소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이것이 이른바 통풍(痛風) 증세라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병이다. 아니, 남의 일로만 여겼던 병이 나에게 찾아올 줄이야!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한마디로 통풍은 기름진 음식 등을 잘 먹어서 생기는 병이라 ‘귀족병’ 혹은 ‘황제병’이라고 한단다. 글쎄 나같은 사람이 그런 황공한 얘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그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평소 고기와 술을 즐기는 편인 나는 그날 점심때 삼계탕을 푸짐하게 먹고 저녁엔 삼겹살에 막걸리까지 마셔대며 포식을 한 것이다.


 다음날 부랴부랴 워크인 클리닉을 찾아 응급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더니 다행히 통증은 이틀만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가정의를 찾아가 혈액검사를 했더니 요산(Uric acid)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에 가정의는 요산수치를 낮추는 약을 처방하면서 주의사항을 늘어놓았다. 요점인 즉, 통풍은 음식으로 인해 발생하는만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너무 많았다. 보통 상식적으로 몸에 좋은 음식은 모조리 먹지 말아야 할 지경이다. 


 특히 의사가 지시하는 제1 수칙은 술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아뿔사, 이젠 무슨 재미로 사나! 그동안은 퇴근하면 집에 와서 우선 와인부터 찾아 치즈와 곁들여 한잔 하는 것이 기가 막힐 정도로 풍미(風味)가 좋았다. 와인과 치즈는 궁합도 잘 맞는다. 식사 전에 한잔 하면 음식 맛도 더 좋았다. 그래서 그것은 하루 일과의 최고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낙(樂)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0…최근 건강검진을 받고 이런저런 주의를 받았다. 콜레스테롤에, 요산에, 전립선에… 그동안 건강에 관해서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주의를 받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모든 화근이 술에서 비롯된다니 자제하는 수밖에 없다. 


 퇴근 후 집에서 한잔 하는 재미가 없으니 왠지 불안하다. 누가 저녁에 만나자고 해도 은근히 겁이 난다. 술 한잔 하자고 하면 어쩌나. 그동안 술을 매개(媒介)로 친했던 친구들도 점점 멀어질 것이다. 이러다 인간관계의 폭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든다. 내가 술 좋아하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기에 만나면 으레 술을 시키려 드는데, 내가 사양하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는 반응들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우선 내 건강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술 마시며 잡담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처음엔 무엇을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일종의 금단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러다 책을 손에 들기 시작하면서 방향이 정해지는 듯하다.   


 그동안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던 나의 친구들, 요즘 내가 술을 멀리하면서 자연히 만남도 뜸해지고 있다. 이런 것은 분명 아쉬운 측면이다.

그러나 이젠 술이 없어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겠다. 아직 단주(斷酒)까지는 못 갔고 절주(節酒)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하리라 마음을 먹어 본다. 좀더 윤택한 노후의 삶을 위하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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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
인간에 대한 실망-한때 존경했던 그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민주주의여…//…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1975년에 발표된 김지하(현 77세)의 이 시는  당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대학생과 지식인, 민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나도 그 시절 이 시를 읽으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고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나같은 세대에게 김지하는 영웅이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의 시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웬 ‘생명’ 타령을 늘어놓더니 180도 변신(변절)을 시작했다. 한때 그의 생명사상과 후천개벽사상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반민주세력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아아,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끝끝내 자유천지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더러운 먹물 시궁창에서 굶주린 개처럼 허덕이다 죽고 말 것인가? 별 뜨듯 꽃 피듯 살날은 그 언제인가?” 1991년 펴낸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에서 김지하는 이런 서문을 남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91년 신공안정국(노태우 정부 시절 시민.대학생의 잇단 분신사망으로 촉발된 공안정국)의 국면에 보수언론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해 민주진영에 찬물을 끼얹는가 하면, 이듬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한다. 한 세대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0…70~80년대는 참으로 험악한 시대였고, 나같은 세대는 아무리 현실을 외면하려 해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럴 수가 없었다. 운동권은 아니더라도 조국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만큼은 지닌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의 장래를 접어둔 채 앞장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는 동료 학생들을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갖고 응원했다.    

   
 내 또래 운동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심재철이란 사람이다. 그런데 5선 의원에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그의 화려한 변절사는 인간의 근본바탕을 의심케 한다.  


 1980년 5월 15일 전국의 대학생 10만여 명이 전두환 퇴진과 비상계엄 해제를 외치며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이때 전국 대학생 시위 지도부였던 유시민(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등 역임)은 여기서 물러서지 말고 강력 저항을 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심재철은 이에 반대했다. 학생들은 청와대까지 행진하자고 했으나 심재철은 후퇴를 결정하고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질풍노도 같은 학생저항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이 ‘서울역 회군'으로 민주화의 절호 기회를 놓치고 전두환 신군부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고, 사흘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됐다.


 당시 심재철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유시민은 같은 학교 대의원회 의장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심재철은 마지막 순간 '회군'을 결정했고 이는 결국 전두환에 대한 항복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이미 그때부터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것이다.


 수 많은 민주인사들의 삶이 망가질 때 심재철은 오롯이 양지만 쫓으며 승승장구한다. 그의 행보는 도저히 남득하기 어려웠고 나는 실망을 넘어 인간으로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측은함으로 변했다. 본인의 안녕을 위해 김대중 내란음모를 허위로 진술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으로 보장된 시위 및 집회를 금지하는 탈헌법적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정부의 대규모 비인가 자료를 불법 열람하고 외부에 유출한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하자 야당탄압이라고 반발하며 오히려 역공을 취했다. 정부기관의 보안 취약성과 업무추진비를 폭로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떳떳지 못한 자신의 업무추진비 내역이 밝혀지면서 여론전에서 완패했다. 이래서 야당 안에서조차 함량미달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불법을 저지르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이 사람이 한때 민주화를 외치던 그 사람 맞나 싶다.


 심재철과 함께 가장 실망스런 인간이 김문수다. 그 역시 한때 노동운동의 중심 활동가였으나 그 후의 행보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철저히 변절할 수 있을까 참 신기할 정도다. 


0…지난 2012년 이동형 작가가 쓴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란 책이 있다. 와주테이란 국회가 있는 여의도 윤중제(輪中堤)의 일본식 발음에서 따온 것인데, 시대를 대표하는 변절 정치인들의 실체를 박쥐에 비유한 것이다. 저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변절자로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손학규 등 6명, 그리고 가장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으로 홍준표, 전여옥 등  4명을 꼽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운동권 경력을 가진 자들이 철저히 변절해 보수 꼴통 정치인이 되었거나 이른바 뉴라이트가 된 자들이다. 이들은 애당초 보수 정치인들보다 더 악랄하게 민주진영 공격에 앞장선다. 


 “한번 돌아선 자는 그 반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법이다. 누구보다도 악독하게 그 자들의 반대편에 설 것이다." 드라마 ‘추노’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들은 더 철저하게 반대편에 서야 입지가 다져지기 때문이다.  


 이들을 비롯해, 한때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존경받던 김동길과 김지하 등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 다 저렇게 될까. 나도 저렇게 노망이 들까… 두렵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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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집안 내력-젊음과 장수의 비결

 

 

 

 “죄송합니다. 하도 나이가 안 들어 보이셔서 제 연배인줄 알고, 큰 실례를 할 뻔 했습니다. ” 지난해 어느 모임에서 만난 분이 있었다. 그런데 언뜻 보아서는 내 나이 또래 정도로 보였다. 그래서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제 또래 같아 보이시는데…” 라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분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주 듣는 질문이라는 표정으로 “제가 얼마로 보이세요?” 하는 것이다.  


 그후 주위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그 분은 나보다 열살이나 많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머리가 좀 벗어지긴 했지만 피부가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해 오히려 나보다 더 젊어 보였던 것이다. 더욱이 하는 행동도 매우 순수하고 맑아서 그런 오해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다음 만남 때 나는 실례를 했음을 고백하고 양해를 구했더니 그 분은 활짝 웃으면서 “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이상할 것도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이제부터는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0…엊그제 이 분 내외와 골프를 칠 기회가 있어서, 오가는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 제일 궁금한 것은 역시 젊게 사는 비결이었다. 이 분은 우선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절대로 누구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좋은 점만 골라서 하시는 듯했다. 부인도 마찬가지셨다. 


 이 분은 특히 잠을 잘 잔다고 한다. 어디서나 머리만 누이면 잠이 든다. 그러니 항상 몸이 개운하다. 잠이 보약임을 누차 강조하신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살면서 근심 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그것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 


 흥미로운 사실은 부친이 현재 98세이신데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고 여전히 활동을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대체로 장수하는 집안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친척 어르신들도 90세 안팎의 고령자가 많으시단다. 


 이 형님은 또한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유쾌하게 어울리며 산다. 현직에서 은퇴를 했지만 경제적 여유도 있어서 궁핍하지 않으니 근심걱정 할일이 별로 없고, 또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사니 얼굴이 항상 해맑다. 체력 관리를 위해 골프와 탁구를 즐기며 술, 담배는 젊어서부터 입에도 안댔다. 


0…내 주변엔 이상할 정도로 이 분과 같은 연배인 분들이 많다. 우리 둘째 형님만 해도 비슷하다. 그런데 주변분들은 대체로 그 연세로 보이거나 개중엔 훨씬 늙어 보이는 분이 많은데 이 형님은 전혀 다르다. 이 분이 다른 분들과 같이 있을 때는 대비가 되어 더욱 어리게 보인다. 같은 연령인데 할아버지와 아들이 서 있는 것 같다. 


 언뜻 보아서는 고생도 전혀 해보지 않은 분 같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젊어서 고생도 할만큼 했고 일도 억척스럽게 열심히 했다. 그런데도 전혀 그런 티가 나지 않는다. 


 이 형님의 젊게 사는 건강 비결을 내 나름대로 요약해봤다. 첫째, (장수하는)집안의 내력. 둘째,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 셋째, 꾸준한 자기 관리… 이 가운데 첫째와 둘째 요소는 타고나는 것이고 셋째는 후천적인 요소라 할 수 있겠다. 


0…이 분의 건강요소를 나의 처지와 대비시켜 보았다. 우선 우리 집안은 그리 장수하는 집안이 못된다. 아버지와 큰형님이 60대에, 어머니는 80대 초에 돌아가셨다. 다만 외가(外家)쪽은 장수하는 분이 계셔서 외할머니가 100세까지 수(壽)를 누리셨다. 이런 가계(家系) 때문에라도 나는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한다.  


 둘째, 나는 과연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인가를 자문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나이를 먹어가며 가능한 둥글둥글해지려 노력은 하지만 아직도 마음속엔 부정적인 요소가 무척 많다. 그래서 밤에도 가끔 잠에서 깨면 이런저런 일들 생각에 잠을 설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셋째, 나는 과연 자기관리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 이 또한 자신이 별로 없다. 술과 육식을 좋아하고 운동은 귀찮아서 건너뛰는 수가 많다. 남들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땀을 빼는 시간에 나는 주로 잠을 즐기는 편이다. 이러니 조금만 육체활동을 하면 맥을 못춘다.     


0…의사를 만나면 꼭 묻는 말이 있다. 가족 중에 어디 편찮거나 그로 인해 돌아가신 분이 있느냐고. 소위 가족력(家族歷)에 대해 묻는 것이다. 3대에 걸친 직계가족, 또는 4촌 이내에서 같은 질환을 앓은 환자가 2명 이상인 경우를 가족력이라고 한다. 암, 당뇨 등의 대사성 질환이나 정신질환은 가족력의 주요지표가 된다. 이를테면 한 집안의 내력인 셈이다. 예로부터 혼인 등에서 집안 내력을 중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족력이 깨끗해서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은 그 자체가 큰 축복이다. 그 반대로 질환을 가진 가족력이 있다면 남들보다 더욱 몸조심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결론은, 젊음과 장수의 비결은 유전도 중요하지만 평소의 생활습관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잡힌 식사, 여기에 긍정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젊게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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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백두산의 추억-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그날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천지(天池)를 산책하던 중 천지 호수의 물을 병에 담는 모습.

 

 

 

‘해 뜬다/이 삼천리 강산 모든 풀잎들 꽃잎 이슬들/아침 햇발 한 살 한 살에 눈 뜬다/물싸리꽃 곰치꽃 우정금꽃/기뻐라/1백년 전 하나였던 것/1백50년 전 하나였던 것 /아니 3백년 전/어느 먹밤 터무니에도/오로지 하나였던 것…’ (고은 시 ‘다시 백두산에서’) 


 지금부터 20여년 전, 취재차 중국의 동북3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연변 조선족 자치주 수도인 연길을 거슬러 백두산 등정에 나섰다. 백두산 가는 길 도중엔 가곡 ‘선구자’에서 듣기만 했던 해란강과 용문교, 일송정 등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노래를 통해 많이 들어서인지 매우 친숙했고, 독립투사들의 영혼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 숙연해졌다.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오른 기분은 직접 체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 감격과 환희, 가슴 벅찬 감동은 위대한 시인도 마땅한 시어가 선뜻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차라리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것은 장엄한 풍경도 그렇거니와, 백두산이 간직한 한민족의 저 신비스런 태곳적 전설과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뒤얽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북받쳐 오른 때문이었다. 신이 빚어 놓은 듯한 이 장관(壯觀)을 왜 우리땅이 아닌 중국땅으로만 갈 수 있는가.       


0…내가 백두산을 만난 것은 한여름인 8월 중순이었는데, 천운(天運)이 따라주었는지 하늘이 구름 한점 없이 맑았고, 그 파란 하늘이 천지(天池)호수에 투영돼 온천지가 하늘인지 호수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장엄한 광경을 연출했다. 함께 간 동료기자들은 카메라에 풍경을 담기 바빴으나 나는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어 눈으로 사진을 찍었다.    


 백두산 방문 2년 후 나는 이민을 떠나왔고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 모습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백두산은 이곳 타국에서도 사진으로 가끔 만나며 그때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는 과연 백두산을 다시 볼 수 있을까.     


0…백두산(白頭山)은 함경남북도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걸쳐있는 화산으로 중국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이라 부른다. 높이가 2,744 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은 한국인들에게는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되어 왔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이곳에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신시(神市)를 열었으며, 여기서 단군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1년 중 8개월이 눈으로 덮여 있고 흰색의 부석(浮石)들이 얹혀져 있어 '흰머리산'이라는 뜻으로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최고봉은 장군봉이며 정상에는 화산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인 천지가 있다. 천지는 둘레가 14km, 평균 깊이 213m, 최대 수심 384m에 이르며, 10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는 보통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이르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의 기본 산줄기로 모든 산이 여기서 뻗어 내렸다. 


 백두산은 역사적으로 숙종 38년(1712년)에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정하기 위해 정계비(定界碑)가 세워졌고, 현재는 천지를 경계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두 나라는 1962년에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을 체결했는데, 이에 따라 백두산 북서부는 중국에, 남동부는 북한에 속하며, 천지의 54.5%는 북한에, 45.5%는 중국에 속한다. 그러나 북한쪽 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관광객은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오른다. 


0…한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조국분단 이래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최고 지도자가 방문했다. 그것도 북한땅을 통해 북한 최고지도자와 함께. 갈라진 조국으로 인해 지금은 비록 ‘북한땅’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결국 한민족의 영역이다. 두 정상이 함께 백두산에서 손을 높이 치켜든 감격스런 장면은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이 될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여기에 달리 부연할 말이 있을까. 똑같은 언어를 쓰는 나라가 남과 북 말고 어디에 또 있는가. 섬세한 감정표현이 그대로 전달되고 정상의 마주 잡은 두 손이 서로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순간, 남과 북의 거리는 이미 숨결 하나 차이로 좁혀 들었다. 지금은 비록 두 나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정치이념과 노선을 걷고 있지만 머지 않은 날에 결국 하나로 통일되고 말 것이란 확신을 전 국민이 갖게 됐다.     


 무릇 모든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은 상호신뢰와 진정성일진대, 이번 두 정상의 얼굴 표정에서는 그것을 엿볼 수 있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젊은 북한 지도자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도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거센 물결 앞에서 결국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0…특히 이번 방북 과정에서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의 진지함은 인간적으로 더욱 깊은 신뢰를 갖게 했다. 등산광(狂)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은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데, 이번에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룬 셈이 됐다. 


 어찌 문 대통령 뿐일까. 그토록 멋진 산 백두산을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날을 간절히 그려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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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4
칼과 저울-무너지는 사법부 권위


 

▲정의의 여신 디케(Dike) 상. 법의 여신이라고도 불린다. 

 

 

 

 예전 어렸을 때, 어르신들이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꼭 빠짐없이 들어가는 직업이 있었다. 바로 판,검사였다. 판,검사야말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는 직업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그것은 다른 세습적인 부(富)를 누릴 수 없는 일반 흙수저들이 금수저 반열에 오르는 가장 빠른 신분상승의 수단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죽어라 일해도 권력과 부를 한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길은 달리 없었다. 그래서 시골 출신의 가난한 대학생들이 육법전서(六法全書)를 싸들고 고시공부 하러 깊은 산의 절로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개중에는 운과 ‘암기력’이 좋아 수년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하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십년 가까이 절간에서 청춘을 허비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어렵사리 사법고시 관문을 통과한 선택받은 사법연수원생 주변엔 온갖 유혹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선 돈 많은 집안으로부터 혼담(婚談)이 쇄도하고 이를 연결해주기 위한 ‘마담뚜’까지 등장하며, 권력과 연줄을 대려는 어두운 손길들도 줄을 잇는다. 


 학창생활을 하면서 누구는 부당한 정치권력에 항거하다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법조문 외우기에 매달려 마침내 입신(立身)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 나같은 세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도서관과 절간에서 법조문만 외우던 사람들에게 복잡다단한 이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자세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또한 자신도 흙수저 출신이면서 일단 현직에 들어가면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조직에서 크기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관례다. 이런 상황에서 공평무사한 판결이나 권력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0…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 ‘디케(Dike)’다. 디케는 정의(正義) 또는 정도(正道)라는 뜻이다. 이것이 로마시대에는 유스티티아(Justitia)로 대체됐는데, 정의를 뜻하는 영어 저스티스(Justice)는 여기서 유래했다. 디케는 처음엔 두 눈을 가리고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유스티티아는 여기에 저울이 더해졌다.


 즉, 정의의 여신은 오른손에 칼,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칼은 정확한 판정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며,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한다. 또한 디케에 눈가리개를 두른 것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기 위한 것이란 뜻이다. 즉, 정의와 불의의 판정에 있어 편견이나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일각에서는 눈가리개에 대한 다른 해석도 생겨났다. 즉, 여신의 눈을 가린 것은 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왜곡된 판결이 양산되는 세태에 대한 풍자라는 것이다. 사법부의 부패와 정직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다. 


 법과 정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엄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힘없는 사람에겐 가장 위험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법은 강자의 이익이라는 역설이 생긴 연유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신(神)이라도 눈을 가리고 있으면 공정하기 어렵다. 사람을 심판하는 법관은 저울이 과연 공정한 저울인가부터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0…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법원 앞에 세워져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았고 손에 칼도 없다. 이에 대해 세인들은 법관이 먼저 상대(피고)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그 지위에 따라 유,무죄를 판별하고, 권세가들에게는 큰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이래서 생겨났다. 


 특히 보수정부에서 민감한 시국사건의 판결을 보면 과연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최근 불거진 전 정부의 사법부 행태는 그 존재의미를 무색케 한다. 최고 수장(首長)인 대법원장이란 사람이 무능한 대통령과 짜고 해고 노동자 등 소수약자가 관련된 재판을 멋대로 뒤집고 지연시키는 ‘거래’를 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추락시켰다. 국민들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사법부는 자멸의 길을 택했다. 약자의 피눈물을 외면한 채 오로지 정권유지에 도움되는 판결만 하도록 했으니 정권의 시녀 역할을 자임한 꼴이다.


 판사에 대한 영어가 서양에선 정의를 강조한 Justice를 주로 쓰는 반면 한국에선 판정을 강조하는 Judge로 쓴다. 정의를 앞세우기보다 개인의 판단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매우 권위적이다. 판사의 이런 의식구조에서는 올바른 판결이 나오기 어렵다. 


0…사법부의 권위가 추락한 것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온주 보수당 정부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이른바 ‘Notwithstanding’(예외조항)을 적용해 기어코 토론토시의원 정수를 줄이려고 혈안이다. 이것이 과연 삼권분립이 보장된 민주 선진국가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의원 수를 줄여 서민들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야 백번 찬동하지만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특히 법원 판결까지 뒤엎어버리는 처사가 문제인 것이다. 다수정권으로 승리한 주 총리는 “법원 판사는 임명직이지만 주의원은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 직책”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밀어부치기 식으로 나가고 있다.   


 이것이 선례가 될 경우 법원의 판결이 권위를 잃고 법질서 경시 풍조가 만연할 지도 모른다. 자라나는 세대는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이래저래 사법부의 권위는 무너져 가고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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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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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ME를 아십니까-행복 찾기의 숨은 비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한자성어가 있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도 꿈은 달리 꾼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도 속 마음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이를 부부생활에 적용해보면 함께 잠을 자도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서로간에 진실한 대화가 없으면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부부 사이는 촌수(寸數)가 없다. 그만큼 가깝다는 뜻도 되는 반면, 헤어지면 완전히 남이라는 뜻도 된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사랑해서 죽고 못살 때는 ‘님’이지만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고 마는 것이 부부관계다. 부부 사이처럼 가깝고도 먼 관계도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올해로 결혼생활 31년을 맞는다. 그동안 우리는 주변에 꽤 소문난 ‘잉꼬부부’로 알려져왔다. 어딜 가나 함께 가고 애정표현도 잘 하고 서로 칭찬도 잘해주는 편이다. 티격태격 소소한 토닥거림이 없을 수 없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칼로 물베기 정도의 트러블로 치부하고 대충 화해하고 일상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의사소통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함을 피부로 느끼는 횟수가 잦아졌고 정도도 약간씩 더해갔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화를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경우가 점점 늘었다. 그런 나 자신이 싫었다. 밖에선 다정한 척 하면서 실제론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해주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미치면 위선적인 내 모습이 싫어졌다.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0…성당의 후배들 중에 ME라는 모임을 다녀온 후배들이 우리만 만나면 “선배님 부부도 꼭 참여해보시라”고 권하는데 솔직히 귀찮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다시피 우리 부부는 너무도 사이가 좋은데 그런델 왜 가? 오히려 더 나빠지면 어떡하라고?”라며 둘러대곤 했다. 실제로, 금슬 좋던 부부가 ME에 갔다가 오히려 서먹해서 돌아왔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는지, 어느 주일 미사 후 친교실에서 친한 선배님이 ‘곧 ME주말이 있을테니 이번에 꼭 참여해보라’는 말에 두말 않고 예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내가 되레 놀라며 “당신 정말이에요? 그렇게 버티더니 웬일이에요?” 하는 것이다. “아니, 다들 이렇게 강하게 권하는데 한번 가보자구…”    


 우리말로 ‘부부 일치’ ‘부부의 참 만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ME(Marriage Encounter)는 1950년대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에 의해 착안됐다고 한다. 그 당시 문제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던 칼보 신부는 대부분의 가정 문제가 불안정한 부부관계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깨닫고 참된 부부관계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는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62년 최초의 ME행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됐고, 당시 실험적으로 28쌍의 가난한 노동자 부부들이 참가했다. 그 후 ME는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현재 ME는 미국과 캐나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식명칭도 Worldwide Marriage Encounter다. 


0…ME는 한마디로 혼인 부부들이 더 깊은 사랑과 풍요로운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ME 참여 부부들은 독특한 대화방법을 통해 각자 마음속에 있는 서로에 대한 느낌과 관심이 어떠한가를 체험한다. 주어진 주제에 맞춰 각자의 부부생활을 서술해보고 대화하는 가운데 부부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다만 구체적인 진행내용이나 참석자들의 사생활에 대한 사항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것이 묵계(默契)다.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말과 진지하게 나누는 대화는 다르다. 말은 많이 해도 대화는 없는 부부도 많다. 속마음을 터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부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다. 얘기를 하면서도 언제 서로 눈을 맞추고 했는지 기억조차 없는 부부, 방에 단 둘만 있으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는 부부, 모두가 평소에 진솔한 대화가 없는 탓이다. 서로 두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며 노래를 부르는 순간,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히는 부부가 적지 않다.     


 나도 평소에 아내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속마음과 섬세한 느낌까지는 몰랐음을 이번 기회에 절감했다. 그 느낌을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더 잘 해줄 수 있었을텐데…    


0…ME 참여 부부는 대체로 가톨릭 신자가 많지만 그렇다고 종교적인 프로그램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원하는 모든 이가 참여할 수 있다. 부부간 진솔한 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서로의 상처를 공감하게 하고 그 응어리를 풀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면 처음엔 서먹하게 앉아있던 부부들의 마음이 어느새 하나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ME교육은 부부가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떠나 서로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도록 한다. 그렇다고 ME가 결혼문제 상담소는 아니며 그룹토의 모임도 아니다. 종교교육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생명력 있고 활기찬 결혼생활을 위해 부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됨으로써 행복한 부부생활을 지속하게 한다.
우리 부부의 ME 체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고, 그 여운이 아주 오래 갈 것 같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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