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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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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1
노이즈 마케팅-빈 수레가 요란한 법


▲5.18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한국당 의원들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한마디로 잡음이나 소음으로 주변의 관심과 주목을 끄는 것을 말한다. 시장에 처음 진출하거나 인지도가 낮은 기업들이 종종 사용하는 마케팅 기법으로, 상품 홍보를 위해 일부러 각종 이슈를 만들어 소비자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소음과 잡음을 뜻하는 '노이즈'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단기간에 최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대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문구가 따라 붙는다. 


 노이즈 마케팅은 짧은 시간에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와 상품을 각인시킬 수 있고 큰 투자비용 없이 매체 또는 입소문을 통해 화제나 기사의 소재가 되어 성공적인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노이즈 마케팅의 수위조절에 실패하면 시장에서 아예 퇴출을 당하거나 기업에 대한 신뢰성 하락으로 이어져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노이즈 마케팅은 정치권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즉, 선거 때 인지도가 낮은 후보자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군중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엉뚱한 발언을 함으로써 졸지에 언론의 주목을 받고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고 마침내 세계의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0…요즘 한국에서 들끓고 있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 대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모독과 망언은 전형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라 하겠다. 망언을 쏟아낸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3인 가운데 김진태를 제외하곤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비례대표 의원들인데, 이번 망언으로 인해 갑자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김진태 역시 얼마 전만 해도 국민적 인지도가 높지 않았으나 극우 태극기 부대의 선봉에 서면서 중견 정치인 대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인간을 ‘시대의 의인’이라며 이민사회에까지 불러다 태극기 망신을 시키는 동포가 있으니 기가 막힌다.   


 약사 출신의 김순례는 5.18 망언으로 언론에 뜨자 또 다른 망언을 쏟아냈다. 한국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그는 폭언으로 자신의 인지도가 부쩍 오르나 “예상치 못한 태극기 부대의 응원에 힘이 난다. 덕분에 인지도가 올랐다”고 자랑 삼아 떠벌리고 다니고 있다.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진태 역시 “나를 더 띄워주고 있다”며 주변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노가 들끓는 광주를 일부러 찾는 등 노이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극우 지지층인 태극기 부대로부터 하루에 수백 통씩 응원 문자를 받고 있다.


 이들은 오로지 인지도를 높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5.18 망언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들은 망언에 대한 인지도 상승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우선 뜨고 보자’는 면에서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노이즈 마케팅을 넘어 ‘더티 마케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으며 국민 조롱이 도를 넘고 있다. 망언 3인방 중에는 비례대표가 2명이나 끼여 있다. 이런 인간들을 비례대표로 뽑은 당은 무엇하는 곳인가. 


0…망언을 한 이들은 국민들에게 별로 주목 받지 못하고 이름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오로지 종북세력 운운하며 큰소리만 치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정상적인 방법이나 능력으로는 주목을 받지 못하니 일단 시끄럽게 떠들어 놓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도무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슬픔을 당한 사람의 아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는 이런 사람들이 모인 당이 올바른 공당(公黨)인가. 이들을 뽑아준 국민은 또 무언가. 도덕도 가치관도 뒤죽박죽된 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만원인가 하는 사람의 잠꼬대 같은 소리를 지면에 소개하는 자체가 넌센스다. “대한민국에서 나 이상(육사)의 학력이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느냐. 고등학교 밖에 안나온 것들이 ...” 이건 정신병자나 할 소리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군사평론가라느니, 보수 논객이라는 칭호를 붙이니 참 씁쓸하다. 이를 무시해버리면 간단해지는데, 일부 찌라시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문제가 있다. 


 이들은 다른 말은 잘 모른다. 오로지 북한군, 친북세력, 종북좌파, 빨갱이, 사상 불순... 이런 단어만 갖다 붙이면 된다. 세계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이런 단어들이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어떤 논리도 이들 단어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참 편리하다. 이 천형(天刑) 같은 단어만 사용하면 극보수 언론은 신이 나서 확대 재생산하기에 바쁘다. 대한민국은 남북통일이 되지 않는 한, 조금만 진보색채를 띄어도 종북세력을 들먹이고 적대시하며 내부적으로 분열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마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빨갱이 출신이라는 말이 망령처럼 떠돌지 모른다. 크지도 않은 나라가 언제까지 이런 사상의 올가미  안에 갇혀 살아가야 할것인가. 


 심지어 지난해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접근했을 때도 극보수 언론은 종북좌파가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둥, 국방장관이 북한군을 상대하지 않고 일본을 상대로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둥, 도저히 한국의 언론이라고 보기 어려운 기사들을 쏟아냈다.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종북좌파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굳이 진보니 보수니 할 것도 없다.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표현의 자유라면 사회질서나 국가의 기강은 무너져도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사회적 윤리와 국가기강을 훼손시키는 범죄행위다. 행여 순진한 동포사회가 흉내라도 낼까 두렵다. 부디 건전한 양식이 살아 숨쉬는 조국 대한민국이 되길 염원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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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9
실버산업에 적극 관심을-한인요양원 계속 추진돼야

 

 

 의학의 발달로 인해 인류의 수명이 계속해서 연장되는 것과 비례해 세계는 노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노후에 얼마나 건강하고 즐겁게 사느냐는 문제가 한층 더 중시되는 시대다. 오래 살아봤자 병들고 외롭고 오갈 데가 없다면 수명 연장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노인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노년층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이른바 실버산업은 현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업분야 중 하나가 되었다. 세계 각국에 고령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역설적으로 실버산업은 강력한 성장엔진을 장착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2020년 세계의  실버산업 시장 규모는 한국 돈으로 무려 7,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노인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 경제 활력은 떨어지는 반면, 실버산업에는 막대한 기회가 된다.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14억 1,300만)의 경우 노인층만 2억 2천만 명에 달하며 이들의  잠재 구매력은 갈수록 천문학적 규모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년층이 애용하는 건강식품과 성인용 기저귀 같은 각종 노인용품, 가족을 대신한 양로 서비스, 실버타운과 같은 양로부동산, 각종 보험과 연금 등 실버 금융이 중국의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레 실버산업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실버산업 시장은 무한 성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도 노인요양시설은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재정지원을 해주는 가장 큰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시설 입주자와 정부로부터 모두 돈을 받기 때문에 노인요양시설은 개설과 운영을 잘 해나가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알짜배기 사업이다. 


0…이민사 반세기를 넘어선 캐나다 한인동포사회도 인구 지형이 바뀌고 있다. 피땀 흘려 새로운 세상을 개척한 1세대들은 점점 설자리가 없어지고 1.5~2세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렇다면  1세대들이 편안히 여생을 즐기며 쉴 곳이 있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현실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한인요양원 인수 프로젝트였다.  

   
 한인동포사회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팔을 걷어 붙이고 십시일반 힘을 모았다. 2017년 8월, 토론토 한인사회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며 뜨겁게 달아 오른 무궁화요양원 살리기 범동포 모금운동도 캐나다 한인이민사를 다시 쓰게 하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모금 개시 두달여 만에 무려 350만불의 성금이 몰리며 목표액의 100퍼센트를 달성하는 놀라운 성과를 발휘했다.  


 사실 무궁화요양원의 역사는 하도 험난해서 별 관심이 없는 동포들은 선뜻 이해하기도 어렵다. 요양원의 전신인 ‘무궁화의 집’ 건립구상은 지금부터 37년 전인 1982년에 태동했으나 그 후에 걸어온 가시밭길 형극(荊棘)은 책 한권을 써도 충분하다. 2009년 아파트 첫입주자가, 2011년엔 요양원 첫 입주자가 나왔으나 그해 9월 2차 모기지회사가 법원명령서를 들고와 건물을 접수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무궁화요양원은 경매 매물로 나와 있던 상태였다. 


0…한인요양원이 다른 민족 손으로 넘어가면 다시 되찾기가 어렵기에 절박한 사정을 안 한인들이 너도나도 기부대열에 합류했다. 재력가는 물론, 일반 서민들까지 기부의 발길이 이어졌다. 50만 달러를 선뜻 내놓은 거액 기부자가 있는가 하면 눈물겨운 소액 기부자도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이런 땀과 눈물이 보람도 없이 경매 입찰에서 탈락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적어낸 돈이 적었던 것이 주된 이유로 보인다. 동포사회는 망연자실했다. 각계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된 인수추진위는 “최대한 노력했으나 가격에서 밀린 듯하다”며 죄송해했다. 


 인수위에 따르면, 지난 1 월 15 일 마감된 1 차 입찰 결과는 우리가 여섯 응찰자 중 4 곳의 후보군에 포함돼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1 월 28 일 마감된 2 차 입찰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금으로 훨씬 높은 입찰금을 제시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인수위가 추정하기로는 요양원의 부동산 미래 가치를 높게 보는 영리기업이 무척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법정관리 체제의 특성상 입찰 가격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인수위원들은 최선을 다했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자본 우선의 논리에 다른 명분은 필요없다. 


0…우리는 지금 실망할 때가 아니다.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실버산업 프로젝트는 계속 추진돼야 한다. 온주정부에서는 앞으로 계속 노인요양원의 침상 수를 늘려나갈 방침이다. 이럴 때 손을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직 완전히 포기할 단계도 아니다. 낙찰자의 Due Diligence(마지막 검토 및 실사작업) 기간이 남아 있고 요양원 매각을 지시한 법원과 보건부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만약 선정된 입찰자가 법원이나 보건부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 입찰이 재개된다.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이다. 


 한인 실버세대를 위한 요양시설 확보사업은 앞으로 계속해서 추진돼야 한다. 이번 무궁화 입찰 실패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자. 한인사회엔 조성준 온주 노인복지장관도 있고 젊고 패기에 찬 조성훈 의원도 있다. 그러니 힘을 내자. 실협 등 많은 한인단체에서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팔을 걷고 나서겠다고 한다. 실버산업은 노인들을 모시는 길이자 동포들의 새로운 사업영역이 될 수도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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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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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NO”를 모르던 사람-너무 일찍 떠난 이영실 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 중엔 무슨 얘기를 하면 대개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늘 긍정적이고 밝은 인상에 주로 ‘예스’라고 응답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언제 만나도 기분이 맑아지고 좋다. 이영실 토론토한인회장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무리 난처한 부탁을 해도 ‘NO’라고 할 줄을 모르던 분이었다. 


 지난해 7월 한인회관에서 조성훈(Stan Cho) 온주의원 당선 사은행사가 열리는데 축하노래 좀 불러달라고 요청을 했더니 이 회장은 그날 마침 다른 스케줄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든지 맞추어 보겠다고 했다. 결국 다른 약속시간을 늦추면서까지 이 회장은 행사에 출연을 해주었다. 


 이뿐 아니라 신문사 행사 등 이런저런 일로 노래를 한곡 부탁해서 거절을 당해본 적이 없다. 그녀가 여러 한인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아마 이런 마음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심성이 착한 그녀는 아무리 곤란한 부탁을 해도 거절을 못하는 타입이었다. 해맑은 인상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너무나 순수하고 명랑해서 솔직히 나이가 나(1956년생)보다 아래인 줄 알았다. 


 그녀는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2015년 여름 언젠가는 한인사회에서 처음으로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악극을 공연할 계획이라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이 회장은 전통무용인 금국향 선생님, 그리고 나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홍보계획을 논의하는데, 밝고 겸손한 모습이 그렇게도 사람을 편하게 하고 기분좋게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언제나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먼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서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니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 그것은 아마 평소 건강상의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한인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과중한 업무에 따른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돼 그리 됐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10여만 광역토론토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토론토한인회장은 그리 쉬운 자리가 아니다. 업무의 기획에서부터 끝마무리까지 회장이 일일이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다보니 일이 산더미 같고 아무리 업무를 잘해도 본전이라고,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일반 동포들은 그저 행사 때 참석이나 해주면 되지만 회장은 거의 온몸을 던져 일해야 한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는가. 


 이 회장이 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날도 설날행사와 삼일절 100주년 기념행사 등 여러 일을 앞두고 준비를 하다 업무과로로 그리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회장은 본인이 원해서 회장을 맡은 것이 아니다. 고인은 2년 전 한인회장 선거에서 이기석 후보팀의 부회장으로 함께 나서 당선됐으나 지난해 9월 이기석 회장이 연방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임한 후 회장직을 맡게 됐다. 즉 회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엉겁결에 그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사실 한인회장단에 러닝메이트로 출마할 때 장차 회장(대행)까지 염두에 두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인이민사 반세기 동안 그런 사례도 없다. 토론토 한인사회에서 부회장이 회장대행을 맡은 것은 이영실 회장이 처음이었다. 여성이 한인회장직을 맡은 것도 처음이다. 이래서 한인사회는 고인의 너무 이른 죽음에 더욱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가녀린 여성에게 너무도 벅찬 짐을 지운 것이 아닌지 하는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이 회장은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다. 노래교실 강사로, 악극 배우로, 봉사단체 멤버로… 한인회 뿐만 아니라 각종 동포행사 때마다 출연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여러 동포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그녀에게 “올해 정식으로 한인회장에 출마하실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저는 단체장보다 문화예술 분야 활동이 더 맞는 것 같다”며 다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특히 “한인회장을 그만 두면 가족들과 여행도 좀 다녀오고 문화활동도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는데 허무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 달여 전, 이 회장은 나에게 인물사진을 보내주며 “앞으로는 이 사진을 보도자료로 사용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이야! 그녀는 SNS에도 “항상 수고 많으십니다. 화이팅!” 등 나를 격려하는 글을 많이 보내주었다. 이 회장이 그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어디서고 나타날 것만 같다.    

 
 평소 이 회장과 단짝으로 붙어다니며 함께 문화예술 공연에 참여했던 금국향 선생은 “저는 지금 바람부는 거리에 서 있습니다. 이 황망한 슬픔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예술가를 그냥 보내려 합니다….한인회장 임기가 끝나면 다시 좋은 작품 하자고 극장을 섭외하러 다니고 서로 다른 오지랍을 서로 나무라며 그렇게 붙어 다니며 ‘명콤비’라고 이름 붙여주신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이렇게 짝을 놓아줘야 하는지. 아직 보낼 준비가 안됐는데…” 라며 슬픔을 나타냈다. 


0…한편, 수일 전에는 ‘웃음전도사’로 알려진 함화신 여사가 지난해 발병한 뇌종양으로 별세해 주변을 안타깝게 하는 등, 최근들어 한인사회에 슬픈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빈 자리가 커 보인다.  


 차제에, 남모르게 수고하는 한인단체장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격려를 해줘야겠다. 참여도 안하면서 비판만 하지 말고 가급적 단체장들을 성원해주어야 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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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4
가까울수록 예의를-부부 간에도 법도가

 

 

 

 예로부터 부부 사이를 일컫는 한자어가 참 많다. 그 중 ‘부부일심동체(夫婦 一心同體)'란 말을 자주 듣는다. 부부는 한마음 한몸이란 뜻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는 남편이 노래를 부르면 아내가 따라 부른다는 뜻으로 부부관계가 찰떡처럼 척척 맞아떨어짐을 뜻한다. 


 금슬지락(琴瑟之樂), 혹은 금슬상화(琴瑟相和)는 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잘 어울리는 것처럼 부부 사이가 다정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이다. 해로동혈(偕老同穴)은 살아서 같이 늙고 죽어서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이니 부부가 생사(生死)를 같이 하자고 맹세함을 뜻하는 말이다.


 결혼할 땐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는다고 한다. 남녀가 결혼하여 평생 함께 지낼 것을 다짐하는, 아름다운 언약을 말한다. 백년해로(百年偕老)는 서로 부부가 되어 평화롭게 살면서 함께 늙음을 뜻한다. 


 반면,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법도(法道)가 있음을 경계하는 말도 많다. 대표적인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아무리 친한 남편과 아내 사이라도 지켜야 할 인륜(人倫)이 있다는 뜻이다. 좀 어려운 말로 ‘거안제미(擧案齊眉)’란 말도 있다. 아내가 밥상을 눈썹과 가지런히 되도록 공손히 들어 남편 앞에 들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이런 아내가 있을까만, 그만큼 가장(家長)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부위부강(夫爲婦綱)도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0…난데없이 웬 부부 타령인가. 그것은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간에 예의를 지켜야 원만한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부류의 군상(群像)을 만난다. 그러다 정이 들고 친해지면 허물도 격의도 없어지고, 이내 최소한의 예의마져 팽개쳐 버린 채 막 대하게 된다. 부부 사이가 비근한 예다. 


 처음엔 가슴 설레게  만나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혼해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존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미운 점만 들춰가며 아웅다웅 티격대고, 그것이 더 커지면 헤어지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부부가 항상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춘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0…지난 주말, 우리 부부는 신년 ME(Marriage Encounter) 파티에 참석했다. 우리가 작년에 이 모임을 다녀온 후 5개월이 흘렀다. 그때 만난 부부들이 지금은 어떻게들 살고 있나, 궁금했다. 특히 한눈에 봐도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고 곧 헤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던 부부는 과연 참석을 했을까. 그런데 참으로 믿기지 않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ME 모임의 이야기를 외부에 누설(?)하는 것이 불문율에 어긋나긴 하지만, 아무튼 당시는 곧 헤어질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듣고 있는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던 커플이 몇 있었다.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도 증오와 악의에 차 이글거렸고 그들은 머지않아 헤어질 것이라고 우리 부부는 예상했다. 


 그런데 이날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만나는 부부마다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었는데, 5개월 전 당시 티격대며 우리를 불안케 했던 부부들이 이 날은 하나같이 서로 행복감에 젖은 눈빛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부부관계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소중한 교훈 하나를 터득했다. 당시 티격대던 부부들이 이제는 서로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이 역력했던 것이다. 상대에 대한 말이나 몸짓이 존중과 사랑으로 넘쳐 흘렀다. 말도 5개월 전처럼 함부로 하지 않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그렇게 다정스러울 수 없었다.       


 각 조별 장기자랑 순서에서 어느 팀이 연극을 선보였는데, 제목은 ‘ME의 전(前)과 후(後)’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ME 만남을 통해 부부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표현한 것인데, 코믹한 장면 속에서도 가슴 뭉클한 모습이 많았다. 전에는 상대방의 기분이나 느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무시해버렸던 남편이나 아내가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 흠씬 묻어 나왔다.


0…나는 이날 행사에 참석하면서 새삼 나를 돌아보게 됐다. 5개월 전 ME에 다녀온 직후엔 나름대로 원칙에 충실하면서 10/10(10분간 편지 쓰고 10분간 대화하기)도 지키고, 출근할 땐 아내를 안아주며 사랑 표현도 했다. 그런 실천이 두 달 정도 지속되더니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서로 포옹해주는 것도 건너뛰다 보니 이제는 어쩌다 그러자면 어색한 느낌마져 든다. 


 상대의 기분과 느낌을 헤아려 거기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려던 노력도 점차 열의가 식어가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듯하다. 나는 우리 부부 사이에 애정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포근히 감싸주려는 그 노력…    

 
0…매월 한번씩 만나는 ME 조별 모임에서 한번은 발표 주제가 ‘배우자가 아플 때 나의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였다. 일상에서 흔히 겪는 일인데, 막상 아내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상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아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도 능력도 없다. 그러니 시쳇말로 ‘있을 때  잘 해주자’.  


 인간 삶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정생활이 깨지면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킬 때 가정은 튼튼히 유지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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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블루 먼데이-겨울철 불청객 우울증

 

 

 새해 첫달인 1월은 꿈과 희망이 깃들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질 못한 것 같다. 계절은 가장 추운 겨울의 한복판이고 지난 연말에 들떴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새해 소망이나 다짐도 점점 실현 가망성이 줄어드는 때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겪는 심리적 불안상태를 일컫는 ‘쟁자이어티(Janxiety: January + Anxiety)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1월을 색깔로 표현하면 푸른색(blue)에 가깝다. 푸른색은 우울, 슬픔, 외로움 등을 나타낸다. 화가들은 이 색을 통해 우울감을 나타낸다. Feel blue는 ‘기분이 우울하다’는 뜻이고, ‘Love is blue’(우울한 사랑)이란 노래도 있다. 


 푸른색이 우울한 기분을 표현하게 된 유래는 먼 옛날 항해 중 선장을 잃은 배가 파란 깃발을 달고 선체에 파란 띠를 두르고 돌아온 데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구슬프고 흐느끼는 듯한 ‘블루스’라는 음악도 있는데, 아프리카 노예들의 처량하고 힘든 노동요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0…1월 하고도 보름 정도 지나간 이맘때가 일년중 가장 우울하며 그중에도 월요일이 가장 그렇다. 예부터 월요일은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월요병’이라 불릴 정도로 괴로운 날이 바로 월요일이다. 몸은 찌뿌듯하고 기분도 별로 안 좋으며 머리 회전도 잘 안된다. 


 월요일의 영어 Monday의 어원은 ‘달의 날(day of the Moon)’에서 비롯됐다. 한국, 중국 같은 동양에서도 한자에 달을 넣어 月曜日이라 쓴다. 반면, 일요일(日曜日)인 Sunday는 ‘해의 날’(day of the Sun)이다. 해는 밝고 희망적인 기분을 주는 반면, 달은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긴다. 예전부터 요일에 따라 느끼는 기분이 달랐던 것이다.

 
 우울한 기분을 표현하는 푸른색과 기분이 저조한 월요일을 합쳐 만든 Blue Monday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월요병’ 정도에 해당한다. 우울한 단어끼리 합쳐졌으니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 1957년 미국 가수 팻츠 도미노가 발표한 ‘Blue Monday’라는 노래가 나왔다. 가사는 이렇다. ‘난 우울한 월요일이 너무 싫어. 하루종일 노예처럼 일만 해야 해. 이제 화요일이 오네, 오 힘든 화요일. 놀 시간도 없는 생활이 지겨워…’(Blue Monday how I hate Blue Monday. Got to work like a slave all day. Here come Tuesday, oh hard Tuesday. I'm so tired got no time to play…)


 블루 먼데이는 1983년 영국 밴드 뉴 오더(New Order)의 싱글 음악이 발표되면서 더욱 많이 쓰이게 됐다. 블루 먼데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드카 칵테일도 생겼다. 


0…겨울 중에도 1월은 가장 우울한 달이다. 오죽하면 1월 8일은 ‘이혼의 날’로 불린다. 연말연시 직후,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어하는 부부의 변호사 상담률이 피크에 달하기 때문이란다. 


 1월 셋째 주 월요일이었던 지난 21일은 이른바 ‘블루 먼데이’였다. 사람들에게 년중 가장 우울한 날이었다. 그것은 들떴던 연말연시 휴가도 지나고 연말에 흥청대며 쓴 빚은 늘어나고, 날씨는 춥고 하늘은 회색빛이다. 새해 결심도 스르르 녹아버리고 원점으로 돌아올 시점이 이때다.


 블루 먼데이는 2005년 영국 카디프대학 강사 클리프 아낼이 처음 사용한 이래 춥고 음습한 날씨와 함께 1년 중 가장 우울한 날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0…겨울은 왠지 슬프고 우울한 계절이다. 정신의학적으로도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란 말이 있다. 전문용어로 계절성 정동장애(情動障碍)라고 하는데, 북미에서는 윈터 블루스(winter blues)란 말이 쓰인다. 겨울 우울증에 걸리면 심신이 피곤하고 불안 초조하다. 아무리 잠을 자도 늘 무기력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겨울에 우울한 것은 햇볕이 부족한 이유가 가장 크다. 낮이 짧아 생체의 시계바늘을 조절하는 태양빛이 적어지고 감정을 전달하는 신경물질도 감소한다. 이는 추운 북쪽일수록 더하다. 미국 뉴욕의 겨울철 우울증 환자가 플로리다보다 10배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남유럽에 비해 북유럽 사람들이 말수가 적고 침울해 보이는 것도 일조량이 적고 날씨가 춥기 때문이다. 


 복지제도가 잘 돼있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자살율이 오히려 높은 것도 음산한 겨울날씨 영향이 크다. 예술가 중에는 여름철에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과 여름 햇살 아래 농부를 그린 반 고호 등이 심한 겨울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반면, 카리브해 국가들 국민이 빈곤하긴 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대체로 온화한 날씨 덕분이다.  


 0…겨울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어지는 늦가을에 시작돼 봄이 되면 사라진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우울증 극복방법으로 다음 사항을 권한다. 1.낮에는 가급적 집 밖에 있을 것. 2.가능한 밝은 곳에 있을 것. 3.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 햇볕을 쪼일 것. 4.집에서도 조명을 밝게 할 것. 5.규칙적인 생활을 할 것. 6.운동을 꾸준히 할 것. 7.가급적 혼자 있지 말 것…


 아름답던 옛날을 회상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꿈결 같던 연애시절을 떠올리거나 어릴 때 뛰어놀던 고향 풍경을 반추한다. 나는 옛날 노래를 흥얼거려도 기분이 풀린다. 


 지금은 겨울의 중간, 아직 추위가 지나려면 멀었다. 요즘 같은 때, 나름대로 우울증을 극복할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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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0
이름값-사람도 회사도 신용이 제일

 

 

 체감온도가 영하 25도를 오르내리며 올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주, 모두가 움츠리고 종종걸음을 걸어가는 출근길은 무척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콘도 건설현장을 지나는데 적잖이 놀랐다.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사차량이 부산하게 드나들고 인부들도 두꺼운 방한복과 안전모를 쓰고 평소와 다름없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에 무척 감동했다. “아, 이런 것이 프로의 세계로구나…”       


 한겨울 칼바람이 매서운 요즘도 토론토의 거리를 지나노라면 많은 건설현장에서 공사를 계속해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한파경보가 내려져 있음에도 대형 기중기와 포크레인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작업인부들도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들에게 절로 존경심이 솟는다.    


0…3년여 전 분양했던 노스욕 레슬리/셰퍼드 근처의 스칼라(Scala) 콘도건설 현장. 콘도의 명문으로 알려진 트라이델(Tridel)사가 짓는 이 콘도는 날씨와 관계없이 공사가 급속히 진행되는 광경을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작업인부들이 강추위에 고생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회사의 이름을 걸고 시행하는 공사이니만큼 공기(工期)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들에서 강한 프로의식을 엿보게 된다.            


 새 콘도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가급적 하루라도 빨리 공사가 완료돼 새 집에 입주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이런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개발회사는 날씨 여부에 관계없이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다. 노스욕 영/스틸스 선상에 올라가고 있는 뱅가드(Vanguard) 콘도(빌더: Devron) 건설 현장도 생기가 살아 넘친다. 하루하루 스카이라인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노스욕 영/커머 한복판에서 진행중인 대형 프로젝트 M2M 콘도(개발사 Aoyuan)는 분양이 시작된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주변에 펜스가 설치되고 굴삭기가 땅을 파기 시작하는 등 공정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척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콘도 구매자들은 개발회사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0…이렇게 발빠르게 움직이는 개발사가 있는 반면, 고객과의 신뢰를 헌신짝처럼 차버리는 경우도 갈수록 늘고 있다. 호텔업으로 성장한 인도계 개발사 Gupta 그룹은 번(Vaughan)지역에서 가장 높은  53층짜리 아이코나(Icona) 콘도를 짓겠다며 2년여 전 분양까지 마쳤는데, 그후 공사진척이 전혀 없다가 급기야 지난해 9월 계획 자체를 없던 것으로 해버렸다. 당시 초기 분양가가 토론토 도심에 비해 낮게 팔았는데(평방피트당 690불 대) 다른 지역의 분양가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을 보고 아예 계획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지금 이 회사는 구입자들로부터 집단소송에 휘말릴 처지에 몰려 있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바로 같은 자리에 거의 똑같은 프로젝트를 재추진하겠다고 시 당국에 건설신청을 했다. 이번엔 틀림없이 분양가를 대폭 올려서 팔려고 들 것이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전 구매자들은 시 당국이 건설허가를 내주지 말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설령 재추진을 하더라도 이런 회사의 콘도를 다시 살 구매자가 있을까. 


 이 회사 뿐만 아니라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설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콘도 프로젝트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3년여 사이에 모두 25개의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노스욕 영/커머의 5959 Yonge 콘도(개발사 Ghods Builders) 같은 경우는 간판이 붙은지 3년이 다 돼가도록 착공도 못한 채 아무런 진척이 없다. 이 건설사는 층수를 높이기 위해 계획변경을 신청중이라는데 어느 세월에 결론이 날지 모르는 실정이다. 방치된 현장엔 잡초가 무성하고 쓰레기만 수북해 거리의 흉물단지로 변했다. 간판에 붙었던 예쁜 여성 사진이 엊그제 떨어진 것으로 보아 이 콘도 역시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콘도를 산 사람들의 속이 시커멓게 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옆 500미터도 안되는 M2M 콘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활발한 공사와는 너무도 대비가 되어 더욱 그렇다.


 분양콘도 건설 계획이 취소됐다는 일방적 통보는 내집 마련의 꿈에 부풀어있던 구매자들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분양한 지 2~3년여 사이에 다른 지역의 분양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에 선뜻 다른 곳을 사기도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0…어느 상품, 어떤 제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와 가족이 살아갈 보금자리인 주거공간이야말로 어떤 일이 있어도 고객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신용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콘도 구매자들이 트라이델 같은 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도 그래서 그렇다. 이 회사가 짓는 콘도는 말썽이 별로 없고 튼튼하게 지으며 공기(工期)도 잘 맞춘다고 인식돼 있어 매우 잘 팔려나간다. 멘키스, 다니엘스, 콩코드, 피너클, 그레이트걸프, 디아만테, 플라자 등도 나름대로 이름값을 하는 회사들로 평판이 나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어느 회사 제품이냐를 먼저 살핀다. 그만큼 회사의 이미지와 평판이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업계 선두를 질주하는 이유는 그만큼 공을 들여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런 회사 제품은 믿고서 사는 것이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상대방으로부터, 고객들로부터 믿음을 얻도록 처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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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걷기 예찬-노(老) 철학자의 산책길

 

▲서울 연희동 자택 인근 동산을 산책하다 잠시 쉬는 김형석 교수

 


 
 인생은 끝이 안 보이는 머나먼 길이며 그 길을 따라 한발 두발 걸어가는 것이 삶의 과정이 아닌가 한다. 걷다 보면 평탄한 길도 있고 험한 길도 만난다. 길가에 핀 들꽃이 있고 파란 하늘과 싱그런 바람도 만나겠지만 먹구름 끼고 비나 눈이 내리는 궂은 날도 있을 것이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걷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그런 목적 없이 그저 길이 있으니 걷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길을 걷되 혼자 걷는 사람도 있을테고 둘 혹은 셋 이상 여럿이 함께 걷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 교수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이 2002년에 지은 산문집 <걷기 예찬>(원제: Eloge de la Marche)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스테디 셀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걷기는 육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사색과 명상을 위해 매우 유용한 운동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걷기를 하되 가능한 혼자서 걸으라고 충고한다. “혼자서 걷는 것은 명상, 자연스러움, 소요(逍遙)의 모색이다. 옆에 동반자가 있으면 이런 덕목이 훼손되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의사소통의 의무를 지게 된다.”고 말한다. 


 호젓한 숲길을 산책할 때 옆에 누가 있다면 깊이있는 사색이 어려울 것이다. 동반자와 대화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고,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히 생각에 잠기거나 주변 풍경을 즐길 여유도 반감된다. 걷기는 역시 혼자 해야 참된 의미가 있을 터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브르통은 “여행은 혼자서 하는 게 좋다. 둘이 여행을 하게 되면 동일한 경험을 나누어 갖기 위하여 자신의 어느 한 몫을 포기하게 된다”고 했다.


 철학자 루소는 자기만의 고독을 너무도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이런 말을 남겼다. “누가 나에게 마차의 빈 자리를 권하거나 길을 가던 사람이 내게 가까이 올 때면 나는 걸으면서 이룩해온 큰 재산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인생은 근본적으로 혼자서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옆에 동행자가 있으면 외롭진 않을테지만 되레 부담이 될 때가 적지 않다. 


0…최근 KBS 1의 <인간극장> 프로그램에서 인상깊은 철학자를 만났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웬만한 한국인 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이지만, 나는 세상에 유명한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에 우연히 이 프로를 보고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 많았다.      


 ‘한국 철학의 대부’ ‘시대의 스승’ 등 여러 존칭으로 불리는 김 교수는 1920년 생이니 만으로는 99세(백수.白壽)이지만 한국나이로는 100세가 된다. (백수를 흔히 100세로 생각하나 백수 글자를 보면 일백 백(百)이 아니라 흰 백(白)자를 쓰며 이는 일백 백에서 하나(一)를 뺀 모양이다. 즉, 백수는 100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99세를 가리킨다). 이 분은 많은 저서와 강연, 언론 대담 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것은 완숙한 철학적 사유(思惟)에 더해 연세가 들어도 변함없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그에 따른 왕성한 활동 때문이리라. 


 100세 철학자의 일과는 시계처럼 규칙적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잠자리에 든다. 하루 한 시간쯤 산책을 하고 강의나 집필원고를 정리한다. 일주일에 세 번은 혼자 버스를 타고 수영장에 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2층집 층계를 오르내린다. 틀니나 보청기도 의지 않는다.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가끔 지팡이는 짚는다. 1년에 160번씩 강의를 다닌다. 지방에서 강연요청이 와도 사양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행복한 사람이다. 70대 아들과 딸, 사위들이 모두 정년퇴직을 했는데 100세인 그만 일하고 있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질투(?)도 난다. 보통사람들은 60세 전후로 현직에서 떠나 무슨 일을 할지 몰라 방황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얼굴이 항상 웃는다. 식사 전엔 “여러 사람에게 좋은 얘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나에게 건강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특히 이 프로를 보면서, 15년 전 부인을 잃고 홀로 고독하게 사는 이 분의 사상이 산책과 걷기, 명상을 통해 더욱 깊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김 교수는 바닷가를 산책하며 “대학교수를 정년 퇴임하고 바깥 사회로 나온 후 한 15년 동안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내 나이로 보면 60세에서 80세까지가 제일 좋았다”고 회고한다. 


0…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행복인가 라는 질문 앞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한다. 나는 김 교수가 인생에서 가장 좋았었다는 나이인데 과연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김 교수는 말한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힘든 과정이었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다. 그것을 깨닫는데 90년이 걸렸다”. 베레모를 쓴 노 철학자가 하얀 눈이 덮힌 산책로를 걸어가는 모습이 내 가슴에 오래 남아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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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6
나를 위한 삶-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줄

 

 

 



 새해가 되니 이곳저곳에서 신년인사와 덕담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인사말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건강하시라"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리라.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해도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건강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임을 깨닫고 각자 건강관리에 힘써야겠다.        

 
 그런데 직접 얼굴을 보고 나누는 새해 인사는 반갑고 정답지만 모바일(카카오톡)을 통해 일방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다량의 메시지는 반갑기는커녕 공해가 되어 버렸다. 모바일 메시지 중에도 개인적인 안부와 인사말을 담은 것은 친근감이 가고 짧게라도 답신을 하게 되지만 아무런 인사도 없이 툭 떠오르는 동영상이나 이모티콘은 그야말로 짜증나는 일이다. 아무런 성의가 없는 그런 메시지엔 답신도 않고 바로 지워버린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편리한 기기를 통해 신속히 소식을 전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메시지를 띄울 때는 최소한의 인사말이라도 곁들이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한다. 어느 땐 그런 메시지를 받고 그저 예의상 짧게나마 답신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는 황당한 경우도 많다. 새해엔 서로간에 좀더 예의를 지키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0. 한국에서부터 신문사 밥을 먹기 시작한지 올해로 30여 년째. 젊은 시절의 짧은 기업체 생활을 제외하고 인생의 대부분을 신문지에 쌓여 살아왔다. 지난날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아쉬움은 있다. 기자라는 직업은 어찌보면 나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직업이다. 인간세상을 파고들어 대중 앞에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주 임무인 이 직업은 때론 보람도 있고 성취감도 있지만 어느때 나 자신을 돌아보면 정신적인 공허감에 빠질 때가 많다. 남을 위해, 남에게 알리기 위해 뛰었지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나 자신의 발전과 내적 성숙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가 라고 자문해보면 입맛이 씁쓸해진다.


 특히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정신적인 공허감에 휩싸일 때가 많다. 해서, 이제부터는 나를 위한 삶을 살자는 다짐을 해본다. 언젠가부터 꼭 필요한 모임에만 나가고 가급적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하고 있다. 남과 어울려 술 마시며 건강을 해치고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하느니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덕분에 요즘 독서량도 점점 늘고 있고 운동도 많이 하게 됐다.   


 직업상 남과 어울리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모임이 끝나고 귀가하면 뿌듯함보다는 마음이 허전한 경우가 더 많다. 만나서 나누는 대화들이 나와는 별로 상관없고 시중에 돌아가는 것들인데, 그건 신문에 낼만한 고급정보도 아니요 사사로운 잡담인 경우가 많다. 그런 시간은 그저 아깝기만 하다. 그 시간에 집에서 책이라도 한장 더 넘기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0. 이 나이토록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산 적이 없다. 자식걱정에, 집안걱정에 한시도 푹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새해엔 나 자신을 위한 삶,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주변의 눈치 볼 필요없이 내가 만족한 삶을 살아야겠다. 그러자면 우선 나 자신부터 사랑해야 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한달 또는 몇개월 밖에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여행을 가고 실컷 골프를 치고?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그것을 하고 있지 못할까. 하고 싶은 것들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인생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인생에서 과연 성공이란 것이 무엇일까? 큰 돈을 벌고 호의호식하는 것? 직장에서 최고 위치에까지 오르는 것? 남에게 칭송과 인정을 받는 것? 세속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것은 대체로 남을 의식하는 데서 비롯된 성공관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인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다 어느정도 명예욕도 있어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측면이 조금씩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삶이 공허해지고 허탈감에 빠질 우려가 있다. 사회적 현시욕(顯示慾)이 강한 한국인들은 특히 그런 성향이 있다. 그래서 사회의 모범생이 가정에서는 낙제생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은 어느 위치에서 내려왔을 때 외로워지기 쉽다. 


0…인생의 목표가 나의 행복과 내적인 평화인 사람들에게 사회적 평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자. 나를 위한 삶이 이기적이라고 여겨질지 모르나 그건 아니다. 나에게 충실한 삶은 곧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삶이다.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하게 된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외형과 물질적 성취에 집착하지 말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로 했다. 독서, 운동 등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노력하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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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말의 부메랑-남에 대해 좋은 말을

 

 

 

 최근 친지들과 한식당엘 갔는데, 칸막이 좌석 너머로 다른 손님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하는 소리가 귀에 꽂혀왔다. 어느 시상식 얘기인 듯한데, 누구누구에 대해 어찌 그리 소상히도 아는지, “그런 사람은 절대로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인간이 전에 어땠는 줄 알아요?. ” 처음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넘겼는데 얘기가 계속될수록 듣기가 민망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뒷맛이 씁쓸했다. 그런데 정작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정말 타인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평가해도 좋을 만큼 평소 언행이 모범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으니 더 쓴웃음이 나왔다.    

    
 예전 직장에 다닐 때 회의를 할라차면 다른 업무 등으로 참석을 못하는 직원이 있는데, 그럴 때 직속상사는 예외없이 특정 불참자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곤 했다. “그 친구 참 게을러. 그걸 일이라고 하는지. 속이 터져…” 그런데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없으면 나 또한 그렇게 화젯거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직원들은 가능하면 회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가 하면, 회식자리에서 하는 말은 직장상사나 동료, 또는 주변인들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그런 자리에서는 십중팔구 좋은 말은 듣기가 어려웠다. 대개는 화제 대상의 나쁜 면만 들추어내기 일쑤였다. 


 인간교류의 폭이 좁고 제한적인 이민사회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대개 서로 간에 속내를 많이 아는지라 상대방이 어떻게 살아왔고 장.단점은 무엇인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그런데 누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 대한 말을 할 땐 대체로 호의적인 말은 별로 들을 수가 없다. “그 분 참 훌륭하지. 멋있는 분이야.” 이런 얘기만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질 않다. “그 친구, 전에는 형편 없었어. 요즘 조금 살만해지니 되게 거들먹거려. 많이 컸어…” 이런 식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갖고 있고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누가 없는 자리에서 상대를 함께 욕하고 험담한다고 해서 대화하는 두 사람 간에 마치 공통분모라도 있는 양, 정이 깊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분명한 것은 그처럼 남의 말을 한 사람은 다른 자리에 가면 거꾸로 내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십중팔구 좋은 말이 아닐 것이다. 남에 대해 좋게 얘기를 안하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면 나에 대해서도 험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0…말은 부메랑과 같다. 부메랑은 호주의 원주민들이 사냥이나 전쟁 때 사용한 도구다. 목표물에 명중시키지 못한 부메랑은 되돌아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제자리로 돌아오는 부메랑은 종종 던진 사람에게 치명적인 무기로 돌변한다. 우리가 함부로 내뱉은 말들이 언젠가 부메랑이 돼 돌아와 난처한 입장에 놓이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한다. 


 아브라함 링컨은 젊은 시절 친구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빌미가 돼 그 친구로부터 결투신청을 받았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뒤로 링컨은 절대로 뒤에서 남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누굴 욕하면 그것은 주변을 빙 돌아 내 뒤통수에 꽃힐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내가 누구를 좋게 얘기하면 그 역시 되돌아 오지만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그것은 면전에서 대놓고 칭찬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한번은 누가 나보고 “고마워요. 저에 대해 그렇게 좋게 말씀해주셨다면서요?” 하는 것이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그를 칭찬하면 그는 후에 반드시 나의 사람이 된다.   


0…말의 상처는 칼로 입는 상처보다도 더 깊다. 말로 남의 가슴을 도려내기 좋아하는 것이 한국인의 좋지 않은 버릇 중 하나다. 오죽하면  ‘남의 말 좋게 하자’는 범국민적 캠페인까지 벌어졌을까. 특히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요즘에는 악의적 댓글이 난무하고 대상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자고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칭찬의 힘은 하면 할수록 더욱 긍정적인 일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잘못을 강조하고 꾸짖을수록 더 큰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칭찬은 하되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더 좋다. 특히 본인이 없을 때 남긴 칭찬은 그 호응 가치가 두 배가 된다. 


 새해 토론토 한인사회에는 잇달아 단체장 선거가 실시된다. 그런데 각 단체장 후보들에 대해 긍정적인 말보다는 흠집 내는 말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남을 헐뜯는 사람은 단체장으로 뽑아선 안 된다. 남을 헐뜯는다고 자기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남을 높힌다고 자기의 위상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낮출수록 위로 올라가는 법이다.              


 사회생활을 올바로 하려면 세치 혀를 잘 놀려야 한다. 성경에도 일렀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언 20:19). “남에 대해 좋은 말만 하자” 이것이 나의 새해 다짐 중 하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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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이민사회의 진주들-한인상 받은 두 여인

   

 

 

 제 36회 캐나다한인상 시상식이 지난 7일 토론토한인회관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근래들어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동포들이 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워 좌석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것은 올해 한인상 수상자가 많기 때문(개인 5명, 단체 2곳)이기도 하거니와 이 상에 대한 동포들의 관심도 그만큼 컸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 훌륭하신 많은 동포들이 한인상을 탔고, 다 그만한 자격이 있기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을 터이다. 이민 연륜도 길지 않은 본인은 어쩌다가 한인상위원회 이사로 참여하게 됐는데 벌써 10여년 째 수상자 선정에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점은, 각박한 이민사회에 이처럼 마음이 여유롭고 따사로운 분들이 많이 계시구나 하는 것이다. 


 수상자 중에는 사업적으로 성공함으로써 경제적 여유가 있어 동포사회에 기여한 분도 있거니와, 반면에 여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순전히 마음과 실천으로 헌신적 선행을, 그것도 남모르게 숨어서 사랑의 손길을 뻗친 분도 많다. 올해 수상자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두 분이 바로 그런 분들이다. 올해 나란히 73세를 맞은 중년의 두 해방둥이 여성, 김주옥 여사와 나옥녀 여사. 이 분들 사연이 동포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0…김주옥 여사는 한인사회에 ‘봉사의 여왕’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웬만한 한인 치고 그녀로부터 설날 떡국 한그릇 대접받아보지 않았다면 그는 한인사회를 잘 모르는 것이다. 매년 새해 첫날 신년하례식 후 나오는 떡국 한 그릇의 기막힌 맛은 모두 김 여사의 손끝에서 나온 것이었다. 남들은 인사 나누느라 바쁠 때 그녀는 주방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떡국을 담고 있었다. 진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꼬박 사나흘을 소비했다. 그런 일을 무려 30여 년간 계속해왔다. 


 김 여사는 음식만 잘한 것이 아니다. 한인사회가, 이웃이 어려울 때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그러면서 어떠한 불평이나 군소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본의 아니게 직함도 많이 맡았다. 그러나 이 분이 직함을 많이 맡은 것은 명예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녀는 누가 무엇을 부탁하면 거절을 못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힘든 일을 도맡아 떠안은 것이다. 


 그런 그녀가 언젠가부터 한인사회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지난해 여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것이다. 그나마 서서히 회복이 되던 차에 올해는 부군마져 돌아가시는 불운을 겪었다. 진작에 한인상 수상감이었던 그녀는 올해 후보자로 추천됐고 심사 때 거의 전원일치로 표를 받았다. 


 김 여사는 여전히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수상소감에서 그녀는 어눌한 발음으로 “저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면서 대가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좋아서 일을 했고 동포들이 좋아하면 그것으로 행복했습니다. 궂은 일이라 생각 않고 뒤에서 조용히 일했을 뿐인데 큰 상을 받아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앞으로 어느 설날에 그녀의 손맛이 밴 떡국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0…블루어 한인타운의 터줏대감인 나옥녀 여사. '착한 사장님', ‘기부천사’로 불리는 그녀는 한인사회에 딱한 사정이 전해질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랑의 메신저다.

1980년 이민 와서부터 38년째 블루어 한곳에서 식당을 개점, 운영하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 선행을 베풀었다. 한인타운에선 그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식당에서 일하다 학업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에게는 학비를 보태주기도 했고, 그래서 한번 그 식당에서 일한 종업원은 끝까지 함께 한다. 


 한인사회의 마당발 김병선님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10여년 전, 삶에 지쳐 스스로 생을 마친 어느 동포의 사연을 들은 나 여사는 적지 않은 금액을 장례비로 전하면서 절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의 어느 신부님이 위암수술을 받으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술비에 보태 쓰라며 거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고생 모르고 살 것처럼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그녀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약국집 딸로 부유하게 자랐고 한때 TV 탈렌트로 드라마 주연까지 맡았으나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떠나온 이민살이는 결코 녹록지가 않았다. 그녀가 거쳐온 역경과 인고의 세월은 가슴 속에 숯가마처럼 쌓여 있다. 38년 세월을 함께한 주방장, 반장 아줌마, 두 아들… 이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직 집도 없이 식당 2충에 기거하면서 남을 돕고 있다.


 그녀의 수상소감이 청중들의 가슴을 적셨다. “그동안 살아온 내 삶에 좋은 이웃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쓰러졌을 겁니다. /캐나다에 와서부터 한국관을 운영하며 살아왔고 한인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오늘날까지 살아왔으니 그 감사함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얼마를 가졌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옥녀 여사. 세기의 천사 배우 오드리 햅번이 롤모델이라는 그녀. 힘들고 어렵게 살면서도 남을 돕고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가는 그녀는 진정한 천사다.  


 각박한 이민사회에 살아 숨쉬는 진주들. 이런 분들이 있기에 타국살이는 그런대로 살아갈만하다 하겠다. 앞으로 보다 많은 숨은 진주들이 발굴돼 동포사회를 빛내주기를 기대한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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