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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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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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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실력으로 성공했다는 그대

 

▲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책 표지 

 

 

 

 화투(고스톱)를 치거나 도박을 할 때 흔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쓴다. 즉, 운(運)이 7할이요 기술은 3할쯤 된다는 말로, 매사엔 행운이 따라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려면 운(luck)이 중요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피나는 노력을 해도 행운이 함께 따르지 않으면 주저앉고 마는 경우를 자주 겪고 본다.    

 
 그런데, 이 운(運)이라는 것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행운아와 불운아로 나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뱃속에서부터 행운아로 태어난 사람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리된 것으로 착각하며 못사는 사람을 경멸하고 우습게 여기는 사회풍조인 것이다.        

 
0…한세상 살면서 우리가 바라는 성공을 위해선 노력과 운(運)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미국 코넬대의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H 프랭크 교수의 저서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정태영 옮김)는 인생에서 운이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을 수많은 사례와 실험 결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입증한다.


 저자는 먼저,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부터가 커다란 행운이라고 강조한다. 아프리카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면 처음부터 희망은 없다. 또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다. 잘 사는 환경에서 지능도 높은 부모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이미 성공의 절반은 다다른 것이다. 이병철의 아들로 태어난 이건희나, 그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용은 이미 성공을 보장받고 태어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노력이니 실력 운운하는 자체가 위선이다.


 이런 분석은 특히 성공의 기준이 부(富)의 축적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그렇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자 자선기부로 칭송받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그가  만약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또한 1960년대만 해도 귀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단말기가 있는 사립학교를 안 다녔다면 지금같은 성공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특히, 당시 업계 선두주자 IBM이 게이츠에게 컴퓨터 운영체제(MS-DOS) 개발을 맡기는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게이츠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행운이 큰 몫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은 이처럼 수많은 우연과 행운들에 의해 굴러가고 발전해간다. 순전히 노력으로 결정되는 영역이라 생각되는 스포츠에도 운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월드컵 축구에서도 그런 경우를 흔히 보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순전히 노력과 실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학자들은 이를 ‘사후 과잉확신 편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앞날은 예측하기 어려운 것임에도 모든 성공이 자신의 실력(노력) 덕에 당연히 그리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이 노력을 하지 않은 때문이라며 경멸한다. 자신의 성공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던 운은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0…운이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말을 자꾸 하면 맥이 빠져 노력을 쏟아붓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압박하는 것이 꼭 좋은 결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성공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경쟁에 무작정 뛰어들어 삶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 


 ‘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무책임한 말이다. 이는 ‘노력이 있는 한 불가능은 없다’는 뜻이지만 세상엔 분명히 불가능이 존재하고, 그것을 자꾸 강요하는 것은 위선이다. 어릴적 소아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57년을 살다 타계한 고 장영희 교수는 ‘하면 된다’는 논리가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위압감이나 자괴감을 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편리한 자기합리화로 오도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층계를 못 올라가 곤혹스러워 하는 장애인에게 아무리 ‘당신은 할 수 있소’라고 외쳐도 벌떡 일어나 올라갈 리 만무하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아무리 강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도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힘내라", “절망하지 마라"는 말도 그렇다. 그런 말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그런 말조차 언어폭력일 수가 있다. 누군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고 싶어 빠졌을까.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럼에도 절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쉽게 던지는 위로의 말은 자칫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0…성공은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사회가 준 ‘복’에 감사할 줄을 모른다. 이를 인정하고 자신도 사회에 기여할 줄 알아야 세상이 더 윤택해진다. 성공한 기업가는 사회가 준 행운이니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하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금내는 걸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태어난 것 자체가 행운인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위 책 저자의 제안이다.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행운을 준 사회에 보답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귀 기울일 만하다. 실력과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는 오만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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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9
어떤 엽서

 
 

▲K 할아버지께서 건네주신 엽서들

 

 


“귀지(貴紙)의 번영과 일로매진(一路邁進)을 기원합니다. 매주 금요일 신문을 각 한인식품점에 비치해놓아 여러 동포들이 좋은 글을 읽게 해주시는 귀지에 감사합니다. 무술년 7월 초하루, 캐나다데이에, 독일 채탄부(採炭夫) 000 합장 배(合掌 拜)…”


 구부정한 허리에 곧 쓰러질 듯 불안한 지팡이, 떨리듯 가냘픈 어깨엔 허름한 배낭 하나. 다 헤진 베레모 사이로 삐져나온 흐트러진 백발들… 남루하고 초라한 행색의 노인 한 분이 힘겹게 신문사 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 “거동도 불편하실텐데 어떻게 또 오셨어요?” 잊을만 하면 가끔씩 들르시는 그 분. K 할아버지께서 올해도 캐나다데이 전날에 들르셨다. 바깥 온도가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의 날씨에 굳이 여기까지 오시다니.   


 1933년생으로 올해 만 85세가 되시는 이 분과의 인연은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칼바람 추위가 매서운 한겨울이었고, 그때도 불안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벙거지를 쓰셨는데, 혹한의 날씨에 왜 외출을 하셨을까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힘겹게 의자에 앉으시며 “이렇게 좋은 신문을 만들어주시는 분의 얼굴이나 보려고 왔다.”고 하셨다. 먼저, 어디 사시느냐고 여쭈니 신문사에서 꽤 먼 다운타운 인근이셨다. 가깝지도 않은 곳까지 어떻게 오셨느냐고 하니 버스를 타고 왔다 하신다. 


 그러면서 하얀 작은 봉투를 내미셨다. 그 자리에서 열어보니 작은 엽서에 촘촘히 쓰신 글이 들어 있었다. 붓글씨체로 한자가 많이 섞인 정갈한 편지에는 “동포사회에 유익한 신문을 만들어 주어 너무도 감사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엽서 사이에 빨간 지폐 한 장이 들어있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이게 무언가요?”라고 여쭈니 “약소하지만 직원들과 식사나 한끼 하시라.”고 하셨다. 나는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다시 돌려 드리려 했으나 할아버지는 매주 우리 신문을 읽으면서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들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000씨의 글이 참 좋고, 000씨도 마음이 따스한 거 같애요. 이렇게 좋은 글들을 실어주는 신문을 공짜로 읽으니 미안해서…”라며 극구 돌려받기를 사양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너무도 완강하신데다, 그 추운 날씨에 먼길을 오신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지폐를 돌려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일단 받아서 나중에 직원들과 간식이라도 사 먹기로 했다.  


0…그때도 그랬거니와,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나는 엽서를 벽에 붙여두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과연 이런 감사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그 겨울 이후로 할아버지는 잊을만 하면 나타나셨다. 특히 캐나다데이와 연말연시에 오시는데 올해 캐나다데이도 잊지 않으시고 오신 것이다. 


 한편으로, 할아버지는 나름 이날을 생각해두셨다가 특별히 먼 길을 방문하셨을텐데 나는 과연 무슨 의미를 부여했는지,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올해 뵌 할아버지는 작년보다 부쩍 쇠약해지신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내년 이맘 때 이곳에 들르지 못하면 그냥 (저 세상으로) 간 줄 아세요…”     


 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엽서를 새삼 다시 들여다 본다. 글씨체가 보통 수준이 아니시다. 한학(漢學)과 서예가 상당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이런 글씨가 나올 수가 없다. 엽서에 정성들여 쓰신 문구가 지금도 내 벽에 붙여져 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5년 전부터 꼬박꼬박 모아놓은 것이 대여섯 장이나 된다. 이것들을 버리면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부동산캐나다 신문을 보고 다양한 동포사회 소식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습니다. 매주 이 신문이 기다려집니다. 정성을 다해 알차고 유익한 신문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면 할아버지의 엽서 문구들을 돌아보며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한다. 


 “제가 어떤 일을 좀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라고 물으니 할아버지는“이렇게 노인네 말이라도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데요…”라며 쓸쓸히 웃으시는데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전에도 가족사항을 여쭈었으나 독일에서 광부생활을 하신 것 외에는 별로 말씀을 안하셨다. 누가 돌보아 드리는 사람이라도 있느냐고 물으니 역시 조용히 웃으시기만 한다. 


 노인아파트에 사시면서 그동안 혼자 식사를 해드셨는데, 그나마 요즘은 귀찮아서 주로 ‘매식(買食)’을 하신다 하셨다. 이런 분들이 거리에 나가시면 버스는 제대로 서 줄 것인지, 목적지라도 지나치면 어쩌나,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0…토론토의 한인거리를 지나치노라면 한인노인들이 커피점 같은 곳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무슨 낙(樂)과 희망으로 살아가실까. 이민사회는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지만 노인들을 위한 시설은 별로 없고 동족끼리 함께 어울릴 공간도 태부족이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자식을 길러내고 겨우 살만해진 지금, 얼굴엔 주름만 가득하고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다. 한국처럼 무료 전철이라도 타면 어디든 떠날텐데 그것도 아니다. 마땅히 시간 보낼 곳이 없으니 맥도날드에 모여 담소하는게 유일한 소일거리인 노인들… 이들에 대한 노후문제를 동포사회 전체가 심각히 고민해봐야 할 때다.  


 한인노인요양시설을 위해 지난해 350만 달러의 거액을 모금한 동포사회, 이제 한인 노인담당 주장관도 탄생했으니 소중한 결실이 맺어지길 기대한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禹倬)의 ‘탄로가(歎盧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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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풍운아 김종필

 

▲1989년 국회에서 3김씨가 함께 찍은 사진(왼쪽부터, 김종필, 김대중, 김영삼)

 

 

 

 풍운아(風雲兒)의 사전적 의미는 ‘바람과 비를 몰고 다니는 사람’, ‘좋은 기회를 타고 활약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등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풍운아의 일생은 사전적 기술(記述)처럼 순탄하게 승승장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온갖 고난과 역경,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세상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주로 정치적 의미로 쓰이며 좀더 미화시키면 ‘영웅’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한국의 이성계, 정도전, 이순신, 김구, 김옥균, 중국의 모택동과 장개석,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량, 서양의 알렉산더, 나폴레옹, 드골, 갈수록 더 각광받는 체 게바라…      


0…“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남겼다는 말이다. 1997년 5월, 당시 자민련 총재 시절이었다. 


 운정(雲庭) 김종필, 흔히 JP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현대사에 회자될 빼어난 어록(語錄)을 많이 남겼다.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3김’시대를 이끈 주역이었고, 역사적 순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면서 ‘정치9단’으로 불렸다. 9단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고 경지를 뜻한다. 젊어서부터 남다른 재치와 총기로 유명했고, 오랜 정치경험을 통해 한마디로 정곡을 찌를 줄 아는 촌철살인의 능변가(能辯家) 김종필.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 “자의 반, 타의 반 외유”,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 “생을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욕심이 남았을 뿐”,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김종필 어록 중)


 ‘몽니' 등 낯선 단어를 사용해 유행시키는가 하면, 순우리말과 고사성어 등 어휘구사력이 종횡무진으로 뛰어난 그는 특히 수준급의 그림(수채화) 실력을 비롯해 문학, 골프, 피아노, 바둑 등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정치인으로 꼽혔다. 그런 그에게 예인(藝人)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은 JP와 대화를 하던 기자들이 그의 말을 나름대로 유추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말을 운치있게 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여러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JP의 멋진 휘호(揮毫)와 예술에 대한 안목으로 인해 중국언론이나 정가에서 줄곧 호의적인 시선으로 다뤄졌기 때문에 중화권 외교에도 도움이 되었다. 


0…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정변을 일으킬 당시 JP는 예비역 육군 중령으로 정변에 참여했다. 그 후의 이력은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다. 최다선(9선) 국회의원, 최장수(6년 반) 국무총리, 여당 총재… 한국 현대사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 박정희에게 김종필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권력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견제당하기도 한 미묘한 관계이기도 했다.


 풍운의 정치인, 처세술의 달인, 5.16군사쿠데타의 핵심, 유신체제의 부역자, 3당 합당으로 상징되는 권력욕의 화신, DJP 연합으로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주역 등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JP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표현이 바로 ‘영원한 2인자’였다.


 ‘2인자’의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1인자 바로 밑에 있으니 힘이 세다. 특히 권력세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1인자보다 2인자가 오히려 신비감과 카리스마가 가미돼 영향력이 더 커 보일 때가 있다. 1인자는 머지않아 물러갈 처지인 반면, 장차 1인자의 위치에 오를 가능성이 큰 2인자는 1인자보다 더 많은 잠재적 추종세력을 거느릴 수가 있다. 


 그러나 ‘영원한 2인자’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별 힘이 없다는 뜻이며 때로는 인간적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JP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를 누렸으나 정상에는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3김’으로 불린 그는 다른 두 김씨와는 달리 끝내 1인자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1인자는 곧 수명이 다할 것을 걱정하지만 2인자는 마음먹기 따라서는 얼마든지 권세를 연장할 수가 있다. 자신을 낮추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 순탄한 삶을 살 수 있다. JP가 다른 두 김씨에 비해 비단길 같은 정치인생을 걸었던 것은 왕(王)보다는 영의정 수준으로 자신을 낮췄기 때문이다. 2인자 위치 이상은 넘보지 않았기에 비교적 평탄한 권세를 누렸다. 


0…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 JP가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로써 파란만장했던 3김 시대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JP의 예우를 놓고 현 정부는 꽤 고심한 모양이다. 군사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억압한 사람이라는 여론이 많지만 관례에 따라 국민훈장을 추서했다. 다만 대통령의 직접 조문은 없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평가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김종필, 그는 죽어서도 이런저런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듯하다. 나도 젊은 시절엔 그를 미워했지만 나이를 먹으니 애증은 어디로 가고 향수만 남는다. 나와 같은 충청도 출신이라고 친구들은 내가 당연히 JP를 지지하는 줄 알았다. 그와 인터뷰도 몇 번 가졌다. 이제는 그의 노련한 얼굴 모습만 인상에 남아 있다.  


 “미운사람 죽는 걸 확인하고,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있다가 편안히 숨 거두는 사람이 승자다. 대통령 하면 뭐하나. 다 거품같은거지…”, “봉분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국무총리를 지냈고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고 쓴 비석 하나면 족하다”… 선문답 같은 삶을 살다간 JP, 미운 사람 다 보내고 떠났으니 그는 과연 인생의 승자일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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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남자 나이 서른네 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정상회담과 오찬에 이어 단 둘이 산책을 하고 있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의 위정편(爲政篇))


 사람의 나이에 따라 갖춰야 할 품격을 제시한 이 말씀대로 나이에 걸맞게 인품이 형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공자님 같은 성인군자들에게는 해당될지 모르나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무지렁이 중생들에게는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공자님에 따르면, 내 나이 정도면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어야’ 할텐데 나는 그럴 준비가 돼 있질 않다. 그 전에도 그랬다. 나이 50이 넘어도 하늘의 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 지금도 그러한데 하물며 30년 전에는 얼마나 어슬프게 세상을 살았을까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 


0…그런데, 올해 나이 서른 넷의 새파란 ‘청년’이 요즘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세계 최강국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협상 테이블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 언론의 초점이 맞춰진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 그는 공식적으로 1984년 1월8일 출생한 것으로 표기돼있다. 만 34세인 것이다. 올해 72세인 도널드 트럼프(1946 년 6월 14일생) 미국 대통령과는 무려 38살 차이가 난다. 한참 아버지뻘이자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대통령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벌이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어냈다. 이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하나.  


 김정은의 실제 나이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1981년 출생 설부터 1984년설까지 다양하다. 월일은 1월 8일로 모두 같으나 해가 다르다. 이는 북한에서 김정은이 권력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나이를 1982년생으로 고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은 2012년이 '김일성 탄생 100년', '김정일 탄생 70년', '김정은 탄생 30년'으로 일관성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2011년)으로 김정은은 20대 나이에 북한 최고지도자 지위에 오르게 됐다. 그런데 김정은은 당초 권력 후계자가 되기에는 핸디캡이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귀국한 재일조선인 출신 고용희의 둘째 아들인데, 고용희는 ‘유부남’인 김정일의 눈에 들어 정철, 정은 형제와 딸 여정을 낳았지만 생전에 시아버지(김일성)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고모 김경희는 '분별도 없는 아이'라는 이유로 김정은의 후계를 반대했다고 한다.


0…김정은은 65세인 문재인 대통령(1953년 1월 24일생)과는 31살 차이가 난다. 역사적인 4.27남북정상회담 역시 아버지-아들 뻘이 정상회담을 벌인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잇달아 세 차례나 만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65살이다. 서른 네살 젊은이가 최강국 지도자들과 대등한 지위에서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면 그는 확실히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데 성공한 것이 틀림없다. 일본, 러시아 등의 최고 지도자들도 김정은의 환심을 사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지난 6.12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은 ‘광기(狂氣)의 고독한 독재자'에서 ‘노련한 지도자’로 초고속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김정은은 1년 전만 해도 고모부를 처형하고 이복형을 암살했으며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려 국제사회에서 ‘미치광이 로켓맨’으로 불렸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만에 현대 외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미지 쇄신을 이뤄냈다.


 더욱이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취소’와 ‘예정대로’를 오락가락하며 변덕을 부림에도 김정은은 냉정한 태도로 회담 개최를 관철시키면서 노련한 정치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뛰어난 전략가라는 평까지 얻게 됐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결과는 북한의 승리라는 분석이 많다.


 이런 가운데 한국인들은 트럼프보다 김정은을 더 신뢰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물론 김정은의 이미지 변신에 한국,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크게 기여했다는데도 이론(異論)이 없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의 모든 순간은 상호 존중, 민족 단결, 나아가 통일로 연결되는 이미지를 연출해냈다. 특히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고 잠시나마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땅을 밟게 한 장면은 어떠한 정치적 언어도 초월하는 극적인 효과를 거뒀다. 


0…“한 국가의 지도자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바뀔 수 있을까?” 외신의 공통된 평가다. 이는 아마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인간이 조금만 인간다운 행동을 하면 확 달라져 보이는 이치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그것은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역대 최악의 미국 대통령으로 인식되는 트럼프가 이번처럼 무모할 정도로 대범하고 화통하게 행동함으로써 환호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안과 밖은 다르다.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회담을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고 완전한 비핵화 국가를 만들 것처럼 행세하긴 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가 목적이다. 특히 트럼프의 예측불가한 스타일 때문에 협의가 무산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아무튼, 세계 최강국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협상을 끌어가는 서른네 살 젊은이. 나는 과연 그 나이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나 자신도 잊은채 밤낮을 헤맸을 것이다. 사람은 처할 자리를 타고 나는 것일까, 아니면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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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이젠 조성훈을 자유롭게-한인사회에 부담 갖지 않도록

 

 

 

 독자 여러분께 민망한 고백 좀 하겠습니다. 이판사판, 모 아니면 도… 바로 오늘 저녁이면 선거결과가 다 나오는데 내일 아침 지면에 엉뚱한 구문(舊聞)을 낼 수는 없었습니다. 밋밋하게 ‘온주총선 마감…’ 이같이 냈다간 독자들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신문은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특히 우리 신문은 주간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기사는 일주일 후에나 지면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이럴 땐 속이 매우 상합니다). 그래서 제목과 내용을 여러차례 수정하는 고심 끝에 단안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면 내주에 정정기사와 사과광고를 내기로 하고… 예상기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7일 실시된 2018 온주 총선에서 윌로우데일 선거구에 보수당으로 출마한 조성훈(Stan Cho, 40) 후보가 당당히 당선됐다. 첫 동포 2세 온주의원(MPP)이 탄생한 것이다. 스카보로의 조성준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다. 제 42대 온타리오 주의회는 이번 6/7 총선을 통해 1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총 124명의 주의원을 선출한 이번 총선의 특징은 ▶보수당의 압도적 과반 집권 ▶차기 온주총리에 덕 포드 ▶신민당(NDP)의 대약진 ▶자유당의 처절한 몰락으로 요약된다. 캐슬린 윈 자유당 대표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났다…” 


 이 기사는 그야말로 가상 시나리오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틀린 점이 있다면 편집책임자에겐 당연히 문책이 따를 큰 모험이지요. 그런데! 이 예상 기사는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투표 당일 오후에 지면편집을 마치고 그날 저녁 개표방송을 지켜보면서 조마조마했는데, 기사는 하나도 틀린게 없었습니다. 


 그처럼 예상기사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 흐름을 관찰하면서 이번엔 분명히 이런 방향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란 진단이었습니다. 


0…이번 온주총선의 특징은 한마디로 자유당정부의 15년 실정(失政)에 대한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이었습니다. 자유당은 결국 공당(公黨-official party) 지위마저 상실한 채 몰락했습니다. 반면, 보수당은 절대 안정의석을 차지하며 집권하게 돼 있었습니다. 자유당의 대안으로 한때 신민당(NDP)이 부상하기도 했지만 과거 한차례 집권했던 NDP는 당시 완전한 실패를 경험했던 터라 유권자들은 결국 안정 쪽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확실한 대안이 없는 가운데 보수당 후보는 팻말만 꽂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특히 한인사회에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조성준 의원이 재선된 것도 그렇고, 처음으로 동포 2세 주의원이 탄생되는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캐나다 이민사 반세기 만에 마침내 2세 정치인이 탄생하며 한민족의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특히 동포사회 세대교체의 상징적인 계기가 되면서 역사를 새로 쓰는 전환점이 됐습니다. 


 조성훈 후보의 당선은 3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진 결과였습니다. 그를 위해 한인사회 거의 전 동포들이 나서 자기일처럼 도와주었습니다. 원로들을 중심으로 후원회가 결성되고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팻말 꽂는 일에서부터 전화로 지지를 호소하고 홍보전단을 배포하는 등, 일찍이 이런 예가 없었습니다. 전에도 수차례 한인후보자가 나와 도와준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폭넓은 지원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동포사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아울러 (부친 회사의) 막강한 조직력과 재력 등 후광을 업고서도 당선이 안된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조 후보가 2년여 전부터 보수당을 택한 것은 대단히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번은 명백히 보수당의 집권 차례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조 후보의 특출한 역량까지 합쳐져, 정치에 처음 입문한 그가 단번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거센 보수당 바람에 4선 거목도 추풍낙엽이었습니다.


 한편,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한인들이 대략 2,200여명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한인유권자(7,330명)의 30퍼센트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든 한인유권자가 조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가정할 경우 조 후보의 총 득표수 1만7,732 표 가운데 12.4퍼센트를 이바지한 것입니다. 이 숫자는 결코 적은게 아니지만, 한인유권자 중 절반 이상만 나와주셨어도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0…한인사회는 그동안 조성준 의원에게 많은 의지를 해왔습니다. 탈북민 추방저지에서부터 토론토한인회 세금감면 등 조 의원이 동포사회에 이바지해온 일이 참 많습니다. 이제 조 의원의 뒤를 이어 젊고 추진력 강한 신선한 정치인, 조성훈 의원이 탄생했습니다.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조성훈 의원이 착실히 경륜을 쌓으면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차제에 우리 한인사회는 생각을 바꿔야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를 도와준 것은 무슨 대가를 바래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한인사회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도와준 것도 아닙니다. 그가 의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성장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기쁨이요, 든든한 벽이 되어줄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조성훈 의원이 친정 격인 한인사회를 의식하지 말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간접지원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를 한인행사에 자주 부를수록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의회 일도 소홀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할일을 다했으니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어야겠습니다. 그가 한인사회에 진 부채는 서서히, 스스로 알아서 갚아나갈 것입니다. 그 정도의 지각은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의회에서 크게 활약하고 성장할수록 동포사회의 힘과 영향력도 커질 것입니다. 루키 조성훈 의원이 퀸스파크에서 대활약해 중진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도록 합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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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거래는 트럼프 처럼(?)

 

▲트럼프의 자서전 '거래의 기술' 표지. 좌측은 영문판, 우측은 한글 번역판 

 

 

 

 “당신을 몹시 만나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당신이 최근의 담화문에서 드러낸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볼 때, 나는 이번에는 오랫동안 계획해온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이 편지는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당신을 만나기를 몹시 고대한다. 이 중요한 정상회담과 관련해 마음이 바뀌면 주저하지 말고 나에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달라… 세 명의 (미국인) 억류자를 풀어준 것은 아름다운 제스쳐였고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북한이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국제적 이벤트를 벌이는 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에게 보내는 충격적인 공개서한을 발표한다. 이제까지 진행돼온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 미국의 요구대로 움직여준 북한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됐다. 트럼프의 말이 떨어지자 청와대는 속뜻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허둥댄다…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최첨단 시대라는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이 사람의 입과 손놀림에 따라 전 세계가 울고 웃는다.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존중할 점이 조금이라도 있느냐는 문제는 별개로 치고 어쨌든 이 사람에게 무언가 있는 것 아니냐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가 만약 평범한 사인(私人)이었다면 그냥 정신병자 정도로 치부되고 말겠지만, 어쨌든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고 미국의 대통령까지 올랐으니 무언가 있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 나아가 국제사회까지 쥐락펴락하는 미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국제적인 중대사를 마치 개인기업체 운영하듯 손익계산에 따라서만, 즉흥적일 정도로 무모하게 처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한 국가의 운명이 오락가락 한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터인데 게임이나 도박 즐기듯 한다. 트럼프가 속으로 얼마나 치밀한 계산을 하고 말을 뱉는지 모르지만 그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두들겨대는 트윗을 보고 전 세계 언론이 온갖 의미를 부여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지.      

    
0…엄청난 부동산을 사고 팔며 사기행각도 벌이고, 남녀 인종 가리지 않는 막말과 대중선동, 음담패설 등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트럼프. 최근엔 추잡한 성 스캔들과 입막음용 뒷거래, 이를 부인하는 거짓말 등 더 이상 지저분할 수 없는 인간군상에 속한다.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이런 사람에게도 과연 배울 점이 있을까. 세속적 기준에서 볼 때 트럼프는 분명 성공한 인물이다. 그가 1987년에 쓴 자서전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란 책이 요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이 김정은에게 선물로 주면서 “트럼프를 이해하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는 그 책. 
 그래서일까. 작은 ‘로켓맨’ 김정은도 종전과는 확 달라진 모습으로 정상회담을 다시 하자고 트럼프에 제안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와 김정은은 ‘거래의 기술’ 책에서 강조한 비즈니스의 11가지 원칙들을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책의 내용 가운데 협상이나 거래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어떤 경우에도 최후에 빠져나갈 문은 열어둔다는 것이다. 이는 부동산 거래에서 흔히 사용되는 불문율이다. 즉, 말로는 딜(Deal)을 안하겠다고 돌아서지만 협상의 최후 여지는 남겨두는 것이다. 특히 속으론 딜을 받고 싶지만 더 큰 성사를 위해 슬쩍 다른 운을 띄우되 판을 완전히 뒤엎지는 않는다. 


 트럼프는 전격적으로 북한에 정상회담 무산을 전하면서도 판을 완전히 깨지는 않고, 재추진할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이것이 바로 거래나 협상의 기본이 아닐까. 또한 어느땐 극단적인 용어를 서슴지 않다가도 어느땐 부드러운 용어를 사용해 상대방을 누그러뜨린 후 더 큰 것을 받아낸다. 부동산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트럼프의 이런 ‘기술(art)’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밖에 책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크게 생각하라’는 것. 사람들은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일을 성사시킨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규모를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목표를 유연하게 적용하기보다는 더 큰 목표, 더 강한 목표를 내세워야 무언가를 이룩할 수가 있다.  


 다음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또한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히라는 것.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거래를 할 때는 대개 보수적 입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 있다.


 트럼프는 “일단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최소한 대여섯 가지 방법을 동원해 일을 추진한다”고 했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언제나 있고, 이에 대응해 재빨리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이전에 뛰어난 사업가다. 그는 사업가답게 말한다.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그럴듯한 시장조사는 믿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낸다.”


 트럼프는 또 “언론을 이용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일을 성공시키는 마지막 열쇠는 약간의 허세다. 나는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한다”고 강조한다. 시정잡배만도 못한 언행으로 4년 임기를 다 채울지 의심도 들지만 그런 인간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면 한번쯤 참고해볼 법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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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한민족의 자존심을 걸고-조성훈(Stan Cho)을 온주의회로

 

▲조성훈 후보 사인을 들고 가두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인 원로들 

 

 


 최근 난민 구치소에 수감돼있는 어느 한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수년간 불법 체류자로 살아왔는데 어쩌다 당국에 적발돼 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어떻게 도움 좀 줄 수가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불법체류인 것은 분명한데 사정이 여간 딱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분과의  장시간 통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어떻게든 이민당국에 호소해 선처를 바랄 뿐.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길은 바로 정치인이 나서주는 것이란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 여러번 경험해왔다. 법과 논리로 해결이 어려운 일을 풀어줄 가장 빠른 길은 바로 정치인을 통하는 것이다. 그것도 힘 있는 정치인의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인사회는 그동안 조성준 의원(현 온주의원)에게 많은 의지를 해왔다. 탈북주민 추방 저지에서부터 한인회 세금감면 등 조 의원이 동포사회에 이바지해온 일이 참 많다.  


 이제 조 의원의 뒤를 이을 새로운 재목이 나타났다. 젊고 패기 차고 추진력 강한 신선한 정치인, 바로 조성훈(Stan Cho, 40) 윌로우데일 보수당 온주의원 후보다. 조 후보는 1년 전 치열한 경선을 거쳐 지역구 후보가 된 이래 밤낮 없는 표밭 일구기에 나섰고, 이제 그 소중한 결실을 거둘 시점에 서있다.       


 우리는 대체로 정치와 정치인들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어떠한 제도나 정책 입안에 앞서 (유력)정치인을 통하면 빨리 해결이 된다.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조 후보가 주의원이 되어 착실히 경륜을 쌓으면 앞으로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캐나다 한인 이민사 반세기, 진작에 2세 정치인이 나올만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여러 정황상 조성훈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다. 그가 당선되면 이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한민족의 자존심으로 승화될 것이다. 한인사회 세대교체의 계기가 되면서, 역사를 새로 쓰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는 노스욕만의 일도 아니다. 전  한인사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조 후보는 그동안 외롭고 힘든 캠페인을 펼쳐왔다. 때마침 보수당 바람이 불어주긴 했지만 도중에 당수가 바뀌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후로는 주로 개인적 역량과 이미지에 집중해야 했다.이럴 즈음 조성훈을 위해 한인사회 거의 전 동포들이 나서 자기일처럼 도와주었다. 원로들을 중심으로 후원회가 결성되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팻말을 꽂는 일, 전화로 지지를 호소하고 홍보전단을 배포하는 등, 일찍이 이런 예가 없었다. 전에도 수차례 한인 정치 후보자가 나와 도와준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폭넓은 지원은 없었다. 


 이처럼 거의 전 한인동포사회가 나서 전폭적으로 도와주었는데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구겨질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실제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다. 노스욕의 한인 유권자 비율은 9.5 퍼센트 남짓이지만 그 여세가 파급되면 90퍼센트의 효과도 가능하다. 아무리 뜻이 있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이 실제로 투표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각 민족 커뮤니티의 투표율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 한인행사에 주류정치인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정치 참여도가 낮다. 지난해 한인끼리 맞붙은 경선에서는 투표 대상자 8천여명 중 1,100여 명만이 참여했다. 참여 범위가 훨씬 넓었는데도 그랬다(14세 이상 노스욕 거주자는 누구나 가능). 이제 캐나다에서 한인 최대 밀집지역이라는 노스욕에서 정치인 한명 쯤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조 후보의 상대방은 내리 4선에 지명도도 높은 노정객이다. 그러나 조 후보의 정치경력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때묻지 않고 신선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닳아빠진 정치인들은 자기네 실속이나 차릴 궁리나 하지 타성에 젖어 실질적인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조 후보가 주류정계에 진출해야 하는 당위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개인적 역량이 뛰어남이요, 또 하나는 동포사회 측면에서 보아 그러하다. 우선 조 후보는 정치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인데다 특히 대중연설에 뛰어나다. 그가 연설을 하면 청중이 압도되고 분위기가 고조된다. 연설실력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지식이 풍부해도 대중을 설득시킬 언변(言辯)이 모자라면 소용이 없다.  


 조 후보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2세다. 그러나 그에게 민족의식이 없다면 동포사회와 관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민족의식이 투철하며 진심으로 한인들을 위할 인물이다. 부동산으로 성공한 부친(조준상)의 후광도 있지만, 그는 그런 배경에 의지할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이 그러했듯, 그도 부모가 하루종일 일만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는 부모들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녀들을 키워온데 대해 그 은혜를 되돌려 드릴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는 자라면서 커뮤니티 파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한인이 주류사회에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정치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며, 소수민족의 권익은 바로 정치를 통해 이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고교 학생회장, 대학 럭비부 주장을 지내 리더십도 뛰어나다. 영어가 편하지만, 한국말로 소통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그는 진정으로 동포들 권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낼 인물이다. 


 부디 조성훈 후보를 도와 캐나다 한인 역사상 최초의 2세 정치인을 탄생시켜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일주일 후, 6월 7일 저녁(9시 30분~10시경), 조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축배의 잔을 높이 들 것을 기대합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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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동지는 간데 없고-세월따라 달라져가는 오월

 

▲토론토 ‘사월의 꿈’ 합창단이 5.18 기념식에서 ‘오월의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 칭송받는 5월, 마냥 푸르고 아름다워야 할 이 5월이 모국에선 언젠가부터 눈물과 회한의 계절이 되고 말았다. 벌써 38년째, 광주의 그날 참극은 아직도 진상규명이 덜 된 채 갑론을박이 되풀이 되고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만 보아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0…제3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지난 5월 18일(금) 저녁 토론토한인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의 기념식 분위기는 1년 전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참석자 수가 작년보다 두 배 정도 많았다. 참석자들 면면도 많이 넓어졌다. 전에는 특정 진보단체 인사들이 대다수였으나, 올해는 보통 한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가장 달라진 점은 역시 한국정부를 대표해 나와 있는 총영사가 행사에 참석했다는 점이다. 수년 전만 해도 5.18 행사라면 좌파 운동권 인사들의 모임이라며 극도로 경계하던 공관 사람들이 이젠 공식적으로 행사에 참석해 국무총리 기념사를 대독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5.18 민주화운동이 삼일운동이나 8.15 광복절 같은 범국민적 행사로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5.18 토론토 기념식은 한인회와 민주평통이 주관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동포단체장이나 평통위원들 모습은 많지 않았다. 수년 동안 보아온 같은 얼굴이 많았다.        

                          
0…‘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부른 것은 지금부터 31년 전인 1987년 이맘때, 6월 항쟁을 앞두고 전국에 한창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 때였다. 당시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민중항쟁을 맞아 직장생활을 하던 나도 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누비며 소극적이나마 시위대열에 참여했다. 그때 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듣는데, 서사시 풍의 가사와 함께 선율에 비장미(悲壯美)가 돌아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대목에선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임을 위한…’은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으며, 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생 김종률이 계엄군의 폭력진압에 희생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81년 작곡했다. 윤상원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숨졌으며, 박기순은 들불야학 교사로 일하다 희생됐다. 


 이 노래는 82년 음반에 수록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시민단체와 노동.학생단체 집회 등에서 널리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 노래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외국의 운동권에서도 이 노래를 개사해 부를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여기까지 오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군사정권 시절인 80년대에는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일부 보수단체는 노랫말 속 '임'이 북한 김일성을, '새날'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칭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5.18 기념식은 97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정부주관 행사로 치러졌고, 행사의 마지막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쳤다. 이때부터 2008년까지는 별 논란 없이 그저 운동권 노래 정도로 간주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5.18 행사에서 이 노래를 ‘제창’ 대신 ‘합창’으로 바꿔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이 노래에 대한 퇴출 논란이 거세졌고 그 중심에서 국가보훈처가 혼란을 부채질했다. 보훈처는 이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노래를 만들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정부 행사에서 이 노래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가 거센 반대여론에 부딪치는 등 갈팡질팡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마침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 노래를 제창으로 부를 것을 지시해 작년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임을…’이 떳떳이 불리게 됐다. 노래 하나 갖고 이처럼 곡절을 겪은 예는 없을 것이다.


0…일반적으로 제창(齊唱)은 애국가처럼 참석자 모두가 (의무적으로) 부르는 것이고, 합창(合唱)은 부르고 싶은 사람만 부르면 된다. 행사장에서 제창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 노래가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니라 모든 참석자들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 노래를 통해 행사의 뜻을 되새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제창이라 하더라도 강제성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즉, 행사 참석자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법적 처벌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논란은 다분히 감정적 측면이 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는 종북과는 상관이 없으며 출처 또한 종북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노래는 지난해 대통령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기존의 민주화운동 세대는 물론, 노래 자체가 생소했던 20~ 30대에게까지 전파되면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노래가 되었다. 


 이젠 변하는 시대와 함께 우리들의 사고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 날이 올 때까지…’ 나의 카톡 화면에 적힌 문자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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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나는 멀티태스커(multitasker)

 

 “요즘 선거운동 하느라 고생이 많겠습니다.” 주변에서 자주 듣는 얘기다. 온주 총선에 출마한 조성훈(Stan Cho) 후보를 내가 전담해서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하시는 말씀들이다. 


 많은 분들은 내가 조 후보 선거캠프에 전속돼 일하는 줄 아시는 것 같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 조 후보를 짬짬이 도와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본업(本業)은 신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조 후보를 전력투구 도와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특히 요즘 가장 신속한 대중의사전달 수단인 SNS를 통해 수시로 안내말씀이나 선거정보를 올리다 보니 내가 하루종일 이 일에만 매달려 있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데스크 잡으로, 온종일 인터넷과 기사 앞에 앉아 있으니 뉴스 속보를 접하게 되고, 그것들을 요약해 한인사이트에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도 해본 사람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른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에 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즉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익숙하다. 이같은 버릇은 30년 이상 종사하고 있는 언론생활의 영향이 무엇보다 크다. 예전엔 한 손에 펜을 들어 기사를 쓰고, 또 한 손으론 전화를 하고, 재떨이에 담배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커피를 마시며 옆자리 동료와 얘기도 하고… 그야말로 뭘하는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여러 동작을 동시에 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이런 습성이 몸에 밴 나는 지금도 수십 명의 필자들께 원고수신 확인 및 감사 메일을 쓰고, 교정을 보면서 뉴스도 체크하고 전화를 받고 휴대폰도 들여다본다. 특히 요즘은 온주 총선 관련 소식도 수시로 업데이트해 SNS에 올린다. 아마 멀티태스크에 약하다면 스트레스가 쌓여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동시다중 동작에 약하면 일처리 속도도 늦고 매번 편집마감 시간에 쫓겨 허둥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업무 스피드만큼은 누구 못지 않아 일처리가 빠르다. 그래서 누군가 일을 갖고  꾸무럭거리면 나 스스로 견디지를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처리가 빠른 대신에 치밀하고 심사숙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실수와 일의 내용에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나 스스로도 인정한다. 하루종일 인터넷과 SNS, 전화통화, 교정작업 등을 하고 퇴근하면 온몸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래서 저녁엔 무조건 쉬고 싶은 생각 뿐이다. 


0…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현대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엔 많은 문제가 따른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의 부정적인 영향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몇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주의력과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와 관련해 나는 가끔 엉뚱한 실수를 범한다. 대화 도중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선배님이 외국여행 다녀오신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리가 조용해지자 나는 말했다. “선배님, 최근에 외국여행 좀 다녀오셨나요?” 그러자 아내가 내 옆구리를 꼬집으며 눈치를 주었다. “지금 그 말씀 하고 계신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둘째, 창의력이 저하된다. 멀티태스킹 도중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만큼 뇌가 쉴 틈이 없고 따라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어려워진다. 


 셋째, 실수를 유발하기 쉽다.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흑백논리에 입각해 판단을 내리고,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빨리빨리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넷째, 뇌가 항상 긴장상태에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빠지기 쉽고, 단기 기억능력도 떨어진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내는 게 어려워지는데 멀티태스킹은 단기간 기억력에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


 다섯째, 작업속도도 저하된다. 연구에 따르면,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운전하는 경우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운전했을 때를 비교하면 후자 쪽이 훨씬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뇌는 한 가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작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산성도 떨어진다. 결국, 실제로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0…멀티태스킹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쉽게 피로해지고 주의력 결핍성향이 나타난다. 이럴 땐 직장과 일에서 벗어나 휴가를 떠나거나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일을 할 때는 한번에 하나씩 집중해 처리하고, 하루에 30분 정도는 사유와 명상의 시간을 갖는 등 자신이 하고 있는 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스스로 멀티태스킹에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이 나의 정신건강과 일의 능률, 생산성 향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봐야겠다. 멀티태스커에게서는 흔히 성급함, 초조, 비능률 등의 측면이 나타나기 쉬운데 내가 바로 그런 성향을 갖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주말엔 가급적 메일도 열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러면 왠지 불안하고 고립된 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멀티태스킹 후유증 아닐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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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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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내 마음의 콤플렉스-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

 

 우리는 흔히 콤플렉스라고 하면 열등의식을 일컫는 듯 하지만, 사실은 우월콤플렉스와 열등콤플렉스로 나눌 수 있다. 요즘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가진 자들의 ‘갑질’은 전형적인 우월콤플렉스가 빚어낸 행태다. 그런데 <콤플렉스는 나의 힘>(저자 정승아 교수, 2010)에 따르면, 이 빗나간 우월감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열등의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우월감이 전면으로 나타나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거만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뒤에 열등감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무언가 열등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기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반면, 열등감이 전면에 나타나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위축돼 있는데, 사실 그 뒷면에는 우월감이 숨어 있다. 왜냐하면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열등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 앞에선 왠지 위축되고 움츠러드는 반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선 괜히 으스대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이는 우리같은 이민자들이 늘상 겪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민족 앞에선 어깨가 당당해지는 반면, 소위 주류사회라고 여겨지는 사람들 앞에선 괜스레 기가 죽는다. 입이 있으나 말을 못하고 귀가 있으나 알아듣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그런 마음 속 콤플렉스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스스로를 내려놓고 인격을 수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그렇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누구를 상대해도 긴장되지 않고 마음이 느긋해지는데,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위축되고 못난 사람을 만나면 우쭐해지는 것이다. 


 그럼, 요즘 말썽 많은 대한항공 오너 일가처럼 회사직원들을 향해 온갖 갑질을 해대는 사람들은 대체 마음 속에 무슨 콤플렉스가 그리 많아 선대(先代) 창업주가 피땀 흘려 이루어 놓은 기업을 그처럼 욕되게 하는 것일까. 


0…인천에서 직물 도매상을 하는 부모의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난 조중훈(1920~2002)은 휘문고보를 중퇴하고 국비교육기관인 경남 진해의 해원양성소에 진학, 기관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20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2등기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본 화물선을 타기도 했다. 1942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 효제동에 목탄차 엔진을 수리하는 공업사를 차렸다. 마모된 트럭엔진을 수리하는 회사였다.


 그는 해방되던 해 공업사를 정리하고 그동안 저축한 돈을 모아 인천에 '한진상사'를 연다. 처음엔  트럭 한대 뿐이었으나 창업 2년 만에 화물자동차 10대를 보유하게 된다.

이어 정부로부터 경기도 일원의 화물자동차 운송사업면허를 받고 창업 5년째 되던 해 종업원 40명, 트럭 30대, 화물운반선 10척을 보유한 운송전문회사로 성장한다. 1957년 미군과 단독 수송계약을 체결하고, 이후 회사는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한국의 육해공(陸海空) 수송재벌 한진의 초기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조중훈은 부지런했고, 사업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6•25 전쟁이 터지자 한진의 화물자동차 15대가 군수물자로 차출돼 파산에 이르렀지만 그에겐 억척과 부지런함이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버리는 폐(廢)트럭을 얻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기업가적 재능과 성실함을 눈여겨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국영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강권했다. 적자투성이 공기업을 강제로 떠넘긴 것이다. 세간에선 이를 정경유착 특혜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파산 직전의 기업을 조중훈이 인수해 살려내고 세계적인 민간항공기업으로 키운 것이 사실이다.


 조중훈은 대한항공에 닥친 많은 사고를 수습하면서 위기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사업을 일으켰다. 대한항공은 사고를 겪으며 세계적 항공사가 된 것이다. 생전 조중훈 회장은 방대한 독서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각에선 이를 조중훈의 ‘중퇴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조중훈은 기업 키우기와 ‘사람’ 키우기를 함께 중요한 사업으로 인식했다. 그는 국가관도 확고했다. 한진(韓進)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란 뜻이 담겨 있다. 사업을 통해 민족의 부를 일궈보겠다는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정석(靜石) 조중훈의 경영철학은 ‘사업은 예술이다'였다.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그는 “예술가의 혼과 철학이 담긴 창작품은 수천 년이 지나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듯, 경영자의 독창적 경륜을 바탕으로 발전한 기업은 오랫동안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기업가도 예술가의 철학과 노력으로 사업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0…조중훈은 99년 대한항공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장남 조양호를 그룹 회장에 낙점했으며 2002년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살아생전에 각종 탈세와 자산해외유출, 계열사 부당 지원, 변칙 증여 등 여러 불명예를 안고는 있지만 조중훈이 땀흘려 이룩한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란 사실은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선대 창업주가 어렵사리 일구어놓은 기업을 아무 고생 모르고 버르장머리 없이 자란 2, 3세 후손들이 망쳐놓고 있다. 평범한 이들이 피눈물 나는 경쟁을 뚫고 겨우 오를까 말까 하는  자리를 이들은 단지 창업주의 손자손녀라는 이유만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그러니 이들이 뭍한 흙수저들의 애환을 알 리 없다. 


 이는 대한항공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 재벌그룹 후손들의 갑질행태가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란 그들에게도 무언가 콤플렉스가 있는 것일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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