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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아니 벌써>로 지난 ‘시간’ 엿보기
Hwanghyunsoo

 

 어느 이민자가 이웃에서 초청한 파티에 참석했는데, 영어를 잘하지 못해 내내 불편했다. 어색하기도 하고 지루해서 집에 가고 싶어 ‘지금이 몇 시죠?’하며 옆 사람에게 물었다. “익스큐즈미, 왙 이즈 타임(What is time)?” 그랬더니, 그가 웃으며 “시간이 뭐냐고?. 저는 물리학자인네, 그건 철학자에게 물어보셔야죠?”했다고 한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에 참여한 패널이 주제의 무거움을 토로하며 한 말이다.

 많은 이들이 코비드19 때문에 어려움도 많이 겪고 있지만, 반면에 자신을 돌아보면서 깨닫게 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산울림 밴드의 김창완도 그랬던 것인지? ‘하루를 열차 시간표처럼 쪼개 쓴다’는 그가 지난해 11월, 새 음반을 발표했다. ‘시간의 문을 열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음반은 김창완이 37년 만에 낸 솔로 앨범이다. “그동안 틈틈이 음악 작업은 계속해 왔고 불씨는 태우고 있었는데, 발심(發心)하는데 무려 37년이 걸렸다”라고 한다.

그는 친동생인 김창훈, 김창익과 1977년에 산울림을 결성해 <아니 벌써>로 데뷔했다. 그 뒤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산 할아버지> <개구쟁이> <어머니와 고등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2008년 막내 동생이 캐나다에서 사고로 떠난 뒤, 산울림 밴드는 해체되고 가수보다 배우나 디제이로의 활동을 많이 한다.

배우로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만 70편이 넘고, 20년이 넘도록 SBS 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디제이를 하고 있다. 물론 다시 결성한 김창완 밴드와 같이 여러 곡들도 발표했지만, 혼자 앨범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가 새 앨범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김창완은 살며 느꼈던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기록하려 했다. 물리학자나 철학자가 설명하기 어려운 답을 노래로 풀었다. 그의 <시간>이라는 곡에 속 마음이 잘 녹아 있다.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아니야/ 앞으로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있기도 한단다// 사랑을 위해서 사랑할 필요는 없어/ 그저 용감하게 발걸음을 떼기만 하면 // 잊지 마라 시간이 거꾸로 간다 해도/ 그렇게 후회해도/ 사랑했던 순간이 보석이라는 것을…”

 

이 노래는 기타 한 대에 반도네온(아코디언 비슷한 악기) 연주를 얹어 내레이션과 노래로 만든 곡이다. 말과 음률의 경계를 허물은 탓에 애초부터 크게 히트 칠 욕심으로 만든 곡은 아닌 듯하다. 5분이 넘는 시간 중에 3분 정도가 기도문 같은 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방송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고, 공연장이나 음원으로 들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듣고 있으면 삶의 순간을 책갈피처럼 나눈 느낌을 받고, 그의 노래가 늘 그렇듯 참 특이하고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노래에서 이때까지 들어본 적 없는 김창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해 그는 훌륭한 보컬리스트는 아니지만, 깔끔한 음색을 가졌다. “시간은 모든 것에 무관심했지만 추억을 부스러기로 남겼지”라는 지친 노인의 저음이다.

품격도 근엄도 없는, 그저 주름이 있는 예순여섯의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둥근 안경과 웃는 표정 없이 한결같은 부끄러움으로 이야기하지만, 헛되이 낭비한 세월의 모습이 아닌, 진솔함이 묻어 있다. ‘음악이란 인생을 담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김창완의 <시간>은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을 그린 것이다.

노래는 상상 속에서 이때까지 느꼈던 감각을 동원해 그 시대를 여행할 수 있다. “1977년에 당신은 무슨 일을 했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없지만,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나왔을 때를 묻는다면 잡다한 기억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 그때 나는 제대를 해 복학을 했고, 절친인 임희택과 배낭 하나 짊어지고 부여 낙화암과 남해 상주해수욕장을 여행했다.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렸다. 아마 그 시외버스 안에서는 <아니 벌써>가 흘러나오고 있었겠지.

 

 노래는 잊혔던 기억 창고를 열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노래는 따로 시간을 투자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삶의 배경 속에 흐른다. 내가 살아왔던 흔적 속에 묻어 있다가 그때의 노래를 들으면 숨어 있는 추억 부스러기를 찾아내는 듯하다. 마치, 김 양식장의 그물을 건져 올리면 해초가 얽혀 나오듯 자연스레 떠오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에 옛 노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때를 대표하는 명곡들은 잊히지 않는다.

산울림 삼 형제의 록밴드가 <산 할아버지>라는 동요를 발표한 시절, 전두환이 대통령에 오르고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된다. 한국 프로 야구가 출범한다. <산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야간 통행금지’도 ‘프로 야구 개막’도 난 기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김창완의 <시간> 속에서 나의 시간도 찾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형제들 없이 혼자 노래하는 쓸쓸한 김창완의 모습 속에서 노인이 되어 버린 나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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