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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굳이 먼 데를 기웃거리지 마라
Hwanghyunsoo

 

 몇 주 전부터 식탁에 앉아 밥 먹을 때면 초파리가 날아다녔다. 처음에는 한 두 마리가 보이더니 며칠 전부터는 음식만 차려 놓으면 떼지어서 주인보다 먼저 맛을 본다.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그걸 또 못 참아서 양손으로 손뼉 쳐 잡기도 하고 앉아 있는 놈을 살며시 검지로 누르기도 하는데 워낙 빨라 좀처럼 잡을 수 없다.

 초파리의 이동을 눈여겨보니, 지난 겨울에 파 두 단을 심어 놓은 화분에서 이착륙을 하느라 바쁘다. 화분에다 알을 깐 것이다. 그래서 아예 그 화분을 밖으로 내놨는데도 초파리들은 계속 줄지 않았다. 파 심어 놓은 화분 옆, 알로에 화분 두 개도 의심스러워 밖에 내놓았지만, 초파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내친김에 화분 옆 환기통도 테이프로 막고, 조금 떨어져 있던 제라늄 화분도 내놨다. 그리고 이것저것 찾아보니, “화분 위 흙을 가는 모래로 막아 주면 초파리들이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해서 관상용 모래를 좀 사다가 남은 화분들을 덮어주었다. 그제서야 티끌같은 놈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보람 뒤에는 밤 사이 추위를 이기지 못했던 알로에와 제라늄의 장렬한 희생이 있었다.

 그래도 초파리는 좀 낫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해 나타나지 않지만 조금만 있으면 모기들 차례다. 한국의 모기들은 물리고 난 뒤 근지러워서 알게 되지만, 이곳 토론토 모기들은 힘이 좋은지 물리는 순간부터 무척 따갑다. 그래서 늦은 봄부터 가을 초까지 야외에서는 모기를 조심해야 한다. 트레킹을 하다가 조금만 길을 벗어나 숲이나 잡초 사이를 지나려면 모기 밥이 되는 걸 각오해야 한다.

 며칠 전 책장에서 다산 정약용의 책을 우연히 찾았다. 10여 년 전에 한국 갔다가 오는 길에 사왔는데 앞에 몇 줄 읽고 접어 둔 것이다. 이번에 찾아 반가운 마음에 620여 쪽을 사흘에 나누어 다 읽었다. ‘왜 진작 보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내용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정민 교수가 쓴 <다산선생 지식 경영법>이다. 쉽게 말해 다산의 공부법을 정리한 것이다. 다산은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동안 수백 권의 저술을 남겼는데, 한 사람이 베껴 쓰는 데만도 10년이 걸릴 정도의 작업을 그 척박한 작업 환경 속에서 해냈다.

 다산도 모기를 무척 싫어했다. ‘모기를 증오한다(증문·憎蚊)’는 글까지 남길 정도였다. 귀향 가 있던 강진에서 1804년(43세) 여름에 지은 것인데, 모기를 맹호나 뱀보다 무서운 존재로 묘사했다.

“사나운 호랑이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 골며 잠잘 수 있다. 구렁이 한 마리 처마 끝에 걸려 있어도 그저 누워서 똬리 트는 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기 한 놈 앵앵대는 소리 귀에 들리면, 나는 기겁하고 만다. 오장이 졸아붙고 간담이 서늘해진다. 모기 너는 주둥이를 박아서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어이하여 독을 쏘아 뼛속까지 스며들게 하느냐. 삼베 이불 꼭 덮고서 이마만 겨우 내놓아도 잠깐 만에 울퉁불퉁 부처 머리 같아진다.”

 모기들의 횡포에 속수무책 시달리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의 처지를 답답해했다. 다산은 부패한 세상에 분노하고, 자신의 큰 뜻을 펴지 못한 절망을 시문으로 달랬다.

 1994년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기행문이 발표되고, 인문 도서 최초로 백만 부를 돌파하며 남도 답사 열풍을 몰고 왔다. 나도 그 유행 따라서 강진 다산초당에 콧바람 쐬러 간 적이 있다. 그때는 다산에 대해 그리 관심도 없고 그저 조선의 실학자 정도로 알고 있을 때였다. 강진 읍내에서 다산 초산까지 걸어서 올라갔는데, 당시만 해도 여기가 다산초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팻말도 없고 진입로도 찾기 어려웠다. 산 깊은 곳에 위치한 다산초당은 가는 길은 등산로였다. 입구에서 10여분 정도 올라 가면 있었는데, 정비된 길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길이었고 빽빽한 동백나무 숲으로 둘러 싸여 있어 들어서자마자 깊은 숲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초가을이었지만, 올라가는 동안 사람을 마주치지 않다 보니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졌고 거친 숨을 쉴 정도로 힘이 들었다. 다산초당은 기와집 두 채였는데, 원래는 초가집이었던 것을 복원할 때 기와로 지은 것이라 했다. 외딴곳이라 엉성한 관리로 방안에 곳곳에 흙 먼지며 나뭇잎들이 있을 정도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는 “네모난 연못, 채마밭, 개울에서 물을 끌어와 작은 폭포를 만들고, 돌을 쌓아 동그란 섬을 만들었다”고 정원을 멋있게 표현했는데, 내 눈에는 그저 귀향 온 사람이 자취 생활한 흔적으로만 보여 좀 실망했다.

 

 이번에 다산의 책을 읽다 보니, 당시 내가 얼마나 눈이 어두웠는지를 깨달았다. 원래 초당은 말 그대로 초가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을 뿐인 초라한 공간이었다. 다산이 이 곳으로 옮겨온 뒤에 초당은 점점 환한 공간으로 바뀐다. 먼저 비탈을 깎아 아홉 층으로 돌계단을 쌓고, 거기에 채마밭을 만들었다. 층마다 씨앗을 구분해서 뿌렸다. 무와 부추, 늦 파와 올 배추, 쑥갓과 가지를 심었다. 아욱, 겨자, 상, 토란 등도 심었다. 시늉만 낸 작은 연못도 넓게 팠다. 둘레에 있던 떡갈나무와 싸리나무는 베어내고 대신 단풍나무와 느릅나무를 심었다.  대통을 이어 샘물을 끌어들였다. 새끼 물고기도 몇 되 풀어놓았다. 올챙이도 거기서 자랐다. 울타리가 터진 곳은 대나무로 채우고, 양편 언덕엔 버드나무를 심었다. 백련사 스님이 연뿌리를 보내왔다. 당귀, 작약, 부양, 수구화, 모란이 여기저기서 돋아났다. 파초를 구해 심었다. 포도덩굴은 울타리를 타고 올랐다. 바닷가에서 온갖 기이한 모양의 괴석을 주워 마당 곳곳에 꾸몄다. 이렇게 해서 초당은 온전히 다산의 체취가 스민 공간으로 거듭났다. 초파리와 모기 같은 벌레들에게도 훌륭한 정원이었다. 

 다산은 말한다. 일상의 공간에 마음을 쏟아라. 굳이 먼데를 기웃거리지 마라. 내가 사는 공간에 정성을 쏟아 그곳에서 일상의 기쁨을 만끽하라. 몸은 비록 티끌 세상에 묶여 있어도 마음은 훨훨 자유로운 경계 속에 노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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