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백수 처럼 자리만 보전하고 있다
하릴없는 건달 처럼 먹고 놀기를 몇년 째
이제 식솔들 볼 면목도 없거니와
전에 없던 불안감이 차츰 엄습해오는 거라
헐값으로 중고시장에 넘기지 않을까
전화벨 소리에 쿵쿵 심장이 두근거린다
종일 입 닫고 무겁게 앉아 있다
거실 구석에 처박힌 위기감
내 몸 쓰다듬던 손길 뚝 끊어지고
건반을 두들기던 딸도 훌쩍 집 떠나니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몸
오선지 위로 뛰어 다니던 음계마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글쪼글 지쳐 있다
피아노는 늙었다
우두커니 어둠을 바라보는 게 생이라면
건반과 건반 사이
연주 뒤편의 아다지오(adagio) 의 배역
백수는 일단 희소성에 밀린다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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