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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실패하였나(12)-거꾸로 간 조선 후기
chonhs

 

 (지난 791호에 이어)
경제적으로는 농업의 경우 볍씨를 흩뿌리던 모종방법이 모내기, 퇴비사용, 산지개간, 이모작 등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수공업, 광업도 발전하고 있었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18세기에는 경기 서울 일대의 명문가가 권력을 장악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소수 가문에 권력이 집중, 이들의 탐욕적인 국정운영이 19세기를 민란의 시대로 만들었다.
 양반이 나라를 망쳤다


 조선 농민의 대부분은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땅 주인에게 겨우 몇 배미의 땅 조각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인이었다. 자그마한 땅 조각을 갖고 있더라도 조만간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기 일수였다.


흔히 말하는 대로 찢어지게 가난하여, 하루하루 연명하는, 말 그대로 고단한 나날이었다. 22대 임금 정조 당시 면천군수 박지원의 글을 보자.


5인 가족, 소 한 마리, 논밭 50마지기를 소유한 어느 소작인의 한해살이: 그의 평균 년 생산은 497두. 우선 세금으로 지대250두, 전세 72두를 납입하고, 내년 농사 종자로 49두를 떼고 나면, 나머지가 5인 가족 1년 생활용이다. 곡식이 돈이었던 시절, 여기서 의복, 소금 등 생활용품을 구입하고 나면 겨우 입에 풀칠이 가능한데, 흉년이 들거나 빌린 곡식이 있거나 집에 우환이라도 생기면 영락없이 적자다. 빠듯한 생활에 세금이 밀리고 불행히도 가혹한 수령을 만나면 밀린 세금 때문에 주기적으로 곤장을 맞게 된다(하멜 표류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고려 권문세족에 몰려있는 농장을 몰수, 농민에게 분배하는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니 조선 왕조 설립시 설정된 좋은 제도는 어디 가고, 국가의 노골적 착취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유지된다.


 조선초기(15-16세기), 개혁정책의 추진으로 제반 제도가 정비되고 정치적 안정, 문화융성을 이루었으나(태조-세종-성종), 중기(16세기, 명종) 양반의 과전이 세습되는 등 경제 체제가 해이해지기 시작하면서 국정이 문란해지고, 임진, 병자호란을 겪으며 나라가 꺼꾸로 가더니, 19세기에 이르러 세도정치가 들어선다.

 

정상국가를 받치는 중요한 축인 세금, 교육, 사회 기강이 조선 후기 어떠했는지 보자.


과거제도의 몰락


중국 명나라에서 활발했던 과거제도는 고려 때부터 실시됐다. 옛날의 학자는 벼슬을 구하고자 학문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학문을 이루면 남들이 천거하여 관직에 등용되었다(음서). 


후에 조선의 모든 관리는 과거를 통해 등용되었다(음서도 얼마간 혼용되었고, 하급 관리에는 과거급제가 안 되도 성균관 학생이면 임용되기도 했다)


 가. 양반 되기


돈 있는 집안 자제는 어린 나이에(6-7세) 서당에 입학, 천자문, 사서삼경 등 기초한학을 배우고(초등과정), 15-16세에 향교에 입학한다(중등과정). 향교는 정부에서 수령을 파견하는 읍이면 모두 설립했다. 초기에는 중앙에서 교관이 파견되기도 했으나, 임란 후 지방 양반이 훈장(교관)이 되었다.


유교의 주요내용인 소학, 대학, 논어, 주역, 춘추 등을 마치면 생원, 진사시를 치르고, 최고 학부인 성균관에 입학한다. 여기에서 학문을 갈고 닦아 문과에 응시하는데, 과거는 3년마다 33명을(문과) 뽑았다. (기타 무과 28명, 잡과인 의관, 역관 등).


응시자는 6만 명 수준으로 2000대 1 정도의 경쟁률 이었다. 합격자는 평균연령이 35세라 하니, 30년을 공부한 것이다. 당연히 낙방자가 양산 돼 그 시절에도 시험공부만 하다가 늙어버리는 ‘길 떠나는 나그네’인 고시낭인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은 학생시절부터 군역과 세금이 면제되니, 이런 특전으로 서당에는 학동이 모자라는 일은 없었다 한다. 


과거제도는 어려서부터 근로나 백성의 의무를 모르는 백성을 길러냈다. 나이 들고 급제 못하면 결국 폐인이 되거나, 글을 아는 고로 지방의 일자리를 얻게 되는데(향리), 조선의 봉급체계가 상후하박이 심하여 말단 직에는 봉급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결국 생계형 도적이 된다. 그래서 조선 말기 교육기관은 도적학교가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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