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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예수님의 기적-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치시다(상)
daekim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까? 자기이니까? 그의 부모이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며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하니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했다. 그들이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요 9:1-12)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여섯 번째 기적은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쳐주신 것이다. 공관복음에는 예수께서 눈을 뜨게 해주신 여러 명의 소경들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그들 중 모태로부터 눈이 멀어 세상에 나온 사람은 없다. 구약에는 소경이 보게 되었다는 기록조차 없다. 요한복음에만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주신 기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빛 되신 예수님 앞에 나오는 이들은 어둠 속에서 살 필요가 없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예수님이 메시아 이심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말씀하셨으며, 메시아의 사명 중 하나가 “눈 먼 자가 다시 보게 하는 것”(사 29:18, 35:5, 42:7)이라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기적을 행하신 때와 장소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요한복음이 기록된 순서로 보아 초막절이 끝난 후에 일어난 일이라 말하는 이도 있지만 추측에 불과하다. 장소도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로부터는 어디라 단정하기 힘들다.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보았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누구의 죄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습니까?”라 묻는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인간에게 찾아오는 고난이나 재앙이나 병마는 죄의 대가라 믿었다. 인간이 수고의 땀을 흘리고 고통을 당하며 살게 된 것이 죄 범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축출당한 후부터다. 그러기에 동방의 의인 욥이 열이나 되는 아들과 딸과 모든 재산을 일시에 잃어버리고 기와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고 있을 때 그를 찾아온 세 친구들은 욥에게 닥친 재앙은 그가 범한 은밀한 죄 때문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우리가 당하는 불운이나 고난은 반드시 우리가 범한 죄 때문이라 명시된 곳은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누구든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것은 그의 죄 때문이라 여겼다.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경우엔 문제가 달랐다. 태아가 모태에서 죄를 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이 그의 잘못입니까? 부모의 죄 탓입니까?”라 물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답변은 그들이 예측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의 잘못도 부모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은 반드시 죄의 결과만은 아니며, 사람들은 각기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평가되며, 그에 합당한 상벌을 받게 된다고 가르쳐주신 것이다. 


기대하던 답변을 듣지 못하고 의아해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그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까닭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들려주신다. 비록 맹인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은 그로 하여금 광명한 세상을 보게 할 것이란 의미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소경이 보게 되는 것은 인간에겐 믿기 힘든 ‘지적’이지만 하나님에겐 단순한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계속하여 예수님은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낼 ‘일’ 즉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시다. 그가 소경을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 그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며,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신 말씀이시기도 하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그들도 주어진 하나님의 일을 늦기 전에 충실하게 할 것을 분부하는 말씀도 된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각기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사명을 지니고 세상에 보내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밤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일을 하라면서 예수께서 “내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하신 까닭은 ‘세상의 빛’이신 그가 계실 때 세상의 어둠을 밝히며, 세상 악을 정화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위함이시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은 침으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 하신다. 많은 경우 말씀으로 권능을 행사하시는 예수님이 이 같은 원시적인 방법을 택하신 까닭은 옛날 사람들은 침에 병을 치유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시기 위해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법을 사용하시는 예수께서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소경이 그를 믿을 수 있도록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주신 것이다. 


소경이 눈을 씻으러 간 실로암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인공연못이다. 이 연못은 히스기아 왕이 땅 속으로 바위를 500미터나 뚫어 수로를 만들어 성 밖 ‘기혼 샘’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여 저장한 연못으로 암반수로를 통해 물이 보내졌다는 의미의 ‘실로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소경을 그 곳에 보내 눈을 씻게 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을 널리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경이 실로암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오자 사람들의 놀라움은 컸다. 그러나 그들은 소경이 보게 된 엄연한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성과 논리가 인정할 수 없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인간의 근성 때문이다. 하지만 눈을 뜨게 된 소경이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설명하자 일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된다. 


걸인이었던 소경이 예수라는 사람에 의해 눈을 뜨게 된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간 것이다.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놀랍고 신기한 기적을 종교계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며 설명하는지 알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바리새인들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안식일을 범한 죄인으로 낙인 찍으려 한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한 날이 안식일인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도 그 날이 안식일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예수님을 정죄하려 했고, 그 때부터 예수님을 향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그들이다.


그러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준 소경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이 기회에 예수님이 안식일을 안 지키는 이단자로 몰아붙이려 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정한 안식일 준수 세칙은 많기만 하다. 예수님이 그것들 중 두 가지를 어겼다는 것이 그들의 결정이었다. 우선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른 것이 ‘안식일에 일한 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안식일에는 생명에 위협을 받지 않으면 어떤 환자든지 그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이 제정한 세칙 중의 하나였다. 


그 세칙을 지키기 위하여 유대인들은 치통에 시달리면서도 안식일에는 식초나 소금을 입에 넣어 통증을 달랠 수도 없었고, 손이나 발 뼈가 이골 되어도 손발을 찬물에 담그지도 못했다. 문제된 소경의 경우 보지 못한다고 죽은 것도 아닌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의 눈을 뜨게 했으니 바리새인들의 견지에서 볼 때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보일 반응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은 어째서 안식일에 소경을 치유해 주셨을까? 여기에 대해 칼빈은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을 것이라 말한다. 안식일에 소경이 눈을 뜨게 되면 바리새인들은 즉시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주장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예수님에 의해 소경이 보게 된 소식이 순식간에 팔레스타인 전역에 펴져나가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널리 들어날 것이기에 예수께서 그리 하셨다는 것이 칼빈의 견해인 것이다.


과연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는지 아니면 선한 일이나 자비를 베푸는 행위는 안식일에도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근본 생각 때문인지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만이 알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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