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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예수님의 기적-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하)
daekim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며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하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쌓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하시니라.(요 11:33-44)

 

 

 마리아와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심령에 비통함을 여기신 것은 그의 마음에 분노가 솟아난 까닭이다. “심령이 비통해 진다.”의 근본적인 의미는 분노가 일어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째서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그들을 보면서 분노하셨으며, 그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을까? 오빠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흘린 눈물은 진정한 슬픔과 아픔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문상객들의 눈물은 습관적이고 가식적인 눈물이었다. 오빠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조차 상실한 두 자매를 위로한다며 형식적인 울음을 우는 유대인들의 위선이 예수님의 마음에 슬픔을 넘어 분노의 감정으로 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분노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서 나사로를 빼앗아 간 “죽음”으로 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타당하다고 본다. 마르다와 마리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불안과 공포 속에 물아 넣는 죽음의 횡포를 보며 예수께서 분개하신 것이라 생각되는 까닭이다. 예수님은 아프고 쓰라린 고통의 가시밭길을 걸으시면서도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울지 않으셨다. 죄악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 예수께서 어째서 나사로란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우셨을까? 그것도 그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려 하시면서도 말이다.


 숨진 나사로를 위해 흘린 예수님의 눈물은 그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분”이심을 나타냄과 동시에 연약한 인간들을 향한 구세주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의 표현이시다. 강한 자와 있는 자를 두려워하되 약한 자와 없는 자를 멸시하고 박대하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그러기에 미천하고 낮은 사람들은 그들의 슬픔과 괴로움이 외면당하는 쓰라림과 억울함이 그들의 운명인 줄 알고 살아간다. 하지만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한 시골 청년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 머리 숙이고 눈물 흘리심으로 예수님은 온갖 괴로움과 역경 속에서 힘겹게 인생행로를 걸어가는 이들의 영원한 친구임을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우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그가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던가?”라 말한다. 이것은 비웃음의 말 아닌 “나사로를 살리실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죽게 내버려 두셨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때까지도 슬픔과 분노로 비통해 하시던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을 막고 있는 돌문을 옮겨놓으라 명하신다. 그러자 마르다가 막아서며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 말한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찾기 위해 삼일간 자기 시신 주위를 맴돈다고 믿었다. 따라서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는 것은 혼마저 떠나버린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덤 문을 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제 오빠의 시신이 이미 썩고 있는데 돌문을 열어 어쩌시겠다는 것입니까?“라는 가벼운 항의를 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네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하시며 돌문을 치우게 하신다. 무덤이 열리자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언제나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번에도 그의 기도를 들으시어 나사로를 살려주심으로 무덤 앞에 서있는 이들은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 하신다. 그런 후에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무리 중에 정치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예수님이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컴컴한 무덤 속에서 나사로가 걸어 나오면 예수님은 순식간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될 것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막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숨을 죽이고 무덤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눈에 얼굴이 수건에 싸인 채로 나사로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들어온다. 정치가들에게는 예수님의 ”승부수“가 성공한 것이요, 일반인들에겐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믿는 자들은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온 것은 ”승부수의 성공“도 ”기적“도 아닌 ”기도의 응답“의 결과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하신 데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마술사들은 마법을 행할 때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거나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사 8:19) 그러나 예수님은 주위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하신 것이다. 나사로가 살아 나온 것이 “마법의 힘”아닌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것임을 명백하게 밝히기 위해서였다.(롬 4:17) 아울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권한으로 “무덤 속에 있는 자를 불러내겠다.”(여 5:28)하신 그의 말씀을 실천하신 것이다. 


 죽었던 나사로가 그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걸어 나올 때 그의 손발은 묶여 있었고, 얼굴도 수건으로 싸여져 있었다. 죽어서 썩어가던 나사로의 육신에 생명이 들어가 그대로 소생한 것임을 무덤 앞에 서있던 사람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 예수께서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수건에 싸여 걸어 나오는 나사로를 “풀어서 다니게 하라.”하신 것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그네들 스스로가 확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처음부터 지켜본 유대인들 중 아무도 그가 살아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 명백한 사실을 바리새인들에게 알렸을 뿐이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나온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즉시 회의를 소집한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갖가지 기적을 행사하시던 예수님이 죽었던 나사로까지 살리시자 그들의 입지가 크게 위협을 받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컸던 가는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며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요 11:48)한 그들 자신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할지 심각하게 논의 할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쐬기를 박는다, 얼핏 들으면 예수님 한 분을 희생시켜 이스라엘을 구하자는 애국충정에서 한 말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희생 제물로 삼아 그들이 살 길을 모색하자는 악랄한 의도가 담긴 말이었다. 그러나 가야바는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 한 분이 죽으심으로 만백성에게 구원의 문이 열릴 것이란 기쁜 소식을 선포한 것이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가야바의 결론대로 그날의 회의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다.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인간의 육신은 무너져 내릴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권능을 구실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내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살인극을 연출하는 것이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예수께서 베푸신 가장 놀라운 기적으로서 예수님의 인류구원사역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기적을 지켜본 모든 이들의 잠자던 믿음을 일깨워 자라게 했으며, 그 기적으로 인해 예수님을 향한 두려움과 적개심이 극도에 달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그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세상에 보여주셨으며, 그를 믿은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생을 누린다는 진리를 선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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