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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갈릴리에서 두 맹인을 고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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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 오며 소릴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하니 이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하셨으나.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마 9:27-31)

 

 

병원에 가보면 세상에 이처럼 아픈 사람들이 많은가 의심될 정도로 환자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게 된다. 병의 종류도 많기만 해서 한참 설명을 들어야 인체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어 발병하는 것인지 짐작만이라도 할 수 있는 병들이 수없이 많다. 예수님 당시에도 오늘 날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숱한 병자들이 있었다. 성경에 명시된 것들만도 맹인,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 중풍, 혈루증, 열병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앞 못 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시각 장애자는 지금도 많지만 2,000여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별나게 많았던 원인 중의 하나는 중동지방의 뜨거운 태양빛 밑에서 사람들이 눈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오늘 날처럼 검은 안경을 쓰고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력을 상실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 된다. 


위생시설이 거의 없었고, 사람들의 위생관념이 부족했던 것도 앞 못 보는 이들이 많이 생긴 까닭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 눈이 먼 사람들은 보기를 갈망했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암흑 가운데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광명한 빛의 세계로 인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그의 집에서 나오시자 여전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갑자기 그들 중에서 맹인 두 명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 외친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실 때 악귀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 부르며 그에게 항거했었다(막 1:24; 눅 4:34). 그런데 맹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비록 육신의 눈이 멀어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는 영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메시아가 출현하면 일어날 현상을 이사야 선지자는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저는 사람이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라.”(사 35:5-6)고 예언하였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맹인들은 이 예언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광명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시리라 확실하게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태의 집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 묻자 예수께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1-12)하신 말씀을 전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들은 예수님이 맹인인 그들을 고쳐주기 위해 오신 의사라는 확실한 믿음이 생겼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메시아의 사명은 각종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모든 문제들, 특별히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진 무겁고 괴로운 짐을 대신 저주는 것이 메시아의 역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귀신 들린 그녀의 딸을 고쳐 달라 간청한 사실에서도 나타나 있다. (마 15:21-28)


맹인들이나 가나안 여인과는 다른 각도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유대의 민족주의자들로서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누렸던 영화를 되찾게 해 줄 민족적 영웅이었다. 예수님은 그를 그런 메시아로 인정하여 앞장세우려는 사람들을 경계했으며, 그런 무리가 몰려들 때마다 그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시곤 하셨다. 


두 맹인도 예수님을 그와 같은 메시아로 여기고 그 앞에 나왔다고 생각하는 성경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견해가 옳다고 보기는 힘들다. 맹인들의 관심사는 이스라엘의 해방이나 번영보다는 그들이 눈을 뜨는 것이었으며, 예수님을 정치적 지도자 아닌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줄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결사적으로 외치며 따라오는 두 맹인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신 채 집안으로 들어가신다. 그 집이 누구의 집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계셨던 마태의 집이라(마 9:9-10) 말하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예수께서 집안으로 들어가시자 맹인들도 따라 들어온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간절한 호소와 맞먹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서슴없이 “주님, 우리는 확실히 믿습니다.”라 대답한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들의 믿음대로 되라.” 말씀하신다.


그들이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적의 첫 단계는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낙망과 좌절이 희망과 소망으로 변화하고, 캄캄한 밤이 지나고 밝은 새벽이 찾아오며,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자 어둡기만 하던 그들의 눈앞에 찬란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들의 어떤 ‘믿음’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런 기적을 행하게 하셨을까? 


우선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그러기에 그들 두 맹인은 손에 손을 잡고 예수님을 뒤쫓아 갔던 것이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인데도 두 맹인이 손을 마주 잡자 그들에게 믿음의 눈이 열려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눈을 뜨고도 예수님을 찾아 나서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기만 한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름답고 굳건한 두 믿음의 용사의 예수님을 향한 행진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집안까지 들어간 것은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르겠다는 그들의 확고한 믿음의 표현이었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그들은 즉시 “주여, 그렀습니다.”라 대답한다. 이 같은 두 맹인의 믿음은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그녀의 혈루증은 고쳐진다고 확신했던 여인의 믿음처럼 장하고 귀한 것이었다. 밝아진 눈으로 사방을 보며 기뻐하는 맹인들에게 예수님은 자기가 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경고하신다. 어째서 그런 분부를 하셨을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칭찬 들으며, 존경받아 명성이 높아지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길이라 믿는다. 그러기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도 그것을 확대하고 미화하여 알림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세상의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때로는 그들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고 없는 일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불법으로 기소하여 빌라도의 법정에 넘긴 것도 예수님을 향한 민중들의 인기와 지지도가 높아지는데 대한 질투와 시기가 크게 작용한 것처럼 말이다. (마 27:17-18) 


예수님은 세상이 그를 어떻게 보느냐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가 메시아라는 소문이 잘못 퍼지면 사람들이 그를 죽여서 그의 뜻을 이루시는 구세주 아닌 싸워서 이겨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통치로부터 건져내는 그네들이 원하는 메시아로 인정될까 염려하셨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예수께서 맹인들을 사람들이 없는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신 까닭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었는지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분부에도 불구하고 눈뜬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나는 즉시 “예수께서 우리를 보게 해주셨다.”고 가는 곳마다 외쳤다. 예수께서 고쳐주신 열 명의 나병환자 중 아홉 명이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없이 떠나버린 것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현상이다.(눅 17:11-19)


그때나 지금이나 두 눈을 뜨고도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영안이 먼 사람들이 많기만 하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온 두 맹인은 육신의 눈은 감겨있었지만 영의 눈은 활짝 열려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보았으며, 그의 권능의 손길에 의해 영육 간에 밝아진 눈을 지니는 축복된 사람들이 되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깨닫고 그의 전능하신 손에 그들을 맡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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