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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예수님의 기적-수종병 걸린 사람을 고치시다
daekim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려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의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하시니,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가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니라.”(눅 9:1-14)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기록이 일곱 번 나온다. 베데스다 못에서 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요 5:1-9), 나면서 맹인 된 이를 보게 해주신(요 9:14) 날이 안식일이었으며, 마가복음에 기록된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날도(막 1:1-28) 안식일이었다. 


누가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을 네 번이나 기록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해주신 것이다(4:38). 그 다음에는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고(6:6), 세 번째로는 십팔 년간이나 꾸부러졌던 여인의 허리를 펴주셨다(13:13). 예수께서 안식일에 마지막으로 고치신 환자가 수종증 걸린 병자인데, 그 장소가 바리새인의 집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날 예수께서는 어느 바리새인 집에 초대되셨는데 집 주인은 바리새인의 지도자 중 하나로서 산헤드린 회원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셨을 때 수종증 환자가 한 명 있었다. 수종증이란 고창병이라고도 하며, 체액이 신체조직의 특정부위에 축적되어 몸이 붓는 병이다. 


유대인들은 이 병은 성적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여겼기 때문에 수종증에 걸리면 주위의 조롱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 환자가 어째서 저명한 바리새인 집에 들어와 있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당시의 정황으로 보건대 바리새인들이 계획적으로 그를 그곳에 오게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그들은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초대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예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실 때부터 바리새인들이 그를 엿보고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이미 여섯 번이나 예수님을 안식일을 범하는 죄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안식일을 문제로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던 그들인지라 안식일에 예수님을 바리새인 집에 오시게 하고, 그 자리에 수종병 환자도 오게 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의 초대가 호의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계셨다. 그러기에 수종병 환자를 보는 순간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불행한 사람을 못 본 척 함으로서 바리새인들의 함정을 빠져나갈 의도는 전혀 없으셨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그들의 졸렬하고 교활한 계획을 무산시킬 선제공격을 가하셨다.


거기 모여 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고 직선적으로 물으셨던 것이다. 이 돌직구 질문에 예수님의 적들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옳다고 하면 안식일 준수에 관한 그들의 입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고, 그르다고 하면 율법이 인정하는 것을 그들이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똑같은 일이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일어난다.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에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군지 말하라.”고 요구하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반문하신다.


그때도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하늘로부터라고 하면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사람들로부터 왔다고 하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는 군중들에게 돌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침묵하자 예수님은 수종병 환자를 고쳐 보내시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를 주시하는 그들에게 “너희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고 해서 구해내지 않겠느냐?” 물으신다. 


가축이 안식일에 웅덩이나 뚜껑 없는 우물에 빠져 허덕여도 구해내는 것을 율법이 허용한다면 병마로 신음하는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할 대로 완악해져 있는 바리새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의 충고와 귀한 가르침에는 귀를 막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걸었지만 그들이 앉을 자리에 관해서는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앞을 다투어 상석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주최 측에서 별도로 좌석을 배정해 주지 않는 한 먼저 간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그날 초대받은 사람들은 편한 자세로 앉아 주인이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을 먹으려고 좋은 자리를 찾아 앉은 것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상석에 앉지 말고 뒷자리에 앉으라. 특석에 앉았다가 더 귀한 손님이 와서 말석으로 밀려나게 되면 부끄럽게 되지만 뒷자리에 있다가 앞자리가 비어 그리로 옮기게 되면 사람들 앞에서 영광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께서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일러주시면서 “높아지기를 원한다면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동포사회의 각종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제일 앞에 마련된 귀빈석을 찾아 앉는 인사들을 보게 된다. 행사가 시작된 후에 도착해서도 당당하게 사람들 틈을 헤집고 앞자리로 향하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는 행사가 시작되어 연사가 말을 하는 데도 단상에 빈자리가 있으면 올라가 앉는 사람도 보았다.


그런 이들을 보면 무언가 불편하다가도 누구나 인정하는 이 사회의 지도자지만 뒤에 조용히 앉아계신 분들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동경하고 그 자리에 오르기를 원한다. 거기가 영광의 자리이기에 그 자리를 차지해야만 성취감을 느끼며 그의 인생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마감되는 날 하나님께서는 누가 높은 자리에 앉아 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살았느냐가 아닌 누가 낮은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섬기며 살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산 인생을 평가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초대받은 바리새인들에게 이처럼 귀한 진리를 일러주신 예수께서는 그를 초대한 이에게 사람을 청할 때는 그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이들을 택할 것이 아니라 그가 도울 수 있는 불우한 사람들을 청하라고 말씀하신다.


철저한 계산에 의해 손해 안 볼 사람들만을 만나면 그와 똑같은 마음을 지닌 그들로부터 피해를 보거나 낭패를 당할 확률이 많다. 하지만 가진 것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시하면 그들에게서 직접 받을 것은 없을지 몰라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는”(잠 19:17) 하나님의 원칙에 따라 보상을 받을 것임을 예수님은 일러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거물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되시어 거기 있는 수종증 환자를 고쳐주신 것은 안식일을 범한다고 그를 고발하려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안식일을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낮은 자가 높은 자”라는 사실을 들려주셨고, 그들을 초대한 사람에게는 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청할 것이 아니라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청해서 대접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날 그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귀한 가르침은 우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갈 때 우리들은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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