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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예수님의 비유-씨 뿌리는 자의 비유
daekim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려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음으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하시니라.”(마 13: 1-9)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예수께서 들려주신 비유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 비유를 듣는 사람들 모두가 이 말씀 속에 감추어진 진리와 교훈을 다 이해하여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고 쉽게 쓰여졌기에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기는 하지만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의미를 깨달았을 정도로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나타내기 원하신 진리는 중대하고도 심오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천국의 비밀에 관한 첫 번째인 이 비유가 무엇을 말해주는 가를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이것을 들려주신 까닭부터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 계신 것이 알려지자 큰 무리가 몰려든다. 그러자 예수님은 해변에 있는 배 위에 올라 앉으신다. 배 위에 앉으신 예수님 앞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운집했고, 그들 뒤에는 팔레스타인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때마침 농부 한 명이 씨를 뿌리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 유대지방의 농부들은 긴 밭이랑을 따라 걸어가며 손으로 씨를 뿌리거나 씨앗을 가득 담은 자루 밑에 작은 구멍을 내어 어깨에 메고 가며 씨가 밭에 떨어지도록 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장면을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든 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사람들이 그들 눈앞에 펼쳐진 세상과 다가오는 하늘나라를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몰려든 군중들이 그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면서 천국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농부가 땀 흘리며 정성 들여 뿌리는 씨앗들이 다 뿌리내리고 자라나 결실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말씀을 듣는 사람 전부가 구원의 문으로 들어서서 천국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길가에 떨어진 씨들은 뿌리조차 내리기 전에 새들의 먹이가 되어버리듯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가 버린다.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지 못하고 귀로만 듣는 듯 마는 등 하거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의도가 전혀 없는 성도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흙이 깊지 않은 돌밭에 떨어진 씨들은 싹이 나오기는 하나 뿌리를 내릴 수 없어서 해가 뜨면 말라버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마음이 즐겁고 뜨거워져서 앞으로는 보람된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지만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전처럼 세상에 동화되는 성도들이 싹은 나지만 결실을 맺기는커녕 자라나지도 못하고 말라버리는 돌밭에 뿌려진 씨앗에 견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들은 싹트고 자라나기 시작하지만 주위의 억센 가시떨기들로 인해 열매를 맺기까지 성장할 수가 없다. 가시밭에 뿌리내린 씨앗 같은 사람들은 주일마다 예배를 들이며, 교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지만 기도생활과 말씀묵상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는 신앙생활과는 먼 거리에 있는 성도들이다. 세상을 향한 미련과 관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예수님은 이런 성도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이 세상 걱정과 재물에 대한 유혹 때문에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말씀하셨고(마 13:22), 사도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들려주고 있다.


좋은 땅에 떨어져 땅 속 깊이 뿌리 내리는 씨앗으로부터만 풍성한 결실을 거두어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늘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옥토에 떨어져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거두는 씨앗처럼 탐스러운 인생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보람되고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다.


이처럼 이 비유는 “씨를 뿌리는 사람”아닌 “씨가 뿌려지는 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이 비유가 복음증거 자체보다 복음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더 중점을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복음의 근원은 예수님이시고, 복음의 씨를 뿌리시는 분도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뿌려지는 복음의 씨의 품질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떨어지는 토양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은 엄청나게 다르다. 


떨어지는 즉시 새들에게 먹혀버리기도 하고, 싹이 나기는 하나 떠오르는 햇빛에 말라버리기도 하며, 조금 자라나 환경에 따라 더 이상 크지 못하고 죽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좋은 땅에 떨어지는 씨앗만이 풍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받아드린 복음으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인생을 살아가려면 옥토와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이 옥토와 같은 것인가? 옥토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마 13:23), “말씀을 받아들여”(막 4:20), “말씀대로 사는”(눅 8:15) 사람들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길가에 떨어진 씨나, 돌밭에 뿌려진 씨, 또는 가시덤불 속에 자리잡은 씨를 닮은 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 옥토 같은 마음은 노력한다고 형성되는 것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처럼 말이다.(엡 2:8)


하나님의 은혜로 옥토가 된 마음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이들은 어떤 인생의 풍랑이 몰아쳐도 견디어 낼 뿐 아니라 많은 주위 사람들이 정의롭고 선한 인생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인도하는 역할을 잘 감당해 낼 수 있다. 


수십 년 전에 받은 군사훈련 중에 생환훈련(Survival Training)이란 것이 있었다. 적진을 벗어나 아군진지로 귀환하는 법을 익히는 이 훈련을 받으며 캄캄한 밤 깊은 산 속에서 발휘하는 반딧불의 위력이 얼마나 큰 가를 체험할 수 있었다. 작고 희미하기 짝이 없는 반딧불이 한밤중 본대를 찾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칠흑 같은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조명탄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옥토 같은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가 싹트고 자라나 열매 맺은 성도들의 불빛이 죄로 어두워진 세상을 광명한 빛으로 물들일 수 있음은 명확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농부가 뿌리는 씨 중 25%만이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이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까닭은 이 사실 속에는 두 가지 귀중한 진리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복음전선에서 싸우는 전도자들은 그들이 뿌리는 복음의 씨가 전부 싹트고 자라나 열매 맺지 못한다고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옥토 같은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기도 하지만 전리의 말씀을 외면하거나 배척하며 죄악의 길을 계속하여 걸어가는 이들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밝혀졌듯이 뿌려진 씨앗의 사분의 일만이 결실을 맺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이신 예수께서 산 위에서 하신 설교도 받아드린 사람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며 외면하고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등장한다. 자신이 꿈꾸고 원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미지의 땅 깊숙이 들어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외쳐대다 결실을 거두지 못하면 “내 할 일은 다 했다.”며 미련 없이 복음증거의 사역을 중단해도 좋은가가 그것이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네 명 중 하나만이 복음을 받아드렸다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다. 


선포되는 복음에 대한 반응이 아무리 미약하고 부정적이더라도 복음증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비유가 들려주는 핵심 요소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그의 뜻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전하지 않는 선지자들에게 그 책임을 엄하게 물으시겠다고 경고하셨다(켈 33;1-6).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달리며 모든 민족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라.” 분부하시고 그들 곁을 떠나셨다. 


그로부터 2,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 세상이 복음화되지는 않았지만 세계인구의 35% 이상이 믿는 자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 이는 “귀 있는 자”가 되어 옥토 같은 마음에 복음을 받아드린 열두 명의 결사대원들이 죽기까지 생명의 복음을 외쳐댄 결과인 것이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우리 속에 심어져서 싹트고 자라 맺은 열매를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주며 하늘나라를 향해 전진하는 복음전파의 용장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훈련시킨 열두 명이 수행한 인류구원의 사명을 우리를 통해 완성하기를 원하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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