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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겨자씨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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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겨자씨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1-32)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김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 4:30-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눅 13:19-21)

 

 

예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가라지 비유”에 이어 세 번째로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들려주신 이유가 “겨자씨 비유”다. 다른 여러 비유들과 마찬가지로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것들에 비해 짧으면서도 강조점이 서로 다른 것이 이 비유의 특징 중의 하나다. 


마가는 겨자씨는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3미터 이상 높이로 자라서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 수 있게 되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누가는 작은 겨자씨가 싹터서 자라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마태는 마가와 누가의 강조점을 배합하여 이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세 복음서 모두 겨자씨는 아주 작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마태와 마가는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것이 겨자씨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싸이프러스 나무 씨나 검은 난초 씨는 겨자씨보다 더 작다. 그런데도 공관복음에 겨자씨가 제일 작다고 되어있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겨자씨는 “작은 것”의 상징이었으며, 천국은 미약하고 작은 상태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믿음에 관해서도 예수께서는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거라.’하여도 말대로 될 것이라.”(마 17:20) 말씀하시므로 세상을 정복하는 위대한 믿음도 겨자씨처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일깨워 주셨다. 


마태복음에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로 시작되는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욥 8:6)하신 것을 상기하게 한다. 모든 씨앗보다 작으나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는 큰 나무로 자라나는 것이 겨자씨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에도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에는 겨자씨가 작다고 명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들이 그 가지에 둥지를 틀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로 성장한다는 점은 두 복음서보다 더 두각 되어 있다. 


따라서 세 복음서 모두 지극히 작은 겨자씨 속에 숨 쉬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이 각종 새들의 안식처가 되도록 나무를 자라게 한다는 점을 이 비유의 핵심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작기만 한 겨자씨가 지닌 놀라운 생명력으로 성장한 나무가 온갖 새들의 삶의 보금자리가 된다는 것을 마태, 마가, 누가가 모두 명시한 것은 구약에 등장하는 대제국들이 나무로, 거기 예속된 나라들은 그 나무로 몰려드는 새들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겔 17:22;31, 31:6; 단 4:10-11)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겨자씨처럼 작고 연약한 복음의 씨가 어떻게 이 땅 위에 심어졌으며,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하여,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를 살펴보아야 할 줄 안다. 그래야만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겨자씨 비유를 들려주신 까닭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구약에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한 수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모든 예언들의 성취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예수님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갈 4:4) 


그러나 천사들로부터 소식을 들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별들의 인도함을 받아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이 베들레헴 한 마구간 섶단 위에 누운 아기 예수 앞에 경배했을 뿐 세상은 구세주 탄생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폭군 헤롯은 “유대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천사들의 인도함을 받은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겨 애굽으로 피신했다 돌아온 소년 예수는 나사렛에서 목공소를 하는 아버지 요셉 밑에서 일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며 인류구원의 사역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예수께서 천국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음을 알리며 회개를 촉구하는 그의 외침을 작은 겨자씨 보다 못하게 여겼던 것이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혁신적이고 진리의 말씀인 산상수훈에서도 그들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먼지 이는 유대 땅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시며 가르침과 행함으로 하늘나라의 진리를 선포하며 보여주셨지만 예수님을 겨자씨만도 못하게 여기는 그네들의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보리떡 몇 덩어리와 물고기 몇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시는 전무후무한 기적을 베푸셨지만 민중들이 바라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아닌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떡과 물고기뿐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숱한 불치의 병자들을 낫게 해주시며, 악령에 사로잡혀 진통하는 사람들을 사탄의 속박에서 구해주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랑과 자비의 예수님 앞에 머리 숙이거나 그를 구세주로 맞아드리는 대신 마술사 혹은 사탄의 하수인 정도로 취급하는 무지와 불신앙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경제적으로 밑바닥을 헤매며, 사회적으로 냉대 받으며, 그들의 위로와 소망이 되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로부터도 멸시당하고 버림받는 서민들에게 천국의 진리는 광야에 부는 사람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 외치신 겨자씨 같이 작은 ‘천국복음‘만이 그들을 절망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나라로 인도해줄 유일한 소망이었음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땅 끝까지 달린 사람들도 겨자씨 보다 더 보잘 것 없는 비천하고 초라한 소수의 무리에 불과했다. 그러기에 그들이 전파하는 “구원의 기쁜 소식”도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 속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미약하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여, 부족하고 힘없는 저희들이 담대하게 주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행 4:29)라 기도하며 예루살렘을 출발하여 유대 전역과 사마리아를 거처 로마까지 달려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했다. 예수께서 심은 작은 겨자씨 같은 복음의 씨가 싹트고 자라나 이 세상 모든 인종들이 평화와 안식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갈릴리 해변에 뿌려진 겨자씨처럼 작은 복음의 씨는 세찬 비바람과 모진 눈보라를 헤치며 로마까지 뻗어가는 놀라운 성장을 했다. 그러나 복음의 씨가 거기서 성장을 멈춘 것은 아니다. 그 후 2,000여 년이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멸망의 수렁에 빠져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건져내어 그들에게 안식처와 피난처를 마련해 주며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복음의 겨자씨가 싹 터 자라는 복음의 나무가 얼마나 더 크게 자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이 나무는 계속하여 자랄 것이란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 나무를 자라게 하는 이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신 예수님이시며, 이 나무가 쉬지 않고 성장하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평안하고, 행복된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게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까닭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미약하고 작은 겨자씨가 자랐을 때 생기는 현상과 같음을 말해주는 이 비유로부터 배워야 할 첫 번째 진리는 아무리 크고 중대한 일도 시작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잘 것 없고, 의미 없어 보인다고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며, 깊은 산 속의 작은 옹달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냇물이 되고, 강이 되며, 바다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겨자씨 비유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진리는 지극히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나중”이 되는 것이 “성장의 원리”라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양성하신 미천한 소수의 제자들이 전파하기 시작한 구원에 이르는 진리가 오늘 날 이 지구상에 안 미친 곳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믿음도 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드리는 순간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적인 기도와 말씀묵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 또한 겨자씨 비유에서 깨달아야 할 진리다.


예수께서는 이같이 복된 복음의 씨앗을 우리들의 가슴 속에 심어주셨다. 이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역경으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히 12:2) 전진해야 할 줄 안다. 그것이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가장 보람되게 사는 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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