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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예수님의 비유-그물 비유
daekim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 13:47-50)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일곱 개의 비유 중 마지막 것인 “그물 비유”는 세 번째인 “알곡과 가라지 비유”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둘 다 최후의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는 추수 때까지 둘이 함께 자라지만 “그물 비유”에서는 잡은 고기 중 좋은 것과 못된 것을 즉석에서 가려낸다. 


세 번째 비유에서는 농부와 일꾼들과 추수꾼 등 여러 명이 등장하며,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마지막 비유는 어부들이 그물을 던져 잡은 고기들을 물 가로 끌어내는 과정만을 간략하게 들려준다. 


“가라지 비유”에서는 농부가 좋은 씨를 뿌린 후에 원수가 밤중에 몰래 가라지를 뿌렸지만 “그물 비유”에선 팔 고기와 못 팔 고기를 한 번에 잡은 것도 서로 다른 점이다.


예수님이 “그물 비유”를 들려주실 때 제자들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그리고 흥미롭게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대부분이 어부 출신인 제자들에게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하신 일도 생각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의 전 재산인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기억과 온갖 고기들이 팔딱대는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려 팔 수 없는 고기들을 바다로 다시 던지던 일도 떠올랐을 것이고 말이다.


그때 어부들이 그물에서 나쁜 고기를 가려내는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너무 작아서 먹지 못할 것들과 독성이 있는 고기들은 당연히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부들이 팔 고기와 못 팔 것을 구분하는 자장 중요한 기준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느냐 여부였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먹어서는 안 될 물고기들이 명시되어 있는데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으면 가증한 것”(레 11:10)이라 되어있다. 따라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으면 팔 수 없는 고기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그물에 들어왔지만 못된 것들은 버린다고 하신 까닭은 심판 날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드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가 그물 속의 고기들을 분류해 내었듯이 마지막 심판 때도 하나님께서 선인과 악인을 갈라내신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물 비유”에는 두 가지 핵심이 내포되어 있다. 첫 번째 핵심은 어부가 던진 그물에 고기들이 들어가는 것처럼 예수님의 복음의 그물에 들어가야만 구원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불길이 꺼져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의인과 악인을 가르신다는 것이다. 


어부는 좋은 고기만을 잡을 목적으로 그물을 던지지 않는다. 상품가치가 있는 고기만을 잡는 그물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당시 갈릴리 어부들이 정방형의 그물을 던지고 노 저어 나가면 그 근방에 있던 모든 고기들 즉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는 것도, 너무 작거나 독성이 있어서 팔 수 없는 것들도 함께 걸려들었던 것이다. 


이 사실이 말해 주는 교훈과 진리는 참으로 귀한 것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5“15)는 것이었다. 지역적으로는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인종적으로는 세상 모든 족속에게 미쳐야 하는 것이 복음인 것이다. 


때문에 교회는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드려야 한다. 교회는 재능이나 특별한 은사를 지닌 사람들, 고학력 소유자, 재력이 풍부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 또는 믿음과 주를 향한 충성심이 강한 성도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무도 교회에 들어올 자격자와 무자격자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판정할 수도 없다. 예수님이 ”너희는 서로 비판하지 말라.“(마 7:1-5) 하신 것을 기억할진대 우리 중 누구도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비난하고 판단하며 정죄할 자격이나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함께 자라던 알곡과 가라지가 가려지고, 한 그물 안에 있던 고기들이 팔려갈 것과 버려질 것으로 분류되듯이 함께 주를 섬기던 성도들이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되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된다.


누구나 복음을 듣고 받아드릴 수 있으며, 교회를 섬길 수 있지만 모두가 “하나님만을 사랑하며”(마 22:37),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서로 사랑하며”(요 13:34), “하나님께 전적인 충성을 바치며”(고전 4:1-2) 사는 것은 아니다. 


구약시대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살았던 것처럼”(사 29:13; 마 15:8), 입으로는 “주여, 주여”를 연발하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만 한 세상이다(마 7:21-23). 이와 같이 표면적으로는 같아 보이는 성도들이 최후의 날에는 서로 다시 못 볼 길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그물 비유”는 말해주고 있다.


“그물 비유”에 등장하는 어부들은 고기들을 잡으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갖가지 고기들이 날뛰는 그물을 끌고 육지까지 온 후에 그물을 열고 팔 것과 버릴 것을 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대로 행한 성도들과 행함이 없는 믿음을 지니고 교회를 드나든 신도들을 구분하는 역할은 복음증거자 아닌 천사들에게 맡겨진다. 


아무리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한 전도자도 마지막 심판 날에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천국행 비자를 발급받을 성도들을 골라내는 일은 천사들의 몫이며, 그들의 비자에 최종적으로 서명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구원은 철두철미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배우자 중 하나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부부가 함께 천국시민이 될 수는 없다. 이 원칙은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친척과 친지 사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가 구원에 이르는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관 이시라는 사실은 우리가 받는 위로의 근원이요, 우리의 최대의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혼탁한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고통과 슬픔 속에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만 산다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을 하실 때 “착하고 충성된 자”라 부르시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망과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의 힘이야 말로 우리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며 천성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환란과 핍박과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당해야 하는 부당한 대우와 억울함은 많고 크기만 한다. 


 우리들만이 그런 것을 느끼고 체험한 것은 아니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그의 삼촌이 아버지를 독살하고 그의 어머니를 아내로 삼고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살아야 하느냐? 죽어야 하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동시에 온갖 부정과 갖가지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은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무지하고 난폭한 사람들의 횡포, 압제자들의 참기 힘든 악행, 정의를 외면하는 법 집행자들, 권력의 자리에 있는 이들의 오만과 소인배들의 불손함을 보고 느끼며 햄릿은 날카로운 비수를 그의 가슴에 꽂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만약 햄릿이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불굴의 명작 “햄릿”은 다르게 써졌을 지도 모른다. 


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심판의 날에 웃으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지만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채 심판대 앞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형을 내릴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뜻있는 사람들 특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지금 우리들의 조국 대한민국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국가의 안보가 심히 위태로워 졌고, 온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일으키고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크게 위협받고 있으며, 언제 붉은 마수가 한반도를 덮을지 모르는 형편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단결하여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한국을 더욱 안정되고 번영된 나라로 만드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 줄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불의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나라를 사지로 몰고 가는 소수의 위정자들은 하나님의 진로의 채찍을 피할 길 없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천인공노할 민족적 죄악을 깨닫고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하나 되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일들을 행한 잘못을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께 충성하는 십자군의 정병들이 되어 선한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조국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우리들 자신들도 최후의 심판 날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지는 비참하고 슬픈 운명을 맞이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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