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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예수님과 아리마대 요셉
daekim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마 27:57-61)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들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요 19:38-42)

 

 

2천여 년 전 유대의 서민들은 로마제국의 통치하에서 오늘 먹을 것을 구하기에 바빠 내일의 양식을 염려할 여유조차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선지자의 음성까지 끊어 진지도 오래되었다. 이 같이 암흑 속에서 헤매는 그들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몸과 마음이 지치고 상한 자들을 위로하며 어루만져 주시고, 억눌리고 짓밟힌 그들을 붙들어 일으켜 주셨다(눅 4:18). 어둔 세상을 진리의 빛으로 밝히시며, 절망과 좌절만이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마다 기쁨과 소망의 씨앗을 심어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 그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예수님을 두둔하거나 옹호하려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사주를 받은 민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댔다. 참으로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야비하고 비열한 배반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소리쳤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런 조롱을 받으며 6시간이나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다 운명하셨을 때 아무도 그의 시신을 거두고자 나서지 않았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예수께서 운명하신 시각이 금요일 오후 3시경이었는데 안식일이 오후 6시부터 시작되니 그 전에 누군가 주님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예수님의 시신은 치욕적인 방법으로 처리될 수도 있었다. 유대인들은 큰 명절인 유월절 동안에 갈보리 언덕 위 십자가에 시체가 매달려 있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달라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가 곧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다. 아리마대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선지자인 사무엘의 고향인 에브라임 산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이 아리마대 출신인 요셉은 니고데모처럼 산헤드린 회원이었는데 4복음서 모두에 그를 예수님의 제자라 명시하고 있다(마 27:57; 막 15:43; 눅 23;51; 요 19;38).


요셉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 없다. 그가 예수님의 사역에 직접 참여했다는 기록도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역사가 누가가 그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의로운 사람”(눅 23:51)이라 평가한 것을 보면 그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구세주 예수님을 사랑한 주님의 제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니고데모와 마찬가지로 그는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거나 나서서 예수님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대다수의 산헤드린 회원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상황에서 요셉이 주님의 제자란 사실이 알려지면 그의 지위가 박탈당함은 물론 유대사회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었기에 표면에 나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예수께서 체포 당할 위기에 처하자 확실한 증거도 없이 주님을 구금한다는 것은 율법에 위반된다고 한 것처럼 요셉도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한 산헤드린 공회가 열렸을 때 불참함으로 예수님의 체포를 반대하는 그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 당시 산헤드린 공회의 의결방식은 만장일치였다(막 14:64, 15:1). 때문에 요셉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으면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셉이 공회에 참석하여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힘들었다. 갖가지 협박과 회유로 그들은 요셉이 부표를 던지지 못하게 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반대한다면 그는 유대사회에서 축출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요셉은 회의에 불참함으로 그의 의사표시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요셉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였음을 증명해 준다. 회의에 불참함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공회원의 자격을 박탈당할 각오까지 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수님을 정죄하는 불법회의의 동조자가 되기를 거부한 요셉의 주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금요일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오후 3시에 운명하셨을 때 누군가가 그의 시신을 장사 지내야 했다. 안식일이 금요일 오후 6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유월절 기간에 십자가에 매달린 시체를 보기 원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시신을 치워달라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면 로마병정들은 흉악범을 처형했을 경우처럼 주님의 시신을 치욕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컸다. 그대로 둔다 해도 사나운 날짐승들이나 들짐승들에게 시신이 뜯길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이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선을 거두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3년간이나 예수님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제자들조차 겁에 질려 모두 숨어 버렸는데 요셉이 위험을 무릎 쓰고 유대인의 법대로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겠다고 나선 것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할 수 있었던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3시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갈보리 언덕을 오르내리며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동산에 마련된 그의 바위동굴에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되고, 두 손을 피로 물들이며 예수님의 시신을 동굴에 안치했다. 


요셉이 예수님을 그 자신을 위해 준비했던 동굴에 장사 지낸 것은 몇 가지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부유한 요셉이 그가 죽어서 매장될 무덤에 주님을 매장한 것은 예수께서 부자의 묘실에 장사될 것이란 예언의 성취였다(사 53:9). 동시에 요셉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바위동굴에 예수님을 모신 사실로부터 깨달아야 할 또 다른 중대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은 흠 없고 온전한 최상의 것이어야 한다는 구약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요셉은 그 자신이 묻히기 위해 제일 명당자리에 준비한 바위동굴에 사랑하는 예수님을 모신 것이다. 하나님께 드린 귀하고 온전한 사랑의 예물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요셉이 그가 들어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냄으로 일어난 일이다. 요셉이 그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끝까지 숨기고 있다 죽어 그 무덤에 묻혔다면 그 앞에는 “산헤드린 공회원 아리마대 요셉 이 곳에 잠들다.”란 비석이 세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돌 판에 새겨진 글자들은 퇴색하여 희미해지고, 그가 묻힌 동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이 예수님을 거기 모신 까닭에 그 동굴은 죽음을 정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현장이 되었다.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인 사무엘이 살았던 에브라임 산지로 알려진 아리마대 출신답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선하고 의롭게 살며 예수님의 충성스런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산헤드린 회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숨기며 살았다. 하지만 그의 심령 속에 파고드는 진리의 소리를 끝내 외면할 수 없어 예수님의 처형을 결정하려는 산헤드린 공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자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그 자신이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다. 그가 한 일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드리는 위대한 신앙고백이며, 주께 바친 충성이었다.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의 손길에 힘입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버렸고, 제자들까지 숨어버린 상황에서 모든 위험을 무릎 쓰고 니고데모와 협력하여 예수님을 장사 지낸 요셉의 행위는 주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을 빼드리는 아름답고 귀한 헌신이었다. 


오늘 날 입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면서도 행위로는 주님을 매일매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요셉이 얼마나 충실한 예수님의 제자였던가를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죄악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옳고, 정직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우리들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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