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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예수님과 사도들 -사도 바울 (바울의 순교)
daekim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 6-8)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지만 예루살렘에는 바울에 대해 적대감을 지닌 유대인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10여 년 간(AD 47-57) 세 번에 걸쳐 선교여행을 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저버리고, 할례나 유대교의 예배의식을 중요시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야고보는 바울에게 하나님에게 서약한 네 명의 유대인과 정결의식을 행함으로 그가 모세의 율법을 존중한다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종용한다. 바울은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드렸다. 그를 미워하는 유대인들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7일 간의 정결기간이 끝날 무렵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스라엘에게 해롭고, 율법에 위반되는 것을 가르치며, 이방인을 성전에 들였다며 사람들을 선동한 것이다. 그들은 에베소에서 전도하던 바울을 알아보았으며, 거기서 바울을 따라온 드로비모가 성내에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성전까지 들어갔다고 단정한 것이다.

 

바울을 증오하는 그들은 이방인은 들어갈 수 없는 성전에 바울이 드로비모를 데리고 들어갔다며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려 했다. 이때 상황을 보고받은 로마의 천부장이 군대를 거느리고 달려와 바울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낸다. 포박당하여 로마군 영문으로 끌려가던 바울은 천부장에게 군중들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 요청하여 허락을 얻는다.

 

유창한 헬라어로 바울이 군중들을 향하여 한 첫 마디는 “부형들이여,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였다.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향해 “부모 형제들”이라 부른 바울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과정을 소상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것과 같은 내용이지만 그때와 다른 청중을 대상으로 어째서 그가 핍박하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가를 들려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바울을 해치려 한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바울은 그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신분임을 밝힘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천부장은 바울에게 변호할 기회를 주기 위해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한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주제하는 공회 앞에 선 바울은 그는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으로서 부활의 진리를 전하다 잡혀왔다고 진술한다.

 

그 말을 듣고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과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 간에 격론이 벌어지자 천부장은 즉시 공회를 해산시키고 바울을 군영 안에 있는 감옥에 가둔다. 그날 밤 지칠 대로 지친 바울에게 예수께서 “담대 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고 들려주신다.

한편 유대인들의 바울을 향한 적개심은 더욱 커져서 40명의 바울 암살단을 구성하고 바울을 죽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바울의 생질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천부장은 470명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로마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로 이송한다.

 

암살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더욱 분노한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장로들과 변호사 더들로를 대동하고 가이사랴로 가서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민중 선동죄, 이단종교 유포죄, 성전 모독죄”로 고발한다.

 

바울은 사실에 입각하여 그에 대한 세 가지 기소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벨릭스 앞에서 증언한다.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벨릭스는 바울이 기소된 것은 유대인들의 간계에 의한 것임을 간파했다.

 

그러나 벨릭스는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재판을 연기시켰다. 벨릭스가 그 같은 조처를 취한 것은 유대인들의 반감을 사지 않으면서, 바울에게서 뇌물을 기대한 불순한 마음에서였다. 기회주의자이며 불의의 재물을 탐하는 저질 정치인 벨릭스에 의해 2년 간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바울은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드루실라는 사도 요한의 형 야고보를 죽인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었다. 절세미인이었던 그녀는 14살에 에메다의 아지스 왕과 조혼한다. 그녀의 관능적인 미에 매혹된 벨릭스는 아토보스라는 마술사를 고용하여 그녀를 유혹한다. 헤롯 왕가의 피를 받아 야심만만하고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던 드루실라는 남편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벨릭스의 아내가 된 것이다.

 

바울이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의와 절제와 심판”에 관해 들러주자, 벨릭스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행한 온갖 권모술수와 젊고 아름다운 드루실라를 유혹하여 아내로 삼는 등 그가 범한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벨릭스는 그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고, 바울을 방면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바울은 벨릭스가 가이사랴 지방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충돌했을 때 군대를 잘못 투입해 유대인들을 많이 죽인데 대한 문책을 받아 본국으로 소환될 때까지 구금되어 있어야 했다.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해 오자 유대인들은 또다시 바울 문제를 들고 나왔다. 신임총독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전에 바울을 처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여 로마 시민인 바울의 청원에 따라 그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황제에게 제출할 바울의 죄를 찾을 수 없어 번민하다 그의 총독취임을 축하하려 온 아그립바 유대 왕에게 함께 바울의 변론을 듣자고 청한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그의 아내 버니게와 군부 지도자들과 지방 유지들을 청하여 재판 석을 마련하고 바울을 불러낸다.

 

아그립바 왕은 야고보를 죽인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며, 그의 아내 버니게는 베스도의 동생이며 전임 총독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의 언니였다. 버니게는 질투심이 병적으로 강했고, 13살 어린 나이에 결혼했으니 몇 년 후 삼촌과 재혼했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오빠인 아그립바 왕과 사는 지극히 부도덕한 여인이었다.

 

베스도의 법정에 선 바울은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 그 앞에 엎드리게 된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행 26:1-23). 바울이 세 번째로 한 그의 회심의 고백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향한 열정적인 설교였다.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을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로마 사람인 그로서는 바울이 말하는 부활이나 영생의 진리를 받아드릴 수 없었던 것이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왕께서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라 묻자, 그는 “네가 내게 전도를 하느냐?”며 비웃는다. 바울은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기도합니다.”(행 26:29)라며 그의 진술을 끝낸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버니게만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녀의 죄를 깨달았어야 했다. 그녀의 증조 할아버지 헤롯 대왕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고,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둘 다 예수님을 핍박했기에 버니게는 그녀의 조상들과 그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는 생명 줄을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버니게는 동생 드루실라가 그랬던 것처럼 냉소와 조조를 바울에게 보내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놓친 슬픈 여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바울의 진술을 들은 사람들은 바울의 무죄를 확인했다.(행 26:30-31)

 

특히 아그립바 왕은 “그가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으면 석방할 수 있을 뻔하였다.”(행 26:30)라며 바울이 무죄라고 단정했다. 따라서 바울이 황제에게 한 상소를 취소했다면 그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황제에게 한 재판청원을 포기하지 않고 선교사 아닌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향해 떠나간다.

 

로마로 가는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 14일이나 표류하며 침몰될 위기까지 갔지만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멜리네 섬에 당도하여(행 27:22-25) 거기서 겨울을 지낸 후 로마까지 가게 된다. 로마에서 바울은 2년 간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기간 동안 그는 옥중서신으로 알려진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술했다. 바울이 언제, 어떻게 로마에서 순교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도착 이후 2년 간 셋집에서 지내며 선교하며 옥중서신들을 기록하다 처형되었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1차 재판에서 무죄로 석방되어 스페인까지 가서 선교한 후 로마로 돌아와서 로마 대 화재 시에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주장이 옳은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선정되어 그 사명을 죽기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했다는 사실이다. 바울에게는 죽음은 괴롭고 무거운 육신의 짐을 벗어버리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품에 안김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일 뿐이었다.

 

그는 사형을 기다리며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며 슬퍼하지도 않았고, 두려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고 아버지 곁으로 가신 것처럼 바울도 “내가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면서 인생의 경주를 끝내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준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으러 간다.”며 웃으면서 떠나갔다.

 

바울은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기쁨을 느끼며 삶을 마감한 것이다. 주를 믿는 우리들도 바울과 같은 인생을 살다 해처럼 밝은 얼굴로 우리를 위해 주께서 마련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향해 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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