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아프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보니, 영혼은 자기가 가는 날짜를 아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린 아직 가게를 하고 있기도 해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65세)가 훨씬 지났음에도 남편이 연금 신청을 미루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서둘러 작년에 연금 신청을 했다. 그랬는데 1년이 넘어서야 그 동안 받지 못했던 것을 어느 정도가 적용이 되었는지, 소급해서 통장으로 입금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남편에게 그 돈은 없는 돈이니 연금이 나오면 현금으로 찾아서 달라고 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1주일 전에 두 번에 나뉘어 돈을 찾아서 내게 주었다. 남편 것은 찾아서 내게 주고, 내 앞으로 나온 돈은 내 통장에 그대로 있다고 했다. 돈은 봉투에 넣어둔 채로 책상서랍에 넣어 두고 있었는데, 밀린 것까지 한 번에 받았으니, 마치 장례비용으로 쓰라는 듯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그러는 며칠 사이에 “내 지갑을 하나 갈아야 하는데 작은 딸한테 내 생일 날 지갑을 사 달라고 해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지갑이 책장 위에 놓여 있었다. 


자리에 누워있는 채로 “이태리 가죽이며 좋은 것이니 잘 쓰라”며 나한테 지갑을 줬으니, 자기한테도 ‘선물’을 하나 달라고 했다. 그래서 “뭐가 받고 싶으냐”고 했으나 그에 대한 대답은 아직 듣지도 못했는데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남편의 시신은 장의사에서 와서 운구를 해갔지만, 우린 우선 장례준비를 하기도 해야겠지만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어 급하게 아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녀가 와줘서 가게를 맡기고 장의사로 갔다. 


 우린 그 동안 묘지는커녕 죽음에 관한 얘기조차도 금기시하고 살아 왔으니, 당장 ‘화장’을 해야 할지 아니면 ‘매장’을 할 것인지 그것부터 결정을 해야 했다. 난 딸들에게 평소에 樹木葬(수목장)을 했으면 하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그럼 아빠를 우선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모시면서 나중에 수목장을 할 만한 데로 아이들이 마련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의사에서 아예 화장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는 관, 유골함, 꽃, 장례에 관한 절차를 다 끝내고 납골당을 둘러봐야 할 것 같아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납골당을 들어가 보니 우선 답답하고 냉기가 돌아 나중에 나는 물론이요, 남편이 보고 싶어 찾아간다 해도 그것조차도 섬뜩해서 그곳에 가게 될 것 같지 않아 장의사한테 다시 연락을 해서 화장은 하지 못하겠다고 하며, 매장을 해야 할 것 같으니 당장 구입할 만한 곳이 있는지 묘지를 둘러 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마침 공원묘지 가운데 한인들한테만 묘지를 분양하는 곳이 있었다. 그곳엔 가서 보니 우선 남향인데다가 사방이 탁 트여 굳이 수목장을 고집하지 않아도 그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 날은 너무 늦어 그곳을 둘러만 보고 다음 날 다시 가서 비어 있는 자리 중에 선택을 하면 될 것 같았다. 


 그 다음 날 장의사 사람을 만나 그곳을 다시 찾았다. 외국인 담당자가 비어 있는 곳 몇 군데를 보여 주었는데 마침 너무도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 그곳으로 결정을 하고 돌아오며, 나한테 선물을 받고 싶다더니, 내 취향을 알아 그곳으로 유도, 결정을 한 것 같기도, 그야말로 ‘반전의 선물’을 영혼은 받고 싶었던 것일까. 


 난 평소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못 견뎌 하는 성격인데, 남편이 먼저 가서 묻힌 곳, 나 죽은 다음에도 내가 가서 묻힐 곳이야말로 마음에서 어느 구석 하나도 쏠리지 않고 흡족했다. 


 그곳은 주택가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구역이 정해져 있었다. 유태인, 중국 사람들, 한국인 묘소는 낙원동산이라 돌에 새겨져 있었다. 우리 묘소가 위치한 곳은 다른 구역보다 땅이 조금 올라와 있었다. 그러니 누워 있는다 해도 답답하지도 않고 시야 끝쯤엔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 있고 하루 종일 햇빛이 내리 쪼일 것이니 그래서도 참 마음에 드는 곳이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그곳에 매장을 하고 돌아서는데도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난 할머니 산소에 가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양지 바른 곳에 봉분도 큼직하니 보기 좋아 그런 것들도 마음에 들어 참 좋아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묻힌 곳, 나중에 내가 가서 묻힐 곳은 할머니 묘소 이상으로 마음에 드니 명당이 다름 아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밀린 연금까지 찾아다 놓고, 내게 지갑까지 선물해 주더니, 난 남편의 幽宅(유택)을, 그렇게 그의 영혼이 인도하기라도 한 듯 경황없는 중에도 딸 사위들과 무사히 장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느 사이 남편이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곁에 없어 볼 수 없다는 것뿐, 남편은 내 곁에,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참 알 수 없는 일이네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내게 지갑을 주던 날, 평소 같으면 그 시간이면 잠자리에 누워 비몽사몽이거나, 일어나기라도 했을 텐데, 침대에 누워 내게 선물을 하나 달라고 하던 그 음성이나 누워 있던 자세가 내 등 뒤에서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어서 이건 뭐지? 하며 남편에게 “뭘 받고 싶은데?” 하고 다시 되물었었다. 남편이 운명을 했던 그 순간도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갔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은 남편이 떠나고 난 다음 남편의 속옷 문갑을 열어보니 하얀 거즈 수건 2개가 우선 눈에 띄었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쓰지 않던 것이기도, 나도 그것이 어디 있는지 몇 번 내 속옷 장을 열어봐도 없었던 것, 게다가 남편이 왜 생뚱맞게 그것을 갖다 자기 속옷 장에 넣어 둔 것인지, 영혼이 미리 알고 ‘고별, 눈물의 손수건’을 준비한 것인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데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교제하던 시절 어느 날 남편과 같이 청계천에 냉면 잘 한다는 집으로 냉면을 먹으러 갔다. 난 비빔냉면에 뜨거운 육수를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남편이 엄마 갖다 드리라며 하나를 포장해 달라고 했다. 그곳을 나와서는 동대문 옷감 파는 상점에 들러 내 투피스 옷감을 사 주기에 받아 들고 와서 난 노란 잠자리 날개처럼 예쁘게 투피스를 해 입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후 며칠씩 연락이 되지 않아 궁금해서 집으로 찾아 갔더니, 남편의 작은 형과 작은 누나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남편이 군대를 갔다는 것이었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리에 쓰러져 엉엉 울고 말았다.


 그렇다면 남편은 최소한 군 입영통지서를 몇 달 전에는 받았을 텐데, 내게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기약 없는 작별을 혼자 준비하고 그때도 그렇게 가더니, 이번엔 다시는, 영원히 볼 수 없을 텐데 그렇게 이별의 인사말 한 마디 없이 그렇게 갈 수가 있는 것이냐고 '못된 사람'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난 그렇게 남편을 허망하게 보내고는 그나마 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불편한 마음 가슴 한 구석에 남아 편치가 않았을 터인데, 내 마음이 이렇게 편안한 것은 나도 그렇지만 딸들에게도 좋은 징후로 보여 그것으로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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