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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hon
일부 변경선 동과 서(50)
jsshon

 

(지난 호에 이어)


그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나는… 내 건강에 어떤 이상이 있더라도 애기는 낳을 결심이에요.”


“애기는 내 생명의 한 부분체가 아니라 생명의 전부에요. 우리 사랑의 결정체에요.”


후딱 고개를 든 아빠가 안경을 벗어 들고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 단, 공부는 중단하면 안돼요. 가사는 나 혼자 다 감당할 테니 아빠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요. 내가 바라는 것은 자기 분야에서만은 전적으로 추앙받는 권위 있는 실력자가 되는 거니까요.” 


“. 몸이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우리의 사랑은 변치 않으며…”


 옹골찬 각오와 다짐으로 자녀와 전 가족을 포함시킨 책임과 희생의 제 2혼인서약을 새롭게 가슴 깊이 새겼다. 


캄캄한 창공이 일순간에 찬란한 푸른 하늘로 변신하듯 밝고 탄탄한 뿌리내리기 예식이었다. 다음날 닥터 ‘패터슨’께 정신과약속을 취소하였다는 전화를 하였다. 그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거듭 축하해 주었다. 

 

새봄 


이곳의 봄은 진눈깨비와 섞여서 왔다. 따스하고 화사하던 날씨가 어느 순간 갑자기 변해 잿빛 하늘로부터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고, 그런가 하면 땅에서 녹은 눈들이 질퍽거리다가 자동차바퀴에서 튀어나가는 지저분한 날씨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잔잔하던 날씨가 거센 바람에 밀려서 쫓겨가고 불려오기를 몇 번 거듭하다가 4월 말쯤, 드디어 확 피어 오르듯 움직이지 않는 봄이 대지에 자리 잡는 것이었다. 


가지만 엉성하던 잡목덤불이 노랗게 개나리꽃으로 활짝 덮였다. 아! ‘버펄로’에도 개나리가 피다니. 환성을 질렀다. 


먼 고향에서 소식도 없이 홀연히 찾아온 정다운 친구처럼 온 누리에 황금빛 광채를 눈부시게 반사하면서 고향냄새를 풍겨주고 있었다. 반가움과 설렘으로 풍선처럼 부풀은 마음이 아지랑이 따라 온 동네를 서성거렸다. 개나리울타리를 돌고 돌면서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기어코 작은 가지 하나를 꺾어 들었다. 


 개나리 피었구나. 개나리 피었구나 / 돌아 다 보고 보고 또 보다 돌아서 / 이을 줄 저도 알면서 꺾어들고 오누나 /


 작가의 이름도 잊은 채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던 먼 날의 시조를 입 속에서 계속 뇌이고 있었다. 미미한 한가지의 꽃이 이처럼 많은 말을 할 수 있고 그토록 세심한 기쁨을 전달해줄 줄은 미처 몰랐었다. 코끝으로 몰려든 싸한 바람이 눈물샘을 자극하였다. 버펄로의 아지랑이가 눈썹 끝에서 대롱대롱 흔들렸다.


큰일들이 연이어 일어난 길고 긴 겨울. 그 겨울을 보내고 처음 맞는 봄은 네 잎 노란 소망의 꽃 향기로 가슴 가득 채우며 새로운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삼부자 (三父子) 


숨을 돌릴 수 없게 무더운 여름이 왔다. 6월이 되면서 휴가를 떠나는 집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고 아파트 앞 잔디밭엔 비키니만 입은 여학생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파도가 찰싹거리는 푸른 바닷물에라도 첨벙 뛰어들고 싶은데 마음뿐인 건강상태를 꼽아보며 쓰디쓴 실망에 잠기곤 하였다.


 그날, 마지막 결정을 내리던 엄숙한 결심은 즉시 실행되었다. 밤에 충분히 잠을 잘 수 있도록 ‘현’과 ‘영’을 데리고 작은 방에서 잤다. 8개월이 된 ‘현’은 아직도 밤에 두어 번씩 깨어서 울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병을 물려주고 그래도 울면 안고 잤다.


 방안에는 두 개의 크리브가 있었지만 아빠는 두툼한 슬리핑 백을 펴고 바닥에서 잤다. 낮에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온갖 참견을 다하던 ‘영’은 또 아빠를 차지하게 되니 밤낮으로 신이 났다. 크리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예 아빠 뒤에 붙어서 잤다. 


 어쩌다 그 방을 기웃이 드려다 보면 저쪽 곁엔 ‘영’이가, 이쪽 팔엔 기저귀가 반쯤이나 벗겨진 ‘현’이 안겨서 삼부자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코끝이 찡해 오며 눈이 아렸다. 


‘좀 더 튼튼하고 활달한 아내를 만났더라면 밤새도록 애들 발길에 채이며 자는 일은 없었을 것 아닌 가…’ 그러면서도 또 하나의 아기를 위해 용기를 북돋우고 평안한 심리적 기반을 만들어 주려고 세세한 일에까지 신경을 써주는 아빠가 눈물겹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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