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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hon
선죽교와 유엔 기념공원
jsshon

  
 
 회색 하늘 아래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유엔 기념공원엔 침묵으로 절규하는 함성이 바람으로 흩날린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생명을 바친 영령께 깊이 고개를 숙였다.


 불현듯 또 하나의 빛바랜 영상이 눈앞으로 지나간다. 6.25전쟁이 나기 바로 전, 아현초등학교 학생들은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소풍이라면 기껏해야 가까운 새 절이나 진관사 정도를 걸어서 갔다가 해질녘에 발을 질질 끌면서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던 때에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새벽 6시 신촌역광장에는 양은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멘 남학생도 있었다. 어떻게 계획된 여행인지 알 수 없으나 까만 정장에 금테 모자를 쓴 역장이 플랫폼에 정렬한 학생들에게 거수경례를 부치며 ‘수학여행 잘 다녀오시오’ 하던 것만 기억된다. 


뽀 옥~ 칙~칙. 시커먼 증기화통이 들어서자 귀를 막고 주저앉던 학생들은 기차가 출발하자 순식간에 말문이 터진 듯 차 안은 덜컥거리는 이음새소리에 웃고 떠드는 소리까지 한데 엉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개성. 고려500년 도읍지 송도. 학생들은 책에서 배운 송도삼절(三絶: 황진이, 서경덕(서 화담), 박연폭포)을 찾아 줄지어 따라다니던 행렬은 작은 돌다리에 이르자 일단 멈추고 정렬하였다. 선죽교였다. 동쪽엔 한석봉 글씨의 비(碑)가 있었다. 


물통에 물을 떠다 돌다리 중간쯤 바닥에 확 끼얹으니 불그스름한 핏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순간 철없이 떠들던 학생들은 일시에 조용해지고 감격의 큰 눈망울들만 반짝거렸다. 


태종 이방원의 회유에 화답한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가 떠올랐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돌다리 위 빨간 핏자국은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곧 이어 터진 6.25전쟁으로 인해 개성은 더 이상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학교나 학생은 우리 밖에 없었다. 


박연폭포 만월대 선죽교를 직접 본 마지막 세대라고 한껏 뽐내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자랑 이전에 묻혀있을 참뜻을 다시 짚어보게 되었다.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풋 솜처럼 빨아드리는 해맑은 총기의 학생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인솔하고 기차여행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선생님은 왜 그 어려운 수학여행을 계획하고, 또 개성을 택하셨을까. 고마움과 정비례하여 질문이 뇌리에서 뱅뱅 떠나지 않았다. 


오늘 한반도의 남단, 부산. 유엔 기념공원엔 하늘의 비구름이 마음마저 흐리게 한다. 유엔 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묘지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희생당한 연합국 군인묘지이며 성지이다. 


유엔군 전몰장병 총 11개국 2,300명이 안장되어 있다.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설치하였고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 하였다. 이해 12월, 유엔총회는 이 묘지를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1959년 11월 유엔 기념묘지설치 및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이 체결되었고, 1974년 기념묘지 국제 관리위원회로 관리이관이 되었다. 2001년 한국어 ‘기념묘지’ 명칭을 ‘기념공원’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원래 1만1000명의 유해가 안장되었으나 전원 본국으로 이장되었거나 일부 고국으로 돌아간 유해가 있어 2,300명이 되었다 한다. 


기록에 보면 6.25전쟁 유엔 참전국은 전투지원16국과 의료지원5국 총 21국에서 19만5,000여 명의 병력이 참전하여 전사3만7,900여 명을 포함하여 부상, 실종, 포로 등 15만1,000여 명의 피해가 있었다. 그 중 미국은 17만 8,900명이 참전하여 전사자만 3만3,600여 명을 내었다. 


드디어 비가 내린다. 위령탑에도, 묘지 위에도, 하얀 돌비석 위에도, 쏟아지는 빗줄기가 선죽교와 겹쳐지는 순간 퍼뜩 깨달았다.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다 낯선 땅 이국에 묻힌 저들의 가슴에서도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떠오르 리라. 


선죽교를 보여주신 참 교육자 스승님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던 21국의 동맹국들, 목숨 바쳐 희생한 수많은 이국의 젊음이 있었음이, 또 있을 것임이 한없는 신뢰와 감사함을 넘치게 한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리, 영원히. WE WILL REMEMBER THEM,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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