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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31)-“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13)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이 선악이라는 관념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오자 말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들이 이전에는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이란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고, 또한 이전에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두려움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결과는, 그들의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으로써 낙원을 낙원으로 즐길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마음에 들어오게 된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관념은 인간에 열등감으로 일으켜 인간이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음을 받은 자녀이면서도 하나님을 경쟁의 대상으로 두게 되었다.


또한 선악이라는 관념이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긴 사명,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하게끔 사랑하고 다스리게 한 그 의무 역시 담당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선악이나 미추나 귀천이라는 관념을 가지고서는 각자 독특한 모습과 성질을 가진 생명체나 사물에게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고 또한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선악이라는 지식은 ‘정녕’ 그들을 위하여 준비된 낙원을 낙원으로 향유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에게 맡겨진 의무를 다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로 하여금 서로 원망하게 하고, 결국 그들로 하여금 낙원을 잃어버리고 고통 속에 헤매다가 죽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한 것은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또한 그들에게 이렇게나 저렇게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자신들 나름으로 경험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됨으로써 그들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릴까 봐 염려한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뜻과 법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고,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은 곧 망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할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몸과 같은 유기체다. 인간의 몸은 하나님이 흙으로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과 같이 물질에 속한 것이고, 흙과 같은 물질에 속한 인간의 몸이 생기를 얻어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숨이 그 안에 들어와서 인간이 하나님의 숨을 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마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몸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인간 자신이 하나님 안에,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 안에 거하시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은 아버지를 떠난 탕자처럼 하나님의 품을 벗어난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했어야 할 일은 안심이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빼 닮은, 그 무엇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았던 자녀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완전한 것이었으므로, 단지 그들이 할 일은 한 생각도 일으키지만 않았으면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안심을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늘에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일용할 양식만으로 감사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건드려도 병 나음을 얻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물 위도 걷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곧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임을 보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에나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 함이다.


아담의 본심이 안심이라면, 아담의 망심은 갈애(渴愛)며 갈구(渴求)다. 뱀의 유혹은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안심하고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뱀의 말을 듣고 보니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열매는 “먹음직스럽게도 보였고, 아름답게도 보였고, 지혜를 줄 것” 같이도 보였다. 


또한 그들에는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였는지, 그 의도에 대하여서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마침내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그들은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선악이라는 분별망상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스스로 더럽히지만 않았으면 될 것을 스스로 더럽혀 고통을 자초하게 되었다. 이것이 아담의 망심이며 지금 우리가 본심으로 착각하고 있는 망심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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