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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46)-“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7)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이러한 실제(實際)와 지각(知覺) 상의 괴리는 바울 사도가, 귀나 발이 한 몸에 붙어 있으면서도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든가,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않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깨달음이 무엇인지는 깨달음을 직접 체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깨달음에 관하여 말할 수도, 글로 나타낼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미리 깨달은 사람이 아직도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제자들을 위하여 깨달음의 경지를 문자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 불교에서는 팔만대장경에 속하는 경전이며 특히 그 중 대승(大乘)경전에 속하는 금강경(金剛經)과 반야심경(般若心經)이다. 


금강경의 내용은, 보살(菩薩)은 자신이 보살이면서도 “보살이라는 관념도 없고, 또한 보시하면서도 보시한다는 관념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반야심경 역시 습의 결과인 분별심으로부터 떠나 자신의 본질인 공에 들어가게 될 때 자유자재 하는 지혜를 나타낸다. 


공의 지혜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서의, 예를 들어 불교의 교리로서의 오온연기나 십이연기나 깨달음이나 깨닫지 못함이나 또는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가르침을 넘어 달을 직접 보게 될 때는 도구(道具)로서 사용된 그런 지식이나 논리나 관념까지도 없어짐을 암시한다. 


이러한 불도에서의 깨달음을 기독교 신앙에 결부시켜본다면 기독교에 있어서도 성인(聖人)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면 인간의 말과 문자로 기록된 성서의 내용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나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과 같은 것으로서 결국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얻게 된 망심으로부터 본심에 돌아오게 되면 망심에 의하여 자신을 전체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보아왔던 망상에서 이제는 다시 이전의 어린아이와 같은 청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자신의 부분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의 분별적 사고방식에 의존해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은 거룩하고 두려운 존재로 자신 밖에 따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자기 밖에서 찾아 섬기려고 하면 그 하나님은 우상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양이나 소를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기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런 시대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끝나게 되었음을 신약성서 사도행전에서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계시지 아니 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가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의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된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 하셨으나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공의로 천지를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라 하니라. 


바울 사도가 지적한 것은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분인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며,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가동하며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금이나 은이나 돌에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은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옛날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 자녀가 되었음을 바울 사도는 선언한다. 


실은 자신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자신을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져 있는 존재로 착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있을 때와 어떤 의심도 일으키지 않고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안심하고 행동할 때와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꼭 성서에 의존하지 않을지라도 인간은 우주에 속하여 있는 것이므로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때 인간은 가장 정확하게 우주의 법칙에 자신이 일치하게 된다. 인간은 본래 우주의 부분으로 존재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인간의 몸은 우주의 물리학적 화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기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도 자연과 우주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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