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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51)-“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32)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있다. 요한복음에는 그 ‘말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셨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중략)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 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 난 것이나 육정으로 난 것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의 저자는 ‘말씀’으로 전체가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지적하신다. 이 ‘말씀’은 곧 빛이며 생명으로 이것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하신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 역시 단지 예수님을 머리나 지식으로 믿는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바로 자신의 인격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즉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으로, 자신이 예수라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포도나무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둘이 될 수 없고, 포도원과 농부는 둘이 될 수 없다. 포도나무와 해나 구름 역시 둘이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창조주의 ‘말씀’, 지혜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그 안에는 “혈통으로 난 것이나 욕정으로 난 것이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라는 분별이나 경계도 없다. 모든 것은 법(法), 계(戒)에 따라 태양은 그 빛을 비추게 되고, 구름은 바람 따라 흐르게 된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룬다. 계정혜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서 포도나무와 공유하는 본질인 동시에 포도나무 역시 천지만물과 공유하는 본질이다. 


하나님을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또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예수님의 간곡한 부탁이어서 지켜야 할 권위적 또는 의무적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한 몸에 속한 지체가 가진 본질로서, 이 본질에서 어긋나면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관념 없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탐진치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그것에 중독되어 붙들고 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체가 약하여 그것에 메여있는 것이다. 인간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것에 집착되어 있는 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것을 몸으로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사탄의 시험에 진 아담과 이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다. 지금의 이 상태에서 어떻게 본래의 모습, 통합된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구체적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선 선악이라는 관념으로 이미 오염된 아담과 이브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섬겨 왔던 방법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이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는 선악이나 성범이나 귀천이라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생긴 망심, 분별심 그대로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아담과 이브의 마음에 어떤 분별망상도 들어오기 이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안심하고 에덴을 즐기고 살던 그 때의 그 모습으로 살게 하는 방법이다. 


후자의 경우란 “더럽히지만 않으면 되는 것”으로 “억지로 애씀”없이 인간 본래의 그 모습으로만 살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자기 변화를 요구한다. 고질적인 옛 버릇이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그것은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뱀이나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이 가까이와도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한 생각도 일으키지만 않으면 그대로가 떡으로만 살지 않는 방법이 되고, 사탄에게 절하지 않는 방법이 되고, 또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방법이 된다. 


인간의 본질이 이미 타고난 윤리와 도덕으로 ‘말씀’과 하나가 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에 속한 세상은 그 빛, 그 진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게 된 이유는, 어이없게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부르도록 했다는 죄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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